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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예수님이 무화나무를 저주하신 이유는 ?

by 은총가득 2022. 5. 11.

 

무화과나무가 무슨 잘못이 있다고 저주하셨나?

(막 11:12-25)

 

예수께서 배가 고프셨다. 마침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서 무화과를 따서 드시 려고 가까이 가셔서 무화과를 찾으시는데 정작 기대하셨던 과일이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잎사귀만 무성한 그 무화과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러시니까, 그 무화과나무가 곧 말라버리고 만다. 이 광경을 본 제자들이 "무 화과나무가 곧 말라버리는 것"이 이상하여 그 까닭을 예수께 여쭈어본다. 우리 같으면 무화 과나무를 왜 저주하시느냐고 여쭈어보았을 법 한데, 제자들은 무화과나무가 금방 말라버리 는 것이 이상했던 것 같다.

 

그랬더니 예수님 말씀이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 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 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고 대답하시는 것이다(마태 21:18-22). 제자들의 관심이 무화과나무 자체에 있지 않고, 무성한 잎의 무화과 나무가 예수님의 말 한 마디에 말라버리는 것, 그러한 능력에 관심이 잇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께서도 의심하지 않고 믿기만 한다면 이 정도뿐만 아니라 산을 뽑아 바다에 던질 수도 있다고 대답하신다. 이까짓 것 나무 하나 말라버리는 것을 보고 뭘 그리 신기하다고 하느냐 하시는 것 같다.

 

같은 기록이 마가복음서에도 있다. 다만 다른 것은 마가복음서 기자는 예수께서 그 잎 이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때가 아직 무화과가 열릴 철이 아니었다고 한다. 마가복 음서 기자는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달리지 않은 것은 무화과나무에 이상이 있어서가 아니 라 다만 아직 무화과 철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마가 11:12-14) 그런데 그 다음 날 예수님과 제자들이 같은 장소로 지나가다 보니까, 어제까지도 잎이 무성하던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린 것이다. 베드로가 보니 바로 어제 아침의 그 나무이다.

 

그래서 베드 로는 선생님께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다고 말하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을 믿으라"고,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고, 그리고 "서서 기도할 때에 아무에게나 혐의가 있거든 용서하라 그리하여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도 너희 허물을 사하여 주시리 라"고 말씀하신다(마가 11:20-25). "믿음"과 "용서"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을 드나들던 제자들의 관심과, 오늘날 그런 기록을 읽고 있는 우리의 관심은 사뭇 다르다. 마태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예수님의 저주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그 무화과나무가 말라버렸든, 마가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그것이 그 다음날 말라버린 것이 확인되었던 간에 시간차가 있기는 하지만, 제자들의 관심은 잎이 무성하던 그 무화과 나무가 저주를 받고 말라버린 것에 있다.

 

그러나 우리의 관심은 어떠한가? 특히 마가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듯이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 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는 기록을 읽는 우리의 관심은 무엇인가?

 

첫째는, 예수님께서 무화과가 결실되는 철을 모르시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아직은 무 화과 열매가 달리기 전, 먼저 잎사귀부터 나서 무성해야 하는 철인데, 그리고 아직은 아무도 무화과에서 그 열매를 기대하지 않는 철인데, 바로 그런 때에 예수께서는 무화과를 딸 수 있을까 기대하시면서 그 무성한 잎을 헤쳐보신 것이다.

 

둘째는, 왜 아무런 잘못도 없이 잘 자라고 있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느냐 하는 것이.

아직 열매 맺힐 철이 아니어서 열매가 맺지 않은 것뿐인데, 그러기에 그 나무가 저주를 받아야 할 아무런 까닭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그 나무를 열매가 없다고 저 주하셨으니 우리로서는 예수님의 행동과 저주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다.

 

셋째는, 제자들의 태도이다.

예수님께 왜 우리처럼 이런 궁금한 것, 곧 아무런 잘못도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느냐고 여쭙지 않고, 기껏 잎이 무성하게 살아있던 나무가 어떻 게 그렇게 마르게 되었는지, 그것만을 문제 삼았느냐 하는 것이다.

 

넷째는, "의심하지 않고 믿고 기도할 것, 남을 용서하고 자신도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것, 그러면 이런 놀라운 기적을 베풀 수 있다는 것" 이런 것을 가르치시려고 멀쩡한 무화과 나무를 애매하게 말라서 죽게 하신다는 말인가?

