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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서

전도서 개요 및 서론

by 은총가득 2021. 2. 28.

전도서 개요

 

1장 1절에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고 기록된 것처럼 전도서는솔로몬이 노년에 생애를 돌아보며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습니다.

 

솔로몬의 출발은 좋았으나 말기에는 그의 이방 여인들에 의해 하나님 앞에 온전하지 못했습니다(왕상 11:1-13,33).

전도서를 쓸 당시에 각 지파에 대한 그의 영향력이 줄었기때문에 잠언 1장 1절의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 왕’과는 달리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왕’이라고 소개했을 것입니다. 전도서는 세월이 전해주는 교훈이요, 연륜이 가르쳐주는지혜입니다.

 

 

전도서는 한 편의 설교로 제목은 ‘해 아래서의 삶의 허무함’입니다. 허무함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자부심foolish pride을 말하는 게 아니라, 공허함emptiness, 목적이 없는 삶 futility을 말합니다.

 

전도서의 중요한 단어는 거의 50번 가까이 기록되어 있는 ‘지혜’ 또는 ‘지혜로움’입니다.

또한 37번 기록한 ‘헛되고’라는 단어와 31번 언급한 ‘해아래에서’입니다.

 

잠언과 전도서의 지혜는 서로 다릅니다.

잠언의 지혜는 해 위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고, 전도서의 지혜는 해 아래에 있는 인간의 지혜를 말합니다.

따라서 잠언에서는경건에 이르는 지혜요, 전도서에서는 단지 아는 것에 이르는 지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는 단지 인생의 허무함을 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겸손하고 갈급하게 하여 인간이 어떻게 하면 참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가로 나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12:1,13)로 끝맺습니다.

 

전도서는 참회의 설교입니다. 다윗의 몇몇 참회의 시와 성격이 같습니다. 자신의 지난날의 잘못을 고백하고 회개합니다. 이 세상의 감각적인 쾌락을 통해 만족을 얻길 바랐지만그것은 죽음보다 더 쓰며, 결국 어리석은 짓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미련하고 형편없이 연약한 자인지를 철저히 인정합니다.

하나님은 크신 은혜와 긍휼로 그러한 사람이라도 용서하시며 깨끗하게 하십니다.

 

 

놀라운 지혜

 

전도서의 내용을 요약하면 ‘인간의 존재가치는 어떤 의미가 있는가’입니다.

1장-6장에서 인간은 참된 행복과 만족을 얻기 위해 애쓰지만 그 노력이 부질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결국 ‘모든 것이 헛되다’라고 말합니다.

 

7장 1절-11장 8절에서는 헛된 것에 대한 조언을 합니다. 악한 세상에서 어떻게 올바르게 처신할 것인가를 말합니다.

또한 온갖 유혹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강력한 해독제는 오직 지혜뿐이기에 그것을 얻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11장 9절-12장 14절에서가장 놀라운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도자는 참된 행복과 만족을 위해 지혜와 쾌락을 추구하지만 해 아래 행하는 모든 것이헛되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또한 운명론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는 모든 것이 헛되다

“하나님이 없는 쾌락과(2:1,2) 인간의 지혜와 인간의 수고는(2:20-23) 헛되다.

하나님이 없는 목적과(2:26)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성공은(4:4) 허무하다. 하나님이 없는 인간의 욕심과(4:8) 명성과(4:16) 그리고 부 역시(5:10,11) 허무하다.”

 

사람의 삶이 헛된 이유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솔로몬은 모든 것을 넘치도록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관찰하고 시험해보고, 선한 것을 인간의 지혜로 시험해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의 참된 행복을 가져올 수 없고, 오직 사람에게 주는 참된 만족은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솔로몬은 연구실과 도서관, 실험실과 회의실에서 인간의 행복을 찾다가 실패했습니다.

그는 궁정에서 최고의 석학들과 교류하기도 하고 한량들과 어울려보기도 했습니다. 고급 레스토랑과  멋있는 바bar나 클럽도 방문합니다. 그래도 만족이 없었습니다. 장소를 옮겨서 공원과 극장, 정원과 해변, 그리고 명승 고적지에 가보아도 여전히 진정한 만족은 없었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바로 하나님 앞이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참된 행복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곳은 그가 청년의 때에 머물던 장소였지요. 한참을 돌아서 다시온 것입니다. 그리고 비로소 만족을 얻게 되었고,

자신처럼 헤매는 어리석은 자가 없도록 청년들에게 조언하기로 결심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는 청년들이 이와 같은 것을 깨달아 알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11장 9절에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들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라고 말합니다.

 

12장 1,2절에는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라고 말합니다.

 

12절에는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라고 말합니다.

13절에도 “일의 결국을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길 때 비로소 세상의 헛된 것들이 주는 괴로움과 허망함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솔로몬이 처방한 치료제입니다.

 

 

참된 만족

 

결국 나이 많은 전도자는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만이 이 땅에서 참된 만족과 즐거움을 누리며 살 수 있다고 조언합니다. 이는 베드로가 밤새도록 수고해도 아무것도 잡은 것이 없었지만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을 때 잡은 것이 심히 많아서 그물이 찢어졌다고 한 고백과 똑같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아무리 수고해도 헛됩니다. 예수님이 없는 삶은 헛수고의 삶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난 이후의 삶에는 참된 만족이 있습니다.

 

1960년대 북미 대륙에서는 ‘자연으로 돌아가자’라는 히피 hippie운동이 청년들 사이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참된 행복과 만족을 구하며 마약과 성과 각종 신비한 종교 체험을 하려고 사방을헤맸습니다.

