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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지서

메뚜기의 재앙과 여호와의 날

by 은총가득 2021. 8. 31.

메뚜기의 재앙과 여호와의 날(요엘 1:1~12)

 

 

 

* 오늘의 말씀 : 메뚜기의 재앙과 여호와의 날(요엘 1:1~12)

 

* 본문요약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주신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팟종이와 메뚜기와 늣과 황충이 차례로 와서 유다 땅의 모든 것을 먹어치운 일을 자손 대대로 전하라고 명하십니다. 성전에서 제사가 끊어졌고 토지가 말라서, 밭의 소산과 과실이 없어져 사람의 즐거움이 끊어졌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지 못하니 제사장들은 굵은 베 옷을 입고 슬퍼하고,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명하십니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찬 양 : 177장(새 190) 성령이여 강림하사

          487장(새 369)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 본문해설

 

1. 크고 두려운 메뚜기 재앙(1~4절)

 

1) 이것은 브두엘의 아들 요엘에게 주신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2) 늙은 자들아(장로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이 유다 땅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가 사는 동안에나,

혹은 너희 조상들이 사는 동안에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있었느냐?

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말하고, 너희 자녀는 그들의 자녀에게 말하고,

또 그 자녀는 그 다음 세대에게 말하게 하라.

4) 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신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 자녀에게 말하고, 그 다음 세대에게 말하게 하라(3절) :

이 메뚜기 재앙이 하나님의 심판에서 아주 중요한 메시지가 되는 것이므로

자손 대대로 전하라는 것입니다.

 

 

2. 중단된 예배, 통곡하며 울며 회개하라(5~12절)

 

5) 취하는(술을 즐기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좋아하는 자들아,

너희는 통곡할지어다. 이는 너희가 즐기는 달콤한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6) 다른 한 민족이 내 땅에서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그 수가 많으며,

그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7)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망쳐 놓았고,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말랐도다.

8) 너희는 어릴 때 정혼한(약혼한) 신랑을 잃은 처녀가

굵은 베를 입고 애곡함같이 통곡할지어다.

9) 성전에 날마다 바치는 소제와 전제(곡식제물과 부어 드리는 제사)가 끊어지니,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이 슬퍼하도다.

10) 밭이 황무하고 토지가 마르니, 곡식이 다 말라죽고, 포도송이가 다 쪼그라들며,

감람나무가 말라 기름 생산이 멈추었도다.

11) 농부들아 너희는 부끄러워(슬퍼)할지어다. 포도원을 가꾸는 자들아 슬피

울부짖을지어다. 이는 밀과 보리가 다 죽고, 밭의 소산이 다 없어졌음이로다.

12) 포도나무가 시들었고, 무화과나무가 말랐으며, 석류나무와 대추나무와 사과나무와

밭의 모든 나무가 다 시들었으니, 이러므로 사람의 즐거움이 말랐도다(백성의 기쁨이 모두 사라졌도다).

 

 

3. 영적 지도자의 역할(13~14절)

 

13)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제단 앞에서 섬기는 자들아,

너희는 통곡할지어다.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밤새도록 울부짖을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곡식제물과 부어 드리는 제사)를 너희 하나님의 성전에 드리지 못함이니라.

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거룩한 성회를 소집하여, 장로들과 이 땅의 모든 백성들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전으로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4. 하나님의 경고 앞에서 기도하라(15~20절)

 

15) 슬프다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의 날이 전능자에게로부터 이르리로다.

16) 먹을 것이 바로 우리 눈앞에서 끊어지지 않았느냐?

기쁨과 즐거움이 우리 하나님의 성전에서 끊어지지 아니하였느나?

17) 씨앗이 흙덩이 속에서 모두 썩어버렸고(말라 죽었고), 창고가 텅텅 비었으며,

곳간이 모두 황폐하게 되었으니, 이는 거두어들일 곡식이 없음이로다.

18) 가축이 울부짖고(신음하고) 소 떼가 소란하니(허둥대니, 정신없이 헤매니)

이는 꼴이 없음이라. 양 떼도 피곤하도다.

19)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목장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들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

20)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냇물이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 헐떡거리오니(20절) : 갈급히 사모하며 부르짖으오니


 

* 묵상 point

 

1. 요엘서 저자와 저작연대

 

 요엘서의 저자는 ‘브두엘의 아들 요엘’입니다. 그러나 구약성경 어디에도 브두엘과 요엘 두 사람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요엘서의 저작연대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요엘은 북쪽으로부터 오는 침략자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북쪽으로부터 오는 침략자는 주전 700년대의 앗수르, 주전 500년대의 바벨론, 주전 300년대의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이 있습니다. 하지만 요엘이 그 침략자가 누구인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지 않으므로 그 시대를 알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사항으로

대부분 아모스 이전인 주전 700년대의 저작으로 보고 있습니다.

 

1) 요엘서의 발견

 

요엘서가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되기 직전인

주전 700년대의 선지자들의 책과 함께 보존되었습니다.

 

2) 아모스가 요엘서를 인용함

 

 아모스가 요엘서의 일부분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가령 아모스가 그의 예언의 말미에 기록한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욜 4:18, 암 9:13)이라는 축복의 표현은 요엘서와 아모스 두 곳에서만 사용됩니다.

 

위의 두 가지 사항으로 요엘과 아모스는 비슷한 시기에 활동했던 선지자인데, 요엘은 남왕국 유다에 대하여, 아모스는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하여 예언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2. 메뚜기 떼의 재앙

 

1) 팟종이와 메뚜기와 늣과 황충의 공격(4절)

 

 요엘이 이 예언서를 쓸 무렵 남왕국 유다 백성들은 엄청난 재앙을 당합니다.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메뚜기 떼가 그 땅을 온통 덮어서 땅에 있는 모든 식물을 다 먹어치운 것입니다. 팟종이와 메뚜기와 늣과 황충은 메뚜기의 성장 과정에 따른 이름들입니다. 이 이름들을 나열하며 이것들이 차례로 공격하였다는 것은, 그 땅에 식물이 하나도 남지 않을 만큼 완벽하게 먹어치웠다는 것을 강조한 것입니다.

 

2) 메뚜기 떼의 적극적인 공격

 

 요엘은 메뚜기 떼의 가공할 공격을 아주 실감나게 표현합니다. 메뚜기 떼는 백성들이 사는 삶의 현장 곳곳을 공격합니다. 백성들이 사는 곳 어디에도 메뚜기 떼의 공격을 피할 곳이 없습니다. 이런 메뚜기 떼의 적극적인 공격은 장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할 때 그 어느 곳에서도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3) 이 재앙을 자손 대대로 전하여 알게 하라(3절)

 

 하나님께서는 이 재앙을 자손 대대로 전하여 알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이 메뚜기 재앙이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의 모델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유다 땅의 식물이 공격을 당했지만, 후일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는 사람들이 이처럼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메뚜기 재앙은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크고 두려운 것인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후대에 전하여 알게 하라는 것입니다.

 

 

3. 울며 회개하라는 하나님의 명령

 

  요엘서 1장에는 메뚜기 재앙으로 인하여 피해를 본 세 부류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통곡하며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라고 명하십니다.

 

1) 취하는 자들과 포도주를 즐기는 자들은 통곡하며 울라(5~7절)

 

 메뚜기 재앙으로 피해를 본 첫 번째 사람은 포도주를 즐기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일 먼저 취하는 자들과 포도주를 즐기는 자들에게 통곡하여 울라고 명하십니다. 그들이 즐기던 포도가 모두 메뚜기 떼에 공격을 받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즐기던 달콤한 포도주가 단 한 방울도 남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즐기던 모든 것이 사라졌습니다. 그들이 세상 것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떠났으나, 그들이 찾으려 했던 모든 것이 다 사라졌습니다.

 

2) 농부들아 슬퍼할지어다(11~12절)

 

 메뚜기로 피해를 본 두 번째 사람은 농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농부들에게 슬퍼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들이 농사짓던 모든 것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농부들은 사람들이 즐기던 포도주를 생산하는 자들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을 즐기도록 그 매개물을 공급하던 자들입니다. 그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니 그것을 생산하던 농부들도 역시 피해를 입었습니다.

 

3)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8~10, 13~14절)

 

 세 번째로 슬퍼해야 할 자들은 제사장들입니다. 농부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니 하나님께 드려야 할 소제와 전제도 끊어졌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었고, 제사장의 생활 자체도 곤핍하게 되었습니다.

 

● 더 무서운 심판 : 예배를 드릴 수 없는 때가 된 것

 

 이때의 가장 무서운 심판은 그들이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예배가 있으면 소망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드릴 수 없게 되었으니 소망도 끊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일에 분주하여 하나님 섬기는 일에 게으름을 피우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는 때가 다가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은 가장 두려운 심판입니다.

 

 

4.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깨어 기도하라

 

1) 슬프다 이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15절)

 

 메뚜기 재앙은 앞으로 다가올 더 무서운 심판의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이제 그들에게 더 무서운 심판이 다가옵니다. 그것이 바로 여호와의 날입니다. 본래 여호와의 날이란 하나님께서 이 땅의 역사에 자신을 나타내시는 날을 가리킵니다. 요셉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신 날, 이스라엘 백성에게 애굽에서 나가라고 말씀하신 날, 다윗이 10년을 기다리고 왕이 된 날, 이런 날이 바로 여호와의 날입니다.

 

 여호와의 날은 그동안 하나님을 섬긴 자들에게는 복된 날이 되고,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살던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됩니다. 그런데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빠져 살았으니 이제 곧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은 가장 무섭고 참혹한 심판의 날이 될 것입니다.

