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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십자가와 부활 - 같은 주제 다양한 명화로의 초대

by 은총가득 2021. 4. 2.

<십자가의 그리스도> 자크 루이 다비드 Jacques - Louis David, 1782

 

신고전주의! 하면 떠오르는 화가 다비드. 로마에서 그림을 배워 고전주의적 기법을 완전히 익히고 돌아온 사람이죠. 칠흙같이 어두운 언덕 아래에는 로마식 원형 경기장과 크고작은 건물들이 보입니다. 한평생 정치적인 그림만을 그렸던 다비드의 아주 드문 기독교를 주제로한 그림입니다.

 

안토니 반 다이크 - 그리스도의 위대한 업적

Anthony Van Dyck - Il Compianto di Cristo

 

원본이미지

벨기에 출신이며 네델란드 폴랑드 지역을 대표하는 화가 반다이크의 작품입니다. 얀 반 에이크와 루벤스의 수제자였던 반 다이크는 이탈리아에서 유학하며 자신만의 독창적인 작품 세계관을 다져 나갔으며 영국으로 건너가 초상화 화풍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며 실력있는 궁정화가로서 인정을 받게 됩니다.

[출처] |작성자 swallowecm

 

 

코레조 '나를 붙들지 마라'(130×103㎝, 1522~25년)
제자들은 처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를 엠마오에 있는 어느 집에 모셔와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에서야 눈이 열려 스승을 알아보았다.
 예수 표정이 고요하다. 예수가 왼손을 빵 위에 올려 놓고 오른손을 들어 감사기도를 드리려는 순간 제자들 눈이 열렸다. 제자들 표정이 흥미롭다. 오른편 제자는 의혹과 경악에 사로잡혀 두 팔을 벌린 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건너편에 앉아있던 제자는 얼마나 놀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려고 한다.

https://cafe.daum.net/muanlee/R9jt/13?svc=cafeapi

 

 

▲ 마티아 프레티 '의심하는 토마스'(187×145.5㎝, 1656~1660년)

토마스는 대담하게도 손가락을 스승의 상처에 넣어 보지만 차마 상처를 쳐다보지는 못한다. 의심에 대한 후회와 나약한 믿음에 대한 자책감 때문일 것이다.  토마스의 의심은 현대인의 나약한 믿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믿음 없는 자가 굳이 손으로 상처를 더듬는 것은 가슴 속에 도사린 불신이 캄캄한 어둠을 헤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예수는 토마스에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셨다.

https://cafe.daum.net/muanlee/R9jt

 

 

▲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부활하는 예수'(225×200㎝, 1463년)

 

부활하신 예수가 지금 막 석관에서 나오기 위해 한쪽 발을 관 위에 올려놓고 있다. 오른손에 부활을 상징하는 흰깃발을 들고 있다. 예수의 엄숙한 무표정에서 승리의 기쁨보다는 심판과 경고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런데도 경비병들은 군장을 갖춘 채 쿨쿨 잠을 자고 있다.


 부활한 육신은 어두운 산 그림자를 배경으로 두르고 있다. 왼쪽에는 잎이 떨어져 앙상한 나무가, 오른쪽에는 잎이 무성한 나무가 있다. 죽음의 세계에서 영생의 세계로 건너감을 상징한다. 석관의 수평 마감과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의 완만한 흐름이 지하ㆍ지상ㆍ천상의 영토를 나눈다. 죽음과 삶과 부활이 한 폭에 겹쳐져 있다.
 https://cafe.daum.net/muanlee/R9jt

 

 

명화로 보는 예수의 부활

 

[종교그림읽기 6] 조반니 벨리니(이탈리아·1430-1516)의 부활절 관련 그림 5점


이 부활절을 맞이하여, 오늘은 조반니 벨리니(Giovanni Bellini·이탈리아·1430-1516)가 상상한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려고 합니다. 이 기회를 통해 처음 소개하는 조반니 벨리니의 약력을 먼저 살펴보았으며, 아래 작품들의 배경과 근거가 되는 성경내용을 각 그림의 앞에 붙여 실었으므로 함께 읽고 상상하면서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베네치아공화국의 공식화가였던 조반니 벨리니

▲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상(Crucifix),

1455, Museo Correr, Venice, Italy ⓒ Giovanni Bellini

 

조반니는 1483년, 총독의 초상화를 전담하며 세금면제 외에도 많은 특혜를 받았던 베네치아공화국의 공식화가가 되었고, 공방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이 지역의 지도적인 화가가 되었습니다.

