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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누가복음 20:1-8)

by 은총가득 2020. 11. 18.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누가복음 20:1-8)

[ 성경묵상 ]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을 박해하고 죽이는 종교 지도자들의 도전에 맞서 그들의 지위를 돌아보게 만드십니다.

[ 질문 1 ]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1절)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1-2) 예수님께서 성전 뜰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을 포함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이 그들입니다. 그들은 직접 예수님을 찾아와서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고 힐문하였습니다. 그들은 성전 안에서 자기들이 최고의 권위를 가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허락을 받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습니다. 성전 뜰에서의 장사 행위도 그들의 허락 아래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를 방해하는 것은 그들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물으셔야 할 질문입니다. 하나님의 집에서 불법적인 일을 하는 자신들의 권위가 인간적 권위일 뿐임을 그들의 입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불법적인 일을 하면서도 항상 다른 사람이 잘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기를 좋아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부터 살피고 돌아보는 사람입니까?​

[ 질문 2 ] 성전 지도자들이 예수님의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5-6절)

속마음을 들킨 사람들(3-8)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의 질문에 즉답을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에게 질문을 던지십니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두고 종교 지도자들은 서로 토의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하늘로부터라고 답하면 그를 죽게 내버려둔 일에 대하여 자신들이 책임을 지지 않을수 없습니다. 반면 그것이 사람으로부터라고 답하면 백성들의 비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답할 수 없는 궁지를 모면하기 위해 그들은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고 답합니다. 사실은 모르는 것이 아니라 인정하기 싫은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이 하늘로부터임을 알면서도 그것을 인정하기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를 인정하는 곳에 구원이 있지만, 알면서도 그를 부인하는 것은 스스로의 악함을 인정하는 일이 됩니다.

나는 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들을 발견하고 인정하며 감사하고 있습니까?​

[ 본문 개요 ]

20장 요약 ; 예루살렘 입성 후의 사건이다. 주님이 반대자들의 본거지인 예루살렘에서도 자기 사역에 매진하시자 그들은 예수님의 입성으로 인해 자기들의 기반이 흔들릴 것을 우려해 더욱 교묘하게 주님께 도전하였다. 이에 주님은 유대 민족의 패역한 행적을 비유로 말씀하셨다(9-18절).(출처 ; 아가페 큰글성경)

20:1-8의 내용은 권위 논쟁에 관한 기사이다. 산헤드린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께서 성전을 정화하고 성전에서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에 대해 그 권위의 출처를 따져 물었다. 사실 성전 정화 사건은 곧 예수께서 메시야로서의 권위(Messianic Authority)를 나타내신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예배의 장소이자 만민의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정화하셨다는 것은 하늘로부터의 권세를 받지 않고서는 일반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예수의 권세를 인정하지 않았던 산헤드린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의 대답을 빌미로 예수를 해하려 하였으나, 세례 요한의 권위의 출처를 역으로 질문하시는 예수님의 지혜로 그 음모는 일차 무산되고 말았다.(출처 ; 옥스포드 주석)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1.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예수께서 어느 날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고 계실 때에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장로들과 함께 예수께 와서,

2.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합니까? 누가 이런 권한을 당신에게 주었습니까? 어디 우리에게 말해 보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무슨 권위로 예수님을 성전을 성결케 하시고 백성들을 가르치시는지 이 일에 대해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권위를 문제삼았다. 이것은 자기들에게 정면으로 도잔하며 백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는 예수님에 대해 악감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3.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내게 말하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너희에게 한 가지를 물어 보겠으니, 나에게 대답해 보아라.

4.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요한의 세례가 하늘에서 온 것이냐? 사람에게서 온 것이냐?"

5.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그들은 자기들끼리 의논하여 말하였다. "하늘에서 왔다고 말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않았느냐고 할 것이요,

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백성이 요한을 선지자로 인정하니 그들이 다 우리를 돌로 칠 것이라 하고

사람에게서 왔다고 말하면, 온 백성이 요한을 예언자로 믿고 있으니, 그들이 우리를 돌로 칠 것이다."

