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은 나의 생애에 가장 영향력을 끼친 위대한 인물 두사람, 간디와 파스칼, 그중 파스칼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는 이분들의 책을 10대에 읽었다. 엄창난 감동을 받았었다.
그 후에도 늘 곁에 두고 읽으며 나의 영혼을 정화시키는데 도움을 받곤 했었다.
그들에 대한 존경심은 지금도 여전하다.
팡세는 성경 다음으로 사랑하는 책이었다고 할까? 물론 논어도 매달 한권씩, 새로사서 읽곤했었다.
그러다 성경으로 돌아와 보니.... 기가막힌 책 성경, 세상의 그 어느 책보다 간결하면서 진리가 담겨 있는 ...
본래 소설보다는 "사상집"을 좋아했던 나는 수 많은 책을 읽고 난후 다시 어릴때 읽었던 성경으로 돌아왔을때 감동을 이루 말할수 없었다. 역시 성경말씀은 위대한 진리의 말씀이다. 진리를 정의 한다면 "변하지 않은것"이다.
마치 톨스토이가 친구의 꾀임에 빠져 18세에 하나님 떠났다가 55세로 돌아와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고백했던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그 다음으로 파스칼의 팡세였다.
" 순결하고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 파스칼".......
많은 사람들은 "파스칼의 원리"의 주인공인 파스칼과 팡세를 잘 매치 시키지 못할것이다.
예로부터 프랑스 병사들은 전쟁터에서 죽기 직전까지 "파스칼의 팡세"를 읽었다고 한다.
팡세를 읽다보면 그의 영혼이 얼마나 순결하고 아름다운 영혼인지 느끼게 될것이다.
그는 천재였다. 신구약 성경(구약 -히브리어, 신약 -헬라어) 모든 본문들을 다 외웠다고 한다.
그런데 "왠일인지 아쉽게도 30대에 요절했다고 한다.
아마도 천재나 위대한 인물들은 단명하는 것 같다(예수님도, 알렉산더도....)
물론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파스칼의 명언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
이 말은 그가 이사야 42장 3절의 말씀에 영감을 얻었다는 사실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했으면 한다.
◈ 혹시 아직도 읽어보지 않은분들에게 꼭 한번 읽어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 아래의 글들은 다른이들이 올려 놓은 글들을 올려 놓았습니다.
<아래의 책은 필자가 읽어보지 않았으나 그의 신앙적인면, 즉 "파스칼이 만난 하나님"을 을 소개하고 있기에 올려 드립니다.
1654년 11월 23일 저녁 10시 30분 부터 다음날 새벽 0시 30분까지 그는 놀라운 불(성령)의 체험을 했다. 이때 파스칼의 나이는 서른한 살이었다. 파스칼이 이때 경험한 구체적 상황을 우리는 알 수 없으나 매우 신비한 시간이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 파스칼은 이때의 감격을 놓칠세라 종이에 적고 양피지에 정서하여 평소에 자주 입고 있던 옷의 안쪽에 바늘로 꿰메어 깊이 간직해놓았다 . 그리고 죽을 때까지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다 . 파스칼이 죽은 뒤 비로소 이 메모가 발견되었다 . 이 메모는 지금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 약 600여 자 정도가 되는 짧은 신앙고백은 뜨거운 확신과 기쁨에 찬 감동이 서려있다 . 이건 파스칼이 하나님을 만난후 고백입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철학자와 학자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확신, 확신, 감격, 기쁨, 평화.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그리고 너의 하나님. 너의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나님 외의 이 세상과 온갖 것에 대한 일체의 망각. 하나님은 오직 복음서에서 가르치신 길에 의해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인간 혼의 위대함이여. 의로우신 아버지, 세상이 아버지를 알지 못하여도 나는 아버지를 알았습니다. 기쁨, 기쁨, 기쁨, 기쁨의 눈물. 나는 당신에게서 떠나 있었습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이제 나는 영원히 당신을 떠나지 않겠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당신이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 나는 당신을 저버리고, 피하고, 부인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이제 나는 절대로 당신에게서 떠나지 않겠습니다! 당신은 오직 복음서를 통해서만 알 수 있습니다. 일체의 모든 것을 기쁘게 포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나의 지도자에게 전적인 순종. 이 땅에서 잠깐의 노력을 통해 얻는 영원한 기쁨. 나는 당신의 말씀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아멘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은 1623년 6월 19일 프랑스의 크레스몽에서 태어났다. 그는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천재 중 한 사람이었다. 불행하게 그의 어머니는 그가 세 살 되던 해 세상을 떠났다 . 파스칼에게는 세살 위인 누님 질베르트와 두 살 아래인 여동생 자크린느가 있었다 . 이 두 자매는 모두 재색을 겸비한 여성이였으며 파스칼의 생애와 사상에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파스칼의 천재성은 아주 일찌부터 나타나기시작했다. 그는 11세 때에우연히 어떤 사람이숟가락으로 질그릇을 두드리자 소리가 나고그 질그릇에 손을 대자 소리가 멈추는 현상을 보고 여러 번 실험과 탐구 끝에(음향에 대하여) 라는 짧은논문을 써서 주위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10살 ~ 11살 때 가정교사에게 기하학을주제로 하여 지속으로 질문하고 여가에 노는시간을 아껴서 수학을공부(...)했다. 12세 때 기하학의 개념만 배웠던 파스칼이 혼자서 원과 직선을 그려가면서 유클리트의 기하학 정리 중 삼각형 내각의 합은180 도라는 명제를 풀어냈다. 크게 감격한 파스칼의 아버지는 파스칼에게 본격적으로 수학 공부를 시키기 시작하여 13살 때 파스칼의 삼각형을 발견했다. 14살 때 프랑스 수학자 단체(現 프랑스 학술원)의 주 정기 회동에 참가하였다. 16세 때 파스칼의 최초 과학적 업적으로일컬어지는 “원추곡선론” 이라는논문을 발표해 유럽 전역을 놀라게 했다. 파스칼의 정리를 증명했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이자이며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조차 파스칼이 정리한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다면서 파스칼이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 아버지가 썼을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18살엔 회계사 일로 고생하는 아버지를 위해서 톱니바퀴를 이용한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를 만들었다. 위와 같이 상자 모양으로 되어 있고 숫자판이한 자리씩 띄엄띄엄 일렬로 있으며 10갈래의 바큇살이 있는바퀴가 숫자판의 자릿수만큼일렬로 배치되어 있어서 바큇살을 돌리면 숫자판의드럼이 돌아가는 것으로 계산을 수행하는 원리이다. 비록 이때는 덧셈/뺄셈만 가능했고그나마도 덧셈과 뺄셈을 전환하려면 숫자판가리개를 올렸다 내리는 식으로 해야 하는불편함도 있었지만, 그래도 컴퓨터 발달사로봤을 때는 매우 획기적인작품이다. 삼각형의 위 주변 이야기 1. "...위장이 좋지 않아 수프만으로 한 끼 식사를 대신하던 중년신사가 수프 맛이 좋다고 소문난 식당을 일부러 찾아와 다른 음식의 서너 배가 넘는 돈을 내겠다고 하자 식당 주인은 특별한 맛과 영양을 고루 갖춘 수프를 만들어 한 달 동안 매일 다른 수프를 제공하겠다고 했습니다. 만일 똑 같은 메뉴가 한 달에 두 번 제공된다면 돈을 받지 않겠다는 약속도 함께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사가 이 식당에서 수프를 먹기 시작한지 29일 째 되는 오늘 신사는 식당주인이 약속을 어기고 똑같은 수프를 주었다고 주장하고 식당주인은 똑같은 수프가 아니라고 하는 바람에 다툼이 생겼습니다. 식당주인은 “나는 수프의 독특한 맛을 내기 위해 8가지 재료를 가지고 있는데, 이 8가지 재료에서 2가지씩을 골라 섞어 각각 다른 수프 맛을 냈고, 그렇게 하면 한 달 동안은 맛이 다른 수프를 충분히 만들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 때 마침 식당에 있던 파스칼은 주머니에서 작은 메모지와 펜을 꺼내어 순식간에 무언가를 적어 내려가더니 손님 말이 맞다고 하며 주인에게 사과하라고 하였는데....... ‘파스칼의 삼각형’을 이용하면 8가지 재료 중에서 2가지로 만들 수 있는 수프의 가짓수는 위로부터 9번째 줄에서 왼쪽으로부터 세 번째 수인 28, 즉 28가지 밖에 되지 않아 29일 째 되는 날은 같은 메뉴가 나오게 되므로 식당주인의 주장은 잘못된 것입니다." (글 한경희 이대희 그림 이주영 ) 1차 회심 후 카톨릭에서 개신교로 ..... 그러나 31세에 2차 회심하기까지... 과정 그는 부친이 타계한 후의 외로움에서 누이의 의사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으나, 별수 없이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누이는 1652년 수도원에 들어가고 파스칼에게는 이른바 그의 '세속 시대'가 시작 되었다. 