 

2) 먹을 것이 끊어졌고, 씨앗까지 말라버렸다(16~18절)

 

 먹을 것이 끊어졌어도 씨앗이 있다면 내년을 기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씨앗까지 모두 말라버렸습니다. 그러므로 그 씨를 심어도 내년에 추수할 것이 없습니다. 지금도 곳간이 텅텅 비었는데 내년에도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배고픔에 가축이 울부짖고, 소 떼가 정신없이 헤맵니다. 사람은 물론 짐승들까지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통이 내년에도 계속됩니다. 사람과 짐승 모두 소망을 잃었습니다.

 

3) 기도자 1 : 선지자 요엘의 기도(19절)

 

 그러므로 선지자 요엘이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하나님께서는 제사장과 백성들에게 모두 통곡하며 회개하라고 명하셨으나, 아무도 주께 나오지 않으니 선지자 요엘이 홀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4) 기도자 2 : 들짐승의 기도(20절)

 

 선지자 요엘 이외에 기도하는 소리는 들짐승의 소리뿐입니다. 20절의 ‘헐떡거린다’는 것은 ‘갈급히 사모하며 부르짖는다’는 뜻입니다. 사람이 해야 할 기도를 들짐승들이 한다는 것입니다.

 

● 묵상 :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잃어버린 시대

 

 그들이 모두 하나님을 떠나 세상으로 나가니 하나님께서 메뚜기 떼를 보내어 그들이 세상에서 즐기던 것을 없애버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재앙을 보내신 것은 고통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는 기도하지 않고 다른 신에게만 기도하여 끝내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잃어버리면 하나님께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을 없애십니다. 그 때에도 여전히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회복하지 않으면 결국 우리는 심판을 당하고 만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 기도제목

 

1. 메뚜기 재앙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의 경고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2.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회복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 오늘의 말씀 : 메뚜기 떼의 재앙과 회개하고 돌아오라는 경고(요엘 2:1~17)



* 본문요약
 
 하나님께서 요엘에게 시온에서 경고의 나팔을 불어 유다 땅에 사는 백성들로 두려워 떨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날이 오면 수를 셀 수 없는 엄청나고 강한 군대가 유다 땅을 덮어 온 땅을 황폐하게 할 것이며, 그들이 오면 땅이 진동하고 하늘까지 더니 여호와의 날을 당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금식하고 애통하며 마음을 다해 여호와께로 돌아오면 인애가 크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회를 소집하여 여호와께 긍휼을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찬 양 : 168장(새 180) 하나님의 나팔 소리
          317장(새 527) 어서 돌아오오
 
 
* 본문해설


1.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1~2절)
 
1) 시온에서 나팔을 불고,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보의 소리를 질러서,
이 유다 땅에 사는 모든 백성들이 다 두려워 떨게 하라.
이는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고 있음이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빛이 산꼭대기에서 퍼지는 것처럼 셀 수 없이 많고 강한 군대가 오고 있음이라.
이와 같은 일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다시는 없을 것이라.
 
- 나팔을 불고(1절) :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로, 하나님의 임재를 알릴 때나 적의 침략을 알릴 때 사용합니다. 여기에서는 이 두 가지 의미가 모두 포함됩니다.


-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2절) :
메뚜기 떼가 하늘을 덮으면 태양빛이 가려져 어둡고 캄캄한 날이 될 것이라는 뜻이지만, 여호와의 날이 오면 소망이 완전히 사라져 버릴 것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 새벽빛이 산꼭대기에서 퍼지는 것처럼(2절) :
새벽 여명이 온 세상을 뒤덮는 것처럼 메뚜기 떼가 산 위에 덮이는 모습을 표현한 것
 
 
2. 메뚜기 떼의 재앙의 묘사(3~11절)
 
3)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그들이 불처럼 초목을 삼키고
지나가면, 지나간 자리에서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니), 그들이 오기 전에는 이 땅에 에덴동산 같았으나, 그들이 지나간 뒤에는 황폐한 사막같이 되었고, 그 앞에서는 살아남은 것이 하나도 없도다.
4) 그들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5) 그들이 산봉우리들을 건너뛰는 소리는 병거(전차)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태우는
소리와도 같으며, 전쟁터로 나가는 강한 군대의 행렬 소리와도 같으니
6) 그 앞에서(그 광경에) 백성들이 질겁하고(자지러지고),
백성들의 얼굴이 모두 새파랗게 되었도다.
7) 그들은 용서처럼 돌격하고, 군사들처럼 성벽을 기어오르며,
제각기 줄을 맞추어 똑바로 전진하되 아무도 그 줄을 이탈하지 아니하며,
8) 서로 밀치지도 않고 각자의 길로 나아가며,
무기를 돌파하고(방어진을 뚫고) 나아가나 그들은 상하지 아니하며,
9) 성 안으로 들어가며, 성벽을 뛰어넘으며, 집에 기어오르며,
도둑같이 창문을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가니
10) 그들이 전진할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빛을 잃는도다.
11)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호령하시고, 그의 군대는 헤아릴 수 없이 많도다.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
 
-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3절) :
메뚜기 떼가 지나간 자리가 마치 불이 휩쓸고 지나간 것과 같은 모습이라는 것


- 백성들이 질겁하고(6절) :
‘질겁하다’로 번역된 ‘야힐루’는 ‘몸서리치며 괴로워하는 것을 뜻합니다.


- 크고 심히 두렵도다(11절) :
히브리어 원어에는 ‘그의 군대’와 ‘심히 크고’와 ‘여호와의 날’에 ‘대저, 진실로’라는 접속사가 모두 붙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원어에는 개역성경의 번역보다 여호와의 날이 크고 두려운 날이라는 것이 훨씬 더 강조되어 있습니다.
 
 
3. 애통하며 회개하라(12~14절)
 
12)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지금이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하셨나니,
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사랑이) 크셔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14) 주께서 혹시 마음과 뜻을 돌이키시고 오히려 그 후에 복까지 내리셔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소제와 전제를 드리게 하지 아니하실는지 누가 알겠느냐?
 
- 너희는 지금이라도(12절) : 회개의 기회가 아직은 남아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4. 성회를 소집하라(15~17절)
 
15) 너희는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라. 거룩한 금식일을 선포하고 성회를 소집하라.
16) 백성을 모아 그 모임을 거룩하게 하고, 장로들을 모으며, 어린이와 젖먹이들도 모으라.
신랑을 그 방에서 나오게 하며 신부도 그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17)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들은 낭실(성전 현관)과 번제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주님의 소유인 이 백성이 이방인에게 통치를 받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옵소서. 어찌하여 이방인으로 ‘그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하고 말하게 하겠나이까?”할지어다.
 
- 낭실과 단 사이(17절) :
낭실은 성전 현관이고, 단은 번제단을 가리킵니다.
성전 현관과 번제단 사이에는 제사장의 뜰이 있습니다.
 


* 묵상 point


1. 메뚜기 떼의 재앙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엘을 통해 전하고자 하시는 말씀은, 이제 곧 그들에게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다가오니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선지자 요엘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제 곧 다가올 여호와의 날이 크고 두려운 날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그에 앞서 가공할 메뚜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1)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남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3절)
 
 메뚜기 재앙은 인류가 경험하는 가장 두려운 재앙 중의 하나입니다. 메뚜기 때는 가장 짧은 시간에 가장 많은 것을 먹어버려서 푸른 것은 하나도 남지 않게 하기 때문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1894년 미국서부에서 수 조 마리나 되는 메뚜기들이 떼를 이루었을 때 그 폭은 160km에 달했고, 길이는 약 480km에 달했으며, 높이는 1.6km에 달했다고 합니다. 중동 지역에는 메뚜기 떼가 1 평방미터에 300~1000마리의 밀도로 수십 킬로미터를 뒤덮는 경우가 가끔 있고, 심한 경우 1 평방미터에 수천 마리~1만 마리까지의 밀도로 수백, 수천 킬로미터나 뒤덮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이쯤 되면 메뚜기 때로 인하여 땅이 보이지 않고, 대낮에도 밤처럼 어둡게 됩니다. 메뚜기들은 풀과 채소와 나무는 물론 건축물의 나무와 사람의 옷까지도 먹어치웁니다. 그래서 메뚜기 때가 지나간 자리는 그야말로 황량한 사막과 같은 모습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메뚜기 때의 습격을 자주 받는 근동지방의 사람들은 홍수나 기근이나 그 어떤 재앙보다도 메뚜기 때의 재앙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2) 무서운 그들의 모양에 백성들이 두려워 몸서리치고(4~6절)
 
 선지자 요엘은 메뚜기 떼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그들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그들이 산봉우리들을 건너뛰는 소리는 병거(전차)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태우는 소리와도 같으며, 전쟁터로 나가는 강한 군대의 행렬 소리와도 같으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은 메뚜기 떼가 온 하늘과 땅을 다 점령해버렸습니다. 그 엄청난 광경에 백성들은 두려움에 몸서리치고, 얼굴을 새파랗게 질리다 못해 아예 검게 그을린 솥단지처럼 까맣게 되었습니다.
 
3) 그들의 공격을 막을 자가 아무도 없다(7~9절)
 
 메뚜기들은 서로 밀치지도 않고 마치 병사들이 열을 지어 가듯 각기 자기의 길을 갑니다. 앞에 무엇이 있든지 거침이 없습니다. 성 안으로 들어가며, 성벽을 뛰어 넘으며, 도둑처럼 창문까지 넘어 집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것은 그들을 막을 자가 아무도 없으며, 사람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들어가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 메뚜기 떼를 피하여 도망할 곳이 전혀 없습니다.
 
