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 및 신앙 서적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영적 리더십 /헨리 블랙커비

by 은총가득 2021. 9. 25.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헨리 블랙커비


베스트셀러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저자 헨리 블랙커비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유형으로 쓴 영적 리더십.

교회든 기업이든 리더로 부름받은 영적 리더들에게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치는 지침서!
하나님이 영적 리더를 키우시고 이끄시고 힘 주시는 방식은 매우 독특하다. 광범위한 리더십 경험을 바탕으로 각계각층 리더들을 위해 사역해 온 헨리 블랙커비는 이 점에 있어 남다른 지혜와 통찰력을 소유하고 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에서 하나님의 임재야말로 그리스도인 최고의 존재적 가치임을 설파한 그의 노력은 이제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가능성을 펼쳐야 할 수많은 그리스도인을 격려하는 데 쏟아지고 있다. 실제적이고 성경적인 원리들로 가득 찬 「영적 리더십」에서 리더들은 현재 자신이 이끌고 있는 사람과 조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할 것이다.
하나님이 의도하신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이여!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 영적 리더십이야말로 유일한 삶의 유형이다. 이제 자신에 대한 회의와 좌절을 멈추고 하나님의 부르신 소명을 따라 올곧게 전진할 일이다.



■ 본서의 특징

· 비전 & 리더십에 대한 두란노의 고심과 헌신이 열매 맺은 15번째 이야기

· 초대형 베스트셀러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의 저자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유형으로 쓴 영적 리더십

· 단순한 교회 조직의 인도자로서 리더가 아닌,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영향력을 펼치기 위한 그리스도인을 위한 지침서

■ 독자 포인트

· 진정한 영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원하는 그리스도인
· 목회 갱신을 꿈꾸며 날마다 자신을 새롭게 성장시키기 원하는 목회자
· 삶의 고비에서 인생의 행방을 새로이 하고자 하는 이들
· 기업체, 정치, 사회, 문화, 각 분야의 리더들저자 : 헨리 T. 블랙커비(Henry T.Blackaby)
선교사로, 교육자로, 목사로, 평생 하나님을 전하고 경험하는 일에 헌신해 온 헨리 블랙커비는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로 꼽힌다. 또 북미의 베스트셀러 기독교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

목차

[제1단원] 하나님의 뜻과 당신의 삶
[제2단원] 하나님을 바라보라
[제3단원] 하나님은 사랑의 관계를 추구하신다 1

[제4단원]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를 추구하신다 2
[제5단원]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1
[제6단원]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2

[제7단원] 믿음의 갈등
[제8단원] 당신의 인생을 하나님께로 조정하라
[제9단원] 순종을 통해 하나님을 경험함

[제10단원] 하나님의 뜻과 교회
[제11단원] 하나님 나라 시민들
[제12단원]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

------------------------------------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는 길? .
(요한복음 5장 17,19-20절)
“에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위 구절을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실지를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그 분의 뜻을 알고 행하신 예수님의 접근 방법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1] 누가 항상 일하고 계십니까?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셨다. 나도 일한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내 주변에서 하나님을 일하신다.

[2] 아들이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됩니까 ?
<나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수 없다.>
아들이 혼자 할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3] 아들은 무엇을 합니까?
<나는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주시하여 본다. 나는 아버지께서 이미 행하고 계신일을 보고 행한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행하신다. 하나님을 보이지 않지만 예수님은 보이게 일한다.


[4] 아버지는 왜 아들에게 그가 하시는 일을 보여주십니까?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사랑하신다. 아버지께서는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신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가 하시는 일을 왜 보여주는가?
첫번째 이유는 하나님이 아들인 그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면 당신의 하시는 일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 너무 막연하게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았나? 회개해야 합니다. 활을 쏘려면 무엇을 씁니까? 몸에 있는 화살을 쏠것입니다. 화살을 쏘기위해 화살을 어디에 두겠습니까? 오른손 가까이에 둘것입니다. 식탁에서 물컵을 달라고 누구에게 부탁합니까?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부탁할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하기위해 누구에게 부탁할까요? 하나님이 가장 가까이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평소에 교제를 많이 한자를 쓰십니다.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을 쓰지않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깜짝 놀라게 하시려고 보여주십니다. surprise가 아니라 amazing한것입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시려고 더 큰일을 보여주었습니다.

[5]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일곱가지 실체?
1 < 창조이래 지금도 내 주변에서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

2< 하나님은 당신과 실질적이고 개인적인,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를 추구 하십니다.>
무엇보다도 관계가 중요합니다. 왜 예수님에게 그에 일을 보여주었나? 사랑이 개입되어, 사랑의 관계이므로 안보여주고는 못 베겼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보여주지 않으면 못 봅니다. 하나님의 비밀의 베일을 벗기는 것<숨겼던 불을 보여준것 = reval‎!>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사랑함으로 주십니다.

3 < 하나님은 당신이 그 분의 일에 참여하도록 당신을 초청하십니다.>

4 < 하나님은 자신과 그의 목적들과 그의 길들을 보여주기 위하여 , 성령님에 의해 성경, 기도, 환경과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문을 열어 주십니다. 구체적으로 일하신다. 나에 경우 미국문을 닫고 한국 문을 열어 주셨다. 내주변에 상황을 영적으로 해석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수 있습니다. 자기고집,집념을 가지고 있으면 안보입니다. 인간은 소리를 선택해서 들을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듣기 싫은 소리는 안듣습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였을때 모세가 아멘하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5 하나님의 부르심은 항상 당신을 믿음의 갈등으로 몰아넣고, 결단과 그에 따른 행동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항상 갈등이 따라 옵니다. 나에 왕국을 세울것인가? 내가 왕권을 갖고 왕노릇 하려는 자의식때문에 투쟁이 벌어집니다. 반면 하나님의 왕국을 세울것인가? 하나님에게 왕권을 내주는 피조물의 입장이 되는가? 하는 갈등이 생깁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니동산에서 왜 핏땀흘리는 기도를 했겠습니까? 자기와의 싸움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데 십자가에서 벌거벗긴체로 일주일간 수치를 감당할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천사를 보내 수중을 들었습니다. 그때 천사를 통해 깨닫는 것입니다.

6 당신은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당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조정해야 합니다.

7 당신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서 그 분의 일을 성취시킴으로 말미암아, 당신은 경험으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조종을 잘하면 순종의 결과가 옵니다. 순종하는 마음이 없으면 응답을 못받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그런 사람에게는 분명이 응답안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리아같이 주의 게집종이오니 말씀이 내 안에서 이루어 지나이다. 완전이 주권을 하나님에게 양보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사건이 되어 나오는 장소를 들이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순종했기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품는 체험을 하였고 이것은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도 이런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6] 경험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 (p93)
당신이 개인적으로 경험한 하나님을 표현한것들에 대해 말해보세요? 당신은 어떻게 하나님을 개인적이고 친밀하게 알게 됩니까? 다음의 이름, 칭호, 표현들을 읽어 보십시요. 당신이 개인적으로 경험한 하나님을 표현한 것들에 동그라미를 치십시오.
나의 보인 (욥16:19) ,생명의 떡(요6:35),위로자(렘8:18),나의 의지(시71:5),기묘자, 모사(사9:6) ,과부의 재판장(시68:5),내 구원의 능력(시140:7),충신과 진실(계19:11),우리 아버지(사64:8) ,소멸하는 불(신4:24),견고한 기초돌(사28:16) ,나의 친구(욥16:20),전능한 하나님(창17:1),모든 위로의 하나님(고후1:3),나를 위하여 보수 하시는 하나님(시18:47),나의 구원의 하나님(시51:14),인도 하시는 하나님 (시48:14),교회의 머리(에베소서 5:23),나의 은신처(시32:17),내가운데 거하시는 거록한자(호11:9), 나의 소망(시17:5),의로우신 재판장(디모후4:8), 생명의빛(요8:12), 추수하는 주인(마9:38), 지극히 거룩한자(단9:24), 우리의 화평(엡2:14), 평강의 왕(사9:6), 피난처(시46:1), 나의구원(출15:2), 나의 구주(샤42:5), 선한 목자(요10:11), 선한 선생님 (막10:17)...

[7] 다양한 하나님을 체험?
우리는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난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졌다. 기둥으로, 벽으로, 다양하게 느낀다. 이것이 조합되어 전체를 아는것처럼 하나님을 피조물이 전체적으로 알수없다. 코기리를 만지는것처럼 부분적으로 알아 나간다.
위로자, 구원자, 인도자, 거룩한자, 여호와이레.... 이러한 이름들은 하나님이 자기를 드러내는 역사를 통해 나온 이름들이다. 창세기(22:1-18) 아브라함은 어떤 하나님을 체험을 했나? 여호와이레 즉 우리를 미리 준비해 주시는 하나님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마음에들어 관계를 갖고 아브라함을 뽐아 초청 하였다. 가는곳 마다 하나님이 말씀 하시고 최대의 하나님을 체험하는 케이스가 되었다. 그러나 “이삭을 바쳐라” 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때그는 엄청난 갈등을 갖았다. 갈등을 믿음으로 극복하지 못하면 꽝이다. 여호와 이레는 없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할때 하나님을 체험할 수있다. 여호와 라파 = 치유하시는 하나님 , 인도하시는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문을 닫고 여시는 하나님 등... 다양한 하나님을 체험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아는것은 지적호기심을 체험하는 것이 아님니다.매일 매일 꾸준이 단계적으로 발전을 해야합니다. 늘 기도하는 영으로 채워집니다. 대화하는 것처럼 기도가 됩니다. 그러면 영적 상태가 안정적으로 되므로 수준있는 신앙 생할을 할수 있읍니다. 신앙 생할에는 점프가 없읍니다.

[8] 평신도 훈련 과정을 위한 세가지 할일?
1 교제 읽기-P40까지 하루에 한과씩 읽는다,(12-19P)하루 분이다. 한단원을 공부하기전에는 서론을 꼭 읽어본다.

2. 경건일기(QT)-가장좋은 시간에 QT를 매일 한번씩 한다.항상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해라, QT는 교제를 공부하다가 그중에서 하나 체택한다. 100P 짜리 스프링 노트에 한주에 한 성경 구절을 공부한다. 교제에서 자기에게 필요한 요절이 나온다, 그때 그본문에 대해 기도로 말씀을 연구해야한다.<하나님 여기서 당싱의 메세지를 주십시요>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필요하다. (QT)노트에는 오늘 내가 받은 말씀과 결단 그리고 기도문이 적혀 있어야 한다. 반원을 위해서 중보기도를 해야한다. 5절이상 넘어 가면 안된다. 잚은 절수, 한페라그라프를 정해서 읽는다. 예를들어 <창세기12:1-5> 이때는 9절까지의 ◎ 한페라그라프를 다읽고 한절(한센덴스)을 잡아서 깊이 묵상을 한다. 톰슨바이블, 현대인의 말씀, 새번역, 공동번역 RSB Good News Bible, NLB,어렵지 않은 성경들을 참고해라.

3. 성경구절 암기- 성경 구절을 한주, 한단원에 하나씩 암기한다. 12주 과정을 걷이면서 12개 성구를 외우는데, 한요절 한요절씩을 오려서 인덱스 카드에 붙여라, 외우는 요령은 이해로 외워야 한다. 성구 암송을 하고 수업을 시작 한다. 1)색인카드에 성구와 참고 사항을 쓰십시오. 2) 문맥가운데서 이해하려고 하십시오. 예를 들어 요한복음 15;5을 암송할 거라면 당신은 요한복음 15-17을 읽어 성구가 의미하는 바를 이해 하려고 애쓰십시오 4)한번에 한구절씩 외우는 법을 배우십시오. 각 성구를 의미를 의미이있는 작은 구절로 나누십시오 처음의 구절을 단어별로 암기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그리고 나서 처음 것을 두번째 구절과 연결하십시오. 성구 전체를 암송할 수 있을때까지 계속하십시오. 5) 다른 사람에게 반복해서 말하십시오 그리고 당신이 얼마나 능숙하게 했는지를 물어 보십시오 6) 암송한 성구를 정기적으로 복습하십시오 첫주간에는 카드를 지갑이나 호주머니에 가지고 다니십시오. 매일 짜투라 시간마다 꺼내 여러번 복습하십시오 예를들어 차를 기다리는 시간, 출근시간, 커피를 마시는 시간 혹은 점심시간등의 짜두리 시간 말입니다, 적! 어도 처음 6주 동안은 성구를 매일 복습하십시오. 그다음 6주 동안은 매주마다 그리고 그다음은 매달 복습하십시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차훈목사

[1째날]하나님을 경험하는삶1
출에굽기4;10-17, 찬송 188장 , 99년 4,28 (수) 차훈목사

(기도) 은혜와 사랑의 하나님, 죽을 수 밖에 없는 저희들을 대신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고, 부활을 영광을 통해 저희 죄를 씻어 주시고 성도의 반열에 앉게 하시어 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우리의 뜻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우리의 심령의 문을 열어 우리 삶을 변화 시키시고 힘을 얻는 시간이 되게 하소서. 특별한 사명을 주시었으나 저희가 그일을 잘 감당하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되게 하시고, 우리 심령에 학생들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옵소서.

<1> 하나님을 만나는 일곱가지 실체
기독교는 관념이나 이론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이다. 믿는다고는 하지만 진실로 하나님을 구체적으로 체험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일곱가지 실체가 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일-->  광체--> 초청-->  소명 주심-->  하나님의 말씀하심-->  믿음의 갈등-->  순종.
하나님을 체험하지 않은 신앙은 약해서 남에게 전하지도 못한다. 자기신앙을 켠츄럴하지도 못한다. 체험을 신비함으로 생각하는 분도 있습니다. 성령, 은사 체험을 신비로만 생각하기도 합니다. 7단계의 모세의 삶으로 예로 설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심은 과정을 거치십니다.

[1] 하나님의 일?
 하나님은 옛날도 현대도 오늘도 일합니다. 이것이 구속사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근처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세의 주위에서 일하고 계셨다. 만나를 먹고 불기둥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은 출애급기 23;25에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들을 살리신다는 언약을 기억하사 모세를 통해 안정된 삶을 살때 애굽의 학정에서 부르짖는 이스라엘 자손들의 탄식을 듣고 계셨고 모세를 보내 구체적으로 일하고 계셨다.

[2] 아름다운 관계 형성?
 하나님은 혼자 일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동역자로 쓰신다. 관계를 요구하신다. 실질적 구체적인 관계를 설정하신다. 예수님도 12제자와 같이 3년간 같이 생활하셨다. 그가 내안에 내가 그안에 있는 사랑의 관계이다. 모세를 3년간 광야에서 하나님과 1;1관계로서 아름다운 관계를 만들었다.
 하나님은 모세와 계속적인 관계를 갖고 계신다 (출24;12,15,16,18) 40일 여야를 구름 속에서 하나님과 1;1 관계를 유지하며 그와 하나님과 교제하셨다. 깊이 교제하는 관계가 필요하다. 의시적으로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인격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나와 함께 하시는 아버지라고 느끼십니까? 거룩하고 높은데 앉아계신 가까이하기에 어려운 존재로 느낍니까?

[3]초청
 그의 사역에 우리를 동참시킨다.
먼곳에서 나와 친분관계가 없는 사람에게 일을 시키겠는가?친분관계가 있는 분을 쓰겠는가? 하나님도 친분관계가 있는 분을 먼곳으로 불러 쓰신다.(출3;8,10) 인격적인 하나님은 억지로 하시지 않는다. 자원해서 초청하시는 하나님은 너가 나와 함께 일하자라고 부르십니다. 너는 이일에 나와 함께 일할 동역자이다 라고 말입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초청이 없다면 깊은 관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에 동참하는 일은 가장 아름다운 일입니다.

[4] 소명주심
 소명을 주신다. 체험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출애급기3;2-8) (2절)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보니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3절)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4절)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 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5절)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말라 너의 선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밭에서 신을 벗으라 (6절)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7절)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내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우고를 알고 (8절)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들을 그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햇족속, 아모라 족속, 브리스족속, 히위족? ? 어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러 하노라.

[5]하나님의 말씀하심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성령, 기도, 환경의 상황 속에서 그의 말씀을 듣는다.
 하나님의 초청에 응답한 사람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비젼을 보고, 계획을 맡기신다. 하나님이 종들을 사용할때 이상과 꿈과 말씀을 주시어 그계획을 알게하신다. 직접 대면 하셔서 말씀하신다.

[6] 믿음의 갈등?
믿음의 갈등이온다. 그초청이 뿌리채 흔들린다. 아프리카에 가서 사역을 하라며 자기 삶을 흔들때 갈등이 생긴다. 초청을 따르자니 내삶이 흔들리며 갈등이 생긴다.

(출애급기 3;11절)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12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후에 너희가 이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13절)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14절)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4장;1절)모세가 대답하여 가로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여 내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10절) 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여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13절) 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하나님이 부르시나 모세를 믿음의 갈등으로 몰아넣는다... 모세는 저는 갈 수 없습니다. 저는 더이상 갈 수 없습니다라고 하나님이 그에게 구세주 사역을 주고 비젼을 보여주지만 나가지 못하고 주저 앉는다. 갈등을 극복 하는 것이 믿음이다. 그초청에 아멘하고 하나님 앞에 헌신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헌신자만이 하나님을 체험 할 수 있다. 자기를 부수고 깨는 자만이 하나님을 체험할 수있다.

[7]순종.
그초청에 긍정적으로 응답하는자=순종할때 그를 사용하시며 나의 하나님으로 구체적으로 체험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했다. 그의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조정했다.

(출애급기4장) (19절)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생명을 찾던자가 다 죽었느니라 (20절) 모세가 그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하나님이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양틀을 처벌하고 아내와 자식을 데리고 에굽으로 돌아가는 결단을 하였다. 모세가 하나님께 순종하자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그분의 일을 성취시킴으로 그는 경험으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출애급기;14장) (15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16절)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17절)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강팍케 할 것인즉 그들이 그뒤를 따라 들어갈것이라 내가 바로와 그모든 군대와 그병거와 마병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리니 (21절) 모세가 바다위로 손을 내어민대 여호와께서 큰 동풍으로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땅이 된지라. (22절) 이스라엘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되니 (23절)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병마들이 다 그뒤를 쫓아 바다 가운데로 들어 오는 지라 (26절)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손을 바다위로 내어밀어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병거들과 마변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시니 (27절)모세가 곧 손을 바다위로 내어밀매 새벽에 미쳐 바다의 그세력이 회복된지라 애굽 사람들이 물을 거스려 도망하나 여호와께서 애굽사람들을 바다 가운데 엎으시니 (29절)그러나 이스? 璨?자손은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였고 물이 좌우에 벽이 되었었더라. (31절)이스라엘이 여호와에게 애굽 사람들에게 베푸신 큰일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종 모세를 믿었더라.

 하나님을 만나면 불기둥, 생수, 불기둥,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신다. 하나님과 관계가 형성되 초청을 받게 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고 하나님의 말씀하심을 듣고, 갈등하다가 초청에 순종하게됨으로써 하나님의 큰 사랑을 경험하게 된다. 신앙은 관념이 아니라 결단이다. 나를 던지는 헌신이 필요하다. 그순간에 하나님이 자신을 드러내며 체험하게 하신다. 모세와 같이 삶을 던저 하나님을 체험하는 자가 되자.

 (기도) 하나님 우리를 초청하실때 귀를 열어 듣게 하시고 왜 이곳에 나를 보냈는가를 알게 하시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초청하실때 생기는 갈등을 믿음으로 극복하여 하나님을 체험하는 복을 내려 주소서!

[1째날] 하나님을 경험하는삶2

(입례송) 감사하라 내영혼아 네속에 있는 자들아 늘 감사하라!
(예배의 말씀)(요한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요한4;24)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찌니라
(예배의 기원) 위대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인을 찾아 구원하사 하나님을 대신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주시고 성령으로 저희와 함께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땅의 절망과 슬픔, 고내 , 갈등, 외로움, 소외의 자리에 성령이여 가득 임하셔서 평화의 자리가 되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 합니다.아멘!

성경봉독; (출애급기3;1-12)  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양무리를 광야 서편의 양무리를 치더니 그무리를 광야 서편으로 인도하여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매  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보니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그가 보니 떨기 나무에 불이 붙었으나 사라지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가로되 내가 돌이켜 가서 이 큰 광경을 보리라 떨기나무가 어찌하여 타지 아니하는고 하는 동시에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 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가라사대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이리로 가까이 하지말라 너의 선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밭에서 신을 벗으라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모세가 하나님 뵈옵기를 두려워하여 얼굴을 가리우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내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우고를 알고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 뺐그들을 그땅에서 인도하여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햇족속, 아모라 족속, 브리스족속, 히위족속, 어부스 족속의 지방에 이르러 하노라.  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⑪ 모세가 하나님께 고하되 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⑫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후에 너희가 이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기도송; 성가대) 오주여 내 생활이 언제나 주를 찬양------- 은혜에 길에서 떠날때 주여 날 이끄소서!

(기도) 아버지 하나님 감사드립니다.우리 생활이 언제나 주님을 향해 찬양드리게 하소서! 좋으신 하나님 기쁨으로 임재하심을 믿습니다. 주님말씀 하실때 부족한 종은 뒤에 숨겨 주시고 하나님이 친히 말씀 하시고, 주님이 친히 하시는 말씀의 도전 앞에 아멘하고 응답하게 하소서! 성령께 의지 하오며 예수 이름 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말씀의 선포)
[1] 왜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인가?
기독교는 관념의 종교, 이데오로기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체험의 종교 입니다. 초보신자일때는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해 쉽게 신앙이 흔들리게 됩니다. 신앙의 수준은 귀로만 듣거나 혹은 눈으로 보는 것과 같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수준에 따라 달라집니다. 오늘 본문은 모세라는 인물을 통해 그가 어떻게 하나님을 체험했는지? 또한 어떻게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할뻔 했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모세와 같이 하나님을 체험하는 확고한 신앙을 갖도록 축원 드립니다.

[2] “내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이질문의 문제점?
하나님을 알고저 하면서 우리는 “내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스스로 하곤 합니다. 너무많이 이런 질문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질문에 무슨 문제가 있나?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잘못된 질문은 잘못된 대답을 얻습니다. 이질문은 잘못된 질문 입니다. 그러므로 잘못된 대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지금 여기서 일하시고 계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를 질문해야합니다. 내인생이 중요한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위한 나의 존재를 물어야 합니다. 나를 위한 하나님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 지금 내가 여기있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합니다. “제게 이런 소원이 있습니다. 이계획, 이문제를 성취하기 위해서 힘주시고 은혜 주셔서 나를 도와 조소서?”라고 기도하는 자는 잘 믿는 것 같지만 자기 행복, 자기성취를 위해 하나님을 도구로 절락 시키는 것입니다.

[3]죄란 무엇인가?
죄란 인간이 자신을 창조하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중심에서 벗어나 자기 중심으로 갈때 그것이 죄의 본질 입니다. 내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내 계획을 들어 주소서? 와 같은 기도는 아담의 후예들에게서 나오는 죄된 자세 입니다. 내주변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알아야 합니다.

[4]왜 하나님이 여기서 역사하는가에 관심을 가져야하나?
요한5;17 에수님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예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에수님이 베데스다의 못가에 가서 38년된 병자를 만나고 계십니다.몸도 병들고 마음도 병들고 “그 누구하나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다”라고 불평과 불만에 가득찬 병자에게 예수님은 말씀 하십니다 “내가 낳기를 원하냐?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주님의 놀라운 선포가 있자 38년된 병자가 자기 힘으로 걸어가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안식일에 일어났기에 유대인들이 그를 안식일에 일하는 자라고 에수를 공격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그에게 뭐라고 하는 지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여기서 역사하는가?에만 관심을 갖고 계셨습니다. 내아버지가 여기서 일하니 나도 일한다 그날이 무슨날이건 어떤 사람이 보건 상관 없이 예수님은 “아버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고 따라 일했다. 19절에 보면 “아버지가 행하는데로 아들도 행한다”라고 말씀 하십니다. 자신의 상황과 형편에 맞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아버지 하시는 일에 관심을 갖어야 하며 아버지에 호흡을 맞추며 살아야 ! 합니다.

[5] 왜 하나님의 일을 보고 따라하야하나?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자가 문제를 일으킵니다. 제멋에 겨워 일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보고 따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일하는 목적, 과정, 방법이 자기에게 있는 사람은 육적인 그리스도인입니다. 교회일, 신앙일, 예배인도, 말씀전도가 자기중심적이 되면 하나님 앞에 영광이 되지않습니다. 이런 분은 잘해도 문제이고 잘못해도 문제 입니다. 잘할 수록 문제가 더 있습니다. 잘할때는 남이 알아 주지 않으면 스스로 불만이 생기고, 일이 되지 않을때는 열등감에 빠져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교회일이 하나님을 위한다는 신앙적 명목의 일일지라도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따라 일하지 않는다면 좋은 사역이 될 수 없습니다. 내주변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보고 따라 일해야 합니다.

[6] 모세가 자기 중심적일때 어떻게 되었나?
모세도 자기 중심적인 인물이었다고 출애급기 2장11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장성해서 스스로 생각해서 나도 히브리인을 대표해서 일할만 하다고 생각하며 자기형제들에게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서 거사를 하리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은 보지 않고 자기 생각되로 자위적인 행동으로 일을 저질렀을 때 자기 생각되로 되지않고 애굽을 탈출해야하는 존재가 되고 희브리인은 더희망과 소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7] 모세가 부르짖었을때 어떻게 되었나?
출애급기2장11절에서는 모세가 일을 먼저 저질렀으나, 출애급기2장23절에서는, 모세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일하신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잘보고 일했다면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시간표를 보지 않고 자기 시간표되로 하면 하나님께 빛이 되지 못한다.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 곁에서 모세 곁에서 일하고 계셨다. 하나님이 언제나 계셨으나 모세는 보지 못했다. 3장에서 하나님은 바짝 모세에게 달라붙어 그 뜻과 목적을 들려 주시고 시내산에서 모세 앞에 떨기 나무 불꽃속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 온다. 모세야! 모세야! 가까이 오지 말고 네발의 신을 벗어라.하시며 하나님의 계획을 소상히 일러주신다. 하나님을 발견함으로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되고 왜 나를 이땅에 두섰는지 깨닫게 됩니다.

[8]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아야 하는 이유?
여러분 주변에서 가까이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고 살아가십니까? 하나님이 역사하는 그일을 바라보지 않고 내능력과 자기 중심적으로 일하고 있다면 잠깐 일을 중단 하십시요. 왜냐하면 아무소용없기 때문입니다. 내민족, 내학원, 내교회, 내주변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이땅의 역사에서 무슨일을 하시는지 알게 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아야 우리 목적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9] 하나님이 지금 전세계에서 하시는 놀라운 일?
20세기말 전세계에 하나님이 놀라운 일을 하고 계십니다. 불과 몇달 안되는 전세계에 놀라운 일을 하십니다. 놀랍게도 확산의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습니다.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전세계적으로 이루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이 들어 갈 수 없는 소련, 중국에도, 태국에도, 남미에도, 브라질에도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더이상 소망이 없었던 아프리카에도 놀라운 역사가 일어 납니다. 아프리카에는 2Km가 넘는 대형교회가 생겼습니다. 천장이 없고 벽만 있는 교회에 60만명의 교인이 모여 하나님 앞에 열정적으로 찬양과 에배를 2시간에서 10시간을 태양볕 밑에서 에배를 드립니다. 21세기가 시작되는 이 시점에서 하나님은 초대교회때 보다 더 놀라운 일을 하고 계십니다. 주여 저희들을 놀라운 성령의 역사안에 있게 하소서?

[10] 이땅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
이민족에게 어떻게 하나님이 역사 하실까요?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이역사에 통일을 주셔서 전세게에 복음을 전파하는 민족이 되게하심을 확신합니다. 우리백성이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40년을 방황하게 한 것처럼 제2의 625가 올 수도 있습니다. 외신들은 한반도가 코소보사테 이후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많은 나라로 보고 있기는 하지만 이땅의 미래는 전적으로 크리스천의 자세에 달려있다. 이것을 보지 않으면 영적 맹인 입니다. 눈을 뜨고 하나님이 우리 주변에서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학원에서 이교회에서 어떻게 일하시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11]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이학원이 이교회가 과연 쓰입 받을 만한 곳입니까? 하나님께서 교문 밖에서 쓰레기를 쓸고 계신 모습을 보았습니다. 겉은 멀정하지만 속이 썩은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참다운 신앙을 먼저 보일 선생이 도박에 물들어 위화감과 불신감을 갖게 만들고 음란한 영이 있어 이미 하나님께서 매를 들었어도 그매의 의미를 알지 못하고 놀음에 술에 음란한 주색잡기에 삶을 낭비하면서도 부끄러운줄 모르는 천념피같은 사람도 잇습니다. 하나님이 빗자루로 쓸어 버리길 원하십니다. 여우같은 악한 사람이 이가운데 있음에도 그것을 제압할 힘이 없습니다. 도덕적, 영적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앞에 바르게 돌아와야 합니다. 회개와 갱신이 없으면 축복이 없는데도 남의 애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애기 입니다. 은혜를 사모하기 전에 있는 모습을 하나님 앞에 내놓고 눈물로 치유를 기다리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야만 학원을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내백성으로 돌아오게 하라. 심판의 때가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21세기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기 위해 영적으로 깨어 기도하는 준비를 해야하고 지난 과거 10년을 반성하고 21세기를 위한 새! 출발을 하기전에 회개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강력한 요청을 받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동참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를 아는 일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한다면 사명 즉 하나님 일에로의 초청을 받아야 합니다.

[12]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출애급기3장6-9-10절에는 하나님의 계획을 모세에게 보여 주십니다. 10절에 모세를 구체적으로 초청하십니다. ‘네가 나의 계획을 설명해준 너를 바로에게 보낸다 내백성을 인도하게 하라”내일을 하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비젼을 보는 사람은 많으나 하나님의 일을 듣고 보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이루기 위해 초청할때 응답하는 사람은 적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을 함으로서 내몸소 하나님을 겪는 것이다. 이제부터는 내가 너의 삶을 보장할때니 이스라엘 백성을 구해서 이산에서 예배하게 하라. 비젼을 보았다면 초청 받은 자입니다. 아멘으로 응답하십시요. 모세가 갈등하며 할수 없습니다라고 하나 하나님이 친히 나타나 내가 네게 힘을 주고 네가 너와 함께 하리라. 모세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바울을 무너뜨린 것을 보았습니다. 바다물을 둘로 가르는 하나님의 일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구체적인 역사함을 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의 사명에 구체적으로 응답하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은 바람 부는데로 떠돌아 다니며 움직이는 신앙생활 밖에 하지 못합니다. 너희는 기? 되構?내입을 넓히면 채우리라. 이자리에서 나와 부르짖어 기도하세요?

