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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마태복음 25장 - 종말론적 비유 3가지

by 은총가득 2021. 8. 23.

 

마태복음 25장 - 종말론적 비유 3가지

 

(마 24장)은 예루사렘 멸망과 종말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 25장)에는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에 대해서 세 가지 비유를 통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 비유, 즉 10처녀 비유, 달란트 비유, 양과 염소의 비유는 서로 다른 방법으로 종말을 사는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 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10처녀 비유는 무엇을 설명하고 있을까요? 이 비유의 핵심은 (마 25:13)에 있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

 

주님은 10처녀 비유를 하신 후에 13절에서 그 결론을 맺으셨습니다. 이 비유는 성도들이 말세에 깨어있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하기 위해서 주어진 비유였습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통해서 그 날(재림의 날)과 그 시(재림 시간)를 알지 못하는 성도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본문에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는 것은 신랑과 함께 축하행렬에 참석하기 위해 철저하게 준비한(기름을 준비한) 다섯 처녀의 슬기로움입니다. 지혜는 재림이 지연되는 말세 때에 성도들이 가져야 태도입니다. 주님의 재림은 생각한 것보다 많이 지연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성도들은 주님의 이를 미리 알고 충분한 대비를 할 것입니다. 지혜로운 성도들은 재림이 늦어지는  영적 암흑기에도 끝까지 인내할 수 있도록 충분한 대비를 할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지혜와 성령충만을 구할 것이며, 영적인 잠을 자지 않도록 깨어 있으려 할 것입니다.

 

 

10처녀 비유(마 25:1-13)

 

 

* 천국은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간 10처녀와 같으니....
  "그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1), 그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2).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3), 슬기 있는 자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더니(마 25:1-4)...."

 

  주님은 마지막 때에 천국이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처녀 중에서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로운 여인이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는 신랑과 함께 축하행렬에 참여하기 위해서 등은 가지고 갔지만, 감람유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과 함께 등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 충분한 기름을 그릇에 담아 가져갔습니다. 주님 당시에 여자들은 연령이 많지 않은 때(10대 중반)에 결혼을 했습니다. 유대인의 결혼 식은 주로 저녁에 열렸는데, 연회 중에 축하의 의미로 횃불을 켰습니다. 이 행사의 절정은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신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이었습니다. 신랑은 장인이나 장모에게 가서 신부를 위해 지참금을 지불하고 결혼 약정서에 서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신랑은 단장하고 기다리는 신부에게 가서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때에 신부 집에서는 열 처녀로 구성된 들러리들이 그 일을 돕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이 열 명의 들러리들은 일반적으로 신부 또래의 절친한 처녀 친구들로 구성되었습니다.

 

 

* 신랑이 생각보다 늦게 도착함

  "신랑이 더디 오므로 다 졸며 잘쌔(5), 밤중에 소리가 나되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 하매(마 25:5-6)...."

 

  그런데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오는 일이 생각보다 크게 지연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신부와 들러리들은 신랑을 기다리다가 깜박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신랑이 늦는 일은 주로 신부 지참금에 관한 합의 문제로 인해 발생했습니다. 우리 나라에도 종종 신부 집에 함을 가져 갈 때에, 신랑 친구들이 신부 집 앞에서 실랑이를 벌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유대인의 경우에도 신부 지참금을 결정하는 일이 오래 걸리거나, 때로는 지루한 논쟁을 계속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신랑은 신부 지참금 문제를 해결해야만 결혼 약정서에 서명하고, 신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 신부 집에서는 보통 열 처녀로 구성된 들러리들이 신부의 몸치장을 도우면서 신랑을 맞을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신랑이 오는 일이 오래 지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부와 열 처녀 들러리들은 신랑을 가다리다가 지쳐서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다가 한 밤 중에 갑자기 신랑이 신부가 있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신랑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은 열 처녀 들러리들은 급히 일어나서 신부와 함께 신랑을 영접했습니다.

 

 

* 기름을 준비한 처녀와 준비하지 못한 처녀

  "이에 그 처녀들이 다 일어나 등을 준비할쌔(7),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8),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마 25:7-9)...."

 

  일반적으로 열 처녀 들러리들은 신랑 신부와 함께 신랑의 집으로 가는 축하 행렬에 참석했습니다. 그런데 그 처녀 들러리들이 축하 행렬에 참석하기 위해서는 신랑 집으로 갈 때까지 불을 밝힐 횃불이 필요했습니다. 보통 이 횃불은 막대기에 솜(헝겊이나 천)을 묶고, 그 솜에 감람유를 묻혀서 불을 붙여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횃불은 약 15분 간격으로 감람유를 공급해야 계속해서 불을 밝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처녀 들러리들이 신랑의 집으로 갈 때까지 불을 밝히려면 충분한 감람유를 준비해야만 했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이 일을 예상하고 충분한 감람유를 준비했습니다. 그러나 미련한 다섯 처녀는 이 일을 예상하지 못하고 등만 가져오고, 불을 밝히는 데 필요한 감람유를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축하 행렬을 나서다가 자기의 등불이 꺼져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그때서야 자신들이 기름을 준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크게 당황하여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에게 기름을 나눠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나누어 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가진 기름을 나누어 주면, 자기들도 중간에 기름이 떨어져서 불을 붉힐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차라리 빨리 가서 기름을 파는 자들에게 기름을 사라고 권고했습니다. 이로 인해 기름을 준비하지 못한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구하기 위해 기름을 파는 사람들을 찾아 돌아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신랑과 함께 축하 행렬에 참석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축하행렬이 시작되었고, 신랑은 신부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출발했습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열 처녀 중에 다섯은 미련했고, 다섯은 슬기로웠습니다. 신부의 들러리인 열 처녀들은 신부와 함께 신랑의 집으로 가기 위해서 등이 필요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등은 준비했지만,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등과 함께 충분한 기름을 준비해서 가져갔습니다. 신랑이 오는 일이 예상보다 많이 늦어지게 되자, 신랑을 기다리던 신부와 들러리들은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마침내  한밤 중에 신랑이 도착했습니다. 신부와 열 처녀들은 급히 일어나서 신라을 맞기 위해서 등을 준비했습니다. 그때에 미련한 자들은 등이 꺼져가는 것을 보고, 슬기로운 자들에게 기름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슬기로운 자들은 같이 쓰기에는 기름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기름 파는 자들에게 가서 필요한 기름을 사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은 신부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갔습니다.

