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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

바울의 목회: 바울서신에 나타난 바울 목회의 윤곽

by 은총가득 2021. 4. 12.

 

바울의 목회: 바울서신에 나타난 바울 목회의 윤곽 ① 이진섭 교수

 

                                    

1. 들어가는 말

 

바울이 교회 역사에 주는 영향력은 크다. 바울이 기독교의 실질적인 창시자인가 하는 논의가 나타날 정도다.1) 그만큼 교회에 미치는 바울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영향력은 종종 바울서신이 기독교 신학과 교리에 점유하고 있는 무시할 수 없는 무게로 나타난다. 특별히 루터 이후 개신교 신학과 교리는 바울서신에 큰 무게를 두고 있는 듯 보인다.2) 그리고 이런 무게는 바울서신을 쉽게 교리 서신으로 보는 시각으로 발전되기도 한다.

 

하지만 바울서신이 교리를 전하기 위해서만 쓰인 글은 아니다. 바울을 신학자로 볼 수 있고, 바울이 신학자로서 자기의 신학적인 담론을 서신에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바울은 신학자인 동시에 사역자였다. 선교와 목회를 감당한 선교사이자 목회자이다. 따라서 바울서신은 선교적 측면과 목회적 측면을 또한 반영하고 있다.3) 바울서신에 선교사 입장이 나타나는가 하면,4) 목회자의 면모가 잘 배어 있다.

 

본 글은 이러한 모습 중 목회자 바울에 주목하고자 한다. 신학자 바울의 신학과 사상을 알아야하고, 선교사 바울의 선교 전략과 방법도 배워야 하지만, 목회자 바울의 목회철학과 방법도 깨달아야 하기 때문이다. 목회자 바울에 주목하면서 바울서신에 나타난 ‘바울의 목회’를 숙고하는 것이 필요하다.5)

 

따라서 본고는 1) 먼저 바울서신과 교회 목회를 연결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살핀 후, 2) 바울서신이 보여주는 바울의 목회 모습을 연구하고, 3) 그것을 현실 목회에 적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정리해 보고자 한다.

 

 

2. 바울서신과 교회목회

 

바울신학이란 말은 쉽게 들을 수 있다. 성경학자와 목회자가 종종 사용한다. 바울신학이라는 통로로 바울서신은 교회의 교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하지만 바울목회라는 말은 생소하다. 바울이 목회자로서 활동했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작 바울서신과 교회의 목회를 직간접으로 연결시키는 시각은 그다지 보편화 되지 않는다. 바울서신이 교회 목회에 그다지 깊게 반영되는 것 같지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바울서신은 목회와 기본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바울서신에 바울의 목회적 의도가 반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자신이 교회에 있었다면 했음직한 목회적 가르침과 활동을 서신에 담아 보내고 있다. 따라서 바울이 교회에 편지를 보냈다는 것 자체가 어떤 의미로 보면 이미 목회 활동이다. 그렇다면 바울서신이 교회에 신학적 영향력을 미치는 것처럼, 교회 현실 목회에도 영향력을 미쳐야하지 않을까?

 

이런 점에서 두 가지 의문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바울서신과 교회 목회를 연결하는 시각이 왜 어색해 보일까 하는 의문이고, 둘째는 바울서신과 교회 목회가 왜 꼭 연결되어야 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다. 첫 번째 의문은 바울서신과 교회 목회 사이의 연결을 가로막는 장벽을 살펴보는 것이고, 두 번째 의문은 바울서신과 교회 목회를 연결하려는 시각의 정당성을 살펴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의문에 대한 답은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2.1. 목회 현장과 바울 서신

 

바울서신과 교회 목회 사이의 연결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목회는 현장에서 배운다는 통념이다. 교리는 바울서신에서 배우지만, 목회는 현장에서 배운다고 종종 생각한다. 바울서신은 교회의 중요한 사상과 교리의 터전이지만, 목회는 현장에서 경험되고 축적되며 습득된다는 생각이 강하다. 따라서 바울서신이 목회를 가르치고 있다거나 바울서신에서 목회를 배운다는 생각에는 좀처럼 이르지 못한다. 바울서신 안에 이미 목회가 있지만, 바울서신과 목회를 연결하려는 시도는 현장에서 목회를 배운다는 통념에 막혀 있다.

 

이런 통념의 밑바닥에는 목회가 선배 목회자나 교회 전통으로부터 습득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물론 이 생각이 완전히 잘못되었거나 나쁜 것은 아니다. 후배 목회자가 선배 목회자에게서 목회를 배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또한 좋은 목회 전통이 교회에서 이어지는 것도 마땅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전제가 바울서신과 목회의 가교(架橋)를 막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좋은 선배 목회자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 위에 바울이 있고, 바른 목회 전통을 따라 가면 그 위에 바울서신이 말하는 목회가 있기 때문이다. 선배 목회자인 바울은 후배 목회자인 디모데와 디도에게 자신의 목회를 가르치고 있고, 바울이 실시했던 바람직한 목회 방식은 바울서신에 새겨져 있다.

 

따라서 현장 목회의 전통과 선배도 중요하지만, 바울서신이 가르치는 목회가 현실에서 배제되어서는 안된다. 오히려 바울서신이 제시하는 목회가 우선될 필요가 있다. 선배 목회자나 교회 전통의 꼭대기에 바울과 바울서신이 있기 때문이다.6)

 

 

2.2. 바울서신: 목회의 보고(寶庫)

 

바울서신과 교회 목회를 연결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울서신이야 말로 목회를 가르치기에 적합한 책이라는 사실에 있다. 이 사실은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바울서신이 목회의 의도를 가지고 쓴 편지라는 점이다. 보통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목회서신’이라 부르지만,7) 바울서신 전체를 목회서신이라 부를 수 있다.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는 목회를 격려하고 목회에 대해 가르친다는 점에서 목회서신이라 부를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바울서신도 실제 진행되고 있는 목회를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목회서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한 전자는 목회에 있어 제도와 틀을 제시하기에 목회서신이라 부를 수 있지만, 후자는 실제 목회의 다양한 영역과 문제와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또한 목회서신이라 말할 수 있다. 따라서 좁은 의미에서는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목회서신이라 부를 수 있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바울서신 전체를 목회서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는 바울서신이 성경의 그 어떤 책보다도 목회를 잘 드러내는 책이란 점이다. 어쩌면 성경 전체가 목회의 원리와 지침을 가르친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신구약 성경의 그 어떤 본문보다도 바울서신은 목회의 원리와 전략뿐 아니라 그 방법과 지침을 분명하고도 구체적으로 가르치는 본문이다. 이것을 네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1) 바울서신은 구약성경에 비해 시간적으로 우리와 가까운 편이다. 구약의 사건과 역사를 통해 목회 지침을 얻는 것도 가능하다. 하지만 바울서신에서는 그것이 훨씬 더 쉽다.

 

2) 신약 성경 중에서도 바울서신은 교회 성립 이후의 역사를 다룬다. 따라서 교회 목회와 연관하여 이해하기가 좀 더 간편하다. 창세기부터 사도행전 이전까지에는 (지역) 교회의 존재가 직접 언급되지 않기 때문에,8) 교회 목회에 대한 가르침을 얻는 것이 그렇게 간단치는 않다. 하지만 바울서신은 교회(와 그 교회의 어떤 개인)에게 보낸 편지이기에 훨씬 간편하게 목회에 대한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

 

3) 바울 서신은 성경의 그 어떤 책보다도 교회 목회의 이슈를 직접 다루고 있다. 신약성경의 다른 책들도 교회 공동체의 문제를 다루고 있고, 따라서 목회의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책들에는 목회적 교훈이 종종 간접적으로 투영되어 있어서 그것을 깨닫는 특정한 방법들이 요구되기도 한다.9) 하지만 바울서신은 좀 다르다. 바울서신은 교회의 실제 문제를 직접 다루면서 그 해결책과 각종 지침을 구체적으로 제공한다.