[13] 21세기에 일어나는 놀라운 성령의 역사안에 있기 위해서는 ?
21세기를 준비하기 위해 우리를 만들어 가고 채워 감을 체험하십시요. 한국에서 일어난 1907년의 부흥은 그들이 기대 한 것보다 훨씬 놀라운 부흥을 경험햇습니다. 21세기는 세계적으로 성령의 역사가 바람처럼 불어오고 있습니다, 전세계 내주변에서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초청하는 일에 아멘하고 응답하십시요? 하나님을 체험하고 확고한 삶을 사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면서 이말씀을 드렸습니다.

(기도) 아버지 하나님 이시대 하나님의 놀아운 빛을 주시어 저희 영을 일으켜 전세계 역사 이나라 이학원, 이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시고 그일에 하나님이 부를때 아멘하고 응답할때 하나님이 힘이 되ㅇ시어 도와 주시어 하나님 앞에 크게 쓰임 받는 행복한 자가 되게 복 내려 주소서 에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옵나이다, 아멘!


하나님을 경험하는삶2

[14] 참 믿음이란?
히브리서 11장2-23-27절에 모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27절에는 에굽을 떠나 믿음으로 저희가 홍해를 건넜으나 모세의 믿음도 처음에는 자기 환경에 사로 잡히는 믿음이었다. 못한다!라고 불순종하는 것도 자기에 대한 믿음을 갖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하나님의 초청 보다 환경을 믿는 것이었다. 참믿음은 내상태 환경, 조건을 인정하거나 마음에 두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모세도 하나님의 초청에 처음에는 갈등했으나 믿음으로 자기 심령의 갈등을 극복하고 자기 삶을 하나님 뜻에 맞게 행동으로 조정해 나갔다.
나의 삶의 우선 순위나 스타일이 이렇습니다라고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프로젝트에 내삶을 던지며 바꾸는 것입니다. 20절에 보면 모세와 그아내와 자들을 나귀에 태우고 가는데 지팡이를 드니 가라지리라-이것은 믿음의 결과이다. 40년간 아들도 낳고 살아온 삶의 터전을 80살이 넘어 바꾸는 일은 모세에게는 어려웠고 고정틀에 잡혔다. 그러나 받들기 힘든 하나님 말씀에 모든 삶을 정리하고 이제까지 쌓아온 인생의 모든 영역을 두고 오직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애굽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하나님 말씀에 나의 삶을 조정하는 구체적인 예입니다.

[15] 말씀에 응답하는 것?
세계평화를 위해, 통일 조국을 위해, 학원선교를 위해, 세계성령의 역사 가운데 여러분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하라고 하든지 자신의 삶을 바굴 용기가 있습니까? 현실적으로 하나님이 지금 사는 집을 이사해라! 지금 직장을 그만두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게씁니까?하나님이 도전 할때 아브라함이 응답하듯이 보따리를 싸고 떠나겟습니까? 이것이 말씀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너를 통해 구세주를 낳게하겠다!”라고 햇을때 마리아는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께 맡기는 삶을 살았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요청하는대로 내삶을 조정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요청하십시요. 대부분 사람들은 “나는 평범한 사람인데 성령을 받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가? 내삶을 구조조정하면서 그런 헌신을 할 필요가 있는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나오는 사람이 오늘날에도 똑같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령행렬에 주인공이 되시고 싶지 않으십니까? 모세와 같이 자기삶을 순종 시키고 조정하는 아름다운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16] 온전히 헌신하는 한사람이 나타나면?
(사례) 신발 외판원이던 무디 뮐러는 짐승을 위한 건초더미에 모여 앉아, “온전히 헌신된 한사람이 나타나면 주님이 그와 일하겠다”라는 말씀을 듣고 무디는 “그래 아직 한사람이 없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라고 결심했고 “주님 앞에 쓰임 받으면 나도 그렇게 될수 있으리라.고 다짐했다. 주님은 교육수준이 높아져야 한다고 하지 않았다 단지 한사람이 필요하다고 했고 그 한사람으로 인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현대사에 가장 위대한 전도사가 되었다. 하물며 하나님이 쓰시려면 재능을 많이 가진 여러분이 응답하시면 크게 쓰일 여러분이 먹다 살다 죽다로 끝나면 가련하지 않은가? 가감하게 순종해 보십시요? 어떤일이 일어나는가? 여러분이 얼마나 멋있는 삶이 되겠는가? 자기 삶을 웅겨지고 살려는 아집 때문에 하나님의 도전을 놓친다면 매우 안타깝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이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있습니다.

[17] 어떻게 하나님을 알게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게 할 수 있을까요? 무디 뮐러는 성령을 통해 교육기관, 고아원을 세웠으나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정부에 물질을 도와 달라고 구하지 않고 기도로 해결하였다. 고아원을 4개나 운영하면서 한달에 2000명의아이를 키우는 동안에 800만불이라는 어마어마한 돈을 섰다. 그가 죽었을때 800불 밖에 안남았지만 하나님이 그를 쓰신것을 나타냈다.

[18] 그가 하나님 뜻을 알도록 노력한 3가지일?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진지하게 늘 찾았다. ?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말씀을 주지 않을때는 줄때까지 기다리고 앞서가지 않았다. ?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말슴을 줄때 그대로 실천했다. 그가 실수할때는 솔직하지 않았을때이며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았을때이므로 그는 늘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는 관계를 유지했다. 또한 하나님의 일을 참을 성있게 기다리지 않아서 실수 하곤 했다. 성경의 사울도 기다리지 않고 앞서가서 실수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라.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 진다. God keep promise). 주위사람의 의견과 소리을 더 들을때 문제가 됩니다.

[19] 즉각적인 응답을 한 방법?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는 바른관계에 있으면 즉각적으로 응답을 받습니다. 뮐러는 ?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내가 하고자 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뜻이 다를때가 있는데 그때 자신의 마음이 남아있지 않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안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을때 90%성공한 것이라고 합니다. 늘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 자신의 느낌, 감상, 기분에 결과를 맡끼지 않습니까? 철저히 하나님 말씀에 과정을 맡겨야 합니다. ? 성령의 말씀 없이 일을 하지 않는다. 성령은 말씀 있는 대로 인도한다. 환상과 꿈으로 인도를 받으려 하지 말고 말씀으로 인도를 받아라.? 내 주변의 환경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나를 관찰해라 ? 말씀을 보면서 기도해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려는 의도이므로 하나님의 뜻은 그에게 가리우지 않는다. ? 2-3번 확인해 평안이 있으면 정확한 판단을 한 것이다. 이런 뭘러에게 왜 하나님이 뜻을 감추겠는가? 왜 하나님이 도와 주시지 않겠는가? 힘과 능력을 공급하지 않겠읍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 일하고 계시며 하나님은 여러분이 그일에 참여하시길 원하십니다. 우리 가는 길에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해 보십시요?

(기도) 아버지 하나님 모세를 통해 어떻게 하나님을 체험했는지를 알게 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그일을 행하실때 아멘하고 순종하고 내삶을 조정하게 하소서! 하나님이 도와 주시면 가능합니다. 확신으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도록 주의 친구가 되도록 도와 두시고, 은혜가 넘쳐 의미있고 가치있고 행복한 삶이 되게 하소서.


종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

[1] 왜 체질개선을 해야하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삶을 위해서는 체질개선을 해야합니다, 체질개선이란 자신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물질을 조정하는 것입니다, 영, 혼(지정의), 육(의식주), 이세가지의 공급을 밑에서 위로 올라가며 채우는 것이아닙니다, 영적인 공급을 채우면 아래것은 자연히 채워집니다, 은혜는 하나님->천사->인간->동물계(물질+혼)->식물계(물질) 순으로 내려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땅으로 가면 허무해집니다, 모든 사람들의 시간과 물질이 땅을 지향합니다, 과감한 시간의 10일조를 하나님에게 드려야하고, 물질에서 자유로와야 합니다, 물질은 하나님 앞에 드리고 하나님이 물질을 주면 사람이 써야합니다,

[2] 힘있는 기도?
힘있는 기도란 능력기도이다. 하나님 자녀의 권세로서 능력기도를 누구나 사용해야한다.
? 제거하는 능력기도?
“예수이름으로 명하노니! 내몸의 질고를 사라지게 할지어다! 내몸의 질고를 왜 주셨습니까? 그의미를 물어봐야한다. 아픈만큼 아픔의 뜻을 알아야 한다. 고생의 놀라운 의미를 알아야 한다. 고생한 보람이 있게 영적 거둠이 있으면 그값을 치룬 것이다. 성령이여 임하소서! 성령의 바람이 불어 좋치않은 것을 태우소서! 예수이름의 권세로 사탄이 역사치 못하도록 제거하여 주소서! 자신의 몸을 살피고 제거기도로 몸의 약한 부분(악한세포)과 악한 생각의 요소를 몰아내라. 부정적인 것은 소멸될 지어다.
하나님이 주신 권세를 사용해라 안쓰면 손해이다. 가족들에게 사용해라. 하나님의 뜻이 무엇 입니까? 물리칠 것이면 소멸하게 하소서! 자녀에게 안수하고 이아이의 속에 있는 모든 부정적인 것을 나사렛 예수이름으로 소멸 될지어다. 꿈속에서도 성령충만해 역사하옵소서!

[3]채우는 능력기도?
상처받음 마음이 제거명령으로 제거된줄로 믿습니다! “될 것이다. 깨끗해 질 것이다!” 명령기도로 마귀에게 대적해야된다. 제거한 다음에 채워야한다. 성령이여 임하셔서 기름부어 주소서!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의종, 성령의 도구로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로 채워주소서!권능을 주소서! 그리스도의 성령의 충만함을 믿습니다. 진리로 내생각과 마음을 권능으로 사로잡아 주소서! 성령의 9가지 능력; 나는 사라지고 에수의 성품이 얼굴에 흐르게 하소서. 나를 통해 사람들이 예수를 보게 하시고 내 말을 통해서 말씀이 혀끝을 통해 이루어지소서!이다. 주님의 마음을 주소서 주가 내안에서 오신다.

[4] 은사를 받는 능력기도?
은혜(은사)를 받으면 남에게 덕을 끼치게 된다. 모든 은사는 남을 섬기는 것이다. 은사는 자기 유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섬기기 위한 것이다. 신유은사는 성도들이 합심해서 기도하면 병이 낳는다. 내은혜가 내게 족하도다. 감당케하여 주소서 감사함으로 살수있다. 하나님 무슨 뜻입니까? 감당할 힘을 주시든지 아니면 나사렛 예수이름으로 사라질 지어다. 성령안에서 수시로 기도해라! 24시간 기도생활을 해야한다 기도는 간구와 다르다. 은사(능력)를 받아야한다. 지식의 은사를 받기위해서는 보여주소서? 알게 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해라. 지혜의 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찌 지혜를 주소서?라고 기도해라. 창조의은사를 받기 위해서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해달라고 기도해라! 24시간 기도생활을 해라 이것은 간구가 아니다. 보여주소서? 알게하여주소서?지식의 은사를 받는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알게 하소서? 지혜의은사를 받는다.

[5] 무시로 하는 기도?
24시간 성령과 수시로 교제해야합니다, 교제란 성령을 의식하는 삶입니다, 성령은 내속에 내옆에서 애기하며 내머리위에서 능력을 주십니다, 하나님과 의식수준을 맞추며 성령님을 의식하면서 성령님께 묻고 대화하는 것입니다, 세상의식, 내생각이 나를 지배해서는 안됩니다, 영과 혼을 동시에 사용 할 수 있습니다, 이분과 대화할때 무엇을 말하길 원합니까?라고 기도합니다.

[6] 영으로하는 기도?
고린도전서 2장 10절-16절에 보면 하나님의 깊은 곳은 하나님이 알고 인간의 깊은 곳인 무의식세계까지도 영이 아는 것이다, 우리가 영으로서 하나님의 영을 알 수 있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유익합니다, 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14장15절, 무의식까지도 해결 하려면 방언으로 기도하면 속의 것이 풀어져 신앙생활이 진보합니다, 파스칼의 기도가 성령이 깊숙이 터치해 속의 것이 떠오른다., 그속의 주를 보았다. 그것은 표면적 기도(초보적 기도)가 아닙니다, 내면의 것이 터지고 속시원해져서 평안이 나타남, 마음이 깨끗하고 맑을 수록 강하다, 죄를 지으면 목소리가 들어 갑니다,

[7] 하나님을 경험하는 7가지 실체?

<1> 일하심 <하나님은 항상 나의 주위에서 일하고 계신다,>
창조이래 지금도 내안에서, 내주변에서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2> 관계 <하나님은 당신과 실질적이고 개인적인, 지속적인 사랑의 관계를 추구 하십니다.>
무엇보다도 관계가 중요합니다. 예수님 제자들은 예수님과 교제하며 24시간을 살았습니다, 하나님이 초청하신 경우에 그것이 하나님의 초청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신뢰에 따라 판단하게 됩니다, 신뢰가 없다면 결단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관계가 중요합니다, 관계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에 있을때 열매는 저절로 맺어 집니다, (요한복음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큰포도송이가 많이 달린 것을 상상하십시오. 영혼을 살리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요! (요한복음15;9-10)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안에 거하리라> 사랑의 관계는 말씀을 지키는 관계이다. (요한복음15;7)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말이 너희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성령의 불로 내안의 죄를 소멸시켜 주소서!> 관계에서 기도가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관계에서는 말씀(언약)과 기도(영적교제)가 포함되 있습니다, 기도할때 말씀의 응답을 그자리에서 받아라 (영왕기상19장) 영적으로 깨끗하지 않을때, 욕심이 개입되 있을때 기도는 자기암시나 자기 합리화가 되고 만다.

<3> 초청 < 하나님은 당신이 그 분의 일에 참여하도록 당신을 초청하십니다.>
왜 예수님에게 그에 일을 보여주었나? 사랑이 개입되어, 사랑의 관계이므로 안보여주고는 못 베겼습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보여주지 않으면 못 봅니다. 하나님의 비밀의 베일을 벗기는 것 <숨겼던 불을 보여준것 = reval‎!>것을 계시라고 합니다. 계시는 하나님이 사랑함으로 주십니다.

 왜 평범한 사람을 쓰시나?
약한자를 들어 강한 자로 부끄럽게 하시고 강한 자를 쓰면 내능력이다라고 교만해 한다, 누가보더라도 하나님의 작품이다라고 말할 만한 사람을 쓰신다. 내가 준비해서 설교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말씀을 주십니다, 나같은 죄인이 쓰임 받는 행복에 삽니다, 원래 잘하는 사람은 쓰여도 감격이 없습니다,

<4>말씀하심 < 하나님은 자신과 그의 목적들과 그의 길들을 보여주기 위하여 , 성령님에 의해 성경, 기도, 환경과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성령님은 문을 열어 주십니다. 구체적으로 일하신다. 나에 경우 미국문을 닫고 한국 문을 열어 주셨다. 내주변에 상황을 영적으로 해석해야 하나님의 뜻을 알수 있습니다. 자기고집, 집념을 가지고 있으면 안보입니다. 인간은 소리를 선택해서 들을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듣기 싫은 소리는 안듣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경에 기록된 말씀과 그 성경을 재해석해서 선포한 목사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으면 우리 심령안에 울림과 들림이 있습니다, 내가 제사장입니다, 그러나 죄성을 갖고 있는 인간의 양심은 제기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양심은 학습되어지고 개발되어야 합니다,

<5>갈등 <하나님의 부르심은 항상 당신을 믿음의 갈등으로 몰아넣고, 결단과 그에 따른 행동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왜 갈등이 생길까요? 기쁨으로 순종하면 될덴데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였을때 모세가 아멘하고 따르지 않았습니다. 사도바울도 육적자아와 영적자아가 항상 싸운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항상 갈등이 따라 옵니다. 하나님의 왕국을 세울 것인가? 나의 왕국을 세울것인가? 하나님과 내가 왕권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8;12-14>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내가 왕권을 갖고 왕노릇 하려는 자의식 때문에 투쟁이 벌어집니다. 반면 하나님의 왕국을 세울것인가? 하나님에게 왕권을 내주는 피조물의 입장이 되는가? 하는 갈등이 생깁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니동산에서 왜 핏땀흘리는 기도를 했겠습니까? 자기와의 싸움때문입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인데 십자가에서 벌거벗! 긴체로 일주일간 수치를 감당할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천사를 보내 수중을 들었습니다. 그때 천사를 통해 깨닫는 것입니다. 육적자아의 갈망을 이기기 위해서 고행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영으로서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입니다, 환경(유혹하는 것, 사람)을 제거해 주셰요?라고 기도하는 것은 잘못된 기도입니다, 내의식을 높이면, 영적인 자아를 회복하면 상대적으로 환경은 낮아진다, 예)위치먼이라는 선교사가 양자강 옆의 산을 올라가는데 큰바위에 직면하자 어떻게 올라갑니까?라고 묻자 하나님이 바위를 없애라? 양자강을 불리랴?라고 묻습니다, 인간적 생각으로는 없애는 것이 쉬우나 없애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영적자아가 높아지면 장애물은 넘어가는 것입니다, 산넘어에는 또 산이 있습니다, 장애물을 제거하지 않더라도 내가 올라가면 저절로 넘어갑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장애물을 주신 이유는 더큰 믿음을 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유격훈련을 받아야 군인이 되는 것처럼 영성이 강해지려면 훈련이 필요합니다, 장애물을 없애려고 하지 말고 강물을 채우듯이 영적으로 채워야합니다, 긍정적인 생각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 받아서 밀! 어내야합니다, 빛이 오면 어둠이 사라집니다,

<6> 조정 <당신은 하나님의 역사에 참여하기 위해서 당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조정해야 합니다.>
자신을 두드려 변화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위에서 무슨일을 하시면서 동참하라고 하십니다, 내삶을 조정해야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모든 것을 조정되야합니다. 별세신학이란 말이 있듯이 세상과 별세하고 하나님의 뜻에 내인생의 목표를 전환해야합니다, 내삶의 물질과 시간이 조정되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일에 내물질과 시간이 투자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 내 삶의 전부인 시간과 공간을 조정해야합니다,

종이 해야할 두가지? (p26)
 하나님에게 맡기는 것?만들어 지는 것=주권의 이양, 키우고 연단하고 만들어 가는 단계
 하나님이 쓰시는 것? 쓰임 받는 것=토기장 손에 빚어지고 나서 사용되는 단계, 간장을 담든지 된장을 담던지 쓰신다,

<7> 경험 <당신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이 당신을 통해서 그 분의 일을 성취시킴으로 말미암아, 당신은 경험으로 하나님을 알게 됩니다.> 조종을 잘하면 순종의 결과가 옵니다. 순종하는 마음이 없으면 응답을 못받습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그런 사람에게는 분명이 응답 안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마리아같이 <주의 게집종이오니 말씀이 내 안에서 이루어 지나이다.>라고 말해야합니다, 완전이 주권을 하나님에게 양보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사건이 되어 나오는 장소를 들이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순종했기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을 품는 체험을 하였고 이것은 유일한 것이었습니다. 베드로도 이런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험했습니다. 간절한 기도는 언제나 성령체험을 하게되며 감사가 나옵니다, 이것은 별세인 반면 평안이 찾아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할때 여호와 이레를 체험했다, 우리는 능력이 나오면 하나님 일을 하겠다. 라고 하지만 하나님 일은 무슨 자격증 갖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면 능력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7장>에서처럼 믿음은 예수님처럼 제자들이 파도를 보는 것과 다른 관점을 갖? ?것입니다, 육적으로 살면서 육안으로 보는 것은 현상이나 이것은 허상입니다, 현상 이면에 있는 실상을 보는 것입니다, 파도는 현상입니다, 제자들은 현상만 보고 살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주무십니다, 현상에 사로잡히지 않는 분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우주만물을 다스리는 것 즉 실상을 보았습니다, 실상을 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가 넘어서 낳은 이삭을 바칠때 그는 하나님은 100세 이후라도 더한 아들을 준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 중심, 말씀 중심이 되는 것입니다,말씀은 현상에 근거한 약속이 아니라 실상에 근거한 약속입니다, 이 믿음이 있을때 순종할 수 있습니다, 엘리아는 손가락만한 구름 한점와도 큰비로 알아보고 이스라엘 백성을 보고 가라고 지시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의 실상(성령이 일하심)입니다,

 

제2단원 하나님을 바라보라?

<복습문제> 아래 문자를 읽고 O X 로 답하시오?

[1]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를 연구해 보라고 명령하십니다. (O, X)(45쪽)

<1>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
제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해야합니까? 라는 질문은 잘못된 질문입니다. 스스로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 생각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하나님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보겠다고 하다가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주변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어디서 일하고 계신지 찾아서 그분이 하고 계신 일에 동참하십시오.> 하나님은 당신이 일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보려고만 하십시오. 봤으면 이미 부름 받은 것입니다. 못 보는 것은 Calling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려면 당신은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와야 합니다 1) 성경에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도와준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강도 만난 사람을 보고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다 (That is my job!)라고 알아야 합니다. 2)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찾고 있거나 영적인 것에 대해 묻는 것을 보면 당신은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 것을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영적인 것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 ?올 수 없나니> 어떤 분이 고통과 염려 가운데 있어서 나에게 상담을 원할때 그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에게 고통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소망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궁리하고 연구하는 것은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일하는 것을 보고 동참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는 것이 관건입니다. 보아야 동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자기 중심적인 사람과 하나님 중심인 사람의 차이? <43쪽>
① 나를 신뢰함 --> 하나님을 신뢰함 ② 나의 능력에 의존함--> 하나님과 하나님의능력과 채워 주심에 의존함 ③인생의 초점이 나에게 맞취짐--> 하나님과 하나님이 하고 계신 일에 초점을 맞춤 ④ 내 자신과 내가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해 자랑함 --> 자기를 부인함 ⑤ 자기를 세우고 높임 --> 하나님 앞에 겸손함(피조물임을 고백) ⑥ 세상적인 가치를 먼저구함 -->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함 ⑦ 내입장에서 환경을 봄--> 하나님 입장에서 환경을 봄 (하나님의 일을 나타내기 위한 필연적인 일 =은총) ⑧ 이기적이고 평범한 생활-->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 (하나님의 형상 회복=영적 존재)

<3> 아사왕의 2가지 모습? <44쪽>3a,3b
3a> <대하14;9-11: 아사왕이 구스사람 세라와 전투하게 되었을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이름을 의탁하옵고 이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 이시오니 원컨대 사람으로 주를 이기지 못하게 하옵소서”> 3b.>< 대하16장1-3절:유다왕 아사는 이스라엘 왕 바아사의 침략을 두려워하고 잇었습니다, 아사왕은 여호와의 전 곳간과 왕궁 곳간과 금과 은을 다메섹의 아람 왕 벤하닷에게 보내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자기중심적인 것은 인간적으로 보이기에 너무나 당연해 보입니다, 아사왕과 같이 졸지에 자기중심적 생각에 걸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으ㅟ 삶은 날마다 나를 죽이고 하나님에게 순복하는 것을 요구합니다, (요한12;24-25)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의 삶의 초점을 내가 세운 것이 아닌 하나님의 목적에 맞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무언가를 시작하시려고 할때 , 먼저 나타난셔서 말씀하십니다,

<4>하나님 중심의 삶이란?
<요점> ① 하나님 뜻을 알고 행하기 위해서는 나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돌아와야 한다.(학벌 지위 에 대한 열등감이나 우월감을 버리고 주의 종이 되어야한다) ② 나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목적에 내인생의 초점을 맞추어야한다 (하나님이 왜 이곳으로 나를 보냈나? 왜 이런 일을 주셨나? 필연적,선물) ③ 나의 관점에서가 아니라 하나님 관점에서 보아야한다 (나는 중요한 존재=초청받은자) ④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 무엇을 하려는지 보여 주실 때까지 기다려야한다 (미래에 내가 무엇이 되어 하나님 일을 할까를 고민함으로서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돕지 않고 외면하고 그저 힘들게 억지로 하루하루 보내고 있다면 지금 내가 이자리에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⑤ 내주변에서 그분이 하고 있는 일에 동참하는 것이다.

[2]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기도?
<1> 하나님의 계획과 내 계획중 어느것이 중요한가?
① 모든 일을 하나님 방법으로 하라. 하나님께서는 내가 하나님 없이 60년 걸려야 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한 나를 통해 6개월도 채 걸리지 않고 하실수 있다. ② 내가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실 것인지를 이해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보다 중요하다, ③ 우리는 하나님의 종이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시려는지에 따라 우리의 인생을 조정해야한다, ④ 하나님께서 내가 현재 있는 곳에서 무엇을 하실 것인가를 이해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2> 욕심을 갖고 하는 기도는?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내이름으로 기도하면 다 들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의 욕심을 제거하지 않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들어 주시지 않습니다. 무언가 초점을 갖고 기도하나 그것은 자기 암시가 될 수 있습니다. 제거의 기도가 필요하다. 순수하게 하나님의 뜻을 볼 수있도록 유도해야한다. 비판없이 받아들였던 기도에 대한 의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생각하라.

<3> 구복적 기도는 의미가 없는가?
구복적 기도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기도는 자기 동기(욕망)를 가지고 시작하나 기도하게 해서 (영적 교제) 하나님 뜻을 알게 해준다. 영적 교제는 중언부언과 차이가 있다. 주문을 외우듯 주문해 자기 암시적으로 떠올리는게 기도는 아니다, 자기 암시로 자기 의식이 변화되기는 하나. 카네기의 성공철학이나 적극적 사고방식과 같이 인간의 내적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과 다르다.

<4> 기도를 많이 하는게 좋은 가?
기도를 많이 하는 게 좋다. 그러나 예수님은 <니가 뭘아냐?> 라고 묻습니다, 일방적으로 <가장 중요한게 이거다>라고 생각하고 기도하나 하나님은 알아서 더 중요한 것을 주신다, 하나님에게 기회를 주어라 모르니 물으면, 하나님이 대답을 해주신다. 문)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365일 계속 기도해라!와 왜 같은 제목으로 계속 구하냐?라는 말은 서로 상충되지 않나? 아르헨티나에는 기복신앙이 많았다. 토속신앙과 믹서된 카톨릭이므로 미신적인 것이 많아서 중언부언하고 빌고 메달려야 주신다고 생각한 것 같다, 후자는 기도는 대화(커뮤니케이션)인데 왜 자기 말만하고 하나님의 응답은 듣지 않느냐?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는 기도를 많이하면 하나님 의식이 채워져 응답받게 된다는 뜻이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탄식이 하나님께 상달 되었다. 같은 기도가 채워져 수준이 됐을때 하달하신다, 기도하면 응답받을 때가 되면 이루어 주신다, 자기가 자기의식에서 막연한 기도를 많이 하는 사람은 받으려는게 아니라 이성으로 기도하는 것이다, 기도가 가슴으로 내려와야한다. <그사람의 영혼이 잘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다보면 그사람! 이 사랑스러워져 뜨거워진다, 기도를 피상적으로 하던것(자기 뜻, 건성으로 하던 것)에서 하나님의 뜻(진실함)이 결합되어 응답받는다. 의식이 내면 깊은 곳에서 발할때를 하나님이 기다리신다,

<5>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내생각인지 어떻게 아나?
저도 심방 중에 하나님 말씀이 떠올라 말씀을 전할 때가 있습니다. 감이 때로는 틀리지만 믿음으로 사용할 때 하나님이 쓰십니다, 하나님과 초기 관계에서 오는 감은 확실한 것인지 아닌지 불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내속에 있는 허상이 나온 것인지? 하나님의 말씀인 실상이 나온 것인지 구별이 안됩니다, 그러므로 영적 분별력이 생겨야합니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습니다, 몇 번이고 확인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편안한 마음을 지속시켜줄 때 그것은 분명히 하나님이 주신 말씀입니다, 한참 물이 올랐을 때 이거다 하는 것을 전하면 틀림없었습니다.

<6> 자기중심적인 사람의 기도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자기 뜻을 혼동합니다, 자기 욕심에 사로잡힌 자기중심적 사람이 기도하면 기도제목이 하나님 뜻에 맞는가 분별하지 않고 달라고만 합니다, 유아기적 사람입니다, 영적 성장을 위해서는 제거 기도를 해야합니다, 능력 기도를 해야합니다, 기도를 성경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능력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제거기도입니다, 1차적으로 자기의 소욕, 자기의 정욕에 따라 구하는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야고보서4장1-3절>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쫓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쫓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인간적 욕망(Human desire)을 가지고 하나님을 이용하여서는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다. 계속해서 기도하면 악령의 역사를 받는다. 방언의 은사를 달라고 하면 방언이 유익하지 않은데 계속 달라고하면 이상한 방언이 나올 수 있다. 이것이 정욕으로 구하는 것이다.

<7> 제거 기도하는 방법?
제거 기도하는 방법에는 3가지가있습니다, 첫 번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제거하는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나니 사탄은 떠나갈 지어다 Leave Him!> 예수의 이름은 능력이 있습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일으킬 때 <나사렛 예수이름으로 일어나라> 예수의 능력이 나를 통해 나타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예수의 보혈의 피로 씻어 내는 것>입니다. <예수의 보혈의 피로 내속에 있는 알고 모르고 지은 죄, 마음의 상처를 다 씻어 내소서>. 세 번째는 <성령의 불같은 역사>입니다. <성령의 불로 더러운 악한 세포를 태워 주소서> 불이 임하면 소멸시키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심령 가운데 보혈의 피와 성령의 불을 표상 하면서 사용하는 것입니다.