4) 그들이 전진할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떨며(10절)
 
 그 메뚜기 떼가 전진할 때에는 땅이 진동하고 하늘까지 두려움에 떱니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도 그 빛을 잃었습니다. 메뚜기 떼가 너무 많아 마치 여름에 짙은 구름이 낀 것처럼 대낮인데도 어둡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2.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
 
1) 여호와의 날의 첫째 예고편 : 메뚜기 때의 재앙
 
 메뚜기 때의 재앙은 그것만으로도 백성들의 마음을 오그라들게 할 만큼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 재앙은 장차 다가올 더 큰 재앙의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메뚜기 떼가 아무리 두려워도 사람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들에 있는 풀과 나무는 물론, 집의 기둥이나 사람이 입은 옷까지 사람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다 해치지만 사람을 직접 공격하지는 않으므로, 장차 다가올 재앙을 경고하는 성격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이 메뚜기 떼의 재앙과 더불어 선지자들을 통해 경고의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2) 여호와의 날의 두 번째 예고편 : 앗수르와 바벨론 침공
 
 메뚜기 떼와 함께 하나님께서 선지자 요엘과 아모스를 통해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이 선지자들을 통해 전하신 경고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이스라엘이 주변 강대국들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메뚜기 재앙은 들판의 식물들만 공격을 당했지만, 다음의 나온 재앙들은 사람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가는 등 사람에게 직접 임한 재앙입니다.
 
① 주전 722년 :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당함


 북왕국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을 당할 때, 앗수르는 이스라엘 땅에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남겨두고 대부분의 백성들을 세계 여러 나라에 흩어지게 하였습니다. 이로써 북왕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인에게 흡수되었고, 역사에서 영영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② 주전 586년 :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함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할 때 약 1만 명 정도만 바벨론에게 포로로 사로잡혀 가고, 나머지 백성들은 대부분 아주 참혹하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③ 주전 198년 :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게 고난 당함


 안티오쿠스 에피하네스는 약 3년 반 동안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리고, 이것을 어기는 자에게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참혹한 죽음을 당하게 했습니다.
 
④ 주후 70년 : 예루살렘이 무너짐


 주후 70년에는 예루살렘이 6개월 동안 로마의 군인들에게 포위되는 일이 일어났는데 이때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포위된 6개월 동안 약 110만 명의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는 끔찍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3)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진짜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
 
 첫 번째 여호와의 날은 메뚜기 재앙이고, 두 번째 여호와의 날은 이스라엘의 멸망이었습니다. 이 두 재앙 모두가 생각하기조차 싫을 만큼 크고 두려운 재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경고하시는 진짜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에 비하면 이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진짜 크고 두려운 재앙은 예수께서 오실 때에 일어날 최후의 재앙을 가리킵니다. 그때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 앞에 불려나와 최후의 심판을 받고 영원히 멸망을 받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전의 그 어떤 재앙보다 더 크고 두려운 재앙입니다. 소망이 없는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 묵상 : 여호와의 날이 다가오는 징조
 
①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빛을 잃고(10절)
 
 여호와의 날이 올 때 공통적으로 나오는 징조가 바로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빛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때에 애굽의 전역에 맏아들이 모두 죽는 심판이 내려지기 직전에 있던 재앙이 바로 해와 달과 별이 어두워지는 흑암의 재앙이었습니다. 여기에서도 이스라엘이 망하는 무서운 재앙이 오기 전에 메뚜기 떼로 인하여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의 빛이 사라지고 어두워지는 재앙이 왔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도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을 것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을 상징적으로 본다면 이 땅에 있는 거의 모든 교회들이 그 거룩함을 잃어버리고 세속화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겠고, 출애굽 때나 본문의 경우처럼 진짜 그대로 일어날 일이라면 천체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어느 경우든 주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그 징조를 보이실 터이니 주의하여 살펴보고 주의 오실 날을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② 여호와의 날이 심히 크고 두렵도다(11절)
 
 장차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은 메뚜기 재앙이나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크고 두려운 날입니다. 이스라엘이 멸망하던 날 끔찍하게 죽었던 일도 두려운 일입니다만, 그래봐야 육신만 죽일 뿐입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에는 영혼까지 죽어 영원히 멸망을 당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크고 두렵습니다. 그러므로 그 날을 준비하는 자가 되십시오.
 
 
3. 너희는 지금이라도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1)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12~13절)
 
 이미 첫 번째 여호와의 날인 메뚜기 재앙은 그 땅에 내려졌습니다. 이제 두 번째 여호와의 날인 이스라엘의 멸망의 날이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주께로 돌아오라고 명하십니다. 그러면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옷을 찢는 것 같은 형식적인 회개를 하지 말고, 마음을 찢는 진정한 회개를 하라고 명하십니다. 마음을 찢으라는 것은 자기의 죄를 가슴아파하며 애통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내 죄를 아파하며 애통하는 마음을 갖는 것, 여기에서부터 구원은 시작됩니다.
 
2) 성회를 소집하여 어린이부터 장로와 제사장들까지 모두 모이게 하라(15~16절)
 
 하나님께서 요엘에게 성회를 소집하여 어린이로부터 장로와 제사장들까지 모든 사람들을 다 모아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하게 하라고 명하십니다.
 
3) 제사장들은 낭실과 번제단 사이에서 울며 기도하라(17절)
 
 제사장들은 낭실과 번제단 사이에서 울며 기도하라고 명하십니다. 낭실과 번제단 사이에는 제사장의 뜰이 있는데, 하나님의 법궤가 있는 지성소와 백성들이 모인 곳의 중간지점으로 제사장들이 기도 처소로 사용되던 곳입니다. 제사장들은 이곳에서 울며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회복되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예배가 회복되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이 다시 살아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신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리리라(13절)
 
 만일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고, 제사장들이 제 사명을 회복하여 예배가 바르게 드려지게 되면,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향하여 다가오는 앗수르와 바벨론의 군사들을 물리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끝내 회개하라는 명령을 듣지 않아 그들이 결국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 묵상 : 회개하여 주께 용서받는 자가 되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회개하라는 명령을 듣지 않고 고집을 부리다가 멸망을 당하는 자가 되지 말고, 주님 앞으로 나와 회개하는 자가 되십시오. 날마다 몸을 씻고 자듯, 자신의 영을 씻는 자가 되십시오. 날마다 우리의 마음에 끼는 죄의 때를 벗겨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의 생명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는 이 묵상의 자리를 꼭 지키십시오.
 
 
* 기도제목


1. 장차 다가올 여호와의 날(심판의 날)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2. 곧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만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3. 이 일을 위하여 말씀을 묵상하고 나의 영의 때를 씻는 기도를 날마다 하게 하옵소서.

 

 

 

회개에 대한 하나님이 응답, 성령의 약속(욜 2:18~32)

 

 

오늘의 말씀 : 회개에 대한 하나님이 응답, 성령의 약속(요엘 2:18~32)

 

* 본문요약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때에 여호와께서 그 중심이 뜨거우셔서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고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이 풍족하게 하셔서 그들이 배불리 흡족하게 먹게 될 것입니다. 그 후에 주님의 영을 만민에게 부어주셔서 자녀들이 예언을 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입니다.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빛을 잃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겠지만,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찬 양 : 172장(새 183) 빈 들에 마른 풀같이

          173장(새 184) 불길 같은 성신여

 

 

* 본문해설

 

1. 하나님의 응답 : 이른 비와 늦은 비(18~27절)

 

18) 그때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중심이 뜨거우셔서(자기 땅이 당한 일로 마음이 아프

셔서, 자기 땅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19)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응답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에게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을 주리니, 너희가 이로 말미암아 흡족하리라. 내가 다시는 너희가 이방 나라들

가운데서 욕을 당하지 않게 할 것이며,

20) 내가 북쪽에서 온 메뚜기 군대를 멀리 떠나게 하여 메마르고 적막한 땅으로 쫓아내리

니, 그 앞의 부대는 동쪽 바다(사해)로, 그 뒤쪽 부대는 서쪽 바다(지중해)로 몰아넣을 것이라. 그러면 상한 냄새가 일어나고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일을 행하였음이니라”하시리라.

21)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일을 행하셨음이로다.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흡족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는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고,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며, 나 외에는 다른

신이 없는 줄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 중심이 뜨거우셔서(18절) :

중심이 뜨겁다는 말은 ‘큰 열심’을 뜻하는 말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큰 열심을 내시리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2. 만민에게 부어주실 성령(28~32절)

 

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예언하여)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환상)을 볼 것이며,

29) 그때에 내가 또 내 영을 남종과 여종들에게까지도 가리지 않고 부어 줄 것이며,

30)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하늘과 땅에 징조를 보여 줄 것이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31)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일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같이 변하려니와

32) 그러나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가 말한 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 그 후에(28절) :

먼 훗날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를 가리키는 것으로,

오순절 성령의 강림의 때를 나타냅니다.

 

-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28절) :

장래 일을 말하는 것은 ‘예언’을 말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말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 꿈, 이상(28절) :

꿈과 이상(환상)은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자가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꿈과 환상을 말합니다. 이것 역시 예언과 같은 것으로 예언은 말씀을 받는 것이지만, 꿈과 환상은 좀 더 구체적이고 분명하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는 것을 뜻합니다.

