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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묵상

시편 107편 묵상하기

by 은총가득 2021. 10. 12.

 

 

시편 107편

Ⅰ. 여호와께 감사할 것을 권고함 107:1-9

 

(1) 처음에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여호와께 감사해야 한다고 권고한다(1절).

(2) 그런데 다음 구절은 특별히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들에게 요구하는 말이다.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이러한 권고는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에게 적용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들을 각 지방에서부터 "모아 하나가 되게"하고자 죽으셨다(요 11:52;마 24:31). 그러나 이 구절은 '저희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심을 의미하는 것 같다(6절).

 

1) 이스라엘 백성이 원수의 나라에서 신음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해 내셨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자(2절). 이 말은 각 사람의 영혼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뜻이다.

2) 이들은 동서남북 각 지방에 흩어져 살았으나 하나님께서 모으시고 하나로 되게 하셨다(3절).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자기의 백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

 

3) 또한 그 백성은 갈 길을 몰라 방황하였으며 거처할 곳을 찾지 못하여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4절).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듣고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던 것이다(7절). 하나님은 그 백성이 깃들일만한 곳으로 인도해 주셨다. 이 구절은 넉넉치 못한 형편으로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내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아라비아 사막은 여행자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기 쉬운 곳이라서 이러한 말씀이 나옴직도 한 일이다. 또한 이 구절은 사십년 동안이나 광야 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을 생각하고 기록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4)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굶주림으로 인하여 거의 죽게 되었었다. 물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음식물로 넉넉히 채워 주셨다. 오늘날에도 바로 그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영혼을 인도하시고 날마다 필요한 양식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돌이켜 하나님께 찬양을 돌릴 것이 요구된다(8절).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특별히 그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자들이 소리높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Ⅱ. 고통 중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107:10-16

 

본문에는 포로와 갇힌 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에서는 갇힌 자를 가리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라고 서술해 놓았다(10절). 먼저 흑암은 아무도 돌아보는 이 없이 쓸쓸하게 지내는 신세임을 의미하며, 사망의 그늘에 앉았다 함은 큰 위험에 직면한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갇힌 자는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을 수없이 당하기도 한다. 물론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여 필요없다고 여기거나 그 뜻을 따른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지존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는 자는 그 도움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저희 마음을 낮추사 자신의 죄를 깨닫고 겸손히 행하게 하시려는 뜻에서 이와 같은 곤고함을 겪게 하신 것이다(12절). 그러므로 곤고한 지경에 빠진 자들이 해야할 일은 오로지 기도뿐이다(13절). 자유롭게 살 때에는 시간을 내지 못하던 사람들도 갇힌 자의 처지가 되면 열심히 하나님께 간구하게 마련이다. 평상시에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장담하던 사람들도 일단 어려운 지경에 빠지고 나면 그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에 저희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13절). 하나님의 구원이라 함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자유함을 주사 다시 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것을 뜻한다(14절). 그 백성들의 손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다면 하나님은 '얽은 줄을 끊으사' 자유롭게 해주실 것이다. 혹시 견고한 성안에 갇혀 있을 경우에는 '저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시고' 그 백성을 구해 주실 것임에 틀림없다. 본시 빗장은 성문을 단단히 잠그려고 걸어두는 것인데 그것을 꺾으시겠다고 하신 것은 다시는 그 빗장을 이용하여 문을 걸어 잠그지 못하게 하겠다는 뜻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Ⅲ. 위경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107:17-22

 

본문에서는, 육신의 질병이 큰 재난 가운데 하나님은 분명하나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서술하고 있다.

(1) 만약에 인간이 처음부터 죄악을 알지 못했더라면 이 세상에는 질병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리석은 행위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행위이다. 죄를 지으면 영적으로는 물론이요 이 세상 생활에서도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들은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가 건강을 잃거나 육체의 욕망에 탐닉하다가 생명을 위태롭게 만든다. 평소에 고기에 탐닉하던 사람들도 한번 육신에 병이 들고 나면 그 냄새도 역겨워하게 되기 일쑤이다. 병이 든 상태에서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보아도 달갑지 않은 것이다. 사람이 아무 것도 먹고 싶어하지 않을 때에는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제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19절). 지금이라도 주변을 돌아보고 환자가 있거든 먼저 기도를 하도록 권해야 할 것이다. 가장 절실한 그 문제에 대해서 기도하도록 권해야 한다. 기도는 어떠한 고통 중에서라도 구원으로 나아가게 한다.

 

(2) 사람이 질병을 이기고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병석에서 일어난 자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돌려야 한다.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20절). 이 말씀은 세상에 머무시는 동안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 적용시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깨끗함을 받으라 온전하라'라고 말씀하셨으며 그것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은혜의 성령이 오셔서 병든 영혼을 고치시고 중생케 하신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시사 영혼의 질병을 고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섭리하심 속에서 말씀으로 질병을 치유하신다. 그러므로 병석에서 일어나 다시 활동하게 되었을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돌려 보답해야 한다(21,22절).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마땅히 죽어야 할 생명인데 더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로 찬송을 불러야 할 것이다. 감사제를 드리며. 제단 위에 덩그러니 제물만 올려 놓을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의 은혜를 찬미해야 한다는 뜻이다.

 

 

Ⅳ. 물에서 영업하는 자를 돌보심 107:23-32

 

시편 기자는 바다의 큰 위험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요구한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해상 무역업에 종사하는 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만 이스라엘과 이웃한 두로와 시돈 사람 중에서는 바다로 다니며 장사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두로와 시돈의 상인들을 염두에 두고 서술한 것 같기도 하다.

(1) 큰 바다에 나가면 언제라도 하나님의 권능을 실감할 수 있다.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을 해야 하는 선원이나 해상 무역업자 및 어부는 물론이요 배를 타고 여행하는 여행자들까지도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게' 된다. 그 깊이의 무한함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민물과 달리 짭짤하다는 점뿐만 아니라 썰물과 밀물의 움직임까지 어느 것 하나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바닷속에 사는 생물이 어찌나 다양한지 누구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바다로 나아갈 때에는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들을 유심히 보면서, 바다를 만드시고 오늘날까지 운영해 오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에 대해 찬송하도록 하자.

 

(2) 간혹 바다에 광풍이라도 일어날 경우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그 말씀을 좇는 광풍'(148:8)에게 명하신 즉 '광풍이 일어나서' 깊은 곳에서부터 물결을 일으킨다. 뱃길이 처음이라 무섭게 몰아치는 광풍에 익숙치 못한 사람들은 파도가 높아질 때마다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자신이 탄 배가 집채만한 파도의 힘을 견뎌낼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지혜를 주사 파도를 이겨낼 수 있는 배를 건조하게 하셨다. 파도가 높이 일 때에는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뱃사람들도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얼굴 가득히 공포스러운 표정을 한 채 어떻게 해야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게 된다. 지각이 혼돈하도다(27절). 누구든지 바다에 나가고자 할 때에는 광풍의 위험을 예상하고 그것에 대비하여 항상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기도하는 방법을 배운 자만이 바다로 나갈 수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말을 바꾸어 "바다로 나가려 하는 자는 모두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권하여도 괜찮을 것이다.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는 자들은 필요할 때마다 즉각적인 도움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로써 그들의 '지각이 혼돈할' 때에도 그들의 믿음은 혼동되지 않게 하신다. 때때로 항해 중에 폭풍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마음을 다해 간구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종종 구원의 응답을 허락하시곤 한다. 곧 사람들을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해 주시는 것이다(29절). 이로써 항해하는 사람들은 다시 평안함을 얻고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성공적으로 항해를 하게 된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30절). 하늘가는 길을 여행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나운 비바람과 광풍 속에서 그 백성을 인도하여 내시고 소망의 항구에 이르는 순간까지 돌보아 주실 것이다.

