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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산책

에스라 1장 주석

by 은총가득 2021. 8. 1.

             제이콥 반 루, <고레스 대왕에게 예루살렘의 계획을 설명하는 스룹바벨>, 17세기 중반, 유화

 

 

고레스 왕의 조서 반포(스1:1-4)

 

 

중심내용

바벨론을 정복한 고레스 왕은 그의 재위 원년(BC 538년)에 유다 민족의 포로귀환과 성전 건축을 허락하는 조서를 반포함으로 예레미야를 통해 예언하신 말씀(렘 29:10-14)의 성취를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바, 스룹바벨이 인도한 제1차 귀환 내용을 소개한다. 

     

명제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다. 

 

설교목적

에스라서는 역대기서의 연장선상에서 유다의 멸망과 더불어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하셨던 유다의 회복이 70년의 바벨론 포로생활 이후에 어떻게 구체적으로 전개되는지의 내용을 바사 왕 고레스의 등장과 유다민족의 포로귀환 및 성전 재건을 허락하는 조서의 반포를 통해 기술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1장을 통해 스룹바벨의 지도하에 이루어진 1차 포로귀환의 내용을 소개함으로 언약성취에 신실하신 하나님과 세속사를 방편삼아 구속사를 성취하시는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의 주권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언약신앙관의 정립과 믿음의 인내를 가지고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면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섭리의존적인 신앙관을 확립하자.

 

Ⅰ. 도입 : 고레스 왕의 조서 반포와 유다의 회복

1. 에스라서는 역대기서의 연장이다. 바벨론에 의한 유다의 멸망과 포로생활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 속에서 처음부터 70년으로 제한되었다(렘 25:8-11). 그러므로 70년이 차면 유다는 바벨론 포로생활로부터 놓임을 받는다(렘 29:10-14).

2. 하나님께서는 70년의 섭리적 작정의 기간이 찼을 때, 바사의 고레스 왕을 등장시켜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시고 그를 통해 유다민족의 포로귀환과 성전 건축의 허락이 담긴 조서를 반포케 함으로써 일찍이 예레미야를 통해 약속하셨던 유다의 회복을 성취하신다.

3. 이 과정에서 에스라서는 스룹바벨과 에스라에 의한 2차례의 포로귀환 내용을 소개하면서 먼저 1-6장은 스룹바벨에 의한 성전 재건에 관한 기사를 다루고, 7-10은 에스라에 의한 범민족적인 영적 개혁 운동에 관해 기술한다. 특별히 본장(1장)에서는 스룹바벨의 주도하에 이루어진 1차 포로귀환 내용이 소개된다.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며 신적 언약은 때가 찰 때 반드시 성취된다.

              

Ⅱ. 전개 : 고레스의 조서 반포와 1차 포로 귀환 

 

A.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 반포(1-3) :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 허락

1. 조서 반포의 동기(1절) : 예레미야의 약속을 응하게 하기 위해(렘 29:10)

(1) 바사 왕 고레스에 의해 바벨론이 멸망당함(BC 539).

(2) 바사 왕 고레스의 즉위 원년(BC538)에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언약의 성취를 위해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심(1절).

① 하나님의 언약은 때가 찰 때 반드시 성취된다(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

② 바벨론의 멸망과 고레스의 등장은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역사의 결과다(단 2:11, 4:17, 롬 13:1/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

2. 고레스가 반포한 조서의 내용(2-3절절)

(1)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을 고레스에게 주셨음(2절상)

(2) 고레스를 명하사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라 명하심(2절하)

* (1)+(2)는 당시 고레스의 신하로 있던 다니엘의 영향으로 추정됨(단 6:28)

* 다니엘이 이사야의 예언에 근거해 고레스의 구속사적 사명에 대해 조언을 했을 것으로 추정함(사 44:28, 45:1-4, 13절)

(3) 포로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조서에 구체적으로 명시해 반포함(3절)

① 포로 귀환과 성전 재건의 허락은 다윗왕국의 회복에 대한 보증으로 작용

② 성전 재건은 하나님의 임재를 통해 신정왕국으로서의 영적 정체성이 회복되는 것을 의미함(하나님과의 언약 갱신의 의미 내포함)

# 성전의 실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의 내주를 통해 교회 가운데 임재하심으로 신약의 교회공동체는 메시아 왕국으로서 다윗왕국의 실체로 기능한다.

 

B. 현지 본토인들에 대한 명령과 반응(4-6절)

 

1. 유다의 포로 귀환에 따른 본토인들의 행동 강령에 대한 명령(4절)

(1) 귀환하는 유대인들의 필요(금/은/물품/가축)를 충분히 공급할 것(4절상)

(2) 성전 건축에 필요한 예물 공급해 줄 것(4절하)

 

2. 포로 귀환에 동참한 남은 자들(5절/사 10:20-22, 렘 23:3)

(1)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2) 이들은 하나님의 감동을 입은 자들로 1차 총화가 49,897명(스 2:64-65).

* 하나님은 어느 시대건 그 시대의 남은 자들을 통해 구속사를 경영하신다(왕상 19:18, 롬 11:4-6).

