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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열 두 제자의 파송 및 전도자의 수칙

by 은총가득 2020. 9. 8.

 

열 두 제자의 파송(마 10:1-4)

 

예수님은 갈릴리를 돌아다니면서 회당에서 말씀가르치고, 천국 복음을 전하셨으며, 또 모든 질병연약한 것들고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무리들이 목자를 잃은 양처럼 유리하며 방황하는 것을 보시고, 마음에 깊은 동정심을 느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어 그들을 돌보시고 먹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돌아다닐 때에 마을마다 추수를 기다리는 영혼들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나 그 영혼들을 추수할 일꾼들은 너무나 적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다!"고 한탄하시고, 제자들에게 "추수할 주인에게 추수할 일군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12 제자들전도 사역동참시키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전도 현장에 파송하신 일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사역을 감당할 힘을 주심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 10:1)."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둘 씩 둘 씩 보내시며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막 6:7)..."

"예수께서 열 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세를 주시고(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어 보내시며(눅 9:1-2)..."

 

예수님의 3차 갈릴리 전도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역은 크게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수많은 영혼들을 추수할 일꾼들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시고, 12제자를 불러서 전도 현장에 투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의 일꾼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하시고, 그들에게 전도 현장으로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현장에 파송하실 때에 그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는 일은 사단과의 영적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악한 영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능력이 없으면 제자들은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질병과 연약한 것을 고칠 수 있는 능력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통해서 영혼을 구원하시고, 또 능력으로 육신을 강건케 하는 힘을 주셨습니다. 참된 구원은 영혼과 육신의 회복을 모두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 복음뿐 아니라 질병과 연약한 것도 고칠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영혼과 몸을 모두 온전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영혼뿐 아니라 육신도 온전케 하는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지금도 성령님은 전도자들에게 이러한 능력을 제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성령충만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2. 열 두 사도

"열 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2),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3), 가나안인 시몬과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마 10:2-4)."

마태는 이때에 전도자로 부름 받은 12제자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이 12제자들을 "사도"(아포스톨로스)로 소개했습니다. "사도"(아포스톨로스)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왕이나 특별한 사람의 대리자로 보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들은 자기를 보낸 사람의 뜻을 전하는 일을 했습니다. 12제자들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천국 복음을 전하기 위해 부름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마태는 이때에 사도로 부름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의 부름받은 사람들은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그리고 시몬과 가룟 유다(예수를 판 자)였습니다.

우리는 이 12제자들에게 대해서는 이미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31주 4-5일). 12제자 명단에 가장 먼저 나오는 사람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처음에 부름 받은 네 제자였습니다(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이 사람들은 항상 예수님의 곁에 있었고 예수님의 영광을 친히 목격했습니다. "빌립" 역시 갈릴리에서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바돌로매"는 '돌로매(또는 달매)의 아들'이란 뜻으로, 학자들은 그를 나다나엘과 동일인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마태"는 세관에서 세리로 일하다가 예수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도마"는 쌍둥이란 뜻을 가진 아람식 이름이었습니다. 그리고 다대오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야고보의 아들 유다"라고 언급되어 있습니다(눅 6:16, 행 1:13 참조). 가나안인 시몬은 다른 곳에서는 셀롯인 시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셀롯은 히브리어 "칸나"라는 말인 "셀롯"(zeal: 열심이 있는)을 음역한 것입니다. 아마도 그는 당시에 혁명적인 정치 활동을 하던 셀롯당(Zealot: 열심당)의 일원이었을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넘긴 사람이었습니다. "가룟인"이란 말은 "그리욧(Karioth)에서 온 사람"(그리욧 지방 출신)이란 말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빈부와 학벌, 학연과 지연, 직업과 성격 등을 구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신 제자들은 다양한 직업과 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도마와 마태는 교육을 많이 받은 반면, 갈릴리에서 부름 받은 네 제자들은 많이 배우지 못한 어부들이었습니다.시몬은 과격한 운동권자인 열심당원이었고, 마태는 열심당원들이 가장 증오하던 세리였습니다. 또 베드로는 우유부단한 사람이었지만, 야고보와 요한은 불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에 지역적인 배경도 초월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는 갈릴리 출신, 가나안 출신, 그리고 그리욧 출신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직업에 있어서도 매우 다양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어부도 있었고, 세리도 있었으며, 운동권자와 학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다양한 지역과 계층에 속한 사람들을 불러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할 천국 일꾼으로 삼으셨습니다.

 

3.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심

마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실 때에 두 명씩 짝을 지어 보내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막 6:7).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낼 때에 혼자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그들을 "복음의 증인"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모세의 율법은 재판할 때에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을 요구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한 명의 증인만으로는 재판을 열 수 없었습니다. 유대의 법에서도 한 명의 증인은 증인으로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복음의 증인을 보내실 때에 두 명씩 짝을 지어 보내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두 명이 짝을 지어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배려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할 때에는 혼자 하는 것보다 두 사람이 팀을 이루어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때에 한 사람보다 두 세 사람이 협력하는 것이 좋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혼자 일을 감당하기 어려우면, 하나님께 함께 일할 수 있는 동역자를 달라고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도자의 수칙(마 10:5-8)

 

예수님은 갈릴리 전도 여행을 하면서 백성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하며 방황하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선한 목자가 되어 친히 그들을 돌아보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전도 여행을 하면서 수많은 영혼들이 추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각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영혼을 추수하셨습니다. 그러나 추수할 영혼은 많은 데 그들을 추수할 일꾼은 너무나 적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은 12제자들을 불러서 그들을 훈련하시고 직접 전도 현장에 파송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둘씩 짝을 지어서 제자들을 복음을 전할 마을로 파송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현장에 파송하기 전에, 그들이 전도 사역에 있어서 꼭 알아야 할 내용들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전도를 위해 떠나는 제자들에게 해주신 말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전도자가 가져야할 영적 자질(마10:28-39)

마태복음 10장 28-39절

모든 성도는 예수님의 지상 명령인 복음을 전해야 할 사명이 있다. 즉 복음 증거는 복음에 빚진 자로서 당연히

감당해야 할 의무이기 때문에 이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성도로서 직무유기를 하는 것이고, 그에게는 여호와의

화가 임하게 된다.(고전 9:16).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켐브리지 대학의 졸업

학위 시험(試驗)에서 수석을 한 뒤 센트죤스대학의 교수였던 헨리 마팀(Henry Martin) 은 교수직을 포기하고

선교사가 되어 인도(Calcutta)에서 선교 사역을 수행하였다.