7. 대답하되 어디로부터인지 알지 못하노라 하니

그래서 그들은 요한의 세례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종교 지도자들의 '알지 못한다'는 답은 바로 앞 절의 '인정한다' 곧 그렇게 알고 있다는 말과 대조를 이룬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을 그들이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들이 지도자의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내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를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

[ 복있는사람, 2018년 3,4월호 ]

그리스도의 권세에 대한 질문 ( 20:1-8 )

다른 복음서의 내용보다 특별히 추가된 것은 없다.

(1) 그때 그리스도는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고 계셨다.

그리스도는 자신의 복음을 전하셨다. 그분은 우리를 대신해 구원을 획득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을 공표하셨다. 이러한 사실은 복음 전도자들을 영예롭게 한다. 이러한 사실은 또한 일반 복음 전도자들을 영예롭게 한다. 그리스도는 백성들의 능력에 맞게 자신을 낮추어 복음을 전하셨으며 백성들을 가르치셨다.

(2) 그리스도의 대적들이 그에게 가까이 오다.

이 말씀은 여기서만 나타나며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암시한다.

1) 그들은 이런 질문을 해서 예수를 당황하게 만들려고 했다. 그래서 그들은 불쑥 다가왔던 것이다.

2) 그들은 이런 질문을 해서 예수에게 겁을 구려고 했다. 이 말씀 안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① 빛에 대항해서 눈을 감아버린 자들이 명백한 사실을 반박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가 '무슨 권세로 이런 일을 하는지'는 그가 베푸신 이적을 통해서 분명히 알 수 있다.

② 그리스도의 권세에 대해 질문하는 자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의 세례에 대해 질문하는 것으로써 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답변하셨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냐 사람에게로서냐(4절). 모두들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이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 질문으로 인해 그들은 난처해지고 꼼짝 못하게 되어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당하게 되었다.

③ 이들 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요한의 세례가 하늘로서인 것을 인정하지 않으면서도 단지 백성들이 두려워 사람에게로서라고 말하지 못했던 것처럼, 명성과 세상의 권세에 탐닌하는 자들이 너무나도 명백한 진리를 제한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무슨 선한 것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④ 자기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묻어두는 자들은 그 이상의 지식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7,8절)

- 출처 ; 메튜헨리 주석

 

포도원 농부의 비유(누가복음 20:9-19)

 

[ 성경묵상 ] - 복있는사람 묵상지

예수님은 포도원 농부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종들을 죽이고 마침내는 그 아들까지 죽이는 악한 농부들을 심판하시는 분이심을 보여주십니다.

[ 질문 1 ] 비유 속의 아들은 누구를 암시하는가?(13-14절)

포도원 농부의 비유(9-16) 예수님은 자신이 어떻게 죽을 것인지를 암시하는 비유 하나를 말씀하십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으로 떠났습니다. 때가 되어 소출을 받기 위해 차례로 종들을 보내었습니다. 하지만 농부들은 이 종들을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마지막에는 주인이 아들을 보냅니다. 아들이기에 농부들이 존대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농부들은 아들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 비유는 암시성이 매우 강합니다.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도 이 농부들이 자신들을 암시한다는 것을 곧 알아차렸습니다(19),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들 곧 선지자들을 박해해왔습니다. 마침내는 하나님의 아들도 죽이고 말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포도원을 영원히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하나님은 그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 곧 이방인들에게 주십니다.

하나님 덕분에 살면서도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농부들처럼 나는 감사를 잃고 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 있지는 않습니까?​

[ 질문 2 ] 예수님의 죽으심은 어떤 반전의 결과를 낳는가?(17절) 집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다

비유의 의미(17-19) 예수님은 시편 118:22의 말씀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는 말씀을 인용하여 하나님의 심판 행위 앞에서 인간의 심판이 역전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밝히십니다. 예수님은 세상 권세자들의 손에 의해 심판 받고 "버린 돌"이 될 것이지만, 그러나 그 돌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 오히려 건물에서 가장 요긴한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것입니다. 이는 사도행전의 중심 주제로 발전됩니다.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머릿돌이신 예수님은 믿는 자를 구원하는 구원의 돌이지만, 동시에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어 버리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요 동시에 심판자이십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구원의 반석이 되신 예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영원한 생명의 반석이요 구원의 머릿돌 되신 예수님 위에 견고히 세워져 있습니까?​

[ 본문 개요 ]

20:9-18과 20:19-26의 두 문단은 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와 그에 연속되어 발생한 납세 논쟁에 관한 기사를 보도하고 있다.