# 남은 자의 특징은 전통을 벗고 말씀을 신앙과 삶의 제1 규범으로 삼고 살아가는 자들로서 무익한 종의 신앙 자세를 추구함(막 7:6-7/눅 17:10). 내 신앙관은?

 

3. 본토인들의 반응(6절) : 은금과 물건과 가축과 보물과 예물로 기꺼이 도움

(1) 이는 출애굽 당시 하나님의 은혜로 애굽인들로부터 필요한 은금과 패물 및 의복을 공급받은 사실과 유사한 조치로서(출 12:35-36),

(2) 저자는 바벨론 포로귀환 사건을 과거 출애굽 사건의 연장선상에서 제2의 출애굽 사건과 동일한 맥락으로 해석하는 듯하다.

① 그런 의미에서 1차 출애굽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근거한 구원사건을 예표적으로 가리킨다면(유월절 어린양의 대속),

② 바벨론 포로귀환 사건은 2차 출애굽 사건으로서 다윗의 실체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에 근거한 보다 실제적인 구원사건을 시사한다(렘 23:5-8).

③ 포로귀환 이후 다윗언약에 근거한 다윗왕국의 재건이 가시적으로 실현되지 않았던 경우가 이런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다시 말해 신(新)다윗왕국의 정체성은 처음부터 가시적인 왕국이 아닌 영적 왕국으로서 곧 다윗의 후손과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그의 피 값으로 사신 바 된 교회공동체 곧 메시아 왕국으로 확인된다(눅 1:31-33, 행 20:28, 마 16:18-21).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의 최대 수혜자로서 구약언약의 총화와 면류관으로 작용한다.

       

C. 성전 기물의 반환 조치(7-11절)

 

1. 바벨론에 의해 탈취 당했던 성전 기명들을 반환 조치시킴(7-8절)

(1) 1-3차에 걸친 바벨론 침략으로 탈취 당했던 성전 기명에 대한 반환조치

(2) 책임자에게 기명들을 신전에서 꺼내 총독 세스바살(스룹바벨)에게 넘기게 조치

(3) 은금 기명들과 기타 기명들의 총계는 5,400개(11절상/2,499개+기타 2,901개)

① 기물들의 반환과 성전 안치는 성전 제의에 필수품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 재건의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② 기물의 반환은 성전 재건을 통한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가 회복되고 갱신된다는 구속사적 의미가 담겨 있음으로 바야흐로 다윗언약에 약속된 신(新)다윗왕국의 회복과 재건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계기로 작용함(실은 가시적 왕국X/영적 왕국O). 

 

2. 세스바살(스룹바벨)이 감동을 받은 남은 자들과 기물들을 가지고 귀국함(11절하)

* 하나님의 구속사는 어느 시대건 하나님의 남은 자들에 의해 운반되고 경영된다(왕상 19:18, 롬 11:4-6).

     

Ⅲ. 결론 : 바벨론 포로귀환은 역사의 주권자이신 하나님을 증거한다 

1. 에스라서는 바사 왕 고레스의 조서에 따른 1차 포로귀환과 성전 기물의 반환기사를 통해 성전 재건을 통한 신(新)다윗왕국의 회복이 구체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2. 따라서 기자는 포로귀환 백성들로 하여금 고레스 왕의 칙령대로 성전 재건과 신(新)다윗왕국의 재건에 최선으로 경주할 것을 촉구한다.

3. 이런 사실들을 통해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시며 신적 언약은 때가 찰 때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을 확증시켜 준다.

4. 그러므로 성도는 모름지기 영원불변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언약신앙관의 정립과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는 가운데 믿음의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섭리의존적인 신앙관 확립을 위해 최선으로 경주할 것을 강력히 요구받는다.

                                

하나님의 언약은 때가 찰 때 반드시 성취된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은 세속사를 방폄삼아 구속사를 성취해 가신다. 언약신앙관(계시의존적 신앙관)에 입각한 섭리의존적인 신앙관을 정립해야 하는 이유가 이런 사실에 근거한다. 이때 성도 측에 요구되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 성취의 때를 기다리는 믿음의 인내다. 이런 관점에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 백성들은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에 의해 약속된 하나님의 섭리적 작정 기간인 70년(렘 29:10)이 마치는 날을 믿음의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했다. 마침내 그 때가 도래한 것이다. 미래지향적인 주님의 재림과 관련해 현대교회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원리가 적용된다. cafe.daum.net/remnant7000/4BjD/211

 

 

70년 바벨론 포로의 마지막 해는 언제였는가?(스1:1)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에스라 1:1)

에스라는 유대인들이 포로 되어 70년을 있게 되리라는 예레미야의 예언의 성취로 고레스의 조서가 유대인들의 귀환을 허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렘 25:11-12, 29:10).

그러면 칠십년 바벨론 포로의 연대는 어떻게 산정할 것인가?  그 시작과 종결의 연대는 무엇인가?
바사 왕 고레스 원년은 주전 539년 10월 바벨론에 포로 후 니산 538년에 시작되었다.  고레스는 바사제국의 설립자로 가장 위대한 그리스의 왕으로 주전 559년에서 530년까지 다스렸다.  그는 550년에 메데를 정복하고 547-46년에는 리디아와 아나토리아를 정복하고 539년에 바벨론을 포획하였다.  그런데 다니엘서 1:1에 따르면 여호야김 제 삼년 605년에 유대인들의 첫 번째 추방이 있었다.  따라서 70년은 536년이 될 것이다(1).
  
