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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

시편 103편 묵상하기

by 은총가득 2021. 10. 13.

 

시편(Psalms) 제103장


다윗의 시

1.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6.  여호와께서 공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억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심판하시는도다
7.  그의 행위를모세에게, 그의 행사를이스라엘자손에게 알리셨도다
8.  여호와는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9.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10.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대로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11.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12.  동이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13.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 같이여호와께서는 자기를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14.  이는 그가 우리의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
15.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16.  그것은 바람이 지나가면 없어지나니 그 있던 자리도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17.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이르리니
18.  곧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19.  여호와께서 그의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의왕권으로만유를 다스리시도다
20.  능력이 있어여호와의말씀을 행하며 그의 말씀의 소리를 듣는 여호와의 천사들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21.  그에게 수종들며 그의 뜻을 행하는 모든천군이여여호와를 송축하라
22.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가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참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시103:13,14)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시103:13,14)

타락한 본성을 타고난 인간은 신자, 불신자를 막론하고 평생을 죄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성자라고 칭송 받아도 그렇습니다. 죄에 찌든 일반인들의 눈에는 그렇게 보일지 몰라도 정작 본인은 죄를 온전히 다스려 정말 거룩하게 되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더욱 자신이 죄인임을 뼈저리게 더 느낍니다.

그래서 불신자는 평생을 두고 죄를 용서 받았다는, 아니 용서 받을 수 있는 길이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물론 손해와 상처를 입힌 피해자를 찾아가 충분히 배상하고 사죄하여 당사자끼리는 용서를 주고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죄가 자신의 영혼에 아로새긴 흔적 즉 근본적인 죄책감은 결코 지울 수 없습니다. 인간끼리 용서의 여부와는 별도로 죄를 범한 자신이 자꾸 싫고 추하게 여겨지는 느낌을 씻어낼 방도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신자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시어 인간의 모든 죄책을 해결했음을 믿습니다. 단순히 믿어보려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성령 세례를 받을 때에 영혼이 깨끗이 씻어짐을 실제로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죄와 허물을 아심에도 자기를 사랑하여 먼저 찾아오셨기에 세상과 사람 앞에는 몰라도 그분 앞에서 만은 의인이 되었음도 깨닫게 해줍니다.  

또 그런 중생이 있고난 후에도 죄를 지을 때마다 구체적으로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성령 안에서 미쁘신 하나님이 동일한 용서의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따라서 신자는 항상 용서 받고 있는 죄인이며, 불신자는 평생을 두고 참 용서를 구하지 않거나 스스로 반성하는 것으로 그쳐 용서를 못 받고 있는 죄인이라는 차이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의 어떤 죄도 용서해줄 수 있는 이유는 인간의 체질이 얼마나 진토인 줄 아시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혼자서 또는 인간들끼리는 절대 죄를 사해주거나 깨끗케 해줄 수 없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아신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용서가 신자를 깨끗케 하여 다시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살도록 하는 목적만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페르시아의 카펫을 짜는 장인(匠人)은 베틀 한쪽에 서고 다른 쪽에 도제(徒弟)들이 서게 해서 같이 짜면서 가르친다고 합니다. 한 도제가 실수를 하면 노련한 장인이 다른 도제들이 알지 못하게 감쪽같이 처리해주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도제로선 어디에서 누가 잘못을 범했는지 발견할 수 없기에 서로 비난하며 다투는 분쟁이 생기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입니다.  

지금은 집집마다 자식이 한 둘이지만 이전에 열 명 가까이 있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때에 정말 현명한 부모는 연대책임을 물을 수 없는 개인적인 허물, 약점, 잘못을 다른 형제들이 보는 데서 야단치거나 고치려 하지 않았습니다. 형제간의 경쟁이나 비방은 서로 사랑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되며 해서도 안 되는 일인 줄 잘 알기 때문입니다.  

