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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및 신앙 서적

『벼랑 끝에서 웃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by 은총가득 2021. 10. 10.

 

 

벼랑 끝에서 웃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강준민

 

목차

서문- 당신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십니다.

2. 고독은 은총의 손길입니다.

3. 깊은 옥은 날개를 준비하는 곳입니다.

4. 진퇴양난 속에도 새 길이 있습니다.

5. 절망의 끝에서 희망이 시작됩니다.

6. 가난의 고통 속에 부요의 씨앗의 담겨 있습니다.

7. 채무는 풍성함으로 가는 뜀틀입니다.

8. 고난이 깊을수록 영광은 찬란합니다.

9. 억울한 밤에 하나님의 모략이 시작됩니다.

10. 상실의 고통을 지나면 위대한 영혼이 탄생합니다.

11. 질병의 골짜기에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12. 세상의 끝은 영원의 시작입니다.

13. 풍랑은 목적지로 더 빨리 인도합니다.

 

 

서문“당신의 절망은 하나님의 희망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저는 벼랑 끝에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벼랑 끝에서 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자신이 경험하는 벼랑 끝을 가장 힘들다고 여기게 됩니다. 그러한 면에서 우리 모두는 벼랑 끝에서 똑같은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벼랑 끝은 위험하고 고통스럽고 놀랍고 무서운 곳입니다. 흑암이 깃든 곳이요, 아픔과 슬픔이 가중된 곳입니다. 그러나 그 벼랑 끝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설이며 신비입니다. 벼랑 끝은 바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곳입니다. 곧 벼랑 끝에 선다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하신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는 벼랑 끝을 여러 번을 경험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순종’입니다. 우리의 문제는 완고함과 완악함, 고집스러움과 딱딱함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혜가 있는 사람은 부드러움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벼랑 끝의 신비를 이해할 뿐 아니라 벼랑 끝에서 어떻게 반응 할 것인가를 배워야 합니다. 벼랑 끝은 하나님을 경험하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의 장소입니다. 벼랑 끝은 절망이 아니라 희망의 시작입니다. 이 책은 희망과 통찰력과 깨달음을 주는 책입니다. 또한 이 책은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과 기적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입니다.

 

 

1. 하나님은 우리를 웃게 하십니다.

- 벼랑 끝에서 웃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창 17:1-8)

 

벼랑 끝에 선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절망하고 낙담하며 인생의 꿈을 포기해버리거나 심지어는 생을 마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습니다. 그리고 그 벼랑 끝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합니다. 벼랑 끝에 섰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하나님이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곤 그들에게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들의 생애를 통해 하나님이 언제, 어떻게, 어떤 과정을 통해 기적을 베푸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를 벼랑 끝으로 밀어내기도 하십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과연 인간은 어떤 경우에 벼랑 끝에 놓이게 될까요?

첫째, 나이가 들어갈 때 벼랑 끝에 서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그럴 때가 된 것입니다. 그의 나이 99세가 되었을 때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혹시 나이가 들었다고 포기하거나 낙심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듯이

지금 당신에게도 기적의 새 역사를 창조해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둘째, 육체가 쇠약해질 때 벼랑 끝에 서게 됩니다.

나이가 젊더라도 육체가 약해지면 낙망하게 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경험한 것이 바로 육체의 변화입니다.

 

셋째, 꿈이 성취될 가능성이 희박해질 때 벼랑 끝에 서게 됩니다.

인간은 꿈 때문에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꿈이 좌절될 때 인간은 좌절하게 됩니다.

벼랑 끝에 섰다고 쉽게 꿈을 좌절하지는 마십시오. 나이가 많다고, 육체가 쇠약해졌다고 꿈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차선에 것에 만족하지 말고 최상의 것을 기대 하십시오,

끝까지 최상의 것을 고집하면 최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벼랑 끝에 섰을 때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은 벼랑 끝에 섰을 때 찾아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육신을 신뢰하는 동안 침묵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까요?

첫째,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둘째, 말씀을 통해 변화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 하셨습니다.