 

 

* 문이 닫혀버림

  "저희가 사러 간 동안에 신랑이 오므로 예비하였던 자들은 함께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힌지라(마 25:10)."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사기 위해서 급히 시장을 돌아다녔습니다. 마침내 그들은 기름을 파는 사람을 만나서 필요한 기름을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에 이미 신랑은 신부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가고 말았습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신부와 함께 그 축하 행렬에 참여했습니다. 마침내 축하 행렬은 신랑의 집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축하객들은 신랑의 집으로 들어갔으며, 그 집의 문이 닫히고 말았습니다.

 

대부분 신랑의 집에서는 7일 동안 결혼 잔치가 계속되었습니다. 이 잔치에 참석하는 사람들은 신부를 데려오는 축하 행렬에 참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늦게 기름을 준비하여 허겁지겁 신랑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싱란 집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문이 닫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신랑 집 사람들은 혼인 잔치가 방해를 받지 않도록 문을 굳게 닫았습니다. 이와 같이 마지막 날에도 천국 문은 굳게 닫히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을 믿고 기다려 온 사람들은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주님을 믿지 않던 사람들에게는 천국 문이 굳게 닫히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미련한 다섯 처녀들처럼 주님을 믿지 않은 일을 후회하면서 문 밖에서 울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리 후회를 해도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는 못할 것입니다.

 

 

* 내가 너희를 알지못하노라!

  "그 후에 남은 처녀들이 와서 가로되 주여 주여 우리에게 열어 주소서!(11) 대답하여 가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 하였느니라(마 25:11-12)."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늦게 신랑의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신랑의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면서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결혼 관례에 따르면 결혼식 행진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은 결혼 잔치에 참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축제와 노래와 춤, 그리고 결혼 축하 예식에 참석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결혼식의 꽃이라고 부르는 예식, 즉 신부가 신랑이 준비한 혼례용 차양 밑으로 들어가는 것도 보지 못했습니다. 기름을 준비하지 못해서 신부의 명예를 실추시킨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7일간 계속되는 연회에 들어가는 일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때에 신랑은 미련한 다섯 처녀들을 보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한다!" 신랑이 신부의 집에 도착했을 때에 미련한 다섯 처녀들은 기름을 사기 위해서 시장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므로 신랑은 그 다섯 처녀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신랑은 그 다섯 처녀들을 알지 못했고 이로 인해 그녀들을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마지막 날에 주님의 재림을 기다려 온 슬기로운 성도들은 안전이 보장될 것입니다. 슬기로운 자들은 주님의 잔치에 들어가서 즐거움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그 곳에서 함께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마지막에 있을 주님과 교회의 결혼 잔치에는 기쁨과 평강, 그리고 온전한 즐거움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은 영원하고 완전해서 어느 누구도 그 기쁨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다시는 슬퍼하거나, 질병에 걸리거나, 또 눈물을 흘리는 일이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이러한 기쁨에서 제외될 것입니다. 그들은 재림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고, 또 재림을 준비하라는 메시지를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을 믿기를 거부했으며, 또 주님을 영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마지막 때에 주님으로부터 외면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곳에서 슬퍼하며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 그런즉 깨어 있으라!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주님은 이 비유를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 이 비유는 주님의 재림이 생각보다 크게 늦어질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의 날과 시간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때를 대비해서 충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주님은 재림을 대비하는 지혜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재림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오래 지연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때를 위해서 충분히 준비하지 않으면 영적인 잠에 빠지고 크게 당황하게 될 것입니다. 말세를 대비할 줄 모르는 미련한 사람들은 재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재림을 기다리지 않고, 정욕과 쾌락을 좆아 시간과 정력 낭비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정욕이 이끄는대로 살면서 세상의 쾌락과 즐거움을 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이 지연될 것을 미리 알고 대비할 것입니다.  

 

그들은 그 때를 위해서 영적으로 깨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읽으면서 주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주님의 뜻을 행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인 잠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 깨어 기도하며 성령 충만을 구할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으로 어두워 가는 세상에서 끝까지 인내할 것입니다. 그들은 믿음을 무너뜨리는 모든 방해 세력을 성령의 능력으로 물리치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해 주신 여러 가지 징조들을 통해서 재림의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분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10처녀 비유는 이와 같이 재림의 지연으로 인해 일어날 불신과 나태를 경계하기 위해서 주신 비유였습니다. 주님은 성도들이 오랫 동안 지연 될 재림을 대비할 수 있도록 이 비유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메시지는 주님의 재림을 거부하거나 잊고 살기 쉬운 오늘날의 교회에 매우 필요한 메시지입니다.