심지어 북인도의 히말라야 깊은 산중까지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그들 가운데 찾아 오셨습니다. 그후 엄청난 ‘지저스 피플 Jesus People 운동’이 북미 대륙을 휩쓸면서 많은 청년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그중 한 자매가 예수님을 만난 후 부른 유명한 노래가 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처럼 난 구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그때 주님 하신 말씀 내 샘에 와 생수를 마셔라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많고 많은 사람들이 찾았었네 헛되고 헛된 것들을

주 안에 감추인 보배 세상 것과 난 비길 수 없네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내 친구여 거기서 돌아오라 내 주의 넓은 품으로

우리 주님 너를 반겨 그 넓은 품에 안겨주시리

오 주님 채우소서 나의 잔을 높이 듭니다

하늘 양식 내게 채워주소서 넘치도록 채워주소서

 

_ 리처드 블랭카드, 〈우물가의 여인처럼〉

 

이 자매의 고백이 곧 전도자의 고백입니다. 어떻게 행복을 찾을 것인가, 참된 만족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어디에서 그것을 구할 수 있는가를 찾아 나섰습니다. 쾌락을 추구하면 얻을 줄을 알았지만 그 길의 끝은 절망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절망에 이르렀을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보잘것 없음을 알고 자신의 비참한 모습을 보았을 때 단순히 절망에 이르는 게 아니라 진리에 대한 갈망을 갖게 된 것입니다. 목마를 때 물을 찾고, 배고플 때 음식을 찾듯이 바로 그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이 노래는 세 번의 후렴구가 반복됩니다.

 

전도서도 후렴구가 일곱 번이나 반복되지요(2:24-26, 3:12-15, 3:22, 5:18-20, 8:15, 9:7-10, 11:7-10).

“먹으라 마시라 즐기라 누리라 수고하라 선을 행하라”라고 합니다. 그러고는 말합니다.

“이보다 나은 것이해 아래에는 없는 줄 내가 알았다.” 이 모든 여행의 종착역에 도착했을 때의 고백이 더충격입니다.

“기쁘고 기쁘도다 모든 것이 기쁘도다”라고 하지 않고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12:8)라고 합니다.

 

이 고백은 우리를 절망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세상을 회피하거나 세상 일에 관여하지 말라는 게 아닙니다.

자살이나 쾌락으로 나아가게 하는 절망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끝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이 마지막의 고백은 우리로 더 놀라운 고백으로 나아가게 해줍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12:1),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12:13).

 

 

예수님이 우물가의 여인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3,14).

 

이 여인은 예수님을 만났을 때 비로소 만족했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요 4:28-30).

 

여인은 동네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를 만나니 만족합니다. 내가 찾던 행복은 그.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때만이 비로소 참된 만족과 행복을 발견하게 됩니다.<홍성건>


전도서

 

전도서의 서두(序頭) 자료

 

전도서의 개요

 

전도서의 제목은 회중에게 진리를 전달하는 자를 뜻하는 “전도자”(히, תלהק코헬레트; 헬 70인 역에서 EKKΛHΣIAΣTHΣ)에서 유래 되었다.

전도서의 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지혜, 능력, 권력까지 모두 받아 영화를 누렸으나 이는 오히려 하나님의 존재를 망각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우를 범하는 계기가 된다. 솔로몬 왕은 실패 후에 뼈저린 후회를 하며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온다. 늦게나마 인생의 진수를 늦게 깨달아 알게 된 왕이 이 글을 썼다.

전도서의 기록연대는 솔로몬 재위 말기인 935 B.C. 경에 저작되었을 것이다.

전도서의 기록목적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은혜로 번영하였으나 오만으로 인한 인생의 실패를 경험 한 후 그 체험에서 나오는 참 진리와 행복이 무엇인가? 자신의 체험을 중심으로 솔직하게 고백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역설적으로 설명한다.

전도서의 특징은 솔로몬왕의 번영과 실패 그리고 회심과 돌아옴을 그려낸 한 인생의 장르이다. 참된 행복은 무엇이었을까? 번영과 고난은 같은 의미가 아닐까? 번영과 고난은 성공과 실패가 아니라 그 중심에 믿음이 있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전도서의 주요 내용

 

전도서의 주요내용은 다음과 같다.

솔로몬의 개인적 경험(전1:1-2:26)

솔로몬의 일반적 관찰(전3:1-5:20)

솔로몬의 일반적 권고(전6:1-8:17)

솔로몬의 결 론(전9:1-12:14)

 

지혜서의 특성

 

1. 역설적 진리

 

전도서는 이 세상의 허무와 부정을 통하여 이 세상의 삶이 무의미하며 공허함을 논함으로써 참된 삶의 길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으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밝힌다. 여기서 허무는 하나님을 떠났을 때 인간이 겪게 되는 자괴감(自愧感)이다. 하나님을 떠났을 때 인생은 욕망을 충족시키는 삶에 머무르게 되고 일시적 환락은 끝없는 나락(奈落)으로 빠져들게 한다.

이런 실패의 경험을 통하여 그 허무함과 무의미함을 헛된 것으로 간주하게 된다. 진리에 토대한 삶은 생명의 역사이며 지혜 자의 승리의 삶을 의미한다. 전도서에서 언급하는 허무와 19세기 세계를 풍미(風靡)했던 허무주의(nihilism)는 차이가 있다. 솔로몬의 허무는 하나님을 떠난 자가 통렬(痛烈)하게 느끼는 자기반성에서 나오는 것이나 19세기 세계를 강타한 허무주의는 인간실존 성의 부정을 의미하며 이는 사회 파괴로 연계되는 독소와 같은 것이었다.

전도자의 허무 또는 헛된 것은 역설적으로 참 진리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참 진리를 추구함으로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게 된다.

 

2. 지혜 문학

 

구약에서 지혜문학은 잠언, 전도서, 욥기 그리고 시편 일부(1, 19, 37, 49, 51, 73, 90, 104, 119편)가 있다. 지혜서는 대체로 3가지 형식이 있다.

 

첫째, 짧은 문구로 이루어진 격언들(잠10:1-22:16 등),

둘째, 짧은 논문 형식의 강론 형(잠 1장-9장),

셋째, 장편 문학 형태(욥기와 전도서) 등이다.