그러나 정확하게 말해서 처음으로 포로 되어 간 때를 시발점으로 한다면 예루살렘의 멸망과 고레스의 조서 사이에는 칠십 년이 아니라 다만 48년이 경과했을 뿐이다.
  
따라서 어떤 학자들은 주전 586년 성전의 파괴에서 주전 516년 그 성전의 완전한 파괴때까지로 계산한다.  그러나 이것은 저자의 의도와 다르다.  그는 포로의 기간을 언급하고 있으며 고레스의 조서는 성전의 재건을 위한 책임에 관한 것이었다.

어떤 학자들은 칠십 년은 개략적인 수이거나 향년을 의미한다고 본다(P.R. Ackroyd).  그러나 70년은 바벨론의 지배를 가리키며 주전 612년에서 539년(니느웨의 멸망)을 가리킬 것이다.  어느 경우든지 대략 70년이 된다(2).


  그런데 70년을 포로의 정확한 기간으로 보는 입장에서는 두 가지 방법으로 그 예언의 성취를 설명한다.
첫째 방법은 유대인들이 처음으로 바벨론에 잡혀갔던 때 주전 605년을(단 1:1; 왕하 24:1) 포로의 시작 연대로 본다.  따라서 그 포로는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제이의 성전 공사를 시작했을 때 주전 536년 끝났다.
  
두 번째 산출 방법은 포로 칠십 년을 바벨론이 예루살렘을 파괴시킬 때 주전 586년에 시작해서 제이 성전의 건축이 완성된 때까지로 본다.

어느 해석을 취하든지 예레미야의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되었다.  따라서 영원하신 하나님은 개인의  운명이나 민족의 운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아시며 주권적으로 주관해 나가신다.

   주
   1. Edwin Yamauchi, Ezra, Nehemiah, E. B. C. Vol.4(Grand Rapdis: Zondervan, 1988), p.601
   2. F. Charles Fensham, The Books of Ezra and Neshemiah(Grand Rapids: Eerdmans, 1982), pp.42-43
   3. J. Carl Laney, Answers to Tough Questions(Grand Rapids: Kregel, 1997), p.94


세스바살은 스룹바벨과 같은 인물인가?(스1:8)

 

 "바사 왕 고레스가 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룻을 꺼내어 계수하여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붙이니"    (에스라 1:8)

바사 왕 고레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귀환시키면서 성전 재건을 돕기 위해 바벨론 느브갓네살 왕 때 탈취해 온 성전 기명들을 세스바살에게 주어 예루살렘으로 옮겨가게 하였다(주전 538).
  
그러면 여기서 세스바살은 누구인가? 그는 스룹바벨과 동일 인물인가?  그렇지 않으면 별개의 인물인가?
세스바살은 성전 기명을 예루살렘으로 옮겨갔을 뿐 아니라 성전의 기초를 놓아야 하는 책임도 있었다(스 5:14-17). 그는 바벨론 포로 후에 첫 유대의 총독이었으며 왕과 스스로 결정권이 없는 시대에 새로운 지도력의 형식을 안내하였다.  그러나 그밖에 별로 알려진 것이 없으므로 그의 이름, 신분, 역할 활동에 대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에스라 1서에서는 그를 칠십인 역에서 사사바살로 나오는 사나바살(Sanabassar)로 보며 조세프스는 세스
바살을 에스라 5:6에 나오는 스달보스네로 보았다.  따라서 그를 외국인으로 페르시아 관리로 생각하였다.  근래 학자들은 가끔 세스바살을 한 편으로는 역대상 3:18의 세낫살로 보는가 하면 다른 한편 스룹바벨과 동일시한다.  그것은 세낫살은 여고니야의 아들로 이름과 세스바살의 직위의 유사성에 근거한 이론이다.  유다의 왕자나 총독이라는 직위는 다윗의 상속자처럼 아주 중요한 인물을 가리킨다.  그런데 세낫살은 다윗의 후손이다.
  
또 다른 견해는 세스바살을 스룹바벨과 동일시하는 이론인데 이 이론은 성전의 기초에 대한 설명에서 나온 것으로 학개와 스가리야는 스룹바벨이 총독이요 주전 520년 성전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라고 강조해서 단언한다.  따라서 세스바살이 성전의 기초를 놓은 인물이라면 같은 사람을 가리켰을 것이다.  이렇게 스룹바벨과 세스바살이 같은 인물에 대한 두 다른 이름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은 포로 후기에 가끔 한 사람이 두 개의 이름을 가지는 경우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룹바벨도 고레스에 의한 성전 기명을 가져온 사람이요 학개, 스가냐 그리고 에스라, 느헤미야에 따르면 역시 유다의 왕자로 기초를 놓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다윗의 후손으로 그는 그런 역할에 적임자였다(1).
  