 

 

 

달란트 비유(1) (마 25:14-23)

 

 (마 25장)에는 말세 때에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지를 설명하는 세 가지 비유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앞에서 그 비유들 중에서 첫 번째 비유인 10처녀 비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10처녀 비유는 재림의 날을 알지 못하는 성도들이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비유는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재림을 준비하는 지혜의 필요성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재림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오래 지연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낙심하거나 좌절에 빠져서 영적인 잠을 자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성도들은 영적으로 잠들지 않도록 영적으로 각성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종말을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께 지혜와 성령충만을 구해야 하며,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10처녀 비유에 이어서 나오는 두 번째 비유인 달란트 비유에는 10처녀 대신에 주인을 기다리는 3명의 종들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10처녀가 늦게 오는 신랑을 기다리듯이, 이 비유에서 3명의 종들은 먼 곳에 간 주인을 기다리며 맡겨진 일에 충성해야 했습니다. 이 비유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게으르지 말고, 하나님 나라와 복음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충성해야 할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 맡겨진 돈과, 돈 맡은 종들의 반응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14),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15),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16),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17),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마 25:14-18)...."

 

  주님은 천국은 한 사람이 타국으로 떠나면서 그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긴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인은 특별한 일로 일정한 기간 동안 집을 떠나 다른 나라로 가야 했습니다. 그는 타국으로 떠나면서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여행 계획을 밝히고, 현금화 할 수 있는 재산을 정리해서 종들에게 나누어 맡겼습니다. 주인의 재산은 전부 "금 여덟 달란트"에 해당했습니다. 그 주인은 종들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 능력에 맞게 돈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달란트"(talent)라는 말은 오늘날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리키는 말로 종종 사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이 "예술가의 달란트를 가졌다"는 말은, 그가 예술가로서의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에 기록된 "달란트"는 돈을 가리키는 일종의 화폐 단위였습니다. 은으로 된 한 달란트는 당시에 6000드라크마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한 드라크마는 일반 노동자의 하루 임금에 해당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은 한 달란트는 일반 노동자가 20년 일해야 벌 수 있는 금액이었습니다. 또한 본문에 나온 금 한 달란트는 은 한 달란트의 15배의 가치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본문에서 주인이 종들에게 맡긴 돈은 당시에 매우 큰 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주인은 자기 종들이 맡겨진 재산을 잘 관리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자기 재산을 종들에게 맡겼습니다. 그는 종들이 자기 돈을 잘 관리해서 재산을 증식시켜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 주인은 후에 돌아와서 종들의 노고를 치하하면서 그들과 함께 즐거움을 나누려고 생각했습니다. 그 주인은 첫 번째 종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주었고, 두 번째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주었으며, 세 번째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아마도 당시의 관습에 따라 주인과 돈을 맡은 종들 간에는 적절한 계약서가 만들어졌을 것입니다. 주인은 그 종들의 노력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해주기로 약속을 했을 것입니다. 이로 인해 종들은 일종의 동업을 통한 이익 배당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종은 다섯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하여 열 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 두 번째 종도 받은 두 달란트를 가지고 장사하여 네 달란트를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충성스러웠고, 신실했으며, 또 지혜로웠습니다. 그러나 세 번째 종은 받은 돈으로 장사하기를 두려워했습니다. 어쩌면 그는 다른 사람보다 적게 받은 것을 인해 자존심이 상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는 주인에 대해 좋지 않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주인을 매우 엄한 사람으로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원금을 잃으면 엄한 주인에게 큰 책망을 받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그는 가만히 앉아서 이익을 얻으려는 주인의 태도에도 불만이 많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열심히 일을 해서 이익을 얻어도 결국 그 돈은 주인의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위험을 무릎쓰고 모험을 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주인에게 받은 돈을 땅에 묻어 버렸습니다. 그는 안전하게 원금을 보관했다가, 그것을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주려고 생각했습니다.

 

 

* 충성되고 신실한 종들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쌔(19),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20).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21),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22).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찌어다 하고(마 25:19-23)..."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마침내 타국으로 갔던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그 주인은 종들에게 맡긴 돈을 결산하기 위해서 종들을 불렀습니다. 주인 앞에서 회계 장부가 펴졌으며, 각 종들은 주인에게 받은 돈에 대해서 보고했습니다. 첫 번째 종은 자신이 받은 다섯 달란트 외에, 장사를 해서 번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왔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다섯 달란트를 받았지만, 열 달란트를 돌려주었습니다. 그는 자신을 신뢰한 주인에 대해 신실함과 충성으로 보답했습니다. 그는 주인에게 아무 대가를 요구하지 않고, 단지 장사를 해서 다섯 달란트를 더 남겼다고만 보고했습니다.

 

 그때에 그 주인은 충성되고 신실한 종을 아낌없이 칭찬하면서 적절한 상급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첫째로 그 주인은 그 종에게 "잘했다"고 칭찬했으며, 둘째로 그 종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셋째로 그 주인은 그 종에게 "많은 것을 맡길 것을 약속했고, 마지막으로 그 종을 만잔에 초대하여 "주인의 기쁨에 참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주인의 식탁에 함께 앉는 것은 주인과 동등한 입장에서 기쁨을 나누는 것을 의미합니다. 두 번째 종 역시 첫 번째 종처럼 자기가 받은 두 달란트 외에 장사를 해서 번 두 달란트를 더 가져왔습니다. 그 종 역시 아무 자랑도 하지 않고, 자신이 장사를 해서 두 달란트를 남겼다고만 보고했습니다. 주인은 두 번째 종에게도 첫 번째 종처럼 크게 칭찬을 했습니다. 그 주인은 그 종을 칭찬했으며,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불러 주었고,그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길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주인은 그 종에게 주인의 잔치에 참석하여 자신과 함께 기쁨을 누리자고 말했습니다.

