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terary, Theological, and Historical Problems in the Gospel of Mark)
1. 논란거리가 많았던 복음서
지난 십 년간에 마가 복음 보다도 그렇게 강도가 높게 학자들의 관심을 사로잡아왔던 복음서는 없었다.
이와 관련되어진 논의들보다도 더 열 띈 논의를 벌인 적도 그 어디에도 없다.
독일에서는 마가 복음을 광범위하게 다룬 네 종류의 주석들이 한 가지 이후에 또 다른 한가지가 재빨리 이어서 출간되었다.
이들 네 주석들 사이에 서로 조화 될 수 없는 차이점들은 마가 복음 연구의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페쉬 (Rudolf Pesch)의 2권으로 구성된 기념비적인 주석을 먼저 들 수 있다.
마가를 대부분의 경우에 기록된 자료들을 사용하고 있는 “보수적인 편집자”로 간주하고 있다.
여기서 Pesch는 부분적으로는 초기 양식 비평적 접근 방법에 동조하는 입장을 취한다.
그리고 Pesch에 따르면 마가는 보수적인 편집자로서 야심적인 문학적이고 신학적인 공을 들여서 윤색을 하는 것을 피하고, 상당한 자제력을 가지고 자신의 전승들에 관대한 입장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그러므로 Pesch에게는 마가 복음은 예수의 활동과 수난을 재구성하기 위한 주요 자료이다.
Pesch의 입장과는 정반대의 입장에 서있는 급진적인 “편집 비평적인 접근”을 한 주석은 슈미탈스 (W. Schmithals)의 작품이다.
그는 오랫동안 학자들을 최면을 걸 듯이 매혹하여 왔던 자신의 선생 불트만 (R. Bultmann)의 양식 비평의 결과들을 저버리고 있다.
이와 더불어 양식 비평의 방법을 결정적이고도 철저하게 발전시킨 브레데 (W. Wrede)의 작품을 들 수 있다.
브레데는 마가를 그 자신 방식대로 작문을 하였던 한 사람의 시인이자 신학자로 보았던 입장에 반기를 들고 있다.
브레데가 보기에는, 마가는 자신의 견해에 따라 비-기독교 갈릴리 유대 종파의 영향을 받아서 전승을 최소한도롤 사용한다.
그리하여, 현저하게 신학적 윤곽을 드러내는 일종의 “예수 로망스”과 같은 어떤 것을 만들어 내었다.
여기서 마가는 기독교 초창기 역사 속으로 이야기체 예수 전승이 가진 문제점을 도입하였던 첫 번째 사람이었다.
“마가”에 대하여 말을 할 때에, 본인도 물론 반드시 스스로를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
복음서 기자는 이러한 창의적인 신학적 천재가 아니며, 그러한 역할은 일종의 기본 문서를 작성하였던 무명의 저자가 감당하고 있다. Schmithals는 “훌륭하고도 좋은” 모든 것을 바로 그 무명의 저자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
복음서 기자 자신은 메시아 비밀 개념과 다른 수많은 어처구니없는 생각들을 도입한다.
그럼으로써 이러한 유일무이하게 독특한 윤곽이 가진 품격을 대체로 악화시키고 있다.
그들의 기본적인 입장의 차이점들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두 종류의 주석들의 저자들은 물론 한 가지 점에서는 서로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다:
그들은 마가 복음에서 문학 비평의 가능성에 대하여 거의 무한정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자신감은 오늘날 신약 학계의 광범위한 영역을 다시 한번 더 주도하고 있다.
초창기 “원-마가” (Ur-Markus) 또는 현재의 마가 복음으로부터 수많은 자료들을 추출하여 내려고 했던 시도들이 난무하였던 때가 있었다.
바로 19세기에 문학적 자료들을 세분화시켰던 전성기로 여기서 우리는 거의 다시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Schmithals는 “빛과 어둠” 사이, 즉 기본 문헌과 “우둔한 바보” 마가의 부가물들 사이에 면도날 같은 구분을 만들어 내었다.
Pesch도 그 정도의 자신감을 가지고서 복음서 기자의 수많은 기록된 자료들을 추출하여 내었다.
특히 30년대 후반의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기원하였던 마가 이전의 수난 이야기체 기사를 추출하여 내고 있다.
Pesch는 바로 이 수난 기사는 막 8.27 이하만큼이나 일찍이 시작한다고 믿는다.
여기서 그는 우리가 반석과 같이 견고한 역사적 토대 위에 있다고 느끼고 있다.
세 번째 주석은 요아킴 그닐카 (Joachim Gnilka)의 작품이다.
네 번째는 조셉 에른스트 (Josepf Ernst)의 작품인다.
이들 두 저자는 각기 자신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이들 두 극단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항상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들 둘 모두의 시도들을 Ovid의 말로 묘사할 수 있을 것이다:
medio tutissimus ibis - 중간 길로 가면 가장 안전하다 (Metamorphoses 2.137).
2. 한 사람의 수집가 또는 창의적인 신학자?
(a) 편집 비평과 양식 비평
무엇보다도 미국뿐만이 아니라 프랑스와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자들의 경향을 대체적으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순수하게 편집 비평적인 접근 방식을 사용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때때로는 구조주의적 방법론으로 보완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의 편집 비평적 방식은 전승사적이며 역사적인 문제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심지어 불트만의 시대보다도 훨씬 더 급진적으로 수많은 학자들이 믿는 바이다.
지상 예수에 관한 역사적인 질문들을 묻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며 케케묵은 방법론의 징조이다.
거의 대부분 상상이 되는 바가 있다.
가장 초기의 복음서의 경우에도 요한 복음의 경우에서와 같은 견해를 취하고 있는 듯하다.
오랫동안 탁월하게 부각되었던 것과 비슷한 방향으로 논의를 이끌고 간다.
즉 오직 저자의 신학적인 “편향성” (bias) 그리고 혹은 여전히 그가 사용하였던 자료들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저자가 일종의 신학적인 논문 또는 심지어 기적들에 대한 신념, 또는 일종의 영광의 신학 (theologia gloriae)과 논쟁을 통하여 싸우려고 하는 일종의 논쟁적인 작품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역사를 이야기체로 서술하고 있다.
좀 더 정확히 말할 필요가 있다.
그는 예수의 활동을 그의 메시아 직무에로의 소명으로부터 시작하여 천사가 빈 무덤에서 제공하였던 부활 메시지까지를 기술하고 있다.
그 방식은 그때 당시에 상당히 많은 다른 양식들을 취할 수 있었던 일종의 전기 (biography)와 비교될 수 있을 정도로 무방하다.
마가 복음과 그에 뒤따르는 일련의 복음서들을 들었던 자들이 어떻게 이해하였엤는가?
단지 나사렛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자 독특한 메시아의 행적과 가르침에 대한 증언을 담고 있는 독특한 “전기들”로 이해하였을 뿐이다.
복음서들이 아주 새롭고도 특별한 종류의 문학적인 장르라고 생각하였던 고대 사람들은 한 사람도 없었다.
유일무이하게 독특한 것은 그 속에 기술된 인물 그리고 그의 구원 사역이었지, 그 문학적 장르가 아니었다.
이런 종류의 “전기적” 이야기체 기사는 연속적인 연대기로 연결되어 있지 않다.
- 오직 예루살렘 입성 이후에만 상세한 연대기적 연결 관계가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
하지만 “작은 단위들”로 구성되어져 있다.
그래서 이들 작은 단위들은 간략한 장면의 전환을 이루는 구절들에 의해 다함께 결합되어 있는 간략한 일화로 구성되어 있는 장면들이다.
그 사이에는 개별적인 어록 집단들이 때때로 여기 저기에 산재되어져 있다.
그런데 이러한 “전기적” 기사들은 고대 “유대”는 물론이고 “헬레니즘”의 영역 모두에서 그 병행점들을 가지고 있음이 확실하다.
하지만 본인은 바로 이러한 질문을 여기서는 더 상세하게 다룰 수가 없다.
이와 관련하여, 자료들의 수집록은 랍비 문헌들에서 일화들을 모아 둔 책 (Aboth of R. Nathan) 또는 몇몇 구약에 있는 일련의 이야기체 기사들 (삼손, 다윗, 엘리야, 엘리사 이야기들)을 회상시켜 주고 있다.
이들 고대의 전승들은 무엇을 시사하여 주는가?
마가가 신학적인 채색을 하여 자유롭게 작성한 로맨틱한 허구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전승으로부터 기원된 자료들과 더불어 작업을 하고 있다.
벨하우젠 (Julius Wellhausen)과 같은 셈족 언어권의 대중 전승에 전문가도 양식 비평의 발견 이전에 이러한 점을 명백하게 증명하였다.
마가에서 우리는 제 4 복음서에서 전형적인 “계시적 담화들”을 찾아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심지어 13장에서도 마가는 이전이 이미 존재하였던 전승을 주도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마가 복음이 초창기의 개별적인 전승들과 이렇게 결합을 이루는 것 자체는 후기의 공상적인 외경적인 증언들, 즉 야고보의 원 복음 (the Protoevangelium of James), 도마의 유이기 복음 (the Infancy Gospel of Thomas), 또는 소위 말하는 빌라도의 행전 (the so-called Acts of Pilate)과는 아주 근본적으로 구별이 되게 만든다.
바로 이러한 이유로 인하여, 급진적인 편집 비평적 접근 방식은 마가를 정당하게 다룰 수 없다.
여기서 양식 비평은 여전히 중요한 소임을 감당하고 있다.
마가는 단지 어떤 새로운 것을 창안하여 내기를 원하지 않았을 뿐이다.
오히려 그에게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던 예수 전승을 적절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방식을 발견하기를 원하고 있다.
여기서 Pesch는 아주 옳았다.
문제는 단지 어떤 양식으로 마가가 전승을 가지고 있었느냐 이다.
그 양식이 문학 비평에 의해 여전히 재구성되어 질 수 있는 기록된 자료로 인가?
아니면 이미 예배를 통하여 케리그마적으로 형성되어졌던 구전 양식으로 인가?
사람들이 요즈음 들어서는 두 번째 복음, 예를 들어 막 2-4장에서 발견하기를 좋아하는 “마가 이전 수집록” (pre-Marcan collections)은 어느 방식으로든 또 다른 저자에 의해 쓰여졌던 “기록된 자료”로 소급하여 추적될 수 가 없다.
“비평적” 학문이라고 가정되어졌던 것은 증명될 수 없는 것을 여기에 단지 긍정적인 것으로 단정하고 있을 뿐이다.
마가 이후에 오랜 세월이 지난 이후에도 여전히 예수에 관한 풍부한 구전들이 있었다.
그런데, 물론 그들 중에 상당수가 하나의 의심스러운 양식을 가지고 있다.
이 사실은 일종의 수집가로서 파피아스의 열성으로 증명되었다.
뿐만이 아니라, 요 21.25에 있는 과장적인 비평적인 평가에 의하여 심지어 더 많이 증명되었다.
급진적인 편집 비평가들은 이러한 종류의 평가를 만들어 내는 것이 무엇인지를 기본적으로 알지 못하고 있다.
정반대로 그들이 마가의 기사들을 탈역사화시키려는 관심을 가지고 있다.
어떻게 편집 비평가들이 최근에 스스로 자료들의 제한할 수 없을 정도로 알레고리화시키는 경향으로 인도하고 있는지?
이러환 점을 발견하고 있다는 사실은 아주 충격적이다.
그들은 이러한 알레고리를 더 깊고 비역사적이고 상징적-교리적인 중요한 의의의 탓으로 돌려야만 한다.
다른 한편으로, 오랫동안 신약 학계를 주도하여 왔던 양식 비평적 접근 방식의 문제는 무엇인가?
두 번째 복음서 기자의 신학적이고 문학적인 능력을 오해하여 왔다.
이는 그가 이러한 단순한 비 문학적인 문체로 기록하고 있다고 본다.
종종 잇따라서 개별적인 단락들을 다 함께 실로 꿰어 놓은 것처럼 명백하게 예술성이 없이 기록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가로부터 온 것임이 논증 가능할 만큼 명백한 마가 복음의 문학적인 기본 골격은 굉장히 단순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심지어 당시의 문학적 관습에 더욱 더 강하게 뿌리를 박고 있는 첫 번째와 세 번째 복음서들의 저자들보다도 훨씬 더 많이 “수집가와 편집자”로서 이해되어져 왔다.
루돌프 불트만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 하는 정도까지 멀리 나아갔다:
“마가는 하나의 체계적인 문장 구성을 스스로 위험을 무릅쓰고 과감하게 감행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자료에 대하여 달인이라고 부르기에는 충분하지 않다.”
Tom Bennett
Kiss Me Deadly, monochromatic, dramatic, narrative, night, seascape, lovers
2020
(b) 극적인 이야기체 기사의 자료 배열
사실상 보다 최근의 탐구의 경향들은 얼마나 믿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하게 마가가 복음서를 배열하였는지를 다시 한번 더 드러내고 있다. 이는 완벽하게 새로운 통찰력은 아니다.
아돌프 율리허 (Adolf Julicher)는 비교적 양식 비평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에 있었다.
그런데, 이미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였다:
“전체의 자료 배열이 잘 고려되어져 있으며 효과적이다.”
물론 우리는 율리허의 다음과 같은 다른 평가들을 앵무새처럼 읊조릴 수는 없다 -
“이는 전반적으로 예수의 생애는 마가가 묘사하고 있는 방식대로 발전하였다”.
우리는 단지 연관되어 있는 전체로서 예수의 생애에 관하는 아는 것이 너무 적을 뿐이다.
하지만 마가는 자신의 작품을 일종의 극적인 이야기체 기사로 여러 막에 걸쳐서 구성하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가 그의 『시학』(Poetics)에서 구체화시켰던 고대 비극의 규칙들에 상응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동일한 방식으로 마가는 고대 수사학에서 자료 배열을 지배하는 규칙들을 그 속에서 재발견하기가 가능함을 증명하고 있다.
