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공동체의 삶의 자리
요한복음의 배경과 요한공동체의 배경 역사를 알기위기 위해서 주후 70년에 있었던 예루살렘 멸망 이후의 상황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예루살렘과 성전의 멸망은 유대교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우선 성전의 멸망은 성전중심의 제사제도와 이로 인한 제사장계급들에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이제 성전중심이 아닌 회당중심으로 바뀌었고, 제사장 중심이 아닌 유대교의 랍비중심으로 바뀌게 되었다. 특별히 예루살렘 멸망으로 인해 유대교 지도자인 랍비 Johannan ben Zakkai를 중심으로 얌니아에서 종교회의를 가지게 되었는데, 이들은 민족적인 재난에 대응하여 유대교를 계속 보전하고 유대인들로 하여금 계속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도록 랍비 Johannan ben Zakkai은 이미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전에 학교를 건설하기 시작하여 신앙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는 나름대로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다. 그 때 얌니아 종교회의에서 유대교를 지키는데 있어서 그들이 직면했던 두 가지의 위험, 즉 대해 대처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 두 가 지일은 첫째로,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으로 인해 유대교 자체의 분열을 와해되는 것을 막기 위한 내적 결속(consolidation)을 강화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외적으로 이 교주의 특히 기독교의 선교적 확장에 적절하게 대처함으로 유대교를 지키는 것이었다. 유대교의 내적인 결속을 위해서 사두개파와 열심당원들은 이미 그 세력을 잃었고, 이제 바리새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힐렐파와 샴마이파의 차이를 약화시키고 구약성서를 경전화 할 뿐 아니라 공통된 달력을 제정함으로 바리새적 유대교 또는 랍비적 유대교를 확립시키고자 했다. 한편 외적으로 기독교의 선교적 확장에 대해 방심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기독교 세력으로부터 유대교를 철저히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이단의 배척”이라는 정책을 시행했다. 그들은 특히 기독교의 성장과 선교의 확장과 신약문서들의 기록 등으로 기독교로 개종되어 가는 사람들을 막아야할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이 때 이들은 유대교의 예배등을 통해 숨어있는 기독교인들을 색출하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러한 조치로 소위“ 18기도문”을 새롭게 도입하였는데, 특히 12번 째 기도문이 문제가 되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상하는 자들은 소망을 없게 하시고 모든 사악한 것이 한순간에 사라지게 하시고, 당신의 모든 원수들이 당장에 죽임을 당케하시옵시며, 교만의 지매를 근절하고 우리시대에 곧 겸손케 하시옵소서, 원들을 치시며, 오만한자들을 겸손케하시는 주님 당신은 복되시옵니다”
그러나 이것은 후대에 것으로 알려졌으며, 초기의 형태는 다음과 같다.
“박해자들에게 소망이 없게 하시고, 오마의 지배를 우리시대에 당장 근절시키시오며, 기독교인들과 미님(minim= 이단)들을 일순간에 멸하시오며, 그들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도말하시사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지 않게 하옵소서.”
Birkath ha Minim 으로 불리우는 이 기도문은 대략 주후 85년경 가말리엘 2세가 랍비들의 지도자로 있을 때 랍비들의 총회에서 채택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 기도문의 목적은 유대교인들 중 기독교로 개종 해가는 사람들의 증가에 대해 위협을 느껴 나온 결과로 무엇보다도 유대인들 가운데 기독교로 개종하려는 사람들의 생각을 사전에 막아보려는 일종의 정신교육이었고, 나아가 기독교로 개종했으나 일상적인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기위해 이른바 “숨어 있는 기독교인들”(the cryptic Christians)를 색출해 내기 위한 것이었다. 유대교의 정책 중 두 번째인 -기도문 고백-은 기독교와 관련일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요한공동체와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요한복음에 보면 기독교인들이 유대교로부터 회당에서 축출시키는 당시의 상황에 대한 암시적인 구절들이 세 곳에 나타난다.
첫째, 요 9:22: “그 부모가 이렇게 말한 것은 이미 유대인들이 누구든지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는 출교(aposunagogos)하기로 결의하였으므로 그들을 무서워함이러라 ”이 구절을 통해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하는 자, 즉 기독교인들을 회당에서 출교시키기로 결정했음을 분명히 알수 있는 구절이다. 이것은 분명히 랍비 가말리엘 2세때 유대교 당국자들이 유대인들 중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회당에서 축출하기로 결정한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예수의 공생애 활동 중에 있었던 일은 아니었다.
