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이기신 그리스도를 본받아(베드로전서 4:1-11)
[ 성경묵상 ]
4장 요약 ; 본장은 고난 속에서 구원 받은 자의 삶의 태도를 다루고 있다. 그들은 고난 중에서도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변화된 삶, 즉 성화의 삶을 산다. 큭히 12-19절은 신자가 고난을 연단의 기회로, 천국 상급의 상속의 기회로 삼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마지막 때 성도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난을 이겨내야 한다. 지나간 과거의 삶을 과감하게 청산하고,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본받는 적극적인 삶을 살아가야 한다.
[ 질문 1 ] 우리가 청산해야 할 과거의 삶의 모습은 무엇인가?(1-3절)
마지막 때가 다가오면 고난이 닥치게 된다. 베드로전서의 배경이 되는 그 당시에 고난이 시작되는 때이었다. 또한 "음란과 정욕과 술 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숭배"가 난무하던 때이었다. 이러한 때일수록 고난에 넘어지고, 유혹에 빠져들 위험성이 많다. 이러한 세상에 동조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비방을 당한다(4절).
이러한 때일수록 불평하거나 원망해서는 안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이러한 유혹을 받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이러한 상황을 맞이하지 않게 된다. 그리스도도 고난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들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입고 준비해야 한다.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주님이 지켜 보고 계시기 때문이다.
[ 질문 2 ]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올수록 무엇을 더욱 힘써야 할까요?(7-11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한다. 세속적인 유혹을 이겨내고 경건하고 거룩하게 살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고(7절),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한다(8절).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해야 하고(9절), 또한 '각각 받은 은사'를 가지고 공동체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10절).
이것은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 모든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3:13-22 ; 성도가 이 땅에서 의를 위한 고난을 당한다면 이는 복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으나 부활하여 영광의 자리에 오르셨으므로 우리도 고난을 받을 때 올바르게 견디면 영적 유익을 누리게 된다.
4:1-6 ;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고난을 참고 견디어 영적 유익을 누리라는 권면을 한 다음, 과거 죄악된 생활을 청산하고 영생하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하고 있다.
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여러분도 같은 마음으로 무장하십시오. 육신으로 고난을 받은 사람은 이미 죄와 인연을 끊은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신 후 부활하사 영광의 자리에 오르신 예수님의 모범(3:18-22)을 좇아 성도들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입으라고 하신다. 그리스도깨서 고난을 받으신 이유가 "성도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시기 위함"이기 때문이다(2:21).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입으라'는 표현은 군사적인 은유법으로서, 신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대하신 담대한 태도, 경향, 정신 등과 같은 마음으로 무장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즉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을 때에 가지셨던 생각이나 신념을 가지고 빈틈없는 준비를 하라는 의미이다.
당시 성도들은, 황제 숭배를 강요하는 공권력과 뿌리 깊은 토착 신앙 및 과거 전통에 매여서 그리스도인들을 집요하게 박해하는 유대인들로부터 비롯된 갖은 고난에 직면해 있었다. 이러한 고난 가운데 처한 성도들에게는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신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으로 정신 무장해야 하는 것이 요청되었다.
육신으로 고난을 받는 것은 죄와 인연을 끊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고난을 받더라고 그리스도를 본받아 육체의 고난을 이길 수 있도록 갑옷을 입고 무장을 해야 함을 말하고 있다.
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이제부터는 육신의 남은 때를 인간의 욕정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기 때문에 다시는 사람의 정욕을 좇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육체의 남은 때, 즉 그리스도를 믿은 후의 나머지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권면하고 있다.
3.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여러분은 지난 날에, 이방 사람들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하였으니, 곧 방탕과 정욕과 술취함과 환락과 연회와 무분별한 우상 숭배에 빠져서 살았습니다. 그것은 지나간 때로 충분합니다.
음란 ; 성적 욕구를 전혀 자제하지 않는 방탕하고 음란한 행위
정욕 ; 도에 지나치는 욕망
술 취함 ; 과도하게 술을 마시는 것
방탕 ; 술에 취하거나 정신이 해이해져 자신을 가누지 못하는 삶의 모습
향락(한글개역, 연락) ; 술 잔치
무법한 우상 숭배 ; 혐오스러운 우상숭배들. 하나님의 비위에 거슬리고 그의 속성에 적합하지 않은 것들
이러한 죄악된 모습들은 타락과 부패가 만연해 있던 당시 사회에서는 매우 흔하게 자행되던 폐해이며 악습이었다. 바울은 보편화되어 있는 이방인의 악습에서 벗어나야 함을 촉구하고 있다.