그리하여 그의 눈은 인간의 세계로 돌렸으며 사교와 향락에 대한 흥미는 날로 격증 되어갔고 부유한 귀부인들의 살롱에 까지 출입하기 시작하여 거기에서 그의 문학과 철학의 향기를 맡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30세부터 약 2년 동안 평소 약했던 건강을 회복하는 수단으로 사교계에 발을 들여놓아 그의 관심이 추상적인 수학과 물리학적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갔다. 사교계에서의 인간 경험은 후에 “팡세” 에서 보여주는 그의 인간 이해의 중요한 믿거름이 되었다. 그는 수학적 지식과 천재성은 모든 사람을 능가하는 향수와 포도주. 그리고 도박에 대해 전문가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파리의 상류층은 물론 공주들과 왕자들까지 저녁 만찬에 초대하여 그의 이야기를 듣기 원해서 그는 매일 밤마다 술에 취해 있었다. 1654년 마차가 튕겨 나가는 사고로부터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 사고로 그의 말은 죽었으나 파스칼은 무사했다. 그때 파스칼은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지켜 주셨음을 확신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결단의 시기가 있다 , 결단은 커다란 부정과 커다란 긍정으로 이루어진다 . 낡은 내가 죽고 새로운내가 태어난다. 그것은 자아의 혁명이요 , 인격의 혁명이다 . 파스칼 생애의 최고봉은 1654년 그의 나이 서른 한살에 이루어진다 . 건강이 나빠진 파스칼은, 신학자 생시랑의 저서를 읽고 교리의 논리적 일관성과 금욕주의에 매료되어 가족들에게 신앙을 권면한다. 1차 개종 후에 아버지와 누나 질베르트를 개종시켰으며, 여동생 자클린은 더 깊이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1646년, 23세 때에 포르루와얄에 은둔하면서 신앙의 깊이를 더하게 된 파스칼은 <개종을 위한 기도>를 썼으며, <확률론>을 발표하였다. 1654년 11월 23일 저녁 10시 30분 부터 다음날 새벽 0시 30분까지 그는 놀라운 불(성령)의 체험을 했다. 1654년 11월 23일 밤, 2차 개종 후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된 파스칼은,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 맡긴다. 소위 결정적인 회심이다 . 이때를 경계선으로 그 이전의 파스칼과 그 이후의 파스칼은 완전히 달라진다 . 그것은 하나의 극적인 사건이었다 . 큰 깨달음이기보다는 차라리 하늘로부터 오는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놀라 자빠지고 감격하면서 하늘의 불 용광로에서 새로 태어난 것이다 . 자기 중심의 세계에서 예수 중심의 세계를 보았다. 알았다. 그 세계에 들어갔다. 그의 의식. 그의 생각의 중심은 이 세상. 현세에서 영원한 세상. 천국과 영생을 바뀐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눈(의식)으로 만물을 보고 만사를 판단했다. 영국의 20세기 최대의 설교자라고 일컬어지는 로이드 존스 목사는 그의 저서 “성령세례”에서 파스칼의 체험은 역사적으로 흔치 않은 하나님의 능력 세례라고 말한다. 파스칼이 제2의 회심이 있기 얼마전 수도원에 있는 동생 자크린느를 방문하여 이렇게 실토한 적이 있다. 나는 이렇게 사람들이 말하는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 파스칼의 1차 회심에서 완벽한 회심을 하지 못한 파스칼의 고백이 바로 나의 고백이고. 나의 괴로움이었다. 인간 파스칼이 철저하게 회심하지 못한 상태의 모습을 잘 표현한 이 글 속에서 나는 한없는 동질감과 함께 괴로워할수밖에 없었다. 파스칼이 결정적 회심 전에 기록한 글이 있다 . “영혼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고 깊은 존경과 마음을 품는다. 벌레와 같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한다. 많은 허영을 택한 것을 뉘우친다. 참회와 가책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 . 나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자 뜨거운 기도를 드린다. 아래 글들은 각 부분별로 좀 더 자세하게 참조하시기를..... 파스칼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행복할 수 없다. 하나님을 가까이 한만큼 행복해지고, 하나님을 멀리한 만큼 불행해진다. 그러므로 긍극적인 행복은 하나님을 확실히 아는 데 있고, 궁극적인 불행은 하나님이 없음을 확신하는 데 있다 . 의심한다는 것은 불행이 아닐수 없다. 그러나 의심 가운데서 추구한다는 것은 불가피한 의무다. 그러므로 의심하면서도 추구하지 않는 자는 불행과 부정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것이다 . 몽테뉴는 <에세>라는 저작을 남겼고, 파스칼은 <팡세>라는 작품을 썼다. 몽테뉴는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유명한 질문으로 자신의 회의주의적 사색을 요약했고,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제로 사상사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을 새겼다. 특히 삶에 관한 두 사람의 관점은 정반대라 할 정도로 달랐다. 몽테뉴가 무신론적 인본주의자였다면 파스칼은 신앙에서 출구를 찾은 기독교인이었다. 파스칼은 정욕에 빠지지 않도록 마치 나의 인생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것처럼 살자 . 만일 신앙을 가진다면 지체없이 쾌락을 버릴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겠다. 당신이 쾌락을 버린다면 곧 신앙을 얻을 것이라고 , 그러니 시작은 당신부터다 . 팡세 - 생각 - 파스칼 시대에 몽테뉴의 가르침은 꽤 널리 퍼진 일반 교양이 되었다. 그러나 파스칼은 몽테뉴와는 전혀 다르게 생각했다. 종교전쟁이 끝나고 유럽이 안정기로 접어든 이 시기에 파스칼은 ‘불안’을 보았다. 그에게 인간이란 ‘위대함’과 ‘비참함’의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존재였다. 인간은 갈대와 같은 존재여서 무한한 우주에 비하면 한없이 비참하다. 그러나 그렇게 미약한 존재가 전 우주를 사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한없이 위대하다. 파스칼의 강조점은 ‘비참’ 쪽에 찍혀 있었다 . ‘무’와 ‘무한’ 사이에 걸려 있는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불안을 안고 살 수밖에 없다고 파스칼은 생각했다. 파스칼이 보기에 몽테뉴는 이 근본적인 문제를 덮어버리고 그 위에서 적당히 삶을 즐기려고 한다. 몽테뉴처럼 의심만 하고 끝내서는 안된다. 의심의 끝을 뚫고 ‘초월’로 나아가야 한다. 기독교의 하나님에게 귀의함으로써 불안과 불행을 극복하고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파스칼의 생각이었다. <팡세>는 이렇게 기독교 변호론을 펼치는 책이다. 흔히 ‘팡세’하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 지구의 온 표면이 변했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연상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파스칼이 말년에 기독교의 진리성을 변증하는 저작을 하기 위해 병상에서도 노력하였으나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그 기독교변증론의 메모들로써 924개의 단상으로 되어 있는 것이 ‘팡세’이다. ‘팡세’는 세계인의 교양서적이 되었고, 전쟁에 나가는 프랑스 군인들의 배낭에는 ‘팡세’ 한권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팡세’의 제1부는 하나님이 없는 무신론자의 비참을 논하고, 제2부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인간의 행복을 말하고 있다. 파스칼의 신학은 철저하고 신비적인 체험신앙이다. 그는 고백하기를 “나의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 과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말한다. 파스칼은 인간이란 ‘생각하는 갈대’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기 때문에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무섭게 만든다’고 독백한다. 인간은 신(神)을 찾아가는 존재이다. 그는 인간을 세 부류로 구분한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신을 발견하고 섬기는 사람이다. 둘째는 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신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셋째는 신을 발견하려고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자백하는 의인(義人)이 있고, 또 하나는 스스로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죄인(罪人)이 있다” 파스칼은 인간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간구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예수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모든 종교를 거부한다고 선언한 그는 위대한 고백을 한다. “그러므로 나는 구주에게 두 손을 내민다. 