둘째, 요 12:42: “그러나 관리 중에도 그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aposunagogos: αποσυναγογος)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 이 구절에는 “이단자들을 위한 저주 기도문”(the Birkath -ha -Minim)으로 인해 숨어 있는 기독교인들이 증가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암시가 아주 분명하게 반영되어 있다. 더구나 유대인 중 고위층인 의회원들 가운데서 이미 은밀히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셋째, 요16:2: “사람들이 너희를 출교(((aposunagogos: αποσυναγογος)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 하리라.” 이 구절은 유대교 당국자들이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들을 회당으로부터 축출을 했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기독교인들을 처형하고 죽이는 일까지 일어났었다는 말해준다. 그러므로 당시 기독교, 특히 요한공동체는 유대인들의 엄청난 박해 아려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 역사 20, 기도에 대한 태도
Amida의 기도는 조용히 서서 경건한 태도로 발을 모으고, 두 손을 모으고, 예루살렘을 마주 보며, 네 지점에서 살짝 인사를 한다. 올바른 자세는 기도에 필수적이지는 않지만, 집중하지 못하거나 서 있으면 집중을 방해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앉아서, 너무 불안해 한다면 법정 기도를 하지 말아야 한다.
힐렐 학교는 Shema가 '어떤 위치에 있든', 즉 어떤 특별한 위치에 있어서는 안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주님은 한분이시다. 너희는 가만히 계셔야 한다. 눈을 감고, 두 손을 집중하여 그들을 가려야 한다. 대니얼(댄 6:11)은 기도에 무릎을 꿇고 무릎을 꿇고 무릎을 꿇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제는 유대인의 모습이 아니다. 유대교 회당에서는 새해와 속죄의 날을 위한 부가 서비스의 알레누 기도와 그 후의 템플 서비스의 연주회에만 무릎을 꿇고 기도한다.
셰마의 첫번째 단락(Deut.6:4–9)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시다. 신은 하나!
그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의 영광스러운 나라는 영원토록 있을 것이다.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마음을 다하며, 힘을 다하여 주 너희의 하나님을 사랑할 것이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이 말은 너희의 마음에 있을 것이다. 너희는 그들을 너희의 자녀들에게 가르치고, 그들에 대해 말하고, 너희가 집에 앉아 있을 때와 길을 걸을 때와 누워서 일어날 때에, 너희는 그것들을 손에 든 표적으로 삼아야 한다. 그것들은 너희의 눈 사이에 있는 장식물이다. 너희는 그것들을 너희 집 문과 대문 앞에 써야 한다.
회당의 시인들과 가수들
히브리어 시는 성서 자체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시편에서 그렇습니다. 팔레스타인 학교인 피후트는 7세기에 팔레스타인을 아랍이 정복하기 전에 이미 번성했다. 시인들 중 가장 잘 알려 진 사람은 엘르아살 칼리르인데, 그들의 작품은 아직도 정교회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의 혁신적인 문체는 운율, 운율, 절제의 복잡한 패턴을 가지고 있으며, 좀 더 단순한 문체의 좋은 예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조어와 발음 문법 형식으로 가득 차 있다.
여기 히브리어 시의 대조적인 두가지 사례가 있다. 첫째, 무슬림 스페인의 시인 솔로몬 이븐 게이브롤(11세기)이 작곡한 셀리아, 또는 참회의 찬송가.
나는 소름이 끼치고, 마음 속 깊은 분노에 휩싸였다. 내가 하나님께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나는 고독하고 말문이 막혔으며, 내가 지은 죄를 기억할 때에, 나는 부끄럽고 당황한다.
나의 일생은 헛된 것이 되고, 내 젊음이 수치를 당하니, 내 마음에는 평화가 없다.
나의 죄가 나를 괴롭힐 때, 내 마음은 나를 안심시킨다.
주께서 계신 곳에서 일어나셔서, 내게 문을 열어 주십시오. 주님 옆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오 마이 락, 날 보호해 줘! 내가 지은 죄에서 나를 건져 주시고, 그대의 율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우리의 날은 그림자에 지나지 않으니, 우리의 젊음에 귀을 기울이지 마십시오.
