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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서신 - 베드로전후서

히브리서와 공동서신-조병수교수/외

by 은총가득 2021. 2. 19.

히브리서와 사도 베드로 (공동서신 1)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유다서는 공동서신이라고 불린다. 공동서신이라는 표현은 여러 사람이 이 서신들을 함께 썼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서신이 모든 사람에게 보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서신은 땅에 흩어져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보내는 편지들이다. 말하자면 발신자의 공동성이 아니라 수신자의 공동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공동서신들에서 교회의 눈이 세계로 열리고 있다. 공동서신을 통하여 교회가 미래로 연결된다. 공동서신은 세계의 교회를 보는 안목을 가지고 있다 (약 1:1; 벧전 1:1).

히브리서

히브리서는 사도 바울이 기록하였다는 의견과 그렇지 않다는 의견이 초대교회 이후로 계속 갈리고 있다. 바울서신들과 달리 발신자가 분명하게 사도 바울로 소개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후자의 견해를 무시할 수가 없다.


히브리서는 수신자들이 고난의 큰 싸움을 통과하고 나서 (히 10:32), 교회를 인도하던 지도자들이 죽은 후에 (히 13:7,24 참조), 때가 오래 지났지만 듣는 것이 둔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히 5:11이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하여 보낸 편지이다.

1. 히브리서의 구조
히브리서의 요점은 히 4:14-16에 나온다. 이것을 중심으로 하여 다음과 같이 구조를 분석할 수 있다 (14절: 하나님의 아들, 14-15절: 대제사장, 16절: 은혜의 보좌, 16절: 담대히 나아감.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1:1-4:16)
* 주제어: 하나님의 아들 (1:2 등등)
1) 아들의 본질 (1:1-4)
2) 천사보다 뛰어난 아들 (1:5-2:18)
3) 모세보다 뛰어난 아들 (3:1-4:13)
4) 결론 (4:14-16)
2. 대제사장 예수 (5:1-8:1)
* 대제사장 (2:17; 3:1; 4:14 - 5:1 - 8:1)
1) 예수의 대제사장되심 (5:1-10)
2) 초보신앙책망 (5:11-6:20) * 부록
3) 멜기세덱 - 예수 (7:1-28)
3. 성소 (하늘보좌)에 들어가신 예수 (8:1-10:18)
* 보좌 (성소) 4:16 - 8:2 - 10:19
1) 옛 시대 (8:1-9:10)
2) 새 시대 (9:11-28)
3) 더 나은 제물 (10:1-18) - 시 40:6-8 해석
4. 성소에 들어갈 담력 (10:19-13:17) - 신앙론!
* 담대히 나아감, 담대 (믿음) 4:16 - 10:19
5. 결론 (13:18-25)

2. 히브리서의 내용

1) 기독론
히브리서는 초대교회 설교의 전형이다. 히브리서에 초대교회의 신앙고백이 잘 나타나 있다. 세번 신앙고백 ("믿는 도리")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히 3:1; 4:14; 10:23). 신앙고백은 기독론적인 동의를 의미한다. 예수의 이름을 "더욱 아름다운 이름" ( )이라고 부른다 (히 1:4). 히브리서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천사보다도, 모세보다도, 대제사장보다도 크신 분임을 밝힌다. 특히 멜기세덱 대제사장론을 통하여 예수께서 구약시대의 대제사장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밝힌다. 물론 대제사장과 그리스도 사이에 유사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히 5:1-10). 신분과 관련하여 볼 때 대제사장이 되는 존귀는 사람이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되듯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이 되신 영광도 스스로 취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른 것이다 (히 5:4-5). 그러나 대제사장과 그리스도 사이에는 대단히 큰 차이점이 있다. 첫째로 대제사장은 자기를 위하여 속죄해야 하지만 (히 5:3; 7:27; 9:7), 예수께서는 죄가 없으시므로 자신을 위하여 속죄하지 않는다 (히 4:15). 둘째로 대제사장은 죽음으로 인하여 바뀌고 (히 7:23) 제사의 시효가 제한되어있기 때문에 (히 9:25) 반복적인 제사를 드려야 하지만, 예수께서는 영원하시며 (히 6:20; 7:21,24) 자신을 단번에 영원히 드리셨기 때문에 (히 9:26. 참조. 히 10:10,12) 반복적인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 셋째로 대제사장은 아론의 반차를 따르지만 (히 5:4), 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다 (히 5:6,10; 6:20). 멜기세덱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인물이다 (히 7:1-3), 아브라함보다도 높은 자이며 (히 7:4-10), 레위보다도 먼저 계신 분이다 (히 7:5,10). 넷째로 대제사장은 땅에 있는 성소에서 섬기지만, 그리스도는 하늘에 있는 성소에서 섬긴다 (히 8:1-2).

2) 성경관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말씀계시라는 차원에서 구약과 신약의 통일성을 주장한다 (히 1:1-2). 하나님의 말씀은 세 가지 부분을 가지고 있다. 천사로 하신 말씀 (히 2:2), 주로 하신 말씀 (히 2:3),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이다 (히 2:4).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다윗)의 글이지만 (히 4:7) 성령의 말씀이며 (히 3:7) 성경의 말씀이다 (히 3:15).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능력적인 것이다 (히 4:12-13). 히브리서에는 구약성경이 수없이 간접적으로 직접적으로 인용된다. 사실상 히브리서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구약성경을 해설하는 것으로 맥을 이루고 있다. 첫째로 안식 (시 95:7-11; 히 3:7-11). 여기에는 "오늘"에 대한 해석 (히 3:12-14), "격노"에 대한 해석 (히 3:15-17),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에 대한 해석 (히 3:18-4:13)이 나온다. 둘째로 멜기세덱 (시 110:4; 히 5:6). 여기에는 맹세 (히 6:13-20), 멜기세덱 (히 7:1-10), 멜기세덱의 반차 (히 7:11-16),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 (히 7:17-25)이 해석된다. 셋째로 언약 (렘 31:31-34; 히 8:8-12). 여기에는 첫 언약 (히 8:13-9:10)과 새 언약 (히 9:11-22)이 설명된다. 넷째로 제물 (시 40:6-8; 히 10:5-7). 여기에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심 (히 10:8)과 하나님의 뜻 (히 10:9-18)이 설명된다. 히 1-2장에 나오는 연속인용이 하나님의 아들을 설명하는 것에 이어서 히 3-4장은 영원한 안식에 관한 해석이며, 히 5-7장은 영원한 대제사장에 대한 해석이며, 히 8-9장은 새 언약에 관한 해석이며, 히 10-13장은 새 제물 (몸)에 관한 해석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핵심적인 구약성구의 사용을 중심으로 히브리서의 구조를 다음과 같이 분해할 수 있다.

