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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1

성경 사본들

by 은총가득 2021. 12. 30.

 

 

1. 사본 (Manuscripts)


1) 파피루스 사본들(The Papyri)
이집트의 사막에 보관되어 있던 파피루스 사본들은 2∼8세기의 신약 사본들이다. 금세기 최근 20여 년 동안에 발견된 신약 파피루스 단편 사본들이 출판되었다. 76개의 신약 단편 사본들 중에 반 이상이 2∼4세기의 것이다. 파피루스 사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다. 125년 경의 것으로서 현존하는 신약 사본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한 쪽 면에는 요한복음 18장 31-33절이 기록되어 있고, 다른 한 쪽면에는 18장 37-38절이 기록되어 있는 코덱스형 사본 조각으로서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와 비슷하다. 현재 맨체스터의 존 라일렌스(John Rylands)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30년대 초 영국의 채광 기술자 체스터 비티(A. Chester Beatty)가 3세기의 파피루스 사본 셋을 이집트에서 취득했다. 이것이 1934∼37년에 출판되었는데, , , 로 분류된 것으로, 더블린에 있는 그의 개인 도서실에 소장되어 있다.

. 일명 '비티 성서 파피루스 I'(일부는 비엔나에 있음) 사본은 30쪽이나 되는데, 3세기 초나 중엽의 코덱스로서, 마태, 마가, 누가, 요한, 사도행전의 본문을 보여 준다. 복음서들은 제각기 서로 다른 본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지워진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가 주로 나타난다. 전(前) 가이사랴 본문 형태로 생각된다.

. 일명 '비티 성서 파피루스 II'(미시간대학교의 파피루스 222를 포함하여)는 86쪽이다. 3세기 초(200년)의 코덱스로서, 바울서신이 로마서, 히브리서, 고린도전서,고린도후서, 에베소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서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어떤 부분은 많이 지워져 있으나, 은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를 반영한다.

. 일명 '비티 성서 파피루스 III'은 3세기의 사본이며, 요한계시록 9장 10절부터 17장 2절까지의 본문이 남아 있다. 가장 오래된 계시록 사본이기는 하지만 가장 좋은 사본은 아니다.

이 밖에도, , , , , 등이 있다. 은 146쪽이나 되는데, 파손된 부분이 더러 있는 요한복음 사본이다. 제21장이 포함되어 있다. 이 코덱스는 기원 후 200년에 쓰여진 것이다. 원본보다 100년 뒤의 것이다. 본문은 처럼 혼합 본문이지만, 초기 알렉산드리아 본문의 요소들을 지니고 있다. 과 다른 보드머 파피루스들은 스위스의 고본 수집가 마틴 보드머(Martin Bodmer)가 이집트에서 구한 것으로서, 156~61년에 출판되었다. 제네바 근교 콜로니에 있는 보드머 개인 도서실에 보관되어 있다. 은 3세기의 사도행전 사본으로 플로렌스의 한 도서실에 있다. 사도행전 23장 11-17절, 23-29절 본문을 가지고 있다. ('파피루스 보드머 XIV와 XV')는 2~3세기의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사본이다. 본문은 B와 일치하는 곳이 많으나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의 전신인 , 등과 유사한 점이 많다. ('보드메르 파피루스 XVII')는 6~7세기의 사도행전과 공동서신 사본이다. 사도행전은 S, A와 유사하다.

2) 언셜 대문자 사본들(The Uncials)
17세기와 18세기에 알려진 대표적인 언셜 글씨체 사본들은 A, D, Dp, Ea, C 사본 등이다.

(1) 알렉산드리아 사본(A) (Codex Alexandrianus)
이것은 신약성서의 대부분을 포함하고 있는 5세기 초의 사본이다. 이것은 1627년에 콘스탄티노플의 주교가 영국의 찰스 왕에게 증정한 것으로서 1751년 이래 지금까지 런던의 영국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2) 베자 켄터브리지언 사본(D) (Codex Bezae Cantabrigiensis)
이것은 5세기의 사본으로서, 그리스어 본문과 라틴어 번역문의 대조판 사본이다. 4복음서, 사도행전, 요한3서 일부가 포함되어 있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다른 사본들에 비해 많이 다르다. 사도행전의 경우는, 다른 사본에 비해 1/10이나 길다. 이 사본은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가 1562년 프랑스 리용의 한 수도원에서 얻은 것이다. 그가 이 사본을 1581년에 영국의 케임브리지(켄터브리지언)대학교에 기증하였기 때문에 베자 켄터브리지언 사본이라고 부른다.

(3) 클라로몬타나 사본() (Codex Clarmontanus)
이것은 6세기의 사본이다. 여기에는 바울서신과 히브리서가 들어 있다. 위의 사본을 얻을 무렵과 같은 시기에 취득하였다. 그러나 를 얻은 장소는 클레어몽 수도원이었다. 그래서 이것을 클라로몬타나 사본이라고 하며, 이 사본은 지금 파리의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4) 라우드 사본() (Codex Laudianus)
이것은 6세기의 사본이다. 그리스어와 라틴어 대조 사도행전인데 영국의 대주교 라우드(Laud)가 1636년에 옥스퍼드의 보들레이도서관에 기증한 것이다.

(5) 에프라임시루스 재생 사본(C) (Codex Ephraemi Syri Rescriptus)
이것은 거듭 쓴 양피지 사본이다. 본래 쓰여 있던 글자를 지우고 그 위에 다시 쓴 것이다. 본래 쓰여 있던 것은 5세기의 신약 사본인데, 12세기에 그것을 지우고, 지운 본문 위에, 4세기 시리아 교회의 교부였던 에브라임 시루스의 조약과 설교를 썼다. 1700년경에 프랑스의 설교가이자 학자인 삐에르 알릭스(Pierre Allix)가 발견하였다. 티셴도르프는 화학 약품을 이용하여 본래 거기에 쓰여 있던 5세기의 신약 본문을 60퍼센트까지 해독하여, 1843년에 출판하였다.