 

1. 10처녀 비유와 달란트 비유의 내용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말해보자.

2. 주인의 돈을 받은 세 종은 어떻게 반응을 했는가? 우리는 이 세 종 중에서 어느 종에 가까운 지 솔직하게 말해보자.

3. 각 종들에 대한 주님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이러한 주인의 반응과 장차 하늘나라에서 주님이 나타내실 반응이 어떻게 같은 지 말해보자.

 

 

 

 달란트 비유(2) (마 25:24-30)

 

주님은 마지막 때에 천국은 마치 한 주인이 타국으로 가면서 자기의 종들에게 자기 소유를 맡긴 일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주인은 타국으로 떠나기 전에 자기 종들을 불러서, 자기의 재산을 정리해서 맡겼습니다. 그 주인은 각 종들의 능력에 따라 첫째 종에게 금 다섯 달란트, 둘째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셋째 종에게는 금 한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은 바로 가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으며, 두 달란트 받은 종도 장사를 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원금을 잃을 것을 염려하고, 또 자기가 수고해서 번 돈이 주인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땅을 파고 주인이 준 돈을 파묻어 버렸습니다.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장사를 하여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종을 크게 칭찬했습니다. 그 주인은 작은 일에 충성한 종들에게 더 많은 것을 맡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 주인은 신실한 종들을 주인과 함께 잔치 자리에 앉아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였습니다.

 

 

* 게으르고 악한 종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24),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마 25:24-25)."

 

  세 번째 종이 주인과 결산할 차례가 왔습니다. 그 종은 장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땅에 묻었던 원금만을 주인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는 다른 종들처럼 주인의 관대함을 찬양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을 가리켜 완고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주인이 자신들을 신뢰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주인의 책망을 듣지 않으려고 모험을 회피했습니다. 그는 주인이 씨를 뿌리거나 심지 않고 거두는 자, 즉 불로소득을 원하는 자로 알았습니다. 그는 주인이 자기를 시켜서 돈을 벌려고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열심히 일을 할 필요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험을 해가면서까지 돈을 벌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주인이 준 원금만을 땅에 묻었다가 고스란히 주인에게 반납했습니다. 그는 주인이 원금을 잘 보관한 자신을 칭찬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주인이 준 돈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보관한 일을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 주인의 반응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26)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27),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28).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29).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마 25:26-30)."  

 

  그러나 그 주인은 세 번째 종의 말을 듣고 크게 분노했습니다. 그 주인은 그 종을 가리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주인은 그를 도덕적으로 악하고 게으르기 짝이 없는 종으로 간주했습니다. 그 때에 그 주인은 그 종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정말로 내가 불로소득을 원하는 자로 생각했다면, 최소한 원금을 은행에 맡겨서 이자라도 받게 했어야 하지 않는가?" 물론 그 종도 돈을 금융기관에 맡기면 원금과 이자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돈을 빌려주었다가 못받을 것을 염려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자기에게 적은 돈을 맡긴 주인에게 앙갚음을 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렇게 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므로 결국 그는 주인에게 원금만을 가져왔습니다.

 

  그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 변명을 늘어놓는 것을 보고 엄하게 대했습니다.

첫째로 그 주인은 그 종에게 한 마디의 칭찬도 하지 않았으며,

둘째로 그 종을 가리켜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불렀습니다.

셋째로 그 주인은 그 종의 태만과 불충성을 책망했으며,

넷째로 그 종에게 주었던 한 달란트를 빼앗아 다른 사람에게 주었습니다.

 

그 주인은 열심히 일해서 많은 것을 남긴 자는 더 많은 것을 받아 풍족하게 해주었고, 게으르고 나태하여 이익을 남기지 못한 종은 가졌던 것까지 빼앗고 말았습니다. 또한 그 주인은 주인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않는 악하고 게으른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쫓아 버렸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그 종이 주인과의 주종관계가 단절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이 자기 식탁에 앉아서 기쁨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주인은 그 종을 바깥 어두운 곳에 던져서 슬피 울며 미련한 행동을 후회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 달란트 비유의 의미와 결론
  달란트 비유는 주님의 재림 때에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기 위한 비유였습니다. 열 처녀들이 신랑을 기다렸던 것처럼, 이 비유에 나오는 종들도 주인이 없는 동안 주인을 위해서 충성을 다해야 했습니다. 이 비유는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 때까지 받은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그들이 받은 은사와 재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은 신실하고 충성된 종들을 칭찬해 주시고, 더 많은 것을 맡겨 주실 것이며, 주님과 함께 천국의 상속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지 못하고 쾌락을 추구하며 게으르게 살던 사람들은 주님의 책망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완고한 독재자로 생각했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는 일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을 엄히 책망하실 것이며, 그들에게 주었던 것을 빼앗고, 어두운 곳으로 내던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곳에서 슬피 울면서 자기의 어리석은 행동을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비유는 주님 당시에도 적용되는 비유였습니다. 주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한 달란트를 받은 자들과 같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받은 것을 보관하기에만 급급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통해서 이웃 나라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선민의식에 사로 잡혀서 이방 민족들을 멸시했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전파하기 보다는 보존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유대민족에게 주신 보물을 잘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모든 보물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주었던 보물을 빼앗아서 새로운 교회인 자기 제자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수많은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장차 그들을 주님과 함께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또한 이 비유는 종말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은 종말을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성령의 은사와 재능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각 성도들은 그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충성스럽게 일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실하고 충성스럽게 맡겨진 일을 완수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마지막 때에 그들을 칭찬해 주시고,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맡겨 주실 것이며, 주님과 함께 천국 잔치에 참여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주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복음을 위해 일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모험하는 일을 회피하고, 복음을 위해 일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때에 주님은 그들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간주하시고, 그들에게 주었던 것을 빼앗고, 바깥 어두운 곳에 내던지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곳에서 슬피 울면서 자기의 무지한 행동을 울면서 뉘우치게 될 것입니다.