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에서 악한 포도원 농부들은 넓게는 메시야를 거부하는 완악한 유대인 모두를 가리키고 있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이었다(19절). 그리하여 이를 알아챈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즉시 체포하려 하였으나 예수를 추종하던 많은 무리들을 의식하여 다른 방법을 강구할 수밖에 없었다.

즉, 무리들이 두려워 직접 예수를 잡기가 어렵다는 것을 안 종교 지도자들은 로마의 권력을 빌어 예수를 체포하기 위해 정치적으로 민감한 납세(納稅)에 관한 논쟁을 제기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고 대답하신 예수님의 지혜에 그들의 음모는 역시 무산되고 만다. (옥스포드 주석)

악한 농부의 비유이다. 이 비유는 여러 가지 뜻을 지니고 있다. 첫째, 하나님의 이스라엘 선택(9절), 둘째, 선지자들에게 대한 박해(10-12절), 셋째, 예수님의 처형(14-15절), 넷째, 이스라엘의 멸망과 이방인의 구원(16절) 등의 역사를 그리고 있다.(아가페 큰글성경)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9.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예수께서 백성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서,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었다.

10.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포도를 거둘 때가 되어서, 주인은 소출 가운데서 얼마를 자기에게 바치게 하려고, 종 하나를 농부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농부들은 그 종을 때리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11.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주인이 다른 종을 보냈다. 그랬더니 그들은 그 종도 때리고, 모욕하고, 빈손으로 돌려보냈다.

12.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그래서 주인이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냈더니, 그들은 이 종에게도 상처를 입혀서 내쫓았다.

13.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그래서 포도원 주인은 말하였다. 어떻게 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야겠다. 설마 그들이 내 아들이야 존중하겠지!

14.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그러나 농부들은 그를 보고서, 서로 의논하며 말하였다. 이 사람은 상속자다. 그를 죽여 버리자. 그래서 유산이 우리 차지가 되게 하자.

15.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러면서, 그들은 그를 포도원 바깥으로 쫓아내어 죽였다. 그러니 포도원 주인이 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16.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그는 와서 이 농부들을 죽이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줄 것이다."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서 "그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하고 말하였다.

포도원 주인은 정당한 소작료를 받기 위해 종들을 거듭 보내지만, 악한 소작 농부들은 그들을 심히 때리고 상하게 하여 내어쫓아 버린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주인은 이번에는 아들마저 보내며 그 농부들의 회심을 기대하지만 급기야 그 아들이 악한 농부들에게 죽임당함으로 그 모든 기대가 허물어진다. 결국 참고 기다리던 주인은 아들까지 잃어버리게 되자 직접 와서 그 악한 농부들을 진멸한다. 여기에 친히 죄를 범한 자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모습이 보이며, 죄인들은 자신들이 행한 대로 보응을 받게 된다는 심판의 원리가 드러난다.

본 구절 은 병행 구절인 마 21:41에 동일하게 나타난다. 단지 누가와 마가는 정확하게 진멸의 대상을 농부로 표현하고 있고, 마태는 ‘이 악한 자들’이라고 표현하여 마태의 경우 심판받을 자의 성향을 강조적으로 보여 주는 차이만 있다.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라는 내용은 ‘악한 포도원 농부들의 비유’ 기사 중 누가만이 기록한 내용이다. 누가는 청중들의 심리적 반웅을 본 구절을 통해서 보다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즉 비유를 들은 청중들은, 농부들이 주인에게 진멸당하고 포도원이 다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것과 같은 비극적인 일이 자신들에게는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일들이 자기들에게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청중의 모습을 통하여 당시 그들도 예수께서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악한 농부의 비유에 담긴 교훈을 깨달아 알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17.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그 때에 예수께서 그들을 똑바로 바라보시고 말씀하셨다. "그러면 집 짓는 사람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하고 기록된 말은 무슨 뜻이냐?

머릿돌이란 두 벽이 마주치는 곳에 놓여서 양쪽을 이어주는 기능을 하는 큰 돌을 가리킨다. 베드로는 우리가 이 "보배로운 산 돌"에 이어진 "산 돌"이 되어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벧전 2:4-5).