이상에서 언급한 것은 19세기까지 발견된 언셜 글씨체 사본들이다. 이런 사본들은 본문 비평에 큰 자료를 제공하였다. 20세기에 들어서도 새로운 언셜 글씨체 사본들이 더 발견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6) 시내 사본(S)(Codex Sinaiticus)
이것은 1859년 티셴도르프가 시내 반도 산타 카타리나 수도원에서 발견한 것이다. 구약의 일부는 빠져 있지만 4세기의 신약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티셴도르프는 이 사본을 라이프치히에서 출판하고 나서 그 사본을 러시아의 짜르 황제 알렉산더 2세에게 증정하였다. 이 사본은 1933년까지 레닌그라드에 있다가 1933년에 옛 소련 연방이 이것을 영국박물관에 10만 파운드에 팔았다.

(7) 바티칸 사본(B)(Codex Vaticanus)
이것은 4세기 중엽의 사본으로서, 1475년 이래 바티칸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신약에는 히브리서 9장 14절 이후가 없고, 목회서신, 빌레몬서, 계시록이 없다. 아무런 장식이 없으므로 학자들에 따라서는 시내 사본보다 약간 고대의 것일 가능성을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를 강하게 반영하는 바티칸 사본과 시내 사본이 둘 다 같은 때에, 곧 콘스탄틴이 성서 50부를 제작하도록 명령하였을 때에, 함께 만들어진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많다.

(8) 워싱턴(또는 후리어) 사본(W) (Codex Freerianus)
이것은 5세기의 4복음서 사본이다. 4복음서가 마태, 요한, 누가, 마가의 순으로 편집되어 있다. 미국인 사업가이며 자선가인 후리어(C. L. Freer)가 1906년에 이집트에서 구한 것으로서, 지금은 워싱턴 시의 스미소니안 인스티튜션의 예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일명 '후리어 복음서(Freer-Gospels)'라고도 한다. 다른 사본과 비교하여 볼 때 특이한 것은 마가복음의 '긴 끝(16:9-20)' 안에서 14-15절이, 다른 사본과는 달리 더 길게 확대되어 있다는 점이다.

(9) 코리데티 사본(O) (Codex Koridethianus)
이것은 9세기의 4복음서 사본으로서, 그것이 발견된 카스피아 해 부근 코카사스 산 속에 있는 수도원의 이름 코리데티(Koridethi)를 따서 부른다. 이 사본은 전 소련 연방 조지아의 수도 티플리스(Tiflis)에 있다.

3) 초서체 소문자 사본들(The Minuscules)
초서체 소문자 사본들은 대다수가 9세기 이후부터 나온 것이다. 교회에서 낭독되는 그리스어 성구집(Lectionaries)에 인용된 성서 본문도 대다수는 초서체 소문자 사본들을 반영한다.

2. 영어 역본들 (The English Versions)

1)「위클리프역」(Wyclif's Version, 1382)
'번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최초의 영어번역 성서는「위클리프역(Wyclif's Version)」이다(1382년). 이것은 영어로 번역된 최초의 성서(the complete Bible)이다. 영국에 기독교가 들어간 지 실로 천여 년 만에 번역되어 나왔다. 위클리프(John Wyclif)가 번역했기 때문에 「위클리프역」이라고 한다.
그는 일반 신도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성서를 번역하였다. 그를 일컬어 종교개혁의 새벽별(the morning star of the Reformation)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번역을 맡았으나 후에 추방되었다. 위클리프는 1380년에 신약을 번역해 내었고, 구약까지 완역된 것은 1382년이었다. 이것이 최초의 완역 영어 성서이다. 그러나 아직 이것은 인쇄된 성서가 아니고 손으로 쓴 성서이다. 위클리프는 1384년에 죽는다. 그런데 44년 후인 1428년에 그가 성서를 번역했다는 이유로 교회는 그의 묘를 파헤치고 그의 시신을 꺼내어 화형에 처한다. 위클리프가 번역한 성서는 나온 지 33년 밖에 안되어 1415년에 불태워지고 만다. 당시 교회는 신도들이 성서 읽는 것을 금했다.


2)「틴들역」(Tyndale's Translation, 1525)
틴들(William Tyndale)은 먼저 신약번역에 착수하여 1525년 콜론(Cologn)에서 그것을 인쇄하여 4절판(a quarto edition)으로 출판하였다. 이것은 최초의 영어번역 신약 인쇄본(first printed English New Testament)이다. 그는 보름즈(Worms)로 쫓겨 간 다음에 거기서는 신약을 8절판(an octavo edition)으로 출판하여 3천 부를 몰래 영국으로 들여 보낸다. 일반 신도들은 그것을 읽으려고 사고, 워햄(Warham) 대감독은 불태워 버리려고 그것을 사들였다. 신약번역을 마친 틴들은 곧바로 구약번역에 착수하였으나 번역을 완료하지 못한다. 드디어 1536년 10월 6일 틴들은 화형을 당한다. 처형을 받으면서, 그는 "주님, 영국 왕의 눈을 열어 주십시오!"하고 기도한다. 1611년에 나온 「제임스왕 성서(King James Version)」의 80퍼센트가 틴들의 문체라고 한다. 그의 평생의 목표는 평신도들에게 그들이 읽을 수 있는 그들의 언어로 번역된 성서를 주는 것이었다.

3)「카버데일역」(The Coverdale Version, 1535)
이것은 1535년 10월에 나온 최초로 “인쇄된” 영어 신·구약 성서(the first complete English Bible in Print)이다. 번역자 마일즈 카버데일(Miles Coverdale)은 함부르크에서 틴들을 알게 되었다. 그의 번역은 유럽 대륙에서 인쇄된다. 취리히였으리라고 짐작된다. 그것을 헨리8세에게 봉헌한다. 그는 독일어와 라틴어에서 성서를 번역했다. 틴들의 신약과 오경도 참고하였다고 한다. 「카버데일역」은 틴들의 번역에 크게 의존하면서 아직 틴들이 완성하지 못한 부분을 독일어와 라틴어에서 거듭 번역하여 완성시켰다.