말씀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십니다. 말씀은 살아있는 능력입니다.

창조의 재료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곧 실재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십니다.

모든 것은 생각에서 시작됩니다. 생각은 모든 것의 뿌리입니다. 모든 것의 원인입니다.

우리의 현재의 모습은 우리의 생각의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새로운 생각은 말씀을 통해 주어집니다.

아브라함의 문제는 생각의 문제였습니다. 이제 더 이상은 아들을 낳을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그의 육신이 생각에 의해 움직인 것 입니다. 반복해서 우리의 생각에 암시를 주면 그 생각이 우리의 육신을 지배하고 다스리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사실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렇게 만드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 삶 속에서 얼마든지 경험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네 믿음 되로 될지어다 ”라고 말씀 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생각에서 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은 어떻게 변화를 시킬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잘못된 생각과 부정적인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체할 때 생각이 변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의 언어를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긍정적인 말, 믿음의 말, 우리가 정말 원하는 것을 표현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의 자아상을 변화시키십니다. 우리의 생각은 마치 텔레비전의 채널과 같기에 텔레비전의 채널을 바꿀 수 있다면 우리 생각의 채널을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하고 결정하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선포를 통해 우리의 신체를 변화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은 곧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이 말씀이 선포되면 곧 실재가 됩니다.

우리의 언어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해서 반복될 때 신체가 변하고 미래가 변하고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됩니다.

하나님은 순종을 통해 기적을 창조하십니다. 믿음은 순종을 낳습니다. 믿음은 행동을 낳습니다.

그리고 행동할 때 결과를 낳습니다. 배운 말씀을 순종하십시오. 기적을 선포하십시오.

병 고침을 선포하십시오. 형통을 선포하십시오. 형통을 선포하십시오. 축복을 선포하십시오.

능력을 선포하십시오.문제가 해결된 것을 선포하십시오. 하나님의 기적은 지금 우리 안에서 약동하고 있습니다.

 

 

2. 고독은 은총의 손길입니다.

- 고독한 밤에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창 32:22-32)

 

하나님은 벼랑 끝에서 새 일을 시작하십니다. 하나님은 벼랑 끝에서 우리를 날게 하십니다.

우리가 벼랑 끝에서 날수 있는 것은 작은 차이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작은 차이를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 작은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복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며 깨달음입니다.

또한 우리는 벼랑 끝에서 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벼랑 끝에서 하늘을 날던 사람 중에는 야곱이 있습니다.

우리는 야곱에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을 배워야합니다. 고독한 밤에 야곱에게 하나님은 찾아 오셨습니다.

고독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를 고독이라는 벼랑 끝으로 몰고 가십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고독이라는 벼랑 끝으로 몰아가실까요?

첫째, 고독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은총의 손길입니다.

둘째,고독은 우리를 깨트리는 하나님의 손길이십니다. 하나님은 야곱의 환도뼈를 치셔서 그를 깨트렸습니다.

우리가 깨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날게 됩니다.

 

 셋째, 고독을 통해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야곱이 고독한 밤에 사모했던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었습니다.야곱은 축복을 구하고 있습니다. 환도뼈가 위골 되어지는 고통 중에도 그가 구한 것은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자아가 강한 사람을 요긴하게 쓰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자아를 깨트리십니다. 문제는 우리의 약함이 아니라 강함입니다. 우리가 어리석기 때문이 아니라 간교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도 살수 있다는 강함, 하나님의 지혜를 의지하지 않고도 살수 있다는 우리의 꾀가 문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강함을, 그 간교함을 깨트리십니다.

 

고독을 고통스러워 말고 고마워하십시오. 고독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당신 곁에 계십니다. 당신의 이름을 묻고 계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기도하십시오.

고독한 밤에 친히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고독을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고독을 통해 우리를 깨트리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고독을 통해 우리를 깨뜨리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의 가치를 찾으십시오. 벼랑 끝에 선 당신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넘치길 빕니다.

 

 

3. 깊은 옥은 날개를 준비하는 곳입니다.