<8> 예수를 영접한 그리스도인에게 악령이 들어 올 수있는가?
성령지배를 받지 않는 육적 그리스도라도 한번 내안에 예수님이 들어오면 예수님이 계신 성전이므로 성전에는 악령이 들어 올 수 없다. 그러나 악령이 틈탈 수 있으나 성전을 장악 할 수는 없습니다. 몸이 병들고 정신적으로 어려울 때 사탄은 틈탄다 그러나 사탄은 크리스천의 영혼을 죽일 수 있는 능력은 없다. 사단은 올무를 씌우며 진리를 헷갈리게 한다. 사단은 여러 가지 이름이 있다. 거짓말을 하는 자. 이간질을 하는 자, 하나님 앞에 이르는 자, 진리를 자꾸 혼동하게 하는 자이다. 우리 정신세계의 표면에서 헷갈리게 하고 틈탈 수 는 있으나 장악할 수는 없다. (하나님 중심의 사고에서 자기중심의 사고로, 세상적인 가치로 나의 선택과 판단을 잘못 내리게 유혹합니다, 끝없이 열등감을 자극하고, 무의식적인 마음의 상처를 끄집어 내고,미래에 대해 염려하게 함으로서 하나님이 내안에 없는 것처럼 멀어지게 하고, 상대방과 비교하게 하고, 상대방을 비판하게하며 계속적으로 선악과를 먹입니다,)

<9> 방언으로 기도하면?
악한 영이 역사하지 않게 되고 내안에 욕심이 없는 순수한 상태가 되면 방언으로 기도하면 무의식적인 것이 치유됩니다, 내적 순환이 이루어집니다, 내적 치유세미나를 위해 Making Peace with Your Past (과거와 화해하는 법)란 책을 쓴 분은 목사인데 자기 속에 악순환 되는 나쁜 것이 있다는 것을 느꼈고, 깊은 기도 중에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에서 무의식적인 잘못된 상처가 깊다는 것을 발견하고 과거와 화해한다 평화가 이루어지고 내적 치유가 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내적 치유를 심리학적으로 할 수도 있으나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이 치유하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성령 체험하면 왠지 모를 허전함이 가라앉고 해결되고 한없이 울게 되는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옛날에 쌓여있고 채워지지 않은 것, 일그러진 것, 잠재된 것, 대인관계에서 나타난 열등감등이 해결되어야 합니다. 성령이 역사해 깊은 곳을 어루만져서 치유가 됩니다. 큰사람이 애처럼 울게될 때, 어릴 때 상처가 풀려서 우는 것입니다. 은혜 받을 때, 울때 회한 기쁨, 감사가 있어서 복합적인 눈물이 납니다, 한번에 치유되는 게 아닙니다. 반복되어서 의식! 과 무의식에 있던 것이 제거되는 것입니다. 방언기도는 무의식까지 드러나므로 끝이 안난다. 방언기도는 코드이다, 우리 언어도 코드이다, 우리끼리 통하므로 코드가 통일 되어야 한다. 방언은 영적코드이므로 어떻게 소리가 나오는가가 문제가 아니다, 방언은 혀가 꼬여 성령께 맡기는 것이다, 성령이 하나님께 보낸다(랄랄랄라-----) 어떤 소리가 나오든지 상관 없다. 모든 은사가 뜻을 세우는 것과 관계가 있다. 사랑도 덕이다, 상대방 중심이 사랑이다,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까? 이상한 소리때문에 다른이가 오해할 수도 있으므로 그때는 속으로 기도할 수 있어야한다, <고린도전서14장23절><교회가---- 방언이 덕이 되지 않을때는 안할 수도 있고 속으로 할 수도 있다.><고 전 14장4절><덕을 세우기 위해 하라> 포커스가 중요하다 우리 의식이 하나님과 닫아서 <주여!> <아버지!> 하면 이것도 방언이다, 방언은 혼자 잇을때 영적으로 다운되어 있을때 해라.

<10>직관에 확신을 가지려면?
성령이 역사하면 영적으로 맑아져서 생활이 단순해지고 직관에 확신이 생깁니다. 영적 훈련을 많이 하면 그대로 나타나 자신의 직관을 그대로 쓸 수있습니다, 영력은 올라갔다 내려왔다 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잘 이끌어 가야합니다, 수도원에서 살면 영적인 것 방해하는 것이 끊어 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속적인 곳에서 삶으로 영적으로 안좋은 사람을 만나면 내가 깨끗한 것이 유지되기 어럽습니다, 그러므로 영성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합니다, 그러므로 아침 저녁때 마다 비우고 채우는 일을 날마다 해야합니다, 자면서도 능력기도 제거기도를 해야합니다, 방언기도로 무의식적인 것도 제거해야합니다, 강한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기도중에 잡생각이 많이 나오는 사람은 제거를 많이 해야합니다,

<11> 기도의 응답은 언제받나?
기도는 간구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간구는 확신이 주어졌을때 간구해야합니다, 특히 질문기도를 많이 해야합니다. 응답을 1주일후에 받으려하지 마십시요. 응답은 즉시 즉시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가 민족의 아비가 되겠다> 라고 게시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말씀해 주셨고 몇년후에 이루어졌습니다, 바울도 <내가 너를 이방인의 사도로 쓴다>라는 말을 일찍 들었으나 몇년후에 이루어졌다. 말씀의 응답은 그자리에서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얘기하려는데 기도를 Close하면 안됩니다.

<12>통성기도와 묵상기도는 언제하나?
집중이 안될때 큰소리로하면 진지해지고 기도제목이 생각난다, 잡념이 많은 사람은 처음에는 소리를 내는 기도를 해야한다. 소리로 사람이 이깁니다, 소리는 영적으로 상대방을 압도합니다, 묵상기도는 절에서 참선하는 것과 같습니다, 묵상기도는 기도의 최고수준입니다 , 말로 소리를 내서 자기 귀에 들려서 귀가 확인하고 꼭 질문기도를 많이하고 답을 기다려야합니다 , <주여 무슨 뜻인지 말씀해주세요?> <저 영적센스가 약한 거아시죠 깨달음을 주시옵소서?> 기다리면 반드시 말씀을 주신다, 들으려하지 않고 보려하지 않음므로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을 한번도 읽어보지 않고 말씀이 떠오를 수 없습니다, 평소에 말씀을 많이 통독해야합니다, 말씀을 접하면서 하나님 말씀에서 메시지를 찾는 것이지 지식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다 읽어도 성경안에서 단지 여기 나에게 주는 메시지를 받는 게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자는 메모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기도중에 영감이 떠오릅니다, 저의 설교는 거의 새벽기도중에 하나님께 받은 말씀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그분과의 관계성에 있어서 항상 주도권을 잡으십니다. (53쪽) (O, X)

하나님께서는 항상 주도권을 잡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정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시기로 확정한 뒤에야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우리의 인생을 조정하고 하나님이 쓰시도록 자신을 내어놓았을 때까지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데 있어서, 당신이 하나님이 인도하고 계신다고 생각하는 방향이 기도와 말씀과 환경에 모두 일치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요점> ①하나님이 그분의 활동을 계시하심은 동참하라는 초청이다 ②, <나는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내마음에 한치라도 나의 뜻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되기를 구합니다.> ③ <나는 내느낌이나 감상에 맡기지 않습니다> ④ <나는 성령의 뜻을 성경에서 찾습니다>

<1> 조지 뮬러의 믿음으로 살아간 삶?
19세기에 영국에 살았던 목사님이다, 그는 크리스챤들이 용기를 잃는 것에 대해 매우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들은 믿음이 너무 적어 기도에 응답해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내용은 하나님의 사역이라고 밖에는 설명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인도를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 뮬러는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시편81장10절; 네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 뮬러는 하나님이 어떤일을 하라고 인도하심을 느꼈을때 그것에 필요한 물질에 대해 기도만하고 다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기도와 믿음의응답으로만 모든 필요를 채워주심을 모든 사람이 알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그는 브리스톨에서 성경보급과 기독교교육을 위한 기관을 창설했고 또한 4개의 고아원을 운영했고 2000명의아이들을 돌보았습니다, 만명이 넘는 고아들이 그곳에서 키워졌습니다, 그는 기도의 응답으로 그에게 기부된 800불이 넘는 돈을 모두 나누었습니다, 그가 93세에 세상을 떠났을때 그의 수중에 전재산은 800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2> 뮬러가 하나님 뜻을 알게 도와 준일과 실수하게 한일?
하나님 뜻을 알게 되었을때는 ① 하나님의 인도를 진지하게 찾음 ② 하나님이 말씀을 주실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림 ③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해 가르쳐 주시기를 바람 , 실수하게 되었을때는 ①속질한 마음이 없음 ②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잇지 않음 ③ 하나님 뜻을 참을 성 있게 기다리지 못함 ④ 하나님 말씀보다 주위 사람의 의견을 존중함

<3> 죠지뮬러의 방법 6가지?(55쪽)
죠지뮬러가 어떻게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게 관계를 갖게 되었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음성을 구별할 수있게 되었는지 그자신이 직접 간추린 6가지방법이 있다. ① 자아 욕심을 제거하라 <나는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내마음에 한치라도 나의 뜻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되기를 구합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자세를 가지고 잇을때 문제의 90%는 벌써 해결 된 것입니다 ② 제 느낌 상상을 배제하라 그렇게 하면 저는 제 자신을 큰 착각에 빠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③ 성령의 뜻을 성경에서 찾아라 성령님과 말씀은 조화를 이루어야한다. 성령님이 나를 인도하고 있다면 그분은 절대로 말씀에 위배되지 않게 말씀에 있는 대로 나를 인도하신다 내욕심을 가지고 하면 욕심이 프로젝트되어 나타난다 욕심을 가지면 자기응답은 자기암시이다. ④ 내게 주어진 환경을 보라.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과 관련되어 하나님의 뜻이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납니다. 만물이 하나님께로 나왔다. 나타난 것은 현상이나 유출된 본질을 보아야 한다. ⑤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⑥그러므로 기도하고, 말씀을 공부하고, 말? 맛?반영함으로서 나는 내능력과 지식이 닿는 한 신중한 판단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내마음이 계속 평안하고 두세번 더 간구 할때까지도 계속 평안이 있으면 실천에 옮깁니다,

③⑤는 같이 간다. 성령의 뜻을 성경에서 보는 것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확인 할 수 있다. 열림문과 닫힌문이 있는데 내적확신은 영의 감이다. 자신의 영성에서 나온 육감을 무당이나 예술가들도 가지고 있다, 육감과 성령과는 구별되어야한다, 우리가 센스(감)을 감지하는 통로이다. 영적감각을 맑게 만들때 영적분별력이 생긴다, 기드온처럼 확인하는 것은 불신앙의 증거이다. 경험을 검토해야한다 점점 맞아 가는 구나? 훈련해야한다, 영성훈련을 통해 자기가 영적으로 높아져 가는 것을 알게 된다, 잘못 지적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는 싸인을 주신다, 급하게 하려면 전개가 안된다. B(2) 하나님의 뜻일 경우 하나님이 그일에 합당한 능력, 성품, 실력,은사를 키워주신다,

[4] 올바른 공식을 따름으로써 하나님의 뜻을 압니다, (O, X) (60쪽)

<1> 하나님이 말씀을 어떻게 하시나? <57쪽>
<히브리서1장1절;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부분과 여러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경과 기도, 환경과 교회를 통해 말씀하신다, 첫째, 교회는 설교말씀을 듣는 곳이다. 설교는 특정한 회중들에게 주는 말이다, 또한 둘째, 교회란 사람들과 영적교제를 통해 주는 도전과 말씀이 있다. 왜 저사람을 통해 Hot time을 받나? 또한 좋은 성품의 사람을 통해 나를 훈련시키는 것이다, 셋째로, 교회가 예수님이고 여러분이 교회이다. 인간은 신적존재이며 예수적존재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사람을 섬기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은 사람으로 부터 말씀을 받는 것이다. <에베소서4장16절> 교회를 통해 우리를 키워간다. 교회에는 머리부터 마디가 있다. 핏줄도 마디가 있듯이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요, 마디마디는 성도들이다. 마디도 마디다 서로 연결되 상합하고 연락한다. 예수님도 제자들을 선택하고 함께하셨다. 제자들을 통해 영적서포트를 받았다. 교회는 저사람을 통해 나를 키우고 나를 통해 저사람을 키우는 곳이다. 일이 생기면 <문제인데!>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하나님이! 특별한 말씀훈련을 시키려하는 구나!>라고 생각하면 그문제 때문에 속상하고 상처받을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일하시는 구나 들어야지>하면 영적으로 성장 할 수 있다. 상합(서로상)은 일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기생목회 서비스목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같이 주고 받고 하는 것이다, 평신도도 사역자이다, 목사만 주는 것이 아니다. 갖자 일하고 각자 받아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온통 고아원 유아원이다. 기도해달라 젖먹여달라! 온통 스스로 일하려고 하지 않는다.

<2><하나님과 친하면 나에게 주시는 방법은?
올바른 관계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도 비유를 들어 우리의식으로 알 수 있는 것으로 얘기해 주셨다,. <요한 복음15장> <너희가 내안에 거하고 내가 너희안에 있으면 무엇이든지 얻으리라> <문을 두드리고 너는 나와 더불어 먹는다> 먹는다라는 것은 관계를 말한다, 사랑의 관계이다. <계명을 지키므로 내사랑안에 거하리라> <사랑, 관계, 네안에 거하다>이말들은 비슷한 말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곧 하나님과 관계를 좋게 하는 것이며, 내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를 좋게 하는 것이다, 말씀을 묵상하며하는 기도하며 말씀을 보는 QT가 중요하다. 하나님의 의식과 교류하다보면 <요한복음10장2-4,14> 양에 대해 이야기하고있다.<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양은 그의 음성을 듣는다><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간다>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양이 어떻게 목자의 음성을 아는가? 자꾸 들어서 경험으로 주인의 음성을 안다. 자꾸 교제해야 하나님을 안다. <내가 양을 아는 것 같이 양도 나를 안다>

<3>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열쇠는?
하나님이 말씀하실때 그분의 음성을 듣을 수 있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열쇠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아는 일은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맺는 데서 비롯된다, 올바른 공식도 옳은 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떤 공식을 숙련공처럼 사용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는 내가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맺기 원한다

<4> 깨달음에 대한 응담은 어떻게 받나?
제4과 <하나님은 그의 사람들에게 말씀하신다>편에 나온다. <하나님은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는 것을 제한하지 마십시요> <요한복음14장26절>(57쪽) <보혜사 성령 곧 아버지께서 내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14장26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한복음8장;47절;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59쪽2번에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4가지 방법이 나온다. <하나님은 자신과 자신의 목적과 방법을 계시하기 위해서, 성령님에 의해 성경, 기도, 환경과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내 신앙생활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성경말씀을 읽을때 깨닫게 된다. 생각의 각은 깨닫는다는 것이다, 머리에서 <아하! 이거구나!>하고 신앙서적, 말씀 들은 것, 읽은 것이 생각이 난다. 그것으로 ! 말씀이 떠오른다.

<5> 떠오른 말씀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어떻게 아나?
말씀이 떠오를때 이게 내가 생각한 것인지 아닌지 시험해 봐야한다. <사도행전17장11절>에 보면 <이것이 그러하니 어떻게 믿음을 우리 삶에 적용할까 상고(연구)했다> 믿음의 단계에는 이해가 있으므로 믿음이 오는 것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음 하나님 말씀에 말미암이니라.말씀을 듣고 어떻게 생활에 적용할지 연구할때 믿는자가 많아졌다.> 믿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과 화합해서 생활에 적용해봄으로 순종해보고 진짜임을 알게 된다. 경험이 쌓이면 그것이 하나님 말씀임을 알게 된다. 영성훈련이 필요하다. 영성지각은 애기가 처음에 듣고 보고하는 감각이 무딘 것처럼 영적으로 크리어하게 팍!! 나오는게 아니다, 나중에도 따질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 간증> 몸이 안좋아 병원에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대에 누워 있을때 사람이 죽는 게 이거구나 생각했고, 누워 있을때 <하나님 이게 죽는거군요>하고 기도하게 되었을때 성경말씀 시편23편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주의 막대기가 나를 안위함이라 >말씀이 응답으로 왔다. 수술대에 누워서 죽음과 삶이 내 가까이에 있다는 것? ?알게 되었다. <이제 죽음으로 가도 평안하게 맞을 수 있겠구나>란 생각을 갖게 되었다. 기도의 응답은 말씀으로 바로온다. 위의 예는 맞는 것입니다.

<6> 영적의식이란 훈련되는 것인가?
영은 의식이다. 영으로 하나님을 의식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식한다. 인간은 의식이 있으므로 상대방과 나를 의식한다. 동물은 의식이 없다. 매맞으면서도 얻어먹는다. 인간은 자기의식과 상대방의식이 있다. 영적의식은 하나님을 의식하는 것이다, 어린아이는 자기의식이 거의 없다.그러나 3-4살이 되면 고집이 생긴다. 자기 맘대로 하겠다는 고집은 의식이다. 영적으로 3-4살이 되야 자기 생각을 하게 된다. 영적으로 자라야 된다. 기도를 많이 해야된다. 기도를 많이하면 자라게 되있다. 처음에는 자기 뜻으로 기도를 시작하나 하나님 뜻을 알게 되고 하나님 뜻이 되고 만다. 질문을 계속하고 말씀을 받는 훈련을 자꾸하는 것이 필요하다. 쇠젖가락으로 좁쌀을 집는 것처럼 학습되는 것이다. 손재주가 주어진게 아니라 영적으로도 똑같다. 의식훈련을 많이하면 환경,인간을 초월할 수있다. 영성훈련은 의식훈련이다,


[5]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순간이 하나님의 시기이다.(O,X)

<1>하나님이 말씀하실때 나는 여유 있게 언제 ,어떻게 응답할지 생각해도된다 (O,X)
우리가 질문하는 순간 하나님이 말씀을 주시고, 하나님이 말씀을 하시는 순간 우리도 즉시 말해야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음성을 들려 주었을때 우리가 준비 됐을때이다. 그때가 적기이다. <나에게 말씀하시는 바로 그순간 하나님은 내가 응답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시는 순간이 하나님의 시기이다> 그시기를 하나님이 결정하시는 것이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인들이 광야에서 자라나 문명세계를 몰랐다. 제일 낮아 있을때 하나님이 쓰시기에 제일 좋은 때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말씀하실때 내가 응답할 가장 적기이다. <5과,63쪽> <하나님이 부르실때 응답하고 나가면 그일에 합당한 성품을 주신다,> <하나님이 내게 주실 임무에 맞도록 나의 성품을 키워주신다> 그 일에 맞는 시기에 적합한 성품을 주신다. ,
① 아브라함이 응답하고 25년을 기다렸다. 이삭을 신앙으로 잘 키울 수 있는 애비를 만들기 위해 하나님이 대를 기다리셨다. 이스라엘이 40년의 광야생활이 왜 필요했을까? 애굽을 때를 벗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때 성을 주고 쓰신다.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을 하시는 바로 그순간이 하나님의 시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때를 택해서 말씀 하신 것입니다,
② 다윗은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이 왕으로 부른지 12년만에 왕위에 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기간 동안 다윗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관계를 킬우도록 하셨습니다 ,왕이 그런 관계가 되면 그나라도 그런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당신은 성품을 그냥 지나칠 수 없습니다
③ 간증>1년 넘게 기숙사에서 성경공부반을 조직하려고 애를 썼지만 허사였습니다, 캠퍼스로 나가 하나님이 어디서 일하고 계신지를 찾아서 그분의 일에 동참하기로 마음먹자 어느날 같은반 친구가 <너는 크리스챤인것 같은데 너랑 애기를 꼭 했으면 좋겠어?>하며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자기에게 물어왔습니다. 그래서 다른 수업을 빼먹고 가서 그와 이야기를 했다. <열한명이 성경을 공부해 왔는데 우리중에는 크리스챤이 하난도 없어 혹시 우리 성경공부반을 지도해 줄 수있겠니?> 이 성경공부반를 계기로 그대학생 선교가 퍼졌다. 친구가 영적인 것에 관심을 갖고 물어올때가 내가 일할 적기였다.

<2>영성훈련이 왜 필요한가?
영적인 분별훈련이 필요하다. 계속적으로 영성훈련을 해야한다. 생활을 단순화해야한다. 영화를 보면 그속에도 영성이 있다. 모든 예술, 음악에도 메시지가 있어 우리 영성과 충동되 헷갈리게 된다, 사단이 헷갈리게 하는 것이다. 창세기에 보면 사단은 하나님 말씀을 부인하지 않지만 왜곡시킨다.(먹지 말라고 하더냐?) 뉴스도 자극적인 것만 보여준다. 뉴스도 신문으로 보고 외부로 부터 의식이 차단되게 해야한다. 아침 저녁으로 하나님과 기도해야한다. 무시로 기도해야한다. 시도때도 없이 기도해야한다. 폼잡지 않고 무시로 속으로 기도해라 상담하러온 아이들을 위해 속으로 <이아이를 불쌍히 여기없소서>라고 기도하고 맡기면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기도하지 않고 면담하니 내뜻인지 하나님 뜻인지 헷갈린다, 주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고 가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힘으로 일하다 안되면 마지막에 기도합니다. 기도를 먼저하고 일해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있습니다, <예: 두주부가 똑같이 구몬교사를 했습니다. 1달반이 지나 월급을 받았는데 한사람은 15만원이고 한사람은 100만원을 받았습니다, 첫사람은 말합니다. 하나님? ?당신은 이일을 하고 나는 이일을 하지 말라는 뜻같아? 두번째 사람도 말합니다. 갖고 있던 주식이 200만원 떨어졌고 내 아이들 학교 성적도 떨어졌고, 나도 이일을 하지 말라는 뜻인것 같아? 무엇이 하나님 뜻일까요?>

<3>목사님의 안가겠다는 기준은 뭐냐? (63쪽, 예)
어느 목사님이 큰교회에 담임목사로 초빙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어떤 작은 교회에서 직장일을 하면서 동시에 봉사해주시길 원할때 그 목사님은 <글쎄요 안되겠는데요>라고 거절 합니다, 그의 생각은 <나는 너무 많은 교육을 받았어. 나의 인생을 그런 세상적인 직업을 가짐으로 허비할 순 없지 나는 온전히 사역해야해 나는 그것보다 더중요한 일을 해야해> 이목사님의 응답은 자기중심적으로 보이이지 않습니까? 당신이 작은일에 충성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당신에게 큰 임무를 맡기지 않으십니다, <마태복음25;21: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과 성품을 작은 임무에 맞게 조정하신 후 나중에 그것을 통해서 큰 임무를 맡기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시는 곳입니다, 그러나 작은 임무이므로 당연히 하나님으로 부터 온 것은 아닙니다, 임무가 크고 작건 간에 그것이 하나니으로 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해주시도록 기회를 들여야합니다. 온전한 헌신하려는 마음을 가! 질때? 관계성을 통해서 나는 알게 될 것입니다. 나의 인생을 하나님에게 맞추고 주님이 나를 어디로 인도하시듯 따라가는 그런 관계를 맺으십시오

46쪽> 경견의 일기와 하나님을 체험하는 7가지 단계를 코딩해서 매일 보라? 경건의 일기를 써라 내말로 써본다. 그날에 받은 말씀을 적고 묵상한다. 경건일기와 주간 복습을 코팅해서 늘기도해주고 하나님을 체험하는 7가지 단계는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3단원] 주님은 사랑의 관계를 추구한다?

(마태복음22;37-38)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1] 당신의 삶에 과거와 미래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영향을 끼칩니까?
아침잠, 술, 담배와 같은 습관도 기도하면 안되는 게 없습니다. 주님 앞에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요? 환경을 조절해야합니다, 미국에 가면 시차 적응이 되듯 인간의 바이오 리듬이 옮겨집니다, 소원을 가져야 합니다, 경민학원의 학원장이신 장로님은 저녁11시에서 취침해 3시까지 평생4시간 자며 시간을 쓰십니다, 새벽기도에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오시는 점은 존경할만 합니다,내의지로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기 힘들지만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맡기면 됩니다,

[2] 비젼을 가진 사람이란?
(당신에게 있어 과거의 어떤 일이 당신의 현재생활에 강하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까? 그것은 어떤 신체적, 정신적 장애나 불우한 가정 환경, 실패, 개인적인 혹은 가족에 대한 부끄러운 비밀이 될 수도 있고, 자존심, 성공, 인기, 인정받는 것, 지나치게 많은 재산등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과거에 사로잡혀 더밀려 가는 사람은 왜 그런가? 미래가 안보이므로 그렇습니다, 소유한 것보다 더좋은 것이 있다면 놓게 된다, 하나님이 나에게 주는 비젼을 갖고 있지 못하므로 과거에 사로 잡혀산다, 빌립보서3장12절-15절 그가 빌립보서를 쓸때 바울이 나이가 들었을 때이지만 말년에 그는 편지를 쓰면서 계속 달려가는 삶이었다, 100M같은 달리기를 했다. 과거에 사로잡힐 틈이 없다. 미래가 보이므로 미래가 이끄는 삶을 산다, 비젼을 가진사람이란 하나님이 보여준 내인생의 목적을 보는 사람이다, 목적이 이끌어 가는 사람, 하나님이 주신 비젼을 보고 가는 것이다, 앞에 보여주는 것을 보고 가라! 과거에 사로잡힐 틈이 없다.(나는 할 수 없지만 나를 주관하시는 성령님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전에 혹적이고 육적인 나는 내가 아니라 내안에 계신 성령님! 과 연합된 영이 나인 것입니다,) <과거에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라는 생각이 오늘 나를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과 과거의 실수,습관이 발목을 붙잡는다. 과거를 해결 할려고 과거를 생각하면 할수록 과거에 더빠지게 됩니다, 미래를 보고 오늘을 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미래의 비젼을 보고 사는 사람은 단기 중기 장기의 비젼을 보므로 과거를 볼 틈이 없어지며 사도바울이 그렇게 살았습니다,

[3] 현실에 사로잡힌 사람은?
과거에 사로잡힌 것은 아닌데 현실이 바뻐서 눈앞에 일이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분의 현실은 과거의 연장입니다, 바쁘다 하는 것은 현실에 빠진 것입니다. 왜 바쁜지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24시간 은사를 따라 할 수 있는 것을 해야합니다, 욕심이 지나친 삶은 재정리하고 제거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자기욕심이 오바해서 일찍 죽는 것입니다, 자기욕심이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리빙스턴은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다하기전까지는 죽지 않는다라고 확신했습니다, 사명이 삶입니다, 오늘의 삶을 살아가는데 저 교회, 이 학원, 이 민족선교를 위해 그 비젼아래 주어진 일들인가? 아닌가?를 생각해야하며 그게 아니일은 과감히 정리하고 제거해야한다, 고린도전서에 달려가는 사람들을 비유하면서 쓸데없는 짐은 벗어버려야한다. 정리가 필요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심플해져야한다, (내가 심플해지면 주변이 심플해지며, 내가 복잡하면 주변이 복잡해진다) 내욕심이 벌린 일이 많다, 세상의 죄악의 문제도 구원의 문제도 자기와 연관시키면 불선명해진다, 우리에게 주어진 범주가 있다.(내가 먼저 심판하고! 판단 내리면 안된다) 내가 만난사람을 대할때마다 하나님이 일하시는가? 하나님이 저사람을 어떻게 하시길 원하시나? 늘 안테나가 하나님의 일하심에 가 있어야한다. 예수님도 최선을 다했으나 Over하지 않으셨다. 결국 그가 하신일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일을 완성하시는 것이었다. 자기에게 주어진 범주에서 기도하며 최선을 다할때 주님이 직접 일하신다

[4] 교회의 비젼과 나의 비젼의 차이?
하나님이 주신 사역이 사람마다 다 틀립니다, 다떨치고 홀로가서 선교사로 가는 사람, 자기 주변에서 전하는 사람, 애잘키우는 사람이것도 큰사역이다. 사역은 다 다릅니다, 김춘근교수는 영적교사로서 신앙의 교사이므로 교사로서 직무를 감당하려 하고 합니다, 나에게 잘배워 학생들이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여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크리스챤은 다 목회자입니다, 그첫번째 목회가 개인 목회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사랑의 관계로 만드는 것이 목회이며 사역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그말 안에 사랑의 대상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란 말은 아들인 나와 사랑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두번째가 가정목회입니다, (하나님이 만든 최초의 작품은 제국이 아니라, 교회가 아니라 가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기는 거룩한 가정을 만드는 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인간에게도 기쁨이 되며 소중한 일인 것입니다,) 세번째로 바울 같이 밖으로 나가서 특별하게 선교할수도 있습니다. 목적이 있어서 하나님이 주신 비젼을 가지고 살때 혼자 살 수 있습니다, 절제할 수 없어 것이! 분에 넘치는 사람은 가정목회를 하는게 낮습니다, (Kim; 학원선교와 예술선교중 비교해서 어느것이 하나님이 주신 것인지 알고자합니다. 교회에서 성가대총무를 나에게 맡기려했는데 기도도 안하고 내마음대로 그만둔 것을 회개합니다, 작은일에 충성했을때 큰일을 너에게 맡기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마태복음23장24절, <제자 삼아 세례를 주고 가르치고 전도하라>는 말씀은 혼자 하는 일이 아니고 교회적 비젼이며 공적인 비젼입니다, 그러나 세례받은 모든 사람은 1-2가지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은 공적적인 비젼이지만 내가 받은 은사는 내비젼입니다,

[5] 내삶의 목표는?
내삶의 목표와 방향이 올바르게 설정되어야 합니다, (내인생이 밥먹으러왔어? 화장실 다니러 왔어? 학교다니러 왔어?) 가구디자인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악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음악이 그래서 무엇입니까 (So What?) 여러모양으로 나타날 뿐이지 그게 나의 목적이 아닙니다, 한심한 사람이 있습니다, 영원 불변 한 것이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이세상에 놓고 갈 것에 목적을 두면 허무한 인생이 되고맙니다, 어떤 목적이나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의식을 가진 사람은 챤스를 놓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아이를 나에게 보내왔는지 몰라요? 하나님에 대한 의식이 없는 사람은 잠자는 것입니다, 깨어있어라라는 말은 기도하라는 말입니다, 깨어있어 기도하라와 기도함으로 깨어 있으라는 같은 말입니다, 영적교제를 계속하면 순간적으로 응답이 옵니다. 저교수는 왜 쓸데 없는 일(성경공부)을 하나?하고 남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게 최선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나를 이끌어 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6] 말씀을 전할때?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내가 행동은 안하고 말만하나? 이것은 과거에 사로 잡힌 생각입니다. 성령이 주신 마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목수의 아들이었고 아버지가 일찍죽은자 였지만 과거에 사로 잡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말하면 하나님이 구원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할때 지식이 많은 사람은 관심은 있으나 결정적으로 들어 가지 않습니다, 전도자는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씨가 뿌리면 옆으로 길가에 떨어지기도 합니다. 씨를 뿌리고 물주고 하는 일은 우리가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 하는 일입니다, 씨를 뿌리고 옆에서 잘자라도록 도와주고 기도해만 하십시요 결과를 속단하지 마십시요, 그결과를 부정적으로 미리 생각하지 마십시요. 왜 당신이 미래에 대해 결단합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일을 내가 over하는 것입니다, 편한마음으로 하나님깨 맡기고 계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보기도의 능력이 괴장히 큽니다, (내부모가 평생기도해도 안믿다가 죽을실때 장사 지내기전에 하나님께 돌아왔다) 하나님의 소관은 하나님께 맡기싶시요.