그는 4천년 동안 예언되어 오다가 예언된 시기와 예언된 모든 사정 밑에서 나를 위해 죽고자 땅에 오셨다. 그리고 나와 영원히 결합되리라는 희망을 가지며 조용히 그의 은혜로써 죽음을 기다린다”요즘처럼 물질만능의 풍요속에 살다보면 영적 기갈을 느낀다. 또 한편 당시 거대한 사상가인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 데카르트는 당대 최고의 학자였다. 그는 합리주의와 근대 과학의 아버지다 . 파스칼과 데카르트는 28년의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서로 교제하는 사이였다 .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데카르트는 인간 자신과 인간 이성을 철저하게 세우고 끝까지 인정했다 , 그러나 파스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 그는 너무나 멋진 이런 말을 했다 “이성의 최후의 한걸음은 이성을 초월하는 무한한 사물이 있음을 인정하는 일이다 . 이를 인정하는 데까지 이르지 않는 한 이성은 약한 것일 뿐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을 뿐이다. 그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인이고,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이다. ' 팡세'는 완성된 책이 아니다. 파스칼이 '기독교 변증론'을 쓰기 위한 재료로 기록한 924편의 단장들을 그가 죽은 뒤에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은 병고와 금욕의 4년 동안에 수시로 씌어진 정신의 산물이다. 수학과 물리학의 천재가 무조건 성서의 기적을 믿고 오직 '기적만이 종교의 기초다'라고 단정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무한대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본질은 알 수가 없다. 신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신의 본질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대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가? 좋다., 그렇다면 내기를 걸라. 신은 존재하는가, 아니하는가? 그대가 만일 존재한다는 편에 걸어 그대가 이긴다면 무한한 행복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대가 진다 하여도 잃을 것은 아무 것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신은 존재하다는 편에 내기를 걸라"고 파스칼은 권고하고 있다. 기댓값을 알게 해준 확률론도 프랑스에서 시작됐다. 시작은 르네상스 수학자들이 남겨 놓은 난제인 '중단된 게임 문제'였다. 100점에 먼저 도달하는 사람이 상금 100만원을 차지한다고 하자. 만약 게임이 불가피하게 중단됐을 때 상금을 어떻게 나누는 것이 정당할까. 점수가 50대50, 또는 99대2이면 반반씩 나누거나 한 쪽이 거의 다 차지하면 된다. 문제는 어중간한 점수다. 59대50 또는 99대90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1654년 여름 파리에 살던 철학자 블레즈 파스칼은 게임이 동전 던지기이고 갑 대 을의 점수가 98대99라고 생각해 보자. 앞면이 나오면 갑이 1점, 뒷면이 나오면 을이 1점씩 얻는다고 하자. 갑이 이기려면 앞면이 두 번 연속 나오는 방법밖에 없다. 앞면이 나오는 확률이 2분의 1이므로 게임이 계속됐다면 갑이 이길 확률은 2분의 1과 2분의 1을 곱한 4분의 1, 을이 이길 확률은 그 나머지인 4분의 3이다. 파스칼은 갑에게 기댓값 (1/4)×(100만원)=25만원을 주고 을에게 기댓값 (3/4)×(100만원)=75만원을 주면 된다고 했다. 1646년, 23세 1차 회심. 아버지 파스칼 씨의 다리가 부러져, 포르-르와얄의 친구인 두 신사의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이들은 장세니우스와 생-시랑의 저서를 어린 블레즈에게 읽게 해 주었다. 소년은 교리의 논리적 일관성과 그 엄격한 금욕주의에 매혹되어, 이내 자기 자신의 집안에서 그 전도자가 되었다. 그는 아버지와 누나 질베르트(Gilberte, 훗날의 Mme Périer)를 개종시켰다. 이들은 천성이 차분한 사람들로, 평온한 확신을 지닌 장세니스트로 지냈다. 그의 또 하나의 누이인 자클리느(Jacqueline)는 그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와 마찬가지로 자부심이 강하고 열정적이며, 그때부터 벌써 속세를 떠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포르루와얄에 은둔하면서 신앙의 깊이를 더 하게 된 파스칼은 <개종을 위한 기도>를 썼으며, <확률론>을 발표하였다. 연구에 몰두하면서 건강이 나빠진 파스칼은, 신학자 생시랑의 저서를 읽고 교리의 논리적 일관성과 금욕주의에 매료되어 가족들에게 신앙을 권면한다. 아버지와 누나 질베르트를 개종시켰으며, 여동생 자클린은 더 깊이 신앙생활을 하게 된다. 파스칼의 1차 회심에서 완벽한 회심을 하지 못한 파스칼의 고백이 바로 나의 고백이고. 나의 괴로움이었습니다. 인간 파스칼이 철저하게 회심하지 못한 상태의 모습을 잘 표현한 이 글 속에서 나는 한없는 동질감과 함께 괴로워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스칼이 결정적 회심 전에 기록한 글이 있다. “영혼은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고 깊은 존경과 마음을 품는다. 벌레와 같은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한다. 많은 허영을 택한 것을 뉘우친다. 참회와 가책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한다 . 나는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자 뜨거운 기도를 드린다. 1654년 말 31세 그는 사두마차를 타고 있었는데, 말의 고삐가 풀려 마차가 다리로 돌진했다. 다행히 그의 생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지만, 이런 행운은 지독한 신도였던 그가 자기 분석을 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파스칼은 점점 더 신학에 집착하게 되었다. 마차가 튕겨 나가는 사고로부터 간신히 목숨을 건지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 이 사고로 그의 말은 죽었으나 파스칼은 무사했다. 그때 파스칼은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지켜 주셨음을 확신하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결단의 시기가 있다 , 결단은 커다란 부정과 커다란 긍정으로 이루어진다 . 낡은 내가 죽고 새로운 내가 태어난다. 그것은 자아의 혁명이요 , 인격의 혁명이다 . 파스칼 생애의 최고봉은 1654년 그의 나이 서른 한살에 이루어진다 . 1654년 11월 23일 밤, 2차 회심. 파스칼은 31세에 그 황홀과 환희로 가득 찬 밤에, 파스칼은 그의 하나님과 얼굴을 마주 대하고, 그에게 영원히 몸을 맡긴다.‘은혜의 불’을 체험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인격적으로 만나 주시는 파스칼의 하나님’을 만나며 2차 회심을 경험한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된 파스칼은, 비로소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내어 맡긴다. 이 와중에 그는 유명한 팡세,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저술했고,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1656년 33세에 종교 개혁신앙에 참여 – 얀센주의자들에 대한 예수회의 비난이 격해지자, 그들을 위해 ‘시골 친구에게 쓴 편지’ 18편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그리스도교를 위한 변증>을 구상하고 심한 질병의 고통 중에도 집필을 계속하였으나, 1962년 사망하면서 미완성에 그친다. 이 단장들은 사후에 편집자에 의해 『팡세』로 출간되었다. 1658년 35세 두통에 시달리면서 정신적으로 엄청나게 고 통 받았다. 두통이 멈추지 않아 잠도 제대로 못 이룰 정도로 고통스럽게 4년을 지냈다. 비록 이 두통을 잊고자 사이클로이드를 연구하여 수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지만, 1662년 6월, 39세 자기 부정 행위로서 블레즈 파스칼은 천연두에 걸린 가난한 가족에게 집을 내주고 누이의 집(수도원)에 들어가 지냈고 같은 해 1662년 8월 19일 경련 발작으로 사망. 그의 찬란하면서도 고통스럽던 생애가 막을 내렸다. 사체를 해부한 결과, 블레즈 파스칼의 위장과 중요 기관들이 정상이 아니었고 뇌에도 심각한 외상이 있었다. 이성(理性)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이성을 넘어서는 무언가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The heart has reasons that the mind has no knowledge of. “마음은 우리의 이성이 알지 못하는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 발견하고 섬기는 사람이다. 