 

 

* 묵상 point

 

1. 회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

 

1) 여호와께서 그 중심이 뜨거우셔서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18절)

 

 여호와께서 그 중심이 뜨거우시다는 것은 그의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열망이 얼마나 간절한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엄마가 자기의 아이가 우는 것을 보고 그 중심이 뜨겁듯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이 고통 받는 것을 보고 마음이 뜨거우십니다. 그래서 그의 백성이 회개하는 것을 사람들보다 하나님이 더 기다리십니다.

 

 그러다 사람이 만일 하나님께 간절한 마음으로 애통하며 회개를 하면 곧바로 그에게 내려졌던 모든 재앙이 다 중단되고 그를 회복하는 일을 다시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이제나 저제나 이 사람이 언제 회개하는지 곁에서 지켜보고 계셨다가, 애통하는 마음으로 탄식하며 자기의 죄를 고백할 때 곧바로 그를 위해 준비하셨던 일을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2) 메뚜기 시체 썩는 냄새로 악취가 오르리니 이는 큰일을 행하셨음이라(20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리셨던 재앙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시는 바로 그 순간에, 땅과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많았던 그 메뚜기 떼가 곧바로 죽임을 당합니다. 하나님께서 메뚜기 떼를 동쪽으로는 사해로, 서쪽으로는 지중해로 몰아넣으셔서 메뚜기 떼가 한꺼번에 죽습니다. 그래서 메뚜기 썩는 악취가 진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이 악취는 그들에게 재앙을 내렸던 원수들이 죽어서 나는 냄새이니 백성들은 오히려 즐거워하며 춤을 추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실로 큰 일을 행하셨습니다.

 

3)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24절)

 

 원수들만 물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삶에 즐거움을 주었던 모든 것이 회복됩니다. 곡식은 그들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양식이고, 새 포도주는 삶에 기쁨과 활력을 주는 것이요, 기름은 하나님께 바칠 예물입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명에 대한 것과, 삶에 기쁨을 주는 것과,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일이 풍족하게 회복될 것입니다.

 

4) 메뚜기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25절)

 

 그동안 메뚜기 떼로 인하여 고통을 당했던 그 햇수만큼 하나님께서 다시 갚아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그 햇수만큼만 도와주시겠다는 것이 아니라. 평소대로 수확을 하되, 그 햇수 동안에는 전에 고통 당할 때 수확하지 못했던 것까지 덤으로 추시니 두 배 세 배의 수확을 더 얻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5) 너희가 풍족히 먹고 너의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라(26~27절)

 

 하나님의 복은 이처럼 차고 넘치도록 풍성한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기쁨과 즐거움이 이처럼 차고 넘치리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풍부한 기쁨을 누리게 될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되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경배하게 될 것입니다.

 

 

2. 만민에게 부어주실 성령

 

1)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28절)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말 주시고자 하는 복은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이 아닙니다. 이런 것은 육신을 위한 것이니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이런 복도 필요하겠습니다만, 그보다 우리가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장차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모든 만민에게 부어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선지자 요엘에게 약속하셨던 이 예언은 오순절 다락방에서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 120 명에게 성령이 임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2) 예언을 하고 꿈을 꾸며 이상을 볼 것이며(28절)

 

 성령이 임하시면 자녀들이 예언을 하고, 늙은이는 꿈을 꾸며,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예언과 꿈과 이상은 모두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는 자가 하나님께 받은 말씀이나 꿈이나 환상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예언과 꿈과 이상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구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나님과 직접 교제를 하여 하나님께 말씀을 직접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이런 일은 모세나 사무엘이나 다윗 정도 되는 사람만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런 정도의 믿음이 있는 자들만이 예언을 하고, 꿈을 꾸고 환상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도 꿈을 꾸고 환상도 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환상을 보는 자는 극히 적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도 성령의 도우심으로 예언과 꿈과 환상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를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분할 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주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분별력과 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 묵상 : 다만 한 가지, 늙은이가 꿈을 꾼다고 한 것을 살펴보면

 

 나이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은 앞으로의 일을 생각하기보다는 과거의 일을 추억할 때가 더 많습니다. 앞으로 살아갈 날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새로운 것을 계획하고 꿈꾸는 일은 더욱 어렵습니다. 새로운 것을 추진할 만한 힘도 없지만, 그 일을 이룰만한 자신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함께 하시면 나이가 아주 많으신 어르신들도 미래를 위한 꿈을 꿉니다. 늙은이들도 미래를 향한 비전과 소망을 갖습니다. 성령께서 늙은이들에게도 주를 위해 일할 열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열망을 가진 이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미래를 바라봅니다. 그 일을 시작만 하고 내 인생이 끝난다고 할지라도 염려할 것 없습니다. 그러면 모세에 이어 사명을 감당할 여호수아가 준비 되었듯이, 성령께서 그 일을 계속 이어가게 할 다른 사람을 붙여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나이가 얼만데”하며 좌절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주의 성령께서 나이가 많은 당신에게도 미래를 향한 사랑과 열정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3) 남종과 여종들에게까지도 가리지 않고 부어줄 것이라(29절)

 

 그때가 되면 모세나 사무엘이나 다윗과 같은 믿음이 좋은 사람들에게만 성령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남종과 여종들에게까지 가리지 않고 원하는 자들에게는 성령을 부어주실 것입니다. 남종과 여종은 가장 하찮게 여겨지는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크고 작은 자를 구분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든지 간절히 사모하며 구하는 자에게는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그것도 아주 풍성하게 충만하게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성령을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돈보다도, 건강보다도, 세상에서의 성공된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도 성령을 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성령께서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십니다. 내 힘과 내 열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힘도 열정도 사랑도 모두 성령께서 주십니다.

 

 

3.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인 주님의 심판의 날

 

1)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임할 징조(31절)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은 예수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심판 때를 가리킵니다. 그때는 이 지구에서의 모든 역사가 끝이 날 것입니다. 우리가 보는 모든 세상이 다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께로부터 그 믿음을 인정받지 못한 자들은 그 새 땅에서 살지 못하고 영원히 멸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크고 두려운 날입니다.

 

2)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로다(32절)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이 이르기 전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그가 지은 모든 죄를 용서 받고, 주와 함께 주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주의 이름을 한 번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양식을 먹음으로 육신의 생명이 이어지듯, 주의 이름을 계속 부름으로 우리의 영생의 생명도 이어집니다.

 

3)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이요(32절)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이라는 뜻은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때의 환난이나,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파괴될 때 있었던 일입니다. 그때 큰 재앙이 임하기 전에 누군가의 인도에 따라 예루살렘 인근 야산(펠라지역)으로 피한 자는 재앙을 피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말하는 시온 산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의 자리를 뜻합니다. 마지막 때에 피할 곳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그날이 이르기 전에 주의 이름을 부르며 주께 예배드린 자는 그때 그 재앙을 당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4)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그리고 그 재앙에서 피하여 남은 자 중에 주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 제자들이 전하는 복음을 듣고 주의 부르심을 받은 주의 일꾼들을 뜻합니다. 누구든지 이 부르심의 대열에 함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우리가 육신으로 사는 동안 주의 일에 함께 참여하는 것만큼 복된 일은 없습니다.

 

● 묵상 :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의 의미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할까요? 믿지 않는 자들도 힘들 때는 주의 으름을 부르며 도와달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참된 믿음의 고백이 아닙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의 바른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을 모두 만족할 때를 뜻합니다.

 

① 하나님이 누구신지 그가 무엇을 하셨는지를 알고,

    그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그 이름을 부르는 것

 

 하나님께서 누구시며,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행하셨는지를 아는 자가, 그 은혜에 감사하여 경배하면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 주의 이름을 바르게 부르는 것입니다. 감사하는 마음도 없고, 경배하고자 하는 마음도 없이 그냥 입술로만 부르는 것은 천 번 만 번을 부른다고 할지라도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②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따르겠다는 믿음의 고백으로 그 이름을 부르는 것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을 알게 되면, 그 다음으로 하는 일은 내 뜻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마치 왕이 신하를 부르면 그 앞에 엎드려 왕의 뜻을 따르겠다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씀만 하옵소서. 무엇이든 명하시는 대로 따르겠나이다”하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가장 귀한 것으로 여기고

    그것을 얻기 위해 살겠다는 결단과 함께 그 이름을 부르는 것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가장 귀한 것임을 믿는 자는 주의 주시는 것을 얻기 위해 힘써 일하게 됩니다. 주께서 주시는 가장 귀한 복인 천국의 복을 얻기 위해 힘써 일하겠노라는 결단과 함께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 이것이 바로 주의 이름을 바르게 부르는 자세입니다.

 

④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는 것

 

 사랑하는 애인에게 사랑을 담아 그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하는 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이 주의 이름을 바르게 부르는 것입니다.

 

⑤ 이런 일을 지속적으로 계속 함으로써 구원을 얻습니다.

 

 이렇게 바른 믿음 고백과, 사랑과, 감사와, 경배와, 결단의 마음을 담아 매 주일 예배 때에 주께 예배드리며 그 이름을 부르고,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이름을 부르고, 삶 속에서 때때로 기억날 때마다 그의 이름을 부르며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믿음의 삶입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이 일을 계속함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4. 여호와의 날의 두 가지 의미

 

1)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에게는 복된 여호와의 날

 

 이처럼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그와 교제하는 삶을 사는 자에게는 여호와의 날은 가장 귀하고 복된 날입니다.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 이런 자는 주께로부터 큰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고집을 부리고 주께 돌아오지 않는 자들에게는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

 

 그러나 고집을 부리고 주께 돌아오지 않는 자,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하고 자기 방식대로 살겠다고 고집하는 자들에게는 크고 두려운 여호와의 날이 됩니다. 이런 자들은 주께로부터 영원한 멸망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오늘도 나를 지켜주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경배합니다.