본 구절은 시 118:22의 인용으로서 예수님이 비록 유대인들에 의하여 버림받았지만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인류의 구원자 곧 메시야가 될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이는 앞선 16절에서 예수께서 내린 결론과 그에 대한 백성들의 반웅에 대한 추가적 설명으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즉 예수님은 시편 말씀을 인용함으로써 포도원 농부의 비유가 주는 교훈을 더욱더 명료하게 하셨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을 건축자의 잘못된 판단으로 상징화시켜 설명하셨다. 건축자는 집을 세울 때 필요한 건축 재료를 평가하는 자들이며 여기서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예수님을 유대교에 필요 없는 재료로 여겨 버렸지만, 예수님은 교회의 기초가 되셔서 그 위에 모든 민족이 함께 지어져 가는 새로운 교회 공동체의 머릿돌이 되신 것이다(엡 2:20-22).

18.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누구든지 그 돌 위에 떨어지면 그는 부스러질 것이요, 그 돌이 어느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놓을 것이다."

본 구절은 단 2:34을 염두에 두고 하신 예언의 말씀이다. 다니엘서에서 나온 돌이 세상 왕국을 상징하는 큰 신상을 파괴시킨 것처럼, 교회의 머릿돌이신 예수님 역시 그의 모든 원수들을 파멸시키실 것이다. 여기에서 원수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두 부류의 사람, 즉 일반 유대인들과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말한다.

그리고 본절에서 언급되고 있는 이 돌과 관련된 형벌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지닌 말씀이다. 즉 예수님을 거절한 유대인은 돌이 깨어지는 정도의 멸망을 받게 되고,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이려고 음모를 꾸였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돌이 깨어져 가루가 될 정도로 보다 더 엄중한 심판을 받을 것을 예언한 말씀이다.

본문에는 두 부류의 사람과 이들이 맞게 될 두 가지 상태가 묘사되어 있다. 두 부류의 사람 중 첫째 사람은 돌 위에 떨어지는 자이고, 둘째 사람은 반대로 떨어지는 돌에 맞는 자이다. 그리고 그들의 상태는 전자는 깨어지는 것이고, 후자는 가루로 만들어 흩어지는 것이다.

‘깨어지겠고’로 번역된 ‘쉰들라스데세타이’는 ‘쉰들라오’의 미래 수동태로서 ‘조각조각으로 깨뜨리다’는 뜻이다. 그리고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로 번역된 ‘리크메세이’는 ‘리크마오’의 미래 능동태로서 ‘키질하다’, ‘까부르다’, ‘산산히 분쇄하다’는 뜻이다. 이는 앞에 사용된 ‘쉰들라스데세타이’의 상태보다 더 철저한 파괴를 나타내는 단어이다(겔 36:19 ; 렘 15:7).

신약 성경에서는 본문과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 21:44에서만 등장하여 하나님 심판의 엄정함을 나타낸다(눅 20:18).

여기서 전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지 않고 거부한 일반 유대인들을 가리키고, 후자는 적극적으로 예수를 배척하고 결국 죽이기까지 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거부한 유대인의 파멸과 더불어 보다 적극적으로 예수를 배척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 닥칠 심판이 처절함을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

19.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이 비유는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즉시 잡고자 하되 백성을 두려워하더라

율법학자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께서 자기들을 겨냥하여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렸으므로, 바로 그 때에 예수께 손을 대어 잡으려고 하였으나, 백성을 무서워하였다.

누가는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의 심정을 ‘~ 하되’에 해당하는 ‘에제테산’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잘 보여 준다. 이 단어는 어떤 일을 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거나 수단과 방법을 열심히 찾는 것을 가리키는 동사 ‘제테오’의 부정과거형으로서 예수를 붙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틈과 기회를 찾기 시작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을 잘 나타낸다.