 

불행하게도 우리가 제기하는 문제에 대한 속시원한 대답은 없다! 마가복음서에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마가 11:13)라는 말만 없었어도 우리는 이 문제를 가지고 고심하지 는 않을 것이다. 열매를 맺어야 할 철에 열매는 안 맺고 잎사귀만 무성한 과일나무라면 저 주를 받을 수도 있다는 것이 양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구만 없어도 예수님이 무화과 철도 모르시는 분이었는가 하는 우리의 의심도 생길 까닭이 없을 것이다.

 

주석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가?

예루살렘 주변의 무화과나무는 일반적으로 3,4월에 잎이 돋기 시작하여, 열매를 맺는 것 은 잎이 무성하게 자라는 6월경이다. 무화과 철도 아닌 유월절 기간(3,4월)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있었다는 것 자체가 대단히 예외적이다.

마가복음서 기자가 "지금이 무화과 철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잎이 무성할 철도 아니라는 말이다. 잎이 무성하면 과일을 맺 고 있어야 한다. 잎이 무성할 철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잎이 무성했다면, 보는 이는 비록 무 화과 철이 아니라 하더라도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를 기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잎이 무성하면 으레 거기에는 과일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저주를 받은 그 나무는 잎만 무 성했지 과일이 없었다. 초점은 내실(內實)이 없이 거품만 있는 당시의 이스라엘, 구체적으로 는 민족 지도자들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다. 이 사건은 일종의 비유이다. 행위 비유(an acted parable)이다. (NIV)

 

확대된 해석

본문 전체(마가 11:12-26)를 자체의 맥락에서 읽을 것을 권한다. 특히 마가 11장20-22절 이 무화과나무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무화과나무 저주" (마가 11:12-4)는 하나의 "사건"이다. "산을 옮길만한 능력에 대한 약속"(마가 11:20-26)은 "선언"이다. 이 "사건"과 "선언"의 맥락(脈絡)이 중요하다고 하다는 것이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곧 처형을 받아 죽게 되신다(15장). 예수께서 무화과나무에 접근하셨을 때, 예수께서는 그 무화과나무 를 하나의 실례(實例)로 그리고 하나의 경고(警告)로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곧, 하나님 나라 가 오시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에게 궁극적으로 어떤 일이 미칠지를 경고하시는 실례로 무화 과나무를 사용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 오시는 것을 반대하는 자들이란 예수 님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과 같은 이들이다. 유익한 열매를 맺기보다는 그 민족은 자신의 특권을 잘못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11:12-18).

 

무화과나무 저주는 예수님의 사려 없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을 위한 교육 방 법이었다는 것이다. 제자들은 이제 곧 혼란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일련의 사건이 그들을 위협 하게 될 것이다. 아마도 그 때가 되면 무화과 저주 사건에 대한 회상이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기도를 통하여 산을 뽑아 바다로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은 용서의 능력 을 말씀하고 계신 것이다(11:25). 예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것과 같은 신비한 능력을 사 사로이 사적인 욕망을 위해 마음대로 사용하는 거짓 희망(배가 고프다고 하여 과일남부가 관일 맺지 않은 것을 저주하는 것과 같은)을 과시하려하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을 움직일 수 있는 다른 능력, 곧 "원수를 향한 자비"의 능력이 지니는 중요성에 대하여 말씀하고 계신 것이라고 본다(CEV). <민영진 목사>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막 11:12-14)

 

우리는 어제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신 사건에 대해서 생각 했습니다.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 오신 후에 예루살렘 성 안에서 사건들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중에서 첫 번째 사건인 열매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입니다. 마가는 이 부분에서 다시 샌드위치 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한 사건 사이에 성전청결 사건을 삽입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이러한 방법으로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외식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외식에 빠진 이스라엘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이 내릴 것으 예고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잎사귀는 무성하나 하나님께 드릴 경건과 사랑의 열매는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외식과 형식으로 가득찬 예루살렘 성에 엄중한 심판이 임할 것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를 저주한 일은 이러한 심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입니다.

 

1.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12-14)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12).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13).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14)."