 

구약에 나타난 지혜서 저자들은 율법, 예언, 우화 그리고 비유 등을 다루며 그 내용은 식물, 동물, 전통적 문화적 배경, 인습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서 깊은 연구와 통찰력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지혜문학은 단순한 인간의 도덕적 범주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 그리고 참된 인간의 행복을 다룬다.

이런 점에서 지혜문학은 인간의 참된 복이 무엇인가를 깊이 다룬다.

 

구원이란 새 생명을 얻는 것이며 새 생명에서 성화(聖化)된 삶으로 연계된다는 기본사상이 잠언에 녹아 있다.

행위의 거룩함이 아니라 은혜로 주신 생명을 얻으면 행위는 그에 따라서 자연스럽게 나타난다는 원리를 짧은 글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지혜는 원초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며 나무로 친다면 그 뿌리에서 진액을 받아야 밖으로 나타난 줄기, 가지, 잎과 열매 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제 1 장> 하나님을 떠나면 무의미한 인생

 

* 전1:1-2:23에서 전도자는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함으로 전도서 안으로 독자를 이끌어 들이며

하나님을 떠난 인생의 허무함을 노래한다.

 

[전도서의 저자, 주제에 대한 언급과 설명] (전1:1-4)

 

솔로몬은 40년간 왕위에 있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권력과 세상의 영화를 누려왔다. 그러나 세상 유혹에 빠져서 이방 여인을 맞이하고 이방 신을 섬기고 하나님을 멀리하는 어리석음을 보인다. 그 후 그에게 찾아온 것은 환란과 고난과 허무였다. 솔로몬의 허무는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다. 헛되다는 말의 반복은 강조 용법이다. 역설적 기법으로 사용한다. 기독교인에게 허무는 허용되지 않는다. 사회 철학으로서 염세주의(pessimism)나 허무주의(nihilism)는 경계해야 한다. 이런 사조는 사회의 암적 요소이다. 사회를 붕괴시키는 철학이기 때문이다.

 

[인생의 잠시 성(暫時 性)] (전1:5-8)

 

천지의 운행은 사람이 종잡을 수 없다. 해의 이동, 바람의 방향을 인생이 어찌 알겠는가? 강물은 계속 바다로 흘러들어 가지만 바다는 채우지 못한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의 운행을 보라 완벽하지만, 인생의 마음에 그로 말미암아서 만족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인생이 만족하는 것은 환경이 아니라 은혜로 주신 믿음으로만 가능하다.

 

[허무의 보편적 성격] (전1:9-11)

 

새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미 예전에 있었던 일들이다. 일의 순환을 설명한다. “해 아래 새것이 없다.” 인류역사는 순환하는 역사이다. 지금 우리가 새것이라 하는 것들이 수 천 년 전에도 존재해 있었다. 당대는 그 세대의 이기적 사고로 하나님의 섭리를 망각하고 지내며 순환적 역사의 가치를 추구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과거는 잊는다. 허무한 인생의 특성이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 역사가 중요하고 전래하는 전통을 소중히 다루어야 한다. 역사를 알면 하나님의 섭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알게 된다.

 

[세상의 지혜와 참 지혜] (전1:12-18)

 

세상의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다. 이 지혜는 결국은 허무로 연계된다. 권력을 신장하고, 무기를 만들고, 현명한 재판을 하고, 사회 번영을 가져오게 했다고 하자, 이런 것이 하루아침에 모두 사라질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러나 영원히 존재하는 지혜 그것은 세대가 바뀌어도, 공간을 달리해도, 누구에게나 공유되는 지혜이다. 그 지혜는 믿음이며, 사랑이다.

 

 

<제 2 장> 쾌락의 추구는 헛된 것

 

[쾌락의 헛됨] (전2:1-11)

 

세상의 쾌락을 추구한 솔로몬, 그는 세상에서 쾌락의 진수를 모두 맛보았다. 지적 허영, 부귀영화, 성적 쾌락, 풍류 등 이런 쾌락은 어디서 왔을까? 1. 자기중심의 사고(전2:1, 3, 10), 2. 물질주의 사고(전2:4-9) 3. 방탕(전2:3, 8, 10), 4. 무익한 것들의 추구(전2:11) 등이었다. 진정한 삶을 버리고 쾌락에 빠져 산 사람은 그 결과가 허무이다.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의 삶이 바로 허무이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믿음으로 살게 되면 천국의 그림자로 가치가 있으며, 영화롭고, 유익하고, 즐거운 것이다.

 

[세상의 지혜로운 자와 우매한 자가 모두 헛된 인생] (전2:12-17)

우매 자가 당하는 일들을 지혜 자도 당하고 조금 차이는 있을지 모르나 세상에서 당하는 일들은 매일반이다. 이 세상에서 지혜 자와 우매 자 사이에 무슨 큰 차이가 있겠는가? 그러나 이들이 세상의 지혜에 대한 말이고 하나님에게서 오는 참 지혜를 일컫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는 생명이요, 우매는 사망을 의미한다. 이 어찌 같겠는가?

 

[수고도 헛된 것] (전2:18-26)

 

인간이 수고하여 많은 것을 얻었다 하자 그것을 다음 세대에 물려 줄 것인데 그것이 다음 세대에 양약이 될지 독약이 될지 모른다. 부모의 유업을 잘 지키는 자가 많지 않으며 오히려 화가 될 때가 있다. 헛된 일이다. 또 내가 수고하여 이룩한 모든 것들이 남의 것이 되기도 한다. 이 또한 허무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청지기로 산다면 문제는 전연 다르게 된다. 수고하여 얻은 것을 “나눔과 섬김”에 활용한다면 하나님께 영광이요 백성을 평안하게 할 것이다. 똑같은 상황이 허무도 될 수 있고, 천국을 확장할 수도 있다.