4)「토마스 매튜역」(Thomas Mattew Version, 1517)
이것은「틴들역」의 또 다른 교정판이다. 유럽 대륙에서 인쇄된 것이다. 1517년 안트워프(Antwerp)에서 인쇄된 것으로 생각된다.
5) 「큰 성서」(The Great Bible, 1539)
이것은 카버데일이 맡아서 펴낸 것으로, 위에 언급한 「틴들-토마스 매튜역본」(1537)의 재교정판이다. 이것을 「큰 성서」라고 하는 까닭은 그 크기가 가로 9인치, 세로 15인치로 유난히 컸기 때문이다. 1539년에 완성되어 성직자들에게 배포된다.

6) 「제네바 성서」(The Geneva Bible, 1560)
제네바는 신학학자 테오도르 베자(Theodore Beza)와 신학자 존 칼빈(John Calvin)의 고향이다. 칼빈의 동서 윌리엄 위팅햄(William Whittingham)이 존 녹스(John Knox)에 이어 제네바 영국교회의 후계자가 되었는데 바로 이 사람이 「제네바 성서」 발행에 있어서 공헌이 컸던 인물이다. 이 성서가 나오기까지 위팅햄을 도왔던 인물이 바로 1553년까지 「카버데일역」을 냈던 카버데일이다.
「제네바 성서」는 「큰 성서」(1539)의 교정판이다. 틴들의 공헌이 그 기초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구약은 히브리어 본문과 라틴역 본문에 따라 철저히 교정된 것이다. 신약은 주로 「틴들역」의 교정이다. 이 성서는 엘리자베스 여왕에게 봉헌된다. 엘리자베스는 1558년에 즉위하였고, 개신교 편을 강하게 들던 왕이었다. 「제네바 성서」가 당시 교회에서 「큰 성서」를 대신하지는 못했지만, 일반 신도들 사이에서는 널리 유포되고 있었다. 「감독성서」(1568)가 나올 때까지 이 두 성서가 쌍벽을 이루고 있었다. 「제임스왕역(KJV)」(1611)이 나올 때까지 「제네바 성서」는 140여 회나 판을 거듭하면서 출판되었다. 올리버 크롬웰(Oliver Cromwell) 장군과 그의 군대가 바로 이 성서를 읽었고, 메이 플라워호를 타고 영국에서 신대륙 북아메리카로 간 필그림 조상들과 존 번연, 세익스피어 심지어는 「제임스왕역」(1611)을 낸 제임스왕도 바로 이 「제네바 성서」를 읽었다. 「제네바 성서」의 신약은 1557년에 나온다. 신·구약 전서가 다 번역되어 나온 것은 1560년이다. 이것이 로마자로 인쇄되고 절 구분이 된 최초의 영어 성서인 「제네바 성서」 초판이다.

7) 「감독성서」(The Bishops' Bible, 1568)
교인들 사이에서는 「제네바 성서」(1560)가 읽히고, 교회의 강단에서는 「큰 성서」(1539)가 읽히고 있었다. 「제네바 성서」의 우수성을 잘 알고 있던 대감독 파커(Archbishop Parker)는 「큰 성서」를 교정하여 이것으로 기존의 두 번역 성서를 대치하고자 했다. 교정 작업에 대거 참석했던 이들이 감독들이었으므로 이것을「감독성서」라고 부르게 되었다. 구약 본문은 「제네바 성서」 그대로이고, 신약 본문은 파커 대감독 자신이 많이 교정하였다.

8)「듀아이-랭스 성서」(The DouaiReims Bible, 1582/1610)
이것은 로마 가톨릭 쪽에서 번역해 낸 일상어로 된 번역이다. 프랑스의 랭스(Reims) 지방의 알렌 추기경이 시작하였고, 본격적 작업은 듀아이(Douai) 대학의 히브리어 교수였던 그레고리 마틴(Gregory Martin)이 맡아서 하였다. 신약이 1582년에 나왔고, 구약도 곧 이어 완역되었으나 출판 비용이 없어서 지연되다가 대학이 라임에서 듀아이로 옮긴 다음에 1609/10년에야 출판되었다. 그래서 신약은 랭스 신약으로 알려졌으나, 신·구약 전서는 듀아이 성서로 불린다. 라틴어 불가타에서 번역되고 그리스어와 히브리어 원문을 참고한 번역이다.

9)「제임스왕역」(The King James Versions, 1611)
엘리자베스의 오랜 통치가 1603년에 끝난다. 여왕이 통치하는 동안에,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갈등이 크게 진전되었다. 1604년에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6세가 영국의 제임스 1세로 등극한다. 즉위하던 첫 해에 그는 원전에 근거한 새로운 성서 번역을 지시한다. 1604년 6월 30일에 제임스왕은 학자 54명을 임명하여 새 번역에 참여하게 했다. 현존하는 기록에는 실제로 번역에 참여한 학자가 49명으로 나오고 있다. 번역을 시작한 지 7년 만인 1611년에 이 번역이 완성되었다. 칠십인역 이후 두번째로 왕의 지원으로 번역된 성서이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에서 번역된 것이기는 하지만, 틴들과 카버데일 번역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라틴역본, 랭스 신약, 루터의 독일어역 성서의 영향도 받고 있다.

비록 왕의 후원으로 번역된 것이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많은 반대에 부딪혀야했다. 거의 40여 년 동안이나 반대자들과 싸워야 했다. 또한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전에서 번역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때 사용된 원본이 오늘날에 와서 볼 때 그렇게 좋은 사본이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1611년에 나온 이래, 1615년, 1629년, 1638년, 1654년, 1701년, 1762년(케임브리지 성서), 1769년(옥스퍼드 성서)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개정되었다.

10)「영어개역」(English Revised Version, 1881/85)
이것은 「제임스왕 역본」의 본격적 개정작업의 결과로 나온 것이다. 제임스왕 역본의 신약이 대본으로 사용한 그리스어 사본은 아주 빈약한 것이었고, 그 후 새로운 권위 사본들이 발견되었으므로 개역의 필요성이 고조되었다. 1870년에 개역에 착수한 이래, 신약 개역이 나온 것이 1881년이다. 영국에서는 그 해 5월 17일에, 미국에서는 3일 후에 같은 신약을 출판하였다. 제임스왕 역본에서 거의 3만여 곳을 고쳤다. 그 중에 5천여 곳은 제임스왕 역본이 사용한 사본과 영어 개역 성서가 사용한 사본과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구약이 나온 것은 1885년이었다. 신약에 비해 개정 범위가 좁았다.