죄의 본성이 남아 있는 인간이 타락한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경쟁은 평생에 걸쳐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은 신자들끼리, 심지어 부부 사이, 부모 자식 간에도 그 종류와 질은 달라도 경쟁은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경쟁은 긍정적인 결과 보다는 부정적인 열매를 맺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아무리 선의로 한 경쟁이 그 결과 또한 선하게 끝났어도 알게 모르게 부작용과 여진은  남습니다. 경쟁이란 한 사람이 승하면 다른 사람은 패하게 되는 것이 그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는 가만히 있고 남의 허물과 약점을 들추기만 해도 자기는 반사적으로 올라간다는 것을 완악한 인간 본성이 잘 알고 있습니다. 신자 또한 천국 갈 때까지도 자기 눈의 들보보다 남의 눈의 티끌을 더 크게 보려는 습성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신자의 바로 이런 체질까지도 잘 아십니다. 그래서 현명한 부모처럼, 페르시아의 장인처럼 하나님도 반드시 죄를 개별적으로 은밀히 용서해서 다른 사람이 절대 모르게 해주십니다. 신자들 사이에 전혀 불필요한 도덕적, 영적으로 우월을 다투는 상황과 기회 자체를 원천 봉쇄하여 서로 온전한 사랑을 하도록 하려는 뜻입니다.

신자는 정말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에게 은밀하게 모든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각자가 일대일로 하나님과 진정한 사랑의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받은 자끼리 온전한 사랑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아직 그런 용서를 받지 못한 자에게 그분의 사랑을 전해야 합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용서를 이웃 사랑에 적용시키지 않고 자기 혼자 깨끗해지는 것으로 제한시켜버리면 아직도 그분의 온전한 용서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하나님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는데 그 이유는 그 체질이 진토임을 알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신자의 체질이 진토 같으니까 하나님이 불쌍히 여길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대신에 신자부터 자신이 진토임을 잘 알아서 허물과 상처와 죄악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그분께 나아가는 것이 참 경외라는 뜻이 됩니다. 그 의식이 거창하고 화려하다고 해서 특별히 신자들이 스스로 깨끗하다고 자신하기에 그분의 일을 해드리겠다고 나선다고 그 예배가 온전한 예배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과 삶에 개입하여서 고쳐주어 다시 가치 있는 새 일을 시작시키지 못할 정도로 심각하고 큰 실수, 약점, 허물, 죄악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참 용서를 받아 본 자만이 참 경외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참 용서를 갈망하는 자만이, 그래서 그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까지 흘러가게 하려는 진정한 소원이 있는 자만이 하나님을 온전하게 경외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참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다른 말로  참 용서를 받고 있습니까? 최소한 참 용서를 소원이라도 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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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03편

 

Ⅰ.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려는 다짐 103:1-5

 

다윗은 여기에서 자기의 영혼을 상대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결코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다.

(1) 그는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자신을 어떻게 격려하고 있는가(1,2절). 찬양을 받아야 할 대상은 바로 여호와이시다. 그리고 하나님을 송축해야 하는 주체는 우리의 영혼과 우리 '속에 있는 모든 것들'이다. 그 일은 우리의 깊은 곳으로부터 전심을 다하여 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으로도 충분한 것은 아니다.

(2) 그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기 위하여 얼마나 풍부한 소재를 자신에게 부여하고 있는가. "내 영혼아 오라, 와서 하나님이 네게 행한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1)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3절). "그는 네 모든 죄를 전에도 용서해 주셨고 또 지금도 용서해 주고 계시다." 이것이 먼저 언급되고 있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선한 일을 못하게 하는 죄가 우리에게 선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용서함 받음으로 우리가 죄의 길로부터 돌아서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여전히 범죄하고 회개함을 거듭함에 따라 하나님께서도 여전히 우리를 용서해 주고 계시다.

 

2)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우리는 매우 중대한 죄를 범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죄를 용서해 줌으로써 우리의 생명을 구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주실 때 병도 함께 고쳐 주신다. 하나님의 역사는 완벽하여 반쯤하고 그만 두시는 법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는 자비로써 우리들의 죄를 없애 주시고, 새롭게 하는 은혜로서 죄의 권세를 깨뜨리신다.

 

3) "그가 모든 위험으로부터 너를 구해 주셨도다." 영혼을 구속해 주는 것은 귀한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우리 스스로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을 구속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즉 우리를 영원히 구속해 주신 하나님께 더 많을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참조. 욥 33:24,28).