4. 이러므로 너희가 그들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그들이 이상히 여겨 비방하나
그들은, 여러분이 자기들과 같이 그런 지나친 방종에 빠지지 않는 것을 이상히 여기면서, 여러분을 비방합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이러한 비방을 듣지 않기 위해 그들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극한 방탕은 아닐지라도 적당한 수준에서 타협하면서 살아간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이방인들로부터 이러한 비방을 듣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이겨 나가야 한다.
극한(솟아 오르다, 넘쳐 흐르다) 방탕 ; 당시 불신자들의 모습 / 쾌락을 추구하되 술이 끓어넘쳐 과도하게 분출되듯이 자제력을 읽고 방탕의 길로 내달리는 모습
5. 그들이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로 예비하신 이에게 사실대로 고하리라
그들은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을 심판하실 분에게 사실을 다 아뢰어야 합니다.
그들이란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는 자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사실대로 고하리라'를 NIV에서는 미래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는 의미를 담아 '반드시 설명해야만 할 것이다(will have to give account)’라고 번역하였다. LB는 이를 ‘그들은 그들이 살았던 방법에 따라서 벌을 받게 될 것이다(they will be punished for the way they have lived)’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번역했다. 이러한 번역들에도 암시되어 있는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하는 자들은 그들의 행위에 대해 장차 하나 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 그들은 생전에 회심하여 새로운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향해 까닭 없이 악의에 찬 비방을 일삼았는데, 최후 심판대 앞에서 그 이유를 낱낱이 설명해야만 하며, 자신들이 행했던 그대로 하나님으로부터 정죄와 모욕을 당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곧 재림하사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고 비방한 자들에게는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시고 고난과 비방 속에서도 끝까지 신앙을 잃지 않은 자들에게는 칭찬과 상급으로 갚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성도들이 당하는 현재의 고난과 비방을 즐거움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이 세상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리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최종 심판과 그에 따른 내세의 삶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그 심판자의 뜻을 쫓아서 오늘을 사는 것이 얼마나 현명하고 아름다운 길인가!
6.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는 육체로는 사람으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을 따라 살게 하려 함이라
죽은 사람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진 것은, 그들이 육신으로는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는 대로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의 방식대로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 주가 되시며, 그리스도인들을 비방했던 불신자들이 그들의 행위에 대해 해명해야 하는데,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이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 심판주가 되시기 위해서 하신 일은 무엇인가?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신 것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재림이 있기 전에 이미 죽은 그리스도인들이 살아 있던 때에 복음 전함을 받았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죽은 자들은 본 서신의 수신자들인 공동체 구성원 중에서 복음을 듣고 회심하여 그리스도인들이 되고 난 후 죽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당시 성도들 사이에서는 살전 4:13-18에서도 암시되어 있듯이 ‘회심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고 나서도 그리스도가 재림하기 전에 죽어버리면 무슨 소용이 있는가’라는 불안 심리가 널리 퍼져 있었다. 즉 회심하였더라도 육체적으로 죽어버리게 되면 소망의 성취가 어렵다고 여겼던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그러한 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살전 4:13-18에서 이미 죽었더라도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게 되면 오히려 살아있는 자들보다도 먼저 부활하여 공중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소망을 성취하게 된다는 사실을 힘주어 말했던 것이다.
베드로 서신의 수신자들이 살았던 소아시아 지역은 박해와 핍박이 다른 곳보다 더욱 심하였다. 그리고 극심한 박해로 인해 죽는 자들이 이곳저곳에서 생겨났으며, 그 모습들을 보고 듣고 있던 수신자들은 자기들에게도 그런 비참한 운명이 닥칠 수 있음을 직시하고 있었다. 또한 그런 정황에서 죽음이 살아서 믿을 때 가졌던 소망을 꺾어버리는 것은 아닌지 불안하였을 것이다. 이에 대해 베드로는 ‘지금은 비록 죽어 땅에 묻혀 있지만 생전에 복음을 들었던 자들이 복음을 듣고 회심한 것이 결코 무익하지 않으며, 비록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그들이 저주받아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들은 영생을 누리게 된다’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J.N.D. Kelly). 이런 사실이 다음 구절인 ‘육체로는 사람처럼 심판을 받으나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려 함이니라’는 표현으로 잘 묘사되어 있다.
이들이 육체로는 세상에서 이미 심판을 당하였다. 이미 죽어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의 생명의 영역인 육체로는 죽음을 당하였을지라도 영원한 생명의 영역인 영으로는 이미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고 있다.
사람이 육체로는 죽을 수밖에 없으나 영으로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이미 복음이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이러한 확신에 찬 베드로의 지적을 통해서 박해 가운데 처해 있던 당시의 본서 수신자들은 다시 한번 신앙의 확신을 기쁨과 소망 가운데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불평하지 말고,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십시오.