이렇게 현저하게 괄목할만한 문학적인 접근 방식은 소재들에 어울리지 않는 낮선 듯이 보일 수도 있다.
심지어 결과적으로는 복음서와 더불어 장난을 치고 있는 듯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급진적인 양식 비평에 의해서 오해되어져왔던 이 작품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 주고 있다.
바로 이러한 문학적인 접근 방식으로, 아주 분명한 문장 구성이 마가에서 발견되어져 왔다.
내적인 긴장감이 넘쳐나고 매우 일관성이 있는 작품으로 마가가 재평가 될 수 있다.
본인은 여기서 마가복음의 문단 분석을 위해 제기되었던 수많은 시도들을 다 다루고 싶은 마음은 없다.
하지만, 대체로 랑(F. G. Lang)이 제시한 제안을 따르고자 한다.
복음서 기자는 일종의 “구원사적인” “서언”(1.1-13)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서언에는 세례 요한의 등장과 예수의 세례 그리고 예수의 시험이 포함되어 있다.
이미 종말론적인 각인의 흔적을 깊이 담고 있는 세례요한은 옛 언약의 최후의 대표이다.
예수가 자신의 “메시아 직무” (messianic office)에 소명을 받음에 있어서 외적인 자극이 무엇이었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 다음에 “제 1 막” (the first act)에 해당하는 단락이 뒤따르고 있다.
여기서는 열두 제자들을 임명하기 이전에, 갈릴리에서 예수의 활동을 묘사하고 있다 (1.14-3.6).
초두에 우리는 하나의 수사적인 명제 (propositio)를 발견하게 된다.
이 명제는 1.14, 15에 나타난 예수의 선포에 대한 프로그램과 같은 요약과 비교할 만하다.
이러한 갈릴리 활동 장면은 3.6에서 하나의 극적인 결론을 맞이하고 있다:
당시 유대의 영적이고 종교적인 지도자들인 헤롯 당원들과 바리새인들이 합작하여, 일련의 논쟁적인 논의들이 있었다.
이후에 예수를 죽이려는 첫 번째 단호한 결정을 내리고 있다.
“제 2 막” (second act)은 예수 활동의 절정을 묘사하고 있다.
바로 이 2막은 군중들이 모여드는 장면 (3.7 이하)으로 시작하여, 열두 제자들의 임명, 큰 기적들에 묘사로 이어지고 있다.
여기서 비유들의 장 (제 4장)은 예수의 복음 선포에 의해서 사람들 가운데 마음이 강퍅함이 생겨나게 되었다는 징조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막 6.1-6에서 묘사된 나사렛에서의 노골적인 배척 장면은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바로 이 단락에서 마가는 아주 주도 면밀한 솜씨를 동원하여 예수의 직업과 가족에 관하여 소개한다.
그러면서, 한 사람의 전기를 쓰는데 반드시 요구되는 상세한 모든 내용들을 다 도입하고 있다.
이는 1.9에서 예수를 간략하게 소개할 때에는 우리가 제공받지 못한 정보들이다.
“제 2 막”은 하나의 절정에 도달하게 된다.
예수의 외면적인 성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 드러난다.
3.5와 닮은 방식으로 예수는 제자들을 심하게 꾸짖고 있다 (8.14-22).
자신을 제자들이 완벽하게 잘못 이해하고 있음과 사실상 그들의 마음조차 강퍅하여 졌다.
이는 제자들이 그의 권위적인 가르침 (1.22, 27)과 행동들이 가진 중요한 의의를 이해하지 못하여 왔기 때문이다.
처음 시작 할 때부터 예수의 적대자들은 백성들의 지도자들 (3.5)과 군중들뿐만이 아니다.
예수의 친척들과 이웃들, 심지어 그의 제자들조차도 그를 믿기를 거부하고 있다.
xpiatory Temple of the Holy Family: sculpture of Pontius Pilate
Pontius Pilate washing his hands, sculpture by Josep Maria Subirachs; from the facade of Antoni Gaudi's Expiatory Temple of the Holy Family, Barcelona.
이러한 총체적인 배척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나의 대표적으로 속죄하여 보하는 죽음 (a representative expiatory death)을 향하여 나아가는 예수의 메시아적인 여정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이러한 보편적인 불복종 (universal disobedience)임을 나타내고 있다.
일종의 소설에 등장하는 바와 같이 잠시 이탈하고 있는 세례 요한의 처형 (6.14-29)에 관한 보고는 열두 제자들을 파송하신 장면을 틀로 삼아서 그 균형을 잡고 있다.
이 장면을 통해서 증명하고자 하는 바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개종의 메시지가 전혀 중단되지 않고 있으다.
동시에 전체 극적인 이야기체 기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시사하여 주는 일종의 지시표 (a pointer)가 있다.
기적 이야기들 또한 하나의 절정을 향하여 분명히 움직여 나아가고 있다.
이 기적 이야기들은 회당에서 벌어진 하나의 간단한 축사 사건 (1.23 이하)으로 시작한다.
그리하여, 5천명과 4천명을 이중적으로 먹이신 장면들 (막 6.35-44; 8.1-9)에서 그 절정에 도달하고 있다.
마가 복음은 “제 3 막”에서 그 이야기가 급변하는 일종의 전환점 (peripeteia)을 이뤄내고 있다.
이러한 문학적인 기교는 어느 정도까지는 베드로의 고백을 통하여 일종의 되 돌이켜 깨달음 (anagnorisis)이 시작됨, 즉 메시아 비밀의 노출 (the disclosure of the messianic secret)을 시작하고 있다.
F. G. Lang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주석하고 있다:
문체적인 측면에서, 예수에 관한 잘못된 견해들이 먼저 보고되고 있다 (28절).
다음으로 베드로가 예수의 진정한 신원을 고백하고 있다 (29절).
바로 이것은 제자들을 위한 새로운 상황을 조성하고 있다:
예수에 대하여 진정으로 알게됨으로써, 그들은 침묵하기로 선언한 바 되었다 (30절).
이러한 상황은 새로운 긴장을 조성하고 있다.
이 긴장은 오직 예수가 산헤드린 앞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정함 (14.61이하)으로써만이 해소되어진다.
더욱이 8.21에 이르기까지, 예수는 외면적인 모습으로는 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런데, 그의 능력이 넘치는 행위들과 군중들의 출현하는 장면을 통하여 생생하게 묘사되어지고 있다.
그러나 8.31 이하에서는 동일하게 뜻밖의 전환점 (peripeteia)을 맞이하고 있다:
“불행한 운명”으로의 갑작스런 전환:
모든 예술적인 규칙들에 일치하여 ... 수난 예고는 필연성 (necessity)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31절).
동시에 베드로가 이에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32절).
이러한 점에서 경악을 금치 못하는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수난의 과정에 본질적인 고유의 필연성은 “제 3 막” (the third act)의 말미인 10.45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 베드로의 고백은 일종의 되 돌이켜 깨달음 (anagnorisis)이다.
이는 10.46-52에 묘사되어져 있는 바 예루살렘에 이르는 여정의 마지막 단계 바로 이전에 소경인 거지가 도와달라고 외치는 메시아적인 아우성 (the massianic cry)을 지르는 장면과 짝을 이루고 있다.
바로 이 장면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는 무엇인가?
예수의 메시아적 권위에 대한 신비적인 지식이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동네방네로 퍼져나가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아울러 예루살렘에서 맞이하게 될 예수의 불길한 운명의 원인이 바로 이것이 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파국(lusis) 또는 대이변(katastrophe), 묶어져 있었던 매듭이 격렬하게 끊어지는 것과 같은 사건이 예루살렘에서 결국은 일어나고 있다:
이 사건은 “제 4 막” (the fourth act; 11.1-13.37)에서 직접적으로 준비되어지고 있다.
이 막에서는 예루살렘 입성과 더불어, 성전 청결 사건, 서로 다른 종교 집단들과의 논쟁들, 그리고 최종적으로 제자들을 향한 종말론적인 교훈과 지시로 꾸며져 있다.
“제 5 막이자 마지막 막” (the fifth and final act)에서는 파토스에 적절한 요소 (pathos proper)가 시작되고 있다: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예수를 죽이려는 최종적인 결의를 하고 있는 14.1과 더불어 시작하여 역설적인 방식으로 드러난다.
이 마지막 장은 십자가에 처형을 당한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방인 백부장의 고백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15.39).
십자가 위에서 죽은 예수를 무덤에 안치하고 빈무덤을 발견한 장면은 “종언” (epilogue)을 형성하고 있다 (15.40-16.8):
여기서 갈릴리 여인들은 여태까지는 완전히 무심코 무시되어왔던 무리들이다.
그런데, 이야기를 움직여 나가는 주역들이 된다.
또 십자가 처형과 무덤에서 발생하였던 사건들 (15.40-42; 16.1 이하)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빈무덤에 서있던 여인들에게 천사의 등장 장면과 더불어 행복한 결말 (happy ending)을 짓는 기적적인 변화를 미리 알려준다.
이는 유리피데스 (Euripides)의 비극 중에 Deus ex machina (그리스 연극에서 신이 갑자기 기계적으로 등장하여 부자연스럽게 결말을 짓는 장면)와 비교하려는 유혹을 거의 대부분 느낄지도 모른다.
물론 여기서 제안된 문단 구분은 유일하게 가능성이 있는 선택이 아니다.
고대 이론들은 그 자체적으로 하나의 극적인 우화 (fabula)의 형식에 일치하지 않는다.
오직 세 가지 막만을 생각하려고 할 수도 있다:
1.14-8.26; 8.27-10.52; 11.1-15.39.
역시 이러한 구분도 되 돌이켜 인식함 (anagnorisis)의 주제와 연관 관계를 가지는 전환점 (peripeteia)와 긴장의 해소 (resolution)로 구성된 매듭을 매듭짓는 결정적인 점들을 유지하고 있다.
아무튼 범위, 문장 구성, 내적인 극적인 효과라는 측면에서 볼 때 어떤 면이 돋보이는가?
마가 복음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문학적인 모방 (mimesis)의 성공적인 형식과 관련하여 확립시켰던 규칙들에 의해 일종의 굉장히 놀라운 방식으로 조명되어질 수 있는 하나의 작품으로 남아 있다.
『시학』(Poetics)에서 "위대한 작품 속에는 역시 정연한 앞뒤 질서가 있다"고 하다.
이 진술은 치밀하고도 인식이 가능하며 질서가 잘 잡혀 있고 또 용의주도한 형식을 드러내고 있는 바로 이 작품에도 적용되어질 수 있다.
F. G. Lang과 B. Standaert는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심지어 유명한 경외와 동정의 효과, 즉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비극이 대중 앞에 내어놓을 때에 반드시 자아내어야하는 효과를 복음서 기자의 목적으로서 전제하기까지 하려고 한다.
마가복음은 처음부터 예배를 위한 목적으로 창안된, 사실 본인의 견해로는 예배로부터 성장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는 원칙적으로 “문학적” 목적과 “신학적” 목적 사이에 어떠한 구분을 가정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고 볼 수 있다.
일종의 케리그마적인 이야기체 기사로서, 마가 복음은 오직 한 가지 목적만을 가지고 있다:
신앙을 불러일으키며 강화시키고자 함 - 긴장 (tension)을 고조시킨다.
분위기 고양 (exaltation)시켜서 찬미를 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깊은 감정을 자아내는 문학적인 목적들은 바로 이 목적에 종속되어져 있다.
대충 말하자면, 마가 복음의 형식은 이 복음서와 극적인 우화들 (fabula) 또는 수사적 이야기들 사이에 나타나는 유추 관계와 더불어 이렇게 위풍 당당한 방식으로 문장이 구성되어져 있다.
따라서 그 형식 자체가 저자의 기원이나 교육 또는 의도에 관한 의문의 여지가 많은 결론들을 내리도록 유도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앞으로 논의할 5.b 단락을 보라).
마가 복음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에 대한 이론에 가까이 접촉을 하고 있다.
이 모든 점들로 인하여, 마가의 작품에 있는 극적인 요소는 본질적으로 그리스 비극의 극적인 요소들과는 차이가 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죄에 대한 책임과 운명이 서로 얽혀져 있다는 점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아들의 수난과 죽음에는 정확하게 구원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은 재삼 재사 계속하여 오해되어져 왔다.
(c) 자료의 배열과 신학적 반영
거의 모든 단락과 모든 어록들은 아주 잘 고려된 위치에 배치되어져 있다.
또한 범례가 될만한 특성 (paradigmatic character)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혹자(或者)는 다음과 같이 추측을 할 수도 있다:
예수의 죽음이 가진 구원론적인 의의를 일종의 대표적으로 속죄하고 보상하는 죽음으로 본다.
하지만 이렇게 보는 것이 마가에게서는 핵심적인 중요성을 가지지 않는다.
이는 복음서 전체를 통틀어서 이에 대한 표현이 오직 두 번, 즉 10.45와 14.24에만 언급되어져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더 밀접하게 살펴본다면, 두 구절 모두 다 문맥에 의해서 강조되어져 있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a) 10.45는 예루살렘 입성 이전에 주어진 제자들에 대한 총체적인 교육적 지침들에 하나의 결말을 짓고 있는 구절이다.
이 교훈들은 8.3l부터 시작된 수난을 받는 인자의 영향을 아주 가까이 받고 있다;
(b) 14.24는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흘리는 바 언약의 피의 말씀이다.
최후의 만찬 장면이 그 절정에 이르렀음을 현저하게 드러내고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두 본문들이 복음서 전체의 폭넓은 문맥에서 차지하는 위치는 얼마나 그러한 판단이 정당하지 못함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가 죄를 용서하신다는 사실은 오직 한번만 분명하게 표현되어져 있다 (2.5-10).
