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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과 신학 1

예수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by 은총가득 2021. 1. 30.

 

예수님의 부활은 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실까?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에 죽으심과 함께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시켜 주는 핵심적인 진리에 속한다.

성경은 예수님의 부활을 가리켜 ‘첫 열매’라는 독특한 표현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15:23)

 

예수님의 부활은 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실까? 그리고 첫 열매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왜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에 모든 신자들에게 일어날 부활에 대한 확실한 보증이 되실까?

 

 

유대인들에게 ‘첫 열매’가 주는 의미는?

‘첫사랑’, ‘첫날밤’과 같이 어떤 단어가 우리들에게 주는 이미지와 의미들이 있다.

이런 이미지들은 그들이 속한 문화와 풍습에 따라 다를 것이다.

‘첫 열매’라는 단어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첫 열매’가 한국의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와 유대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결코 같을 수 없다.

 

유대인들은 ‘첫 열매’를 말할 때, 애굽에서 나올 때 애굽의 바로(Pharaoh)에게 결정타를 가했던 ‘장자 재앙’을 떠올린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이고, 애굽의 장자를 쳐서 하나님의 장자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건이 출애굽이다.

“너는 바로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내가 네게 이르기를 내 아들을 놓아서 나를 섬기게 하라 하여도 네가 놓기를 거절하니 내가 네 아들 네 장자를 죽이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니라”(출4:22,23)

 

첫 열매를 히브리어로 ‘비쿠르’라 하고, 장자 재앙을 ‘마카트 브코로트’라고 하는데, ‘비쿠르’와 ‘브코로트’는 동일한 어원에서 파생된 단어들이다. ‘첫’ 아들(장자)과 ‘첫’ 열매는 모두 ‘처음 것’을 의미하며, ‘첫’에 해당하는 단어가 ‘비쿠르’이다.

애굽의 바로에게 결정타가 된 장자 재앙을 통해 애굽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첫 열매’는 자유와 해방을 가져단 가슴 벅찬 단어가 아니겠는가?

 

첫 열매와 초실절

유대력으로 첫째 달인 니산 월 15일부터 21일까지 1주일 동안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인 무교병을 먹는다.

무교병을 히브리어로 ‘마짜’라고 하는데, 마짜를 먹는 1주일의 기간을 ‘무교절’이라고 부른다.

1주일 간의 무교절 기간 중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이 바로 ‘초실절’이다.

그러므로 초실절은 늘 일요일이었다.

초실절의 명칭은 바로 이 때 첫 열매를 성전에 바쳤기 때문에 부쳐진 것이다.

 

안식일이 지나고 동이 트면 사람들은 유월절(니산 월 14일)에 묶어 두었던 보리단을 자르러 보리밭으로 갔다.

수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보리단을 낫으로 베고, 첫 열매로 거둔 이 보리단을 성전 뜰로 가지고 갔다.

 

제사장은 이 보리단을 번제단 북동쪽에서 지성소가 있는 서쪽을 향해 흔들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레23:10,11)

 

이후 보리단은 갈아서 곱게 체질을 해서 소제(meal offering)로 바쳤다.

한 줌의 보리가루를 번제단의 불에 던져 태우고 한 마리의 수양을 번제로 바쳤다.

남은 보리가루는 제사장이 먹었다.

이것이 성서시대 초실절에 성전에서 드려지던 제사였다.

 

“너는 첫 이삭의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거든 첫 이삭을 볶아 찧은 것으로 너의 소제를 삼되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위에 유향을 더할지니 이는 소제니라”(레2:14,15)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그 소제로는 기름 섞은 고운 가루 에바 십분 이를 여호와께 드려 화제를 삼아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고 전제로는 포도주 힌 사분 일을 쓸 것이며”(레23:12,13)

이렇게 첫 열매 제사가 성전에서 드려진 후에 예루살렘 시장에서는 곡식 판매가 시작되었고 추수한 곡식을 먹을 수 있었다.

 

초실절에 부활하신 예수님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안식 후 첫 날 매우 일찌기 해 돋은 때에 그 무덤으로 가며”(막16:1,2)

 

유월절에 돌아가신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은 바로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이었다. 이 때 ‘마리아’로 불리는 무리 일행이 슬픔에 겨워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하고 있었다.

바로 이 날은 다름 아닌 ‘초실절’이었다.

초실절 아침 동이 트자마자 많은 사람들이 첫 열매로 거둘 보리단을 베러 보리밭으로 향하고 있을 그 때에 마리아 일행은 예수님의 무덤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 문헌인 미쉬나에 보면, 초실절에 성전에 바치는 보리는 갈릴리 북쪽에 있는 게네사렛 평야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갈릴리 지역은 화산 폭발로 인해 형성된 검은색의 현무암이 주류를 이룬다.

이로 인해 갈릴리 북쪽의 게네사렛 평야의 토양은 현무암이 풍화된 검은 색의 흙으로 유명하다.