 

4) 바울서신은 교회 목회의 다양한 세부 주제를 다루고 있다. 예를 들어, 바울은 교회의 지도 체제 (cf. 살전 5:12-13; 엡 4:11; 딤전 3:1-7; 딛 1:5-9 등), 교회 안의 갈등과 분파 문제 (cf. 롬 14:1-15:13; 고전 1:10-4:21 등), 교회에서 은사의 활용 (cf. 롬 12:3-8; 고전 12-14장 등) 등을 자세히 거론한다.10) 또한 바울서신은 다양한 교회의 모습에 맞는 적절한 목회 방법을 보여준다. 예컨대, 고린도전후서는 문제 교회를 목회하는 방법을 더 잘 알려주며, 데살로니가전후서는 개척한 새 교회를 여러 모로 돕는 목회 방법에 좋은 지침을 줄 수 있다.

 

이런 네 가지 점에 비추어 볼 때 바울서신은 목회를 가르치기에 아주 유익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목회의 철학과 방법을 배우기가 좋은 것이다. 이런 점에서 바울서신 전체를 목회서신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 바울서신은 목회의 보고(寶庫)이다. 따라서 목회를 말할 때 바울서신을 주목해야 한다.

 


3. 바울서신이 보여주는 목회

 

그렇다면 자연스런 다음 논의는 바울서신이 가르치는 목회의 모습을 찾는 것이다. 바울서신은 다양한 목회 모습을 제시한다. 각 서신은 다양한 목회 지침을 제시하면서 각각의 독특한 특징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여러 시각과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주제별로 묶어 분류할 수도 있고, 또한 각 서신의 특징별로 정리할 수도 있다. 이러한 점들을 함께 고려하여 본고는 다음의 네 가지 측면에서 바울서신에 나타난 목회 윤곽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교회 목회의 본질과 방향(로마서, 골로새서, 에베소서), 2) 교회 형편에 따른 목회(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 3) 교회 정치와 목회 전략(디모데전서, 디도서), 4) 목회자의 본분과 개인적 권면(디모데후서, 빌레몬서).

 


3.1. 교회 목회의 본질과 방향

 

가장 먼저 생각해 볼 점은 교회와 목회의 본질과 방향이다. 교회는 어떻게 이루어지며, 어떤 목표와 방향성을 가져야 하는가를 다루는 측면이다. 이것은 목회의 본질과 방향에 직결된다. 바울서신 이곳저곳에서 이와 관련된 언급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 중에도 로마서와 골로새서 그리고 에베소서에서 교회와 목회의 본질과 방향에 대한 바울의 분명한 생각과 시각을 찾을 수 있다.

 

이 세 서신은 교회 목회와 관련하여 두 가지 공통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첫째는 세 서신 모두 바울이 개 교회 목회에 직접적이고 주도적인 인물로 등장하기보다 간접적이고 보조적인 인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로마서는 바울이 가보지 않은 교회에 보내는 편지이고(롬 1:13),11) 골로새서는 주로 다른 사람의 사역으로 (예컨대, 에바브라의 주도적 사역으로) 이루어진 교회에 보내는 편지이며(골 1:7; 4:12),12) 에베소서는 아마도 여러 교회에 회람할 의도로 쓴 편지이다(엡 1:1).13) 세 서신의 이런 간접적이고 보조적인 성격은 각 교회에게 교회의 본질과 목표, 방향을 체계적으로 알려주어야 할 목회적 필요와 연결된 듯 보인다.

 

둘째는 세 서신 모두 이론적 설명이 각 서신 전반부에 등장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 권면이 후반부에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론적 설명과 구체적 권면이 로마서에서는 1:18-11:36과 12:1-15:13에 등장하고,14) 골로새서는 1:3-2:5과 2:6-4:6에 나타나며,15) 에베소서에서는 1:3-3:21과 4:1-6:20에 기술된다.16) 이렇게 이론과 권면으로 엮어진 구성 형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교회(공동체)의 본질을 규명함으로 마땅히 교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의도와 연결된 듯 보인다. 교회의 본질과 방향을 밝힘으로 교회를 온전히 세워가려는 목회자 바울의 목회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3.1.1. 로마서: 교회와 목회의 본질

 

로마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서신이다.17) 아마 바울은 당시 널리 퍼져있는 왜곡된 유대 율법주의의 영향을 염두에 두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신학적 측면에서 설명하고 있는 듯 보인다.18) 따라서 로마서의 신학적 배경에 유대주의자와의 논쟁이 스며들어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바울의 의도가 신학적 논쟁만은 아니다. 신학적 논쟁에 참여하지만, 한편으로는 로마교회가 그 논쟁에서 승리하여 바람직한 교회가 되어가기를 바라는 목회적 의도가 있다.19) 신학적 문제를 해결하여 교회를 온전히 세우려는 목회자의 바람으로 글을 쓴 것이다. 결국 로마교회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이해해서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공동체, 즉 바람직한 교회로 자라가기를 원하는 목회자의 심정과 시각이 로마서에 깔려 있다.

 

이런 의도 때문에 바울은 먼저 새 공동체(새 이스라엘, 새 인류)를 창조해내는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이 (참조 1:3-4; 1:9) 무엇인지 1:18-11:36에서 길게 설명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말미암게 된 공동체, 즉 로마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지를 12:1-15:13에서 구체적으로 권면한다.20) 로마서 12:1-2는 이런 설명과 권면을 연결하는 구절이다.

 

이처럼 로마서는 복음을 가르침으로 교회의 본질을 드러내며 교회의 바람직한 모습을 권면하려는 바울의 목회 철학을 잘 보여준다. 로마서에 나타난 교회의 본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사람 공동체이며, 목회의 본질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공동체(새 이스라엘)를 세우는 활동이다. 로마서는 바울이 생각한 교회와 목회의 본질을 잘 반영한 서신이고, 따라서 독자는 로마서에서 교회와 목회의 본질에 대한 중요한 시각을 얻을 수 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따라 예수로 말미암는 새 공동체, 새 이스라엘이 온전히 이루어지도록 목회하는 셈이다.

 

 

3.1.2. 에베소서, 골로새서: 교회와 목회의 목표와 방향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교회가 무엇이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말하고 있다. 두 서신 모두 시작부터 ‘하나님의 뜻’을 중요하게 다루면서(참조. 엡 1:1; 골 1:1) 그 뜻의 실현이 거룩한 교회로 나타나는 것임을 밝히고(엡 1:3-3:21; 골 1:3-2:5), 그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제시한다(엡 4:1-6:20; 골 2:6-4:6).21)

 

이런 과정에서 두 서신은 모두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 실현을 묘사한다. 두 서신 모두 전반부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뜻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거룩한 교회로 이루어졌는가를 설명하고, 후반부는 인간의 관점에서 그 거룩한 교회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를 권면한다.