하지만 마가의 예수 이해에 특별히 중요하다.
바로 여기에 왜 마가가 산헤드린의 사형 선고를 예수에게 언도하도록 만드는 고소 내용을 궁리하고 있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과의 첫 번째 논쟁의 주제를 이것으로 삼고 있는지 그 진정한 이유가 있다:
“그가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다”.
예수의 적대자들과의 제일 첫 번째 분쟁도 그렇거니와 최후의 분쟁도 바로 이 평결에 일치하고 있다 (2.7; 14.64).
오직 한번만 말하고 있는 예수 활동의 초기에 있었던 바로 이 행위가 가진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가?
전체 이야기의 결말을 향하여 가파르게 진행되는 도중에 언급되어 있는 이들 두 가지 속량에 관한 진술들과 관련지어서 이해할 수 있다.
단 그 조건으로, 탐구하여 보아야 할 점이 있다.
예수가 자신의 활동과 죽음을 통하여 직면하고 있는 바, 죄가 가진 저항할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인 힘을 마가가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가?
죄가 가진 이러한 힘은 예수의 적대자들이나 대중 백성뿐만이 아니라, 제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대변인인 베드로도 이에 포함된다.
심지어 “두려움과 떨림으로” 빈 무덤에서 달려갔지만 천사의 말을 듣지 않은 여인들 (16.8)에게 조차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여기서 그 죄는 명백하게 드러나도록 끝까지 지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이미 예수의 보상을 통한 속죄 죽음에 의해 극복되었다.
An illumination from a Byzantine manuscript depicting Jesus Christ.
(Photo by Werner Forman/Universal Images Group/Getty Images)
마가는 단지 우연한 기회를 따라 사건들과 전승들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그가 선별하고 기술하고 있는 바는 더 깊은 중요한 의의를 가지고 있다.
제자들을 부르심으로부터 시작하여 게세마네 동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유대인의 왕으로서 예수의 십자가 처형 장면에 이르기까지 일종의 “전형적인 이상”으로서 의의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가의 총괄적인 계획에 나타나는 이러한 엄격함은 역사성이 전혀 필요가 없도록 만들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으로 하여금 믿음을 주도면밀하게 따져서 숙고하도록 만드는 경험을 겪게 하였던 바, 역사를 보고하고 있을 뿐이다.
7.3 이하; 13.10, 14b; 14.9, 등과 같이 눈에 뻔히 보이도록 부수적인 의견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이들 표현들조차도 신학적 숙고의 결과로서 의미심장하다.
마가는 자신만의 고유한 기독론이나 구원론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예수에 대한 새로운 이야기체 기사들과 말씀들을 창안하여내지 않는다.
하지만 그는 그 어떤 것도 우연이라고는 말하기 어려운 소재들을 선별하고 질서 정연하게 정돈한다.
아주 주도면밀한 과정들을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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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비평적 접근 방식은 공관복음서들 - 특히 여기서는 다시 한번 더 마가복음에 국한하여 -을 아무런 의식도 없이 성장하고 있는 일종의 대중적으로 “이류에 속한 문학” 작품으로 여겨왔다.
그러나 이와 완벽하게 대조적으로, 스탠다어트 (Standaert)는 상당히 많은 점에서 아주 깜짝 놀랄만한 통찰력을 보여준다.
그는 자신의 탐구를 통하여, 바로 이 신비스러운 작품에 드러나 있는 극적으로 교묘한 착상뿐 아니라 심지어 수사적인 기교도 재발견한다.
이러한 자신의 탐구의 결과를 토대로 삼아서, 저자는 수사학과 문학에 철저한 훈련을 받았던 작자라고 추정하고 있다.
오직 자신의 간편하고 쉬운 문체만으로도 마가는 자신의 독자/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역량에 순응하고 있다.
에스더, 수산나, 유디트, 다윗과 엘리야의 이야기체 기사들, 그리고 특히 요셉 이야기와 같이 유대 구약 전승에서 유래한 전기적인 성격을 띈 이야기체 기사들을 분석한다.
하지만 그 분석 결과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밝히 선을 보여 주었던 정리 정돈이 잘 된 우화 (fabula)의 법칙들이 그레코-로망 세계의 외부에서도 타당성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야기체 기사이라는 예술은 그 역사가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더 오래되었다.
그리고 헬레니즘 사회의 수사학이라는 측면에서 학문적인 교육을 받았다고 반드시 전제할 필요는 없다.
즉 이러한 사실은 무엇을 말하는가?
문학적 훈련들이 있었다.
가르치는 내용을 수사학적으로 표현하거나, 생생하게 살아있는 어투로 이야기체 기사를 표현하게 한다.
또 정련된 담화를 할 수 있는 역량을 배양하낟.
이와 같은 문학적인 훈련들이 헬라어를 말하는 회당에서 이뤄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또한 선교적인 목적을 가지고 초창기 기독교 공동체에서 배워질 수도 있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3. 극적인 이야기를 말하는 자의 역사에의 충실성
여태까지 말하였던 바로부터 명백한 것이 있다.
학자들이 마가 복음을 극단적으로 다르게 평가하게 된 근본 이유는 다음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바로 이 작품은 적어도 현대 독자들이 보기에는 어쩌면 다른 어떠한 신약 저술들보다도 a coincidentia oppositorium, 즉 독일 신학계가 오랫동안 조화될 수 없는 대립관계로 보았던 것과 관련되어 있다:
한 편으로는 극적인 긴장과 더불어, 명백한 신학적이고도 케리그마적인 윤곽이 위대한 문학적 기교로 구체화되어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고대의 주변 환경에 관하여서는 어째서 전승과 역사에 그토록 매우 상당히 존중할만한 충실성을 보이고 있는가?
이러한 모든 것이 외견상으로 단순한 양식과 세련되지 않은 문체로 표현되어져 있다.
마가는 자신의 소재들을 다룰 때에, 말하자면 플루타크 (Plutarch))보다는 더 자유롭게 다루고 있지 않음은 확실하다.
그는 전승에서 본보기들을 선별하여 이에 형식을 부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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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에 물론 신학적인 편견 (theological bias)을 가지고 있었지만, 단지 아무런 근거도 없이 창안하여내지는 않았을 뿐이다.
만일 우리가 단순한 기본 골격들과 판에 박은 서론들을 제외한다면, 그에게는 “전승”과 “편집”을 서로 분리시키기란 매우 어렵다.
이는 고대의 대부분의 작가들과 같이 마가도 자료나 전승으로부터 소재들을 자기 자신의 스타일로 채택하고 있다.
정확하게 그렇게 할 때에, 그는 두 가지 명백하게 드러나는 조화될 수 없는 것들을 함께 결합시키고 있다.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되도록 표현하기를 원한다:
역사적이고 전기적인 설명과 평가를 하고 있는 이야기체 기사와 일종의 연설 (address)로서 구원의 선포.
심지어 마가조차도 구원은 특정한 기간에 상황 적합한 신학적 구성들을 변경하는데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참으로 하나님이 온 인류를 위하여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성취하여 오셨던 것에 달려 있다고 본다.
즉 “목수”인 나사렛 예수 (막 1.9; 6.3)가 갈릴리로부터 시작하여 골고다와 바위 무덤에 이르기까지에 일어났다.
비교적 짧은 시공간인 자신이 글을 쓰기 약 40년 이전에 일어났던 사건들에 복음이 근거하여 있다고 본다.
구원은 예수의 역사에 의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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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식은 이야기꾼으로 하여금 어쩔 수 없이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현재로부터 분리되어져 있는 것처럼 보고하도록 만들고 있다.
하지만 복음서 기자는 오직 현재에 대해서만이 너무 잘 알고 있을 뿐이다.
청중들은 마가 복음을 읽으면서, 잠시 비켜서서 생각하도록 초대를 받는다.
거리감이 있고 낮선 갈릴리에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또 기적을 행하시는 예수와 잠시 시간을 보낸도록 한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최후의 싸움에 뒤에서 참여하게 한다.
멀리 떨어져 있었던 여인들과 같이 수난에 참여하도록 요청을 받고 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아들이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에 의해 버림을 받은 체로 넘겨줌을 당할 때에, 하나님 자신이 그의 피에서 새 언약을 맺으시고 죽은 자의 부활을 통하여 이 언약에 인을 치시고 있음을 인식하도록 초청을 받고 있다.
마가는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다시 고쳐서 자기 나름대로 방식으로 기록한다.
바울은 극단적으로 함축된 형태로 오직 하나의 단일한 요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울은 자신의 신앙 고백적인 정형문들과 예수의 십자가를 그 전거틀로 삼으면서 표현하기를 추구하고 있다.
바울이 하고 있는 바를 마가도 표현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작업을 그저 단순한 하나의 신학적으로 암호를 풀고 있는 것으로 그릇되어 이해되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마가는 과거에 단번에 (once and for all)에 일어났던 바 하나님이 자신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셨던 행위를 기술하고 있다.
이는 신자들이 이에 보이고 있는 모든 반응 (all the re-action)에 선행하였던 사건이다.
롬 5.8 -“우리가 여전히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셨느니라”-
우리는 이 진술을 두 번째 복음서 전체를 위한 머리말로 삼을 수 있다.
이는 이러한 “확대된 서론 형식을 띄고 있는 수난 기사”는 애초부터 예수의 죽음을 향하여 그 방향을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오직 그 예수의 죽음만이 신자의 구원의 실제적인 토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로 십자가 죽음은 “예수가 생을 통해 영위하셨던 삶” (the lived life of Jesus)에 불가 분리적으로 본질적인 것이다.
이렇게 표현은 마가의 경우에는 특히 그렇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마가는 어록 전승 (the logia tradition)과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다.
이 전승을 마가가 아주 독특한 방식으로 알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청중들이 친숙하게 알고 있음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가가 소위 말하는 어록 자료에 수집되어져 있는 예수의 말씀들의 수집록보다는 연대적으로 후기에 기록하고 있다.
마가가 Q에서도 등장하는 개별적인 전승과 어록과 더불어 작업을 하고 있다.
이러한 곳에는 그의 개정본이 항상 보다 더 발전되어져 있고 또 후기의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되는 결과이다.
따라서 마가가 예수의 말씀들 중에서 오직 이러한 수집록이 부활 후기 기독교 공동체의 관점에서 볼 때에 부적합 것이 되어버렸다.
이 점에서, 신학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보완 (the theologically necessary complement)으로서 쓰고 있다고도 말하여도 거의 무방하다. 이는 Q가 보여주는 바와 같다.
이들 어록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케리그마 뿐만이 아니라 일종의 명백한 기독론 (an explicit Christology)이 결핍되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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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견해로 보아서, 바로 이 점은 이러한 수집록이 독창적인 원본이며 그 기록된 시기를 지시하여 주는 일종의 표시이다.
이들 수집록들 중에 수록외어 있는 기본 소재들은 예루살렘에서 활동하였던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에게로 거슬러 추적할 수 있다.
아마도 바울이 이미 이들 자료들을 알고 있었다고 가정 할 수 있다.
수난 기사들을 제외하고, 마가는 이들 어록 자료에서 결핍되어져 있는 것들을 주도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기적 이야기들, 논쟁들, 특정하게 제자들을 향하여 주어진 가르침들.
마가가 병합하고 있는 말씀 전승은 마태와 누가가 사용하였던 소위 말하는 Q 자료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므로 마가는 우리가 마태와 누가에서 발견하고 있는 양식으로 된 Q을 알고 있었다고 간단히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마가는 비록 이 Q를 자신의 복음서에 비교적 극소수만을 포함하고 있을 뿐이지만, 예수의 말씀 전승에 친숙하였다.
마가는 우리가 말씀 전승에서 놓치고 있는 수난과 기독론의 케리그마를 자신의 “예수 이야기”에 핵심에 놓아두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것을 “주의 [계시의] 말씀”이 아니라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로 기술할 수 있었다.
(단락 6.a와 6.c를 보라).
Here Jesus is depicted in a vibrant sixth-century C.E. mosaic from the Basilica of Sant’Apollinare Nuovo in Ravenna, Italy.
하지만 동시에 마가가 자신의 복음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자신의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거나, 역사적 정보의 욕구를 만족시키려하거나, 도덕적으로 훈계하여 개선시키려는 의도가 없다.
물론 고대인들의 표준에 맞추어 볼 때에, 마가가 이 모든 점들을 다 수행하고 있다.
더욱이 마가는 자신이 예수의 기적들을 위한 과장된 욕구에 대응하기를 원하는 것 그 이상이다.
그 기적들을 서술함으로써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사건들에 대한 경건한 요구를 만족시키기를 원하고 있다.
예수의 행동들은 아주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예수의 행동들은 그 자신이 악마들과 한 편을 이루고 있다는, 즉 일종의 요술쟁이이라는 비난을 불러 일으킬만하다.
또한 제자들에게조차도 영구적이고 지속적인 믿음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예수의 역동성 (dynamic)을 배경으로 하여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마음의 강퍅함이 모든 이들에게 예외가 없이 영향을 미쳤다는 점은 훨씬 전율시키기에 충분한 듯하다.
복음서 기자에게는 기적들은 예수의 메시아적 권세 (?ξουσ?α)를 지적하고 있는 일종의 참조 사항이다.
동시에, 선지자들의 약속들이 종말론적으로 성취고 있음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들 마가 기적들을 통하여 나타나고자 하는 두 가지 모두 다 닭아 빠진 유행어인 '신적 인간'의 관점에서 이해 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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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자신의 공동체의 현재 경험에 관련되어 있는 것임과 그의 청중들 또는 독자들을 향한 직접적인 요청이다.
제자들이 겪은 바 전율스러운 본보기는 동시에 일종의 경고이자, 자기 부인과 제자도로의 초청장이다.