둘째는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고 다른 신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셋째는 신을 발견하려고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자백하는 의인(義人)이 있고, 또 하나는 스스로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죄인(罪人)이 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이성이 아니라 영감으로 체험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러한 사상은 장 자크 루소와 앙리 베르그송 및 실존주의 철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샤토브리앙, 보들레르, 니체, 에밀 졸라 등 후세의 다양한 지식인들이 스스로가 파스칼의 그늘에 있었음을 인정한다. “인간의 위대함과 하나님 없는 나약한 인간 존재의 비참함을 동시에 뜻한다” 특히 수학자로서 확률 부분에 대단한 공헌을 남긴 그는 흥미롭게도 신앙에 대해서도 의심과 불신으로 신앙을 거부하는 이들에게 구원 문제에 확률 개념을 적용한 '파스칼의 내기'를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크리스천이 되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손해볼 것은 무엇인가? 설사 그가 죽어서 하나님도 없고, 그의 믿음이 헛된 것이었다라고 판명되더라도 그는 잃을 것이 없다. 사실상, 그는 믿지 않는 친구들보다 더 행복하게 산 사람이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도 계시고, 천당과 지옥이 있다면 그는 천국을 얻을 것이고, 그의 무신론자 친구들은 지옥에서 모든 것을 잃을 것이다...' 그런데 파스칼 그 자신은 이런 확률에 의지해서 신앙생활을 했던 것이 아니라 성령충만의 간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같은 성령체험의 감동을 마지막 병으로 시달리면서도 은혜 가운데 지켜나갔습니다. [출처] 파스칼의 하나님| 작성자 예수 진리 블레즈 파스칼 (프랑스어: Blaise Pascal [blɛz paskal], 1623년 6월 19일~1662년 8월 19일)은 프랑스의 심리학자, 수학자, 과학자, 신학자, 발명가 및 작가이다. 블레즈 파스칼은 흔히 과학자나 수학자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철학과 신학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블레즈 파스칼의 주요 저서로는 팡세(사후 누이 동생이 그의 글들을 모아 편찬), 시골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있다. 파스칼의 신학적 업적 중 가장 특기할만한 것이 바로 팡세이다. '인간은 자연 가운데서 가장 약한 하나의 갈대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하는 갈대이다.'라는 말로 유명한 팡세는 그가 죽을 때 아직 미완성이었다. 이 책에는 그의 기독교적 변증이 담겨 있는데, 그는 자신을 신학자이자 철학자의 입장으로 두고 저술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의 입장에서 저술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몽테뉴와 같은 회의주의자들과 데카르트 같은 합리주의자에 대해 자신의 변론을 펼치며 사상을 전개한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제로 인간의 고독한 실존을 갈파한 철학자. 샤토브리앙, 생트뵈브에게서 찬사를 받고, 보들레르, 니체, 졸라에게 영감을 주고, 실존주의자들의 선구가 된 사상이다.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다. 그를 박살 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 낸다 해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것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주는 아무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높여야 하는 것은 여기서부터 이미,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과 시간에서가 아니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이것이 곧 도덕의 원리이다. 프랑스 군인들은 전쟁에 나갈 때 배낭에는 <팡세> 한 권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팡세>의 제1부는 하나님이 없는 무신론자의 비참을 논하고, 제2부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인간의 행복을 말하고 있다. 작성자 예수 진리 |
팡세 /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
파스칼은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인간이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고 우주가 그를 죽이기 위해서는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고귀하다. 인간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사유(思惟)로 이루어져 있다. '생각하는 것' 그것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원리이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단, 올바름에 절대적인 것은 없다는 것, 생각하기에 있어 높고 낮음은 없다는 것을 알아두자. 파스칼의 <팡세> 아포리즘은 계속된다. 자유로운 공론의 장이 되길 바란다.
1. 망원경은 옛날의 철학자들에게는 존재하지도 않았던 그 얼마나 많은 실체들을 우리에게 보여주었는가! 그들은 수많은 별을 얘기하는 성서를 공공연히 비웃으면서, "우리가 알기에 별은 1,022개밖에 없다"고 말하였다.
지상에는 풀이 있고 우리는 이것들을 본다-달에서는 이것들이 보이지 않을 것이다. 풀에는 잔털이 있고 잔털에는 별레들이 있지만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다. -오오, 오만한 자들이여!-혼합물은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지만 부분은 그렇지 않다.-오오, 오만한 자들이여! 이것이 바로 미묘한 점이다.-보이지 않는 것을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처럼 말은 해야 하지만 그들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2. 덕을 어느 쪽이든 극단으로까지 추구하려고 하면, 갖가지 악덕이 작은 무한 쪽으로 알 수 없는 과정을 따라 무의식중에 스며들고, 또한 큰 무한 쪽에도 수많은 악덕이 떼지어 나타난다. 그 결과 사람들은 악덕 한가운데에서 헤매고 덕을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은 완전한 것까지도 공격한다.
3. 인간의 존엄은 죄없는 상태에서는 피조물을 이용하고 지배하는 데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피조물로부터 분리되고 또 그것들에 예속되는 데 있다.
4. 의미. 같은 의미도 이것을 설명하는 말에 따라 달라진다. 의미는 말에 존엄성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말로부터 존엄성을 받는다. 그 예를 찾아야 한다...
5. 자연은 서로 모방한다. 좋은 땅에 던져진 한 알의 씨는 열매를 맺는다. 좋은 정신 속에 뿌려진 원리는 원리를 맺는다. 수는 공간을 모방한다. 실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들인데.
만물은 같은 지배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인도된다. 뿌리와 가지와 열매 그리고 원리와 귀결.
파스칼의 구상으로는 전체를 2부로 나누고.
제1부에서는 "신 없는 인간의 비참", 제2부에서는 "신과 함께하는 인간의 지복(至福)"을 다룬다. 모든 것을 신과의 관계에 의해서 인간의 존재가 어떻게 변하는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주목해야 한다. 기독교 변증론이라고 해도 기하학적인 신의 존재증명 등은 취급하지 않는다. 우선 자연적인 자기의 존재조건을 주시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주위를 에워싼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 속에서 동요도 하지 않고 불안도 느끼지 않고서 무감각하게 있을 수 있는 사태의 착란에 떨림을 느끼게 하려한다. 집필하기에 충분한 준비가 갖추어졌다.
변증론의 예상하는 독자는 당시 겨우 증가하기 시작한 무신론적 경향을 갖는 자유사상가들이고, 그 애독서인 몽테뉴의 "수상록"은 반복 숙독되고 거기서 많은 일화, 비유 등을 빌려 썼다. 단지 낙천적인 인간성 긍정의 입장에 선 몽테뉴를 뛰어넘어서 개개의 인간적 현상의 배후에 숨은 보다 깊은 이유를 물으려고 한 것이 파스칼의 독자성이다. 물론 성서를 위시하여 신학자의 저서, 기독교사의 제 문헌도 완전히 독파하고 이론적인 지주로 삼았다. 가장 깊숙한 기저에는 그가 두 번의 회심(回心)의 경험에 의해 확인한 신앙의 리얼리티와 거기서 들여다본 세계관이 있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파스칼의 방법은 과학자답게 추론을 기초로 한 기하학적 방법과, 그가 사교계에서의 인간관찰을 통하여 파악한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기하학의 정신과 섬유같은 마음의 대립으로서 정의된다)과의 두가지 접근에 의해서 성립한다. 파스칼은 한편 데카르트와 같이 이성의 철저한 행사를 중요하게 여겼으나 이성과 별도로 인간의 마음의 미묘한 구조에 대응한 "심정"의 방법에 주목하고, 설득 상대측에 몸을 두고 상대의 내부에서 진리가 저절로 발견되는 것과 같은 화법을 연구했다. 그가 분류한 순서에 따라 "팡세"의 문장(文章)을 읽어갈 때 우리는 쾌적함과 의외성에 흔들리면서 그 논리의 변화에 넘친 자유자재한 흐름에 이끌려간다. "팡세"의 레토릭은 좋은 연구주제가 된다.
