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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

시편 설교하기

by 은총가득 2022. 1. 24.

 

시편설교하기

 

시편은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의 삶 속에서 특별히 영예로운 지위를 누려왔다.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설교자들은 시편에 대한 설교를 회피한다. 설교자들이 시편을 설교 본문으로 사용하기 꺼려하는 이유는 많을 것이다. 하지만 시편의 설교에 이런 온갖 난제들이 있다 하더라도 시편은 여전히 노래와 기도의 광맥임에 틀림없다.

Preaching the Psalms with Respect
for their Inspired Design

시편은 막대한 힘을 가지고 독자와 청취자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시편은 일상생활의 표면적 관심사와 정서적 방어망을 뚫고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마음을 열어 준다. 어느 시편을 보느냐에 따라 해당 시편은, 우리의 마음을 위로하기도 하고 하나님을 향한 감정을 고양시켜주기도 하며 양심을 일깨워 죄를 깨닫게 하는가 하면, 자기만족에서 벗어나도록 자극하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우연이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러니까 작시(作詩)의 시점에서부터 우리가 시편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까지 하나님의 성령은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적극적은 역할을 수행하신다. 각 시편은 우리를 특별한 방식으로 다루고자, 그 신적 저자와 인간 저자에 의해 주의 깊게 작성되었다. 이와 관련해 앨린더(Allender)와 롱맨(T. Longman)은 말한다: 성경 가운데, 영혼의 언어를 시편보다 잘 가르쳐 주는 부분은 없다. 시편은 인간 마음의 움직임을 풍요롭고 자극적인 놀라운 언어로 드러낸다. 타파하고 권유하고 계시하는 목소리를 통해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음성에로 우리를 이끌어 간다(Allender and Longman, 1994, p.31).

하나님의 성령은 성경 기자들의 마음에 미리 채비를 갖추어주어 글을 쓸 수 있게 하셨으며 또한 우리가 이 글을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에 채비를 갖추어주신다. 하나님의 성령은 현대의 신자들이 특정 시편을 읽거나 들을 때 그들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성령의 이런 내적 역사(役事)의 비밀들을 우리는 다 파헤칠 수 없다. 한 개인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어느 메시지를 받을 때 일어나는 현상의 많은 부분은, 인간의 이해를 초월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기 계시 활동과 관련해, 다른 한편에서는 우리가 휘장을 제치고 성령의 사역 일부를 들여다볼 수 있다. 우리가 시편 자체를 분석해서, 하나님이 과연 어떤 특정 수단들을 통해 자신의 말씀을 독자들과 청취자들에게 전달하셨는지 헤아려보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에 관한 드렘퍼 롱맨의 당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나친 분석을 일삼다가 그 속에서 생명력을 제거해버리는 일이 없도록, 시(詩)의 본래 의도가 가슴에의 호소에 있음을 의식하면서 시 읽는 법을 배우는 것이, 중요한 비결이다”(Longman, 1997, p.131).

본문의 문학적 스타일을 익히자

롱맨의 우려에 유의하는 것이 옳지만 그럼에도 설교자로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작성하고 전달하기 위해, 시편 기자들이 주의 깊게 준비된 시적인 장르에서 어떤 방법으로 장비들을 사용했는지 밝혀보아야 한다. 어느 시편을 설교 본문으로 사용하고자 할 때 중요한 것은 시적이고 수사학적인 분석을 주의 깊게 실시하는 것이다. 각 시편이 독자와 청취자에 대한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특별 방식으로 설계되었듯이 우리의 설교도 역시 그와 유사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우리가 청중의 감정을 조작하고픈 유혹에 굴복하지 않으려면 설교의 구성에 매우 주의 깊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우리의 일차적 목표는 청중들의 마음속에 감정적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청중의 삶에, 정확하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적용하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어느 시편에 고정된 수사학적 효과를 그대로 재생하고자 하는 것이 본문의 정확성을 손상시키는 행위라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수많은 설교들이 왜 설교 본문으로부터 그 속에 내재한 시적이고 수사학적인 특성을 제거해버리는지, 그 이유를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설교하고자 하는 어느 시편 속에, 위로, 죄에의 자각, 도전, 자극, 안도감 등을 주거나, 혹은 듣는 이의 가슴과 마음을 고양시키고 하나님 앞에 꿇어 엎드려서 찬양하게 만드는 힘이 깃들어 있다면, 바로 그 시편에 관한 우리의 설교도 그와 유사한 효과를 낳아야 하지 않겠는가.