‘즉시’로 번역된 ‘엔 아우테 테 호라’는 ‘바로 그 시간에(same the hours)’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끝나는 시간을 가리킨다. 즉 비유를 듣던 그들은 비유가 자신들을 향한 말씀인 줄 깨닫고 말씀이 끝나는 그 순간에 예수를 잡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잡고자’로 번역된 ‘에피발레인’은 죄수를 끌고 가기 위해서 붙잡을 때 사용되는 단어(마 26:50 ; 막 14:46 ; 눅 21:12 ; 요 7:30) ‘에피발로’의 부정사로서 서기관과 대제사장들이 예수님을 마치 죄인처럼 여겨 그를 잡으려고 했음을 보여 준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눈에 예수님은 자신들의 기득권에 도전하는 도전적이고 선동적인 인물로 보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죽이려 했다. 그러나 본절에 언급되었듯이 그들은 백성들을 두려워하여 자신들의 생각대로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그를 선지자로 여겼고(눅 7:16), 예루살렘 입성시에 본 바와 같이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은 19:47.48에서도 나타난다. 본절의 기타 내용과 그 의미에 대해서는 병행 구절인 마 21 :45,46과 막 12:12의 설명을 보라.

 

포도원의 비유 ( 20:9-19 )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권세를 인정치 않으려고 작정한 자들을 향해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1) 이 비유에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에서 볼 수 있는 이상의 내용이 들어있지는 않다.

이 비유가 의도하는 바는 유대 나라가 하나님을 진노하시게 만들어서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하도록 내버려두게 된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가시적 교회(visible church)의 특권을 누리는 자들은 세를 내고 경작할 포도원을 빌린 소작농과 같다. 하나님께서 계시 종교를 만드신 것이 곧 세로 줄 포도원을 만드신 것과 같다(9절). 농부들에게는 해야 할 '포도원 일'이 있다. 그 일은 고되고 쉴 사이 없지만 즐겁고 유익한 일이다. 또한 농부들에게는 포도원 주인에게 바칠 "포도원 소출"이 있다. 갚아야 할 세가 있고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다.

2) 하나님의 사역자들이 해야 할 일은 교회의 특권을 누리는 자들에게 그에 합당한 소출을 바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하나님을 대신한 세금 징수인들이다(10절).

3)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은 때로 하나님께 속해 있는 소작인들에게 지독한 욕을 당할 때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행치 않으려고 마음먹은 자들은 의무를 행하라는 요청을 거두기 위해서 하나님은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 선지자들은 '종'으로서 말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아들'로서 말씀하셨다. 아들을 보내면 그 농부들이 생각을 달리 하리라고 생각할 것이다.

5)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을 내쫓은 자들이면 그리스도도 내쫓을 것이다. "이는 상속자니 죽이자"고 그들은 말했다. 그들이 종을 죽였을 때는 다시 보낼 종이 또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아들을 죽이기만 하면 우리에게 보낼 아들이 더는 없으니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던 것이다.

6) 그리스도를 죽임으로써 유대인들의 죄악은 절정을 이루었다. 하나님께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리라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며 지내는 자들은 자기들이 지금 얼마나 심각한 죄악과 파멸 가운데로 뛰어들고 있는가를 모르는 자들이다.

(2) 앞에서와는 달리 여기서는 그 비유에 대한 반응이 나타나 있다.

즉 그들은 그러한 심판에서 면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16절). '사람들이 듣고 가로되 그렇게 되지 말지어다 하거늘' 은 그런 뜻으로 해석해야만 한다. 심판을 막을 만한 일은 전혀 하지 않으면서 단지 "하나님 그렇게 하지 마소서"하고 비는 것만으로 심판을 면할 수 있다고 생각함으로써 그들이 어떠한 속임수를 가장하고 있는지 보라. 또한 그리스도께서 하신 말씀을 잘 살펴 보라.

1) 그리스도는 그들을 바라보셨다.

누가복음에서만 이 사실을 주목하고 있다(17절). 그분은 동정어린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분은 그들이 자신의 어리석음 때문에 부끄러워 하고 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서 그들을 바라보셨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에게 성경을 참조하게 하셨다.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뇨.' 주 예수께서는 하나님 우편에 오르실 것이다. 즉 그로 인해 파멸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미워하며 박해하는 자들에 대해서는 그리스도게서 그들 위에 떨어져 그들을 박살낼 것이다. 즉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3)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이 비유를 듣고 몹시 화기 났다고 했다(19절).