히 1-2장: 하나님의 아들
히 3-4장: 영원한 안식
히 5-7장: 영원한 대제사장
히 8-9장: 새 언약
히 10-13장: 새 제물 (몸)

3) 구속사
히브리서에서 구속사는 특히 실체와 그림자라는 도식으로 설명된다. 히브리서는 이 도식가운데 여러 가지 구속사적인 변화를 발견하였다. 첫째로 히브리서는 대제사장과 관련하여 그 기능이 매우 제한적임을 밝힌다. "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히 8:5. 문자적으로는: "그들은 하늘에 있는 것들의 모형과 그림자를 섬긴다". 참조. 히 9:23-24). 그 까닭은 대제사장이 "약점을 가진 사람들" (히 7:28)로서 땅에 속하여 일시적으로 존재하는 것들을 섬기기 때문이다.


둘째로 히브리서는 성막을 불완전한 것으로 이해한다. 성막은 모세가 지시하심을 받아 (히 8:5) 사람이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 (히 8:2). 그러므로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이다" (히 9:9). 왜냐하면 성막이 있는 동안에는 아직 모든 신자가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령이 보여주신 사실이다 (히 9:8).


여기에서 또 하나의 구속사적인 구분이 성립된다. 그것은 첫 언약과 새 언약의 관계이다 (히 8:7-9:22). 대제사장과 성막을 통하여 확증되었던 첫 언약은 낡아지고 쇠하고 없어진다 (히 8:13). 첫 언약은 결코 무흠하지 않다 (히 8:7). 따라서 새 언약이 주어진다 (히 8:13). 새 언약은 "더 좋은 언약" (히 7:22; 8:6)이다. 새 언약의 내용은 예레미야서를 인용함으로써 잘 보여준다 (히 8:10-12).


따라서 마지막으로 위의 모든 것을 율법의 개념으로 이렇게 요약할 수 있다.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라" (히 10:1). 율법은 약점을 가진 사람들을 제사장으로 세웠고 (히 7:28), 율법은 사람의 손으로 만든 성막을 지었고 (히 8:5), 율법은 첫 언약에 있던 사람들이 버렸다 (참조. 히 8:10). 이렇게 볼 때 율법은 연약하며 무익한 것이므로 아무것도 온전하게 할 수가 없다 (히 7:18-19). 율법은 반드시 변이하고 폐지된다 (히 7:12,18). 율법이란 것은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을 기다리는 것이다 (히 9:10).

4) 신앙론
히브리서는 믿음에 대한 강도있게 설명한다.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히 10:37; 합 2:4)는 전제하에 "우리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히 10:39)는 고백과 함께 믿음에 관하여 정의를 내리면서 (히 11:1) 선진들의 신앙을 열거한다. 아벨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을 가치있게 여기지 않았던 사람들까지. 아벨은 죽어서 말하는 사람이다. 에녹은 하나님께 만족을 드린 자이다. 노아는 보지 못하는 일을 위하여 준비한 자이다. 아브라함은 나그네였다. 이삭은 장차 오는 일을 기다린 자이다. 야곱은 죽음 앞에서 경배한 자이다. 요셉은 미래를 바라본 자이다. 모세는 죄악의 영광보다 신앙의 고난을 선택한 자이다... 수많은 신앙인들이 명멸하였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에게 가치가 없었다 (히 11:38). 이런 신앙의 선진들은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다 (히 12:1).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바라보아야 할 믿음의 표준은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앙고백의 사도이시다 (히 3:1). 예수 그리스도는 믿음의 시작자이며 완성자이시다 (히 12:2).


사도 베드로

1. 베드로의 신상
베드로는 본래 시몬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베드로 (게바)라고 부르셨다. 이것은 작은 돌이라는 의미이다. 베드로의 가정에 관해서 아주 희미하게 알 수 있을 따름이다. 그의 아버지는 요나 또는 요한이라는 사람이었다. 예수께서 신앙을 고백하는 베드로를 가리켜 "바요나"라고 불렀는데 (마 16:17) 이것은 요나의 아들이라는 뜻이다. 요나는 비둘기를 의미한다. 예수께서 부활 후에 베드로를 가리켜 "요한의 시몬아" (요 21:15,16,17)라고 불렀다. 이것은 그의 아버지가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한은 위로라는 뜻이다. 베드로에게는 안드레라는 형제가 있었다 (마 4:18; 요 1:40). 이들은 우의가 좋은 형제였던 것 같다. 베드로는 결혼한 사람이다. 그에게는 장모가 있었다는 사실로부터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마 8:14). 후에 베드로는 그의 부인을 전도사역에 동참시켰던 것 같다 (고전 9:5 "게바와 같이 자매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 베드로는 갈릴리에서 어부로 살았다 (마 4:18; 눅 5:3이하). 예수께서는 어부의 일에 충실하는 사람을 제자로 부르셨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사람이 큰 일에도 충성하기 때문이다 (마 25:21,23).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직업을 영적인 의미로 변화시키셨다. 물고기를 낚는 어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마 4:19)! 주님은 모든 직업에서 제자를 삼으시며 직업을 영적인 차원으로 변화시키신다. 베드로는 예수의 제자가 되어 일생동안 복음사역에 투신하였다. 그는 두 개의 서신을 기록하였다 (베드로전서와 후서).

2. 사도 베드로의 서신

1) 베드로전서

베드로전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벧전 4:16. 참조. 행 11:26; 26:28).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인가? 그리스도인들은 나그네이다. 그래서 베드로전서는 나그네된 그리스도인들의 구속과 생활에 대하여 권면하고 증거한다 (벧전 5:12).

(1) 베드로전서의 구조

1. 도입 (1:1-2)
2. 나그네인 그리스도인의 구속과 생활 (1:3-5:11)
1) 나그네인 그리스도인의 구속 (1:3-2:10)
(1) 구속의 확립 (1:3-12)
(2) 구속의 수단 (1:13-25)
(3) 구속의 신분 (2:1-10)
2) 나그네인 그리스도인의 생활 (2:11-5:11)
(0) 서론 (2:11-12)
(1) 사회에 관한 권면 (2:13-25)
(2) 가정에 관한 권면 (3:1-7)
(3) 일반적인 삶에 관한 권면 (3:8-4:19)
(4) 교회에 관한 권면 (5:1-11)
3. 결론 (5:12-14)

(2) 베드로전서의 내용

A. 그리스도인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벧전 4:16). 그리스도인은 나그네이다. 그들은 흩어진 자들이며 (벧 1:1), 피택자들이다 (벧전 1:2). 나그네인 그리스도인은 구속받은 자이다 (벧전 1:3-2:10). 그에게는 삼위 하나님에 의하여 구속이 확립되어 있다 (벧전 1:3-12). 성부께서 거듭나게 하심과 성자께서 다시 오심과 성령께서 미리 증거하심으로 확립된 구속이다. 이 구속의 수단은 그리스도의 보혈과 하나님의 말씀이다 (벧전 1:13-25). 구속된 성도에게는 놀라운 신분이 주어진다 (벧전 2:1-10). 그는 갓난아기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벧전 2:2). 그는 산돌로서 신령한 집으로 세워져야 한다 (벧전 2:5). 그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어두움가운데서 부름받아 하나님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복음을 전하는데 힘써야 한다 (벧전 2:9-10). 그리스도인들은 나그네 시기를 두려움을 가지고 (벧전 1:17) 살아야 한다 (벧전 2:11-5:11). 그리스도인에게는 사회와 가정과 교회가 주어져 있는데 모든 영역에서 선하게 살아야 한다.