그 후 헨리는 못 쓰게된 힌두교 사원에서 살면서,‘여호와를 위해서 나를 번제로 삼아 주소서.’ 라고 외치며

불타는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하였다. 오늘도 이와 같은 헌신을 요구하시는 예수님께서는 2천 여년 전 12 제자들을

파송하시면서 주었던 교훈으로써, 우리에게도 다음과 같은 전도자의 영적 자질을 가르쳐 주시고 계신다.

 

1. 전도자는 여호와만을 두려워 해야 한다.(28절).

전도를 하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실제 전도를 하다가 순교한 사람들도 교회사 가운데에는 적지

게 나타난다. 본문도 이를 반영하여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며,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권하고 있다.

여기에서 유사한 두 단어가 등장하는데, 하나는 ‘죽이다’(아포크테이노)이고 다른 하나는 ‘멸하다’(아플뤼미)

이다. 여기에서 앞에 것은 육적 생명을 ‘살해하다’ 란 의미가 강한데 후자는 영과 육을 모두 소멸하는 것을 가리킨다.

 

한편 '두려워하다'(포베오)는 '무서워하다'(마17:6) 라는 뜻과 더불어‘존경'의 의미를 포함하는 '경외하다'(눅1:50)

라는 뜻도 지닌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세상의 어떤 것, 심지어 우리의 목숨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사람이라도 두려워

하지 말고, 오직 우리의 영혼과 육체를 죽이기도 하지만 살리기도. 하시는 여호와만을 두려워하는 자세로 전도에 임해

야 한다.

 

2. 전도자는 생명을 여호와께 맡겨야 한다.(28-31절)

여호와는 반 앗사리온 하는 참새의 생명까지도 주관하신다. 여기에 ‘앗사리온’은 라틴어에서 유래된 로마 동전의

장 적은 단위로서 매우 싼 값을 의미하며, 한 데나리온의 1/16 에 해당한다. 한편 ‘귀하다’(디아페로) 는 ‘구별

다’(갈 4:1), ‘우월하다’(마 6:26) 는 의미가 있다. KIV 와 NIV 그리고 RSV 는 이 말을 ‘더욱 가치 있다'는

말로 해석함으로써 전도자의 생명의 귀함을 설명한다. 즉 하찮은 참새 한 마리도 여호와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지 않을

만큼 생명을 소종하게 여기시는 여호와의 보살핌이 전도자에게는 얼마나 크게 임하겠느냐 하는 의미이다. 시편 기자

는 우리를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시고'(시121:30, 악인의 손에 빠지지도 않게 하신다고 말하고 있다.(시140:4)

.그러므로 성도들은 모든 것, 즉 생명까지도 여호와께 맡기고 전도자의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해야 한다.

 

3. 전도자는 예수님께 합당해야 한다.(38절).

예수님은 합당한 자만이 예수님의 복음을 바르게 전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합당하다’(악시오스) 는 ‘데리고 가다’

(행 11;26), ‘인도하다’(히 2:10), ‘이끌다’(눅 4:9),‘붙들자’(행 17:19) 라는 뜻의 ‘아고’에서 유래하

칭찬 받을 만한 ‘적당한’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즉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를 예수님이 붙들어

인도하시며, 칭찬하신다는 의미이다. 한편 ‘지다’(람바노) 는 ‘가지다’, ‘손에 들다'(마 26:260, ‘영접하다

(요 6:21)라는 의미이다. 그러므로 고난의 십자가를 진심으로 마음에 품고 예수님을 따를 때에 예수님은 그를 붙들고

칭찬하신다는 것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거운 짐을 견뎌야하며, 모든 수치를 참아야 함을 가리키며, 진심으로

여호와께 복종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명을 감당하는 자에게 여호와께서는 생명의 면류관을 씌워 주시는 것이다.(고전 9:25).

 

 

우리는 오늘날 교회가 벙어리 성도들을 생산해 낸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근래에 들어서 한국 교회의 전도

열기는 많이 시들었다. 사람은 잠잠할 때가 있고, 말을 할 때가 있지만 (전 3:7), 성도가 이 시대에서 잠잠하다면 전도

의 사명을 망각하고 형제의 죽음을 방기(放棄)하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아람 군대의 진영이 텅 빈

것을 발견하고 동족에게 이를 알렸던 사마리아의 문둥이들처럼 (왕하 7:9), 오늘 우리들도 더욱 전도에 힘쓰는 성도가

되어야 하되, 본문의 말씀과 같이 여호와만을 두려워 하며 생명을 여호와께 맡기고, 예수님께 합당한 성도로서 회개와

천국의 복음을 과감하게 외쳐야 한다. 그랜드종합주석 마태복음 10장 pp324-325

 

 

1. 전도의 대상: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예수께서 이 열 둘을 내어보내시며 명하여 가라사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5),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마 10:5-6)."

예수님은 12제자들을 전도 현장에 파송하시면서 그들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할 대상이 누구인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차라리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방인이나 반목 관계에 있는사마리아인에게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이스라엘 집의 잃어 버린 양"에게 보내셨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스라엘의 잃어 버린 양에게 보내셨을까요? 예수님은 이스라엘 민족만 선민으로 여기고 다른 민족은 버림 받은 백성으로 간주하셨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부활 후에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이 시점에서 제자들에게 이런 명령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할 때에 순서를 따르셨습니다. 천국 복음은 원래 모든 민족을 위해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순서가 있었습니다. 복음은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파되고, 그 후에 그들을 통해서 다른 민족에게로 전파되도록 계획이 되어 있었습니다. 구약 성경은 이미 오래 전에 복음이 예루살렘에서시작되어 사마리아와 온 유대와 땅 끝으로 전파될 것을 예고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러한 성경을 따라서 제자들에게 먼저 이스라엘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둘째로 제자들은 아직 이방인과 사마리아인에게 복음을 전할만큼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에 제자들은 처음으로 복음 전도 현장에 투입되는 단계에 있었습니다. 이 때에 그들은 아직 하나님 나라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성경을 모르는 이방인이나, 감정의 골이 깊은 사마리아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먼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지시를 하셨습니다.