- 깊은 옥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창 39:19-23)

 

벼랑 끝에 섰을 때에 해야 할 일은 좋은 모범은 찾아 배우는 것입니다.

자신과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들 중에서 승리한 사람을 찾아서 배우는 것입니다.

인생은 누구를 가까이하느냐에 따라 결정 됩니다. 접촉은 변화를 낳고 반복된 접촉은 기적을 낳습니다.

요셉은 우리가 좋은 목적지로 향해 갈 때 소유해야할 지도와 같은 인물입니다.

그는 벼랑 끝에서 비상 할 줄 아는 인물입니다. 그는 벼랑 끝에서 국무총리라는 높은 자리에 올라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요셉이라는 인물과 함께 요셉의 하나님, 곧 우리의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다루시는 원리, 사람을 변화시키는 하나님 원리를 배워야합니다.

우리는 깊은 옥에 던져 졌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깊은 옥에서 결코 해서는 안 될 반응을 삼가십시오.

첫째, 시련을 당할 때 원망으로 반응하지 마십시오.원망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시는 사람이 원망하고 불평하는 사람입니다.

 

둘째, 시련을 당할 때 낙심으로 반응하지 마십시오. 시련을 당할 때 더욱 잘 관리해야 하는 곳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셋째, 시련을 당할 때 포기로 반응하지 마십시오. 시련을 당할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조급함입니다.

조급한 마음을 가지다가는 결구 포기하는 마음까지 품게 됩니다. 시련은 포기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시련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깊은 옥에서 말씀의 원리를 따라 반응하십시오.

시련을 만났을 때 중요한 것은 반응하는 능력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시련 때문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반응 때문에 무너집니다.

 

좋은 반응을 보이면 그 시련 때문에 오히려 더 잘되게 됩니다.

그 반응은 네 가지로 분류합니다.

첫째, 시련을 만날 때 기쁨과 감사로 반응하십시오.

둘째, 시련을 만날 때 섬김으로 반응하십시오.

셋째, 시련을 만날 때 미래를 위한 준비로 반응하십시오.

넷째, 시련을 만날 때 섭리 신앙으로 반응하십시오.

섭리신앙을 이해하고 섭리신앙으로 반응하면 모든 것이 새롭게 탄생합니다.

사도바울은 섭리 신앙을 깨달은 사람입니다.

 

벼랑 끝에 서있는 동안 하나님은 날개를 준비하십니다.

벼랑 끝에 섰을 때 원망하지 마십시오. 낙심하지 말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끝까지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고 지금 당하는 시련 속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음을 믿으십시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응답하십시오. 일상생활 속에서 섬김으로,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반응하십시오.

그리고 미래를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4. 진퇴양난 속에도 새 길이 있습니다.

- 진퇴양난의 벽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출 14:10-20)

 

벼랑 끝은 무한한 가능성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벼랑 끝에서 새 역사가 창조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시기 위해 진퇴양난의 벽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어떤 축복을 주실까요?

첫째, 시련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둘째, 시련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연단시키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따라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귀히 사용하시고자 하는 개인이나 민족에게는 먼저 믿음을 연단하시고 성장시키십니다.

셋째, 시련을 통해 우리를 지혜롭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진퇴양난의 상황에 몰아넣으신 것은 그들을 지혜로운 백성으로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귀히 사용하시고자 하는 개인이나 민족에게는 먼저 믿음을 연단하시고 성장 시킵니다.

진퇴양난의 벽에 부딪혀 두려움이 찾아올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침착하게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절박한 상황일수록 더욱 침착하게 하나님의 인도를 기다려야 합니다. 급할수록 멈추어야 합니다.

급할수록 기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진퇴양난의 환경에서 눈을 떼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첫째, 환경을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둘째,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십시오.

