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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및 신앙 서적

마이크 어- 하나님께 놀라다 /데이비드 윌커슨- 지금 포기하고 싶은가

by 은총가득 2021. 1. 18.

프롤로그 당신의 하나님은 날마다 더 커지시는가

 

이 책은 하나님의 야성과 믿음의 모험을 다룬다

) 우리가 자랄수록, 예수님과 동행하면 할수록 하나님은 더 커지셔야 한다.

C.S루이스의 <캐시피언 왕자>에서 네 명의 남매 중 가장 어린 루시가 아슬란을 만나 서 대화를 나눈다. “아슬란, 더 커지셨네요.” “그건 네가 나이를 더 먹었기 때문이다. 진 게 아니라 한 살 더 먹을 때마다 더 크게 보이는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동행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예수님은 더 커지셨다.

 

) 그러나 오히려 작아진다.

교리나 전통, 제도, 정책 등으로 수축포장된다.

예수님이 작아지면 내 편으로 끌어들이기도 쉬워진다. 내 계획과 취향에 따라 복 주시는 분으로 선언하기 쉬워진다.

하나님을 구체적 형상으로 규정하고 싶은 유혹에 사로잡힌다. ) 광야에서 만든 금송 아지

기독교는 실재적이고 필수적이며 성경적인 믿음의 대체물이 되었다.

 

) 믿음의 본질은 사실을 믿고 사실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는 것.

교리적 진술에 동의하는 것을 넘어선다.

보이지 않는 것들과 관계가 있는 믿음, 반대말은 보는 것’(고후5:7) 하나님을 볼 수 있 게 하려고 애쓴다. 이해할 수 있고, 통제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든다.

이 책은 성경적 믿음에 경이와 경외, 신비를 다시 담아 믿음을 재정의한다.

 

) 믿음의 대체물이 된 공식들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 세 가지 P로 시작하는 하나님이 악을 허용하시는 이유 등

믿음에 대한 설명이나 적용이 아닌 믿음의 대체물이 되었다. 하나님보다 공식과 절차를 신뢰하는 것이 더 쉽다.

그러나 믿음의 삶을 지탱해 줄 수 있는 것은 더 커지시는 하나님.

 

4. 이 책의 구성 : 3

) 1: 하나님의 본성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 숨으시는 하나님

) 2: 믿음의 본질과 우리에게 믿음이 어려운 이유

믿음은 항복, 신비, 긴장을 편안히 받아들임, 절실함이다.

그러나 현대 서구 사회에서 항복은 정반대의 가치. 범주화하고 분석,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을 우리 분류 체계에 끼워 맞추기에 너무 크신 분이다.

) 3: 믿음 충만한 삶

믿음은 모든 것을 새롭게 보는 방식. 하나님의 임재와 일하심을 깨닫는 일.

 

5. 믿음은 어렵고, 믿음의 삶은 더 어려운데, 그 이유를 다룬다.

 

Part 1 언제부턴가 하나님께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1장 예수 믿어도 인생은 여전히 어렵다!

 

광고의 효과를 극대화하여 소비자가 구매하게 한다.

) 광고의 공식

인포머셜’(informacial :informationcommercial의 합성어로, 상품의 정보를 제공해 소 비자의 이해를 돕는 상업광고)최악의 물건꼭 필요한 물건으로 만들어 사게끔 한다. ) 홈쇼핑 등

광고의 공식 : ‘필요를 만들어 내고 그것을 채워 주라. 욕구를 창출하고 그것을 충족시 켜 줄 것을 제시하라. 두려움을 주입하고 희망을 제시하라.’

충동에 사로잡혀 구입한다. 그러나 그 물건을 구입하면 기쁨과 성취감을 맛보고, 평범 한 삶이 영광스러운 삶으로 변할 것이라는 광고의 선전문구와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

 

2. 소비자 복음에 물든 기독교

) 소비자 복음

소외감, 불완전한 느낌, 실패한 인생, 결핍과 같은 인생의 구멍을 채워주는 예수님이라 고 소개한다. 자유시장경제의 언어를 사용하고 X라는 상품 대신 성취감과 만족을 주는 또 다른 상품으로 예수님을 광고한다.

)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의 일을 하신다.

예수 믿고 난 후에도 여전히 불완전하고 부족하고 허전하다고 느낀다.

예수님은 우리 삶에 어려움과 긴장, 불확실성을 가져다 주신다.

불가사의, 역설, 긴장, 욕구불만, 갈망, 공허감, 이별, 고독, 어려움, 허무감, 상실, 슬픔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로 이끄신다. 모든 고통을 만들어내시지는 않지만 고통의 역할을 통해 믿음과 신뢰 사랑이 자란다.

) ? ‘하나님만의지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달리 의지할 데 없는 그곳에서 하나님께 손을 내밀어 그분을 붙들게 하시려고

 

3. 인생, 순탄하지 않은 게 정상이다.

) 남자와 여자의 기원

남자(아담)는 흙(아다마)으로 만들어지고, 그래서 이름도 흙과 관련이 있다. 경작하고 돌보는 일을 한다. 여자(이쉬샤)는 남자(이쉬)에서 나와 돕는 이’, 보완하는 존재이자 반려자. 남자는 흙과의 관계를 통해, 여자는 남자와의 관계를 통해 일을 이뤄야 한다.

 

) 여자가 받은 두 가지 벌

첫째는 출산의 고통, 둘째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그녀를 다스릴 것.

다스림은 왕이 백성을 통치할 때의 단어이다.

아이를 낳는 자적합한 협력자라는 역할에서 좌절을 맛보게 하심.

) 남자가 받은 벌

아담은 노동에서 의미, 목적, 성취감을 발견하는 존재이다.

타락한 세상 삶(3:17-19)이 순탄치 않게 하심으로 어려움과 허무감을 집어넣으셨다.

) 어떤 관계도 완전하지 않고, 어떤 직업도 궁극적인 성취감을 주지 못하고, 어떤 업적도 영구한 만족을 선사하지 못한다.

 

4. 다시 돌아오라는 사인이다.

) 인간의 삶을 힘들게 하셨다.

고통스러운 출산, 관계는 권력 투쟁으로, 보람찬 노동은 고역으로, 남자와 여자의 기대 에 부응하지 않는 피조 세계, 노동도 협조하지 않는다. - 하나님의 의도적이고 전략적 인 벌

) 온전한 삶에 대한 갈망 때문에 하나님을 찾는다.

사적인 이익 추구 : 돈과 명예, 쾌락, 성공, 지위가 영원한 만족을 준다면 누가 하나님 을 찾겠는가?

사적인 이익 추구가 오히려 궁지로 몰아넣게 하는 것임을 알게 됨으로 하나님을 신뢰 하고 순종한다.

) 하나님은 우리를 다시 돌아오게 만드시려고 인간이라는 존재의 덧없음과 한계, 좌절을 사 용하셨다.

 

5. 하나님은 우리를 끝까지 추적하신다.

) 어려운 인생 가운데서 제대로 사는 것을 바라고 갈망한다

파괴된 관계와 하나님 뜻에 반대하는 대적의 궤계, 인간이 저지른 반역의 무게 때문에 인생은 힘들다.

인생의 어려움과 타락상을 사용해 하나님께로 이끄신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생의 어려움과 타락상을 제거하실 것이라는 소비자 복음의 하나님 을 바라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 인생의 어려움과 좌절에 대처하는 잘못된 방법 : 도피와 가장

세상은 도피하라고 한다 : 도박과 포르노, 불륜, 마약, 술로 도망. 더 큰 흥분을 찾는 .

교회는 아무 불만이 없고, 직장생활이나 가정생활이 평안한 척 가장하라고 가르친다.

) 예수님은 아픔을 받아들이고 갈증을 느끼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야 그리스도가 제시하시는 온전한 삶의 비밀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2장 절박한 순간마다 그분은 안 보이셨다!

 

메마른 사막 같은 하나님 부재 상태

) 그리스도인의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물 같은 하나님 부재 상황

공황장애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하나님이 버리신 것 같았고, 임재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기쁨 없는 예배와 고역인 성경공부. 믿음 성장의 큰 장애물 같이 여겨졌다.

