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기원과 확신[시 108편]
[내용개요]
본시는 혼합시의 형태를 피고 있는데 각각 비탄시인 시57:7-11과 시60:5-12에서 발췌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주의할 것은 본시는 비탄시가 혼합된 형태이지만 찬양시로 분류되어 있다는 점이다.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능력은 시인의 찬양의 중요한 이유가 되며(1-5절) 나아가 주를 의지하는 자는 궁극적으로 승리하게 됨을 서술하고 있다(6-13절).
[강 해]
다윗이 작시한 이 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서로 다른 두 시의 일부가 합쳐져 구성된 혼합시라는 점입니다. 각각 시57:1-11과 시60:5-12에서 발췌되었는데 구성상 어색함이나 이질감이 없고 앞의 두 시에 조금도 뒤지지 않은 아름다운 시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다윗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두 시를 이런 식으로 묶어 하나의 시로 만들었을 리는 없습니다. 이 시는 다윗의 새로운 간구이자 새로운 고백으로 두 시의 간구와 고백을 다시 한번 강조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1 . 온 세계 위에 높으신 주의 영광
1) 마음을 정한 시인
다윗은 마음을 정한 후 심령으로 하나님에 찬양했습니다.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란 표현에서 하나님만을 향하여 온 영혼이 집중된 시인의 청결한 마음 상태가 결연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자칫 마음이 분열되기 쉬운 현대인들일수록 마음의 초점과 방향을 정확히 잡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주를 찬양하는 일과 세상을 좇는 일을 동시에 하는 것을 간과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마음을 정하고 전적으로 의뢰해야 합니다.
a. 양립할 수 없는 것(약3:11)
b. 심지가 굳은 자의 평강(사26:3)
2) 열정적인 찬양
다윗은 비파와 수금을 향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할만큼 열정적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또 만민 중에 감사하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우리 자신을 고무시켜야 합니다. 또한 새벽을 깨우리라고 했는데 고요하고 청아하게 가라앉은 새벽은 하루 중 가장 경건하고 신선한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새벽에 정결하고도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할 것을 다짐할 때 영적 생명력이 충만해집니다. 다윗과 함께 언제 어느 때든지 모든 경우에 있어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이는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무이자 권리입니다.
a. 항상 찬송해야 할 주(시71:6)
b. 전심으로 찬양해야 할 주(시86:12)
3) 온 세계 위에 높으신 주의 영광
큰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은 온 세계와 우주에 높여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는 하늘의 모든 복된 거민들에 의해 찬송되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간청한 것과 같이 우리의 모든 관심은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돌리는 데 모아져야 합니다.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으시기를 원하는 것은 성도로서 마땅한 도리입니다.
·감사와 찬양(대상29:13)
2.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1)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확신
다윗은 하나님께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오른손은 주의 권능을 의미하는 바 다윗은 사방의 대적에게 둘러싸여 위급한 지경에 놓인 자신을 능히 구하실 하나님의 권능을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할 수 있는 사람은 분명히 그분의 사랑을 받는 자입니다. 그분의 백성들은 기도와 그 기도의 응답을 통해서 신앙이 구체화되고 성장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확신하고 늘 기도하기에 힘써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a. 용감한 기도(단6:10)
b. 쉬지 않는 기도(살전5:17)
2) 다윗을 돕는 지파
'홀'은 권한, 국가 원수의 생명, 통치, 주도권, 언약 등을 상징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유다는 나의 흘'이란 구절은 유다 지파가 하나님께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이스라엘에서 가장 주도적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이라는 의미로, 그들은 다윗에게 유능한 치리자들을 보내 주었습니다. 이는 다윗 왕가를 통해 그대로 입증된 말씀입니다. 또 에브라임은 다윗의 보호자가 되어 병사들과 상비군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다윗은 이러한 사실들을 전망하며 기뻐했는데 하나님을 제대로 믿는 자들은 그분의 약속 속에서 개가를 부르며 하나님의 은덕 속에서 위로를 얻습니다.