B. 선행
베드로전서는 거룩한 행실을 하나의 큰 주제로 삼고 있다.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벧전 1:15). 베드로전서가 거룩한 행실을 권면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 때문이다.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그 이유이다 (벧전 1:17). 신자는 하나님처럼 거룩해야 한다 (벧전 1:15-16). 신자는 하나님과 동급적인 위치에 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선행의 내용은 무엇인가 (벧전 3:11). 베드로전서는 윤리적인 권면을 준다. 마음을 같이 하여 체휼함, 형제사랑, 불쌍히 여김, 겸손함, 보복하지 않음, 복을 빎,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침,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않음, 악에서 떠남, 화평을 구하고 좇음이 선행의 내용들이다.


선행의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어리석은 사람들의 무식함을 침묵시키며 (벧전 2:15), 욕하는 자들을 부끄럽게 만든다 (벧전 3:16). 둘째로 아내의 선행은 남편에게 구원을 얻을 기회를 줄 수 있다 (벧전 3:1). 셋째로 선행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벧전 2:12). 그러나 선행을 해도 고난을 받을 수가 있다.

C. 고난
사도 베드로는 나그네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만나는 고난에 관하여 설명한다. 성도의 고난은 다양하다. 첫째로 시험 (peirasmo,j)으로서의 고난이 있다 (벧전 1:6-7; 4:12-19). 이것은 믿음의 연단을 위한 것으로 불시련이다. 그러나 이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으면 복있는 자이기 때문이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그 위에 계신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그 영혼을 조물주께 부탁할 것이다 (벧전 4:19). 이런 사람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는다. 둘째로 애매한 고난 (pa,scein)이 있다 (벧전 2:19-20). 이때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아름답다. 셋째로 의를 위한 고난이 있다 (벧전 3:13-17). 선행으로 인한 고난은 하나님의 뜻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고난의 본을 따르는 것이다. 이때 신자는 요동하지 말고 의에 관하여 대답할 것을 준비하여야 한다. 그러면 선행을 욕하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한다. 넷째로 정욕을 제어하기 위한 고난이 있다 (벧전 4:1-2). 육체의 고난을 받으면 죄를 그친다. 이렇게 하여 다시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게 된다. 다섯째로 마귀의 고난이 있다 (벧전 5:8-11). 마귀는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다닌다. 이것은 세상에 있는 형제들이 당하는 동일한 고난이다. 그러나 이것은 잠시동안의 고난에 불과하다. 따라서 신자는 믿음을 굳게 하여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2) 베드로후서

베드로후서는 베드로의 둘째 편지로서 성도들에게 진실한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여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주님께서 명하신 것을 기억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 (벧후 3:1-2).

(1) 베드로후서의 구조

1. 도입 (1:1-2)
2.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의 삶 (1:3-11)
3. 진리 회복 (1:12-21)
4. 거짓 선지자들에 관한 변론 (2:1-22)
5. 그리스도의 강림에 관한 변증 (3:1-13)
6. 결론 (3;14-18)

(2) 베드로후서의 내용

A. 그리스도인
베드로후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벧후 1:4).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라는 말을 한 단어씩 뜯어내서 살펴보면 "신의"라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을 의미하고, "성품"은 "본질"을 뜻하며, "참여하는 자"는 "교제하는 자" 또는 "함께 가진 자"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 말을 풀어 쓰면 "하나님께서 소유하시는 본질을 공유하는 자"라는 엄청난 내용이 드러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소유하시는 본질을 공유하는 자이다. 사도 베드로가 그리스도인을 이렇게 부르는 까닭이 무엇인가?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존귀한 자임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같은 높은 신분에 참여한 사람들이다 (참조. 마 5:48; 벧전 1:15-16)첫째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들을 나란히 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과 같은 위치로 끌어올리고 있다. 이것은 얼마나 감격스러운 은혜인가! 둘째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본질과 그리스도인들의 본질을 동일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높은 기대치를 설정하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을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인이 존귀한 자임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같은 높은 신분에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부끄럽게도 사도 베드로가 알려준 이러한 존귀함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존귀함을 스스로 망가뜨리고 있다.

B. 그리스도의 강림
그리스도의 재림은 공교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다 (벧후 1:16). 그리스도의 재림이 더디기 때문에 재림약속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다 (벧후 3:4). 그러나 재림약속이 실현되는 것이 더딘 까닭은 하나님께서 인생들에 대하여 오래 참아 아무도 멸망치 않고 회개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벧후 3:9). 하나님께서는 하루를 천년까지 기다리신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재림은 반드시 갑자기 온다. 그 날에는 천지가 사라지고 영원한 나라인 (벧후 1:11) 신천신지가 올 것이다 (벧후 3:10-13). 따라서 신자는 자신의 종말을 생각하면서 (벧후 1:14), 세상의 종말을 바라보면서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아야 한다.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벧후 3:11).

C. 거짓 선지자들
베드로후서는 거짓 선지자들에 관하여 (벧후 2:1-22) 유다서와 비슷한 내용을 진술한다. 이미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다 (2:1-3). 이들은 멸망의 이단을 끌어들이고 구속의 주님을 부인하면서 호색한 것을 따른다. 이렇게 하기 위하여 그들은 진리의 도를 방해하며 지은 말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결국 심판을 받고 멸망을 당할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의 심판은 확실하다 (벧후 2:4-11). 이들에 대한 심판은 범죄한 천사들에게서 (벧후 2:4), 노아 시대의 사람들에게서 (벧후 2:5), 롯 시대의 사람들에게서 (벧후 2:6-8) 이미 분명한 예를 찾을 수가 있다. 이들은 심판을 면할 수가 없다 (벧후 2:9-11). 거짓 선지자들의 모습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벧후 2:12-22. 도입구문 "이 사람들은", "저희가"에 주의할 것. 12,15,17,20). 첫째로 이 사람들은 짐승과 같은 존재로서 불의와 방탕을 일삼는다 (벧후 2:12-14). 둘째로 저희는 발람의 길을 따르는 자들이다 (벧후 2:15-16). 발람의 길을 따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은 바른 길을 떠나는 것이다 (벧후 2:15). 바른 길은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소유한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 (벧후 1:1)의 길이다. 발람의 길을 따르는 자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그들이 삯을 위하여 활동한다는 것이다. 사실상 이들의 표상이 되는 발람 자신도 "불의의 삯을 사랑하였다" (벧후 2:15).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에 침투하여 미혹하는 파괴자들의 최종적인 목적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셋째로 이 사람들에게는 허무와 흑암이 가득하다 (벧후 2:17-19). 넷째로 저희는 개가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더러운 구덩에 다시 눕는 것과 같다 (벧후 2:20-22).