 

에베소서는 이러한 점을 매우 체계적으로 말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들(새 이스라엘, 새 인류)을 창조하려는 하나님의 뜻은 그리스도의 구속과 성령의 인치심으로 말미암아 실현된다(엡 1:3-14). 그 실현의 결과는 곧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충만케 되는 교회가 되는 것인데(엡 1:22-23), 그 교회는 개별적 측면에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살아나는 것이며(엡 2:1-10), 공동체적 측면에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로 연합하여 거룩한 공동체가 되는 것이다(엡 2:11-22).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바라는 목회 기도를 한다(엡 1:15-23; 3:1-21). 그 바람은 결국 바람직한 교회의 모습을 권면하는 것으로 나타난다(4-6장). 먼저 거룩한 교회가 지녀야 하는 바람직한 모습을 원리적으로 제시하고(엡 4:1-24), 이어 구체적으로 풀어 권면한다(엡 4:25-6:20).22)

 

골로새서도 기본적 틀에서는 에베소서와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함을 받아 새롭게 창조되는 새 사람(인류)을 말하면서(골 1:13-20), 그것이 골로새 교회에 실현됨을 선언한다(골 1:21-23). 이것이 그리스도로 새 사람(인류)을 만들려는 하나님의 뜻이다(골 1:1, 9). 바울은 그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 바라는 목회 사역을 감당하며(골 1:24-2:5), 이런 목회 사역의 권면이 어떤 것인지를 자세히 풀어간다(2:5-4:6). 교회가 과연 어떠한 모습으로 존재해야 하는가를 요지 격으로 제시하고(골 2:6-8), 그 자세한 내용을 소극적 측면(2:16-23)과 적극적 측면에서(3:1-4:6) 구체적으로 표현한다.23)

 

이처럼 두 서신 모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거룩한 교회(새 인류)됨이 하나님의 뜻임을 밝히며, 그 하나님의 뜻이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권면하고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 두 서신은 바울 목회의 목표와 방향을 강하게 반영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새 인류, 즉 거룩한 공동체를 실현하는 것이 목회의 목표이고, 그것을 이루는 방향으로 목회가 진행되어야 한다. 결국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거룩한 공동체 실현이라는 목회의 목표를 말하면서 목회가 이루어져야 하는 마땅한 방향을 말하고 있다.


바울의 목회: 바울서신에 나타난 바울 목회의 윤곽 ②이진섭 교수

 

 

3.2. 교회 형편에 따른 목회: 칭찬 받는 교회와 책망 받는 교회

 

로마서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가 목회의 본질, 목표, 방향을 말하고 있다면,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후서는 바울 목회의 구체적 모습과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여섯 개의 서신은 다음의 세 가지 점에서 앞의 세 가지 서신과 구별된다.

 

첫째, 이 여섯 개 서신은 앞의 세 서신과 달리 편지를 받는 네 교회(빌립보교회, 데살로니가교회, 갈라디아교회, 고린도교회)에 대한 바울의 직접적인 목회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네 교회에 대한 바울의 목회 영향력은 직접적이고 지대했다. 둘째, 이 네 교회는 각각 바울의 목회 지도를 받을 만한 특별한 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앞에 다룬 세 서신의 교회에도 구체적인 목회 상황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 여섯 서신에 나타난 네 교회에는 목회자 바울이 꼭 감당해야 하는 특별한 상황이 드리워져 있었다.25) 셋째, 이 네 교회에 주는 서신은 목회적 칭찬과 책망의 어조가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교회는 책망보다는 칭찬을 받고 있고, 갈라디아교회와 고린도교회는 칭찬보다는 책망을 받고 있다.

 

바울은 이 네 교회에 여섯 개의 편지를 전달하며 각 교회에 필요한 목회적 필요를 채우고 있다. 그래서 각 서신은 각 교회의 구체적 문제와 사안에 따른 목회적 처방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이 서신들은 목회자 바울이 어떤 방식으로 목회하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3.2.1. 칭찬받는 교회

 

바울의 칭찬을 많이 받는 교회는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교회이다. 이 두 교회는 바울에게 많이 칭찬받는다는 점에서는 유사점이 있지만, 칭찬받는 상황과 배경은 사뭇 다르다. 빌립보교회는 오랫동안 바울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바울의 사역에 동참하여 칭찬을 받지만, 데살로니가교회는 세워지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에서 외부의 환난을 잘 견디며 삶의 열매를 맺고 있는 것으로 칭찬받는다. 이 두 교회가 칭찬 받는다는 점은 동일함에도, 두 교회를 목양하는 바울의 목회 방법과 지침은 각 교회의 상황에 따라 다르다. 따라서 빌립보서와 데살로니가전후서 세 서신은 바울이 잘되고 있는 교회를 어떻게 목회하는지 보여주고 있다.

 

 

3.2.1.1. 빌립보서: 잘되는 교회

 

바울서신의 교회 중에 바울과 가장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교회가 있다면 그 교회는 빌립보교회이다. 바울과 빌립보교회 사이의 끈끈한 관계는 빌립보서 이곳저곳에 잘 표출되어 있다(빌 1:4, 6, 7, 8, 24; 2:24, 30; 4:9, 14-18 등). 이런 긴밀한 관계는 아마도 크게 두 가지 사실과 관련된 듯 보인다.

 

첫째,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사역했던 그 어떤 교회보다도 처음부터 잘 자라는 교회였다는 사실이다. 바울이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자 여러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행 16:11-15), 반대가 있는 중에도 믿는 자는 늘어갔다(행 16:19-40). 아마도 이런 흐름은 계속되어 빌립보교회는 다른 어떤 교회보다도 빨리 교회 지도력을 확립하고 교회를 조직화하여 빌립보서가 쓰일 당시에는 이미 ‘감독들과 집사들’을 세웠던 것처럼 보인다.26) 자연히 바울은 잘되는 교회에 더 깊은 애정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더 중요한 사실은 빌립보교회가 바울의 사역에 깊은 관심을 갖고 함께 동참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빌립보교회는 교회가 설립 된 초기부터 바울의 사역에 함께 하려고 경제적 지원을 한 것으로 보인다(빌 4:15-16).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되었을 때에도 빌립보교회는 바울과 함께 하였다(빌 1:7; 4:14).27) 경제적으로 도왔을 뿐 아니라, 감옥에 있는 바울을 옆에서 돕게 하려고 에바브라디도를 보냈다(빌 2:25-30; 4:18). 이런 빌립보교회의 사랑과 수고를 아는 바울은 그 교회를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사모한다(빌 1:8).

 

이렇듯 바람직한 교회로 자라가는 빌립보교회는 바울에게 큰 기쁨이 되고, 바울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이렇게 잘되는 빌립보교회에도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빌립보서는 대체로 두 가지 어려움을 보여준다. 첫째는 바울을 돕고 후원하려던 일과 관련하여 교회 안에 일어난 갈등의 문제이고(빌 1:27b; 2:1-4; 2:19-30), 둘째는 유대주의자들이 신학적 이유로 (로마제국을 등에 업고) 빌립보교회를 핍박하는 문제이다(빌 1:28; 2:5-11; 3:1-21). 전자가 내적 연합의 문제라면, 후자는 외적 대결의 문제이다(빌 1:27-28).28)

 