검은 색의 흙은 태양 빛을 오랫동안 흡수하며, 다른 지역에 비해 게네사렛 평야에서 가장 먼저 보리 수확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해발 800m의 산지 지역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이후로 1-2달이 지나서 보리 수확이 이루어졌다.

게네사렛 평야의 처음 익은 보리단의 첫 열매를 성전에 바치며 초실절 제사를 드리는 것은, 이후에 전 이스라엘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거두어 들일 추수를 기대하는 믿음의 표현이다.

 

이처럼 ‘부분이 전체를 대표한다’는 것이 구약성경에 나타난 유대인들의 사상이다.

밭의 첫 수확, 과실의 첫 과일, 양 무리의 첫 양을 드리는 것은 ‘일부’를 드림으로 ‘전체’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성경의 방식이요 유대인의 방식이다. 이러한 사고가 유대인 바울이 저술한 로마서에도 드러난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 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롬11:16)

성전에 첫 열매를 바치며 초실절 행사를 하던 그 시각에 정확히 맞추어 예수님은 부활하셨다. 그런 면에서 예수님의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들에게 ‘첫 열매’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게네사렛 평야의 첫 열매 보리를 시작으로 이스라엘 전 지역에서 순차적으로 보리 수확이 이루어지듯이, 예수님의 부활은 첫 열매로서 장차 있을 완전한 추수, 즉 모든 성도들의 부활을 기대하도록 만든다. 그런 점에서 ‘첫 열매’로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강력한 보증이요 예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고전15:23)

 

예수님 당시에 성전에 바쳐진 첫 열매 보리는 게네사렛 평야에서 수확한 보리를 드렸다고 이미 언급했다. 게네사렛 평야는 가버나움, 고라신, 벳새다를 잇는 삼각형의 지역이다. 이곳은 예수님이 가장 왕성하게 복음사역을 하신 활동무대였다. 게네사렛 평야의 보리를 성전에 첫 열매로 바쳤듯이, 그곳에서 가장 왕성한 사역을 하신 예수님께서 초실절에 부활하심으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사건이 과연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이것은 인류 구속을 향한 파노라마 속에 이미 창세 전부터 정교하게 암호화된 경륜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

예수님의 가장 왕성한 사역으로 수많은 기적들을 체험한 이 지역 사람들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예수님이 저주하신 3개의 도시에 이 도시들이 모두 속하게 된 것이다.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면 그 성이 오늘날까지 있었으리라”(마11:21-23)


유월절과 관련된 숨은 본문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역사적인 이정표(milestone)가 된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인 유월절은 유대인들의 최고 명절로서 신구약 성경의 본문 속에 자주 드러난다. 때로는 유월절과 관련된 언급이 간접적이라 쉽게 놓치기 때문에 ‘숨은 본문들’이기도 하다. 유대인들의 성서주석인 미드라쉬는 이방인 성도들이 도저히 찾아낼 수 없는 또 다른 유월절 관련 본문들을 제시하고 있다. 물론 그들의 해석이 모두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경이 탄생한 본 고장의 터주대감들의 해석이라 충분히 참고할만하다고 생각되어 이 장에서 함께 소개하려고 한다.

 

히스기야가 유월절을 지킴

“히스기야가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보내고 또 에브라임과 므낫세에 편지를 보내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에 와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니라”(대하30:1)

이스라엘이 남북의 두 개의 왕조로 분열되면서 남유다에 등장한 몇 명의 선한 왕들이 있다. 아사, 여호사밧으로 시작되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선한 왕들의 계보가 있지만, 북이스라엘은 왕조의 창시자인 여로보암을 좇아 우상숭배의 길로 가는 바람에 열왕기서의 기록에 따르면 선한 왕을 한 명도 찾아볼 수가 없다.

 

남유다의 선한 왕들 가운데 가장 독보적인 존재를 들라고 하면 히스기야와 요시야일 것이다. 히스기야 왕의 통치기는 이스라엘 왕국 시대의 역사에서 가장 격변의 시절이었다. 중근동 최고의 제국이던 앗시리아가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노골화하면서 고만고만한 주변의 강국들이 지도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히스기야 왕의 통치기에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했는데(주전722년), 결국 남유다는 북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보호막이 사라지고 거대한 제국인 앗시리아와 직접 대면하게 되었다.

 

국가적 위기의 때에 히스기야 왕의 믿음은 더욱 빛을 발했다. 그는 멸망한 북이스라엘의 지파인 에브라임과 므낫세까지 아우르며 전 이스라엘 땅에 대대적인 유월절 행사를 공표했다. 히스기야 왕은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하나의 민족을 빚어낸 출애굽 역사를 기념하는 유월절을 패망한 북이스라엘의 난민들까지 흡수해서 지킴으로써 분열된 다윗 왕조의 부흥을 꿈꾸었을 것이다.