D. 성경관
가장 중요한 진리는 성경의 예언이다 (벧후 1:19-21).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것을 "더 확실한 예언적 말씀"이라고 부른다 (벧후 1:19). 이것은 목격담과 큰 차이가 있다. 신자는 마땅히 예언의 말씀에 착념해야 한다. 베드로는 더 확실한 예언적 말씀의 성격을 하나의 비유로 설명한다. 그것은 "어두운 곳에서 비추는 등불과 같다". 예언은 어두운 심령을 밝게 만든다. 따라서 예언은 날이 새어 샛별이 떠오르듯이 마음 속에 분명한 것이 떠오를 때까지 연구해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베드로는 두 가지를 더 말한다. 첫째로 성경 예언의 해석이다 (벧후 1:20). 베드로는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다"고 말한다. 베드로는 성경의 예언이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의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런데 문제는 베드로가 어떤 해석을 거절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성경의 예언은 사람의 뜻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의미일 수 있다. 성경은 사람의 뜻에 의하여 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적인 해석은 허용될 수 없다. 오직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 둘째로 성경 예언의 출원이다 (벧후 1:21). 베드로는 "예언은 사람의 뜻으로 이끌려진 것이 아니라, 성령에 의하여 활동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말하였다"고 설명한다. 성경은 사람의 뜻에 의하여 성립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사람이 말한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을 지도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성령이다. 성령은 사람들이 성경을 기록하도록 지도하시는 분이다. 따라서 성경의 예언을 기록한 사람은 모두 성령의 지배하에 있는 것이다. 성경기록자는 성령에게 종속한다. 이렇게 볼 때 성경은 사람들이 말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다.


공동서신 8권

 

고린도 후서 3장에 나타난 구약(팔라이아스 디아데케스)과 신약(카이네스 디아데케스)으로 칭해진 언약은, 하나님께서 IS을 애굽땅에서 인도하던 날에 짐승의 피로 세우신 이스라엘의 미쉐파트에 대한 언약(출24:8)과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잡히시던 날에 그의 피로 세우신 언약을 지칭하는 것이었다(눅22:20). 물론 이러한 언약의 신구의 변화는 렘31:31-34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었다. 이렇게 구약과 신약이라는 것은 IS의 시내산 언약과 그리스도의 성찬언약에 관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얼토당토 않는 구약성경-신약성경으로 성경을 칭하므로 많은 부분에 있어서 성경에 대한 오해와 곡해를 낳게 만들었던 것이다.

 

물론 성경이 인간 저자들의 관점에서 66권으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나, 이 역시 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책이라는 점에서 오직 한 권일 따름이다. 다시 말해 성경이 한 권으로 불리는 것이 마땅한 것은, 그 기록이 인간사를 기록하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기록하려는데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이러한 성경을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이라는 매우 인위적으로 분류하고 있다. 알다시피 성경은 40여명의 기록자들이 장장 1500년 이상을 걸쳐 기록하였기 때문에 그 역사성과 더불어 다양성은 물론 영원자존하신 한 하나님께서 기록하였다는 점에서 역시 신적권위와 더불어 통일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인간의 신학이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통일성을 찾는 작업이라 하겠다. 이와 관련된 찰스 핫지의 말을 들어보도록 하자.

 

핫지는 신학이 성경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지식 혹은 사실들을 수집하고, 입증하고, 정리하여 서로의 내적 연관을 드러내주는 작업이라고 하였다. 마치 자연과학자들이 자연에 흩어져 있는 지식과 사실들을 수집하고 연관시켜 법칙을 만드는 작업과 같은 작업이다. 과학의 목적이 외적 세계의 사실들을 정리하고 조직화함으로 자연법칙을 확인하는 것이라면, 신학의 목적은 성경의 사실들을 조직화하고 그 사실들과 관련된 원리와 일반적 진리들을 확인하는 것이다(길자연, 강웅산편저, '찰스 핫지의 신학', (서울: 솔로몬, 2009), p. 211).

 

핫지의 말처럼 신학이란 40여 명의 저자들이 장장 1500년 이상에 걸쳐 기록된 다양한 사실들을 밝혀 그 원리를 찾아내는 작업이라 하겠다. 자연과학이 하나님께서 만드신 사물현상의 이치를 터득해 그 오묘한 법칙을 종합해 가듯이, 인간의 신학 역시 역사와 기록면에서 방대하고 다양한 성경의 내용들을 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목적을 통해 그 원리를 밝히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많은 이들이 지금까지 언약사니, 구속사니, 하나님의 나라니 하여 다양한 논의를 진척시켜왔지만 모두가 실패했다. 이는 위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한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얼토당토않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나누고 있는 인간의 유전에서 연유한 것이다.

 

성경 스스로 모형과 그림자(히8:5, 9:23)를, 그리고 약속과 성취를 수없이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더해 인위의 모형과 실체 그리고 인위의 약속과 성취를 첨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성경 해석에 있어서 문법적-역사적 해석만으로 그 내용이 풀어져야만 바른해석이라 할 것이다. 이에 인위적인 유전에 따른 편견을 과감히 배제하고, 오직 한 하나님의 감동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전체 성경의 내용이 하나의 원리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이에 한국성경신학연구소는 이러한 원리가 바로 "하나님의 일"이라 판단한 것이다. 성경해석의 제일 원리이기도 한 이 주제는 듣기에 따라서 단순하여 누구나 당연하다고 여기므로 소홀하게 여겼던 주제였다.

 

그러나 성경이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특별한 책이라 불릴 수 있었던 것도 그 내용이 하나님의 일을 기록하므로, 하나님의 존재는 물론 그의 능력을 밝히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예수께서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므로 오해함이 아니냐"(막12:24)는 사두개인들의 도전에 대한 말씀에 나타난 것과 같이,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에 알리는 유일무이한 책이라는 점도 바로 "하나님의 일" 때문이다. 이에 주전 5세기 경 아테네의 수호신인 아테나를 위해 지었다고 전해지는 파르테논 신전이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제1호라지만, 전 인류가 공동으로 보전해야할 진정한 문화유산이야말로 성경이라 아니할 수 없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일을 기록하고 있는,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또한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는 하나님의 감동의 책이다. 따라서 한국성경신학연구소의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일이 기록된 성경을 그 내용을 좇아 크게 총론, 각론, 결론으로 구분했다. 곧

 

Ⅰ. 하나님의 일에 나타난 우주의 역사(창1:1-2:3, 총론)

Ⅱ.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에 나타난 인류의 역사(창2:4-유다서, 각론)

Ⅲ. 세계의 종말과 내세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계시록, 결론)

 

물론 이러한 분류 역시 필자의 인위일 수 있어서, 언제든지 성경의 내용과 다르다면 폐기하고 수정하는 것이 마땅하나, 다만 이는 성경의 내용을 좇아 분류하였다는 점에서 성경이해에 있어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이라 할 것이다. 성경을 총론, 각론, 결론으로 구분할 수 있는 이같은 구분은 오직 성경이 한 하나님의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수 십명의 기록자들의 마음을 감동해서 하나님의 일을 기록케 하시므로 하나의 원리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일은 우주의 역사와 인류의 역사 그리고 세계의 종말과 내세에 관한 일이라는 것이다. 본 논의와 관련하여 성경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창세기 2:4로부터 유다서까지의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에 나타난 인류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좀더 세분화할 수 있을 것이다.