바울은 잘되는 교회라고 해서 이런 문제의 조짐과 상황을 그냥 덮어두고 넘어가지 않는다. 그렇다고 무분별하게 책망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빌립보교회의 상황과 필요를 고려하여 목회적 권면과 지침을 적절히 제공한다. 이런 목회 권면의 특징을 몇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바울은 교회가 잘한 것을 분명하게 칭찬한다. 빌립보교회는 어려운 처지에 있는 바울을 도우려고 사람과 헌금을 보내왔다(빌 1:7; 2:25, 30; 4:14-18). 사실 로마 감옥에 있는 바울과 한 편이 된다는 것이 당시에 그리 쉬운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29) 하지만 빌립보교회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며 바울과 함께 했다. 바울은 그런 빌립보교회의 행동을 칭찬한다. 목회 지도자로서 칭찬해야 할 때 분명하게 칭찬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둘째, 바울은 또한 칭찬의 내용과 이유를 분명히 밝힌다. 바울의 칭찬은 단순한 입발림이 아니다. 단순히 인사 차원이나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려는 칭찬이 아니었다. 오히려 칭찬의 요점과 이유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혔다. 갇힌 바울과 함께 하려던 빌립보교회의 결정을 칭찬했다(빌 1:7). 또한 바울 자신이 경제적 도움을 받아서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빌립보교회가 바른 삶의 열매를 맺고 있기 때문에 칭찬한다는 점도 분명히 밝혔다(빌 4:10-18). 자칫하면 이런 말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바울은 무엇을 칭찬하며, 왜 칭찬하는지 명확히 제시하고 있다. 이점은 목회자가 무엇을 어떻게 칭찬해야 하는지를 잘 알려준다.

 

셋째, 바울은 잘되는 교회라고 해서 문제점을 그냥 덮어두지 않는다. 비록 빌립보교회가 바른 열매를 맺고 있지만, 그 안에는 균열과 대결의 문제가 있었다. 바울은 이점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목회적 권면을 적절하게 제시하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자기 상황을 말하며 권면한다. 바울 주위의 다른 형제들이 힘써 연합하여 핍박하려는 무리와 대결하고 있다는 점을 드러내면서(빌 1:12-26), 빌립보교회도 잘 연합하여 대적자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권면한다(빌 1:27-30).30) 이런 바울의 모습은 목회자가 교회의 어려움과 문제를 적절히 인식하여 바른 권면을 제대로 해야 함을 적절히 제시해 준다.

 

넷째, 바울의 이런 권면은 체계적이고 구체적이며 실제적으로 진행된다. 예를 들어 바울은 균열의 문제와 관련하여, 먼저 연합의 원리를 제시하고(빌 2:1-4), 그 균열의 동기가 되었던 에바브로디도 문제를 적절히 처리할 것을 말하며(빌 2:19-30), 결국 이 균열의 중심에 있는 두 여인(유오디아와 순두게)과 교회 전체에게 한 마음이 될 것을 강하게 요청한다(빌 4:2-3). 원리도 제시하고, 구체적 사안도 언급할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 효과를 얻을 수 있는 권면을 한다. 바울 권면의 이러한 성격은 바울이 얼마나 목회적 필요와 해결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잘 알려준다.

 

이처럼 빌립보서는 바울이 잘되는 교회에 어떤 목회 권면을 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바울은 깊은 사랑의 관계에 있는 빌립보교회를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목회하려고 한다(빌 1:8). 구체적으로 칭찬하지만, 문제점 또한 명확히 지적하며 실제적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빌립보서는 잘되는 교회에 맞는 목양 방법을 한편에서 잘 알려준다.

 

 

3.2.1.2. 데살로니가전후서: 개척 교회

 

데살로니가교회 또한 바울에게 칭찬받는 교회이다. 어쩌면 겉으로 보기엔 바울이 빌립보교회보다 데살로니가교회에 더 많은 칭찬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살전 1:2-10; 2:13-26; 3:6-13; 살후 1:3-12; 2:13-17).31) 하지만 이런 칭찬은 데살로니가교회의 사정과 상황을 감안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고려할 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데살로니가 교회는 개척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교회였다. 아마도 바울은 이 교회에 몇 개월 정도 머물고 떠나게 되었는지 모른다.32) 하지만 데살로니가교회는 가르치는 장로가 없는 어린 교회였음에도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열매를 맺고 있다(살전 1:3; 살후 1:3-4).33)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가 개척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열매를 맺고 있는 점을 칭찬하며 감사하고 있다.

 

둘째, 이 어린 교회가 환난 속에서도 잘 인내하고 있다는 점이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 일행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환란을 인내하고 있었다. 교회가 환난 중에도 잘 참고 있는 모습을 바울은 매우 높게 평가하며 칭찬하고 있다(살전 3:6-13; 살후 1:3-12).

 

따라서 데살로니가교회에 대한 칭찬은 어린 교회가 환난 받는 중에도 잘 인내하며 신앙의 열매를 맺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칭찬이다. 격려의 의도가 다분히 들어간 칭찬이다. 데살로니가교회가 칭찬 받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칭찬은 교회의 특정 상황에 맞게 적절히 고안된 것이다.

 

이 교회에 바울은 목회자의 마음으로 특별히 세 가지 점을 권면한다. 첫째는 교회에 필요한 가르침이다(참조. 살전 4:1-5:22). 아직 어린 교회이기에 당장 배우고 알아야 할 가르침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둘째는 바울 일행에 대한 오해를 푸는 일이다(참조. 살전 2:1-12; 2:17-3:5). 지도자인 바울 일행이 환난을 피해 나온 점이 환난 받는 교회 입장에서 오해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는 교회에 남은 문제를 해결하는 일이다(참조. 살후 2:1-3:12). 갓 개척된 교회가 환난의 와중에서 여러 가지 각종 문제에 직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지금 교회와 함께 있지 못하기에 편지로나마 목회 사역을 감당하려고 한다.

 

데살로니가전후서에 나타난 바울의 목회를 몇 가지 특징으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바울은 개척 교회의 상황에 맞게 대응하고 있다. 칭찬이 데살로니가전후서에 자주 반복되는 것은 환난에 직면해 있는 어린 교회의 상황을 특별히 고려한 처사로 보인다(살전 1:2-10; 2:13-26; 3:6-13; 살후 1:3-12; 2:13-17). 어린 교회에는 격려가 필요하고, 환난에 있는 교회에는 더욱 그렇다.

 

둘째, 바울은 직접 만나려는 노력을 꾸준히 시도하고 있다. 데살로니가를 떠난 후 바울은 그 교회가 걱정되어 노심초사했다. 자신이 직접 가보려했지만 여의치 않아 대신 디모데를 보낸다(살전 3:1-5). 바울 일행에 대한 오해도 있을지 모르고(살전 2:9, 17-20), 환난으로 각종 다양한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살전3:6-8). 바울은 이러한 점을 분명히 알아 교회를 목양하기 원한다. 그만큼 바울은 현장 목회를 중시하고 있다.

 

셋째, 갓 시작된 교회가 배워야 할 점을 지속적으로 가르치고 있다(살전 4:1-5:22; 살후 2:1-3:12). 개척된 교회는 단순간의 가르침으로 모든 것을 배울 수 없다. 차근차근 필요한 점을 체계적으로 배울 필요가 있다. 바울은 자신이 함께 있어서 가르칠 수 없었기에 편지로나마 필요한 가르침을 주는 방법을 취했다. 바울에게 데살로니가전후서는 곧 목회적 가르침의 방편이었다.

 

넷째, 바울은 문제 될 것을 미리 막으려는 예방 목회를 하고 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여러 잠재적인 문제를 안고 있었다. 바울은 이러한 잠재적 문제를 직시하여 그에 맞는 목회적 권면을 한다. 신비 종교 영향으로 인한 성적 음행의 문제(살전 4:3-8), 일손을 놓는 문제(살전 4:11-12; 살후 3:6-12), 신자의 부활과 주의 강림에 대한 문제(살전 4:13-18; 5:1-10; 살후 2:1-12), 교회 지도력의 문제(살전 5:12-13) 등을 내다보며 권면한다. 손 쓸 수 없을 때까지 문제를 키우기보다, 미리 문제를 내다보고 예방하는 목회를 한다.

