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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서신 - 베드로전후서

베드로후서 1-3장 연구

by 은총가득 2021. 2. 20.

<베드로후서 서론>

 

1. 기록자

 

베드로후서는 저자 문제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후서는 베드로의 저작이라는 내외적 증거가 많습니다. 본서의 1:1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라고 밝히고 있고, 1:14에는 자신이 순교할 것이라는 그리스도의 예언을 취급하고 있습니다 (요21:18-19). 또 저자는 1:16-17에서 자신이 변화산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변모한 사건을 목격한 제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17:5, 막9:7). 또 3:1에 언급된 '둘째 편지'라는 문구는 저자가 첫번째 편지인 베드로전서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가 베드로의 저작이라는 사실은 오리겐(Origen), 유세비우스(Eusebius),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어거스틴(Augustine), 시릴(Cyril) 등이 인정했습니다.

 

2. 수신자

 

1:1에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인 대상이 언급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3:1의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라고 언급한 것은 베드로가 베드로전서의 수신자와 마찬가지로 소아시아에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쓴 글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벧전1:1).

 

3. 기록 연대

 

본서가 기록된 때는 베드로전서가 쓰여진 A.D.64년 경부터 베드로가 순교했던 A.D.68년 경 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서가 로마 네로 황제의 집권 말기(A.D.64-68년 경)에 박해받고 있는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해 보낸 것이므로 그 기록 연대를 A.D.66-67년 경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종합하면 본서의 기록 연대는 A.D.64-68년 경이며 구체적으로는 A.D.66-67년 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4. 기록 장소

 

본서의 기록 장소는 베드로전서와 마찬가지로 로마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베드로전서의 기록 장소는 '바벨론'으로 나와 있습니다 (벧전5:13). 여기에서 사용된 '바벨론'은 로마를 가리킵니다 (Origen, Tertullian). 성경의 묵시문학에서는 흔히 실제명이 아닌 상징적인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바벨론'을 로마로 사용했습니다 (계17:5, 18:2).

 

5. 기록 목적

 

본서의 기록 목적은 베드로전서와 마찬가지로 고난받는 성도들을 격려하고 권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지만 조금 다른 점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는 외부로부터 오는 박해를 다룬 반면 본서는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환난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이를테면 배교와 거짓 선지자에 대한 경고하고 그들과 맞서 싸울 것을 권면하는 것입니다.

 

6. 본서의 특징

 

본서는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를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지식를 강조합니다. 그리고 본서는 내용에 있어서 유다서와 유사한 부분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거짓 교사에 대한 내용은 많이 흡사한 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용 전개는 1장에서 그리스도인의 성숙에 대한 권면을, 2장에서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와 정죄, 3장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재림에 대한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聖經> 베드로후서 1:1-21

<題目> 성도의 윤리적인 삶

<序言>

베드로는 로마에서 소아시아에 흩어져 살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권면하기 위해 서신을 썼습니다. 첫번째 편지인 전서에서는 외부적으로 당한 시련에 대해 권위했다면 두번째 편지인 후서에서는 내부적으로 겪고 있는 시련에 대해 권위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특히 거짓 교사들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윤리 의식 부재였기 때문에 본장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건전한 생활의 필요성을 역설합니다. 내용구조는 문안 인사(1-2절), 영적 성장의 요청(3-11절), 믿음의 근거 제시(12-21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문안 인사 (1-2절)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는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과 사도인 시몬 베드로'라고 했습니다 (1절). 자신을 '종'이라고도 하고 '사도'라고도 한 것입니다. '종'(δουλοs)은 주인에게 예속된 하인을 말하고 '사도'(αποστολοs)는 주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주님께 예속되어 있고 주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해야 하는 자임을 말하는 동시에, 주님의 권위를 대신 위임받은 대리인임을 말하는 표현입니다. 겸손과 권위를 같이 표현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수신자를 표현하면서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같이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라고 했습니다 (1절).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 '우리 하나님과 구주'가 하나의 관사인 '투'(του)의 수식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수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받은 자로 여겼습니다 (벧전1:18-19). 사도들과 같은 동일한 특권을 가진 자로 여겼습니다. 수신자들도 사도들과 동등하게 구원을 받아 구원 운동에 동참하는 자로 여겼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고 문안했습니다 (2절). '앎'은 '그노시스'(γνωσιs)가 아니라 '에피그노시스'(επιγνωσιs)입니다. 그노시는 일반적인 지식을 말하는 반면 에피그노시스는 구원을 얻는 데에 필요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을 말합니다. 하나님과 예수님을 알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평강이 많아집니다.

 

2. 영적 성장의 요청 (3-11절)

 

3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8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 흡족한즉 너희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에 게으르지 않고 열매 없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니와

9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11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베드로는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고 했습니다. '생명'은 인간이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원동력으로서 영생을 암시합니다. '경건'은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된 자가 하나님과 가지는 관계성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함으로 영위하게 되는 도덕적 생활을 시사합니다. '영광과 덕'은 신적인 능력의 현시로서 하나님과 예수님께 속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 신기한 신적 능력으로 그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믿는 자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주셨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인이 미래에 그리스도의 재림(3:4,9,12), 새하늘과 새땅(3:13), 영원한 나라(11절)에 참여하게 될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앎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게 되고 (고후5:7), 성령으로 참된 영적 교제를 나누게 되고 (요14:16-17, 26), 장차 나타날 영광과 축복에 참여하게 됩니다 (롬8:18). 그 보배로운 약속을 위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 참여하게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으나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를 앎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 시작하고 성령의 조명 하에 말씀대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속성이 점점 이루어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속성을 회복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속성을 닮아가는 것으로서 영적 성장입니다 (갈4:19, 엡4:13, 벧후3:18, 빌2:12). 영적 성장에 따라 영광과 칭찬과 존귀와 상급을 얻게 됩니다 (벧전1:7, 4:13, 딤후4:7-7).

 

그러므로 베드로는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고 했습니다 (5-7절). 예수를 믿어서 구원받은 데에만 그치지 말고 영적 성숙과 진보를 위해 신의 성품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가라는 것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 위해 이런 덕목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 영적으로 온전해 지기 위해 이와 같은 신앙 덕목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이 육체를 구성하는데 내장, 살, 신경, 관절, 힘줄, 피, 상합(相合), 피부가 필요한 것처럼 온전한 삶을 위해 믿음, 덕, 지식, 절제, 인내, 경건, 형제우애,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내장에, 덕은 살에, 지식은 신경에, 절제는 관절에, 인내는 힘줄에, 경건은 피에, 형제우애는 상합에, 사랑은 가죽에 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①'믿음'은 구원과 관련하여 생각할 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로서 하나님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나는 덕목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을 얻고 이 믿음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가장 밑바탕이 됩니다 (롬5:1, 히1:1, 유1:20). 믿음이 성화와 관련되어 생각할 때는 순종으로 나타나야 하며 그것은 행위에 까지 나타나야 합니다 (약2:26). 믿음이 은사와 관련되어 생각할 때는 능력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에서는 성화와 관련된 믿음이 강조된 것 같습니다. 이 믿음은 우리 몸의 뼈와 같습니다.

 

②'덕'은 도덕적인 탁월성입니다. 덕은 다른 사람의 호의를 얻는데 필수적입니다 (빌4:8, 벧전2:9). 믿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덕이 없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얻지 못하게 되고 공동체에서 외면당하게 됩니다. 덕은 우리 몸의 살과 같습니다.