 

4) "그는 너를 죽음과 멸망으로부터 구해 주셨을 뿐 아니라 영광과 기쁨과 긴 생명을 누리게 함으로써 진정으로 완전한 행복을 주셨도다."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불쌍한 영혼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더 많이 받는 것보다 더 존귀한 것이 무엇이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장수하리라는 기대감과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다.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독수리는 장수하는 날짐승이다. 자연 학자들이 말하고 있듯이 독수리는 늙으면 모든 깃털을 새롭게 간다(독수리는 실제로 매년 털가는 시가가 되면 모든 깃털을 간다). 즉 새 깃털이 돋아나는 것을 다시 젊어지는 것으로 본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의 성령의 은혜와 위로를 통하여, 그 자비하심을 통하여 자기의 백성들을 부패한 상태로부터 다시 회복시키고 그들에게 새로운 생명과 기쁨을 채워주실 때 그들은 다시 '소년 때를 회복'하게 될 것이다(욥 33:25).

 

 

Ⅱ. 변함없는 하나님의 은혜 103:6-18

 

(1)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을 베푸신다(6절).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

 

(2) 그는 특별히 이스라엘에게 선을 베푸신다.

1) 그는 자기 백성에게 그 자신과 그의 은혜를 나타내신다(7절). 여호와께서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하나님의 계시는 그가 베풀어주시는 가장 큰 은혜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자신을 드러내심으로써 우리들을 자기에게도 나올 수 있도록 회복해 주시며, 또 우리에게 자기에 관한 지식을 제공해 줌으로써 모든 선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이다.

 

2) 그는 결코 우리에게 엄격하거나 혹독하게 대하지 않고 항상 긍휼이 가득한 마음으로 우리를 용서해 주고자 하신다.

① 긍휼을 베푸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성품이다(8절).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그는 쉽사리 노하지도 아니하신다(8절). 그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심하게 노를 격발시키는 자들에게도 오래 참으시고 처벌을 늦추신다. 이는 회개의 여지를 남겨 두시고 그의 법을 신속하게 수행하지 않기 위함이다. 우리가 죄를 범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섭리와 우리의 양심의 가책을 통해 우리를 징계하심으로써 우리에 대한 자신의 진노를 나타내신다 할지라도, 그는 우리로 하여금 항상 고통과 두려움을 당하도록 내버려두시지 않고 속박의 영을 보내신 후에 다시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는 영을 보내 주실 것이다.

 

②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런 분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10절). 그는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내리지 않으셨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신다'(롬 2:4).

3) 그는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 즉 그는 나 개인의 '죄악'(3절) 분 아니라 '우리 죄과'(12절)까지도 용서해 주셨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11절). 하늘이 너무 높으면 땅은 그 하늘의 광대함에 비하여 한 점에 지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비도 그를 가장 두려워하는 자들의 공로보다 훨씬 더 높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에 비추어 볼 때 그들의 공로는 전혀 비교의 대상조차 못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그의 긍휼이 풍부하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는 증거로서 그는 늘 용서해 주시고자 하신다(12절).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결코 정죄를 받거나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철저하게 우리의 죄를 버린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죄를 철저하게 용서해 주실 것이다.

 

4) 그는 우리의 슬픔을 불쌍하게 여기셨다(13,14절).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아버지가 되셔서 그들을 자기의 자녀로 인정해 주시고, 또 아버지로서 그들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신다. 아버지는 자기의 자녀가 무지할 때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에게 교훈을 가르쳐 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완악한 마음을 품고 있을 때에도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그들의 행동을 참아 주신다. 그는 또한 그들이 병에 걸렸을 때에도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고 그들에게 위로를 주신다(사 66:13). 그 뿐 아니라 그는 그들이 넘어졌을 때에도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사 그들을 도와서 일으켜 주신다. 심지어는 그들이 자신을 노하게 했을 대조차도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사 그들이 그에게 순종하시기만 하면 그들을 용서해 주신다. 그리고 그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에도 그들에게 보상을 해주신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를 만드셨기 때문이다. 즉 그는 친히 흙으로부터 인간을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고' 계시다.