어떠한 독자라도 피할 수 없는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전반적으로는 복음서들, 그리고 특정하게는 마가 복음의 해석에 있어서 치명적인 오류가 있다.
이들 복음서들이 복음 선포와 역사적 서술 사이에 결단을 하여야만 하였고는 학자들의 생각이다.
또한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양자 택일 (an either-or)만이 있을 수 있다고 학자들이 생각을 하였다는 점에 있다.
사실상 복음서 기자의 “신학적” 공헌은 마가가 이들 두 가지 복음 선포와 역사적 서술을 모두 다 결합하고 있다는 사실에 달려 있다:
한편으로 마가는 이야기를 서술함으로써 복음을 전파하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역사를 쓰고 있으며 또 그렇게 할 때에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어느 정도까지는 마가의 작품을 뚜렷이 구별되도록 만들고 있다.
바로 그 조화될 수 없는 대립 (coincidentia oppositorium)이 내포하고 있는 신학적인 (theological) 측면이다.
바로 이 점에 있어서, 마가는 자신보다 앞에서 모순적인 사실을 조화시키려고 고분 분투하였던 구약 역사 기록을 자신의 모델로 삼고 있다.
구약 역사 기록에서는 이야기 서술과 복음 선포가 종종 눈에 드러나도록 현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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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가 염두에 두고 복음서를 쓰고 있는 공동체의 현재가 어떠한지를 중재하여 알려주는 참조 자료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마가 13장, 즉 소위 말하는 공관복음 묵시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마가에게는 이 공관복음 묵시는 유언, 즉 예수의 종말론적인 고별 강화이다.
바로 앞에서 이야기의 서술과 복음 선포를 조화시키는 방식을 취한다.
이 묵시록은 일종의 극단적으로 단축시켜 놓은 “축소판 교회사”와 같은 어떤 것을 포함하고 있다.
바로 묵시록이 표현하고 있는 교회사는 저자가 복음서를 쓰고 있는 시간으로 우리를 이끌고 간다.
즉 아마도 예루살렘 멸망 바로 직전의 시기이다.
예수의 마지막 말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감람산에서 성전을 바라보면서 앉아서 (13.3), 예수의 주변에 둘러 서있는 네 명의 제자들 에게 하신 말씀이다.
“내가 너희 ...내가 너희에게 한 이 말이 바로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 ‘깨어 있어라’” (13.37; 참조. 14.38).
이 말씀은 복음서에서 제자들을 향하여 하신 예수의 말씀이다.
복음서 기자의 시대에는 인자의 파루시아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핍박을 받고 위협을 당하는 교회를 향한 말씀이 되었다.
4. 메시아 비밀 (the Messianic Secret)
윌리암 브레데 (William Wrede)를 따라서 학자들은 “메시아 비밀”을 두 번째 복음서를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로서 기술하기를 즐겨왔다. 이러한 관점이 어느 정도까지는 타당성이 있지만, 너무 일방적으로 주장되어서는 안될 필요가 반드시 있다.
따라서 메시아 비밀 사상에 전적으로 얽매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메시아적인 권위의 문제와 예수의 사역이 전체 작품을 하나로 묶어주는 통일성을 제공하고 있다.
숨겨짐 (hiddenness)의 주제는 이 통일성에 없어서는 안될 본질적인 부분이라고 조금 에누리를 하여 말하여질 필요가 없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메시아 비밀 사상은 어쩔 수 없는 확고부동한 자료에 인위적으로 몰래 써넣은 것이 아니다.
기술된 사건의 가장 본질적인 특성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더욱이 전체적으로 볼 때에 이 사상은 복합성을 띄고 있다.
이 사상은 오랫동안 가정하여 왔던 것보다는 훨씬 더 그 전승의 층이 깊으며 훨씬 더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예수의 십자가로의 길,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그가 당하는 속죄와 보상을 하는 죽음, 그리고 제자들이 십자가를 짊어짐도 마가에게는 사람들 앞에서 예수가 메시아라는 주장을 의도적으로 감추고 있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오직 수난의 장면에서만 마가의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로서 가지고 있는 신분을 온전한 의미로 밝히 드러내고 있다.
메시아적인 신분과 대표적인 수난은 서로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함께 결합되어져 있는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보다 최근에는 소위 말하는 메시아 비밀 사상의 통일성과 범위 그리고 중요한 의의에 대한 탐구가 오랫동안 이따금씩 수행되어져 왔다.
이는 이 문제에 얽혀있는 복잡한 문제들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엄격한 의미에서 메시아 비밀 사상은 예수가 말씀하신 오직 두 가지 직접적인 진술들에만 적용이 된다:
첫 번째 명령은 베드로 신앙 고백 (8.30) 이후와 첫 번째 수난 예고 이전에 제자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하셨다.
두 번째 명령은 예수와 함께 변화산에서 있었던 제자들에게 그들이 내려 올 때이다 (9.9).
“인자가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일어날 때까지는 아무에게도 그들이 본 것을 말하지 말라.”
마가에게는 이들 두 가지 메시아 비밀 사상을 진술하고 있는 표현들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메시아와 하나님의 아들은 “그의 거룩한 천사들과 더불어 그의 아버지의 영광” (8.38) 중에 즉각적으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십자가의 길을 복종하며 한발자국, 한발자국 걸어가고 있다는 참으로 엄청난 사실의 당연한 귀결이다.
이러한 사상은 들도 보도 못한 개념이거니와 또한 철두철미하게 감정을 상하게 하는 개념이다.
당시의 유대교는 일반적으로 고대 유대교와 마찬가지이다.
제자들조차도 이해하지 못하였는데, 이는 전통적으로 메시아가 구원을 가져오신다는 기대치와는 모순되었기 때문이다.
9.31 이후로부터는 “메시아 비밀”의 주제가 적어도 외면상으로는 전면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
본질적으로는 소경 바디매오가 여리고에서 예수를 “다윗의 아들”로 고백하는 때 (10.48)부터 이미 그 효력을 상실하여 버렸다.
바로 이 시간에 제자들은 대중적인 고백을 하는 것을 금지시키기를 원하다.
반면에, 예수는 긍정적으로 바디매오의 아우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상황이 이제 바뀌었다.
권위의 문제 (11.28)는 백성들의 지도자들이 예수의 주장이 무엇인지를 알도록 만들었다.
그 점을 미끼로 사용하여 예수를 공중 앞에서 책을 잡을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였음을 이미 시사하고 있다.
대제사장의 심문은 더 이상 놀라울 것이 전혀 없었다.
그의 질문은 오랫동안 막연하게 구상하고 있었던 바를 말로서 옮기고 있을 뿐이다.
또한 성전을 파괴하고 다시 짓는 것에 관한 말씀 (14.58)과 연관되어있는 고소를 하도록 그 동기를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오히려 놀라운 점은 예수가 자신의 유일무이하게 독특한 신분을 분명하고도 전혀 압도당하지 않고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룟 유다가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를 폭로하게 만들 정도까지, 메시아 비밀의 폭로를 둘러싸고 엮어 맞추었다?
이러한 주장을 하는 슈바이쳐의 폭로의 로맨스는 본문이 전혀 지지를 하여주지 않는다.
마가는 그런 방식으로 신비스러운 방식으로는 전체 문제들을 표현하지 않는다.
사실상 이미 막 9.11 이후부터는 제자들에게 조용히 하라는 어떠한 지시가 더 이상 없다.
A 9th-century Gospel of Mark, from Codex Boreelianus.
브레데가 구상하였던 소위 말하는 메시아 비밀 사상의 다른 구성 요소들은 실제적인 통일성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러한 요소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엄격하게 구체화될 수 없다.
더 이상 어떠한 의문의 여지가 많은 전반적인 이론을 요청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그들 자체적인 표현으로 설명되어져야만 한다.
예수가 마귀들이 초자연적인 지식을 통하여 질러대는 어떠한 찬사도 거부하였음을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예수는 그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이 점에서 우리는 야고보서 2.19를 그 참조 사항으로 언급할 수 있다:
“귀신들도 믿고 두려워 떠느니라”.
하지만 이들 귀신들을 요술부려서 활동하도록 내어놓는다?
더 강한 자 (the Stronger One)를 부르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표현된 그들의 특별한 지식은 이러한 사탄과의 전쟁 상황에서는 전혀 적절하지 않다.
그러므로 그들은 반드시 조용히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악의 세력들은 예수가 신적인 아들의 신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합법적인 증언이 되어질 수가 없다.
(막 1.24 이하; 1.34; 3.11 이하; 5.7).
한편으로 예수의 신분을 아직까지는 알고 있지 못하는 백성들과 제자들이 있다.
다른 한편으로 처음부터 예수를 메시아적 정복자로서 자신들을 파멸시키는 활동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던 보이지 않는 영들의 세계가 있다 .
마가는 이들 주제들을 통하여 이들 사이에는 뚜렷이 대조된 모습이 있음을 증명하려고 사용하기를 원하고 있다.
치유를 받은 이후에 조용히 하고 있으라는 명령들은 시종 일관 철저하게 천명되지 않는다.
이 명령들은 일종의 기적을 행하는 자로서 예수가 감춰진 상태로 지내시기를 원하고 있이 분명함을 의미한다.
예수는 대중들의 압력을 담담하게 물리치신다.
이러한 모습은 종종 유대 지역에서도 대면할 수 있었던 헬라와 로마 시대의 대중적 기적 수행자들과 요술쟁이들과는 현저하게 대조 된다.
귀신을 쫓아내시고 조용히 하라는 명령이 있다.
그리고 자신들이 고침을 받은 것을 크게 소리 질러 선포하지 말라고 하시는 금지 명령이 있다.
이들 두 가지 모두 다 예수 자신의 행위에서 유래하였던 것으로 추적이 가능하다.
레이제넨은 예수가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만들기 위하여 수수께끼같이 말씀하신다는 소위 말하는 비유 이론 (4.10 이하)를 주장한다.
그 주장조차도 메시아 비밀 사상과 그 직접적인 연결관계가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는 훨씬 더 적다.
이 점은 후에 공동체의 심기를 건드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 사실을 설명하여 준다.
예수의 가르침과 기적들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그를 진정한 믿음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하고 있는가?
그들은 “수수께끼들” 속에 숨어있는 예수의 선포를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를 믿을 수가 없었다.
마음이 강퍅하여짐과 제자들이 예수가 수난으로 가는 길을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도 또한 메시아 비밀에 해당되는 사항들과 분리되어질 수 있다:
이들 두 주제는 복음서 기자가 인간에 대하여 환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과 상응한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체 기사에서 특별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고 바울에게도 친숙하였던 어떤 것을 발표하고 있다.
이에 대한 하나의 주석으로서 롬 3.22-24를 언급할 수 있다:
“이는 차별이 전혀 없느니라” (마가에서는 제자들과 사람들),
“이는 그들 모두가 죄를 범하여서 하나님의 영광에는 도달하지 못하더니, 아무런 공덕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느니라.”
이에 대해 이미 말하였던 바와 같다.
요즈음에 이뤄지는 마가에 대한 주해를 염두에 둘 때에, 이것을 종종 충분하게 반복할 수가 없다.
제자들에게 주어진 교훈적 지시가 '인자' 즉 야웨의 종이 감당하시는 많은 이들을 위한 섬김에 관한 어록 (10.45)과 더불어 마무리된다.
최후의 만찬의 핵심에 흘리는 바 언약의 피에 관한 말씀들 (14.25)을 우리가 가지고 있다.
이 점은 전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마가의 구원론 (soteriology)은 이들 두 가지 말씀들에 근거를 두고 있다.
비록 자기 부인과 십자가의 제자도는 바로 이러한 표지 (this sign) 아래서만 오직 가능하다:
어록 8.37 - “무엇을 위하여 한 사람이 자신의 생명을 위한 대속물 (ransom)로 주겠느냐?”
이 이록은 이에 관련되어진 전체 말씀들을 마무리하고 있는데, 사실상 그리스도의 희생제사의 필연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는 10.27이 제자들이 겁에 질려서 한 질문, “그러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겠느뇨?”에 대한 답을 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은 불가능하여도, 하나님은 불가능하지 않다.”
불트만이 채택하였던 바, 브레데의 다음과 같이 유명한 이론을 그 원래 형태로 여전히 주창할 사람은 이제 거의 없다:
마가는 메시아 비밀을 너무 많이 강조하였다.
이는 복음서 기자 (또는 그가 더불어 작업을 하고 있는 전승)는 사실상 예수가 메시아적인 자의식 (messianic self-awareness)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추기를 원하였다.
“메시아 비밀”은 시도되었던 바 역사적 재구성에 의해서 더 이상 설명되어질 수가 없다.
특정한 마가 신학, 지배적으로 나타나는 그의 십자가 신학 (theologia crucis)에 대한 하나의 표현으로서 이해되고 있다.
이제는 통상적이다.
하지만 마가의 수난 신학은 이러한 이차적인 구성 요소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와는 전혀 별개로, 또 다른 질문이 있다:
메시아 비밀이란 편리한 공식으로 결합되어져 있는 아주 (very) 서로 다른 구성요소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들 요소들도 복음서 기자의 편집적인 작업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는가?
이들 구성요소들은 너무 복잡하며, 사실상 이러한 질문을 제기하기에는 너무나 공통점이 전혀 없어서 비교하기가 곤란하다.
이 모든 것들은 또한 “예수의 신비와 그의 수난의 길”이라는 포괄적인 표현 (umbrella phrase) 아래로 또한 포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바로 이 “그리스도의 신비”는 마가가 전체 전승에 강제로 부과시킨 이차적인 이론이 아니다.
이의 진정한 근거는 지상 예수 자신의 신비에 놓여 있다.
본인의 견해로는, 메시아 비밀이란 현상은 브레데의 환원적이고 공통점이 전혀 없는 이론들과는 정반대이다.
