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의 18가지 주요 예언 (렘25:11,12) 그랜드종합주석 예레미야 p309 |
번호 |
주요 예언 |
관련 성구 |
1 |
예루살렘의 파멸 |
렘 1:14-16, 3장, 4:5-9 6:1-6, 38:7-8 |
2 |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
렘 7;11-15, 26;6-9 |
3 |
시드기야의 억류 |
렘 21;3-7, 34:1-5, 37;17 |
4 |
여호아하스가 폐위 당하고 애굽에서 죽음 |
렘 22;10-12 |
5 |
여호야긴 왕의 왕통 단절 |
렘 22;24-30 |
6 |
건전한 포로들에 대한 바벨론의 친절 |
렘 24:1-7 |
7 |
유다 백성들의 70년에 걸친 바벨론의 포로 생활 |
렘 25;11, 29:10 |
8 |
70년 후 바벨론의 패망 |
렘 25;12, 27:7 |
9 |
70년 후 예루살렘으로의 귀환 |
렘 27:19-22, 30:3,18-22 |
10 |
예루살렘의 거짓 예언자 하나냐의 죽음 |
렘 28;13-17 |
11 |
거짓 선지자들에게 임할 여호와의 징벌 |
렘 29;20-32 |
12 |
선민 이스라엘의 회복 |
렘 30;3, 10, 31:8-12 |
13 |
이스라엘의 재건 |
렘 30;18-22, 31;38-39 33:7-9 |
14 |
여호야김의 비극적 최후 |
렘 36;27-30 |
15 |
애굽과 유다 사이의 바벨론 군사 동맹의 실패 |
렘 37:5-10 |
16 |
바벨론의 본토 점령 |
렘 43;9-13 |
17 |
갈그머스 전투에서의 애굽 패배 |
렘 46;1-12 |
18 |
바벨론의 멸망 |
렘 51;54-64 |
70년은 어느 기간을 가리키는가?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렘 25:11)
위의 구절은 유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기록한 것이다. 그 백성들이 거듭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북방의 바벨론을 불러 저들을 심판하셨다(참고, 7:34; 19:9). 그 결과 유다와 반역하는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가 거기서 바벨론을 70년을 섬기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 70년이란 햇수가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되어 있던 연수와 잘 맞지 않는데 있다. 따라서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어 왔다. 그것들을 크게 대별해 보면 두 가지로 문자적인 해석과 비유나 상징적인 해석이다.
먼저 문자적인 해석을 살펴보기로 하자.
문자적인 해석은 여기 70년이 문자적으로 정확하게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되었던 햇수라는 것이다. 이 해석들은 70년이 바벨론 포로기간이라는데는 일치하나 그 시작과 끝에 대해서는 의견이 같지 않다.
1. 주전 587-539년이 그 응징의 햇수라고 한다. 이 기간은 예루살렘의 멸망에서 페르시아(Persians)에 의해 바벨론이 정복될 때까지이다. 그러나 그 전 기간은 50년이 채 안된다.
2. 주전 609-539년을 제시하는 학자도 있다. 이 기간은 앗수르 제국의 종말에서 바벨론의 멸망까지이다. 그러나 이 경우에 609년은 독단적인 년대처럼 보여진다.
3. 주전 581-516년을 선호하는 학자도 있다. 이 기간은 예루살렘의 멸망에서 상징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끝난 것을 가리키는 제 2성전의 건축까지를 가리킨다(C.F. Whitley).
4. 주전 605-536년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는데 그 기간은 신 바벨론의 개국에서 고레스의 칙령으로 첫 유다의 포로들이(단 1:1) 첫 번째로 고향으로 돌아 온 해를 가리킨다(Harrison). 그러나 그 해가 정말 포로의 첫 귀환의 해였는지는 분명하지가 않다.
5. 70년은 바벨론 제국의 존속한 햇수를 가리킨다(605-539년; 참고, 25:12; 29:10; Keil)(1).
그 밖에 주전 587과 520-515 (참고, 슥 1:12)사이로 보기도 하며 주전 587년에서 538년으로(참고, 대하 30:20-23, Right)보는가 하면, 주전 598-538년으로 보기도 한다(2).
그러나 위에서 본대로 문자적인 햇수의 그 어느 해석도 완전히 만족할만한 것은 못된다.
이제 상징이나 비유적인 해석을 살펴보기로 하자.
상징적인 해석으로는 다음과 같은 이론이 있다.
1. 70년을 생의 향년으로 생각한다. 한 세대가 40년을 가리킨다고 볼 때 70년은 유다가 바벨론에 노예 상태로 있었던 기간이 오랜 것을 가리킨다는 것이다(Rudolph, Weiser, Bright, Holladay)(3).
2. 70년은 그 기간이 얼마이든 상관없이 심판의 완전한 기간을 가리킨다. 그 밖에 문자적이면서도 상징적인 의미를 찾으려는 해석이 있다.
왜 포로의 기간이 70년이었는가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 포로기간 70년은 그 백성이 그 땅을 위한 안식의 쉼에 대한 율법을 지키는데 실패한 기간이라고 한다. 그 백성은 매 칠 년마다 땅을 경작을 하지 말고 쉬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 안식의 쉼을 위해서 강제로 그 백성을 그 땅에서 옮기셨다는 것이다(레 26:33-35). 역대기하의 저자는 70년 바벨론 포로는 예레미야가 약속한대로 그 땅이 그 안식의 쉼을 누리게 된 것으로 보았다는 것이다(대하 36:20-21)(4). 그러나 이 해석은 그렇게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는다.
여기서 문자적으로 정확하게 70년을 주장하는 학자들의 해석을 좀더 상세히 설명해 보면 아래와 같다. 정확하게 문자적인 해석을 취하는 학자들은 70년 기간을 주전 605년(혹은 606년)에서 536년 사이로 보는데 그 때는 스룹바벨과 여호수아 아래 정착이 이루어진 때나 주전 586년 즉 바벨론 포로의 시작과 516년 스룹바벨의 성전이 완성된 기간까지를 가리킨다. 따라서 주전 605년에서 (여호야김의 바벨론 포로됨) 고레스가 유대인들에게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허락했을 때인 538년으로 보는 해석은 정치적인 포로기간으로 보는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솔로몬의 성전이 파괴된 주전 586년에서부터 마침내 포로된 백성이 돌아와서 솔로몬의 성전 자리에 새 성전을 완성한 때인 516년까지로 보는 해석은 종교적인 포로 기간으로 보는 해석이라고 할 수 있다(5).
위의 어느 해석을 취하든지 그리 문제될 것은 없다. 우리가 문자적인 해석을 취할 경우는 한치의 오차도 없는 계산으로서가 아니라 개략적이라고 보는 것이 무난할 것 같다. 정확하게 유다와 바벨론 왕들의 통치 연한을 계산해 보면 전체가 69년과 4분의 3년이란 연수가 나온다고 한다(6).
따라서 문자적인 해석에 상징적 해석을 병행한다면 바벨론 포로 70년은 더 이상 난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주
1. F.B. Huey, Jr. Jeremiah, Lamentations(Nashville: Broadman, 1993), p.226
2. Charles L. Feinberg, Jeremiah, E.B.C. Vol.6(Grand Rapids: Zondervan, 1986), p.532
3. Peter C. Craigie, Page H. Kelley, Joel F. Drinkard, Jr. Jeremiah 1-25(Dallas: Word, 1991), p.366
4. John F. Walvoord and Roy B. Zuck, the Bible Knowledge Commentary, Old Testament(Victor Books,
1985), p.1161
5. Larry Richards, Bible Difficulties Solved(Fleming H. Revell, 1993), p.178
6. Charles L. Feinber, Ibid.,
하나님의 뜻에 대한 두 가지 영적원리(렘27:14,15)
“그러므로 당신들은 바벨론의 왕을 섬기게 되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의 말을 듣지 마소서 그들은 거짓을 예언함이니이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니 내가 너희를 몰아내리니 너희와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멸망하리라.”(렘27:14,15)
완벽한 하나님의 섭리
원죄로 타락하긴 했어도 사람은 의외로 의롭게 행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특별히 나라가 멸망의 위기에 처했을 때에 구차하게 항복하여 목숨을 연명하는 것은 너무 비겁하고 또 적국의 노예가 되어 수모 멸시 당하느니 끝까지 결사 항전하겠다고 나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시종일관 유다더러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메시지만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확정되어 있기에 목숨이라도 건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호소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죄에 대한 심판을 해야 했지만 당신 백성들을 향한 당신만의 긍휼의 여지를 남겨두신 것입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고귀한 생명을 보존 번성시키는 것은 결코 구차하지 않으며 도리어 숭고한 일입니다.
현실적으로도 그래야만 망했던 유다를 다시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본문의 결론(22절)에도 하나님은 그런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성전의 기구들이 비록 바벨론으로 옮겨지겠지만 오히려 그것들을 잘 보존하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노예 살이 했던 것이 아브라함의 후손을 창성케 하는 하나님만의 방식이었던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성전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성전기물도 다 탈취해 가겠지만 때가 되면 여호와가 반드시 되돌려 받게 해줄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당장의 인간적 생각으로는 빼앗기지 않는 것이 최선이지 빼앗겼다가 다시 찾는 방식은 불합리하고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완벽한 섭리가 아닌 것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실제로 에스라서 1:7에 바사왕 고레스가 예루살렘에서 탈취했던 여호와의 전의 기구들을 모두 챙겨서 귀환하라는 칙명을 내림으로써 본문의 예언이 성취되었습니다.