문학 양식에 따라 설교학적 접근도 달라야 한다. (성경의 기타 문학 장르에서 본문을 택할 경우는 두말할 나위 없거니와) 시편을 가지고 설교할 때 천편일률적인 설교 형식을 사용하기보다, 시편 기자들에게 맞춰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겠는가. 우리의 설교에서도, 히브리 시문 장르 속에 내재한 수사학적 장치들과 전략들을 사용함으로써 해당 시편의 일부 효과를 재생해내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이다.
토마스 롱(Thomas Long)은 성경 본문의 수사학적 역학(力學)을 주의 깊게 고찰하라고 주문한다. “성경 본문이 자체의 배경 속에서 말하고 행하는 그것을 (우리의 설교가) 말하고 행하도록,” 설교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Long, 1989, p.24~34).


시편의 시적인 힘을 100퍼센트 모두 우리의 설교 속에 흡수한다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일 것이다. 만일 그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면 시편을 회중에게 그냥 읽어주고 내려오면 될 것이다. 설교는 자체의 목적과 수사학적 전략을 갖춘, 하나의 형식이다. 시적인 수사적 장치를 별로 사용하지 않는 설교도 지금까지 인간의 삶을 어루만져 왔다.
그러나 수사학적 비평 분야가 새로이 발전하면서, 성경 시편 기자들의 기교와 영감, 독창적 재주에 대한 새로운 감각과 인식이 대두되었다. 우리가 지금껏 해온 대로, 시편을 전통적인 교훈적 설교 형식 속에 계속 맞추어 넣는다면 이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버지가 아들의 자전거를 조립하면서 설명서도 보지 않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 행위일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설교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수많은 군더더기가 붙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설교가 어떤 기능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시적인 힘과 우아함을 통해 감동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수사학적 분석이 주해를 대신할 수는 없다. 수사학적 분석은 시편에 대한 주해적 연구를 보완해야 하며 그 연구 위에 서야 한다. 주해는 “시편 기자가 지금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반면 수사학적 분석은 “시편 기자가 이를 어떻게 말했는가, 그리고 이 시편이 내게 이런 식의 감동을 주는 것은 특별히 무엇 때문인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것이다. 주해는 주어진 행(行)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판독하는 행위이다. 수사학적 비평은 같은 행 속에서, 독자나 청취자가 본문 메시지의 내용을 받아들이는 동안 본문이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밝혀보고자 노력하는 행위이다(Loscalzo, 1992, p.105). 읽는 자와 듣는 자의 마음과 심정에 성령이 미치시는 영향은, 우리의 오성으로 죄다 파악할 수 없는 사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본문 자체에서 그에 대한 몇 가지 단서를 얻을 수 있다.


하나의 시편을 수사학적으로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그리고 거기에서 발견한 것을 우리의 설교 초안 속에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가, 지금부터 본 논문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자 하는 사항이다. 시편에 대한 수사학적 분석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의 유용한 질문 목록을 제시할 것이다. 그 다음 시편 8편과 32편에 그 질문들을 적용해볼 것이다. 시편 전체에 대한 우리의 설교를 풍요롭게 하기 위해 먼저 질문들의 목록을 제시하고, 이어서 이 두 편의 특정 시편을 가지고 설교할 때 어떤 설교학적 전략을 사용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우선 질문 목록은 결코, 모든 면을 죄다 망라한 철저한 목록이 아님을 밝혀두고자 한다. 또 여기서 제시한 설교학적 전략도, 이 두 시편에 대한 유일한 설교 초안 혹은 최상의 초안이 아님을 지적해두는 바이다. 그러나 이 질문들과 전략은 두 시편을 설교하는 데 있어서 상당히 적절한 접근법이라고 믿고 싶다. 이러한 접근법은, 시편 기자들이 청취자의 마음을 빼앗는 일상사와 심적인 방어망 속으로 뚫고 들어가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대한 예배에로 고양시키기 위해 어떤 수단들을 사용했는지, 진지하게 고찰해보려는 노력에 다름 아니다.