 

1. 인류의 역사 기원과 전개에 관한 열 개의 톨레도트(창2:4-50:)

2. 여호와는 IS을 자기 백성 삼으신 하나님(출-신)

3. 여호와는 가나안 땅을 IS의 기업으로 주신 하나님(여호수아)

4. 여호와는 왕을 세워 IS로 나라를 이루게 하신 하나님(삿-더)

5. 여호와 하나님의 일에 대한 IS의 서사시(욥-아가서)

6. IS의 망령된 행실에 대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한 권고(사-말)

7. IS의 망령된 행실에 대한 하나님의 아들을 통한 최후 권고(마-요)

8. 사도들을 통해 JC와 그의 복음을 옮기시는 하나님(사도행전)

9. 이스라엘 뿐 아니라 이방인의 주도 되시는 하나님(롬-몬)

10. 이스라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일향적인 사랑(히-유)

 

물론 위 내용개요조차 좀더 세분화할 수 있을 것이나, 우선 이를 생각해 보도록 하겠다. 대부분의 성경해석자들이 창세기로부터 에스더서까지를 '역사서'라 함은, 창1:1-2:3의 우주의 역사와 이후 2:4로부터 에스더서까지의 인류의 역사를 지칭함이다. 우주의 역사는 차치하더라도, 인류의 기원과 전개에 관한 역사는 점진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그 포인트가 맞추어져 있다. 출애굽 400여년 전 아브라함과 영원한 약속을 맺으신 대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구속하여 양자 삼으시고, 하나님의 뜻이 성문화된 율법을 주시므로 그들로 유업으로 얻은 가나안 땅에서 여호와의 나라(대상28:5, 대하13:8)를 이루게 하신 내용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거룩한 문서로 칭하여지는 다섯권의 책들(욥-아)은, 하나님의 일에 나타난 신지식과 인간의 참된 지혜와 명철에 대한 증언이다.

 

그리고 대언서 17권은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양자된 백성으로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성문화된 율법을 지켜 살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도리어 주변 국가들의 우상과 풍습을 좇아 죄악과 온갖 악행으로 유업으로 얻은 땅을 더럽히는 이스라엘에 대한 권고라 하겠다. 다시 말해 대언서 17권은, 망령된 이스라엘의 행실에 대한 하나님의 종들을 통한 권고의 내용이다. 그리고 이후의 복음서 4권은, 대언서를 통한 하나님의 종들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대언자들을 핍박하고 심지어는 죽이기까지 하는 패역을 저지르게 되면서, 하나님께서 최후로 그 아들을 하늘로부터 파송하여 권고하시는 내용이다. 다시 말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장로들의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왜곡하는 이스라엘의 망령된 행실을 마지막으로 권고하시는 내용이다.

 

그리고 사도행전 1권은 아들을 통한 하나님의 권고마저 거부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아들을 이방인의 손을 빌려 죽인 이스라엘에게서, 믿음의 주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옮기시는 내용이다. 곧 그리스도의 사도들을 통해, 아들을 믿는자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는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을 이스라엘에게서 이방으로 옮기게 하시는 내용이다. 이어지는 바울서신 13권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이 이방사도인 바울(갈2:8)에 의해 이방인들에게 전해진 이후에 이방도시에 세워진 교회와 지도자에 대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는 내용이다.

 

 

이후 공동서신 8권은 앞전의 이방서신들과 달리, 이스라엘 회복을 위한 서신이라는 점이 다르다. 이제부터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공동서신 8권은 저자를 알 수 없는 히브리서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동생으로 알려진 야고보와 사도 베드로, 요한 그리고 유다의 기록으로 알려진 책들이다. 특히 야고보, 베드로 그리고 요한은 바울의 "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기둥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나와 바나바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으니 이는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는 갈3:9의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공동서신 8권 중 6권의 저자인 야고보, 베드로 그리고 요한은 분명 할례자들 곧 IS을 위한 사도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8공동서신은 이들 6권 前에 히브리서가, 이들 6권 후에 유다서가 배치되어 있는 구조이다. 초기 교회사는 이러한 문서들이 오늘날과 같은 순서로 정리되는 과정에서 많은 진통을 겪었던 것을 보여준다. 특히 공동서신 중 히브리서는 바울서신에 속할 것인지, 아니면 공동서신에 속할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170-180년 경 기록된 것으로 보이는 무라토리오 정경 목록에는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삼서가 아예 빠져 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史官이며, 시내산 사본의 편집자로 알려진 가이사랴의 유세비우스의 정경목록에는 히브리서가 바울서신에 있었다.

 

그리고 367년 아다나시우스의 부활절 메시지에서 선언된 정경 목록에는, 4복음서, 1행전, 7공동서신, 14바울서신으로 큰 대목의 나열이 오늘 우리의 성경과 크게 다르다. 특히 아다나시우스 선언 정경목록에는 히브리서는 바울서신 살후와 딤전 사이에 놓여 있었다. 그럼에도 393년 히포 회의에서 결정된 아우구스티누스의 정경관에서는 히브리서가 오늘날과 같은 형태로 놓여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사도행전이 계시록 앞에 놓인 특이한 경우이다. 제롬의 벌게이트역에서는 4복음서, 사도행전, 14바울서신, 7공동서신, 1계시록 등으로 구분되어 오늘 우리의 성경의 토대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역시 벌게이트역에서도 히브리서는 바울서신에 속해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만으로도 히브리서가 바울의 서신인지, 아니면 공동서신인지 논란이 심하시만, 16세기 교회개혁기에 루터는 정경의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고 히브리서를 비롯해 야고보서, 유다서 그리고 계시록을 아예 요한삼서 이후에 배치했던 일도 있었다. 혹자는 이러한 히브리서를 바울의 저작으로 보고 있지만, 이러한 판단이 잘못된 것은 만약 바울의 기록이었다면 정경목록에서 제외되는 수모는 겪지 않았을 것이다. 히브리서는 바울의 저작이 아니다. 주후 220년 경 테르툴리아누스는 바나바를 저자로 보았으며, 루터의 경우는 아볼로를 그리고 칼빈은 누가를 꼽았다.