다니엘의 궁정 이름은 벨드사살이었다(단 1:7).  따라서 세스바살은 스룹바벨의 궁궐 이름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이름을 정말 세스바살의 궁정 이름으로 받았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른 이론은 세스바살은 스룹바벨의 양아버지 스알디엘의 궁정 이름이라고 주장한다. 스알디엘/세스바살
이 바벨론 총독에 의해 이 직위에 임명되었으며 이 직위는 스알디엘/세스바살이 죽은 후에 스룹바벨에게 전가되었다고 한다.  에스라 5:16은 하나님의 전의 기초를 놓은 자는 세스바살이었다고 언급한다.  에스라 3장은 이 기초를 놓는데 참여한 세스바살의 이름을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스알디엘/세스바살 그리고 스룹바벨이 아버지/아들 팀으로 함께 이 공사에 참여했으며 세스바살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설의 약점은 예루살렘의 동사 총독으로 두 사람이 활동했다는 어떤 암시도 없다.  또 세스바살이란 이름은 스룹바벨과 함께 돌아온 사람들에 대한 에스라 2장의 긴 명단에 언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결론할 수 있다.
만일 세스바살이 스알디엘과 한 사람이었다면 그는 기초를 놓은 후에 곧 죽었을 것이다. 만일 세스바살과 스룹바벨이 한 사람이었다면 그 궁정 이름은 단순히 떨어지고 부모가 지어준 이름 스룹바벨이 보유되었을 것이다(2).
  
그러나 묵시문학인 에스드라일서 6:18에서는 성전 기명들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며 세스바살과 스룹바벨 두 사람에게 맡겨졌다고 하였다.
  
만일 이 설을 지지한다면; 세스바살은 그의 조카 스룹바벨보다 앞섰을 것이다.  세스바살은 고레스에 의해 임명되었다(스 1:8; 15:14).  그러나 주전 537년 돌아온 후에 곧 죽었을 것이다.  아마도 세스바살의 조카 스룹바벨이(대상 3:17-19) 그의 삼촌에 의해 빈 그 자리에 등용되었을 것이며 총독이라는 직위를 받았을 것이다(학 1:1, 14; 2:2,21).  이 견해는 두 사람이 주전 536년 성전 기초를 놓는데 협력한 사실로 지원 받는다(스 5:16; 슥 4:9). 다만 스룹바벨이 이십년후에 그 공사를 완성하였다(학 1:1, 12; 슥 4:9)(3). 따라서 어떤 해석을 취하던지 난제는 풀린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오류가 있다든지 모순이 있다고 주장할 수 없다.


            귀스타브 도레, <고레스가 성전의 기물들을 돌려주다> 일부, 1866, 판화, 개인 소장

 

 

에스라 1장

 

●고레스 왕의 선포(에스라 1:1-4)

 

여기에서 우리가 다음의 몇 가지를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

1. 포로가 되어 바벨론에서 살고 있는 유대인의 형편. 여러 가지 면에서 보아 그 형편은 비참한 것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을 미워하는 세력에 눌려 있었고, 자기들의 소유물이라고는 아무 것도 가지지 못했다. 즉 성전도 제단도 없었다. 그들이 시편을 노래하면, 원수들은 그것을 비웃었다. 그러나 예언자들만은 있었다. 에스겔과 다니엘은 이방 종교에 물들지 않은 자들이었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궁정에서 지내기도 했고, 또 어떤 자들은 안정된 생활도 했다. 그들은 모두가 때가 되면 자기 나라로 다시 돌아가리라는 열렬한 희망을 안고 있었다. 그래서 그러한 기대 속에서 저들은 자기들의 가문을 구별되이 지켰고 자기들의 신앙에 대한 지식을 간직했으며 우상 숭배를 증오할 수 있었던 것이다.

 

2. 저들의 정치적 형편은 어떠했는가? 느브갓네살왕은 많은 이스라엘인들을 그의 통치 원년-이것은 여호야김 4년에 해당한다-에 포로로 잡아갔다. 그는 45년 간을 통치했고, 그의 아들 에빌메로닥이 23년 간을 통치했고, 그의 손자 벨사살이 3년간을 통치했다. 그러므로 이 연대는 모두 70년이 된다. 이것은 라이트푸트 박사의(Dr. Lightfoot) 계산이다. 그러므로 느브갓네살은 "사로잡힌 자를 그 집으로 놓아 보내려 했다" 는 비난을 받았다(사 14:17). 다니엘은, 느브갓네살왕이 불쌍한 유대인들에게 자비를 베풀었다면, "그의 평안이 그에게 장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단 4:17). 그러나 바벨론의 죄악의 그릇이 다 차게 되자, 메대 사람 다리우스와 바사(페르시아)사람 고레스를 통하여 그들에게 파멸이 임하였다. 우리는 이것을 다니엘 5장에서 읽을 수 있다. 다리우스가 늙게 되자, 고레스에게 정권이 넘어갔다. 고레스는 유대 백성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도구로 쓰이게 되었다. 그는 느브갓네살과는 대조적으로, 바벨론 왕국의 주인이 되자마자 느브갓네살의 가족을 제거하고 유대 민족의 해방을 선포했다. 그 이유는 아마 느브갓네살이 이루어 놓은 업적을 없애고자 했든지, 정책적으로 자기의 새로운 통치권은 자비롭고 평화적이라는 점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든지, 혹은(혹자가 생각하듯이) 150년 이상이나 잘 알려져 왔던 이사야의 예언에 경건한 관심을 보였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 예언에 보면 고레스는 분명히 하나님을 위해 이 일을 해야 할 사람으로 이름이 나타나 있고, 하나님은 그로 말미암아 큰 일을 행할 것이(사 44:28; 45:1) 나타나 있다. 그의(혹자의 말에 의하면) 이름은 바사어로 "태양"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교회에 빛을 가져다 주었고 치유를 주었다. 그리고 그는 "의의 태양" 이신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뚜렷한 모형 인물이 되었다. 어떤 사람은 그의 이름은 "아버지" 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그리스도는 곧 영원한 아버지라고 말한다.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몇 가지 내용을 살펴보자.

