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leadlership): <대학>, <중용>, 사람을 이끄는 리더의 자세
링컨은 “진정으로 그 사람의 본래 인격을 시험해 보려거든 그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줘 보라"고 했다. 사람의 본질은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적나라하게 나타나기 때문일까?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 '갑질'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상대적으로 우위에 있는 자, 즉 갑이 우월한 신분, 지위, 직급, 위치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 을에 오만무례하게 행동하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며 제멋대로 구는 행동을 말한다.
특히 기업 오너의 갑질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직원들에게 폭언과 욕설, 폭행까지 자행하는 오너들의 갑질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이는 한 조직의 리더가 될 사람으로서 자질에 문제가 있다. 제왕적 권위가 강했던 과거에도 리더의 자질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했고, 리더의 자세를 갖추는 공부까지 행해졌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올바른 선비의 자세, 혹은 올바른 리더의 자세를 말할 때 자주 등장하는 문구이다. 먼저 자기 몸을 바르게 가다듬은 후 가정을 돌보고, 그 후 나라를 다스리며, 그런 다음 천하를 경영해야 한다는 의미로 대학(大學)에 나온다.
〈대학〉과 〈중용(中庸)〉은 〈논어(論語)〉, 〈맹자(孟子)〉와 함께 사서 (四書)'로 불리며 유학의 중요 경전이다. 이 두 책은 성리학 성립 이후 사대부가 유학을 배울 때 읽던 기본 교재였다. 오늘날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서와 같은 의미다. 〈대학〉의 저자는 공자(孔子)의 제자인 증자(曾子)와 그 문인으로 알려져 있고, <중용>의 저자는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로 알려져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대학〉과 〈중용〉은 유학을 배우기 위한 처음 관문과 마지막 관문을 담당한다. 〈대학〉은 대인(大人), 즉 군주 또는 위정자를 위한 학문으로 세 가지 강령과 이를 실현하는 여덟 가지 조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가지 강령은 밝은 덕을 밝히는 것(명명덕(明明德)), 백성을 친애하는 것 (친민(親民)), 최고의 선에 도달하는 것(지어지선(止於至善))이다. 이는 군주 또는 위정자가 지향해야 할 목표를 밝히는 것이다. 여덟 가지 조목은 격물(格物), 치지(至), 성의(誠意), 정심(正心), 수신(修身), 제가(齊家), 치국(治國), 평천하(平天下)이다. 리더라면 이 정도의 마음가짐은 기본으로 갖추어야 한다.
세 강령 중 핵심인 명명덕은 현실에 안주하여 자신의 계발에 힘쓰지 않는 것을 지양하고 정치 이상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현실을 발판으로 자신의 밝은 덕[명덕(明德)]을 보다 철두철미하게 밝혀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학〉은 개인의 자기 수양과 전체 사회의 문제를 연속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학문을 하는 사람이나 정치를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도덕적인 인간이어야 하며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실제사회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대학〉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로 통한다고 볼 수 있다.
〈대학〉은 안에서 바깥까지, 작은 것에서 큰 것까지, 개인에서 사회까지 점차 확대되어 가는', 즉 개인과 국가', '덕성 공부와 외재 사업'을 하나로 융합한 내성외왕의 도(內聖外王之道), 즉 대학지도 (大學之道)의 구체적 전개이자 실현이었던 것이다. 〈대학〉을 배웠다면 내면은 덕으로 차 있고, 최소한의 교양은 있다고 여긴 것이다.
〈대학〉을 통해 유학에 입문하면 그 다음부터 〈논어〉와 〈맹자〉를 읽고 끝으로 <중용>을 읽는다. 〈대학〉이 유학이 지향하는 바와 그 과정 전체의 윤곽을 잡는 책이라고 한다면 〈중용〉은 이론적 핵심을 확인하면서 정리해 나가는 책인 것이다.
<중용>의 '중(中)'은 치우침이나 과불급이 없는 것이고, '용(庸)'은 일상을 의미한다고 주희는 강조했다. 곧, 치우침이나 과불급이 없는 인간의 본성을 일상에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대학〉이 유학의 지향점과 실천 과정을 제시하면서 개인과 전체 사회를 연결시켰다면 <중용>은 한 개인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진행되는 일상생활과 삶의 도덕적 근원인 하늘을 중첩 시켰다. 우리의 일상적인 윤리가 단순히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道)에 기초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중용〉은 폭력으로 질서를 잡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중용〉은 폭력이나 신화가 아닌 문명적 방식으로 수직적 권력을 재건하기를 논한 정치철학서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최고 권력이 정당화되는 근거, 그리고 최고 권력을 유지하는 방법, 즉 리더십에 대한 정치이론서다. 그런 점에서 리더들의 마음가짐에 따라 최고의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고, 폭력은 제외라고 한다면 오늘날의 리더들도 숙고할 문제라고 본다.
결국 〈대학〉과 〈중용〉은 유가 사상의 연장과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그 자체 내에 항상 현실성을 동반하여 어떠한 외부 존재의 힘에 의지하지 않고, 오직 인간 자신의 힘으로 인간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했다. 이것이 유가가 강조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이다. 간단히 말해서 기본적으로 인성이 되어야 리더로서 자질이 있다는 말이다. 자기 마음 하나 다스리지 못하면서 갑질하지 말란 소리다.
리더의 지질을 강조한 학문이 유학뿐이었겠는가. 노자는 “강과 바다가 온갖 시냇물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은 자기를 잘 낮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능히 온갖 시냇물의 왕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의 위에 서려고 하면 반드시 말로써 자신을 낮추고, 백성들의 앞에 서려고 하면 반드시 몸으로써 이의 뒤에 선다.”라고 했다. 무릇 정치를 하는 리더의 자세를 말함이다. 정치의 리더뿐만 아니라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굳이 앞에 나서지 않아도 존중을 받게 된다. 스스로 자신을 낮추고 마음을 비우는 겸허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세상을 품을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리더의 모습이 아닐까.
작성자 JOY 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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