그 다음으로는 카발리스트 솔로몬 알카베츠가 1540년경 작곡한 '레카 도디'( 와 친구)의 시 마지막 시 4절을 쓴다. 안식일을 신부와 왕비로 의인화한 시는 오늘날 거의 모든 의식, 즉 정교 개혁과 개혁 의식에서 안식일 숭배를 위한 노래로 불려진다. 안식일 자체가 모든 남자, 여자, 아이들에게 열려 있는 유대교의 위대한 정신적 경험 중 하나라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친구여, 신부를 만나러 와라, 안식일을 받자! 하나의 신은 '관측하라'고 선언하고, 하나의 말로 주님을 기억하라. 그의 이름은 하나다. 이름과 영광과 찬양이다.
내 친구 와…
자, 안식일을 만나러 가자. 그녀는 처음부터 영원히 축복의 캐스트의 원천이고, 깨끗한 생각으로 마지막 행동하는 곳이니까.
내 친구 와…
임금님, 임금님의 거처는, 임금님의 전복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네가 눈물을 흘린 지 오래 되었으니, 그는 네게 동정심을 가질 것이다.
내 친구 와…
나의 백성아, 먼지를 털지 말고, 너희의 아름다운 옷을 입어라. 내 영혼에 가까이 와서, 베들레헴의 제시의 아들을 통하여 그것을 되찾아 주어라.
내 친구 와…
평화롭게, 당신의 남편을 위하여 기쁨과 기쁨으로, 오십시오, 신부님, 오십시오, 특별한 사람들의 신실한 가운데, 오십시오.
내 친구 와…
비록 몇몇 요소들은 몇몇 기도를 위해 토라와 오래 된 누사치의 전통적인 캔틸레이션이나 독서 형태로 보존되어 있지만, 고대의 음악에 대해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중세의 어느 시기에, Hazzan의 예술, 또는 프레이서 리더가 되었다.
만투아에 있는 살로모네 드 로시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목소리 대위 법을 신화기 음악에 도입했다. 18세기부터, Hasidim은 동 유럽의 민속 음악을 Synagogue에 도입했고, 19세기에 오스트리아의 SalomonSalomonSulser와 독일의 LouisLewandowski 정교회는 혼합된 합창단과 오르간을 거부했다. 20세기에 다리우스 밀하우드와 어니스트 블로흐와 같은 몇몇 유대인 작곡가들이 이 시를 위해 글을 썼다.
고고학적 발굴로 인해 조상에 대한 이미지의 금지로 인해 유대인들은 시나고구족들의 예술적 세례를 받지 않았다. 가자 지구의 한 심포지엄에서 발굴된 이 6세기 모자이크는 데이비드 왕이 하프를 연주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Synagogue는 그 자신만의 전통을 키워 왔지만, 그것의 음악은 계속해서 주위의 스타일과 취향에 영향을 받아 왔다.
음악적으로 교육 받은 여성 연주자는 단지 노래를 들음으로써 유대인의 역사의 많은 것을 풀 수 있다! 음악은 건축과 장식 미술과 마찬가지로 유대교의 영적 표현의 필수적인 부분을 구성한다.
유대인 역사 18, 기도란 무엇인가?
성경은 수많은 개인 기도를 기록하고 있다. 가장 훌륭한 기도 중 하나는 사원의 봉헌식에 참석한 솔로몬의 기도이다. 시편은 개인 기도뿐만 아니라 집단 기도도 포함한다. 그것은 제2신전의 기도문으로 묘사된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오늘날까지도 신선함을 유지하고 있고 유대인 숭배뿐만 아니라 기독교인들에게도 계속해서 영감을 주고 있다.
아마도 기도가 일반적인 인간의 활동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성경은 기도하는 명백한 '계명'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도들은 도이치 텔레콤의 말에서 하나를 발견했다. 기도는 제사입니다. 그것은 성전에서의 제사와 대조적으로 마음의 봉사입니다. 그 시는 우리가 매일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메이모니데스(1138–1204)는 이렇게 말한다. 그 뒤에 주께서 그의 능력에 따라 베푸신 좋은 일들을 칭찬하고, 주께 감사를 드립니다.