 

③'지식'은 하나님 뜻대로 살아나가는 데에 필요한 판단력과 통찰력을 말합니다 (롬15:14, 고전13:2, 벧전3:7). 지식과 지혜가 없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모르게 되고 악령과 우상과 세상과 육체적인 역사를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지식은 우리 몸의 신경과 같습니다.

 

④'절제'는 육체적인 죄적 욕망을 제어하는 능력을 말합니다 (갈5:23). 절제가 없는 사람은 자기 통제가 불가능하므로 자유와 방종과 타락으로 기울어지기 쉽니다. 또 바쁘기만 하고 진짜 중요한 것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절제는 우리 몸의 관절과 같습니다.

 

⑤'인내'는 악과 고난에 대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참는 것을 말합니다 (눅8:15, 롬5:3, 히12:2). 인내가 없으면 연단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인내는 우리 몸의 힘줄과 같습니다.

 

⑥'경건'은 세속에 물들지 않고 삶 속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을 말합니다 (약1:27). 경건은 우리 몸의 피와 같습니다.

 

⑦'형제우애'는 믿음 안에서 형제 자매된 자와의 진실한 교제를 말합니다 (벧전1:22, 3:8, 롬12:10, 살전4:9, 히13:1, 요일5:1). 형제우애는 우리 몸에 있어서 상합(相合)에 해당합니다.

 

⑧'사랑'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희생의 행동을 말합니다 (요3:16, 롬5:5, 요일3:16, 4:8, 갈5:22-23, 딤전6:11). 사랑은 우리 몸의 피부와 같습니다.

 

이런 것이 없는 자는 신의 성품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자이며 예수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알아 가기에 게으른 자이며 신앙의 열매가 맺히지 않는 자입니다 (8절). 이런 것을 행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서 옛 죄를 깨끗게 하심을 잊고 과거 세속적인 생활로 돌아가려는 자입니다 (9절). 그런 자는 소경과 같습니다. 원시치 못하는 자입니다 (9절). 요한복음9:39-41에서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보지 못한 것을 소경이라고 했습니다. 본 절에서는 생애에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 곧 미래를 보지 못하고 준비하지 못한 것을 소경이라고 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지 않은 자, 8가지 덕목을 이루지 않는 자를 말합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죄에서 구원받아 거듭나고 내세에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되 성화를 이룬 만큼 영광과 칭찬과 상급이 있게 됩니다. 영적 속성이 자라난 만큼, 신의 성품에 참여한 만큼 축복이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것들을 생각하지 않고 이루지 않는 자는 소경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영적이 시각이 없는 자가 소경인 것입니다 (마15:14, 23:16, 눅6:39, 롬2:19).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했습니다 (10-11절). 주의 선택하심과 부르심을 확실하게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에서 말한 것들을 행하므로 자라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께서 자기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하실 때에 당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3. 믿음의 근거 제시 (12-21절)

 

12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3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14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교묘히 만든 이야기를 따른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그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그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부터 난 것을 들은 것이라

19 또 우리에게는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를 비추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옳으니라

20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21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소아시아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미 복음 진리를 알고 있었습니다. 사도들의 가르침을 알고 그 진리에 굳게 서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드로는 항상 그 진리를 기억하고 더욱 굳게 서게 하기 위해 권면을 계속 하려 합니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이 이미 말씀하신 것같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 알고 있었습니다. '장막'은 육체를 가리키고 '장막을 벗어날 것'은 육체를 떠나 죽게 될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순교할 것을 이미 예언하셨는데(요21:18), 그 때가 임박한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생각나게 하기 위해 계속 진리를 가르쳐야 할 필요를 느낀 것입니다 (12-15절). 사도의 열심을 읽을 수 있습니다. 바울도 교인들의 신앙적 성장을 위해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했습니다 (갈4:19).

 

16절에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강림'(παρουσια)은 주의 재림을 말합니다. '능력'은 주께서 재림하실 때에 심판을 통해 나타낼 능력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능력으로 임하셔서 불의한 대적자들을 심판하고 그의 의로운 나라를 온전히 완성할 것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두려움을 갖게 하여 도덕성을 유지시키기 위해 만든 내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이 거짓으로 꾸며 낸 이야기가 아니라고 단호하게 말합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예수님의 위엄을 친히 보았다는 것입니다. 17-18절에 보면 베드로는 거룩한 산에 있을 때 지극히 큰 영광 중에 하늘로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이는 변화산 사건을 두고 한 말입니다 (마17:1-9, 막9:2-10, 눅9:28-36).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가 예수님과 변화산에 갔을 때 예수님이 영광 중에 변화하고 하늘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였습니다. 이는 시편2:7인용입니다. 시편2:7-9에 보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메시야(구원자)는 '아들'이라 불렸고 그 아들은 시온산에서 왕으로 등극하여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모든 대적을 지배하고 다스린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은 변화산에서 하늘의 소리를 통해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야로 선택된 자임을 인정받으므로 존귀와 영광을 받은 것입니다. 곧 재림하여 심판할 자임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19절에서 "또 우리에게 더 확실한 예언이 있어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으니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고 했습니다. '확실한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해 예언한 모든 말씀을 말합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변화산에서 경험한 것보다 더욱 확실한 것은 예언의 말씀들이라는 것입니다. 그 말씀들은 마치 어두운 데 비취는 등불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 깨닫지 못하고 확신이 없는 상태에 있는 자가 이 말씀을 붙들면 확실하게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밤에 샛별이 떠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은 확신이 없는 자에게 확신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그 깨달음과 확신이 올 때까지 이 사실들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이론들을 주의하라는 것입니다.

 

이어서 20절에는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거짓교사들은 주의 재림에 대한 구약 선지자들의 예언의 말씀을 자신들의 뜻이나 생각에 의해서 비롯한 것이라고 했고 구약 선자자들의 예언의 말씀을 자기들 의도대로 해석을 해서 예수님의 재림을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개인적으로 사사로이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를 21절에 보면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서 말한 것입니다. 곧 성경 말씀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습니다. 그 사실은 성경 말씀이 오류가 없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이고, 동시에 성령의 감동으로 해석해야 된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은 개인이 사사롭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 성경 영감설 (聖經靈感說)

 

성서영감은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말입니다. 영감설에는 방법면에서 세가지가 있고 범위 면에서 세가지가 있습니다.

 

1) 영감의 방법

 

①기계적 영감설(機械的靈感說) -기계적 영감설은 성경 기록자들이 무의식 상태에서 성령께서 불러주시는 대로 필기사처럼 기계적으로 기록했다는 설입니다.

②동력적 영감설(動力的靈感說) -동력적 영감설은 성경기록자들이 성령으로부터 동기와 힘만 제공받고 자세한 기록은 그들의 통찰력과 지혜로 기록했다는 설입니다.

③유기적 영감설(有機的靈感說) -유기적 영감설은 성경기록자들이 성령으로부터 오류없이 기록하도록 영감을 받되 그들의 성품과 기질과 은사와 재능과 지식과 교육과 교양과 용어와 어법과 문체들을 유기적으로 사용하여 기록했다는 설입니다.

 

2) 영감의 범위

 

①사상 영감설(思想靈感說) -사상 영감설은 성경의 언어는 영감되지 않고 사상에만 영감되었다는 설입니다.

②부분 영감설(部分靈感說) -부분 영감설은 성경 전체에 영감된 것이 아니라 부분적(신약, 교리적 사건, 예수님의 말씀, 산상보훈 등)으로만 영감되었다는 설입니다.

③완전 영감설(完全靈感說) -완전 영감설은 축자 영감설(逐字靈感說)이라고도 하는데 성경의 모든 내용이 문자 하나 하나에까지도 영감되었다는 설입니다 (원어 기준).