만년에 그린 '레오나르도 롤레다노의 총독'과 같은 초상화에서는 절대군주가 지니고 있는 현명하고 관대하면서도 확고한 태도가 잘 나타나 있으며, 이 외에 우의화(寓意畵)나 풍경 묘사에도 뛰어난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

▲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The crucifixion),

1501-3, Prato, Albert Gallery ⓒ Giovanni Bellini

 

 

때가 제 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그 위에 있는 죄 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못 박으리,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마가복음 15 : 25 - 27)


무덤에 장사된 예수 그리스도


▲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림(Deposition),

1515, Oil on canvas, Gallerie dell'Accademia,

Venice, Italy ⓒ Giovanni Bellini

 

 

 

▲ 마리아와 성요한에게 보좌받는 죽은 그리스도

(Dead Christ Supported by the Madonna and St John (Pietà),

1455, Tempera on wood. Accademia Carrara,

Bergamo ⓒ Giovanni Bellini

 

 

▲ 두 천사가 보좌하고 있는 사망한 그리스도

(The dead christ supported by two angels,

Oil on canvas, ⓒ Giovanni Bellini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려고 왔더니 큰 지진이 나며 주의 천사가 하늘로서 내려와 돌을 굴려 내고 그 위에 앉았는데, 그 형상이 번개같고 그 옷은 눈같이 희거늘, 무덤을 지키던 자들이 저를 무서워하여 떨며 죽은 사람과 같이 되었더라.

천사가 여자들에게 일러 가로되,
" 너희는 무서워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를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 하였더라. (마태복음 28:1-6)

 

▲ 그리스도의 부활(Resurrection of Christ), Oil on panel,

1475-9, Staatliche Museen, Berlin, Germany

ⓒ Giovanni Bellini

 

바로 위의 그림을 포함하여 오늘 소개하는 모든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외광의 효과를 부드럽고 세밀하면서도 극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뛰어난 풍경화가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그림에 나타난 풍경으로 계절뿐만 아니라 하루 가운데 어느 때인지도 알 수 있을 만큼 정확하면서도 효과적으로 묘사해내고 있습니다. 그가 훗날 시도했던 자연스러운 배경과 풍경을 강조하는 새로운 자연주의를 엿볼 수 있기도 합니다.


<황색의 그리스도> 폴 고갱 Paul Gauguin, 1889, 마드리드 티센 보르니메차 미술관

 

브르타뉴의 작은 마을 퐁타방을 배경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황색의 그리스도. 제목도 참 독특하죠?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에수님 주변으로 브르타뉴 지역의 옷을 입은 여인들이 무릎을 꿇고 애도하고 있습니다. 고갱은 브르타뉴 지방에서 지내면서 여전히 깊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시골 사람들에게 감동해서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해요. 계절의 변화에 따른 농촌의 삶에 관심을 가졌던 고갱. 노란 들판과 빨갛게 단풍이 든 나무들을 보니 열매가 결실을 맺고 추수할때인 가을인 것 같습니다.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 인간으로서의 사명의 완성과 결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황색 그리스도가 있는 자화상> 폴 고갱 Paul Gauguin, 1890 오르세미술관

 

이 그림은 고갱의 자화상에도 등장해요.

(셀카처럼 좌 우가 바뀌었네요 ㅋㅋ)

예수님의 얼굴과 고갱의 얼굴이 닮지 않았나요?