 

 

<제 3 장> 인생의 삶을 섭리하시는 하나님

 

[적기가 있는 모든 일] (전3:1-8)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때를 맞추어 행하는 일이다. 실기(失期)하면 낭패를 당한다. 적기(適期)에 행해야 한다. 공부할 때가 있고, 성장해야 할 때가 있고, 준비해야 할 때가 있고, 결단(決斷)할 때가 있다. 이것이 분명하지 못하면 인생살이에 성공하기 어렵다. 돈을 벌 때가 있고, 그것을 써야 할 때가 있다.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나눌 수 있겠는가? 지혜 자는 천하의 섭리를 이해하여 때를 얻는다. 하나님이 복 주신 사람은 이런 지혜를 가진 사람이다.

 

[인간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 (전3:9-13)

 

사람이 아무리 큰 수고를 하였다 해도 그 결과는 하나님이 정하신다. 사람은 최선을 다한 것으로 소임을 다 한 것이다. 결과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임으로 결과에 연연하면 아니 된다. 사람은 그 결과 때문에 마음 아파할 때가 많다. 하나님의 오묘하시고 기묘하신 섭리의 운행을 사람의 작은 머리로 측량할 수 없다.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된다는 사고와 최선을 다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고는 전연 다르다. 인간의 책무는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것이며 그 경영은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절대성과 인간의 악한 속성] (전3:14-22)

 

하나님은 절대자이시지만 인간은 어떤 일에라도 악이 존재하고 헛되다. 인간의 노력이 아무리 선하게 이루어진다 해도 그 속에 악의 요소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신 복은 사람으로 그에게 맡겨진 일을 또 삶을 즐거움으로 하게 하시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은 즐거움이요, 그를 사랑함으로 이 세상에서 승리하고, 선을 이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그를 영화롭게 한다. 최고의 복은 지금 주어진 삶을 주 앞에서 즐겁게 살고 일을 사랑하는 것이다.

 

 

<제 4 장> 사회적 불평등에서 오는 문제들

 

* 전4:1-6:12에서는 사회 전반에서 발견되는 모순과 하늘로부터 오는 구원의 빛에 대비하여

세상의 허무함과 하나님 구원의 빛을 설명한다.

 

[전도자의 고뇌] (전4:1-3)

 

학대받는 자는 눈물을 흘리고 학대하는 자도 만족이 없다. 학대하는 자들은 물론 권력을 가진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을 누가 위로하겠는가? 헛된 일이다. 그래서 전도자는 지금 사는 자 보다는 이미 오래전에 죽은 자가 더 복되고 이들보다는 아직 낫지 않은 자가 더 복됨을 토로한다. 이들이 모두 하나님의 율법에서 멀어진 삶을 살았을 때 허무한 것이지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순종의 삶을 살았다면 그들의 삶은 찬가를 불렀을 것이다.

 

[수고의 무익함] (전4:4-6)

 

세상의 수고를 헛된 것으로 치부하면 우리는 수고를 하지 않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설(逆說)이다.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 유익이 없지만, 하나님 안에서 행하는 수고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요 실존의 의미가 있다. 사람은 열심히 살아야 한다. 다만 그 목적이 무엇인가? 심사숙고해야 한다.

 

적용: 이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진 임무를 하나님의 은혜로 내가 받은 믿음의 패러다임

에서 바라본다면 가장 값진 일이고 즐거운 일이고 행복한 일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일, 재물, 명예, 권력은 헛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빛나는 도구로 사용해야 한다.

기도: 이 세상에서 나에게 주신 조건 그 이전에 그것을 제어할 믿음을 주셔서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냄새가 될 것을 구한다.

 

[공동체 삶의 연대성] (전4:7-12)

 

개인은 약하다. 그러나 몇 명이 연대하면 강해진다. 공동체의 중요성을 전도자는 갈파(喝破)한다. 믿음 공동체는 막강한 힘을 가진다. 무엇이고 이루어 낼 힘을 내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 하나는 개인의 독립성이다. 개인은 독자로서 생명을 가진 실존하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이들이 합의에 따라서 협동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잘못되면 개인이 집단에 파묻힐 수도 있다. 개인과 집단은 둘 다 생명력을 가져야 한다.

 

[왕이 되어도 헛되다.] (전4:13-16)

 

왕은 가난한 자도, 재상의 자리에 있다가도 될 수 있다. 그러나 왕이 되어도 또한 그는 헛되다. 세상의 권력은 허무하다. 그렇다면 누가 나라를 다스리겠는가? 치리 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 개인의 욕망을 이루려는 자 그는 백성을 도탄에 빠뜨릴 것이다. 그는 나중에 치욕(恥辱)을 당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치리 자가 된다면 그는 역사에 길이 빛날 성군이 될 것이다. 진정한 치리 자 그는 절대 허무하지 않을 것이다.

 

적용: 세상에서 어떤 직위를 갖느냐가 아니라 실존적 가치를 실현하는가가 중요하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승리자가 되도록 한다.

기도: 믿음으로 의인의 삶을 살도록


<제 6 장> 세상의 일들은 헛되나 진리는 여호와께

 

* 전4:1-6:12에서는 사회 전반에서 발견되는 모순과 하늘로부터 오는 구원의 빛에 대비하여

세상의 허무함과 하나님 구원의 빛을 설명한다.

 

[많은 것을 받았어도 누리지 못하는 불행] (전6:1-6)

이 세상에서 좋은 것을 모두 얻었다고 하자 그러면 그가 행복할까? 그럴 수 없다. 세상 정욕에 잡혀있는 사람이라면 그것으로 고통이 더 할 것이다. 재물, 자식, 명예 그런 것에 인한 고통은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타인의 것이 될 뿐이다.

 

[헛된 일의 무의미] (전6:7-12)

사람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그 욕망을 채울 수 없어서 헛되다. 영적 생명을 갖지 못한 사람의 모든 욕망은 헛되고 헛된 것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의 행위는 지혜로우며 의미가 있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제 7 장> 지혜 자나 우매한 자를 관리하시는 하나님

 

* 전7:1→12:14에서 전도자는 참된 인생과 헛된 인생을 말한다.