[7] 하나님과 산책하며 보내는 하루종일의 삶?
에를 들어 경치좋은 곳(기도원)에 들어가 아침부터 성경만끼고 유유자적해 보십시요? 하나님과 감각적으로 들어오는 데로 대화를 하십시요? 새가 너무 예쁘네요. 하늘이 기가 막히네요. 하나님과 너무 친근해지고 하나님이 나와 대화해 주신다, 그말을 메모지에 적는다, 최소한 1달에 한번 세상일을 딱 끈고 기도원 아무데나 가서 하나님과 데이트를 하십시요. 아침5시 기도후에 학교뒷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산책하며 기도했는데 좋았습니다, 영성훈련을 한 사람은 자기 삶을 정리하지 않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 삶을 끈고 제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시간) 그선을 뺏기지 않고 선을 긋고 유지해야합니다, 너무 바빠서 쉬는 날이 없고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면 세속을 탈피해서 하나님과 대화 해야 합니다 그러면 정신건강에도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면 전체적인 것 뿐만아니라 구체적인 것에 대한 응답을 받습니다.

(A; 산책을 하며 하나님께 말할때 대답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 나타나 옷입는 것까지도 신경써주시는 성령의 손길처럼 나에게도 구체적으로 인도하는 하나님과 대화하려고 시도하자 하나님과 데이트하는 것이 너무나 흥미 진진 합니다.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와 데이트하시며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너무나 말씀이 골수를 쪼개듯 들려오고 말씀이 깨닫게 해주십니다. B;아침마다 극동방송을 듣고 오는데 새롭게 하소서란 프로에서 아픈사람들에게 해주는 전화의 기도를 들으며 나도 울며 같이 기도하면서 옵니다. 성경공부하는 사람들이 행동에 변화가 있어야 겠다고 생각합니다. C;보여달라?고 기도하자 뭘보여달라는 거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새벽기도를 매일 합니다. 학교를 오가는 4시간동안 차안에서 찬송가를 부를때 은혜스럽습니다. 방언기도로 하나님과 대화할때 감사 충만한 생활을 하게 됩니다. D; 하나님이 나에게 먼저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일하십니다. C; 아침에 뜨는 해와 교회너머로 지는 해를 바라볼때 전율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에 대한 감사가 넘칩니다. )

[8] 기도에 이미 응답이 있는가?
(F: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안믿을 때 고민입니다.) 하나님이 결정하기 전에 우리가 결정하지 마십시요 기도하는 것을 보면 응답이 있을지 없을지 알 수있습니다. 입술로 말하고 기다려야합니다. 자기기도에 진실함이 들어나 감정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문제이지 대상이 문제가 아닙니다. 내마음 가운데 소원을 두는 것은 주님 마음인줄 아니 구원시켜 준줄 믿습니다. 적절한 때에 주님 영광 받으소서! 내가 영적으로 성장하면 기도가 달라지져 확신으로 갑니다. 실제적으로 역사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느껴야 합니다.

내목숨을 다하고 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 목숨을 다하는 것은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며, 마음을 다하는 것은 성심컷 사랑하는 것이며, 뜻을 다하여는 성의컷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하길 원합니다, 아이가 아빠가 오면 선물만 받아가고 달아나는 그런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게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 자신도 선물만 원하는 그런 사람은 가까이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른 것을 다 잃어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소서?


[5단원]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요한 복음 8장 47절>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고린도 전서2;14-15>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별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 Cell church<셀 교회>란?
초대 교회의 모습은 셀 처치였다. 그곳에는 영적 나눔이 있었다. 그 조직의 지도자는 목자로서 신도들과 목자와 양의 관계였다. 영적 아비와 영적 자녀의 관계로서 목자가 자녀를 낳아서 키우는 관계이다. 이 구역예배에서는 개인의 실패나 좌절 그리고 유혹을 당했던 경험을 이야기해도 흠이 되지 않는다. 인간의 유혹이나 좌절은 대등소위하며 모두 같은 문제를 경험하므로 서로에게 영적인 위안을 주고받는다. 그 그룹은 같은 마음이 되어서 영적 치유가 저절로 된다. 진실한 릴레이선 쉽에는 성령이 역사 한다. 의사인 황성주 박사는 건강 세미나에서 전인격 치유 방법으로 유명한데 그는 병원에서 셀 처치를 하고 있다. 그 셀 처치는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셀 처치가 지역 교회에 속해 있지 않아도 성장한다는 모델을 보여 주고 있다.


[2] 하나님이 구약에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을 때 개인에게 독특함이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대개는 그 개인에게 독특한 것이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은 모두 다르다. 그것은 주관적일 수 있다. 주관적인 체험이 객관화되는 과정에서 이단이 생길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꿈을 꾸면 하나님이 나타나신다. 그에게는 꿈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법이다. 이것을 객관화시킬 때 꿈을 못 꾸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없다고 말하면 이단이 된다. 모세는 불붙는 떨기나무에서 하나님을 경험했다. 하나님이 떨기나무에서 말씀하신 것은 그때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떨기나무는커녕 소나무도 경험하지 못했고 음성도 듣지 못해 고민하며 꼭 그러한 경험을 해야 성령이 있는 걸로, 믿음이 있는 걸로 잘못 아는 경우가 있다. 사람마다 하나님이 말씀하는 방법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말씀하셨다. 천사를 통해서 <창 16장> 환상을 통해서 <창15장> 꿈들을 통해서<창 28장 10-19절> 비유를 통해서<램18장 1-10> 세미한 소리를 통해서< 왕 19장 12>기사와 표적을 통해서<출 8장20-25> 그리고 기타 여러 방법들로 말씀하셨다. 하나님이 어떻게 말씀하셨느냐? 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 究甄募? 사실 자체가 중요한 점이다.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오늘도 여전히 성경, 기도, 교회, 환경 혹은 다른 믿는 자들을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요한 복음 8장 47절>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3]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확실함을 어떻게 아나?
하나님이 말씀하셨을 때 들은 사람은,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하나님 모세에게 독특한 방법으로 말씀하셨기 때문에 모세는 그것이 하나님이었음을 확실히 알았다. 성경은 모세가 아무런 질문 없이"스스로 있는 자" <출 3;14>이신 하나님에 대해 만난 것에 대해 증거 합니다. 모세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니지요. 모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과의 만남에 대해서 간증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기도 중에 응답 받을 때 내 소리인가? 하나님의 소리인가? 초보 신앙인 들은 헷갈립니다. 자기 암시인지 내 스스로 만든 말인지 사탄의 속삭임인지? 하나님의 말씀인지? 여러분들은 어떻게 알게 됩니까?

<간증 나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예수님의 성품과 행적에 비추어 틀리지 않다면 받아들입니다. 그 것 외에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서 확인하거나 내가 아는 선,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결정합니다. 나는 박사 시험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나는 이 길을 포기해야 할지 다른 길을 가야할지 고민하다 기도원에서 금식 기도를 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이 한 번 더 시험을 보라는 말씀을 주셨다. 실제 그 시험에서 내가 될 가능성이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선배가 떨어지고 내가 되었다. 그 선배는 그 다음해에 합격했다. >

<간증 나는 일요일 예배전에 혼자 묵상기도하면서 하나님 나에게 기쁨 주세요? 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보고 기뻐하게 해주세요?라는 기도가 떠오랐다. 그런데 예배중 홍우준 장로님의 대표기도중에서 가르치는 자나 가르침을 받는 자나 하나님의 중심으로 이끌리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란 말이 들렸고 2부설교의 본문에서도 (로마서 15장 1-3절)말씀에서 (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 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라는 설교 말씀이었고 차훈목사님의 마침기도에서도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자>가 되도록 저를 쓰임받도록 복내려 주소서?라는 기도내용이 크고 놀랍게 들려왔다. 이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분명한 메시지였다. 11월 6일 내가 우리 스타디그룹의 한 학생을 위한 중보기도를 토요일 내방연구실에서 , 11월 7일 일요일 예배전에 묵상기도할때 내마음이 그영혼을 바라볼때 너무나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 간절한 기도를 하게 되고 눈물이 복바쳐 올라왔다. 이것이 심령으로 하는 기도구나하고 생각했다. 이것은 내가 아닌 내안의 성령님이 응답하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

하나님은 말씀이시다. 말씀하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면 순종하게 된다. 개인에게 하나님이 주는 방법이 반복되다 보면 틀을 갖추게 된다.

 

<간증 나의 어머니는 꿈을 잘 꾸신다. 꿈과 환상을 통해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이 연신 장로님은 기도 중에 내가 내려와 얇은 홑이불을 덮고 추운 것같이 오더라는 것이었다. 그 일이 있자 목사님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왔다. 실제로 나는 보일러가 좋지 않아 떨고 있었고 곧 고쳤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엘리아처럼 그런 영적 고독이 찾아왔었다. 열왕기상 19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에게 숨겨진 사람들이 있다고 말씀하셨고 그들이 나라를 뒤집어 놓는다. 그 때 나에게도 교수님들이 성경 공부를 인도해 달라고 제안해왔고 그것이 나에게 위안이 되었다.> 나는 이 경민 교회와 학원이 셀 처치 방법으로 운영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셀 처치를 하려면 헌신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선생님과 교수들이 너무 시간에 쫓겨 살고 소중한 것을 먼저 하지 못하는 신앙 생활을 하고 있었다. 시간에 쫓겨 사는 사람은 삶이 문제가 있다. 나침반을 보고! 가야하는데 시계만 보고 간다.

[4] 확신을 얻기 위한 방법?
각기 경험은 다를 수 있지만 저는 늘 말씀으로 주신다. 하나님께 자꾸 물으면 말씀이 떠오른다. 말씀으로 확신을 가졌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방법은 다양하다. 꿈꾸는 사람, 환상을 보는 사람, 심령의 소리를 듣는 사람, 하나님께 물으면 심령의 소리가 올라온다. 영적으로 클리어 하지 않으면 확신이 안 온다. 자기가 자기 영의 상태를 안다. 오 주여 감사합니다. 범죄하고 화나고 욕심이 앞서면 확신이 오지 않는다. 자기 뜻을 제거 하여야한다. 능력 기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거 기도이다. 욕심, 범죄한 것, 상한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 마음이 순수할 때 확신이 동반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확신할 수 있어야한다. 진가? 민가? 하면 대개는 아니다. 이 때 결단 내리기가 어렵다. 하나님은 진가? 민가? 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확신이 안 오면 접어두어라. 확신을 갖기 위해서는 자기를 비우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읽고 암송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통로를 열어야한다. 그 통로를 확보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님의 메시지를 사모하는 사람이 아니다. 정말 확실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기! 를 원하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 성경 말씀을 많이 접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십자가위에 있는 주님의 은총을 볼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클리어해 질 것이다.>

[5] 하나님은 무엇을 말씀하시나?
모세는 하나님이 그에게 무엇을 하라고 말씀하시는 지를 알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그를 통해서 어떻게 일하시기를 원하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그토록 많은 핑계를 내세웠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셨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아라>라는 말씀을 나에게 주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넓게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할지 말씀해주실 것이다. 만약 내가 찬양 사역을 하기를 원한다면 어느 교회인가? 를 알려 주신다. 보다 깊은 기도를 할 때 클리어 하게 나온다.

<간증:이 책에 목사님은 세스커툰 페이스 침례교회에 목사로 갔는데 그 교회에는 열 명 정도의 사람밖에 남아있지 않았고 최근에 교회 문을 닫을 것인가에 대한 회의를 할 정도로 쇠퇴해있었고 그 교회는 한번도 지교회를 지원한 일이 없었고 나 또한 그런 목회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곳에서 90마일 떨어진 프린스 알버트 교회를 향한 길을 열어 주었다. 그 도시에서 모인 사람들은 그를 찾아왔고 그를 목사로 세웠고 새로운 땅과 건물을 얻었습니다. 그들의 교인 수는 증가하였습니다. 그들은 러브, 스미톤, 멜퍼트, 디즈달, 그리고 리오빌에 각각 새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들은 프린스 알버트에 아메리칸 인디언들을 위한 지교회를 세우고 3개의 인디언 보호 구역에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니피완, 라론즈, 데쌈벌트, 캠버런드 하우스 등의 이웃 도시에도 중요한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인디언 추장을 위한 연례회의와 부족들을 위한 모임과 북서스켓처원주에 널리 퍼져있는 인디언들의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은 우리가 요구했던 것, 상상했던 것을 초월하여 일하십니다. <엡 3;20-21> 하나님의 메시지는 구체적입니다. 자기의 욕심이 제거되지 않으면 헷갈립니다. 하나님의 메시지는 클리어 합니다. 첫 단추가 잘 못 끼워진 것은 제거해서 다시 해야 합니다.

[6]욕심을 제거하는 방법?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면서 30분 이상 충분히 찬양하는 것이 좋습니다. 찬양은 노래가 아닙니다. ① 찬양의 가사가 기도가 될 때까지 계속해야 합니다. 가사를 생각하십시오. 가사로 기도하십시오. 가슴에까지 오면 가사가 올라와 기도문이 열립니다. 기도는 열려야 됩니다. 벽에 대고 소리치는 것이 아닙니다. ② 낮추는(겸손) 기도를 해야한다. 순종을 전제로 하는 기도를 해야 됩니다. <주시옵소서!> 만 외치는 것은 자기 주장입니다. 하나님 앞에 대모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 나는 살 수 없습니다.성령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합니다, 오늘 말씀을 주시옵소서? 말씀에 순종하겠나이다.>이것을 전제로 해야 됩니다. ③ 큰 소리로 통성 기도를 하면서 잡념을 제거하고 기도에 의식을 집중해야 합니다.수준도 안되면서 묵상기도를 하면 안됩니다. 주변 사람의 소리가 들리면 자기 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기도도 소리 내서 펌프질을 해야 합니다. <주여! 주여!>하며발악을 해야 합니다. 심령이 불편하면 큰소리로 발악하여 기도에 집중시켜야합니다.<할! 렐루야! 할렐루야!를 큰소리로 반복하면서 성령님께 의식을 집중해보십시요, 감사할 것이 떠오를 것입니다,회개할 것이 떠오를 것입니다,> . ④ 회개기도를 해야합니다, <생각나는 죄와 모든 교만을 회개합니다. 사람과 부딪치고 분노하며, 잘못되고 고집스러운 나의 생각과 행동을 회개합니다,> <내가 부족하여 이와 같은 일들이 일어났음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용서와 자비와 긍휼과 도우심을 주시옵소서?> ⑤ 제거 기도가 중요합니다. 기도는 훈련입니다. 마음이 불안할 때 기도가 간구로 들어가서는 안됩니다. 기도가 다스려지도록 기도해야 됩니다. 불안 심리와 욕망이 얽혀 있는 것은 내안에 나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감동 줄 때 단번에 확신이 옵니다. 복잡하면 기도도 안되고 떠오르는 것도 잡념입니다. 이 때 제거 기도를 해야됩니다

[7] 성령의 법칙? 혼과 육의 장애를 제거하는 기도?
<1> 예수의 보혈로 씻는 기도?
그리스도의 피로 도말 한다.<덧 칠 한다.> 예수의 보혈은 우리의 더러운 죄를 덮어 버린다. 교회 안에 지성소가 있고 지성소 안에 시은 좌<시은 소>가 있다. 그 시은 좌에는 일년에 한 명의 제사장이 들어간다. 그 안에 법괴가 있다. 법 궤 안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세 가지 물건이 담겨져 있다. 만나 항아리, 십계명 두 덩어리, 아론 상난 지팡이가 들어 있다. 이 세 가지 물건은 이스라엘 백성의 범죄와 관계가 있다. 아론 상난 지팡이는 하나님이 주신 영적 리더십에 도전했을 때 열 두 지파 중 표적이 나타난 지팡이가 하나님이 증거로 주신 것이었다. 모세가 십계명 돌 판을 가지고 왔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송아지를 만들어 잔치를 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범죄 끝에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시은 자는 법 궤 위에 가죽을 덮고 그 뚜껑 위에 하나님이 앉아 계신 좌석이다. 이스라엘의 죄를 덮고 하나님이 앉아 계신다. 사죄의 은총이 그 곳에 있다. 덮어 주는 것이 은혜의 역사이다. 제2의 시은 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보혈의 피이다. 그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2> 성령의 불의 권능으로 태우는 기도?
불은 소멸의 역사이다. 구약에서 번 죄 물은 불로 태워 없앴다. 속 죄 물은 태워 없앤다. 우리 심령을 성령의 불로 태워야 한다.

<3> 예수의 이름의 권세로 사탄을 제거하는 기도?
믿는 사람은 이미 성전이 되었으나 사탄이 그 속에 들어올 수 없다. 그런데 사탄이 범 죄 하거나 육신의 질고 가 있을 때 틈탄다. 옷에 무엇이 묻은 것처럼, 기생 식물이 옆에 끼여든 것처럼, 사탄은 속삭인다. <그렇지 않니?> 유도 적인 질문을 한다. 하나님은 분명한 말만 하신다. 사도바울에게 역사 하는 것을 보고 <내 힘으로> 자기도 하려니 사탄이 역사 한다. 이 때 명령 기도가 필요하다. 조그만 소리로 묵상하면 명령 기도가 되지 않는다. <떠나주세요?, 떠나지 않겠어요?>가 아니라 <떠나거라!>라고 세게해야 한다.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권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해달라고만 하지 말고 예수님 이름으로 네가 해라! <예수의 이름의 권세로 명하나니 우리 정신, 마음, 육신의 질고 또는 악한 영의 역사는 물러갈지어다, 사라질지어다, 떠나갈지어다> 자기 자녀에게 아픈데 손을 얹고 안수하세요. <우리 아이 괴롭히는 사탄을 떠나게 하고, 피가 잘 돌게 하시고>기도를 받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기도 소리를 듣고 생각하고 의식하게 됩니다. 영적 의식을 가지면 몸이 움직입니다. 치유 은사를 잘하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뼈가 맞추라고! 하면 실제로 뼈가 움직입니다. 제거 기도로 머리가 맑아지고, 심령에 평안이 찾아오고 감사와 확신이 오게 됩니다. 이 때 간구로 들어가야 합니다. 여러 가지 기도 제목을 갖고 간 구하고 그 자리에서 응답 받고 확신이 와야 합니다. 그것이 반복되어서 내 기도의 패턴이 됩니다. 그것이 반복되면 하나님과 만나는 통로가 되며 하나님은 늘 그런 통로로 역사 하십니다. 차를 타고 아빠와 딸이 앉아 있는데 딸이 아빠의 손가락을 만집니다. 그러자 아빠는 궁금하니? 재미있는 얘기를 해줄까? 그 아이는 심심하고 궁금하면 아빠의 손을 비비는 독특한 체험이 있었습니다. 신앙 생활을 많이 하면 틀이 잡혀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과 교제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갑니다.

[8]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는 단계란?
목사가 기도할때 <두려워 말라 믿음으로 기다리라>라고 하나님이 위로해주신다, 말씀이 영이요 말씀을 만나면 하나님을 볼 것이다, 욥은 말씀을 귀로만 들었으나 눈으로 보인다, 말씀이 육신을 입은 것이 예수라는 역사상 인물이다, 하나님이 <너를 위로하겠다>라고 말씀을 나에게 주셨을때 하나님은 기대하지 않았던 사건을 통해서 나의 억울한 마음을 위로해주신다, 하나님은 말씀을 먼저주시고 그다음 사건을 통해서 눈으로 보는 단계로 이끄신다, 기도의 응답은 귀로 듣는 것부터 시작된다, 아브라함이 귀로 들은 것?은 즉시 말씀하신 것이고, 눈으로 본 것은? 25년 후에 이삭이 나왔을때이다, Why Me? 저자인 김춘근박사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1년후에 암이 완전히 완치 된것을 눈으로 확인했다, 말씀을 들었을때 부터 확신을 갖고 가니 식이요법을 통해 완치단계에 까지 나갈 수 있었다, 각사람의 스타일에 맞게 하나님은 주신다, 미국인들은 성령받을때 뒤집어지지 않은 사람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전적으로 헌신합니다, 그러나 성질이 급한 한국인들에게는 뒤집어지는 일이 많이일어나며 뒤집어져야 헌신한다, 경험을 통해 보게 됨으로서 확실? 蠻側?하나님 만나는 일이 생긴다,

[9] 하나님을 만나는 것?
① 하나님이 구약에서는 모세나 다른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을때 그것은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② 복음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셨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을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하나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③하나님은 성령님으로 말씀하신다, 성령님과 만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다, 영적인 진리를 깨닫는 것은 성령님이 나의 인생에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④ 내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나오면 그것을 쓰신 장본인이 오셔서 나를 가르치신다, ⑤ 진리는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되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당신에게 진리를 계시할실때, 그가 당신을 하나님과의 만남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10] 하나님은 어떻게 자기계시를 하나?
당신에게 하나님이 나타내심은 말씀이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식언치 아니하신다. 하나님 말씀은 현실이다. 인간이 체험하지 않은 것에는 용어가 없다. 체험하지 않은 것은 아름을 붙일 수 가 없다. 적어도 추상적, 객관적,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있기에 추상명사가 있다, 신, 하나님이란 단어가 없는 민족이 없다, 인가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대적으로 안다, 인간은 식언을 한다. 인간은 무엇을 말했으나 지키지 않는다, 말과 행실이 다르다, 하나님은 말 그자체가 사건이다, 소리가 아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빛이 있으라면 빛이 생긴다, 말씀은 실체이다, 현상너머 실상이다, 하나님의 말은 인생의 말로 생각한다, ** 하나님의 말씀하심이 자기 계시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심으로 사건을 창조하고 만드시는 분이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 지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이 말하는 순간 창조하시고 사건을 만드시는 분이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예수님이 진리 자체이다.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말씀을 체험하면 ? 壎Ⅰ납嶽?새롭게 생겨납니다, 초보신앙인들은 하나님을 상대적으로 생각합니다, 자기가 느끼면 하나님이 계시고 자기가 안느끼면 하나님이 안계신다고 상대적으로 생각합니다, 자기와 상관 없이 절대적으로 계신분임을 알게 됩니다,

[11] 하나님이 성령님으로 말씀하실 때 무엇을 계시하는가?
하나님은 ①하나님 자신과 ② 그의 목적들과 ③ 그의 길들을 보여 주기 위하여 성령님으로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계시이유는? ① 하나님은 내가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믿는 믿음을 갖기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②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알고 내가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목적들을 계시하신다, ③ 하나님은 내가 어떻게 그분만이 하실수 있는 일을 이룰 수 있는지 알기 원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길들을 계시하십니다,

[12] 왜 나에게 계시하는가? 계시의 목적은?
 하나님의 계시는 나를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로 인도하기 위해 계획되어 있다. ? 하나님은 나의 믿음을 성장시켜 주시려고 자신을 계시하신다, ?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들을 계시함으로 나는 그분의 일을 한다, ? 하나님이 그분의 길들을 보여주심으로 나는 그분의 목적을 이룰 수가 있다.

계시의 목적은 미션이다, 하나님이 내앞에 대학생을 전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목적이다, 동시의 나의 목적이다, <네가 나의 목적을 인수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보여 주신 것이 나의 미션이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어떻게 일하나? 내가 좋아하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지? 이런한 태도는 맞는 것일까요? 진정한 서비스와 헌신은 무엇일까요? 내가 주의 종이라면 주인의 뜻에 맞게 사용되는 것이 올바른 것입니다, 내가 짜장면을 잘만든다고 주인은 짜장면을 먹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대접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자세히 보는 영적 관찰력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나? 무언의 메시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같은 것을 봐도 감동받고 부르심을 받는 자가 있습니다, 본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동참 하십시요!

[13] 하나님의 일들이란?
하나님은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제시하십니다, 열왕기상19장15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길을 돌이켜 광야로 말미암아 다메섹에 가서 이르거든 하사엘에게 기름을 부어 아람 왕이 되게 하고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흘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7천인을 남기리니 다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자니라> 왕조를 가라치라는 엄청난 사역을 엘라아가 듣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일곱가지 실체중 첫번째 부터 외워 보십시요? 일-> 관계-> 초청->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공부하면서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느낀 점을 말해보십시요? 전반적인 주제나 방향에 초점을 맞추십시오 > <하나님이 당신을 부르실때 잘 응해 왔습니까? > <바로 지금 당신이 느끼는 영적 도전은 무엇입니까?>

[14] 마음에 와 닿는 성구는?
QT원리는 하나님 앞에 듣기를 소원하는 마음으로 듣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늘 읽던 것도 한단어가 마음에 와서 부딪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에 와 닿게 하셨던 구절이나 성구는 무엇입니까?> <요한복음16장8절-11절 :그가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의에 대하여라 함은 내가 아버지께로 가니 너희가 다시 나를 보지 못함이요, 심판에 대하여라함은 이세상 임금이 심판을 받았음이니라, > 영어성경을 보면 “And when he comes, will convict the world concerning sin, and righteousness, and judgment; concerning sin, because they do not belive in Me: and concerning righteousness because I go to the Father, and you no longer behold Me: and concerning judgment, because The ruler of this world has been judged. 그가 오실때 (성령이 오시면) 세상사람들에게 그가 증거 할 것이다. 죄에 대하여 그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그들에게 무엇이 올바른지 (선악, 정의, 하나님의 공의)에 대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모른다, 공동번역? ?보면 그가 오시면 세상의 그릇된 생각 즉 죄, 정의,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꾸짖어서 바로 잡아 주신다. 꾸짖어서 바로 잡아 주는 것이 없다면 성령의 인도가 없는 것이다, 믿는 자는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므로 이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 죄가 뭔지 모른다. 피상적으로 안다. 그러므로 회개가 없다. 회개를 통해 하나님을 사유하는 감정을 알게 된다, 회개가 없으므로 감격이 없다. 성령의 가르쳐 주심을 못받기 때문이다,

[15] 성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요즘 하나님은 우선적으로 꿈과 환상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이말은 틀린말이다, 오늘날 하나님은 우선적으로 성령님에 의해 성경, 기도, 환경,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QT할때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의 영이다, 세상의 지식은 그림자와 같이 왜곡된 것이 너무많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도전을 받았고, 아인슈타인의 이론도 어떻게 도전을 받을 줄 모른다, 과학적 지식은 상대적이다, 하나님이 주신 은사에는 지식 말씀의 은사와 지혜 말씀의 은사가 있다. 지식은 배우는 것이고 나에게만 계시된 진리가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것은 인류를 향한 하나님 자신의 완전한 계시를 나타내 줍니다, ) 그러나 지혜는 내가 깨달은 것이고 메시지를 받을때 계시된 진리이다.(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성령님이 가르쳐 주기 전에는 절대 그 영적인 진리를 이해 할 수 없다. 성령님은 진리의 영이기 때문입니다.(요한14-17)> ? 성령님은 하나님과 그의 목적을 계시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십니다, ? 성령님은 하나님의 방법들로 우리를 교훈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십니? ? ?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진리를 이해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말씀은 미련한 것으로 보일 것입니다 (고전2;14) ?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우리는 모든 것을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고전2;15) 영적인 진리를 깨닫는 것 자체가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16] QT의 원리? (P142)
다음 그림을 QT원리에 적용하십시요. 이그림은 성령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어떻게 나에게 말씀하시는지를 생생하게 그려볼 수있게 도와 줍니다. 이그림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성경말씀에서 영적인 진리를 계시할때, 그분은 그것을 나의 삶에 개인적으로 적용시킵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만나는 것입니다,
그순서를 요약하면 ①내가 하나님의 말씀=성경을 읽는다, ② 진리의 영이 그말씀을 가지고 진리를 계시하신다,③ 하나님의 진리에 나의 삶을 조정한다, ④ 그분께 순종한다 ⑤ 하나님이 내안에서 나를 통해서 그분의 목적을 이루신다,

기도하면 메시지를 깨닫게 해준다, QT잘하면 영적 수준이 굉장히 높아진다, 보통사람과 다르다, QT세미나를 통해 훈련해야한다, 말씀을 잘 이해하고 그말씀이 내게 주신 말씀의 메시지를 듣고 기도중에 구체화하는 것이다, <사랑하라!> <누구를 사랑하라입니까?> 라고 물으면 <내 아내를 사랑하라!>는 행동지침까지 주시며 인도하신다, 그말씀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추적해야한다, 그리하면 귀로 듣는 말씀을 눈으로 보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 6단원 하나님이 말씀하신다2◆.

[1]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의 일곱 가지의 실체?
1)하나님의 일→2)관계→3)초청→4)말씀하심→5)믿음의 갈등→6)조정→7)순종+경험
1)하나님은 항상 내 주위에서 일하신다. 여기서 주위란 가정, 교회, 학원, 친분관계를 가진 사람들일 수 있다.
또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말한다. 2)하나님은 나와 실질적이고 개인적인 사랑의 관계를 추구하신다.
여기서 1)과2)는 시간적으로 거의 시차가 없다. 하나님이 나와 관계를 가지면서 관계를 도모하는 것 자체가 나
에게 하나님이 일하는 것이다.


3)과4)번도 겹친다. 초청하는 것은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똑같은 사건을 보고 하나님이 인도하심
을 보는 사람이 있고 못 보는 사람이 있다. 영적 수준에 따라 다르지만 보는 사람은 초청 받은 사람이다. 못
본 사람은 초청 받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과 길을 보여주기 위해 성경, 기도, 환경, 교회를
통해 보여주신다. 성령님에 의해서 기도하는 눈으로 성경을 볼 때 보는 것이다. 성령에 이끌림으로 환경을 볼
때 보는 것이다. 성령님에 의해서 기도하면서 성경, 환경, 예배공동체에 참여할 때 들리고 봅니다. 모세가 불
타는 떨기나무를 보았을 때 그것을 통해(매개체로 하여)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에 뜻과 목적을 보았다. 신약
에서 제자들은 몸에 입고 오신 하나님인 예수님을 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지자, 랍비, 목수(요셉)에
아들로 보았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을 보지 못했다.(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인데 무엇을 보여달라고 하
느냐? 라고 말씀하셨다.)떨기나무 사건이나 예수님은 상징적인 것이다.