 

요시야가 유월절을 지킴

“요시야가 예루살렘 여호와 앞에서 유월절을 지켜 정월 십사일에 유월절 어린 양을 잡으니라”(대하35:1)

남유다에서 마지막 부흥의 불꽃을 피운 요시야 왕은 앗시리아 제국의 절정기에 왕이 된 히스기야 왕과 달리 앗시리아 제국의 패망기에 유다의 왕으로 통치했다. 요시야는 앗시리아 제국의 봉신으로 만족했던 므낫세, 아몬과 같은 선왕들과는 달리, 분명 믿음과 패기면에서 출중한 인물이었다. 천우신조로 요시야의 통치기(주전639-609년)에 앗시리아 제국은 멸망의 징조들이 나타나면서 급기야는 패망하게 된다(주전612년).

 

요시야는 앗시리아의 쇠퇴기를 이용해 북이스라엘의 가장 북쪽인 납달리 땅까지 포함하는 광범위한 유월절 행사를 계획했다. 앗시리아의 쇠퇴기로 인해 앗시리아의 속주로 병합된 북이스라엘도 어느 정도 자치를 이룬 듯하다. 요시야는 떨어져 나간 북이스라엘을 다윗 왕조의 이름으로 복속시키고 잠시나마 통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유월절 행사를 주관했던 것 같다.

 

 

수심이 가득한 느헤미야

“아닥사스다 왕 이십 년 니산 월에 왕의 앞에 술이 있기로 내가 들어 왕에게 드렸는데 이전에는 내가 왕의 앞에서 수색(愁色)이 없었더니 왕이 내게 이르시되 네가 병이 없거늘 어찌하여 얼굴에 수색이 있느냐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 그 때에 내가 크게 두려워하여”(느2:1,2)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의 술맡은 관원장으로 있던 느헤미야는 왕 앞에서 수심을 드러내는 불충을 저질렀다. 사실 개인적인 슬픔이 있다고 해서 왕 앞에서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있는 것은 쉽게 용납될 수 있는게 아니지만, 느헤미야는 왕궁에서 아닥사스다 왕의 특별한 은총을 입었던 것 같다. 왕 앞에 선 느헤미야도 주체할 수 없었던 수심은 바로 유월절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유월절이 있는 ‘니산 월’에도 고국을 방문하지 못하고 이역만리에 있는 자신과, 또한 형제인 하나니로부터 들은 예루살렘의 소식으로 인해 그는 짓누르는 수심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이다.

 

“나의 한 형제 중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있는 유다 사람과 예루살렘 형편을 물은즉 저희가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은 자가 그 도에서 큰 환난을 만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훼파되고 성문들은 소화되었다 하는지라”(느1:2,3)

 

 

스룹바벨 성전의 봉헌 예

“다리오 왕 육 년 아달 월 삼일에 전을 필역하니라”(스6:15)

“사로잡혔던 자의 자손이 정월 십사일에 유월절을 지키되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일제히 몸을 정결케 하여 다 정결하매 사로잡혔던 자의 모든 자손과 자기 형제 제사장들과 자기를 위하여 유월절 양을 잡으니”(스6:19,20)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의 기한이 차자 하나님은 페르시아의 고레스 왕의 칙령을 통해 잡혀온 유다 포로들이 자유롭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공표했다. 이 때 돌아온 포로들은 지도자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의 리더십 아래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는데, 공사를 완공한 때가 페르시아 3번째 왕인 다리오 통치 6년의 아달 월 삼일이었다(주전515년). 아달 월(3월경)은 유월절이 있는 니산 월의 바로 전달이다.

황소 100마리, 수양 200마리, 어린 양 400마리를 성전 봉헌식 제사에서 드리고, 곧 이어 시작된 유월절 절기를 함께 축하했다. 애굽에서의 해방을 즐거워하는 유월절 절기에, 바벨론에서 돌아온 포로들은 성전을 봉헌한 기쁨과 함께 유월절을 기념하며 감회가 새로왔을 것이다.

 

 

감옥에 갇힌 베드로가 풀려남

“유대인들이 이 일을 기뻐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으려 할새 때는 무교절일이라 잡으매 옥에 가두어 군사 넷씩인 네 패에게 맡겨 지키고 유월절 후에 백성 앞에 끌어 내고자 하더라”(행12:3,4)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탄생한 예루살렘의 초대교회는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면서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다. 초대교회의 수장인 베드로를 위해 전 교인이 금식하며 합심기도했을 상황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던 이들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났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직접 감옥에서 구원하신 것이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행12:7)

 

전혀 예상치 못한 기도 응답으로 인해 이들은 베드로를 보고도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유령으로 생각할 정도였다.

“저희가 말하되 네가 미쳤다 하나 계집 아이는 힘써 말하되 참말이라 하니 저희가 말하되 그러면 그의 천사라 하더라”(행12:15)

 

베드로가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의 도움을 받아 감옥에서 구원받은 날은 다름아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유월절이었다. 시의적절한 때에 일어난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 앞에 이들은 상당한 쇼크를 받았을 것이다.

<갓피플:류모세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