 

Ⅰ. 이러한 선포가 있게 된 근원은 무엇인가? "여호와께서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 시키셨다고 했다. 제왕들의 마음도 여호와의 손에 달려 있으며, 흐르는 시냇물과 같이 하나님은 당신이 뜻하는 대로 어느 길로든지 그들의 마음의 방향을 돌리신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고레스는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또 섬기는 방법도 몰랐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아셨고 그를 통해 역사하실 방법도 아셨다(사 44:4). 하나님은 사람들의 마음을 통해서 세상을 지배하시며, 어느 때에 어떤 선한 일이 일어나든 그 일을 하도록 마음을 감동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즉 하나님은 인생들의 마음에 생각을 두시고, 옳은 판단을 할 수 있는 이해력을 주시며, 당신이 기뻐하시는 뜻을 보여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행해지는 선한 일은 그 어느 때 무엇이든지 간에, 하나님께만 그 일의 영광을 돌려야 한다.

 

Ⅱ. 이 사건은 예레미야의 예언과 관계되어 있다.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은 그들이 돌아올 것을 약속했을 뿐 아니라, 시온이 받을 은총의 시간도 확정하셨다. 정해진 기간은 70년이었다(렘 35:12; 29:10).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시겠다고 하셨던 약속을 지키신 그 분은(출 12:41) 이번에도 역시 틀림없이 약속을 지키실 것이다. 고레스가 지금 행한 이 일은 오래 전에 말했던 "하나님의 종들의 말씀을 응하게" 하는 것이다(사 44:26). 살아있는 동안은 예레미야가 증오와 멸시를 받았다. 그러나 능력 있는 한 군주가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나온 여호와의 말씀을 성취시키는 행동을 취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니, 그것은 예레미야가 죽은 지 오랜 후에도 하나님의 섭리가 그를 영예롭게 했기 때문이다.

 

Ⅲ. 이 선언이 발표된 시간. 그 시각은 고레스왕의 출생국인 바사 통치 원년이 아니라, 그가 정복한 왕국인 바벨론 통치 원년 때였다.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하나님과 함께 일을 시작하게 되고 그 일을 시작한 첫 해부터 하나님을 섬기게끔 된 자들은 대단히 영예로운 자들이다.

 

Ⅳ. 그 선포는 이렇게 하여 되었다. 입으로 전해졌다(그는 마치 회년 나팔소리와 같이, "그의 온 나라에 소리를 전파하게" 했다. 즉 불행했던 여러 해가 지난 후 즐거운 안식이 왔으며, 여러 해 동안의 포로들에게 자유를 준다고 선포케 했다). 또한 글로도 선포했다. 즉 그는 그 선포를 더욱 만족스럽게 전하고, 열 지파가 흩어져 살고 있는 앗수리아와 메데와 같이(왕하 17:6) 멀리 떨어져 있는 지방에도 전해지게 하기 위한 것이다.

 

Ⅴ. 이 해방 선포의 요지는 무엇인가?

 

1. 이 선언의 전문(前文)에는 그 영향을 받은 동기와 주안점이 나타나 있다(2절).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여호와(그가 하나님을 그렇게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에 대한 지식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즉 그 하나님은 유일하시고 "살아 계신 참 하나님", "하늘의 하나님" 이라는 것을 알았다. 또 그 하나님은 만주의 주요 "세상 만국을" 배정하시는 분이심을 알았다. 또한 그는 "그가 참 하나님", 곧 홀로 뛰어나신 하나님이라고 말했다. 그가 비록 교육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지는 못했지만, 하나님께서 이처럼 당신을 그에게 나타내시사, 그가 하나님을 마음에 두고 이런 일을 하도록 만드셨다. 그는 두 가지 이유로 이 일을 행한다고 고백하고 있다.

 

(1) 하나님이 자기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기 때문이다.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조금 지나친 자랑으로 보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세상에는 그가 다스리지 못하는 "많은 나라들" 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느브갓네살왕에게 주셨던 모든 나라를 자기에게 주셨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의 영토가 "땅 끝까지" 미쳤다고 말했다(단 4:22; 5:19). 하나님은 권세의 근원이시오, 세상 나라는 그의 장중에 있다는 사실을 유의하자. 그러므로 어떤 자가 어느 나라를 차지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난 일이다. 또 하나님이 큰 권세와 많은 재물을 맡겨 준 사람들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2) 하나님께 순종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나를 명하사 유대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다" 고 했다. 아마 밤에 꿈이나 환상을 통해 이 말씀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그 말씀은 이사야의 예언과 비교해 보면 일치하는 것이다. 이사야서에 보면, 그가 이 일을 하리라는 것이 예고되어 있다. 이스라엘은 종종 하나님의 분부에 불복종했다는 사실을 지적받았다. 그것은 이제 이 이교도인 한 왕의 복종으로 인하여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

 

2. 그는 자기 통치 아래 있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거기서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자유를 준다고 했다(3절). 하나님에 대한 배려 때문에 그는 다음과 같은 일을 간과해 버렸다.