 

 

시편에 대한 수사학적 분석 행하기

우리는, 장르 지향적인 시편 설교 방법이라는 이 논제의 연구에 착수할 때 시문 일반 그리고 특정 시편의 아름다움과 힘 배후에 어떤 비밀이 있는가를 밝혀줄 단일 열쇠를 발견하고 싶었다. 시적인 담화는, 듣는 자의 마음속에 생성시키는 효과가, 평범한 산문 투보다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이 우리의 소신이었다. “팔십 성상(星霜) 하고도 일곱 해 전에, 우리의 선조들은 … 탄생시켰다”라는 표현이 왜, “87년 전 우리 선조들은 … 설립했다”라는 문장과 다른 감동을 주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전자(前者)는 높이 비상하는 반면 후자는 터벅터벅 걸어가는 이유를 파악할 수 있다면, 특정 시편의 설교에 활력을 줄 간단한 공식을 개발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가 상정한 이론이었다.


그러나 만능열쇠는 결코 발견할 수 없었다. 그 대신 우리가 발견한 것은, 여러 형태의 자물쇠들을 열어줄 다양한 모양의 열쇠가 달린, 완벽한 열쇠 고리였다. 자물쇠의 종류가 각각 다르듯이 시편의 종류도 각기 상이하다는 사실도 우리가 발견한 것이다. 특정 시편이 우리에게 깊은 영향을 주는 요인은, 다른 시편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는 요인과 종종 다르다. 한 시편에 깃든 수사학적 힘의 자물쇠를 열어 그 힘의 일부를 자신의 설교 속에 흡수하고자 하는 설교자는, 열쇠 고리 전체를 휴대할 필요가 있다. 때로 어느 열쇠가 그 자물쇠에 맞는 것인지 발견하려면 여러 개의 열쇠를 가지고 시험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시편 곳곳에서 다양한 수사학적 전략들이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주어진 한 시편에서 어느 전략이 어느 정도로 사용되었는가에 따라, 해당 시편이 독자와 청취자에게 줄 수 있는 영향력은 천차만별이다. 그러므로 특정 시편에 대한 수사학적 분석을 수행하면서 아래의 질문들을 그 시편에 적용하고자 할 때, 하나의 질문이 다른 질문보다 더 유용한가를 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본문에서 설교로 나아가기

하나의 시편을 다루고자 할 때 던져야 할 질문들은 다음과 같다.
1. 이 시편은 어느 장르에 속하는가?(Long, 1989, p.24~34). 본 시편은 같은 장르의 다른 시편들과 어떤 면에서 유사한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2. 보통 이런 유형의 시편에서는, 어떤 분위기(기분), 주제, 의도된 효과 등이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이 시편은 이런 세 가지 면에서 전형적인가, 즉 이 유형에 충실한가?
3. 본 시편은, 이 유형의 시편들의 통상적인 구조적 패턴을 얼마나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가? 저자가 해당 시편의 수사학적 효과를 바꿀 어떤 혁신적인 요소를 도입하고 있지는 않은가?
4. 해당 시편의 내용 배열은 귀납적인가 연역적인가? 어떤 증거가 이 방향을 지시하고 있는가?
5. 이 시편의 수사학적 효과는 무엇인가? 이 시편은 독자인 나의 마음속에 어떤 느낌을 생성하고 있는가? 시편 기자는 이 효과들을 어떻게 달성하고 있는가?
6. 시편의 감정적 지형(地形)은 어떠한가? 감정적으로 고지, 저지(低地), 평지는 어느 부분인가? 본 시편이 서로 다른 이 감정 지대들에 도달할 때 시편 기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7. 시편 기자의 시간 속 혹은 공간 속 관점이 무엇인가? 시편 기자의 관점이 해당 시편의 메시지와 효과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 이 시편 속에 공간적 혹은 시간적 움직임이 있는가? 만일 있다면 이것이 어떤 효과를 낳고 있는가?(Buttrick, 1988, p.55~68)