2. 항상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날의 죄와 허물을 주의 피로 씻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3. 항상 믿음과 사랑과 경배와 결단의 마음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며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구원(욜 3:1~21)

 

 

오늘의 말씀 :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구원(요엘 3:1~21)

 

* 본문요약

 

 때가 오면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회복하여 번영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을 세상으로 흩어버린 민족을 심문하시고, 그들이 행한 것을 되돌리실 것입니다. 주께서 세상 만민을 심판의 골짜기로 모으시고, 주의 군사들을 소집하여 주의 군사들과 함께 세상 만민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우니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습니다. 여호와의 소리에 하늘과 땅이 진동하고, 해와 달과 별들도 그 빛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피난처가 되시니, 그들은 주와 함께 영원히 풍성한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과 에돔은 황무지가 될 것입니다.

 

찬 양 : 204장(새 288)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363장(새 337)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 본문해설

 

1. 심판의 골짜기에서 이루어질 하나님의 심판(1~8절)

 

1) 보라, 그 날 곧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 가운데서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그 때에

(혹은, 때가 오면 내가 유다와 예루살렘을 회복하여 번영하게 할 것이니)

2) 내가 만국을 모아 데리고 여호사밧 골짜기(심판의 골짜기)로 내려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

을 위하여 거기에서 그들을 심문할 것이라. 이는 그들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여러 나라들 가운데에 흩어 버리고, 나의 땅을 쪼개어 나누어 가졌음이라.

3) 또 내 백성을 두고 제비를 뽑아 남자 아이를 창녀와 즐기기 위한 화대로 팔아먹고,

여자 아이를 판 돈으로 술을 마셨기 때문이라.

4)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의 모든 땅아, 너희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가 네게 보복하겠느냐? 만일 너희가 나에게 보복하면,

너희가 행한 그대로 내가 당장 너희에게 되갚아 줄 것이라.

5) 곧 너희가 내 은과 금을 빼앗아 나의 진기한 보물을 너희 신전으로 가져갔으며,

6) 또 유다 자손과 예루살렘 자손들을 헬라(그리이스) 족속에게 팔아서

그들의 영토에서 멀리 떠나게 하였음이라.

7) 보라, 너희가 그들을 팔아 멀리 떠나게 하였지만, 내가 그들을 거기에서 돌아오게 하고,

너희가 그들에게 행한 그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라.

8) 너희 자녀를 유다 자손의 손에 팔리니, 그들이 다시 먼 나라 스바 사람에게 팔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1절) :

히브리어 원어에는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한다’는 것과 ‘회복하여 번영하게 한다’는 두 가지 해석이 다 가능합니다. 그런데 본문은 주께서 다시 오셔서 세상 만민을 심판하실 때의 일을 말하는 것이니 ‘회복하여 번영하게 한다’는 것이 더 합당한 해석이라 여겨집니다.

 

- 두로와 시돈의 멸망(4절) :

시돈은 주전 345년에 바벨론의 아닥사스다 왕에게 망하였고

두로는 주전 332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망하였습니다.

 

 

2. 심판을 위한 준비로 주께서 그의 군사들을 소집함(9~13절)

 

9) 너희는 모든 민족에게 이렇게 널리 선포할지어다.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들에게 무장을 시키라. 군사들을 모두 소집하여 나아가게 하라.

10) 너희는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지어다.

약한 자도 이르기를 ‘나는 강하다(나는 용사다)’하고 외치며 나올지어다.

11) 사면의 모든 민족들아, 너희는 속히 와서 모일지어다.”

여호와여, 주의 용사들로 그리로 내려오게 하옵소서.

12) “민족들은 일어나서 여호사밧 골짜기(심판의 골짜기)로 올라올지어다.

내가 거기 앉아서 사면의 민족들을 다 심판하리로다.

13) 너희는 낫을 휘두르라. 곡식이 익었도다. 와서 밟을지어다.

포도주 틀이 가득히 차고 포도주 틀이 넘치니, 그들의 악이 큼이로다.

 

- 무장을 하고 나타나는 군사들(9절) :

여기에서 말하는 무장한 군사들은 예수님을 믿는 주님의 백성들과 하나님의 천군 천사들을 가리킵니다. 주께서 세상 만민을 심판하실 때에 하나님의 천사들과 함께 주님의 백성들이 세상을 심판하는 일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3. 심판의 골짜기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14~17절)

 

14)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사람이 많음이여.

심판의 골짜기에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왔도다.

15) 해와 달이 어두워지고, 별들이 그 빛을 잃는도다.

16)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외치시고 예루살렘에서 큰 소리를 내시리니, 하늘과 땅이 진동하리

로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의 피난처, 이스라엘 자손의 산성이 되시리로다.

17) 그런즉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인 나 여호와가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있음을 알게 될 것

이라. 예루살렘이 거룩한 곳이 되리니, 다시는 이방 사람이 그 가운데로 통행하지 못하리로다.

 

 

4. 하나님의 백성에게 약속된 영원한 기쁨(18~21절)

 

18) 그날에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산마다 새 포도주가 넘쳐흐를 것이며),

작은 산들이 젖을 흘릴 것이며, 유다의 모든 개울마다 물이 가득 차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

19) 그러나 애굽은 황무지가 되겠고 에돔은 황무한 들이 되리니,

이는 그들이 유다 자손에게 포악을 행하여 무죄한 피를 그 땅에서 흘렸음이니라.

20)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로 있으리로다.

21)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 흘림 당한 것을 갚아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이제는 갚아 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에 거하심이니라.

 

-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나와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18절) :

싯딤 골짜기는 아카시아 골짜기로, 우기에만 물이 흐르고 평소에는 사막처럼 말라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이제 여호와의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 이곳을 적신다는 것입니다.

 

 

* 묵상 point

 

1. 장차 이루어질 최후의 심판

 

1) 그 때가 오면 유다와 예루살렘이 회복하여 번영하게 될 것이라(1절)

 

 요엘 3장은 장차 주께서 다시 오셔서 세상 만민을 심판하실 때의 일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주께서 다시 오실 그 때가 오면 유다와 예루살렘이 회복하여 번영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벨론에 포로 되었던 유다 백성들이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 때에 다시 돌아오기는 했지만 나라로서의 면모를 회복한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194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나라의 모습으로 회복되었습니다. 이 일이 이루어지고도 벌써 거의 7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사는 시간이 주께서 오실 때가 거의 다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심판의 이유 1 : 내 백성 이스라엘을 세계 여러 나라로 흩어 버렸으므로(2,5절)

 

 요엘은 마지막 때에 세상 만민이 심판을 받는 이유를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이방인의 경우를 빗대로 설명합니다. 주께로부터 심판을 받는 사람들의 첫째 이유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계 여러 나라로 흩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는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을 세계 여러 나라로 흩은 앗수르와 바벨론을 가리킵니다만, 마지막 심판 때로 본다면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의 즐거움에 빠지게 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성도들 중에 세상의 쾌락과 이익에 눈이 멀어 본인 자신이 세상에 빠질 뿐만 아니라, 신실하게 주님을 잘 섬기던 자들도 미혹하여 세상에 함께 빠지게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서 있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 살기를 고집하며, 그런 세속적인 삶을 좋게 여기고 다른 사람에게 권유하여 함께 죄에 빠지게 한 자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2) 심판의 이유 2 : 내 백성을 두고 제비를 뽑아 기생과 술값으로 팔아버렸으므로(3절)

 

 요엘의 당시에 앗수르와 바벨론 사람들, 그리고 두로와 시돈과 같은 주변 나라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을 포로로 사로잡아 기생과 술값으로 팔아넘겼습니다. 자기의 쾌락을 위하여 사람의 생명을 물건처럼 여기며 사고파는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 세상 쾌락을 즐기는 것을 더 중요한 일로 여기는 자들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3) 심판의 이유 3 : 내 은과 금을 빼앗아 너희의 신전으로 가져갔으므로(5절)

 

 세 번째 심판의 이유는 하나님께서 주신 물질을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사용한 자들입니다. 자기의 신전이란 자기의 몸과 육신을 말합니다. 물론 주께서 내게 주신 것으로 나와 내 가족을 위해서도 사용합니다. 그러나 그 중에 일부는 반드시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번 돈이니 내가 마음대로 한다면서 오직 자기의 배를 만족하는 일에만 사용하는 자들이 그날 주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 묵상 :

 

 주님보다 세상을 더 좋아한 자들, 주께서 주시는 복보다 세상의 복을 더 귀하게 여긴 자들, 자기의 쾌락을 사람의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긴 자들은 그날 주께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일에 분주하여 주님 섬기는 자리를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그 날을 준비하는 자들이 됩시다.

 

 

2. 심판을 위해 주의 백성인 우리가 해야 할 일

 

1) 전쟁을 선포하고 모든 용사들에게 무장을 시켜라

 

 주께서 재림하여 오실 때가 다가오면, 주께서 악한 무리들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그의 군사들을 소집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용사들에게 무장을 시키고 그들을 출동시킬 것입니다. 이때의 전쟁에 대해서는 요한계시록 20:7이하의 곡과 마곡과의 전투에서 보다 분명하게 나옵니다. 요엘서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먼저 악인을 심판하시기 위해 주의 군사들을 소집하시는 것으로 나옵니다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악인들이 자기들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사탄과 마귀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악인들이 그들이 가진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타락시키려는 것으로 나옵니다.