문제는 그런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대변하는 자는 예레미야 혼자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선지자들은 항복하지 않는 것이 의롭다고 결연하게 선언합니다. 백성들의 호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또 이전에 빼앗겼던 성건 기물들을 지금이라도 다시 찾아 올 수 있다고까지 예언했습니다.(16절) 예레미야보다 훨씬 더 매력적인(?) 예언이니 백성들이 더 따랐습니다. 저라도 당시 유다 백성이었다면 예레미야는 배척하고 다른 선지자들을 추종했을 것입니다.
반면에 예레미야는 지금 예루살렘에 그나마 남아 있는 성전 기물을 귀하게 여기고 더 이상 빼앗기지 않으려면 성전에 모여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촉구했습니다.(18절) 그러지 않으면 그마저도 빼앗길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22절) 또 이미 빼앗긴 것들을 당장 되돌릴 수 있다는 다른 선지자들의 큰소리에 속지 말라고 합니다. 백성들의 미움을 더 살 수밖에 없습니다.
양쪽 다 성전기물을 지킬 수 있다는 예언을 했습니다. 백성들이 어느 쪽을 따를지 잠시나마 당혹될 이유도 필요도 전혀 없습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에 다수가 가는 쪽을 따라가게 마련입니다. 또 지금 현재 아무 문제가 없다고 보장해주는 쪽을 선호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득세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가지 영적인 공식
그런데 주지할 사항은 무조건 거짓 선지자들을 악하다고 매도해선 안 됩니다. 당시의 국가적 위기 상황을 감안하면 그들에게 애국심이 없었을 리는 없습니다. 그들도 백성들의 안위를 염려했고 여호와를 열심히 믿고 따랐습니다.
예레미야와의 유일한 차이는 15절이 말하는 대로 여호와께 받은 말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예언은 성령의 음성으로 계시 받은 것이 아닙니다. 바꿔 말해 인간적 생각이 더 많았거나 앞섰던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은 항상 인간의 의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치스런 항복보다는 의로운 항전이 옳다고 예언한 것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이 당신의 선민이자 언약 백성더러 그런 수치를 당하게 가만 놓아둘 리가 없다고 섣불리 판단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당신께서 훼손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하시기에 당신의 백성에게도 반드시 선한 일을 할 것이라는 단순한 공식에만 대입한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면 믿는 바대로 하나님은 이뤄주신다는 적극적 신앙을 그때부터 강조했을지도 모릅니다. 백성들을 그렇게 고무 격려하면 바벨론을 대적할 힘도 자연히 키우게 되므로 나쁠 것 없다고 단순히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한 것입니다.
어쨌든 그들의 메시지는 하나님께 받은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소망, 계획, 신념에 불과했습니다. 당장에 자기 생각에 옳거나 좋아 보이는 방안을 채택한 것입니다. 그들은 지난 역사 동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어떻게 간섭했었는지에 대한 검토나 묵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오랜 과거에서 먼 미래에까지 관통하는 하나님의 역사는 일관된 원칙에 따릅니다. 과거를 보면 그분의 미래 행보도 추정이 가능해집니다.
사사시대에서부터 지금까지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숭배의 죄를 범하면 반드시 칼 기근 염병(13절) 같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선하시므로 당신의 백성들에게 선한 일만 베푸신다는 단순한 공식만으로는 부족함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당연히 다른 영적 공식이 필요하고 실제 역사에선 더 많이 자주 실현되었습니다. 진정으로 죄를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은 징계를 멈추고 구원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가증스럽게 여기는 우상숭배의 죄만 범하지 않으면 칼, 기근, 염병의 형벌은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당신 백성을 향한 당신의 뜻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백성을 거룩하게 세우는 것만이 그분의 참 된 의입니다.
지금 유다에 국가적 위기가 닥쳤다는 것은 하나님의 형벌입니다. 그럼 진심으로 우상숭배에서 되돌아서면 그 형벌을 당장이라도 중지 취소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지금이라도 더 이상 형벌이 진행되지 않도록 성전에 모여서 회개하라고 촉구한 것입니다.
반면에 거짓 선지자들은 여호와가 당장 바벨론을 무너뜨리고 빼앗긴 성전 기물까지 되돌려 받게 해줄 것이라고만 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선한 것만 주신다는 첫째 영적원리만 붙들고서 백성들의 인기만 얻으려 듭니다.
방정식의 X 값을 찾으라.
이 두 영적원리를 수학공식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하니까 당신의 백성에게 선한 일만 허락하신다는 첫째 원리는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같은 네 가지 기본 연산(演算)에 해당됩니다. 구구단만 알면 그대로 대입해서 누구나 쉽게 풀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고난의 연단을 허락하더라도 거룩하게 세우길 원하고 그것이 그분의 선이라는 것이 둘째 원리입니다. 하나님이 왜 당신의 선민에게 이런 고통까지 허락하는지 그 뜻을 당장에는 알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푸는 네 연산과 달리 이차 삼차 방정식에서 미지의 X 값을 계산해내어야만 합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눈에 보이는 현상을 쉽게 떠오르는 자기 생각으로만 판단했습니다. 유다가 처한 위기를 단순히 네 가지 연산에만 의존해서 해석했습니다. 반면에 예레미야는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방정식의 미지수를 풀어내듯이 찾아내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거짓 선지자들은 애국심과 신앙심은 있었지만 하나님 앞에 오래 동안 애끓는 심정을 갖고 간절히 엎드리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장의 사람들 반응에만 신경을 쓴 것입니다. 유다왕국의 역사만 잠시 되돌아봐도 되는데 그마저 등한히 했습니다. 자기를 하나님보다 위에 세우려는 인간적인 본성에 묶인 채 자기 생각만으로 말했습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대언하고 가르쳐야 할 선지자가 오히려 백성들 수준으로 낮아졌습니다.
반면에 예레미야는 정말로 쉬지 않고 기도하는 선지자였습니다. 유다의 마지막 다섯 왕을 섬기면서 모든 유다 인들로부터 멸시 비방 박해 당했습니다. 그렇게 당하는 개인적인 고통 때문에라도 하나님 앞에 매일 매순간 엎드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아가 나라와 백성의 앞날을 진심으로 걱정했습니다. 그런 선지자에게 성령이 역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그가 성령의 미세한 음성을 직접 들었는데 어찌 그대로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성령의 계시라고 해서 인간의 상식과 이성을 거스르는 경우는 아주 드뭅니다.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영적 진리는 일관되고 오히려 쉽습니다. 유다의 지난 역사만 회상해도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국제정세만 이성적으로 따져 봐도 차라리 항복하고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할 수 있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계시가 초자연적인 방식으로 단번에 모든 것을 훤히 알게 해주시는 법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과 매일 꾸준히 교제하길 원하십니다. 그분은 지속적이면서 신실한 관계를 더욱 소원하시고 기뻐하시기에 신자도 그렇게 하지 않고는 그분의 은혜를 받아 누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연약합니다. 한 걸음씩 걸음마 하듯이 그분의 이끌음을 받아야만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그런 형편에 맞춰 일상의 삶에서 한 번에 한 번씩만 인도하십니다.
믿음이란 눈앞에 당장 보이는 일로 좌우되지 않는 실력입니다. 오랜 기간 성실하게 그분의 인도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쉬지 말고 그분 앞에 진심으로 엎드려 기도해야 합니다. 그럼 우리도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듣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불신 세상을 향해 그처럼 하나님의 대언자로 얼마든지 설 수 있습니다.
http://whyjesusonly.com/bread_for_the_journey/31768
70년 동안 황폐케 될 것(예레미야 25장)
1-14절, 70년 동안 황폐케 될 것
[1-4절]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4년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원년에 유다 모든 백성에 관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선지자 예레미야가 유다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모든 거민에게 고하여 가로되 유다 왕 아몬의 아들 요시야의 13년부터 오늘까지 23년 동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되 부지런히 일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 그 모든 종 선지자를 너희에게 보내시되 부지런히 보내셨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비롯하여 모든 선지자들을 통하여 부지런히 그의 말씀을 분명하게 전하셨으나, 이스라엘 백성은 완고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5-7절] 이르시기를 너희는 각기 악한 길과 너희 악행에서 돌이키라. 그리하면 나 여호와가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옛적에 주어 영원히 있게 한 그 땅에 거하리니 너희는 다른 신을 좇아 섬기거나 숭배하지 말며 너희 손으로 만든 것을 인하여 나의 노를 격동치 말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해치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너희 손으로 만든 것으로 나의 노를 격동하여 스스로 해하였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악한 길과 악행에서 돌이키라고 말씀하셨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손으로 만든 것들을 섬기거나 숭배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서 증거된다. 성경말씀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사는 것, 즉 인본주의적 삶은 자신을 하나님보다 높이는 자기 우상숭배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노를 일으켜 자신들에게 큰 해가 되게 하였다. 사람의 죄는 하나님의 노를 일으킨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노하시면 사람에게는 큰 해가 된다. 우리가 참으로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죄를 버려야 하고 그럼으로써 하나님의 노를 피해야 한다. 믿음 안에서 의와 선을 실천하는 곳에 하나님의 충만한 평안이 있다(사 48:18).