11)「미국표준역」(The American Standard Version)
「영어 개역 성서」가 「제임스왕 역본」의 영국 개정판이라면, 「미국 표준역 성서」는 미국 개정판이다. 1900년에 신약이 나오고, 1901년에 구약과 함께 성서가 나온다. 이 때 외경은 제외된다. 영국식 영어 표현들이 미국식 영어 표현으로 바뀌는 것도 이 때였다.

12)「미국 개역 표준 성서」(The Revised Standard Version)
이것은 새로운 번역이 아니라, 1901년에 나온 「미국 표준역 성서」의 개정판이다. 1611년에 「제임스왕 역본」이 나왔고, 그것을 영국에서 개정한 것이 「영어 개역성서」(1881/85)이고, 「영어 개역 성서」를 미국에서 다시 개정한 것이 「미국 개역 표준 성서」(1946/1952)이다. 20여 개 대학과 신학교에 적을 둔 32명의 성서학자들이 작업을 맡아 하였으며, 그 중에는 유대인 학자도 한 사람 끼어 있었다. 1957년에 개정판이 나올 때 외경도 번역되어 나왔다. 이것은 성서 번역에서 사해 두루마리 이사야를 반영시킨 최초의 번역이기도 하다.

13) 유대교 영어 역본들(The Jewish Versions)
영어권에 살던 유대인들은 오랜 기간 동안 「제임스왕 역본」과 「영어 개역」을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유대교인들로서는 기독교 쪽에서 번역한 이런 성서들을 사용하는 데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히브리어 본문 전승이 제대로 번역되어 있지 않은 것, 구약 본문에 대한 유대교적 해석과는 전혀 다른 번역, 구약의 몇몇 절들에 대한 기독교 쪽의 기독론적인 해석들이 그들에게 불편을 주었다. 그리하여 미국에 있는 유대교 출판협회가 1955년에 유대교 학자들로 번역위원회를 구성하고, 새로운 번역에 착수하여, 율법서(1962)와 예언서(1978)와 성문서(1982)를 출판하였고, 1985년에 개정판을 출판하였다.

14) 「새 영어 성서」(The New English Bible, 1961/1970)
이것은 기존 번역의 개정이 아닌, 철저한 새 번역이고, 영국식 영어 번역이다. 전통적인 “성서 영어(biblical English)”가 사라진 번역이다. 1946년에 번역을 시작하여, 1961년에 신약을 출판하였고, 1970년에 구약을 출판하였다. 1970년판 성서에 합본되어 나온 신약은 1961년판의 개정이다. 1970년에 완역되어 나온 성서는 일주일 만에 3만 3천 부가 매진된 기록을 가지고 있다.

15) 가톨릭 역본들(The Catholic Versions)
가톨릭 쪽에서는 20세기 전반부까지는 「듀아이-랭스 성서(Douai-Reims Bible)」(1582/1610)를 사용하였으나, 중세기 후반부터는 독자적 번역을 갖게 되었다. 로날드 녹스(Ronald Knox) 번역의 신약이 1945년에, 구약이 1949년에 나왔고, 1955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1936년에 기독교 교리협회(the Confratermity of Christian Doctrine)에서 새 번역 계획을 세웠다. 라틴어 불가타역을 대본으로 신약을 번역하였다(1941). 그러나 1943년에 폰티피칼 성서위원회(the Pontifical Biblical Commission)가 라틴어가 아닌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원문 성서를 대본으로 한 새로운 번역을 계획하여, 협회번역(Confraternity Version)이 나오게 된다(1952/61). 이것이 나중에 「새 미국 성서(the New American Bible)」가 된다. 구어체 성격의 또 다른 번역인 「예루살렘성서(the Jerusalem Bible)」(1966)는 프랑스어판 「예루살렘성서(La Bible de Jerusalem)」(1956)를 대본으로 하여 번역한 것이다.

16)「현대영어역」(Today's English Version, 1966/76)
달리 「복음성서(Good News Bible)」라고도 한다. 미국성서공회가 구어체 영어로 번역한 것이다. 번역원칙으로는 전통적인 형식일치의 문자적 번역을 피하고, 내용일치의 의역을 시도하였다. 1966년에 신약이 나왔고, 1976년에 구약이 나왔으며, 1979년 외경이 번역되어 나왔고, 1992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17) 「새 국제역」(New International Version, 1973/78)
미국을 비롯하여,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의 개혁교회가 연합하여 번역한 것이다. 1973년에 신약이 나왔고, 1978년에 구약이 나왔다. 발행자와 판권 소유자는 뉴욕 국제성서공회(New York International Bible Society)로 되어 있다. 전통적 어법과 표현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본문비평의 결과를 번역에 많이 반영시킨 것이 특징이다. 구약에는 특히, 사무엘기상·하와 이사야서 등에는 사해 두루마리 사본도 많이 반영되어 있다.

18)「새 제임스왕역」(The New King James Version, 1979/82)
1611년에 나온 「제임스왕역」을 현대화한 것이다.

19)「미국 신개역 표준 성서」(The New Revised Standard Version, 1989)
이것은 미국에서 나온 「미국 개역 표준역」(1946/1951)의 새로운 개정판이다. 1974년에 개정 작업이 시작되어 1989년에 출판되었다. 30여 명의 학자들로 구성된 개정위원회에는 가톨릭 학자 6명과 동방정교회 소속 학자와 유대교 학자도 각각 1명씩 있었다. 구약의 경우는 사해 두루마리 사본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20)「영어 개역 성서」(The Revised English Bible, 1989)
이것은 영국에서 나온 「새 영어 성서(the New English Bible」(1970)의 새로운 개정판이다. 1989년에 나온 것이다

 

 

 

성경 각 권의 원본은 모두 분실되었거나 파손되어 사라졌고, 다만 사본만 남아 있을 뿐이다. 현재 보존되고 있는 사본들은 원본 또는 다른사본을 베낀 것들이다. 사본은 기원전 11세기 경부터 사용된 파피루스에 가장 많이 기록되었으며, 그 밖에 양피지나 송아지 가죽, 점토, 나무 껍질 등도 재료로 이용되었다.