마가가 더불어 작업을 하였던 전승이라는 측면에서 가장 잘 설명이 되어진다.
이 전승은 예수의 메시아적인 주장을 한층 더 잘 알고 있었으므로 이에 대한 실상에 의문을 품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는 그렇지 않으면 달리, 그의 수난에 이르기까지의 전반적인 활동을 제대로 파악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그리고 부활절 이후 초창기 기독론의 발전을 언급하지 않는 그 내용상의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
고대 이스라엘 종교에서 도저히 비견할 바가 전혀 없는다.
전승사에서 메시아의 신분이 한 의로운 사람의 부활, 또는 죽음에서 살아 난 선지자와 어떤 방식으로든 연관 관계가 있다는 유대교 전승은 어떤 것이라도 시사하는 바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예수의 메시아 신분을 단지 부활 현현이라는 사실로부터 파생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죽은 자가 변형된 모습으로 등장하였다는 사실과 메시아 신분, 이들 두 가지는 완벽하게 서로 다른 개념들이다.
기독론은 어떻게 부활 사건이 해석되어지는지에 관계없이 그 사건으로부터만 유일하게 파생되어질 수 없다.
그 뿌리는 반드시 예수의 행위와 처형에서 찾아져야만 한다.
물론 예수는 대중을 대상으로 선포할 때에는 자신이 메시아라는 주장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한 복음도 마찬가지로 이 점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특정한 시기에, 그리고 간접적으로, 무엇보다도 제자들을 교육할 때이다.
Michel Keck
Cross Art
최후의 방편으로, 메시아 비밀은 예수의 신비로운 메시아적 권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따라서 메시아 비밀은 마가 이전 공동체의 복음의 창안이 전혀 아니다.
오히려 메시아에 대한 문제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던 난관들을 헤쳐 나가게 만든 오히려 예수 자신의 신비에 대한 표현이다.
마가는 이 점을 4.41에서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고 복종하는고?”란 질문을 통해서 표현하고 있다.
예수의 메시아적인 권위가 가진 신비와 더불어 4.11에 표현된 하나님 나라의 신비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둘 모두 다 예수 자신의 역사적 인격에 불리할 수 없을 정도로 관련되어져 있다.
마가가 더불어 작업을 하고 있는 예수에 관련되어 있는 전승들이 서로 공통점이 전혀 없어서 비교가 가능하지 않다.
개별적인 진술들에서 나타나는 불일치들은 거슬러 올라가면, 그 궁극적인 뿌리들을 이들 전승들에 가지고 있다.
예수는 모든 역사적인 기본 골격들을 돌발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이 인물이 가진 그렇게도 유일무이하게 독특하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긴장들과 명백하게 드러나는 모순들이 전혀 없는 “일차원적인 전승”이란 전혀 없을 것이다.
예수의 인격과 활동은 기성품과 같은 기독론적인 이론들의 한계 내에 가두어 놓을 수가 없다.
5. 저자의 신학적 배경
(a) 바울과의 관계
두 번째 복음서가 바울과 구원론적인 접촉을 하고 있다는 점이 종종 언급되어져 왔다.
이 점에 근거하여 우리는 마가가 자신의 신학을 이방인의 사도에게 직접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그러한 흔적이 보이는 곳이면 어디든지, 공통된 “바울 이전” 전승들이 있다.
마가 복음에서 이들 둘 사이에 있을만한 하나의 직접적인 연결 관계가 있는지를 어떠한 방식으로도 추적하기가 어렵다.
이들 둘 사이에 기본적인 차이점은 다음 사실로 구성되어져 있다:
마가는 자신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수에 대한 하나의 전기적인 설명으로 발전시키고 있다.
반면에, 바울은 자신의 서신들에서 아주 부수적이고 형식적인 예수 전승들만을 표현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죄인의 칭의에 대한 설교에서 선포되어진 이방인을 위한 바울 복음으로부터 마가에 나타난 예수의 역사로 연결시킬 수 있는 직접적인 통로가 전혀 없다.
물론 복음서 기자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에게로 그의 관심을 돌이키셨다는 주제를 알고 있었다.
뿐 아니라 고상한 방식으로 구체화하고 있다 (2.13-17).
하지만 예수와 죄인들의 주제와 관련하여서도, 마가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이방인 선교의 주제를 반향(反響)시키고 있지 않다.
유대 세리들은 “이방인 죄인들”을 위한 하나의 간편한 비유가 아니다 (갈 2.15).
예수 메시아의 사역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이스라엘을 향하여 그 방향을 정하고 있다.
사실 사도 바울이 명백하게 드러나게 '복음'이라고 부르고 있는 고전 15.3 이하와 같은 바울 이전 정형문들로부터 복음서 기자로 이어주는 어떠한 직접적인 다리를 세우기가 가능하지도 않다.
이는 예수의 죽음 이전에 있었던 그의 활동에 관하여 말하여진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마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그의 기원과 전승을 결국은 탐구하여야만 한다.
(b) 예루살렘 출신의 헬라어를 말하는 유대 그리스도인
마가는 아람어도 역시 이해하였던 헬라어를 말하는 유대 그리스도인이었다.
마가 복음과 같이 좁은 지면에 그렇게 많은 아람어와 히브리 단어들과 정형문들을 가지고 있는 다른 헬라어 작품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들 단어들과 정형문들은 상당히 많다.
뿐만 아니라, 기적을 행하는 자들과 요술쟁이들을 당시에 관습에 맞춰서 표현하는 상스러운 말들 로 정확하게 설명되어 질 수 있다.
이러한 언어적인 사실 자체는 마가 복음이 “이방 기독교”에서 유래하였을 개연성이 거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참조. 막 3.17-19; 5.41; 7.11; 8.34; 10.46; 11.9 이하; 14.1, 32, 36, 45; 15.22, 34).
이들 발음하기에 낯 설은 단어들의 대부분을 마태와 누가는 누락시켜버렸다.
아마도 마가는 예루살렘 출신이었던 듯 하다.
그는 갈릴리와는 친숙하지 않았던 반면에, 예루살렘과 팔레스타인 유대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마가가 갈릴리 지리에 대한 “지식의 결핍”을 두고 현대 주해가들이 비판하기를 좋아한다.
"Evangelist Mark Seated in his Study.
비잔티움에서는 마케도니아 르네상스 시대에 고전적인 형태의 부흥이 자연주의를 미학적 원리로 간단히 복귀시켰다. 그러나 자연계에 있는 그대로 사물을 대표하고 싶은 욕망은 곧 사라졌다. 이렇게 조명을 받는 책장은 2/4기에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제작된 복음서 성구집에서 나왔다. 복음서 기자 마가가 책상에 앉아 생각에 잠겨 있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자세는 고대에서 흔히 사용되는 철학자들을 나타내기 위해 모방한다. 고대 원형의 지속성은 그 스타일로 뚜렷이 나타난다.
그런데 사실상 이러한 점은 이들 주해자들의 역사적 몰이해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오늘날 우리도 한 장의 지도도 없이 자신이 자란 도시를 떠났다고 가정하여 보자.
자신의 작품을 쓰기 시작하였던 시기보다 훨씬 오래 전에 떠났던 듯 그 도시에 대한 정세를 파악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물며 마가와 같은 고대인이 한번도 방문한 적이 없음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낯 설은 지역정세를 잘 파악하기가 극히 어려웠을 것이다.
즉 그 도시에서 족히 잡아서 70마일 (약 110 킬로미터) 떨어진 낯 설은 지역이다.
지리적인 유대 관습들과 역사적인 정황들에 대한 그의 설명과 평가가 굳이 비판을 받을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에 관하여는 마가가 현대인의 감각에 맞추어서 역사적으로 정확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유대 관습들을 논쟁적이고 편향적으로, 즉 다소 모호하고 과장된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가는 주후 60-70년대 로마 총독들이 직접 통치하던 시대의 팔레스타인 유대교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정보통이다.
요셉푸스와 누가와 마찬가지로, 이 사실은 상당히 많은 점에서 요셉푸스가 확증을 하여 주고 있다.
요셉푸스는 일종의 학자연하고 신뢰할만한 역사가인 듯한 인정을 받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이 점에 있어서 그가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고 있어서 종종 창피스러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마가는 이러한 야망을 드러내지 않고 있으므로, 바로 이 점에서 우리는 그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c) 파피아스의 단서 (the Papias Note)
파피아스의 단서마가 작품의 기원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는 자료이다.
그 연대가 주후 약 120-130년경, 하드리안 시기에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이 자료는 그의 다섯 권으로 구성된 『주의 말씀의 해석』)이 그 출처이다.
그런데 이 자료는 보다 최근 학계에서 종종 올바로 이해되지 못하며 또한 잘못 다뤄지고 있는 처지이다.
하지만, 본인의 견해로는 매우 신중하게 취급되어져야 한다고 본다.
바로 이 장로는 또한 종종 말하였다.
마가는 사실상 베드로의 해석자가 되었다.
주에 의하여 말하여 졌거나 행하여진 것에 대하여 그 [베드로]가 회상하였던 모든 것을 비록 순서대로는 아니지만 정확하게 기록하였다.
이는 그가 주로부터 들은 것이 아무 것도 없으며, 또한 주의 추종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말한 바대로) 베드로의 말년에 [청중들의] 필요에 따라 그의 가르침들을 채용하여왔다.
그래서 질서 정연한 형태로 주의 가르침들을 함께 모아두려는 한 가지 관점을 가지지는 않았다
(Eusebius H.E 3.39.15).
파피아스는 추정하건대 이러한 보고를 소아시아에서 장로 요한으로부터 받았던 듯 하다.
요한의 활동의 절정은 대충 한 세대 이후, 즉 주후 70-110년경으로 잡아야 할 것이다.
보다 최근에 학자들에게서 이 파파이스의 단서를 이차적인 언급으로 간단히 처리하여 버리려는 경향이 지속되고 있다.
그렇게 많이 논의하지만 상당히 잘못 취급하고 있다.
두 번째 복음서의 사도적 기원을 변증적으로 합리화하여 정당화시키려는 의도로 받아들인다.
Mark and his Gospel: Papias describes Mark as writing from memory what he heard from Peter.
그러나 실은 이 자료의 자자는 기록된 작품들보다는 구전을 훨씬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이 자료는 저자의 현저하게 비평적인 논평들 (critical comments)을 대변하고 있다.
베드로와 마가의 연결 관계는 사실상 일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며 벧전 5.13에 언급된 장로와는 별개로 입증이 된다.
마가 복음을 위한 “사도적” 권위를 안전하게 확보하기 위한 후대의 창안이라고 볼 수 없다.
더욱이 파피아스의 언급에 대한 주된 반대는 양식 비평의 대표자들에 의해 개진되어왔다:
둘째 복음서는 하나의 문학적인 작품이 아니라, 무명의, 대중적이고 집합적인 예수 전승을 이리 저리 모아 놓은 큰 덩어리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들의 입장은 이제 타당하지 않은 것으로 증명되었다.
그렇지만 그들의 입장을 받아들인다 하여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극히 독특한 노트가 어떠한 역사적인 가치도 지니지 않았다고 부인하도록 우리를 설득할만한 이유가 무엇이 있는가?
수많은 소위 말하는 비평적인 판단들은 종종 급진적이지만 사실은 비판력이 결여되어 있다.
이렇게 신비로운 본문이 실제로 말하고 있는 것과 관련시키기를 이제는 그만 두어야 할 정도인가?
오히려 이들 판단들이 오히려 기본적으로 비역사적인 열정을 표현하고 있지는 않는가?
Papias of Hieraspolis
파피아스의 두 번째 단서는 마태에 관한 내용이다.
이 단서는 사실상 헬라어로 쓰여진 첫 번째 복음의 권위를 경시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다음으로 마태는 히브리어로 쓰여진 [주의] 말씀들을 편성하였다.
그러나 어느 누구든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들을 번역 (또는 해석)하였다”
(Eusebius, HE 3.39.16).
이 단서가 시사하는 바는, 첫 번째 복음은 사도의 원래 작품이 아니라, 기본적인 히브리 문서의 이차적인 번역물이라는 점이다.
파피아스가 마가 복음의 사도성 (apostolicity)에 대한 변증적인 변호를 제공하고 있다.
동시에 마태가 더 좋은 순서를 통하여 이렇한 역할을 한다고 Pesch는 가정하고 있다.
파피아스의 인용문에 대한 그의 해석은 그러므로 잘못되었다.
마태가 더 잘 배열되어 있다는 표시가 전혀 없다.
특히 마태가 파피아스가 적합하지 않다고 발견한 마가의 순서를 사실상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Saint Matthew (1713?1715) by Camillo Rusconi, Archbasilica of St. John Lateran in Rome
더욱이 파피아스가 마가의 “순서”를 부적절하다고 불평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상 두 번째 복음에는 전혀 결함이 없는 문학적인 배열에 관계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소재들의 역사적이고 연대기적인 배열과 관련되어져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파피아스가 네 번째 복음의 아주 서로 다른 연대기와 순서를 염두에 두고 있음을 가정할 수 있다:
그는 계시록과 요한 일서를 인용하고 있다.
자신의 두 번째 책에서 세배대의 아들들, 요한과 야고보가 유대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을 보고하고 있다.
이에 덧붙여 그는 네 번째 복음서를 알고 있었음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따라서 안드레, 베드로, 빌립과 같이 제자들의 전후 순서를 열거하고 있다.
이 것은 요 1.40 이하에 따라 제자들이 부름을 받은 것과 관련되어 있다.
더욱이 서언에는 제 4 복음서에 거의 가까운 “진리”라는 용어를 절대 용법으로 사용하고 있다 (3.39.3 말):
“주로부터 주어진 믿음에 대한 계명들, 그리고 진리 그 자체로부터 믿음에 이르게 된다”.