런던의 베비스 마크의 Synagogue는 CreechurchLane의 Synagogue를 대체하기 위해 1701년에 지어졌습니다. 그것은 영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상징이고 여전히 정기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도에 대한 그들의 논의에서 탈무드인들은 카우바나('방향','의도'), 즉 용기'의 개념을 소개했다. 그들은 한나의 아이에 대한 기도를 진심 어리고 자발적인 기도의 본보기로 해석했다. 기도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시편의 말에서 '영혼의 유출',' 깊은 곳에서 오는 소리'이다.
많은 수준의 카우바나가 있다. 카우바나의 의식적인 언어를 이해한다는 점에서 카우바나 사이에 구별되는 리투아니아의 랍비 HaayimSoloveitchik 후자인 Soloveitchik 사는 기도의 본질이라고 주장한다. 아무리 말을 한다 하더라도, 깊은 경외심과 신비가 없이는, 기도할 수 없는 것이다.
헌신, 칭찬, 감사, 탄원, 고백, 용서 호소가 기도의 내용을 지배한다.
누구를 위한 기도인가? Maimonides의 13번째 신앙 원칙 중 5번째는 다음과 같다.'창조자에게 기도하는 것은 옳지만 다른 존재에게는 옳지 않다.' 그는 때때로 무한한 창조자에게 '직접적인 '것이 아니라 천사들이나 신의 존재의 측면에 기도를 올리는 신비주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바울의 기도]`소할은 스페인의 가발라가 이룬 가장 큰 업적이다. 그는 열두 제자를 거느리고 하늘로 올라가는 야곱의 사다리 같은 것이다. 기도가 올라갈 때에 천사가 일어나고, 각 문마다 이렇게 말한다."문을 열어라. (24절)모든 문이 열리고, 그 문을 통해 기도가 들어온다. 높은 곳에 있는 천사들은 중재하도록 자극 받고, 장벽은 극복되고, 낮은 세계와 높은 세계는 통합된다.
기도는 본질적으로 개인과 그 또는 그녀의 하나님 사이의 개인적인 성찬식이며, 회당에 얽매이지 않고, 공식적인 예배 명령은 어디에 있든지 낭독된다. 그러나 공동체 기도는 영적인 면의 중요성을 더해 준다. 신의 존재는 충실한 사람들의 모임인 '이스라엘의 캠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정기적인 근무 명령은 13세 이상의 남자 유대인 10명 이상으로 전통적으로 정의된 참가자들과 함께 낭독되어야 한다. 회당에서 기도하는 것은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더 좋은 것은, 도라를 규칙적으로 공부하는,'공공 집회'보다 더 신성한 곳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탈무드는 여성의 기도가 남편의 기도보다 우월한 경우를 적어도 한건은 기록한다. 하지만, 그것은 여성들을 '사적인 '영역으로 보내서, 그들이 기도 정족수를 채우지 않고 공공 장소에 참석하지 않도록 한다. 특징적인 영적인 정신을 가진, 이디시에서 특별한 여성들의 기도는 아마도 15세기 초에 사적인 용도로 개발되었다. 유대교의 비가시적인 가지들(7장 참조)은 회당에서 남성과 동등한 지위를 가진 여성들을 감안하여 다양한 정도로 존재한다. 1980년대 이후로 정교회 여성 전용 서비스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표준 서비스와 유사한 방식으로 발전해 왔습니다
유대인 역사 21, 신에 대한 사랑
유대교에 대해 가장 널리 퍼져 있는 절반의 진실 중 하나는 교회의 수도원 명령과 같은 '종교적 질서'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사실, 유대인 수녀나 수도승은 없다. 하지만, 특정한 형태의 영적인 것에 헌신하는 경향, 움직임, 그리고 에필리트 협회들은 수세기 동안 부족함이 없었다.
Rabbinic유대교 그 자체는 1세기에 '친구들'이라 불리는 하느님의 모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3세기 초쯤에는 찬송가가 궁극적인 영적 경험으로 찬양하는 소위'샤리오트'와 '헤할트'신화의 원형이 있었다.
12세기 이집트에서는 신비주의 교리와 영적, 금욕적 교리를 결합한 유대인 수피 운동이 발달했다. 최근에 출판된 아브라함 메모니드의 아들인 오바디의 아들 모세와 오바다 마모니드의 수영장 탄생은 아브라함의 중요한 운동이다.