제1부에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조건의 묘사는 심각하고 암색(暗色)이 짙다. 아무 것도 아닌 일상생활의 제 장면을 스케치하고 작은 역사상의 사건, 흔히 있는 인간의 보통의 행동의 하나를 지적하고 그것들이 전혀 의미가 없고 공허하고 비참한 것임을 깨닫게 한다. "한 마리의 파리가 전쟁을 일으킨다", "클레오파트라의 코", "의상이 힘이다", "피레네의 이 쪽에서는 진리, 저쪽에서는 잘못" 등 기지에 넘친 날카로운 표현을 장식하고, 인간생활에 순간적으로 상처를 내어서 그 밑바닥이 완전히 갈라져 있음을 보여준다. 당대의 실존주의 철학자, 문학자의 인간존재의 분석에도 능통하고, 신앙을 잃은 무신론의 풍토의 공허와 공포를 근본적으로 폭로한다.
그리고도 그 속에서 파스칼은 인간에게만 이 사실이 보이는 것을 강조한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자기의 비참함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지상의 모든 기구, 일체의 행동의 무근거성을 안 인간은, 그나마 혼란을 피하고 상대적인 일시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 정치나 법률에 의지한다. 일견 불합리하게 보이는 제 사실에 그럴듯한 이유를 찾고, 임시의 질서를 세우는 것도 또한 인간의 위대함의 하나이다. "천사도 짐승도 아닌" 인간, 이 중간자의 영역에 파스칼은 고집한다.
그러나 위대함과 비참함의 양극으로 쪼개진 인간은 자기의 내적 모순에 견디지 못하여 앞날에 기다리는 죽음을 보지 않으려고 기분풀이를 찾는다. 사교계의 오락, 도박, 잡담은 말할 것도 없고 직업생활이나 궁정 내의 정치, 전쟁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체의 행동이 본질적 사고에서 눈을 돌리려는 기분풀이의 기교가 된다. 기분풀이는 한 단계 더 비참한 상황으로 인간을 떨어뜨린다. 근원적인 실존적 소외상황을 묘사하여 독자에게 탈출구가 없는 이율배반의 고뇌 속에 몰아넣고, 가슴 속으로부터 깊은 신음소리가 나오게 한다. 바로 여기에서 "찾는 것"이 시작된다. "인간은 무한히 인간을 넘어선 것이다". 휴머니즘의 근거가 자연성을 넘어선 차원에서 물어지는 것이다.
듣기 위해서는 완전히 청취하는 자세를 가질 필요가 있다. 사실이 절대적인 것에 관한 것이라면, 이쪽에서 아주 겸허함과 피동의 태세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유명한 도박의 논리는 현장의 상대방이 흥미를 가질만한 화제를 택하는 것이라 하고, 수학자 파스칼에 있어서 최적의 비유라고 말할 수 있는 것으로는, 영원의 행복이 보증된다고 해서 신이 있다고 내기를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단순히 득실에 의한 설득법이 아니다. 일단 내기를 한 이상 모든 것을 그것에 집중할 것, 그렇게 함으로써 보이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구체적인 실천에의 손잡이로서 제시한 것이다. 전 생애에 관련된 큰 대사에 있어서는 인간의 편에서도 순수한 참다운 사랑이 요구된다.
제1부에서 제2부로의 이행의 단계에서 파스칼은 다시 한번 인간의 지식의 한계를 알리는 제 고찰을 넣고 있다. 우주의 끝없는 무한의 크기도 물질의 궁극의 세계도 인간의 능력으로서는 가까이할 수가 없다. 최대와 최소의 중간을 헤매는 인간은 한숨의 바람에도 넘어지는 덧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한 줄기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속에서도 가장 약한 존재이다. 그러나 생각하는 갈대이다". 사고의 본질은 죽음을 향하는 존재로서의 자기의 위치를 올바르게 아는 것이다. 이성이 유용하게 작용하는 것은 여기까지이고 다음은 저쪽에서 전해오는 말,-파스칼에 있어서 성서에 계시된 신의 말을 절대의 권위로서 받아들이는데 그치고 있다.
전반은 이 세상에서 보이는 인간의 현실태가 어딘가 파괴적이고 부패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 제시되고 있다. "팡세" 제2부에서 이 사태를 초래한 타락의 원인을 물으며, 이것을 회복하는 것으로서 크리스트에의 신앙이 설교된다. 제2부의 중심은 성서에 전달된 메시지의 본질은 무엇인가를 밝히는 것이었다. 파스칼은 다른 종교와 기독교의 비교를 시도하고, 예언이나 기적의 의미를 찾으며, 구약성서의 상징적 의의를 논하고, 성서의 중심도 또한 크리스트 내림(來臨)의 고지를 알리는 것임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성서의 자구의 어려움, 크리스트의 볼품없는 외견, 예언자나 성도들의 행동의 모순 등 모든 것을 푸는 열쇠가 여기에 있음을 가리키는데 열심이다.
전반부에서 비참함과 위대함을 간직하는 것으로 파악된 인간의 신비도, 십자가에 못박힌 신의 비의(秘義)에 있어서 명쾌하게 설명된다. 포르 루아얄 신학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당연히 시대적 제약은 면하기 어렵지만 중심점에는 어디까지나 파스칼적 사고의 특질이 발견된다. 실제의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크리스트와의 강한 일체감 속에서 살아온 파스칼이고, 그 문체에는 독자의 심정을 태우는 정열이 있다. "성서의 오직 하나의 목표는 사랑이다", "사랑에서 벗어나면 사람은 정말 갈 길을 잃는다". 파스칼은 성서의 메시지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고, 잡다한 상징적 표현을 장식하고 은폐된 형태로 말하고 있으나 전해야할 이 점만은 한사코 강조한다.