더욱이 요한은 특정하게 예수의 계명과 '주기 위한 계명'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요 11.57; 12.49; 14.15, 21, 31; 15.10; 요일 2.3 이하; 3.22, 23, 24; 5.2 이하.)
현존하는 단편들에서 사도들이라는 용어를 피하고 있는 것과 “주의 제자들”을 그가 편향적으로 선호한다.
이 또한 요한과 연관되어 질 수 있다.
Irenaeus, bishop of Lyons in Gaul (c. A.D. 175)
더욱이 120년 또는 130년 경 (또는 심지어 약 110년경?)에 파피아스가 변증적인 의도들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기가 어렵다:
누가 그 당시에 마가 또는 마태의 진정성에 의심을 품을 수가 있었겠는가?
바실리데스나 발렌티누스와 같은 영지주의자들은 교회의 복음서들을 인용하는데 매우 열성이었다.
이레니우스에 따르면 가현주의적 영지주의자들조차도 마가를 선호하였다.
이와 대조적으로 말시온은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말시온이 로마에 있는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것은 생각건대 바로 주후 144년경에 일어난 듯 하다.
그는 복음서 기자들이 아니라 베드로와 요한과 같은 원래 사도들을 향하여 분노를 나타내었다.
그러므로 파피아스의 작품은 말시온에 대항하여 변증으로 제시된 것이라고 보기에는 아주 부적절하다.
말시온과의 논쟁에 사실상의 분쟁의 요체는 구약성경인데, 구약이 단편들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있다.
마가와 마태에 관한 관찰 소견들은 하나의 확신을 심어주는 변증으로 보여지지는 않는 듯 하다.
이러한 예외적인 성격을 가진 작품은 보다 초기의 것으로 보아져야만 한다.
St. Peter Preaching (detail; 1426-1427),
by Masolina da Panicale (1383-1447)
파피아스는 다소 편향적인 점이 있다.
제 4 복음서에 (가설적인) 편향적인 선호도를 보인다.
이에 덧붙여서,볼질상으로 살아있는 구전 (viva vox; HE 3.39.4)에 대한 자신의 편향적이다.
따라서 파피아스의 비판은 이미 시대착오적이었던 기록된 문서들과 대조하여 구전에 대한 애호에서 비롯되었다고 가정할 수도 있다.
또한 살아있는 구전에 대한 이러한 편향된 태도를 수많은 초대 기독교의 영지주의 교사들과 다른 이들 가운데서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서로 다른 방식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경우에는 물론 기록된 전승에 대한 어떠한 경멸감도 가지지 않았다.
그 다음으로 기록된 문서가 그들에게 필요 불가결하게 되었다.
초창기 전승을 이렇게 탐욕스럽다시피 수집하고 있는 수집가인 파피아스는 구전과 기록, 둘 모두의 출처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 기원은 한 두 세대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며, 그 시기는 복음서들이 기원하였던 바로 그 때이다:
마태의 경우에는 약 90년경이며, 마가의 경우는 아마도 69년경이다.
파피아스에게 주로 영향을 주었던 권위자들은 요한 문헌들과 관련되어진 장로 요한과 장로 아리스티온이었다.
어쩌면 후자로부터 마가 복음의 진정성이 결여된 종결부 (inauthentic ending)가 기원하였을 듯 하다.
파피아스의 마가에 대한 비판은 두 가지 점에서 시작하고 있다:
1. 그는 주의 말씀들과 행위들을 올바른 순서에 따라 구성하여 놓지 않았다.
연대기적인 측면이나 주제의 내용 (subject matter) 상으로도 그렇다.
바로 이 기본적인 비판은 장로의 전승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확실하다.
2. 그는 주의 직접적인 제자가 아니라 오직 베드로의 제자일 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의 자료들은 오직 이차적인 가치를 지닐 뿐이다.
이들 비판에 잠재되어져 있는 기본적인 논조는 다음과 같은 설명들에서 파악될 수가 있다:
마가의 작품에 순서의 결핍이 비판의 목표이다.
이는 청중들의 필요에 따라 자신의 구술적인 가르침을 조성하였던 베드로의 행동들로 거슬러 오라 갈 수 있다고 이해할 만 한다.
즉, 마가가 문학적이고 역사적인 표준으로 볼 때에 예수 전승을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다소 혼란스러운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문학적, 또는 연대기적 자료 배열을 통하여 “주의 말씀들”의 모아 놓은 충분히 좋은 수집록을 쓰는데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따라서 마가는 어떤 자료들이 그의 기억에 남아있었던 대로, 그들 자료들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잘못이 전혀 없다.
ook of Kells, Folio 32V. Portrait of St. Mark or St. Luke
긍정적인 진술들도 있다.
마가가 베드로의 가르침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한 한, 그는 바로 그 말씀들을 '정확하게' 파피루스에 기록하였다.
그는 그가 들었던 것은 어떤 것이라도 남겨두지 않거나 왜곡하여 표현하지 않으려는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였다.
이러한 긍정적인 진술들은 그 특성상 관례적이다:
비슷한 정형문들이 역사가들의 서언들에서 거의 판에 박은 듯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특권쯤이야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치에 맞게 잘 구성되어져 있는 역사가들의 작품이라면 어디에서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파피아스가 말을 아꼈더라면, 바로 이는 마가를 직접적으로 기각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또 다른 현저히 드러나는 점은 기억하고 있음에 대한 이중적인 강조이다.
한편으로 제 4 복음서에서 제자들이 기억을 하고 있었다는 점에 강조한다. (2.17, 22; 12.16; 15.20; 16.4).
다른 한편으로 이후에 저스틴에게서 탁월하게 부각되었던 '사도들의 회상'의 개념에 상응한다.
차이점이 있다면, 파피아스가 마가의 수집록을 베드로의 선포에 종속적인 것으로 제한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가는 직접적인 증언이 아니다.
저자들의 “수집록” (자료들을 전수하였던 자들과 정보 제공자들의 수집록)이 우선적으로 공관복음서들의 기원에 규범적인 역할을 하였다.
무명의 초기 기독교 선지자들의 독창적인 창의력이나 공동체들이나 자명한 신학적인 싯구들이 그러한 역할을 일차적으로는 하지 않았다.
이 점이 더 이상 부인되어지지 않아야 한다.
저자들은 무엇보다도 소재들을 선택하고 질서 정연하게 정렬하며, 주어진 언어적이고 문체적인 양식에 책임을 지고 있다.
Pasqualotto,
St. Mark writes his Gospel at the dictation of St. Peter, 17th century.
(c) 마가와 베드로
마가 복음의 저자가 베드로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견해는 마가 복음의 우선성을 확립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통상적으로 완벽하게 무시되거나, 심지어 뜻밖에도 배척되고 있는데, 마땅히 천명되어져야 한다:
이 견해는 우리가 복음서를 이해할 때에 실질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공헌을 하고 있다.
베드로와 마가의 연결 관계는 파피아스와는 별개로 확증된다.
저스틴이 “베드로의 회상록”으로 추측되는 막 3.16 이하에 대하여 참조를 하고 있다.
마가가 베드로의 해석자였다는 설이 언 듯 듣기에는 한편의 특이한 정보로 들릴만한 충분한 역사적인 이유들이 있다.
갈릴리 어부인 베드로가 더할 나위 없는 헬라어로 유창하게 자신의 가르침을 표현할 수 있었을 정도로 충분하게 철저히 헬라어를 배워왔을 리가 만무하다는 점은 명백하다.
헬라 팔레스타인인 요한 마가는 그의 집에 행 12.12 이하의 전설에 따르면 베드로가 첫 번째로 방문을 하였다.
그는 후에 그의 동반자가 되었던 듯 하며, 반드시 필요한 곳에서는 실로 해석자였다.
베드로의 헬라어가 고대 청중들의 까다로운 귀를 거슬리지 않고 오히려 만족스럽게 하였을 리가 만무할 것이다.
비평적이고 교양이 있는 독자는 자신이 나무랄데 없이 독일어나 프랑스어를 문학적으로 구사하고 있는지, 또는 하나의 외국어로 보고서를 준비할 때에 도와주는 번역자에게 감사를 표하는지를 스스로 생각해보기를 바란다.
(비록 본인은 영어를 웬만하게 말할 수 있지만, 본인이 책을 번역할 때뿐만이 아니라 영어로 발제문을 읽을 때에도 일급 수준의 영어 번역자에게 대단히 감사의 뜻을 표하고 있다.)
베드로가 우리들보다도 더 좋은 언어적인 훈련을 받았겠는가?
T a k i n g N o t e s , P e t e r a n d J o h n M a r k -
Acrylic on Canvas -- 36 x 18 inches
(c) 2014 by Craig Erickson
이와 같이 본질적으로는 훨씬 적은 지면 내에서, 마가 복음은 다른 공관복음들보다도 훨씬 빈번하게 시몬 베드로를 언급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베드로에 대하여 비판적인 요한복음의 부록에 해당하는 21장을 제외한다면, 요한보다도 더 빈번하게 언급하고 있다.
시몬 베드로가 마가에서 25번 언급되어져 있다.
시몬은 1.14와 1.15에 선언된 명제 (propositio) 직후인, 1.16에서 언급되어진 첫 번째 제자이다.
아주 특이하게도 안드레가 “시몬의 형제”로 기술되어져 있다 (이에 대하여는 참조. 15.21).
예수가 첫 번째로 네명을 제자들을 부르시고 가버나움 회당에서 첫 번째로 귀신을 쫓아내신 이후인, 예수 사역의 초반에 일어난 일이 있다.
예수가 베드로의 형제들의 집에 방문한다.
마가 복음에서 이 보고는 그 기본 골격에서 벗어나 있어서 아주 개인적인 보고로 취급하고 있는 듯 하다.
시몬의 장모의 병을 치유하신다 (1.29).
1.36에서 통상적이지 않게도, 제자들 중에 첫 번째 집단이 “시몬과 그와 함께 한 자들”로 기술되어 있다.
그에 잇따라서 제자들의 이름이 열거 될 때마다, 베드로의 위치는 맨 우두머리를 차지하고 있다 (참조. 3.16 이하; 5.37; 9.2; 13.3.).
그 숫자가 열둘이든, 셋이든, 넷이든 간에 상관이 없다.
이 모든 현상을 단순하게 창작이라는 말로서 설명되어질 수만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그 배후에는 심오한 역사적 이유들이 있음이 틀림없다.
열두 제자들의 대변인으로서 베드로는 예수의 메시아직을 인정하였다.
뿐만이 아니라, 예수에 의해서 심하게 배척을 당하기도 한다 (8.29, 32 이하).
그는 제자들의 몰이해와 실패를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일종의 화신(化身)이다
(참조. 이에 덧붙여서 8.29; 9.5; 10.28; 11.21; 13.3; 14.29, 37).
그는 예수가 게세마네 동산에서 개인적으로 말을 하였던 마지막 제자이다 (14.37).
대제사장의 뜰에까지 예수를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마지막이다 (14.37).
심지어 마가 복음에서 언급된 마지막 제자이기도 하다.
16.7은 특이한 문장 구성을 하고 있다.
천사가 여인들에게 “가서 그의 제자들과 베드로에게 말하라”고 지시한다.
이 명령은 이 복음서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였던 제자의 이름을 마지막에도 마찬가지로 두고 있다:
바로 이것은 일종의 포괄적 기법 (inclusio)이다.
이를 통하여 복음서 기자는 의도적으로 용의주도하게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바로 이 한 명의 제자를 강조하기를 원하고 있다.
마가가 베드로의 실패를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지만, 그의 유일무이한 중요한 의의를 분명하게 강조하고 있음은 의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그의 전승이 특별한 기원을 가지고 있다는 점과 어떤 연결관계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없겠는가?
Saint Peter (c. 1468) by Marco Zoppo,
depicting Peter holding the Keys of Heaven and a book representing
반면에 베드로나 유대 기독교 일반에 대한 일종의 후대의 신학적인 논쟁을 두 번째 복음서로부터 파악하려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는 제 4 복음서와 그 신비에 가려진 사랑하는 제자를 제외하고, 우리는 이러한 논쟁을 할만한 여유를 가진 권위있는 제자들이나 공동체가 누구인지를 판단할만한 어떠한 다른 표준적인 입장을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태와 누가는 이러한 마가의 베드로에 대한 강조를 채택하고 있으며, 훨씬 더 현저하게 드러나는 전설적인 윤색을 덧입히고 있다.
특히 마태의 경우는 더욱 더 그렇다:
확고한 출발점은 마가는 주후 64년에 로마에서 베드로가 순교를 당할 때에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가장 가깝게 있었던 인물이다.
이 점에서, 마가에서 찾아져야 할 것이다.
대조적으로 요한은 익명의 사랑하는 제자와 베드로를 대등한 입장에 놓고 베드로의 중요한 의의를 제한하기를 원하고 있다.
확실하기는 시몬 베드로가 살아있는 개인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전형 (type)으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 점은 일반적으로 이야기꾼의 케리그마적인 스타일의 일부분이다.
예수 자신을 포함하여 복음서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어떻게 소재들이 한 세대를 걸쳐서 전수되어져 오면서 케리그마적인 양식을 띄게 되었는지를 볼 수 있다.
마가가 그 이야기체 기사의 구성이 간결하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신의 생생한 문체를 담아낼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더욱 더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고 있다.
Icon with St Peter
Turkey: Marmara Region: Istanbul (province): Istanbul (city): Constantinopl
ΑΓΑΠΗΤΟΙ WC ΠΑΡ ΡΕΠΙΔ C (‘Αγαπητο? [παρκαλω] ω? π[αρο?κου? και πα] ρεπιδ [?μου? απ?χεσθαι των σαρκικων ?πιθυμιων αιτινε? στρατε?ονται κατα τη? ψυχη]?)
Beloved, I beseech you as aliens and exiles to abstain from the passions (of the flesh) that wage war against your soul
Inscription note: From the First Epistle of Peter (1 Peter 2.11).
