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속에 나타난 용의 존재
▲ 고대 바벨론 도시 이슈타르(Ishtar)문 벽에 새겨진 용의 부조. 출처: dia.org 캡처
231호 / 창조 이야기
본지는 창조론 전문가인 미국 켄트 호빈드 박사의 창조론 강의를 요약, 소개한다. 호빈드 박사의 강의는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흥미롭게 설명하며, 진화론이 거짓 믿음 체계임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편집자>
용의 존재는 문화 속에서도 발견된다. 이라크의 전 대통령이자 독재자인 사담 후세인은 자신을 느부갓네살의 화신이라고 생각했다. 사담은 거액을 들여 고대 바벨론 도시를 재건해 자신의 별장을 만들었다. 고대 바벨론은 마른 모래에 묻혀 있는 상태로 발견됐는데 벽돌은 마른 모래로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이슈타르(Ishtar)문 벽에서 그들은 사자와 용의 문양을 발견했다. 왜 2600년 전의 벽돌 벽에 사자와 함께 용을 새겨 넣었을까? 그들은 용맹한 사자처럼 용이란 존재도 그렇게 인식하고 있지 않았을까 추정해볼 수 있다.
알렉산더 대왕 시절, 기원전 300년에 인도의 일부를 정복했을 때 병사들이 용을 두려워했다고 했다. 어떤 로마 모자이크는 두 마리의 긴 목을 가진 용들이 싸우는 것을 보여준다. 로마인들이 서기 200년대에 용에 대해서 어떻게 알았을까? 성 게오르기우스(Saint George, 초기 기독교의 순교자)는 서기 275년에 용을 죽인 것으로 유명하다. 8~11세기 사이의 고대 영어로 작성된 작자 미상의 영웅 서사시인 베오울프에도 용이 등장한다. 베오울프는 용 두 마리를 죽였지만, 세 번째 용에게 죽임 당했다. 현대 영어로 번역한 작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베오울프는 용 그랜델의 작은 팔을 잡아 뜯어, 피를 많이 흘려서 죽게 했다.’ 용의 팔을 잡아 떼었다는 내용은 바벨론의 원통 도장에 새겨져 있다. 사람과 같이 살았던 용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홍수 후(AFTER THE FLOOD)’라는 책을 추천한다.
프랑스에서 물 밖으로 나온 용을 죽인 어떤 사람이 그것의 머리를 잘라서 건물 모퉁이에 붙여 놓아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건물에 붙여진 용의 머리를 ‘가고일’이라고 부른다. 또 한 아일랜드 작가는 사람들이 꼬리에 철 못을 가진 용을 죽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썼다. 스테고사우루스는 꼬리에 큰 대못들이 박혀 있다. 11세기의 바이킹 목판화에는 용이 사람을 삼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000년 전이다. 바이킹은 1000년 전에 용머리를 배에 달았다. 왜 그랬을까? 그들이 바다의 거대한 용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그것을 ‘크래큰’이라고 불렀다.
이 외에 많은 문학과 문화에서 용의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게르만 신화의 전설적 영웅 시이그프리드가 용 패프너를 죽인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독일의 12세기 한 성의 벽돌에 용이 새겨져 있다. 17년 동안 중국을 유람했던 마르코 폴로는 돌아와 중국에 대해 설명하면서 황제가 퍼레이드 할 때 자기 전차를 끌게 하려고 용을 길렀다고 했다. 왜 그는 그런 말을 했을까? 아마도 실제로 황제가 퍼레이드 할 때 자기 전차를 끌게 하려고 용을 길렀기 때문일 것이다.
인디언들은 그랜드 캐니언의 벽에 공룡을 새겨 놓았다. 아마 그 주변에서 공룡을 사냥했을 것이다. 1925년에 뗏목을 타고 서쪽의 그랜드 캐니언으로 여행을 한 사람이 작성한 보고서에는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다. “선사 시대 사람들이 그랜드 캐니언의 벽에 공룡의 그림을 그려 놓았다는 사실은 우리의 모든 이론을 완전히 망친다.” 또한 그 공룡 사진을 공룡 전문 과학자에게 최근 보여 주었다. 그는 “이건 공룡이 아니다. 그건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이 지구에 출현하기 1200만 년 전에 공룡이 멸종했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은 매우 의아하다.
첫째로, 그가 1200만 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둘째로, 그가 ‘1200만 년’이라고 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요즘 아이들은 공룡이 6500만 년 전에 죽었다고 배운다. 지구의 나이가 증가하는 것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 1770년에는 지구가 7만 년 되었다고 했다. 1905년에는 20억 년이라고 했으며, 1969년에는 35억 년이라고 했고, 요즘은 46억 년이라고 한다. 지구는 일 년에 2100만 년씩 점점 더 늙어가고 있다. 1분에 40년 꼴이다.