육(肉)과 정신과 사랑의 "세가지 질서"의 구별, 유태인의 맹목성, "숨은 신"의 사상 등 모두가 사랑이 없으면 뭐 하나 깊은 곳에 이르지 못한다는 파스칼적 심정의 논리의 선을 따르고 있다. "팡세"는 크리스트를 중심으로 하는 신도의 사랑의 공동체의 비젼을 "생각하는 지체(肢體)"의 비유를 사용하여 묘사하고, 결론으로서 "신을 아는 것으로부터 신을 사랑하는"데까지의 거리의 크기를 한탄하고, 매일 은총의 갱신을 빌어 마지않는 신앙자의 불안과 기쁨을 고백하고 그친다. 파스칼의 문장이 기리는 무거운 현실감은 후세에 이르기까지 많은 칭송자를 (동시에 반발자도) 낳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팡세 [Pensées] (세계의 사상, 2002.5.20, 사회문화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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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글 본문내용
1. 파스칼 일생 *1623년 프랑스 클레르몽 페랑 출생 *1926년(3세) 어머니 사망 *1935년(12세) 유크리드 제 32명제 풀다 *1940년(17세) 고대 수학자 아폴로니우스의 원추곡선론 읽고 원추곡선론 발표 *1643년(20세) 금전등록기의 원조랄 수 있는 계산기 발명 *1646년(23세) 기독교로 회심(回心), 즉 기독교를 믿게 됨 *1651년(28세) 정신적 지주였던 아버지 *1653년(30세) 파스칼의 원리 발표 *1662년(39세) 사망 파스칼의 활동 시기는 우리나라로 볼 때 광해군을 축출하고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인조의 재위 기간과 비슷한 시기. ※파스칼: 1935년 (12세) -수학의 한 분야인 점과 선, 면과 입체 등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기하학에 관심을 갖고, 혼자 공부해서 유클리드라는 유명한 수학자가 오래전에 세운 ‘유클리드의 제1권 제32 명제’를 증명했다. 2. 팡세의 탄생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은 프랑스가 낳은 천재다. 수학자요, 물리학자요, 철학자요, 신학자로 불리우는 다재다능한 사람이다. 그의 수상록 ‘팡세’처럼 많이 읽힌 책도 드물다. 또한 ‘팡세’처럼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는 책도 드물다. 팡세(Pensėes)는 생각, 명상, 단상(斷想)을 뜻하는 프랑스어다.파스칼은 일생 동안 사람들을 기독교 신앙인으로 설득할 책을 만들기 위하여 생각날 때마다 메모하였다. 그는 죽을 때까지 그 책을 완성하지 못했고, 그가 죽은 8년 후인 1680년에 그와 가까운 지인들이 그가 남긴 메모들을 모아 팡세(단상의 기록)라는 제목으로 출판하였다. 3. 팡세 줄거리 파스칼은 ‘밀폐된 용기 속에 담겨 있는 액체의 한쪽 부분에 주어진 압력은 같은 크기로 각 부분데 전달된다’라는 원리를 체계화했다. 현재도 관련된 사람들에게는 필독서라 할 만한 원추곡선론을 썼고, 요즘의 금전등록기와 유사한 계산기도 발명한 뛰어난 과학자이기도 했다. 그러나 팡세를 통해 본 그는 독실하기 이를 데 없는 기독교도이다. 흔히 ‘팡세’하면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더 낮았더라면 지구의 온 표면이 변했을 것이다’라는 구절이 연상된다. 그러나 파스칼이 말년에 기독교의 진리성을 변증하는 저작을 하기 위해 병상에서도 노력하였으나 끝내 완성을 보지 못하였다. 팡세는 기독교 변증론의 메모들로써 924개의 단상으로 되어 있다. 팡세는 세계인의 교양서적이 되었고, 전쟁에 나가는 프랑스 군인들의 배낭에는 팡세 한 권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팡세의 제1부는 하나님이 없는 무신론자의 비참을 논하고, 제2부는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인간의 행복을 말하고 있다. 파스칼의 신학은 철저하고 신비적인 체험신앙이다. 그는 고백하기를 “나의 하나님은 철학자의 하나님, 과학자의 하나님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다”라고 말했다. 파스칼은 인간이란 ‘생각하는 갈대’라고 정의한다. 인간은 한 줄기의 갈대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 가운데 가장 약한 존재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기 때문에 “이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무섭게 만든다”고 독백한다. 인간은 신(神)을 찾아가는 존재이다. 그는 인간을 세 부류로 구분한다. “세상에는 세 종류의 사람이 있다. 첫째는 신을 발견하고 섬기는 사람이다 . 둘째는 신을 발견하지 못하고 신을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셋째는 신을 발견하려고도 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자백하는 의인(義人)이 있고, 또 하나는 스스로가 죄가 없다고 생각하는 죄인(罪人)이 있다” 파스칼은 “인간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간구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인간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 줄기의 증기, 한 방울의 물을 가지고도 넉넉히 그를 죽일 수 있다. 우주가 그를 분쇄한다 해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자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과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우주는 그런 것을 전혀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은 그 사고에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가지고 자기를 높여야 한다.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이나 시간에 의해서가 아니다. 도덕의 근본은 바로 여기 있다. 인간은 천사도 아니요, 금수도 아니다. 불행은 천사의 흉내를 내려는 자가 금수의 흉내를 내곤 하는 데서 비롯한다. 너무나 자유스럽다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모든 필요가 충족되는 것도 좋은 일은 아니다. 모든 신앙은 예수 그리스도와 아담에 의하여 성립되고, 온갖 도덕은 사욕과 은총에 의하여 성립된다. 인간의 본성은 두 가지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나는 그 목적에 의한 것으로, 이 경우 그는 대단히 위대하다. 다른 하나는 다수성으로서 판단할 수 있다. 이를테면 말이나 개의 성질을 달리는 것이나, 도망치려는 본능으로써 판단하려는 경우와 같다. 이 두 갈래의 길이야말로 인간으로 하여금 여러 각도로 판단하게 하고, 그 때문에 철학자들은 심한 논쟁을 벌이고 있다. 그것은 양편이 서로 상대편의 역설을 부정하기 때문이다. 한쪽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그런 목적을 위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그의 모든 행위는 이에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한쪽에서 말한다. “인간이 그런 비열한 행동을 한다면 그 목적에서 벗어난 것이다”라고. 인간이 빛을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인간의 위대함과 비참함을 더 잘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확실할 뿐이다. 인간은 자신들이 비참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은 비참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인간은 비참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의 비참함을 알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은 지극히 위대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신을 알 수 있다. 이 매개자가 없으면 신과의 교제는 완전히 끊어져 버리고 만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신을 알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신을 알 수 있고 신을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헛된 증서를 가지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명하는 것으로서 우리에게는 예언이 있다. 그것은 분명한 증거이다. 이 예언은 이루어졌고 그것이 진실임이 실제로 증명되었으므로, 이 진리의 정확성을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신이라는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그에 있어서, 그리고 그에 의해서 우리는 신을 안다. 그를 떠나서는 성서도 없고 원죄도 없으며, 약속대로 강림하신 필요한 매개자 없이는 인간이 신을 완전하게 증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올바른 도덕과 교리를 가르칠 수도 없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람은 신을 증명하고 도덕을 가르친다. 예수그리스도는 인간의 참된 신이다. 우리는 그와 동시에 우리의 비참한 상태도 알고 있다. 신은 바로 우리의 비참을 구원해줄 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신의 죄악을 분명히 알게 됨으로써만 신을 뚜렷이 알 수 있다. 자신의 비참함을 알지 못하고 신을 알게 된 사람들은, 신을 숭배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자기 자신을 숭배하는데 불과한 것이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신을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4. 이해와 감상 팡세는 완성된 책이 아니다. 파스칼이 ‘기독교 변증론’을 쓰기 위한 재료로 기록한 924편의 단장들을 그가 죽은 뒤에 편집한 것이다. 이 책은 병고와 금욕의 4년 동안에 수시로 씌어 진 정신의 산물이다. 수학과 물리학의 천재가 무조건 성서의 기적을 믿고 오직 '기적만이 종교의 기초다'라고 단정을 내리고 있다. 무한대는 존재한다. 그러나 그 본질은 알 수가 없다. 신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신의 본질은 알 수 없다. 신의 존재를 의심할 수는 없는 거다. 그대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가? 그렇다면 내기를 걸라. 신은 존재하는가, 아니하는가? 그대가 만일 존재한다는 편에 걸어 그대가 이긴다면 무한한 행복을 얻을 수가 있을 것이다. 반대로 그대가 진다 하여도 잃을 것은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신은 존재한다는 편에 내기를 걸라’고 파스칼은 권고하고 있다. 팡세는 단장(斷章)임에도 그리스도의 사랑과 신의 존재에 대해서 명확히 증명하고 있다. 팡세를 ‘미완성의 성전’이라고도 했다. 파스칼이 팡세에서 의도한 바는 기독교야말로 확실성과 명증(明證)을 지니는 것으로서 기독교의 진리나 신성(神性)을 거부하는 무신론자나 이단자 및 비 신앙자들을 논박하는 데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 논증하는가? 팡세 첫머리에 나타나 있는 대로 ‘기하학적 정신과 섬세한 정신’- 이 두 가지의 종합적 방법에 의해서였다. ‘기하학적 정신’은 논리로써 증명하고 결론을 지으며, ‘섬세한 정신’은 직관적으로써 원리와 질서를 찾아내어 사람들을 설득한다. 파스칼은 지식과 현세적인 모든 것을 버리고, 병고를 지닌 채 수도원에 들어간 것이 서른다섯 살 때였다. 그때부터 4년, 39세로 죽을 때까지 쓴 것이, 프랑스 정신의 최고봉 ‘미완성의 성전’이라 불리는 팡세 - ‘기독교 변증론’이다. *우리 안에서 우리의 삶을 살면서 작은 일도 큰일처럼 행하시는 위대한 예수그리스도를 따라 작은 일도 큰일처럼 행하라. 그의 전능한 힘을 따라 위대한 일도 작고 쉬운 일처럼 행하라 |
컴퓨터의 원조는 누구인가?/조덕영
생각하는 갈대,
천재 과학자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1623-1662
과학적 천재성과 문학적 감수성을 겸비한 천재
?인간은 자연 속에서도 가장 가냘픈 한 줄기 갈대와 같다. 그러나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다.?