·유다를 떠나지 않을 홀(창49:8-12)
3) 궁극적인 조력자
주께서는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셨는데 이는 거룩하신 가운데서 말씀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세겜을 나누고 숙곳 골짜기를 척량하는 것은 가나안 땅의 분배를 의미합니다. 길르앗, 므낫세는 바산 지역을 뜻하고 모압을 목욕통이라 한 것은 극단적 모욕의 표시로 장차 모압을 정복할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다윗은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모압과 에돔을 정복했습니다. 에돔에 신을 던진다는 것은 에돔이 주인의 신을 씻는 종의 신분으로 전락할 것을 뜻합니다. 블레셋이 외치는 것은 승리나 환호가 아니라 고통과 괴로움의 부르짖음을 의미합니다. 다윗은 막강한 여러 족속들과의 싸움에서 궁극적인 조력자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곤경에서도 낙담치 말고 인내해야 합니다. 이는 도우시는 분이 바로 가까이에 계신 연고입니다.
a. 정복된 모압(삼하8:2)
b. 환난의 궁극적 즐거움(롬5:2-4)
3. 승리의 확신 속에서 하는 기원
1)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구원
다윗이 북쪽 아람 족속과 싸우는 동안 남쪽으로부터 에돔이 침입해 들어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구원만이 참된 것임을 믿었습니다. 사실 진정한 의미의 구원은 인간이나 우상에 의해서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적 방법 즉 우상을 통한 종교적 방법, 돈과 권력을 통한 사회적 방법으로 구원을 얻고자 하는 어리석은 자들이 있는데 이는 참과 거짓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로 영적 안목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a. 우상의 무능성(사46:6-7)
b. 생명에서 떠난 자의 무지함(엡4:18)
2) 승리의 확신 속에서 기원한 다윗
다윗은 사방에 대적으로부터 에워싸였어도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했습니다. 사람과 더불어 약속하고 도움을 청한다면 의심하고 두려워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께 의탁하고 간구하기에 그 약속은 분명히 이루어집니다. 다윗은 승리의 확신 속에서 하나님께서 대적을 밟아 주실 것을 기원했으니 믿음의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우리가 용감히 행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은혜를 힘입을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약하고 두려움에 떠는 우리에게 힘과 결단력과 용기를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발 아래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칭송을 돌려야 합니다. 그리할 때 승리의 확신 속에 승승장구 하는 신앙 생활을 영속하게 됩니다.
a. 정하신 뜻을 행하시는 하나님(사25:1)
b. 모든 것을 능하게 하시는 주(빌4:13)
결론
본시가 시57,60편에서 발췌된 점에서 우리가 새로운 결단과 감정을 지니고 기도한다면 전에 사용했던 것과 똑같은 말로 기도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본시를 통해 우리는 어떤 비탄 속에서도 주께 감사와 찬양을 올려야 하고 골이 깊을수록 산이 높은 것처럼 환난이 더 큰 은혜 체험의 도구가 됨을 깨닫게 됩니다.
[단어해설]
1절. 심령으로. 원어<d/bK;:카보드>는 '영광' 또는 '심령'을 뜻한다. 여기서는 사람의 가장 진실되고 고귀한 심령을 의미한다.
4절. 인자하심이. 인간의 구원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말한다.
7절. 내가 뛰놀리라. 법궤를 맞아 뛰며 찬양한 다윗과 같이 극도의 기쁨과 찬양을 표현하는 행위이다.
[신학주제]
주의 백성이 가지는 용기.
다윗은 선민의 땅이나 이방인 땅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찬양하고 있다. 이러한 찬양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지는 용기의 원천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택한 자들에게 용기를 주시는데 그 용기는 다름아닌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나타난다.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 자는 하나님의 택한 자며 군대와 같은 큰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참으로 주의 백성은 하나님에서 만군의 왕이 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이는 인간의 힘은 결코 영원하거나 무한할 수 없으며 인간 자체는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힘을 받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영적교훈]
본시는 찬양시로서 그 의미가 크다. 그것은 그 어떤 비탄 속에서도 하나님께 감사, 찬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성도에게는 오는 환난이 더 큰 은혜를 체험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할 수 있는 믿음이 무엇보다 크나큰 축복인 것이다.
http://cafe.daum.net/jususeye/acDI/108
시편 108편
Ⅰ.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 108:1-5
본문을 통하여, 가장 훌륭한 예술가 중의 한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하는가를 배울 수 있다.