진퇴양난의 벽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두려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보통 두려운 것이 아니라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부르짖음 속에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들의 두려움이 믿음 삼켰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말씀과 접촉을 해야 하며, 사랑을 해야 하며, 사명 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셋째, 조급하지 말고 침착하게 기도하며 기다리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며 기다릴 때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 대신 싸워주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어음과 같습니다. 일정한 기간이 지난 다음에 그 약속이 현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잠잠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한걸음씩 전진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은 진퇴양난의 벽에서 새 길을 만들어 주십니다. 길이 안 보인다고 길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눈에는 길이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보입니다. 두려워하거나 원망하지 말며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다리십시오. 순종하십시오. 믿음으로 한 걸음씩 전진하십시오. 하나님을 앙망하고, 신뢰하고, 의지하십시오. 믿음의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그 다음은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입니다.


 

5. 절망의 끝에서 희망이 시작됩니다.

- 절망의 수렁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룻 1:19-22)

 

절망은 희망의 전주곡입니다. 벼랑 끝에 선다는 것은 절망의 벼랑에 서는 것입니다.

인간을 가장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 절망입니다. 룻기에 나오는 나오미와 룻에게 찾아온 절망과 두려움은 슬픔 때문에 생긴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상상해 보십시오. 남편과 두 아들이 모두 죽고 난 후의 나오미의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녀에게 남은 것은 절망뿐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오미의 인생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습니다. 그녀의 며느리인 룻에 의해 절망은 희망으로 슬픔은 기쁨으로 쓴 인생은 단 인생으로, 가난은 부요함으로 변화됩니다. 때론 여러분들에게 절망적인 현실이 다가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희망의 씨앗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절망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는 길은 절망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하는 것입니다.

 

절망의 수렁을 희망의 강으로 바꾸는 첫 단계는 애통하는 것입니다.

역설적이게도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첫 단계가 애통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남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물은 우리에게 놀라운 축복을 가져다 줍니다.

눈물은 하나님이 주신 신비로운 선물입니다.

 

 A.W. 토저는“성경은 눈물 속에서 쓰여졌기 때문에, 눈물 앞에 최고의 보물을 내놓는다.”고 말했습니다.

절망의 수렁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은 ‘좋은 선택’입니다. 우리에게 절망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없지만,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좋은 선택이 될까요?

첫째, 선택의 중요성을 절실하게 깨달으십시오. 선택은 순간이지만 결과는 영원합니다.

둘째, 선택을 잘 하기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선택을 잘 하기위해서는 지혜자에게 조언을 구해야 합니다.

넷째, 선택을 잘 하기위해서는 장기적인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다섯째, 선택을 잘 하기위해서는 남이 잘 가지 않는 길을 가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여섯째, 선택을 잘 하기위해서는 실패로부터 배워야 합니다.

일곱째, 선택을 잘 하는 것은 은혜입니다.  

   

절망의 수렁을 희망으로 바꾸는 것은 ‘좋은 습관’입니다.

 그렇다면 좋은 습관은 어떻게 가능 할까요?

     첫째, 절망 중에도 기뻐하는 것이 좋은 습관입니다.

둘째, 다른 사람을 먼저 윤택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은 습관입니다.

     셋째,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을 다 하는 것이 좋은 습관입니다.

넷째, 절망 중에도 희망을 가지고 기다리는 것이 좋은 습관입니다.

다섯째, 겸손히 은혜를 구하는 것이 좋은 습관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만남을 통해 인생을 역전시키십니다. 좋은 만날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성품입니다. 성품이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그러므로 좋은 성품을 배양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룻을 위해 예비하신 축복은 좋은 만남 이였습니다. 무엇보다 룻이 구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절망이 벼랑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모든 분들께 인생역전의 축복이 넘치길 빕니다.

 

 

6.가난의 고통 속에 부요의 씨앗이 담겨있습니다.

- 극한 가난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열상 17:8-16)

 

가난의 고통 속에는 부요함의 씨앗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이 통과해야 하는 벼랑 끝 가운데 하나는 극한의 가난입니다. 가난은 고통스러운 현실입니다. 그러나 가난 때문에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가난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하나님은 게으른 자를 싫어합니다.예수님도 게으른 종을 악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가난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습니다. 열왕기상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는 어떻게 가난함에서 부요함으로 바뀔 수 있었을까요?