 

셋째로 이러한 기록은 마태복음의 독자유대인들을 고려한 것이었습니다. 마태는 유대인을 위해서 마태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특별히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유대인에게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이러한 명령은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준비를 마치신 후에, 제자들에게 비로소 이방인에게 가라고 명하셨습니다.

 

2. 제자들이 해야할 일: 하나님 나라, 치유와 축사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7),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마 10:7-8(상))."

둘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할 일"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두 가지 일을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천국이 가까왔다!"고 전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때에 하나님의 나라는 매우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 나라는 보통 사람들이 들어갈 수 없는 먼 곳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의 때부터 하나님 나라는 침노를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후에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을 믿으면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는 성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오래 전에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그 나라의 문을 활짝 여시고, 누구든지 회개하고 믿기만 하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제 하나님 나라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곳에 있었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고, 문둥이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뿐 아니라, 능력으로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을 보여주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에게 "병을 고치고, 악한 영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사단의 나라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보여주는 표적이었습니다. 복음은 영혼과 육신을 모두 회복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영혼과 몸을 모두 회복시킬 수 있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또한 이 일은 지금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말로만 복음을 전해서는 안됩니다. 지금도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권세를 가지고 영혼과 몸을 모두 온전케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우리는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고 육신을 온전케 하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3. 값없이 주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 10:8(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일을 할 때에 "돈을 받지 말고 값없이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능력을 예수님께 값없이 받았습니다. 이 능력은 제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서 주어진 공적인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이러한 일을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값없이 행해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가난해서 이웃에게 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필요한 것을 예수님께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이웃에게 베풀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 안에는 이 세상을 만드시고 죽었던 예수님을 다시 살려 주신 성령님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이웃의 질병을 고치고 온전케 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성령 충만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얼마든지 이웃을 돕고 섬기는 풍성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돌아다니면서 수없이 많은 영혼들을 보셨습니다. 그 영혼들은 추수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추수할 일꾼은 너무나 적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기도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12제자들을 전도 현장에 파송하셨습니다. 이 때에 예수님은 전도를 위해 떠나는 제자들에게 병을 고치고 귀신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방인이나 사마리아인의 마을로 가지 말고,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백성에게 가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각 마을에 가서 "천국이 가까웠다"고 전하고, 병을 고쳐주며, 귀신을 쫓아내고, 죽은 자를 살리며, 또 문둥병에 걸린 자를 고쳐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러한 일들을 할 때에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전도자의 수칙'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여행 경비에 대해서!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가지지 말고(9), 여행을 위하여 주머니나 두 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군이 저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니라(마 10:9-10)."

"명하시되 여행을 위하여 지팡이 외에는 양식이나 주머니나 전대의 돈이나 아무 것도 가지지 말며(8), 신만 신고 두 벌 옷도 입지 말라 하시고(막 6:8-9)..."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주머니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눅 9: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갈 때에 "금이나 은, 또는 동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금, 은, 동'은 '금화, 은화, 그리고 동화'(여행 경비)를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전도자들에게 여행 경비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여행을 위해서 주머니를 가지거나, 두 벌 옷이나 신, 또는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전도 여행을 떠날 때에 필요한 옷과, 양식, 그리고 다른 도구만 소지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전도 여행을 하는 동안에 여행 도구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전도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을 더해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밭에서 곡식을 추수하는 일꾼은 주인으로부터 먹을 양식을 받게되어 있습니다. 또 국방을 지키는 군인도 나라에서 필요한 의식주를 제공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도 필요한 의식주를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최소한의 비용과 장비만 가지고 믿음으로 출발해야 했습니다. 전도자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을 믿고 떠나야 합니다.

 

2. 좋은 곳을 찾아다니지 말라!

"아무 성이나 촌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11). 또 그 집에 들어가면서 평안하기를 빌라(12). 그 집이 이에 합당하면 너희 빈 평안이 거기 임할 것이요 만일 합당치 아니하면 그 평안이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니라(마 10:11-13)."

 

"또 가라사대 어디서든지 뉘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나기까지 거기 유하라(막 6:10)."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유하다가 거기서 떠나라(눅 9:4)."

 

또 예수님은 제자들이 마을에서 환영받거나 거부당할 때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그들을 환영하는 마을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영접하는 성이나 촌에 들어가면, 그 곳에서 합당한 사람을 찾고 그 집에서 그 마을을 떠날 때까지 머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영접하는 집에서 그 마을을 떠날 때까지 머물고, 더 좋은 곳을 찾아 돌아다니지 말아야 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머물면서 그곳을 떠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복음을 전해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자기를 영접하는 집에 들어가면 "그 집의 평안을 빌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만일 그 집이 그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면 그 집에 평안이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만일 그 집이 그 축복을 받기에 합당하지 않으면, 그 평안이 전도자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자들은 평안과 축복을 기원해야 합니다. 이러한 축복은 자신과 이웃을 모두 축복으로 인도합니다.

 

3. 복음을 거절하는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그 집이나 성에서 나가 너희 발의 먼지를 떨어 버리라(1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성보다 견디기 쉬우리라(15)."

"어느 곳이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니하거든 거기서 나갈 때에 발아래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막 6:11)..."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버려 저희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눅 9:5)..."

 

둘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반대하는 마을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는 마을을 만나면 "그 성이나 집을 떠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그들이 그 곳을 떠날 때에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서 증거를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심판 날에 그 성이나 집이 소돔과 고모라보다 더 엄한 징계를 받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부정한 것을 만나면 손을 씻고 발에 묻은 먼지를 털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해서 자신이 부정한 것에 전염되지 않게 했습니다. 제자들이 자신들을 거부하는 마을에서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낸 것도 이와 비슷합니다. 이러한 행동은 그 마을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제외되었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또 이러한 행위는 복음을 거절한 마을이 하나님 나라와 아무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구원의 기회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 나라와 상관이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제자들은 마지막 심판 때에 복음을 거절한 마을이 받을 심판에 대한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있었습니다. 이제 모든 심판의 책임은 복음을 거절한 마을이 져야만 합니다. 제자들이 발에서 먼지를 털어낸 것은 이러한 여러 가지 일들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었습니다.