원망 없이 하고 ; 그 당시 성도들이 여행자나 가난한 이웃 대접하는 일은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이 때 업신여기거나 불평하지 말고 행하라는 권면이다. 주님께서 모두 갚아 주시기 때문이다.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모두 자기가 받은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답게 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사람답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그에게 있습니다. 아멘.
하나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 이는 은사를 정당하고 정직하게 사용하는 한 가지 실례이다. 곧 성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일치해야 한다.
[ 복있는사람, 2018년 9,10월호 ]
Ⅰ. 고난과 고난으로 인한 죄의 종식 4:1-3
〔1〕 권면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
우리를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1절). 즉 인성에 있어서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즉 "그리스도께서 인성에 있어서 고난을 받으신 것처럼 너희는 자기 부정과 고행으로 죄의 몸을 죽임으로써 너희의 부패한 본성을 고난 받게 하라. 죄를 그치라. 온갖 죄를 대적하는 가장 강하고 가장 좋은 논증들이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신 것에서부터 취해지고 있다. 수난받으신 자로서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동정과 연민은 만일 죄를 없이 하지 않는다면 사라질 것이다. 모든 참된 고행의 시작은 육체에 대한 시련과 곤경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이다.
〔2〕 권면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2절).
소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은 그의 남은 때를 더 이상 육체 가운데서 살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적극적으로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하나님의 나타난 뜻에 스스로 따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의 정욕은 그들의 온갖 사악함으로부터 나타난다. 만일 인간 자신의 타락 때문만 아니었다면 수시로 일어나는 시험들은 효력을 나타내지 못했을 것이다. 참된 회심은 그 회심자의 생활과 마음 가운데서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그것은 그것을 경험한 모든 사람의 마음과 생활을 개조시킨다.
〔3〕 베드로의 권고가 어떻게 주장되고 있는가(3절).
3절의 말씀은 곧 "이전의 너희의 모든 삶을 통하여 너희가 지금까지 좌와 사단을 섬긴 것처럼 이제부터 너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라는 의미이다. 사람이 참으로 회개했을 때 자기의 지난 날의 삶을 어떻게 보냈는가 생각해 보는 것은 그 사람에게 매우 쓰라린 일이 된다. 사람의 의지가 성화되지 못하고 부패되어 있는 동안 그 사람은 계속해서 악한 길을 걷게 되며 따라서 점점 더 악한 상태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용납되어진 한 가지 죄는 또 다른 죄를 초래하게 된다.
본문에는 여섯 가지의 죄가 언급되어 있다.
(1) 음란. 이는 외모, 몸짓 혹은 행동에서 표현되어지는 것이다.
(2) 정욕, 즉 음탕한 행위를 뜻한다.
(3) 술취함.
(4) 방탕, 즉 너무 지나치거나 빈번하고 너무 사치한 것을 말한다.
(5) 연락. 역기서는 과식의 의미가 포함된다.
(6) 무법한 우상 숭배, 즉 이방인의 우상 숭배를 뜻한다. 커다란 악을 삼가하는 것 뿐 아니라 대체적으로 죄악 되다고 여겨지는 것들까지도 삼가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Ⅱ. 세상 사람의 비방과 하나님의 위로 4:4-6
〔1〕 여기서 우리는 이전 생활이 매우 악했던 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눈으로 보이는 변화를 접하게 된다.
그 사람들에 대한 사악한 친구들의 행위를 보도록 하자.
(1) 그들은 자기들의 옛 친구들이 이제까지 해왔던 것처럼 '함께 그런 극한 방탕'에 달음질하지 아니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한다(4절)'.
(2) '그들은 그 친구들에 대해서 비방한다'. 한 번 진실로 회개한 자들은 다시는 그들의 이전 삶의 과정으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어떤 설득이나 비난도 그들로 이전에 했던 것처럼 행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의 기질이나 행동은 경건치 못한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경건치 못한 자들은 이해하지 못한다. 신앙인의 최선의 행동은 불신앙인들의 중상모략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비록 선한 사람들이 이 사랑과 경건과 선의 결실들을 내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그 사람들을 비방할 것이다.
〔2〕 하나님의 종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 여기에 덧붙여지고 있다.
1) 모든 악한 자들은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할 것이다. 악한 세상은 잠시 동안 위대하신 하나님께 하나님 백성에 대한 그들의 모든 사악한 비방들을 직고할 것이다.
2) 이를 위하여 죽은 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었으니(6절). 우리의 죄를 억제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사는 것은 우리에게 전파된 복음으로부터 예상되어지는 결과이다. 하나님께서는 틀림없이 복음이 전파된 모든 자들을 셈하시되 그것으로부터 아무 선한 결실도 내지 못한 자들을 셈하실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을 따라 살고 있다면 육체 안에서 사람을 따라 심판받는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을 것이다.