 

 인류 최후의 전쟁은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계 3차 대전이 아닙니다. 악마들이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쾌락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타락시켜 멸망의 사람들이 되게 하는 싸움입니다. 이 마지막 싸움에서 끝까지 이기는 자들만이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됩니다.

 

2)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라(10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보습을 쳐서 칼을 만들고, 낫을 쳐서 창을 만들라고 명하십니다. 보습은 흙을 갈아엎는데 사용하는 쟁기 모양의 농기구를 말합니다. 마지막 때는 사느냐 죽느냐 하는 치열한 전쟁의 때이니 농사짓는데 사용하는 쇠붙이들을 녹여 창이나 칼과 같은 무기를 만들라는 것입니다.

 

 마지막 때의 전쟁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느냐 세상의 즐거움에 빠져 타락한 자가 되느냐의 싸움이라 했으니, 여기에서 말하는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마지막 때의 성도들은 말씀으로 무장하여 굳건한 믿음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욥처럼 극한 시험에서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3) 낫을 휘두르라. 곡식이 익었도다.(12~13절)

 

 곡식이 익어 추수의 때가 되었으니 낫을 휘두르라고 말씀하십니다. 때가 가까우니 믿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자를 쫓아다니면서 믿으라고 권면할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는 믿음을 갖기를 원하기는 하는데 믿음이 연약하여 힘들어하는 자들을 도와 굳건한 믿음을 갖게 하는 일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곡식을 더욱 충실한 곡식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말씀을 배우기를 원하는 자들, 믿음을 갖기를 원하는 자들을 놓치지 말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누구든 주의 말씀을 배우기를 원하는 자들이 있다면 밤이든 낮이든, 언제든지 그들을 가르치고 훈련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3. 심판의 징조 :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음(15~16절)

 

 심판의 징조를 말할 때는 언제나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었다는 말이 나왔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도 애굽의 최후의 재앙이 내려지기 전에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어 흑암이 사흘 동안 있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기 전에도 세 시간 동안 흑암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는다는 것에는 다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1) 해와 달과 별의 상징적인 의미 : 교회들이 무너지리라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는다는 것을 상징적인 의미로 본다면, 세상에 있는 거의 모든 교회들이 다 무너지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교회 건물이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세속화되어 타락한 교회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구원하는 능력을 잃은 교회,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에 빠진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른 믿음을 가진 교회를 찾기가 매우 힘든 때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해와 달과 별에서 나타날 실제적인 징조 : 천체의 변화

 

 그러나 전에 큰 재앙이 있을 때 실제로 해와 달과 별들이 빛을 잃었습니다. 그러므로 상징적인 의미뿐 아니라 실제로도 해와 달과 별들이 빛을 잃는 때가 올 것입니다. 이것은 천체에 엄청난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요즈음엔 과학기술이 발달하여 우주의 별들에 일어나는 현상들을 관측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방송에서 우주의 별들의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그때야말로 마지막 때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는 것을 깨달아서 온 마음을 다해 회개하며 그 날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4. 마지막 최후의 심판

 

1) 하나님의 백성에게 내려질 복

 

① 산들이 단 포도주를 떨어뜨릴 것이며(18절)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이미 주님의 십자가로 그 죄를 다 용서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오시는 날까지 주와 교제하며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일을 쉬지 않고 계속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오시는 그날 이런 자들은 마치 산마다 새 포도주가 넘쳐흐르는 것처럼 기쁨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산에 새 포도주가 넘친다는 것은 기쁨이 차고 넘친다는 뜻입니다.

 

②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 나와서 싯딤 골짜기에 대리라(18절)

 

 싯딤 골짜기는 아카시아 나무가 많은 골짜기인데, 이곳은 우기에만 비가 오고 평소에는 사막처럼 메마른 곳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성전에서 샘이 흘러서 이 싯딤 골짜기가 물이 풍부한 비옥한 토지가 됩니다. 역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날에 생명의 기쁨이 가득 넘치리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③ 유다는 영원히 있겠고 예루살렘은 대대에 있으리로다(20절)

 

 유다와 예루살렘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사는 자가 될 것입니다. 다시는 죽음도 질병도 없는 영광의 나라에서 영원히 즐거움을 누리며 사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2) 악인에게 내려질 심판(19, 21절)

 

 그러나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고 끝내 자기 방식대로 살기를 고집한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됩니다. 본문의 애굽과 에돔은 요한계시록의 바벨론처럼 죄악에 빠진 세상을 나타냅니다. 주님이 오시는 날까지 주님을 믿기를 거부하고 자기 고집대로 산 자들은 생명책에 그들이 죄가 낱낱이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아 영원히 멸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 기도제목

 

1. 주께서 다시 오실 날을 기다리며 사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2. 주님과 항상 교제하고,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며 그날을 기다리게 하옵소서.

3.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래서 그날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https://cafe.daum.net/qtchurch/VDtu/4?svc=cafeapi

 


 

구약성경의 소선지서 중 한 권인 ‘요엘’서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엘서가 언제 기록되었는가 하는 것은 지금까지도 의견이 분분 합니다.

 

어떤 이들은 유다 왕 요아스가 다스렸던 기간인 B.C. 830년경에 기록되었다고 보고, 또 어떤 이들은 그보다 약 400년 뒤인 B.C. 400년경에 기록된 책으로 보기도 합니다. 이 두 가지 의견 중 대다수의 성경학자들은 본서가 B.C. 800 년 전후로 기록된 책으로 보는 견해를 택하고 있습니다.


요엘서의 주제는 여호와께서 심판하실 날이 임박했음을 선포하며, 메뚜기 재앙을 통해 백성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경고하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은 주님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잘못된 죄의 길로 돌아설 때 재앙을 통해 징계 혹 경책 하십니다. 또한 하나님은 주의 백성이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오면 언제나 용서해 주시고 그들을 축복해 주십니다. 요엘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부분(1:1~2:17)은 메뚜기 재앙으로 인한 피해와 참상을 언급하며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하는 내용이고, 두 번째 부분(2:18~3:21)은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회개하게 될 때 누리게 될 축복과 원수들로부터 구원 받게 될 내용, 또한 그 후 원수들과 택함 받은 백성에게 내릴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요엘서에는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다’는 표현이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이를 통해 요엘서는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왔으니, 이스라엘 백성들아 회개하라”는 주제를 선명하게 전달하고 있습니다.

 


요엘서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이 바로 ‘메뚜기 재앙’ 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성경 속 메뚜기 재앙 스토리는 하나님께 모세를 통해 애굽에게 내리신 열 가지 재앙 중 8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입니다. 그와 같은 메뚜기 재앙은 가나안 땅에서는 여태까지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애굽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책망하시고 징계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메뚜기 재앙’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서 발생한 메뚜기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애굽의 열 가지 재앙을 떠올리게 함으로써 그들의 죄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에 이르렀는지 깨닫게 하며, 동시에 두려움을 통해 죄를 회개하게 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메뚜기 재앙은 실제로 이스라엘에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며, 동시에 메뚜기 재앙은 미래에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이방 군대의 침략 행위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사사기를 보면 적군의 많음을 ‘메뚜기의 중다함 같다’고 표현한 기록이 있습니다(삿 7:12). 즉 선지자 요엘은 현재 남 유다가 당하고 있는 메뚜기 재앙의 의미를 백성들에게 선포하며, 동시에 그들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미래 이스라엘에 쳐들어 올 수많은 적군들로 인한 큰 재앙을 이중 예언했던 것입니다.


자, 이제 본격적으로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봅시다.

요엘서 1장은 갑자기 불어 닥친 메뚜기 재앙으로 인해 이스라엘 땅이 황폐하게 된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요엘은 백성들에게 이런 재앙을 살아 생전에 경험해 본적이 있냐고 묻고 있습니다. 2절입니다. “(욜 1:2) 늙은 자들아 너희는 이것을 들을지어다 땅의 모든 거민아 너희는 귀를 기울일지어다 너희의 날에나 너희 열조의 날에 이런 일이 있었느냐” 성경학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연도를 대략 B.C. 1440년경으로 추측 합니다. 오늘 본문이 B.C. 830년경에 기록된 것이니 출애굽 이후 대략 600년 정도 지난 시기 입니다. 따라서 애굽에서 메뚜기 재앙을 경험한 세대는 이미 오래 전에 다 죽었습니다. 그 이후 가나안 땅에서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메뚜기 재앙이 일어난 것이죠. 요엘은 노인들과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런 재앙을 이전에 경험해 본 적이 있는지 물어보고 있습니다. 그 누구도 살아 생전 한 번도 경험해 본 일 없는 끔찍하고 무서운 재앙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메뚜기 재앙을 이스라엘 자손 대대로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절입니다. “(욜 1:3)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메뚜기 사건을 이스라엘 후손들이 잊지 않도록 전하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이 재앙이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죄를 징계하고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심판으로서의 재앙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후손들이 메뚜기 재앙 이야기를 통해서 죄를 지었을 때 얼마나 극심한 고통이 그들의 삶에 찾아올 수 있는지 경고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 후손들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은 우상을 섬기는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아가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후대에도 메뚜기 재앙이 주는 의미를 잊지 말게 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은 오늘 이 시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을 버리고 죄를 짓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큰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회복과 구원의 축복을 베풀어 주십니다.