(1) 먼저 마음을 정한 상태에서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해야 한다. 이러 저리 방황하는 생각의 단편들을 하나로 모아 하나의 일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2) 사람은 제각기 타고난 재주를 이용하여 자유롭게 하나님의 찬양하여야 한다. 예를 들어 글을 쓰는 사람은 '내 영광으로'(한글 개역 난외주-역주) 곧 아름다운 언어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한다는 것이야말로 글 쓰는 이의 영광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어휘를 총동원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순간, 글 쓰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광을 맛보게 될 것이다. 다윗에게는 음악이 영광이었다. 그는 아름다운 연주와 노래로 온 이스라엘에 유명했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음악적인 재능을 구별하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바쳤던 것이다. 자신의 재능이 어디에 있든지 바로 그것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3) 또한 마음 속 깊이 하나님을 흠모하면서 그 이름을 찬양해야 한다. 이때 조금의 소홀함도 없이 생동감이 넘치게 찬양하기 위하여 자신의 마음을 깨워 놓아야 한다(2절).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이 구절은 찬양이 활기차게 울려퍼져야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열심히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4) 우리가 하나님께 속하였다는 사실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말고 공공연히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
(5) 우리는 찬양 중에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을 찬미해야 한다(4절). 인간의 지각으로는 하늘 위에나 궁창 한 가운데 무엇이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처럼, 지금까지 보았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저 세상에 가면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인자하심과 진실을 아직도 많이 예비해 두셨기 때문이다.
Ⅱ.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 108:6-13
우리의 기도 중에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도가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어야 한다(6절). 본문에 '주의 사랑하는 자'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우리를 가리키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즉 나 자신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열심있는 믿음의 소유자들은 기도가 아직 응답되지 않았다 해도 실망하지 않고 그가 말씀하신 사실만으로도 기쁘게 여겨야 한다. 하나님에게 있어서 말과 행동은 따로 구별된 개념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렇지 않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앞으로 그의 다스림을 받을 사람들이 마음으로부터 따르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하셨었다. 따라서 다윗은 마치 그 사람들의 땅을 다스리게 되기라도 한 것처럼 척량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내가 세겜을 나누며 속곳 골짜기를 척량하노라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보호자요 유다는 나의 홀이며(7,8절). 물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대로 이방인의 기업과 토지의 대부분을 다윗의 소유가 되게하심으로써 그들의 마음까지 얻게 해주실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모압과 에돔 및 블레셋 전역까지 자기의 손 안에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9절). 우리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긍휼하심을 베풀어 달라고 간구하면서 그 기도한 바와 같이 이루어 주실 것을 믿고 기다려 보아야 한다(10,11절).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아직 정복하지 못한 저 견고한 성읍에 나를 이끌며 누가 아직 복속시키지 못한 에돔 땅에 나로 주인이 되게 할꼬?" 에돔과 전쟁할 당시 그 땅을 어떠한 방법으로 쳐야 할지 의논하는 자리에서 다윗은 휘하 장소들을 향해 이 질문을 던져 보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왔다.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11절). 하나님의 계획이 자기의 뜻과 맞지 않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품을 떠나거나 기도할 힘마저 잃고 낙담에 빠져서는 안된다. 그런 때일수록 우리는 하찮은 피조물을 의지하던 마음을 버리고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께 도우심을 청해야 한다(12절).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그 말이 옳소이다. 하나님이 도우시지 않으면 인간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나이다. 그 사실을 잘 알기에 하나님께 도우심을 청하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이나이다." 우리는 우리의 본분을 다해야 하나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여 용감히 행하는' 것으로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찬송하며 구원을 간구함(시 108편)
[1-5절]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내 심령(케보디)[내 영광](KJV)으로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열방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대저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 위에 광대하시며 주의 진실은 궁창에 미치나이다.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주의 영광이 온 세계 위에 높으시기를 원하나이다.