 

 

<브르타뉴 골고다 / 녹색의 그리스도> 폴 고갱, Paul Gauguin, 1889

 

고갱은 같은해 가을에 브르타뉴를 배경으로한 그림을 한 점 더 그리게 됩니다. 같은 노란 풍경인데도, 위의 그림과 달리 그리스도와 주변의 사람들은 마치 청동 조각처럼 보이는군요

 


윌리엄 아돌프 부게로 william adolphe bouguereau 1897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 1900

 

 

바실리 칸딘스키 Wassily Kandinsky, 1911

 

에밀 놀데 Emil nolde, 1912


베르나르 뷔페 Bernard Buffet 1946

 

베르나르 뷔페 Bernard Buffet 1951

 

베르나르 뷔페 Bernard Buffet 1951

 

얼마전 서울에서 열린 전시가 대박을 치면서 우리에게 잘 알려지게 된 베르나르 뷔페입니다.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던 시절 파리에서 그림을 배웠고, 전쟁직후의 어둡고 공포스러운 현실을 표현하면서 대 성공을 거둔 화가입니다. 1950년대에 '그리스도의 수난 展'을 열기도 하며 종교적인 작품을 많이 남겼던 뷔페. 삐쭉거리는 선에 표정없는 사람들의 모습은 차가운 듯 하지만 왠지 더 감정적으로 느껴져요.

 

 

파블로 피카소, Picasso, 1930

 

무신론자였던 (어린시절 세례는 받았지만) 피카소의 십자가도 한 번 가져와 봤습니다.

 

 

그리고 그의 드로잉


조르주 앙리 루오. Georges-Henri Rouault, 1936

 

조르주 앙리 루오는 프랑스의 종교화가로 '나는 크리스천으로써 이 무모한 시대에 오직 십자가 위의 예수만 믿는다.'고 할 만큼 믿음이 깊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어린시절 스테인드 글라스 장인 밑에서 기술을 배우게 되는데요, 그 덕분인지 그의 그림은 푸르스름하게 어둠이 내리는 저녁의 성당의 창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입니다.

 

 

많이도 그렸죠?


 

<화가와 십자가>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1951, 바티칸 현대 종교미술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에 있으나.. 수많은 분들이 아마 못보고 지나쳤을 그림! 샤갈의 십자가입니다. 십자가 옆에 앉아 달을 그린 저 화가는 아마 샤갈 자신이겠죠.

 

 

<하얀 십자가> 마르크 샤갈 Marc Chagall 1938

 

샤갈은 러시아 태생의 유대인인데요, 이 그림에서 예수님은 허리에는 유대인의 기도천을 두르고, 가시면류관 대신 두건을 씌워 그분이 유대인이었던 것을 기억하게 합니다. 왼쪽에 빨간 깃발과 칼을 든 사람들과 불타는 집, 피난가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나치의 유대인 탄압의 역사를 떠올리게 되는데, 샤갈은 프랑스에서 성경에 넣을 삽화를 그리다 유대인들이 박해를 받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하네요. 이 그림을 그리고 몇 년 후 그 역시도 미국으로 피난을 가다가 아내 벨라를 잃기도 하지요.. 유대인의 고통을 함께 나눠 피흘리신 그리스도의 수난을 연결시키려고 한 작품으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라고 합니다.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 - 초입방체> 살바도르 달리 Salvador dali 1954, 메트로 폴리탄 뮤지엄

 

아주 특별한 입방체의 십자가가 떠있고, 그 아래 한 남자가 서있습니다. 시공간을 초월한 이 곳에 선 사람은 요한도, 니고데모도, 아리마대 요셉도 아닌 예수를 배신한 유다입니다. (유다가 들고있는 천의 노랑색은 '배신'을 의미합니다) 십자가형을 그릴 때 유다가 그려진 이례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유다는 빌라도에게 예수를 넘겨준 후 스스로 목을 매어 죽었기 때문이지요 (마태복음 27장) 이 그림의 작가인 살바도르 달리는 가룟 유다를 다시 불러내 예수님을 바라보게 하고 있습니다. 용서를 구하라는 뜻일까요? 아니면 우리 역시도 유다처럼 용서가 필요한 존재라는 걸까요. 아니면 그가 자살하지 않고 베드로처럼 뉘우쳤으면 좋았을거라는 그만의 아쉬움을 담아낸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숨막히듯 적막한 이 곳에서 유다는 죽어가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지, 또한 얼굴이 가리워진 예수께서는 어떤 표정을 짓고 계셨을지, 여러분의 상상력을 발휘해보세요!