 

그러나 필자는 행전 15장에 나오는 "실라"가 히브리서의 저자일 수 있다고 본다. 그는 바울과 바나바가 안디옥 교회에서 율법시비로 예루살렘에 파견되어 갔다가 돌아올 때 예루살렘교회로부터 함께 파송되어 왔던 사람이다. 곧 "이에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그 중에서 사람을 택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함께 안디옥으로 보내기를 가결하니 곧 형제 중에 인도자인 바사바라 하는 유다와 실라더라"는 22절과 또 "유다와 실라도 대언자라 여러 말로 형제를 권면하여 굳게 하고 얼마 있다가 평안이 가라는 전송을 받고 돌아가되"라는 33절의 기록에서 증거하고 있는 것과 같이 실라는 대언자였고 또 히브리인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유다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울과 바나바가 마가동행 문제로 심히 다툰 후에 바울과 더불어 바울의 2차 선교여행에 동행 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곧 "서로 심히 다투어 피차 갈라지니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구브로로 가고 바울은 실라를 택한 후에 형제들에게 주의 은혜에 부탁함을 받고 떠나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녀가며 교회를 굳게 하니라"는 39-41의 기록에서 알 수 있다. 예루살렘의 사도와 장로와 온 교회가 선택했던 인물인 실라, 또 바울과 선교여행에 동참했던 히브리인이며, 그리고 2차 선교 여행 중 더베와 루스드라에서 디모데를 함께 만났을 확률이 높고, 또한 빌립보에서 함께 붙잡혔고(16:19), 함께 옥살이를 했으며(16:25, 29), 데살로니가에서도 바울과 함께 했고(17:4), 또한 베뢰아에도(17:10), 베뢰아에서는 디모데와 함께 머물렀고(17:14, 15), 고린도에 있는 바울에게로 디모데와 함께 해서 만났던(행18:5) 사람이다. 그리고 바울의 3차 선교여행에서는 그의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고 히브리서의 전체 내용은 물론 마지막 당부의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저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너희를 인도하는 자와 및 모든 성도에게 문안하라.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은혜가 너희 모든 사람에게 있을지어다"(히13:22-25)라는 당부에도 가장 적합한 인물이 필자는 실라라 여겨진다. 뿐만 아니라 실라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율법문제로 파송받았을 뿐만 아니라, 이방인 선교여행 중에 바울과 동행하므로 유대인들과의 심각한 율법논쟁을 여러번 목격했고 실제로 경험하므로 히브리서 기록과 가장 적합하다.

 

나아가 바울이 고후1:19과, 살전 1:1, 살후 1:1 그리고 베드로가 5:12에서 언급한 "실루아노"가 대다수의 학자들의 추정하는 바와 같이 실라와 동일인물일 가능성이 있다면, 더더욱 히브리서의 기록자는 "실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이것은 필자의 추론일 뿐 오리겐의 말과 같이 히브리서 기자는 하나님만이 아시는 일일 것이다. 어쨌든 성경 편집과정에서 히브리서를 할례자들의 사도로 칭하여진 야고보와 베드로 그리고 요한의 서신에 전면에 배치하였다는 것은, 바울서신13권의 이방서신과는 그 내용이 확연히 구분된다는 점에서 기인된 것이다. 히브리서는 분명 이방인을 위한 서신이 아니라 할례자들을 위한 서신이다. 그 서두가 "옛적에 대언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하셨으니..."(1:1-2)로 시작되는 것에서 보듯이 유대인들을 위한 서신임은 자명하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히브리서의 명칭이 '히브리인들에게'라 하는 것을 보면 더더욱 분명하다. 따라서 IS을 위한 히브리서는 "율법과의 유비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우월한 신분과 사역에 대한 교훈"이라 내용을 규정할 수 있다.

 

그리고 야고보의 서신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하노라"라고 시작하므로 할례자들을 위해 쓰여진 것임을 밝히 보여주고 있다. 야고보서 자신을 사도로 칭하지 않고 종으로 칭하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이미 죽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도, 그리고 알패오의 아들인 야고보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의 동생인 야고보로 이해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요세프스의 기록에 따르면 야고보는, 벨릭스(행24:1-26)가 유다총독에서 물러나고, 베스도가 후임으로 왔으나 주후 62년경 급사하자 후임자 알비누스가 도착하기 3개월 전에 안나스의 아들 안나스 2세가 산헤드린을 소집하여 많은 유대그리스도인들과 더불어 예루살렘의 지도자 야고보를 돌로 쳐죽였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야고보서는, "온갖 시련 속에서 실천해야 할 믿음과 율법의 일에 대한 교훈"이라 하겠다.

 

그리고 베드로 역시 할례자들을 위한 사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라 하여 역시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된 자들에게 편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흩어진 나그네'라는 헬라어 '파레피데모이스 디아스포라'로 인해 서신서의 대상이 누구인지를 두고 해석자들마다 설왕설래한다. 예를 들면 김효성 교수는 "소아시아 지방에 살던 이방인 그리스도인"('신약성경강해'(서울: 옛신앙, 2005), p. 1068)이라 했고, 박윤선박사는 "유대인 기독 신자들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고, 영적 여객 곧 일반 기독 신자들을 의미한 것이 확실하다"('성경주서, 히브리서 공동서신, (서울: 영음사, 1965), p. 241')고 했다. 이에 반해 강병도목사는 "흩어진 나그네는 결국 소아시아 지방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을 지칭한다. 그러나 좀더 엄밀히 수신자들을 파악해 보면 유대인 뿐만 아니라 다른 이방인들을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성경연구시리즈 15', (서울: 기독지혜사, 1987), p. 178)고 하면서 벧전2:10과 4:3을 들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근거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그리고 A.T 로버트슨은 야고보서 1:1에서 "본문과 베드로전서 1:1에서는 유대인 전체가 아니면 주로 그리스도인이 된 유대인들을 생각하고 한 말이다"('공동서신, 요한계시록', (서울: 생명의 말씀사, 1985), pp. 29-30)라고 했다. 이에 필자는 디아스포라의 나그네는 오직 유대인으로 그리스도인된 자들을 가리킨다고 본다. 이는 갈3:9의 베드로는 할례자의 사도라는 규정 때문에 더욱 그렇다. 베드로에 대해서는 너무도 잘 알려진 인물이라서 언급할 것이 없을 것 같다. 바울이 회심 후에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메섹에서 3년을 보낸 후 예루살렘에서 베드로와 위에서 언급한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만났다는 기록을 갈라디아에서 전해주고 있다. 곧 "그 후 3년 만에 내가 게바(베드로)를 심방하려고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저와 함께 15일을 유할새 주의 형제 야고보 외에 다른 사도들을 보지 못하였노라"(갈1:1-19)는 기록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베드로는 예루살렘에서 야고보와 동역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요21:18-19의 내용을 보충하기 위한 의도로 저작된 위경 "베드로 행전"에 따르면, 베드로가 로마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지는데 이것은 베드로를 로마교의 제1대 교황으로 만들기 위한 왜곡일 뿐이다. 만약 베드로가 로마에 갔었다면 바울의 로마서에 분명 언급되었을 것이다. 다만 가장 나이가 많았던 베드로는 바울의 증거와 같이 예루살렘과 유대 전역에서 사역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요한일이삼서와 관련해 대다수의 해석자들은 서신의 대상이 누구인지 불확실하다고 하지만 필자는 이 역시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삼서에 나타난 가이오는 행19:29의 마케도니아 사람 가이오와, 행20:4의 더베사람 가이오, 그리고 롬16:23의 바울과 교회를 돌보아 주던 가이오, 고전1:14의 바울에게 물세례를 받은 가이오(아마 위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높다) 등 同名異人이 많으나, 이 중에 한 사람일지는 미지수다.