Ⅲ. 기도, 사랑, 봉사에 대하여 4:7-11
우리는 여기서 한 국면과 그것에서부터 이끌어진 추론을 접하게 된다. 그 국면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박해의 기간은 매우 짧게 된다. 너희 자신의 삶과 너희 원수들의 삶은 곧 극한 시기에 이르게 될 것이다. 또한 세상 자체 역시 그렇게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다. 이것으로부터 나온 추론은 일련의 권고들로 이루어져 있다.
1. 근신하고 깨어 있을 것(7)
너희 자신으로 너희의 이전 죄와 유혹에 얽매어 고통 다하지 않도록 하라(3절). 또한 깨어 기도하라. 즉 "이 마지막이 너희에게 알지 못하게 임하지 않도록 유의하라". 목적을 가지고 기도하는 자들은 '깨어 기도해야' 한다.
2. 사랑할 것(8)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사랑해야 한다. 이 상호 애정은 결코 차가와서는 안되며 뜨거워야 한다. 즉, 신실하고 강하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이러한 신실한 애정이 무엇보다도 먼저 권고되어지고 있다. 이는 그것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사랑의 한가지 탁월한 효과는 그것이 '허다한 죄를 덮는다'는 점이다.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모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간에는 특별한 관계가 있다. 또한 그 안에는 각별한 애정을 요청하는 것으로서 특별한 온화함과 선함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악의를 품지 않는다는가 서로에 대해서 일반적인 존경을 갖는 것으로는 충분치 못하다. 그들은 열심히 뜨겁게 서로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참된 사랑의 특성은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들에 대한 비난을 잊거나 용서하게 해 주며 다른 사람의 죄를 퍼뜨리거나 악화시키기 보다는 덮도록 만들어 준다.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은 그러한 자들을 용서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손길에 긍휼을 예비하는 것이다.
3. 대접할 것(9)
그리스도인의 대접은 서로가 대상이 된다. 이 의무를 시행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즉 '원망없이' 혹은 부담과 근심으로 인한 시비 없이 편안하고 친절하고 알맞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서로가 사랑해야 할 뿐 아니라 대접할 수 있어야 한다.
4. 재능을 활용할 것(11)
〔1〕 선을 행하게 하는 무슨 은사나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지면 우리는 서로 봉사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갖가지 은사를 받고 사용함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단지 청지기로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2〕 베드로는 특별히 두 가지, 즉 말하는 것과 봉사하는 것을 들어 은사에 관한 자신의 교훈의 실례로 삼고 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혹은 가르치려면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해야 한다. 만일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11절).
첫째, 서로 하나님의 일을 말하는 것은 공적인 자리에서의 사역들의 의무일 뿐 아니라 사적인 자리에서의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둘째,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그 말씀을 하나님의 계시에 합당하도록 나타내는 모든 복음 전파자들에게 깊이 관계가 있는 것이다.
셋째, 우리가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무엇을 하든 우리는 우리의 최선을 다할 수 있어야 한다.
넷째, 삶의 모든 의무와 봉사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다른 모든 견해는 이것에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
다섯째, 아버지께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범사에 영광을 받으실 수 있어야 한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마지막 때에 지켜야 할 성도들의 생활 태도(베드로전서 4:7-11)
[ 성경묵상 ]
종말의 때에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첫째,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한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해야 한다.
둘째, 뜨겁게 서로 사랑해야 한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주기 때문이다.
원망하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대접해야 한다.
셋째, 은사에 따라 선한 청지기로서 봉사해야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은사를 받은 청지기의 자세로 봉사해야 한다.
말씀으로 가르치고 선포하는 자와 봉사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과 공급하시는 능력으로 일해야 한다.
결론 : 이러한 성도들의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께 영원한 영광과 권능을 돌려 드리기 위함이다. 그렇게 살 때 모든 일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꼐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 및 표준새번역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삼가 조심하여 기도하십시오.
[ NIV ] The end of all things is near. Therefore be clear minded and self-controlled(자제심) so that you can pray(for the purpose of prayer).
본문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면 '너희는 정신을 차려라. 그리고 기도를 위해 맑은 정신을 유지하여라.'이다.
정신을 차리고(self-controlled) ; 지금 즉시 분별력을 가져라, 마음을 잘 추스려라는 의미 / 성도들에게 자제심을 가지고 환경에 따라 요동하지 말며 냉정하게 자신의 신앙을 지킬 것을 권고한 내용
근신하여(clear minded, 정신을 맑게 하여, 침착하게) 기도하라 ; 고난 중에도 기도하기 위해 마음과 정신을 맑게 하라는 의미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불신자들을 배제한 그리스도인들,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 상호간에 가져야 할 바람직한 신앙 자세 ; 열심히 서로 사랑하는 것
마지막 때를 사는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이토록 중요한 것인가?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주기 때문이다. 사랑이 허다한 죄를 덮어 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불평하지 말고,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십시오.