1-5절은 시편 57:7-11과 거의 같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정했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송하고자 하는 마음의 결심이다. 그는 비파와 수금을 사용하여 하나님을 찬송하기로 결심하였다. 찬송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를 믿고 사랑하고 사모하며 높일 때 나온다. 찬송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고백 이상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고백이다.
다윗은 또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라고 말한다. 새벽은 하루 중에 가장 좋은 시간이다.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께 찬송하며 기도하는 것은 성도의 간절함과 사모함과 정성을 나타낼 것이다. 돈 벌기를 사모하는 자는 새벽에도 잘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는 새벽에 일어나 하나님께 찬송과 기도를 올릴 것이다. 새벽기도회의 참여는 경건한 성도들의 복된 삶이다.
다윗은 또 열방 중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겠다고 고백한다. 그가 하나님을 찬송하려 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하늘 위에 크시며 그의 진실이 하늘까지 미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인자와 진리로 죄인들을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심에서 드러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구원을 얻었다. 또 하나님의 진리는 그가 자기 백성에게 약속하신 구원의 약속을 이루심에서와, 또 악인들에게 공의의 벌을 내리겠다고 하신 경고를 시행하심에서 나타난다. 하나님께는 거짓이 없으시다. 그의 진실하심은 우리의 믿음의 기초이며 영원한 구원의 기초이다.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서 영광을 받으실 자이시다. 그는 온 세상의 구주이시며 소망과 기쁨이시요 생명의 근원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로 구원을 받은 모든 자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와 진리를 찬송해야 한다.
[6-9절] 주의 사랑하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 하나님이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시되 내가 뛰놀리라. 내가 세겜을 나누며 숙곳 골짜기를 척량하리라.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요 유다는 나의 홀이며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질지며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 하셨도다.
6-13절은 시편 60:5-12와 거의 같다. 다윗은, “주의 사랑하는 자를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실 것이다. 우리가 바로 그의 사랑을 입은 자들이다. 그는 그 오른손 즉 능력의 손으로 우리를 구원하실 것이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그 거룩하심으로 말씀하셨다”고 말하며, 그의 말씀을 전한다. “내가 뛰놀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승리의 기쁨을 표현하신다. 세겜은 요단강 서쪽을 가리키며, 숙곳 골짜기나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을 가리키고, 므낫세는 요단 동서쪽에 걸쳐 있다. 이 말씀은 가나안 땅의 약속의 확실함을 증거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 즉 요단 동쪽과 요단 서쪽을 다 그의 소유로 삼으셨고 그것을 지키시며 보호하실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라고 말씀하신다. ‘보호자’라는 원어(마오즈)는 ‘보호물, 투구(NASB, NIV)’라는 뜻으로 ‘내 머리의 보호자’라는 말은 그의 원수들로부터 그의 왕권을 지키신다는 뜻일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유다는 나의 홀”이라고 말씀하신다. ‘나의 홀’이라는 원어(메콕키)는 ‘나의 법을 베푸는 자’라는 뜻으로 ‘지도자’나 ‘왕’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왕권은 유다를 통하여 계승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권을 지키시고 그 왕권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또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는 말씀은 모압이 이스라엘의 종이 될 것을 표현하신 것이라고 보며, 또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진다는 말씀도 에돔에 대한 진노와 경멸을 표현하신 것이다. 또 “블레셋 위에서 내가 외치리라”는 말씀은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이길 것을 나타낸다.
[10-13절]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꼬.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이심이로다.
이스라엘은 지금 매우 연약해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버려두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셨고 그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으셨다. 그들이 이렇게 연약해진 것은 그들의 죄 때문이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증거되는 바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율법에서 만일 그들이 그의 계명을 어기면 원수 앞에서 뿔뿔이 흩어질 것이라고 이미 경고해 두셨었다(신 28:25-26).
그러나 다윗은 자신과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어 에돔의 견고한 성으로 들어가게 하실 자는 하나님밖에 없다고 고백한다. 그는 하나님의 긍휼과 주권적 능력을 굳게 믿는다. 그는 하나님께 승리가 있음을 확신한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세상에서 겪는 싸움들에서 승리의 원인이 되신다. 다윗은 또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라고 말한다. 사람의 도움은 극히 제한적이다. 또 하나님께서 그것을 무(無)로 돌리실 때 그것은 헛되게 된다. 이방 군대의 도움도 그렇다. 그러므로 시편 146:3-4는 “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라고 말했다.