[8-11절] 그러므로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은즉 보라, 내가 보내어 북방 모든 족속과 내 종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불러다가 이 땅과 그 거민과 사방 모든 나라를 쳐서 진멸(殄滅)하여 그들로 놀램과 치솟거리가 되게 하며 땅으로 영영한 황무지가 되게 할 것이라. 내가 그들 중에서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소리와 등불 빛이 끊쳐지게 하리니 이 온 땅이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며 이 나라들은 70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기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제 징벌을 선언하신다. 그는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내 종’이라고 부르시며 친히 그를 불러와 유다 땅과 그 거민과 그 주위의 모든 나라를 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주권적 섭리자이시다. 그는 온 세상의 심판자이시다. 바벨론 나라를 통해 유다 나라를 멸망시키는 자는 바로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유다 땅과 그 주위 나라들을 쳐서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이다. ‘진멸(殄滅)한다’는 말은 ‘완전히 멸망시킨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들은 놀라게 되고 조롱거리가 될 것이며 그 땅은 영영히 황무지가 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제거하실 것이다. 그들 중에는 기뻐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와 신랑의 소리와 신부의 소리와 맷돌소리와 등불 빛이 끊어질 것이다. 평안과 물질적 여유가 있을 때 잔치도 하고 기뻐할 것이지만,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그 온 땅은 황폐하여 놀램이 될 것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유대 나라와 그 주위의 나라들이 70년 동안 바벨론 왕을 섬길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70년 포로생활은 참으로 고통의 긴 기간이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일제 36년간의 고통을 경험하였고 이북 동포들은 해방 후 70년이 넘게 억압된 사회에서 살고 있다.
[12-14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70년이 마치면 내가 바벨론 왕과 그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인하여 벌하여 영영히 황무케 하되 내가 그 땅에 대하여 선고한 바 곧 예레미야가 열방에 대하여 예언하고 이 책에 기록한 나의 모든 말을 그 땅에 임하게 하리니 여러 나라와 큰 왕들이 그들로 자기 역군을 삼으리라. 내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손의 행한 대로 보응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나라와 그 주위의 나라들을 심판하는 도구로 바벨론 왕과 그 나라를 사용하실 것이지만, 때가 되면 바벨론 왕과 그 나라의 죄악에 대해서도 징벌하실 것이다. 그때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복의 때가 될 것이다. 70년 포로생활은 그 후의 해방을 암시한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죄인들을 다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고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그들을 구원하는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들의 생각대로 행하다가 망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성경 교훈대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여 구원을 받고 죄를 버리고 성화를 이루고 의와 선을 행하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진노는 엄위하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백성에게라도 완전한 멸망과 70년 포로생활이라는 무서운 징벌을 내리신다. 오늘 우리도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다(롬 8:13). 히브리서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우리는 악한 행위들을 회개하고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바벨론 70년 포로생활의 선언은 70년 후의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을 암시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70년 후에 고국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긍휼의 구원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긍휼로 구원을 얻는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항상 그 은혜 안에 거하자.
15-38절, 하나님의 열국 심판
[15-26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손에서 이 진노의 잔을 받아 가지고 내가 너를 보내는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라.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치리니 이는 내가 그들 중에 칼을 보냄을 인함이니라 하시기로 내가 여호와의 손에서 그 잔을 받아서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신 바 그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되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그 방백들로 마시게 하였더니 그들이 멸망과 놀램과 치소와 저주를 당함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또 애굽 왕 바로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방백들과 그의 모든 백성과 모든 잡족과 우스 땅 모든 왕과 블레셋 사람의 땅 모든 왕과 아스글론과 가사와 에그론과 아스돗의 남은 자와 에돔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두로의 모든 왕과 시돈의 모든 왕과 바다 저편 섬의 왕들과 드단과 데마와 부스와 털을 모지게 깎은[혹은 ‘땅끝에 있는’(KJV, NIV)] 모든 자와 아라비아 모든 왕과 광야에 거하는 잡족의 모든 왕과 시므리의 모든 왕과 엘람의 모든 왕과 메대의 모든 왕과 북방 원근의 모든 왕과 지면에 있는 세상의 모든 나라로 마시게 하니라. 세삭 왕은 그 후에 마시리라.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를 보내어 유다 나라를 비롯하여, 애굽, 우스, 블레셋, 에돔, 모압, 암몬, 두로, 시돈, 드단, 데마, 부스, 아라비아, 시므리, 엘람, 메대, 북방 원근 나라들 등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다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게 하셨다고 말한다. 세삭 왕은 그 후에 마실 것이다. ‘세삭’은 ‘바벨론’을 가리킨다(알파벳의 순서를 거꾸로 말하는 아트바쉬 표현법). 모든 나라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받고 비틀거리며 미칠 것이다. 그것은 세계적인 전쟁을 가리켰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온 세상의 나라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창조자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의 심판자이시다. 그의 심판을 받지 않을 나라는 없다. 그는 이스라엘 나라부터 심판하신다. 신약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교회들부터 잘못된 점들을 징벌하실 것이다(벧전 4:17).
[27-29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마시라. 취하라. 토하라. 엎드러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말라. 이는 내가 너희 중에 칼을 보냄을 인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그들이 만일 네 손에서 잔을 받아 마시기를 거절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가 반드시 마시리라. 보라, 내가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성에서부터 재앙 내리기를 시작하였은즉 너희가 어찌 능히 형벌을 면할 수 있느냐? 면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칼을 불러 세상의 모든 거민을 칠 것임이니라 하셨다 하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진노는 특히 칼로 묘사되었다(16, 27, 29, 31절). 그것은 전쟁을 가리켰다. 전쟁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표적인 방법이다. 우리나라에도 혹시 전쟁이 일어나면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유다 나라 멸망기에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나라와 그 군대를 그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다. 온 세상의 마지막 심판에도 그럴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강대한 나라들을 들어 많은 나라들을 징벌하실 것이다. 주의 재림 직전에는 세계적 전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유브라데스 강 부근에서 일어날 2억명이 동원될 큰 전쟁과 아마겟돈 전쟁으로 예언되어 있다(계 9:14-16; 16:14-16).
[30-31절] 그러므로 너는 그들에게 이 모든 말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높은 데서 부르시며[표호하시며](roar)(KJV, NASB, NIV) 그 거룩한 처소에서 소리를 발하시며 그 양의 우리를 향하여 크게 부르시며[표호하시며] 세상 모든 거민을 대하여 포도 밟는 자같이 외치시리니 요란한 소리가 땅끝까지 이름은 여호와께서 열국과 다투시며 모든 육체를 심판하시며 악인을 칼에 붙이심을 인함이라 하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의 심판의 이유는 언제나 하나뿐이다. 그것은 죄 때문이다. 마지막 열국 심판도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칼에 붙이시는 심판이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신다. 그는 말씀을 무시하고 죄를 회개치 않는 자들을 마침내 전쟁의 칼로 심판하실 것이다.
[32-38절]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재앙이 나서 나라에서 나라에 미칠 것이며 대풍이 땅끝에서 일어날 것이라. 그 날에 나 여호와에게 살륙을 당한 자가 땅 이 끝에서 땅 저 끝에 미칠 것이나 그들이 슬퍼함을 받지 못하며 염습함[씻고 수의를 입힘]을 입지 못하며 매장함을 얻지 못하고 지면에서 분토[쓰레기, 똥]가 되리로다. 너희 목자들아, 외쳐 애곡하라. 너희 양떼의 인도자들아, 재에 굴라[딩굴라]. 이는 너희 도륙을 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찼음인즉 너희가 귀한 그릇의 떨어짐같이 될 것이라. 목자들은 도망할 수 없겠고 양떼의 인도자들은 도피할 수 없으리로다. 목자들의 부르짖음과 양떼의 인도자들의 애곡하는 소리여, 나 여호와가 그들의 초장으로 황폐케 함이로다. 평안한 목장들이 적막하니 이는 여호와의 진노[불붙는 진노]의 연고로다. 그가 사자같이 그 소혈[처소]에서 나오셨도다. 그 잔멸하는 자의 진노와 그 극렬한 분으로 인하여 그들의 땅이 황량하였도다.
하나님의 심판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 날은 재앙의 날이다. 심판자 하나님께서는 부르짖는 소리를 내는 맹수처럼 심판자의 위엄을 가지시고 나타나실 것이다. 그 날은 회리바람이나 폭풍처럼 무서운 재앙의 바람이 부는 날이다.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할 것이며 염습함이나 매장함을 얻지 못할 것이다. 귀한 그릇 같은 자들이 땅에 떨어질 것이다. 온 땅은 황폐하고 적막해질 것이다.
본문은 두 가지를 교훈한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열국의 심판자이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지막 열국 심판을 예언한다. 주께서는 곡식과 가라지 비유나 양과 염소 비유에서 세상 끝날에, 곧 그가 재림하실 때 열국 심판이 있다고 말씀하셨다(마 13:39-42; 25:31-33). 세상의 마지막 심판 날이 작정되어 있다(행 17:31; 롬 2:5, 16). 그 날에 산 자와 죽은 자, 의인들과 악인들이 다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계 20:11-15).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에 순종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온 세상의 창조자와 섭리자와 심판자로 인정하고 또 그를 구주로, 또 복의 근원으로 알자. 우리는 하나님만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만 소망하자. 그의 뜻과 그의 계명만 순종하자. 하나님의 뜻은 거룩과 의와 선이다. 죄는 멸망의 원인이며 의는 평안의 원인이다. 우리는 의와 선만 행하자.
http://www.oldfaith.net/01exposit/01ot/1-24예레미야.htm#25장
예루살렘이 황폐케 될 것임(예레미야 22장)
1-12절, 유다 왕에 대한 경고
[1-3절]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는 유다 왕의 집에 내려가서 거기서 이를 선언하여 이르기를 다윗의 위(位)[왕위]에 앉은 유다 왕이여, 너와 네 신하와 이 문들로 들어오는 네 백성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가 공평과 정의를 행하여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국한문, ‘압박’)하거나 학대하지 말며 이곳에서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의 가족들과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명하셨다. 첫째는 “공평과 정의를 행하라”는 것이다. 공평과 정의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치우침 없이, 편벽됨 없이 행하는 것이다. 둘째는 “탈취 당한 자를 압박하는 자의 손에서 건지고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거나 학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말고 선을 베풀어야 한다. 셋째는 “무죄한 피를 흘리지 말라”는 것이다. 무죄한 자를 정죄하고 죽이는 행위는 참으로 악한 행위이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명하시는 바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의 요점이다.