서기관들과 대제사장들은 예수의 이 비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 알았다. 그들은 예수에게 몹시 화가 나서 즉시 잡고자 하였다. 그들이 정면으로 달려들어서 목을 조르지 않은 것은 단지 그들이 백성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막 '이는 상속자니 죽이자'고 한 예수의 말씀을 실증하려던 참이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입맞추지 아니하고 도리어 그를 죽일 것이라고 그리스도는 말씀하신다. 결국 그들은 "당장 그를 덮치고 말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들이 심판을 면하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하더라도 그 다음 순간 죄지을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출처 ; 메튜헨리 주석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누가복음 20:20-26)

[ 성경묵상 ] - 복있는사람 묵상지

예수님은 정치적 차원에서 그를 반로마 세력으로 몰아가려는 종교 지도자들의 간교한 올무를 지혜롭게 잘 물리치십니다.

[ 질문 1 ] 예수님을 총독의 권세 아래에 넘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20절)

의인인 체하는 악한 사람들(20-22)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로마에 대한 정치적 반역자로 몰아갈 계획을 세웠습니다. 자신들의 권세를 지속시키기 위해 거기에 도전이 된다고 생각하는 예수님을 더 강력한 원수의 소굴로 몰아가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에 세금 바치는 문제를 들고 나옵니다. 이 문제는 매우 미묘한 것입니다. 세금을 바치라고 말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등을 돌릴 것입니다. 반면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하면 로마에 대하여 반역자로 낙인이 찍힙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이 후자의 답이 나오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의인인 체하는 사람들을 스파이로 예수님께 보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는 척하면서 예수님의 환심을 산 뒤 반외세적 언급이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도록 하는 전략을 구사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본질을 훤히 꿰뚫어 보셨습니다.

나는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과 자기 야욕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을 어떻게 구분해내고 있습니까?​

[ 질문 2 ]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25절)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23-26) 예수님은 스파이들의 감언이설에 속지 않으십니다. 입으로는 추켜 세우지만 속으로는 넘어뜨리려 하는 그들의 간계를 아셨습니다. 예수님은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라 하셔서 거기에 새겨진 얼굴과 글이 누구의 것인지를 물으셨습니다. 그들은 있는 그대로 "가이사의 것이니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는 척하면서도 가이사를 신으로 선언하는 동전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십니다. 진정으로 그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온 세상만물의 주인 되신 하나님만을 섬기고 그에게만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 핵심 원리를 재확인하시면서 동시에 교묘한 세금의 올무를 잘 넘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의 지혜에 탄복할 뿐입니다.

나는 세상 속에 있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는다는 신앙인의 원리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습니까?​

[ 성경묵상 ]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려 고소할 내용을 찾기 위하여 또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예수님의 권위에 대한 논쟁이 자신들의 패배로 결말지어지자(1-19절) 이번에는 당시 논쟁거리였던 납세에 대한 질문으로 예수님께 재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사형권은 로마 정부의 고유 권한이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 로마의 정치적 힘이 필요함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의 행위 중에서 로마의 법에 위배될 만한 요소를 찾고 있었던 것이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 통치하에 있었고, 다른 식민지와 마찬가지로 로마에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러나 당시 로마 황제의 상이 새겨진 로마의 화폐 데나리온으로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황제를 숭배하는 것으로 여겨져 율법을 충실히 지키고자 하였던 유대인들에게는 거부되었다. 그러나 로마 당국에서는 세금 거부를 로마 정부에 반항하는 것으로 여겨 엄격하게 처벌하였다. 따라서 로마에 대한 세금 납부는 당시 유대 사회의 뜨거운 현안 문제였으며, 어떠한 태도도 섣불리 취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세금을 내라고 하면 반민족주의자이며 반율법주의자로 간주되었고,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반국가적 범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탐꾼들은 자신들이 유대 율법에 매우 충성스러운 자들인 체하면서 자신 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로마의 납세에 대한 해답을 예수님께 요구하였다. 그리고 내심 율법에 충실한 자신들에 동조하여 예수의 입에서 납세 반대의 의견이 나오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계획대로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납세 찬성 의견을 내놓는다 해도 예수를 궁지에 몰아넣기에는 충분했다.


