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8:23절-21:26절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이야기이다. 18장 22절까지 바울은 2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안디옥으로 내려와 있었다.
‘바울은 가이사랴에서 내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교회에 문안한 뒤에, 안디옥으로 내려갔다.’ (18:22)
18장 22절에서 2차 전도여행이 끝났고 18장 마지막 절인 23절에서 곧바로 3차 전도여행이 시작된다. 한 절 차이다. 3차 전도여행의 출발점 역시 안디옥 교회인데 안디옥에서 떠남으로 갈라디아 지방과 부르기아 지방을 다니며 신도들을 굳게 했다고 한다. 개척 교회들을 찾아가고 또 찾아가 이들을 위로하고 또 새로 받은 은혜들을 나누며 믿음을 굳건히 하도록 돕는 모습이다.
‘바울은 얼마 동안 거기에 있다가 그 곳을 떠나, 갈라디아 지방과 부르기아 지방을 차례로 여기저기 다니면서, 모든 신도를 굳세게 하였다.’ (18:23)
여기에 아볼로라는 사람이 나온다. 그가 에베소에 왔는데 거기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 성령 세례를 받는 모습이다. 그는 예수 복음에는 열심이었지만 성령 세례에 대해서는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그를 따로 불러 성령 세례에 대해 알려 주었고 바울에게서 배운 하나님의 도를 자세하게 알려 주었다. 그리고 그가 원하는 선교사 파송도 이루어진다. 그는 고린도가 있는 아가야 지방으로 파송 받기를 원했고 에베소 교회는 그를 기꺼이 파송해 주었다.
두란노 서원
여기서 배우는 것은 개척한 선교지를 다시 방문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된다. 아무리 열성이 있고 예수를 전한다고 해도 복음의 본질을 모르면 아볼로와 같은 절름발이 복음을 전하게 된다는 것이다. 성령 세례까지 알게 된 아볼로는 양 날개를 달았고 고린도로 파송되어 가서 ‘성경을 바탕으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언하면서, 공중 앞에서 힘 있게 유대 사람들을 논박했다’(18:28)
아볼로가 고린도로 파송되어 가 있는 동안 바울 선교팀은 ‘소아시아의 북부지방(높은지역)을 지나, 에베소에 이르렀다.’ 아볼로가 떠난 뒤다. 그리고 아굴라와 브리스길라가 그곳에 있을 때였다. 여기서 북부지방(높은 지역)은 갈라디아 지방과 부르기아 지방을 말한다.
거기에서 그는 몇몇 제자를 만나서 성령을 받았느냐고 물으니, 그들은 성령이 있다는 말을 듣지도 못했다고 대답하였다. 바울이 다시 어떤 세례를 받았느냐고 물으니 ‘요한의 세례’를 받았다고 대답했다. (19:2-3) 아볼로와 같은 사람들이 예수를 전하고 있을 때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바울 사도는 이방인 지역 곳곳을 다니며 성령에 관해서 가르쳐야 하는 막중한 소명을 띈 사도였다.
바울은 ‘요한은 백성들에게 자기 뒤에 오시는 분, 곧 예수를 믿으라고 말하면서,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습니다.’(19:4)고 가르쳐 주면서 이들 제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 주었다. ‘바울이 그들의 머리 위에 손을 얹으니, 성령이 그들에게 내리셨다. 그래서 그들은 방언으로 말하고 예언을 하였는데, 모두 열두 사람쯤 되었다.’ (행 19:6-7)
바울은 그래도 믿지 않고 비난하는 회중을 떠나 이 예수의 도를 알고자 하는 이들을 모아 ‘두란노’ 학당에서 매일 모임을 가졌다고 하는데 바울의 설교는 우리가 주일날 교회에서 듣고 보는 그런 설교가 아니었다. 보통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장장 5 시간이나 계속되는 설교였다고 한다. 30분 설교도 조금만 길어지면 길다고 아우성인 현대 교회의 모습과 대조된다.
사도 바울의 사역은 예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예수로 물든 사람들의 공통된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손을 빌어서 비상한 기적들을 행하셨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이 몸에 지니고 있는 손수건이나 두르고 있는 앞치마를 가져다가, 앓는 사람 위에 얹기만 해도 병이 물러가고, 악한 귀신이 쫓겨 나갔다.’ (19:11-12)
‘사도들의 손을 거쳐서 많은 기적과 놀라운 일들이 백성 가운데서 일어났다.’ (5:12) ‘심지어는 병든 사람들을 거리로 메고 나가서, 침상이나 깔자리에 눕혀 놓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 그림자라도 그들 가운데 누구에게 덮이기를 바랐다. 또 예루살렘 근방에 있는 여러 동네에서 많은 사람이, 병든 사람들과 악한 귀신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데리고 모여들었는데, 그들은 모두 고침을 받았다.’ (5:15-16)
성령 하나님의 사람들이 복음을 전할 때 나타나는 모습이다. 성령님의 능력이 나타난다. 우리가 이집트에서 전도여행을 할 때 말씀 증거와 간증을 마치고 나면 꾸역꾸역 강단 앞으로 몰려온 사람들이 그들의 아픈 부위를 내 보이며 우리들에게 손을 대고 기도해 주기를 바라던 원주민들의 모습도 눈에 선하다. 서로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우리 가운데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아무런 힘도 없고 의술도 없는 우리들의 손을 빌어 성령님께서 역사하여 주심을 보았다. 지금도 이런 간절함이 있는 곳에는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심을 확신한다.