 

다음 날(월요일) 아침, 예수님 일행은 베다니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예수님은 매우 시장하셨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멀리에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있는 것을 보시고 그곳으로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혹시 그 나무에 무화과 열매가 있는 지 보려고 그 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나무에는 아무 열매도 없었습니다. 이 때는 아직 무화과 나무가 그 열매를 결실할 때가 아니었습니다(12-13). 감람산 동편 보호구역에 가면 3월 말부터 4월초에 잎이 나고 있는 무화과나무를 볼 수 있습니다.

 

이 무화과나무는 3월이면 작은 열매을 맺었고, 4월이면 크고 무성한 잎들이 나왔습니다. 이때에 맺힌 작은 열매들은 잎사귀보다 먼저 열리는 풋과일로, 대부분 먹을 수 없는 열매였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무화과는 5-6월이 되야 먹을 수 있는 열매가 맺혔습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열매가 맺히려면 앞으로 약 6-10주를 더 기다려야 했습니다(유월절은 4월 중순이었다). 예수님은 매우 시장하셨기 때문에 아직 익지 않은 풋과일이라도 찾으려고 그 곳에 가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 무화과나무에는 어떤 풋열매도 달려있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은 그 무화과나무를 향해서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이제부터 영원히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2. 이 사건이 주는 의미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일은 깊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메시아를 거부하고 경건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예고한 사건이었습니다. 구약에서 무화과나무는 종종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렘 8:13, 호 9:10, 욜 1:7, 미 7:1 참고). 예언자들은 종종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번영한 이스라엘을 충실한 열매맺은 무화과나무로 표현했고, 불순종으로 인해 심판받은 이스라엘은 열매맺지 못하는 무화과 나무로 표현을 했습니다(호 2;12, 사 34:4 참조).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미가는 (미 7:1)에서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실과를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와 같아서 먹을 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미 7:1) 미가는 예루살렘의 상황이 여름 실과를 추수한 뒤와 같다고 한탄했습니다. 그는 아무리 찾아도 그가 원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 나무의 열매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미가의 탄식은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지 못하신 예수님의 탄식과 비슷했습니다.

 

그러면 미가가 얻으려고 했던 열매는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미가는 (미 7:2)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인간에 없도다. 무리가 다 피를 흘리려고 매복하여 각기 그물로 형제를 잡으려 하고...."(미 7:2) 미가가 찾으려고 한 열매는 선한 사람(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선하고 정직한 사람을 찾아보려고 했지만 선하고 정직한 사람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바로 추수가 끝난 후에 더 이상 과일을 거둘 수 없게된 것과 같았습니다.

 

모든 백성들은 다른 형제를 해치기 위해서 음모를 꾸미고 악을 도모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주민들은 두 손으로 악을 행했으며, 재판관들은 뇌물을 구했고, 또한 관리들도 자기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 잔치와 향락에 빠져 지냈습니다(미 7:3). 미가는 예루살렘 거민들 중에서 가장 선한 사람이 찔레 가시보다 더 악하다고 한탄을 했습니다. 그러므로 마침내 미가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미가는 그들이 악을 행하다가 하나님의 심판 날에 놀라 소동을 벌일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미 7:4-).

 

이와 비슷하게 예수님께서 찾으려고 했던 무화과 나무 열매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에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에는 화려한 종교예식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경건과 사랑의 열매를 잃어버렸습니다. 마가가 무화과나무 사건 사이에 성전청결 사건을 삽입한 것도 이러한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과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찾으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형식적 종교인들이 성전을 강도의 굴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전을 청결하게 하고 그들에게 엄중한 심판을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다시는 예루살렘에서 사람들이 사랑의 열매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이 예고가 있은 지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서(70년), 로마 장군 디도에게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끝까지 메시아를 거부하고 악을 행하던 이스라엘을 심판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후부터 나라 없이 거의 1900년 동안을 이리 저리 떠돌며 유랑하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이스라엘에게 더 이상 경건과 사랑을 요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거부한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에 사용하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복음의 등불을 유대인에서 이방인으로 옮기셨습니다. 복음을 받은 이방인들은 새로운 인류의 등불로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가난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 주시고, 그들을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제 모든 민족들이 복음을 듣고 두 손 들고 돌아오고 있습니다.