4절을 보면 ‘팟종이’, ‘메뚜기’, ‘늣’, ‘황충’ 이렇게 네 가지 다른 곤충의 이름이 쓰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히브리어로 보면 사실 이 네 가지 모두 메뚜기 종류의 곤충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메뚜기라고 하지 않고 네 가지 다른 이름을 다 쓴 것일까요? 그것은 메뚜기 재앙이 시간 간격을 두고 점진적으로 임하였음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즉 메뚜기 재앙은 한 차례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러 차례 거듭 반복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죄와 함께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한 번만 경고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을 위하여 계속해서 징계하시고 경고하십니다. 수차례의 메뚜기 재앙이 왔듯이 하나님은 죄 가운데 살아가려고 하는 자들의 삶을 계속해서 징계하시며, 그들이 하나님께 속히 돌아오기를 경고하십니다.


5절 말씀을 함께 보겠습니다. “(욜 1:5) 무릇 취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울지어다 포도주를 마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이는 단 포도주가 너희 입에서 끊어졌음이니” 여기서 말하는 ‘취하는 자들’은 실제로 술에 취한 자들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죄악에 빠져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단 포도주’는 세상의 달콤함 유혹을 의미합니다. 선지자 요엘은 백성들에게 이제 세상의 모든 죄악을 끊어버리고, 그들에게 닥친 재앙을 보며 눈물로 회개하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6절은 메뚜기 떼는 그 숫자가 많고 어떤 종류의 물건도 다 부수어 삼켜 버릴 정도로 그 파괴력이 컸습니다. 6-7절을 봅시다. “(욜 1:6) 한 이족이 내 땅에 올라왔음이로다 그들은 강하고 무수하며 그 이는 사자의 이 같고 그 어금니는 암사자의 어금니 같도다 (욜 1:7) 그들이 내 포도나무를 멸하며 내 무화과나무를 긁어 말갛게 벗겨서 버리니 그 모든 가지가 하얗게 되었도다” 선지자 요엘은 이스라엘에 내린 메뚜기들은 그 숫자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무엇이든지 갉아먹는 메뚜기의 세력이 어찌나 강력했던지 사자의 이 같다고 했습니다. 메뚜기 떼가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가릴 것 없이 다 갉아먹은 결과 이스라엘에 있는 나뭇가지가 껍질이 벗겨지고 다 하얗게 변할 정도였습니다.


선지자 요엘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계를 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라 말했습니다. 8절입니다. “(욜 1:8) 너희는 애곡하기를 처녀가 어렸을 때에 약혼한 남편을 인하여 굵은 베로 동이고 애곡함 같이 할지어다” 요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들이 마치 약혼자가 사망하여 슬픔에 빠진 처녀 같이 슬퍼하고 눈물을 흘리라 말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신랑 되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버렸고, 그로 인해 자신들이 큰 고통에 빠졌음을 깨닫고 슬퍼하며 통곡하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요엘 선지자는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도 슬퍼하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메뚜기 떼가 와서 다 먹어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께 제사로 바칠 제물이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9절에 나오는 ‘소제’는 매일 하나님께 드리는 곡식제사를 의미하고, ‘전제’는 제단에 음료를 부어 드리는 제사를 말합니다. 이 두 제사 즉 ‘소제’와 ‘전제’ 때 사용해야할 곡식이나 음료가 메뚜기 떼로 인해 다 사라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밭이 황무하게 되어 농부들은 밭의 소산과 밀과 보리가 없고, 포도원을 운영하는 자들의 포도주는 말랐습니다. 나무란 나무들도 메뚜기 떼가 다 갉아먹음으로 열매 하나 없이 모두 시들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해 국가적으로 큰 재앙이 임했음으로 제사장들이 먼저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 굵은 배를 입고 크게 슬퍼하며 회개 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13절입니다. “(욜 1:13) 제사장들아 너희는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지어다 단에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곡할지어다 내 하나님께 수종드는 자들아 너희는 와서 굵은 베를 입고 밤이 맞도록 누울지어다 이는 소제와 전제를 너희 하나님의 전에 드리지 못함이라” 물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들 가운데는 이 메뚜기 재앙이 올만큼 하나님을 떠나 죄악을 지으며 산 사람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책임이 있기에 민족의 죄악으로 인해 크게 울며 백성들을 대신하여 회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이웃의 죄를 보고 가슴 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가는 영혼들을 보며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타락해 가는 내 민족과 국가를 위해 무릎 꿇고 하나님께 크게 울며 대신 회개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도 명령하셨습니다. 14절입니다. “(욜 1:14) 너희는 금식일을 정하고 성회를 선포하여 장로들과 이 땅 모든 거민을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전으로 몰수히 모으고 여호와께 부르짖을지어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이스라엘의 리더들부터 백성들까지 모두 성전으로 한 자리에 모여 거룩한 모임을 선포하고 함께 여호와께 부르짖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분노케 한 죄로 인해 어려운 재앙 당했음을 인정하고, 그들의 죄를 회개하는 마음으로 금식하며, 하나님께 사죄와 구원의 은혜를 구하며, 합심하여 기도할 것을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함께 모여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우리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만일 우리 가정에 어려움이 있는 경우, 가족 구성원이 다 함께 한 자리에 모여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가 어려운 경우, 온 교회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문제 해결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족이 위기에 처한 경우, 온 나라가 함께 모여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며 마음 모아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엘은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왔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날’이란, 온 세상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날입니다. 15절입니다. “(욜 1:15) 오호라 그 날이여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나니 곧 멸망 같이 전능자에게로서 이르리로다” 죄악으로 가득 찬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택하신 이방민족의 군대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되는 날 입니다. 또한 이를 종말론적으로 해석하면 마지막 때에 예수 그리스도 재림하시는 날, 곧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나라와 모든 민족의 죄를 심판하시는 날입니다. 요엘은 이와 같이 두렵고 떨리는 심판의 날이 가까이 왔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해 멸망할 날이 멀지 않았으니, 어서 그들의 빨리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라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또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날이 멀지 않았으니,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왔음을 깨닫고 주님 맞을 준비를 충실히 하라는 말씀입니다.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지금 당장이라도 주님께서 다시 오실 수 있다는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선지자 요엘은 16절부터 여호와의 날이 얼마나 두려운 날인지 묘사했습니다. 그 날은 식물을 끊어진 날입니다. 즉 먹을 것이 없음으로 생존이 어려워진 날입니다. 인간의 기쁨과 즐거움이 끊어진 날입니다. 곡식창고는 비웠고, 논밭의 곡식은 시들어버린 날입니다. 가축들도 먹을 여물이 없어 탄식하고, 양떼도 먹을 풀이 없고 피곤한 날입니다. 19-20절에서 선지자 요엘도 이 극심한 심판으로 인해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구하며 부르짖고 있습니다. “(욜 1:19)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불이 거친 들의 풀을 살랐고 불꽃이 밭의 모든 나무를 살랐음이니이다 (욜 1:20) 들짐승도 주를 향하여 헐떡거리오니 시내가 다 말랐고 들의 풀이 불에 탔음이니이다” 선지자 요엘은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오 주여, 내가 주께 부르짖습니다. 모든 풀밭들이 뜨거운 불볕에 다 타 버렸고, 들판의 모든 나무들도 이글거리는 햇볕에 전부 타 버렸습니다. 모든 들짐승들도 숨을 헐떡이며 주님을 애타게 찾고 있으니, 뜨거운 태양의 열기 아래 시냇물마다 다 말라 버렸고, 들판의 풀들도 다 타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요엘의 기도를 통해 메뚜기 재앙으로 인해 얼마나 극심한 고통과 고난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찾아왔는지 볼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에 먹을 것, 마실 것이 다 사라졌습니다. 들판의 풀도, 논밭의 식물도, 시냇물도 다 없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섬기며 살아간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으로 인한 크고 두려운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우리는 요엘서를 읽을 때마다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가를 가슴에 새겨야 합니다. 세상 죄악에 빠져 살아가며 주님을 무시하고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실 고통과 고난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나중에 요엘서 후편에서 보겠습니다만,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자를 위해 베풀어 주시는 주님의 크신 은총은 또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시기에 그들이 죄악에서 떠나 다시 그들의 신랑 되시는, 남편 되시는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메뚜기 재앙을 통해 징계하셨습니다. 안타깝게도 역사를 보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택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 부리며 우상을 선택함으로 멸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하나님을 떠난 죄악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 것인지 가슴에 되새겨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들은 하나님을 버린 이스라엘의 악하고 미련한 선택을 반면교사 삼아 우리 안에 있는 죄들을 철저하게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혹시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메뚜기 재앙처럼 삶 가운데 무시무시한 재앙이 펼쳐지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아직 소망이 있습니다. 언제라도 우리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면 주님은 이 재앙 속에서도 다시 회복시켜, 우리를 치유하시고 일으켜 세워 주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과 태도입니다. 우리 모두가 세상의 죄악을 뒤로하고, 하나님 아버지 한 분만 신실하게 섬기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주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1.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오늘 세 본문 말씀은 하나님 나라(여호와의 날, 주의 날)에 관한 말씀입니다. 먼저 구약 요엘서를 통하여 ‘여호와의 날’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는데, 이것은 놀랍게도 심판과 관계됩니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서신서인 데살로니가 전서를 통해서 ‘주의 날’이 올 때까지 믿는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잘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서 말씀을 통해서 주의 날이 올 때까지 덕을 세운 데살로니가 교인들과 같은 이들을 등경 위에 놓인 등불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들은 겨자씨와 같죠? 결국 예수님께서는 겨자씨 한 알과 같은 하나님 나라를 소개해 주십니다. 이렇게 심판의 날이자, 구원의 날인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고, 성령과 함께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먼저 구약의 말씀인 요엘서를 볼까요? 요엘서는 크게 두 단락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1~2장인 첫째 단락은 메뚜기 재앙과 가뭄을 다루고, 3~4장인 둘째 단락에서는 재앙과 가뭄이 여호와의 날이 임박했다는 증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략한 말씀이지만, 여호와의 날, 곧 하나님 나라의 핵심에 관한 결정적인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서 요엘이 말하는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대적한 이스라엘 백성과 또한 열방에 대한 심판의 날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날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신실한 자들에게는 장차 복이 주어질 것이라고도 예언합니다. 말씀의 배경을 먼저 살펴볼까요?