[2] 오늘 우리에게 매개가 무엇이 있는가?
성경과 성령 그리고 기도이다. 성령은 안경에 렌즈와 같이 하나님이 관점을 주는 렌즈와 같다. 기도는 보는 행위이다. 성령이란 렌즈를 통해 기도함으로써 성경, 교회, 환경을 볼 때 메시지와 함께 하나님을 보게된다.구약시대보다 더 높은 차원의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다. 구약시대에는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신이 임했다.신약시대에 제자들도 성령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성령 받고 예수님은 재조명하고 소급해서 예수님을 다시 발견하여 AD40년에 신약성경에 쓰여졌다. 예수님과 교제할 때 일기를 쓴 게 아니다. 객관적인 기사가 아니다. 시간이 지나서 성령을 받아 다시 은혜 받고 쓴 것이다. 마태복음은 마태가 해석한 것이다. 성령에 인도함을 받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사건을 다시 재조명한 것이다. 성경과 교제를 하나님 관점에서 다시 보아야 한다. 성경을 아무리 보아도 성령에 인도함이 없이 감동함이 없이 보면 한 말씀도 들을 수 없다. 환경도 마찬가지이다. 성령 충만하다라는 말은 기도하는 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성령 충만은 시간적 개념으로 계속적으로 성령에 지배를 받는 상태이다. 계속적? 막?성령과 교제하는 시간을 말한다. 무시로 기도해야 한다. 기도는 간 구와 도고 와 감사가 있다. 기도할 때 깨어있어라. 깨어있어 기도해라. 즉 깨어있다. 와 기도하다 는 같이 간다. 깨어있다는 것은 의식이 있는 것이다. 의식이 깨어있으면 도둑이 내 것을 가져가지 못하는 것처럼 기도하면 영이 지각과 의식을 가지고 분별하고 알게 된다. 깨어있는 눈은 기도하는 이다. 깨어있는 눈으로 성경과 환경을 볼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3] 하나님을 만난 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건은 하나님을 만난 것이다. 하나님을 만난 다는 것은 하나님에 메시지를 들었다는 것이다. 메시지를 못 받았다면 하나님을 못 만난 것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형상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다. 말씀이 들렸다는 것은 성령을 받은 것이며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보여졌다는 것 자체가 초청된 것이다. 오라는 메시지를 듣지 않았어도 보여진 것은 하나님이 부른 것이다. 3)하나님의 초청과 4)하나님의 말씀하심은 하나로 매치되어있다. 1)하나님의 일과 2)하나님이 사랑의 관계를 개인적으로 추구하시는 것은 매치되어있다. 관계자체가 하나님의 일이다. 관계의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이 교회, 성경, 환경을 통해 무엇을 보여주실 때 부름 받은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항상 나를 믿음의 갈등으로 몰아넣는다. 내가 왜 이걸 받았나? 고심이 되고 마음이 찔린다. 강도 만난 사람에게 선한 사마리안 인은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을 본 것이다. 그러나 성경학자와 래위는 단지 한 사람을 보았을 뿐이다. 여기 있는 이 사람이 헐벗고 굶주릴 때 도와 준 것이 나를 도와준 것이다. 라고 최후의 심판 때 하나님! 이 말씀하신다. 사건을 통해 주님을 보고 어떤 사람은 주님을 못 봅니다. 하나님의 도전 앞에 나는 여전히 준비가 안됐다. 하는 게 많아 바쁘다. 라고 내 문제를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갈등이 왔을 때 내가 이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그 감동을 소멸시키면 하나님은 떠나십니다. 하나님이 떠나게 되면 기도안하는데도 전혀 고통이 없게 됩니다. 죽은 것과 진배없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믿음의 갈등 속에서 조정이 이루어지고 하나님을 따라갈 때 놀라운 여러 가지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4]하나님께 속한자는?
요한 복음 8장 47절(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 하였음이로다) 요한 복음 5장 19절(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주님은 듣고 보고 그 일에 동참하셨습니다. 당신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참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거라사 지방을 향해 배를 타고 갈 때, 저쪽으로 건너가서 피곤해서 자야하는데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죽은 자를 회복시켜주시는 것을 보았음으로, 하나님이 일하심을 보여주었음으로 그 일을 하신 것입니다. 또한 배에서 풍랑이 일어날 때 예수님은 주무셨습니다. 무슨 배짱인가? 거라사 지방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았음으로 예수님에게 풍랑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 너머의 시간을 봄으로 두렵고 힘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고치시는 사건을 봄으로 중간과정에 어떤 일이 있어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사건을 다시 보면 하나님이 움직임에 따라 센시티브 하게 일하십니다. 간음한 여인을 앞에 두고 땅 바닥에 글을 쓰시는 일련의 시간에 하나님과 잠깐 시간을 갖고 교제하며 움직이시는 것을 볼 수있습니다. 그게 습관화되면 누구나 됩니다. 일상생활을 거의 내가 하고있으나 사건이다 판단될 때는 즉각 기도체제로 가야 합니다. 24시간 무시로 기도해야되나 그게 잘 안됩니다. 갑자기 심방을 왔을 때 말씀이 요청될 때,! 누가 와서 예고 없이 상담할 때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무슨 말씀하시기를 하시기를 원하는데 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카운슬링 기술에 빠지면 하나님의 음성보다 그 기술에 얽매이게 됩니다. 목회자로서 성령께 귀를 기울이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겸손한 자세가 영성입니다. 그런 자세를 가지는 것이 영성훈련입니다.

[5]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방법? 5 과 6과: 복습 123페이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먼저 지적으로 알고 몸에 베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 다른 방법으로 말씀하십니다. 천사들을 통해서, 환상을 통해서, 꿈들을 통해서, 우림과 둠밈을 사용해서, 비유를 통해서, 세미한 소리를 통해서, 기사와 표적들을 통해서, 그리고 기타 다른 방법들이 있습니다. 환상과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주관적인 신앙체험을 객관화하면 이단이 됩니다. P124,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에게 독특하게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심은 개인적으로 독특한 것이기 때문에 떨기나무 본 것을 객관화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 자신이 떨기나무입니다. 오늘날 교회, 환경, 사람이 떨기나무일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하심은 확실함이 옵니다. 이게 없으면 무시하십시오. 헷갈리는 꿈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주신 것은 클리어 합니다. 두루뭉실해서 긴가민가하지 않습니다.

[6] 천사를 생각해 보셨습니까?
천사는 영적 존재로서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존재합니다. 크리스천들이 천사의 도움을 최대한 받는 것이 특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 영적 존재를 쓰시고 보내셨습니다. 천사가 우리보다 높으냐? 낮으냐? 우리보다 높고 낮은 차원이 아닙니다. 천사의 역할과 우리의 역할은 다른 것입니다. 우리가 천사를 위해 할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우리를 위해 실제로 일을 많이 했습니다. 하나님이 시켜서 한일이니 천사가 일했다. 라고 말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천사에게 기도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다른 사람의 영을 천사가 지배합니까? 예수님은 천군 천사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요한계시록에도 천군 천사에 대해 언급했습니다. 카톨릭은 천사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하나 개신교는 하나님과 직통대화를 강조함으로 특히 무시되어왔습니다. 성령을 통해 직접 은사를 받는다 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적 종들을 통해 역사 하시고 사탄이 잡귀 신을 통해 역사 하는 것처럼 천사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수태고지와 같은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천사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복음의 메시지가 ? ?때 가브리엘 천사가 일하는 것입니다. 천사가 아이덴티티가 있습니까? 천사도 자유의지가 있음으로 하나님의 일을 거부할 수있습니다. 루시퍼 천사는 찬양대장인데 세상의 것을 하나님께 올리는 천사였는데 타락해 사탄이 된 것입니다.

[7] 하나님과의 만남?
예수님까지도 현상입니다. 눈(육안)에 보이는 것은 현상입니다. 현상 넘어 실상을 보는 것이 믿음이요, 영적인 눈입니다. 영성이 흐리므로 못 보는 사람이 많습니다. 틀림없는 사건을 못 봅니다. 예수님은 천군 천사를 보는데 제자들은 못 봅니다. 못 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8] 성령으로 말씀하신다(129P)
성령은 깨닫게 하십니다. 성령은 지식의 영과 지혜의 영을 주십니다. 성령의 인격성과 사역을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오면 모르던 것을 알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그 안에 있는 메시지를 보는 것이 깨달음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실상을 볼 수 있는 렌즈를 주십니다. 마이크로 렌즈로 보면 안보이던 세균이 보이고, 망원 렌즈로 보면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던 것이 클리어 하게 보입니다. (P130) 성령을 통해 기도할 때, 교회 설교를 들을 때, 환경에서 사건이나 사람을 볼 때 올바르게 해석하는 눈을 줍니다. 인간적인 패러다임에서 하나님의 시각과 하나님의 눈을 갖게 합니다. 그 결과 영적인 패러다임을 갖게 됩니다.

[9] 계시란(134P)
계시란? 주관적인 말입니다. 몰몬교는 교주가 계시를 받았다고 몰몬경을 썼습니다. 말씀 주시는 것이 지금도 있는가? 잘못된 계시로 본다. 성경을 통해 주신 글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보는 것이다. 구약의 선지자에게 주신 것처럼 다시 쓰는 게 아니다. 있는 성경을 재해석하고 나에게 준 메시지를 보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신의 목적과 길을 나에게 보여 주는 것이 계시이다. 베일에 싸여 있는 것을 보이게 벗기는 것이다. 이게 없는 사람은 영적인 소경이다. 묵시가 없는 자는 망한다. 하나님이 주신 그 때 그 때마다 가르쳐 주신 것을 보지 못하는 자는 영적 소경이다. 하나님이 목적과 길을 보여 주는데 성경을 통해서 이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 기도이다. 성령의 감동에 따라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다. 메시지가 오니까 너무 exciting하다! 말씀을 통해 깨달음이 온다. 청년 때 순수하게 성령께 사로잡히면 말씀을 열기만 하면 너무 너무 메시지가 막 나온다. 순수할 때 신앙이 좋다. 그러나 순수에는 미숙이 따라온다. 성숙으로 가면 순수성을 잃기는 하지만 또 다른 차원의 하나님과 교제하며 갖는 게 있다.

[10] 분노(화)를 소화하는 방법
마태 복음 7장 1절-4절<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는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분을 내어도 화를 내지 말고 해가 질 때까지 분을 품지 말라!> 욕을 하면 상대방과 나에게 동시에 상처가 온다. 운전하다가 욕이 나오는 것은 육적인 자아이다. 사탄이 아니다. 성령을 거스르는 것은 육적인 자아이다. 사탄은 속삭이고 넘어뜨리고 거짓말해서 속아 넘어 가게 한다. 영으로 육을 죽이면 살리니!
(CHO;어둠은 빛이 들어오면 자연적으로 사라진다. 분노함, 무서움, 음란함, 두려움, 육적 고통, 이러한 것들을 의식적으로 잊으려고 하면 할수록 더 생기는 것이다. 십자가에 보혈의 피와 성령의 불을 생각할 때 영적인 것으로 육적인 것을 이기게 된다. 우리 마음속에 음란함이나 두려움이 염려가 생길 수 있다. 그러나 그것에 빠져서는 안 된다. TV의 채널을 돌리듯이 십자가와 성령에게 채널을 맞춰야 한다. 성령은 나를 쓰실 때 과거의 모습대로가 아니라 완전히 나를 재창조하신다. 우리는 화낼까? 참을까? 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하면 예수님이 직접 일하신다. 장애물보다 내가 영적으로 높아지면 더 이상 그것은 장애물이 될 수 없다. 그 장애물이 제거되지 않더라도 나에겐 분노 대신에 평안이 찾아온다. 미움을 참는 것이 아니라 그 영혼의 불쌍함을 보게 된다. 사랑을 전제로 하지 않은 비판이나 화냄은 나의 영적 교만일 뿐이다. 6,25 직후에 한 아이가 성당을 짓는 공사장에서 못을 훔치다 신부에게 잡혔는데 그 신부는 야단치기는커녕 오죽하면 그런 일을 했겠냐 며 필요한 만큼 못을 더 가져 가라고 했다! . 그 소년은 그 신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고 그는 그 일로 결국 신부가 되었다. )

[11] 육적 자아를 어떻게 죽이나?
육을 제거하기 위해 절에 들어가 고사리를 먹고, 찬물에 들어가고, 산에 들어가 나무도 하고, 겁이 없이 밤에 산을 돌아 다녔을 정도로 육적 자아가 나를 도전했다. 육적 자아를 어떻게 죽이나? 네거티브(NEGATIVE)한 방법과 포지티브(POSITIVE)한 방법이 있다. 네거티브한 방법은 금식을 통해 육을 무력화하는 것이다. 한국사람은 고행의 방법을 많이 쓰나 그 때 뿐이다. 주님이 가르쳐준 것은 포지티브한 방법이다. 로마서 8장에 영역으로서 육을 다스 리라 고 했다. 영역을 키우면 육이 와도 분별되고 분별되니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 아버지를 찾게 된다. 사도바울이 평생을 마음은 원이로되 육에 약하 도다. 마음속에서는 선을 행하나 육은 행치 않는다. 로마서 7장 18절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인다.>성령으로 처치해 주시옵소서! 분노는 피해라! 그리고 기다려라! (GIM:주변 사람 때문에 화가 났으나 참았다. 토요일 날 기도원에서 그 분냄을 주제로 기도하자 이런 음성을 들었다. “너 내가 그 사람을 탓하지 않는 것을 아느냐? 너의 분냄과 화냄을 절제하라고 내가 역사 했다. “ 그 다음 월요일 날 그 사람과 관계가 아무 일 없이 진행됐다.! 그 사람이 더 사랑스러워졌다. 하나님 말씀에 의지하면 해결해 주신다.)

[12] 정의도 무조건 참고 기도만 해야 하는지?
돌을 들 때가 있고 놓을 때가 있다. 지식이 지혜보다 아래이다. 지식만 있는 자는 미련한 자이다.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중요하다. 지혜로운 자는 적은 능력으로 큰 일을 한다. 적시적소에 일한다. 예수님은 때가 되기 전까지는 사람에게 잡히지 않았다. 다만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드려라 라고 말했을 뿐이다. 성령은 지식의 말씀 은사와 지혜의 말씀 은사로 나타난다. 둘 다 구해야 한다. 알지 못하고 지혜로울 수 없다. 알지만 포크레인으로 아무 데나 파면 안 된다. 이 시대에 우리가 예수이다. 우리는 예수 적 존재이다. 성령이 내 안에 거하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성령의 지배를 받았고 하나님이 쓰신 분이다. 분노할까? 기도할까? 를 결정하기 전에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를 생각해 봐라! 나무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영혼의 불쌍함을 느낄 때까지 그를 위해 기도해야 한다. 남의 잘못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영적 지식은 되나 지혜롭지 못할 때가 있다. 잘못한 다고 말하면 대부분 자기 방어를 한다. 독립문에 있는 해태 상 때문에 영적으로 자존심이 상해 올라갔다. 그것엔 아무 의미가 ? 愎募?말을 들었으나 기도할 때마다 본문이 나온다. 결정적인 것은 내린다는 선포를 들은 것이다. 결국 토요일 날(11월 20일) 내려 왔다. 싣고 가버렸다. 지혜가 필요했다. 저분이 실수를 했지만 본의는 사탄이 아니다. 결국 사탄에게 이용당한 듯 하다. 내가 회개했다. 내가 기도 안한 게 문제이다. 강하면서 완곡하게 말씀(안 내리면 몸에 이상이 옵니다.=협박)을 하니 알아들으셨다. 결국 내리셨다. 만약 부딪혔다면 내가 이겨도 상처뿐인 영광이다. 중학생인 아들이 금식을 했다. 새벽 3시 반에 운동을 한다고 나가더니 교실마다 방을 붙였다. 해태와 기린상의 뜻과 유래 선지자의 글을 실어서 방을 붙였다. 아비인 내가 부끄러웠다.

[13] 하나님이 내 기도와 다른 방향으로 역사 하실 때 ?p154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고 더 사랑하시는 하나님 구하는 것을 넘치도록 능히 하시는 하나님 구하는 것 이상으로 예비하신다. 우리가 기도했던 시간보다 연장 될 수 있다. 예수님은 나사로가 있는 곳에서 이틀을 더 계셨다. 사흘 되면 부패가 완전히 이루어진다. 냄새가 나나이다. 라고 말할 정도로 완전히 죽었다고 판결되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할 수 없는 시점에서 하나님은 시작하신다. 내가 노력하다 한계에서 멈추었을 때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신다. 하나님이 홀로 영광 받으시길,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이 어떤 때에 역사 하는지를 알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적절한 시간을 스스로 선택하신다. 기도가 됐다 하면 받은 줄로 믿으십시오. 집 달라 하면 그 모양을 구체적으로 익도록 기도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꼭 집어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 안 되는 사람이 문제이지 기도되는 사람은 문제가 아니며 시간 문제입니다. 기도에는 하는 기도와 되는 기도가 있습니다. 하는 기도는 5분하면 5시간 한 것 같고 되는 기도는 5시간 걸렸는데 5분 같다. 되는 기도는 받은 것과 같습니다. 기도가 안 되는 사람 뒤에 가서 목회자가 옆에서 도와! 줍니다. 기도 안 되는 사람을 위해 손을 얹어주며 중보기도 해야 됩니다. 기도 중에서 환경을 보아야 합니다.

[14] 환경이 혼동될 때? (p165)
응답하시는 하나님 내가 기도한 것보다 더 큰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전제로 해서 기도해야 됩니다. 환경을 보면, 파도를 보면 하나님이 안 보입니다. 문제에 집착하면 문제에 빠집니다. 문제가 커지고 자기는 작아져 문제에 빠집니다. 다 털고 하나님에게 초점을 맞추십시오. 십자가 밑에 내려놓고 주님이 하십시오. 며칠 고민했는데 내 마음대로 하면 실수할 것 같아서 주님께 맡깁니다. 술, 여자문제가 있는 남편을 둔 여자가 하소연합니다. 기도하면서 말씀을 받아 전했습니다. ‘가만 안 놔두겠다’ 라는 말씀인데 그 여자도 문제가 있습니다. 남편 문제가 해결되면 자기 문제도 다 해결될 줄 믿으나 남편의 문제 해결 전에 자신의 치유가 필요합니다. 자기의 못된 습관 버릇을 고치는 것보다 자기 건강을 먼저 고쳐야 합니다. 자기 상태는 안 고치고 문제만 고치려고 합니다. 상처받아 죽을 라고 약도 갖고 있다고 하니 잘 되었다. 10년 해도 안되니 약봉지 놓고 죽을 용기를 갖고 기도해 봐라! 기도해도 응답이 없으면 죽는 게 낫다. 하나님은 꼭 계신 데, 하나님께 걸어봐라! 남편 문제 보다 자매 건강이 더 중요합니다. 자매의 심령의 문제가 치! 유 되야 합니다. 기도가 되면 소망이 있습니다. 남편이 불쌍해질 때까지 기도하면 소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도가 쉬운 게 아닙니다. 죽기를 각오한 사람이 기도도 못합니다. 첫날은 5분도 못 있고 가더라고요...둘 째날 손 얹어 주고 기도하니 오래 기도 하더라고요. 기도가 하나님 앞에 우는 거야. 울면 되는 것입니다. 환경에 빠져 있으면 나와 하나님 보는 게 중요합니다. 자기 문제조차도 객관화 시켜야 합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주면 하나님이 그 원인을 보여주며 실마리가 풀립니다. 영적으로 해석하고 응답할 필요가 있습니다.

[15] 영적인 표징들 (p171)
구약시대 노아가 물이 다 빠진 후 돌단을 쌓고, 여호수아가 요단을 가르고 돌을 쌓았듯이 우리들은 그런 표징이 있는지? 영적 명세서 (p175)김춘근 교수의 영적 표징은 콧수염입니다. 하나님이 역사 하신 것에 대한 기념비 즉, 외적 증거, 확증을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있을 때 기념비를 마음속에 쌓으면 그것이 쌓여 신앙이 커갑니다. 독립문 사건도 영적 싸움이었고 하나님이 역사 하셔서 작은 사건을 통해 학원에 어떤 바람이 일어날지 좋은 사인이 된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 할지 내다볼 수있습니다. 기념비적인 것입니다. 이제까지 그런 일이 없었습니다. 교회 빼놓고 다 홍 장로님이 다 직접 지었습니다. 목사가 중심이 되어 교회를 지으니 다른 사람이 놀랐습니다. 영적 표징이 있는데 기념비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16] 믿음의 갈등? (p189, p178)
에베소서 4장 15절-16절 교회는 마디가 있습니다. 교회는 사람간의 관계입니다. 몸에도 어깨가 있고 혈관도 심장으로부터 마디가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어떻게 영적 지도자와 연결되어 있느냐가 성장할 수 있느냐? 없느냐? 의 관건이 됩니다. 줄 서기를 잘해야 합니다. p

[17] 믿음의 갈등을 푸는 네 가지 원리
1)하나님과의 만남은 믿음을 요구한다. 2) 하나님과의 만남은 하나님과의 크기이다. 3) 하나님의 계시<초청>
에 대한 당신의 반응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드러낸다. 4) 진정한 믿음은 행동을 요구한다. 떠오르는 기도 제목들을 써놓으시고 교회 문제에 있어서 갈등을 갖고 있는 사람은 기도 제목으로만 갖고 다른 사람과는 얘기하지 마십시오. 교회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내어드려라!


[8단원] 하나님께로 조정하라

(마태복음11장28-29절)
“수고하고 무거운 집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태복음28;19~20)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니 하시니라.”

[1] 가정교회( Cell Church)의 리더 란 ?
Cell Church(가정교회)란? 성도들은 목회를 해야 행복한 사람이 됩니다, 주님의 지상명령은 <가라- 모든 족속을 제자 만들고- 성부 성자 성령이름으로 세례주고 - 가르치고- 가르친대로 살도록하게 하라>입니다. <너는 가서 제자 삼아라!> 이것은 모든 교인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 사역을 하도록 여건을 구비시켜 주는게 필요하다. 동질그룹으로 그룹핑한후 집에서 모여 가정교회를 운영해야합니다. 구리스킬라와 아쿨라는 바울과 같이 따라 다니며 텐트메이커를 하며 사역의 동역자로 일했습니다, 나중에 일은 그만두고 가정을 오픈해 교회를 열었습니다. 가정교회를 섬기는 법은 이론으로만 해서는 안됩니다. 리더가 치부를 오픈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오픈해서 나누어야 합니다. 리더가 되게 공부도 다양하게 해야합니다. 기초교리과정도 5과정으로 나누어 언제나 할수 있게 공부되어야 합니다, 신구약 개관도 공부해야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성이 더 중요합니다, 기도가 되지 않으면 영적리더가 될 수 없습니다, 말씀실력과 영적 실력이 같이 가야 합니다, 영성은 교육이 아니라 훈련입니다, 몸으로서 실천으로 ! 배우게 됩니다.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교제가 중요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을 하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 하시려고 하는 일들을 하기위해 이교제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도 좋습니다. 2001년 부터 리더는 자기그룹을 이끌고 목사는 리더들만 미팅합니다, 심방도 리더가 합니다. 사랑의 공동체훈련에도 참여하길 바랍니다. 일산의 유영근목사의 교회가 주축이 되 <사랑의 동산>에서 3박4일간 훈련을 합니다. 섬김이가 극진히 섬겨 사랑의 공동체를 느끼게 합니다. 내생활을 하면서 영적으로원숙하게 됩니다. 학교선교를 위해서 이책을 배운후 가르쳐야합니다. 성경공부그룹을 양산하는게 아닙니다. 생명이 없습니다. 교회가 생명입니다. 교회성이 있어야 에수님의 피가 통해야 생명이 있습니다. 그룹멤버들이 서로 솔직히 자기 문제를 내놓고 고민할때 은혜가 됩니다. 남녀가 따로 구성되야 내놓을 수 있습니다. 대학을 교회로 보고 우리자신을 셀(cell)로 보고 시작해 퍼저나가면 목자로서 확신시켜 나가야 영적인 파워가 나타납니다. 행적력이나 기관이 생명을 낳을 수 없습니다. 생명을 낳으려면 생명이 되어야 합니다. 내말이 곧 생명? 甄? 생명의 말씀이 이뤄지면 시너지 효과가 일어납니다. 연약한 것 두개가 합쳐져 건강을 회복합니다. Cell Church의 매력은 그것입니다. 셀처치는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건강한 교회로서의 회복이 요구됩니다. 뉴텍스트먼처치(신약교회)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생명력이 흐르는 교회,셀처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cell Church의 리더는 교사가 아니라 영적 아비의 개념입니다, 영적으로 증손자까지 낳아야 합니다.

[2] 공부하면서 성경적으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조정하는 것이 힘든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나 결단과 순종은 왜 힘들까요? 결단은 순종과 의미가 같습니다. 믿음과 맹목적으로 믿는 이단과 차이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찾고 거기에 맞추는 영성훈련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반복되어야 합니다.

<2>하나님 뜻을 어떻게 아나요? 같은 선교마인드를 가지고도 A교회와 B교회중 어느곳에서 사역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일까?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어느분은 <기도하다 제일 처음 느낌이 오는데 가겠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내가 너희에게 이성적 판단, 지성적 자유의지를 주었다.> 물건을 살때 어떤 것을 살까요?라고 기도하는 것은 옳은 것일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로버트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이성적 판단을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이성적 판단도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이성적 분별과 영적분별이 동시에 되어야 합니다.. 어느 순간에 닥친 사건을 하나님이 도전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영성훈련은 감훈련입니다. 쓰다보면 통로가 명료해 집니다. 순간적으로 감이 옵니다. 하나님의 도전이 오면 그 수준으로 키워 줄실것 인가? 혹은 내가 그만하니 시키는 것일까요? 이것이 분별될때 몸을 던져야 합니다. 분별이 안올때는 할때가 아닙니다. 할만하시고 영적으로 프로모트(Promote)하는 것을 느꼈으므로 결정해야합니다.

<3> (Kim; 교회일을 결정할때 교회가 이방향으로 나가라고 영적으로 이끌고 나가는 분은 누구인가요? 하나님이 그방향으로 나가라고 느끼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기도해봐야 합니다. 기도하고 기다려야합니다.) 상식에 어긋나도 강력하게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이 불러 갔으나 더욱 사역에 어려움이 많자 하나님에게 원망하며 기도합니다. 홍해가 막혔을때 사람과 논쟁하며 해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먼저 무릎굻고 기도했습니다. 홍해를 건넌 사건후에 모세의 믿음은 성장했습니다.


<4> (Kim;신학을 공부하면 무엇이 도움이 되나?) 박사보다 사역이 우선입니다. 하나님께 헌신하고 영적인 성장이라는 하나님이 주신 목적을 바꾸면 안됩니다, 그게 목적이면 신학교에 갈 목적이 적어집니다, 그러나 신학공부을 선택하는 것은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신학교 1년은 부흥사 2년은 목사 나올때는 평신도가 되어 나온다고 합니다, 신학교는 학문하는 곳이지 영적도장 (수도원)이 아닙니다, 은사와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하나님의 일을 효과적으로 해야 합니다, 교수직이 더 필요한 사람이 있고 사역자가 되는 경우가 찾아옵니다, 목사가 안되려면 신학대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좋은 교회를 통해 훈련을 받는 게 필요합니다, 신학교는 훈련하는 곳이 아니라 학문성이 너무 강합니다, 학생들에게 전도하는데 이곳처럼 자유로운 학교는 없습니다,(하나님의 음성이 떨어지면 국내대학이든 외국대학이든 어디든지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교회의 어떤 직책을 그만둘때 저는 걱정했지만 그목사님의 대답은 명료했습니다. 너 없어도 돼! 너가면 하나님이 채워 주실 것을 믿어! 이말이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영역까지 붙들고 ? ?湛?지려고 합니다. (Cho;영국으로 박사공부를 하러 가려고 했을때 학교로 부터 그 계획을 거부 당했을때 절망했지만, 오히려 직장을 지키면서 방학때만 가서 공부 한 것도 더 좋은 결과였습니다.좋은 지도교수를 만났고 E-mail을 통해서 작품을 주고 받으며 공부하고 있고, 1차 과정은 잘통과 했습니다.)

[3]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마태복음11장28-29절)<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멍애란 무엇입니까? 유대인의 농사법은 밭을 갈기위해서 소두마리를 십자가 같은 횡목으로 끌고 갑니다. 어미소가 새끼를 낳아 중소가 되어 달구지를 끄는 것을 배울때 어미소 옆에서 배우게 됩니다, 어미를 따라가며 배우게 됩니다, 어미소가 키가 크고 새끼소는 작고, 그러므로 하중이 어미소에게 갑니다. 내멍애를 메고 내게 배우라. 키큰사람과 작은 사람이 봉체조를 할때 키큰 사람만 죽습니다. <이사야 53장5절><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 죄악을 인함일라 그가 징게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책찍을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그가 찔렸고 십자가를 졌어요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큰 십자가를 지고 가는게 아니라 매달려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큰의미가 있는 말입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 발만 마추어 따라가! 면 힘이들지 않습니다, 내가 해보려고 하면 인생의 무게가 나에게 옵니다. 내욕심이 아닌데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사람은 왜 그럴까요? 주님의 뜻과 주님과 보조를 마추지 않았으므로 힘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질고를 지는데 내가 떠맡으려고 하니 힘만 드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하는 일을 따라가면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나는 흉내만 내면 됩니다, 나 자신을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지도 않고 예수님이 드러나지도 않을 일을 Over를 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곧 Burn out됩니다. 하나님께 열납되는 일을 해야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본질적인 일을 우선적으로 해야합니다.)

[4] 하나님께 덕이 되는 신앙은?
하나님은 인간의 관계를 무시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성품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특별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세상은 본질적으로 하나님 일을 거부합니다. 이 세상안에 내 가정도 있습니다. 타협하는 것만이 최선이 아닙니다.. 이교회에 제가 처음 왔을때 기도하면서 울분이 생겼습니다. 달래주고 닦아주고 그것만이 잘하는 것이냐? 교회가 이모야인데! 기본적인 교회성을 안가진 교회이다. 좋은 것만이 좋은게 아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인 요한에게 <죽은자는 죽은자에게 맡기고 나를 따르라> 요한은 12제자중에 유일하게 순교를 당하지 않은 자이며, 예수님은 자신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요한에게 <네 어머니이시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어머니를 섬기는 효심을 보여 주었지만 요한이 자신의 아버지의 장례를 지내려고 할때 죽은자는 죽은자에게 맡기고 나를 따르라라고 말하는 상대적인 길을 제시했습니다. 예수님이 볼때 나머지 사람도 영적으로 죽은자였습니다. <너는 살아있고 그들을 구원할 사람인 너는 나를 따르라>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볼때 옳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인간적 도움까지도 끊어야 합니다. 성화중? ?어깨에 양을 메고 가시는 예수님 그림이 있습니다. 다리몽둥이가 부러진 양입니다. 불러도 안오는 양은 독립심이 강한 양이며 고집이 강한 양입니다. 크기전에 다리를 부러뜨리고 보목을 대고 업고 다니시는 것입니다. 다리가 낮기까지 그양은 목자의 발밑에서만 왔다 갔다 합니다. 진짜 징계는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10단원] 하나님의 뜻과 교회?