) 숨을시는 하나님 : 성경은 하나님이 정기적으로 숨으신다고 말한다.

 

2. 하나님이 나타나신다는 것의 의미

) 무소부재하신 하나님 : 어디에나 계신다.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게 아니라 우리가 나타난 것이 .

나타나신다는 하나님이 그분의 임재를 명백하게 드러내신다는 것이다.

) 하나님의 숨으심 : 왜 자주 드러내지 않으시고 광야시간이 필요할까? 하나님이 멀게만 느 껴지는 때가 있을까?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숨으신에 대해 묻는 것이다. 하나님의 숨으심 에 대해 묻고 고민하는 것은 하나님이 정말 존재하시는지, 왜 보이시지 않는지, 과연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실재하시는지를 묻는 게 아니다.

왜 하나님의 자녀인데 그분이 왜 멀게 느껴질까? 좋은 부모는 뭔가를 해 달라고 하면 응답하는데, 왜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에게 이렇게 하지 않으실까?

 

3. 때로 숨으시는 하나님

) 하나님의 숨으심은 정상적인 경험이다.

이사야45,15 “스스로 숨어계시는 하나님” -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 관계에서 지속적으로 볼 수 있는 특성 중 하나

숨어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말, 10:1;13:144:23-24;3:8 하나님의 명백한 임재 는 동산 특정 장소에 제한되었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숨어계신 하나님 나사렛 예수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임재, 신성 을 감추었다(2:5-8),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과 신적 속성(정체)을 가리셨으며(24:16), 가르침의 내용의 의미 도 숨기셨다(13:17). 즉 마음이 닫힌 사람에게 가르침을 가렸다.

) 명백한 임재를 누리고 기뻐하기도 하지만, 명백한 부재 또한 경험해야 한다. 정상적인 여 정이다.

 

4. 왜 숨으시는가

) 우리가 하나님을 피해 숨을 수 있게 하려고 하나님이 숨으신다.

우리가 죄를 짓기 때문에 하나님을 피해 숨는다.(3:8;59:2;1내버려 두신다’) 래서 하나님이 숨으신다는 느낌이 든다면, 우리가 하나님을 피해 숨고 있는건 아닌지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 하나님의 응답의 때가 무르익지 않아 하나님이 정보를 숨기신다.

예수님이 오셔서 하실 말씀과 행하실 일을 미리 안다고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하나님 부재와 침묵처럼 느껴진다. 알려 줄 적당한 때 까지 기다리신다.

)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하시려고 숨으신다.

바벨론 포로 시기에 70년 동안 침묵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29:10-14) 그러니 침묵의 약속은 복의 약속과 연결되어 있다. 즉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만날 것이라고 하 신다.(7:7-11)

 

5. 영적 메마름의 은혜

) 하나님 부재 시기(영혼의 어두운 밤 또는 적막)에 더 하나님을 구한다.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방식대로 하나님을 받아들이게 된다.

위안, 즉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깨달음은 그리스도와 평생 동행하는데 필요한 훈련으 로 이끄신다. 내 이기심이 아닌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 연애 때의 밀월이 끝난 결혼 후에는 있는 그대로의 그를 사랑하고 존중한다.

대부분의 사랑은 갈등과 실망, 시련을 겪으며 성장한다.

오직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순종하길 원하신다.

 

6. 하나님 임재가 느껴지지않을 때

) 완벽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죄책감과 수치심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구한 .

) 담대하게 기도하는 법을 배우라

) 하나님을 뵙고 음성을 듣는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라.

 

3장 하나님께 눈 감고 있는 자신을 들여다보라

 

우리의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는 경우

) 종교지도자들(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알아봤어야 할 이들)이 그렇지 못한 사례들

1세기의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대적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다가가시면서 우셨다.(19:41-44)

메시아는 유다지파에서, 다윗 자손으로 오시며, 모세 같은 예언자라는 약속은 믿었으나, 53,2-3고난 받는 종약속은 무시했다.

) 예수님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구원자를 못 알아볼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하나님이 숨으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문제이거나 머리의 문제일 수 있다.

 

2. 하나님이 정말보고 싶지는 않다

) 예수님을 보고 싶어 해야 볼 수 있다.

초대받지 않은 곳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신다. 고향에서 배척했기 때문에 아무 권 능도 행하실 수 없었다.(6:5-6)

예수님을 뵈려면 우선 모셔 들여야 한다.(3:20)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비유의 의미를 설명하셨지만, 깨닫기 위해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13:11)

아이들을 믿음의 본으로 제시 : 배우려는 열의, 가르침이 필요하다는 겸손, 예수님의 거꾸로 나라의 영향을 받아들일 만한 마음과 정신의 유연성

 

3. 하나님이 아쉽지 않다

) 우리가 통제권을 행사하려고 한다

하나님의 행하심이 필요한 상황은 피하려고 한다

우리가 통제권을 쥐길 바란다.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은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우리가 원하는 일을 하고 관리, 조작할 수 있는 하나님을 만든 .

그러나 하나님과의 이런 관계는 믿음이 전혀 필요 없다.

) 세상은 믿음이 아니라 위기관리에 가깝다.

세상은 위기를 평가하고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래서 각종 보험을 든다.

예수님에게도 위험 없는 보상만을 바란다. 그러나 믿음과 위험은 뗄 수 없다. 하나님이 어떤 일로 부르시면 믿음과 두려움 모두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감당 못할 상황으로 부 르시고 기다리신다.

편안함과 통제력을 잃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애쓰느라 하나님이 도우셔야 할 필요성을 잘 느끼지 못한다. 안전과 통제로 만족함은 믿음이 필요 없는 삶에 만족하게 한다.

 

4. 하나님이 돕지 않으실까 봐 두렵다.

) 사람의 두려움

정말 절박한 곳, 하나님만 의지해야 하는 곳으로 내몰리는 걸 피하고 싶어 한다. 실망 할 까 봐 두렵다. 위험을 감수했다가 다칠까 봐 두렵다. 그래서 위험을 관리하면서 통 제불가능하고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을 줄이려고 한다.

) 신학적 핑계

그게 하나님의 뜻이었을 거야라는 말은 하나님께 순복하는 고백일 수 있지만, 체념에 대한 신학적 핑계가 될 수 있다. ‘이 하나님의 뜻이었다고? 예수님이 계시하신 하나님은 어둠이 전혀 없는 분,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든 것을 새롭 게 하시고 회복을 위해 일하시는 분.

 

5. 하나님이 정말나타나실까 봐 두렵다.

) 살아 계신 하나님, ‘타오르는 불이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이 두렵다.

예수님이 우리 교회에 들어오신다면 무슨 일을 하실지 누가 알겠는가? 성전을 청소하 신 예수님(2), 종교지도자들의 위선과 율법주의를 꾸짖으신 예수님(23), 교회에 서 벌어지는 일을 꾸짖거나 칭찬(2-3), 성령께 거짓말한 죄로 쓰러져 죽는 사람( 5)

 

) 사가랴와 천사 가브리엘의 만남(1:5-20)

아들에 대한 기도를 포기한 때, 사가랴가 믿을 수 없는 기도 응답

의심을 꾸짖는 가브리엘, 사가랴는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말을 하지 못한다.

) 하나님을 보고 싶지만, 그분을 관리할 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고 싶진 않다.

 

6.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

)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내 어머니의 음성은 설명할 수 없고, 직접 듣게 하는 것이다.

성경에 몰두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음성과 임재, 행하심이 나타날 때 알아보지 못한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아는 것과 그분에 대한 정보를 아는 것을 구분해야 한다.

) 예수님은 종교지도자들이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을 갖지 못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분 별할 수 없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7. 성과 속을 나눈다.

) 성과 속의 구분.

치우친 문화적 렌즈로 성경을 해석하고, 그 렌즈를 정당화하는 도구로 성경을 이용한 .

세속적인방식에 따라 세상을 바라보면, 인간 삶에서 하나님이 없다. 세속적 세계관은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게 만든다.

교회와 실생활이 구분되고, ‘거룩한활동과 장소는 삶의 나머지 부분과 완전히 분리된 .

) 성속을 분리한 대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삶이 죄용서와 천국 입장권 확보하기 위해 주일예배 참석과 소그룹 참석, 기도, 성경 읽기로 축소되었다. 충분하지 않다.