 

 

Ⅴ. 전능의 주 하나님 107:33-43

 

지금까지 고통에 빠진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섭리하심을 따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시편 기자는 이제 방향을 바꾸어 간혹 그 섭리를 변화시키사 인간사에 갑작스러운 개혁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께 또한 영광을 돌린다.

(1) 먼저 하나님의 섭리의 변화를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놓았다.

 

1) 하나님께서는 간혹 풍부한 소출이 나던 좋은 땅을 메마른 광야로 변하게 하시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반대로 메마른 땅이 옥토로 변하게 될 수도 있다. 사실 어떤 땅을 기업으로 받는가에 따라 일생을 어느 정도로 안락하게 살 수 있는가 결정된다. 그런데 간혹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땅이 상하여 제대로 소출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 구절에서 밝혀 놓았다(33,34절). 반면에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말미암아 풀 한포기 자라지 않던 땅이 옥토로 변하고 '마른 땅으로 샘물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35절).

 

2) 궁핍한 가정이 번영하여 부유하게 되는가 하면 부유한 가정들이 순식간에 망해서 몹시 궁핍하게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상태에서 출발했으나 마침내 크게 된 인물들 또한 많이 볼 수 있다(36-38절). 이들은 처음에 '주린 자'의 처지였으나 하나님께서 좋은 땅에 거하게 해주셨다. 그리하여 풍성한 소출이 나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섭리로 좋은 땅을 그들에게 주사 집을 짓고 살게 하셨다. 그러나 거처할 곳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경작할 땅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법이다. 이들도 역시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먹을 양식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37절).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실 때 사람은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사람의 노력을 훨씬 더 빛나게 해주실 것이다. 땅이 기름지고 비옥하면 경작할 사람이 의욕을 얻어 열심히 일하게 되는데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자에게 복을 주사 '크게 번성케 하실' 것이라 하셨다(38절). 이렇게 갑자기 번성한 사람들이 똑같이 갑작스럽게 몰락하여 무일푼의 신세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39절). 갑자기 몰락하는 경우 역시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른 결과로, 한때 부귀 영화를 누렸으나 종국에는 처음 시작할 무렵과 같이 재산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되돌아간 것 뿐이다. 또는 이런 집안의 후손들이, 조상들이 갑자기 모아둔 재산을 순식간에 날려 버림으로써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누리던 자들이 몰락하고,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천대만 받던 사람이 존귀함을 받게 된다(40,41절). 여호와께서는...능욕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케 하시나. 자신을 높이는 자는 하나님께서 낮추시지만 반면에 늘 어려운 가운데 살면서 남에게 짓밟히던 무리는 그 자리에서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종국에는 높이 들리움을 받을 것이다. 한 집안을 일으키시고 번창케 하시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방백'들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걸인을 멸시하지도 말라.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여기시기만 하면 이들의 처지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이렇게 놀라운 변혁을 일으키시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1) 먼저 고통으로 지친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여 이런 일을 일으키신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그 섭리하심이 어떠하든지 늘 기쁨으로 받아들인다(42절). 마음이 정직한 자들은 토기장이가 흙을 주무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일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점과, 덕이 있으나 남에게 멸시받으며 지내던 자들이 높아지고 교만한 무리가 낮아지는 점,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참으로 이 세상에 심판의 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명백히 입증하는 것임을 깨닫고는 크게 위로를 받는다.

 

2) 하나님께서는 모든 악인으로 하여금 입을 봉하게 하시려고 이 같은 역사를 일으키신다. 악인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지은 죄에 합당한 벌을 내리시기 때문에 변명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제 욕심 채우는 일에만 쓰다가 모조리 빼앗겨 버렸으니 그 공정하신 처사에 대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케 하시려고 이런 일을 행하신다(42절).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여기서 이 일이라 함은 하나님의 섭리가 운용되는 과정을 말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침착하게 살펴보는 것은 선한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상당히 도움을 주는 태도이다

 

 

 

 고난 중에 함께하신 여호와께 감사하라[시 107편]


[내용개요]
 작자 미상인 본시는 바벨론 포로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는 내용이다. 이 역사적 체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받을 만한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임했다는 놀라운 간증을 노래하고 있다.  시인은 먼저 하나님만이 찬양의 대상이 되심을 선포하면서 찬양을 권면하고 있다(1-3절). 또한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으며(4-32절) 결론적으로 지혜로운 자는 마땅히 하나님을 찬양하게 됨을 말하면서 (33-43절) 악인이 당할 결과도 암시한다.  

 
[강  해]
 작자 미상의 이 시는 제5권의 첫머리답게 바벨론 포로 귀환이라는 벅찬 역사적 체험을 바탕으로 하여 구원받을 만한 아무런 자격이 없는 백성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그 감격스러운 구원 행동을 재음미하여 날마다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삶에 대한 근거를 밝히고 있습니다.  

 

1. 방황하던 자들을 인도하신 하나님 

 

1) 하나님께 감사하라 
성경은 우리에게 단지 감사할 이유가 있을 때 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이유가 없을 때에도 자신의 온전한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께 감사할 것을 권고합니다. 특히나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는 마땅히 찬양의 생활을 해야 합니다. 이들은 직접적으로는 바벨론의 포로 생활로부터 해방된 자를 가리키나, 영적인 의미에서는 죄악 세상으로부터 구원함을 입은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성도들은 더 깊게 하나님께 감사하는 데 힘써야 합니다. 
a. 범사에 감사(살전5:18)
b. 항상 감사하라(고전1:4)

 

2) 방황하던 이스라엘을 인도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주리고 목마름으로 영혼마저 피곤할 때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바른길로 이끄시고 당신의 성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끝도없이 펼쳐진 광야 사막 길은 죄의 멍에를 짊어지고 가는 모든 인생들 앞에 공통적으로 놓인 장애입니다. 이러한 제반 고충보다 더 괴롭고 안타까운 것은 마침내 그 모든 난관을 통과한 후에도 안거하게 될 성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반면 새 예루살렘 성으로 인도될 영영한 안녕과 복락을 산 소망으로 지니고 사는 자는 현실의 모든 곤고를 능히 견딜 수 있습니다. 
a. 기도의 위력(렘29:13)
b. 산 소망(벧전1:3)