(로마서12장5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안에서 한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마태16;18)
교회는 그리스도의 창조물입니다
(고전12;118)
그분의 뜻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십니다


[1] 교회란?
(p299)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어떻게 기능을 발휘할까요?. (마태16;18) ? 교회는 그리스도의 창조물입니다. 그분이 자신의 교회를 세우시고 (고전12;118) 그분의 뜻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십니다 그러므로 각 지체는 하나님의 교회에 두신 지체를 서로 서로 존중해야합니다. (고전12;27) ? 교회는 많은 지체를 가진 그리스도의 살아있는 몸입니다. 교회는 건물이나 조직이 아니라 살아있는 몸(그리스도) 안에 세워진 사람들의 무리 (모리)입니다. 사람을 하나의 세포로 본다면 세포가 살아있지만 몸 밖으로 나가게 되면 죽게 되며, 세포는 몸안에 있을때 생명을 유지합니다, 사람도 교회안에 있을때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며, 교회안에서 피차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엡베소서 1;22) ? 교회는 몸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 유일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교회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리스도의 지휘와 주권하에 있어야 합니다. (마28;18-220, 고후5;17-20) ? <교회는 이세상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구속의 목적을 이루어 나가는 사역을 그리스도와 함께 담당하고 있습니다> (고전2;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인 것입니다. .

[2]교회의 비밀?
(에베소서 4장 15- 16절) ? <그에게서 온 몸이 각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고린도 전서 12장) 모든 지체들은 서로 서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모든 지체들은 서로를 필요로합니다, 사도바울은 말하길 <나는 물을 주었으나 자라게 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라> 예수님께서는 온몸의 마디를 통해 도움을 얻고 자랍니다. 반면 예수님의 영적 공급이 없으면 지체는 살수 없게 되 있습니다. 예수님이 교회에 영적 공급을 하는 과정은 무엇일까요? 지체들의 연락과 상합을 통해서 입니다. 연락이란 일방통행이 아닌 지체들끼리 서로 왔다 갔다하며 소통한다는 것입니다. 상합이란 어려울때 합치는 것입니다. 세포가 약할때 건강한 세포가 합치고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분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생명력을 갖는 비밀입니다. 교회의 지체가 그리스도로 부터 공급을 받아야 생체가 됩니다. 지체끼리 연락과 상합하는 순환이 잘되야 생명이 건강하고 자랍니다. 연락과 상합의 상태를 한마디 단어로 말하면 사랑입니다. 즉 사랑의 원리로 연락하고 상! 합이 되는 것입니다, 연락하게 하는 근본적 동기는 자석이 끄는 것과 같은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사람들이 거룩하고, 순결하고, 하나됨을 보여주고. 서로 사랑하기를 원합니다.)

[3]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는 것?
(기차철로의 비유; 하나님은 우리 몸에 많은 다른 감각기관과 지체를 주었습니다. 각지체가 할일을 할때 온몸이 제대로 움직일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다수결로 결정하거나 갈등을 모른 체하고 넘어가거나 한 감각기관을 믿고 다른 기관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모든 지체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조언을 들어야합니다. 그럴때 교회는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습니다) 지체가 영적 공급을 받는 올바른 과정은 마디로 부터 도움을 얻고 연락하는 것입니다. 각지체의 분량대로 움직이는 것입니다. 각지체가 자기 역활을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자라는 것입니다, 무교회주의자들은 개인에게 임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너무 강조해서 개인에게 역사하는 것과 교회에 역사하는 것은 다르다라고 말하기도하나 구분하기 어렵고 그들도 완전히 교회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하나님께 방향을 지도 받는 것은 결국 교회 마디를 통해 말씀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분석하고 쪼개고 분리해서 보려는 것은 헬라철학입니다. 헬라개념에서는 인간을 영과 몸(혼.육)으로 나누어 보려고하나 나누면 인간이 아닌 것입? 求? 히브리적 사고는 통합개념입니다. 말씀을 쪼개서 전하는 사람도 있으나 쪼개면 말씀이 아닐 수 있습니다. 덩어리의 말씀 능력을 상실할 수도 있습니다. 통합적으로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양자가 다 필요합니다,

[4] 마디와 지체의 관계?
마디와 개인의 관계에서 마디(목사)가 말씀을 받는 방식과 지체(개인)가 말씀을 받는 방식은 구분되 있을까요? 개인은 교회의 목사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나 교회 목사 혼자서 말씀을 받아서 밀어 붙이는 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교인들의 공감대가 있어야 합니다.(오순절 성령의 강림이후로, 하나님은 모든 믿는 사람의 속에 거하시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지체가 다른 지체를 필요로 하도록 한몸인 지역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모든 믿는 사람은 하나님과 직접적으로 교제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몸안의 모든 지체에게 말씀하실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뜻을 계시 하시는데 있어서 온몸을 통해서 일 하실수 있습니다. 한 개인이 한 지역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다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모든 지체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조언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영적인 사람도 항상 성령 충만 하지 않습니다. 육적인 사람도 잠시 은혜 받으면 영적일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은 지속적으로 영적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10% 미만만 성령의 지배를 받습니다, 기다려서 성령의 감? 오막?이끌어 가기가 힘듭니다, 예를 들어 믿음의 예산은 수입을 생각해서 짜기 보다는 지출을 생각해서 짜야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일하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개인의 의견들은 중요치 않고, 하나님의 뜻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성령이 온사람을 감동해서 하나로 묶어주십니다.(교회는 몸전체가 머리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을 이해 할때,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교회는 말씀,비젼에 따라 움직이는데 어떤 한사람에게 말씀과 비젼이 왔을때 그사람은 꼭 교회에 이야기 해야합니다. 그러나 저마다 은혜를 받아 신령하다고 하는데 결과가 다 다를경우 어느게 진짜냐? 하는데는 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교회가 한몸으로 기능을 발휘하지 않을때 문제가 생깁니다) 하나님은 지도자에게 그분이 무엇을 하고 싶어하시는지를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때 지도자는 교회에 그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느끼는 것을 증거합니다. 지도자는 무조건 자기를 따르라고 회중에게 물어 볼 필요가 없습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시간표에 맞추어 자신의 뜻을 확인 시켜줍니다. (로마! 서15;5-6, 고전1;10)<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고 계셨고, 우리에게 같은 마음 과 같은 뜻을 가져다 주시려고 임재해 계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시간까지 기다려야합니다>

[5]개인영성이 개발 되려면?
영성은 우리영에 하나님의 영(성령)이 채워 지는 것입니다. 영성을 높이기 위해서 개인의 영이 동일한 성령으로 항상 지배 받도록 개발해야합니다. 교회안에서 개인들이 연락하고 상합하는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코이오니아 관계를 이루는 것입니다. 개인이 성령충만하면 이것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 나타나고 교회가 성장되어야 합니다. 성령충만하면 자기성장과 교회성장이 같이 가야 합니다. 종교적 개인주의, 이기주의, 독단주의때문에 교회 성장이 안되면 개인성장도 안됩니다. 개인영성이 개발되려면 영적 넷워킹이 되어야 합니다. 연락하고 상합하는 것은 사랑안에서 하나되고 참된 것입니다.<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다. 하나님이 주신 모든 지체가 함께 있지 않으면 그몸은 온전치 않다. 각지체는 서로 서로 똑같이 걱정해주고 돌보아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온몸의 유익을 위해서 각 지체에게 각각 다른 임무를 주셨다)

[6] 교회의 본질은?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한몸으로 어떻게 기능을 발휘해야 하는가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가정과 교회를 직접 만들어 주었습니다. 오늘날 사단이 가정과 교회를 헐려고 합니다, 특히 가정파괴가 심각합니다. 오늘날은 결혼도 하지 않고, 이혼도 많이 합니다,. 필요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계약결혼도 있습니다. 교회의 본질은 피와 생명이 흐르는 곳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 성장은 따라오는 것입니다. 교회를 운영한다고 교회가 아닙니다. 예배형식을 갖추어 모인다고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몸이므로 피가 흐르고 생명이 흐르고, 영이 흐르는 사랑의 공동체로 회복되지 않으면 본질을 상실한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하나님의 3가지 관심사? 1) 몸은 그리스도 중심적이어야 한다. 2) 교회가 한마음으로 연합되어야한다. 3)사랑이 넘쳐냐한다: 지체들이 서로를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이 사랑해야한다.)

[7] 교회성을 담는 그릇은?
(내 인생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그들이 하나님을 의미있게 만나게 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피와 생명이 흐르는 교회의 그릇을 만드는 것이 셀(Cell)입니다. 성도끼리 서로 마음을 오픈하고 아파하고 공감하고 기도하는 사도행전교회가 되려면 대그룹으로는 될 수가 없습니다. 동질그룹이 되어야 합니다,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모여야 합니다. 진정한 교회성은 지체끼리 서로 마음이 오픈되어야 합니다. 공통되게 가진 현실적 문제를 서로 나누어야합니다. 예를 들면, 자녀, 부모, 직장, 돈, Sex, 알콜, 마약문제등 속에 치유되지 않은 상처등 무의식에 남아 있는 것들을 서로 나누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거의 동일한 아픔을 갖고 있고, 그 문제들을 가슴에 묻어 둔채 미봉으로 넘어갔습니다. 이러한 내적 상처들은 반드시 쓴뿌리가 됩니다. 내적문제인 슬퍼하는 자아, 분노하는 자아상은 나이가 들어도 없어지지 않고 영적장애물이 되어 앞으로 나가지 못하게 합니다. 기도 가운데 있으면 상처 받은 자아를 끄집어 내게됩니다. 사랑의 관계에서, 합심 기도하면 각자가 갖고 있는 내면의! 상처를 끌어내어 드러나게 하고 치유해줍니다,

[8]말씀과 성령을 받으면?
(히브리서 4장12-13절)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지으신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안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의 영은 생명이다. 말씀 자체가 운동력이 있다. 찔러 쪼개고 감찰해서 숨겨진 것을 드러나게 합니다, 말씀 자체를 정확히 보면 잘못된 것이 드러납니다. 말씀을 안들으면 회개가 안됩니다.내적으로 치유해야될 부분을 몰라서 묻어둔채 살아갑니다. 성령을 받으면 회개가 됩니다. 치유 받아야될 상처인줄 깨닫게 되고 하나님 앞에 내놓고 용서받고 치유받게 됩니다.하나님의 말씀이 매스를 들면 살아가면서 덮어 놓았던 미봉을 치유해서 시원해집니다. 말씀 받고 성령받고 내적인 상처를 내놓으면 치유가 됩니다. 건강한 크리스천이 되어야 하나님과 소통에 장애가 없어집니다. 심리적으로 사물을 삐닥하게 보는 사람은 틀림없이 그속에 눈을 굴곡시키는 장애물이 있는 것입니다. 녹내장이 생길때 중앙이 안보이고 좌우만 보입니다! . 난시는 사물이 우끌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기눈이 잘못 된 것은 모르고 세상이 이상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허상을 보는 눈이 아니라 실상을 보는 믿음의 눈을 갖아야 합니다. 정확히 보고 정확히 산택해야합니다. 진리, 옳은 것, 참된 것이 충만해야 인생이 잘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삐닥한 사람은 그마음에 아픈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을 건드리면 뒤짚어 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농담하다가 엄마 애기가 나오면 뒤짚어 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엄마가 양색시였기에 자아내부에 깔려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데에도 하나님과 관계를 왜곡시키는 장애물이 됩니다. 말씀과 성령을 받으면 의식적 차원뿐만 아니라 무의식적 차원의 상처도 치유되어 평안이 옵니다, <평화 평화로다 하늘에서 내려오네> 막혔던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의 통로가 뚤리는 것이며, 문제가 해결되고, 심령에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 눈물과 콧물이 나오는 것이 치유과정입니다. 그뒤에 평화와 시원함이 옵니다.

[9] “말씀은 영이며 살았다” 왜 그것을 보는 눈이 없을까요?
말씀은 영이며 살아있다고 하는데 왜 나는 그것을 보는 눈이 없을까요? 영적인 눈으로 보는 훈련이 안돼 있어 보이 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의 말씀이 다 내말씀이 아닐 수 있습니다. 어제는 내말씀이 없던 것이 오늘은 아닐 수 있습니다. 말씀은 메시지 입니다. 순간 순간 응답으로 옵니다. 내인생의 문제라든가 의문점을 가지고 늘 기도하면서 <하나님 이 뜻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어야 합니다.

[10] 하나님이 어떤 것(영적인 은사)을 주시는가?
은사에 대해서 알려면 고린도전서12장, 로마서 12장을 보아야합니다. 은사는 선물이며 성령도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은사는 인격적인 것이며, 성령은 우리 속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성령님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이 나에게 주시는 신성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십니다. (성령인 그분은 어떤 것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분은 그분 자신을 주십니다. 은사는 인격체입니다. 성령님은 그분 자신의 능력으로 나를 무장시킵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능력이 나의 능력이 됩니다, 영적인 은사가 발휘되는 것을 볼때 나는 성령님의 임재하심을 보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자신의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내가 하나님의 일을 성취시킬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능력을 주시는 것을 나는 보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라>라고 말했을때 인간이 주는 것이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닙니다. 은사를 내마음대로 쓰라고 준것으로 따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은사는 맘대로 쓰면 안됩니다. 은사는 기술적으로 나타나지만 성령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은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성령님이 한사람의 인생에서, 그사람이 속한 그리스도의 몸의 공동 유익을 ? ㎸漫?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11] 지식과 지혜의 은사?
(고린도전서12장7절-8절) <각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맘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에 따라 지식의 말씀을>.지혜의 말씀과 지식의 말씀이 무엇입니까? 모르는 것을 아는 것이 지식입니다. 아는 것을 적적히 쓰는 것이 지혜입니다. 아는 것을 효용성있게 써야 합니다. 알아들을 만한 사람에게만 말해야합니다. 알아듣지 못할 사람에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지식의 말씀의 은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깨달음을 줍니다. 지혜도 말씀을 통해서 주십니다. 똑같은 성령도 지식과 지혜로 나옵니다.

[12] 치유를 성령님께 요청할때?
은사가 나타나면 성령님(=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내가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 나타나시옵소서? 치유하시옵소서?> 라고 성령님께 요청해야합니다. <자녀의 권세로 성령님 치유하시옵소서? 주께서 불쌍히 여기옵소서? 주님 말씀하시옵소서?> 그렇게 전하는 나도 은혜를 받습니다. 원고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데로 말해야합니다. 성령께서 내안에서 특별한 성경말씀이 눈에 들어오면, 말씀이 우리 의식에 들어온 것입니다,

[13] 성령이 내영에 부어지면?
영의 자리는 마음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은 성전안에 계십니다. 내몸이 성전입니다. <우리몸을 성전 삼았다.> 생각과 마음을 다 포함한 의식안에 영이 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영안에 하나님의 영이 부어질때, 말씀의 영이 우리의 영을 채우고, 우리 영을 깨닫게 하고 우리 문제를 깨닫게 해줍니다. <말씀이 나의영을 채울때 나의 죄를 내놓게 하고, 고쳐주시고, 온전케하고, 바른 뜻대로 살게 합니다.> 말씀은 인격적입니다. 말씀은 영이므로 정보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정보는 인지적 차원 인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기도하면서 말씀을 읽고 말씀을 읽다가 기도해야합니다.> 교회문을 나가면 세상 염려가 많아서 설교듣고도 금방 다 잃어버립니다. 나쁜 영화에 우리의 식이 오염됩니다. 의식이 성령에 감동되어 마음을 비우고 받아야 말씀이 자랍니다. 의식이 성령에 감동된 상태가 의식화입니다. 사회주의자들이 말하는 의식화는 자본주의적 생각과 마음을 다 뽑아내고 사회주의 적 이데올로기를 넣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하나님의 영과 교제하므로 다른 영이 침투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삶으로 가야 합니다. 설! 교 듣고 유행가나 세상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혼잡하게 됩니다. 혼잡하게 만드는 것이 사탄의 영입니다.

[14] 은혜를 받기 위한 영성훈련?
10년 믿어도 성령 감동 받지 못하면 영적성장이 안됩니다. 말씀이 쌓여서 생활화가 되어야합니다. 집중적으로 영성훈련을 받는 기간이 있어야 합니다. 계단 올라갈때 힘을 모아야 합니다. 집중하지 않으면서 은혜 받을 수 없습니다. 집중훈련을 해야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부흥회의 특징은 강사에게 있는 게 아니라 집중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기 때문에 영성훈련이 되는 것입니다. 1년에 한두번은 작심하고 집중적으로해서 한계단을 올라가고 올라가고 해야합니다. 계단하나 올라갈때는 힘을 써야합니다. 은혜 한번 받은 체험이 있으면 범죄해도 기본이 있습니다. 한 계단 올라간 사람은 가다 서기도하나 그 수준에서 왔다 갔다 합니다. 올라가는 단계를 체험하지 못하면 그 윗단계를 모릅니다. 성실하지만 성령체험을 하지 못한 사람은 성실하게 방황하는 것입니다. 리듬에 대해서 얘기해보세요? 리듬을 타보면 압니다. 영적체험이 중요합니다. QT 묵상기도하면서 말씀을 읽으면 반드시 말씀을 주십니다. 말씀을 계속해서 씹는 것입니다.

[15] 은사보다 먼저 구해야 할 것?
(고린도전서13장1절-3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찌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은사를 정말 구하려면 사랑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사랑이 없이 은사를 구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님 은사보다도 사랑을 주시옵소서? 인간적으로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주님 제마음을 장악하시옵소서?>

[16] 은사를 발견하려면?
하나님이 이모든일 은사를 나타내는 일을 모든 사람에게 나눠 주십니다. <명령기도> <오늘 하나님께서 같은 성령님께서 각자에게 나눠 주신다고 했으니 받은줄 믿습니다. 각자에게 나눠 준줄 믿습니다.> <믿음으로 각자의 은사를 발견하게 하시고, 불일듯하게 하사, 성숙하게 하시고, 하나님께 영광되게 하소서? 하나님 말씀 믿고 주신다고 하였사오니 확실히 주신줄로 믿습니다. 발견하게 하소서?> 믿음의 기도로 말씀에 화답할때 내몸에 나타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됩니다. 숨겨진 것을 깨닫게 하시고 드러나게 하고 고치고 고침받게 하려고, 말씀과 기도는 같이 갑니다. <이 말씀이 내 심령 가운데 사건으로 나타나게 하소서?> 믿음으로 화합하고 비우면 됩니다.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은사의 발견이 중요합니다. 자기가 아팠거나 주변에 굉장히 아픈 사람이 있어 아픈 사람만 보면 자기 마음이 쏠리고 (그 영혼이)불쌍해 보입니다. 자기 애가 죽은 경우 아픈 아이만 보면 보통 기도를 하는게 아닙니다. 신유은사를 받은 자는 환자만 보면 가슴이 여밉니다. 그를 위해 끊는 마음, 뜨거운 마음이 있어 신유은사가 나타납니다.

[17]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찾고 구해야하나?
하나님이 어떤 은사를 주셨는지 알아야 할까요? (야고보서4장2절)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내욕심으로 구한 것인지 아닌지는 자기 자신이 더 잘압니다. 내안에 거하시는 이는 성령이니 성령이 주시는 소원이 있습니다. 순수하고 하나님 지향적인 것과 나를 유일하게 하려고 드러내는 것 즉 정욕으로 구하는 것은 다릅니다. 성령으로 주는 소원이 기도하게 합니다. 이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으로 주시려는 것입니다. 애들이 원할때 주면 효과가 있습니다. 요즘애들은 달라지도 않는데 주니 감사를 모릅니다. 구하지도 않는데 주니 그렇습니다. Need를 갖게하고, 기도로 구하게 하고, 응답하십니다. 즉 모든 것을 줄때 기도에 응답하시는 형식으로 주십니다. 조그만 것을 구했는데 큰 것을 주기도 합니다.(왠 은사가?) 로마서 12장, 에베소서에 나오는 은사는 60가지나 되나 이것만이 아닙니다. 은사는 선천적으로 가진 재능(탤런트)과는 다르나 재능에 성령세레를 받으면 은사가 됩니다. 재능은 유전적으로 갖고 태어난 것이나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18] 은사의 목적?
은사의 목적은 타인 지향적입니다. 방언만 자기에게 덕을 세우고 나머지는 이웃 지향적입니다. 내가 신유은사를 받은 것은 병든자를 위해서 쓰라고 교회공동체를 위해서 쓰라고 준 것입니다. 몸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으면 심근경색이 옵니다. 우리 몸의 심장과 다른기관은 서로를 위해 존재합니다. 천국과 지옥이 똑같은 환경인데 둘다 긴숫가락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옥은 서로 먹지 못하고 흘리나 천국은 긴숫가락으로 춤추며 서로 먹여줍니다. 은사는 공동체 지향적입니다. 나는 그를 위해 그는 나를 위해 쓰는 것입니다. 은사는 성령과 함께 반드시 들어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한가지 은사도 받지 않은 사람도 없고 다 받은 사람도 없습니다. 은사에는 주은사와 보조 은사가 있습니다. 어느부분에 강력하게 끌리게 되면 그것이 주은사입니다. 목사가 받은 은사는 예언의 은사입니다.. 설교는 메시지 입니다. 설교자는 지혜, 지식, 말씀의 은사를 보조은사로 받는 것입니다. 신유의 은사를 받았는데 사랑의 은사가 없으면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몇가지 은사를 갖고 있으나 공동체 지향적이지 않거나 은사를 모르거나 알지만 쓰지 않으면 쪼그! 라들어 버리고 맙니다. 성령님의 가장 무서운 징계는 자기 정욕, 소욕되로 살라고 내버려 두는 것입니다. 죄속에는 형벌의 요소가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

[19] 어떻게 응답받나?(하나님 뜻의 분별?)
( 각사람은 하나님과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됩니다. 성령님은 자신과 자신의 목적들과 길들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성경, 기도, 환경과 교회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은사를 확인후에는 은사를 개발되야하며 은사를 써야 개발되고 늡니다. 은사는 실행이지 이론이 아닙니다. 방언도 자꾸 쓰면 유창하게 되고 조절이 가능하게 됩니다. 영감(응답받는 것)은 어떻게 올까요?  (아하!)깨달음이 옵니다 가슴으로 감동(은혜)을 받습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영)감으로 옵니다. (영)감이 올때 실행해보면 일이 잘 전개될때 하나님과 통로임을 알게 됩니다. 나는 나를 모르나 하나님은 아시므로 내가 센시티한 쪽으로 주십니다. 양들도 반복된 학습으로 목자의 목소리를 알아듣는 것처럼 말입니다. 많은 소리가 동시에 들려도 목자의 소리를 듣습니다. 성령의 음성만 들리면 세상의 가짜 소리는 알게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고유한 주파수가 있습니다. 자기만의 하나님 주파수를 잘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감동인지 내욕심인지 구별 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나타날 수있도록 쓰임 ? 濱?것입니다. 은사에도 레벨이 있어 은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은 옆에 지나가기만 해도 성령의 역사가 전위가 됩니다. 목사님을 뒤에서 잡다가 뒤집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으로 많이 썼으나 불일듯 일어납니다. 은사는 교회안에서 직분을 가지고 나타나게 해야합니다. 은사를 교회 밖에 나가서 밥벌이 하라고 주는게 아닙니다. 장로교에서는 평신도의 은사를 가볍게 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교회는 권사가 와서 목사님 아프면 안수를 합니다. 그러나 목사는 말씀의 권위가 있습니다. 어느 사람은 바나바사역에 은사를 가지고 있어 상심한 사람의 심령을 세워주고 일으켜줍니다. 은사를 알려면 기도하고 쓰면 됩니다. 쓰임 받는게 행복입니다. 하나님 그분께 가서 동참하십시요. (디모데후서2장20-21절) <큰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임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연역적 기도) <우리 교회에 주신 사명의 크기인! 큰 사역을 보았습니다. 큰 사역에 맞게 큰 능력 주시지 않겠습니까? 일꾼?湧?능력이 있도록 채워 주심을 믿습니다.>

[20] 몸안의 생명력은?
효과적인 몸안의 생명력은 구성원 한사람 한사람이 하나님과 친밀한 사라의 관계 안에 잇을때 시작됩니다. 그리고 모든 구성원들이 예수님을 지속적으로 머리로 모실때 유지가 됩니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건물, 예산, 프로그램, 방법, 교역자, 크기드의 그 어떤 것보다도 훨씬 중요합니다. <고린도전서10;24)<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에베소서4;25;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 됨이니라> <에베소서4;29)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에베소서4;31-32)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에베소서5;19-20) <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21] 하나님은 우연히 어떤사람을 교회에 더해주지 않는다.?
(사도행전13장2-3절)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이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두사람에게 안수하여 보내니라> 사도행전13장에 안디옥교회가 나옵니다. 바나바가 안디옥교회의 대장이었습니다. 바나바가 사울을 데리고 왔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은 안디옥교회의 기둥같은 사람들인데 경제적으로 서포트하면서 보냈습니다. 어떤 분은 Cell Church사역하다보니 은사가 많이 나와서 전문 사역자로 나가서 헌신합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을 개척교회로 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아굴라와 구리스킬라는 바울이 로마로 가기전에 미리가서 전초기지를 만듭니다. 바울이 어디가든 자기집을 가정교회로 오픈해 사역하도록 돕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이사를 간 사람입니다. (로마서 16장 21-27) <나와 온 교회 식주인 가이오도 너희에게 문안하고> 사도바울의 친척인 가이오는 자신의 집에서 가정교회를 오픈하고 세끼 밥도 주고 여러 사람들이 매일 저녁 만 되면 하나님 앞에 모였을 때 교회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가이오의 집이 교회였고 자기 재산을 털어 교인들을 먹였습니다. 사울과 디모데를 날마다 먹였습니다. 하? ご纛?우연히 어떤 사람을 교회에 더해주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교회에 더해주시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으십시오.


[11단원]하나님나라와 시민들?

(요한일서 1;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계시록1;6)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요한20;21)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1] 지역교회가 어떻게 세계선교 전략센터가 될 수 있나?
(314-319P) 블렉가비목사는 지역교회가 어떻게 세계선교 전략센터인가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접해 계실때, 그분은 우리를 통해서 세상과 접하실 수 있습니다. 모든 교회는 세계선교 전략센터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을 통해서 세상과 접하실 수 있습니다. 당신은 그저 당신이 처한 곳에서 당신의 인생을 하나님의 활동으로 조정시키기만 하면 됩니다. 태국난민 수용소에서 구원을 받은 토마스는 너무나도 영광스럽게 변화 되었기 때문에 , 그는 모든 라오스 사람들이 에수님을 알게 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는 전도를 시작한 첫주에 15명을 그 다음주에 11명을 주님께 인도했습니다. 교회 교인총회에서 하나님이 그를 통해 라오스인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믿게 되고 그들은 라오스인을 위한 지교회를 시작하는 것을 투표로 결정하고 담임목사로 토마스를 추천하였습니다. 그것이 모교회가 되어 카나다의 주요도시마다 그들의 라오스 로컬교회(벤쿠버교회)가 만들어지고, 그후 그는 라오스에 돌아가서 복음 을 전했고 133명을 주님을 알게 했고 4개의 지교회를 세웠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세계선교 역활을 담? 聆構?된 것입니다. 우리가 본 것은 한사람의 라오스인일 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그분은 한민족, 한국가가 그분께로 이끌리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하나님이 새사람을 당신의 교회에 더하시는 영광을 주실때 ,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고자 하는지를 여쭈어 보십시요. (우리 교회에 어떤 한 사람이 왔을 때 해외 선교 뿐 만이 아니라 민감하게 반응해야 합니다. 교회는 살아있는 생명체입니다. 모든 교회는 선교 센타입니다. 빕립은 성령님께 의거해서 말씀을 전했고 성령님의 명령에 대한 빌립의 즉각적인 반응으로 아프리카 선교가 시작되었습니다. 겨자씨만한 것에서 선교의 비젼이 있습니다)

[2]우리교회가 해외선교를 할 수 있는 방법?
우리주위에서 해외 선교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십시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선교, 한국에 와있는 조선족에 대한 선교, 미군부대 군단안의 미국인 선교등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교회를 통해서 그들의 인생에 어떤일을 하고 싶어하시는지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주위에서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자리에서 하나님이 무슨일에 관심을 갖고 비중을 두고있나? 내입장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의 일에 동참해서 그일을 하도록 초청된 사람이다. 우리는 학원 선교의 부르심을 받았다. 한국교인으로 태어나게 한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날 피선교지는 사회주의 국가, 흑인, 유색인종이 사는 제3세계국가이며, 아직도 피선교지로 있는 곳은 경제적으로 낙후된 곳입니다. 미국인 선교사가 줄어든다. 한계점에 왔다. 한국인은 마지막때에 가장 쓰임받기 좋다. 시대마다 하나님이 쓰시는 선교국가는 경제력이 있었다. 선교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경제적인 부를 주십니다. 미국은 100년전에는 신생국가로 별볼일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미국에 놀라운 부를 주어 ! 일등국가로 만든 것은 선교의 사명 때문이다. 나도 미국에 대해 안좋은 이미지가 있었지만 한국은 빛진 국가입니다. 이빛을 제3세계국가에 다시 갚아야 한다. 제3세계국가를 전도할 국가는 한국인입니다. 국제적 정세를 볼때 코리안 크리스챤이 기대된다, 이것을 알고 대응해야됩니다. 중국교회도 놀랍게 일어나 하나님이 쓰시고 계십니다. 내기도와 전도를 통해 마지막때에 한영혼이라도 살려야합니다.>(99,5, 전도학교)

[3] 왜 선교하는 교회가 되어야 하나?
우리가 가서 전도 할 곳은 어디 입니까? 세상입니다. 우리의 세상은 어디입니까? 교회 밖입니다. 가서 전도 할 곳은 어디인가? 예루살렘을 지나 온유대 와 사마리아(이방인 지역)와 땅끝까지 가서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스페인(초대교회의 땅끝은 스페인이었습니다)까지 가겠다는 꿈을 꾸었습니다. 전도할 자는 누구입니까요? (마9;37-38) <교인은 많으나 헌신할 자가 적습니다>. 헌신은 시간을 드리는자, 육체를 드리는자입니다. 내가 제일 시간을 많이 뺏기는 것이 무엇입까? 내 마음이 가장 많이 뺏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주님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드렸습니까? 삶을 거두는 일꾼이 필요합니다, 복음 전파의 영역은 어디까지 일까요? 예루살렘, 유대, 땅끝입니다. 땅끝은 북남미, 태평양, 아시아에서 서쪽으로 가고 있다. 지금은 이방문화권이 없어지고, 공산권이 무너지고, 오지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산지 오지에는 교회가 없습니다. 북한 선교를 준비해야한다. 선교지에 대한 정보가 정확해야 한다. 정보는 영국이 강하다. 선교가 어려운 곳은 공산권- 회교권-오지였습니다. 중국, 러시아도 지하교회가 계속 되고 있었습? 求? 영국특수 선교 센터는 정글에서 살아남기, 변장술을 익혀 적성국가의 지하교회와 접선해 성경을 전했습니다. 전도는 영적 싸움이다. 교회 올려고 옷입고 나서는데 동창들이 옷입을 채로 동창회로 불러가는 것처럼 사탄이 역사합니다. 사단의 권세 안에 있는 삶들을 대문을 깨고 들어가서 구해내야합니다.(전도학교8주)