 

5) 그는 영원한 언약을 세우사 덧없는 인생을 구원해 주셨다(15-18절). '인생은 그 날이' 땅에서 자라나는 '풀'과 같이 잠깐 동안 살다가 곧 시들어버린다. 아무리 좋은 영화를 누린다 해도 인간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비록 꽃이 풀보다는 좀 더 나을지는 몰라도 그것 역시 풀과 함께 시들어 버리고 말 것이다. 정원에서 자라나는 꽃은 보통 다른 꽃보다 더 사랑을 받으며 귀하게 여겨진다. 그 꽃 역시 특성에 따라 시들어 버리고 말겠지만 정원의 벽과 정원사의 보호를 받아 다른 꽃보다 더 오랫동안 남아있게 된다. 그러나 들판에서 자라나는 꽃은(본문에 인생과 비교되고 있는)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여 시들어버릴 뿐만 아니라 찬바람을 쐬고 들짐승들에게 꺾이거나 밟히기 쉽다. 인생은 점차로 소멸되어 갈 뿐 아니라 그 기간에 수많은 사고를 당하기까지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점을 고려하여 인간을 불쌍하게 여기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로 하여금 스스로 이 점을 숙고하게 하시고 겸비케 하신다. 이 백성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되는가(17,18절).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인간의 수명보다 더 오랫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인간을 현재와 같은 상태로 계속 유지시킬 것이다. 하나님의 교훈을 자각하고 있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약속으로부터 주어지는 유익을 향유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또한 끊임없이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된다. 다시 말해서 그들은 지상에서 누리던 생명보다 더 오래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짧은 수명에도 불구하고 그것으로 인하여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죽음이 그들이 누릴 축복을 결코 축소시키거나 침해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긍휼은 생명보다 더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생명보다 더 좋은 것이다.

 

 

Ⅲ.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라는 권고 103:19-22

 

(1) 하나님의 우주적인 섭리에 대한 교훈이 주어진다(19절). 그는 자신이 특별히 선택한 자기 백성들의 행복을 약속과 언약으로 보증해 주셨다. 그러나 동시에 일반적인 섭리를 통해서 인류와 세계의 질서도 보증해 주고 계시다. 여호와께서는 그 자신의 보좌 곧 영광의 보좌인 동시에 통치의 보좌 위에 계시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의 보좌가 하늘에 있고 하나님께서 그곳에다 자기 법정을 두시며 그곳에서 우리에게 지시하신다 해도 '그 정권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정권으로)만유를 통치하신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거민들과 모든 사건들을 다 아신다. 여호와께서...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는도다.

 

(2) 이 교훈으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 우주적인 찬양을 드려야 할 의무가 있음을 추론할 수 있다. 만일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다면 그 모든 만물은 하나님께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1) 거룩한 천군 천사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20,21절). 그러나 천사들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데 있어서 우리로부터 자극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그들이 계속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윗이 여기에서 이와 같이 표현하고 있는 것은 그가 천사들도 경배해야 할 만큼 하나님을 높이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2)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모든 피조물들도 그에게 찬양을 드려야 한다(22절). 다시 말해서 세계 도처에 퍼져 있는 사람의 자녀들은 모두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 그 뿐 아니라 인간보다 열등한 피조물들 역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 이는 그들도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실제로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지 못한다 해도 그들의 외적인 모습을 통해서나마 하나님께 찬양을 드려야 한다(145:10). 다윗은 이 시편 서두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성축하라'라는 말로 시작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 이와 같이 뛰어난 찬양을 하고 나서 "내 영혼아 네가 여호와를 송축했으니 이제 앉아서 쉬어라"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더욱더 송축하라"라고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시 103편]
  

[내용개요]
 본시는 다윗의 찬양시로서 문학적 가치나 내용이 전체 시편의 백미로 꼽힐 만큼 뛰어나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분의 능력 있는 통치 그리고 인간의 죄에 대한 고백과 찬양 등이 나타나 있다. 이 시는 먼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권면한다(1-2절). 그리고 그 찬양을 통해 나타나는 개인적 축복(3-5절)과 민족적인 축복 (6-19절)을 다루고 있다. 더 나아가 다윗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을 인간에게만 국한 시키지 않고 천군과 천사에게로 확대시키고 있다(20-22절). 