 

종류면에서 세가지 이론 중 유기적 영감설이 옳은 설이고, 범위면에서 세가지 이론 중 완전(축자) 영감설이 옳은 설입니다.

 

<結言>

베드로는 에베소 지역에 있는 흩어진 그리스도인들이 밖으로부터 당할 환난을 대비하는 믿음을 가지도록 권면했습니다. 또한 안으로 거짓교사들의 교훈을 경계하도록 권면했습니다. 특히 주의 재림에 관한 잘못된 교훈을 경계하도록 했습니다. 베드로가 죽음에 대한 암시를 느끼면서 자신이 죽은 후에라도 기억나게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평생동안 항상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할 요긴한 교훈들이 있습니다. 그런 진리의 도를 부지런히 배워야 평생 하나님 앞에 옳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聖經> 베드로후서 2:1-22

<題目>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序言>

베드로는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므로 영적으로 성숙한 자가 되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생애를 살기를 원했습니다 (1장). 그러기 위해 바른 교훈에 서야 하고 바른 교훈을 바꾸어 타락시키는 거짓 교사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짓선지자들이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타락시켰는데 당시에도 거짓 교사들이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의 온전한 신앙생활을 위협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예언한 대로였습니다 (마24:11, 24, 계13:11-18). 그래서 2장에서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특성과 결국을 알게 하는데 주력합니다. 내용구조는 거짓 교사들의 특징(1-3절), 거짓 교사들에 대한 심판 심판(4-10a절), 거짓 교사들의 불의함(10b-19절), 거짓 교사들의 운명(20-22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거짓 교사들의 특징 (1-3절)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베드로는 과거에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당시에도 거짓 교사들이 있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1절에 "그러나 민간에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선생들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민간'은 사람들을 말하며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선생'은 교사를 의미하는데 뉘앙스로 보면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거짓 선지자는 자신들을 하나님이 보내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보냈다고 말하고 자신들의 말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아닌데 하나님 말씀이라고 전하는 자들입니다 (렘4:10, 6:14, 14:13, 23:21, 32, 겔13:2-7). 그와 같이 거짓 교사들도 주께서 보낸 사람들이 아닌데 주님이 보낸 자들이라고 하면서 성경을 곡해하여 자신들의 가르침이 주의 교훈인 것처럼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교회에 침투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는 형태는 은밀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절 중반절에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라고 했습니다. '이단'(異端)은 헬라어로 하이레시스(αιρεσειs)로서 영어의 heresy입니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의견'이나 '이론'이나 '교훈'이나 '교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후에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들의 가르침과 다른 특정한 교리를 주장하고 가르치는 사람 혹은 단체'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사용된 의미는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과 다른 교훈'을 말합니다. 거짓 지도자들은 멸망케 할 그릇된 이론을 '가만히 끌어들여' 옵니다. 그릇된 성경해석을 가지고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사용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교회에 은밀하게 침투합니다 (갈2:4, 딤후3:6, 유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분별력을 가지고 가려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계1:2, 13:8). 그들을 분별하는 방법은 교훈과 행위입니다 (요이1:10-11, 마7:15-20).

 

①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1절).

1절 하반절에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을 사신 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속했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도가 구주인 것을 부인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성령으로 동정녀에게 탄생한 것과 택자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3일만에 부활한 사실과 40일 후에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과 다시 재림하실 것을 부인하는 자는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사실과 육체로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경계해야 합니다 (요일4:2, 요이1:7, 유1:4).

 

②교만합니다 (10-11절).

10절 하반절에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교사들은 당돌하고 거만하여 영광있는 자를 훼방한다는 것입니다. '영광있는 자'는 11절에 보면 천사 특히 미가엘 천사를 의미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천사 곧 자기들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까지 업신여긴다는 것입니다 (유1:8-9). 그들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사단과 마귀와 귀신들도 교만하여 영계에서 쫓겨난 자들입니다 (겔28:13-16, 유1:6, 계12:9-10)

 

③음란합니다 (2, 12-13, 18절).

2절에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음심이 가득하고 음란합니다. 연락을 좋아하고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합니다. 이방종교에는 우상숭배와 관련하여 성적 타락이 조장되었는데 거짓교사들은 성적 방탕에 빠지게 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방해합니다 (계2:14,20).

 

④탐심으로 행합니다 (3, 14-15절).

3절에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利)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로서 저주의 자식들입니다. 발람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들은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미혹받은 자들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경제적인 욕구를 채우려 합니다 (딛1:11, 유1: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여 멸망시킵니다. 그들은 주께서 오실 때에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계20:10, 21:8).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분별하여 물리쳐야 합니다 (계2:2,6).

 

 

2. 거짓 교사들에 대한 심판 심판 (4-10a절)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베드로는 불의한 자를 심판하고 경건한 자를 건지시는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9-10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는 거짓 교사들은 반드시 심판하고 그들 가운데서 경건한 신앙인들을 건지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베드로는 그 예로 세 사건을 들었습니다.

 

①타락한 천사에 대한 심판입니다 (4절).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들을 창조하였습니다. 천사장은 가브리엘, 미가엘, 루시퍼(?)였습니다. 가브리엘은 계시를 전달하는 사역을 맡았고 미가엘은 전투하는 사역을 맡았고 루시퍼는 찬양하는 사역을 맡았습니다. 에스겔28:13-17에 보면 교만하여 타락한 천사에 대한 내용을 교만한 두로왕에 대해 비교하면서 두로왕이 받을 심판을 경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루시퍼는 하나님 보좌의 그룹들 사이에서 찬양을 하는 사역을 책임진 자였으나 교만하여 타락하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14:12-15에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과 비기고 하나님의 별들 보다 위에 있으려고 했습니다. 유다서1:6에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12:7-9에는 그와 그 사자들을 사단과 마귀라고 했고 미가엘 천사장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내어 쫓겼다고 했습니다.

 

본문에는 범죄한 천사들을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둔다고 했습니다 (4절). 본절에서 말한 '지옥'은 탈타로스(ταρταροs)입니다. '지옥'(地獄)이라는 용어는 크게 하데스(αδηs)와 게엔나(γεεννα)가 있습니다. 하데스(αδηs)는 일반적으로 악령들의 임시처소나 죽은 자의 영혼이 일시적으로 거하는 곳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탈타로스(ταρταροs)는 음부의 가장 깊은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본문에서 범죄한 천사를 심판 때까지 음부의 가장 깊은 곳에 가두어 두었다고 하는 것은 흑암의 영역에 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유다서1:6에도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었다고 했습니다.

 

타락한 천사들이 최후심판을 받은 후에는 게엔나(γεεννα)에 가게 됩니다. 게엔나 는 히브리어 게-힌놈 (힌놈의 골짜기)이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힌놈 골짜기는 원래 예루살렘 남동부로 뻗어 있는 히브리어 지명 와디에르 라바비 (Wadier-Rababi)를 말합니다 (수15:8, 18:16, 사31:9, 66:24, 렘32:35, 대하33:6). 그 곳은 황소 형상의 몰록(Moloch) 우상을 숭배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 우상 숭배에는 인신제사가 뒤따랐습니다 (왕하16:3, 21:6). 불로 이글거리는 팔에 아이를 바치므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처참했습니다. 그 광경들에서 그 곳을 게-힌놈 (힌놈 골짜기) 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게-힌놈 은 정확히 말하면 게 벤-힌놈 (애곡의 아들들의 골짜기)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가공스러운 희생제사가 요시야 왕에 의해 폐지된 이후 그 곳을 심히 혐오하여(왕하23:10) 그 곳에 죽은 동물이나 범죄자들의 시체를 버렸습니다 . 그런데 그 시체들로 인한 오염을 막기 위해 불로 태웠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곳을 자연스럽게 심판의 장소의 상징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렘7:32,19:6). 최후심판에서 정죄받은 자들이 영원히 형벌받은 곳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했습니다.