 

(1) 그의 정부의 세속적 이익을 간과했다. 유능한 많은 사람들을 자기 나라 안에 유치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그의 정책이었을 것이며, 이제 그들로 하여금 자기 나라를 떠나 그들 본국으로 돌아가 뿌리를 박게 한다는 것은 실책으로 생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심은 최선의 정책이 된다.

 

(2) 자기 나라의 종교의 위신을 무시했다. 왜 그는 바벨론이나 바사의 신들을 위해 전을 세우라고 명하지 않았던가?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하늘의 신" 이라는 것을 믿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로 하여금 오직 그분만 섬기라고 했다. 그들로 하여금 "그들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의 행하게 하라."

 

3. 그는 가난하거나 자기들의 재산을 가지고 갈 수 없는 자들의 비용을 부담하기 위해서 모금을 하라는 훈령을 하기를 "현지에 남아 있는 자들은 예루살렘에다 자기의 부담을 지불할 방도가 없으니,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이 그들을 돕도록 하라" 고 했다. 혹자는 이 말을 6장 8절에 있는 말과 같이, 왕이 관리들에게 왕의 세입에서 그들을 위해 쓸 물건을 공급하라고 명령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것은, 그 포로민들이 왕의 사랑하는 모든 백성들로부터 의연금과 자선비를 요구하여 받으라고 명령하는 영장일지 모른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그들의 이웃들에게 대단히 잘 해주었기 때문에 그들이 자진해서 유대인들에게 희사물을 내었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적어도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정부가 유대인에게 좋은 대우를 하는 것을 보고서 자신들도 친절했을 것이다. 고레스는 떠나는 자들에게 선한 축원을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의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를 바라노라" 3절), 그들에게 필요한 물건들도 공급하는 배려를 해주었다. 그는 유대인들 중에서 능력 있는 자들이 "하나님의 전 재건을 돕기 위해(자원하는) 예물을" 바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외에도 자기 나라의 국고에서도 그들에게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했다. 성전에 대해서 호의를 보이는 사람들은 또한 성전을 위해 좋은 행위를 해야 한다.

 


고레스의 선언(에스라 1:5-11)

 

우리는 여기서 다음의 내용을 본다.

Ⅰ. 고레스의 선포는 다른 면에서도 성공을 가져왔다.

 

1. 그가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하자.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올라갔다(5절). 그 지도자들은 유대와 베냐민의 "족장" 들, 곧 재능이 탁월하고 경험이 많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형제들보다 높은 권위에 있었기 때문에, 의무 이행에도 다른 형제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것은 마땅히 예상되는 바이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시온을 향하여 얼굴을 돌린 첫 사람들이었다. 어떤 선한 사업이든 그것을 성취시키고자 한다면, 사역자들로 지도자를 삼으라. 제사장들 레위인들과 더불어 동반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올라갈 마음을 주신 사람들이었다. 이 해방을 선포하도록 고레스의 마음을 움직이신 바로 그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도 움직여 그 해방의 혜택을 취하도록 하셨다. 그것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만군의 주의 영으로 되기" 때문이다(슥 4:6). 어떤 자들에게는 바벨론에 머물고자 하는 유혹이 컸을 것이다. 그들은 거기에 안전하게 정착했고, 그 이웃과 마음도 맞았다. 그래서 그들은 "여기가 좋사오니" 라는 말을 할 정도가 되었을 것이다. 그들이 돌아가려는 용기를 막는 것들이 많았고 또 컸을 것이다. 그 여행은 길고, 그들의 처자식들은 여행에 익숙치 못했으며, 그들의 고향 땅은 오히려 그들에게 낯선 땅이 되었고, 그리고 가는 길도 알지 못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라! 그리고 거기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 땅은 모두 폐허가 되었고, 자기들을 쉽게 희생시킬 수 있는 그런 원수가 사면에 둘러선 땅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런 생각 때문에 바벨론에 머물거나 적어도 먼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려고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자들은 이런 어려움을 극복하고 얼음을 깨뜨리고 나아가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들은 자기들의 노상에 있을 사자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이 마음을 감동시킨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성령과 은총을 통해서, 커다란 야망을 그들에게 채워주셨고, 자유에 대한 자기들의 땅에 대한 아름다운 애착을 가지게 하셨으며, 자기들의 신앙에 입각하여 자유롭고 공공연히 예배를 드리고자 하는 욕망을 가득 채워 주셨다. 만일 하나님이 그들을 그들 멋대로 버려 두시어 그들의 육정을 따르게 하셨더라면, 그들도 바벨론에 머무르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에 시온을 향하는 마음을 두셨고, 이방 나그네들처럼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을 묻는 마음을 주셨다(렘 1:5). 그들은 새로운 세대였기 때문에, 그들의 조상 아브라함이 갈대아를 떠나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난 것과 같은 형편에 놓였다(히 11:8). 우리가 무슨 선한 일을 하든지,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 때문이요, 그가 그 일을 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우리에게 의욕을 주시고 또 일을 행하도록 역사해 주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은 본성적으로 이 땅을 향해 있고, 이 땅의 것들을 좋아하게 되어 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위로 향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하심이다.