[ 성경대조 및 주해 ] - 개역개정과 표준새번역

20. 이에 그들이 엿보다가 예수를 총독의 다스림과 권세 아래에 넘기려 하여 정탐들을 보내어 그들로 스스로 의인인 체하며 예수의 말을 책잡게 하니

그리하여 그들은 기회를 엿보다가, 정탐꾼들을 보내서, 이들이 의로운 사람들인 듯이 행세하면서 예수께 접근하게 하여, 그의 말씀을 책잡게 하였다. 그렇게 해서, 예수를 총독의 치리권과 사법권에 넘겨 주려고 하였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 통치하에 있었고, 다른 식민지와 마찬가지로 로마에 세금을 내야 했다. 그러나 당시 로마 황제의 상이 새겨진 로마의 화폐 데나리온으로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황제를 숭배하는 것으로 여겨져 율법을 충실히 지키고자 하였던 유대인들에게는 거부되었다. 그러나 로마 당국에서는 세금 거부를 로마 정부에 반항하는 것으로 여겨 엄격하게 처벌하였다. 따라서 로마에 대한 세금 납부는 당시 유대 사회의 뜨거운 현안 문제였으며, 어떠한 태도도 섣불리 취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세금을 내라고 하면 반민족주의자이며 반율법주의자로 간주되었고, 세금을 내지 말라고 하면 반국가적 범죄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정탐꾼들은 자신들이 유대 율법에 매우 충성스러운 자들인 체하면서 자신들조차 어찌할 수 없는 로마의 납세에 대한 해답을 예수님께 요구하였다. 그리고 내심 율법에 충실한 자신들에 동조하여 예수의 입에서 납세 반대의 의견이 나오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자신들의 계획대로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납세 찬성 의견을 내놓는다 해도 예수를 궁지에 몰아넣기에는 충분했다.

21. 그들이 물어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그들이 예수께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우리는 선생님이, 바르게 말씀하시고, 가르치시고, 또 사람을 겉모양으로 가리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길을 참되게 가르치고 계시는 줄 압니다.

22.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 하니

우리가 황제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가이사에게 바치는 세는 남자는 14세 이상부터, 여자는 12세부터 65세까지 바치는 인두세였다. 가이사는 로마 황제라는 뜻으로 그 당시 황제는 티베리우스이다(3:1).

23. 예수께서 그 간계를 아시고 이르시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속임수를 아시고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 누구의 형상과 글이 여기 있느냐 대답하되 가이사의 것이니이

"데나리온 한 닢을 나에게 보여다오. 이 돈에 누구의 초상과 글자가 새겨 있느냐?" 그들이 대답하였다. "황제의 것입니다."

로마의 화폐인 데나리온은 당시 로마가 다스리는 모든 지역에 인두세를 거둘 때 사용되었다. 화폐의 앞면에는 당시 로마 황제 가이사의 형상과 ‘존엄한 아우구스투스의 아들인 티베리우스 케사르, 즉 아우구스투스(TI CAESAR DIVI AUG F AUGSTUS)’라는 글이 있었다. 그리고 화폐의 뒷면에는 종려가지를 쥐고 앉아 있는 평화의 여신이자 황제의 어머니인 ‘리비아(Livia)’의 형상과 ‘최고의 제사장(PONTIFEX MAXIMUS)’이라는 글이 있었다. 로마 황제는 이렇게 화폐에다 자신의 형상을 새김으로써 자신을 신격화하여 자신의 통치를 가시화하려 하였다. 이러한 로마 통치의 방법은 우상 숭배를 금기시하는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갈등과 배척을 불러일으켰던 것 중에 하나였다.

예수님 당시의 데나리온에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3:1의 디베료)의 얼굴과 함께 "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신성한 아들 티베리우스 가이사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동전 자체가 종교적, 정치적 선전물의 집합체였다.

25. 이르시되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하시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돌려드려라."

'가이사의 것'은 세금 납부 이상을 의미한다. 그가 합법적으로 지시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그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 대한 더욱 높은 의무가 전자의 의무를 포함한다는 데서 분명해진다.

26. 그들이 백성 앞에서 그의 말을 능히 책잡지 못하고 그의 대답을 놀랍게 여겨 침묵하니라

그들은 백성 앞에서 예수의 말씀을 책잡지 못하고, 그의 답변에 놀라서 입을 다물었다.