 

게엔나(γεεννα)는 신약 성경에서 선재된 실체로서 (마25:41),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입니다 (막9:43, 마13:42, 50, 5:22, 23:33). 그 곳은 음부(αδηs)가 죽은 자가 일시적으로 거하는 곳인데 반해 최종적인 곳이며 (막9:43, 48), 음부가 죽은 자의 영혼만 가는 곳인데 반해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어 가는 것입니다 (막9:43-, 마10;28). 성경에는 그곳을 묘사할 때 유황 불못처럼 불타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5:22, 25:4, 18:9, 막9:43). 요한계시록에는 지옥을 유황불못으로 표현했습니다. 유황불못은 헬라어로 την λιμνην του πυροs την καιομενην εν τω θειω (a lake of fire burning with brimstone-KJV. 계19:20)로서 유황과 함께(으로) 불타는 못(호수)입니다. 이 불은 영원한 불이고 (마18:8, 마25:41, 유1:7), 꺼지지 않는 불이고 (막9:43), 구더기도 죽지 않는 불입니다 (막9:48). 그 곳은 사단(마귀)이 갈 곳이고 (계20:10), 적그리스도(짐승)과 거짓선지자가 갈 곳이고 (계19:20), 불신자들이 갈 곳입니다 (계20:15). 그들은 그 곳에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합니다 (20:10). 그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계20:14, 21:8).

 

②노아 시대에 대한 심판입니다 (5절).

 

노아시대에 세상 사람들이 경건치 않았습니다. 마태복음24:37-39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눅17:26-27).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물질과 육체주의로 살았으며 방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홍수로 심판하고 그 가운데서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 곧 8명을 방주를 통해 구하셨습니다.

 

③소돔 고모라에 대한 심판입니다 (6-8절).

 

아브라함과 롯 시대에 소돔 고모라 사람들이 경건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음란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자(使者)들이 소돔 성에 들어가 롯의 집으로 갔을 때 소돔 사람들이 노소하고 사방에서 모여들어 집을 에워쌌습니다. 그리고 롯에게 말하기를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했습니다. 상관(相關)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다'로서 성(性)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러자 롯이 하나님의 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납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두 딸을 이끌어 낼 테니 눈에 좋은 대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창19:1-8).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명망시키기로 작정하고 유황불을 내려 재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그들의 무법한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했습니다. 날마다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으므로 그 심령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그와 그의 가족을 살렸습니다.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되 의로운 자들을 살렸습니다.

 

하나님이 사단과 노아시대의 사람들과 소돔 고모라 사람들을 심판한 사실을 말한 것은 종말에 나타나는 거짓 교사들도 반드시 심판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9절에는 불의한 자는 반드시 형벌 아래 둔다고 했습니다. 10-11절에는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을 특별히 형벌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보다 힘과 능력이 있는 천사들보다 약하면서도 감히 담대하고 고집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 곧 천사들을 훼방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훼방하는 거짓 교사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고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들을 구할 것입니다. 당시는 육적인 삶이 승리한 것 같으나 결국은 영적인 삶이 승리합니다. 비진리가 승리하는 것 같으나 종국에는 진리가 승리합니다.

 

 

3. 거짓 교사들의 불의함 (10b-19절).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①영광있는 자를 훼방하기에 담대합니다 (10절). 더 큰 능력과 함을 가진 천사라도 주 앞에서 그들을 송사하지 않습니다 (11절). 그것은 주께 속한 권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은 교만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이 수종 드는 천사들 까지도 무시합니다. 그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난 이성없는 짐승과 같아서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합니다. 그러다가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할 자들입니다 (12절). 멸망 가운데서 멸망할 자들, 곧 멸망 가운데서 파괴될 자들입니다 (12절).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할 자들입니다. 자신들이 행한 불의로 불의를 당하여 보응을 받을 자들입니다 (13절).

 

②연락하기를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13절). 낮에 연락하기를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일반적으로 방탕하는 생활은 밤에 이루어지나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연회 할 때에 간사한 가운데 연락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임에도 교묘하게 그런 속성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육체적 욕망만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롬1:24-25).

 

③탐욕으로 연단된 자들입니다 (14절). 탐욕에 연단된 자들입니다. 탐욕생활이 습관화 되어 있는 자들입니다.저주의 자식들입니다. 발람의 길을 좇는 자들입니다. 발람의 길은 돈을 사랑하여 바른 길을 떠나 거짓 예언을 하고 멸망할 교훈을 하여 이스라엘을 망하게 한 길입니다 (민22:5-24). 발람은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말 못하는 나귀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모압왕 발락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에서 음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하다가 하루에 염병으로 죽은 자가 23,000명이나 쓰러져 죽었습니다 (민25:9, 31:16, 고전10:8, 계2:14). 그런 자들은 물없는 샘과 같고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와 같습니다. 기대에 부풀게 했다가 실망만 안겨다 줍니다. 그들에게는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지옥을 의미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갈 곳은 지옥입니다 (계20:10).

④육체의 정욕으로 기울어진 자들입니다 (18절). 음심이 가득하여 굳세지 못한 자들을 유혹합니다 (14절).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자들을 미혹하여 방탕하는 생활에 동참하게 합니다.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합니다 (18절). 이교도들에게서 벗어난 자들 곧 신아이 아직 어린 자들을 미혹합니다. 자유를 준다고 말하지만 자기들은 멸망의 종들입니다. 결국 자기들도 멸망 당하고 남도 멸망케 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영광과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말하지만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거짓교사들은 이미 죄의 종이 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4. 거짓 교사들의 운명 (20-22절)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거짓 교사들과 그들에게 미혹당한 자들은 결국은 돌이키기 힘듭니다. 예수님을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얽매이고 지게 되면 처음보다 나중이 더 심하게 됩니다 (20절). 예수님을 믿는 자가 미혹을 받아 다시 타락하게 되면 믿지 않는 사람들 보다 더 악한 사람이 됩니다.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모두 기독교를 접했던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간 후에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다니다가 들어가게 되면 그 사람의 형편이 더욱 심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나간 귀신이 자기가 있었던 집이 소제된 것을 확인하고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거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12:43-45).

 

예수를 믿고 진리 말씀을 받은 후에 다시 의식적으로 타락한 자는 회개하기 힘듭니다. 죄는 범죄의 의도와 관련하여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모르고 지은 죄가 있고, 둘째는 알고도 연약해서 지은 죄가 있고, 셋째는 알고도 고의적으로 지은 죄가 있습니다. 알고도 고의적으로 지은 고범죄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의식적 범죄는 용서받기 힘듭니다 (히6:4-6, 10:26-27, 마12:31, 요일5:16). 히브리서6:4-5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했고 10:26-27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고 했고, 마태복음12:31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요한일서5:16에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의의 도를 안 후에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21절). 기독교 복음을 받은 후에 다시 의식적으로 타락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알지 못한 것이 났습니다. 한번 진리를 깨달은 다음에 의식적으로 탈선한 사람은 다시 바른 진리로 돌아오기 힘듭니다. 한번 교회에 들어왔다가 타락한 사람은 다시 교회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을 교회로 이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로 온 사람을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잘 가르쳐야 합니다. 도형상담자료에 보면 ○타입(Round Type), △타입(Triangle Type), □타입(Square Type), S타입(Gloom Type)이 있습니다. 그 중 S타입은 머리가 발달한 사고형 타입니다. 이 타입은 창조적, 분석적, 논리적, 완벽주의적, 초감각적, 이상적, 희생적 성향을 가진 타입입니다. 그런데 무신론자의 60%가 이 타입입니다. 신앙을 잘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믿으면 순교까지라도 하는 충성심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현대 어린 아이들의 검사를 해 보면 대부분 그룸 타입이라는 것입니다. 중간지대는 없는 세대입니다. 그래서 어린이 주일학교와 중고등부에서 제대로 교육해야 합니다.