 

[지혜 자와 우매한 자] (전7:1-4)

 

지혜 자는 심령의 깨우침을 마음에 두지만, 우매 자는 세상 연락에 마음을 둔다. 초상집 대 잔칫집, 죽는 날 대 낳는 날, 슬픔 대 웃음을 대비하지만, 근본 문제는 그 심령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한다.

 

[우매 자의 폐해] (전7:5-7)

우매 자들은 허황하며, 그들이 지혜 자를 유혹하고, 뇌물로 사람의 명철을 흐리게 한다. 우매 자와의 상종은 자신도 우매 자가 될 가능성이 커진다. 우매는 전염 효과가 크다. 지혜 자는 어리석은 자의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간절한 심정으로 구하라. 우매 자의 탐욕을 특히 경계하라.

 

[참지 못하는 우매 자] (전7:8-10)

우매 자는 탐욕뿐 아니라 인내하지 못한다. 교만은 패망하지만, 인내는 열매를 맺는다. 다음, 우매 자는 조급하고 노를 품고 산다. 노는 인간의 정서의 한 종류이지만 희노애락(喜怒哀樂) 중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게 한다. 이는 건강을 상실하게 하는 중요요소이다. 현재 상황을 만족하지 못하고 과거를 회상하는 우매 자를 보라 그들은 현실을 불평과 불만으로 바라본다. 이것이 분열주의로 나타나게 된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지혜] (전7:11, 12)

지혜 자 밑에 있어 보라 모든 것이 유익하다. 물질도 풍요로워지며 더 중요한 것은 지혜 자는 사람들을 생명으로 인도한다.

 

[하나님의 섭리 인정과 하나님 경외] (전7:13, 14)

 

현재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일들을 기쁨으로 받으라. 지혜 자는 부에도, 가난에도 감사하며 살아간다. 일이 잘될 때나 어려울 때도 감사한다. 믿음이 그에게 평안한 심령을 주며 좌절하지 않고 나아가게 하신다. 우매 자는 이와 대비되는 상황이고 지혜 자와 우매 자는 희비가 나뉜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는 삶] (전7:15-18)

 

인위적 지혜나 의가 극에 달하면 오히려 해가 된다. 이 세상에서 악인도 잘되는 경우가 있다. 인간이 다 알 수 없는 일들이다. 전도자는 악인이라도 지나치지 말라 권고한다. 그러나 핵심 교훈은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그가 주시는 힘으로 삶을 살라는 교훈이다. 지혜나 의는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지 내가 노력하여 얻는 것이 아니다. 고로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내가 지혜로워도 나는 겸손해야 하고, 내가 부자라도 나는 청지기에 불과하니 겸손해야 하고, 내가 권력자라도 하나님이 주신 위탁된 권력이니 나는 겸손해야 한다. 이것이 성도의 중용(中庸)사상이다. 극단은 피해야 한다.

 

[남의 저주에 귀 기울이지 마라] (전7:19-22)

 

사람은 타인이 자기를 저주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자신도 남을 저주(詛呪) 혹은 험담을 한 일이 있지 않은가? 우리가 의인이라도 죄를 짓고 지혜 자라도 잘못할 때가 있다. 우리는 인간이다. 그러나 지혜는 능력이다.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기 때문에 항상 가치가 있다. 남의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귀담아 듣지 말라, 둘 다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말들이다.

 

[찾아보기 어려운 지혜 자] (전7:23-29)

 

전도자는 여려 측면에서 관찰하고 참된 지혜를 탐구하였다. 그러나 그 지혜를 통달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토로한다. 또 세상 사람들 가운데 지혜 자를 찾아보았는데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는 고백이다. 지혜 자는 음녀(죄를 상징)의 유혹에서 벗어나나 우매 자는 그의 포로가 될 것이다. 전도자는 인성(人性)에 관하여 본래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은 선한 것이었는데 인생의 욕망이 죄악으로 빠져들어 갔음을 발견한다.

 

적용: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삶에 적용한다면 초탈한 넉넉한 여유와 풍요를 누릴 것이다.

기도: 재물보다는 지혜를 주실 것을 구한다.

 

 

<제 8 장> 세상의 화복(禍福)으로 알 수 없는 악인과 의인

 

[왕명 즉 하나님의 명령] (전8:1-8)

 

왕은 하나님, 메시아 즉 우리의 절대자, 영존하시는 그분을 말한다. 여기서 왕의 명령을 지키라는 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율례를 지키고 그를 신뢰한다면 평안의 복과 잘되는 복이 그 안에서 역사할 것이다. 사람에게는 때와 결단이 요구될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하나님이 주관하신다.

 

* 전7:1→12:14에서 전도자는 참된 인생과 헛된 인생을 말한다.

 

[악인들과 의인들] (전8:9-14)

 

악행이 즉시 벌로 이어진다면 악을 중지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악행을 하여도 세상일이 잘되는 경우가 있어서 더 담대해지고 악을 더 행하게 된다. 사람들이 볼 때 하나님의 정의를 의심하게 된다. 역으로 의인도 고난을 겪는다. 이것이 세상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는 의인은 잘되고 장수하는 것이며, 악인은 그의 수(壽)를 다하지 못하게 된다. 인생은 긴 시간이라고 생각하여도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그리 길지 않은 시간임을 간과해서는 아니 된다.

 

[모순적 현실에 대한 성도의 태도] (전8:15-17; 9:1)

 

사람에게는 수고의 시간과 희락(喜樂)의 시간이 있다. 일을 한 사람은 쉬어야 하고 즐겨야 한다. 일도 즐기는 것 중의 하나이다. 하나님의 품 안에서 희락은 축복이다. 사람의 노동을 살펴보니 일 때문에 밤낮으로 자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전도자로서는 다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이해하지 못해도 인정해야 하고,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해 만족해야 하고, 선한 일을 힘쓰며 즐기는 것이 사람이 가져야 할 태도이다.



<제 9 장> 하나님의 섭리 아래 사는 인생들

 

* 전7:1→12:14에서 전도자는 참된 인생과 헛된 인생을 말한다.