8. 이 시편에 내러티브(narrative, 이야기식) 줄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Bellinger, 1990, p.36)
9. 이 시편 속의 핵심 영상(影像)들(images)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 이미지들을 핵심으로 만들고 있는가? 시편 기자는 그 이미지들을 어떻게 전개하는가? 그 영상들은 어떤 효과를 낳는가?
10. 기자는 이 시편 속에 어떤 식으로 긴장을 조성하는가? (그러한 긴장 조성이 있다면) 기자는 이 긴장을 어떻게 이완시키는가?
11. 기자는 어떤 종류의 언어를 사용하는가? 구상적(具象的) 언어인가, 추상적 언어인가? 그것인 어떤 효과를 주는가?
12. 기자는 이 시편에서 어떤 시적 장치들을 사용하는가? 그런 장치들에는, 어떤 영상, 은유, 직유, 의인화, 과장법, 돈호법(頓呼法), 시제의 변화 혹은 유다른 시제, 후렴의 존재나 부재 등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어떤 효과를 낳고 있는가?
13. 이 시편 속에 강화(强化) 요소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14. 이 시편을 통해, 기자가 이루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기자는 독자가 이 시편을 읽고 나서 무엇을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믿거나 행하기 원하는가(Bellinger, 1990, p.36)

 

 



실제: 시편 8편의 설교

이런 질문들을 손에 들고서 이제 시편 8편을 분석해보자. 이 시편은 만유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는 찬송시(hymn)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 시편을 인용하면서 4절의 “인자”를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한다. 우리의 견해로는, 시편 8편과 히브리서 2장을 한 쌍의 본문으로 삼아 하나의 복잡하고 긴 설교를 하기보다, 각각 하나씩 두 편의 설교를 전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본다. 아래의 분석은, 시편 8편에 나타난 원래의 문학적 맥락을 주로 다룬 것이다.

(1) 시편 8편에 대한 질문과 응답
1) 이 시편은 어느 장르에 속하는가? 본 시편은 같은 장르의 다른 시편들과 어떤 면에서 유사한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시편 8편은 찬송시이다. 찬송시의 목적은 무언가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창조 행위에 대해, 그리고 피조물 특히 인간에 대한 지속적 돌보심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한다. 기자는 하나님께 직접 말을 거는 찬양의 언어로 노래를 개시한다. 본 시편은, 기자의 서두 언어가 여타의 예배자가 아닌 하나님을 향해 발설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여러 시편들 예컨대 95, 96, 100편 등과 상이하다(Anderson, 1983, p.136~137).

2) 보통 이런 유형의 시편에서는, 어떤 분위기(기분), 주제, 의도된 효과 등이, 특징으로 나타나고 있는가? 이 시편은 이런 세 가지 면에서 전형적인가, 즉 이 유형에 충실한가?
찬송시들은 일반적으로 즐거운 분위기를 풍긴다. 본 시편은 세계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활동을 칭송한다. 하늘을 향해 눈을 던짐으로써 기자는 하나님의 장엄하심과 광대하심 및 하나님의 작품에 관한 그림을 그린다. 이어, 시의 중간 부분에서 기자는, 그에 비해 우리 인간이 얼마나 작고 무의미한가에 초점을 맞춘다. 다음의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그 다음 5절에서 인간은 아주 탁월한 지위로 올라간다. 이 구절에서 사용된 언어는 창세기 1장의 창조 신학을 연상시킨다.

3) 본 시편은, 이 유형의 시편들의 통상적인 구조적 패턴을 얼마나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가? 저자가 해당 시편의 수사학적 효과를 바꿀 어떤 혁신적인 요소를 도입하고 있지는 않은가?
찬송시들은 대개 찬양의 언어로 시작하고 종결된다. 찬송시의 주본문에서는 찬양의 이유들이 제시된다. 시편 8편은 이런 특징들을 모두 담고 있다. 개시 구절과 종결 구절이 일종의 후렴 역할을 하고 있다. 시편의 중간에 전략적으로 배치된 하나의 질문은, 하나님의 권능과 영광에 대한,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친밀하게 돌보신다는 사실에 대한, 경이감과 외경심을 심화시킨다.