원망 없이 하고 ; 그 당시 성도들이 여행자나 가난한 이웃 대접하는 일은 일반적인 관습이었다. 이 때 업신여기거나 불평하지 말고 행하라는 권면이다. 주님께서 모두 갚아 주시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일반인들을 위한 숙박시설은 거의 없었고, 있다 하더라도 그 시설은 매우 빈약했다. 그런데 박해의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나그네처럼 이리저리 쫓겨다닐 때에 재정적인 부담 때문에 숙박 시설을 이용하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빈약한 시설에서 제대로 휴식을 취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쫓겨 다니는 성도들에게 후하게 대접하라는 권고의 말씀이다.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모두 자기가 받은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은사는 하나님의 은혜에 기초해서 그 백성에게 주어진 영적 선물을 말한다. 예언이나 방언 등과 같은 특별 은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 가르치는 것, 설교하는 것, 자선을 베푸는 것, 긍휼을 베푸는 것들처럼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섬기는 데 유익한 모든 것을 말한다(롬 12:6-8).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답게 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사람답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영광과 권세가 영원무궁 하도록 그에게 있습니다. 아멘.
'말하는 것'과 '일하는 것'으로 분류된다.
'말할 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선포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신탁'을 전하는 것처럼 신중하고, 또한 신탁을 주신 자의 존귀함과 영광이 잘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일할 때'는 자신들의 특출한 능력 때문에 하는 것으로 착각하거나 그로 인해 자신을 드러내는 교만한 태도를 버리고 그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영광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 이는 은사를 정당하고 정직하게 사용하는 한 가지 실례이다. 곧 성도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일치해야 한다.
미켈란젤로 / 최후의 심판
고난에 참여하는 것을 즐거워하라(베드로전서 4:12-19)
[ 성경묵상 ]
성도는 고난의 때에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기뻐해야 한다(12-13절). 성도를 시련하기 위해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여기고 즐거워해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장차 영광 중에 재림하실 때에 성도들로 하여금 넘치는 기쁨으로 기뻐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인으로 고난 당할 때 하나님께 적극 영광을 돌려야 한다(14-16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욕을 당하면 복이 있는 자이다. 하나님의 영이 주의 이름으로 고난 받은 자들 위에 계신다. 성도는 살인, 도적질, 악행, 남의 일에 대한 참견 등 자기 잘못으로 고난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고난을 받는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히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16절).
하나님께 생명을 의탁하는 자세로 고난을 견디어야 한다(17-19절).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이르러 하나님의 집 곧 교회에서 먼저 임하게 된다. 만일 성도가 시련을 거쳐 가까스로 구원을 얻는다면 경건치 못한 불신자들은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받는 성도들은 고난 중에도 적극 선을 행하며 생명을 하나님께 의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있다. 쉽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때일수록 감사하며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한다.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기에 더욱 선한 일에 힘써야 한다.
[ 질문 하나 ] 고난 당함을 즐거워 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14-16절)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살려고 노력했는데 오히려 고난을 당하기도 한다(14절). 사도 베드로는 이러한 고난에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기뻐하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그 고난이 단련의 기회, 자람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장은 그 고난 가운데 주님이 함께 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14절) 장래에는 영광의 자리에 앉혀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13절).
그러나 살인, 도둑질, 남의 일에 간섭하는 것과 같은 나의 악한 행동으로 인해 고난을 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려야 한다.
[ 질문 둘 ] 하나님의 뜻에 따라 고난 받는 자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19절)
시련의 때, 고난과 어려움은 성도를 더욱 더 단련시킨다. 영적으로 무장하게 하고 알곡들이 더욱 여물어지는 복을 받게 된다.
반대로 핍박은 그리스도를 배반하는 가라지가 누구인지를 드러낸다(17절). 믿지 않는 자들, 불신자들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이유로 고난을 당하는 일을 피하거나, 믿음으로 연단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심판이 다가올 때 피해 달아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해야 한다. 우리의 영혼을 끝까지 지켜주실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갖고 의탁해야 한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을 시험하려고 시련의 불길이 여러분 가운데 일어나더라도, 무슨 이상한 일이나 생긴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은 '너희 가운데서 불타는 고통스러운 시련'으로 이해될 수 있다. 수신자들은 이것을 말뚝에 매여 화형 당하는 순교로 들었을 것이다.