 
[강  해]
 이 시는 다윗의 찬양시로 문학적 가치와 채용이 풍성한 주옥 같은 시입니다. 밝고 힘찬 분위기가 감동적으로 표현되어 다윗 시의 진수를 보여 줍니다.  그 내용은 찬양, 죄 사함,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왕권 등의 주제를 다루나 주된 내용은 하나님께 대한 기쁨 어린 찬양의 권면입니다. 이 시는 설명과 이해보다는 여러 번 반복하여 읽고 암송하면서 음미해야 할 시입니다.  

 

1. 여호와를 송축하라 

 

1)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송축하라는 말은 시편 전편에 걸쳐서 무수히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송축은 사랑과 감사를 동반한 찬양으로 이는 피조물인 인간이 가지는 가장 큰 의무임과 동시에 인생의 행복과 축복의 문을 여는 가장 위대한 열쇠입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하나님을 송축하라고 하며 그분의 은택을 잊지 말 것을 다짐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자세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는 모든 자들에게 일깨움을 줍니다.
·구속주이신 하나님(시130:8)

 

2) 온 인격을 통한 감사 
하나님께서는 메마른 사막이나 불모지 가운데서 무작정 찬양을 요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당신은 인간의 연약함을 누구보다 잘 아시며 먼저 풍성한 은총을 베푸신 후에야 찬양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입술에서 찬양이 끊어졌다는 것은 곤 여호와의 은혜를 망각하였다는 말과 직결됩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고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입으로 말은 하지만 정작 감사보다는 불평이 많습니다. 감사는 물질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온 인격을 통한 감사 그리고 그 감사에 합당한 마음가짐과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감사와 찬양(골3:16)

 

3) 하나님을 송축할 이유 
하나님께서는 죄를 사하시고 병을 고치시며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십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무조건적으로 행해져야 하는데 구태여 하나님을 송축할 이유를 찾자면 하나님께서 자비와 불쌍히 여기시는 은혜를 풍성히 내려 두시는 까닭입니다. 모든 영혼을 새롭게 하사 독수리같이 힘있게 하시며, 변치 않고 시들지 않는 청춘의 푸르름을 성도에게 선물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모든 자에게 생명을 부여하실 뿐 아니라 죄로 인해 죽어야 할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니어 새 생명을 얻게 하신 구원주이십니다. 우리는 자신의 전삶을 통해 하나님께 찬양 드리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영혼을 만족케 하시는 하나님(시107:9)

 

2. 자비하신 하나님의 축복 

 

1) 자비하신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은 결코 약자를 외면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교만한 강자에게는 심판을, 약자에게는 구원을 베푸시며 이러한 맥락은 구속사의 흐름에서 연면히 이어집니다. 인간을 향한 자비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도저히 우리가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그러나 모두 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다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에 감사하고 그분의 뜻을 기리며 사는 자들에게 그 사랑이 느껴집니다.  
·심령의 찬미(시108:1)

 

2)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한 죄악대로 여과 없이 보응하신다면 아무도 그분 앞에 설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비를 베푸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죄 사함과 구원의 길을 열으셨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죄과를 옮기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지은 죄의 완전한 소멸과 용서를 베푸실 유일한 분입니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인간의 체질을 아시고 진토에 불과함을 정확히 간파하시는 까닭입니다. 인생의 약함을 알고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일체의 가식과 변명을 버리고 어린아이의 심정으로 문을 열고 그분을 주로 영접하여 모셔야 합니다. 
a. 하나님의 큰 사랑(엡2:4-5)
b. 성령으로 말미암은 하나님 사랑(롬5:5)

 

3) 축복받는 비결 
사막에서 불어오는 뜨거운 열풍은 피어 있는 꽃과 풀을 순식간에 말려 버리는데 이처럼 인생이 풀과 꽃 같습니다. 15-16절에서 세상 부귀의 허망함과 하나님의 자비의 영원함이 뛰어난 시적 필치로 대조되어 있는데 사실 인생에게 닥치는 허다한 곤경과 환난을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하더라도 산 믿음의 신앙인들은 그 허무를 초극할 수 있는 소망이 있습니다. 인간의 부와 젊음, 명예도 다 바람과 같으니 오직 주의 말씀을 성실하게 좇고 팽하며 사랑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a. 문을 두드리시는 그리스도(계3:20)
b. 하나님의 자녀들의 권세(요1:12)
c. 두려워하는 자에게 임하는 은혜(시31:19)

