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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및 요한신학

요한복음의 기독론

by 은총가득 2020. 8. 15.

과 선지서들과 시편에 기록된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고 선언한다. 이 때문에 구약성경을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 예수의 일도 알지 못한다 (2:22; 12:16). 그래서 제자들은 심지어 예수를 육체적으로 만나고 있으면서도 구약성경을 알지 못하는 한 예수를 진정으로 알지 못했던 것이다.

[1] 기독론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인간이라는 두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하여 설명한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예수는 로고스로서 하나님과 동일하다 (1:1). 그는 태초에 계셨고, 하나님과 함께 계셨기 때문이다. 로고스이신 예수께서 하나님과 동일하다는 의미에서 그의 영광은 창세 전에 누렸던 하나님의 영광이며 (1:14; 17:5),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는 분은 예수밖에 없다 (1:18). 이것은 아주 고차원적인 기독론이다. 예수는 하나님과 동일하기에 (10:30,38), 그 일에 있어서도 동일한 기능이 강조된다. "나의 아버지가 지금까지 일하시고 나도 일한다" (5:17). 기능적으로나 존재적으로나 예수는 하나님과 한 분이시다. 예수와 하나님의 동일성때문에 예수는 분명하게 하나님으로 고백된다. "도마가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0:28; 참조. 요일 5:20).


  요한복음에는 인자라는 표현이 13번 나온다 (1:51 3:13; 3:14; 5:27; 6:27,53,62; 8:28; 9:35; 12:23,34bis; 13:31). 요한복음에서 인자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교각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인자 위에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1:51). 인자 개념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밀접하게 연결된 예수의 참 모습에 관한 주요한 그리스도론적 문제를 해명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이 외에 요한복음에서 인자는 어느 정도 일련의 순서를 따라 묘사되는 것처럼 보인다. 먼저 인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 (3:13)로 묘사된다. 인자는 땅에 존재하기 전에 하늘에 존재하던 분이다. 이것은 인자의 존재에 관련하여 단지 공간성을 말할 뿐 아니라 시간성도 말하려는 것이다. 선재적인 시간과 공간이 연결되어 표현된다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 6:62). 그런데 인자는 본래 선재하시던 분이지만 세상에 오신다.

 

그래서 인자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 (3:13)이다. 인자는 분명하게 혈육을 가진다. "인자의 살과 인자의 피" (6:53). 이것은 인자의 비하를 의미한다. 인자의 비하는 그의 죽음에서 잘 나타난다. 인자는 높이 들리게 될 것이다 (8:28; 12:34). 그러나 비하하여 수난당하는 인자는 결국 다시 하늘로 올라간다. "이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간다" (6:62). 요한복음은 이것을 가리켜 인자의 영광이라고 부른다 (12:23; 13:31). 이렇게 볼 때 요한복음에서 인자는 선재하시던 분으로서 세상에 와서 수난을 당하고 승귀하시는 분으로 설명된다. 특이하게도 요한복음에서는 공관복음에서와는 달리 인자가 미래의 영광 중에 오실 분으로 강조되지 않는다. 물론 인자의 심판권세에 대하여는 언급된다 (5:27). 


  요한복음에서 로고스 기독론은 구약성경에 기원을 두고 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로고스는 구약성경적 단어 (    시 33:6; 107:20)의 그리스적인 의역이다. 로고스 사상이 구약 (아마도 칠십인 역)에서 출원했다는 것을 몇 가지 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로 어휘가 동일하다. 요한복음의 "태초에"라는 첫 말들은 틀림없이 창세기의 "태초에"라는 첫 말들을 사용한 것이다. 요한복음은 창세기에서 머릿말을 빌어씀으로써 내용까지도 사용했다. 둘째로 내용이 동일하다. 요한복음은 로고스의 창조참여에 대하여 말한다. 이것은 구약을 이용한 것이다. 칠십인역 구약에서 말씀은 창조와 관련이 있다 (창 1:3,6,9). 특히 시 33:6에 말씀의 창조적인 기능에 대하여 요약되어 진술된다 ("주의 말씀으로 하늘이 만들어졌다" LXX 32:6).


  그러나 요한복음에서 로고스 기독론은 오랫동안 큰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로고스 기독론은 요한복음에서 이질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 로고스가 요한복음의 본론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로고스 사상은 기독교 외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되었다. 예를 들어 스토아 철학에서 로고스는 태초에 있어 만물을 지배하며 인간의 이성 안에 현재하는 비인격적이고 범신론적인 세계법 (세계혼 Weltseele)으로 설명된다. 그러나 이것은 로고스라는 동일한 용어를 가지고 있지만 로고스가 역사와 인류에 개입한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요한의 로고스 개념과는 관계가 없다.

 

로고스 사상은 알렉산드리아의 Philo에게서도 발견된다. 필로에게 있어서 로고스는 구약에 나오는 대제사장과 같은 인물들과 동일시된다. 필로는 하나님의 로고스가 현상세계의 원형인 이상세계를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de opificio mundi, 24f.). 특히 필로는 로고스가 이상인간, 원인간(原人間), 하나님의 형상인데 이로부터 모든 경험적인 인간들이 발원하여 타락하였다고 생각한다. Bultmann은 요한복음의 로고스 사상의 기원을 영지주의에서 찾는다. 영지주의에서 로고스는 신과 인간 사이의 신화적인 중간자이다. 그러나 Bultmann의 이론은 두 가지 측면에서 약점을 가진다.

 

첫째로 자료적인 측면이다. 기독교 이전의 자료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기독교 이후의 자료들이라도 기독교 이전의 사상을 반영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있겠지만). 둘째로 내용적인 측면이다. 영지주의에서 로고스는 "시간적으로 인간이 되었지만 언제나 단지 신화적이며 가현설적인 범위에서 그러하고, 결코 역사적이며 실제적인 성육신에서 그러한 것이 아니다". Hermas 문학에서 (Corpus Hermeticum)는 로고스가 누스 (Nous), 원인간인데 구원자를 가리킨다. 그러나 Hermas신화에서 로고스의 인격화가 언급되지만 범신론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알레고리하고 철학적인 해석에 근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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