서유럽에서 멀리 떨어진 하시디 움의 또 다른 움직임인 하시데이 아슈케나즈는 신비주의와 순교에 강하게 중점을 두고 형성되었다. 이스라엘 장월의 번역본에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에 대한 신비로운 욕망이 진정으로 억제될 수 없는 그들의 주요 구성원 중 한 명인 유다 하시드가 쓴 '영광의 찬가'이다.
사랑하는 찬송가는 내가 노래하는 노래와 엮은 노래이다.
나의 영혼이 갈망하는 그대의 모든 것을 그대가 예술로 삼으라.
네 손 안에 있다
그리고 당신의 모든 미스터리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대의 영광이 나의 혀 위에 있는 동안에,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슴이 찢어집니다.
그대를 본 적이 없지만, 그대를 찬양합니다.
그대를 알지 못하지만 그대의 길을 그려 냅니다.
그대들과 하인들의 신비로운 말이
그대의 아들은 어두운 곳에서 가르치지 않소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작품의 웅장함에서 그렸다.
네 내면의 위대함의 척도이기도 해.
그들은 그대에 대해 말했지만, 반드시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대의 업적으로부터
후에 유대인의 '정신적'운동은 18세기의 우크라이나의 하시디즘과 오늘날의 하이스크림과 함께 하는 16세기 팔레스타인을 강조하는 신비주의를 포함한다.
배움의 길
가장 보편적이고, 접근하기 쉽고, 독특한 형태의 유태인의 영적인 면은 도라 연구이다. 힐렐의 가장 위대한 제자인 웃시엘의 아들 요나단 가운데서 그가 앉아서 토라에 대해 배울 때, 그의 정신적 열정이 불에 타서 새가 머리 위로 날아가면, 도라의 말은 시내에서 받은 그 날만큼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여시바(요즘 여성을 위한 유사 기관들이 있다)에서는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전통적인 토라흐 연구에 경건한 어조로 도입되고 있다. 일과가 시작되기 전 이른 아침에 슈리림에 참석하거나, 퇴근 후나 낮 늦게나 밤에 친구와 함께 지내는 것이 이상적인 삶을 통해 드러난다.
시작한 대로 이야기로 이 장을 마치겠습니다. 이것은 20세기 최고의 정통 유태교 사상가인 조셉 도브 솔로비치가 그의 어린 시절을 중부 유럽에서 회상한 것이다.
어렸을 때, 세상이 두려워서 혼자 있었던 것 같아요 모두가 나를 놀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한명의 친구가 있었어요. 웃지 마세요. 람암[Maimonides]!
람밤은 우리 집의 정기적인 방문객이었습니다.
아버지의 강연은 할아버지 댁의 강당에서 있었는데, 그 곳은 제 침대가 놓여 있었습니다. 나는 침대에 앉아 아버지의 말씀을 듣곤 했다. 아버지는 항상 람밤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는 만화를 펼치고 연구할 부분을 쭉 읽은 후에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이것이 리이와 토사포가 설명하는 방법입니다. 이제 람밤을 보고그가 어떻게 설명하는지 봅시다.' 그는 람밤이 그것을 명백한 의미에 따르지 않고 다르게 설명했다는 것을 항상 발견할 것입니다. 그가 말하길… 마치 람밤에게 개인적으로 불평하는 것처럼,'라베누 모쉬,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그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모두가 침묵할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시작했다. ’
나는 그 주제에 대해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두가지 인상은 내 순진한 어린 머리 속에 각인되었다. 아버지 없이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누가 알겠어? …
나는 엄마에게 마음이 아픈 채로 가곤 했다.'엄마, 아빠는 람밤을 설명할 수 없어요! 어떻게 할까요?'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아버지는 람밤에 대한 답을 찾으실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할 수 없다면, 아마도 여러분이 자라서 람밤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요한 것은 계속해서 토라를 배우고 즐기며 그것이 여러분을 흥분시키도록 하는 것입니다.' …
이것은 어린 아이에 대한 황금 같은 몽상이 아니었다. 오늘날까지도 내 영혼 깊은 곳에 살고 있는 것은 심리적이고 역사적인 현실이었다. 앉아서 배우면, 나는 곧 전통을 지닌 현명한 사람들과 함께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우리의 관계는 개인적인 것이다. 람밤은 제 오른쪽에 있고, 왼쪽에 RabbenuTam, Rashi는 앞에 앉아서 RabbenuTam, Rambam은 결정을 내리고, Raavad는 비난합니다. 모두 내 작은 방에 있어 그들은 저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며 이성과 지리학에 참여하고, 저를 지지하고 격려해 줍니다.