 

이처럼 데살로니가전후서는 개척된 교회가 잘 자라가면서 당하게 되는 각종 어려움과 문제를 바울이 어떻게 처리하고 있는지 잘 보여준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개척 교회와 환난 당하는 교회를 어떻게 목회해야 하는지 가르쳐주는 서신이다.

 

3.2.2. 책망받는 교회

 

바울에게 심한 책망을 받는 교회는 갈라디아교회와 고린도교회이다. 바울은 이 두 교회를 엄하게 책망한다. 그 책망은 교회의 본질을 무너뜨리고 그들의 구원에 의문을 던지는 지경까지 나갈 만큼 심각하다(갈 1:6-9; 3:3; 5:12; 5:19-21; 고전 3:3, 14-15, 16-17; 6:19-10; 고후 13:2).34) 하지만 이 두 교회가 책망받는 이유와 상황에는 차이가 있다. 갈라디아교회는 이미 받은 복음을 떠나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는 문제로 책망받고 있는 반면, 고린도교회는 받은 복음을 삶 속에서 진정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문제로 책망받는다. 갈라디아교회가 가르침과 교리의 문제로 책망받는다면, 고린도교회는 삶과 현실적 문제로 책망받는다. 전자가 이론적 신학적 문제이라면, 후자는 실제적 윤리적 문제이다. 이 두 교회를 책망하는 바울의 심정은 모두 심각하고 간절하다. 이러한 바울의 심정과 책망은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후서에 잘 반영되어 있다. 따라서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후서는 문제의 교회를 다루는 기본 원리와 다양한 방법을 보여준다.

 

 

3.2.2.1. 갈라디아 교회: 다른 복음을 받아들이는 교회

 

바울서신의 교회 중에 바울에게 책망을 가장 심하게 받는 교회는 갈라디아교회이다. 갈라디아교회는 복음을 받아들였지만 교인들은 얼마 되지 않아 그 복음을 저버리는 가르침을 받아들인다(갈 1:6). 바울은 그런 가르침을 ‘다른 복음’이라고 규정하고, 그 ‘다른 복음’을 따르는 사람들을 책망하며 자기가 전한 복음의 타당성을 변론한다(갈 1:6-9). 그 변론은 크게 네 단계로 진행되고(갈 1:11-2:14; 2:15-4:11; 4:12-20; 4:21-31), 그에 따른 권면이 제공된다(갈 5:1-6:10).35) 이런 변론과 권면으로 바울은 어그러진 갈라디아교회를 바로 잡는 목회 활동을 한다.

 

여기에 나타난 목회 활동의 특징을 네 가지로 살필 수 있다.

 

첫째, 바울은 복음의 본질을 사수하는 목회를 감당한다(갈 1:6-10). 바울은 복음의 본질이 왜곡 당할 때 가만 있지 않았다. 복음을 무너뜨리는 잘못된 가르침을 지적하고 그 문제의 본질을 철저하게 파헤치며 변론한다. 복음의 본질과 관련된 중요한 부분은 매우 강력하게 대응하고 있다. 바울의 목회는 복음의 본질을 지키려는 목회라고 말할 수 있다.

 

둘째, 바울의 목회는 바른 가르침의 목회였다(갈 1:11-2:14; 2:15-4:11; 4:12-20; 4:21-31). 바울은 단순히 바른 교리를 암기하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무엇이 바른 복음인지를 차근차근 다시 설명하고 다양한 각도로 자세히 따져 가르친다. 문제가 심각하다고 해서 밀어붙이기 식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에 근거하여 말하고 바른 지식과 현실 체험에 기초하여 교인을 설득해 간다. 바울은 문제 교회를 철저하게 가르치고 설득하는 목회를 하고 있다. 바울이 문제 교회를 목회하는 방식은 바른 가르침을 회복하는 것이었다.

 

셋째, 바울의 목회는 윤리를 회복하는 목회였다(갈 5:2-6:10). 복음의 본질을 규명하려는 바울의 노력은 결국 윤리적 권면과 다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가는 것이다(갈 1:11-5:1; 5:2-6:10). 따라서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보여주는 목회 활동은 일차적으로 복음의 진리를 사수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윤리적 삶이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바울의 목회 활동은 신자의 윤리적 삶을 향한 목회이다.

 

넷째, 바울은 문제 회복에 필요한 다양한 점을 고려한다(갈 6:1-10). 단순히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갈라디아서를 쓰지는 않는다. 논쟁에서의 승리가 목표가 아니라, 교회의 온전한 회복이 목표이다. 그래서 바울은 회복될 때의 여러 상황을 고려하고 있다. 잘못된 길을 간 교인들이 돌아 올 때는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어려움 속에서도 바른 가르침을 이끌던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바른 가르침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등을 모두 고려한다(갈 6:1, 2-5; 6-9, 10). 논쟁을 위해 논쟁하지 않고 교회를 온전히 만들려는 목회자의 마음으로 논쟁한다. 바울의 목회는 회복되는 과정을 내다보는 목회이다.

 

이처럼 갈라디아서는 복음의 본질이 위협받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바울이 어떻게 목회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따라서 교회가 잘못된 가르침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목회해야 하는가를 갈라디아서를 통해 배울 수 있다.

 

 

3.2.2.2. 고린도교회: 삶에서 복음을 거부하는 교회

 

바울에게 크게 책망 받는 또 다른 교회는 고린도교회이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적지 않은 기간 머무르며 사역했던 교회일 뿐 아니라(행 18:11)36) 적지 않은 사람이 복음을 듣고 모인 교회였다(행 18:9-10). 하지만 고린도교회는 기대와는 달리 바울의 교회 중에서 가장 많은 문제를 일으킨 교회였다.

 

문제는 주로 교인들의 삶에 대한 것이었고, 그 삶의 문제는 매우 다양했다. 고린도전서는 그 다양한 문제를 잘 보여준다. 분파(1:10-4:21), 음행(5:1-13), 법정 소송(6:1-11), 음행에 대한 잘못된 주장(6:12-20), 성관계와 결혼에 대한 오해(7장), 우상 제물 먹는 것(8-11장), 예배 때 수건을 쓰지 않는 행동(11:2-16), 성찬시의 불화(11:17-34), 은사 경쟁(12-14장), 부활 사상 거부(15장) 등이다.

 

이처럼 고린도교회가 가진 문제는 다양했지만, 그 문제들에는 공통적인 요소가 있었다. 교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듯 보이긴 하지만, 실제 삶으로는 복음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 그것이다. 이런 모습 때문에 바울은 고린도교회를 심하게 책망하며 바른 것을 가르치고 권면한다.

 

이 권면을 네 가지 특징으로 살필 수 있다.

 

첫째, 바울은 교인들의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그냥 덮어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린도전후서는 고린도교회의 삶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다. 갈라디아서가 복음의 본질을 파괴하는 잘못된 가르침의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었듯이, 고린도전후서는 복음의 본질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잘못된 윤리적 문제를 심각하게 다룬다. 영역에는 차이가 있지만, 갈라디아서나 고린도전후서에 나타난 목회 권면은 모두 복음의 본질이 무시되는 점을 극복하고자 한 것이다.