 

 

<우리 구세주가 십자가에서 내려다 본 것은> 제임스 티쏘 James Tissot, 1890, 브루쿨린 뮤지엄

 

 

지금까지 많은 화가들이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그렸다면, 제임스 티쏘는 예수님의 시선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정말 창의적이지 않나요? 예수를 못박고 그의 옷을 취해 나눠가졌던 로마 군병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외쳤던 대제사장과 하속들, 십자가에서 한 번 내려와보라고 조롱했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고요, 그 뒤를 이어 기나긴 행렬이 골고다 언덕을 향하고 있습니다. 화면 가운데에는 세명의 여인과 마지막까지 예수님 곁을 지켰던 사도 요한이 있고, 화면 아래에 못이 박혀 피가 흐르는 발 밑에 막달라 마리아가 두 손을 붙잡고 슬픔 가득한 얼굴로 우러러보고 있습니다. 그녀의 옆으로는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과 우슬초가 놓여있네요.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된 채로 고통 속에서 숨져가는 예수께서는 이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아마 한 사람 한사람 저 자리에 서있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또 그들 뿐 아니라 이전과 이후에 있을 모든 사람들을 떠올리시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를 사랑한다.'고 하셨을 것 같습니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시작이 된 십자가 위에서 죽을만큼 아프고 괴롭지만, 사랑의 기쁨으로 모든 것을 감내하셨을 그 사랑과 보혈을 묵상하는 밤 되시길.blog.naver.com/qkrwlz/221934763619

 

떡을 떼신 예수님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쉬기로 하셨다. 집 안으로 들어가서 식사를 하시게 되었다.

 

엠마오의 그리스도, 렘브란트(Rembrant Van Rijn, 1606~1669, 네덜란드)가 그린 유화, 파리 루브로 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https://cafe.daum.net/shhoo/FxGR/341?svc=cafeapi


     <예수님을 사랑한 화가>


휘고 판 데르 구스의 작품 {목자들의 경배} 입니다

누가복음 2장 19절의 설명에 따라 중심에는 빛의 광선으로 환한

아기예수님이 구세주의 탄생을 경배하는 마리아와 요셉 그리고

양치기들과 천사들에세 둘러 싸여 있습니다.

 


후안 바우티스타 메이노의 작품 { 목동들의 경배} {동방박사의 경배} 입니다.

목동들의 겅배는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듯한 건장한 소년 천사들이

기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고, 중간 오른쪽 말과 소의 모습은 아주

정다워 보입니다.

 

동방박사의 경배에서는 아기예수님께 황금, 유황, 몰약을 드리기 위해

동쪽에서 온 박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박사들의 모습을 자세히 보면 청년, 중년, 노년으로 왼쪽의 어린아이를

그려서 전세대가 예수님을 존경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엘 그레코의 작품 {성 요셉과 어린 그리스도} 입니다

스페인의 3대 화가 엘 그레코가 그린 이 작품은 특이하게 회화사에서

요셉을 표현한 작품 중 유일하게 힘이 넘치는 강한 남성으로 그렸습니다.

아버지 요셉은 어린 예수님을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지킬 수 있는

젊고 건장한 모습과 기품이 흐르는 장대한 용모의 거인처럼 표현 됐습니다.

 

아이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누가복음 2장 20절

 


산드로 보티첼리의 {유혹을 받으시는 그리스도} 입니다.

비너스의 탄생으로 더 알려진 보티첼리는 이 그림에서 예수님께서

3번의 사탄의 유혹을 아기시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왼쪽 상단에는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한 예수님께 돌을 빵으로 만들라고

유혹하고 있으며 가운데는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 하고 있으며, 우측에는

높은 돌산 위에서 엎드려 절하면 세상의 모든것을 주겠다고 유혹하지만

예수님은 "사탄아 물러가라" 하시며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엘그레코의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 입니다.

그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을 주제로 3점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여리고의 눈먼 이는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리를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자신의 희망을 위해 귀 기울였던 이 눈 먼이는

예수님의 치유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소망이 이루어졌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착한 사마리아인} 입니다

그림에서 보면 왼쪽에 멀리 가고 있는 제사장과 바로 지나간 레위인의

모습을 그려 넣어 성경 말씀에 충실한 느낌이 듭니다.

고흐 특유의 생명이 넘치는 붓터치로 사마리아인의 따스한 생명력이

넘치는 느낌입니다.