 

3) 만족케 하시며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 주십니다. 즉 주께서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멸망 직전까지 내버려 두기도 하셨지만 항상 구출하셨습니다. 언약을 이루시기 위하여 당신의 백성들의 생계를 돌보시며 영육을 강건케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목적에서 의에 주리고 목말라 있어야 합니다. 그러한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진정한 만족을 허락하십니다.
a. 하나님의 보응과 돌이키심(민21:6-9)
b. 의에 주려야 할 성도(마5:6)
c. 영원히 목마르지 않음(요6:35)

 

2. 하나님 찬양을 깨우치는 고난

 

1) 순종의 중요성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한 자들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있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게 됩니다. 엎드려져도 돕는 자가 없었으되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흑암과 사망에서 구하사 그 얽은 줄을 끊으셨습니다. 놋 문을 끼뜨리시고 쇠 빗장을 꺾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 생동감 있데 묘사된 시적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도 포로 된 자와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시니 우리는 하나님께 추호도 거역해서는 안 되며 오직 순종만 해야 합니다. 
a. 아름다운 소식(사61:1)
b. 순종의 중요성(삼상15:22)

 

2) 위경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미련한 자가 자기의 범과와 죄악으로 곤란을 당하며 생존을 위한 기본 욕구인 식욕마저 잃고 죽음에 가깝게 되었을 때 주께서는 외면치 않으시고 위경에서 건지십니다. 우리는 죽음의 고통에서 건져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마음속에 찬송과 감사가 고갈되어 버린 자만큼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찬양의 끊어짐은 은혜의 상실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건지심(시50:15)

 

3) 성도에게 주어진 찬양의 본분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바다는 인간들에게 있어 상당히 두려운 대상이었습니다. 선박, 항해술, 지리학 등이 발달하지 않았던 고대는 더욱 그러했는데 성경에도 바다에 나가는 것을 위험한 모험으로 여겨 몹시 꺼려 한 것이 나타납니다. 광풍 노도와 그로 인해 영혼이 녹으며 지각이 혼돈된 채 시달리는 인간의 왜소한 모습이 극적으로 나타나 있는데 바다의 풍랑에도 꼼짝 못하는 인간이 감히 하나님을 거역하려고 하는 것은 실로 어처구니없는 경우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온전히 찬양해야 함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을 찬양함은 성도에게 주어진 귀중한 본분인 것입니다.
·바다가 흉용한 연고(욘1:11-12)

 

3. 정직하고 지혜 있는 자들의 찬양 

 

1) 복과 화를 좌지우지하시는 하나님 
강을 광야로, 샘을 마른 땅으로 변하게 하시며 옥토로 염밭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광야와 마른 땅 즉 전혀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게 하십니다. 이처럼 축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그 어떤 고난도 종말론적 축복으로 변합니다. 화와 복을 좌지우지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죄에서 떠난 삶을 살아야 함을 깨우치게 됩니다. 세상이 악해지더라도 옳게 분별하며 말씀에 입각한 삶을 살 때 악에서 돌아설 수 있습니다. 
·악에서 돌아서라(딤후3:1-5)

 

2)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함 
여호와는 당신의 뜻에 따라 강을 광야로도, 광야를 못으로도 변하게 하실 수 있는 주권과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동시에 간교하고 힘있는 세상 지도자들을 멸하시고 연약한 백성을 구하시는 정의의 하나님이십니다.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여러 현상들 즉 황폐와 번성, 억압과 자유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자녀를 일깨우시는 사랑의 바탕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주변에 일러나는 일과 신변에 발생된 일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감지하고 그분의 뜻에 순응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a. 주시고 취하시는 분(욥1:21)
b. 아멘 하는 주의 백성(신27:16)

 

3) 정직하고 지혜 있는 자의 찬양 
지금 이 세상에서는 악인들이 득세하며 세상을 시끄럽게 하지만 하나님께서 등장하시는 날 악인들은 수치와 공포 속에서 침묵해야만 합니다. 정직하고 지혜있는 자들은 구속함을 입은 가들로서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닫고 기쁨 가운데 만만이 찬양을 하게 되니 주의 백성에게는 항상 감사와 찬미가 넘칠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전적으로 확신하는 것과 그것을 실제적으로 체득하여 실천하는 것을 중시하며, 고난 중에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온전한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고난 중에도 함께하여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넘치는 감사를 해도 부족할 뿐인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골3:15)

 

결론

 
본시는 하나님에 대하여, 고난당하고 있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보호하시고 감찰하시는 분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인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살아 계셔서 역사를 주관하시며, 고난 중에 있는 주의 백성들을 돌보아 주시는 하나님께 넘치는 기쁨 가운데서 감사와 찬양을 올려 드림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단어해설]
 2절. 대적. 실제적인 원수만이 아니라 인간을 괴롭히는 각종 질병, 근심 또는 고난을 말한다.

 

5절. 피곤하였도다. 원어<#F;['t]Ti:티트아타프>는 근심이나 재난으로 인해 번민과 낙심으로 가득 찬 상태를 가리킨다.
 
6절. 부르짖으매. 급박한 상황에 처한 사람이 큰소리로 도움을 요청하는 행위를 뜻한다.
 
12절. 수고로. 육체적인 노동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과 슬픔을 포함한다.
 
14절. 얽은 줄. 감옥에 갇힌 죄수가 차고 있는 쇠사슬을 뜻한다. 영적으로는 인간을 얽매는 사망의 사슬을 뜻한다.

17절. 미련한 자. 원어<!yliwIa>:에윌림>은 물질적인 탐욕 때문에 지혜의 훈계를 멸시하는 자를 가리킨다. 
 
18절. 싫어하여 사람에게 혐오감을 주고 구역질 나게 만드는 것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20절. 위경에서. '죽음에서' 또는 '죄악에서'라는 뜻이다.  
 
22절. 감사제.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드리는 제사, 바쳐진 제물은 기름를 제외하고 제사장의 몫으로 돌아간다. 
 
26절. 깊은 곳. 원어<t/m/ht]:테호모트>는 바닥을 알 수 없는 깊은 바닷속을 가리킨다. 녹는도다. 원어<gWm :무그>는 극심한 공포로 인해 용기와 힘을 잃어버리고 자포자기한 상태를 가리킨다. 
 
30절. 평온함. 원어<qt'v;:솨타크>는 폭풍 후의 고요함이나 다툼 또는 전쟁의 종식 상태를 뜻한다.  

 

 
[신학주제]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

인간의 악행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구원할 만한 자들을 택하셔서 자신의 의지에 따라 인자하심과 긍휼을 베푸신다. 하나님의 구원은 상황이나 시대에 구애됨이 없이 나타난다. 그것은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과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할 동안 보여 주신 하나님의 능력은 실로 구원자의 뛰어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다. 하나님은 간절히 부르짖은 자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아니하시고 구원의 손길을 내려 주신다. 근심과 고통에 몸부림치는 연약한 인간들에게 하나님의 자비는 한량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누릴 수 있는 크나큰 축복이며 악인이 받을 멸망과 명확히 다른 결과인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은 찬양의 제목이 될 만큼 인간들의 마음을 파고드는 것이다.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단독 사역이며 이러한 사 실은 어떠한 상황에 놓여 있는 인간일지라도 하나님을 부르짖기만 하면 그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나타낸다.  