 

둘째, 바울은 각종 문제에 대해 원리를 제시하며 구체적인 답과 대안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은사 경쟁 문제를 다룰 때에는 1) 은사의 다양함과 은사의 이유에 대해 먼저 원론적으로 제시하고(12장), 2) 은사를 발휘하는 적절한 방법을 말한 후(13장), 3) 은사 경쟁 질문에 대한 바른 답을 제시한다(14장).37) 원론과 원리를 제시하며 동시에 구체적 답을 제공한다. 바울은 원리와 실제가 함께 가는 방식으로 교회 문제를 다루고 있다.

 

셋째, 바울은 교회에 등장하는 문제를 모두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고린도전후서는 바울이 교회 문제를 얼마나 다양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긴박한 문제를 다루지만(고전 1:10-6:20), 또한 중요한 문제들도 다룬다(고전 7:1-15:58). 개인적 측면도 다루지만(고전 7:1-11:1), 공동체적 측면도 다룬다(고전 11:2-14:40). 일상생활의 문제를 다루고, 예배시의 문제도 다룬다. 그렇다고 해서 이 모두를 섞어 혼란스럽게 처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바울은 각각의 문제를 철저히 다루면서, 결국은 교회 안에 있는 다양한 문제를 처리해나간다. 바울의 목회는 꼼꼼하고 총체적이다.

 

넷째, 바울은 교인들의 삶을 바르게 회복하려는 목회를 한다는 점이다. 갈라디아서와 마찬가지로 고린도전후서도 교인들의 회복을 염두에 두고 있다. 각종 가르침과 권면은 궁극적으로는 회복을 향해 있다. 교회의 회복을 생각해서 바울은 자신의 계획도 변경하며(고후 1:15-2:4), 교회의 회복을 위해 징계의 조치도 고려한다(고후 13:1-7). 고린도전후서에는 바울의 책망이 강하게 드러나지만, 그 책망은 교회의 회복을 바라는 순간적인 조치일 뿐이다.

 

이처럼 고린도전후서는 복음에 합당한 삶을 크게 벗어난 교회를 바울이 어떻게 목회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고린도전후서는 삶에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가진 교회에서 어떻게 목회해야 하는지를 가늠하게 한다.

 


바울의 목회: 바울서신에 나타난 바울 목회의 윤곽
                                      ③이진섭 교수

 

3.3. 교회 정치와 목회 전략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는 앞에서 다룬 서신들이 보여주는 목회의 특징과는 좀 다른 면을 보여준다.38) 로마서와 에베소서와 골로새서가 목회의 본질과 방향을 말하고 있고, 빌립보서와 데살로니가전후서, 갈라디아서와 고린도전후서가 교회의 구체적 문제와 목회의 실제적 처방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디모데전서와 디도서는 정리되고 일반화된 목회 방식에 좀 더 깊은 관심을 가진다. 이런 관심은 네 가지 점에서 두드러진다.39)

첫째, 이 두 서신은 바울이 직접 목회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40) 바울이 가르치고 있는 목회를 보여준다.41) 바울은 에베소에서 목회하는 디모데와 그레데섬에서 목회하는 디도에게 적절한 목회의 모습을 가르치고 있다(딤전1:3; 딛 1:5). 따라서 목회 현장에 있는 세부적 문제에 대한 구체적 답변을 적기보다 목회하는 방침을 제시하는데 치중한다.

둘째, 이 서신들은 교회 정치에 대한 특별한 관심을 가진다(딤전 3:1-13; 딛 1:5-9). 두 서신 모두 디모데나 디도 자신의 역할 뿐 아니라 함께 목회 지도력을 행사할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디모데나 디도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떻게 연결되는가가 중요하고, 이들이 교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목회 지도력이 교회 정치라는 틀로 나타나는 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다.

셋째, 교회 조직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진다. 바울은 디모데나 디도가 목회 지도자들을 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시하고 그들을 세우는 방법에 대해 설명한다(딤전 3:1-7, 8-13; 5:22; 딛 1:5, 6-9). 장로(감독)와 집사의 역할과 임직 기준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다시 말해 두 서신은 교회 목회가 어떤 조직적 틀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넷째, 두 서신은 가르침의 전략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두 서신이 가르침의 내용에 관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 두 서신은 특별히 교인들을 가르치는 방식과 전략에 더 큰 관심을 쏟는다. 한편으로는 문제의 사람들을 잘 막는 방법을 설명하고, 또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바른 교훈을 전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이처럼 바울은 이 두 서신에서 목회 방식을 일반화해서 설명하기에, 목회자들은 이 두 서신을 통해 바울이 가르치는 목회 방식을 좀 더 쉽게 습득할 수 있다.


3.3.1. 디모데전서: 목회 훈수

디모데전서는 디모데의 목회에 대해 바울이 훈수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바울은 지금 에베소교회에 없고, 디모데는 에베소교회에서 바울 대신 목회를 한다(딤전 1:3; 3:14-15). 바울은 디모데가 에베소교회에서 어떻게 목회해야 하는가를 제시한다.42) 이런 점에서 디모데전서는 바울의 목회 훈수라 볼 수 있다.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직접 목회하는 내용을 기록하지 않고, 디모데가 목회해야 할 내용을 서술한다. 하지만 바울이 직접 목회하는 내용과 바울이 디모데에게 권하는 내용이 사실상 다른 것은 아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있었더라면 곧 했음직한 목회 내용을 디모데에게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딤전 3:14-15). 따라서 디모데전서가 보여주는 내용은 한편에서는 바울이 지향하는 바울의 목회라고 볼 수 있다.

디모데전서가 보여주는 바울의 목회 훈수는 크게 네 가지로 압축해 볼 수 있다.

첫째, 바울은 디모데에게 믿음의 선한 싸움을 감당하라고 전한다(딤전 1:3-20). 목회자가 감당해야하는 목회에는 사실 싸움이 전제된다. 왜냐하면 목회자는 교회 안에서 문제의 사람들과 부딪혀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바울은 크게는 갈라디아교회와 고린도교회에서 이런 싸움을 감당했고, 작게는 빌립보교회와 데살로니가교회에서조차 이런 싸움을 감당했다. 그런 그가 이제 후배 목회자 디모데에게 이런 싸움을 감당하라고 권한다. 그 싸움은 선한 싸움이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목회자가 감당해야 하는 목회는 ‘믿음의 선한 싸움’이란 것이다.

둘째, ‘믿음의 선한 싸움’은 함께 하는 싸움이라는 점이다(딤전 2:1-15). 선한 싸움은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사랑으로 승리하는 싸움이다. 그런데 이런 싸움은 목회자 혼자만이 감당할 싸움은 아니다. 온 교인이 자기가 처한 위치에서 각양의 사람들과 부딪혀야 하는 싸움이다. 남자들은 믿지 않는 세상 권세자들과 부딪힐 수 있고(딤전 2:1-8), 여자들은 믿지 않는 남편들과 부딪힐 수 있다(딤전 2:9-15). 하지만 이들이 함께 붙들어야 할 원칙은 믿음의 선한 싸움이라는 것이다.