공룡은 많은 역사 기록에서 발견된다
지구상 가장 오래된 도기 조각인 이집트의 나르메르 팔레트. 왼쪽 면에는 목이 긴 용이 새겨져 있다. 출처: ancient-egypt.org 캡처
230호 / 창조 이야기
본지는 창조론 전문가인 미국 켄트 호빈드 박사의 창조론 강의를 요약, 소개한다. 호빈드 박사의 강의는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흥미롭게 설명하며, 진화론이 거짓 믿음 체계임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편집자>
사람들이 공룡을 죽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고기 때문에, 위협적이니까, 자기가 영웅임을 증명하려고, 인간이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땅을 차지하려고, 약으로 쓰려고 등등. 아시아 의학의 처방법에는 용의 피, 용의 뼈, 용의 침 같은 용어가 많다.
중국 전설에는 ‘유’라는 사람이, 홍수 후에 땅을 조사해서 구획으로 나누고 물이 바다로 빠져나갈 수 있도록 운하를 건설해서 땅을 다시 살기 적합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많은 뱀들과 용들이 습지에서 쫓겨났다고 했다. 그건 정상이다. 도시를 건설하려면 용을 쫓아내고 도시를 건설해야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용을 쫓아내야 했다. 또한 중국 달력은 12동물로 상징한다. 그런데 왜 돼지, 닭, 개 등등 11개의 실제 동물들 사이에 신화적 동물인 용을 넣어 놓았을까? 유추해보면 그들이 이 12가지 상징들을 만들었을 당시 이것들이 다 실제 동물이었을 것이다.
지구상 가장 오래된 도기의 조각은 이집트의 슬레이트 조각이다. 이것은 통일 이집트 왕국의 첫 번째 왕조 때 만들어진 것이다. 이 조각에는 목이 긴 용이 조각되어 있다. 왜 긴 목 공룡을 3800년 전에 도기에 넣었을까? 또한 기원전 12세기 하마 어금니로 만든 장식품에는 목이 길고 꼬리가 긴 동물이 새겨져 있다. 또 다른 원통 도장에도 명백히 긴 목 공룡으로 보이는 것이 새겨져 있다.
성경은 이사야서 14장에서 ‘날아다니는 불뱀’에 대해 말하고 있다. ‘날아다니는 불뱀’에 대한 이야기는 고대 역사 이야기에도 종종 기록되어 있다. 고대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의 이야기에는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내가 ‘부토’의 거의 정확히 반대편인 아라비아의 어떤 지역으로 날개 달린 뱀에 대해 물어보러 갔다. 거기 도착했을 때에 뱀의 척추와 갈비뼈들을 보았고, 그 모양은 표현하기 불가능한 모양이었다. 날개 달린 뱀은 물뱀 모양이었는데 날개는 깃털이 없었고 박쥐의 날개와 닮아 있었다. 그 뼈들이 놓여 있는 곳은 험준한 산들 사이의 좁은 협곡의 입구였다. (이 뼈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봄에 날개 달린 뱀들이 아라비아에서 이집트로 날아오지만, 그들은 이 협곡에서 그들이 들어오는 것을 금하고 그들을 다 죽이는 ‘아비시스’라는 새를 만난다.” 1세기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플라비우스 요세푸스의 책은 모세가 에티오피아에 왔을 때 죽여야 했던 날아다니는 불뱀에 대해 이야기한다. 앵글로 색슨 연대기에도 서기 793년에 불뱀이 궁창을 가로질러 날아간 것에 대해 기록돼 있다. 바벨론 사람들은 신 마르둑의 그림에 불을 내뿜는 용을 그려놓았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물을 것이다. “설마 불을 내뿜는 용이 있었다고 믿는 건 아니겠지요?” 그렇다. 나는 그것이 있었다고 믿는다. 욥기 41장은 리워야단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것의 입에서는 횃불이 나오고 불꽃이 튀어 나오며 그것의 콧구멍에서는 연기가 나오니 마치 갈대를 태울 때에 솥이 끓는 것과 같구나 그의 입김은 숯불을 지피며 그의 입은 불길을 뿜는구나”(욥 41:19~21) 성경은 정말로 불을 내뿜는 용이 있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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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룡은 기후 변화와 사냥이 시작되면서 사라졌다
4세기 초기 기독교 순교자인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가 용을 죽이는 장면을 묘사해 놓은 스페인 세인트 조지 예배당 벽화. 출처: 한국창조과학회 캡처
229호 / 창조 이야기(37)
본지는 창조론 전문가인 미국 켄트 호빈드 박사의 창조론 강의를 요약, 소개한다. 호빈드 박사의 강의는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흥미롭게 설명하며, 진화론이 거짓 믿음 체계임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편집자>