[4-6절] 너희가 참으로 이 말을 준행하면 다윗의 위(位)에 앉을 왕들과 신하들과 백성이 병거와 말을 타고 이 집 문으로 들어오게 되리라마는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내가 나로 맹세하노니 이 집이 황무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과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계명대로 공의와 선을 행하면 그 왕위와 궁궐이 계속 보존되고 유지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복은 조건적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조건 위에 약속된 복이다. 그러나 만일 계명대로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벌을 받을 것이며 그 집이 황폐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도 이치는 같다. 죄를 짓는 사람은 복 받기를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이 의를 행할 때에만 하나님의 복을 기대할 수 있다.
[6-9절] 나 여호와가 유다 왕의 집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네가 내게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꼭대기 같으나 내가 정녕히 너로 광야와 거민이 없는 성을 만들 것이라. 내가 너 파멸할 자를 준비하리니 그들이 각기 손에 병기를 가지고 네 아름다운 백향목을 찍어 불에 던지리라. 여러 나라 사람이 이 성으로 지나며 피차 말하기를 여호와가 이 큰 성에 이같이 행함은 어찜인고 하겠고. 대답하기는 이는 그들이 자기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을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긴 연고라 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의 집이 지금 길르앗 같고 레바논의 꼭대기 같다고 말씀하신다. 길르앗은 요단 동쪽의 비옥한 초원이고 레바논은 요단 서북쪽의 나무들이 울창한 산이다. 이것은 그 당시 유다 땅이 경제적으로 유여함을 누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참으로 광야와 거민 없는 성을 만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파멸할 자를 준비하실 것이며 그들이 예루살렘 성을 멸망시킬 것이며 그러면 유다 땅은 황폐한 곳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실 ‘파멸할 자’는 바벨론 나라이다. 하나님께서는 세계 역사를 주관하시고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주장하신다. 유다 나라가 멸망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고 그의 언약을 어기고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들을 섬긴 까닭이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이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를 섬기고 그의 명하신 대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사람의 기본적 의무이다. 그 기본적 의무를 저버릴 때 사람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게 되는 것이다.
[10-12절] 너희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말며 그를 위하여 애통하지 말고 잡혀간 자를 위하여 슬피 울라. 그는 다시 돌아와서 그 고국을 보지 못할 것임이니라.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곧 그 아비 요시야를 이어 왕이 되었다가 이곳에서 나간 살룸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고 잡혀간 곳에서 죽으리니 이 땅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를 위해 울지 말고 잡혀간 자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이방에 포로로 잡혀간 자들은 다시 돌아와서 고국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또 요시야의 아들 살룸에 대해 예언하셨다. 살룸은 여호아하스이다(왕하 23:30; 대상 3:15). 하나님의 예언대로 살룸 곧 여호아하스는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애굽에서 죽었다. 열왕기하 23:34,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잡아갔더니 저가 거기서 죽으니라.”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과 요구를 유념해야 한다. 하나님의 명령과 요구는 우리가 모든 악을 버리고 의롭고 선하게 살라는 것이다. 미가 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자비]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계명대로 의롭고 선하게 살아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경고도 유념해야 한다. 하나님의 경고는 죄 지으면 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입술로만 주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형식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말고 죄를 버리고 의와 선을 실천을 해야 한다. 마태복음 7: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4-27,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로마서 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은혜로 구원받은 성도도 죄를 지으면 반드시 죽을 줄 알고 늘 조심해야 한다.
13-30절, 유다 왕의 죄
본장 앞부분은 유다 왕 여호아하스에 대해 증거했고 본문은 유다 왕 여호야김과 여호야긴에 대해 증거한다. 그들은 다 악한 왕이었다.
[13-15a절] 불의로 그 집을 세우며 불공평[불법]으로 그 다락방을 지으며 그 이웃을 고용하고 그 고가(雇價)를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가 이르기를 내가 나를 위하여 광대한 집과 광활한 다락방을 지으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창을 만들고 그것에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으로 칠하도다. 네가 백향목으로 집 짓기를 경쟁하므로 왕이 될 수 있겠느냐?
본문은 문맥으로 볼 때(18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죄를 증거하는 것 같다. 그는 불의와 불법으로 궁궐과 그 다락방을 지으며 사람을 고용하고 그 임금을 주지 않았다. 또 그는 사치스럽게 살았다. 그는 자신을 위해 광대한 집과 다락방을 지었고 창을 만들고 백향목으로 입히고 붉은 빛을 칠하였다. 왕은 백성을 살피고 공의로 통치하는 일에 힘써야 하는데 호화로운 왕궁이나 짓는데 열심을 내었던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서는 검소하고 절약하며 하나님의 일, 선한 일을 위해서는 열심을 내고 돈도 쓸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15b-17절] 네 아비가 먹으며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공평과 의리를 행치 아니하였느냐? 그때에 그가 형통하였었느니라. 그는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신원(伸寃)하고[억울한 사정을 들어주고] 형통하였나니 이것이 나를 앎이 아니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나 네 눈과 마음은 탐남[탐람]과 무죄한 피를 흘림과 압박과 강포[강탈](NASB, NIV)를 행하려 할 뿐이니라.
여호야김의 아버지 요시야는 경건한 왕이었다. 그는 먹고 마시는 일에 힘쓰지 않고 공평과 의리를 행하는 자, 곧 법대로 공의롭게 행하였다. 그는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의 억울한 사정을 들어주었다. 그때 그는 형통하였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을 안다는 증거이었다. 하나님을 아는 자,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뜻대로 공의와 사랑을 실천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여호야김은 눈과 마음이 탐욕으로 가득하였고 무죄한 피를 흘렸고 압박과 강탈을 행하려 할 뿐이었다.
[18-19절]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유다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무리가 그를 위하여 슬프다 내 형제여, 슬프다 내 자매여 하며 통곡하지 아니할 것이며 그를 위하여 슬프다 주여, 슬프다 그 영광이여 하며 통곡하지도 아니할 것이라. 그가 끌려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하리라.
백성들은 왕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왕은 예루살렘 성문 밖에 끌려 내던지우고 나귀같이 매장될 것이다. 사람의 가치가 무엇인가? 외모와 재산과 사회적 신분이라는 것이 무슨 가치가 있는가?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 악인의 가치는 나귀의 가치같이 될 것이다.
[20절] 너는 레바논에 올라 외치며 바산에서 네 소리를 높이며 아바림에서 외치라. 이는 너를 사랑하는 자[너의 사랑하는 자들](KJV, NASB)가 다 멸망하였음이니라.
레바논은 이스라엘 북방 지역이며 바산은 요단 동쪽 땅이다. 아바림은 이스라엘 남쪽, 사해 동북쪽의 산악지역이다. 유다 나라의 멸망을 온 사방에서 외치라는 뜻이다. ‘너의 사랑하는 자들’이라는 말은 애굽 나라나 앗수르 나라 같은 동맹국들을 가리키는 것 같다.
[21절] 네가 평안할 때에 내가 네게 말하였으나 네 말이 나는 듣지 아니하리라 하였나니 네가 어려서부터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 네 습관이라.
이스라엘 백성은 평안할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다. 그들은 어려서부터, 즉 애굽에서 나오던 건국 초기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것이 습관이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읽고 듣는 행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규칙적으로 하루 세 끼 밥을 먹듯이, 자신의 나름대로의 좋은 생활 규칙이나 습관을 가지듯이, 우리는 성경 읽고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우리는 경건하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어 실제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좋은 습관은 좋은 인격을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22-23절]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키울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네가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을 인하여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레바논에 거하여 백향목에 깃들이는 자여, 여인의 해산하는 고통 같은 고통이 네게 임할 때에 너의 가련함이 얼마나 심하랴.
이스라엘 백성의 목자들, 즉 왕과 방백들은 다 환난의 바람에 삼키울 것이며 동맹국들도 다 사로잡혀갈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악을 인하여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다. 유다의 왕과 방백들은 레바논 백향목으로 집을 꾸몄으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때 그들은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 같은 고통을 당할 것이며 심히 가련한 자가 될 것이다.
[24-27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너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印章斑指)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너의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미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에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서 죽고 너희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 곧 여호야긴은 하나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印章斑指)같이 귀중할지라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내어준 바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버리실 때에는 아무리 귀한 사람이라도 엄하게 쳐서 버리실 것이다. 유다 백성도 그와 함께 타국에 포로로 잡혀갈 것이다.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오기를 사모하지만 돌아오지 못하고 타국에서 죽을 것이다.