 

 

[1] 구약의 사본

 

구약 성경의 사본은 그동안 기원후 9세기의 것이 가장 오래된 것이었으나 사해사본이 발견됨으로써 그 연대가 기원전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1) 사해 사본

 

1947년 사해 북방에 있는 동굴 속에서 구약 성경의 사본들이 적힌 가죽 두루마리들이 발견되었다. 이 동굴은 기원전 2세기말부터 기원후 2세기초까지 유대교의 한 종파인 에세네파에 속한 쿰란 공동체 사람들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 작업을 통해 에스더서를 제외한 모든 구약 성경의 단편들과 함께 외경과 당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종파의 문헌들이 발견되었다. 그 후 1951,2년에 다른 동굴에서도 다른 사본들이 발견되었는데, 모두 11개의 동굴들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고문서학적 분석 및 탄소 연대 측정법을 통해 기원전 2세기 경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보다 앞선 것들로는 기원전 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레위기사무엘서의 단편들도 있고, 늦게는 기원후 2세기경의 사본들도 발굴되었다.

 

(2) 맛소라 사본

 

고대 유대인들은 모음 없이 자음만으로 글을 썼으며, 구약성경의 내용을 거의 암기하여 그것을 구전으로 후대에 전해 주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히브리어는 점차 잊혀지게 되었고 대신 아람어가 통용어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회당에서 율법과 예언서를 낭독했는데, 히브리어가 점차 사어(死語)가 되어가자, 히브리어로 된 율법서와 예언서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중대한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그래서 기원전 7세기부터 자음만 있던 히브리어에 모음을 달기 시작했는데, 그 작업을 주도한 유대인 학자들을 '맛소라'라 불렀고 그들에 의해서 모음이 붙은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맛소라 사본'이라 부른다.

 

(3) 사마리아 오경

 

사마리아인들은 구약성경의 모세 오경만을 그들의 유일한 경전으로 여기는데 이를 사마리아 오경이라고 한다. 1616년 이탈리아의 한 여행가가 다마스커스에서 처음 발견하였는데 단편들까지 합쳐서 150여 개의 두루마리들이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있으며, 가장 최초의 것은 기원후 9세기경에 기록된 것이고 대부분은 14-15세기의 것들이다. 특히 이중에서도 오늘날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꼽히는 사마리아 오경세겜그리심산 기슭에 위치한 사마리아 회당에 보관되어 있는 것으로, 아론의 증손자 이름이 붙여져 아비샤 두루마리라고 불린다. 아비샤 두루마리는 적어도 9명의 필사자들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여겨지며, 이 가운데 1149년에 기록된 것이 가장 최초의 것으로 밝혀졌다.

 

 

[2] 신약의 사본

 

전체이건 부분이건 신약 성경이 기록된 그리스어 사본은 대략 5,000여 개에 이르고 그 밖에도 초기 번역본에 대한 사본들이 약 1만개 이상, 교부들의 인용문도 수천개가 발견되었다. 기원후 9세기까지는 모든 사본 그리스어 대문자로만 기록되었고, 소문자는 그 이후에 사용되었다. 대문자 사본으로 공식 목록에 올라 있는 것들은 214개에 달한다. 그 중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사본들이 유명하다.

 

(1) 시내 사본

1884년 시내산의 성 캐더린 수도원에서 독일 신학자 티쉔도르프가 발견한 사본으로 4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2) 알렉산드리아 사본

1627년 당시 알렉산드리아의 대주교였던 루카리스가 영국왕 찰스 1세에게 증정한 사본으로 5세기 초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대영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3) 바티칸 사본

4세기 초의 사본으로 1457년 바티칸 도서관에 등록되어 계속 보관 중이다.

이 밖의 중요한 대문자 사본들로는 에프라임 사본(5세기초), 베자 사본(5, 6세기) 등이 있다. 한편 소문자 사본들은 9세기에서 17-8세기에 기록된 것들이다. 모두 2,500여 개가 넘는 사본이 남아 있지만 역시 대부분 단편들이다.

출처 : http://kcm.kr/dic_view.php?nid=38

 

가장 초기의 히브리어 사본들

 

 

(1)기독교 이전의 사본들

기독교 이전의 사본들은 주로 사해의 동굴에서 발견된 그 놀라운 사본들로 주축을 이루고 있다.이 사본들이 발견된 여러 동굴들이 사해의 북동쪽 해안을 따라 와디 쿰란의 깊은 계곡(the canyon

of the Wady Qumran)가까이에 위치하고 있기 떄문에 이를 쿰란의 자료들이라 말한다.사해 사본을 구분할때는 먼저 동굴의 번호를 제시하고 성경책 각 권의 약자를 뒤따라 적으며 그 후에 사본들이 빛을 보게 된 순서에 따라 어깨 위에 글자를 써서 동일한 책의 다른 사본들과 구별을 할수 있도록 한다.예를 들면 사해 사본 이사야서 두루마리(Isaiah Scroll)는 1QIsa 로 쓰며 이것은 와디 쿰란의 첫 동굴에서 가장 먼저 발견된 이사야서 사본이란 뜻이다.히브리 대학의 이사야서 두루마리는 전문적으로 1QIsb 로 알려져 있다.동굴 1과 4에서 출판된 성경의 단편들 외에도 수 천개의 파편들이 재발견 되었고 그중 380개 이상의 다른 사본들이 확인 되었으며 그중 약 100개가 구약 성경의 단편으로 알려졌다.동굴 2에서는 약 180개 이상의 단편들이 발견되었으며 그중의 1/4이 성경 단편이다.동굴 11에서는 다섯 개의 두루마리가 발견 되었으며 그것은 레위기의 일부,시편을 발췌한 하나의 두루마리,욥기의 아람어 탈굼,외경 새 예루살렘 묵시록이다.