다윗은 환난 중에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하고 그를 의지한다. 하나님께서는 환난당한 자를 도우실 수 있다. 구원은 하나님께 있다(시 3:8). 또 다윗은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리니 저는 우리의 대적을 밟으실 자심이로다”라고 말한다. 그는 시편 18:29에서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에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고 말했고, 시편 20:7에서 “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고 그의 약속과 인자와 진실을 믿었다.
본 시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고난 당한 자기 백성의 기도를 들어주시며 원수들로부터 구원해주신다. 이 세상 사는 동안 성도들은 여러 가지 고난들을 당한다. 그것들은 많은 경우 우리 자신의 부족 때문에 오지만, 때로는 단순히 마귀의 시험 때문에 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연유로 오는 고난이든지, 낙망치 말고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을 성찰하며 회개할 바가 있으면 지체치 말고 고백하고 버리기를 결심하며 하나님만 바라며 의지해야 한다.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한 증표이다.
둘째로, 우리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감사하며 기도하고 또 날마다 규칙적으로 성경책을 조금씩이라도 읽음으로써 하나님의 교훈을 받자. 그것은 우리에게 큰 복이다.
셋째로, 우리는 환난 많고 전쟁터와 같은 이 세상을 사는 동안 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용감히 행하자.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죄사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들은 이 세상 사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다.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대히 행하자.
http://www.oldfaith.net/01exposit/01ot
클로드 모네
시편 108편은 다윗의 찬송 시입니다. 이 찬송 시는 특별한 시라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시편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원래 있던 시를 편집했기 때문입니다. 1절에서 5절까지의 구절은 시편 57편의 일부 내용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고, 6절부터 13절까지 역시 시편 60편의 내용 일부를 그대로 옮겨 놓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찬송 시라 되어 있는 표제가 다윗이 자신의 시를 이렇게 편집했는지 아니면 후대의 사람들이 다윗의 시를 편집하여 옮겨 놓았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편집된 이 시의 원시편의 상황이 전혀 다른 것을 같이 묶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절부터 5절까지의 구절은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굴에 숨어 지낼 때 지은 시詩인 시편 57편입니다. 반면 6절부터 13절까지의 구절은 다윗이 왕이 되었을 때 요압 장군이 에돔의 군사 12,000명을 죽여 승전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지은 시詩인 시편 60편입니다. 그래서 먼저는 두려움 속에 떨어야 할 시기요, 후자는 기쁨으로 가득 찬 시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시기, 전혀 다른 상황을 묶은 시편이 108편입니다.
사울 왕에게 쫓겨 동굴 속에 숨어 지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다윗이 한 마음가짐이 1절과 2절에 나옵니다.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다윗은 엄청난 문제 앞에 직면했을 때에 두려워하기보다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기로 마음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닥친 큰 문제는 그에게 두려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가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기도한다고 해서 두려움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해도 여전히 두려움 속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마음을 정하고 기도했다는 것은 더 이상 문제를 생각지 않겠다는 것이고, 그 문제에 자신의 마음을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오가 엿보입니다. 기도는 나의 문제에 빼앗기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으로 빼앗기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생각할 때, 그 시간은 결코 우리를 불안하게 하거나 두렵게 하지 못할 것입니다.
또한 6절부터 마지막 절까지는 승전 소식을 들은 후 지은 시입니다. 승전 소식은 왕에게 가장 큰 기쁨입니다. 그러나 다윗이 기뻐했던 가장 큰 이유는 단지 장수 요압이 전쟁에서 승리했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과 자녀들은 그분이 반드시 지켜 주신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10절에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읍으로 인도해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으로 인도할꼬.”라고 하면서, 12절에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구원이 아닌 하나님의 구원은 그분의 백성들과 자녀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문제 앞에서든 항상 두려워하지 않을 이유는 기도할 때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을 지켜 주신다는 확신을 가질 때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분명 두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에 빠졌을 때, 내가 과연 문제 때문에 두려워하는지 두려워하기 때문에 두려워하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작성자 생명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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