도라의 배움은 단지 교훈적인 연습이 아니다. 세대를 가로지르는 사랑의 강력한 표현, 영혼의 결혼, 영혼의 결합. 도라를 넘겨주는 사람들은 역사의 한 여관에서 그것을 받는 사람들과 만난다.
카디쉬(Kaddish) 와 18번 축복 기도(Tepillah, Shemone Esre)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드렸던 기도로 ‘카디쉬’(Kaddish)와 ‘18번 축복 기도’(Shemone Esre)문이 있다. ‘카디쉬’ 기도문은 유대 회당에서 설교 끝에 함께 낭송한 기도이며, 짤막한 형태의 기도문이다. ‘세모네 에스레’ 기도문은 유대인들이 하루에 세 번 즉 아침과 오후가 시작되는 시간 그리고 저녁이 시작되는 시간에 각각 반드시 드려야 하는 기도였다. 이 ‘세모네 에스레’ 기도야말로 모든 유대인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기도였다. 여기에 두 개의 기도문을 실어 본다.
<카디쉬(Kaddish) 기도>
그분의 이름이 높여지고 거룩히 여겨지이다
그분이 그분의 뜻에 따라 지으신 세상 안에서.
그분의 자신의 나라/ 다스리심이 다스리게 하시길
너희들의 생애에 그리고 너희들의 날들에 그리고
이스라엘 집안 전체의 생애에, 신속히 그리고 조만간.
그분의 위대한 이름이 영원에서 영원까지 찬양되소서.
이에 대해 말하라. 아멘.
<18번 축복 기도(Tepillah, Shemone Esre)
1. 주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전능하시고 무서우신 하나님, 하늘과 땅을 지으신 지고하신 하나님, 우리의 방패 그리고 우리 조상들의 방패이신 하나님, 매세대마다 우리의 의지할 분이신 당신을 축복하나이다. 아브라함의 방패이신 주님, 당신을 축복하나이다.
2. 당신은 전능하셔서 교만한 자들을 겸손케 하시는 이시고, 강하시고 포악한 자들을 심판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은 영원히 사시고 죽은 자들을 일으키시며, 바람을 불게 하시고 이슬을 내리시며, 산 자들에게 공급하여 주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시며, 단숨에 우리의 구원이 일어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죽은 자들을 살리시는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3. 당신은 거룩하시고 당신의 이름은 경외로우시며, 당신 외에는 다른 신이 없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이신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4.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당신으로부터 오는 지식을 주시고, 당신의 율법으로부터 오는 이해와 판단력을 주시옵소서. 지식을 주시는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5. 주여, 우리를 당신께로 돌이키소서. 우리가 회개하겠나이다. 예전과 같이 우리의 날들을 새롭게 하소서. 회개를 기뻐하시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6. 우리 아버지, 우리가 당신께 죄를 지었사오니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의 악행들을 지워 버리시고 당신의 시야에서 제거하소서. 당신의 자비가 풍성하시니까요. 용서를 풍성히 베푸시는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7. 우리의 고난을 보시고, 우리를 위해 호소하시며, 당신의 이름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 이스라엘의 구속자이신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8. 우리 하나님이신 주여, 우리의 심장의 아픔을 치유하시며, 슬픔과 탄식을 우리로부터 제거하시고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소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병자들을 치유하시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9. 우리 하나님이신 주여, 우리를 위해 금년을 축복하시고, 금년의 모든 생산을 풍성하게 하소서. 우리의 최후 구속의 해를 빨리 가져오소서. 땅에 이슬과 비를 내려 주시고, 당신의 사랑의 보고로부터 세상을 만족게 하시며, 우리 손의 일을 축복하소서. 해마다 축복하시는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10. 우리 해방을 큰 나팔을 불어 선포하시고, 깃발을 들어 우리의 흩어진 자들을 모으소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추방당한 자들을 모으시는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11. 우리의 심판관(사자)들을 예전과 같이 회복시키시고 우리의 지혜자들을 처음과 같이 회복시켜 주소서. 오직 당신만이 우리를 다스리소서. 심판을 사랑하시는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12. 그리고 배교자들에게는 소망이 없게 하시고, 교만한 나라는 빨리 우리의 생애에 뿌리 뽑히게 하소서. 