기독교인들은 1800년대 성경을 ‘공룡’에 맞추려고 간격론에 타협했다. 그리고 사탄에게 공룡을 내주었다. 덕분에 공룡에 대한 많은 이론이 나왔다. 그중 하나가 6500만 년 전에 소행성이 멕시코의 유카탄반도 인근에 떨어져 공룡이 멸종 됐다는 설(說)이다. 인디애나주에 있는 한 과학자는 “공룡은 자신들의 방귀 때문에 죽었다.”고 하면서 “그들은 그 열을 견딜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무엇이 정말 공룡을 멸종시켰을까? 그러나 이 질문은 잘못됐다. 올바른 질문은 “무엇이 그들을 멸종시켰는가?”가 아니라 “그들은 멸종했는가?”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잘못된 주제에 대해 논쟁하게 만드는 것을 아주 잘 한다. 그들은 항상 나에게 이렇게 질문한다. “공립학교에서 창조를 가르쳐야 합니까?” 그럼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좋은 질문이군요. 그것에 대해 기꺼이 의논하죠. 그러나 먼저 물어야 할 다른 질문이 있습니다. 공립학교가 있어야 합니까? 만일 공립학교가 있어야 한다면, 그때 거기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를 누가 결정해야 합니까?” 그것은 아마 당신이 결정하거나, 내가 결정할 수도 있다. 문제는 어떤 사람들이 ‘아이들이 정부에 속해 있다.’는 아주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결코 아니다. 아이들은 하나님께 속해 있고 그들은 부모들에게 맡겨져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싶어 하시는지를 생각하고 부모가 결정해야 한다.
공룡은 19C 이전까지 용으로 불렸다
방주에서 내려온 공룡은 아주 힘든 시간을 보냈다. 기후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기후는 홍수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홍수 이전에 사람들은 900살까지 살았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홍수 이후에는 400살까지 살다가 그 다음에는 200살, 그리고 100살까지 살게 되었다. 무엇이 바뀌었을까? 첫째, 머리 위의 장막이 없어졌다. 둘째, 땅은 더 이상 미네랄로 차 있지 않았다. 그 전에는 식물이 매우 잘 자라 온 땅을 뒤덮었고, 대기압도 달랐다. 나는 홍수로 하늘의 물 장막이 붕괴되어서 사라졌다고 믿는다. 햇빛은 방사선 등을 생산하는데 이를 막아줄 물의 장막이 사라진 것이다.
공룡들에게는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로, 기후 변화다. 그러나 두 번째 이유가 아마 더 심각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바로 사람들이 공룡을 사냥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의 사람들이 그것을 공룡이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용이라고 불렀다. 공룡이라는 단어는 1841년까지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1891년까지도 공룡은 사전에 없었다. 인류 역사 대부분 그것들은 용이라고 불렸다. 용은 성경에서 34번 언급됐다. 사람들은 ‘공룡은 성경에 없다.’고 말한다. 맞다. 그 단어는 1841년까지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당신이 1611년에 번역된 올바른 성경을 가지고 있다면 그 안에는 당연히 공룡이라는 단어가 없다.
용은 1946년도 사전에 ‘지금은 희소한’이라고 적혀 있다. 홍수 후에 인구수가 증가함에 따라 용의 수는 감소하기 시작했다. 아무도 용 옆에는 살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애틀란타가 있는 조지아주의 캅 카운티에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지금 애틀란타 근처의 숲 속에 회색 곰은 없다. 그러나 300년 전에는 수백 마리였다. 회색 곰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람들이 이주해 와서 그 지역에서 문명을 이룰 때 크고 사나운 동물들은 죽임을 당하거나 쫓겨났다. 문명이 시작되는 모든 곳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난다.
전 세계 270여 개 홍수 전설 존재… 대 홍수 있었다는 증거
아르메니아에서 바라본 아라랏 산. 출처: Pixabay
227호 / 창조 이야기(35)
본지는 창조론 전문가인 미국 켄트 호빈드 박사의 창조론 강의를 요약, 소개한다. 호빈드 박사의 강의는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흥미롭게 설명하며, 진화론이 거짓 믿음 체계임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편집자>
“그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부패하여 포악함이 땅에 가득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부패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창 6:11~12)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포악함이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고페르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창 6:13~14)
노아는 아들들과 함께 나무를 가져와서 커다란 배를 만들었다. 홍수가 끝나자 노아의 아들 셈은 아기를 낳고 ‘아르박삿’이라고 이름 지었다. 아르박삿이 커서 할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주변을 둘러보면서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할아버지, 질문이 있어요. 왜 세상에 우리밖에 없죠? 이 지구 전체가 다 우리 거란 말인가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죠?”