셋째, 더 나아가 바울은 디모데가 다른 지도자들과 함께 이 싸움을 감당할 것을 주문한다(딤전 3:1-13). 그래서 감독(장로)들을 바르게 세우고, 집사들을 적절하게 세워야 한다. 혼자서만 힘들게 목회를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장로들과 함께 감당하며, 집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는 이런 권면은 목회 현실에 있어 매우 적절하며 실제적이다. 진정한 목회는 사실상 복수 지도력으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넷째, 바울은 디모데에게 가르침의 중요성과 전략을 훈수한다(딤전 3:14-4:16; 5:1-6:2). 바울은 디모데가 가르침에 전력해야 할 것을 요청하고, 또한 어떤 방식으로 가르칠 것인가를 훈수한다. 목회자가 감당해야 할 가르침의 책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하게 지적한다. 이미 다른 서신들에 반영되어 있던 가르침의 강조가 목회 훈수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디모데전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주는 목회 훈수를 잘 담고 있다. 목회 현실 앞에서 고민하던 디모데에게 이 편지는 적절한 지침이 되었을 것이다.43)


2.3.2. 디도서: 목회 전수

디도서는 바울의 목회 방식을 디도에게 전수하는 서신이다. 디도서도 디모데전서처럼 바울이 전달하는 목회 방식을 보여준다. 하지만 디모데전서가 목회 훈수라면, 디도서는 목회 전수라 말할 수 있다. 바울은 그레데 섬에서 사역해야 하는 디도에게 어떻게 목회해야 하는가를 체계적으로 전수하고자 한다. 디모데전서가 에베소교회에 사역하는 디모데에게 어떻게 목회하는가를 돕고자 했다면, 디도서는 그레데 섬에서 디도가 어떻게 목회하여야 하는가를 체계적으로 전수하고자 한다(딛 1:5). 따라서 디도서는 디모데전서에 비해 바울이 가르치는 목회의 조감도를 보다 체계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목회의 조감도는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난다.

첫째, 바울은 가르침을 목회 방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으로 강조하고 있다. 디도서는 사실 전체적으로 가르침의 문제를 다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편지 본론의 대부분은 가르침의 문제를 다루고(딛 1:10-3:7), 편지의 뒷부분은 다시 그 가르침의 주제를 반복하여 정리한다(딛 3:8-11).44) 바울이 전수하려는 목회에 있어 가르침의 문제는 핵심적 위치를 차지한다. 바울이 전수하려는 목회의 가장 중요한 수단은 가르침이다.

둘째, 바울은 그 가르침이 두 가지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잘못된 가르침을 막아야 하고, 또 한편으로는 바른 가르침을 지속적으로 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극적 측면에서는 잘못 가르치는 사람을 막아야 하고(딛 1:10-16), 적극적으로는 진리에 합당한 바른 가르침을 구체적이고 실제적으로 전해야 한다(2:1-3:7). 바울은 후자에 더 큰 비중을 둔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함께 가야 한다. 가르침의 목회는 양면으로 진행되어야 한다.45)

셋째, 이러한 가르침의 목회는 복수지도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바울은 디도에게 가르침의 목회를 전수하지만, 그것은 디도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 디도와 함께 할 지도자들에게 동일하게 주어진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서신 처음부터 그레데 섬 각 성에 함께 할 장로들(목회자들)을 세우라고 지도한다(딛 1:5). 그 장로들은 엄격히 세워져야 하며(1:6-9), 그들이 해야 할 최고의 책임은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일이다. 그들과 함께 디도는 잘못 가르치는 그룹을 막고 바른 가르침에 힘써야 한다(딛 1:9). 복수의 목회자로 이루어지는 복수지도력은 바울이 디도에게 전수하는 목회의 기본 조직이자 패턴이다.46)

이처럼 디도서는 바울이 전수하고자 하는 목회의 가장 중요한 점을 간결하고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 내용을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가르침의 목회에 힘쓰라는 것이고, 복수의 목회자(장로)와 동역하라는 것이다. 바울이 전수하는 목회를 한 마디로 하자면 ‘복수지도력으로 바른 가르침에 힘쓰라는 것’이다.


3.4. 목회자의 본분과 개인적 권면

마지막으로 생각해 볼 점은 목회자 개인의 본분과 목회자의 개인적 권면이란 주제이다. 디모데후서와 빌레몬서는 이런 주제에 대한 목회적 지침을 적절히 담고 있다. 이 두 서신은 주로 목회자 개인과 관련된 점을 다룬다. 물론 편지 내용이 공동체와 관련되어 있거나 이 편지들을 공동체가 읽었을 수 있다. 하지만 편지 자체는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측면에서 쓰였다. 이러한 특징을 크게 두 가지 점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이 두 서신이 목회 방식을 전수하기보다 목회자 개인과 관련된 점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목회자 디모데에게 목회자의 본분을 개인적으로 권면하는 서신이고, 빌레몬서는 바울이 목회자 개인의 신분으로 오네시모라는 한 개인의 문제를 다루는 서신이다.47) 두 서신 모두 개인적 측면이 강하다.

둘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인적 서신이 결국 그 뿌리에서는 목회와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디모데에게 주는 권면은 곧 목회자 디모데를 온전히 세우려는 것이고, 그것은 결국 교회를 염두에 둔 것이다. 또한 빌레몬에게 개인적으로 전한 내용은 곧 바울이 목회자의 마음으로 오네시모를 보호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개인적 서신 그 밑에는 항상 목회라는 뿌리가 존재하고 있음을 부인하기 힘들다. 개인적 서신이지만 목회와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디모데후서와 빌레몬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서신이지만, 큰 시각에서 보면 목회의 뿌리에 결국 연결되어 있는 목회서신인 셈이다.


3.4.1. 디모데후서: 목회자의 본분과 사명

디모데후서는 목회자의 본분과 사명을 가르치는 서신이다. 디모데전서가 목회 방식을 훈수하고 디도서가 목회 방식을 전수한다면, 디모데후서는 그런 목회 방식을 이끌어가야 하는 목회자가 어떤 모습으로 서 있어야 하는가를 제시한다. 바울은 자신이 죽은 후에 교회를 이끌어갈 차기 지도자로 디모데를 생각하며 디모데가 목회자로서 어떤 모습을 견지해야 하는가를 디모데후서에서 전달하고 있다.48) 바울은 크게 세 가지 점을 권면하고 있다.

첫째,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한다(딤후 1:8-2:13). 교회는 고난에 휩싸여 있고 또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예상한다. 이런 상황에서 지도자인 디모데는 고난을 회피하지 말고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한다. 지도자이자 목회자로서 디모데가 흔들리지 말고 온전히 서 있어야 교회 공동체가 설 수 있다. 바울은 교회 앞에 서 있는 목회자 디모데가 흔들리지 말 것을 요청하고 있다.

둘째, 또한 바울은 목회자의 철저한 영적 자기 관리를 요청한다(딤후 2:14-26). 바울은 디모데에게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군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기를 힘쓰라.’(딤후 2:15)고 강하게 말한다. 목회자가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키며, 사역 이전에 영적 자기관리가 먼저임을 드러낸다.

셋째, 진리의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한다(딤후 3:1-4:8). 목회자는 자신의 영적 성찰만으로 만족할 수 없다. 자신의 영적 성찰과 안정이 결국 교회 성도에게 나아가야 함을 말한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주는 이 권면을 ‘엄한 명령’으로 규정한다(딤후 4:1-2). 이 말은 목회자가 붙들어야 할 사명이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임을 천명한 것이다. 디도서가 가르침의 목회를 전수했다면, 디모데후서는 그 목회를 감당할 목회자의 사명이 말씀을 가르치는 것임을 확고히 한다.

이처럼 디모데후서는 목회자의 본분과 사명이 무엇인지를 제시하고 있다. 바울이 차세대 지도자인 디모데에게 권면했다면, 교회 역사 속에서 계속 등장하는 차기 목회자들은 항상 이 권면에 유념해야 한다.