 

ⓐ사해 이사야서 두루마리(1QIsa):이사야서 66장이 모두 있다.(B.C.150-100)이 중요한 텍스트는 맛소라 텍스트(MT)와 동일한 사본계(manuscript family)에 속한다.가끔 이것은 70인역(LXX)의 읽기를 지지해 주기도 한다.그리고 MT와 다른것 대부분은 명백한 서기관의 오류에 기인한 것이다.

ⓑ하박국 주석(1QpHb):제 1장과 5장만을 주석했는데 절들 사이에 군데 군데 주석 노트가 있다(B.C.100-50).인용된 하박국 텍스트가 MT와 아주 가까운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수있고 차이점이 있기는 하나 성격상 차이는 별로 없고 서기관의 오기로 볼수 있다.그러나 아주 드물게 차이점들중 LXX이나 혹은 다른 역본들을 지지하는 것을 발견할수 있다.

ⓒ히브리 대학 이사야서 두루마리(1QIsb):주로 이사야41-66장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B.C.50년경)

이것은 1QIsa보다 MT에 더 가까이 있다.

ⓓ1Q레위기 단편들:19-22장의 몇절을 담고 있다.(약B.C.4세기-de Vaux,Burrows/B.C.2세기-Cross)이 사본은 MT와 상당히 일치하고 있다.그것은 古히브리어(paleo-Hebrew)필체로 쓰여졌다.

ⓔ4Q신명기 B:32:41-43은 산문이 아니라 시로써 半行으로 쓰여졌다.세곳에서 LXX을 지지하고 MT와 다르다

ⓕ4Q사무엘서 A:사무엘상 1,2장을 다루며 27개의 파편들로 이루어져 있다.(B.C.1세기경)몇곳에서 LXX와 일치하고 MT와 다르며 또 어떤 곳은 둘다 반대한다.

ⓖ4Q사무엘서 B:사무엘상 16,19,21,23장이 담겨져 있다.(B.C.225년 혹은 그이전)이것은 MT보다 더 모음을 시사하는 자음(matres lectionis)을 적게 쓰고 있다.이 텍스트는 MT와 다르고 LXX을 일관성있게 지지하고 있다.

ⓗ4Q예레미야서 A:크로스에 따르면 고대풍으로 쓰여졌다고 한다.

ⓘ4Q Ⅻ-A(Ⅻ는 소선지서 사본을 가르킨다):크로스는 B.C.3세기의 초서체로 쓰여졌다고 한다.

ⓙ4Q Qoha :2세기의 초서체 전도서로서 크로스에 따르면 최소한 3세기나 혹은 그 이전의 자료에서 나왔다고 한다.

ⓚ4Q 출애굽기:제 1장의 단편으로서 LXX을 지지한다.

ⓛ4Q 출애굽기:제7,29,30,32의 부분들을 담고 있으며 古히브리어 필체로 쓰여졌다.이 사본은 상당한 부분에서 MT와 다르고 사마리아 오경(the Samaritan Pentateuch)과 일치한다.

ⓜ4Q 민수기:사마리아어 형태를 확장하여 사각형의 히브리어로서 기록되었다.사마리아 사본이나 MT놔 다르며 LXX과 일치하고 있다.

ⓝ4Q 신명기A:제 32장 (모세의 노래)

ⓞ11Q 시편:동굴 11에서 발견된 시편의 사본으로서 헤롯시대에 유행한 규격적인 책 글씨 형태로 복사되었다.각 페이지의 하부 1/3이 유실되었다. LXX의 시편 151편을 포함하여 33개의 시편이 보존되어 있다.4개의 독립된 파편들이 네개의 시편들 일부를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총 37개가 된다.

 

위와같은 쿰란의 자료들을 다음과 같이 분류할수 있다.

①원 맛소라계(the proto-Masoretic):여기에서 현재의 우리가 가진 히브리어 자음 텍스트가 나왔다.

②원 70인역계(the proto-Sepuagintal):후대의 70인역이 나오게 된 원래 헬라어 번역의 히브리어 전신(the Hebrew Vorlage).

③원 사마리아계(the proto-Samaritan):히브리어 오경의 후대 사마리아 텍스트를 위한 기초를 형성하였다.

④중간계(a neutral family):이것은 위의 세 계통의 갈등하는 전통사이에서 다소 중도를 지키고 있는 계통이다.

 

 

(2)기독교 이후의 사본들

①대영 박물관 오리엔탈4445(British Museum Oriental 4445):오경의 사본으로서 A.D.850년 후경으로 추정되는 자음 텍스트이며 모음부호는 약 1세기 전후에 첨가되었으며 대부분의 창세기와 신명기는 유실되었다.

②케이어렌시스 사본(Codex Cairensis C):대소 선지서를 포함하고 있으며 A.D.895년 아론 벤 아셰르에 의해 복사되었다.

③소선지서 레닌그라드 사본(Leningrad MS):A.D.916년에 쓰여졌다고 한다.바벨론 구둣점이 찍힌 이 사본은 크리미아에 있는 츄퓨트칼러에서 피르코비취가 발견하였다.

④레닌그라도 사본 B-19A:구약성경 전권이 여기에 담겨 있으며 벤 아셰르 맛소라 텍스트에 있다.이것은 A.D.980년 MS(그후로 분실됨)를 A.D.1010년에 충실하게 복사한 것으로서 오늘날 히브리어 성경의 표준 텍스트가 되는 킷텔의 Biblia Hebraica 제3판의 기초가 되었다.

⑤사마리아 오경(the Samaritan Pentateuch):이 판의 최초 사본들은 아직까지 나블루스(Nablus)에 있으며 사마리아 분파주의자에 의해 출판이 금지되어 있다.이 사마리아판은 MT와 6천가지 정도 틀린 점을 가지고 있으나 그 대부분이 활자의 차이에 불과하다.그러나 약 1900개의 경우에 있어서는 그것이 MT와 다르면서 LXX와 일치한다.(예,족장들의 나이)사마리아 오경의 사본들중 그 어느것도 A.D.10세기 이전에 쓰여진 것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3)히브리어 성경중 오래 전에 출판된 것으로서 가장 중요한 것들

①시편의 볼로냐판(Bologna Edition of the Psalter),1477년

②구약 산시노판(Soncino Edition of OT),1488년

③구약 제2 봄버거판(Second Bomberg Edition of OT),1525-26년

 

 

2.구약 성경의 초기 역본들

 

(1)헬라어 역본들

 

①70인역:이것은 알렉산드리아에서 B.C. 250-150년에 번역되었다.