사람들이 사람 스스로를 표현할 때 즐겨 사용하는 이 말은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고전 작품인 파스칼의 「팡세」(주:명상록이라는 뜻을 가진 프랑스 말)에 나오는 말이다.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낮았더라도 세계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이 유명한 명구(名句)도 바로 팡세에 등장한다.
과학의 천재였으며 누구보다도 따뜻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면서 뛰어난 문학적 조예를 겸비하였던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1623?1662)은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의 클레몽이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세 살 때 이미 어머니를 여읜 파스칼은 유아 시절부터 극히 병약한 어린아이였다. 하지만 지방의 세무 관리였던 그의 아버지는 기독교적인 깊은 사랑으로 자녀들을 양육하였다.
그중에서도 형의 죽음으로 인하여 외아들이 된 파스칼은 아버지의 세심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다. 비록 정규 학교에는 다닌 적이 없었으나, 파스칼은 어린 시절부터 남다른 관찰력과 집중력이 뛰어난 아이였다. 빈 접시를 막대기나 젓가락 등으로 두드리면 울림에 따라 여러 소리를 낸다는 것은 누구나 어린 시절에는 한 번쯤 즐겼던 놀이이다.
그런데 파스칼은 이 사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몇 가지 실험을 한 후 간단한 논문을 작성하여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의 나이 11살 때의 일이었다. 12살이 되어서는 수학의 한 분야인 점과 선 그리고 면과 입체 등이 만들어내는 공간의 성질을 연구하는 기하학에 관심을 갖고 독자적으로 공부하여, 유클리드라는 유명한 수학자가 오래 전에 세운 「유클리드의 제 1 권 제32명제」를 증명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4년 후 ?원추형 곡선에 관한 이론?이라는 수학의 유명한 정리로 발전하였다. 이 평면 기하학의 정리는 오늘날 ?파스칼의 정리?라고 널리알려져 있다.
많은 사람들이 파스칼의 유명한 「팡세」는 잘 기억하면서도, 이렇게 그가 과학사에 있어서 누구보다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파스칼과 동일인이라는 것은 너무도 쉽게 간과해 버리곤 한다.
더욱이, 그가 얼마나 철저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산 사람이었는가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다. 10대의 어린 나이에 촉망받는 수학자로 주목받기 시작한 파스칼에게는 이미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에 관한 믿음도 함께 자라가고 있었다.
?내가 연구하는 일들이 가치가 있는 일들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이 일들을 계속할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다. 그분이 주시는 능력만큼만 밀고 나가면된다.?
파스칼이 컴퓨터의 원조가 된 사건
얼마나 놀라운 믿음인가! 1639년, 17살이 되면서 파스칼은 아버지를 따라 르왕이라는 도시로 이사를 간다. 아버지가 그곳에서 세무 관계 사무를 맡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파스칼은 세금 계산에 분주한 아버지를 보았다.
?어렵고 까다로운 계산을 좀 더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도록 아버지를 도와드릴 수 없을까??
지역 세무 관료였던 아버지의 짐을 덜어 드리기 위해 시작된 파스칼의 연구는 5년 동안 계속되었으며, 다섯 개의 계산기를 고안하면서 보완을 거듭하여 드디어 계산기를 완성한다. 비록 덧셈만이 가능한 계산기였지만, 오늘날 전자계산기의 시발이라고 할 만한 위대한 발명이었다. 이 덧셈 기계는 여송연 담배갑 크기의 기계로 파스카린(pascaline)이라고 불렸는데 다이알을 돌리면 윗부분 유리창에 숫자가 나타나도록 되어 있었다. 처음에 50개를 제작했다고 알려진다. 지금도 이 기계 중 일부가 남아있어 그의 천재성을 우리들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것은 사람이 기계를 사용하여 덧셈을 시작한 최초의 일이었다. 오늘날 컴퓨터의 역사를 다룰 때 마다 책의 서문에 반드시 파스칼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파스칼이 과학자로서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진공에 관한 실험?과 ?파스칼의 원리?의 발견이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자연의 어디에서도 진공은 불가능하다는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굳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유명한 과학자이며 그리스도인이었던 갈릴레이의 제자 토리첼리(1608-1647)가 실험적으로 진공이 가능하다는 결과를 조심스럽게 발표하였다. 한쪽 끝이 막힌 유리관에 수은을 가득 넣고 열린 유리 관 입구를 수은 통 안에 넣으면 압력에 의하여 수은은 내려오게 되고, 밀폐된 유리관의 윗부분에는 진공이 생기게 된다는 이론이었다.
당시 스승인 갈릴레이가 지구가 움직인다고 주장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신봉하는 학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에게 종교 재판을 받은 사실을 잘 기억하고 있던 토리첼리는, 위대한 발견을 하고도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무조건 따르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과학자들의 눈치를 살펴야 했다.
중세 시대에 교회의 권한은 절대적인 것이었다. 1277년 파리의 대주교였던 땅삐에는 교황청의 재가를 얻어 소위 219가지의금지 명제를 발표하였다. 이중에는 물론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보면 타당한것도 있지만 틀린 것들도 많았다. 진공에 관한 언급도 바로 그러한 오류 중 하나였다. ?진공은 존재할 수 없다?는 명제였는데, 그 이유는 신께서 진공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금지 명제가 발표된 후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교황청의 권한이 대단하였던 당시에 과학자 파스칼이, 토리첼리가 사망한 후 담대하게 자신이 확인한 실험 결과를 발표한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진공은 틀림없이 가능하다.?
이것은 ?진공에 관한 새 실험?이라는 논문으로 1648년 발표되었다. 그리고 1653년에는 드디어 파스칼의 원리를 발견하였다.
?완전히 필폐된 용기 중에서 정지하고 있는 액체(유체)의 한 부분에 압력(힘)을 가하면 그 압력(힘)은 유체 내의 모든 부분에 똑같이 전달된다.?
파스칼의 믿음
겨우 만 서른 살이 되던 나이에 파스칼의 명성은 유럽에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건강하지 못한 그의 육체는 늘 그를 삶에 대하여 깊은 사색에 잠기게 만들었다.
그리고 수녀였던 그의 여동생 자클린의 이웃을 위한 헌신적인 봉사와 경건한 모습은 그를 크게 감화시켰다. 여동생이 기거하던 바울 로얄 수도원에 가는 일은 그에게 가장 즐거운 일과 중의 하나였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에 병약한 파스칼은 언 땅에서 미끄러져 엉덩이를 크게 다친 적이 있는데, 데샹이라고 하는 한 의사와 그의 형제들이 얼마나 극진하게 치료하고 간호를 하는지 이것은 그를 크게 감동시켰다.
?이들의 헌신과 사랑은 과연 어디서부터 생겨나는 것일까??
이들은 개신교파의 일원인 얀세니즘이라고 하는 복음적인 기독교파의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의 헌신적 치료에 감동한 파스칼은 후에 얀세니즘파의 지도자가 된다.
파스칼은 ?자연은 창조주 하나님의 뛰어난 솜씨?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1654년 11월 23일 밤, 파스칼은 드디어 놀랍고도 강렬한 종교적 체험을 하게 된다.
너무도 놀라웠던 이 체험을 그는 조심스럽게 양피지(15주-양의 가죽으로 만들어 글을 기록할 수 있도록 광택이 나게 한 것)에 기록하여 그의 외투 안에 꿰매어 늘 입고 다니게된다. 그가 죽은 다음에야 발견된 이 양피지에는 놀랍게도 다음과 같은 파스칼의 극적인 신앙 체험이 담겨 있었다.
불!
철학자들과 학자들의 하나님이 아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확신, 감격, 기쁨, 평안함.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곧 당신의 하나님.
-중략-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은 당신을 알지 못하였어도 나는 당신을 알았네.
-중략-
예수 그리스도!
그분을 나는 떠나 있었네.
나는 그분을 떠나 있었고, 부인하였네. 그리고는 십자가에 그를 못박았네.
이제는 결코 그에게서 떠나지 않으리라.
나는 당신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아멘.