[28-30절] 이 사람 고니야는 천한 파기(破器)냐? 좋아하지 아니하는 그릇이냐? 어찌하여 그와 그 자손이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땅에 들어갔는고?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이 사람이 무자(無子)하겠고 그 평생에 형통치 못할 자라 기록하라. 이는 그 자손 중 형통하여 다윗의 위(位)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사람이 다시는 없을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왕 여호야긴을 깨뜨려진 천한 그릇처럼 취급하실 것이다. 여호야긴과 그 자손들은 쫓겨나서 알지 못하는 이방 땅에 들어갈 것이다. “땅이여, 땅이여, 땅이여, 여호와의 말을 들을지니라”는 말씀은 유다 땅, 곧 유다 거민들이 하나님의 이 심판 선언을 가볍게 듣지 말고 마음에 새겨들으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땅이여”라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하시면서 강조하신다. 여호야긴의 자손 중에는 왕위를 계승할 자가 없을 것이다. 과연 여호야긴은 아들이 일곱 명 있었으나(대상 3:17) 아무도 왕위를 계승치 못하였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여호야김같이 하지 말아야 한다. 그는 불의와 불법, 사치와 탐욕, 의인 핍박, 강포와 강탈 등의 죄를 지었다. 그는 마침내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워 나귀같이 매장될 것이며 유다 땅은 수치와 곤욕을 당할 것이다. 죄의 값은 죽음이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의 불행들과 육신의 죽음과 지옥 형벌을 포함한다.
둘째로, 아무리 존귀한 자라도 범죄하면 비천해진다. 여호야김은 예루살렘 문밖에 던지워 나귀같이 매장함을 당할 것이다. 그의 아들 여호야긴은 하나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빼어져 원수들의 손에 주어질 것이다. 그는 깨진 천한 그릇처럼 버려질 것이다. 사람의 가치는 무엇인가? 그것은 외모나 재산이나 사회적 신분에 있지 않다. 경건과 도덕성이 없는 사람은 가치가 없다. 그는 결국 비천해질 것이다.
셋째로, 우리는 여호야김의 부친 요시야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와 선을 행해야 한다. 요시야는 경건했고 공의를 행했고 가난한 자들을 돌아보는 선한 정치를 하였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이 의를 행하고 선한 마음, 인자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다. 범죄하는 자는 멸망할 것이나, 의와 선을 행하는 자는 평안하고 형통하며 영생에 이를 것이다.
http://www.oldfaith.net/01exposit/01ot/1-24예레미야.htm#22장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는 유일한 길
(렘24:1-3)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냐와 유다 고관들과 목공들과 철공들을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옮긴 후에 여호와께서 여호와의 성전 앞에 놓인 무화과 두 광주리를 내게 보이셨는데 한 광주리에는 처음 익은 듯한 극히 좋은 무화과가 있고 한 광주리에는 나빠서 먹을 수 없는 극히 나쁜 무화과가 있더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하시매 내가 대답하되 무화과이온데 그 좋은 무화과는 극히 좋고 그 나쁜 것은 아주 나빠서 먹을 수 없게 나쁘니이다 하니.“(렘24:1-3)
순종에는 지각이 없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처음 익은 좋은 무화과와 썩어서 못 먹는 무화과 두 광주리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먼저 당시의 상황을 알아야 합니다. 유다가 완전히 멸망당하기 전에도 느부갓네살 왕은 수차례 유다를 침공하여 괴롭혔습니다. 여호아긴 왕이 바벨론에게 조공을 바치기로 계약을 맺고는 마음을 바꿔 반 바벨론 정책을 수행하자 응징하려고 BC 597년에 쳐들어와 왕족 고관 우수한 기술자들 만 명을 포로로 잡아갔습니다.(1절) 그 후에 유다 백성들이 절망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이 선지자에게 보여준 환상입니다.
그런데 환상과 그 예언에서 언뜻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하나 있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좋은 무화과에 해당되고 하나님이 잘 돌보아줄 것을 약속하고 있다는 것입니다.(4-7절) 반면에 유다 땅에 남아있는 자들은 나쁜 무화과로 모든 나라의 수치가 되어서 칼과 기근과 전염병의 형벌을 받고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멸절 된다고 예언했습니다.(8-10절)
포로로 잡혀 간 자들이 지도층으로 고귀한 신분이라 그렇다면 차별하는 하나님이 되므로 그럴 리는 없습니다. 포로로 잡아가느냐 남겨두느냐는 순전히 느부갓네살 왕이 정하는 것입니다. 남아있는 사람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도 왜 하나님께 나쁜 대우를 받아야 합니까?
그 이유는 예레미야 선지자가 계속 선포했던 하나님의 메시지 때문입니다. 더 정확히는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당신의 구원과 심판 원리를 밝히려했던 것입니다. 문자적 의미대로 그 둘을 구분해 차별 대우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인간 사회에선 대적이 침입하면 끝까지 항거하다 전멸당하는 것이 최고의 의로 간주됩니다. 그래서 국가적 위기에선 항상 강경하게 저항하자는 파가 득세를 합니다. 성경의 진리는 다르고 특별히 예레미야 선지자는 정반대였습니다. 초지일관 바벨론에게 항복하는 것만이 살 길이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습니다.
본문의 상황은 아직 완전히 멸망당하기 전입니다. 아무리 하나님 뜻대로 항복한다 해도 바벨론이 유다 백성 전부를 포로로 잡아갈 수는 없습니다. 포로로 잡혀갔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님의 특별대우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어쨌든 선지자가 지속적으로 전하는 예언을 여호와의 말씀으로 인식했다면 언제든 그대로 따랐어야만 했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이 당대와 가까운 미래와 최후의 심판의 날까지 포괄적으로 적용될지라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이라면 듣자마자 바로 순종해야만 합니다. 그분의 뜻을 따르는데 유보와 지체는 있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를 완전히 멸망시키려 왔을 때라도 사실은 늦은 것이 아닙니다. 그 때라도 완전히 항복하면 아무리 포악한 느부갓네살이라도 바벨론 군대가 피해를 전혀 입지 않았기에 아무래도 더 포용적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당신께서 도구로 사용하신 이방인들의 안위도 배려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심판의 두 가지 전제
하나님이 행하시는 사역은 이처럼 때로는 인간의 이성적 판단과 모순 상충 아니 정반대일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누구의 뜻이 옳고 선하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니까 인간 생각으로 이상하다 싶어도 그분의 말씀이라면 듣자마자 곧바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그분은 신실하십니다. 그러니까 언제 들어도 바로 그 때에 순종해야 하고 그러면 그분이 반드시 합력하여 선으로 결실 맺어주십니다. 하나님께 회개 순종함에는 지체 유보도 없지만 지각도 없습니다.
유다에 남은 자가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보다 도덕적 종교적으로 더 사악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오직 당신의 말씀에 귀를 기울었는지 여부로만 구원과 심판으로 나눕니다. 당신만이 유일하고 절대적 선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분께 순종하지 않으면 그분의 벌을 받기 전에 그 자체로 이미 그분의 온전한 선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 독재자가 자기 말 듣지 않는 백성에게 제 멋대로 권력을 휘두르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분의 심판에는 두 가지 절대적 전제가 있음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첫째는 모든 인간이, 신자를 포함해 스스로는 아무리 노력해도 하나님이 언제든 죽여도 마땅한 죄인이라는 것이며 그런 상태는 죽을 때까지 지속됩니다. 그렇게 가난한 영적 실상은 천국에 가서야 종식됩니다. 그러니까 이 땅에선 더더욱 하나님께 항상 순종해야만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아무나 자기 멋대로 심판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언제라도 순종한 자를 당신께서 변화 성장시켜서 열매를 맺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자도 그러지 않은 사람과 똑 같은 죄인임에도 순종한 자만이 하나님의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언제라도 그분께 겸손히 엎드리면 거룩한 생명으로 이끌 계획을 다 마련해 놓았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이 바벨론에서 겪을 상황이 어떠합니까? 화려, 사치, 풍요, 쾌락이 범람하고 우상숭배가 만연하는 사악하고 음란한 모습을 일상적으로 볼 것입니다. 결국 그들 앞에 하나님은 생명과 죽음의 두 가지 길을 놓아둔 것입니다. 현실의 겉모습에 빠져서 영원한 멸망에 떨어질 것이냐, 아니면 그것들이 아무리 화려해도 헛되고 헛된 것으로 거짓의 아비 사탄의 농간이요 미혹임을 깨닫고 하나님께 완전히 돌아올 것이냐입니다. 악을 겪어야 선을 알 수 있는데 최고의 악을 보면 최고의 선으로 전향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행함 이전에 인간의 책임
그런데 이 원리는 남아있는 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바벨론이 점령했기에 일본이 한국을 강점했을 때처럼 바벨론에서 군대, 관리, 부자 장사치들이 이주해 와서 새로운 지배계급을 형성합니다. 또 그들은 본토에서 행했던 풍습대로 사치, 향락, 우상숭배의 죄악상을 연출하게 됩니다.
유다 땅에서도 하나님은 여전히 생명과 죽음의 길을 당신의 백성 앞에 열어놓습니다. 그 둘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하고 어떻게 행할 것인가는 즉, 순종 혹은 거역은 이스라엘의 결단에 달렸습니다. 마치 하나님이 좋은 무화과와 나쁜 무화과 둘로 나눈 것처럼 설명되어 있어도 실은 인간 이스라엘에게 그 중 하나를 선택하고 실천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어느 쪽에 회개의 가능성이 더 높겠습니까? 아무래도 포로로 잡혀간 자들입니다. 유다에 남은 자들은 익숙한 풍토 기후 관습아래 이전 직업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습니다. 생활환경이나 이웃 사람에도 변화가 없습니다. 단순히 지배계층만 바뀐 것뿐입니다.