 

이방인일 확률이 높지만, 이 사람은 유대인 전도자를 대접한 것에 대한 칭찬을 받고 있다. 곧 "사랑하는 자여, 네가 무엇이든지 형제 곧 여행자 된 자들에게 행하는 것이 신실한 일이니, 저희가 교회 앞에서 너의 사랑을 증거하였느니라.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저희를 전송하면 가하리로다. 이는 저희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 것도 받지 아니함이라"라는 요삼1:5-7의 기록에서와 같이 이방인들에게 나아가 복음을 전하는 유대 그리스도인 전도자들을 섬긴 가이오에 대한 요한의 칭찬으로 보면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이것은 히브리서 기자의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자기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자기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는 히13:1-3의 기록과 같이, 초기 유대인으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대접하는 것은 복음을 위해 힘쓰는 일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사도 요한은 전도자들을 위한 가이오의 헌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유다서이다. 전통적으로 야고보의 형제로 칭하여지는 유다를 주님의 육신의 동생으로 보고 있다. 어쨌든 본서는 이스라엘 역사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서술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서 분명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기록임에는 틀림없다. 이렇게 히브리서를 포함하여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이삼서, 유다서 등 공동서신 8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서신임을 염두에 두고 풀어갈 때 곡해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방인의 사도였던 13바울서신에 이어지는 공동서신 8권은, 전자는 이방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기록이었다면, 후자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 섭리를 이해하는 단서를 엿볼 수 있다는 것이다.

 

곧 바울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있다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방인이 충만히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는 롬11:25-28의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이방인의 구원의 수가 충분히 채워지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이후 2013년인 지금까지도 복음이 이스라엘을 떠나 이방인에게로 향해있지만 결국에는 이스라엘에게 향하는 날이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24:14)고 하신 말씀과 같이, 이방인의 구원의 수가 모두 채워지는 날 드디어 온 이스라엘을 회개하고 돌이키게 하시는, 알파와 오메가의 하나님의 역사 섭리가 마쳐지는 날이 될 것이다. 이것은 이방인을 위한 바울 서신 13권에 이어 유대인을 위한 공동서신 8권이 짜여진 것과 일치한다. 그리고 이렇게 펼쳐지는 역사 곧 세계의 종말과 내세에 관한 하나님의 일이 기록된 요한의 계시록으로 모든 성경이 종결되는 것이다.

 

첨언하자면, 계시록 역시 이방인과 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풀어갈 생각은 말아야 할 것이다(계7:1-17과 14:1-8를 특히 유의). 비록 글이 축약되어 있어 더욱 많은 논의를 필요로 하겠지만, 간략하게나마 필자는 방대한 성경이 오직 하나님의 일이라는 구조하에서 이해되어야 함을 보여주였다. 물론 이러한 해석에는 오류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성경의 내용은 "하나님의 일"의 관점에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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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신서(공동서신)

 

기독교가 유대교보다 우월하며, 복음이 율법보다 우월함을 확고히 논증하고(모세와 예수님을 비교)

성도들로 하여금 고난을 이기고 그리스도를 생각하면서 믿음의 순결을 지키도록 격려하고 있다.

 

히브리서 (13장) 공동서신 8권

 

(1) 저자 :미상 (바울, 바나바, 아볼로, 누가로 추정)

(2) 기록 연대 : A.D 60년대 후반

 

(3) 기록 목적 :

* 고난 받는 유대인 개종자들의 흔들리는 신앙을 바로잡기 위하여.

* 그리스도의 구원자 되심을 반증하여 기독교의 우월성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하여.

 

(4) 줄거리 :

* 1세기의 어느 시기에 한 무리의 그리스도인 앞으로 쓴 것이다.

 

* 그들은 신앙을 강화하기 위하여, 옛 그리스도가 하나님을 인간에게 계시하는 분이라는 것.

 

* 내용은 예수님은 천사나, 구약성서의 위대한 인물인 모세나 여호수아보다 훨씬 나은 존재임.

예수님은 완전한 희생을 바쳐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만든 완전한 제사장이다.

 

1:4 천사보다 뛰어나신 예수님

2:2 만물을 다스림 (만물이 하나님을 위해 있다)

3:5 모세보다 뛰어나신 예수님

4:1 대제사장 예수님,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있다

5:12 예수님의 순종 (초보신앙 버리고 성숙하라)

6:5 하나님의 약속 (오래참으사 약속을 받으심)

7:4 멜기세덱(아브라함이 십일조,떡,포도주를 줌

8:10 새언약 주신 목적~나는 너희 하나님되고...

9:15 희생제물 (완전한 새언약의 피제사)

10:20 휘장 (예수님의 육체다.하나님께 나갈길이..

11:1 믿음은 바라는것들의 실상 보지못한것 증거

12:2 경주 (인내로 경주하며 예수님을 바라보자)

13:8 산제사 (하나님이 기쁘하시는 산제사 드려라

 

가혹한 핍박에 직면해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믿음으로 고난을 이겨내고 그들이 소유한 믿음을 행위로써 적극적으로 드러내어 사랑과 화평의 교제를 회복하고 바른 신앙 생활을 통하여 실천적 신앙을 회복하도록 권면한다.

 

 

야고보서 (5장)

 

1) 저자 : 야고보 (예수의 형제)

(2) 기록 연대 : A.D 62년경

 

(3) 기록 목적 :

* 로마의 박해에 직면한 성도들을 격려하기 위하여.

* 이신득의 사상의 오해에서 비롯된 폐단을 시정하기 위하여.

* 성도간의 사랑의 회복을 축구하기 위하여.

 

(4) 줄거리 :

*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62년경 환난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위로하고 격려함.

* 믿음에 입증되고 증거, 온전하다는 시험, 믿음과 행함, 혀의 죄, 지혜, 세상의 정욕, 신앙생활.

*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행동하여야 하는가 하는 실천적인 면을 다루고 있다.

 

1:12 시련과 시험 (욕심이 잉태하즉 죄를 낳는다

2:17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것이다

3:2 혀 (말의 인격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4:1 성도의 다툼은 정욕이다 (극복하라)

5:4 믿음의 기도

 

품꾼에게 주지 않은 삯이 너희 마음을 살찌게 했다

네로의 대박해 전에 소아시아 지역의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고난을 인내하며

고난 중에서도 선행과 성결로 바른 신앙 생활을 영위하도록 권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5장)

 

(1) 저자 : 베드로

(2) 기록 연대 : A.D 64년경

 

(3) 기록 목적 :

* 환난 가운데 있는 성도를 위로하기 위하여

* 다가올 박해를 극복할 용기를 갖게 하기 위하여.