그때 노아는 홍수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다. 분명 그들은 홍수에 대해 오랫동안 이야기했을 것이다. 지금 이 시대에서도 큰 피해를 입힌 허리케인은 오랫동안 회자된다. 그렇다면 세계적인 홍수에 대해서는 어떻겠는가? 수세기 동안 이야기했을 것이다. 실제로 아르박삿의 아버지 셈은 먼 후대인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홍수 이야기를 직접 해줄 수 있을 정도로 오래 살았다. 성경을 읽을 때는 이것을 결코 잡아내지 못하지만 성경도표를 만들어 보면 정말 놀라게 된다.
지금도 전 세계에 약 270개의 홍수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하와이의 전설은 다음과 같다.
‘처음 사람인 쿠니하나가 죽고 오랜 후에 세상은 악하고 끔찍한 곳이 되었다. 한 사람의 선한 사람이 남아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누우였다. 그는 집이 들어 있는 커다란 카누를 만들어서 동물로 채웠다. 물이 온 세상을 덮어서 모든 사람들을 죽였지만 누우와 그의 가족만 살아남았다.’
중국에도 ‘하이킹 클래식’이라는 전설이 있다. ‘푸하이는 문명의 아버지이다. 푸하이와 아내와 세 아들과 세 딸이 대 홍수를 피했다. 그와 그의 가족들이 세상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들이었다. 대홍수 후에 그들이 세상의 인구를 다시 증가시켰다.’
멕시코 토텍 인디언들에게도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 세상은 1716년간 지속되었지만, 가장 높은 산들을 덮었던 대홍수에 의해 파괴됐다. 칵스칵스라는 이름의 한 가족만 살아남았다.’ 창조에서 홍수까지 성경의 연도를 더하면 1656년이다! 토텍 인디언의 이 전설은 4000년이나 됐지만, 성경의 연대와 비슷하다.
이렇게 많은 홍수 전설이 있다는 것은 확실한 대 홍수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모든 사람이 사라진 대륙 아틀란티스를 찾아다니는 전설도 아마 홍수에 관한 전설의 하나일 것이다. 배에 탄 사람들 입장에서는 온 세상이 파도 밑으로 가라앉았으니 말이다. 터키 동부에는 아라랏 산이 있다. 러시아 국경에서 12마일 떨어진 이곳은 터키 지도에 ‘노아 엉검시’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노아의 큰 배’라는 뜻이다. 그곳을 가리키는 표지판들에는 ‘이쪽으로 5km가면 노아의 큰 배가 나옴.’이라고 적혀있다. 성경은 “일곱째 달 곧 그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들’에 머물렀으며”(창 8:4, NIV)라고 기록하고 있다.
공룡은 창조 때부터 존재했던 파충류
텍사스주 글렌로스의 공룡 계곡 주립 공원에 너비가 40cm가 넘는 거대한 공룡 발자국(출처: texasmonthly.com 캡처)
[225호 / 창조이야기(33)]
본지는 창조론 전문가인 미국 켄트 호빈드 박사의 창조론 강의를 요약, 소개한다. 호빈드 박사의 강의는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흥미롭게 설명하며, 진화론이 거짓 믿음 체계임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편집자>
지난 수백 년 동안 기독교인들은 공룡이 성경 어디에 들어가는지 혼동해 왔다. 어떤 이는 “제 친구 하나가 공룡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고 얘기하더군요.”라고 이야기한다. 또 다른 사람은 “마귀가 우리를 속이려고 그 뼈들을 땅에 묻었다.”라고도 한다. 정상적 지능을 가진 사람들에게 그런 소리를 하면 아주 바보 같아 보일 것이다.
공룡은 존재했다. 그럼 언제 살았던 것일까? 성경 속 어느 시대에 공룡이 들어가는가? 기독교인들은 공룡을 설명하려고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타협했다. 그로 인해 간격론(Gap theory)이라든지, 날-시대 이론(Day-age theory), 점진적 창조론(Progressive creationism), 유신론적 창조론 등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이론은 있을 필요가 없다.
공룡에 대한 성경적 관점을 찾아보자. 성경은 말씀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출 20:11) 그가 모든 것을 6일 동안 만드셨다면 아담은 공룡을 보았을 것이다. 창조에 대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없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창 1:6)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원래 창조하셨을 때 물의 장막을 머리 위에 두셨는데 그것이 홍수 때 땅에 쏟아져서 지금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거의 모든 물이 다 지표 안에 있었는데 땅의 깊은 것이 터져 나왔을 때 지표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를 증명하는 말씀구절은 많다. 시편 24편 1~2절에는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시편 136편 6절은 “땅을 물 위에 펴신 이에게 감사하라”고 말씀한다. 이것은 지금 바다에 있는 물이 지표 안에 있었다는 뜻이다. 그 물들이 땅의 깊음이 터졌을 때 다 밖으로 나왔다.