 첫째,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가난은 부요로 변합니다. 하나님이 작정하시면 가난한자를 부요케 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가난한자를 부요케 하시는 하나님을 증거 하는 말씀을 묵상해 보십시오.

 

둘째, 가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을 때 가난은 부요로 바뀝니다. 가난 속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보는 시각이 다르고 해석이 다릅니다. 가난을 긍정적으로 해석합니다. 가난을 모든 것을 합력해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도구로 해석합니다.

 

가난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창조하는 씨앗이 되게 하십시오. 극한 가난 속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는 길은

 

첫째, 아직도 남아 있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려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으로 일하시기보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통해 일하십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없는 것 때문에 한탄하느라 자신 안에 있는 소중한 것들을 보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손에 있던 지팡이를 통해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모세의 지팡이가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하셨습니다.예수님의 이름을 소유한 사람은 부요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가난할지라도 상상은 부요합니다.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부요할지라도 가난합니다.

 

 둘째, 남아있는 작은 것을 먹지 말고 하나님께 심으십시오. 심을 씨앗과 먹을 양식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이 지혜입니다. 작은 씨앗 속에 엄청난 잠재력을 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심고 나중에 거두는 것이 지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해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가난한자들을 위해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가난한 자들의 아픔을 아시고 그들을 위로하시고 그들이 부요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가난하다고 슬퍼하지 마십시오. 가난하다고 기죽지 마십시오. 예수님도 가난하셨습니다. 그러나 가난에 머무르지 마십시오. 가난을 정당화 하거나 너무 선호해 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가난한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우리가 부요해서 가난한자들을 돌아보길 원하십니다.

 

 

7. 채무는 풍성함으로 가는 뜀틀입니다.

- 채무의 고통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왕하 4:1-7)

 

채무의 고통 속에서 기적을 경험하십시오. 열왕기하4장 에나오는 생도의 아내는 빛 때문에 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우리도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채무의 문제를 해결 할 수 있을까요? 가능한 일찍 경제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받으십시오. 교회에서 경제생활에 대해 거론하는 것을 왠지 거부감 있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분명한 것은 성경, 특히 신양에서 금전이나 재정, 경제생활에 대한 구절이 구원이나 믿음에 대한 구절보다 거의 열배나 많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릴 때부터 경제생활에 관한 성경적 원칙을 배워야 합니다. 채무의 문제를 영적인 차원에서 해결하겠다고 결단 하십시오. 보통 결단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목숨을 내걸고 결단해야 합니다. 결단하면 길이 보입니다. 인간적인 방법이 아닌 영적인 방법으로 불가능한 상황에 이르렀을 때 이르렀을 때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결단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하나님이 채무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신뢰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람이 명하는 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사람들을 함부로 대하거나 멸시할 때 하나님의 축복은 막히게 됩니다. 부족해 보여도 하나님의 사람들은 축복의 통로이며 축복의 채널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람들이 전하는 말씀을 통해 축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8. 고난이 깊을수록 영광은 찬란합니다.

- 고난의 풀무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단 3:13-30)

 

고난은 변장된 축복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피할 수 없는 고난을 환영하고, 고난이 주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합니다. 다니엘 3자에 나오는 다니엘의 세 친구는 지혜로운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을 느부갓네살 왕도 알아보았습니다.우리는 그들의 지혜로운 반응을 배워야 합니다.

고난을 믿음으로 반응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또한 어떻게 반응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적을 기대하는 반응입니다 표적신앙을 소유한 사람의 반응입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왕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맹을 발휘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들은 이러한 용맹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첫째,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용맹을 발합니다.

둘째, 기도의 능력을 경험한 사람은 용맹을 발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용맹을 발합니다.

고난을 사랑으로 반응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고난에 처했을 때 믿음으로 반응할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풀무 불에서 구원해주지 않으셔도 금신상에게 절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사랑을 주고받는 사랑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첫째, 참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둘째, 참된 사랑에는 조건이 없습니다.