일제 강점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조금 상황은 다르지만 의식이 깨어있고 나라를 생각하는 자들은 해외로 출국 망명하여서 실력을 쌓거나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도 그렇게 잡혀온 것부터가 하나님의 형벌임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아무래도 두고 온 조국을 더 생각하고 하나님의 언약백성임을 다시 기억하게 됩니다.
바벨론에 도착하자마자, 아니 포로로 잡혀가는 순간부터 진정으로 회개할 것입니다. 실제로 바벨론에서 돌아오자 영적부흥운동이 벌어졌습니다. 하나님이 포로들을 돌보아 돌아오게 하고 그들이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겠다고 약속하신 뜻입니다.(4-7절)
하나님의 역사가 인간의 이성과 모순 상충을 보일 때에 정확히 분별하여서 진정으로 회개하고 더욱 헌신해야 합니다. 신자라면 항상 그래야 하지만 특별히 죽음과 생명의 두 길로 나뉘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포로로 잡혀가는 것처럼 사방이 막히는 고난이 겹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잘못 분별하면 자칫 되돌릴 수 없는 길로 빠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겉으로 보기에 아주 화려하고 심지어 하나님이 주신 풍요 같을 때도 있는데 마찬가지로 혹시 광명한 천사로 위장한 사탄이 배후에 없는지 더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제대로 분별할 수 있습니까? 아주 간단합니다. 예레미야가 그 답입니다. 그는 수십 년 간 동일한 메시지만 전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끊임없이 기도한 결과입니다. 그도 처음에는 하나님의 항복하라는 뜻이 이해도 안 되고 마음에 차지 않아서 대들고 계속 씨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이 그 말씀밖에 안 주시니까 그랬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소에 기도하고 말씀에 정진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구체적인 매뉴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절대적이고 영원한 영적인 원리와 이 세상과 신자를 다스리는 기준을 알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성령에 자신의 영을 오픈하면 그분의 미세한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최소한 어느 길로 가선 안 된다는 것은 반드시 알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시기에 그분의 뜻을 알고 순종하려면 신자도 신실해지는 길 말고는 없다는 뜻입니다. http://whyjesusonly.com/bread_for_the_journey/31562
거짓 선지자들은 누구였는가?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렘 23:31)
선지자는 누구인가? 선지자란 말은 헬라어 푸로페테스에서 왔는데 그 말의 뜻은 앞에서 말한다. 또는 위해서 말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선지자는 선언의 의미에서 앞에서 말하는 사람 또는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말하는 사람이다.
구약에는 선지자란 말이 세 가지로 나오는데 로에, 나비 그리고 호제이다. 그 중에 나비란 말이 보편적으로 쓰였는데 그 뜻은 증거나 증언하는 자를 가리킨다. 선지자는 스스로 될 수 없었고 하나님이 초대하시고 부르시고 강권하시므로 되었다(렘 20:7)(1). 따라서 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 주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늘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구약 시대에도 거짓 선지자가 많았다.
위의 본문은 바로 이런 거짓 선지자들을 다루고 있다.
그러면 거짓 선지자는 누구인가?
30절에서 32절까지 세 번 하나님께서 거짓 선지자를 대적하신다는 말씀이 나오며 그 구절들은 불경한 선지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적대의 언급으로 시작한다.
그 첫 번째 그룹은 참 선지자들의 예언들을 훔쳐서 제 것인 양 거짓말하는 선지자들이다(30절). 그들의 말은 남의 것을 훔쳐 온 것이지 그들 자신의 것이 아니다.
두 번째 그룹은 그들의 속임에서 주무기로 혀를 사용하고 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들의 혀를 마음대로 사용한다(31절). 그들은 거짓말을 하면서 참 선지자인양,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하고 예언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참칭해서 말한다.
마지막 그룹은 국익을 위해서 말하는 자들이다. 그들의 말은 참되던 그렇지 않던 간에 국가의 사기를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럴듯한 예언은 실로 헛된 말일 뿐이었다(2).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강한 경고로 그가 거짓 선지자들을 보내시지 않았으며(위임) 명령하시지 않으셨다고 하신다(말하도록). 그러므로 그들은 그 백성에게 무익하였다(3).
구약에서는 신명기 13-18장에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기 위한 분명한 테스트의 형식을 소개해 주고 있다. 참 선지자는 유대인이지 이방인이 아니며, 야웨의 이름으로 말하는 자는 그의 예언들의 확실한 성취로 인해서 하나님의 대변자로 확증된 자였다.
신약에서 거짓 선지자는 예수님께서 참으로 인간이신 동시에 참으로 하나님이심을 부인하는 자였다(요일 4:1-3).
여기서 신구약을 통틀어 거짓 선지자나 스승의 특성을 밝혀 보면 아래와 같다.
1. 교리적인 표지들 예레미야 베드로후서 유다서
파괴적인 이단들은 그들을 사신 23:13 2:11
주를 부인한다
2. 인격적인 표지들
대담함, 오만함 23:10 2:10 1:16
권위를 무시함 2:10 4
죄의 성격에서 부패한 욕망을 따름 23:14 2:10 4, 19
돈을 사랑함 2:15 12
3. 사역의 특성들
죄의 욕망에 호소함 23:14 2:17 16
타락한 자에게 자유를 약속함 23:16-17 2:19(4)
거짓 선지자들은 일시적으로 그들의 속셈을 숨길 수 있으나 얼마 안 되어 그들의 본성은 드러나고야 만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의 엄한 심판을 받게 된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들의 달콤한 약속 때문에 참 선지자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무시하고 거짓 선지자들을 따름으로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야 말았다. 하나님의 말씀이 언제나 경고와 심판으로 일관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패와 타락 우상숭배와 배교로 치닫는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은 심판과 경고밖에 기대할 수가 없었다.
주
1. Walter A. Elwell, Ed., Evangelical Dictionary of theology(Grand Rapids: Baker, 1984), p.886. 헬라어 Prophetes의 Pro는 before나 for를 뜻하며
Phemi는 to speak를 의미한다. 또 구약의 선지자란 말은 rieh, nabi, hozeh인데 로헤와 호제는 습관에 대한 태도나 환상의 시대적 특성의 뉘앙스
에 의해 구별되며, 나비란 말은 선지자의 사명을 묘사하는데 적합한 말이다.
2. Charles L. Feinberg, Jeremiah, E. B. C, Vol.6(Grand Rapids: Zondervan,1986), p.351
3. Peter C. Craigie, Page H. Kelley, Joel F. Drinkard, Jr. Jeremiah, 1-25(Dallas: Word, 1991), p.35
4. Larry Richards, Bible Difficulties Solved(Fleming H. Revell, 1993), p.177
http://revdavidsuh.com/bbs/view.php?id=Jeremiah&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0
거짓 선지자들에게 화가 있을 것(예레미야 23장)
1-22절, 악한 목자들과 선지자들
[1-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자신의 명예와 이익만 구하는 유다의 왕과 방백들은 불법과 폭력으로 양들을 멸하며 흩었다. 양들은 방황하여 뿔뿔이 흩어졌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찌 노하시며 보응하지 않으시겠는가?
[3-4절] 내가 내 양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그들의 생육이 번성할 것이며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훗날에 친히 이스라엘 백성의 양무리의 남은 자들을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시며 그들로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
[5-6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사칼)[혹은 ‘형통하며’(BDB, KJV)]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며 그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본문은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다. 하나님의 정하신 때에 메시아께서 오실 것이다. 그는 다윗에게서 나는 ‘한 의로운 가지’라고 불리실 것이다. 그것은 그가 육신의 족보로는 다윗의 자손이며 의로운 왕이심을 뜻한다. 그의 날에 유다 백성은 구원을 얻을 것이다.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불릴 것이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믿는 자를 위해 의를 이루셨다. 로마서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고린도전서 1:30,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救贖)함이 되셨으니.”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의가 되셨다.
[7-8절]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거하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은 다 멸망하여 북방 땅, 곧 앗수르 나라와 바벨론 나라에서 포로로 오랫동안 살다가 거기로부터 고국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그때 그들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기보다 북방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북방 땅으로부터 고국으로 돌아오는 것은 메시아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일을 예표하였다.
[9-12절]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중심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을 인함이라. 이 땅에 행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 저주로 인하여 땅이 슬퍼하며 광야의 초장들이 마르나니 그들의 행위가 악하고 힘쓰는 것이 정직하지 못함이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특한지라(카네프)[불경건한지라](BDB, KJV, NIV).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그러므로 그들의 길이 그들에게 흑암 중에 미끄러운 곳과 같이 되고 그들이 밀침을 받아 그 길에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을 벌하는 해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선지자들에 대해서도 선포하게 하셨다. 예레미야는 그의 마음이 상하며 그의 모든 뼈가 떨리며 포도주에 취한 사람과 같이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 때문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땅에 행음자들이 가득하고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다 불경건하다고 말씀하셨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이 경건하고 도덕적이면 나라가 어느 정도 경건과 도덕성을 유지하고 너무 악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했다. 또 그 결과, 그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징벌과 재앙을 받을 것이다.
[13-15절]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중에 우매함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탁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중에도 가증한 일(솨아로라)[두려운 일](BDB, KJV, NASB, NIV)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거짓되이 행하며](원문; KJV, NASB, NIV) 행악자의 손을 굳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 사람과 다름이 없고 그 거민은 고모라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독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카눕파)[불경건]이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로서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사마리아의 선지자들 중에 우매함이 있었다. 그들은 바알을 의지하며 예언하고 백성을 잘못 인도했다. 또 예루살렘의 선지자들 중에는 간음을 행하며 거짓말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은 다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벌을 선언하신다. 그 불경건한 선지자들은 독물을 마시게 될 것이다.
