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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막14:22-31 새 언약의 만찬

by 은총가득 2020. 10. 29.

 

막14:22-31 새 언약의 만찬

 

 

막14:22-31  새 언약의 만찬

 

 

성만찬

(22-26절)

예수님은 유월절 만찬에서 그분의 몸과 피로 새 언약을 맺으십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끝까지 주와 함께하겠다고 자신합니다.

시작은 여느 때의 식사와 같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얼굴은 어느때 보다도 엄숙하고 무거우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취하신 후 축복하셨습니다. 그리고 조각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22절)"

이 떡은 '마짜'라 불리는 무교병입니다. 애굽으로부터 급히 빠져 나왔던 것을 기억하며 누룩을 첨가하지 않고 급히 만든 떡을 먹는 것입니다(출23:15, 레23:6). 무교병은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희생과 봉사를 의미합니다(출12:16-20). 무교병에서는 떡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맛과 즐거움이 없습니다. 단지 봉사할 수 있는 힘을 얻을 뿐입니다. 14일은 유월절이고 15-21까지 7일간 무교병을 먹는 무교절인데 매일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 날들 중 2일간은 곡식단을 흔들었고, 첫날 과 마지막 날은 성회로 모이고 노동을 금했습니다(출12:15-20).

예수님께서 유월절 잔치(passover sedor)를 한 이 날이 14일이고 목요일인데 본래 목요일에는 유월절로 양을 잡아 그것을 먹는 날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양을 잡아 먹는 날에 자신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떡과 포도주를 제자들과 함께 나누고 계십니다.

이 무교병은 죄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성도들을 위해 찢기시는 것이며, 그가 죽음에서 부활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생명과 부활에 대한 확실한 소망을 주시기 위해 이를 기념하여 행하라 하셨습니다(엡1:21-22).

그런데 놀랍게도 이날에 있어야 했던 양 잡는 일은 안식일의 중복문제로 다음 날 금요일에 잡고 저녁에 양고기를 먹도록 산헤드린에서 결정했다는 점입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금요일에 죽임 당하심이 보다 확실하게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희생당하신 바가 되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떡을 다 먹자, 이어서 잔을 취하신 후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의 유월절 잔치에서 무교병과 포도주를 마시기 전에 드리는 감사기도는 다음과 같은데 예수님께서 이와 유사하게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우주의 왕이신, 우리 주 하나님, 당신은 복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당신은 땅으로부터 빵을 생산해 내십니다.

우주의 왕이신, 우리 주 하나님, 당신은 복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당신은 포도나무의 열매를 창조해 내십니다.

(미드라쉬, Berakoth VI.1)


그리고 제자들에게 잔을 넘겨주어 다 마시도록 했습니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24-25절)

이처럼 예수님은 유월절 잔치를 열므로서 성만찬을 제정하셨고, 교회를 통해 이를 지키게 하셨습니다. 여기서 언급하신 상징들은 주님의 죽으심을 통해 구원의 길이 활짝 열릴 것을 의미합니다.

떼어서 나누어준 떡은 희생으로 바쳐진 주님의 몸을 표시합니다. 자기 자신과 희생의 열매를 믿는 자들에게 성만찬으로 나누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제자들의 공동체를 먼저 '그리스도의 몸'이 되게 하신 것(고전10:16-17)입니다. 이후로 주님은 교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려 이 언약식을 거행하게 하셨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포도주는 '많은(모든) 사람을 위해 흘리신 피'라 하셨습니다(사53:11-12, 사42:6; 49:6). 이사야 53:12절을 보면 “이러므로 내가 그로 존귀한 자와 함께 분깃을 얻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은 대속의 죽음으로 많은 사람의 죄를 지고 그들의 범죄를 위해 기도하시며 감당하신 일이었습니다.

큰 포도주 잔이 모든 제자들에게 한 바퀴 돌 때 그것을 받아 마신 사람들은 모두다 '새언약'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렘31:31). 이렇게 새로 체결된 새 언약은 옛 시내 산 언약을 대체시키고 완전케 합니다(출24:8).

주님께서는 궁극적으로 완성시킬 하나님의 나라는 천상의 식탁에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는 하나의 커다란 하나님의 가정입니다(사25:6-8).