불 시험 : 불 속에서 금속이 제련되는 것과 같이 성도의 신앙을 더욱 견고히 연단시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과 시험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연단 : 의미 없는 단순한 시련이 아닌, 성숙과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한 연단을 말한다. 독수리 새끼가 푸른 창공을 비상하기 위해 낭떠러지 바위 둥지에서 고통스러운 연습의 과정을 수없이 겪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이상히 여긴다 ; 낯선 것에 대해 이상하게 여기고 놀라다는 뜻이다. 박해는 세상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이질삼이 불러온 논리적인 결과일 뿐 아니라 세상이 자신들에게 속하지 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갖는 적의와도 같다.
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오히려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의 영광이 나타날 때에, 여러분이 기뻐 뛰면서 즐거워하게 될 것입니다.
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복이 있습니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위에 머물러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치욕을 당하면 왜 복이 있는 것일까? 그것은 성도의 머리 위에 영광의 영이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는 성도 개개인의 머리 위에 머물러 지속적으로 원기를 회복시키고 있다는 의미이다.
영광의 영이란 모세 시대 광야 이스라엘의 회막 위에 하나님의 구름이 내려앉고 그 영광이 그곳에 충만했던 사실을 연상하게 한다. 순교하는 스데반의 머리 위에 영광의 영이 머물러 있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영안이 열렸다.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여러분 가운데서 아무도, 살인자나, 도둑이나, 악을 행하는 자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서, 고난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 ; 단순히 남의 일에 말 참견하는 것을 넘어서서 남의 것을 탐내거나 가로챔으로써 타인에게 정신적 물질적 피해를 끼치는 자를 가리킨다.
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러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고난을 당하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우리에게서 먼저 시작되면, 하나님의 복음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하겠습니까?
17절은 16절에서 권면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고난을 당할 때 부끄러워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이유를 밝히고 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부터 시작된다면 불신자들에게까지 미치는 것을 두말할 나위 없으며, 그들의 종말이 어떨 것인가는 명약관화하다. 하나님의 심판이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에 신앙 때문에 고난 받는 그리스도인들은 오히려 그로 인해 하나님꼐 영광을 돌려야 한다. 심판으로 선악간에 판단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 ; 하나님의 집은 교회이다(딤전 3:15). 심판은 성소에서부터 시작되며(겔 9:6), 그리스도인의 박해에서부터 시작된다(마 24:8-9). 그러나 이 심판(헬, 크리마)은 '판단'이지 '정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고전 11:32).
18.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의인도 겨우 구원을 받는다면, 경건하지 않은 자와 죄인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 그리스도인들이 불 같은 시련과 고난을 받은 후에 비로소 어렵게 구원을 얻는다면
어디 서리요 ; 그 어디에도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 너무나 확실하다는 표현 / 불신자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따른 하나님의 엄정한 심판을 피하지 못하고 반드시 멸망할 것을 확정적으로 보여주는 표현
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은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고난을 받는 사람은 선한 일을 하면서 자기의 영혼을, 신실하신 창조주께 맡기십시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 ;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하고 그리스도라는 이름 때문에 찾아오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겪는 모든 것은 사단의 시험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에 따라서 된 것이다.
'의탁할지어다'란 '안전한 보관을 위하여 자신을 맡기다'를 의미한다. 신자들은 선하신 그분의 손 안에 있다. 그분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을 미쁘신 조물주에게 맡기도록 요구하신다.
미쁘신 ; 신실하여 믿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당할 때 자신의 노력으로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거나 박해자들에게 앙갚음하려 할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하는 가운데서 신실하신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의탁해야 한다.
고난 중에서 기뻐할 것 ( 4:12-19 )
이 서신에 매 장에서 고난받는 자들로 생각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자주 위로의 말씀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로써 이 새로운 개종자들이 처해 있던 아주 큰 위험이 그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일어나게 된 박해임을 알 수 있다. 베드로는 여기서 그들에게 고난 가운데서 인내할 것이 필요함을 가르친다.
1. 베드로의 친절한 담화의 태도(12)
사랑하는 자들아. 그들은 그의 '사랑하는 자들' 이었다.
2. 그들의 고난과 관계해서 그들에게 주는 베드로의 조언 (13-19)
〔1〕그들은 그 고난들을 이상하게 생각하거나 놀라지 말아야 했다.
1) 그것들이 비록 매섭고 가혹하다 할지라도 이는 단련코자 함이지 결코 멸하고자 해서 의도되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은 오히려 고난 가운데서 즐거워해야 했는데 이는 그들의 고난이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합당하게 일컬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들로 고통 당하셨으며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셨다. 만일 우리가 그의 고난에 참예하는 자들이 된다면 우리는 또한 '그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베드로는 이 환난 당하는 불우한 그리스도인들을 인정하고 있으며 그들을 자기의 사랑하는 자들로 부르고 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역경 가운데 있을 때 피차 가장 사랑하게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불친절과 핍박을 이상하게 여길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는 그것들에 대해서 미리 경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그 모든 것들을 견디셨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극심하고도 고통스러운 고난들을 참아야 할 뿐 아니라 그 안에서 즐거워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즐거이 고난 받는 자들은 영광 가운데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 하게 될 것이다.