 

1. 세 번째 종은 주인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는가? 그의 태도와 모습을 우리의 태도와 모습과 비교하고 비슷한 점은 없는지 솔직하게 반성해 보자.

2. 주님은 악하고 게으른 종을 어떻게 대접했는가? 실제로 주님은 마지막 때에 신실하지 못한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3. 달란트비유를 통해서 주님께서 주신 교훈이 무엇인지 자세히 말해보자.

 

 

 

 

   양과 염소의 비유(1) (마 25:31-40)

 

달란트 비유는 마 25장에 기록된 재림에 대한 두 번째 비유였습니다. 이 비유는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지를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성도들이 주님의 재림 때까지 받은 은사를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사람들에게 주신 은사와 재능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물으실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은 신실하고 충성된 사람들을 칭찬하시고, 그들에게 더 많은 것을 맡겨 주실 것이며, 또한 천국의 상속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쾌락과 향락에 빠져 받은 은사를 낭비한 사람들은 엄히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완고한 로 간주하고, 천국과 복음을 위해 수고하기를 거부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에게 주셨던 것을 빼앗고, 바깥 어두운 곳으로 쫒아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곳에서 슬피 울면서 후회하게 될 것입니다.

 

 

* 마지막 분리와 심판-양과 염소의 비유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31),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것 같이 하여(32),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1-33)."

 

  주님은 장차 자신의 영광을 가지고 모든 천사와 함께 오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은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시고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모든 민족을 구별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양, 즉 신자들은 오른편에 두시고, 염소, 즉 불신자들은 왼편에 두실 것입니다. 주님은 당시에 쉽게 볼 수 있었던 한 장면을 통해서 종말에 있을 우주적인 심판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목자는 양과 염소를 동시에 치는 목자였습니다. 때로 팔레스타인에서는 가뭄 때에 염소들을 울타리 안에서 키우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그때에 목자는 염소들을 양과 같이 방목하여 키웠습니다. 이 경우 양과 염소는 함께 섞여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양과 염소는 어울릴 수 없는 기질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녁이 되면 양들은 목자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지만, 염소는 목자의 소리를 외면했습니다. 또 염소는 옥내에 있기를 좋아하지만, 양들은 옥외에 있기를 좋아했습니다. 양들은 풍성한 털이 있기 때문에 추위나 감기를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녁이 되면 목자는 양과 염소를 분리했습니다. 본문을 보면 목자는 양을 오른쪽에 두고, 염소는 왼편에 두었습니다. 목자가 양을 오른 편에 두고, 염소를 왼편에 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양은 염소보다 더 가치가 있었으며, 양이 가진 흰 털은 의인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에 반해 검은 털을 가진 염소는 악인의 상징으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오른편은 항상 옳고 선한 것을 의미했으며, 왼편은 어둡고 사악한 것을 의미했습니다. 이 세상 마지막에 모든 민족들은 양과 염소처럼 분류될 것입니다. 주님은 장차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모든 민족들을 불러모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에 천사들은 주님의 명령을 받들어 사방에서 사람들을 불러 심판대 앞에 서게 만들 것입니다(마 13:41-42, 24:31, 살후 1:7-8, 레 14:17-20). 그ㄸ에 모든 사람들은 재판장이 되시는 주님 앞에 서게될 것이며, 주님은 그들을 둘로 구분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듯이 모든 민족들을 구별하실 것입니다.

 

* 너희를 위해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이제 이야기는 주님께서 양과 염소에 대해서 한 말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앞에서 주님은 "인자"로 불리어졌지만, 여기에서는 "임금"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인자"라는 용어는 주님께서 자주 사용하신 명칭이었습니다. 다니엘서를 보면 "인자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나타나시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 "인자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시고, 모든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사람들이 인자를 섬기게 하실 것"을 보았습니다. 다니엘은 그 장면을 보고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이며, 옮겨지지도 않고, 영원히 폐하지 않는 나라"라고 선언했습니다(단 7:14). 다니엘서에 예고된 것처럼 인자되신 주님은 마지막 날에 왕인 동시에 심판장으로서 모든 민족들 앞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은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오른편에 선 자들은 구원받은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축복을 받은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창세 전부터 예비하신 나라를 상속할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은 것은 그들의 의로운 행위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축복과 선택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이 행한 선한 행위는 이러한 은총으로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로 인해 자발적으로 한 행위였습니다.

 

*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35),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 25:35-36)."

 

  그때에 주님은 그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칭찬하셨습니다. "너희는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주님은 그들이 형제들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었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들은 행동으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합당한 모습을 보여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일상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이웃과 나누었습니다. 그들은 지극히 작은 일에서도 자비와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마지막 날에 그들을 칭찬하시고, 그들의 삶에 합당한 상급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형제들을 사랑한 6가지 사례들을 말해주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주님께서 굶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주님께서 목마를 때에 마시게 했으며, 주님께서 나그네가 되었을 때에 영접을 했고, 주님께서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으며, 주님께서 병이 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또한 주님께서 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와서 보았다"고 칭찬하셨습니다. 그들은 형제들을 사랑하고 돌보았지만, 주님은 그들이 주님을 대접한 것으로 간주하셨습니다.