 

3. 전우주적 찬양 

 

1) 여호와를 송축해야 할 천사와 천군 
다윗은 하나님께서 은 우주를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며 그분의 말음에 순종하는 능력 있는 천사들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 천군에게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합니다. 천군은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준비된 많은 존재들을 가리킵니다. 다윗이 천군들에게 이러한 말을 한 것은 앞으로 오실 사랑의 왕 그리스도를 향한 하나의 준비 작업입니다. 죄인들을 구하러 오신 그리스도의 탄생 때 허다한 천군들이 나타나 그리스도를 찬양했습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면서 자기를 비어 종으로 오셨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 앞에 모든 인생은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천만 천사(히12:22)

 

2)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대상 
다윗은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대상을 모든 피조물로 언급했습니다. 우리에게서 찬양을 기대하시고 당신의 거룩한 음성을 들려 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입을 다물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전적으로 주를 찬양하며 그분의 뜻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만 입이 있어도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기에 부족할 뿐입 니다.  
a. 찬양받으실 하나님(눅2:13)
b.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그리스도(빌2:6-11)

 

3) 전우주적 찬양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무리는 모든 천군과 천사들을 비롯하여 택하신 그의 백성과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족속들입니다. 즉 시인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한 전우주적인 찬양을 재촉구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언약의 성도가 된 우리는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서 그분의 자녀된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a. 마음의 찬양(엡5:19)
b. 찬미의 제사(히13:15)

 

결론 


다윗은 죄를 용서하시는 주의 사랑에 대하여 모든 피조물들이 그분을 송축해야 함을 교훈하고 하나님의 참으심과 자비를 찬양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공로나 은혜를 입을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동정하시는 자비로 인해 그분 앞에 나아갈 은총을 입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의 경륜에 감사를 드리며 늘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전심 전력해야 함이 마땅합니다.  

 
[단어해설]
 1절. 내 속에 있는 것들. 지, 정, 의를 포함한 전인격적인 존재를 가리킨다. 
 
2절. 잊지 말지어다. '잊다'를 뜻하는 <hk'v;:솨카흐>는 상대방의 선한 호의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는 것을 말한다. 
 
3절. 병. 원어<!yaWlj}T':타할루아임>??육체적인 질병을 뜻한다. 
 
4절. 파멸. 원어<tj'v':솨하트>는 '지옥' 또는 '멸망'으로도 번역된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도저히 회복될 수 없는 멸망에 이르게 되는 상태를 의미. 
 
5절. 좋은 것 원어<b/f :토브>는 성경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가리킬 때 자주 사용. 
 
7절. 행위. 원어<yk;r:D]:데라키>는 하나님의 섭리 행위 또는 도덕적 성품을 뜻한다. 
 
9절. 경책지. 원어<byrI:라아브>는 범죄를 심판하기 위해 법정에 것을 뜻한다. 여기서는 율법을 어긴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 
 
10절. 죄. 어떤 일의 목포에서 벗어나는 것을 뜻한다. 
 
12절. 죄과. 원어<[v'P,:페솨>는 신적인 권위와 명령에 대해 반역함으로 얻어지는 죄를 가리킨다. 

13절. 경외하는. 절대자 앞에서 자신의 무능을 인정하고 그에게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을 말한다. 
 
14절. 체질. 원어<WnrEx]yI:이츠레누>는 '구조'를 뜻한다. 여치서는 인간이 흙으로 만들어져서 연약한 존재임을 의미. 
 
15절. 인생. 원어<vwOna>:에노쉬>는 주로 인간의 유한성을 언급할 때 사용된다. 
 
17절. 의. 도덕적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뜻하시고 행하시는 모든 것을 의라고 말한다. 

20절. 힘의 용사들. 하나님의 뜻을 집행하는 천사들을 가리킨다. 
 
22절. 너희여. 천사와 같은 영적 존재를 포함한 모든 피조물을 가리킨다.  