 

박해에 대한 예언(마 10:16-23)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사역에 파송하면서 그들이 주의해야 할 몇 가지내용들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전도를 위해 떠나는 제자들에게 의식주여행 경비를 따로 준비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전도자들에게 필요한 의식주와 경비를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을 영접하는 마을이 있으면, 그들을 영접하는 집을 찾아서 그곳에 떠날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 있으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을 전도자들에게 더 좋은 집을 찾기 위해서 돌아다니지 말고, 그 집에 들어가면 그 집의 평안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만일 그 집이 그 축복을 받을 자격이 있으면 그 축복이 그 집에 임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 축복이 제자들에게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거부하는 마을이 있으면 그 발에 묻은 먼지를 털어 내고 그곳을 떠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심판 날에 그 마을이 소돔과 고모라보다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전도를 위해 떠나는 제자들에게 해주신 말씀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전도자가 갖추어야 할 두 가지: 지혜와 순결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16)."

예수님은 전도를 위해 떠나는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실 때에 이 세상은 마치 이리가 우굴거리는 광야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러한 거친 세상에 비하면 연약한 양들과도 같았습니다. 세상은 불의와 죄악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제자들만 보내기에는 만만치 않았습니다. 양은 연약하고 미련합니다. 양은 목자가 없으면 길을 잃고 방황하다가 들짐승의 먹이가 되어버립니다. 양은 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습니다. 소는 뿔과 힘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스컹크는 지독한 냄새로 적을 물리칩니다. 그러나 양은 자기를 보호할 수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양은 목자가 지켜주지 않으면 들짐승의 먹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보실 때에 제자들은 연약하고 미련한 양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서 복음을 전할 세상은는 사나운 이리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제자들을 자기 곁에 두고 보호하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염려가 되긴 했지만 과감하게 그들을 세상에 파송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로 제자들이 세상에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뱀과 같은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뱀은 에덴 동산에서 가장 지혜로운 짐승이었습니다. 뱀은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알고 있습니다. 뱀은 자신을 공격할 의사가 없는 사람이나 짐승을 만나면 피합니다. 그러나 뱀은 자신을 해칠 것같은 상대를 만나면 독이 든 이빨로 공격을 합니다. 이와 같이 뱀은 연약하지만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도자들 역시 이리로 가득 찬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지혜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들은 성령님께 지혜를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로 제자들이 세상에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비둘기와 같은 순결을 유지해야 합니다. 뱀은 지혜가 있지만 사악합니다. 그러나 전도자는 지혜로우면서도 순결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전도자는 지혜와 순결을 소유해야 세상에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2. 국가적인 박해

"사람들을 삼가라. 저희가 너희를 공회에 넘겨주겠고(17(상)...또 너희가 나를 인하여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리니, 이는 저희와 이방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18).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 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19),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20)."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을 삼가라(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장차 당하게 될 박해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두고 하늘로 가실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계승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때에 제자들에게 찾아올 위협과 박해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할 국가적인 박해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때에 "사람들이 제자들을 공회에 넘겨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공회"는 유대의 정치, 종교, 사법을 관할하던 국가 최고 의결 기구였습니다. 그러므로 공회에 넘겨지는 것은 고소를 당하여 국회 청문회에 서는 것과 같습니다. 제자들은 장차 고소를 당하여 체포될 것이며, 산헤드린 공회에서 공개적인 심문을 받게될 것입니다. 후에 베드로와 사도들은 이 예언대로 유대인의 공회에 끌려가서 공개적으로 심문을 받았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이 "총독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처럼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소를 당하여 총독과 임금들 앞에서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사도들을 총독과 임금들 앞에서 심문받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바로 사도들을 통해서 총독과 임금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박해를 당할 때에 "무엇을 말할 것인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님은 제자들이 각 상황에서 적절한 말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역경을 당할 때에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오순절 후에 제자들은 공회에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관원들에게 심문을 받고 더 이상 예수님을 전하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 때에 제자들은 관원들에게 "하나님보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 합당치 않다!"고 대답을 했습니다. 그들은 채찍을 맞고 풀려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해서 고난받는 것을 기쁘게 생각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예루살렘에서 고소를 당하여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로마 총독 베스도와 벨릭스 앞에서 심문을 받고, 또 아그립바 왕과 네로 황제 앞에서도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 때에 성령님은 바울이 그들 앞에서 적절한 말을 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에 가서 복음을 전할 때에 성령님은 그들과 동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들은 세상 사람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성도들은 세상에서 생존하기 힘들만큼 연약합니다. 그러나 성령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은 세상보다 강합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성도들은 세상에서 모든 대적을 이기고 복음의 전할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마 10:24-33)

 

예수님은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는 것이 마치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내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마치 이리 가운데 있는 양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에게 같이 지혜롭고비둘기같이 순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전도자들이 세상에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지혜와 순결이 필요합니다. 지혜가 없는 순결은 무능하고 순결이 없는 지혜는 간교합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들은 성령님께 순결과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은 장차 제자들이 당하게 될 박해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장차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가서심문을 받고, 또 총독임금들 앞에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심문을 받을 때에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때에 성령님께서 그들에게 할 말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전도자들이 박해를 당할 때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종교 단체를 통한 박해

"...저희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17(하))."