 

ⓐ라일랜드 파피루스 458(Rylands Papyrus 458)은 신명기 23-28장(B.C. 150)을 담고 있으며 이것은 미이라로 싸서 우리에게 보존되어 왔다.

ⓑ쿰란동굴 4에서 아래의 단편들이 나왔다.파피루스로 쓴 레위기 단편은 표준 LXX와 아주 일치하나 “여호와”를 표기할때 kyrios 대신에 IAO를 사용한다.가죽에 쓴 레위기 단편은 26:2-16절을 담고 있으며 후대 LXX와 열개의 차이점을 가지고 있다.가죽에 쓴 민수기 3:30-4:14절의 단편이 있는데 LXX와 아주 드물게 다른 헬라어를 사용하나 원본에 있는 똑같은 히브리어 단어를 번역한 것이다.

ⓒ체스터 비티 파피리(The Chester Beatty Papyri)는 이집트의 옥시린커스(Oxyrynchus)에서 발간되었다.♯Ⅵ는 약 A.D.150년 경의 것으로서 민수기와 신명기의 부분들이다.♯Ⅶ(약 A.D.230년경)은 파유믹 콥틱어로 주석이 되어 있으며 이사야서의 부분이다.♯Ⅴ(약 A.D.270)는 창세기의 부분들이며,♯Ⅳ(약 A.D.359)는 창세기 9:1-44:22절이 기록되어 있다.

ⓓ파피루스 911은 이집트에서 나온 것으로 A.D.3세기 말의 것으로 추정되며 초서 언셜체로 기록되었고 창세기 1-35장의 부분들을 담고 있다.

ⓔ소선지서 프리어 헬라어 사본 V(Freer Greek Manuscript V)은 와싱턴에 있으며 33개의 파피루스 잎을 종합한 것으로 A.D.3세기 후반의 것이며 애굽인의 손으로 기록되었고 호세아서를 제외한 모든 선지서의 텍스트를 거의 전부 담고 있다.

ⓕ오리겐의 헥사플라(Origen's Hexapla)는 A.D. 240년 경에 쓰여졌다.그 당시에 사용되던 LXX의 사본들사이에 많은 상이점들이 있었고 또 LXX에 히브리어 텍스트의 어떤 부분들이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그는 여섯개의 평행칼럼으로 헬라어 구약성경을 써내려갔다.

(1)히브리어 원본,(2)히브리어를 헬라어로 음역함,(3)아퀼라의 직역한 헬라어번역,(4)시마쿠스의 헬라어 번역,(5)70인역 자체,(6)데오도션의 헬라어 번역.

히브리어 성경에 없는 것이 헬라어 번역에 나타나면 오벨리스크(수평으로 구별하는 일획)을 삽입하고 메투벨루스로써 달아주었다.히브리어에 있는 것이 70인역에 나타날 경우에는 별표나 메투벨루스로써 표시를 하면서 헬라어 번역을 다른 칼럼들 중에서 하나에 삽입해 두었다.

ⓖ히시키우스 개정판(the Hesychian Recension)은 70인역 텍스트를 애굽에서 히시키우스 감독이 개정한 것인데 Q에 있을수 있는 가능성을 제외하고는 어떤 초기의 사본에도 남아 있지 않다.

ⓗ루시안 개정판(the Lucianic Recension)은 사모사타와 안디옥의 루시안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후대의 사본중 베네투스사본에만 남아있다.

ⓘ바티칸 사본(Codex Vaticanus: B)은 거의 신구약 성경을 다 담고 있는 놀라운 사본으로 A.D.325-350년에 쓰여졌다

ⓙ시내산 사본(Codex Sinaiticus:Aleph)은 구약 부분은 상실되었지만 신약 전권을 담고 있는 사본이다(약 A.D.375-400).어떤 부분은 바티칸 사본을, 일부는 알렉산드리아 사본을 닮았다.

ⓚ알렉산드리아 사본(Codex Alexandrinus:A)은 또 하나의 중요한 신약 텍스트로서 약 450년경에

쓰여졌다.그것은 근본적으로 애굽타입의 텍스트이지만 헥사플라 형태와 몇가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②후대 헬라어 역본들

 

ⓐ아람어 역본은 폰투스(Pontus)출신 아퀼라에 의해 쓰여졌다.그는 유대교에 개종한 자요 랍비 아키바(Aqiba)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그의 작품은 A.D.130년에 출판 되었으며 아주 엄격한 직역을 한 것으로 알려져 인정되었다.아퀼라의 번역은 인용으로나 단편으로 남아 있는데 특히 열왕기와 시편 90-103편에서 찾아볼수 있다.

ⓑ시마커스 역본(Symmachus Version,약 A.D.170년경)은 아주 높은 수준의 정확성을 유지하면서도 좋은 관용어 헬라어로 구약성경을 번역한 것이다.

ⓒ데오도션의 역본(Theodotion's Version):약 A.D.180년 혹은 190년 은 새롭고 참신한 번역이 아니라 초기의 헬라어 역본을 개정한 것이다.지금도 그것이 LXX이었는지 혹은 다른 것이었는지 대해서는 논재의 여지가 많이 있다.다니엘서의 경우에 있어서 데오도션 번역은 원 LXX의 번역과 상치된다.이는 그것이ㅐ 초대 교회 시대에 널리 퍼져 있던 히브리어 원본에 더 충실했기 때문이다.