[16-18절]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의 강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예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뇨?
하나님께서는 악한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지 않고 자기의 마음에서 나온 생각을 전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재앙 대신 거짓된 평안을 전하였다.
[19-22절] 보라, 나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나 여호와의 노는 내 마음의 뜻하는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완전히 깨달으리라.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으셨어도 달음질했고 말씀하지 않으셨어도 예언하였다. 그들이 하나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라면 악인들에게 회개를 전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중심적으로 말했고 참된 회개를 전하지 않았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고 그들의 말을 듣지 말자. 그들은 귀에 듣기 좋은 헛된 평안을 전한다. 오늘날에도 거짓 목사의 설교는 헛된 평안과 축복과 위로가 많다. 그러나 그것은 헛된 말이다. 그들의 설교에는 하나님의 뜻인 죄의 지적과 책망이 없다. 우리는 거짓 목사들을 분별하고 그들의 말을 거절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책망을 싫어하지 말고 잘 받고 악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죄를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악행과 음란과 거짓을 버려야 한다. 이런 죄 때문에 하나님의 화가 있고 보응이 있고 징벌과 재앙이 있고 진노가 있다. 죄의 지적과 책망을 잘 받아 회개하는 자는 지혜를 얻고 참된 평안을 얻는다. 그들은 영생에 이를 자들이다.
셋째로, 우리는 우리의 의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의롭게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에게서 나신 한 의로운 가지이시며 우리의 의이시다. 그를 믿는 모든 사람들은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이 세상은 악하고 심지어 교회들도 해이해지고 어지러울지라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고 그 의와 평안 안에서 의와 선을 행하자.
23-40절, 거짓 선지자들
[23-24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가까운 데 하나님이요 먼데 하나님은 아니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사람이 내게 보이지 아니하려고 누가 자기를 은밀한 곳에 숨길 수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하나님께서는 가까운 데만 보시고 먼데는 보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는 은밀한 곳에 있는 것을 보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는 사람의 은밀한 일까지도 다 아시는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하나님을 피하여 어느 곳에도 숨을 수 없다. 그는 천지에 충만하시다.
[25-27절]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몽사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그들이 서로 몽사를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열조가 바알로 인하여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된 것을 예언할 때 꿈으로 계시를 받았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함 혹은 속임을 가진 선지자들이었다. 그것은 마치 그들의 선조가 거짓된 신 바알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린 것같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리게 하는 행위이었다.
[28-29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몽사를 얻은 선지자는 몽사를 말할 것이요 내 말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내 말을 말할 것이라. 겨와 밀을 어찌 비교하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사람이 꾸는 꿈과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적 꿈은 다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성실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말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과 사람의 말을 밀과 겨에 비교하셨다. 밀은 사람에게 양식이 되지만, 겨는 그렇지 못하다. 또 그는 그의 말씀을 불이나 방망이에 비유하셨다. 그는 불같이 사람의 마음을 뜨겁게 만드시고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같이 굳은 마음을 부스러뜨리신다.
[30-3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이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실상,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도적질하였고 그 내용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것이었다. 그들은 거짓된 꿈을 예언하며 거짓과 헛된 자만(파카주스)[경박함(BDB, KJV), 경박한 자랑(NASB)]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미혹하게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으셨고 명하지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하였다. 그들은 아무 유익이 없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치리라[대적하리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씀하셨다.
[33-40절] 이 백성이나 선지자나 제사장이 네게 물어 이르기를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맛사)[무거운 짐(KJV), 말씀(BDB, NASB, NIV)]이 무엇이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대답하기를 엄중한 말씀이 무엇이냐 하느냐?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버리리라 하셨고 또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는 선지자에게나 제사장에게나 백성에게는 내가 그 사람과 그 집에 벌하리라 하셨다 하고 너는 또 말하기를 너희는 서로 이웃과 형제에게 묻기를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응답하셨으며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 하고 다시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지 말라. 각 사람의 말이 자기에게 중벌(맛사)[말씀](NASB, NIV)이 되리니 이는 너희가 사시는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말씀을 망령되이 씀(하파크)[왜곡시킴](KJV, NASB)이니라 하고 너는 또 선지자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무엇이라 대답하셨으며 여호와께서 무엇이라 말씀하셨느뇨? 너희는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말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에게 보내어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지 말라 하였어도 너희가 여호와의 엄중한 말씀이라 하였은즉 내가 너희를 온전히 잊어버리며 내가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준 이 성읍을 내 앞에서 내어버려 너희로 영원한 치욕과 잊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케 하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33-40절에서 원문에 ‘엄중한 말씀’이라는 말(맛사)이 여덟 번 나온다(36절의 ‘중벌’이라는 말을 포함해서). 그것은 ‘무거운 짐’이라는 뜻인데, 마음에 큰 부담을 가지고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켰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이 거짓말을 하면서 ‘하나님의 엄중한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을 지적하셨다. 그들은 말쟁이들이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설교가 대단한 내용인 것처럼 떠벌리며 마치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전하는 것처럼 위장하였다. 그러나 실상 그들의 설교는 경박했다(32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그 말을 쓰지 말라고 금하셨다. 또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왜곡시켰기 때문에(36절), 그들을 내어버려 ‘영원한 치욕과 잊어버리지 못할 영구한 수치’를 당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본문은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거짓 목사들을 조심하자. 거짓 목사들은 거짓되고 경박한 말을 하고 성경말씀을 왜곡시키는 자들이다. 주께서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고 말씀하셨고(마 7:15), 사도 요한도,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고 말했다(요일 4:1). 우리는 그런 자를 조심해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바른 말씀을 사모하자. 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은 겨 같은 사람의 말이나 꿈과 다르다. 밀이 사람에게 양식이 되듯이,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영의 양식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같이 마음을 뜨겁게 하며 망치같이 완고한 마음 쳐서 부스러뜨린다. 하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에게 영생이 되고 유익이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며 듣고 받아야 한다.
이스라엘의 회복(예레미야 30장)
1-11절, 하나님께서 돌아오게 하실 것
[1-2절] 여호와께로서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네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본문은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표현한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본서에 47회 나옴)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임을 잘 나타낸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에게 그가 그에게 말한 모든 내용을 책에 기록하라고 명하셨다. 그것은 후시대의 사람들에게 교훈이 되게 하라는 뜻이었다(딤후 3:16-17). 여기에 성경의 필요성이 있다.
[3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생활에서 돌아올 때에 대해 말씀하셨다.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가 있다. 우리는 그 때를 믿고 기다린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라고 부르신다. 그것은 그들이 비록 심히 죄악되어 멸망을 당했고 많은 연약성을 가지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대상임을 나타낸다. 북방 이스라엘 나라도, 남방 유다 나라도 우상숭배가 가득하였으나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이 마침내 그들을 회복시킬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 . . 그들을 그 열조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귀환 즉 회복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이다. 가나안 땅은 본래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주셨던 땅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이방 나라로 포로되어 갔지만, 때가 되면 고국으로 돌아와 다시 그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실 것이다.
[4-7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남자마다 해산하는 여인같이 손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그 얼굴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찜이뇨? 슬프다, 그 날이여. 비할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냄을 얻으리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들의 죄 때문에 극심한 고난의 벌을 받았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마치 해산하는 여인의 고통과 같았다.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해산하는 여인같이 손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그 얼굴빛이 창백하였다. 그것은 ‘야곱의 환난의 때’라고 표현되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긍휼로 그 고통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다.
[8-9절]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버리며 네 줄을 끊으리니 이방인이 다시는 너를 부리지 못할 것이며 너희는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일으킬 너희 왕 다윗을 섬기리라.
‘만군의 여호와’는 천군 천사들을 거느리신 능력의 하나님을 나타낸다. 이스라엘 백성의 회복의 날에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목에 있는 멍에를 꺾어버리시고 줄을 끊어주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이방인들을 섬기지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일으키실 그들의 왕 다윗을 섬길 것이다. 이전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거절하고 거역했기 때문에 멸망을 당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참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의 뜻에 즐거이 순종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왕 다윗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말씀은 메시아 예언이다. 예레미야는 23:5-6에서도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얻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거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했었다. 비슷한 예언을 선지자 호세아와 에스겔도 하였었다(호 3:5; 겔 34:23-24). 메시아께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것이다.
[10절]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종 야곱아, 두려워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원방에서 구원하고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얻을 것이라. 너를 두렵게 할 자 없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자기 종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지금 이방인들의 땅에서 두려워하며 살고 있지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원방에서,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실 것이며 그들은 태평과 안락, 즉 평안함을 얻을 것이며 그들을 두렵게 할 자들이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실 구원의 결과는 평안일 것이다.
[11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열방은 진멸(殄滅)한다 할지라도 너는 진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공도(公道)로 너를 징책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하시면 죄인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의 구주이시다(딛 1: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멸망시켰던 바벨론 나라는 완전히 멸망시키실 것이나 이스라엘 나라는 완전히 멸망시키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을 구별하실 것이다. 여기에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있다. 여기에 선택의 진리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구원하실 자들을 택하셨다. 그것은 성경 진리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공도(公道), 즉 공의로 징책하실 것이요 결코 무죄(無罪)한 자로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엄중히 징벌하실 것이다. 그는 죄를 매우 미워하신다. 그는 피조물들의 죄 때문에 지옥을 예비하셨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택함 받은 자들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죽으셨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의 기초가 되는 하나님의 선택의 사랑을 감사하자. 택자들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구원의 기초이다. 우리는 그 하나님의 사랑을 감사하자.