 

*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내게 한 것이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37)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38)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39),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마 25:37-40)...."

 

  그러나 오른편에 선 의인들은 자신들이 언제 주님을 영접했는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에게 "언제 우리가 주님이 주린 것을 먹이고, 목마른 것을 마시게 했으며, 나그네 된 것을 영접하고, 벗으신 것을 입혔으며, 병든 것이나 옥에  힌 것을 보고 가서 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때에 주님은 오른편에 선 의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주님은 주님을 따르는 지극히 작은 소자 한 사람을 자신과 동등시하셨습니다. 주님은 생전에도 자기를 좆는 제자들을 자신과 동일시하신 적이 있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그들을 영접하는 자는 곧 나를 영접하는 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그들에게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자도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마 10:42). 또한 주님은 주님을 좆는 지극히 적은 소자 중에 한 사람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마 18:5-6,10).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들이며, 주님의 대변자이고, 또한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는 사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을 대접하는 자들을 자신을 대접한 자로 간주하시고 그들에게 합당한 보답을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주님을 기다리면서 먼 산을 바라보며 살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들은 자기 주변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 곧 주님을 대접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실천해야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우리는 날마다 재림하실 주님을 대접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류하는 일은 어떤 점에서 마지막 심판장면과 비슷한가?

2. 본문에 언급된 주님의 칭호, "인자"와 "임금"에 대해서 아는대로 말해보자.

3. 오른편에 선 의인들은 어떤 삶을 살았는가? 왜 이웃사랑이 중요한가?

 

 

 

양과 염소의 비유(2) (마 25:41-46)

주님은 장차 영광 중에 천사들과 함께 오셔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은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시고,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것처럼 의인은  오른 편에, 악인은 왼편에 세우실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은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 축복 받을 자들"이라고 부르시면서, 그들에게 "창세로부터 그들을 위해 준비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주님을 좆는 이웃 형제들을 사랑하고 섬겼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좆는 형제들이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또 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가서 위로했습니다. 주님은 이와 같이 주님의 이름으로 형재를 대접한 것을 자신을 대접한 것으로 간주하고 보응해 주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 저주를 받은 자들아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41).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42),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마 25:41-43)"


  주님은 오른편에 선 의인들을 축복하신 후에, 계속해서 왼편에 있는 자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해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마지막 때에 주님의 왼편에 선 자들은 주님께 정죄를 받고,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부터 단절될 것이며, 사단과 그의 사자들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은 그들을 이렇게 책망하실 것입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으며,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은 특별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살인을 하거나 간음을 하거나, 도둑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좆는 형제들을 박대했습니다. 주님은 주님을 믿는 형제를 대접하지 않은 일을 자신을 대접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너희가 나를 믿지 않았다"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마땅히 해야 될 일들을 하지 않았다고 책망하실 것이다. 형제를 섬기고 대접하는 일은 특별한 믿음이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이러한 일은 누구든지 할 수 있는 일들입니다. 그러나 왼편에 선 자들은 주님을 좆는 형제들이 도움이 필요할 때에 그들을 돕기를 냉정하게 거절했습니다. 사람들은 세상을 살아갈 때에 주님을 믿고 따르든지, 아니면 주님을 거부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주님에 대해서 중간 지대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은 "나와 함께 하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해치는 자라"고 선언하셨습니다(마 12:30). 주님의 제자들과 그들이 전하는 복음을 거절하는 사람은 결국 그리스도를 거부한 자가 되어 마지막 날에 주님의 왼 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주님을 대접하지 않은 자로 간주되어 마지막 날에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위해 준비된 불에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소자 하나자에게 하지 않은 것이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라!  "저희도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44)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마 25:44-45)...."


  그러나 그때에 왼편에 선 자들은 "우리가 언제 주님을 대접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께 다음과 같이 질문할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대접하지 않았나이까?" 그들은 주님을 만나본 적도 없고, 주님을 반대하거나 거절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들이 언제 주님을 대접하지 않았느냐고 묻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하실 것입니다.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주님은 그때에 주님을 따르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을 자신을 대접하지않은 것으로 간주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을 좆는 형제들이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 냉정하게 거절했으며, 목말라 할 때에 마시우기를 거절했고, 굶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으며, 병들거나 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가 위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행위로 자신이 그리스도 편이 안라, 원수의 편에 선 것을 증거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주님이 계신 곳에 가지 못하고, 사단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에 던져질 것입니다.* 결론과 적용 문제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46)."


  양과 염소의 비유는 마지막 심판에 대한 모습을 보여주는 비유입니다. 목자가 저녁에 양과 염소를 분리하듯이 주님은 마지막 날에 모든 민족을 의인과 악인으로 구분하실 것입니다. 그 날에 모든 민족들은 주님 앞에 설 것이며, 그들은 주님을 대접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뉘어질 것입니다. 주님을 좆는 성도들은 계속해서 모든 민족을 찾아 가서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영접하고 복음을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또한 성도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여러 가지 고난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복음을 인해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질병, 그리고 외로움과 옥에 갇히는 일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실제로 이러한 일들을 직접 체험했습니다(고후 11:23-27). 바울이 이러한 고통을 받을 때에 많은 사람들은 그를 돕거나 위로해 주었습니다. 바울은 이러한 도움을 가리켜 "그리스도께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빌 4:18). 그러나 동시에 바울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외면과 멸시와 냉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에 주님은 바울의 편에 되어 그와 함께 해주셨습니다. 주님은 바울이 어려움을당할 때에 그를 외면하고 멸시한 사람들을 모두 기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행위를 마지막 날에 반드시 물으실 것입니다.