노아 시대에 무엇이 홍수를 일으켰는가? 6000년 전의 창조 때로부터 4400년 전의 홍수 때까지는 세상이 지금과 아주 달랐다. 성경은 그 기간 동안 사람이 900세가 넘도록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많은 아시아 문화에서 황금시대라고 불리는 전설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바벨론인, 수메르인, 이집트인들은 모두 사람이 천 년 가까이 살던 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천 년 가까이 살았다.
파충류는 결코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그러므로 공룡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 살았던 커다란 도마뱀이다. 공룡은 결코 수백만 년 전에 살지 않았다.
그렇다면 노아가 방주에 공룡을 실었을까? 공룡은 방주에 있었다. 사람들은 비웃는다. “방주에 공룡이라구요? 그것들은 좀 크지 않나요?” 그렇다. 그것들은 큰 것도 있지만 작은 것도 있다. 노아가 방주를 지을 때는 600세였다. 그는 아마 가장 큰 것들을 데려올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달을 정도로 현명했을 것이다. 새끼 두 마리면 된다. 새끼들을 방주에 실어야 할 이유는 많다. 새끼는 작다. 가장 큰 공룡 알이 미식축구 공보다도 작다. 새끼들은 무게가 덜 나가고 적게 먹고 더 많이 잔다. 그리고 더 강하다. 새끼들은 바닥에 넘어져도 일어나서 계속 뛰어다닌다. 새끼들은 홍수 후에 더 오래 살면서 더 많은 자손들을 낳을 것이다. 큰 코끼리를 방주에 싣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로 멍청한 일이다. 모든 것의 새끼들을 데려 오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다.
하나님이 모든 종류의 생물을 두 마리씩 데려오라고 말씀하셨다(창 6:19). 모든 종의 두 마리씩이 아니었다. 성경은 ‘각기 종류대로, 종류대로, 종류대로…’라고 아주 분명하게 말씀한다. 그리고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만 데려오면 된다(창 7:22). 노아는 물고기와 곤충을 방주 안에 들여올 필요가 없었다. 물고기는 물속에 많았고 곤충은 콧구멍이 없고, 표피를 통해 숨을 쉬기 때문에 곤충은 방주에 들어오지 않았어도 홍수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다. 실제로 홍수가 난 곳에 물이 빠진 다음 진흙을 걷으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엄청난 수의 벌레들이다.
대홍수 전, 공룡과 인간이 함께 살았다
1967년 텍사스 주 글렌로스에서 발견된 공룡의 발자국과 강바닥 위쪽 석회암층에 나타난 사람의 발자국(출처: creationhistory.com 캡처)
[220호 / 창조이야기(29) ]
본지는 창조론 전문가인 미국 켄트 호빈드 박사의 창조론 강의를 요약, 소개한다. 호빈드 박사의 강의는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흥미롭게 설명하며, 진화론이 거짓 믿음 체계임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편집자>
공룡 뼈는 인간 뼈, 포유류의 뼈와 함께 발견되고 있다. 때로는 석화된 인간의 손과 같은 암석층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잉카 돌판 중 하나는 사람이 공룡을 타고 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또한 공룡 발자국과 사람 발자국이 함께 발견됐다. 이 문제로 논란이 된 텍사스의 글렌로스에 내가 직접 가보기도 했다.
글렌로스라는 조그만 마을은 펄록시 강이 흐르고 있고 온통 석회암으로 덮여있다. 지역 전체가 석회암이며, 강은 석회암층을 깎아서 통과하고 있다. 1908년에 이곳에 아주 큰 홍수가 발생했다. 그 강은 1마일(약 1.6km) 당 17피트(약 5m) 낮아지는데, 홍수로 강이 범람할 무렵, 제방보다 30피트(약 9m)이상 수위가 올라갔다. 그 와중에 홍수가 강바닥을 쓸면서 석회암층들을 깎아낸 것이다. 2피트(약 60cm)의 석회암이 떨어져 나간 자리에는 새로운 석회암층이 드러났고, 다음해 여름에 강이 마르자 거기서 수백 개의 공룡 발자국들이 발견됐다. 이곳은 이제 ‘주립 공룡 골짜기 공원’이라고 불린다.