예수님이 실생활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언제 어디서든지 하나님의 임재에 깨어 있도록 부름받았다.

8. 비범한 것만을 갈망한다.

) 극적인 일에만 심취하다 보면 평범한 일상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감동적인 설교와 예배, 임재를 느낄 수 있는 찬양,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 봉사 월적인 일만을 갈망.

그 외 다른 곳에서는, 극적이지 않고 눈길을 끄는 요소가 없는 영역에서는 하나님을 찾 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영적 황홀함만을 추구한다면,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거나 영적 체험을 통해 감정의 고양을 경험하지 못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나타나지 않으셨다고 오해한다.

) 스스로 눈을 감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4장 이제 하나님 길들이기를 멈추라

 

정해진 틀을 좋아한다?

) 예측 가능하고 규칙적인 상황

정해진 틀은 예측가능하다 : 같은 식당, 같은 메뉴, 똑같은 두세 벌의 셔츠, 같은 시간 에 잠자리 등

하나님도 질서와 설계의 하나님, 일관성과 지성으로 우주를 운행. 그러나 하나님은 크 고 위대하신 분, 우리 생활과 정해진 틀을 끊임없이 깨뜨리신다.

)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

하나님이 예측 가능하고 이해 가능한 분, ‘공인된 신적 회계원칙에 따라 일하신다면, 우리가 하나님과 일하기 훨씬 쉬울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다 헤아릴 수 없다. 보통은 예측할 수 없고 비협조적이고 틀 바깥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상대해야 한다. 그러니 하나님을 믿는 것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2. 예측불가능하다면 신뢰할 수 없다?

) 하나님의 신뢰성과 예측 가능성의 관계

좋으신, 사랑의 하나님, 거짓과 어둠이 없는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다. 신뢰할 수 있다.

) 예수님의 신비

그러나 신뢰성과 예측 가능성은 다르다. 예수님을 둘러싼 신비 - 예수님은 뜻밖의 방 식으로 가르치고 살아하고 살아가셨다. , 구유에 오신 예수님, 동정녀 탄생, 창녀와 세리, 죄인의 친구, 십자가의 죽음 등

 

3. 우리라고 부르는 범위를 계속 넓히신다

) 확장하는 하나님의 움직임

종교는 하나님을 끼워 맞출 형태와 모양을 제공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틀보다 더 크고 넓고 깊은 분으로 드러내신다.

바람은 다른 곳에서 분다.

) 예측 가능성을 바라는 사람

예수님의 공식제자단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 귀신을 쫓아냈다. 귀신이 적을수록 좋을텐 , ‘그 일을 못하게 막았다’(9,49-50)

틀에 맞지 않았기 때문.

) 하나님의 팀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크다.

1124-30, 진 안에 남아 있는 두 사람에게도 칠십 인의 장로들과 같이 여호와의 영이 임했다. 모세는 불편해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백성 모두가 두 사람과 같이 되기를 바랐다.

여호수아와 제자들은 선을 넘어가자 위협을 느꼈으나, 틀에 들어맞아야 한다고 생각했 으나, 예수님과 모세는 틀을 더 크게 확장했다.

 

4. 늘 그분의 움직임에 놀랄 준비를 하라

) 새롭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예수님이 성령으로 난 사람, 즉 영적 출생에 대해 설명하면서 바람에 비유하신다.( 3:8)

하나님이 사람들을 희한한 방식으로 끌어오시더라도 놀라지 말라.

) 성경에 비추어 분별

하나님을 하나의 틀에 가두면, 신학이나 방법론, 교파 등 어떤 틀에 가두면, 그분을 위 해 일한다고 생각하면서 정작 하나님을 반대하게 될 위험이 있다.

그리스도의 것은 우리 본성이 좋아하는 것보다 더 크고, 더 넓고, 더 깊다.

크기와 모양이 정해져 있는 틀은 바람의 움직임을 예측하거나 담아내기 적합하지 않다. , 일기예보.

 

) 하나님의 움직임에 놀라라

성공보다 실패에서, 풍요보다 가난에서, 총명하고 아름다운 이들보다는 기죽고 미심쩍 은 이들 사이에서, 정체를 숨기신 예수님 때문에 놀라지 말라.

하나님의 사람들이 예측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기대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이다. 나님을 초대해야 놀랄 일이 생긴다. 뜻밖의 일이 들어설 여지를 주라. - 음악이나 설교 자가 마음에 들 때하나님의 임재를 더 자주 느꼈다. 그러나 놀라운 일은 미국 교회 바깥, 3세계의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서 일어난다.

) 예수님이 계신 곳

2534-40, 가난한 사람들, 고통 받는 사람들, 지체장애인들은 예수님께 가는 길을 가장 잘 보여 준다. 세상에 임하시는 그분을 알아보게 해 준다.

할렐루야 합창 공연이 울려퍼진 크리스마스 이브 예배 vs 지체장애인선교회 예배

하나님의 임재와 일하심을 알아보려면 열린 자세와 기대하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5장 내 한계를 경험치 않고는 그분 능력을 볼 수 없다

 

하나님 나라의 뒤집힌 가치 체계

)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반응과 정반대로 움직여라.

시트콤 <사인필드>에서 불행한 중년 남자가 정반대로 행동하니 인생이 훨씬 나아졌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도 우리 본능과 정반대로 행하는 것.

) 하나님 나라의 뒤집힌 가치 체계

미국 문화에서 강함으로 인정하는 것이 성경에서는 약함.

예수님의 체포와 재판, 베드로는 칼을 휘둘러 말고의 귀를 잘랐다. 강한 것처럼 보이나 약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자제력은 약해 보이지만, 가장 강력한 힘이다. 예수님 명 령으로 칠만 이천 천사들이 싸울 수 있으나 자제하셨다.

빌라도 앞에서의 예수님 침묵, 앙갚음과 보복을 이긴 강함이다.

) 예수님의 나라에는 모든 것이 뒤집혀 있다. 강함과 약함은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다.

 

2. 약함의 강함

) 약한 것을 자랑하는 바울

초대교회와 특히 고린도교회는 바울을 신통치 않은 인물로 여겼다. 그러나 바울은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후11:21-30) 가시(고후12:7-10)

(하나님의) 은혜가 네(바울)게 족하다. 네 능력은 약한데서 끝나기 때문이다.’ 즉 우 리 능력이 제한되어야만 하나님의 능력이 더 잘 드러난다.

우리가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을 때 하나님이 최고의 일을 하신다.

3. 더는 어찌할 수 없을 때 가장 가까이 계신다.

) 하나님이 쓰시기 가장 좋은 상황

약한 사람을 들어 강하게 쓰셨다. 언변이 뛰어나지 않으며 부르실 때 핑계 댄 모세, 리앗을 상대한 어린 소녀 다윗, 세 번이나 부인했지만 교회의 지도자가 된 베드로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하나님이 나를 쓰시기 가장 좋은 상황

) 하나님께 쓰임 받을 자격 있는 사람, 없다.

매춘부 라합은 히11장의 믿음 장에 기록, 사기꾼 야곱은 한 민족의 조상, 겁쟁이로 아 내를 넘긴 아브라함, 그리스도를 부인한 베드로 등

하나님이 보실 때 자격을 갖춘 사람은 없다.

가장 겸손한 자들이 가장 극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맛보았다.

 

4. 절박한 지점에서 믿음이 시작된다.

)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하신다.

감당치 못할 시험temptation은 허락지 않으신다고 하신다.(고전10:13)

하나님은 감당할 수 없는 일을 맡기셔서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신다.

인간 스스로 나약함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나약함을 통해 하나님이 일하신다.

, 기드온

) 약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우리 안전이 아니라 우리 믿음과 사랑에 관심 있으시며, 그래서 위험과 고통 에 노출시키신다.

하나님은 보물을 질그릇에 두셨고,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다.(고후4:7)

자신의 힘으로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자랑에 빠져 자랑하지 못하게 하신다.

5. 막막하고 속수무책의 상황으로 즐겨 부르신다

)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신뢰하는 사람들

아메리칸 드림은 자신을 중시하지만, 복음은 예수님을 중시한다.