 

 

 

이를 단호하게 말씀하심이 25절입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5절)”

이제 예수님께서는 자신 안에 있는 영생을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 되고자 하십니다. 이제 유월절 제사, 곧 유월절 어린 양이 희생되는 제사가 행해짐으로 무교절 잔치가 시작이 됩니다. 이때 유대인들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떡인 무교병을 먹습니다. 유월절 절기에 참여하는 유대인 모든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모두 다 이 무교병을 유월절 고기와 쓴 나물과 함께 먹습니다. 그럼으로써 유월절로 흘려진 피가 구약에서 애굽에 있는 사람이건 짐승이건 가리지 않고 처음 태어난 맏아들이나 맏배는 모두 죽인 재앙, 그리고 애굽에 있는 신이라는 신에게는 모조리 벌을 내린 재앙이 그 피의 언약 안에 들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건너 뛰어 넘어감으로써 재앙을 피하여 죽음을 당하지 않음으로 벌이는 축제의 잔치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출12:1-1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유월절 잔치를 준비하게 하면서 그들과 함께 떡을 먹기를 원하신 것은 바로 이 까닭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새로이 세우신 언약의 피, 곧 새 언약에 의하여 예수님의 생명이 자기 안에 있지 아니하는 자는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흘러나오는 생명으로 영원히 목마름이 없는 자로 있지 아니하는 자는 예수님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그 은혜 안에 있어야 합니다.


제자들이 도망할 것과 부인할 것을 예고하심

(26-31절)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27)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3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31)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26-31절)"

26절을 보면 유월절 만찬을 마친 예수님과 제자들은 하나님을 찬미하며 감람산으로 갔습니다. 유대인들은 유월절 식사 후 시114-118편(혹은 115-118편)으로 찬양을 드리곤 하였습니다.

감람산의 기도를 통하여 제자들이 또 그들에 의해 세워질 교회가 주님의 십자가 죽음의 의미를 바로 알도록 기도하시고 이를 위해 성령을 부어 주시기를 구하고자 하십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감당하는 길을 능히 걷기 위해 기도하시러 가십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장차 보여줄 행동들을 다 아십니다. 그렇기에 이들에게 미리 말씀하십니다. 위기에 빠졌으나 거기에 머무르고 좌절한 채로 있지 않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 위기에서 제자들을 다시 끌어 내실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십니다.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음이니라 (28)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27-28절)"

그러나 베드로는 호언장담합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29절)"

주님께서 베드로의 말에 기쁘십니다. 하지만 그의 결심이 얼마나 약한지도 아십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0절)"

베드로가 더욱 힘있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31절)"

다른 제자들도 다 그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들의 단호한 의지는 채 얼마 되지 않아서 새벽에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힘없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하지만 가장 용감했던 베드로가 가장 깊이 떨어지고 말것입니다. 그렇지만 주님께서는 호언 장담한 바로 이 베드로부터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16:7; 눅24:34; 고전15:5).

66-72절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예수님을 저주하며 맹세하며 부인했습니다. 그때서야 비로소 정신이 든 베드로는 자신이 지금 주님께 무슨 짓을 했는지를 알고서 가슴을 치며 슬피 울었습니다.

우리 인간은 전적으로 무기력합니다. 그러한 사람인 우리에게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복음이 임하여 와서 함께 하고 죄 사함과 생명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신앙으로 고백하며 섬겨나가는 일은 우리의 생각과 의지로 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은 믿는 자로 하여금 담대하게 합니다. 주님이 죽임을 당한 그 현장 속에서, 우리도 동일하게 흩어짐을 당하는 고난의 삶의 현장에서 주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고 따르는 제자임을 분명히 고백하게 합니다. 예수님을 나의 생명의 주로 섬긴다고 분명히 말해 나가게 합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의 영이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정하신 모든 계획을 알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생명을 얻었음을 알게 하십니다.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승리하신 주님을 바라보게 하십니다. 이 예수님께 자신을 온전히 맡끼고 그 주권에 따르게 하십니다. 이것을 우리는 성령 강림 이후 달라진 제자들의 모습에서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에 보면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제자들의 모습은 담대하게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저주하며 부인했던 제자들이 주와 복음을 위해 순교의 길을 갑니다.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신 후에 그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후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제자들을 타겟으로 삼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셨으나 부활하셨고, 제자들은 그 부활에 힘입어 담대하여 질 것인데 유대인들의 반감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출산지요, 제자들의 대부분을 부르신 곳, 갈릴리에 가셨다가 40일 째가 되셨을 때는 감람산에서 승천하실 것이니 그 이전에 유대로 돌아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오순절에 성전에 다시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갈릴리는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 배반하고 낙심하고 절망에 빠져 있을 제자들을 회복시키시고 소명을 주시고자 하실 때 갈릴리만한 곳이 없습니다. 부르신 그 곳에 불러 다시 소명을 주시며 일어서게 하시려고 갈릴리고 이끄십니다. 그 사이에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위협과 살인의지도 잠시 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낙심되어 있다면 우리 역시 우리를 부르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그 곳에서 주님은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버리거나 내치지 않으시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며, 다시 소명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시 돌아가야 할 곳은 갈릴리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배반하고 죄악 가운데 있다면 우리를 부르신 갈릴리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면 우리를 부르신 갈릴리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기 도

제 자신에 대한 무모한 자신감을 내려놓고,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가난한 마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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