사람들은 강에 침식되지 않도록 많은 발자국들을 떠내서 박물관에 보관했다. 그런데 가끔은 이 지역에서 공룡 발자국과 함께 사람의 발자국이 발견된다. 발견된 사람 발자국 중 공룡 발자국을 가로질러 가는 것도 있다. 홍수를 피하려고 진흙탕을 뛰어갈 때는 누군가가 이미 밟아 놓은 곳을 밟는 게 논리적일 것이다. 깊은 눈 속을 걸어갈 때처럼 말이다.
우리는 오늘날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고 비가 오기 시작하자 모든 사람들이 처음 수십분 만에 다 죽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이 죽는데 6개월 정도는 걸렸을 것이다. 비는 40일간 왔지만, 성경은 물이 150일 동안 계속 ‘올라왔다’고 말한다. 대부분의 물이 ‘땅의 깊은 샘으로부터’, 즉 지표 안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지표 안에 있었던 물이 홍수를 일으킨 것이다. 물이 차오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높은 지대를 찾아 올라갔을 것이다. 서로 높은 지대를 차지하려고 싸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암반층을 떠냈을 때 그 아래 석회암에서 더 많은 발자국들을 발견했다. 발자국 하나는 발가락을 가로질러 자국이 나 있었다. 그 가장자리 알갱이들을 연구한 결과, 이것이 압착되면서 얇은 면이 뒤틀려 있음을 발견했다. 이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지만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그 발자국들은 6~7피트(약 1.8~2m)의 보폭을 가지고 있다. 매번 이 정도 보폭을 가지려면 아주 큰 사람이어야 할 것이다. 이 발자국 발굴 당시 현장에 있었던, 지금 애리조나주의 남침례교회에서 부목사로 있는 지인이 내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호빈드 박사님, 저는 발자국을 많이 보고 자랐는데, 칼 보우 박사와 함께 발굴 작업 현장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공룡 발자국 옆에 있는 사람의 발자국을 따라갔는데 마치 그 사람이 공룡과 함께 걷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노바’(1974년부터 방송된 미국의 과학TV 시리즈. 역자 주)도 발굴하는 현장을 촬영하려고 왔고 한 진화론자는 거기서 보우 박사와 계속 논쟁했습니다. 노바는 발자국들이나 우리의 발굴은 별로 촬영하지 않았고 그 진화론자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는 거기서 진화론을 반증하는 어떤 것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는 우리가 작업하고 있던 발자국들을 쳐다보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노바는 진화론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진화론에 반대되는 것들은 TV에 방영하지 않았다. 어떤 사람은 “인간 발자국과 공룡 발자국이 함께 있었다는 것은 단지 인간 같은 발을 가진 공룡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라고 말한다. 기발한 해석방법이다. 이것은 진화론이 연구에 방해가 되는 또 다른 예일 것이다.
미국의 동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는 이렇게 말했다. “창조론자들은 인간과 공룡이 동시대에 살았다고 말했다. 그 중대한 발언들이 진실이라면 그것을 발견한 이들의 이름들이 20세기에 가장 뛰어난 발견을 한 사람들 중의 하나로 시간의 회랑에 우레처럼 내려올 것이다.” 미디어가 막지만 않는다면 그것은 사실일 것이다.
기압이 높았던 홍수 전 동물은 거대했다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페니 석탄 계곡에서 1947년 한 지질학자에 의해 발견된 거대한 암모나이트 화석(출처: bbcga.com 캡처)
[219호 / 창조이야기(28)]
본지는 창조론 전문가인 미국 켄트 호빈드 박사의 창조론 강의를 요약, 소개한다. 호빈드 박사의 강의는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흥미롭게 설명하며, 진화론이 거짓 믿음 체계임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편집자>
방주에서 나온 노아는 문명을 완전히 다시 세워야 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려면 석기를 만들어야 했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땅을 파서 철을 찾은 다음 녹여서 철기를 만드는 것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제작에 3주나 걸리는 철도끼를 만들다 굶어 죽을 수도 있었을 것이며, 50파운드(약 22.7kg)나 하는 철기구들을 들고 다니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석기를 만드는 게 더 빨랐을 것이다. 맘모스나 버팔로를 바짝 쫓아가, 빨리 석기를 만들어 잡아서 도살한 다음, 도구들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떠났지 않았을까.
오늘날 우리는 이런 석기를 발견하면 이렇게 반응한다. “와, 이 화살촉이 완벽한 모양으로 균형이 잡혀 있네. 이 사람들 똑똑했구나. 발전된 문명이었나 보다.” 혹은 약간 조잡해 보이고 부드럽게 다듬어지지 않은 다른 화살촉을 발견하면 “이걸 만든 시대의 사람들은 그다지 똑똑하지 않은 것 같다.”라고 말한다. 실제 그랬을까. 이런 가정은 어떨까? 화살촉이 조잡해 보이는 것은 도망가는 맘모스를 잡기 위해 다급했던 사람이 만들었을 가능성은 없을까? 이런 유물은 그들의 지능보다는 그 사람들이 얼마나 시간을 들였느냐에 관한 흔적일 수 있다.