마지막으로, 마가와 그의 계승자들에게는 주의 형제 야고보와 예수의 가족들이 곧 바로 무대 뒷면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들의 존재가 오직 6.3에서만 주목을 받을 뿐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다:
40년대 초반부터, 야고보는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차지하고 있었던 우두머리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되었다.
(참조. 행 12.7; 갈 2.9),
이 점에 있어서 둘 사이에 어느 정도의 긴장이 있는데, 바울과 그의 적대자들 사이의 있었던 긴장보다 덜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마가 복음의 배후에 베드로의 권위가 자리잡고 있다고 가정을 할만한 또 다른 이유들이 아직도 있다.
첫 번째로 마가의 작품은 자의식이 강한 그리스도인 서기관인 마태에 의해서도 아주 자연스런 방식으로 일종의 지침으로 사용되었다.
물론 역사가인 누가도 마찬가지이다.
마태가 자신의 모델인 마가 전체를 재생시키고 있는 충실도는 특히 현저하게 드러난다.
더욱이 마태가 마가의 소재들 중에 90 %를 채택하고 있다.
두 번째 복음서가 마태의 교회에서 그렇게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사실을 가장 잘 설명하여 주는 것은 무엇일까?
마가의 작품이 처음부터 베드로의 이름이 가진 권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마가의 순서와 근본적으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유일한 복음서는 제 4 복음서이다:
이 복음서에서 신비에 가린 사랑하는 제자 (21.24에서 저자)는 마가-공관복음 전승의 보증자인 베드로보다는 예수에 항상 더 가깝다.
두 번째 복음서는 아마도 생생한 구술적 가르침에서 발전되었으며, 예배에 사용될 장엄한 봉독을 위하여 작성되었던 듯 하다.
운율적인 형태와 더불어, 짧은 구두점 (colon)들은 회집된 공동체에서 입으로 낭송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만든다.
이 복음서는 경청하기를 원하는 청중들을 위하여 기록되어졌다.
불명료한 기록된 자료들과 셀 수 없는 각주들, 주석을 책상 위에 놓고 함께 꿰맞추어 기록한 일종의 인위적인 문학적 작문은 결코 아니다.
이 점에 있어서 비교적 기계적인 우리의 “과학적인” 작업 방식을 마가에다 단순하게 투사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베드로 성당의 모자이크
이 작품의 배후에는 한 사람의 인물이 있었을 것이다.
대중적인 “공동체 전승”을 단순히 수집만 하던 수집가도 아니다.
이들 전승은 이방인 기독교 교회들 중에 어느 곳에서 유통되고 있었던 (어떻게 우리가 그 점을 상상할 수 있는가?) 정해진 형식도 없다.
무명의 시적으로 영감을 받은 이방 기독교 저술가도 아니다.
그러나 한 사람의 신학적인 교사가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는 친히 초기 기독교에서 말씀의 달인이자 권위를 가진 인물이었음이 틀림없었을 것이다.
보잘 것이 없는 무명의 사람이 하나의 복음서를 쓰는 혁명적인 혁신을 수행하였을 리가 만무하다.
본인의 견해로는 저자는 동시에 초창기 교회에서 가장 위대한 사도적 권위를 가진 인물의 제자였다.
바로 거기에 마가의 작품이 초기에 성공을 거둔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가 있다.
반면에 마가가 베드로 전승에 어느 정도 노예와 같은 근성을 가지고 (slavish) 의존하고 있다고 가정하지도 말아야 한다.
두 번째 복음서 기자의 작품은 그 자신만의 개인적인 신학적인 각인을 또 다시 새겨 놓았다.
의존을 하고 있는 문헌들은 모두 다 그 의존성에도 불구하고, 각기 자신만의 흔적을 남기고 있다.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와 같은 바울 후기 (deutero-Pauline)의 서신들은 무명의 바울 제자에게서 유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체적인 신학적인 흔적을 남기고 있다.
마찬가지로 요한 일서를 요한 복음과 비교하여 보아도 마찬가지이며, 바울의 제자인 누가는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확실하기는, 베드로 사후 약 5년 정도가 되었을 때에, 네로의 죽음 이후로 로마 제국이 내전에 휩싸여 혼동스러웠을 때이다.
공동체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를 지적하여 줄 필요가 있었다.
그러기 위하여 베드로의 제자였던 필체로 하나의 기록된 복음서가 쓰여진 것은 그 시대의 요구였다.
불행하게도. 가장 영향력이 있었던 교사였던 베드로의 신학에 관하여 그리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바울과 나란히 놓고 볼 때에, 심지어 이방인 기독교 교회들에서조차도 그렇다.
두 번째 복음서로부터 어떤 기본적인 특색들을 재구성하려고 시도하는 것이 매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도는 처음부터 너무나 상상력이 동원된 가설이라는 반대들에 곧바로 부딪히게 될 것이다.
바로 이점에서 우리는 미결 문제로 남겨두어야만 한다.
6. 복음으로서 마가 작품 (Mark's Work as Gospel)
(a) 용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능하다면 본인이 하나의 결론을 내리는 가설을 제시하도록 독자 제위에게 허락을 받고 싶다.
마가는 '복음'이라는 용어를 일곱 번이나 사용하고 있다.
자신의 복음서 초두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는 문법 상으로는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사용되었다.
이 표현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about) 복음이다.
즉 이제 막 시작을 하고 있는 “전기적인” 작품에서 표현되는 예수의 사역과 죽음과 같은 구원하는 사건들이다.
1.14에 선언된 전제 (proposotio)에서, 예수는 갈릴리에 등장하여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기원된 좋은 소식, 즉 하나의 생성을 시키는 저자 (a genitivus auctoris)를 만나게 된다.
이는 15절에 설명되어져 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여기에 있느니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하나님의 좋은 소식은 하나님 통치의 동틀 녘이 이르렀음을 알리는 선포와 동일하다.
이는 갈릴리에서 행하신 예수의 선포와 행위에서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1.1에서 선언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훨씬 더 포괄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 복음은 선구자인 세례 요한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을 위한 그의 죽음과 그의 부활에서 그 절정을 이루는 구원하는 사건들 전체 (whole)를 그 내용으로 포함하고 있다.
바로 이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의 동녘이 떠올랐다고 예수가 공중 앞에서 선언하는 그 선포만으로는 그 충만함이 다 표현되지 않는다.
즉 제 4 복음서에서 예수의 선포 내용을 표현하고 있는 바와는 대조적이다.
한편으로 갈릴리로부터 시작하고 있는 하나님의 복음 선포 (preaching)가 있다.
다른 한편으로, 전체 복음을 구성하고 있는 기독론적으로 구원하는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아들의 수난과 부활, 그리고 파루시아에 대한 약속 (8.34; 9.1; 13장; 14.62)을 사실상 포함하고 있다.
마가에서는이 둘 사이에는 엄연하게 어떠한 긴장이 여전히 있다.
따라서 마가는 자신의 이야기의 첫 번째 부분에서는 다시는 복음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한편으로, 이 용어는 베드로의 신앙 고백과 수난 예고 이후에 제자들을 교육하시는 장면에서 두 번이나 사용되고 있다:
자기 부인할 것을 요청하는 8.35
-“누구든지 나와 그 복음의 뜻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잃는 자는 그 생명을 구원할 것이니라”.
이와 비슷하게 10.29.
“이는 나와 및 그 복음 때문에 집이나 (가족이나) ... 토지를 버려왔든 자들 중에서 이를 다시 백배로 받지 못할 자는 아무도 없느니라 ...”
숙어 "나와 그 복음 때문에"는 일종의 중언법 (hendiadys)이다:
“예수 때문에”는 동시에 “그 복음 때문에”를 의미하며, 그 역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는 그 복음의 내용이다.
바로 이러한 이해는 1.1의 폭넓은 이해를 되돌아서 참조하고 있다.
마지막 예문들은 거의 바울의 여운(餘韻)을 가지고 있다:
13.10 -그러나 첫 번째로 그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전파되어져야만 한다.
이 구절은 소위 말하는 꼬마 묵시록과 핍박의 예고 사이의 연결관계를 깨트리고 있다.
여기서 복음은 세계를 향한 선교적인 복음 선포를 구체화시킨 것이다.
14.9는 수난 기사에 해당되는 부분이 시작되고 있다.
여기서 바울적인 여운이 진하게 깔려있는 '복음'에 대한 전통적이고 케리그마적인 이해가 예수 이야기의 서술과 강한 관련을 맺고 있다.
특히 수난 기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기사들은 전반적으로 선교에서 행한 복음 전파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로서 등장하고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복음이 전파되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그녀를 기념하여 서술되어 질 것이니라.”
바로 여기서 복음을 사용하는 것은 독특하다.
이 용어는 우리가 바울로부터 불가 불리적으로 알고 있는 바이다.
전체 예수의 이야기 (the whole story of Jesus)가 구원하는 사건이라는 기독론적인 케리그마의 연결관계를 가지고 있다.
마가의 개인적인 창안이 아님이 확실하다.
1.1; 13.10; 14.9와 같은 몇몇 본보기들은 그 자신의 편집적인 구성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경우들에서는 그는 대체로 초창기 전승으로 거슬러 올라가 회고하도록 만든다.
예수에 관한 하나의 이야기체 기사와 선포가 용어 '복음'과 더불어 이러한 기독론적인 연결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수많은 공동체들에서 심지어 마가의 작품이 구성되기 이전에도 이 점을 이미 가정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마땅하다.
이러한 기독론적인 연결 관계가 마가 이후 한 세대가 지난 다음에도 현저하게 드러나도록 훌륭하게 조형된 양식으로 표현되었다.
그 예들로서 이그나티우스와 디다케를 들 수 있다.
이들 두 곳 모두에서, 기록된 복음서로 전환이 이뤄진 흔적이 이미 남아 있다.
수많은 공동체들에서 이렇게 초창기에 이 용어가 확립되어 있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그렇지않고서는, “복음”이라는 용어가 신약의 네 가지 케리그마적 전기들을 위한 하나의 명칭으로 사용되어졌을 리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바로 이 명칭은 어디에서 그 기원을 찾아야 하는가?
(b) 베드로와 용어 복음 (Gospel)
우리가 현재 가지고 있는 가장 이른 증거는 바울 서신이다.
여기서는 제자들의 가장 친숙한 집단인 열두 제자들 중에 오직 한 인물만이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내 보인다.
이 집단의 영향력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안디옥과 고린도를 경유하여 로마에까지 미치고 있었다.
그는 특별한 방식으로 이방인의 사도와의 대화 대상자이자 선교적인 경쟁자였다.
바울은 그를 방문하려고 약 두 주간 동안에 예루살렘에 머물렀던 적이 있다.
그 시기는 그가 회심한 이후 2년 또는 3년이다.
그리고 바울은 안디옥에서 그를 아주 심하게 공격하기도 하였다 (갈 1.18; 2.10 이하).
그는 또한 고린도에서 설립하였던 바울 자신의 공동체에서 바울에게는 아주 곤혹스러운 원인을 제공하기도 하였던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다른 어떠한 인물보다도 풍부한 예수 전승과 관련하여 제자들의 대변인으로서 역할을 훌륭히 감당할 수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바로 시몬 베드로이다.
다른 모든 예수의 제자들보다도 안디옥에서 로마에 이르는 선교지 교회들에서 예수 전승을 권위를 가지고 중개한 자이다.
이렇게 간주한다면, 사실에서 그리 멀리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주님과 더불어 가졌던 원래의 밀접한 연결 관계는 그의 유일무이하게 독특한 권위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가 다시 살아나신 주를 맨 처음으로 본 사람이라는 사실도 그러한 공헌을 하였다.
다른 한편으로, 단어 ε?αγγ?λιον은 이방인 사도에게서 맨 처음 발견된 것이 아니다.
바울이 너무나 종종 새로운 메시지가 구체적으로 구현된 것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오해한다.
오히려 예루살렘에 있었던 헬라어를 말하는 초창기 공동체로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 점은 확실하게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오히려 아람어 용어가 이 근간에 놓여있는지도 모른다.
탈굼 53.1은 “누가 우리의 보고를 믿어왔느뇨?”란 물음에서 히브리어 ????? (쉐무아)를 아람어 ?????? (베수라)로 번역하고 있다.
이 단어는 ε?αγγ?λιον의 아람어 상당어구이며, 동사 ??? (바샬) = ε?αγγελ?ζεται에서 파생되어진 표현이다.
하나님 나라의 여명이 밝아 올 때에, 승리의 메시지 선포를 기술하려고 제 2 이사야서 (40.9; 60.6; 61.1)에 의해 사용되었다.
바로 이러한 연관되어서, 이 단어는 예수의 선포에서도 또한 일종의 역할을 하고 있다.
고전 15.1 이하에서는 수난과 부활의 케리그마를 ε?αγγ?λιον으로 기술하고 있다.
바울이 친히 전승 (paradosis)로서 전수 받았던 판에 박힌 듯이 상투적인 내용이다.
이 구절도 또한 아주 초기에 이 단어의 바울 이전 용법이 어떠하였는지를 참조하도록 되새겨 준다.
끝으로 갈 2.1-10은 ε?αγγ?λιον이나, 그 아람어 동등어구가 예루살렘의 권세자들에게도 친숙하지 않았던 표현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갈 2.7에서 바울은 자신의 대화 상대자들이 다음과 같이 인식을 하였다고 강조하고 있다.
“베드로가 유대인들을 향하여 그 [복음]을 위탁받았음과 같이, 내가 이방인들을 위한 나의 복음을 위탁받았다”
초기 기독교 내에서 ε?αγγ?λιον이 이렇게 인식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바울의 신학과 복음 선포 내용에 더 이상 접근을 할만한 어떠한 방법도 없다.