 


[영적교훈]
 하나님의 능력은 간구하는 자에게만 임하는 것이다. 즉, 아무리 죄악에 물들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간절지 구하기만 하면 구원은 임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악행을 방치하신 것이 아니라 언약을 토대로 은혜를 주신 것이다. 이로써 믿음의 전통이 누리는 축복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지를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귀한지를 알지 못하며 구원받은 체험이 있는 자만이 그것을 알 수 있다

 

 

 

시편 107편

 

Ⅰ. 여호와께 감사할 것을 권고함 107:1-9

 

(1) 처음에는 모든 사람을 향하여 여호와께 감사해야 한다고 권고한다(1절).

(2) 그런데 다음 구절은 특별히 '여호와께 구속함을 받은 자'들에게 요구하는 말이다.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이러한 권고는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에게 적용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이들을 각 지방에서부터 "모아 하나가 되게"하고자 죽으셨다(요 11:52;마 24:31). 그러나 이 구절은 '저희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고통에서 구원하여 주심을 의미하는 것 같다(6절).

 

1) 이스라엘 백성이 원수의 나라에서 신음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구해 내셨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하자(2절). 이 말은 각 사람의 영혼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역사하셨다는 뜻이다.

2) 이들은 동서남북 각 지방에 흩어져 살았으나 하나님께서 모으시고 하나로 되게 하셨다(3절).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자기의 백성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느 곳에 있는지도 알고 계셨던 것이다.

3) 또한 그 백성은 갈 길을 몰라 방황하였으며 거처할 곳을 찾지 못하여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다(4절).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이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듣고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던 것이다(7절). 하나님은 그 백성이 깃들일만한 곳으로 인도해 주셨다. 이 구절은 넉넉치 못한 형편으로 사막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적용되는 내용이라고 볼 수도 있다. 게다가 아라비아 사막은 여행자들이 길을 잃고 방황하기 쉬운 곳이라서 이러한 말씀이 나옴직도 한 일이다. 또한 이 구절은 사십년 동안이나 광야 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을 생각하고 기록한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4)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생활을 하는 동안 굶주림으로 인하여 거의 죽게 되었었다. 물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필요한 음식물로 넉넉히 채워 주셨다. 오늘날에도 바로 그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영혼을 인도하시고 날마다 필요한 양식으로 채워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렇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돌이켜 하나님께 찬양을 돌릴 것이 요구된다(8절).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특별히 그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자들이 소리높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Ⅱ. 고통 중에서 구원하시는 하나님 107:10-16

 

본문에는 포로와 갇힌 자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선하신 은혜에 대하여 기록되어 있다. 이 구절에서는 갇힌 자를 가리켜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라고 서술해 놓았다(10절). 먼저 흑암은 아무도 돌아보는 이 없이 쓸쓸하게 지내는 신세임을 의미하며, 사망의 그늘에 앉았다 함은 큰 위험에 직면한 상태라는 것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갇힌 자는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을 수없이 당하기도 한다. 물론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지존자의 뜻을 멸시'하여 필요없다고 여기거나 그 뜻을 따른다고 해서 상황이 더 나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지존자이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는 자는 그 도움을 받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저희 마음을 낮추사 자신의 죄를 깨닫고 겸손히 행하게 하시려는 뜻에서 이와 같은 곤고함을 겪게 하신 것이다(12절). 그러므로 곤고한 지경에 빠진 자들이 해야할 일은 오로지 기도뿐이다(13절). 자유롭게 살 때에는 시간을 내지 못하던 사람들도 갇힌 자의 처지가 되면 열심히 하나님께 간구하게 마련이다. 평상시에 하나님께 의지하지 않고도 충분히 살 수 있다고 장담하던 사람들도 일단 어려운 지경에 빠지고 나면 그 손길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이에 저희가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13절). 하나님의 구원이라 함은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자유함을 주사 다시 생명을 얻게 하신다는 것을 뜻한다(14절). 그 백성들의 손발에 족쇄가 채워져 있다면 하나님은 '얽은 줄을 끊으사' 자유롭게 해주실 것이다. 혹시 견고한 성안에 갇혀 있을 경우에는 '저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시고' 그 백성을 구해 주실 것임에 틀림없다. 본시 빗장은 성문을 단단히 잠그려고 걸어두는 것인데 그것을 꺾으시겠다고 하신 것은 다시는 그 빗장을 이용하여 문을 걸어 잠그지 못하게 하겠다는 뜻을 나타내고자 함이다.

 

 

Ⅲ. 위경에서 건지시는 하나님 107:17-22

 

본문에서는, 육신의 질병이 큰 재난 가운데 하나님은 분명하나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게 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는 점을 서술하고 있다.

 

(1) 만약에 인간이 처음부터 죄악을 알지 못했더라면 이 세상에는 질병이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죄를 짓는 것은 근본적으로 어리석은 행위며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행위이다. 죄를 지으면 영적으로는 물론이요 이 세상 생활에서도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만다. 그들은 무절제한 생활을 하다가 건강을 잃거나 육체의 욕망에 탐닉하다가 생명을 위태롭게 만든다. 평소에 고기에 탐닉하던 사람들도 한번 육신에 병이 들고 나면 그 냄새도 역겨워하게 되기 일쑤이다. 병이 든 상태에서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을 보아도 달갑지 않은 것이다. 사람이 아무 것도 먹고 싶어하지 않을 때에는 생명이 경각에 달렸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이제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19절). 지금이라도 주변을 돌아보고 환자가 있거든 먼저 기도를 하도록 권해야 할 것이다. 가장 절실한 그 문제에 대해서 기도하도록 권해야 한다. 기도는 어떠한 고통 중에서라도 구원으로 나아가게 한다.

 

(2) 사람이 질병을 이기고 회복하는 길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러므로 병석에서 일어난 자는 먼저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돌려야 한다.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20절). 이 말씀은 세상에 머무시는 동안 많은 사람의 병을 고쳐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에 적용시켜 볼 수도 있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깨끗함을 받으라 온전하라'라고 말씀하셨으며 그것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렇지만 은혜의 성령이 오셔서 병든 영혼을 고치시고 중생케 하신다는 뜻으로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내시사 영혼의 질병을 고치신 것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 섭리하심 속에서 말씀으로 질병을 치유하신다. 그러므로 병석에서 일어나 다시 활동하게 되었을 때에는 하나님께 감사의 찬송을 돌려 보답해야 한다(21,22절).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마땅히 죽어야 할 생명인데 더 살 수 있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 각오로 찬송을 불러야 할 것이다. 감사제를 드리며. 제단 위에 덩그러니 제물만 올려 놓을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의 은혜를 찬미해야 한다는 뜻이다.