 

가까이 가서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메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니라 그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며

이르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비용이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내 생각에는 이 세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누가복음 10장 34절 - 37절

 


호세 타피로 바로의 작품 {선한 사마리아인} 입니다

강도 당한 사람은 미간을 찌푸린 모습으로 아주 지쳐 보입니다.

선한 사마리아인은 예수님의 희생과 같은 느낌의 붉은 옷을 입고 허리를

숙이고 무릎을 굽혀서 강도 당한 사람을 정성껏 돌보아 주고 있습니다

강도 당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온화한 표정은 마치 예수님께서

삶의 고통에 지친 우리를 안타깝게 바라보시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렘브란트의 작품 {돌아온 탕자} 입니다

대체로 화가들은 이 주제를 그릴 때에 한쪽에는 아들을, 다른 한쪽에는

아버지를 그려서 맞이하는 모습을 그린것에 비해 렘브란트는 아버지의

무릎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아들의 뒷모습을 그렸습니다.

작은 아들은 고생을 겪어 머리카락은 빠지고 옷은 헤어졌으며 한 쪽

신발도 벗겨지는 등 만신창이가 된 모습입니다.

 


니톨라스 마스의 작품 {어린이를 축복하시는 예수님} 입니다

렘브란트의 제자인 니콜라스 마스의 이 작품은 어린이들이 예수님께 다가옴을

귀찮아하지 않으시고 한 아이 한 아이 쓰다듬어 주시며 기도해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이 느껴집니다.

 

사랑 가득한 예수님의 눈빛과 포근하게 아이의 손을 잡고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축복해 주시는 모습이 전체 그림을 따스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지오토 디 본도네의 작품 {예루살렘 입성} 입니다

우측의 흰 예루살렘 성문은 약간 입체적으로 웅장하게 표현했으며

우측에는 호산나를 외치며 손을 흔드는 사람, 엎드리는 사람, 특히

예수님께서 임성하는 길에 웃옷을 펼쳐놓기 위해 벗는 사람과 그 뒤에는

자신도 옷을 벗기 위해 소매부터 잡아당기는 모습, 나뭇가지를 흔들때 얼굴과

상체가 약간 뒤로 젖혀지는 모습 등 한명 한명 다르게 존경을 표현하며

재미있고 실감나게 그렸습니다.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는

것을 듣고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여 하더라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는 기록된 바 시온 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너의 왕이 나귀 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요한복음 12장 12절 - 15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이그림을 보면 예수님을 중심에 배치하고 제자들을 양쪽으로 배치하면서 3명씩 모인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에

반응하는 모습으로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배경에는 창문이 3개가 있어 삼위일체를 상징합니다.

 

 

그뤼네발트의 작품 {이젠하임 제단화} 입니다

이 화가는 16C 독일 화가로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돌아가셨음을, 그리고 영광스럽게 부활하셨음을 강조하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3개의 그림으로 구성되어 잇는 이 그림은 수태고지, 예수님 탄생, 부활순서로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성스럽게 표현하기 보다는 고통에 뒤틀린 손가락의 표정과 발등의 큰 대못의 박힘으로 참을 수 없는 통증으로 오므라진 발가락의 모습이 전율이 느껴질 만큼 그대로 전해집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작품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입니다

예수님의 주위로 커다란 세마포를 대고 조심스럽게 십자가에서

내리는 모습은 강한 빛의 하이라이트로 더욱 숭고하고 성스럽게 느껴집니다

푸른색 옷을 입은 창백한 얼굴의 성모마리아는 적극적으로 강한 어머니의

모습이 느꺼지며,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리는 것을 돕고 있는 아리마데 요셉은

역동적이고 섬세하게 표현됐습니다.

 

특히나 이그림은 '플란다스의개'의 주인공 네로가 그토록 보고 싶어 했던

그림으로 벨기에 플랜더스 자방 안트바르펜에 있습니다.

 

라파엘로의 작품 {베드로에게 양떼를 맡기시는 예수님} 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디베랴 호숫가에 나타나 물고기를 잡는 제자들에게

기적적으로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신 후 베드로에게 당신의 백성인 인류의

전도를 맡기셨습니다

유다를 제외한 열한명의 제자들과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될

세계 여러 이방인들의 상징인 양떼들 사이에 예수님이 서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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