하나님의 초자연적 능력을 신뢰하는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교육받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위대함과 믿음을 보여준다.

) 하나님을 신뢰하는 법 배우기

공식이나 청사진보다는 나중에 뒤돌아볼 때 이해할 수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을 신뢰하 는 법을 배우게 하신다.

인생의 여러 벽은 내가 할 수 없음을 깨닫는 훈련의 과정이다

 

Part2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다시 보라

 

1다 헤아릴 수 없는하나님을 인정하자

신비와 경이를 인식

) 더 이상 놀라지 않는다

성탄절 이야기에 익숙해져서 성탄절의 신비와 경이를 인식하지 못한다.

현대 기독교는 성경적 신앙의 신비를 제거하고 있다.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을 신뢰하 기 보다는 생활의 조언이나 절차, 기법을 따르는 것이 편안하다.

) 하나님은 믿음의 신비에 관심 집중

하나님은 우리의 범주와 한계를 깨뜨리신다. 믿음의 신비 제거보다 더욱 깊게 하는 데 관심이 있으시다.

 

2. 영적 발달의 네 단계 : 스캇 펙의 영적 발달 단계

) 1단계, 혼란스러운 반사회적 단계

욕망과 좋아하는 것만 따라 산다. 반사회적이다.

타인을 사랑할 능력이 없다. 남을 조종해서 자기 잇속을 차리기 위해 인간관계를 맺는 .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 남을 사랑한다.

) 2단계, 형식적이고 제도적인 단계

제도적 단계 : 내면의 혼란에서 벗어나기 위해 삶의 의미와 구조, 목적을 부여해 줄 만 한 것을 외부에서 찾는다. 감옥이나 군대, 직장, 종교 등 제도가 주는 위안과 구조 추 .

형식적 단계, 제도적 단계. 대다수의 교인들이 이에 속한다.

외재적이고 초월적인 하나님 상, 내재적인 하나님에 대한 인식은 없다. 하늘에 계신 경 찰관.

안정을 주된 가치로 여기지만, 종교를 내재화하면서 형식과 제도에 의문을 품기도 한 .

) 3단계, 회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인 단계

자신이 믿는 바가 진리인지 직접 알아보고 싶어 한다.

비신자 취급을 받지만 2단계보다 더 영적 진전 상태

) 신비적이고 공동체적인 단계

모든 사물과 모든 사람 사이에 내재하는 연관성과 통일성을 인식. 인간사회를 갈라진 조각이 아니라 하나의 전체로 본다.

2단계의 사람들은 단순명료한 대답과 교리적 구조를 원하는 반면, 4단계는 신비에 다가 가기 위해 종교를 받아들인다.

 

3. 믿음은 신비다.

) 정반대의 동기에서 종교적 믿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인생의 경이와 신비에 이끌려 종교를 갖게 되거나, 단순명료한 해답 때문에 종교에 기 대는 이들도 있다. 대부분 2단계에 속하고, 신비와 역설, 긴장을 완화시킨다.

) 균형이 필요

인간들에게는 세상을 이해하고 지배하려는 충동, 그래서 범주와 구조를 만들고 신비와 긴장, 역설을 제거하려고 한다.

범주와 구조로 세상을 보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균형이 필요하다.

 

4. 나의 이름은 YHWH

) 이름의 중요성

이름은 성품을 나타낸다. 유대인은 이름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사람이나 장소의 본질과 그 이름을 분리할 수 없다.

이름과 직함은 다르다.

) 하나님 이름

창조주 : 하나님 이름을 지을 권한은 하나님

나는 곧 나다”, “나라고 하는 분이 너를 그들에게 보냈다”, “야훼”, 그일 것이다 나다3인칭으로, “그분이시다라고 이해할 수 있다.

 

5. 다 안다고 생각하는 선입견 걷어내기

) 신의 이름을 묻다

신은 인간사의 모든 면이 신과 결부되어 있었다.

신의 이름을 알아야 자신을 위해 일해 줄 신을 경배하고 제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모 세가 하나님 이름을 묻는다.

) 이름을 알려 준 하나님

알려 주신 이름 신비로움과 감탄, 외경심을 자아냈다. 하나님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는 사실을 상기.

) 신약 성경에서의 하나님 이름 : 그리스어 단어 데오스(theos). 영어의 ‘god’‘GOD’로 써 서 참된 한 분 하나님을 가리킴.

) 아는 것보다 사랑

우리가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깨달음은 하나님을 알아가게 이끄는 힘.

하나님을 알 수는 있지만, 완전히 파악할 수는 없다. 지식은 믿음의 토대이지 믿음 자 체는 아니다.

6. 그분의 실체와 대면하게 될 때

) 하나님을 만날 때의 충격

욥이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의 믿음이 산산조각 났다.

예수님과 날마다 살았던 요한은 부활 후 영광의 예수님을 만났을 때 거룩한 두려움에 사로잡혔다.(1:12-17)

요한과 욥은 하나님을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했음에도, 그분을 실제로 뵙자 말을 잃고 경외감에 사로잡혔다.

우리는 우리가 만든 이해가능한 만들어진 신을 섬기나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경외감 때문에 무릎을 꿇게 된다.

 

 

2예수 말고도 답이 없다는절실함을 회복하자

예수님을 마케팅하는 교회

) 교회 홍보

부활절 예배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기념하는 축제라기보다는 하나님과 우리 교회를 홍 보하는 이벤트가 될 수 있다.

예수닝믈 매력적인 분으로 만든다는 구실로 잘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나님만으로 무엇이 부족한 듯, 흥미를 끌만한 프로그램과 욕구 충족, 예수님을 따르 는 이점을 홍보한다.

) 예수님을 따르는 보상은 예수님

예수님 마케팅 전략은 예수 따를 때의 이익 나열에 치중한다. 뭔가 얻기위해서만 예수 님을 따르도록 사람들을 훈련하는 꼴이다.

그러나 예수님만이 우리의 상, 다른 것은 모두 덤.

 

2. 예수님은 누구에게도 강요하지 않으셨다.

) 예수님의 제자화 방법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간청하거나 매수해서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신 적이 없다.

다른 선택지가 있는 사람은 떠나가더라도 내버려 두셨다

예수님은 지지율이나 비방에 개의치 않으시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따는 사실을 알리 셨다.

 

3. 절실한 믿음에 가장 열렬히 반응하셨다.

) 예수님은 여러 부류의 사람을 만나셨다.

부자와 가난한 사람,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정결한 사람과 부정한 사람.

) 절실한 사람들에게 열렬히 반응하는 예수님

예수님은 마음이 깨진 사람들과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가장 열렬히 반응하셨다.

더욱 크게 소리 지르는 맹인(18:35-42)과 깨끗하기를 구하는 나병환자를 치료하셨 . 예수님은 더러워 지나가는 사람들을 손을 대시고 깨끗하게 해주셨다.

도움이 절실한 사람들,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 형편이 막막한 사람들, 장애를 가진 사람 들은 예수님의 길을 막고 복을 구했다. 예수님은 환영하고 고쳐 주셨다. 축복하고 죄를 용서하셨다.

) 선택의 여지가 있는 사람들을 떠나보내시는 예수님

가족에 대한 의무 때문에 떠나간 사람들(9:57-62), 많은 보화 때문에 떠난 젊은 청년 (18:18-25)

예수님이 젊은 청년을 사랑하셨지만 떠나가도록 놓아두셨다.’

4. 조건이 맞는 교회를 찾고 있는가

) 관람하는 신앙생활

VIP룸에서 운동경기를 보는 것과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것과 비슷하다. 모든 조건이 딱 맞아야 경기장에 가듯이, 예배의 모든 조건이 맞아야 예배를 드린다.

극성팬과 시큰둥한 팬의 차이

) 사도행전의 교회와 거리 가 먼 현대교회

초대교회와 우리 교회 이야기는 다르다.

초대교회는 막을 수 없었고 핍박과 고문, 투옥에도 불구하고 계속 성장했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는 예배 시간이나 순서, 설교 방식, 여러 가지 조건이 달라지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다.