홍수 전에는 사람들만 더 오래 살았던 게 아니라 동물들도 오래 살았다. 그만큼 더 크게 자라났다. 18피트(약 5.5m) 키의 뿔 없는, 아주 큰 코뿔소에 대해, 사람들은 선사시대 동물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니다. 100년 전까지 ‘선사시대’라는 단어는 사전에도 없었다. 1766년 사전에는 ‘선사시대’라는 단어가 없다. 1860년 사전에도, 1892년 사전에도 없다. 홍수 전이라는 말은 있었지만, 선사시대라는 개념은 없었다.
홍수가 있기 전에는 물의 장막이 기압을 높였기 때문에 지구 환경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을 것이다. 곤충도 훨씬 크게 자라났다. 곤충들은 사용 가능한 산소량과 크기가 비례한다. 표면적과 부피의 비율에 따라 산소가 풍부한 물에 사는 곤충들은 1000배 더 무거워진다. 50인치(약 1.27m)짜리 날개를 가진 잠자리 같은 화석이 발견되었다. 요즘은 3~4인치(약 7.6~10cm) 정도만 자라지만, 홍수 전에는 거대했다. 18인치(약 45cm)나 되는 거대한 바퀴벌레의 화석과 8.5피트(약 2.6m)짜리의 거대한 지네 화석도 발견되었다. 이런 화석은 더 있다. 2피트(약 60cm)짜리 메뚜기 화석, 다리 사이의 길이가 3피트(약 90cm)나 되는 독거미 화석, 60피트(약 18.3m)의 부들화석, 텍사스에서는 9피트(약 2.75m)키의 당나귀도 발견되었다. 이것들이 수백만 년 되었다고 말하지만, 아니다. 홍수 전에 살았던 것일 뿐이다.
기압이 높아지면 더 많은 기체가 물에 녹아 들어간다. 아가미로 물 안에서 호흡하는 물고기도 더 컸을 것이다. 오늘날 상어가 약 1인치(약 2.54cm) 길이의 이빨을 가지고 있다면 그 상어는 아마 15피트(약 4.5m) 정도의 길이가 될 것이다. 그러기에 발견된 상어 화석의 이빨은 상어가 이 지구에서 80피트(약 25m)의 길이로 자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보우 박사는 고압 산소실에서 초파리를 키웠는데 보통보다 10배 오래 살았다. 단지 기압만 높였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왔다. 에덴동산은 기압도 높고 햇빛도 걸러지고 자기장도 더 강했을 것이다. 에덴동산 이후로 적어도 이 세 가지, 아니 더 많이 잃어버렸을 것이다.
안데스산 해발 2마일에서 발견된 굴은 11피트(약 3.5m)의 길이에 600파운드(약 270kg)의 무게였다. 에베레스트산에서는 화석화된 조개를 발견했다. 이 조개들은 화석화 되었는데도 닫혀 있었다. 에베레스트산은 해변까지는 약 450마일(약 700km) 떨어져 있고 조개는 죽을 때 껍데기가 벌어진다. 어떻게 화석화된 닫힌 조개를 에베레스트산 위에서 발견할 수 있었을까? 홍수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홍수가 에베레스트산 위까지는 덮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는 에베레스트산은 아직 없었을 것이다. 시편 104편은 홍수 마지막에 산이 올랐다고 말한다. 홍수가 끝나갈 때 산이 형성되면서, 지표가 깨어져 열리면서 조각난 것들이 오르락내리락했던 결과일 것이다.
파충류는 절대 성장을 멈추지 않는다. 만일 파충류를 에덴동산에 놓고 900살까지 살게 놔두면 어떻게 될까? 아주 커다란 도마뱀이 될 것이다. 공룡은 홍수가 오기 전에 아담과 하와와 함께 살던 커다란 도마뱀이다. 지금 시대에 애완동물 가게에서 살 수 있는 이런 작은 잭슨 카멜레온이 15톤까지 자란다면 어떻게 생겼을까? 일종의 트라이세로톱 같을 것이다. 공룡은 ‘끔찍한 도마뱀’이다. 공룡은 인간 역사상 항상 같이 살아왔으며 이름이 달랐던 것뿐이다.