 

(2)아람어 탈굼들

바벨론 포로중 유대인들은 히브리어를 버리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당시의 국제언어인 아람어를 쓰기 시작했다.그때 아람어는 바사 왕국이 설립된 후부터 바사 정부와 그 하에 있는 종속국 사이에서 주된 의사 소통의 매개체였고 정치와 상업에 있어서 국제 언어가 되었다.유대인 회중들이 그들의 히브리어를 점점 잊어가기 시작하자 회당 예배 시간에 읽은 히브리어 성경을 아람어로 번역해 줄 필요를 느끼게 되었다.口傳이 수세기를 계속되면서 특히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서 A.D.138년에 추방이 된후에는 이 아람어 의역을 글로 쓸 필요가 생겨서 탈굼(targum,해석)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①옹켈로스의 토라 탈굼(The Targum of Onkelos,A.D.3세기경)은 바벨론에 살던 유대인 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졌다.그것은 아쿨라 헬라어 번역을 한 폰투스 출신 바로 그사람으로 여겨지는 어떤 옹켈로스라는 사람이 쓴 것으로 여겨진다.그러나 그것이 동방에서 나온 것이고 후대헤 편집되었다는 사실은 이 전통의 신빙성을 의심하게 한다.

②조나단 벤 우지엘의 선지서 탈굼(The Targum of Jonathan ben Uzziel)은 여호수아서에서 열왕기까지 이야서에서 말라기까지를 다룬 것으로 A.D.4세기에 편집되었고 바벨론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만들어졌다.그것은 옹켈로스보다 히브리어 텍스트를 번역함에 있어 훨씬 더 의역을 하며 자유롭게 한다.

③익명의 요나단의 토라 탈굼(The Targum of Pseudo-Jonathan)은 A.D.650년경에 나왔고 옹켈로스와 미드라쉬 자료들을 섞은 것이다.

④예루살렘의 토라 탈굼(The Jerusalem Targum)은 A.D.700년 경에 나왔다.

 

(3)라틴어 역본들

①구 라틴어,혹은 이탈라 역본(2세기 동안 편집되었고 약 A.D.200년경에 완성된)은 히브리어로부터 직역을 한것이 아니라 70인 역을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다.따라서 이것의 가치는 “방계번역”이라는 데만 있다.그것은 초기의 70인역 텍스트를 밝혀 주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②제롬의 벌게이트(Jerome's Vulgate,A.D.390-404)이것은 서방교회에서 권위있는 라틴어 성경을 거

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았다.그후 수세기 동안 그것은 이타랄와 함께 평행칼럼으로 출판되었고 16세기 중엽 트렌트 총회에서 벌게이트의 삭제된 부분들을 다시 회복하라는 결정을 내려 1590년 식스타인 판을 출판하고 곧이어 1592년에 수정 증보된 클레멘타인판이 나오게 되었다.

 

(4)수리아어 역본들

 

아람어 옹켈로스 탈굼이 형성되던 그때에 수리아의 기독교인들도 그들의 동부 아람어 방언으로 다소 표준 성경번역판을 만들기 시작하였다.신약성경을 번역할때는 헬라어 원본을 사용했음이 분명하다.

①페쉬타(단순한) 수리아어(the Peshitta Syriac)구약 성경은 4세기 수리아어 문헌들에 이미 인용이 되기 때문에 2세기 혹은 3세기 편집된것이 분명하다.처음에는 구약성경이 히브리어 원본에서 번역이 되었으나 후에 70인역과 좀더 가까워지도록 만들기 위해 몇번의 개정이 있게 되었다.페쉬타는 에뎃사의 감독 랍불라의 권위하에 개정되어 출판된후 수리아어를 쓰는 교회에서 공식적인 위치를 획득하게 되었다(약 A.D.400)

②수리아어 헥사플라(the Syric Hexapla)는 다른 기존 구약성경 번역중 유일한 것이다.오리겐의 헥사플라의 다섯째 칼럼을 번역한 것으로 텔라의 감독 폴의 후원으로 A.D.616년에 출판되었다.

 

(5)다른 역본들

①애굽 설형문자로부터 내려온 방언으로 콥틱어 역본이 있는데 기독교 시대에 그것이 많은 헬라어를 빌려쓰게 되었으며 헬라어 알파벳으로 쓰여졌다.성경을 번역한 언어는 사히딕어(Sahidic,남부 방언),혹은 보하이릭어(Bohairic,멤피스와 델타에서 사용)으로서 LXX의 히시키아 개정판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그것은 히브리어에서 직역한 것이 아니고 헬라어에서 번역하였다.

②에디오피아어 역본(the Ethiopic Version)은 4세기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며 현존하는 최초의 사본은 13세기의 것이다.

③아랍어 번역들은 하나의 권위있는 역본으로 표준화되어 본적이 없지만 대부분이 LXX으로부터 만들어졌다.사디아 가온(Saadia Gaon)의 아랍어 번역만이 중요한 예외이며 유대인으로서 그는 히브리어 텍스트에서 직접 번역하였다.

④알메니아 역본(The Armenian Version)이 처음 나온 것은 5세기 초엽인 것같다.그것은 레위파로부터 약간의 영향을 받은 것같다.

⑤윌필라스가 만든 고딕원본(the Gothic Version by Wulfilas).은 약 330년에 출판되었으나 구약 부분도 남은 것이 별로 없다.

 

(6)수 개국어 대형 성경

①콤플류툼 폴리글로트(the Complutensian Polyglot)는 최초의 것으로서 콤플류툼,혹은 알칼라라는 이름으로 불려진다.그것은 시메네스(Ximenes)추기경의 후원 하에 교황의 승인으로 1522년에 출판되었다.

②안트베르프 폴리글로트(the Antwerp Polyglot)는 스페인의 필립 2세의 성원하에 8권으로 1569-1572년에 나오게 되었다.

③파리 폴리글로트(the Paris Polyglot)는 1645년에 나타난 것으로 안트베르프판의 텍스트를 따르나 사마리아 오경과 사마리아 아람어 역본,페쉬타,그리고 아람어 역본을 추가하였다.

④런던 폴리글로트(the London Polyglot)는 이탈라,에디오피아어 시편과 아가서 역본,아포크리파(헬라어,라틴어,수리아어,아랍어),오경에 대한 익명의 요나단이 쓴 탈굼,그리고 바사 역본까지 다 포함 하였다.그것은 1656-1657년에 브리안 왈톤 감독에 의해 여섯권으로 편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