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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1

두길

by 은총가득 2021. 10. 3.

 

 

 

 

 

두 문과 두 길
 
 
  본문 마7:13-14
 
 
     서론
 우리는 보통 생명길은 교회요 멸망의 길은 세상이라 생각하지만 한걸음 더 나아가서 신앙생활에도 역시 쉽게 믿는 넓은 길과 진리중에 사는 좁은 길이 있는 것입니다.  인생은 길 가는 나그네입니다.  누구나 매일매일 미래 나라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한사람도 그냥 앉아 있는 이 없이 쉬는 이도 없이 낮에도 밤에도 잠잘 때도 일어날 때도 길을 멈추지 아니하고 갑니다.  앞에도 구름같은 많은 사람들이 뒤에도 또한 수없는 사람들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요컨대 길걷는 이들의 제일 중요한 문제는 내가 어떤 길을 걸어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렘21:8)에 “보라 내가 너희 앞에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었노니”했습니다.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축복의 길과 저주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길을 바로 찾아 영원한 길로 갑니다.
 
 
     1.  생명의 문과 길이 있고
 사람들은 좁고 험한 길로 가려하지 않고 넓고 편한 길로 가려 합니다.  그러나 참된 진리와 생명의 길은 좁고 험하기까지 합니다.  따라서 좁은 길이란 회개의 문으로 인도하는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문까지는 쉽게 들어올 수 있지만 이 회개의 좁은 문은 각자의 결단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그런데 좁은 문은 짐을 지고는 못들어 갑니다.
 베들레헴에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예배당이 있습니다.  이 예배당은 크기는 크지만 들어가는 문은 아주 작아서 문자 그대로 좁은 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이 예배당에 들어가려면 머리를 겸손히 숙여야 하고 짐을 벗어 놓고 한사람씩만 들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죄의 짐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회개를 통하여 죄의 짐을 내려 놓지 않고는 결단코 통과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제일 먼저 주앞에 잘못된 것이 있나 회개를 해야 합니다.
 
 
     2.  멸망으로 가는 길이 있고
 멸망으로 가는 문은 넓다고 했습니다.  이 문은 넓으므로 들어가는 사람은 머리를 숙일 필요가 없습니다.  교만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죄짐을 지고서 그대로 들어가도 거치는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문으로 들어가서 육신의 정욕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경고합니다.  넓은 문과 길은 멸망으로 간다고 하신 것입니다.
 첫째, 들어가기가 쉽습니다.  체험 신앙없이도 갈 수 있습니다(창8:12-14).
 둘째, 통과하기가 쉽고 세상과 겸하여 산다고 했습니다(마19:16-22).
 셋째, 걸어가기 좋으며 평안히 쉽게 걸어 갈 수 있습니다(미 16:1-11).
 넷째, 자유자제 합니다.  제재와 속박이 없습니다(창19:16-22)
 다섯째, 들어가는 자가 많다고 합니다.
 성도들은 안주와 평안을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힘들어도 주님을 따라 갑시다.  주님이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안내해 주실 것입니다.
 
 
     3.  선택의 자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물건을 소유함에 있어서도 기왕이면 나쁜 것보다는 좋은 것을 선택하려고 하고 각각 기호에 따라 선택하려고 합니다.
 학문에 있어서도 각각 천부적인 소질과 재능에 따라 어떤 분은 자연과학을, 어떤 분은 인문사회 과학을 선택하고 어떤 분은 예술분야를 선택하며 또 각 분야에 있어서도 자기가 나아갈 전문분야를 선택합니다.
 세상만사에 있어서 인간은 하나님의 예정된 범위내에서 선택의 자유가 있습니다.  인생길에 있어서도 누구나 선택권이 있습니다.  인생 길에는 누구 앞에나 넓은 문과 넓은 길이 있고 좁은 문과 좁은 길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넓은 문과 넓은 길을 선택해서 나가는 분이 있고 어떤 사람은 좁은 문과 좁은 길을 택해서 나가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첫째, 넓은 문과 길로 간 자들
 (1) “롯” 죄악 많은 소돔성을 택하다가 패가망신을 했습니다.(창13:9-13).  “소돔 사람은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더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롯은 큰 환난을 당했습니다.
 (2) “고라당”은 애굽으로 돌아가 선동하다가 멸망받았습니다(마16:1-11).
 (3) “발람”은 부귀영화가 탐이 나서 범죄하다 죽임을 당하였습니다(민31:8).
 (4)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 권세앞에 아부하고 거짓 숭배 주장하다가 멸망을 당했습니다(왕상22:5).
 (5) “가룟 유다”는 은 30을 욕심내다가 선생을 팔고서 후에 가책을 받아 목을 매여 죽었습니다(마27:1-5).
 (6) “니골라”집사는 직분을 내버리고 유대교에 입교하여 배회하다가 망하였습니다(계2:6).
 (7)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주를 배신하고 타락하였습니다(딤후4:10).
 (8) “게하시”는 나아만이 가진 답례품을 탐하여 거짓으로 소유하고 문둥이가 되는 불행을 당하였습니다(왕하5:27).
 (9) “아간”은 여리고 점령시에 전리품을 감추었다가 가족가지 아골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수7:8-26).
 이들은 순간의 선택을 잘못하다가 불행을 당한 자들입니다.
 