대홍수 전, 두발가인은 쇠 전문가… 채소와 씨 섭취는 완전식단
바그다드에서 발견된 이 배터리는 아스팔트로 만든 마개가 달린 점토 항아리모양으로 되어 있다.(출처: smith.edu 캡처)
[221호 / 창조이야기(30)]
본지는 창조론 전문가인 미국 켄트 호빈드 박사의 창조론 강의를 요약, 소개한다. 호빈드 박사의 강의는 성경을 중심으로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흥미롭게 설명하며, 진화론이 거짓 믿음 체계임을 명쾌하게 밝히고 있다. <편집자>
화석화된 인간 망치가 발견됐다. 사람들은 홍수 전에는 철이 없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 성경은 “두발가인은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라고 기록하고 있다. 홍수 전에 존재한 사람들도 금속과 철에 대해 알았다. 그들은 아주 머리가 좋았다. 그러나 학교는 ‘지층이 지구의 역사를 말해주고, 석탄기에 석탄이 만들어졌다.’고 가르친다. 하지만 이것은 모두 거짓이다. 석탄은 홍수 때 세상이 묻혔기 때문에 만들어졌다. 1881년, 미국 일리노이에서 채굴된 석탄 덩어리 안에서 금사슬이 발견됐다. 철 냄비도 석탄 덩어리 안에서 발견되고, 아연과 은으로 만들어진 장식품도 수백만 년 됐다는 암석 안에서 발견됐다.
아스팔트를 관통하는 철 막대는 구리 원통으로둘러싸여 있다. 식초 혹은 다른 전해질 용액으로
채우면 약 1.1볼 트를 생산할 수 있다.(출처: smith.edu 캡처)
이라크에서는 배터리가 발견됐다. 2000년의 세월이 흘렀을 것으로 예측되는 배터리다. 이들은 이미 옛날부터 전기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집트 사람들도 전기에 대해 알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전기도금을 하는지 알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떤 산에서 5500만 년 됐다는 용암 아래의 광도에서 자갈 갱까지 파내려 갔을 때, 그곳에서 인간이 사용하던 도구를 발견했다. 이에 대해 스미소니언의 홈스 교수는 이 연구자에 대해 “그가 인간 진화 이야기를 완전히 이해했다면 이 결론들을 발표하기를 주저했을 것이고 잇따른 반대 증언들에 맞서지 않아도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진화론에 부합하지 않는 그 내용을 발표하지 말아야 했다.”라고 덧붙였다.
분명한 것은 이처럼 멍청한 진화론에 아주 헌신된 사람들이 진화론에 반대되는 모든 것들에 대해 그들의 마음은 물론이고 가능하다면 인쇄물까지도 거부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진화론 방어는 거의 종교적 열심이다. 스미소니언은 진화론에 반대되는 증거들을 숨기는 일에 아주 큰 책임이 있다.
1950년대에 캐나다 국립 박물관의 토마스 리는 자갈 더미에서 상당히 개량된 석기를 발견했다. 문제는 6만 5000~12만 5000년으로 측정되는 자갈 더미였기에 캐나다에 인간이 있기에는 너무 오래된 유물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박물관 관장이 그것을 발견한 사람을 해고하기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했다.
수 톤의 유물들이 저장고에서 사라진다. 그런 발견들은 사장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 분야의 대부분의 책들이 다시 쓰이도록 강요될 테니까 말이다. 동전 하나가 일리노이의 우물 파던 사람에 의해 100피트(약 30m) 지표 아래에서 발견되었는데 전혀 분석되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홍수가 세상을 묻어버렸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홍수 전에 무엇을 먹을지도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완전한 식단을 주셨다. 하나님께서 채소를 먹으라고 하셨다. 과일과 씨도 먹으라고 하셨다(창 1:29). 과일을 먹을 때는 씨도 먹어야 한다. 이 씨들 안에는 비타민 B17이라는 비타민이 있는데 반은 청산가리다. 하지만 이건 독이 아니다. 수소는 폭발적이다. 산소는 연소를 도와준다. 이런 수소와 산소를 섞으면 물이 만들어진다. 나트륨은 독성이 있고 염소도 독성이 있다. 그러나 그 두 가지를 섞으면 소금이 된다. 완전한 양질의 식품이 된다. 이와 동일하게 씨 안에 있는 청산가리는 벤즈알데히드와 섞여 있다. 그 두 가지 모두 독이지만 섞어 놓으면 해롭지 않게 된다. 암세포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북부 파키스탄의 ‘훈자’라는 부족은 암에 걸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살구 씨에 있다. 훈자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살구 씨다. 암 환자 중에 영양요법을 받는 사람들의 생존률이 훨씬 더 높은데, 전형적인 의료 요법을 받을 때보다 생존 기회가 10배나 된다. 이 주제에 대해 많은 책이 있지만 그 중 제이슨 베일은 이렇게 말한다. “암을 치료하려면 살구 씨를 먹어야 한다. 암은 살구 씨를 먹는 사람의 몸 안에서 생존할 수 없다.” gnpnews@gnm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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