 

22절에 보면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고 했습니다. 개가 토하였던 것에 다시 돌아간다는 속담은 잠언26:11 인용입니다.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로 도로 누웠다는 속담은 유대인들의 속담집 아히칼(Ahikar)에 나온 격언 인용입니다. 개와 돼지는 배교자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배교자들처럼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또 교리적인 타락이 아니라 해도 도덕적으로도 옛 생활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개나 돼지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자기 욕망을 위해서는 도덕적인 부정도 마다하지 않는 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19절에서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고 했습니다. 죄의 습관에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結言>

베드로 사역 당시 거짓 교사들이 그리스도인의 교회 공동체를 교리적으로 파괴했고 도덕적인 유혹에 빠지게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경계하기 위해 그들의 속성과 범죄에 대해 지적했고 그들에게 임할 심판과 운명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거짓 교사뿐 아니라 거짓 교사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거짓된 교훈을 경계하므로 그들의 헛된 길을 답습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聖經> 베드로후서 2:1-22

<題目> 거짓 교사에 대한 경고

 

<序言>

베드로는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주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들이 되므로 영적으로 성숙한 자가 되고 하나님 앞에 온전한 생애를 살기를 원했습니다 (1장). 그러기 위해 바른 교훈에 서야 하고 바른 교훈을 바꾸어 타락시키는 거짓 교사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짓선지자들이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타락시켰는데 당시에도 거짓 교사들이 있어서 그리스도인들의 온전한 신앙생활을 위협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예언한 대로였습니다 (마24:11, 24, 계13:11-18). 그래서 2장에서 베드로는 거짓 교사들의 특성과 결국을 알게 하는데 주력합니다. 내용구조는 거짓 교사들의 특징(1-3절), 거짓 교사들에 대한 심판 심판(4-10a절), 거짓 교사들의 불의함(10b-19절), 거짓 교사들의 운명(20-22절)으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거짓 교사들의 특징 (1-3절)

 

1 그러나 백성 가운데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그들은 멸망하게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2 여럿이 그들의 호색하는 것을 따르리니 이로 말미암아 진리의 도가 비방을 받을 것이요

3 그들이 탐심으로써 지어낸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득을 삼으니 그들의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멸망은 잠들지 아니하느니라

 

베드로는 과거에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던 것처럼 당시에도 거짓 교사들이 있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1절에 "그러나 민간에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선생들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민간'은 사람들을 말하며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선생'은 교사를 의미하는데 뉘앙스로 보면 지도자를 의미합니다. 거짓 선지자는 자신들을 하나님이 보내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보냈다고 말하고 자신들의 말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 아닌데 하나님 말씀이라고 전하는 자들입니다 (렘4:10, 6:14, 14:13, 23:21, 32, 겔13:2-7). 그와 같이 거짓 교사들도 주께서 보낸 사람들이 아닌데 주님이 보낸 자들이라고 하면서 성경을 곡해하여 자신들의 가르침이 주의 교훈인 것처럼 가르치는 자들입니다.

 

그들이 교회에 침투하고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는 형태는 은밀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1절 중반절에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라고 했습니다. '이단'(異端)은 헬라어로 하이레시스(αιρεσειs)로서 영어의 heresy입니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의견'이나 '이론'이나 '교훈'이나 '교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후에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들의 가르침과 다른 특정한 교리를 주장하고 가르치는 사람 혹은 단체'의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본문에서 사용된 의미는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가르침과 다른 교훈'을 말합니다. 거짓 지도자들은 멸망케 할 그릇된 이론을 '가만히 끌어들여' 옵니다. 그릇된 성경해석을 가지고 눈치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사용합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의 가정과 교회에 은밀하게 침투합니다 (갈2:4, 딤후3:6, 유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 분별력을 가지고 가려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계1:2, 13:8). 그들을 분별하는 방법은 교훈과 행위입니다 (요이1:10-11, 마7:15-20).

 

①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1절). 1절 하반절에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자기들을 사신 주'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한 말입니다.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를 구속했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도가 구주인 것을 부인합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성령으로 동정녀에게 탄생한 것과 택자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3일만에 부활한 사실과 40일 후에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과 다시 재림하실 것을 부인하는 자는 경계해야 합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얻는다는 사실과 육체로 재림하신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자는 경계해야 합니다 (요일4:2, 요이1:7, 유1:4).

 

②교만합니다 (10-11절). 10절 하반절에 "이들은 담대하고 고집하여 떨지 않고 영광있는 자를 훼방하거니와"라고 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교사들은 당돌하고 거만하여 영광있는 자를 훼방한다는 것입니다. '영광있는 자'는 11절에 보면 천사 특히 미가엘 천사를 의미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교만하여 하나님을 위해 사역하고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천사 곧 자기들보다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까지 업신여긴다는 것입니다 (유1:8-9). 그들의 배후에서 역사하는 사단과 마귀와 귀신들도 교만하여 영계에서 쫓겨난 자들입니다 (겔28:13-16, 유1:6, 계12:9-10)

 

③음란합니다 (2, 12-13, 18절). 2절에 "여럿이 저희 호색하는 것을 좇으리니 이로 인하여 진리의 도가 훼방을 받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음심이 가득하고 음란합니다. 연락을 좋아하고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합니다. 이방종교에는 우상숭배와 관련하여 성적 타락이 조장되었는데 거짓교사들은 성적 방탕에 빠지게 하여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을 방해합니다 (계2:14,20).

 

④탐심으로 행합니다 (3, 14-15절). 3절에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利)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로서 저주의 자식들입니다. 발람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들은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고 미혹받은 자들을 이용하여 자기들의 경제적인 욕구를 채우려 합니다 (딛1:11, 유1: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반드시 심판하여 멸망시킵니다. 그들은 주께서 오실 때에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계20:10, 21:8). 그러므로 우리는 그들을 분별하여 물리쳐야 합니다 (계2:2,6).

 

 

2. 거짓 교사들에 대한 심판 심판 (4-10a절)

 

4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5 옛 세상을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6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7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8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10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베드로는 불의한 자를 심판하고 경건한 자를 건지시는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9-10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파괴하는 거짓 교사들은 반드시 심판하고 그들 가운데서 경건한 신앙인들을 건지신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베드로는 그 예로 세 사건을 들었습니다.

 

①타락한 천사에 대한 심판입니다 (4절).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천사들을 창조하였습니다. 천사장은 가브리엘, 미가엘, 루시퍼(?)였습니다. 가브리엘은 계시를 전달하는 사역을 맡았고 미가엘은 전투하는 사역을 맡았고 루시퍼는 찬양하는 사역을 맡았습니다. 에스겔28:13-17에 보면 교만하여 타락한 천사에 대한 내용을 교만한 두로왕에 대해 비교하면서 두로왕이 받을 심판을 경고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루시퍼는 하나님 보좌의 그룹들 사이에서 찬양을 하는 사역을 책임진 자였으나 교만하여 타락하게 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사야14:12-15에는 지극히 높은 하나님과 비기고 하나님의 별들 보다 위에 있으려고 했습니다. 유다서1:6에는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않고 자기 처소를 떠났다고 했습니다. 요한계시록12:7-9에는 그와 그 사자들을 사단과 마귀라고 했고 미가엘 천사장과 더불어 싸우다가 이기지 못하고 땅으로 내어 쫓겼다고 했습니다.