4) 해당 시편의 내용 배열은 귀납적인가 연역적인가? 어떤 증거가 이 방향을 지시하고 있는가?
본 시편은 연역적 느낌을 안겨주고 있다. 기자가 찬양의 언어로 이 찬송시를 시작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서두에서 청취자들에게 바라는 반응을 제시한 다음, 그렇게 해야 할 이유들을 적시함으로써 독자들에게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촉구한다. 이런 점은, 130편 같은 시편들과 대조적이다. 130편은 귀납적 느낌을 준다. 그 시편은 “여호와여 내가 깊은 데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라는 말로 시작되기 때문이다.

5) 이 시편의 수사학적 효과는 무엇인가? 이 시편은 독자인 나의 마음속에 어떤 느낌을 생성하고 있는가? 시편 기자는 이 효과들을 어떻게 달성하고 있는가?
이 시편은 밤하늘의 장엄함을 바라볼 때 그에 비해 나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가를 느끼게 만든다. 대양(大洋)을 바라보며 대양의 광대함과 힘을 생각할 때 그와 유사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기자는 하늘로부터 인간으로 초점을 급히 이동함으로써 그런 효과를 달성한다.

6) 시편의 감정적 지형(地形)은 어떠한가? 감정적으로 고지, 저지(低地), 평지는 어느 부분인가? 본 시편이 서로 다른 이 감정 지대들에 도달할 때 시편 기자는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
본 시편은 장조(長調)에서 출발해 4절에서 하나의 질문을 통해 순식간에 단조(短調)로 이동하며 5절에서 그 질문에 대한 응답을 제시함으로써 다시 장조로 되돌아온다.


7) 시편 기자의 시간 속 혹은 공간 속 관점이 무엇인가? 시편 기자의 관점이 해당 시편의 메시지와 효과에 어떻게 기여하고 있는가? 이 시편 속에 공간적 혹은 시간적 움직임이 있는가? 만일 있다면 이것이 어떤 효과를 낳고 있는가?
본 시편은, 별이 빛나는 밤에 기자가 밖에 서서 밤하늘을 응시하며 하늘 위에 계신 분의 위대하심에 대해 명상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가 명상하는 동안 어느 시점에 어린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었을 가능성도 있다(무언가가 그의 마음에 갓난아기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고 있다). 그의 초점은 하늘의 장엄함으로부터 인류의 초라함과 무의미해 보이는 모습으로 이동한다. 하지만 기자는 하나님의 설계에서 인류의 지위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기자는 고백한다, “저를 천사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이 시점에서 기자의 눈에는 육지와 바다와 하늘에 거하는 생물들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을지도 모른다.

8) 이 시편에 내러티브(narrative, 이야기식) 줄거리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기타 많은 시편들의 경우와 달리, 이 시편의 수사학적 효과에는 내러티브 줄거리가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보인다. 어떤 줄거리가 존재하는가는, 주로 창조와 관련되어 있다.

9) 이 시편 속의 핵심 영상(影像)들(images)은 무엇인가? 무엇이 그 이미지들을 핵심으로 만들고 있는가? 시편기자는 그 이미지들을 어떻게 전개하는가? 그 영상들은 어떤 효과를 낳는가?
젖먹이 아이, 적들과 복수자들, 해와 달과 별들을 하늘에 두신 하나님, 인간, 천사들, 짐승의 떼, 가축의 떼, 새, 물고기 등이 모두 이 짧은 시편 속에 등장한다. 젖먹이 아이들과 원수들, 복수자들이 무슨 목적으로 포함되었는지는 다소 불분명해 보인다. 이들이 언급된 것은, 장엄의 음조를 북돋우어주기 위한 게 아닌가 한다. 인간과 나머지 광대무변의 피조계를 병렬해놓은 것은, 경외감과 고요한 묵상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다.

10) 기자는 이 시편 속에 어떤 식으로 긴장을 조성하는가(그러한 긴장 조성이 있다면)? 기자는 이 긴장을 어떻게 이완시키는가?
넓은 시각에서 볼 때 인간이 얼마나 무의미한가라는 기자의 해묵은 질문과 함께, 의미 있는 하나의 긴장이, 유일하게 본 시편의 중간에서 출현한다. 다음 절에서 기자는 자신의 이 질문에 응답함으로써 이 긴장을 즉시 푼다.

11) 기자는 어떤 종류의 언어를 사용하는가? 구상적(具象的) 언어인가, 추상적 언어인가? 그것인 어떤 효과를 주는가?
기자가 사용하는 언어와 그가 전개하는 주제들은, 창세기의 서두 장을 연상시킨다. 기자는 추상적 언어보다 구상적이고 구체적인 낱말들을 사용한다.