2) 베드로는 덜 가혹한 핍박에 대한 언급으로 나아간다(14절).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위해서 혹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욕을 받고 중상을 당하고 비방을 듣게 되는 경우를 뜻한다. 그러한 경우에 그들이 '복 있는자'라고 베드로는 단언한다. "너희는 하나님의 영을 가진 자들로서 그 하나님의 영은 또한 영광의 영이시다. 이 영광의 영께서 너희 위에 임하여 계시다. 고난 가운데서 너희가 인내하고 꿋꿋하게 견딤으로써 그는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그러나 너희에게 주어지는 멸시와 비방에 의해서 성령께서도 친히 비방과 훼방을 받으시게 된다". 선한 사람들의 복됨은 그들의 고난과 일치할 뿐만 아니라 그 고난으로부터 나오기도 한다. 본문의 '복 있는 자로다'가 그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영이 임해있는 자는 그의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결코 비참하게 되어질 수 없다. 선한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방을 받을 때 성령은 그들 안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2〕 그들은 악행하는 자들로 인하여 고난 받는 일이 없도록 유의해야 했다(15절).
그들의 원수들은 이런 저런 좋지 못한 죄를 그들에게 씌웠다. 따라서 베드로는 이러한 경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만일 누구든지' 기독교로 인해서 '고난을 받되' 그리스도인의 영으로 인내하면 그사람은 그 고난을 부끄러워 하지 않으며 그로 인해서 그를 존귀케 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것이다(16절).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나 어리석음 때문에 고난을 받는 것이면 아무런 위로함도 없게 된다. 순교자를 만드는 것은 고난이 아니라, 그 고난의 동기이다.
〔3〕 그들의 심판이 이제 임박했다.(17,18절).
1)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잘할 때가 되었나니(17절).
이 말씀은 성도들로 하여금 인내를 가지고 앞서 말한 모든 권고들을 수행해 나아가게 해준다. 이러한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 있는 자들부터 시작할 것이다. 사악한 세상에 임하게 될 것과 비교해 볼 때 너희의 고통은 가벼운 것이며 짧은 것이다.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마지막이 어떠할 것인가?" 하나님의 가장 훌륭한 종일지라도 때때로 마땅히 하나님께 징계받고 지적 받을 많은 잘못들을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자녀들일 지라도 이생에서 아주 좋지 못한 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의 나쁜 상태는 참을 수 있는 것이며 곧 종식될 것이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자들과 불순종하는 자들을 구분 짓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할 것인가'를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2) 베드로는 사악한 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을 암시하고 있다(18절).
선한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당하는 쓰라린 고난들은 경건치 아니한 자들에게 임하게 될 매우 엄중한 심판의 슬픈 전조인 것이다. 구원받기 위해서는 의인조차 해야 할 일들이 많다. 구원의 절대적 필요성과 그것의 어려움은 양립한다. 먼저 극도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도움을 베풀어주신다.
〔4〕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게 될 때 그들은 자신들의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면서' 주로 그 영혼의 안전에 유의할 수 있어야 한다(19절).
하나님께서는 그 책임을 져주실 것이다. 이는 그가 그들의 조물주가 되시기 때문이다. 선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모든 고난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그들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육신의 안전보다는 영혼의 안전에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이다. 선한 사람들이 그들의 영혼을 담대히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것은 그가 그들의 조물주가 되시며 또한 모든 약속을 신실히 이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 받을 고난 ( 4장 )
본장은 전장 13절부터 시작되는 그리스도인의 고난을 당하는 자세에 관해 계속 언급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본장을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이 고난을 받는 것은 신앙의 연단이므로 고난 가운데서도 사랑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자세를 취해야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심판 때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모든 어려움을 인내하라고 격려하였습니다.