 

본문에는 범죄한 천사들을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둔다고 했습니다 (4절). 본절에서 말한 '지옥'은 탈타로스(ταρταροs)입니다. '지옥'(地獄)이라는 용어는 크게 하데스(αδηs)와 게엔나(γεεννα)가 있습니다. 하데스(αδηs)는 일반적으로 악령들의 임시처소나 죽은 자의 영혼이 일시적으로 거하는 곳으로 이해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탈타로스(ταρταροs)는 음부의 가장 깊은 곳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지만 본문에서 범죄한 천사를 심판 때까지 음부의 가장 깊은 곳에 가두어 두었다고 하는 것은 흑암의 영역에 둔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유다서1:6에도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었다고 했습니다.

 

타락한 천사들이 최후심판을 받은 후에는 게엔나(γεεννα)에 가게 됩니다. 게엔나 는 히브리어 게-힌놈 (힌놈의 골짜기)이라는 말에서 왔습니다. 힌놈 골짜기는 원래 예루살렘 남동부로 뻗어 있는 히브리어 지명 와디에르 라바비 (Wadier-Rababi)를 말합니다 (수15:8, 18:16, 사31:9, 66:24, 렘32:35, 대하33:6). 그 곳은 황소 형상의 몰록(Moloch) 우상을 숭배하는 지역이었습니다. 그 우상 숭배에는 인신제사가 뒤따랐습니다 (왕하16:3, 21:6). 불로 이글거리는 팔에 아이를 바치므로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처참했습니다. 그 광경들에서 그 곳을 게-힌놈 (힌놈 골짜기) 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게-힌놈 은 정확히 말하면 게 벤-힌놈 (애곡의 아들들의 골짜기)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가공스러운 희생제사가 요시야 왕에 의해 폐지된 이후 그 곳을 심히 혐오하여(왕하23:10) 그 곳에 죽은 동물이나 범죄자들의 시체를 버렸습니다 . 그런데 그 시체들로 인한 오염을 막기 위해 불로 태웠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곳을 자연스럽게 심판의 장소의 상징으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렘7:32,19:6). 최후심판에서 정죄받은 자들이 영원히 형벌받은 곳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했습니다.

 

게엔나(γεεννα)는 신약 성경에서 선재된 실체로서 (마25:41),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이 타고 있는 영원한 형벌의 장소입니다 (막9:43, 마13:42, 50, 5:22, 23:33). 그 곳은 음부(αδηs)가 죽은 자가 일시적으로 거하는 곳인데 반해 최종적인 곳이며 (막9:43, 48), 음부가 죽은 자의 영혼만 가는 곳인데 반해 영혼과 육체가 결합되어 가는 것입니다 (막9:43-, 마10;28). 성경에는 그곳을 묘사할 때 유황 불못처럼 불타는 곳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마5:22, 25:4, 18:9, 막9:43). 요한계시록에는 지옥을 유황불못으로 표현했습니다. 유황불못은 헬라어로 την λιμνην του πυροs την καιομενην εν τω θειω (a lake of fire burning with brimstone-KJV. 계19:20)로서 유황과 함께(으로) 불타는 못(호수)입니다. 이 불은 영원한 불이고 (마18:8, 마25:41, 유1:7), 꺼지지 않는 불이고 (막9:43), 구더기도 죽지 않는 불입니다 (막9:48). 그 곳은 사단(마귀)이 갈 곳이고 (계20:10), 적그리스도(짐승)과 거짓선지자가 갈 곳이고 (계19:20), 불신자들이 갈 곳입니다 (계20:15). 그들은 그 곳에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당합니다 (20:10). 그것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계20:14, 21:8).

 

②노아 시대에 대한 심판입니다 (5절).

 

노아시대에 세상 사람들이 경건치 않았습니다. 마태복음24:37-39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눅17:26-27).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물질과 육체주의로 살았으며 방탕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을 홍수로 심판하고 그 가운데서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 곧 8명을 방주를 통해 구하셨습니다.

 

③소돔 고모라에 대한 심판입니다 (6-8절).

 

아브라함과 롯 시대에 소돔 고모라 사람들이 경건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얼마나 음란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사자(使者)들이 소돔 성에 들어가 롯의 집으로 갔을 때 소돔 사람들이 노소하고 사방에서 모여들어 집을 에워쌌습니다. 그리고 롯에게 말하기를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고 했습니다. 상관(相關)한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야다'로서 성(性)적 관계를 의미합니다. 그러자 롯이 하나님의 사자를 보호하기 위해 납자를 가까이 하지 않은 두 딸을 이끌어 낼 테니 눈에 좋은 대로 행하라고 했습니다 (창19:1-8).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명망시키기로 작정하고 유황불을 내려 재가 되게 했습니다. 그러나 롯은 그들의 무법한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했습니다. 날마다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으므로 그 심령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어 그와 그의 가족을 살렸습니다. 불의한 자들을 심판하되 의로운 자들을 살렸습니다.

 

하나님이 사단과 노아시대의 사람들과 소돔 고모라 사람들을 심판한 사실을 말한 것은 종말에 나타나는 거짓 교사들도 반드시 심판한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9절에는 불의한 자는 반드시 형벌 아래 둔다고 했습니다. 10-11절에는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 곧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들을 특별히 형벌하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보다 힘과 능력이 있는 천사들보다 약하면서도 감히 담대하고 고집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 곧 천사들을 훼방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그랬듯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들을 훼방하는 거짓 교사들과 그들을 따르는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고 하나님 뜻대로 사는 자들을 구할 것입니다. 당시는 육적인 삶이 승리한 것 같으나 결국은 영적인 삶이 승리합니다. 비진리가 승리하는 것 같으나 종국에는 진리가 승리합니다.

 

 

3. 거짓 교사들의 불의함 (10b-19절).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11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12 그러나 이 사람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하여 난 이성 없는 짐승 같아서 그 알지 못하는 것을 비방하고 그들의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하며

13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하며 낮에 즐기고 노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자들이니 점과 흠이라 너희와 함께 연회할 때에 그들의 속임수로 즐기고 놀며

14 음심이 가득한 눈을 가지고 범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굳세지 못한 영혼들을 유혹하며 탐욕에 연단된 마음을 가진 자들이니 저주의 자식이라

15 그들이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어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따르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6 자기의 불법으로 말미암아 책망을 받되 말하지 못하는 나귀가 사람의 소리로 말하여 이 선지자의 미친 행동을 저지하였느니라

17 이 사람들은 물 없는 샘이요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니 그들을 위하여 캄캄한 어둠이 예비되어 있나니

18 그들이 허탄한 자랑의 말을 토하며 그릇되게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써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하는도다

19 그들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신들은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라

 

①영광있는 자를 훼방하기에 담대합니다 (10절). 더 큰 능력과 함을 가진 천사라도 주 앞에서 그들을 송사하지 않습니다 (11절). 그것은 주께 속한 권한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은 교만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이 수종 드는 천사들 까지도 무시합니다. 그들은 본래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난 이성없는 짐승과 같아서 알지 못한 것을 훼방합니다. 그러다가 멸망 가운데서 멸망을 당할 자들입니다 (12절). 멸망 가운데서 멸망할 자들, 곧 멸망 가운데서 파괴될 자들입니다 (12절). 불의의 값으로 불의를 당할 자들입니다. 자신들이 행한 불의로 불의를 당하여 보응을 받을 자들입니다 (13절).