3.4.2. 빌레몬서: 목회자의 개인적 권면

빌레몬서는 개인의 문제를 목회자 바울이 어떻게 잘 풀어 가는가를 보여주는 서신이다. 바울은 빌레몬의 집에서 도망친 오네시모라는 종을 주인에게 돌려보내며 편지를 쓴다(몬 1:12, 16). 따라서 이 편지는 사적인 편지이다.49) 하지만 이 편지 안에는 꼬여 있는 삶의 문제를 목회자 바울이 어떻게 풀어가고 있는지 잘 나타나 있다. 바울은 종 오네시모가 처한 어려움을 풀어감과 동시에 주인 빌레몬의 어려움도 함께 풀어간다. 이런 점에서 빌레몬서는 지극히 개인적인 서신이지만 목회 상담의 실제적 예로 이해되기에 충분하다.

빌레몬서에 나타난 바울의 목회적 지혜는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바울의 목회 철학 중심에는 사랑이 있다는 점이다. 빌레몬서에서 바울은 시종일관 사랑을 외친다. 사랑을 받는 자 빌레몬은 그 사랑으로 성도들의 마음을 평안하게 했던 사람이고(몬 1:1, 5-6), 그 빌레몬은 이제 오네시모 건에도 사랑을 발휘해야 하는 사람이다(몬 1:9-19, 20).50) 바울은 자신도 사랑으로 간구한다(몬 1:9). 어떻게 보면 법적 문제이고, 행정 처리의 문제이지만 바울은 그 모든 것의 중심에 주님 주신 사랑의 계명이 흘러야 함을 말한다. 목회자의 권위로 처리하지 않고, 기독교 사상의 당위성으로 몰아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의 계명이 넘치고 넘쳐 이 문제가 해결되도록 이끌어간다. 바울의 목회 중심에 ‘사랑의 계명’이 철저하게 흐르고 있다는 점을 잘 볼 수 있다.

둘째, 바울은 관계된 사람 모두를 고려하는 방식을 취한다. 바울은 오네시모 편을 들고 빌레몬을 내치는 식으로 이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또한 오네시모를 처벌하고 빌레몬을 편드는 식도 아니다. 바울은 두 사람 모두를 각각 생각한다. 바울은 오네시모가 자기 잘못을 시인하고 대가를 받아야 하지만 용서의 길을 찾도록 돕는다(몬 1:13-14). 빌레몬에게는 사랑의 용서를 요청하지만, 그의 입장을 적절히 고려한다(몬 1:18-19). 더 나아가 오네시모와 빌레몬 두 사람이 새롭게 그리스도 안에서 연결될 수 있도록 이끈다(몬 1:15-17). 이처럼 바울의 처리 방식은 일방적이지 않고 쌍방향적이며, 편파적이지 않고 공평하다. 바울은 개인과 전체를 바라보며 바른 관계를 만드는 목회 상담을 한다.

셋째, 바울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진리를 실천하는 목회를 한다는 점이다. 도망간 노예인 오네시모는 빌레몬에게 가면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처지였다.51) 그래서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보내는 일은 한편으로는 위험스런 선택이었고, 그에 대한 바울의 부담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바울은 그런 위험과 어려움을 회피하지 않고 진리대로 실현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잘못한 자는 용서를 구해야 하고, 잘못은 또한 사랑으로 용서 받을 수 있다. 바울은 이 원칙을 붙든다. 바울은 문제가 어렵다고 포기하지 않고, 참된 것을 실현하려는 목회의 본을 보여준다.

이처럼 빌레몬서는 삶에 등장하는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를 바른 목회 철학으로 풀어가는 목회자 바울의 모습을 보여준다. 따라서 삶 속에 있는 개인적 문제를 목회자가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를 이 서신으로 배울 수 있다.


4. 바울서신의 목회적 사용

바울서신이 보여주는 목회의 윤곽을 이제 정리할 수 있다. 바울이 어떤 영역에서 어떤 목표와 방향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목회했으며, 어떻게 목회를 가르치고 전수했는지를 다음의 표 1과 같이 간략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이렇게 정리된 바울의 목회 윤곽은 실제 목회 현장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바울의 목회를 우리 현실에 적절하게 끌어들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노력에는 적절한 방향과 지침이 요구된다. 이와 관련하여 최소한 세 가지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문자적 적용 방식을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울에게서 목회를 배워야 하지만 그 방식은 바울서신에 쓰인 것을 그대로 문자적으로 우리에게 옮겨 적는 식이면 곤란하다. 바울서신에 있으면 하고, 없으면 하지 않는 식이어도 안 된다. 예컨대, 바울 시대에 예배당이 없으니, 우리 시대도 불필요하다는 식이면 곤란하다. 바울과 바울서신에서 목회를 배워야 하지만, 그 방식은 문자적이어서는 안된다.

둘째, 바울 서신에 나타난 목회의 원리를 적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바울서신에 배어 있는 바울의 목회 윤곽을 살피면서 그 속에서 중심이 되는 원리와 원칙을 찾아내고, 그것들을 역사적 현실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바울이 가르치는 목회를 제대로 수용하는 것이 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석의의 기초가 탄탄해야 하고, 적용과 관련된 각종 방법들도 사용되어야 한다.52)

셋째, 역사적 정황이 매우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일차적으로는 바울의 목회를 이해할 때 바울서신에 나타난 역사적 상황을 깊이 고려해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현재 목회 현장의 역사적 정황을 제대로 고려해야 한다.53) 이를 위해 때로는 사회학적 측면도 감안할 수 있고, 현 상황에 대한 냉철한 역사적 평가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목회는 역사 현장에서 동 떨어진 가현설적(假現說的) 이상이 아니라, 역사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실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점은 앞에서 살핀 바울 목회의 윤곽을 현실에 적절히 반영하게 하는 기본적인 최소한의 지침이 될 것이다.


맺음말

바울서신은 교회에 중요하다. 교회의 신학과 사상에 바울서신이 주는 영향은 지대하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바울서신에는 신학적 측면뿐 아니라 선교적, 목회적 측면이 함께 공존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바울서신 자체가 목회의 필요와 의도에 따라 쓰였기 때문에 바울서신이 보여주는 목회적 측면을 보다 깊게 연구할 필요가 있다. 현실 목회에 주는 바울서신의 영향도 커야 한다.

바울서신이 이미 목회를 반영하고 있고 또한 목회 자체를 보여주기에 바울서신 전체를 목회서신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울서신은 교회 목회의 본질과 방향이 무엇이며, 교회 형편에 따른 목회 방법이 어떠한지 보여준다. 또한 교회의 정치와 목회의 전략이 무엇이며, 목회자의 본분과 개인적 권면이 어떠해야 하는지 그 윤곽을 제시한다. 바울서신은 바울 목회의 윤곽을 제시한다.

어쩌면 이런 바울의 목회는 우리가 배워야 하는 최고의 목회인지 모른다. 훌륭한 선배 목회자와 좋은 교회 전통의 뿌리에는 사도들과 신약성경이 있고, 그 안에는 바울과 바울서신이 매우 중요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의 목회가 나아갈 방향과 모습은 바울서신 안에 감추어져 있다. 그 보화를 캐낼 자는 현실의 목회자다. 바울의 목회를 현실화 시킬 사람은 바로 지금 현재 목회하고 있는 우리이다. 바울은 목회 책임을 다했고, 우리는 그 목회를 이제 이어가야 하는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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