 

5. 예수님이 내게 진짜 보물인가

) 진짜 보물 : 예수님, 즉 예수님과 그분이 나라(13)

 

 

3믿고 싶은 대로 믿던불신앙을 끝내자

산타클로스와는 다른 하나님

) 하나님이 산타클로스와 같다면?

권선징악이 정확하게 나타나면 얼마나 좋을까.

) ‘잘 믿으면 축복 받는다가 통하지 않는 성경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축복을 보장받지 않는다. ‘믿음의 대가로 건강과 부를 약속하신 는 신앙관과는 다르다.

예수님의 오실 길을 선포하던 세례 요한은 감옥에서 참수형을 당했다.

순종하고 희생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수 있다.

 

2. 주님이 나를 속이셨습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가 되는 놀라운 소명을 받았으나 불행한 현실을 겪는다. 하나님이 함정에 빠뜨리셨다고 비난한다.(20:14-18)

3. 말씀에 다 순종하고도 인생이 산산조각 날 때

) 모세는 두 번의 실패와 40년의 광야생활, 그런데도 약속의 땅이 보이는 곳에서 죽을 것이 라고 말씀하신다.

) 예수님의 어미니 마리아, 메시아를 낳는 특권을 받지만, ‘당신의 마음은 칼로 쪼개듯이 아 플 것입니다’(2:35) 고향에서 예수를 죽이려는 모습, 예수님을 비웃고 조롱하는 모습, 십자가의 예수 때문에 고통

 

4. 아픔이 있더라도 사랑하고 따르겠는가

) 성경은 우리 예배와 달리 깔끔하고 산뜻하게 끝나지 않는다.

) 아픔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따르겠는가?

) ‘공인된 축복 원리에 따라 행하는 하나님이 아니다. 야성적이고 길들일 수 없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험한 모험의 삶으로 부르신다.

 

5. 예수님을 따르면 만사형통일 것이다?

)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메시아임을 침묵하라고 하신 이유

제자들이 메시아이심은 알았지만 그 신분에 따르는 책임, 고난당하심을 몰랐다.

) 예수님을 따르는 건 죽을 준비를 하는 것.

종교소비자로 사는 현대인에게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아가 죽어야 한다고 요청. 우리 삶 의 권위와 지배력을 행사하는 모든 충동이 죽어야 한다.

)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항복을 요구한다.

2117-23절의 베드로 회복.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예수님을 따르면 위로와 든든함, 안전을 보장하는 만사형통은 성경적 증언이 아니다

[출처] 마이크 어, 하나님께 놀라다, Part2. 믿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다시 보라|작성자 forwill1995

Part3 평범한 일상이 놀라운 스토리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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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실생활이 하나님 나라 방식으로 재편되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은 평범한 장소와 시간

) 쓰임 받은 사람들의 성공과 실패가 그대로 드러난다.

) 야곱이 하나님을 만난 곳은 그저 한 곳”(28:10-15), 평범한 장소이다.

다른 민족은 신을 만날 장소가 따로 구별되어 있으나, 이스라엘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 시기 때문에 평범한 장소에서도 만나 뵐 수 있다. 하나님이 계시면 신성한 장소이다.

 

2. 내 일상 다시 보기

) 일상의 시간에 하나님을 만난 모세

떨기 가운데서 이는 불꽃으로”(3:2-6)

하나님은 지금 여기 계신다. ‘언제나 이미 거기계시는 하나님, 줄곧 거기 계시는 하나 . 늘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인식.

) 영이신 하나님을 예배 (4:19-24)

예배를 장소의 개념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영이신 하나님은 신성한 장소에만 머무시지 않는다.

) 언제나 일하시는 하나님

안실일 논쟁(5:17) : 하나님은 언제나 일하신다.

 

3. 생활의 속도를 늦추고 깨어 있으라

) 내 주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실천적 이신론자. 그러나 늘 우리 주위에서 불붙는 떨기를 인식.

나그네를 대접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천사들을 대접. 거대한 천사들을 본 엘리사의 종, 엘리야의 불말과 불병거.

) 중요한 사실을 기억하기

늘 하던 대로 하는 것이 가장 큰 적.

경이감과 감탄, 발견의 정신을 길러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건 하나님 나라 방식대로 바뀌고 재구성된다는 뜻. 

 

2장 세상을 읽는 영적 안목이 자라다

보는 시각 맞추기

저자는 지저분한 상태에 만족, 아내는 깔끔하게 청소하는 사람.

아내를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서는 새롭게 보는 법을 배워야 했다.

 

2. 보는 법 배우기

) 전문가와 문외한의 보는 것 차이.

) 하나님 나라의 범주에 눈을 뜨다.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들이고 누리게 되면, 창조와 죄, 세계, 화해, 하나님 나라와 같은 범주에 눈을 뜨게 된다. 이 범주를 통해 현실을 보게 된다.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고 완전히 체화해야 한다.

) 믿음, 마음의 눈, 들을 귀

하나님의 음성을 천둥소리와 하나님 음성으로(12:27-29), 한 여인의 향유를 경배와 낭비로 나누어 봤다.

날씨를 분별하듯이 시대의 표적을 분별하라(16:1-4) 요나의 표적.

서구 기독교의 제자돈느 우리 주위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임재와 일하심을 분별하도록 가르치는 일에 소흘했다.

예수님의 기적, 표적은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메시아가 그 자리에 계신다는 것.

사인의 예, 도로 표지판과 경제 지표, 수화

3. 표적, 하나님의 언어

) 복음서에 푹 잠겨야 한다.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조직적 근시’, 조직의 우너래 존재 목적보다 절차나 정책, 조직 내 정치가 더 중요해져 버린다. 이스라엘의 법과 전통, 제도도 마찬가지.

하나님의 임재를 분별하지 못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무능함.

) 하나님이 일하시는 표적을 읽어 내려면 연습이 필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면 그 음성이 더 또렷해진다.( 13:10-15)

하나님의 음성을 거부하고 안내를 불순종하면, 그 완고해지고 귀가 둔해진다.(3:7-15)

) 지난 일을 돌아보고 기억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절기와 축제, 기념비.

신약에서는 성만찬

꾸준한 일기 쓰기

 

 

4. 모든 만남이 전도의 기회가 되다.

) 믿음은 새롭게 보는 법이며, 믿음이 자라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리 는 많은 표적을 알아보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이 평범하고 깨진 곳이라는 데 주목하지 않으시고, 그 안에서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일하신다는 사실에 주목하셨다.

) 전도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가리켜 보이는 일.

레너드 스윗은 넛지 전도’(nudge evangelism). 전도는 이미 거기 계시는 하나님을 서 로에게 깨닫게 해 주는 일

무선수신기가 있어야 우리 주위의 신호를 잡아낸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통로 : 꿈과 속삭임, 우레, , 번개, 구름, 나귀, 덤불, 환상, 선지 , 원수, 친구.

) 우리가 제시할 것 : 부활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서 부서진 모든 것을 되찾고 회복시키기 위해 일하고 계신다 는 좋은 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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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장 애지중지하던 덧없는 보물들을 버리게 되다

두려움을 안고 사는 삶

) 안전과 안정에 대한 약속

예수님께 순종하기만 하면 나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악한 세상에서 조금도 잘못되지 않도록 지키실 거야.

그러나 안 좋은 일들은 벌어진다.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헐벗고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이 온 세계에 존재. 그래서

) 안전과 안정에 대한 약속을 재검토

마태복음6:25-34은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면그 대가로 평안과 안전을 보장하겠 다고 약속하신 것이 아니다.

 

 

2. 오늘, 하늘의 것을 귀하게 여기라

) 산상설교의 재해석

달라스 윌라드 : 마태가 신학적 목적을 위해 엮어 낸 별개의 교훈이 아니라, 예수님 당 시의 일부 종교 지도자들이 가르친 견해와 대비해서 하나님 나라의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 주는 통일된 가르침.

) 마태복음 619-24절의 하늘 보화 해석.

돈에 대한 가르침과 염려에 대한 가르침의 연관성은 새와 들풀, 꽃에 대한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데 핵심이 된다.

하늘 보화의 해석 : 유대인이 말하는 하늘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상황이 펼쳐지는 . 그래서 사람이 지금 참여할 수 있는 실재. 하늘은 여기와 저 멀리, 지금과 미래를 모두아우른다.