셋째, 참으로 사랑하면 모든 것을 맡깁니다.

넷째, 참으로 사랑하면 희생도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반응하는 것을 좋아 하십니다. 사랑을 배우는 길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랑함으로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다른 표현으로 신뢰함으로 더욱 신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고난을 거룩히 기회로 반응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합니다. 고난의 신비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난을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하나님은 더욱 귀히 쓰시기 원하는 사람에게 고난을 주시며 그 길에서 부르시며, 인도하시고, 형통케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를 극한 풀무불 속에 집어넣으시는 이유를 발견해야 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고난의 풀무에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고난의 풀무에서 우리를 유연하게 하십니다.

셋째, 하나님은 고난의 풀무에서 우리를 성숙하게 하십니다.

회복의 영광은 더욱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자신을 맡기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자신을 맡기십시오. 하나님이 정녕 도우실 것입니다.

 

 

9. 억울한 밤에 하나님의 모략이 시작됩니다.

- 음모의 깊은 밤에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단 6:1-10)

 

음모의 깊은 밤에 하나님의 모략이 시작됩니다. 다니엘은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시기한 총리들과 방백들은 음모를 꾸몄습니다. 악한 자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당신을 음모할 때 낙심하지 마십시오. 절망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다니엘의 삶 속에 음모의 깊은 밤에도 형통하는 여적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첫째, 기도를 생명처럼 여기십시오.

둘째, 하나님을 향해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십시오.

셋째, 규칙적인 기도가 거룩한 습관이 되게 하십시오.

넷째, 성실하게 기도하십시오. 다섯째, 감사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음모의 깊은 밤에 더욱 하나님을 신뢰 하십시오.다니엘은 하나님의 정녕 자기를 해치려는 사람들의 음모를 알고 계심을 확신했습니다.

 

 다니엘은 2장에서 그가 알고 경험한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첫째,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큰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둘째, 감사는 하나님을 신뢰하는 가장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셋째, 바랄 수 없는 중에 믿는 것이 굳센 믿음입니다.

넷째 하나님은 바랄 수 없는 주에 바라고 믿는 자에게 상을 주십니다.

다섯째, 남을 윤택케 하는 자는 더욱 윤택해 집니다.

여섯째, 음모의 깊은 밤에 더욱 소망을 가지십시오.

 

 

10.상실의 고통을 지나면 위대한 영혼이 탄생합니다.

- 상실의 깊은 밤에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욥 1:13-22)

 

상실은 누구나 한 번은 통과해야 할 아픔입니다. 고통의 문제를 다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바로 고통을 직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욥의 생애를 살펴보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도피하고 싶은 삶의 현실을 직면해 보는 것입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어려움이 닥쳤을 때 중요한 것은 그 사건을 어떻게 해석하고 반응하느냐 입니다.

욥을 통해 상실의 고통에 반응하는 원리를 배워야합니다.

 

상실의 고통 앞에 용기 있게 직면하십시오. 고통의 문제를 다룰 때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이 고통 속에 축복의 씨앗을 담아 두셨다는 것입니다. 상실의 고통 중에도 욥이 보인 반응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한 것 입니다. 경배하는 욥의 모습에서 경배는 자신을 낮추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찬송하는 욥의 모습에서 찬송은 하나님을 높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상실의 고통 중에 있을 때 욥처럼 입술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도록 하십시오.

 

상실 때문에 경험해야 하는 고통스런 과정을 이해하십시오. 상실의 고통은 결코 쉽게 다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상실의 고통을 통과한 분들을 통해 상실의 고통을 어떻게 극복했는지를 배워야 합니다.

첫 번째 단계: 상실의 충격 때문에 혼돈 속에 빠져 듭니다.

두 번째 단계: 상실을 부인하려고 몸부림칩니다.

세 번째 단계: 상실 때문에 분노합니다.

네 번째 단계: 상실에 대해 남을 탓하거나 자신을 자책합니다.

다섯 번째 단계: 상실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여섯 번째 단계: 상실을 통해 성숙하게 됩니다.