 

[하나님의 섭리 아래서 이루어지는 인생사] (전9:1-3)

 

우리가 세상에 사는 동안 의인이든 악인이든 무슨 행위를 하며 살았든 그에 대한 상과 벌은 모두 후에 이루어질 일들이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그 안에 존재하는 것들이고 인생의 자유의지가 아니다. 선과 악, 의와 불의, 지혜와 우매, 깨끗함과 더러움이 똑같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 아래 있음과 이후에 인생의 죽음이 같고, 이루어질 하나님의 심판 앞에 서는 것이 같다는 전도자의 갈파이다.

 

[적극적 삶의 자세] (전9:4-10)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은 그 자체가 복이다. 이 세상에서 호흡한다는 것 그 자체가 복이다. 호흡이 있는 자는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하고 자기를 부각하는 일에 사용해야 한다. 사람도 적극적으로 사귀고, 옷도 깨끗하게 입고, 음식도 맛있게 먹고, 부부관계도 잘 유지하고, 항상 즐거운 마음을 갖고, 포도주도 마시고, 향 기름도 발라서 아름답게 꾸미는 진취적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강건한 삶을 이르는 말이다. 향락이나 무절제한 삶의 반대되는 개념으로 받아야 한다.

 

[시기(時機)와 기회] (전9:11, 12)

 

사람에게 시기와 기회는 누구에게나 같게 온다. 인생은 알 수 없는 세계이다. 전쟁에서 전략적으로 반드시 승전하게 되어 있으나 패전하는 경우가 있다. 그 배후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수 없는 전쟁은 그 승패가 하나님이 같이하심과 떠나심으로 결정되었다. 사람이 살다가 올무에 걸릴 수 있다. 얻는 것도 잃는 것도 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다. 우리는 이런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다 알 수 없다. 오로지 하나님의 은총을 구하고 그 앞에 겸손히 행해야 할 것이다.

 

[이기게 하는 지혜와 무너지게 하는 죄] (전9:13-18)

 

지혜는 전쟁을 피하며 승리하게도 하고, 전쟁에서 이기게도 하고, 지혜의 세밀한 말은 우매 자의 호령보다 더 나으나 이런 지혜가 후에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것이 아니며 인생의 지혜는 불완전하다. 그러나 죄는 조그만 것이라도 전체를 헐어버리게 된다.

 

 

<제 10 장> 지혜와 어리석음의 파노라마

 

* 전7:1→12:14에서 전도자는 참된 인생과 헛된 인생을 말한다.

그리고 전10:2-12:8의 내용은 불확실한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들로 구성되어있다.

 

[우매함을 스스로 나타내는 우매 자] (전10:1-3)

 

우매한 사람은 스스로 자신이 우매함을 나타낸다. 우매 자가 끼어들면 거룩한 곳도 더러워진다. 향기도 악취로 변한다. 존귀를 천박한 것으로 바꾼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이 천박함을 나타낸다. 지혜와 우매는 그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심령의 문제이다. 영이 죽은 자는 바로 우매한 자이다. 영이 살아 숨 쉬는 자는 그 속에 지혜가 역사한다. 사람의 행위 즉 말과 행동은 모두 마음의 소산임을 명심해야 한다.

 

[사회적 모순과 성도의 대처] (전10:4-7)

 

사회 아노미 현상을 설명한다. 우매한 주권자, 말을 탄 종 그리고 낮아진 부자(심령이 가난한 자), 걸어 다니는 고관 등 사회 질서가 뒤바뀐 현상에서 성도는 어떤 대처를 해야 할까? 겸손히 하나님의 정의를 기다리라. 결국은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이다. 불의가 의를 무력하게 한 사회에서 가볍게 나서지 말고 하나님의 정의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주어진 신분을 지키고 일을 수행해야 한다.

 

[위험을 스스로 부르는 행위] (전10:8, 9)

 

세상에는 남을 해하려는 자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도 스스로 화를 불러오는 자들이다. 그들이 일시로 잘되는 것처럼 보여도 이상히 여기지 마라. 결과를 두고 보라.

 

[준비는 곧 목적] (전10:10, 11)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 과정에서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준비의 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준비가 곧 목적이다. 모든 과정은 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칼을 가는 것도 준비로서가 아니라 목적이며 마술사가 뱀을 잘 관리하는 것도 준비 개념으로 보지 말고 목적 개념으로 이해하라. 내일을 위하여 살지 마라. 오늘이 우리의 최종일이다. 오늘이 우리의 종착역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라. 오늘에 승리하는 지혜를 갖도록 하자. 그러면 영원히 지혜롭게 살 것이다.

 

[지혜 자와 우매 자] (전10:12-15)

 

우매 자에게는 생명이 없으니 그의 언어는 죽은 자의 언어요, 썩는 냄새가 나는 삶이요, 버려져야 하는 육체이다. 지혜 자는 생명에 근거하기에 그에게는 살아있는 냄새가 나며, 성장하며, 역사(役事)가 있다. 하나님이 주시는 믿음의 역사 즉 생명의 역사는 사람을 지혜 자로 세우신다.

 

[복된 나라와 화 있을 나라] (전10:16-20)

 

향락에 빠진 나라, 어리석은 왕의 나라, 게으른 사람들의 나라, 불만에 차있는 백성들 이런 나라가 어찌 화를 면할 수 있겠는가? 음료는 건강한 식사이며, 잔치는 하나님이 주신 것을 즐기는 것이며, 포도주는 생명을 소생시키는 것이며, 돈은 국사를 관리하는 데 이용하는 수단이라면 그런 지혜를 가진 나라가 복된 나라일 것이다. 화와 복이 하나님에게서 나오며 왕과 백성의 심령에 주시는 것이다.

 

 

<제 11 장> 참된 행복을 위한 결단의 촉구

 

* 전7:1→12:14에서 전도자는 참된 인생과 헛된 인생을 말한다.

그리고 전10:2-12:8의 내용은 불확실한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들로 구성되어있다.