또한 복음을 들은 사람들의 모습도 눈에 띈다. 복음을 듣고 깨달은 사람들은 예수가 구세주임을 알게 되었고 구원받기 위해 그들이 해야 할 첫 번째 일이 무엇인지도 알았다. 구원받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첫 반응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일이다. 그리고 자기들의 죄인 된 생활을 청산하는 것이다.
‘이 일이 에베소에 사는 모든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에게 알려지니, 그들이 모두 두려워하고, 사람들은 주 예수의 이름을 찬양하였다. 그리고 신도가 된 많은 사람이 와서, 자기들이 한 일을 자백하고 공개하였다. 또 마술을 부리던 많은 사람이, 그들의 책을 모아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살랐다. 책값을 계산하여 보니, 은돈 오만 닢에 맞먹었다.’ (19:17-19)
예수님이 사역하실 때 베드로의 모습도 기억난다.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깊은 데로 나가거라. 너희는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 시몬이 대답하기를 "선생님, 우리가 밤새도록 애를 썼으나, 아무것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말씀에 따라 그물을 내리겠습니다" 하였다. 그런 다음에, 그대로 하니, 많은 고기 떼가 걸려들어서,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자기들을 도와 달라고 하였다. 그들이 와서, 고기를 두 배에 가득히 채우니, 배가 가라앉을 지경이 되었다. 시몬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예수의 무릎 앞에 엎드려서 "주님, 나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나는 죄인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눅 5:4-8)
사도바울의 에베소의 사역으로 에베소 사람들이 믿고 있던 아데미 여신의 존재가 위태롭게 되었고 신전 제사장들이 들고일어나 바울 사도는 더 이상 에베소에 머무를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에베소를 떠나게 되는데 이 역시 하나님의 뜻임을 깨닫는다. 한 곳에 오래 머물고 있으면 나태해지기 쉽고 하나님의 복음보다는 초점이 점점 주위 사람들에게로 쏠리게 되고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
에베소의 소동으로 다른 사역지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 주신다.
바울 사도는 아시아 지역에 있는 에베소를 떠나 마케도니아로 건너가셨다. ‘그 때에 그와 동행한 사람은, 부로의 아들로서 베뢰아 사람인 소바더와, 데살로니가 사람 가운데 아리스다고와, 세군도와, 더베 사람 가이오와, 디모데와, 아시아 사람 두기오와, 드로비모였다.’ (20:4) 그리고 이름이 나오지 않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우리 중 한 사람인 누가가 있음을 안다. 모두 적어도 9명의 선교팀이 움직이고 있다.
바울은 유럽 일정을 마치고 오순절까지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바빠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된다.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 다시 배를 타고 아시아 지역으로 와야 하는데 시간을 지체하지 않으려고 에베소 교회에는 들르지 않고 가는 길목에서 장로들을 청하여 함께 기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감동적이고 가슴이 짠하게 느껴지는 그의 고별 설교를 듣는다. 에베소 장로님들 앞에서다.
‘여러분은, 내가 아시아에 발을 들여놓은 첫날부터, 여러분과 함께 그 모든 시간을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잘 아십니다.’(20:18)고 하면서 그가 섬겨왔던 사역에 대해 말한다.
‘나는 겸손과 많은 눈물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또, 유대 사람의 음모로 내게 덮친 온갖 시련을 겪었습니다. 나는 또한 유익한 것이면 빼놓지 않고 여러분에게 전하고, 공중 앞에서나 각 집에서 여러분을 가르쳤습니다. 나는 유대 사람에게나 그리스 사람에게나 똑같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우리 주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증언하였습니다.’ (20:19-21)
‘보십시오,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거기에서 무슨 일이 내게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성령이 내게 일러주시는 것뿐인데, 어느 성읍에서든지, 투옥과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내 달려갈 길을 다 달리고, 주 예수에게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다하기만 한다면, 나는 내 목숨이 조금도 아깝지 않습니다.’ (20:22-24)
‘나는 누구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낸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대로, 나는 나와 내 일행에게 필요한 것을 내 손으로 일해서 마련하였습니다. 나는 모든 일에서 여러분에게 본을 보였습니다. 이렇게 힘써 일해서 약한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주 예수께서 친히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이 있다' 하신 말씀을, 반드시 명심해야 합니다.’ (20:33-35)
자비량 사역을 하는 평신도들과 선교사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주는 말씀이다. 특별히 선교지에서 사역을 하려면 많은 재정이 든다. 특히 북한이나 쿠바, 또는 무슬림 지역과 같은 곳에는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여건이 아니기에 현지 사역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재정이 갑절로 든다. 들어가서도 후원 교회의 재정 지원으로는 턱없이 부족함을 느낀다. 성령님이 인도하시고 보여주시는 곳을 섬기기 위해 일할 수만 있으면 일해서라도 재정을 모으고픈 마음이다. 또 누구에게 재정적인 의지도 할 수 없다. 현지인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으려는 마음이다. 사도 바울도 이런 마음으로 일하며 사역했으라고 느껴진다.
이제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많은 환난이 기다리고 있음을 바울 사도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그곳으로 가는 이유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성령이 말씀하시기 때문에 바울 사도의 예루살렘 여정을 막으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경험했다. 붙들리더라도 그곳에서 만나는 주님이 얼마나 나를 강하게 하시고 내게 은혜 주시는지를... 풍랑이 이는 바다 위는 거친 파도가 일고 있지만 저 깊은 바닷속은 평온한 것이다. 하나님의 품이 그랬다.
‘왜들 이렇게 울면서, 내 마음을 아프게 하십니까?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해서,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당할 것뿐만 아니라, 죽을 것까지도 각오하고 있습니다.’ (21:13) <작성자: 예수님을 만난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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