예수님은 오늘하늘의 것들을 귀하게 여기라고 요청.

3. 나도 하늘의 보물에 더해 땅의 보물도 갖고 싶다

) 대조

땅에 보물 쌓기와 하늘에 보물 쌓기, 탐욕스러운 사람()과 관대한 사람의 눈을 대조.

두 주인을 섬김.

노예는 한 주인의 단독적인 소유물이고, 오로지 그 주인의 뜻만 섬긴다.

 

 

4. 잘못된 것을 보물로 삼으면 염려가 온다

) 새와 들풀, 꽃에 대한 해석

예수님은 행복한 사람들로 만드는데 관심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 만들고 자 관심하신다. 건강해지고 행복해지고 안전해지는 방법을 말씀하시지 않았다.

새와 꽃의 안전이 아니라 새와 꽃의 염려 없음

) 보물 쌓기와 염려

잘못된 것을 보물로 삼으면, 불완전한 보물 때문에 염려할 수밖에 없다. 보물에 대한 불안으로 계속 염려할 것이다.

올바른 것을 보물로 삼고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면, 새와 꽃처럼 염려할 일이 없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를 보물로 삼으면 나쁜 일이 벌어져도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보물로 붙잡았던 모든 것을 놓아 보내고 하나님 나라 하나만 붙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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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 하나님께 항상 맨얼굴로 나아가게 되다

슬픔과 실망을 피하기

) 슬픔과 실망을 무시.

장례식에서의 상투적인 위로. 교회도 제대로 슬퍼하는 법을 가르치는데 소흘했다.

) ‘탄식시

불의나 악, 하나님의 부재나 무대응에 불평, 항의, 슬퍼하고 문제 제기하는 기도와 노 . 고통과 절망을 노골적으로 과장해서 토로한다.

 

2. 시편의 세 가지 유형

) 윌터 브루그만의 시편 분류

정위(orientation)의 시편, 혼미(disorientation)의 시편, 재정위(reorientation)의 시편.

) 정위의 시편

하나님이 만드신 선하고 질서 정연한 세상을 노래한다. 안정되고 편안하다.

145편이 대표적.

하나님의 법에 순종할 때 따르는 복과 하나님의 지혜가 주는 유익을 노래한다.

) 혼미의 시편

상처와 고뇌, 분노, 적개심, 슬픔이 가득한 상황. 무너져 내린 세상.

하나님은 침묵하시거나 부재, 시인은 자신을 버리셨다고 원망, 구원 간청.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노래는 어둠 속에서 끝난다.

시편88편이 탄식시

) 재정위의 시편

하나님이 어둠 속에서 그의 백성을 만나 주실 때 벌어지는 일을 노래.

고난의 한복판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시각이 갑자기 치고 들어온다.

혼미를 통하여하나님의 치유와 구원, 구출로 나아간다.

시편 30편이 대표적인 시.

3.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과정

) 안정된 정위에서 벗어나 호님의 상태로 접어듬

환경이 변할 때 일어난다. 즉 질병이나 실직, 가족 상실.

불공평한 세상, 나쁜 일. 그래서 적개심과 고뇌, 슬픔.

) ‘어지러운 혼미에서 새로운 정위로 나아감

하나님이 부르짖음을 듣고 응답하셨다는 확신. 어둠 속에서 새 생명이 솟아남.

감사와 찬양.

새로운 사람은 삶이 완전히 끝장난 것처럼 보일 때 선물로 다가온다.

 

4. 탄식, 믿음의 여정에 꼭 필요하다

) 슬픔에 대한 잘못된 생각

슬픔이나 의심, 하나님에 대한 실망 등은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생각.

탄식은 믿음의 여정에 허용되고 꼭 필요하다.

길을 잃은 사람들이 자연스러운 노하를 두려워하듯이, 정직하게 기도하지 못하고 예배 하지 않는다. 사람이 너무 정직하다는 이유로 하나님이 치신 적은 한 번도 없다.

) 소망은 어둠과 상실의 한복판에서 발견된다

혼미의 시편은 부족한 믿음의 표현이 아니라 시련을 만날 때 믿음이 반응하는 방식, 실함과 헌신의 표현이다. 하나님께 바치는 더욱 강렬한 호소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긴 역사 속에서 보여준 불평이나 항의와는 다르다. ‘하나님께호소 하는 탄식시편은 탄식을 적절한 찬양의 형식으로 여겼다.

 

5. 항의하고 울고 탄식하라, 그래도 괜찮다

) 고통과 아픔, 상실에 어떻게 반응하나?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가장.

하나님이 감당할 시험 주실 리 없다고 거듭 우기면서 만사형통의 환상을 붙잡음.

포르노나 마약, 불륜과 같은 사회가 제시하는 탈출구로 기분전환, 도피.

) 시편이 제시하는 다른 방법

새로운 삶은 도피가 아니라 수렁의 밑바닥에서 찾게 된다. 그래서 저항하고 슬퍼하고 불평하고 간청하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예수님은 어둠과 혼미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뜻을 정확하게 말씀하지 않으시지만, 세 가 지는 확실하게 말씀하셨다. 하나님의 온전한 선하심과 악의 더없는 악함, 악에서 선을 끌어내시는 하나님의 더없는 열심

) 애도하는 구체적인 방법 제시

유대인의 쉬바(shivah, ‘일곱’, ‘7’이라는 뜻) : 일주일의 애도 기간에 조문객만 받는다. 조문객은 음식을 가져와 침묵하며 유족들과 먹는다. 유족이 말을 걸면 대답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 가만히 있는다.

다운증후군의 셋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 속상해하는 저자를 불편해 하는 이들, 이런 어 려움은 다른 이들과 비교해서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떻게 이럴 수가!” 라며 함께 울어준 친구가 제일 큰 위로를 주었다.

) 어둠과 악이 실재하니 슬퍼해야 마땅하다

 

 

5장 세속의 가치에 맞서 세상을 해방시키다

다른 사람의 평가에 따라 움직이다

) 어린 시절 나만의 세상에 빠져 살다가 다른 이의 거절로 타인의 평가가 있음을 알다.

) 압력이 세지는 타인의 평가

어른이 되면서 추구하는 이상이 달라졌을 뿐 순응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은 여전히 강력하다. 중산층의 안락과 안전, 편리가 삶의 중심이 되었고, 자식의 성공이 가장 중요 해졌다.

끊임없이 평가하고 순위 매기기.

2. 인간의 완전함에 집착하는 헬레니즘

) 헬레니즘의 전파

알렉산더 대왕은 헬레니즘 문화(그리스 문화) 전파를 제일 목적.

그리스 사상의 중심은 인간의 완전함.

인간의 가치는 업적과 성취와 이어짐. 인간 삶의 가치는 아름다움과 지력, 군사적, , 정치적 업적에 따라 측정되었다.

) 헬레니즘의 그림자

육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서커스, 문화의 주변부로 밀려남.

영아 유기 : 건강한 아기가 신의 선물이라면 기형의 아기는 신의 노여움. 기형 아기를 제거할 의무가 있다. 신의 노여움이 부모나 가문 위에 머물지 않게 하려는 것.

 

3. 헬레니즘은 21세기에도 계속된다

) 현대의 헬레니즘

완벽한 신체와 성취(학문활동, 운동경기, 기타 분야에서)라는 문화적 이상.

느림, 비정상, 결함투성이, 지적 장애, 무능, 신체적 장애, 특별관리는 이 문화에 어울리 지 않는다.

그래서 기형아이를 얻지 않기 위한 임신중절, 천문학적 금액의 성형수술, 포토샵으로 만들어낸 이미지 등

 

4. 교회여, 이제 치장을 멈추라

) 변하는 사회적 이미지들

완벽함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은 엄청나다. 사회에서 인기 있는 이미지는 변한다.

20세기 초 우생학으로 장애인들은 결혼을 불허하고 불임수술, 수를 줄여 결국에는 없앤 .

) 예수님의 전복적 저항문화

사회가 정의하고 문화적으로 확립된 정상이나 완벽의 이상에 시달리고 있는 이 시대 에 교회는 예수님과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정의한 전복적 저항문화를 구현할 때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성경은 뛰어난 능력을 가치와 연결시키지 않는다.