12) 기자는 이 시편에서 어떤 시적 장치들을 사용하는가? 그런 장치들에는, 어떤 영상, 은유, 직유, 의인화, 과장법, 돈호법(頓呼法), 시제의 변화 혹은 유다른 시제, 후렴의 존재나 부재 등등이 있다. 이런 것들은 어떤 효과를 낳고 있는가?
기자는 시편 전체에서 흔하게 발견되는 시적 장치들의 다수를 사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은유나 직유, 과장법을 쓰지 않는다. 그리고 본 시편의 서두와 말미에서만 후렴을 사용한다. 이 후렴구는, 하나님께 직접 말을 거는 형식의 찬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자는 또한 고도로 시각적이고 구체적인 영상들을 사용하며 하나의 영상에서 다른 영상으로 자유롭게 건너뛴다.

13) 이 시편 속에 강화(强化) 요소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두 군데서 기자는 하나의 일반 명사로부터 출발한 다음 이 명사를 부연 확대해 그 아래에 소속된 몇 가지 구상 명사들을 언급한다. “하늘”이라는 단어가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것”, “달”, “별” 등으로 부연 확대된다.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는 “모든 우양과 들짐승”, “공중의 새”, “바다의 어족”으로 부연 확대된다.

14) 이 시편을 통해, 기자가 이루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기자는 독자가 이 시편을 읽고 나서 무엇을 생각하거나 느끼거나 믿거나 행하기 원하는가?
기자가 여기에서 예배자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작품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또한 예배자들이 이 찬송을 노래한 후, 이 거대한 우주 속에서 우리 인간이 차지하는 독특한 위치에 대해 한편으로는 겸손한 마음을 품고 또 한편으로는 환희의 감격을 느끼는 것, 이것도 기자의 바람일 것이다.

(2) 시편 8편에 대한 몇 가지 설교 방법
시편 8편은 창조의 주제를 담고 있는, 몇 안 되는 시편들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가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부분은, 이 시편이 수사학적으로 어떤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가 라는 점이다. 본 시편은 청취자에게 어떤 효과를 주고 있는가? 그리고 기자는 그 효과를 어떻게 달성하고 있는가? 우리가 어떻게 현대의 청중에게 이런 수사학적 효과를 전달해 줄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떤 조처를 취해야 하는가? 어떤 종류의 예화들이 이 성경 본문과 양립할 수 있을 것인가?


이 특정 시편에서 괄목할 만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기자가 시편 중간 부분에서 날카로운 수사학적 변곡점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다. 1절부터 3절까지에서 기자는 광범위한 필치로 하나님의 우주 창조에 관한 구두적 그림을 그린다. 광막한 하늘로 하나님의 영광을 묘사하고 그 안에 별들과 달을 스케치해 넣는다. 그러다가 4절에서 기자는 갑작스런 수사학적 변환을 실시한다. 사전의 경고 없이 기자의 글은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선회한다,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본 질문과 하늘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이 양자의 날카로운 병렬은 시편 8편 전체에 대한 이해의 열쇠이며 이 시편에 대한 설교의 열쇠이다.


설교자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먼저 장엄한 창조계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모종의 효과를 고양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행할 수 있는 방법은 많다. 설교자는 기자가 서두 구절에서 포착하고 있는 그 느낌의 체험을 다음과 같이 묘사하며 개인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 저는 별들의 수를 헤아려 보려고 한 적이 있습니다….” 과학에서 예화를 빌어와 기자의 관찰을 부연 설명하는 것도 또 하나의 접근법이 될 수 있다. “만일 기자가 망원경을 가지고 밤하늘을 관찰했더라면….” 뒤를 이어 우주의 크기, 은하계와 별들의 숫자 등에 대한, 현대 과학에서 알려진 사실들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 지점에서 설교자는 창조계의 장엄함에 대한 외경심을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다. 설교에서 이 외경심이 강렬하게 나타날수록 설교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도 더욱 큰 효과를 낼 것이다.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는 기자의 질문을 들먹이는 것이 좋을 것이다. “기자가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라고 물었다는 사실은 아주 묘하지 않습니까? 우리 자신과 저 광활한 하늘을 비교해볼 때 우리는 얼마나 작고 외견상 무의미해 보입니까!” 메시지의 이 지점에서 칼 새건(Carl Sagan) 같은 저자의 글을 인용해 우리의 무의미성에 대한 느낌을 고양시켜도 좋을 것이다.