최영찬 목사

 

 

 

화과 나무의 비유

 

막11:11-24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 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다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멸할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기이히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매양 저물매 저희가 성밖으로 나가더라 저희가 아침에 지나갈 때에 무화과나무가 뿌리로부터 마른 것을 보고 베드로가 생각이 나서 여짜오되 랍비여 보소서 저주하신 무화과나무가 말랐나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저희에게 이르시되 하나님을 믿으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마24:32-3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7:1-2

재앙이로다 나여 나는 여름 실과를 딴 후와 포도를 거둔 후 같아서 먹을 송이가 없으며 내 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이와 같이 선인이 세상에서 끊쳤고 정직자가 인간에 없도다

 

렘24:1-10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로 내게 보이셨는데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악하여 먹을 수 없는 극히 악한 무화과가 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악한 것은 극히 악하여 먹을 수 없게 악하니 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 하니라 가라사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이곳에서 옮겨 갈대아인의 땅에 이르게 한 유다 포로를 이 좋은 무화과 같이 보아 좋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을 돌아보아 좋게 하여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고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심고 뽑지 아니하겠고 내가 여호와인줄 아는 마음을 그들에게 주어서 그들로 전심으로 내게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유다 왕 시드기야와 그 방백들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로서 이 땅에 남아 있는 자와 애굽 땅에 거하는 자들을 이 악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 같이 버리되 세상 모든 나라 중에 흩어서 그들로 환난을 당하게 할 것이며 또 그들로 내가 쫓아보낼 모든 곳에서 치욕을 당하게 하며 말거리가 되게 하며 조롱과 저주를 받게 할 것이며 내가 칼과 기근과 염병을 그들 중에 보내어 그들로 내가 그들과 그 열조에게 준 땅에서 멸절하기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시니라

 

 

 

호세아 9:10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 보기를 무화과 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저희가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렘8:7-13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반구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하셨다 하라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뇨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수욕을 받으며 경황 중에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나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전지를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아니할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21:19-22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얻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가로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지우라 하여도 될것이요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3: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눅13:5-7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이사야 28:3-4

에브라임의 취한 자의 교만한 면류관이 발에 밟힐 것이라 그 기름진 골짜기 꼭대기에 있는 그 영화의 쇠잔해 가는 꽃이 여름 전에 처음 익은 무화과와 같으리니 보는 자가 그것을 보고 얼른 따서 먹으리로다

 

아모스 4:9

내가 풍재와 깜부기 재앙으로 너희를 쳤으며 팟종이로 너희의 많은 동산과 포도원과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를 다 먹게 하였으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3~22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의 앉은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가로되 이 성전은 사십 륙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뇨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및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많은 분들이 열매맺을 때가 안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이 이해가 않되어서 혼란스러워 하시고 질문하셔서 올려드립니다.

 

막11:13-

잎사귀 있는 (에쿠산 퓔라) -'잎사귀'에 해당하는 '퓔라'는 '나뭇잎'을 뜻하는 '퓔론'의 복수형으로, 여기서는 그 무화과나무가 잎이 무성했음을 암시한다 (마24-32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보통 무화과 나무는 일년에 두 번 열매를 맺는다. 지난 해 싹에서 자라난 조금 이르고 작은 무화과 나무열매는 3월 말에 나타나기 시작하여 5,6월경에 익는다. 또한 봄에 나온 새싹에서 자라난 조금 늦고 단맛이 더 나는 큰무화과는 8월에서 10월 사이에 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예수께서 찾고자 하셨던 열매는 잎과 동시에나기 시작하는 이른 무화과 열매였다.이런 무화과 열매는 때로는 잎보다 먼저 나오기까지 한다.그런데 당시때는 유월절에 가까운 4월 경이었으므로 무화과를 따기에 적기는 (카이로스/일반적 시간을 의미하는 크로노스아님) 아니었으나,먹을 수 있을 정도의(13절- 혹 무엇이 있을까 하여) 무화과 열매는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을 때 였다.

 

멀리서 볼 때 잎이 무성하므로 예수님은 무엇인가를 기대했으나 열매가 없는 무화과 나무를(미7:1 내마음에 사모하는 처음 익은 무화과가 없도다) 저주하시면서 표면적으로는 시장하심을 인하였으나 열매 없는이스라엘을 상징하며 말라버린 무화과나무는 타락한 예루살렘성전을 정화하시며, 결국 성전을 헐고 예수님자신의 성전 됨을 암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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