 

②연락하기를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13절). 낮에 연락하기를 기뻐하는 자들입니다. 일반적으로 방탕하는 생활은 밤에 이루어지나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방탕한 생활을 합니다. 연회 할 때에 간사한 가운데 연락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모임에도 교묘하게 그런 속성를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육체적 욕망만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롬1:24-25).

 

③탐욕으로 연단된 자들입니다 (14절). 탐욕에 연단된 자들입니다. 탐욕생활이 습관화 되어 있는 자들입니다.저주의 자식들입니다. 발람의 길을 좇는 자들입니다. 발람의 길은 돈을 사랑하여 바른 길을 떠나 거짓 예언을 하고 멸망할 교훈을 하여 이스라엘을 망하게 한 길입니다 (민22:5-24). 발람은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말 못하는 나귀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그 길을 포기하지 않고 모압왕 발락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저주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길에서 음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하다가 하루에 염병으로 죽은 자가 23,000명이나 쓰러져 죽었습니다 (민25:9, 31:16, 고전10:8, 계2:14). 그런 자들은 물없는 샘과 같고 광풍에 밀려 가는 안개와 같습니다. 기대에 부풀게 했다가 실망만 안겨다 줍니다. 그들에게는 캄캄한 어두움이 예비되어 있습니다. 지옥을 의미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갈 곳은 지옥입니다 (계20:10).

④육체의 정욕으로 기울어진 자들입니다 (18절). 음심이 가득하여 굳세지 못한 자들을 유혹합니다 (14절). 믿음의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한 자들을 미혹하여 방탕하는 생활에 동참하게 합니다. 미혹한 데 행하는 사람들에게서 겨우 피한 자들을 음란으로 육체의 정욕 중에서 유혹합니다 (18절). 이교도들에게서 벗어난 자들 곧 신아이 아직 어린 자들을 미혹합니다. 자유를 준다고 말하지만 자기들은 멸망의 종들입니다. 결국 자기들도 멸망 당하고 남도 멸망케 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영광과 복음 안에서 누리는 자유를 말하지만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거짓교사들은 이미 죄의 종이 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4. 거짓 교사들의 운명 (20-22절)

 

20 만일 그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하리니

21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그들에게 나으니라

22 참된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그들에게 응하였도다

 

거짓 교사들과 그들에게 미혹당한 자들은 결국은 돌이키기 힘듭니다. 예수님을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얽매이고 지게 되면 처음보다 나중이 더 심하게 됩니다 (20절). 예수님을 믿는 자가 미혹을 받아 다시 타락하게 되면 믿지 않는 사람들 보다 더 악한 사람이 됩니다. 히틀러, 스탈린, 모택동, 김일성 모두 기독교를 접했던 자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간 후에 있을 곳을 찾지 못하고 돌아다니다가 들어가게 되면 그 사람의 형편이 더욱 심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나간 귀신이 자기가 있었던 집이 소제된 것을 확인하고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와서 거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12:43-45).

 

예수를 믿고 진리 말씀을 받은 후에 다시 의식적으로 타락한 자는 회개하기 힘듭니다. 죄는 범죄의 의도와 관련하여 세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모르고 지은 죄가 있고, 둘째는 알고도 연약해서 지은 죄가 있고, 셋째는 알고도 고의적으로 지은 죄가 있습니다. 알고도 고의적으로 지은 고범죄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의식적 범죄는 용서받기 힘듭니다 (히6:4-6, 10:26-27, 마12:31, 요일5:16). 히브리서6:4-5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고 했고 10:26-27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고 했고, 마태복음12:31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요한일서5:16에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의의 도를 안 후에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자가 되는 것보다 차라리 알지 못하는 것이 더 나은 것입니다 (21절). 기독교 복음을 받은 후에 다시 의식적으로 타락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알지 못한 것이 났습니다. 한번 진리를 깨달은 다음에 의식적으로 탈선한 사람은 다시 바른 진리로 돌아오기 힘듭니다. 한번 교회에 들어왔다가 타락한 사람은 다시 교회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을 교회로 이끄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로 온 사람을 잘 가르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잘 가르쳐야 합니다. 도형상담자료에 보면 ○타입(Round Type), △타입(Triangle Type), □타입(Square Type), S타입(Gloom Type)이 있습니다. 그 중 S타입은 머리가 발달한 사고형 타입니다. 이 타입은 창조적, 분석적, 논리적, 완벽주의적, 초감각적, 이상적, 희생적 성향을 가진 타입입니다. 그런데 무신론자의 60%가 이 타입입니다. 신앙을 잘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일단 믿으면 순교까지라도 하는 충성심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현대 어린 아이들의 검사를 해 보면 대부분 그룸 타입이라는 것입니다. 중간지대는 없는 세대입니다. 그래서 어린이 주일학교와 중고등부에서 제대로 교육해야 합니다.

 

22절에 보면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고 했습니다. 개가 토하였던 것에 다시 돌아간다는 속담은 잠언26:11 인용입니다.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로 도로 누웠다는 속담은 유대인들의 속담집 아히칼(Ahikar)에 나온 격언 인용입니다. 개와 돼지는 배교자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배교자들처럼 다시 옛 생활로 돌아가서는 안됩니다. 또 교리적인 타락이 아니라 해도 도덕적으로도 옛 생활로 다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개나 돼지의 모습을 보여서는 안됩니다. 자기 욕망을 위해서는 도덕적인 부정도 마다하지 않는 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19절에서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고 했습니다. 죄의 습관에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結言>

베드로 사역 당시 거짓 교사들이 그리스도인의 교회 공동체를 교리적으로 파괴했고 도덕적인 유혹에 빠지게 했습니다. 베드로는 그들을 경계하기 위해 그들의 속성과 범죄에 대해 지적했고 그들에게 임할 심판과 운명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거짓 교사뿐 아니라 거짓 교사의 가르침을 따라가는 자도 마찬가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거짓된 교훈을 경계하므로 그들의 헛된 길을 답습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聖經> 베드로후서 3:1-18

<題目> 거짓 교사들의 종말론 경계

 

<序言>

앞 장에서는 거짓 교사들의 도적적 영적 타락을 지적했습니다. 본 장에서는 거짓 교사들의 교리적 타락을 지적합니다. 특히 세상 종말과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교훈을 지적하고 그에 대한 비판을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확실성을 일깨워 주고 재림을 준비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권면합니다. 내용 구조는 그릇된 종말론에 대한 경계(1-7절), 주의 재림에 관련한 권면(8-13절), 마지막 권면과 인사(14-18절)로 되어 있습니다.