예수님의 교회는 아름다움과 강함, 약함을 재정의하여 세상에 해방을 가져다줘야 한다. 주류 문화가 불구라고 여기는 이들을 교회가 귀하게 여기고 대접하고 사랑함으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그분의 백성 가운데 살아계심을 증언해야 한다.


데이비드 윌커슨, 지금 포기하고 싶은가?, 2장 스스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사람은 없다

 

 

  1. 예수님의 제자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16,24)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끝까지 홀로지지 못하셨고(신성모독에 가깝지만),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허약해진 육신으로 무거운 십자가를 버텨 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대신 그 십자가를 지고 가야 했는데,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지고 처형 장소로 갔습니다.
  2. 예수님은 십자가를 져야 예수님의 제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시는데(14,27), 우리가 지지도 못하는 십자가를 지라고 강요하신 건가요? 예수님은 나무 십자가이고, 우리는 영적 십자가이니, 우리의 영적 십자가는 질 수 있는 건가요? 나무 십자가이든 영적 십자가이든, 모두 십자가입니다.
  3. 예수님이 자기 십자가를 지지 못하셨다는 사실이 우리에게는 큰 위안(위로)가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끝까지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없음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고통과 부담, 무기력을 알고 계십니다. 누군가가 대신 십자가를 져야 한다는 것도 알고 계십니다.
  4. 예수님은 자기 힘으로 계속 옮기고자 하는 유혹을 이기셨습니다.(신적이고 초자연적인 힘으로, 괴력으로 옮기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셔서 십자가를 솜털 같이 가볍게 만들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하심과 계획 실행으로 시몬이 지게 하셨습니다. 구속 계획에서 예수님의 역할을 감당할 준비를 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 자신을 포기하게 만든다
  5. 하나님은 자기의 자녀들이 그리스도를 따를 때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질 수 없음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교훈하시려고(알게 하시려고, 15,5) 의도적으로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하시면서 우리 힘이 고갈되어 포기할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로 몰아가십니다. 십자가는 우리를 절망하게 하고 모든 인간적인 노력을 포기하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6. 예수님은 약하심으로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고후13,4) 우리의 오만이 십자가에 못 박힐 때, 우리 무기력함을 절감하고 자신을 포기할 때, 우리가 약할 때 오히려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강해집니다. 바울은 자기 십자가를 자랑하며, 그 십자가 때문에 철저히 연약해진 것을 기뻐합니다.(고후12,9-10)
  7. 당신의 십자가, 즉 당신을 짓누르고 무너뜨리려 하는 무거운 짐과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이루지 못한 목표나 질병, 고독, 이혼, 영적 오만함 등. 저자는 충분히 노력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에 끊임없이 시달립니다. 열심을 다하지 못한 것 같기 때문에 가치 없고 쓸모없는 존재라고 생각이 들어 괴롭습니다. 조바심 때문에 편하게 쉬지도 못하고, 게으르고 나태한 스스로를 정죄합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말고 매일, 십자가가 나를 굴복시킬 때까지 십자가를 지라고 요구하십니다. 절망하여 주님 앞에 엎드려 순종하는 제자가 되기를 결단합니다. 저의 짐을 받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면 주님이 내 짐을 지고 가겠노라 속삭여 주십니다. 영적 오만함도 십자가일 수 있는데, 팽팽하던 영적 오만함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게 됩니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감정
  8.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이룬 듯한 만족감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을 만나 영적 대각성을 체험하고 온 세상에 전했지만, 그 과정에서 자기만족에 빠져 나태해지고 맙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섰다고 생각할 때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은 경건한 무릎을 꿇게 하지만, 십자가는 엎드려 주님께 굴복하게 만듭니다.

    자기를 부인하는 법을 가르쳐 주는 십자가
  9. 우리는 부인하는 법을 배울 때까지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 삶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끊임없이 방해하는 것이 자기인데, 그래서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9,23) 물질이나 불의한 일을 거부하거나 자기 수양을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인 문제인 우리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십자가를 질 능력이 없음을 인정하라는 뜻이며, 인간적인 노력으로 거룩한 제자가 되리리는 생각 자체를 거부하라는 것입니다.
  10. 자기 부정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자칭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 담배를 일절 거부하고, 남을 욕하거나 음탕한 눈빛으로 이성을 바라보지 않으면서 훌륭한 경건생활을 하며, 자부심도 강합니다. 얼핏 보면 말씀대로 살아가는 듯하지만, 이들은 결코 자아를 부인한 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선한 행위나 깨끗한 습관이 선한 감정을 낳을 수 있으나 우리를 구원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은 결코 십자가를 강요하시지 않는다
  11.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시지만, ‘내가 대신 십자가를 져줄 수 있도록 고개를 숙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군대는 강제 징집이 아니라 지원병 제도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모두 십자가를 지는 건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신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많은 신자들이 십자가의 길을 거부하고 살아갑니다.
  12. 고난과 고통이 최후 승리와 성숙이라는 유익한 결과로 이끌어 줍니다. 현재 상처를 받고 있다면 치유의 과정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우리 짐을 대신 짊어질 시몬이 등장할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13. 시련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정죄하고 자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징표입니다. 그분의 뜻에 복종하고 기꺼이 십자가를 지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가 직접 운영하시는 제자학교의 학생입니다. 우리가 약해짐으로 우리 안에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십니다. 예수님께 시몬이 나타났듯이, 우리에게는 친히 예수께서 나타나십니다.(4,9-10)

[데이비드 월커슨, 지금 포기하고 싶은가?, 10장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1. 대통령이나 중요한 리더가 중요한 때에 정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방향을 잃었습니다라고 말한다면 당황을 넘어 조롱과 비난을 퍼부을 것입니다. 세 국가의 연합군이 유다를 포위하고 있을 때 여호사밧 왕은 전쟁에 필요한 작전 수립과 계획, 행동 강령, 각종 조치들 없이, 백성들 앞에 서서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20,12)라고 자신의 마음을 쏟아놓습니다. 그들은 비겁하고 어리석어 보입니다만 가만히 서서 혼란스러운 심정을 인정하고 주님께 운명을 맡기기로 결심하면서 주님께 나아가 도움을 구합니다.
  2.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어려움에 빠지면, “주님, 주님을 사랑하지만 무엇을 할지는 제가 다 알고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어려움의 공포 속에서 가시적인 행동이 필요하다고 느껴서 서둘러 조취를 취하려고 합니다.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증은 우리 모두 가지고 있다
  3. 이혼한 한 여성이 아빠와 헤어진 어린 아들이 심리적 불안 증세를 보이자 친구의 조언과 자녀 양육에 대한 책의 내용에 따라 해결책을 찾습니다. 일이 더 심각해지기 전에 어떻게 해서든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마음이 초조합니다.
  4. 저자는 이 여인에게 주님께 맡기고 도움을 구하라는 성경적 방법을 소개합니다.
  5. 한 부부는 혼란에 빠져 자포자기 직전입니다. 율법주의와 은사주의 운동에서 혼란을 겪었고, 순종하지 못한 온갖 일들과 불완전한 자신들의 모습 때문에 패배감에 시달렸습니다. 최후 심판에 대한 성경 말씀을 읽고는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정결함과 평안을 구하며 기도하고 반성하지만 늘 불안과 두려움에 쫓깁니다. 대답으로 말하는 여러 성경구절은 혼란을 가중할 뿐입니다.
  6. 저자는 먼저 자신의 혼란을 인정하고, 도움을 구하려고 설교자와 선생들을 찾아다니지 말며, 직접 주님 앞으로 나아가라고 조언합니다.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여호사바처럼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라고 큰 소리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7. 결혼 15년이 된 한 부부는 지난 5년 동안 힘든 시간과 관계 회복을 위해 애썼습니다. 남편의 불륜과 불륜 직전까지 간 아내는 서로 용서하려고 하지만, 순간의 분노와 적개심 때문에 관계가 틀어집니다. 부부관계에 도움을 주는 책이나 결혼 생활 전문가의 상담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8. 저자는 조언하기를, 부부 관계는 아무리 좋더라도 일정 기간 갈등을 겪게 됩니다. 기적이 없다면 회복이 불가능할 것 같은 부부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더 이상 도움 받을 곳이 없다고 깨닫는 순간, 혼란과 두려움만 남은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이 개입하십니다. 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구하는 시도를 멈추고, 절망적인 상황을 다루시는 전문가인 하나님께 자신들의 문제와 인생을 위탁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9. 불확실하고 불안한 시대와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정치지도자나 경제학자,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 등은 똑부러진 해법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목회자들은 문제를 직시해 스스로 성경 말씀에서 해답을 얻으라고 훈계하지만, 성경이 개인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해법을 언제나 제시해 주지 않습니다. 서로 모순되는 듯한 성경 구절들을 보고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10. 우리는 이런 저런 상처와 결핍을 가지고 살아가며 혼란에 빠지기도 합니다. 내면의 싸움을 싸우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알아서가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주님을 바라봅니다. 본회퍼는 그리스도인을 얼음덩어리들이 떠다니는 바다를 건너가는 사람으로 묘사했는데, 하나님이 끝까지 살펴 주신다는 믿음이 있어야 쉴 수 있고 최종 목적지까지 나갈 수 있습니다.
  11. 그리스도인의 인생이 얼음 바다보다 더 풍요롭고 즐거운 곳인데, 이스라엘 백성처럼 광야를 걸어가는 여정이며 여호사밧 왕의 싸움 같은 내면의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의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도 먹이시고 지키시고 치유하시고 끝까지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길 되신 예수님
  12.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유혹을 받고 스스로 상황을 헤쳐 나가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정말 일하고 계시는지 의심하고 증거를 찾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까지 믿음의 시험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어떤 방법도 효과가 없다면 어차피 잃을 것도 없습니다.
  13. 이제 인간적인 노력을 다 멈춰야 합니다. 엉뚱한 곳에서 도움을 구하지 말고, 은밀한 골방에서 주님과 홀로 대면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마음의 혼란을 다 아뢰고, 어디에도 도움을 구할 곳이 없다고 고백하십시오. 오직 그분만을 의지한다고 고백하십시오.(12,2:45,22:;51,1:7,7:112,7:50,10)