  여기에 나오는 형제는 주님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성도들을 영접한 자들을 마지막 날에 의인으로 간주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성도들을 대접한 것을 자신을 대접한 것으로 간주하시고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그들은 마지막 날에 의인들로 분류되어 주님의 오른 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행동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편에 서 있음을 증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들을 축복하시고,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을 위해 준비하신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교회와 성도들을 반대한 자들을 마지막 날에 악인으로 간주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이 교회와 성도들을 거부한 것을 자신을 거부한 것으로 간주하고 그들을 책망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마지막 날에 악인으로 분류되어 주님의 왼편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삶으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편이 아니라, 사단의 편이라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마지막 날에 그들을 사단과 그의 사자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에 던지실 것입니다. 이와 같이 마지막 날에 의인은 영생의 나라로 들어가고, 악인들은 영원한 불로 던져지게 될 것입니다.

1. 왜 주님을 믿는 형제들을 돕지 않은 것이 심판의 기준이 될 수 있는 지 설명해보자.
2. 왼편에 선 자들은 왜 주님을 대접하지 않은 일을 기억하지 못했는가?
3. 우리는 행동으로 주님의 백성임을 증거하고 있는가?   http://www.biblenara.org 

 

 

 


달란트 비유(마 25 : 14-30)

 

주인이 종들의 능력에 따라서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각각 주고 먼길을 떠났습니다.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와서 계산을 하는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받았던 종은 열심히 일을 해서 받았던 돈의 갑절의 이윤을 남겨 주인 앞에 내놓았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기뻐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마25:21) 하며 칭찬을 했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주인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갖고 있었던 까닭에 그 돈을 활용하지 못하고 그대로 땅속에 묻었다가 주인이 돌아왔을 때 꺼내 놓았습니다. 주인은 그것을 보고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는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에게서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사람에게 주어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25:26-28) 하며 심히 책망을 했습니다. 결국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문 밖으로 쫓겨나 이를 갈며 통곡했다는 것이 이 비유의 줄거리입니다.

 

이 비유의 말씀은 달란트의 많고 적음의 문제, 금전의 가치에 대한 문제 이전에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와 시간을 잘 활용해서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책임을 완수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우리 신앙 생활은 기회와 시간과 매우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우리말에는 시간이라는 단어가 한가지 뜻으로만 풀이되어 있지만, 헬라어에는 시간이라는 뜻을 가진 말이 두 가지로 나뉘어 쓰이고 있습니다.

하나는 '크로노스'라는 말인데 이것은 '흐르는 시간' 을 의미합니다.

 

연대로 보는 시간 관념입니다. 내가 30세가 되고 50세가 되고 80세가 됐다는 말은 크로노스의 시간 개념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감옥에 갇힌 사람이 출옥할 날을 손꼽아 세는 것, 잠을 이루지 못해 고통을 받으며 빨리 아침이 되기를 기다리는 것과, 교통체증 때문에 제시간에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해 차 안에서 시계를 보며 초조하게 있는 것모두 크로노스의 시간 개념입니다.

 

또 하나는 '카이로스'라는 말인데, 이것은 질적인 시간으로서, 의미 있는 시간, 가치있는 시간, 보람있는 시간, 생동하는 시간, 하나님과의 수직적인 관계를 맺는 영원한 시간, 감격의 순간들이 모두 이에 속합니다.

크리스챤의 삶은 얼마나 오랜 세월을 살았느냐 하는 것보다도 시간 시간을 얼마나 값있고 질적으로 의미 있게 살았느냐에 따라서 그 신앙 생활을 평가하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나 있는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시간으로 바꾸지 못했기 때문에 주인으로부터 책망을 받았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의 실패 원인이 무엇인가를 함께 생각하면서 영적인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받은 달란트를 소중히 여기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어떤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어떤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주신 달란트를 과소평가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우리 가정의 곤란한 것, 잘못된 것은 확대해 보면서 다른 가정의 모든 것을 좋게 생각하는 것은 미성숙한 삶의 태도입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가정, 자기에게 주어진 자식, 자기에게 주어진 아내, 남편, 직장 등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은 한 달란트 받았던 종과 같이 실패하기가 쉬운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불평과 원망과 구실만을 찾습니다. 우리 나라가, 우리 사회가, 우리 가정이 잘못됐기 때문에 내가 못산다고 하면서 모든 책임을 회피하고, 또한 자기에게 주어진 무한한 가능성과 달란트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여 실패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농부가 오랫동안 좋은 농장을 가꾸면서 행복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갑자기 자기의 농장이 싫증이 나서 이것을 팔고 다른 환경의 새 농장을 사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부동산 중개소에 자기의 농장을 내놓았습니다. 부동산 중개소에서는 여러 곳에 광고를 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넓고 기름진 땅, 좋은 농가, 큰 곡식 창고, 이상적인 위치, 최신식 농기구를 갖춘 농장을 팝니다."

신문 광고를 보다가 이 농부는 "이 농장이 바로 내가 원하는 농장이구나"하고 생각하고서 위치를 자세히 보니까 바로 자기 농장을 광고한 것이었습니다. 그때야 농부는 자기 농장이 가장 이상적인 농장임을 깨닫고 매물로 내놓았던 것을 취소하고 그 농장을 잘 가꾸면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입니다.