 

복음의 초청도 고레스의 선언과 같다. "포로된 자에게 해방을 선포한다" (눅 4:18). 죄의 불의한 지배 아래 얽매인 자들, 의로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유롭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회개와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께 대한 의무로 돌아가며 하나님 안에서 행복을 누리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길을 여셨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죄의 노예 상태에서 떠나 "하나님의 자녀의 영광스러운 자유" 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초청은 누구에게나 해당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주셨고" (고레스에게 준 권세보다도 훨씬 큰 권세이다. 2절), "하나님의 전을 세울" 책임, 곧 세상에 교회를 세우는 일, 사람들 가운데 나라를 세우라는 책임을 주셨다고 밝히셨다.

 

이 기쁜 소식을 듣고도 여전히 바벨론에 머물기를 택한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죄를 사랑하는 자들이요 거룩한 삶을 위해 난관을 극복하려는 모험을 하지 않고자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실망되는 모든 일들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전을 세우기로" 작정하며,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신앙의 나라를 만들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어" 세상과 육신에서 벗어나게 하신 자들이요, "주의 권능의 날" (시 110:3)에 기꺼이 들어 세우실 자들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멸망하더라도, 하늘의 가나안은 충분히 보충될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 고레스가 유대인들의 이웃 족속들에게 그들을 도우라는 명령을 하자, 그들은 그대로 행했다(6절). 유대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여행을 돕기 위해 물품을 공급했고, 그들의 집과 하나님의 전을 세우는 일을 돕기 위해 또 물건들을 공급했다. 모세의 성막이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노획물로 세워졌고, 첫 번째 성전이 이방인 노동자들로 말미암에 건축되었듯이, 둘째 성전은 갈대아인들의 헌물들로 채워졌다. 이 모든 사실은 때가 오면 이방인들도 교회로 들어가리라는 사실을 시사해 준 것이다. 하나님은 그가 원하시는 곳에서는 이방인들의 마음을 움직여서라도 언제나 자기 백성에게 친절을 베풀게 하시며, 그들이 약하게 했던 자들의 손을 그들을 통해 다시 강하게 하실 수 있다. "땅이 그 여인을 도왔다" 고 했다. 함께 오지 아니하고 뒤에 남아 있었던 유대인들이 하나님과 그의 전을 향한 사랑으로 헌물을 바친 것 외에도, 혹자가 말한 바와 같이, 설명할 수 없는 신의 권능으로 마음에 감동을 받은 바셀론 사람들이 바친 헌물도 많았다.

 

Ⅱ. 고레스 자신이 이 선언을 지원했다. 하나님의 전에 대한 자기의 사랑의 진실성을 보이기 위해,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해방했을 뿐 아니라 성전의 그릇들을 되돌려 주었다(7, 8절). 여기서 다음의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하나님은, 성전의 기구들이 상실되거나 녹혀져 다른 기구들과 혼합되어 분별할 수도 없게 되도록 버려두지 않고, 모두 그대로 내어 놓을 수 있도록 그 기구들에 대해 용의주도한 섭리를 나타내셨다. 하나님은 살아있는 "자비의 그릇", "존귀한 그릇" 에 대해서도 그러한 배려를 하신다. 그러므로 그 사실에 대해서 "주께서는 자기 백성을 아시고 그들이 하나도 멸망하지 않도록 지키신다" 고 말하고 있다(딤후 2:19, 20).

 

2. 비록 그 기구들이 우상의 신당에 놓여 있었으며, 어쩌면 우상 섬기는 일에 사용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이 하나님을 위해 쓰일 수 있도록 되돌아오게 하신다. 하나님은 당신의 것을 되찾으실 것이다. 무장한 군사에게서 빼앗은 노획물은 그 정복자를 위해 쓰이게 될 것이다.

 

3. 유다는 포로 상태에 있으면서도 방백을 가지고 있었다. 

스룹바벨과 동일한 인물로 생각되는 세스바살이 여기에서 "유다 목백(牧伯)" (영어로는 방백)이라 불리었다.

갈대아인들은 그를 "세스바살" 이라고 불렀는데, 그 말은 "시련 속의 기쁨" 이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 중에서는 "스룹바벨" 이라고 불리었는데, 그 의미는 "바벨론의 나그네" 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 자신도 그렇게 생각했고, 요세푸스(Josephus)가 말한 바와 같이, 비록 그가 바벨론 왕국의 시위 대장이었지만 예루살렘을 자기 고향으로 생각했다. 그는 유대인들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돌보았다. 아마도 자기를 다윗집에 속한 자로 고용했던 여호야김이나 여고니야가 죽은 후부터 자기 백성들에게 어떤 권위를 행사하게 되었을 것이다.