[4] 세계 선교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
과거에는 선교가 안되는 4개지역이 있었습니다. 북위 40도 남위10도 안에 들어가는 나라가 선교가 안된 나라였습니다. 1) 공산권에 있는 사회주의 국가들이 복음이 들어 갈 수 없는 나라였습니다. 1990년 공산권은 무너지면서 이북만 빼면 공산권이 이제는 없습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무너져 문이 열려 개방의 바람이 불고있습니다. 심지어 지금은 중국에도 복음이 들어 갔고 중국에 있는 지하교회는 한국교회보다 더 뜨껍습니다. 또한 중국 정부가 인정한 처소교회가 있습니다, 2)과거에는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오지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메스컴이나 교통이 발달되 20세기 말이 되면서 오지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아마존, 인도네시아 정글에는 과거에는 통신이 안되었다. 그러나 현제는 인공위성으로 다 추적됩니다. 3) 회교(이스람), 힌두교, 불교국가인 이방문화권이 복음이 들어가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이방권중 이스람권에는 공식적으로 못들어 갔었습니다. 손목을 짤리는 쇄국주의 때문에 노무자 신분으로 전도사가 들어갔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람도 호메니옹때와 지금은 분위기가 다름니다. 이란에 호메니가 죽고 온건파 수상이 바티간 교황청과! 악수를 하고 하는 것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이방 문화권인 힌두교는 다신관을 가지고 있어 우리도 그 신중에 하나다라고 하면 끼어들 수 있습니다. .4) 제3세계국가들에는 복음이 들어 가지 않은 곳이 많습니다. 시대적으로 볼때 20세기말에 접어들면서 전세게 교회가 힘을 잃어가는 모습이 있었다. 텅텅비어가는 미국, 남미교회에 반하여, 5-6년 전부터 사도행전적 역사를 통해서, 성령의 역사가 동남아시아 아프리카와 같은 제3세계 국가로 이어져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이스람이나 북한도 시간 문제이다. 공식적으로 복음을 거부한 나라가 없는 상황입니다. 역사적으로 종말에 들어와 있습니다. 종말중 말세지말에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전시의 삶과 휴전시의 삶이 다르다. 삶의 구조 자세가 다르다. 말세지말엔 의식이 달라져야한다. 최고로 강조 되는 것이 전도(선교)입니다. 하나님의 성령의 물결에 교회가 그물결을 타고 은혜받고 쓰임 받아야 합니다, (전도학교10주)

[5] 성령의 역사
성령의 역사는 오순절 다락방에서 시작해 유럽으로 번졌습니다. 유럽은 옛날에는 해적들이었습니다. 글씨도 몰라서 성상, 그림을 많이 붙여 놓고 그림 그려 전도했습니다. 그후 성령은 영국에서 선교사들이 미국 대륙으로 건너갔습니다. 조나단 에드워드가 부흥사로 활약했습니다. 미국의 불똥은 선교사들을 통해 1907년 한국으로 뛰었습니다. 한국에서 다시 지금은 중국으로가 성령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선교가 어려웠던 3곳이 있었습니다. 공산권, 이방 문화권, 오지였습니다. 이제 공산권도 무너져 개방되었고, 오지도 없고, 이스람의 선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천국복음이 다 전파되면 끝이 오리라.> <무화과나무에 잎이 변해 부드러워지면 마직막 때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지칭하며 부드러워진다는 것은 유대인이 회계하고 예수믿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AD70년 이스라엘이 로마에서 완전히 성전이 자치를 감출 정도로 사라졌습니다. 그로부터 1948년에 1700년 동안 이상 나라가 없이 떠돌아 다니던 민족이 나라를 다시 세웠습니다. 복음이 지구를 한바퀴 돌아 원위치로 돌아 오는 것입니다.유대인국가인 이스라엘? ?상징은 무화과, 포도나무, 올리부(감남나무)입니다. 왜 우리는 날씨 기상은 구분하면서 하나님 나라도 구분하지 못할까요? <무화과 나무 잎이 피면 여름인줄 알듯이 이스라엘이 예수를 받아들이면 여름이 가까운줄 알라!> 이스라엘의 상황이 관심사입니다. 이스라엘이 크리스챤화 되는 경향이 빠릅니다. 유대인중 크리스챤에게 오픈된 사람이 그곳에 들어가 살면서 영향력을 미치고 있습니다. <다시 유대인으로 가서 복음이 전파되면 끝이 오리라.> 마지막때는 언제 일까요? (요나서 4;35) 모세에 관한 미수기에 보면 마지막때는 선지자에게 말하지 않고는 행하지 않는다라고 적혀있습니다. 하나님은 갑자기 깜짝쇼를 하지 않습니다. 종들에게 때가 언제인지 알려 줍니다. (전도학교6주)

[6] 하나님이 마직막때에 어떤 사람을 쓸가요?
북한도 중국의 처소교회 비슷한 교회가 있습니다. 봉수교회나 칠곡교회는 선전용이지만 정부에서 허용되었기에 교회로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김일성은 외삼촌인 강영욱(목사)에게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내심 기독교에 친근감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기독교에서 배운 5호 담당제와 같은 제도를 실시했습니다. 공산주의 자들이 기독교와 관련이 많습니다. 목택동도 신학교 출신이었고 막스도 신학교 출신이었으므로 그들의 사회주의는 사도행전적 구조를 갖고 있었습니다. 성령이나 주님만 없지 거의 초대교회 시스템을 갖고 있었습니다. 함께 일하고 함께 먹고하는 공동체 생활과 비슷합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 두레마을도 박정희때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공산권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난후, 자본주의 사상을 없애고 사회주의로 물들여 세뇌된 사람들이 의식의 공백상태가 된 그들이 자본주의에 물든 기독교인들보다도 오히려 영적으로 빨리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마직막때에 어떤 사람을 쓸가요? 자본주의국가의 사람들은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에 물들어 오염된 사고를 갖고 있으므로 선교하기가 힘들지만 사회주의의 공백이 생? ?사람들에게는 기독교가 들어가면 피가 통하는 것같이 대단하게 변합니다. 중국교회는 외국자본이 들어가지 않은 자생적 교회이며, 사도행전적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남교회는 기복주의, 이기주의,세속주의, 물질주의에 타락해갈때 북한사람에게 자유를 주어 복음이 들어가면 우리보다 더 순수한 믿음을 주어 세계선교에 쓰실 것입니다, 전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 국가로 쓰려는 일에 헌신해야 합니다,)

[7]목자가 되는 과정
어떤 평신도는 300개의 교회를 개척했습니다. 토마스도 신학교를 가지 않았는데 라오스인으로 열성적으로 일하니 목사로 세웠습니다. 침례교회는 대처가 빠릅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면 내적 소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회중이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침례교에서 목사가 되는 과정은?한사람이 교회안에서 특수하게 목자사역에 있어서 외적 증거가 드러납니다. 그에게 객관적인 표적이 되는 따르는 은사가 드러납니다, 그가 손얹고 기도하면 은사가 나옵니다. 목사가 그를 세우고 회중앞에 세워 의견을 묻습니다.(하나님이 그의 생애에 어떻게 역사하고 계신지 성도들에게 말해줍니다. 하나님이 하고 계시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이야기 했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반응을 보이기를 하나님이 원하는지를 결정하라고 묻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종으로 쓴다고 인정하는 분 손들어 보세요? 이때 회중 대다수가 손을 들면 목사 안수를 주고 신학교를 갑니다. Calling먼저 확인되면 확인되면 신학교를 보냅니다.

[8] 왜 하나님이 중국을 세우는가?
중국교회 목사는 3자교회가 세운 신학교가 북경에 있습니다.. 중국의 3자교회는 등소평의 공산당이 인정한 교회입니다. 그러나 사회주의 이념에 사로 잡히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삼자란 자림, 자조, 자력으로 교회를 운영한다는 뜻입니다. 외부로 부터 사람 지원을 안받습니다. 즉 공산당 정부에서 외국의 선교사가 오는 것을 차단한 것입니다. 외국의 물자가 들어올 수도 없습니다. 자치적으로 신학교와 교회를 세우고 재정도 자립적, 자생적으로 운영하도록 내버려둡니다. 제국주의 시대에 서구 열강의 강대국들이 군함과 함께 목사가 같이 들어 왔습니다.. 제국주의 하면 군인, 장사끈, 선교사를 떠올립니다. 우리 나라도 전세계에서 드물게 우리나라 사람이 직접 복음을 수입해 왔습니다. 일본도 네덜란드사람이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나라는 천주교때 부터 정약용같은 분이 중국에 가서 복음을 가져왔고 105인사건과 같은 박해가 있었습니다. 개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에서 기독교라면 제국주의 냄새가 많아 막았으나 오히려 기독교가 자생력이 생기게 만들었고 개방화 시대로 오면서 오염되지 않은 기독교(Christianity)를 가지고! 굉장한 역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미래에 미국을 따라 잡을 나라는 중국입니다. 중국은 홍콩, 마카오를 흡수하였고 결국 중국 본토가 여유를 가지고 포용하면 대만도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대만까지 중국에 들어가면 추종할 수 없는 강대국이 될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중국을 세우는가? 이유가 있습니다. 중국이 서면서 중국 교회가 설 것입니다. 러시아 보다 중국 교회가 더 소망이 있습니다.. 한국은 북방 조선족 자치구에 가서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그때 이북은 자연히 중간에 위치하게 되어 북한의 복음화는 시간 문제가 될 것입니다.

 

[9] 선교국의 비젼을 주신 하나님
(마태복음24장 14절)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이말씀은 결정적으로 에수님이 언제 오시나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천국복음이 온세상에 뿌려지면 끝나는 것입니다. 초ㄷ대 크리스천들은 에루살렘에서 터키로, 다시 동방쪽으로 관심을 갖았습니다. 소아시아 인들도 동양쪽이 신비하고 문명이 발전된 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서양먼저 복음화가 이루어졌고 그것은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고, 다시 중남미에 (미신적인 힌두교이긴 하지만) 퍼졌습니다. 복음이 한바퀴 돌아 동북아에서 중국으로 번지고 있습니다. 사회주의, 빈국, 오지도 다 열렸고 최후의 보루로서 회교권만 남았습니다. 회교권의 제3세계가 최후의 보루입니다. 그제3세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외국인 근로자로 들어 옵니다. 기회는 그전에 한번 있었습니다. 중동에 한국 노동자들이 들어 가서 선교를 했습니다. 이제 2번째 기회는 스리랑카, 실론, 동남아필리핀 같은 불교권 사람들이 국내에 들어와 일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비인간적인 착취를 당하기도 합니다. 그들에게 선교하기 좋은 호조건입니다. 외국인근로자들을 우리교회! 에 모셔와서 영어 설교를 하기도 하고 돌봐주면, 외국에 나가서 하는 비용보다 적게 듭니다.(앉아서 선교 할 수 있는 황금어장 입니다) 그들이 너무 비인간적인 내우를 받아 자기 나라에 들어가면서 하는 말이 <한국인은 보기만 하면 가만 안둔다>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선교사적으로 보면 탈북자가 중요합니다. 88올림픽과 OECD가입으로 우리나라가 굉장히 부각되었고 이미지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10] 왜 선교국이 되어야 하나?
선교국이 될려면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까요 ? 전체인구의 기독교인이 1/4이상이 되어야 합니다. 엄밀히 1/4이면 미전도국가이고 크리스천 국가가 아닙니다. 또한 선교국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바쳐 주어야 합니다. 세계선교의 첨단은 걷는 나라는 미국으로 전체의 6-7-% 담당하고 있습니다. 한국은 10%가 됩니다.. 그러나 세계에서 10손가락 안에 듭니다. 하나님은 선교국에는 필요 충분 조건을 갖추어 주십니다. 인존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측면에서 볼때 한국인들이 제3세계국가의 선두주자가 되어야 합니다. 최근에 와서 (220-30년 내에) 선교국가의 기틀을 갖추어 주고 계십니다. 코큰 사람들이 제3세계를 선교하기가 어렵습니다. 동남아시아에 가면 서양인의 인식이 안좋습니다. 중국에 비롯한 동남아시아 국가들이 유럽인에게 신민지를 당해 백인에 대한 인식이 안좋아 복음 들고 들어가면 배척합니다. 한국인은 피부색깔도 비슷하고 같은 제3세계국가이지만 잘사니 약간 선망의 대상이 되고있습니다. 하나님은 한국만 가지고 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할 일을 안하면 촛대를 옮겨 주십니다. 중국이 그것을 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너! 무 오염되 있습니다. 헝그리정신을 갖고 선교할 자세가 되 있지 않습니다. 교만해 졌습니다. 제3세계국가를 선교하려면 한국이 통일 되고 민족이 복음화가 되야 그복음이 땅끝까지 이릅니다. 어릴때 <방공이 국시>였는데 지금은 그러한 이데오로기도 무너져 내렸습니다. 세계가 어떻게 변할 지 모릅니다. 마지막 때는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정말 말세 지말입니다. 구역은 4,000년이 되었습니다. 첫번째 1,000년 부터 5,000년까지 다섯번 밀레니엄이 지나갔고 1,001년 부터 2,000년까지 6번째 밀레니엄이었고 2,000년부터 3,000년 사이는 일곱번째 밀레니엄입니다. 일곱은 완결수 입니다. 7,000년이면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시간이 종결지점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지금은 종말얘기를 많이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실때 그때가 AD 6년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 헤롯대왕이 죽은 년대와 로마황제 아우스도가 있었던 시기와 맡추어 보면 예수님이 태어난 때는 AD 6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지막 때는 7,000년을 기준으로 조금 왔다 갔다 할 것입니다.

[11] 하나님나라의 목적을 어떻게 성취시키나?
하나님 나라의 시민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시키는데 있어서, 하나님 나라의 방법을 사용하지 결코 인간적인 방법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사야 55장 8절-9절><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요한복음 18장 36절><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었다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와 세상의 원리가 현저하게 다르다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방법과 하나님의 길대로 가야 합니다. 내가 보기엔 큰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하나님 보기에 큰일이 아닐 수 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삶속에서는 가장 중요합니다. 세상 것을 버리면 평안이 옵니다. 어린아이와 같이 하나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12] 종말에 관한 비유?
(마태복음 24장14절, 25장에는 마직막때의 징조와 그때를 맞을 준비에 관해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24장 45절에는 마지막 때에 천국에 관한 4가지 비유가 있습니다. 충성된 종, 열처녀, 달란트, 양과 염소의 비유가 있습니다, 이 비유는 종말론과 관계해서 해석해야 합니다. 1) 충성된 종이란 교회내에서 충성하는 일꾼들, 양식을 공급하는 일꾼들이 마지막 때에 열납되겠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잘해서 자기가 받은 은사로 교회를 섬기는 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2) 열처녀의 비유란 열처녀가 등을 갖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밤에 결혼에식을 합니다. 신랑이 신부집에 먼저가서 거기서 예식을 하고 자기집으로 신혼여행을 옵니다. 처녀들이 밤길이니 등을 가지고 마중을 나갑니다. 저쪽에서 잔치를 하고 오니 언제 올지 모릅니다. 처녀들은 깨어 있었고 등불을 갖고 있었으나 등에 기름이 있나를 알아야 합니다. 기름은 성령입니다. 심령가운데 성령이 충만해서 깨어 있는냐? 가 중요합니다. 성령이 충만해서 깨어있지 않은 사람은 신랑을 맞이 할 수 없습니다. 신랑이 들어오면 문을 닫고 신부집에서 밤새도록 잔치를 벌입니다. 기름을 사러간 여인? 湧?그 잔치에 참가하지 못하게 됩니다. 3) 달란트는 영혼 구원입니다.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면 60배 100배 남기는 삶을 산 것입니다. 내가 구원 됐다면 1사람을 구원했으니 2배는 남겨야하지 않겠습니까? 30배로 수확하면 들어간 삯이 있으니 손해 본 것입니다. 60배는 평균작이요 100배는 풍작을 한 것입니다. <충성스런 종>의 비유는 최후의 심판을 상징하는 대사회적인 메시지 이며 <열처녀> 비유는 나의 심령에 관한 것이며, <달란트> 비유는 개인적인 목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13] 천국의 비유중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천국의 비유는 삶의 현장에 있는 것을 골라 말씀 하신 것인데 왜 에수님은 여러가지로 말씀을 주신 것일 까요>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비유의 메세지가 다 다릅니다, 천국의 모자이크입니다. 양의 영활은 굶주린 사람에게 먹이라는 것으로 나에게 준 말입니다. 어떤 것은 점수가 높으나 다른 것은 점수가 낮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 사회적 사역은 열심히하나 교회사역, 집안사역, 자기 등에 기름을 채우는 것은 안 할 수도 있습니다. 자기입장에서 어떤 것이 보완 될 수있나?를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마지막때 내가 보완 할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 믿는 것이 풀자라는 것처럼 모르게 자라는 것 같습니다. 내방에 찾아오는 학생을 어떻게 대했나? 생각하면 어떤 학생도 소홀히 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지 못한 1가지는 학생들을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
랑하지 못한 이유가 많았습니다. 무자비한 종의 비유에서 보면 하나님께서 일만달란트를 탕감해 주었는데 이사람은 동료의 100데라리온을 용서 할 수 없었습니다. 그마음이 나와 닮았다. 사랑이 없는 학생, 선생들 남 탓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생각났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일만달란트를 주셨다.. 포도원 품꾼 비유처럼 하나님 일은 모두 그분 손에 달려있다. 순종이 중요하지 일의 양이 중요하지 않다. 겸손해지고 교만하지 말아야 한다. 나자신을 올바로 바라보아야한다.

[14] 코이노니아란?
코이노니아란? 이 말은 사귐, 교제, 릴레이션쉽라고 표현되는 헬라어에서 나온 말로 교회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잘 표현 한 말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신자들간의 관계에서 꼭 필요한 것으로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말합니다. 교회의 기초는 코이노니아(사랑의 관계)입니다. 교회가 교회 되게 하는 것이 코이노니아입니다. 여기서 설교, 예배,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과 나 그리고 나와 다른 성도들 간에 동역자 관계와 교제의 절정을 의미합니다. . 여러분은 서로 간에 경건한 교제를 하고 있지 않으면서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과 교제하고 있을 수 없다.(사랑에 관한 방법론이 잘못되어 용서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마음쓰고 말하지 말고 더 잘해야한다) 오늘날 교회가 너무 일을 성취하려다 보니 관계가 소홀이 되는 경향이 많습니다, 대형교회의 약점입니다. 목사와 평신도가 차한잔 마실 시간이 없습니다. 장로도 보기 힘듭니다. 교회의 본질을 잃은 것입니다. 교회의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그것을 위해 소그룹을 운영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가장 요청되는 것이 코이노니아입니다. 코이노니아는 인간의 능력? 막灌?안됩니다. 예수님, 성령,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마음이 공동으로 되어야 합니다. 성령충만해야 코이노니아가 됩니다. 모든 사람이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과 사랑과 말씀을 나누고, 코이노니아가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는 장을 마련하고 말씀이 역사해야합니다. 교회의 본질을 찾아야 합니다. MBTI로 서로의 성향을 알고 이해하고 서로의 성격을 인정하며 받아들여야 합니다, 블랙카비목사는 개인과 개인이 코이노니아가 잘되려면 교회가 하나님의 지배를 받는 교회가 되어야한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사람들이 전략을 짜므로 내교회와 네교회가 갈라지게 됩니다. 에루살렘교회와 안디옥교회(바울과 바나바를 보내고)는 교역자를 나누어 쓰고 서로 구호품을 주고 받았습니다. 이것이 안되고는 북한 선교도 할 수 없습니다. 개인주의 적 크리스천들은 내마음부터 회개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15] 종말론적인 삶?
중앙일보에 <지자기 폭풍이 온다>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오늘날 크리스천들은 종말론적 사고를 갖고 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에 있는 여러가지 비유로 늘 자기를 점검해야합니다. 저희 가족은 올해부터 외국아이 한명, 국내아이한명과 결연해서 도와 주는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보여주니까 해야합니다. 쓰고 남은 것으로 하는게 아니라 가계예산에서 정해놓고 힘을 다해야겠습니다. 사랑은 잉여물질이나 시간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나라에 가서 계산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죽는 그날이 종말입니다, 죽음은 지구의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부활해서 다시 시간대에 돌입되면 (부활의 시간개념이 다를 것이지만) 마지막대에 죽은자가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내삶의 마지막이 종말이므로 늘 종말 의식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4가지 비유를 걸어놓고 열처녀중 어떤 처녀인가? 나는 충실한 종인가? 나는 양이냐? 다른 사람의 영혼을 구원을 했는가? 내가 아는 것은 곧 책임이 따릅니다. 준비해야합니다. 감사의 기도를 해야합니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나의 삶의 목표는 천국이다. 이것이 인생을 단순하게 사는 길이다. 그? ??나혼자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같이 가야한다. 그러므로 나의 삶의 두번째 목표는 다른이의 영혼 구원이다. 다른 사람을 온전히 사랑하려면 늘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세번째 나의 삶의 목표는 늘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사는 것이다. 늘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기쁨과 평강과 감사가 넘치므로 남을 포용할 수 있고 그 영혼의 불쌍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사랑할 수있다.)


[12단원]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제?

(히브리서10장24-25절)
서로 돌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러하자.


[1] 코이노니아의 본질4가지?
1) 우리는 우리의 존재를 다 걸고 하나님을 사랑해야한다 2)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권에 완전히 순복해야만 한다 3) 우리는 하나님을 실질적이고 개인적으로 경험해야만 한다 4) 우리는 하나님을 완전히 의지해야한다.
코이노니아(사랑의 관계)는 교회의 본질입니다. 단순한 친교가 아니라 구원의 본질입니다.(요한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성경은 하나님과 우리가 단절된 상태가 죽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단절된 것을 회복 시키는 것을 구원이라고 합니다. 관계를 회복시키는 코이노니아는 구원의 핵심입니다. 단순한 연결이 아니라 활발한 교제입니다. 하나님은 그분과 올바른 관계를 위해서 성령님을 내안에 두십니다.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는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도권을 잡고 계시지만, 그분의 임재를 충만하게 경험하려면, 내가 하나님께 반응을 보여야합니다. (요한복음 15장5절)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이말씀은 행복한 크리스천 삶의 핵심이 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 활발한 교류가 있는 질적 횡적교류를 말합니다. (마태복음22장37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네이웃을 네몸과 같이 사랑하라 > . 하나님의 주도하심에 대한 나의 반응은? 나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행해야만 한다. 나는 하나님께로 향한 중대한 조정을 해야만한다. 나는 하나님께 순종해야한다. 내가 하나님의 주도하심에 응할때, 나는 하나님을 경험으로 친밀하게 알게 된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나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게 해준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코이노니아입니다.

[2] 이루어 가는 구원?
구원에는 3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1) 이루어진 구원은 에수님을 믿는자가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는 단계이고, 2) 그다음단계는 이루어 가는 구원이 있고 3) 완성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는 이루어가는 구원 중에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교제가 확대되어 가는 과정입니다. 횡적으로는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사람과 코이노니아를 확대해 가는 것입니다.그리스도의 몸안에서, 그분의 주권하에 완전히 항복하기 원하는 개인들이 모인 교회에서만 코이노니아는 가능합니다. 우리는 존재를 다걸고 하나님을 사랑해야합니다. 이것이 크고 첫째 계명입니다(마22;37)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나는 나의 형제들을 사랑할 것입니다 (요한일서4;21,5;3) 나의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면(나의 존재를 다 걸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나는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게 됩니다. 교회의 사명은 사랑회복과 선교입니다. 선교도 코이노니아의 확대작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3] 코이노니아는 왜 소그룹에서 가능한가?
(P362) 제구실을 하고 있는 신약성서적 교회를 떠나서 온전한 신앙인이 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야한는 것은 옛날로 단순히 돌아가는게 아니라 초대교회의 교회 본질을 유지할때 코이노니아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쉽지 않습니다. 오늘날 특이하게 다가오는 것이 소그룹입니다.. 사람들은 10명만 넘으면 피가 통하는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사람이 많으면 군중속에 숨는 사람이 있습니다.. 10명 이하이면 숨을 수 없습니다. 소그룹이 커지면 분활해서 구조를 바꾸어 가야합니다... 우리교회에서 구조를 소그룹으로 변경해 개혁하는 것을 나이 많은 사람은 싫어하지만 잘따라 줍니다. 소그룹을 목장으로 명명했습니다. 소그룹은 남녀 혼성반일때 내놓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남녀 동질 그룹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세렌티시피, 주제를 가지고 공부를 하면 자기 내적인 문제가 다 들어납니다. 예수이름으로 모인 소그룹 공동체는 반드시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누가 신유은사가 있어서가 아니라 합심기도하면 내적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야고보서 5장16절)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 되灸?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미국교회에서는 죄 용서를 받기 위해서 대중들 앞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라는 곳도 있습니다. 굉장히 내놓기 어려운 내용(성적인 것, 정신 적인 것)을 대그룹에서 내놓으면 서로 부담을 주고 상처를 줄 수 있지만 서로 비밀이 보장되고 사랑의 신뢰가 구축된 소그룹공동체에서는 치유가 일어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가정교회로 소그룹모임을 갖고 있었습니다. 야고보서는 신약중 제일 먼저 쓰여 진것으로 공동체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코이노니아로 발전되는 소그룹이 되어야 합니다. 남녀혼성반이 아닌 비슷한 연령과 고민을 안고 있는 동질 그룹을 형성해 소그룹(Cell교회)에 문제를 가지고 나오면 그룹 리더가 고치는게 아니라 같이 그 문제를 가지고 (한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동일한 고민을 다 갖고 있으므로 그문제에 대해서 금방 감이 오므로) 아파하면서 같은 마음으로 이해하고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관계는 혼적 수준입니다. 코이오니아는 교제란 말을 안쓰는 것은 영적인 영역이므로 이말을 씁니다. 부흥회가 끝나면 서로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서로 문제를 갖고 기도했기때문입니다.(? 꼭?자신을 위해 내문제를 갖고 눈물로 기도해주는 것을 느낄때 감동을 받??사랑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소그룹은 동질그룹으로 문제를 내놓고 같이 아파하고 신뢰가 형성된다는 자체가 동질감이 생깁니다. 서로 기도해주는 가운데 하나님이 역사해서 실질적인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오늘날 교회가 상실한것?
오늘날 교회는 이것을 상실했습니다. 교회의 본질을 상실한 것입니다. 성경공부를 하고도 실패하는 원인은 삶의 변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회중들과 함께 하나님이 주신 신앙공동체 속에서 성도가 서로 기도하면서 서로 교제가 이루어질때가 코이노니아입니다. 생체적으로 말하면 성도는 몸(CELL)의 세포입니다. 세포는 상하면 내부적으로 같은 cell끼리 연합해서 같이 먹으면서 건강하면 다시 분열합니다. 하나와 하나가 더해지면 같이 살아아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분열됩니다. 공동체의 치유는 마디를 통해 연합하고 상합하는 관게를 통해서 치유가 이루어 집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1;1로 해도 변화되나 완전한 변화는 Cell속에서 말씀을 나눌때 이루어집니다. 시너지효과가 있습니다. 서로 건강하게 키우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소그룹 공부가 많아져야합니다.. 소그룹을 결성해서 인도할때 다시 읽고 묵상하면 효과가 증가하고 3번정도하면 블랙가비의 영성을 더 많이 소유할 수 있습니다. 블랙가비목사는 한국사람보다 더뜨거운 목사이며 영적인 것을 날마다 체험하는 분입니다.. 성경공부도 2-3번 반복해서 내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말씀! 이 머리- 가슴-습관으로 갈때 생활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틀이 잡히고 한단계 올라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질서 했지만 정기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5시새벽기도-6시 QT하는 식으로 세팅된 시간을 갖는다면 영적 발전이 생깁니다. 리더가 되 책임감이 있으면 영성생활이 세팅되 성장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찾느 방법을 뮬러는 습관적으로 쓴것을 내것으로 가져와야합니다, 블랙가비가 하나님을 만나는 간증을 내것으로 가져와야합니다.. 시간을 많이갖고 하루종일 묵상해야합니다. 말씀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말씀대로 보고 듣는 눈과 귀가 필요합니다. (아직 내가 영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이 많습니다, 내가 경험한 것은 너무 작습니다.) 두란노서원에서 나온 <부부의 삶>이란 교제를 가지고 소그룹에서 같이 읽기만 하면 치유가 됩니다. 그힘이 1년은 갑니다. 1월16일-19일까지 (낮4;30에는 상담세미나가 있고) 대학로 동숭교회에서 가정부흥회가 있습니다, 1월27-29 안성 사랑의 집에서 가정사역연구소 주체로 가정부흥회가 있습니다, 이것은 짧은 시간에 부부의 영적 생활에 큰 효과를 보는 특식과 같습니다.

[5] 성경은 “어떻게”에 대한 대답인가?
창세기 10장에 보면 방주에서 나온 아들이라고 했는데 모든 인류는 노아의 후손이냐? 혈육으로 맺어진 것이냐? 아담과 하와에서 노아로 이어지고, 노아에서 햄, 셈, 야곱의 족속이 나와 여러인종으로 퍼져나갔습니다. 햄은 흑인 아프리카인의 조상이 되며, 샘은 아랍, 황인종의 조상이 되며, 야곱은 유럽인의 조상이 됩니다.인종적으로 언어적으로도 셋으로 나누어 집니다. 셈족은 히브리말과 같은 발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창조과학회는 이러한 과학적 질문에 모두 대답합니다. 또한 인류의 기원에 대한 족보가 표로 나와 있습니다. 여호수와가 전쟁할때 해가 하루종일 멈추었다고 했는데 천문학자들이 그런 일이 역사적으로 있었다고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떻게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 왜에 대한 대답입니다. 성경에는 역사적 장르와 문학적 장르가 있습니다. 시편에는 과장이 많이 있습니다. 300척이란 말이 나오면 어떻게?라는 질문을 하면 안됩니다. 성경의 문학적 장르와 역사적 내용을 모르니 어떻게? 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과학자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즘 TV에서 얘기하는 김용욱씨는 한신대 신? 隙?공부한 사람인데 지적인 걸식증에 걸린 사람일 뿐입니다. 육은 정신세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정신세계는 영을 뛰어넘지 못합니다, 차원이 다르므로 혼으로 영을 알 수 없습니다.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안사람은 비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사람과 천지차이입니다.