둘째로, 구원받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힘써 섬기며 평안을 누리자. 구원받은 성도의 첫 번째 복은 평안이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사도 바울은 성도들에게 편지를 쓸 때마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평안을 기원했다(롬 1:7 등; 살후 3:16).
셋째로, 우리는 완전한 회복과 충만한 평안의 세계인 천국을 사모하자. 성경은 만유의 회복의 때에 대해 말한다. 사도행전 3:20-21,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요한계시록 21:5,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우리는 온 세상의 완전한 회복과 충만한 평안의 세계인 천국을 사모하자.
넷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힘써 지키고 죄를 멀리하자. 하나님의 공의는 변함이 없다. 예수님 믿어도 범죄하면 하나님의 징계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키고 죄를 멀리하자.
12-24절, 내가 너를 치료하리라
[12-15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창상은 중하도다. 네 송사를 변호할 자가 없고 네 상처를 싸맬 약이 없도다.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허물이 크고 네 죄가 수다(數多)함을 인하여 내가 대적의 상하게 하는 그것으로 너를 상하게 하며 잔학한 자의 징계하는 그것으로 너를 징계함이어늘 어찌하여 네 상처를 인하여 부르짖느뇨? 네 고통이 낫지 못하리라. 네 죄악의 큼과 죄의 수다(數多)함을 인하여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크고 많은 허물과 죄악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받아 고칠 수 없는 상처, 치료할 약이 없는 상처를 입었음을 증거한다. 이것은 그들이 지금 처한 상황이었고 다 하나님께서 내리신 징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네 죄악의 큼과 죄의 수다함을 인하여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징벌하신다.
[16-17절] 그러나(라켄)[그러므로](BDB, KJV, NASB) 무릇 너를 먹는 자는 먹히며 무릇 너를 치는 자는 다 포로가 되며 너를 탈취하는 자는 탈취를 당하며 무릇 너를 약탈하는 자는 내가 그로 약탈을 당하게 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쫓겨난 자라 하며 찾는 자가 없는 시온이라 한즉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너를 건강하도록 회복시키며 네 상처를 치료하리라](원문직역).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징벌하셨듯이 그들을 멸망시켰던 이방 나라를 멸망시키시고 이스라엘을 치료하시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18-2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포로된 야곱의 장막들을 돌이키고 그 거하는 곳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 그 성읍은 자기 산(텔)[무더기, 폐허](BDB, KJV, NASB)에 중건될 것이요 그 궁궐은 본래대로 거하는 곳이 될 것이며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 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하겠으며 그 자손은 여전하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무릇 그를 압박하는 자는 내가 다 벌하리라. 그 왕(앗디르)[귀인]은 그 본족에게서 날 것이요 그 통치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며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므로 그가 내게 접근하리라. 그렇지 않고 담대히 내게 접근할 자가 누구뇨? 여호와의 말이니라.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본문은 주권적 섭리자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실 것을 예언한다. 18절, “내가 포로된 야곱의 장막들을 돌이키고 그 거하는 곳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 19절,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 . .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20절, “내가 다 벌하리라.” 21절,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므로 그가 내게 접근하리라.”
이스라엘의 집들과 성읍들이 회복될 것이다. 18절, “내가 포로된 야곱의 장막들을 돌이키고 그 거하는 곳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 그 성읍은 자기 산에[그 무더기 위에, 그 폐허 위에] 중건될 것이요 그 궁궐은 본래대로 거하는 곳이 될 것이며.” 이 예언은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과 예루살렘 성전 건립과 성곽 건립을 통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것은 장차 새 예루살렘의 건립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또한 감사와 즐거움이 넘치게 될 것이다. 19절,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 중에서 나오리라.” 구원받은 신약교인들에게는 감사와 기쁨이 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 18,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성령의 열매 중에는 희락[기쁨]이 있다(갈 5:22). 로마서 14:17은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말하였다. 요한계시록 21:4는 천국에서 눈물과 사망과 슬픔과 아픈 것이 없을 것이라고 증거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또 번영과 영광을 누릴 것이다. 19절,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하겠으며.” 이 예언도 천국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로마서 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요한계시록 21:10-11,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다. 20절,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21절,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므로 그가 내게 접근하리라. 그렇지 않고 담대히 내게 접근할 자가 누구뇨?” 22절,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히브리서 4: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요한계시록 21:3,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23-24절] 보라, 여호와의 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나 여호와의 진노는 내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 중의 악인들뿐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를 멸망시켰던 바벨론 나라에게 하시는 말씀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날에 세상의 악인들을 엄하게 징벌하실 것이다.
본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은 하나님의 긍휼로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징벌하셨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우리의 죄를 씻는 길은 하나님의 긍휼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밖에 없다. 시편 49:8, “저희 생명의 구속(救贖)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우리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공로 즉 그의 대속사역으로 죄씻음과 구원을 얻었다. 베드로전서 1:18-19,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救贖)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우리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과 은혜로 되었다. 로마서 9: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디모데후서 1:9,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에베소서 2:8-9,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항상 기뻐하며 감사해야 한다.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의 예언은 이미 성취되기 시작하였고 장차 천국에서 완성될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 성도들은 하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살전 5:16, 18).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천국의 영광을 사모하고 소망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신 이 큰 구원을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지키고 그 은혜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해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이제 범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므로 이제는 범죄치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계속 범죄치 않는다(요일 3:9). 로마서 6:12-13,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도구]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도구]로 하나님께 드리라.”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차이
(렘28:1-17)
오늘 본문은 거짓선지자인 하나니와 참선지자 예레미야에 관한 말씀입니다.
예레미야와 같이 거짓 선지자인 하나냐도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예레미야에게 말합니다.
“2.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일러 말씀하시기를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었느니라 3. 내가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이 이 곳에서 빼앗아 바벨론으로 옮겨 간 여호와의 성전 모든 기구를 이 년 안에 다시 이 곳으로 되돌려 오리라 4. 내가 또 유다의 왕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와 바벨론으로 간 유다 모든 포로를 다시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니 이는 내가 바벨론의 왕의 멍에를 꺾을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시니라”고 합니다.
하나니도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고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이 빼앗아 간 성전의 기구를 2년 안에 이곳으로 되돌려 오고, 또 끌려갔던 여호야김의 아들 여고니야 즉 여호야긴 왕과 유다 모든 포로들을 다시 이곳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 왕의 멍에를 꺾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는 6절에서 “아멘” 이라고 하면서 “6. -- 여호와는 이같이 하옵소서 여호와께서 네가 예언한 말대로 이루사 여호와의 성전 기구와 모든 포로를 바벨론에서 이 곳으로 되돌려 오시기를 원하노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도 하나냐의 말대로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과 사실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다릅니다.
그래서 7절을 보시면 “7. 그러나 너는 내가 네 귀와 모든 백성의 귀에 이르는 이 말을 잘 들으라 8. 나와 너 이전의 선지자들이 예로부터 많은 땅들과 큰 나라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을 예언하였느니라 9. 평화를 예언하는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가 진실로 여호와께서 보내신 선지자로 인정 받게 되리라”
사실 어느 누가 전쟁과 재앙과 전염병과 같은 좋지 않은 예언을 하기를 원하겠습니다. 누구나 다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면 누가 하나님이 보내신 참된 선지자입니까?
그 예언이 현실 가운데서 그대로 이루어져야 참 선지자입니다. 재앙을 예언한 선지자가 있고, 평화를 예언한 선지자도 있습니다. 이때 평화를 예언한 선지자가 재앙을 예언한 선지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재앙을 예언한 선지자가 하나님이 보내신 참 선지자인 것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레미야의 예언이 현실 가운데 이루어져야 네가 나를 하나님이 보내신 참 선지자인 줄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선지자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빼앗아 꺾어 버립니다(10).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2년 안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와 같이 꺾어 버리리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하나냐는 말을 합니다(11).
그런데 선지자 하나냐가 예레미야의 목에서 멍에를 꺾은 후에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12). “13. 너는 가서 하나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나무 멍에들을 꺾었으나 그 대신 쇠 멍에들을 만들었느니라 1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쇠 멍에로 이 모든 나라의 목에 메워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을 섬기게 하였으니 그들이 그를 섬기리라 내가 들짐승도 그에게 주었느니라 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15절에서 “15. 선지자 예레미야가 선지자 하나냐에게 이르되 하나냐여 들으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16.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너를 지면에서 제하리니 네가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이라 네가 금년에 죽으리라 하셨느니라 하더니 17. 선지자 하나냐가 그 해 일곱째 달에 죽었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참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1)첫째, 거짓 선지자는 사람이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사람이 듣기 싫어도 하나님이 주신 말씀대로 전하는 사람입니다.
2)둘째, 거짓 선지자는 그 말이 현실에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바람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현실에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말하는 사람입니다.
3)셋째, 거짓 선지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가 아닙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하나님이 보내신 자입니다. 또 거짓 선지자는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하나님이 주신 말씀만을 전하는 자입니다.
4)넷째, 거짓 선지자는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그러나 참 선지자는 고난가운데서 끝까지 살아남아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여러분 정말 나는 참 선지자입니까? 거짓 선지자입니까? 또 나는 참 선지자를 따라가는 자입니까? 아니면 거짓 선지자를 따라가는 자입니까?
우리가 참 선지자는 사실 예수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진정한 하나님의 종은 참 선지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따는 것처럼 너희도 나를 따르라고 하고 있습니다.
참된 선지자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성도님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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