 

[지혜로운 삶; 선을 위한 최선] (전11:1-6).

 

선을 행하되 즉각적 반응을 생각하지 말고 행하라(전11:1), 나누어 줄 수 있을 때 넓게 많이 나누어 주라(전11:2), 사소한 일에 연연(戀戀)하지 말고 큰 것을 보라. 조그만 일 때문에 선을 중지하지도 말고, 하나님의 일을 벌이지도 마라. 현 세상이 부조리하고 아노미 현상이 있더라도 성도는 묵묵히 선을 행해 나아가야 한다(전11:3, 4). 자연현상과 인생의 길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그에게 순종하여 그의 길을 걸어야 한다(전11:5). 결과에 연연하지 말고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하라. 최선을 다한다는 말과 주어진 일을 즐긴다는 말은 같은 뜻이다. 억지로 하는 일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즐기는 자세를 의미한다(전11:6).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은혜를 주시기를 간절히 구한다.

 

[하나님 앞에서 즐겁게 살아야하는 오늘] (전11:7, 8)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은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심은 우리로 세상에서 빛나게, 천국의 모형으로 즐겁게 살도록 하신 것이다. 고행으로는 선을 이루지 못한다. 오늘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날이다.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마6:34)는 주님의 가르치심을 오늘은 오늘로 충분하다는 말씀이다. 내일을 염려하여 오늘을 희생해서는 아니 된다. 날마다 우리는 최후의 날을 살며 우리는 오늘에 승리를 이루어야 한다.

 

[젊은이에게 주는 교훈] (전11:9, 10)

 

마음대로 행하라. 그러나 그 마음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생명의 지혜의 마음을 주시기를 구해야 한다. 이런 청년이 마음대로 행하는 것은 지혜 자의 삶이 된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는 멸망의 길을 스스로 부르게 된다.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러면 그 위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주실 것이다(마6:33). 주님께서 주신 복은 행복이다. 천국은 눈에 보이게(visible) 임하는 것도 아니고 여기저기와 같은 공간(space)의 문제도 아니고 우리 마음 안에 실존하는 것이다(눅17:20, 21). 이 세상에서 우리는 우리 심령에 임한 천국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제 12 장> 기억해야 할 창조주 여호와

 

* 전7:1→12:14에서 전도자는 참된 인생과 헛된 인생을 말한다.

그리고 전10:2-12:8의 내용은 불확실한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조언들로 구성되어있다.

 

[빨리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전12:1-8)

 

젊었을 때 하나님에게로 돌아오라 우리의 생명의 날이 그리 길지 않다. 빨리 돌아올수록 하나님의 복을 더 누리게 된다. 삶이란 진리에 의한 것일 때 가치가 있다. 세상사는 의미가 없다. 전도자의 말대로 헛된 것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같이 가는 삶은 진지하고 복되며 기쁨이 넘친다.

 

* 잠12:3의 예시 자료는 집을 지키는 손, 힘 있는 자는 다리, 맷돌질은 치아,

창들은 눈을 예시하는 것으로 본다. 잠12:5의 예시는 살구나무는 백발, 잠12:6의 줄은 생명,

은과 금은 사람의 생명과 그 본질의 귀함, 그릇과 항아리는 육체의 각 기관,

줄이 풀림과 그릇이 깨짐은 죽음, 항아리(바퀴)가 깨어짐은 신체기관의 멸망,

바퀴는 회전 곧 신체기관의 움직임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결단과 실천의 촉구] (전12:9-14)

 

세상에서 모든 수고는 헛것이지만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고 겸손히 그에게 순종하는 것은 참 지혜이다. 은혜로 주시는 결단은 인생을 180도 전환 시킨다. 그분에게 간절히 구하여 참 생명으로 돌아가고 지혜의 생활을 함으로 복되고 즐거움에 동참할 것이다. 이런 생활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다.

 

김정권 시인(대구 침산제일교회 원로장로)/대구대학교 특수교육학과 교수를 역임. 명예교수

 


전도서(Ecclesiaste)


1. 명칭

히브리어 성경에는 [코헬레드]로 되어 있는데 이 말은 카할(Qahal) (불러모은 무리) 이라는 단어의 변형이다.
불러모은 자들에게 말하는 사람 즉 설교자, 전도자를 가리 키는 말이다.
이 낱말은 70인 역에는 에클레시아스테스((Eccleisates)라고 번역 하고 , 영어나 한글 성경은 이것을 따랐고, 우리 말로는 전도서 라고 번역하였다.
본서의 내용을 보면 근엄한 설교자나 전도자의 태도라기 보다 생을 달관하고 있는 사람이 자기의 세계관이나 인생관 또는 행복론 등을 아주 마음 가볍게 아무 꺼리낌 없이 제멋 대로 말해버리는 투이다.


2. 주제표

초점 탐구 권면
구분 모든 것이 헛되도다 행위의 허무 소유의 의무 존재의 의무 인생을 의미있게 사용 참된 삶의 원천
본문 전 1 전 2 전 3-6장 전 7-9장 전 10-11장 전 12
주제 무의미한 인생 발견 무의미한 인생 설명
장소 해 아래
시간 수 십년간(솔로몬 왕 시대)

 

3. 내용과 주요사상

어떠한 역경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굳세개 살아가는 것이 신앙이라고 가르치는 기독교의 성경에 허무주의적 냄새가 물씬나는 이 책이 정경으로 수록되어 있는 일은 놀라운 일이다.
인생의 달관자의 입장에서 일체의 노력이나 기쁜일이 무가치 하고 허무한 일이라고 단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책이 유대인의 즐거운 절기인 장막절에 낭독하는 두루마리 책이었다니 매우 역설적인 교훈이 담긴 책이라고 아니할수 없다.
이 책은 생의 비극과 비참과 허무성 속에서 그것들을 초월하는 저쪽에 인간의 관심을 끌어 가려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가 헛되다고 단정해 버리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신뢰나 또는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고 인간 자신에 대한 신뢰를 두고 하는 말이다.
5:2
나 12:13-14 같은 곳을 보면 저자는 인간의 허무를 절감한자이지 하나님 의 섬리나 힘 또는 그에대한 신앙을 허무로 보는 사람은 아니었다.
본서에서 찾아볼 중요한 교훈과 사상 몇가지가 있다.