 

 

Ⅳ. 물에서 영업하는 자를 돌보심 107:23-32

 

시편 기자는 바다의 큰 위험에서 구원해 내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요구한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으로서 해상 무역업에 종사하는 자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다만 이스라엘과 이웃한 두로와 시돈 사람 중에서는 바다로 다니며 장사하는 상인들이 많았다. 그러므로 이 부분은 두로와 시돈의 상인들을 염두에 두고 서술한 것 같기도 하다.

 

(1) 큰 바다에 나가면 언제라도 하나님의 권능을 실감할 수 있다.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을 해야 하는 선원이나 해상 무역업자 및 어부는 물론이요 배를 타고 여행하는 여행자들까지도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게' 된다. 그 깊이의 무한함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 민물과 달리 짭짤하다는 점뿐만 아니라 썰물과 밀물의 움직임까지 어느 것 하나 신비롭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바닷속에 사는 생물이 어찌나 다양한지 누구든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바다로 나아갈 때에는 눈 앞에 펼쳐지는 광경들을 유심히 보면서, 바다를 만드시고 오늘날까지 운영해 오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에 대해 찬송하도록 하자.

 

(2) 간혹 바다에 광풍이라도 일어날 경우에는 하나님의 권능이 보다 직접적으로 나타난다. 여호와께서 '그 말씀을 좇는 광풍'(148:8)에게 명하신 즉 '광풍이 일어나서' 깊은 곳에서부터 물결을 일으킨다. 뱃길이 처음이라 무섭게 몰아치는 광풍에 익숙치 못한 사람들은 파도가 높아질 때마다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아무리 보아도 자신이 탄 배가 집채만한 파도의 힘을 견뎌낼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지혜를 주사 파도를 이겨낼 수 있는 배를 건조하게 하셨다. 파도가 높이 일 때에는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노련한 뱃사람들도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얼굴 가득히 공포스러운 표정을 한 채 어떻게 해야 목숨을 보전할 수 있을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게 된다. 지각이 혼돈하도다(27절). 누구든지 바다에 나가고자 할 때에는 광풍의 위험을 예상하고 그것에 대비하여 항상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최선의 방안이다. "기도하는 방법을 배운 자만이 바다로 나갈 수 있다"라는 속담이 있다. 이말을 바꾸어 "바다로 나가려 하는 자는 모두 기도하는 방법을 배우라"고 권하여도 괜찮을 것이다.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는 자들은 필요할 때마다 즉각적인 도움을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로써 그들의 '지각이 혼돈할' 때에도 그들의 믿음은 혼동되지 않게 하신다. 때때로 항해 중에 폭풍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들이 마음을 다해 간구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종종 구원의 응답을 허락하시곤 한다. 곧 사람들을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해 주시는 것이다(29절). 이로써 항해하는 사람들은 다시 평안함을 얻고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성공적으로 항해를 하게 된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30절). 하늘가는 길을 여행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사나운 비바람과 광풍 속에서 그 백성을 인도하여 내시고 소망의 항구에 이르는 순간까지 돌보아 주실 것이다.

 

 

Ⅴ. 전능의 주 하나님 107:33-43

 

지금까지 고통에 빠진 사람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섭리하심을 따라 구원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시편 기자는 이제 방향을 바꾸어 간혹 그 섭리를 변화시키사 인간사에 갑작스러운 개혁들을 일으키시는 하나님께 또한 영광을 돌린다.

 

(1) 먼저 하나님의 섭리의 변화를 몇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놓았다.

1) 하나님께서는 간혹 풍부한 소출이 나던 좋은 땅을 메마른 광야로 변하게 하시는 경우가 있다. 물론 그 반대로 메마른 땅이 옥토로 변하게 될 수도 있다. 사실 어떤 땅을 기업으로 받는가에 따라 일생을 어느 정도로 안락하게 살 수 있는가 결정된다. 그런데 간혹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땅이 상하여 제대로 소출을 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이 구절에서 밝혀 놓았다(33,34절). 반면에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말미암아 풀 한포기 자라지 않던 땅이 옥토로 변하고 '마른 땅으로 샘물이' 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35절).

 

2) 궁핍한 가정이 번영하여 부유하게 되는가 하면 부유한 가정들이 순식간에 망해서 몹시 궁핍하게 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보잘것없는 상태에서 출발했으나 마침내 크게 된 인물들 또한 많이 볼 수 있다(36-38절). 이들은 처음에 '주린 자'의 처지였으나 하나님께서 좋은 땅에 거하게 해주셨다. 그리하여 풍성한 소출이 나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살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섭리로 좋은 땅을 그들에게 주사 집을 짓고 살게 하셨다. 그러나 거처할 곳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경작할 땅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법이다. 이들도 역시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먹을 양식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37절). 하나님께서 축복을 하실 때 사람은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사람의 노력을 훨씬 더 빛나게 해주실 것이다. 땅이 기름지고 비옥하면 경작할 사람이 의욕을 얻어 열심히 일하게 되는데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자에게 복을 주사 '크게 번성케 하실' 것이라 하셨다(38절). 이렇게 갑자기 번성한 사람들이 똑같이 갑작스럽게 몰락하여 무일푼의 신세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39절). 갑자기 몰락하는 경우 역시 하나님의 섭리하심에 따른 결과로, 한때 부귀 영화를 누렸으나 종국에는 처음 시작할 무렵과 같이 재산이 하나도 없는 상태로 되돌아간 것 뿐이다. 또는 이런 집안의 후손들이, 조상들이 갑자기 모아둔 재산을 순식간에 날려 버림으로써 아무 것도 남기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세상에서 부귀와 영화를 한 몸에 누리던 자들이 몰락하고, 비천한 신분으로 태어나 천대만 받던 사람이 존귀함을 받게 된다(40,41절). 여호와께서는...능욕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케 하시나. 자신을 높이는 자는 하나님께서 낮추시지만 반면에 늘 어려운 가운데 살면서 남에게 짓밟히던 무리는 그 자리에서 구원받을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의 종국에는 높이 들리움을 받을 것이다. 한 집안을 일으키시고 번창케 하시는 분은 오로지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다. '방백'들을 부러워하지도 말고 걸인을 멸시하지도 말라. 하나님께서 필요하다고 여기시기만 하면 이들의 처지는 얼마든지 뒤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이렇게 놀라운 변혁을 일으키시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1) 먼저 고통으로 지친 성도들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여 이런 일을 일으키신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은 그 섭리하심이 어떠하든지 늘 기쁨으로 받아들인다(42절). 마음이 정직한 자들은 토기장이가 흙을 주무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생들의 일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점과, 덕이 있으나 남에게 멸시받으며 지내던 자들이 높아지고 교만한 무리가 낮아지는 점, 그리고 이러한 일들이 참으로 이 세상에 심판의 주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명백히 입증하는 것임을 깨닫고는 크게 위로를 받는다.