일곱 번째 단계: 상실의 고통 중에 희망을 갖게 됩니다.

 

상실한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십시오.

 욥이 상실의 고통을 통과하면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는 무엇일까요?

첫째, 상실의 고통을 통해 정금 같은 인물이 되는 은혜입니다.

둘째, 상실의 고통을 통해 하나님을 뵙게 되는 은혜입니다.

 셋째, 상실의 고통을 통해 용서의 사람이 되는 은혜입니다

넷째, 상실의 고통을 통해 회복의 기쁨을 누리는 은혜입니다.

다섯째, 상실의 고통을 통해 이전보다 더 큰 복을 받게 되는 은혜입니다.

 

 

11. 질병의 골짜기에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 질병의 고통 중에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막 5:25-34)

건강을 상실했다고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약함을 인하여 더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인간의 생각과 다릅니다.

 

마가복음 5장에는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 받던 여인의 이야기가 기록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질병의 벼랑 끝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영적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인간의 절망의 벼랑 끝에서 하나님의 희망은 시작됩니다.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의 희망의 시작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고생한 여인도 마찬가지입니다.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의 병을 고쳐 주실 때 예수님이 보신 것은 한 가지 입니다. 그녀의 믿음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은 그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은 고정되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혈루증에서 자유케된 여인의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의 믿음을 성장 시키는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첫째, 믿음은 들음에서 나옵니다.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은 예수님이 일으키신 기적,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 듣고 믿음이 생겼습니다.

 

둘째 믿음은 말씀 묵상을 통해 성장합니다.

물이 있는 곳에서 식물이 자라듯 말씀이 흐르는 곳에서 믿음이 자라납니다.

말씀의 씨앗은 묵상이라는 물을 통해 성장하게 됩니다. 특히 치유와 관계된 말씀을 묵상해야합니다.

 

셋째, 믿음은 고백을 통해 더욱 강해집니다.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은 입술의 고백입니다. 혈루증으로 고통 받던 여인에게 믿음이 생기는 순간 그녀의 언어가 변화되었습니다.그녀는 믿음으로 예수님을 만지는 순간 치유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언어를 강조 하십니다. 우리가 믿고 기도하면 그대로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넷째, 믿음은 행동을 통해 열매를 맺게 됩니다.

믿음에는 행동이 따라와야 합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행동이 있을 때 결과가 있습니다. 아무리 강한 믿음도 행동하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병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십니다. 예수님은 현상만을 보시고 치유하신 것이 아니라, 근원부터 치료하십니다. 예수님은 병을 치유하실 때 과거를 치유하시며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포로된 자를 자유케 하기 위한 것입니다. 믿음을 강하게 키우십시오.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말씀 따라 생각하고 말씀을 따라 기도하고 행동할 때 우리가 나음을 얻을 것입니다.

 

 

12.세상의 끝은 영원의 시작입니다.

- 죽음의 그늘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요 11:17-44)

 

죽음은 가장 큰 선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거나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지혜를 가르쳐주는 전도서는 죽음에 직면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가르칩니다.지혜를 얻기 원한다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죽음은 고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순간이며 영원한 영생이며 축복의 문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기보다 오히려 죽음을 하나님의 선물로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죽음에 직면해 봄으로 우리의 삶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생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생명을 주시되 풍성히 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우리는 죽음에 어떻게 직면할 때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모습으로 죽을 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게 되고 가장 값진 삶을 살기 위해 가장 값진 일에 시간을 투자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영생뿐만 아니라 죽음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예견하셨고 준비하셨으며, 죽음후의 부활도 확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기다리시며 역설적인 진리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끝으로 생각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애벌레가 세상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때가 나비에게는 세상의 시작”이라는 사실, 이 교훈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도 고난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지체하심을 거절이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때론,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것, 원하는 때에 응답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거절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의 일 자체만을 거절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기 원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거절 하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더 많이 아십니다. 우리가 원하는 때보다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때를 알고 계십니다.