*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함으로써 산 소망을 갖게 하기 위하여.

 

(4) 줄거리 :

* 베드로가 64년 전후 소아시아의 다섯 지방에 흩어져 있는 교회들에 보낸 첫 번째 서신.

* 하나님의 참된 은혜를 가르치고, 고난에 맞서 싸워 신앙을 지키도록 권면하기 위하여 쓴 서신.

* 고난은 성도로 하여금 확실하게 천국의 영광에 참여케 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임을 밝히고 있다.

* 예수는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들을 대신하여 고난을 당하셨으며, 그의 상처를 통해서 치유됨.

 

1:15 연단을 위한 믿음의 시련(금보다 귀한믿음

2:9 왕같은 제사장,택하신 족속이요,거록한나라

3:17 의를 위하여 고난 받을때의 자세

4:11 은사를 잘 관리하는자

5:2 장로의 사역은 양떼를 잘 보살핌이다

6:8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사자 같이 삼킬자를...

 

배교와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대한 경고와

영적 성숙(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을 통하여 이단을 경계하도록 권하고 있다.

 

베드로후서 (3장)

 

(1) 저자 : 베드로

(2) 기록 연대 : A.D 66-67년

 

(3) 기록 목적 :

* 영지주의 등 거짓 교사들을 경계하기 위하여.

* 부도덕한 향락주의를 배격하기 위하여.

* 재림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기 위하여.

 

(4) 줄거리 :

* 거짓 교사에 대해 경고하기 위한 서신으로, 믿음의 발전, 거짓에 대한 질책, 미래에 나타날 일.

 

* 서신에서 성도의 덕행을 촉구하고, 거짓 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교회의 무질서를 책망하면서,

성도는 윤리적인 필요가 없다는 이단설인 도덕 무용론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축복이다 완성은 우리가 주야로 힘써하자

 

1:4 부르심 (신앙의 여덟가지 덕목,믿음,지식,덕

2:3 거짓선지자들의 죄악,영지주의 영(선)육(악)

3:9 그리스도의 재림 지체 이유

주의 약속이 더딘것이 아니라 오래 나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려 위함이라.

 

사도들이 전한 복음과 교훈(그리스도는 신인 양성을 가지신 구주)을 굳게 지키며

의와 사랑의 구체적인 실현을 통해 하나님과의 참다운 교제를 유지하도록 권하고 있다.

 

요한일서 (5장)

 

(1) 저자 : 사도 요한

(2) 기록 연대 : A.D 95년경

(3) 기록 목적 :

* 당시 진리를 위협하며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던 영지주의 등 이단을 경계하기 위하여.

* 구원의 유일한 방편이신 그리스도에 관한 바른 지식을 가르치기 위하여.

 

(4) 줄거리 :

* 이 서신은 발신자나 수신자의 언급이 없고, 끝부분에도 마지막 인사나 축복의 말이 없다.

* 일정지역에 산재하는 여러 교회가 회람하도록 권위 있게 써 보낸 서신임에는 틀림없다.

*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 실제로 사람이 되시고 죄를 위하여 속죄 제물로 죽으셨다는 것을 믿는 자만 하나님과 친교를 누린다.

 

1:7 하나님은 빛이시다

2:1 대언자이신 예수님

3:16 하나님의 자녀에 대한 사랑

4:10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5:20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모든 이단 사상을 경계하면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근거한 바른 신앙을 정립하고

계명의 핵심인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도록 권면하고 있다.

 

요한이서 (1장)

 

(1) 저자 : 사도 요한

(2) 기록 연대 : A.D 95-96년경

 

(3) 기록 목적 :

* 진리를 왜곡하며 궤변으로 성도를 미혹하는 적그리스도를 경계하기 위하여.

* 실천적 사랑을 강조하며 자신의 방문을 알리기 위하여.

 

(4) 줄거리 :

* 교회의 장로가 택함 받은 특정부인과 그 자녀들에게 보낸 개인적인 서신.

* 이 서신의 직접적인 동기도 거짓교사들로부터 교회를 지키기 위함이었다.

* 이 서신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이단들의 위협에 직면한 교회를 권면하려는 것이었다.

* 교회의 가르침과 다른 것을 전하는 자들은 집안에 받아들이거나 인사도 하지 말도록 경고.

 

***적그리스도를 대처하는 방법***

예수님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들이 적그리스도다.

이들은 미혹하는 자다 이들은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하지 말라

 

순회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들에게 잘 대접함으로 진리 안에 거하라고 권면하고 있다

(가이오와 디오드레베를 비교).

 

요한삼서 (1장)

 

(1) 저자 : 사도 요한

(2) 기록 연대 : A.D 95-96년경

 

(3) 기록 목적 :

* 선한 가이오를 칭찬하고 거만하고 악한 디오드레베를 본받지 말 것을 권고하기 위하여

 

(4) 줄거리 :

* 저자가 데메드리오를 중심한 교회의 상급 기구의 대표들을 잘 영접한 가이오를 칭찬하고.

, 영접하지도 않고 개체교회의 우두머리가 되려는 디오드레베의 행적을 통박하고 있는 내용.

* 교회의 최고 처리자인 장로가 목회자적 충정으로 개체교회에 써 보낸 것이다.

* 저자는 수신인이며 가이오에게 데메드리오와 그의 일행들을 잘 영접해고, 하나님의 일꾼들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도와주어 진리를 위해서 일하는 그들의 협력자가 될 것을 간청한다.

 

가이오를 위한 나그네 순회교사 환대 요한의 축복 (협력과 반대)

 

영지주의자들의 육체적 정욕주의에 따른 생활, 영적 권위 무시 등의 비경건한 삶을 지적하고,

그리스도인들은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정결하게 살아야 할 것을

교회는 박해와 이단 종교 사상의 도전을 이겨내야 하며,

역사의 종말과 교회와 세상의 상이한 운명을 제시함으로 교회가 세상 안에서도 세상에 휩쓸리지 않고

그 신앙의 순결을 유지하여 교회의 원형을 유지하도록 권하고 있다.

 

 

유다서 (1장)

(1) 저자 : 유다 (예수의 동생인 야고보의 막내)

(2) 기록 연대 : A.D 70-80년경

(3) 기록 목적 :

* 기독교의 교리를 기록하려 했으나 영지주의의 폐혜가 컷으므로 이에 대한 변증서를 쓰기 위하여

(4) 줄거리 :

* 사도 유다가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회심한 사람들에게 보낸 편지.

* 거짓 교사에 현혹되지 말고 이교도 가운데 있더라도 전하여진 진리에 충실하라고 가르쳤다.

* 음행을 자행하고 이단을 말하는 거짓 교사를 경계하라는 데 있음을 말하고

* 이러한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치 못할 것임을 역사적 사실로써 보여주고 권면하였다.

 

※거짓교사의 죄악~삯을 위해 발람의 어긋난길로..

※거짓교사에 대한 성도의 자세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지켜 나가라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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