“유사 이래 인간들은 우리가 우주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탐구해왔습니다. 우리의 위치는 어디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지구의 인구수보다 훨씬 더 많은 은하계들이 존재하고 있는 우주, 이 우주의 망각된 한 모퉁이에는 은하계가 하나 숨어 있습니다. 그 은하계 속에는 하나의 평범한 별이 버려져 있고 거기에 하나의 무의미한 행성이 달려 있는데, 우리가 바로 그 위에서 살고 있습니다”(Carl Sagan, 1986, p.74).

이 인용문 속의 형용사들과 명사들, “무의미한 행성, 평범한 별, 우주의 망각된 모퉁이” 등을 되풀이할 때 예화의 효과는 가일층 높아질 수 있다. “우리는 정말로 무의미한 망각된 존재인가?” 이에 대해 설교자는 기타 인상적인 인용문들, 사람들의 자아 무가치 의식에 관한 연구들, 일상생활에서 따온 이야기 등으로 무가치 의식에 관한 예화를 제공할 수 있다.
본 시편의 정서적 윤곽과 주제적 흐름을 견지하기 위해 그 다음 단계에서 설교자는, 기자가 5~8절에서 하듯이,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성경적 시각을 짚어야 한다. 이 때, 우주 속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지극히 엄밀한 조건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면 효과가 고양될 수 있다. 유명한 천체 물리학자 마틴 리스(Martin Rees)는 우주의 크기에 관해 다음과 같은 놀라운 정보를 제공해준다.

“일견하기에 우리가 이 우주의 조직 속에서 얼마나 보잘것없는가를 보여주는 듯한, 우리 우주의 거대성 그 자체는, 사실상 우리의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다. 이보다 작은 우주는 존재할 수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그런 작은 우주 속에서는 생존할 수 없었다는 뜻이다”(Rees, 2000, p.10).

우주의 미세(微細)조정과 관련된 기타 세부적 사항들로, 중력의 세기, 지구의 기울기, 지구가 아주 적절한 크기의 별(태양) 주위를 아주 이상적인 궤도로 돌고 있다는 사실, 우주의 크기 등등을 언급할 수도 있다. 하나님이 이런 세계를 만들고 우리를 창조의 면류관과 영광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청중이 깨달을 때 하나님의 엄위로운 지혜와 사랑에 대한 청중의 경이감과 외경심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시편 8편이 신약성경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히브리서 기자는 그리스도의 신분과 사역을 언급하면서 이 시편의 일부를 인용하였다) 설교자는, 하나의 단계를 더 만들어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속죄 사역을 다룰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어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게 하고 우리를 위해 그를 속죄 제물로 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사실은, 복음의 핵심 메시지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가를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요소이다.


시편 8편의 원 문맥은 그리스도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러나 히브리서 기자는 본 시편 4절의 “인자”를 그리스도와 분명하게 동일시한다. 시편 8편의 2절은, 본 시편의 문맥만으로는 해석하기가 다소 어려운 구절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적대성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 이를 하나의 출발점으로 삼아, 히브리서 2장을 상세히 다루지 않고도 성육신과 속죄를 설교할 수 있을 것이다.
시편 8편과 히브리서 2장을 한데 아우르기 원하는 설교자는, 두 편의 설교를 전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본다. 하나의 설교는 시편 8편을 원래의 문맥대로 충실하게 다루는 것이다. 또 하나는 히브리서 2장에 초점을 맞추지만 시편 8편도 언급하는 형태가 될 것이다.