 

둘째,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오히려 더디 응답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을 주기까지 오랫동안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이 더딜수록 더욱 좋은 것을 주신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오랜 기다림을 통해 받은 복이었습니다.셋째, 하나님의 지체하심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은 더욱 크게 드러납니다. 나사로가 병들었을 때 고쳐주신 것보다 죽어 냄새날 때 고쳐주신 것을 통해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습니다. 인간적인 소망이 다 끝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앙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따라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믿음을 보십니다. “보기 때문에 믿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보게 된다."라는 신앙의 역설적인 표현을 기억하십시오. 또한 무엇이 하나님의 기적과 하나님의 은혜를 불러오는지 배워야 합니다. 기도, 순종, 감사, 명령 기도는 믿음 표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13. 풍랑은 목적지로 더 빨리 인도합니다.

- 폭풍우 속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 (행 27:9-26)

 

인생은 목적지를 향해 떠난 항해와 같습니다. 벼랑 끝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마지막 인물로 생각했습니다. 그의 생에는 벼랑 끝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벼랑 끝에서 우리를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인생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보다 더 귀하고 복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보다 놀라운 일은 없습니다.

 

사도행전 27장은 바울이 폭풍우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달리야로 배를 타고 가는 중 혹독한 광풍을 만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인생은 항해입니다. 인생은 목적지를 향해 배를 타고 떠나는 항해와 같습니다. 항해 할 때는 목적지가 중요합니다. 목적지가 없다면 방황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침반이라는 성경과 지도라는 하나님의 사용하시는 방법을 가지고 천국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항해를 해야 합니다.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이 탄 배에도 폭풍우는 찾아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충성된 종이며 충성된 하나님의 사람이었지만, 엄청난 풍랑이 찾아왔습니다. 광풍이 너무 심해 전혀 손을 쓸 수가 없는 형편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원하는 방향대로 가지 못하고 그냥 쫓겨 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 할 수 있는 것은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풍랑이 깊어질 때 사람들은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풍랑을 만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그 고통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을 알게 됩니다. 바울은 무엇보다 그 배에 타고 있던 276명의 생명을 모두 구원하는 일이 가장 소중한 것을 알았습니다. 일부만이 살기위해 구명선을 내려놓을 때 바울은 모든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그것을 포기하도록 설득합니다.우리는 풍랑이 오기 전까지 인생의 우선순위를 잊고 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늘 우선순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이 말씀에서 ‘먼저’라는 이 말을 명심해야 합니다.

 

풍랑이 깊어질 때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풍랑은 고통스럽지만 풍랑이 깊어질 때 하나님의 사람은 빛을 발합니다. 풍랑을 만나기 전에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의 의견을 반대하고 다수가 결정한 것이 처음에는 맞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곧 광풍이 찾아왔습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영원한 천국을 향해 항해하는 영적 순례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거센 풍랑 중에도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십시오. 바울이 경험한 하나님의 은혜는 첫째, 칠흑 같은 밤에 찾아오셔서 위로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둘째, 칠흑 같은 밤에 찾아오셔서 사명을 확인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셋째, 칠흑 같은 밤에 찾아오셔서 평강을 주시는 은혜입니다. 넷째, 칠흑 같은 밤에 찾아오셔서 믿음을 강하게 해 주시는 은혜입니다.

마침내 하나님은 소원의 항구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하나님은 ‘서서히’,그리고 ‘마침내’ 구원해 주십니다. 그 이유는 광풍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광풍 속에서 우리의 믿음이 자라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결론>

부디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쓰신 인물들은 한결같이 벼랑 끝을 통과한 사람들입니다.

 벼랑 끝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입니다. 어떤 문제를 만나더라도 낙심하거나 낙망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다만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을 버리지 않습니다.

당신을 떠나지 않으시고 늘 당신 곁에서 동행하십니다. 부디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붙잡으십시오.

어두운 밤에도 하나님의 빛을 비추던 바울과 같은 사람이 되십시오.

어두움가운데 더욱 빛나는 다이아몬드처럼 당신의 믿음이 어두움 가운데 더욱 빛을 발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