 
  둘째, 좁은 길과 좁은 문을 선택한 자들
 (1) “아브라함”은 소돔땅을 양보하고 마므레를 선택했습니다(창13:1-13).
 보기에는 아주 박토의 땅이었으나 죄악의 소굴은 아니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더 큰 축복을 받게 됨을 믿고 선택했던 것입니다.
 (2) “모세”는 애굽왕자의 영광을 포기하고 민족을 위해 고난의 길을 선택했습니다(히11:23-29).
 (3) “엘리야”는 거짓 우상을 물리치기 위해 아합왕을 대항하며 850명의 거짓 선지자 멸망시키고 주의 영광드러 내었습니다(왕상18:29).
 (4) “에스더”는 민족을 위하여 일사각오 구국운동에 헌신했습니다(에4:15-17).
 (5) “세청년” 사는 방법을 포기하고 우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다가 풀무불에 들어갔습니다(단3:16-18).
 (6) “사도 바울”은 세상 영광, 명예를 포기하고 복음위해 고난에 길을 만족하여 여기었습니다(빌3:7-11).
 이들은 다 좁은문과 좁은 길을 갔지만 세상에서 가장 보람된 일을 하고 주께 갔으니 최고의 상급이 이들에 주어졌던 것입니다.
 
    4.  노력의 대가가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노력은 덜하고 땀을 흘리지 않고 소득을 많이 얻으려고 하고 수고와 희생은 지불하지 않고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성적은 좋아지기를 바라는 수험생과 같은 자가 많습니다.  어느 학자가 지적한 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의 댓가로 힘든 노력을 요구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좋은 말입니다.  노력하지 않고 땀 흘리는 것을 기피하고 쉽게 살려고 하면 이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사는 것이 됩니다.
 이 쉽게 살려는 인생길을 택하여 나가는 사람은 넓은 길을 택하여 사는 사람입니다.  그 길에 성공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마11:12)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고 했습니다.  기독교의 최고 최종의 목표는 천국이라는 고지를 탈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천국은 누가 빼앗을 수 있습니까?  이는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하였습니다.
 침노한다는 것은 힘으로 침범한다 강습한다는 뜻입니다.  고지를 탈환할때 총 집중공격을 퍼붓고 탄환하듯이 모든 성의와 열심있는 믿음을 가지고 온갖 힘을 다하여 천국을 사모하며 얻고자 하는 사람이 천국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고지를 탈환하려면 많은 희생이 따릅니다.  그와 같이 신앙생활에 총력을 기울이고 희생이 따르지 않고는 천국을 빼앗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뜨듯 미지근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희생을 회피해서는 안됩니다.  최후까지 적극적 자세로 열심히 모든 정성과 헌신적 정신으로 혼신의 힘을 써야 천국의 고지를 탈환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의 궁극의 목적 또 신앙의 목적은 천국을 소유하는데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을 얻기까지 신앙생활을 적극적 자세에서 열심을 다해야 합니다.
 
 
     5.  인생의 두 길의 종착점이 있습니다.
 인생의 행로에는 두가지 종착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영생이고 하나는 멸망입니다.  하나는 축복이며 행복이고 하나는 저주며 불행입니다.  생명과 사망 축복과 저주 천국과 지옥 그것은 가장 엄숙한 인생의 종착점입니다.
 인생행로의 마지막은 두가지 다른 종착점이 있다고 하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 모세는 40년 동안 자기 백성을 인도하다가 마지막에 나이가 많아서 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임종을 하기 얼마전에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모아놓고 간곡히 부탁했던 말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으리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으니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  이와 같이 우리에게는 생명과 사망의 두길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생명의 길로 가지 않으면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이 됩니다.  또 인생행로는 일방통로입니다.  한번가고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길을 한번 잘못들면 망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인생길을 바로 찾아야 합니다.
 왜 주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고 하십니까?  좁은 문의 마지막은 생명과 영생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넓은 문은 쉽고 편한 길이지만 마지막은 사망이요 멸망입니다.
 