 

2) 하나님께서는 모든 악인으로 하여금 입을 봉하게 하시려고 이 같은 역사를 일으키신다. 악인들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들이 지은 죄에 합당한 벌을 내리시기 때문에 변명 한 마디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물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제 욕심 채우는 일에만 쓰다가 모조리 빼앗겨 버렸으니 그 공정하신 처사에 대해서 할 말이 없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3)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흡족케 하시려고 이런 일을 행하신다(42절).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여기서 이 일이라 함은 하나님의 섭리가 운용되는 과정을 말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침착하게 살펴보는 것은 선한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상당히 도움을 주는 태도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신 일들을 찬양함(시 107편)

 

[1-3절]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여호와께 구속(救贖)함을 받은 자는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저희를 구속(救贖)하사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말한다. 감사는 하나님의 하신 일들을 인정하고 마음과 말로 보답하는 것이다. 감사와 찬송은 거의 동의어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호의를 베푼 이들, 부모님이나 선생님이나 은혜를 베푼 이웃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이와 같이, 사람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 마땅히 감사해야 한다. 시편 저자는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이유로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고 말한다. 선은 남에게 유익을 주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본래 인간을 존귀한 존재로 창조하셨고 지혜를 주셨고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다. 또 그는 범죄한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고 영생을 주셨다. 그는 우리를 오래 참으셨고 여러 번 용서하셨다.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은 영원하다. 

하나님께서는 또 대적들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셔서 동서남북으로부터 모으셨다. ‘남’이라는 원어(얌 ם)는 ‘바다’라는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징벌로 이방 나라들에 포로로 잡혀가고 흩어졌었지만, 하나님의 자비로 구원을 받았고 고국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4-9절] 저희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할 성을 찾지 못하고 주리고 목마름으로 그 영혼이 속에서 피곤하였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은, 거할 성이 없는 광야 황량한 길을 방황하였었다. 그들은 식량이나 물도 넉넉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 그들이 광야에서 40년간 방황한 것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보냈던 열두 정탐꾼들 중 열 명의 불신앙적 보고를 받아들인 잘못 때문이었다(민 14:33-34). 성도는 세상에서 종종 이런 고난을 당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 본 시편에는 ‘근심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말이 네 번 나온다(6, 13, 19, 28절). 사람은 환난과 고통 중에 하나님을 찾는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바른 길로 인도하셔서 거할 성에 이르게 하셨다. 그것은 가나안 정복과 정착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부르짖는 기도를 잘 들어주신다. 

 

시편 저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라고 말한다. 본 시편에서 저자는 네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한다(8, 15, 21, 31절). 또 그는 “이는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며 사모하며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시며 그의 영혼을 만족시키시는 자이시다. 

 

 

[10-16절]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러므로 수고로 저희 마음을 낮추셨으니 저희가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저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 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사람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평안 중에 사는 것이 정상이지만,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를 불행과 사망의 그늘에 두시고 곤고와 쇠사슬에 매이게 하신다. 평안은 빛으로 상징되고 불행은 흑암으로 상징된다. 노동과 수고는 사람의 교만한 마음을 낮춘다. 고난 중에 아무도 그를 도와주거나 돌보아주지 않는다. 그는 쓸쓸하고 불행한 삶을 살게 된다.

사람은 고난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는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으면 고난 중에라도 기도할 수 없을 것이다. 기도는 성도의 믿음의 표현이다. 실상, 사람이 고난 중에라도 하나님을 찾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구원하여 인도하여 내시고 그 얽은 줄을 끊으셨다. 그는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다. 얽은 줄을 끊음, 놋문을 깨뜨림, 쇠빗장을 꺾음 등은 고통으로부터의 구원을 표현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셨고 그들을 그 고난에서 기이하게 건져주셨다. 그것은 그의 전적인 은혜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 

 

 

[17-22절] 미련한 자는 저희 범과와 죄악의 연고로 곤난을 당하매 저희 혼이 각종 식물을 싫어하여 사망의 문에 가깝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저가 그 말씀을 보내어 저희를 고치사 위경에서 건지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 행사를 선포할지로다.

 

미련한 자는 하나님보다 자기 생각을 앞세우며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악을 행한다. 그는 불행을 자초한다. 사람은 자신의 범과와 죄악 때문에 여러 곤란한 일을 당한다. 질병도 그것들 중에 하나이다. 범죄한 자는 심각한 질병에 걸려 식욕이 떨어지므로 각종 음식을 싫어하고 몸은 쇠약해 사망의 문에 가까운 자가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은 그 근심 중에서, 그런 어려움 속에서 자신을 반성하고 자신의 부족을 깨닫고 자신이 어디에서 잘못되기 시작했는지 생각하며 하나님께 나아오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회개의 기도를 올리게 된다. 고난은 확실히 은혜이다. 하나님의 징책은 확실히 그의 영혼과 육체를 치료하는 약이다. 

 

고난받는 성도들이 그 고난과 근심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보내어 주셔서 그들의 질병을 고치시고 그들을 그 위험한 지경에서 건져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죄인들을 깨우쳐 회개시키며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하시며 슬픔과 낙심 가운데서도 위로를 주신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는 구원과 치료의 능력이 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자는 그에게 감사하며 그 은혜를 간증하며 전할 것이다. 

 

 

[23-32절] 선척을 바다에 띄우며 큰 물에서 영업하는 자는 여호와의 행사와 그 기사를 바다에서 보나니 여호와께서 명하신즉 광풍이 일어나서 바다 물결을 일으키는도다. 저희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 그 위험을 인하여 그 영혼이 녹는도다. 저희가 이리 저리 구르며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니 지각이 혼돈하도다. 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정히 하사 물결로 잔잔케 하시는도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그를 찬송할지로다. 백성의 회에서 저를 높이며 장로들의 자리에서 저를 찬송할지로다.

 

23절의 ‘바다’라는 원어(메출라)는 ‘깊은 바다’라는 뜻이다. 사람은 자기의 직업 현장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다.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는 어부들은 바다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다. 바다에서 광풍이 일어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셨고 허락하셨다. 광풍을 만난 어부들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며 그 위험을 인해 그들의 영혼이 녹는다. 그들은 이리저리 구르며 술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며 지각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 이런 광풍은 흔히 자신의 죄 때문에 온다.

 

그들은 그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고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온케 하시고 물결로 잔잔케 하신다. 그는 광풍을 잔잔케 하실 수 있다. 어부들은 광풍이 조용함을 인해 기뻐하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 바울이 아시아에서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하며 살 소망까지 끊어졌던 것은 자신을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었다(고후 1:8-9). 하나님의 구원의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자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33-43절] 여호와께서는 강을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으로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그 거민의 악을 인하여 옥토로 염밭이 되게 하시며 또 광야를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며 마른 땅으로 샘물이 되게 하시고 주린 자로 거기 거하게 하사 저희로 거할 성을 예비케 하시고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소산을 취케 하시며 또 복을 주사 저희로 크게 번성케 하시고 그 가축이 감소치 않게 하실지라도 다시 압박과 곤란과 우환을 인하여 저희로 감소하여 비굴하게 하시는도다. 여호와께서는 방백들에게 능욕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케 하시나 궁핍한 자는 곤란에서 높이 드시고 그 가족을 양무리 같게 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보고 기뻐하며 모든 악인은 자기 입을 봉하리로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으리로다.