 

 이상의 제언들만이, 본 시편에 대한 훌륭한 설교 방식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위와 같은 접근법은 몇 가지 이점들을 안고 있다. 이런 접근법은 기자의 말이 지닌 의미에 충실을 기하고자 하는 설교방식이다. 또 이 방식은 열성적인 자연주의적 과학자들이 유신론적 우주관에 맞서 쌓아 올리고자 했던 장애물들을 진지하게 다룬 것이다. 나아가 이런 접근법을 사용할 때, 그처럼 거대한 우주를 경영하느라 무척이나 분주한 하나님이 어떻게 자신들을 돌보실 수 있는가에 관해 의문을 품는 청중들에게, 안도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우주가 현재대로 존재하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여기에 앉아 그런 의문도 제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

 

 

 

(3) 시편 32편에 대한 수사학적 분석
시편 32편의 기자는 수사학적 효과를 내기 위해 고도로 혁신적인 기법을 사용했다. 기자는 서로 다른 유형의 세 시편으로부터 몇 가지 요소를 모아 여기에 한데 배합했다. 결과적으로 회개, 지혜, 개인적 감사 등의 특징이 한데 어우러진 하나의 혼성시가 탄생하였다. 이에 따라 본 시편은, 도중에 관점이 바뀌며 분위기가 변하고, 회개 시편들 가운데서도 고도로 특이한 모습을 지니게 된다.

 

 

 

설교에서 시편의 시적인 효과를 보존할 수 있는 기법들

1) 시편 본래의 수사학적 효과를 보존하려면 설교의 구조를 시편의 구조와 유사하게 만들라(설교의 구조를 그와 전혀 다르게 만들 수도 있지만, 시편이 당신의 설교를 통해 여과될 때 이러한 변화가 시편에 어떤 영향을 줄지 헤아리라).
2) 해당 시편을 설교할 때 귀납적 설교를 선택할 것인지 연역적 설교를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라.
3) 시편에 대한 설교는, 전통적인 설교 개요의 대지들로 구성하기보다 단계별로 배열하는 것을 일반적 법칙으로 삼아야 한다.
4) 저자가 긴장의 조성과 이완 작업을 하고 있다면, 저자의 이런 노력을 모방 내지 존중하는 차원에서, 당신의 설교에 긴장을 넣으라(적용 가능할 경우).
5) 청중이 저자의 영상(影像)들이나 직유, 은유 등등 가운데 어느 하나를 곰곰이 생각하도록 도와줄 것인지 고려해보라. 당신의 설교에서 핵심 영상들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그런 영상들의 효과를 강화할 것인가, 동일하게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부드럽게 유화할 것인가?


6) 시편 기자가 사용하고 있는 수사학적 효과에 보조를 맞추기 위해 적절한 예화 자료를 선택하라.
7) 특정 시편에 관한 당신의 설교를 어떤 분위기(기분)로 전개하고 전달할 것인지 주의 깊게 선택하라. 저자의 분위기를 그대로 반향하고자 하는가 아니면 새로운 분위기를 창출하고자 하는가?
8) 설교의 여러 단계 속에서 어느 관점을 취할 것인지 주의 깊게 결정하라.
9) 설교 속에서 반드시 구상적(具象的)이고 구체적인 단어들을 다수 사용하라. 당신의 주된 개념들을 강조하기 위한 방편으로써, 대구법을 사용하는 것도 고려해보라. 예: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랑하십니다; 죄인들은 하나님의 눈동자입니다. 혹은, 하나님은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덮고 우리의 빚을 영원히 청산하십니다.
10) 해당 시편을 다른 성경 본문과 아우를 때 유익할 것인지 고찰해보라. 예를 들어 시편 19편을 설교한다면, 본 시편과 그리스도 사역의 관계를 암시하고 있는 기타 구절들도 끌어들여야 하는가?

맺는 말

시편의 설교에 이런 온갖 난제들이 있다 하더라도 시편은 여전히 노래와 기도의 광맥임에 틀림없다. 대부분의 다른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하나님에 관한 환상들이 시편에는 넘쳐흐르고 있다. 지금까지 다윗의 보고(寶庫)에 든 자료로 설교하기를 망설여왔던 사람들을 위해, 이 글이 최소한 몇 가지 장애물을 제거해주었으면 하는 게, 우리의 희망이다. 시편의 신적 저자와 인간 저자가 합작으로 내놓은 언어는, 우리의 방어물과 일상적 관심사를 넘어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은 곳으로 전해주곤 한다. 우리의 회중들에게도 시편 설교를 들을 기회가 제공돼야 하며 그러한 감동이 주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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