통일 이스라엘 왕국이 남과 북 왕국으로 분열(기원전 930년)된 지 약 100여 년이 지난 시기입니다. 남 유다와 북이스라엘 두 왕국 사이의 정치적 갈등은 거의 해소되었으나, 종교적으로는 두 왕국 모두 정치적, 종교적으로 부패와 반역의 역사를 거듭하던 시기였습니다(물론 신학적으로 요엘의 배경을 바벨론 포로 이후의 상황으로 보기도 합니다만). 이런 시기에 남 유다 땅에는 엄청난 ‘메뚜기 재앙과 가뭄’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바벨론 포로 이후의 상황이나 마찬가지죠? 물론 지금 코로나 팬데믹의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도 같습니다.



아무튼 이를 계기로 요엘 선지자는, 뜻하지 않은 이 엄청난 재앙의 원인을 찾아냅니다. 곧 남 유다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하나님의 일차 징계이며 나아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남유다 왕국의 멸망을 초래할 무서운 ‘여호와의 날’이 임할 것이라 선포합니다. 지금 임한 메뚜기 재앙과 가뭄은 심판에 대한 경고로, 하나님을 떠난 유다 백성들에게 주신 심판의 예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엘은 회개를 촉구하는 메시지를 선포하게 됩니다.



물론 요엘은 희망적인 말씀도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회복하는 은혜도 주시는데, 그 회복의 날이 되면 하나님은 대적들을 쳐부수고 신실한 자들에게 비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실 것이라고 합니다. 곧 요엘서 1장에서 메뚜기 재앙을 선포하며 회개를 촉구한 요엘이 이제 메뚜기 떼의 습격을 침략군의 침공에 비유합니다만, 만약 유다 백성들이 신속하게 마음을 찢고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주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욜 2:12-14).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은 거기까지 말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심판의 경고까지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거룩한 산에서 경고의 소리를 질러 이 땅 주민들로 다 떨게 할지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짙은 구름이 덮인 날이라.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와 같은 것이 옛날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대대에 없으리로다.”(욜 2:1-2)
그렇습니다. 여호와의 날은 이렇게 심판의 날로 다가옵니다. 그리고 요엘은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인 메뚜기 떼의 습격을 침략군의 침공으로도 동시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불이 그들의 앞을 사르며 불꽃이 그들의 뒤를 태우니, 그들의 예전의 땅은 에덴동산 같았으나, 그들의 나중의 땅은 황폐한 들 같으니, 그것을 피한 자가 없도다. 그의 모양은 말 같고 그 달리는 것은 기병 같으며 그들이 산꼭대기에서 뛰는 소리는 병거 소리와도 같고 불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도 같으며 강한 군사가 줄을 벌이고 싸우는 것 같으니, 그 앞에서 백성들이 질리고, 무리의 낯빛이 하얘졌도다.”(욜 2:3-6)



이렇게 하나님께서 보내신 많고 강한 백성들, 곧 메뚜기 떼들이 침략군처럼 자기의 길로 나아가며 심판을 진행합니다. 들판의 거대한 메뚜기 떼, 우리 부산과 같은 해안가로 치면, 거대한 해일이 몰려드는 그런 모습입니다. 물론 이것은 적의 침략이기도 합니다. 예루살렘 성과 백성들의 집에 메뚜기 떼, 곧 적들이 쳐들어옵니다. 말씀을 볼까요?


“그들이 용사 같이 달리며 무사 같이 성을 기어오르며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되 그 줄을 이탈하지 아니하며 피차에 부딪히지 아니하고 각기 자기의 길로 나아가며 무기를 돌파하고 나아가나 상하지 아니하며 성 중에 뛰어 들어가며 성 위에 달리며 집에 기어오르며 도둑같이 창으로 들어가니, 그 앞에서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떨며 해와 달이 캄캄하며 별들이 빛을 거두도다.” (욜 2:7-10)


메뚜기 떼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떨고 해와 달과 별이 빛을 잃었다고 합니다. 놀랍습니다. 여호와의 날, 곧 심판의 날이 이렇게 두렵습니다. 마지막으로 요엘은 이렇게 묻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군대 앞에서 소리를 지르시고 그의 진영은 심히 크고 그의 명령을 행하는 자는 강하니,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이랴?(욜 2:11)” 아무도 하나님의 이 심판을 막을 수 없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심판의 날인 여호와의 날이 도둑같이 임할 것입니다. 요엘도 ‘도둑같이 창으로 들어가니’라고 말하고 있죠? 사도 바울도 요엘과 비슷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서신서 말씀을 볼까요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알기 때문이라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1-3)



요엘서와 같이 주의 날이 갑자기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산모의 해산 날처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엘서 본문 말씀과 달리 데살로니가 전서는 구원의 말씀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계속 말씀을 볼까요?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자는 자들은 밤에 자고 취하는 자들은 밤에 취하되,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4-8)

깨어 정신 차리라고 합니다.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구원의 소망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날은 우리를 심판하시기 위한 날이 아니라, 구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 전서는 바울의 13 서신 가운데 제일 먼저 기록된 서신서입니다. 또한 신약성서 전체 중에서도 가장 먼저 쓰였습니다. 분량이 작고 내용은 단순하지만, ‘재림 서신’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는 아주 중요한 서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혼란한 지식을 바로 잡아주기 위해 본 서신을 기록하였습니다. 말씀의 배경을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 여행 중에 고린도에 머물고 있었을 때였습니다. 이때 디모데로부터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전해 듣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의 선교팀이 빌립보 교회를 개척한 이후, 데살로니가에 세이레, 곧 세 주간 머물면서 전도하여 개척한 교회였습니다(행 17:1-4). 마케도니아 지방의 수도로 로마의 정치적, 경제적 요충지였던 데살로니가에 세운 데살로니가 교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살전 1:3)로 가득한 교회였습니다.


이렇게 신앙이 좋았던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 문제, 곧 종말론에 관심이 있어서 디모데를 통하여 바울에게 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당시 교회의 관심사였던 이 문제에 관해 데살로니가 전, 후서를 통해 잘 설명해주었습니다. 특별히 오늘 본문 말씀은 주의 재림시기에 관한 말씀입니다. 주께서 갑작스레 임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빛의 아들들에게는 그날이 갑작스러울 수 없음을 설명하면서 위로를 합니다. 따라서 깨어 근신하면서 주의 재림을 소망할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살전 5:9-11)



중요한 말씀이 나오죠? 주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권면하고 ‘덕을 세우라(집을 세운다는 의미)’고 하는데, 지금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하고 있는 그대로 하라고 합니다. 아주 큰 칭찬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잘하고 있다. 그러니 지금 하는 대로 서로 덕을 세우고 도둑같이 임할 주의 날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등경 위의 등불과 같이 모범이 되는 교인들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등불의 비유가 바로 이러한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모습입니다. 복음서 말씀을 볼까요? 번역도 어렵고, 말도 옛날 말이라 공동번역으로 보겠습니다.




3.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예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등불을 가져다가 됫박 아래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놓지 않느냐? 감추어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막 4:21-23)


계속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막 4:24-25)
종말의 때까지 어떻게 하라고 하시나요? 스스로 삼가라고 합니다. 헤아리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자기 절제와 이웃 사랑입니다. 이것이 겨자씨와 같은 신앙입니다. 따라서 심판의 날인 여호와의 날이자 구원의 날인 주의 날, 곧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입니다.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막 4:30-32)

사실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의 진리를 비유로 가르치셨기에 오늘 복음서 마가복음 4장을 ‘비유장’이라고 합니다. 먼저 씨뿌리는 자의 비유가 나옵니다(막 4:1-9).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의 앞부분인 ‘등불의 비유(막 4:21-25)’가 나오죠? 그리고 성장하는 씨앗의 비유와 겨자씨 비유가 나옵니다(막 4:26-32).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풍랑을 잔잔케 하신 내용이 나옵니다(막 4:35-41). 등불의 비유, 겨자씨 비유는 앞에서 살펴보았으니, 씨앗의 비유를 볼까요?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막 4:26-29)



중요한 말씀이죠? 씨앗이 스스로 자랍니다. 자라서 추수 때를 알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도 구체적인 시기와 날짜는 알 수 없지만, 열매가 익으면 추수 때가 가까운 것을 아는 r서처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 마음 밭에 뿌려져 잘 자라서 데살로니가 교인들처럼 평상시 하던 대로, 서로 권면하고 덕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이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비유는 이해하기 쉽습니다. 말씀을 볼까요?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막 4:33-3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쉽습니다. 등경 위의 등불처럼 우리의 선한 빛이 하나님 나라가 임할 때까지 세상을 비춰야 합니다. 스스로 삼가고, 다른 사람을 헤아려야 합니다. 겨자씨와 같이 작은 것이지만,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믿음이 성장하여 씨앗이 자라듯이 잘 자라, 풍성한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요엘이 경고한 여호와의 날, 곧 심판의 날이 도둑같이 임하는 주의 날, 곧 구원의 날,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런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최병학 목사(남부산용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