 

 

4. 성전 기구들이 계수되었다(8절). 그리고 세스바살은 그것들을 예루살렘으로 안전하게 운반하기 위한 조처를 취했다(11절). 성전이 건축되면 그 안에 비치할 많은 기구를 가지게 되자, 그들은 성전을 세울 용기를 얻게 되었다. 성소의 기물들처럼, 하나님의 규례가 비록 신약 성서의 바벨론에 의해 부패되고 속되게 될는지는 모르나, 때가 되면 그것들은 그들의 본래의 의미와 본래적 위치로 회복될 것이다. 하나님의 제도 중 극소량이나 극미한 것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할 것이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벤데만, 바빌론 유수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감동시키심(스1:1-11)

 

[1-4절]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바사 왕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매 저가 온 나라에 공포도 하고 조서도 내려 가로되 바사 왕 고레스는 말하노니 하늘의 신 여호와께서 세상 만국으로 내게 주셨고 나를 명하사 유다 예루살렘에 전을 건축하라 하셨나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참 신이시라. 너희 중에 무릇 그 백성된 자는 다 유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거기 있는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라. 너희 하나님이 함께하시기를 원하노라. 무릇 그 남아 있는 백성이 어느 곳에 우거하였든지 그곳 사람들이 마땅히 은과 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으로 도와주고 그 외에도 예루살렘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예물을 즐거이 드릴지니라 하였더라.

 

바사 왕 고레스 원년, 즉 주전 537년경에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시려고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그가 온 나라에 공포하고 조서를 내려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허락했다. 이것은 역대하 36:21-22에도 언급된 바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방나라의 왕인 고레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 

 

예레미야의 입으로 하신 말씀은 예레미야 25:12-13에 기록된 예언을 말한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70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 바 곧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라.” 

 

고레스는 여호와 하나님을 “하늘의 신 여호와”라고 불렀다. ‘하늘의 신’이란 하늘에 계신 하나님(단 2:19, 28, 37, 44), 지극히 높이 계신 하나님, 하늘과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바람과 비와 눈, 특히 폭풍과 폭우와 폭설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번개와 천둥과 벼락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가리킬 것이다. 

 

고레스는 그 하나님께서 세계 만국을 그에게 주셨다고 증거하였다. 이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지식이며 하나님 신앙이다. 그가 어떻게 이런 놀라운 믿음과 지식을 가지게 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그는 확실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께서 천지의 주관자이심을 아는 자이었고 그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이었다. 

 

더욱이, 그는 유대 땅 예루살렘에 성전을 건축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참 신이라고 고백하였다. 이것은 그에게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과 믿음이 있었음을 보인다. 또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귀국을 허락하고 오히려 권면하였다. 이 모든 일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5-11절] 이에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가 다 일어나니 그 사면 사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즐거이 드렸더라. 고레스 왕이 또 여호와의 전 기명(器皿)[그릇들]을 꺼내니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자기 신들의 당에 두었던 것이라. 바사 왕 고레스가 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그릇을 꺼내어 계수하여 유다 목백[방백] 세스바살에게 붙이니 그 수효는 금반이 30이요 은반이 1천이요 칼이 29요 금대접이 30이요 그보다 차한[못한] 은대접이 410이요 기타 기명이 1천이니 금, 은기명의 도합이 5,400이라. 사로잡힌 자를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 때에 세스바살이 그 기명들을 다 가지고 왔더라.

 

고레스의 칙령에 따라, 유다와 베냐민 족장들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무릇 그 마음이 하나님께 감동을 받고 올라가서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을 건축코자 하는 자들이 다 일어났고 그 주위의 사람들이 은그릇과 황금과 기타 물건과 짐승과 보물로 돕고 그 외에도 예물을 즐거이 드렸다. 고레스 왕은 또 여호와의 전 기명(器皿)[그릇들]을 꺼내었는데 그것은 옛적에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옮겨다가 그의 신들의 당에 두었던 것이다. 바사 왕 고레스는 창고지기 미드르닷을 명하여 그 그릇을 꺼내어 세어 유다 목백 세스바살에게 맡겼다. 그들이 돌아올 때 세스바살은 그 그릇들을 다 가지고 왔다. 

목백(나시)[방백] 세스바살이 누구인지 에스라서가 분명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5:14에서 그를 ‘총독’(페카)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그는 스룹바벨을 가리킨 것 같다. 학개 1:1은 스룹바벨을 유다 ‘총독’(페카)이라고 불렀다. 

 

본장은 몇 가지 교훈을 준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에서 해방되어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방나라의 왕 고레스를 감동시키셔서 가능하게 하셨다. 그는 세계 만국을 그에게 주셨고 유다 백성을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고 성전을 지을 여건과 마음을 주셨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예언하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는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70년 후에 포로 귀환이 있을 것을 예언하셨고 때가 되어 이제 그 예언을 이루셨다.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영광의 천국과 영생의 복된 삶의 약속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고 확신하자.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신이시며 참 신이시다. 사람들은 세상에서 땅에 속하여 살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계시며 세상을 초월하신 지극히 높으신 신이시다. 그는 온 세상의 창조자시요 섭리자이시다. 그는 홀로 해와 달과 별들을 주관하시고, 바람과 비와 눈, 폭풍과 폭우와 폭설을 주관하신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한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으셔야 마땅한 하나님이시다. 바사 왕 고레스의 말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섬김을 받으셔야 마땅하다. 그는 진심으로 그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요 4: 23). 그는 찬송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계 5:12-13).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경배하며 찬송하고 기도하고 순종하자. www.oldfaith.net 

https://cafe.daum.net/correcttheology/1EsX/54?svc=cafeapi

 

 

 작자 미상, <에스라의 성전 재건>, 1913, The story of the greatest nations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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