26절의 병행 구절에서 마가는 정탐꾼들이 예수님의 지혜로운 답변에 ‘기이히 여겼다’고만 웅답한 반면(막 12:17), 마태는 ‘기이히 여겨 떠나갔다’고 기록하였다(마 22:22). 그러나 누가는 ‘놀랍게 여겨 침묵하였다’고 기록함으로써 예수님의 답변이 끝난 후 그 자리에서 정탐꾼들이 단 한마디도 논박하지 못했음을 강조하였다.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문제 ( 20:20-26 )

우리는 여기서 예수의 대적들이 세를 바치는 것에 대해 질문함으로써 예수를 잡으려고 쳐놓은 올무에서 빠져나가는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게 된다.

1. 그리스도를 해치려는 흉계(20)

그 흉계는 '예수를 총독의 치리와 권세 아래 붙이려'는 것이었다(20절). 그들의 힘으로는 예수를 법에 따라 처형할 수 없었으며 "폭동"을 일으키는 것 외에는 달리 그를 죽일 방법이 없었다. 총독이 예수에 대해서 분노하도록 만들 수만 있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생각이 이루어지리라고 기대했다. 이렇게 해서 '이방인의 손에 넘겨지리라'고 한 그리스도의 말씀은 틀림 없이 이루어진다.

2. 그들이 고용한 사람들(20)

그들은 정탐이었으며 스스로 의인인 체 해야했다. 스스로 의인인 체 하는 일이 악인들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정탐은 틀림없이 변장을 한다. 이 정탐들은 분명히 그리스도의 판단을 존경하는 것처럼 가장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양심 문제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조언을 구했을 것이다.

3. 그들이 제시한 질문(21,22)

그들은 매우 정중하게 말을 시작한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21절). 이렇게 말함으로써 예수를 부추겨 자기들에게 허물 없이 솔직하게 말하도록 하려고 그들은 생각했다. 이렇게 겸손하신 예수를 속이려는 생각을 한 그들은 큰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예수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신다. 도리어 그분은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읽으시며, 그들이 아무리 정중하게 말했다 하더라도 그들의 속 생각을 다 알고 계셨다. 예수께서 참으로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에게 가르침을 받을 만한 사람이 못된다는 것을 예수는 아셨다. 그들은 예수의 말을 책잡으려고 왔으나 예수는 결코 그들에게 책잡히지 않았다. 그들이 한 질문은 아주 미묘한 것이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가하나이까(21절). 유대인들은 긍지가 있고 욕심이 있었기 때문에 세금 내는 것을 몹시 싫어 했다. 그래서 그들은 세금 내는 것이 합법적인가 아닌가를 종종 문제삼곤 했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것이 가하다고 말씀하신다면 백성들이 화를 낼 것이고, 그들이 기대한 대로 불가하다는 답을 하신다면 총독에게 고발할 명목이 생기는 것이다.

4. 올무에서 빠져나가시는 예수님(23)

예수께서는 그 간계를 아셨다(23절). 예수께서는 직접적인 대답을 피하시고 자기를 속이려 한 그들을 꾸짖으셨다. 데나리온 하나를 내게 보이라(24절). 그리스도는 그것이 누구의 돈이며, 거기에 누구의 도장이 새겨졌으며, 그것을 누가 만들어 냈는지를 그들에게 물으셨다. 가이사의 것이라고 그들은 인정했다. 그러자 그리스도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너희는 먼저 가이사의 돈이 너희 가운데 통용되는 것이나 가이사의 돈을 너희 화폐로 인정하는 것이 가한가를 물어봐야 했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 그러나 거룩한 것에 있어서는 하나님 한 분만이 너희의 왕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5. 어리둥절해진 그들(26)

올무는 벗어졌다. 그들은 백성 앞에서 예수의 말을 책잡을 수 없었다. 그들은 예수의 대답을 듣고 놀랐다. 그 대답은 아주 완벽했다. 그들은 입을 다물고 잠잠했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물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고 그들이 계속 질문했다면 예수는 분명히 그들에게 망신을 주며 그들의 죄를 폭로했을 것이다. 출처 ; 메튜헨리주석 <청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