예수님은 장차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정치, 종교 지도자들에게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유대인의 회당에서 채찍으로 맞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채찍질'은 '태형'을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태형은 채찍으로 때리는 것이었는데, 한 번에 최고 39대까지 때렸습니다. (고후 11:24-25)을 보면 사도 바울도 이러한 태형을 5번이나 맞았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우리나라에도 이러한 태형 제도가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큰 나무 주걱이나 노같이 생긴 매로 볼기를 때렸습니다. 당시에 심한 태형을 당한 사람은 피투성이가 되어 지인의 부축을 받거나 업혀서 나왔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로마의 태형은 우리나라의 태형보다 훨씬 더 가혹했습니다. 그들의 태형은 채찍으로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사용한 채찍은 겉에는 가죽으로 감싸서 부드러워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강철이 들어있었고 끝에는 쇠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채찍에 맞으면 피부가 찢어지고 살점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그러므로 한 자리에서 채찍으로 39대를 맞으면 실신 상태가 되어 업혀나갔습니다. 사도 바울도 복음을 전하다가 이러한 태형을 5번이나 맞았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장차 회당에서 이러한 태형을 맞게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2. 가족을 통한 박해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하리라(21)."

또 예수님은 장차 제자들이 가족들에게 박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며,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그리고 형제가 형제를 죽는 데 내어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종교 문제에 관해서는 이러한 일들은 가능합니다. 종교는 피를 나눈 가족까지도 초월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대인이 유대교를 버리고 기독교인이 되면 가족으로부터 추방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일은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슬람 국가에서는 개종하는 사람은 가족과 친지로부터 버림을 받습니다. 또 공산주의 국가에서도 가족이 기독교인이 된 식구를 밀고해서 체포되는 일들이 종종 일어나고 있습니다.

 

3.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음

"또 너희가 내 이름을 인하여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나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22)."

또 예수님은 장차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모든 사람들, 즉 정치 지도자, 종교 지도자, 종교 단체, 가족들, 그리고 이웃들에게 미움을 받게될 것입니다. 이러한 박해는 매우 조직적이며, 치밀하고, 또 오래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박해는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정도 성도들에게 박해를 허용하시지만, 적당한 때에 그들을 박해로부터 구원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박해에 굴복하지 않고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반드시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박해를 받는 성도들은 성령님께 믿음과 인내를 구해야 합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예언이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신 후부터 A.D 70년(예루살렘이 멸망한 때) 사이에 일어난 기독교 박해를 의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 박해는 이 기간에 실제적으로 일어났습니다. 베드로는 공회에 끌려가서 심문을 받았고, 바울은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서 심문을 받았으며, 또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가족과 동족들로부터 배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박해가 무한정 계속되지는 않았습니다. 이 박해는 70년에 로마 장군 디도가 예루살렘 성을 함락함으로 일단락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마 24장)에서 이 박해의 때에 대해서 자세히 설명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면 즉시 산으로 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후에 기독교인들은 이 말을 기억하고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공격할 때에 산으로 피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성에 남아서 로마에 저항하다가 큰 고통을 당한 후에 로마 군대에게 정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일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기독교인들을 박해유대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본문에 언급된 박해는 모든 전도자들에게도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박해는 1세기 뿐 아니라,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계속되어 왔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세상이 지속하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마지막 때까지 악인과 의인이 계속해서 공존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고난도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난 속에서 끝까지 견디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기독교 역사는 이러한 예수님의 예고가 사실이었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4. 승리를 주시는 예수님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거든 저 동네로 피하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하여서 인자가 오리라(23)."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 동네에서 너희를 핍박하면 저 동네로 피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이스라엘의 모든 동네를 다 다니지 못해서 인자가 올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구절은 그 동안 학자들에 의해 많은 논란이 되어 왔습니다. 예수님은 정말로 제자들이 이스라엘을 다 돌아다니기 전에 세상에 다시 오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학자들은 그 동안 이 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해석을 제시해 왔습니다. 1) 어떤 학자들은 오순절에 임한 성령님을 통해서 예수님이 세상에 다시 오셨다고 말합니다. 2)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나타나셔서 로마의 박해 속에서 교회가 이길 것을 보여주셨다고 말합니다. 3) 어떤 사람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말을 예수님께서 교회를 박해에서 구원하실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박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이는 이 세상에는 마지막 때가지 선과 악이 공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박해를 받으면 계속해서 다른 곳으로 피하면서 복음을 전할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지금도 이슬람국가나 공산주의 국가, 또는 불교나 회교권에서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박해가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는 박해과 순교를 통해서 성장해 왔습니다. 그리고 어떤 국가나 단체도 기독교를 이기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교회에 도전하는 세력은 모두 무너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는 교회의 주인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약속해 주신 것처럼 음부의 권세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환난의 때에 끝까지 참고 견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침내 모든 환난을 극복하고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차 제자들이 겪게될 박해에 대해서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장차 정치, 종교지도자들에게 심문을 당하고 회당에서 채찍을 맞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장차 가정이웃에게 배척을 받게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형제가 형제를, 아비가 자식을 죽는 데 내어주고, 또 자식들이 부모를 대적하여 죽게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장차 예수님의 이름을 위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고난은 영원히 계속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끝까지 견디는 자는 결국 구원을 받게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장차 받을 박해들을 미리 말씀하심으로, 그들이 이런 일을 당할 때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계속해서 장차 제자들이 복음을 인해 당하게 될 고난과 박해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선생과 제자, 상전과 종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24),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사람들이랴?(25)"

왜 예수님의 제자들은 박해를 당하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세상이 예수님을 박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을 수 없고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가 선생과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은 최상의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또 종이 상전과 같은 대접을 받는 것이 최고의 대접을 받는 것입니다. 세상의 지도자들과 사람들은 스승과 주인이신 예수님을 거부하고 배척했습니다. 예수님은 로마 총독과 헤롯 왕 앞에서 심문을 받고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하기까지 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세상에서 이러한 대접을 받았다면, 그 분을 따르는 제자들이 세상에서 배척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주인이 세상에서 이러한 대접을 받았다면, 그 분을 섬기는 종들도 세상에서 박해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고난에 참여하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손님은 기쁨에는 동참하지만 고난은 피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속자는 그 집의 기쁨뿐 아니라 고난에도 동참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도 예수님과 함께 영광뿐 아니라 고난에도 동참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권리만 찾고 의무는 회피하는 사람은 상속자가 될 수 없습니다. 상속자는 권리를 누리는 동시에 의무도 이행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들도 예수님의 영광과 고난에 모두 참여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예수님은 성도들을 친구와 동생처럼 대접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면에서 성도들이 자신과 같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후에 제자들은 이러한 예고대로 정치, 종교지도자들에게 고난을 받았습니다. 그 때에 그들은 "복음을 위해 고난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김 받는 것기뻐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영광뿐 아니라 고난에도 함께 동참하고 있습니까? 혹시 우리는 에수님께서 주시는 영광은 구하고, 예수님 때문에 받는 고난은 회피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님과 함께 고난을 받으면서 기뻐하는 사람들은 천국의 보증수표를 받은 사람과 같습니다. 이는 예수님을 위해서 고난 받으면서 기뻐하는 사람이 거짓 신자가 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2. 두려워하지 말아야 될 3가지 이유들