 

남의 떡이 커 보입니다. 남의 과일이 크고 좋아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천부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한 달란트도 소중합니다. 비록 가진 것 없고 못났다 하더라도 내 아내가, 내남편이, 내 자식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습니다. 나에게만 주어진 은사를 고맙게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소중히 여길 때 그는 성공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2. 주신 달란트를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주어진 것을 순종함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는 변경시킬 수 없는 상황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것은 받아들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키가 165CM 인데 180CM 로 만들려고 애를 써도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여자가 남자가 되겠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전혀 불가능합니다. 지구의 인력을 내 마음대로 할 수도 없습니다. 한번 내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의 과거 역사를 변경시킬 수가 없습니다. 나이를 먹지 않으려고 흘러가는 세월을 멈추게 하거나 지연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 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 할 수 있느냐"(눅12:25)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앞에 닥친 죽음은 받아들어야 합니다.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한계 상황을 받아들일 때에 그 사람은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로부터 무한한 축복을 받았습니다.

모든 동물을 다스리고 모든 과실을 마음대로 먹으며 낙원인 에덴 동산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중앙에 있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행복한 환경은 보지 아니하고 "먹지말라"는 그 나무 실과를 따먹으므로써 범죄하고 만 것입니다. 선악과는 피조물과 창조주의 한계선이었습니다. 그것을 뛰어넘으려 하는 인간의 교만한 마음이 인류에게 무서운 타락의 죄악을 가져오게 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한계를 인정하지 못할 때 범죄의 결과가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요즈음에도 보게 됩니다.

 

유전자 공학자의 말을 들어 보면 인간이 완전히 성장하는 데 20년정도 걸리므로 보통 그 7배수인 140년은 넉넉히 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40에 죽고, 또 어떤 사람은 50,60에 죽는 까닭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순리를 무시하여 교만하게도 그것을 파괴하고 한계를 넘으려는 생각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일생동안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더욱이 그것은 나에게만 주어진 소중한 것으로 알고 잘 활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만일 내가 저 사람과 같은 가정에 태어났지만'.'만일 저 사람과 같은 머리를 가졌다면'.'만일 내가 저 사람과 같은 학교를 나왔다면'하고 '만일에...,만일에...'를 연발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다가는 선한 일도, 생산적인 일도, 창조적인 일도, 의미 있는 일도 하지 못하고 일생 동안을 허송 세월할 뿐만 아니라 불평과 원망을 일삼고 책임을 회피하다가 실패를 거듭할 것이 분명합니다.

 

 

3. 주신 달란트를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종은 이 달란트를 활용하지 못하고 잃어버릴까 두려워하며 땅에다 파묻었습니다. 이 사람은 모험심도, 용기도 없었기에 시도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일생 동안 자기의 달란트를 활용해 보려고 시도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땅에 파묻어 버리고는 잃어버릴까 그 주위를 맴돌다가 일생을 탕진하고 마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능성을 활용하려고 시도할 때에 성공의 기회가 우리 앞에 활짝 열려지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미국의 유명한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 목사님이 부흥되지 못하는 2백 교회를 조사해 보았습니다. 그 중의 한 교회 목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 교회가 부흥되지 못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그 목사님은 "말도 마십시요 우리 교회에서는 헌금이 많이 걷히지 않아 선교비도 없어도. 그리고 교회에 인재다운 인제가 없어도. 그러니 이 교회가 부흥이 되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슐러 목사님은 "아닙니다. 이 교회는 돈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고 당신에게 아이디어(idea)가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당신에게 모험심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라고 그 목사님에게 충고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주어진 달란트를 활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부흥되지 않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 속담에 "말로 배워서 되로 쓰는 사람이 있고, 되로 배워서 말로 쓰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받은 달란트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느냐를 가르치는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미국 일리노이 주에서 정년 퇴직할 때까지 우체부 생활을 하던 프리슬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은퇴할 때 매달 받을 얼마의 연봉과 은혜에 예금해 놓은 1,200달러가 그의 전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은퇴한 우체부는 언제나 선한 마음을 가지고 동네 사람들에게 친절하게도 자기가 알고 있던 꽃을 가꾸는 방법이라는가 새를 키우는 방법 등을 가르쳐 주면서 즐겁게 지냈습니다. 이웃 사람들도 은퇴한 이 우체부를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어느날 프리슬리는 이웃들을 위해 도울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 일리노이 주 사람들은 바다와 멀리 떨어져 생활하기 때문에 바다 구경을 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간절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프리슬리는 그들에게 바다 구경을 시켜 주리라 결심하고 바다에 관한 책을 읽으며 사람들에게 설명해 줄 자료를 준비한 후 바다 관광을 할 사람들을 모집했습니다. 수백 명이 몰려왔습니다. 그 사람들을 버스에 싣고 플로리다 주의 마이애미 비치에 데리고 가서 구경을 시켰습니다. 바다에 대한 자세한 설명도 해주었습니다.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관광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다음 번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바다 관광을 가겠다고 신청을 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얼마 후 사람들은 프리슬리에게 바다만 구경시켜 줄 것이 아니라 다른 관광 명소도 안내를 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이제 프리슬리는 폴로리다 주뿐만 아니라 미국 전지역을 커버하는 관광 회사를 설립하고 많은 사람을 위해 봉사하게 되었습니다.

 

은퇴한 후에 쭈그려 앉아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남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가지고 노력한 결과 82살 난 프리슬리는 재산이 7백만 달러나 되는 거부가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내 지식과 내 노력을 남에게 나눠주는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질적인 축복을 허락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달란트, 그것이 비록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충실히 활용하게 될 때에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시며 하나님께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축복을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될 것입니다. cafe.daum.net/correct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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