1) 인간의 일과 계획과 힘은 유한한 것, 상대적 이라는 것
2) 인간은 하나님이 주시는 삶을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순종하면 거기에 가치있는 삶이 있다는 것
3) 현실의 삶에는 모순 당착과 고통이 많은것 같으나 그 배후를 깊이 꿰뚫어보면 거기에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
4) 인간의 최고의 삶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것


4. 내용 분해(대분류)

1.서 론 전1:1-11 2.모든것의 허무함 전1:12-6:12 1) 지식의 추구는 헛된 번뇌 전1:12-18 2) 쾌락의 허무 전2:1-11 3) 지혜와 재산의 허무 전2:12-23 4) 노력의 허무 전2:24-3:15 5) 악한 자가 땅에서 흥함 전3:16-4:6 6) 둘이 함께 일하는것이 더 나음 전4:7-12 7) 지혜로운 가난이 어리석은 부보다 나음 전4:13-16 8)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해야 함 전5:1-7 9) 재산의 허무 전5:8-6:12 3. 지혜의 말 전7:1-12:8 1) 삶을 위한 실제적 충고 전7:1-14 2) 모든 사람은 죄인 전7:15-29 3) 왕을 존경해야 함 전8:1-8 4) 하나님 앞에서 악인은 잘 되지 못함 전8:9-17 5) 세상의 질서와 통치 전9:1-10 6) 지혜있는 자와 어리석은 자 전9:115. -10:20 7) 잡다한 실생활 교훈 전11:1-12:8 4. 결 론 전12:9-14


명칭

이 책의 히브리 어 명칭은 '코헬레트'이다. 이 단어는 '회중을 소집하다'란 뜻을 가진 단어에서 파생되었다. 그런데 회중을 소집하는 자는,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밝히려는 목적을 가졌기 때문에 '코헬레트'란 말은 '설교자'(전도자)로 번역될 수도 있다.

저자 및 기록연대

저자는 자신을 '다윗의 아들'(1:1)이며,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1:12)이 된 사람이라고 소개한다. 또한 저자의 행적들이 1:12-2:26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묘사에 어울리는 사람은 솔로몬 한 사람 뿐이다. 이 때문에 많은 유대 인 학자들과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솔로몬의 저작설을 이의(異意)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따라서 기록 연대는 B.C. 935년경이 될 것이다.



■저작동기와 목적


저자는 세속적인 목표나 동기를 가지고 인생을 추구할 때, 진정한 즐거움과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설명하고 있다. 이 세상은 수수께끼로 가득찼으며, 가장 어려운 수수께끼는 사람 자체이다. 그는 사람의 지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1:13, 16-18; 7:24; 8:16-17), 사람이 힘써 궁리하더라도 하나님의 뛰어난 섭리와 자신의 존재에 대한 궁극적인의미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전 도서의 저자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이 모든 것을 그분의 섭리에 따라 정하셨음과(3:1-15; 5:19; 6:1-2; 9:1) 인간의 유한성을 받아들이도록 권고한다. 이와같은 깨달음을 얻은 저자가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말로 이 책을 끝맺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신학사상
전도자는 이 책 전반에 걸쳐 인생을 즐길 것을 강조한다(2:24-26; 3:12, 22; 5:18-20; 8:15; 9:7-9; 11:7-10). 이 사상은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쾌락을 즐기라고 하는 쾌락주의의 일종이라고 잘못 이해되기 쉽다. 그러나 저자에게 있어서 진정한 인생 향락(享樂)은 하나님의 선물이었다(참조. 2:24-26; 3:13; 5:19-20; 9:7).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2:26), 그분을 경외하고(8:12), 하나님의 심판을 염두에 두며 자제하는 사람만이 그 향락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생 향락과 대조를 이루는 사상이 '헛되다'는 말로 표현된다. 전도자는 인간사의 모든 것이 헛된 것임을 선언한다. 여기에는 사람의 수고(1:14; 2:11, 17; 4:4, 7-8)·지혜(2:15)·의로움(8:14)·재물(2:26; 5:10; 6:2)·존귀(4:16)·쾌락(2:1-2)·젊음과 힘(11:10)·생명(6:12; 7:15; 9:9)·사후(死後 11:8) 등 인간사에 있는 모든 것이 포함된다. 그러나 전도자는 이 모든 것이 아무 가치도 없다고 단정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수고 함으로써 위대한 일들을 성취할 추 있고, 그 결과 다소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2:10). 지혜를 사용하면 쉽게 일을 끝낼 수 있다(10:10). 사람의 의로움은 불의보다 더 낫다(8:12-13). 그러나 인간의 타락(7:29)·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무지(6:12)·죽음의 급박성(12:1-7)·사후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사람의 수고와 지혜와 의로움은 궁극적인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따라서 전도자는 '해 아래서'의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는 방편으로 하나님을 경외할 것을 권하고 있다.

내용분해

1. 머리말(1:1-11)

2. 인간 업적의 헛됨(1:12-6:9)
3. 인간 지혜의 헛됨(6:10-11:6)
4. 결론(11:7-12:14)


서론 일람

1. 기록자 : 아마도 솔로몬이 기록했을 것이다.

2. 기록연대 : B.C. 940-935년 사이.
3. 기록장소 : 예루살렘
4. 기록대상 : 주로 젊은이들과 "장로들의 학생들"을 위하여 기록되었다.
5. 핵심어 및 내용 : 전도서의 핵심어는 "헛되다"와 "야망"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면 우리들이 하는 모든 일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모든 것은 헛되고 공허하며 소망이 없다. 우리가 만약 이 세상에서 만족을 누리려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우리는 계속해서 좌절하고 낙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출처> cafe.daum.net/correctthe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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