그렇지만 이러한 현상에 비추어 볼 때에, 우리는 이 용어가 베드로에게도 또한 의미심장하였음을 가정할 만한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
베드로가 바울의 영향력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였음을 의심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물론 베드로의 영향력과 대조하여 볼 때에, 바울의 영향력은 그의 편지들이 수집되고 회람됨으로써 계속 지속되어졌으며 다시 되살아났다.
베드로의 경우에는 이와 정반대로 그에 대한 회상이 그의 인격과 그의 특별한 예수 전승과 더불어 그 이해를 같이하는 처지에 있었다.
베드로의 신학은 전직 서기관이었던 바울의 신학보다는 어쩌면 더 간략하였던 듯이 보인다.
그래서 베드로의 신학과는 그렇게는 밀접한 관계 속에서 회상되지는 않았다.
StPeter-mosaic-from-Chora-church-in-Istanbul
그러나 용어 ε?αγγ?λιον이 베드로에게도 마찬가지로 극히 중대하다.
이제 만일 그렇다면, 예수 전승 또는 예수 이야기가 복음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바울보다는 훨씬 더 위대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고넬료에게 한 베드로의 연설 (행 10.36-43)은 예수의 활동에 대하여 기술을 하고 있다.
이 연설은 어쩌면 이러한 예수 전승의 역할에 대하여 희미하게나마 추적할 수 있는 흔적을 보존하고 있을 것이다.
누가는 행 13. 38 이하와 20.24-36에서 그가 할 수 있었던 한 최선을 다하여 바울의 신학적인 초상을 제시하려고 추구한다.
그런데 그는 왜 베드로에 관한 어떤 전승도 또한 가지지 않았다고 하여야 하는가?
아마도 그는 “복음”이라는 용어가 예수가 사용하였던 표현이 아니었음을 그때까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마가 모델에서 표현된 이 용어들 중에서 네 번이나 이 단어를 그는 철저하게 삭제하고 있는 듯하다.
더욱 더 놀라운 사실은 행 20.24에 있다.
διαμαρτ?ρασθαι τ? ε?αγγ?λιον τ?? χ?ριτο? το? θεο?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여기서 누가는 이 사역을 바울이 주로부터 받았었다고 진술하는 의미심장한 정형문을 바울의 입으로 하도록 만들고 있다.
Bernardo Cavallino, St Peter and Cornelius the Centurion, 1640s,
Galleria Nazionale d'Arte Antica, Rome.
우리는 베드로의 입에서 복음을 말한 두 번째 사례를 15.7에서 발견한다.
고넬료 이야기에서, 하나님은“나의 입을 통하여 이방인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시기를” 결정하셨다.
( δι? το? στ?ματ?? μου ?κο?σαι τ? ?θνη τ?ν λ?γον το? ε?αγγελ?ου κα? πιστε?σαι)
이 연설에ㅔ서 베드로는 누가에 의해 용의주도하게 이방인을 향한 선교사로서 그 자격이 박탈당하고 있다고 거의 대부분 가정할 것이다.
베드로는 용어 '복음'과 예수 전승 사이의 접촉점을 설명하여 줄 수 있다.
첫 번째로 왜 마가가 이 단어를 그렇게 부분적으로는 바울에서 파생되고 있음에 주의(注意)를 환기시키는 방식으로 사용하고 있는가?
두 번째로는 왜 몇몇 공동체들에서는 ε?αγγ?λιον이 예수의 이야기와 가르침을 위한 지칭으로서 명백하게 사용되었는가?
마지막으로 어떻게 예수 전승과 이 용어 사이의 연결 관계가 현저하게 드러나는 이 용어가 “바울의 노선을 따르는” 누가에 의해 그의 복음서에서 배척되고 있는가?
요한 공동체도 대부분 그렇게 해왔듯이 그 선포 내용의 용어를 사용할 때에, 자체적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다.
마치 “예수의 사자”라는 의미로 ?π?στολο?를 사용하지 않고 표현할 수 있었듯이, 신조어를 사용하지 않고도 복음을 표현할 수 있었다.
우리는 “복음”을 벧전 4.17 에서 발견한다.
“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
이 구절은 비 바울 서신들에서는 유일무이하게 독특하게 등장한다.
복음이라는 용어가 특정한 용어가 된 것은 마가에서 첫 번째로 사용되었음이 분명하다.
이야기체로 서술된 예수 전승이 이에 포괄되어졌다.
이 용어는 그 다음으로는 최종적으로 모든 저항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적인 의미를 가지는 방식으로 확립이 되었을 것이다.
이는 최후의 수단으로서 이 용어는 여전히 베드로 전승에 함축되어 있는 오래부터 인정되어져 온 권위를 그 배후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전승을 위하여 예수에 관한 역사적 전승과 좋은 소식들이 서로 함께 분리할 수 없을 정도로 속하여 있었다.
Moses by Michelangelo Buonarroti, Tomb (1505-1545)
for Julius II, San Pietro in Vincoli (Rome)
(c) 마가와 모세 이야기
왜 마가에서는 여기서 - 그리고 본인의 심정으로는 그 배후에 놓여있는 베드로 전승에서 - 예수 이야기는 물론이고 그의 말씀들의 전승을 포함하여 “복음”으로 지칭되어졌는지를 밝혀주는 훨씬 더 심오한 이유가 있다.
유대교도 역시 하나의 구원하는 사건을 알고 있었다:
모세의 영도 아래 이뤄진 출애굽 사건과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물려준 토라의 전수.
토라는 613 가지의 금지 규정들과 명령들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다.
출애굽기로부터 신명기까지 하나님의 사람의 “전기”로 구성되어져 있다.
특히 신명기에서는 모세와 같은 한 “선지자”에 대한 종말론적인 약속이 포함되어져 있다 (신 18.19 이하).
이 선지자에 대한 약속은 유대교에서 엘리아에 대한 기대심과 아주 밀접하게 결합되어져 있다.
첫 번째 구속자로서 모세는 두 번째 구속자의 전형이다.
엘리아는 다시 되살아난 모세 (the Moses redivivus)의 첫 번째 현시의 징후이다.
이와 같이 모세가 황홀한 지경으로 옮겨졌으며, 그의 복귀가 예상되어졌다.
마가 복음이 얼마나 깊숙하게 모세-엘리아 모형론으로 각인되어져 있는지 매우 인상적이다.
마가 복음은 세례 요한과 더불어 시작하는데, 마가에게는 요한이 되살아난 엘리아 (Elia redivivus)이다.
광야에서의 예수의 세례와 유혹으로 계속 이어진다.
이 모형론은 막 1.15와 출 14.31 사이의 병행점에서 명백하게 드러난다.
이 모형론은, 유대 전승에서 출애굽이라는 구원을 하는 사건의 첫 번째 절정이다.
모세 송가 (the Song of Moses)의 신앙 고백에서 이스라엘의 신앙과 야훼의 왕적인 통치의 인정 (15.18)이 명백하게 만들고 있다.
바로 이 모형론은 그 다음으로 몇몇 기적 이야기들에서 다시 명백하게 부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 절정으로 오병이어 이야기에서 전면에 부각되고 있다.
모세와 엘리아이 등장하는 변화산의 장면에서 이 모형론은 최고의 고조점에 도달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제자들이 경청하여야 할 대상은 모세나 엘리아가 아니라, 사랑을 입은 아들이다.
Alexandr Ivanov - variation
변화상에서 예수와 모세, 엘리아
마지막으로, 이 모형론은 다음 내용에서 현저하게 드러날 정도로 그 대형이 되는 특징들 (antitypical features)을 취하고 있다:
언약의 희생 제사와 백성의 목자들에 대한 심판 (14.27; 참조. 민 17.17),
대제사장에 의한 예수의 정죄,
그의 십자가 처형 그리고 버림받음을 탄식하는 외침.
그리고 유월절 만찬.
아마도 모든 유대인들과 모든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다 모세의 종말에 관한 전설들을 알고 있었을 터이다.
그런데, 모세는 죽지 않고 하늘로 취하여 올라갔다.
혹은 하나님이 친히 어떠한 죽음의 고통도 받지 않도록 “일종의 입맞춤과 같이” 그의 몸에서 영혼을 취하셨다.
하지만 예수의 죽음과 시내산 사람의 죽음 사이의 대조는 명백하다.
Transfiguration by Feofan Grek
from Spaso-Preobrazhensky Cathedral in Pereslavl-Zalessky (15th c, Tretyakov gallery)
예수의 이야기는 종말론적인 구원을 이루는 사건, 즉 복음이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을 위한 “구원을 이루는 사건”인 모세 이야기 또는 “구원하는 메시지”로서 토라와 긴장 관계를 이루고 있다.
한 편으로 메시아적인 교사로서 예수는 사랑하라는 계명들과 더불어 훨씬 더 엄격하게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막 12.29-34).
따라서 사실상 모세의 유산을 간직하여야만 하였던 한 서기관 (참조. 마 23.2)도 그에게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예수는 죽은 자의 부활을 사실상 토라에 토대를 두고 말하고 있다.
이는 완벽하게 바리새적인 의미에서이다
(참조. 막 12.28: ?τι καλ?? ?πεκρ?θη α? “그가 그들에게 대답을 잘 한 고로” [12.18-27]).
The mosaic in the lunette over the doorway to the esonarthex portrays Christ as “The Land of the Living”.
Chora-church-in-Istanbul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예수는 토라를 지배하는 주로서 그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다 (막 2.28).
그는 모세가 제정한 안식일 계명과 정결법에 관한 규정들, 그리고 이혼의 허용에 대한 규례들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7.15).
다시는 묵은 포도주를 새 가죽 부대에 부어 넣기를 원치 않는다 (2.22).
다른 말로 표현하면, 마가 복음에서는 바울과 요한이 만들어내고 있는 모세와 그리스도와의 대조 관계가 있다.
-이에 대하여 요한의 서언은 인상적인 정형문으로 환원시키고 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졌으나,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느니라” (요 1.17)
이 대조관계를 모형론적으로 대형적인 대조 (typological-antytypical contrast)의 형식으로 취하고 있다.
이들 두 가지 역사적 설명들이 내포하고 있다.
마태는 이러한 변증법적인 관계를 아주 용의주도하게 발전시키고 있다.
그는 특히 예수가 메시아적인 교사임을 강조하고 있다.
마태의 작품에서, 이 관계는 산상수훈에 나타난 반명제의 형식으로 새로운 표현 방식을 발견하고 있다.
이 점에서 어떻게 한 복음서 기자가 자신의 신학적인 입장의 지평을 넓혀서, 또 다른 신학적인 교사인 다른 복음서 기자와 손에 손을 맞잡고 있는지를 보는 것은 놀라운 점이다.
모세와 예수 사이의 반명제적인 병행을 주도하고 있는 예전적인 귀결은 우리가 최후의 수단으로서 호소할 수 있는 바이다.
복음서의 강독(과 강해)이 말씀 사역의 절정으로서 토라의 강독 (과 해석)을 점점 더 대체하고 있다는 점이다.
반면에 구약은 복음을 위하여 예비하였던 예언적 약속의 범주에 총체적으로 융합되어지고 있다.
부분적으로는 모형론적이고 부분적으로는 대형적인 관계도 또한 그 신학적인 영향력을 계속 지속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히브리서.
그 다음으로 이세기 기독교 문헌들인 클레멘트 1서, 바나바서, 저스틴, 사르디스의 멜리토와 이레니우스의 작품들.
이렇게 그러한 관계들이 영향을 미치는 뿌리는 어디에 놓여 있겠는가?
그들 중에 하나는, 사실상 마가 복음에서 복음으로서 예수 이야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예수 이야기에서 복음은 토라의 “구원하는 메시지”인 모세 이야기와의 변증법적인 관계에서 맨 처음으로 가시적으로 드러났다.
주제의 내용 자체는 초창기의 것이고, 최후의 수단으로 예수에게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조. 눅 16.16=마 11.12 Q; 눅 7.26 이하= 마 11.9 이하 Q; 눅 11.30 이하=마 12.41 이하 Q 등).
더욱이 율법과 복음 사이의 대조는 그렇게 바울 노선의 신학에만 배타적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었던 듯이 보인다.
흔히 이렇게 생각하여 왔다.
덧붙여 말하자면, 이 둘 사이의 대조는 예수 전승을 근본적인 전거틀로 삼으려고 하였던 한 공동체의 전승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
이 공동체는 구원사와 모형론이라는 측면에서 바울보다도 훨씬 더 강하게 생각을 하여왔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다시 한번 더 물을 수 있을 것이다:
이 공동체의 전승이 베드로의 선포와 원래 연결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로 그러한 경우라면, 복음으로서 예수 이야기는 무엇보다도 공관복음 기자들에 의해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그 이야기이다.
이는 첫 번째 예로서 마가에 의해서, 그 다음으로는 파생된 형태로서 마가에 의존하고 있는 마태와 누가에 의해서 표현되어졌다.
그 다음에 이 예수 이야기는 어느 정도까지는 베드로 전승에 의해서도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신약에서 바울 서신들과 요한 문헌들과 나란히 제 3의 의미심장한 문헌집이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의 지칭으로서 ε?αγγ?λιον은 충분한 논거를 가지고 설득력있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perhaps) 복음에 대한 바로 이러한 베드로 전승을 따른 이해로 그 기원을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The Gospel and the Gosp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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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글은 P. Stuhlmacher (ed.) Das Evangelium und die Evangelien, WUNT 28, Tubingen: J. C. B. Mohr (Paul Siebeck), 1983: 221-265 (The Gospel and the Gospels, Grand Rapids: Eerdmans, 1991: 209-256)에 게재된 내용으로, M. Hengel, Studies in the Gospel of Mark, Londo: SCM, 1985: 31-63에 John Bowden이 영역하여 수록한 내용을 본인이 번역하였다). blog.naver.com/poongk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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