이 놀라운 체험이 거듭남의 체험이었는지 아니면 성령 충만한 경험이었는지 분명하지는 않다. 어쩌면 이 두 체험이 동시에 이루어진 것일 수도 있다. 이제 그의 가장 큰 소망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1656년부터 그는 수년에 걸쳐 방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하였다. 이때 그에게는 심한 질병과 고통이 따라다녔지만 거의 일천 개에 이르는 기록과 단편들이 쓰여졌는데, 이것들이 훗날 그가 죽은 지 8년 만에 출판된 저 유명한「팡세」이다.
일상생활들에서 이끌어 온 이 단편들은 성경이 그 밑바탕이었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만이 그 목표이다?라고 말한 그의 신앙 고백처럼, 그는 「죄인의 회심에 관하여」, 「초대 그리스도인과 오늘의 그리스도인」, 그리고 당시 기독교의 한 종파인 ?예수회?의 잘못된 신학적 부분들을 지적한 「익명의 편지」 등 믿음의 글들을 발표하였다.
허리가 마비되기도 하고 두통과 복통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연구를 중단해야 한다는 의사로부터 말을 들을 정도로 쇠약한 가운데서도, 파스칼은 과학자로서 또 다시 수학 확률론의 기초도 닦았으며 미적분학의 기초도 마련하게된다. 참으로 그는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임이 분명하였다.
그에게는 사업가적인 색다른 일면도 있었다. 하루는 파스칼이 일터로나가는 파리의 시민들을 유심히 보게 되었다.
?이들이 함께 타고 갈 값싼 수송 수단은 없을까??
승합 마차의 아이디어는 이렇게 해서 시작된 것으로, 최초의 버스 회사가 탄생되었다. 1662년 3월, 드디어 서민들이 탈 수 있는 승합마차들이 파리 시내를 달리게 되었다.
회사의 설립으로 파스칼은 선금 일천 프랑을 벌었으며, 그는 이 돈을 추위에 고생하는 블로이스라고 하는 마을의 빈민들에게 보내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나오는 이익금은 파리와 고향 클레몽의 병원에 보내졌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셨다. 이것이 내가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이유이다. 내가 돈을 벌고자 하는 것은 단지 그것이 궁핍한 자를 도울 수 있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이 실천하신 섬김과 나눔의 삶을 따라가려 했던 진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이 탁월한 천재 과학자에게 있어 주목되는 것은 당연히 그의 기독교 신앙이었다. <팡세>는 바로 그의 사후 편찬된 그의 신앙적 편린의 조각들을 묶은 것이었다. 여기서 그는 도박의 논리를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신앙이 왜 필요한지를 역설하고 있다. <파스칼의 내기>”(Pascal's Wager)라고 알려진 이 논증은 다음과 같다.
파스칼의 내기란?
파스칼은 <팡세>의 제 3장 <도박의 필요성에 대해>에서 이 문제를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 <하나님이 존재한다>,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두 가지 갈림길에서 당신은 어느 쪽에 도박을 걸겠는가? 사실 이성은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고 어느 한쪽을 버릴 수도 없다. 이게 우리 이성의 한계이다. 또한 어느 한쪽을 선택한 사람을 우리 인간은 잘못했다고 비난해서도 안 된다. 우리 인간은 이 문제에 대해 참 된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간은 이 문제에 대해 반드시 내기를 해야 한다. 왜냐 하면 인간은 이미 인생이라는 배를 타고 떠나지 않았는가! 따라서 우리 인간은 이 문제에 있어 어쩌면 영원히 잃어버릴 지도 모를 두 가지가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진실과 행복이다. 또한 우리 인간의 본성이 피하여야 하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잘못과 비참함이다. 인간은 늘 그릇된 것을 피하고 비참한 상태를 피하려는 본성이 있다.
이제 이 같은 사전 지식을 가지고 이성과 의지와 지식과 행복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 보자.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고 어떤 득실(得失)이 있는가? 만일 신이 존재한다면, 신이 존재한다고 내기를 건 당신은 모든 것을 얻는 것이다. 혹시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당신은 아무런 손해도 보지 않는다. 따라서 ‘인간은 주저하지 말고 신이 존재한다는 편에 도박을 걸어야 한다’고 파스칼은 역설한다. 누구나 내기를 하는 자는 불확실한 것을 얻기 위해 확실한 것을 내 건다. 그런데 사실 이 도박에는 확실함이 있다. 인간은 진리를 알아내는 힘이 있다. 즉 이 도박은 도박의 이면(裏面)을 볼 수 있는 내기이다. 이 내기의 답은 성경에도 있고 그 밖에도 있다. 그런데도 당신은 이 내기를 걸지 않겠는가?
파스칼의 내기는 근본적으로 복음적 이해라기보다는 철학적 이해에 가깝다.
하지만 파스칼의 목적은 단순한 철학적 논증이 아니었다. 그의 목적은 더 높고 심오한 것이었다. 다방면의 천재였던 그는 철학의 한계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이성의 마지막 단계는 그것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무한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만일 이성이 그러한 것들을 인식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공허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팡세>에서 그가 그리스도 없이 하나님을 알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익한 것에 지나지 않는 다고 역설한 것은 그가 <파스칼의 내기>를 통해 말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즉 그는 자신의 신앙 체험을 다른 사람들도 소유하기를 간절히 원하였다. 그것은 철학자와 지식인들의 하나님이 아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었다. 함부로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어쩌면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과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파스칼이, 사람들이 깨닫기를 간절히 원하며 외친 이 <파스칼의 권고>가 새삼 감동을 준다. 사실 파스칼은 1658년경부터, 본격적인 기독교 변증론(Apology for the Christian Religion)을 집필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파스칼이 30후반 나이에 요절한 관계로 이 책은 안타깝게도 완성되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그의 사후 출판된 <팡세>를 통하여 파스칼은 그의 신앙과 변증의 탁월함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세대를 뛰어넘어 끊임없이 알리고 있다.
요절한 천재 파스칼
그는 더 많은 것을 나누기 위해 자신의 것들을 하나 둘 내어 놓았다. 자기의 마차와 말들을 기꺼이 팔았으며, 좋은 가구와 은 장식,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 도서관까지 팔아서 가난한 이웃을 도왔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몇 달 전에 그에게 남은 것은 단지 성경과 성 어거스틴의 책 그리고 몇 권의 경건 서적뿐이었다.
1662년 6월이 되면서 점차 건강이 나빠지는 가운데서도 가난한 이웃을 그의 집에 함께 살도록 맞아들인 파스칼은, 그들 중 한 아이가 천연두를 앓자 혹시 자기를 문병오는 사람들이 전염될까 염려하여 그 가난한 사람을 자기집에 그대로 있게 하고 자신은 처남의 집으로 거처를 자청하여 옮겨버렸다.
심지어 그는 임종이 가까워 오는데도 자기 방에 가난한 사람들을 데려다가함께 간호해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으며, 조금만 병이 호전되면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살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고 전해진다.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시편 119편 71절).
유난히 성경 시편 119편을 즐겨 암송하던 파스칼은 병약한 육체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이 점점 성숙해 갔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위대한 과학자로서의 삶을 성취한 놀라운 사람이었다.
1662년 8월 19일, 체력 저하와 육체의 경련으로 파스칼은 숨을 거두었다. 겨우 39세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 비록 짧은 생애를 살았지만, 그는 누구보다도 진실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과 훌륭한 과학자로서의 삶을 함께 성취한 빛나는 삶을 산 분이었다.
생에띠엔느뒤몽 교회에서 거행된 그의 장례식에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동료 과학자, 작가들과 그가 도왔던 수많은 그리스도인과 가난한 사람들, 얀세니즘파의 회원들이 군중을 이루어 참석하였다.
예수님의 삶이 짧았듯 그의 삶도 짧았지만, 예수님처럼 그의 생애도 값진 것이었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는 세상에 그의 이름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소유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기독교를 제외한 모든 종교를 단호히 거부한다?고 담대히 주장하던 파스칼!
?모든 사람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본다?고 이야기하던 파스칼!
“하나님을 믿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분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을 따라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를 잘 알고 있었던 파스칼!
그는 삶의 목적이 무엇인가를 아는 과학자였으며, 무엇보다도 그러한 삶을 실천한 신앙인이었다.
?인간에게는 두 부류만이 존재한다.
하나는 자기를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의로운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죄인이다.?
(파스칼의 「팡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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