그러면 제자들은 이러한 박해들이 찾아올 때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러한 박해가 찾아올 때에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어려움이 찾아올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6-31절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3번이나 등장하고 있습니다(26,28,31).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을 반복하신 것은, 그만큼 제자들이 박해 때에 두려워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이리 가운데 있는 양처럼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박해가 찾아올 때에 두려워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박해 앞에서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면 왜 그들은 박해 앞에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을까요? 예수님은 제자들이 박해 앞에서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이유 세 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중에서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볼 것이며, 나머지 한 가지 이유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심판의 확실성

"그런즉 저희를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26).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27)."

 

첫째로 박해 앞에서 제자들이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모든 박해 사실을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세상에서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일에 대해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이 박해 받는 것을 모두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때가 되면 성도들이 박해 받은 일을 나타내시고 그 일에 대해서 공정하게 갚아 주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성도들을 무고히 박해한 자들에 대해서도 공개적으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을 인해 박해를 당할 때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고, 너희가 귓속으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조용한 말로 천국의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장차 그것들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귀에 대고 부드러운 말로 천국의 비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장차 그것들을 집 위에서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선포하게 될 것입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은 적극적으로 세상에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이는 우주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명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이기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뜻을 전하는 제자들도 세상에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과 성령님은 항상 제자들과 동행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세상의 위협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2) 사람은 두려워 할 대상이 아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28)."

둘째로 제자들이 박해 앞에서 두려워 할 필요가 없는 이유는 대적들이 그들의 영혼을 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대적들은 기껏해야 그들의 육신을 해칠 수 있을 뿐이며, 결코 그들의 영혼은 건드릴 수 없습니다. 대적들은 전도자들의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전도자들이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분은 대적들이 아니라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육신을 거두실 뿐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영원한 지옥으로 던져넣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적은 성도들을 해칠 수는 있지만 그 영혼을 지옥으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더 두려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해서 하나님을 부인하면, 우리의 육신과 영혼이 영원한 심판을 받게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서 대적의 말을 거부하면, 우리의 육신은 죽어도 영혼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올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을 두려워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세상에서 비굴하게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장차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과정에서 많은 박해를 받게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세상은 예수님이 귀신이 들렸다고 비난하고 예수님을 거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의 제자와 종인 제자들도 세상에서 박해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박해를 당할 때에 염려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이 받는 박해에 대해서 모두 다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것도 숨겨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제자들을 박해한 사람들을 기억하시고 심판하실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들이 예수님을 위해 박해받은 일에 대해서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박해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모두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제자들이 박해가 찾아 왓을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 지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29).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30),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31)."

 

우리는 제자들이 박해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는 제자들이 박해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세 번째 이유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을 주관하시기 때문에 제자들이 박해 앞에서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찮은 참새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에 참새 두 마리한 앗사리온에 팔렸습니다. 그러므로 참새 한 마리 값은 반 앗사리온에 해당했습니다. 한 앗사리온은 1/16 데나리온의 가치를 가진 동전이었습니다. 당시에 한 데나리온은 정상적인 노동자의 하루 임금이었습니다. 만일 노동자의 하루 임금을 5만원으로 계산한다면, 한 앗사리온약 3천원 정도되었고, 반 앗사리온1500원에 해당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당시에 참새는 1500원만 주면 얼마든지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러한 참새들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의 생명을 주관하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은 참새를 돌아보신다면, 자기 피를 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들을 돌보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까지도 다 세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고 박해 앞에서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도들은 참새보다 귀중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호해 주시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박해 앞에서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원수들은 성도들의 머리털 하나도 해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기억하면 박해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2. 예수님을 부인할 위험성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33)."

또한 예수님은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박해 앞에서 자신을 배반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박해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을 하나님 앞에서 부인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예수님을 시인하면,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을 두려워하고 예수님을 부인하면, 예수님도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부인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박해를 만날 때에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에수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입술로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따라가다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려움이 오면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우리는 그 이상도 부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우리는 침묵으로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명백한 불의의 현장을 목격하고 침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진리를 외쳐야 할 때에 침묵함으로 예수님을 부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도록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는 행위로 예수님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예수님을 시인하지만 행동으로는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을 실천적 무신론자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동안 장차 제자들이 당하게 될 박해들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세상에 있는 제자들은 이리 가운데 있는 양과 같이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제자들은 '뱀같은 지혜''비둘기와 같은 순결'이 필요합니다. 성도들은 세상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때에 성도들은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고 계시며 성도들을 지켜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려움이 찾아올 때에 육신만 멸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과 육신을 모두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생명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참새 한 마리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머리털 숫자까지도 모두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박해 앞에서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시인하는 사람을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은 인정해 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은 박해 앞에서도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도록 항상 깨어 성령님 안에서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 전쟁과 승리의 길(마 10:34-39)

 

예수님은 장차 제자들에게 찾아올 박해에 대해서 예고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박해가 찾아와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알고 계시며 공정하게 심판하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모두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반 앗사리온에 팔리는 참새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머리털 숫자까지 모두 알고 계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박해가 찾아 와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박해 앞에서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해 주시지만,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부인하실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계속해서 박해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검을 주러 오신 예수님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

예수님은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화평이 아니라 을 주러 오셨습니다. 이 말은 조금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님이 평화의 왕으로 오신 분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르면 평안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을 찾는 사람들은 하늘의 평화를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편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악의 세력치열한 전쟁을 해야 합니다. 이로 인해 천국 백성들은 세상에서 박해와 거부를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평화를 주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평화는 사단과 악의 세력들과의 전쟁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악의 세력들과 싸워 이김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악의 세력들과 손을 잡고 얻는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닙니다. 이러한 평화는 언제든지 뒤집어 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악의 세력을 철저히 멸망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악의 세력들과 투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하기 위해 떠나는 제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어야 했습니다. 그들이 이러한 영적 전쟁을 충분히 예견하고 있어야,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그들이 전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2. 가족 안에서 나타날 분쟁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35),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36).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마 10:34-37)..."