 

하나님께서는 강을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으로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옥토로 소금밭이 되게 하신다. 소돔 땅은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같이 비옥했으나(창 13:10) 하나님의 불 심판으로(창 19:24-26) 소금 바다가 되었다. 다른 한편 하나님께서는 거친 광야를 변하여 못이 되게도 하시며 마른 땅으로 샘물이 되게도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주관하셔서 주린 자로 거기 거하게 하시며 그들로 거할 성을 예비케 하시고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소산을 취하게 하신다. 그는 어떤 이들에게 복을 주셔서 그들로 크게 번성케 하시고 그 가축들이 감소하지 않게 하시지만, 그들은 또다시 압박과 곤란과 우환을 인해 감소하여 비굴하게 되기도 한다. 그것은 죄의 징벌 때문이거나 훈련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방백들에게 능욕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하게 하신다. 그러나 그는 또 궁핍한 자와 환난당한 자를 곤란에서 높이 드시고 그 가족을 양무리 같게 인도하기도 하신다.

 

하나님의 통치 기준은 의(義)이다. 그가 옥토를 광야로 변하게 하시는 것은 그 거민들의 악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직한 자들은 보고 기뻐하며 모든 악인들은 자기 입을 봉할 것이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을 것이다. 정직한 자는 성경말씀을 달게 받으며 그 말씀대로 살며 그 뜻을 행하는 자이며, 그들이 지혜자요 복 받을 자들이다.  

 

 

 

 

 

고와 하나님의 축복[시 127편]
  
[내용개요]
 본시는 솔로몬의 교훈시이다. 솔로몬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인간이 살아가는 헛된 삶을 그리고 있다(1-2절).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는 결코 만족된 생활을 할 수 없는데 그것은 모든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임을 시인은 말하고 있다. 또한 주제는 다르지만 자녀를 둔 자가 받을 복을 언급하고 있다(3-5절). 그 복은 하나님의 기업이라 일컬어질 만큼 위대한 것이다.  

 
[강  해]
 주제가 뚜렷하고 시어가 아름다워 많은 사람에게 애송되는 본시는 솔로몬에 의해 작시된 교훈적 성격의 지혜시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도외시한 인간 노력의 헛됨과 자녀를 둔 자의 복됨에 대해 교훈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1) 여호와께서 세우셔야 할 집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됩니다. 하나님께서 건물을 축복하지 않으시면 집을 세우는 것이 인간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것은 하늘을 공격하려고 시도한 바벨탑의 건축이나 저주 아래에서 여리고를 건설하려 했던 히엘이나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건축의 목적이 인간의 교만을 나타내기 위한 불의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용서치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간의 뜻에 맞추어 일을 하기보다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일을 행해야 합니다.  
a. 불의로 성을 건축하는 자에게 임할 화(합2:11-12)
b.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마7:21)

 

2) 여호와께서 지켜 주셔야 할 성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이 아무리 깨어서 지킨다고 찰지라도 허사로 돌아갑니다. 사실 인간의 힘에는 한계가 있기에 아무리 완벽을 기하여 노력해도 완전치 못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기가 만든 과학 문명 앞에 무릎을 꿇고 신봉하고 있는데 지나친 과학의 발달은 핵전쟁의 위협과 자아의 소외 등을 경험하며 인간성의 상실을 낳습니다. 인간의 지식과 문명이 발달할수록 성도는 참된 진리시며 가치가 되시는 하나님만을 겸손한 마음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벧전5:5)

 

3) 임마누엘 하나님 
집은 단순한 건축물을 넘어서 모든 가정을 가리키며 성은 직접적으로는 성읍을 가리키나 동시에 성내의 모든 통치 질서, 인간 관계 등을 지칭합니다. 따라서 본절은 가정과 사회가 잘되기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며 오직 주께서 함께 하셔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험난한 역사를 통하여 배운 값비싼 교훈인 것입니다. 우리는 임마누엘 하나님의 동행하심이 얼마나 귀한 것이며 얼마나 사모해야 할 은총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마1:23)

 

2.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잠 

 

1) 수고의 떡을 먹는 자의 헛됨 
솔로몬은 부자가 되기 위해 애쓰는 자의 수고가 헛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수고'는 제조하다란 동사 '아차브'에서 유래된 명사로 흙으로 만든 그릇이란 뜻을 가지며 보통 고통스런 노동을 의미합니다. 재물을 모으기 위해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눕지안 그렇게 일한 대가를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 버리신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절약하며 살아가는 것과 열심히 사업을 이루어 감이 자신에게 유익이 없음을 교훈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주께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께만 소망을 둘 대 세상적인 일을 올바르게 수행하게 될 것이며 그때 비로소 우리의 소망이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먼저 구할 하나님의 나라와 의(마6:33)

 

2)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잠 
주께서는 그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십니다. 여기서 '잠'이란 말은 게으름을 의미하지 않고 참된 성도들이 믿음의 순종을 통해서 얻은 평화로움을 뜻합니다. 불신자들은 큰 열심을 가지고 일을 하지만 불필요한 관심으로 고통이 끊일 줄 모릅니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나님의 섭리로 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반면 성도들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가운데 자기 일을 해냅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며 오직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드리는 데 노력하는 성도들에게 주께서는 평안의 잠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단 잠(렘31:25-26)

 

3) 주 안에서의 삶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노력으로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 자는 아무리 애를 써도 결실을 맺지 못하며 육체적, 정신적 피로만이 쌓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의지하며 성실하게 일하는 자에게는 그분이 허락하시는 적당한 육체적인 휴식과 마음의 평정이 보장됩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축복인 영생의 기업을 상속받으니 우리는 영육의 평안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호흡하고 생활하는 것이 가장 큰 유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육체의 쉼(잠3:24)

 

3. 자식은 여호와의 주신 기업 

 

1) 여호와의 주신 기업과 상급인 자녀 
솔로몬은 생명의 근원을 인간의 육체에서 찾지 않고 하나님의 창조 사역체 두었으며 그 생명을 다스리는 주체도 하나님이심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자식을 주께로부터 상속받은 기업과 상급이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부모는 주께서 잠시 맡겨 주신 기업인 자녀를 청지기로서 잘 양육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할 때 자녀가 하나님의 기업으로서 진정한 상급과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자식(창33:5)

 

2) 장사의 화살과 같은 자녀 
솔로몬은 젊은 자의 자녀는 장사의 수중에 있는 화살 같다고 했습니다. 전쟁에 임한 장수에게 있어 화살은 가장 긴요한 경기 중의 하나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양육된 자식은 부모에게 큰 힘이 되며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 낳은 자식은 그들의 연로한 부모를 보호함에 있어서 장사의 손에 있는 화살과 같은 영향력을 갖습니다. 젊었을 때 낳은 자식은 일찍 낳은 자식을 말하기보다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고 뛰어난 성품과 미덕으로 교육받으며 자란 자녀를 말합니다.  이런 자는 부모의 자랑거리이며 모든 자에게 기쁨을 줍니다.  
·손자는 노인의 면류관(잠17:6)