 
[신학주제]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 

하나님의 놀라운 은총과 사랑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직접 자기 백성에게 나타나셔서 찬양받을 이유를 말씀 하셨다. 이것은 인간 스스로는 도무지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지도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인자하심은 잠정적인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인간이라도 그분 앞에 머무를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의 연약함을 하나님께서는 익히 아시니 때문에 당신의 사랑을 변치 아니하시고 신실하게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시인이 찬양하는 대로 하나님의 불변하시는 사랑만이 인간의 구원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상황과 자신의 생각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 지만 하나님께서는 한번 하신 언약을 변개하시는 법이 없다. 다만 인간이 하나님의 생각을 변화시켜 다르게 이해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의 행위 여부에 따라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좌우된다면 우리는 그분의 인자하심을 얼마 동안은 누릴 수 있더라도 결코 우리의 모든 것들 특히 귀한 생명은 맡기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은혜로 우리 각자의 죄악을 사하시고 자기 백성을 삼으셔서 우리에게 영원히 인자하심을 베푸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하심은 그분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직접 창조하신 우리를 통해 영광을 얻기 위함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사랑을 보여 주시는 것이며, 이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되어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변치 않으시는 그 사랑을 찬양하는 시인은 하나님에 대한 굳은 신앙을 소유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하나님의 변하지 않는 은총을 이해하고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눈이 필요함을 보여 준다. 그러나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의 신앙은 변할 수 있다 할지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은 결코 변치 않는다는 사실이다. 시인이 권면하는 주제는 찬양, 죄 사함, 하나님의 왕권 등이며 그중에서 하나님의 변치 않는 사랑과 은혜는 우리에게 생명 줄과도 같은 역할을 한다.  

 
[영적교훈]
 하나님에 대한 찬양은 우리 인간들이 해야 할 당연한 의무 중에 하나라 할 수 있다. 그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에게는 은혜가 차고 넘치게 되는 것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대망하면서 사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성도는 늘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이다.  http://cafe.daum.net/jususeye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찬송함(시 103편)

[1-5절]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聖號)호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救贖)하시고 인자(仁慈)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자신을 선하게 대하셨는지를 기억하고 그를 찬송하라고 자신에게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 자마다 진심으로 그를 찬송할 것이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신 은택들을 열거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죄악을 사하셨다고 말한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병을 고쳐주셨다고 말한다. ‘모든 병’은 육신의 병뿐 아니라 정신적, 심리적 병까지도 포함할 것이다. 또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파멸에서 구원하셨다고 말한다. 그것은 영원한 지옥으로부터의 구원을 포함할 것이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인자와 긍휼로 자신에게 관을 씌우셨다고 말한다. 죄사함과 병 치료와 생명 구원은 다 하나님의 인자와 긍휼에서 나왔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자기 소원을 만족케 하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하는 것 이상의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독수리 같은 새 힘을 주신다고 말한다. 독수리는 언제나 지치지 않는 힘의 상징이다.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생활의 활력을 날마다 얻었다.

 

[6-10절] 여호와께서 의로운 일을 행하시며 압박 당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판단하시는도다. 그 행위를 모세에게, 그 행사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도다. 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항상 경책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재판장이셔서 세상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자들을 위해 공의를 베푸신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변호하시고 악을 행하는 자들을 벌하신다. 다윗은 또 하나님께서 그의 길들을 모세에게, 그의 행사들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다고 말한다. 모세가 받은 율법은 하나님의 의를 증거하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의를 듣고 체험하였다. 

하나님의 공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의 길을 구하며 행하는 자들에게는 은혜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다. 자비는, 죄의 결과인 불행 아래 있는 죄인을 불쌍히 여기는 것이며, 은혜는,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에게 거저 베푸는 호의를 말한다. 지옥 갈 죄인이 죄사함과 영생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을 누리며 천국의 기업을 상속받는 것이 성도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다. 노(怒)는 하나님의 의(義)의 한 속성이며 결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비록 우리가 실수가 많고 흠과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오래 참으시고 인자하심이 풍성하시다. 그는 우리의 잘못에 대해 항상 경책하지 않으시고 노를 영원히 품지 않으시고 우리의 죄악을 따라 공의로 갚지 않으셨다. 