 

예수님은 천국 백성들이 겪게 될 분쟁들에 대해서 몇 가지 예를 들어주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가정에서 영적 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대 가정들은 수많은 갈등의 소지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즘은 가정을 화목하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들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가족을 불화하게 하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은 자기 집안 식구원수가 될 것이라고 예고하기까지 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일이 일어날까요? 예수님이 가정을 파괴하는 가정 파괴범이란 말입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가정 분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바로 사단이 통치하고 있던 가정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천국 복음이 전파되기 전에 가족들은 사단의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한 두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들은 더 이상 사단을 따르지 않고 성령님의 통치를 받아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이제 가정에는 성령님을 따르는 사람들과 사단을 따르는 사람들이 나뉘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두 세력은 서로 갈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지 않는 가정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기게 되면 가정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나라나 지역에 복음이 들어가면 가족들 사이에 큰 충돌이 일어납니다. 부모가 예수님을 믿는 자녀를 쫓아내고, 어머니가 예수님을 믿는 딸을 외면하며, 예수님을 믿는 아내와 불신 남편이 분쟁하고, 또 시어머니가 예수님을 믿는 며느리와 충돌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로 인해서 자녀가 부모에게 쫓겨나고, 며느리가 이혼을 당하며, 아내와 남편이 갈라서는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이러한 일을 충분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야 그들은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에 당황하지 않고 대응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가정에서 영적 전쟁이 일어날 때에 어떻게 해야할까요? 예수님은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고, 또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단은 가장 친한 사람들을 통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사단은 사랑하는 아내와 남편,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자녀들, 그리고 존경하는 부모님들을 통해서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도록 유혹을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은 끝까지 예수님을 따를 수가 없습니다. 가족들 사이에 영적 전쟁이 일어날 때에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만 그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3. 자신과의 싸움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38).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 10:38-39)."

 

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가정의 분쟁뿐 아니라 자신과의 분쟁도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자기 뜻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본성 안에는 사단이 심어 놓은 이기심과 죄성이 뿌리깊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죄의 본성들은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 마음에서 이러한 두 가지 세력간에 영적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러면 우리는 자기 자신과의 전쟁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십자가는 자신이 처형될 사형틀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순교를 각오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십자가형을 선고 받은 사람은 자신이 못박힐 십자가를 지고 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걸어가셨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질 각오를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도 순교할 각오를 하지 않으면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을 것이라!"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뜻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만이 자신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일은 우리 힘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일은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과의 영적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를 각오를 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항상 성령 충만을 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령충만한 사람만이 자신의 뜻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자를 영접하는 자가 받을 상급(마 10:40-42)

 

세상에는 선과 악의 세력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들은 도전과 박해를 예견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떠나는 제자들에게 장차 그들이 당하게 될 여러 가지 박해들에 대해서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은 복음가정에 들어가면 가정 안에 갈등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예고하셨습니다. 이 때에 가족보다 예수님을 더 사랑해야만 이러한 갈등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보다 가족을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되기에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개인이 복음을 믿으면 내적인 갈등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는 자신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라야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좆지 않는 자는 내 제자로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은 이러한 일들을 미리 예견하고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박해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미리 준비된 사람들을 통해서 제자들을 영접하게 하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제자들을 영접하는 사람들이 받을 상급에 대해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1. 제자를 영접하는 자는 주님을 영접하는 것이다.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마 10:40)."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 현장으로 파송하면서 그들에게 자신의 이름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대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파송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수님을 대신하는 권세를 소유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12제자들은 '사도'(아폴로스토스)라고 불리어졌습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란 말입니다. '사도'는 자신을 보낸 사람을 대신해서 파송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를 영접하는 것은 결국 그를 보낸 사람을 영접하는 것과 같습니다. 왕은 다른 나라와 평화 조약을 맺을 때에 사신을 보내서 그 뜻을 전합니다. 이 경우에 그 사자를 영접하면 왕을 영접한 것과 같으며, 두 나라는 평화롭게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사자를 가두거나 죽이면, 그 나라는 왕을 거부한 것이 되어 전쟁이 나거나 두 나라의 사이가 나빠질 것입니다.

이러한 점에서 예수님은 "너희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신 제자들을 영접하는 자는 그들을 보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대신할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를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을 영접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전도자에게 큰 용기를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것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면, 그는 우리를 보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할 때에 예수님의 이름과 권세를 가지고 당대하게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와 함께 계신 성령님께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2. 선지자와 의인의 상급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마 10:41)..."

 

또한 예수님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소수이며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두 다 선지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모두 다 선지자의 상을 받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선지자가 아닌 사람들이 선지자의 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보낸 선지자를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사람은 선지자의 상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인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들을 인정해 주시고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세상에는 의인들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욥처럼 끝까지 인내하며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다 의인의 축복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다 의인의 상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소자를 영접하는 자의 상급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2)."