 

3) 수치를 당하지 않는 자녀 
젊을 때의 자녀 곧 의롭고 순결한 자녀가 많으면 성문에서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의 자녀는 성문에서 놀림을 당합니다. 의로운 자녀들은 악인들의 입을 막을 수 있으니, 그들은 더욱더 공의를 행하며 기쁨으로 율법을 순종하고 살며 흠 없는 생활에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녀를 만들기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말씀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말씀과 선한 교훈의 양육(딤전4:6)

 

결론 
지혜의 왕이라고 불린 솔로몬은 자신의 체험 속에서 주께서 세상과 인간사를 주관하심을 확신했습니다. 우리는 본시를 통해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믿는 것이 헛된 수고임을 깨닫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주신 평안 가운데 거하며 주에서 주신 기업인 자녀들에 대한 양육의 책임감을 더 가져야 함을 배우게 됩니다.  

 
[단어해설]
 1절. 세우지. 건축 구조물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녀들의 출산을 통해 가정을 형성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2절. 수고의 떡. 인간이 스스로 노력하여 얻은 식량, 즉 인본주의 사상을 의미한다. 

4절. 젊은 자의 자식. 일찍 낳은 자식은 노년의 부모에게 도움이 됨을 의미한다.  

 
[신학주제]


 하나님의 주권

본시는 하나님의 주권과 결부된 주제를 다루고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생활을 주관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이 아무리 스스로 계획을 수립해 노력한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지 않으면 그것은 달성될 수 없다. 시인은 하나님의 강력한 주권을 인간의 모든 생활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말하면서 하나님만이 인간의 수고와 계획을 아시고 힘과 그에 따른 적당한 잠을 주신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인간의 생사 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택한 자들의 자식들에 대한 배려와 축복의 풍성하심을 보여 주시는 분이다.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중요한 수단 중에 하나인데, 인간에게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 뿐만 아니라 그분의 불 가항력적인 주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듯 하나님의 주권은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며 나아가 인간에게 크나큰 은혜를 주는 수단이 되는 것이다.  

 
[영적교훈]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생활을 주관하시는 분이다. 무엇보다 당신을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악인은 결코 그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며 끝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게 된다. 또한 하나님은 가정을 축복해 주시는데 그것은 가정이 생명을 잉태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선한 주권을 통해 나타나는 것이다.    cafe.daum.net/correcttheology

 

 

 

 

시편 107편23-43절

 

환난에서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

 

시편 기자는 사람들이 자신의 직업 현장에서의 하나님 손길의 체험에 대해 찬양한다.

바다를 생업의 터전으로 삼는 어부들은 바다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한다.

바다에서 광풍이 일어나는 것도 하나님의 섭리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주셨고 허락하셨다.

광풍을 만난 어부들은 하늘에 올랐다가 깊은 곳에 내리며

그 위험을 인해 그들의 영혼이 녹는다.

 

그들은 이리저리 구르며 술 취한 자같이 비틀거리며 지각을 다 잃어버리게 된다.

바다에서 큰 배를 부리는 자들이 풍랑을 만나 영혼이 녹는 것 같은

큰 위험에 빠질 때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고 그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을 수 없다.

 

욘 1:4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바다에서 큰 풍랑을 만난 자들이 고통과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광풍을 평정(平靜)시켜 물결을 잔잔케 해주신다. 

 사람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배를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아,

때로는 풍랑을 만난 것처럼 큰 환난을 당할 때가 있다. 

 

 그럴 때에도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그 환난을 평정시켜 주시고

위태한 가운데서 구원해 주신다.

어부들은 광풍이 조용함을 인해 기뻐하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신다.

 

그리고 본 시편에서 시편 기자는

 “고통(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구원하시도다”라고

부르짖으며 찬양하고 있다.

 

그것은 믿음을 지닌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떤 어려운 역경 속에 있다할지라도

하나님께 부르짖고 의지하면 반드시 구원해 주신다는 것을 알려주시는 교훈이다.

 

근심 중에서 여호와께 부르짖고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

광풍을 평온케 하시고 물결로 잔잔케 하신다. 그는 광풍을 잔잔케 하실 수 있다.

 

또 바라는 항구로 인도해 주신다.

바라는 항구(港口)는 하늘나라를 상징한다.

하나님은 고해(苦海)와 같은 이 세상에서

우리 성도를 평온케 해주실 뿐 아니라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강을 변하여 광야가 되게 하시며

샘으로 마른 땅이 되게 하시며 옥토로 소금밭이 되게 하신다.

소돔 땅은 물이 넉넉하고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같이 비옥했으나 하나님의 불 심판으로 소금 바다가 되었다.

다른 한편 하나님께서는 거친 광야를 변하여 못이 되게도 하시며 마른 땅으로 샘물이 되게도 하신다.

 

신 29:23 그 온 땅이 유황이 되며 소금이 되며 또 불에 타서 심지도 못하며 결실함도 없으며

            거기에는 아무 풀도 나지 아니함이 옛적에 여호와께서 진노와 격분으로 멸하신

            소돔과 고모라와 아드마와 스보임의 무너짐과 같음을 보고 물을 것이요

 

아무리 살기 좋은 곳이라 해도 그곳에서 악을 행하면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사람이 거하지 못할 광야 메마른 땅, 소금 땅과 같이 황폐한 곳으로 만드신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광야가 변하여 못이 되게 하시고,

마른 땅에 샘물이 나게 하시고,

그곳에서 좋은 집들을 짓게 하시고 소산이 많이 나며

목축이 잘되어 번성하게 하시고,

모든 방면에 복을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주관하셔서

주린 자로 거기 거하게 하시며 그들로 거할 성을 예비케 하시고

밭에 파종하며 포도원을 재배하여 소산을 취하게 하신다.

 

그는 어떤 이들에게 복을 주셔서 그들로 크게 번성케 하시고 그 가축들이 감소하지 않게 하시지만,

그들은 또다시 압박과 곤란과 우환을 인해 감소하여 비굴하게 되기도 한다.

그것은 죄의 징벌 때문이거나 훈련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방백들에게 능욕을 부으시고 길 없는 황야에서 유리하게 하신다.

그러나 그는 또 궁핍한 자와 환난당한 자를 곤란에서 높이 드시고

그 가족을 양무리 같게 인도하기도 하신다.

 

그러므로 정직한 자들은 보고 기뻐하며 모든 악인들은 자기 입을 봉할 것이다.

지혜 있는 자들은 이 일에 주의하고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깨달을 것이다.

정직한 자는 성경말씀을 달게 받으며 그 말씀대로 살며 그 뜻을 행하는 자이며,

그들이 지혜자요 복 받을 자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과 구원해 주심에 감사하고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죄와 멸망에서 구원해 주셨음에 감사하라.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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