 

데이비드 윌커슨, 지금 포기하고 싶은가?, 12장 하나님이 당신을 그의 손바닥에 새기셨다

 

 

  1.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잊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현재 상태와 우리가 겪고 있는 일의 상황을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 걸음도 주목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광야에서 의심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이 하나님의 돌보심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부족함 때문에 고통스러워 부르짖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잠깐의 채워짐에 기뻐하다가도 다시 불평하고 주님을 신뢰하지 못합니다.(49,14) 이들은 사단의 아들도 아니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람들도 아니요, 의를 아는 자, 마음에 하나님의 율법이 있는 자로 여호와를 구하던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무시하는가
    ?
  2.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도 성령께서 위로 하신다’(인도하심과 평안, 폭풍을 피할 안식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시고 상처를 치유해 주시겠다)라는 약속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들을 진짜 믿으며, 받아들이고 있나요? 유혹에 넘어가 비극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죄책감과 두려움 속에서도, 고통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나요? 안타깝게도 고통을 당하면서도 하나님이 그 손바닥에 우리를 새기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습니다.(49,15-16)

    불신이라는 죄
  3.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위기를 당할 때마다 찾아오셔서 주님을 의지하고 확신을 가지라고 타이르십니다.(30,15) 그리고 불신앙에 대해 걱정하시고 진노하십니다.(34,1;35,3-4;10:1,6-8) ‘하나님은 우리 기도에 응답해 주시니 기도하라고 비유(18,7)로 말씀하시면서 믿음 있는 자를 찾지 못할 것이라고 염려하십니다.

    하나님을 의심하는 사람들
    (내 문제라고 생각하는 건 아닌가? 내가 받을 자격이 없다고)
  4.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부르심을 받고 선택된 자들 중에 주님을 의뢰하는 자들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하십니다. 하나님이 더 이상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다, 우리를 잊으셨다, 주님의 말씀을 믿을 수 없다고 의심합니다. 우리는 약속을 믿고 평안을 누리며 주님께 복종하는 대신, 스스로 해결책을 모색하고는 온 힘을 다 쏟습니다.
  5. 일 년 내내 남편이 돌아오기를 기도했지만 오히려 다른 여자와 눈이 맞아버려서 화가 났다는 이혼녀는 진창 마시고 아무 남자와 어울리면서 주님께 자신이 화가 났다는 걸 보여 드리려고 합니다. 자기 방식대로, 자기가 정해놓은 시간에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고 하나님께 화풀이합니다. 남편이 돌아온다 해도 두 사람의 관계는 뒤틀릴 게 뻔합니다. 남편을 돌려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외로움을 해결하겠다는 것에만 관심을 쏟으며, 예수님을 더 깊이 알고 싶거나 예수님의 성품을 닮거나 거룩한 삶에 대한 열망이 없습니다.
  6. 오랫동안 기도했으나 포기할 지경에 이르거나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자포자기하거나 믿음 있는 배우자를 달라고 기도하지만,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면 하나님의 약속을 실제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외로움을 TV나 가십거리의 잡지, 수다로 채웁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은 언제나 인간관계의 불안정으로 표출됩니다.
  7. 영적으로 무감각해진 믿음을 깨워야 하는데, 믿음으로 기도하며 주님의 약속을 잠잠히 신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내면의 성숙을 키우며, 자신의 미래를 주님의 보호하심에 맡겨야 합니다. 은밀한 골방으로 돌아가고, 어린아이 같은 단순한 신앙을 회복하고, 예수님을 더욱 갈망하고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
    , 제가 다 망쳐 버리지 않게 도와주세요
  8. 뜨겁게 애통하며 기도하고, 주님을 사모하며 열심히 찾습니다. 하지만 몇 주 지나면 애통하는 마음은 사라지고 두려움이 되살아나고, 갈급하던 마음도 미지근하게 식어버립니다. ‘나는 너무 약해서 쉽게 죄의 유혹에 넘어가는 존재이고 미련한 짓을 해서 스스로 인생을 망가뜨릴 수 있다는 두려움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괴롭히는 분이 아니다
  9.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때, 상처가 해결되지 않을 때, 고통스러운 일이 계속될 때, 바로 이 순간 하나님은 극진한 사랑을 드러내십니다. 사랑의 징계는 우리의 완악함과 교만을 제거하시는 사랑의 채찍질(12,6)이고, 하나님이 메시지를 전하는 수단입니다.
  10. 우리 믿음에 자신만만해 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보다 자신의 기도 능력을 더 의지하고, 책 읽듯 하나님을 분석, 이해하기를 원하며, 예상치 못한 일 때문에 놀라거나 당혹스러운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개념에 벗어나는 일이 벌어지면 하나님이 그러실 리 없지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기 바빠서,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일하신다는 사실을 잊어버립니다.
  11. 기도와 믿음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나쁜(짖궂은) 심술쟁이가 아니십니다. 인간이 풀어야 할 수수께끼를 잔뜩 준비해 놓고 지혜로운 자만이 상을 탈 수 있다고 약 올리고 괴롭히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주는 램프의 요정처럼 대하면서 요구를 들어달라고 조르고 소리 지르면 하나님이 기뻐하실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12. 하나님을 오직 주시는 분으로, 우리는 오직 받는 자로 잘못 설정합니다. 기도와 믿음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게 아니라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려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 있습니다.

    기도 응답보다 더 좋은 것
  13. 약속 보다 약속을 주시는 분이 더 좋습니다. 아내가 남편의 이름으로 지위를 과시하고, 명품으로 호사를 누리고, 남편의 신용카드를 물 쓰듯 하는 이런 남편에게 받는 혜택 때문에 남편을 놓지 않으려고 한다면, 남편에게는 일체 관심이 없으면서 남편이 주는 혜택에만 눈독을 들인다면 얼마나 불행한가요?
  14. 혹시 주님의 사랑에는 무관심하면서 주님의 신용카드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조르지는 않나요?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조금도 아끼지 않으시고 넘치도록 주실 분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치 않는 것은 결코 주시지 않습니다.
  15.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으십니다. 모든 일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일하십니다. 그러니 이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작성자 forwill19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