1. 고난을 통한 연단
1) 고난의 의미
사람들은 인생의 시련이나 고난을 성공을 위해 꼭 필요한 과정으로 미화시켜 말합니다. 인생이든지 신앙이든지 시련이 없이는 정상에 올라설 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성도에게 있어 고난은 성화를 위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고 이에 동참하는 자들에게 죄 사함을 주신 것은 성도들이 육체의 고난을 이길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육체의 고난이 죄를 근절케 하거나 용서받는 조건이 될 수는 없으나 이를 제어할 수는 있습니다. 불신자로 살던 과거에는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았으나 성도의 길을 걷는 현재에는 하나
님의 뜻을 좇아 남은 생애를 경건히 살라고 베드로는 권면하고 있습니다.
a.육체로 죽음을 당하심(벧전3:18)
b.죄가 우리를 주관치 못함(롬6:14)
2) 세상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
세상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은 근본적으로 악한 자 곧 사단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에 합당치 못한 일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들을 서슴없이 행하게 되는 법입니다. 이방인의 무절제한 생활을 하는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합니다. 세상의 방탕자들은 항시 벗을 구하며 죄인들은 공범을 찾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성도들을 비방하고 핍박합니다. 성도들은 방탕자들로부터 던져지는 온갖 중상과 비방을 상대하지 말고 인내로써 감수해야 합니다.
a.육체의 일임(갈5:19)
b.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야 함(벧전2:12)
3) 복음과 생명
몸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지만 영은 복음이 제공하는 생명력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살 수 있습니다. 이처럼 복음은 육체의 죽음에 이른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제공하는 능력입니다(참조, 요일3:14).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는 복음의 위대성은 가히 위력적입니다. 복음이 죽은 자에게까지 생명을 주는 목적은 바로 영으로는 하나님처럼 살게 하는 데 있습니다. 복음은 영생을 약속하기에 인간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a.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임(롬8:10)
b.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딛3:7)
2. 마지막 때의 교훈
1)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란 구체적으로 세상의 종말을 가리킵니다. 말세를 당한 성도들은 자신의 신앙 지침으로 정신을 차릴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근신의 삶을 사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매사에 자제력을 갖고 진지하고 분별력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모든 것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따라서 기도에도 힘써야 합니다.
a.그리스도께서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임(고전15:24)
b.자지 말고 깨어 있음(살전5:6)
2) 적극적으로 계명을 실천하라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열심으로 서로 사랑하고 대접하며 선한 청지기와 같이 서로 봉사해야 합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워 줍니다(참조, 잠10:12;약5:20). 그리고 서로 대접한다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의 구체적인 방법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리고 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해야 합니다. 청지기는 그 은사를 사유화해서는 안 되며 주인의 뜻대로 주인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의 뜻대로 충성을 다해야 합니다.
a.인애와 성심으로 대접해야 함(창47:29)
b.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 것(고후6:1)
3)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은 봉사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실천적인 봉사를 할 경우에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힘에 의하여 봉사하는 자처럼 행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사람이 갖기 쉬운 교만이 틈타지 않게 될 뿐만 아니라 주어진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게 됩니다. 또한 그 일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모든 성도들의 궁극적인 삶의 목적은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성도를 자녀로 삼으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a.하나님은 성도의 힘이심(시22:19)
b.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함(고전10:31)
3. 고난과 심판
1) 시험에 대한 성도의 자세
베드로는 성도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했습니다. 고난은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아 가게 합니다. 고난받으신 주를 닮아 가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핍박과 고난 중에서도 즐거워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불 시험을 이상히 여기지 않고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을 즐거워하는 자에게는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예하는 약속이 주어집니다.
a.환난 중에도 즐거워함(롬5:3)
b.하늘에서 상이 큼(마5:12)
2) 성도가 받는 고난의 뜻
베드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욕을 받는 자가 복되다고 했습니다. 이는 그들 위에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깃들기 때문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만일 성도들이 개인적이나 사회적인 범죄의 결과로 고난을 받는다면 그 고난은 죄의 대가에 속하므로 그리스도로 인해 받는 고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받는 고난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그분은 상천하지에 영광을 받으실 유일한 분입니다.
a.선을 행함으로 고난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벧전3:17)
b.성령의 위로가 있음(행9:31)
3)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함
베드로는 하나님의 집인 교회에서 심판이 시작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의 유익을 위해 징계하셔서 거룩함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의 시발점이 될 교회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공동체로 만들어 심판의 날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도록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이라 해서 쉽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불 시험을 통과해서야 겨우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a.의인이라도 이 세상에서 보응을 받음(잠11:31)
b.주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시138:8)
결론
사도 고난 중에도 회피할 것이 고난을 받는 것은 신앙의 연단이므로 고난 중에도 하나님과 이웃을 섬기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저주로 간주하고 회피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뻐함으로 인내해야 하겠습니다. 주께서도 의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은 복된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출처 ; 메튜헨리 주석 |작성자 청지기
'일반서신 - 베드로전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베드로전서 1-3장 핵심 (0) | 2021.01.20 |
---|---|
베드로전서 말씀 묵상 (0) | 2021.01.07 |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삶 (0) | 2021.01.03 |
베드로전서 1장 연구 (0) | 2021.01.03 |
베드로전서 창을 통해 본 복음 (0) | 2020.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