[6] 풍부한 말씀을 받으려면 ?
풍부한 말씀을 받으려면 신구약 개관을 알아야 합니다. 4-5주간 신구약 개관을 공부하고 Cross way, 베델 성경공부에 들어가면 좋습니다. <신구약 성경 피노라마>책을 통해 전체 성경을 조망하는 공부를 하는게 필요 합니다. 언어적, 역사적, 지리학적 내용을 알면 풍부하게 성경이 이해가 됩니다. 배경을 알고 있는게 필요합니다. 지지학(기후, 풍토, 관습, 성경지리 언어), 다양한 문학쟝르(시 묵시. 소설(픽션) 역사기술서)를 통한 다양한 역사적인 배경을 알면 말씀을 풍부하게 다른 각도에서 이해하게 됩니다. 성경의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라고 표현했는데, 그것은 신이 여러명있는 것이 아니라 히브리인들은 절대적인 신인 하나님에 대해서 복수를 썼습니다. 역대기는 왕조실록으로 삼국사기같은 정사이며, 열왕기상은 삼국유사같은 야사입니다. 정사도 왕중심으로 쓰여져 왜곡이 있습니다, 욥기는 소설입니다. 진짜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욥기는 고대문서로서 성경에서 제일 오래된 책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인생을 이길 하나님의 메시지가 있습니다. 성경을 평면적으로 보는 것은 평면 영화와 입체영화를 보는 것같이 차원?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이 죄인과 먹고 마셨다> 그당시 관습으로 돌맞아 죽는 일은 담대한 일입니다.. 오른빰을 때리면 왼빰도 대라는 예수님 말씀이 있습니다. 제가 미국교수한데 들은 이야기인데 히브리인들은 오른손 등으로 오른쪽 빰을 때리므로 왼빰을 대면 때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말은 때린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라는 뜻입니다. 적극적인 비폭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5리를 가라하면 10리를 가라는 것도 무언의 저항을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에수님은 불의에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이사야를 보면 예수님 얼굴을 놋으로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불의에 대해서 당당하게 맛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드럽고 자상할때는 한없이 자상했습니다.

[7] 마음과 영의 차이?
(잠언4;23-24절) <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궤휼(험담, 비웃는 것) 을 네입에서 버리며 사곡(비딱한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생명(生命)의 근원이 여기서 나옵니다.. 명(命)은 영(靈)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생명은 우리가 가진 생명이 아닙니다. 우리가 가진 생명은 나면서 부터 한정적이고 죽어가는 생명입니다. 영생의 개념인 천상의 생명을 말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뿌리가 있는 생명으로 천상의 기쁨과 복락을 느끼는 것이 생명이 있는 사람의 삶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것의 그림자입니다. 성경의 생명은 영생과 같은 말입니다. 마음에서 생명의 근원이 나옵니다. 마음은 영의 자리이며 지정의가 있는 곳입니다. 마음은 머리에 있습니다. 그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위인데 마음이 인격의 중심이며 영의 자리 혼의 자리입니다, 성경은 영(靈 프쉬게)과 혼(魂소마) 혹은 영혼(靈 魂)이란 단어를 섞어서 사용했습니다. 그것은 일리가 있습니다. 우리 속에는 마음(心)이 있습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흙인 인간의 몸에 루아흐(영)이 들어가게해 생령이 된 것처럼, ! 마음에 성령 (聖 靈)이 들어오셔서 마음(心)이 영(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통하면 마음이 영입니다. 우리마음과 영을 나누는게 아니라 성령이 우리마음을 사로잡으면 마음이 영이됩니다. 마음이 사람과 통하면 마음은 혼입니다. 개인의 인격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게 영혼이며 심령입니다. 성령과의 교제 (성령의 역사)는 영과 하는 것이며 인간의 교제는 혼으로 하는 것입니다. 영성수련은 마음의 수련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말씀이 살아 움직이는 것입니다.

[8] 성령체험이란?
(요한6;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내말이 곧 영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입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며 성령입니다, (요한14;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길, 진리, 생명입니다. 말씀과 예수님의 공통분모는 생명입니다. 성령을 받는다, 하나님을 영접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며, 믿는다라는 것은 예수님,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말이 곧 예수이며, 영이며, 생명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은 말씀 체험입니다. 하나님 체험을 어디로 합니까?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깨달음을 얻게 되면 마음의 질(영적인 질)이 바뀝니다. 심령의 담대함과 기쁨, 평안이 옵니다. 마음의 변화입니다. 영을 마음으로 찾아야지 딴데서 찾으면 안됩니다. 영혼이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영이요 생명입니다. 생명을 얻으면 기쁨, 감사, 평안이 흘러 넘쳐납니다.

[9] 영감이 생기려면?
영성훈련은 마음수련이며 지정의 수련입니다. 불교에서 마음을 화두로 삼습니다. (잠언 23장7절) <대자 그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너더러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 사도바울의 속사람은 마음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기분 마쁘다, 좋다,, 한국사람은 마음이 발달하여 마음이 풍부합니다. 마음이 성경에 많이 나오는데 훈련할때 내마음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기분나쁘다, 좋다와 같은 느낌은 혼적인 교류를 많이하면 생기는 것입니다. 타인의 혼과 교류를 많이 한 사람은 여기서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아 채우고 만족감, 기쁨, 행복감을 느낍니다. 또 사람은 주면서 행복감을 느낍니다. 인간끼리 교류하면서 감이 풍부해 집니다. 에술가는 자연과 사람과 풍부한 교류를 합니다.. 그래서 예술적 감이 생깁니다. 하나님과 교류하는 사람은 영감이 풍부해 집니다. 사람과 혼적 교류를 많이 하느냐? 하나님과 영적교류를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따라 감이 달라 집니다.. 마음(心)은 감(感)입니다. 영성(靈 性)은 영감(靈 感)입니다. 마음은 늙지 않습니다. 마음! 은 잠자지 않습니다. 자도 마음은 깨어 있어 꿈을 꿉니다. 뇌는 쉬나 마음은 계속 움직입니다. 마음은 죽지 않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과 속성이 같은 것입니다. 마음은 늙지 않지만 교류하면 풍부해집니다. 마음은 하나님과 같습니다.

[10] 축복을 얻으려면?
마음관리가 중요합니다.. 마음관리가 혼적으로 될 수가 있습니다. 이런 마음은 영적 차원으로 갈 수 없습니다. 성령에 접촉되면 구름 아래 위가 차원이 다른 것처럼 차원이 달라집니다. 성령과의 교제는 말씀을 내의식안에 넣은 것으로 피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육신되어 뿌리를 내리면 축복을 받게 됩니다. 신명기 28장에 보면 하나님은 축보과 저주를 선택사항으로 주었습니다. (신명기 28장1절)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축복을 받는 조건은 내말을 듣고 지키면 축복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말씀을 소유하면 축복이 들어옵니다, 말씀을 통과 시키면 저주가 일어납니다, 축복받을 사람이 축복을 받지 못하고 사는게 저주입니다. (창세기 1장27-28절)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처음으로 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축복은 발란스 입니다. 저주는 발란스가 깨지는 것입니다.

 

정? ÷括犬?돈 많은 사람은 건강을 잃거나 지식이 깨지면 축복이 없는 것입니다. (미국의 록팰러가 암에 걸려 죽게 되자 사람들은 그에게는 관심이 없고 그의 재산이 누구에게 유산되는가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고 화가난 그가 자신의 전재산을 가난한 사람과 사회를 위해 희사했습니다. 그러자 그에게 사랑의 마음이 생기고 그는 암에서 완치 되었습니다) 세상의 복을 다누려도 심령의 천국이 없으면 복이 아닙니다. 조용기 목사는 삼박자 구원을 말합니다.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협력해 선을 이루고 육신도 강건한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마가복음4장은 천국비유를 하면서 제일 처음한 비유가 씨뿌리는 비유입니다. 씨는 하나님의 말씀인데, 중요한 것은 씨를 받는 심령밭이 어떠하냐? 입니다. 말씀이 들어가 뿌리를 내리면 100배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말씀 묵상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주야로 묵상했다고 했습니다. 그위치에서 범죄하지 않고 죄에 민감하고 즉시 즉시 영적으로 번민한이유는 말씀으로 주야로 채우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11] 영감이란?
의식은 마음의 생각입니다. 영은 마음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채워져 깨닫음이 오고 기쁨과 평안이 체험되고 감(확실하지 않은 느낌)을 잡다가 축척되면 실감(확실해 지는 것)이 됩니다. 영감은 심령에 영이 채워져 교제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이 어떻게 지헤주시는지 하나님을 실감하는 것,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이 성경공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공부를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단계에서 올려서 하나님과 1;1관계에서 기도하면서 말씀을 묵상하는 성경공부가 중요하다. 밤에 취침 기도하다가 주시는 말씀을 써놓고 해야할정도로 저에게는 말씀이 넘칩니다. 생각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은 생각하고 느끼고 지정의와 같은 통합적 개념이 나오는 곳입니다. 사도바울은 이마음을 인격화해서 속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마음과 마음은 비춥니다. <물이 얼굴을 비침같이 사람의 마음은 거울같아 마음과 마음을 비추느니라 > 학생도 선생의 마음을 압니다.. 사랑하는지 안하는지 압니다. 선생님이 때려도 사랑과 애정이 전달되면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체벌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선생의 마음에 자유함이 있어! 아버지의 마음으로 때리면 문제가 안됩니다.

[12] 기독교 교육이란 ?
영은 가르치는게 아니라 세어링(나누는 것)하는 것입니다. 기독교교육에서 일반 교육이 나온 것인데 지금은 기독교교육이 일반교육에서 배워옵니다. 기독교 교육은 지식전달이 아니라 삶을 나누는 것입니다. 너와 나사이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감을 나누는 것입니다, 히브리인 교육은 가정교육인데 추상명사를 가르키는게 아니라 삶으로 보여줍니다. 6월절(초막절)이 되면 매년 집집마다 특이한 행사를 계속해서 반복합니다. 집앞에 별이 보이게 텐트를 치고 가족이 들어가 잠을 잡니다. 별을보며 아버지에게 자식이 물어 봅니다. “우리는 왜 서서 밥을 먹습니까?” 하고 작년에 물어 본것을 매년 묻습니다. 아버지는 대답해줍니다. “ 그것은 우리 조상이 종살이 하던 에굽에서 이끌어 내기 위해 하나님이 준 10가지 재앙을 있었는데 마지막 재앙으로 물살구에 피를 바르고 벋어났단다”

 

폭탄의 연기가 가시기 전에 6.25기념일을 매년 맞이한 우리세대들은 가슴으로 전쟁을 느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대에게 전쟁은 먼 나라 이야기로 들릴 것이며, 분단의 아픔은 역사의 뒤안길로 기억 속에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도망가는 처지의 사람들인 ! 이스라엘인들은 양을 잡아서 피를 받아 뿌립니다. 제사장이 손에 묻혀 뿌리고 묻을 닫아 걸고 누룩섞인 빵(딱딱한 빵/ 순수한 빵)을 구어서 먹고 쓴나물을 소금도 넣지 않고 입에 넣어 씹고 있으면서 지금도 그 의식을 행합니다. 2000년동안 나라가 없으면서도 민족의 얼을 기억하는 것은 절기를 통해서 부모가 자기 자식에게 드라마를 해서 인상적으로 남게 해줍니다. 1주일간 초막에서 자면서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조상이 예굽에서 떠나 광야에서 40년간 살았으니 그것을 잃지말라는 것입니다. 신명기 6장에서는 <세마 이스라엘>이라고 말합니다.. 이뜻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잃지 말찌니>입니다. 기독교 교육은 바뀌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신명기 10장의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인 여호와니>말을 문에 써서 터치하고 머리 미간에 말씀이 담긴 조그마한 박스를 두르고 다녔습니다, 일하는 손목에 옷깃에 말씀을 넣고 다녔습니다. 이것이 말씀 신앙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식언치 아니합니다.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

[13] 하나님을 인식하려면?
하나님을 상대적으로 인식하는게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인식은 절대적인 인식이 되어야합니다. 하나님을 체험하고 느끼는 것을 인간적 경험으로 알려는 것은 영적 신앙이 아닙니다. 절대적인 하나님을 상대적인 인간이 체험한다는 것은 있을 수 가 없는 일입니다. 마음의 바퀴 즉 중심이 바뀌어야 합니다, 인격과 라이프스타일과 패턴이 바뀌어야 합니다. 외부사람에게 영적 영향력을 미쳐야합니다, 종교개혁당시의 의미는

 

1) 잃어버린 말씀을 다시 찾았다. 2) 평민이 소유할 수 없는 언문을 활자 발명에 힘입어 평신도에게 말씀을 돌려다 주었습니다. 그것은 영적차원인 하나님 말씀을 혼적 차원으로 상대화 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루터가 말씀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루터는 성경학자이므로 로마서를 많이 읽었지만 어느날 서문을 읽고 뒤집어 졌습니다, 로마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 성령에 감동해 읽으니 충격으로 와서 그 사람의 마음의 패러다임이 달라집니다. 한귀절의 성경이 그사람의 마음을 새롭게 하고 그 인생을 뒤집어 놨습니다. 본질을 붙드는게 중요합니다.. 아무 의식없이 저항없이 젖여 내려온 전통과 관습을! 말씀으로 다시 재평가 할때 우리 삶은 개혁할 수 있게 됩니다. 전통적 의식으로 성경을 보면 그것 밖에 안보입니다. 색안경을 벋고 성령을 통해서 보면 본질을 찾게 되고, 우리 삶이 본질에서 얼마나 멀어졌나를 알게 되고 우리삶을 개혁할 수 있게 됩니다. 관념에 젖어 내려온 자기를 불편하게 느껴 견딜 수 없어 토해내는 것이 회개입니다. 평신도 사역자를 위해서 만들어진 <최선의 삶>이란 교재를 통해서 변화되는 삶을 경험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cafe.daum.net/cgsbong


영적 리더십 - 헨리 블랙커비 -

 

1. ‘영적’ 리더십에 대한 의의(意義)의 제기는 명확했다.처음부터 방향과 한계가 분명하게 제시되었고, 그것은 독자가 분명한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2. 주옥같은 문장들, 가르침들이 많이 나온다. 현대의 리더십의 문제를 과감하게 지적하거나(7, 22, 33), 영적 리더가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며, 어떻게 영적 리더로 세워질 수 있는지에 대해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다! 읽어갈수록 동감되는 부분을 많이 발견한다. 책을 읽으면 느끼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이처럼 동일한 생각을 가진 저자를 만나는 일이다!

3.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떠오른 개인적인 생각... 이전 교회에 있을 때에 K집사님이 나에게 이 책이 참 좋다며 추천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오스왈드 스미스의 [영적 지도력] 책도 참 좋다며 그 책을 추천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했던 일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그냥 그러냐고, 읽어보겠다고 대답해도 되었을 터인데... 나는 왜 그렇게 반응하지 않고 마치 경쟁하듯이, 맞받아치듯이 다른 책을 추천했을까? 그때에는 자연스럽게, 그리고 상대방을 끌어내리려는 의도 없이 그렇게 했지만, 지금은 내가 그렇게 했던 이유가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된다. 나의 내면에 숨은 또 다른 동기... 그것은 아마도... 책과 관련해서는 내가 누구보다도 우위를 점하고 있음을 보이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 아니었을까? 다음에라도 혹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그냥 순순한 마음으로 그러냐고 나도 한 번 읽어보겠다고 답변할 수 있기를...


4. 이 책을 읽으면서 배운 것들...(괄호 안의 숫자는 페이지)


1) 목자 vs CEO(22, 83, 102, 156, 286) “이전의 교회가 ‘지상 명령’에 주력했다면 오늘의 교회는 ‘사명 선언문’을 채택한다. 이전의 교회가 ‘교제권’을 얘기했다면 현대 그리스도인 리더들은 ‘팀’을 구성해 팀 조직을 통해 사람들을 돌본다. 이전의 교회가 사람들을 예배로 오게 하려고 교회 간판을 세웠다면 오늘의 교회는 최신 마케팅 원리를 활용해 지역 사회에 접근한다. 대형 교회(일부 작은 교회도 마찬가지지만) 목사들은 목자보다는 CEO처럼 군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낸 뒤 그 필요에 부응하는 제품을 개발하는 세상 기업체에서 이것은 당연히 수익성 재고에 좋은 오랜 관행이었다. 이것을 교회들이 시도하고 있다. 필요에 기초한 비전은 분명 장점이 있다. 그러나...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성공하는 기업들은 전적으로 시장에 의해 움직이지 않는다. 오히려 기업이 때로 시장을 움직인다.” - yes & Amen! 교회가 세상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세상을 움직여야 한다!!!
“교회 프로그램으로 삶이 바뀐 예는 종래 없다. 하나님이 주도하시지 않는 한 교회 활동은 부산한 일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목사님이 한 일이 그렇게 잘못이라면 하나님이 왜 목사님한테 복을 주시겠습니까?’라고 반문한다. 물론 이것은 양적 성장과 하나님의 복을 동등시한 결과다. 성장은 건강한 교회의 불가피한 현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교회는 하나님의 복 주심 없이도 수적으로 얼마든지 성장할 수 있다. 즉 사람을 끌어 모으는 것과 교회를 세우는 데는 큰 차이가 있다. 예컨대 마케팅 담당자는 사람을 끌어 모을 수는 있지만 교회를 키울 수는 없다. 숫자적 성장이 하나님이 주신 복의 확실한 징표라면 다수의 이단들이야말로 하나님의 엄청난 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인가. 우리에게는 하나님도 인간처럼 군중에 감격하신다고 믿고 싶은 유혹이 있다.”
“하나님이 목사들을 수입이 적은 교회로 부르시는 경우는 한 번도 없고 항상 수입이 더 많은 교회로만 부르시는 것 같으니 왜 그럴까?


2) 비전과 계시(38, 39, 92-95, 99, 107) “영적 리더십의 최대 장애물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들은 공격적 목표를 정하고, 원대한 꿈을 꾸고, 거창한 비전을 내놓는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그 일에 합세하여 자기 노력에 복을 내려 달라고 기도하며 구한다. 이것은 영적 리더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하나님은 당신을 따르는 자들이 눈에 보이는 비전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로 살아가기 원하신다. 비전과 계시는 다르다. 비전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계시는 받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 리더들이 세상 식의 비전을 받아들여 하나님의 뜻을 놓치고 만다. 그저 피상적으로 잠깐 기도한 뒤 바로 계획을 짜기 시작한다. 성경의 관련 구절을 몇 군데 찾아보고는 급히 목표 설정 단계로 들어간다. 그러면서도 그 과정에 기도와 성경 말씀을 넣었기 때문에 자기 계획이 하나님한테서 온 줄로 착각한다.”
“영적 리더의 역할은 하나님을 위해 스스로 꿈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를 이해함에 있어서 아랫사람들에게 선봉이 되는 것이다.”
“영적 리더들은 사람들이 비전을 받아들이도록 엄청난 에너지를 쏟는다. 그것은 비전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독교적 관점에서는 비전을 주입하는 과정 자체가 잘못이다. 영적 리더는 비전을 주입하지 않는다. 사람들과 나누고 성령이 그들의 마음에도 똑같은 비전을 확증해 주시리라 믿을 뿐이다.”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일과 약속에 관한 것이라면 성령이 사람들의 마음에 확증하신다. 비전을 주입할 필요가 없다. 단순히 약속하신 하나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된다.”


3) 하나님의 뜻과 인내(72, 96, 97, 149, 151, 152) “두려움에 빠져 문제를 자기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재앙을 부르는 것이다.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인내하며 주님을 기다릴 때 하나님은 언제나 어김없이 이루어 주신다. 하나님의 약속은 언제나 기다릴 가치가 있다.”
“하나님의 약속은 절대적이다. 거기에는 토의나 수정의 여지가 없다.”
“영적 리더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자리에 자신의 그럴듯한 생각을 끼워 넣고 싶은 유혹을 물리쳐야 한다. 좀 더 성취되기 쉽게 하려고 하나님의 계획을 수정한다든가 과정을 서두르려는 것은 영적 리더십이 미숙하다는 증거다.”
“이동 자체에 매달리느라 목적지를 보지 못하는 리더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랄 정도다.”
“영적 리더의 일차적 목표는 목표 달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다. 리더는 목표를 달성하고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는 어떤 일을 하는가 못지 않게 그것을 어떻게 하는가가 중요하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목표가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4) 영적 리더의 기초 - 성품, 만남(75, 128, 233, 252) “리더십 개발의 최우선 진리는 하나님의 지명이 언제나 성품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이다. 성품이 훌륭할수록 큰 일이 맡겨진다(눅 16:10).”
“삶이 변화될 만큼 깊이 하나님을 만나지 않은 사람은 영적 리더가 될 수 없다.” - 단순히 하나님을 ‘만났다’는 정도가 아니다! ①삶의 변화와 ②깊이가 요구되고 있다!
“리더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내용을 분명히 알 때까지 하나님과 단 둘이 서두르지 않고 방해받지 않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과 교제가 없는 영적 리더는 자기 조직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다.”


5) 리더와 성공, 시간, 계획(81, 123, 237, 245, 246) “성공은 리더의 가장 큰 적이 되기도 한다. 하나님이 전에 특정 방식으로 강력하게 역사하셨기 때문에 지금도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시리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오늘날 많은 조직들이 특정 업무 방식에서 좀처럼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그 방법이 여전히 효과적이어서가 아니라 어제 효과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공의 저주이다.”
“영적 성공은 능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의 문제인 것이다.”
“리더의 효율성은 시간 관리 능력에 비례한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난 리더라도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고생을 면할 수 없다. 훌륭한 리더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잘 안다. 또 영적 리더는 하나님이 주신 시간의 분량이 그분이 맡기신 일을 수행하는 데 충분함을 안다.”
훌륭한 리더는 뛰는 것이 아니라 무난한 속도를 정해 놓고 계속 꾸준히 걷는다(피터 드러커). 인생은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마라톤이기 때문이다.”
“계획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이다.”


6) 판단의 기준(89, 287, 145, 141, 218, 287, 288)! “하지만 그것은 성경적인가?”
“영적 리더는 늘 자신이 읽는 내용을 성경의 영원한 지혜에 비추어 평가한다. 아울러 성령의 인도를 받아 생각하며, 사회의 최신 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를 자기 생각의 기초로 삼는다.”
“워런 베니스는 오늘날 너무 많은 리더들이 ‘지성의 금욕’으로 고생하고 있다고 탄식했다. 행동만 있을 뿐 바기 행동이 적절하고 효과적인지 좀처럼 멈춰 생각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무엇보다 나는 설교를 줄이고 공부를 더 많이 하고 싶다(빌리 그레이엄).”
“훌륭한 리더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다양한 시각을 고루 듣는다.”
“자신의 사고를 넓혀 줄 책과 기사, 위대한 인물과 사상가들의 전기를 읽는다. 시중에 범람하는 간편 요약의 대중 서적만 골라 읽는 대신 자신의 생각에 도전을 가하고 참신한 통찰을 줄 수 있는 저자들을 찾는다. 리더에게 최근 무슨 책을 읽었는지 물어보라. 진정한 리더라면 현재 익히고 있는 내용을 금방 말해줄 것이다.”
“리더는 독서할 뿐 아니라 사고하는 사람이다. 참된 리더는 주변 사건들을 충분히 생각하고 소화한다.”
찰스 피니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 이야기(125). - 나는 개인적으로 피니를 보며 많은 도전을 받는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셨으며(사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도 사용하실 수 있다!), 그가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했음을 안다. 다만, 나는 그가 자신을 통해 나타난 그러한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에 반대한다. 그는 그것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의 결과가 아니라 자신이 올바른 수단을 사용한 것에 대한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7)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35, 230, 259, 261)
“ 리더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지시에 응답하는 법을 깨우쳐줄 필요가 있으나 그렇다고 조직을 그들 수준에 맞춰서는 안 된다. 훌륭한 리더는 연약한 구성원들을 버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조직을 그들에 맞춰 하향 조정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하면 어른들은 아이들을 길가에 버리지 않지만 그렇다고 아이들에게 선두를 맡기지도 않는다. 노련한 리더는 리더십의 이 절묘한 균형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리더는 조직에서 의욕 없는 구성원을 전체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리더는 절대 사람을 포기하지 않는다. 다만 성장하는 생산적인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가려 시간을 지혜롭게 투자할 뿐이다.”


8) 잘못된 권리/리더에 대한 복종 문제(117) “권위에 있는 사람이 옳은지 아닌지는 우리가 관여할 바가 아니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 직접 책임질 일인 까닭이다. 아랫사람들은 그저 순종만 하면 된다. 주님은 잘못된 순종의 책임을 묻지 않으신다. 대신 위임하신 권위자에게 잘못된 행동의 책임을 물으신다. 그러나 불순종은 반역이다. 권위 아래 있는 자들은 그 점에서 하나님께 책임진다.” - 이 부분은 반론의 여지가 많다. 이것이 칼빈의 기본적인 태도이기는 하지만... 나는 사무엘 루더포드나 디트리히 본회퍼, 프란시스 쉐퍼의 태도가 더 성경적이라 생각한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잘못된 리더에 대한 ‘불복종권’이 있다. 하나님으로부터 ‘권세’를 얻은 자가 하나님을 거슬러 그 ‘권세’를 행사한다면, 그에게는 더 이상 그 ‘권세’를 휘두를 자격이 없다고 해야 한다.


9) 리더와 기도(179, 184, 214) “리더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당연 기도다.”
“기도하는 리더 밑에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복된다. 리더는 늘 사람들에게 자신이 기도해 줄 부분을 묻고 기도가 응답되면 사람들과 함께 기뻐해야한다.” - 적용할 것!
“기도 생활을 간과하는 것은 리더의 무모한 교만이다.”


10) 리더와 긍정적인 태도(202, 208, 284) “비관적 리더란 표현 자체가 모순이다. 리더는 역할의 본질상 긍정적 태도를 심어 줘야 하는 자다. 성공의 가능성을 의심하고 최악의 사태를 겁내는 리더는 당장 태도를 바꾸거나 참 리더에게 자리를 내줘야 한다. 지레 안 되는 쪽으로만 생각하면서 그것을 현실 감각으로 착각하는 리더들이 있다.”
“위대한 리더들은 변명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황을 호전시킨다. 현실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닥쳐오는 난관을 못 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낙심하지 않을 뿐이다. 위대한 리더는 아랫사람들이 제자리에 있지 않다고 비난하는 대신 그들을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로 데리고 간다.”
“리더는 절대 냉소적 태도에 빠져서는 안 된다. 영적 리더의 냉소적 태도는 두말할 것도 없이 그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는 뜻이다. 또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다.”


11) 리더와 사람, 위임(168, 258, 248, 303, 304, 321-323).
“리더는 타인의 성공을 인정한다. 리더가 공로자를 따로 명시하지 않으면 은연중 성공이 리더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 매우 실제적 지침이다!
“리더가 되려면 사람에게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리더가 위임해서는 안 되는 일들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주직을 그분 뜻대로 이끄는 것이다. 업무 수행을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것도 리더 고유의 책임이다. 이런 중요한 책임에 주력할 시간을 내기 위해 리더는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위임해야 한다.”
“나이든 리더는 차세대 리더를 잘 축복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나이든 리더는 차세대 리더에게 최고의 지지자가 돼주어야 한다. 후임자를 간섭하고 비판하는 일을 각별히 삼간다면 그들은 차세대 리더에게 값진 지혜와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위대한 리더는 주변 사람들까지 훌륭하게 만든다. 리더는 자신의 성품이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
“사람 없이 이루어지는 일은 없고 조직 없이 지속되는 일은 없다(진 모네트).”
“중요하면서도 흔히 간과되는 리더의 책임으로 후임자가 있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은 성경에 잘 나타나 있다.”


12) 리더가 주의할 것들
탁월함(153) “탁월함을 매사에 완벽하다는 뜻으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기준이 아니다.”
어려움 vs 기회(230) “이런 리더는 어려운 문제가 사라지기를 바라며 일을 연기할 때가 많은데, 안타깝게도 시간과 함께 사라지는 것은 어려움이 아니라 기회일 때가 많다.”
자만!(278) “젊은 리더들은 아직 경험을 통해 배운 바가 없기에 자신만 믿는 덫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마땅히 물정을 알 만한 나이든 리더들도 자만의 함정에 빠지기 쉽다. 이미 성공의 이력이 있는 만큼 남의 조언과 지원 없이도 잘 이끌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3) 리더와 비판(290, 292, 293) “비판을 소화하지 못하는 사람은 리더십을 넘보지 말 일이다. 어떤 행동을 취하든 비난이 불가피하기에 리더의 선택은 그만두든지, 하나님이 입증해 주시리라 믿고 옳다고 생각하는 길로 밀고 나가든지 둘 중 하나이다.”
“참된 리더는 자신의 인기보다 바른 일을 행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비판받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뜻 밖에 있는 것은 아니다.”


14) 좋은 tip!
결정하지 않겠다는 결정(167)이라는 내용은 은 내게 큰 도전이 되었다!
떠남(172) “리더가 자리를 떠날 수 있는 정당한 사유는 오직 하나님의 분명한 인도가 있을 때뿐이다. 리더 자리를 떠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기신 사람들을 버리는 것은 아닌지 솔직히 자문해 보아야한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176)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은 복잡한 일이 아니다. 지켜보는 세상에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낼 때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리더와 모범에 대한 자질구레하게 보이는 내용들(188-)은 매우 실제적이다! 특히 트루먼 이야기(200)는 내게 큰 도전을 주었다.


15) 신임 목사가 부임한 교회의 역사를 살피는 것의 중요성(142, 222, 223)에 대한 지적은 매우 유용하게 생각된다.
“신임 목사가 임지에 도착하면서 하나님도 자기와 함께 도착하셨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하나님은 진공 상태에서 일하시지 않는다.”
“신임 목사가 이전 회의록을 쭉 읽으면서 교인들이 현시점까지 어떻게 하나님의 인도를 느꼈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오래된 교인들과 대화하거나 교회 역사를 읽어 보는 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이 교회를 어떻게 인도해 오셨는지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런 행동에는 지금껏 교회에서 이루어진 모든 일을 새 목사가 경솔하게 팽개치지 않는다는 것을 교인들에게 보여 주는 의미도 있다.” 출처: 양무리마을 : 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