 

이러한 원리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결단코 상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시면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천지가 없어져도 반드시 약속을 지키시는 우주의 왕의 권위가 담겨져 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덥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쉽게 갈증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 때에 제자들에게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사람은 제자들의 상을 받게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전도자의 이름으로 전도자를 영접하는 사람에게는 전도자의 상을 주십니다. 그러나 반대로 예수님은 전도자를 거부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을 거부한 징계를 내릴 것입니다. 이러한 원리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우리 주변에는 복음을 위해서 수고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전도자들은 일반적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이러한 경우에 전도자를 대접하는 사람은 전도자의 상을 받게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름 없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에게 눈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인정하고 도와 주면 예수님은 그들이 받을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성도들을 영접하는 사람들에게도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려움을 당한 이웃을 영접하고 돌아보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대접한 상을 주실 것입니다(마 25장). 우리는 하늘만 쳐다보면서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 안됩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삶의 현장에서 어려움을 만난 성도들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자신을 대접한 것으로 알고 우리에게 좋은 것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cafe. correcttheology>

 

예수님의 12제자들

예수

제자 이름

성경 본문

내 용

시몬 베드로

눅 5:10

안드레의 형제로 야고보요한과 함께 고기잡은 어부

막 1:30, 고전 9:5

결혼한 기혼자

요 1:41-42

그의 형제 안드레에 의해서 예수님께 가게됨.

눅 5:3-11

이후 예수그리스도에 의해서 제자로 부름을 받게됨.

마 8:14-15

예수님이 장모의 병을 낫게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눅 8:51, 마 17:1-4

요한야고보와 함께 예수의 수제자가 됨.

마 14:28-31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물 위를 걸음

요 6:68-69, 마 16:16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두 가지 신앙고백을 했다.

마 16:21-23

베드로의 마음에 사단이 들어와 그리스도의 죽음을 만류하려 했다.

마 17:27

입에 동전을 문 고기를 잡았다.

마 18:21-22

용서에 관하여 예수님께 가르침을 받았다.

마 17:1-4

그리스도의 변화된 모습을 목격함.

마 19:27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대한 보답을 약속 받았다.

눅 22:8

마지막 유월절 준비를 함.

요 12:6, 24, 36

다락방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최후의 만찬에 참석함.

요 18:10-11

겟세마네 동산에서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랐다.

막 14:50, 54

멀리서 그리스도를 따라감.

요 18:15-18, 25-27

그리스도를 세 번 부인함.

눅 22:62

그리스도를 부인한 것에 심히 통곡함.

눅 24:12, 요 20:2-10

요한과 함께 빈 무덤을 찾아감.

눅 24:34, 고전 15:5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방문함.

요 21:1-23

갈릴리 해변에서 그리스도의 마지막 이적에 참여함.

안드레

요 1:40

전에 세례 요한의 제자였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형제를 인도함.

요 1:44

베드로 형제로 갈릴리 벳세다 출신의 어부.

요 6:12-22

5,000명의 무리를 먹이실 때 예수로부터 시험을 받음.

야고보

마 4:21

요한의 형제로 베드로, 안드레와 함께 고기 잡던 어부.

막 3:7

예수님에 의해서 "우뢰의 아들"이란 별명을 받음.

행 12:1-2

순교한 최초의 예수님 제자

요한

마 4:21

야고보의 형제로 베드로, 안드레와 함께 고기 잡던 어부

마 17:1-4

가장 총애 받던 제자로 3명의 수제자중 하나

요 1:35

전에 세례요한의 제자였음.

눅 9:49-50

한 때 그의 예전 종파심 때문에 책망 받음.

막 10:35

천국에서 영광의 자리를 달라고 부탁함.

눅 22:8

최후의 만찬 준비하는 것에 참여함.

요 13:23

최후의 만찬 때 그리스도의 품에 기댐

요 19:26

십자가 곁에 있었던 유일한 제자

요 19:27

마리아를 돌보라는 예수님의 부탁을 받음.

요 20:2-3

베드로와 함께 빈 무덤에 찾아감.

요 21:7, 23

그리스도의 마지막 이적 때 있었다.

빌립

요 1:43

전에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

요 1:40-46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인도함.

요 6:5-7

5,000명의 무리를 먹일 때 그의 믿음이 시험받음.

요 12:20-22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하던 헬라인들의 방문을 받음.

요 14:8-9

예수님께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달라고 질문함.

마태(레위라고도 불림)

눅 5:27

전에 세리였다.

마 9:9

"나를 좇으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름.

눅 5:27-29

큰 잔치를 마련하고 새로운 믿음의 친구들과 교재를 나눔.

가나안인 시몬

마 10:4, 막 3:18

열심당원이라 부르는 정치적 우익 집단의 일원임.

도마

요 11:16

쌍둥이 였다.

요 11:16

나사로를 살렸던 예수님의 경정에 실망했다.

요 14:5

다락방에서 예수님이 어디로 가시는지를 질문함.

요 20:24

부활 후 처음 다락방에 나타나실 때 없었음.

요 20:25

자신이 그리스도를 만져보지 않고는 믿을 없다고 생각함.

요 20:28

한 주일 후에 예수를 만난 후 발 밑에 꿇어 엎드림.

요 21:2

예수님의 마지막 이적 때 함께 있었다.

나다나엘(바돌로매라고도 불림)

요 1:45-46

무화과 나무 아래 있을 때 빌립에 의해서 발견됨.

요 1:49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부른 첫 번째 사람.

요 1:51

예수님의 첫 예언, 승천에 관한 말을 들음.

요 21:2

예수님의 마지막 이적 때 함께 있었다.

다대오(유다라고도 불림)

막 15:40

작은 야고보의 형제.

요 14:22

어찌하여 자신을 제자들에게는 나타내고 세상에게는 나타내지 아니하려는지 질문함.

작은 야고보

막 15:40

이 별명은 그의 키를 일컬어 말하는 것 같다.

가룟 유다

요 12:6

유일하게 유대 출신의 제자로 보여짐.

요 12:4-6

제자들을 위해 돈 궤를 맡아 관리함

요 6:70-71

예수님 사역 초기부터 사탄에게 팔렸다.

마 26:15-16

은 30에 예수님을 팔기로 의논함.

눅 22:3, 요 13:27

사탄이 그의 마음속에 들어오도록 허락함.

요 13:26-30

다락방에서 예수님과 함께 그릇에 손을 담았음.

요 18:2-4

예수님을 체포하기 위해 겟세마네로 군병들과 함께 찾아옴.

마 26:49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배반했다.

마 27:3-4

양심의 가책을 받아 그의 피 값을 돌려주었다.

마 27:5

밖으로 나가서 스스로 목매어 자살함.

<K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