 
  첫째, 들어가는 길이 서로 다릅니다.
 (1) 넓은 길은 불신으로 들어갑니다(히3:12-19, 4:16).
 (2) 좁은 길은 믿음으로 들어갑니다(딤후3:15).
 
 
  둘째, 여행자들이 서로 다릅니다.
 (1) 넓은 길은 방랑자들이 가는 길입니다(렘14:10).
 (2) 좁은 길은 신령한 자들이 들어가는 길입니다(갈6:1).
 
 
  셋째, 여행자의 옷이 서로 다릅니다.
 (1) 넓은 길을 가는 자는 옷을 입지 않은 자들입니다(마22:11-12).
 (2) 좁은 길을 가는 자는 구원의 옷을 입은 자입니다(사61:10).
 
 
  넷째, 여행중 동행인이 다릅니다.
 (1) 넓은 길을 가는 자는 불경건한 자와 함께 동행합니다.
 (2) 좁은 길을 가는 자는 주님과 함께 갑니다(시23:1-2).
 
 다섯째, 여행자의 입장이 다릅니다.
 (1) 넓은 길을 가는 자는 정죄를 받습니다(요3:18-36).
 (2) 좁은 길로 가는 자는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롬5:1).
 
 여섯째, 여행의 안전성이 다릅니다.
 (1) 넓은 길로 가는 자는 생명의 확신이 없습니다(전27:1).
 (2) 좁은 길로 가는 자는 시험을 이깁니다(고전 10:13).
 
 
  일곱째, 여행자의 운명이 다릅니다.
 (1) 넓은 길로 가는 자는 지옥으로 갑니다(마7:13).
 (2) 좁은 길로 가는 자는 하늘로 갑니다(마7:14).
 
 
     6.  주님이 가르쳐 주신 구원의 문과 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신앙의 길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이며 좁은 길로 가는 생활입니다.  예수 따라가는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길이 험하고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으며 또 들어오지도 못합니다.
 성도는 이 길을 가야 합니다.  바울도 이 길을 갔고 모든 주의 종들과 앞서간 성도들이 이 길을 갔습니다.  예수 따라가는 길은 참으로 골고다의 좁고 험한 길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부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눅14:26-27)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 하는 길입니다.
 
 
     7.  목적이 없이 걷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멸망의 문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은 많은 사람들이 즐겨 다닙니다.  그들은 무엇때문에 걸어야 하는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저 남들이 다니니까 덩달아 함께 걸어가는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목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은 목적도 목표도 없는 무의미한 삶인 것입니다.  그들은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답을 못합니다.  그저 목숨이 붙어 있으니 살아간다는 대답이 고작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멸망의 문은 입을 열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인생의 두갈래 길에서 어떤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생명의 길입니까?  멸망의 길입니까? 영생의 길입니까? 영벌의 길입니까?  잠시 서서 뒤돌아 봅시다.  그리고 좁은 길이거든 하나님께 감사하고 열심히 걸어 생명의 문에 도달해야 되겠고 넓은 길이라면 얼른 돌이켜 좁은 길로 들어서서 함께 영생의 문으로 돌진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결론
 사람은 길가는 나그네입니다.  여기에 출발이 있고 진행이 있고 반드시 그 길의 종착이 있고야 맙니다.  모세는 그의 종착점에 대해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신30:15-17)하였고 여호수아는 그의 임종직전에서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고 (수24:15)했습니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 넓은 길을 가는 것은 쉽기는 하지만 그 길에는 소망이 없고 멸망을 받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어렵고 그 길이 험하기는 하지만 그 길은 영생으로 인도되는 길입니다.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우리 힘들고 어렵지만 좁은 문으로 들어갑시다.  이 길이 영원히 사는 길입니다.  힘들고 어렵지만 좁은 문으로 들어가 좁은 길로 가다가 천국으로 들어가 주님의 환영을 받읍시다. https://cafe.daum.net/SERVINGPEOPLE 

 

 

 

 

마태복음 7장2절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마태복음7장2절

 

 

마태복음7장5절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마태복음7장5절

 

마태복음7장12절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7장12절

 

 

 

마태복음7장13절,14절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태복음7장13절,14절

 

마태복음7장15절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마태복음7장15절

 

마태복음7장19절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마태복음7장19절

 

 

마태복음7장21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7장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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