 

[11-14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罪過)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다윗은 자신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시다.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인자하심 때문에 죄사함을 받고 그의 진노와 형벌로부터 구원을 얻었다. 또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다. 사람의 용서는 심히 불완전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용서는 완전한 용서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기억지 않으시며(사 43:25)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신다(미 7:19).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신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은, 반역한 아들 압살롬을 긍휼히 여기는 다윗의 모습에서 나타나 있고(삼하 18장), 집을 나가 방탕한 생활을 하다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을 측은히 여겨 영접하는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다(눅 15:11-32). 하나님께서는 특히 그를 경외하는 자들, 곧 하나님을 인정하고 두려워하며 죄를 회개하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구원의 은혜를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신다. 사람은 몸도 마음도 약한 존재이다. 먹어야 힘을 얻고 병에 걸리기도 잘 한다. 또 외로움과 슬픔을 잘 탄다. 게다가, 죄악된 성향이 있고 결심과 의지가 약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를 경외하고 그의 뜻대로 살고자 결심하며 애쓸 때 우리를 불쌍히 여기신다. 

 

[15-18절]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그것은 바람이 지나면 없어지나니 그곳이 다시 알지 못하거니와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곧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로다.

인생은 그 날이 풀과 같고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다. 풀은 뿌리에 따라 1년 살이 풀, 2년 살이 풀, 다년 살이 풀이 있지만, 땅 위의 그 줄기 부분은 보통 1년 살고 말라버린다. 또 그 꽃도 필 때는 아름답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찬바람이 불면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진다. 인생이 그와 같아서, 일평생 수고하여 영광을 성취하여도 그것이 오래가지 못하여 곧 쇠하여지고 마침내 죽음의 시간을 맞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의는 영원하시다. 그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는 자기 맘대로 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그를 인정하고 의지하고 두려워하며 그의 언약을 지키고 그의 법도를 기억하고 행한다. 보수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키는 입장이며 그것은 바른 길이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자비와 긍휼에 사람의 구원의 소망이 있다. 또 그의 영원하신 의(義)는 사람에게 구원이 된다. 그 의 안에 평안과 영생이 있고 하나님과의 교제의 회복이 있다. 

 

[19-22절]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 능력이 있어 여호와의 말씀을 이루며 그 말씀의 소리를 듣는 너희 천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를 봉사하여 그 뜻을 행하는 너희 모든 천군이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의 지으심을 받고 그 다스리시는 모든 곳에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하나님께서는 섭리자 곧 왕이시다. 그는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만유를 통치하신다. 다윗은 또 천사들에 대해 증거한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았다. 창세기 1장에 천사 창조에 대한 언급은 없으나 천사들도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자라는 것을 안다. 그들은 아마 천지창조의 7일 중 첫째 날에 지음을 받았을 것이다. 골로새서 1:16은 하나님께서 보이는 세계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도 창조하셨다고 말한다. 또 천사들은 능력이 있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우주를 빠르게 이동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돕고 또 전쟁도 수행한다. 천사들은 하나님을 섬기며 그의 음성을 듣고 그의 뜻을 행하며 그의 말씀을 이룬다. 다윗은 자신뿐 아니라 모든 천사들이 다함께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말한다. 찬송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며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목적이다(사 43:21; 엡 1:6, 14).

 

본 시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고 그를 찬송하자. 그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어주셨고 우리의 심신의 질병을 치료해주셨고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셨고 우리에게 인자와 긍휼을 베푸셨고 좋은 것들로 우리의 삶에 채워주셨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송하며 감사하자.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특히 우리를 향해 자비하시며 은혜로우셨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풍성하셨다. 그는 우리의 미련하고 부족한 행위들에 대해 공의로 벌하지 않으셨고 우리의 죄와 허물들을 사하셨고 여러 번 새롭게 기회를 주셨다. 그는 우리의 죄성과 심신의 연약성을 아시고 우리가 풀과 같고 우리의 기쁨과 영광이 풀의 꽃과 같음을 아신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 사랑을 늘 기억해야 한다. 

 

셋째로, 하나님의 이 풍성한 은혜와 인자하심은 그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 13절,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17절,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자기를 경외하는 자에게 영원부터 영원까지 이르며 그의 의는 자손의 자손에게 미치리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인정하고 그를 두려워하며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신명기 10:12-13,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이냐? 곧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 모든 도를 행하고 그를 사랑하며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고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지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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