 

<本論>

1. 그릇된 종말론에 대한 경계 (1-7절)

 

1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이제 이 둘째 편지를 너희에게 쓰노니 이 두 편지로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나게 하여

2 곧 거룩한 선지자들이 예언한 말씀과 주 되신 구주께서 너희의 사도들로 말미암아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려 하노라

3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따라 행하며 조롱하여

4 이르되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5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그들이 일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6 이로 말미암아 그 때에 세상은 물이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7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보호하신 바 되어 경건하지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가 두번째 편지를 쓰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한 선지자들과 주께서 사도들로 말씀하신 것을 알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나와 자기 정욕을 좇아 행하며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1-4절). '기롱한다'는 것은 경멸과 모욕의 말을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기롱하는 자들은 세상 종말과 주의 재림에 대한 약속이 없다고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구약의 조상들이 죽은 후부터 지금까지 그냥 그대로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창조 이래로 세상의 모습과 법칙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처럼 세상 종말과 그리스도의 재림은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주의 재림(再臨)을 부인하는 이론은 크세 세가지입니다. 첫째, 재림무용설(再臨無用說)이 있습니다. 인류 역사는 무한한 진보와 발전을 통해서 자체적으로 이상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에 현대인에게는 예수의 재림은 불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곧 재림을 정신화 하는 이론입니다. 둘째, 재림지연설(再臨遲延說)이 있습니다. 성경에 재림에 대한 약속이 있기는 하나 교회들이 아무리 기다려 보아도 예수는 오지 않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기될 것이라는 이른바 연속적 종말론입니다. 셋째, 우주영원설(宇宙永遠說)이 있습니다. 만물이 조상들의 죽은 후로부터 지금까지 창조 때와 같이 그냥 있는 것 같이 우주는 영원히 존재하기 때문에 예수의 재림으로 인한 세상 심판은 없을 것이라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재림은 부인하는 자들 특히 우주영원설을 주장하는 자들은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 말씀으로 된 것을 부러 잊으려 하는 자들입니다 (5절). 자기들의 주장을 위해 세계가 창조된 것이 하나님 말씀, 곧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되어졌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것입니다. 세계는 하나님의 창조이며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생겨났기 때문에 세계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의지와 명령에 의해 멸망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계를 명령하여 창조했기 때문에 물의 넘침으로 멸망시킨 것입니다 (6절). 노아 홍수 사건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제 하늘과 땅을 명령하여 불로 살라 멸망시킨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계가 아직 멸망의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 같아도 그것은 세상 종말과 주의 재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심판 때까지 유보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7절).

 

세상 심판과 주의 재림은 너무나도 확실합니다. 세상 종말과 예수님의 재림에 관한 말씀은 성경에 1,518번 (구약 1,218번, 신약 300번)이나 예언되어 있습니다. 구약에서 선지자들이 예언했고,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고 (마24:29-34), 천사들이 주의 부활과 함께 재림을 주의시켰고 (행1:11), 사도들이 확신 가운데 증거했습니다 (살전4:15, 5:1-3, 벧전4:7). 예수님의 초림처럼 재림에 대한 예언도 반드시 성취됩니다 (마5:18, 24:35).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한 절에만 되었어도 이루어졌습니다 (사7:14, 미5:2).

 

 

2. 주의 재림에 관련한 권면 (8-13절)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0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11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은 세상 종말과 주의 재림 약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므로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정욕대로 행한다고 했습니다 (3-4절). 그러나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만물을 말씀 곧 의지와 명령으로 창조한 것처럼 하나님이 명령하여 물로 심판했고 앞으로도 명하여 불로 심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5-7절).

 

베드로는 이어서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이 한가지를 잊지 말라"고 했습니다 (8절). 시편90:4 인용입니다. 제한된 인간의 시간 개념과 영원한 하나님의 시간 개념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의 재림은 인간의 시간 개념에 의존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원한 경륜에 달린 것입니다. 베드로는 또한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했습니다 (9절). 주의 재림이 늦어지는 것은 하나님이 참으시는 것 때문입니다. 아무도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택함 받은 사람이 다 믿기를 기다리는 것이고 이미 믿은 사람이 성성화되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10절에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고 했습니다. 주의 재림은 도적같이 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고 바울도 말했습니다 (마24:43, 눅12:39, 살전5:2, 계3:3, 16:15). 사람들이 생각지 않을 때에 갑자기 임한다는 것입니다.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갑니다. 큰 소리는 강한 바람이나 강한 물살에 날아가는 소리의 표현입니다. 그 때는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납니다. '체질'은 세상을 구성하는 원 물질들을 말합니다. 물질들이 불에 타 해체되고 맙니다.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난다'는 것은 파괴되고 소멸된다는 것입니다.

 

11-14에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주의 재림과 세상 종말이 반드시 오겠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이 하나님의 말을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고 죄악을 도말했던 것처럼 불로 이 세상을 심판하고 새로운 하늘과 땅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사65:17, 66:22, 계21:1).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전천년설(前千年說) 입장에서 보면 지상에 천년 동안 이루어지고 무천년설(無千年說) 입장에서 보면 영원한 하늘나라에 대한 상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날을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사모해야 합니다. '거룩'은 죄와 분리를 의미하고 '경건'은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세엔 노아시대 때처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간다고 했습니다. 세상 종말과 주의 재림을 믿지 않는 자는 거룩하게 살려 하지 않습니다. 로마서8:5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라고 했습니다. 13:14에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3. 마지막 권면과 인사 (14-18절)

 

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17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18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영광이 이제와 영원한 날까지 그에게 있을지어다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은 자의 재림이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주의 재림이 오지 않는 동안 육체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세상 종말과 주의 재림이 반드시 있을 것을 변증했습니다. 그리고 권면하기를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14절). 주의 재림이 늦어지는 것을 방종하지 말고 거룩과 경건으로 살아서 주 앞에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15절에는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구원'은 중생을 의미할 때도 있고 성화를 의미할 때도 있고 영화를 의미할 때도 있는데 여기에서는 성화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주의 재림이 늦어지는 것을 육체의 기회로 삼지 말고 부지런히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서2:12에서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습니다. 구원을 이루어 간다는 것은 죄를 점점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이를 본문 18절에는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라라는 것입니다. 이는 지적 앎이 아니라 인격적 앎을 말합니다. 에베소서4:13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고 했습니다.

 

15절 하반절에 보면 바울도 그와 같이 그 받은 지혜대로 썼다고 했습니다. 세상 종말과 주의 재림과 성도의 구원에 대해 바울도 베드로와 같은 맥락에서 기록했다는 것입니다. 16절에 보면 바울도 재림을 고대하며 성도가 구원을 이루어가야 할 것에 대해 베드로 자신과 같은 사상으로 많이 기록했지만 그 중에 알기 어려운 내용이 더러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풀다가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바울서신에 바울이 쓴 글 중에는 이해하기 힘든 주제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교리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말이 아니라 독자들이 바울의 의도와 달리 이해하는 경우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는 예정과 선택 교리를 말할 때 신앙적 태만을 조장하는 듯이 보이는 구절 (엡1:4), 이신득구(以信得救)의 교리를 말할 때 성화를 소홀히 여기는 듯이 보이는 구절 (롬3:20-24, 28), 율법으로부터의 해방되었다는 주장을 할 때 율법폐기론 주장으로 오해할 수 있는 구절 (롬6:1-7, 고전6:13, 20) 등입니다. 그러나 참된 진리 지식을 배우지 못하고 믿음의 뿌리를 내리지 못한 자들은 다른 성경과 같은 의미로 풀어서 바울이 말한 바를 오해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억지로 자기들의 생각과 논리에 의해 풀므로 바울이 말한 바를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담대히 방종의 길로 들어가 타락하고 멸망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수신자들에게 당부하기를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고 했습니다 (17절).

 

<結言>

말세에 거짓 교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의 재림이 멀다고 생각하고 현세주의와 육체주의와 물질주의와 향락주의로 기울어집니다. 그들은 성경을 억지로 풀어서 오해하므로 그같은 주장을 하고 성도들을 미혹합니다. 성경해석은 문자적, 문법적, 역사적, 구속사적, 영적 해석 등이 있습니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보다는 종합적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계시 의존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하나님 말씀으로 풀어야 합니다. 성경은 성경으로 풀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 의존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기 때문에 성령의 감동을 힘입어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성경 기자들을 나타내려 했던 원래의 의도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재림과 관련하여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는 바는 거룩하고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죄를 떠나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구원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m.opendoo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