그리고 나사렛 당원들과 이단자들은 빨리 망하게 하시고, 그들이 생명책에서 지워지게 하시며, 그들이 의인들과 함께 기록되게 하지 마소서. 교만한 자들을 겸손케 하시는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13. 당신의 자비가 의로운 개종자들에게 풍성히 내리게 하시고, 당신의 기쁜 뜻을 행하는 자들과 더불어 우리에게 풍성한 상을 주소서. 의인들의 신뢰처이신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14. 우리 하나님이신 주여, 당신의 풍성한 자비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 당신의 도성 예루살렘에, 영광의 거처인 시온에, 당신의 의로운 메시아 다윗가의 왕권에 자비를 베푸소서. 예루살렘을 세우시는 다윗의 하나님이신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15. 우리 하나님이신 주여. 우리 기도의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에게 자비로우소서. 당신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시니이다. 기도를 들으시는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16. 우리 하나님이신 주여, 시온에 기꺼이 거처하소서. 그리고 예루살렘에서 당신의 종들도 하여금 당신을 섬기게 하소서. 우리가 경외심으로 예배하는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17. 우리 하나님이신 주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을 찬양하나이다. 당신이 우리에게 허락하시고, 우리에게 그리고 우리보다 앞선 우리의 조상들에게 행하신 모든 선하심과 은혜와 자비를 인하여 찬양하나이다. 우리가 실족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하면, 오 주여, 당신의 은혜가 우리를 구출합니다. 오로지 선하신 이인 주여, 당신을 축복합니다.
18.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 당신의 도성, 당신의 기업에 당신의 평화를 가져오소서. 그리고 우리 모두를 함께 축복하소서. 평화를 이루시는 주님, 당신을 축복합니다.
회당예배의 순서와 유대인의 18기도문(쉬모레 에스레)
회당 예배의 이해
기독교 이전 시대의 디아스포라에서는 “회당”이라는 단어보다는 “기도처”라는 단어를 즐겨 사용하였다. 하지만 성전 시대 팔레스타인의 회당은 기도처의 역할보다는 토라 연구의 장으로의 역할이 컸다. 로마군에 의해 제2성전이 멸망된 주후 70년 이후에 와서 회당은 성전의 제의적 기능을 수용하면서 다양한 요소를 받아들인다. 그리하여 성경을 낭독하고 해석하는 일뿐만 아니라, 정형화된 기도문도 받아들인다.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10명이 모여야 한다. 회당 내의 좌석 배치는 일정한 순서에 따르는데, 회중의 중요 인사는 앞부분에 마련된 상석에 앉고 젊은이들은 그 뒤로 앉았다. 남녀 좌석은 분리되었다.
신약 시대에 들어와 상당 부분 발전되어 정착된 예배의 순서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큰 틀에 있어서는 변하지 않았다. 아가서 8장 13절에 관한 미드라쉬 라바(Midrasch Rabba)는 회당 예배 순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간략히 말한다: “이스라엘 사람은 한 주 전체를 일과 씨름한다. 하지만 안식일에는 일찍 일어나 회당으로 간다. 거기서 그들은 쉐마를 낭송하고, 성궤 앞으로 다가가 토라를 낭송하고, 예언서로 마친다.”
예배의 순서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회당 예배는 제의적인 부분과 교육적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제의적인 부분은 유대교의 신앙고백을 뜻하는“쉐마”([mv Shema)를 낭송함으로 시작된다.
쉐마는 신명기 6장 4-9절과 11장 13-21절, 민수기 15장 37-41절로 이루어져 있다. 이 본문은 야훼만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심을 선포하고 그 분에 대해 지속적으로 기억할 것을 확실하게 규정한다.
(신 6:4-9) 4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5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사랑하라 6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7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8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성서의 배경사 안식일과 회당 예배 93표로 삼고 9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쉐마 낭송을 전후하여 한두 개의 찬송을 한다.
그런 다음 회당 예배의 핵심을 이루는 이른바 ‘쉬모네 에스레’라는 기도가 이어진다.
이 기도문의 팔레스타인 판본은 본래 18개의 기도문을 담고 있었기에 숫자 18을 뜻하는 ‘쉬모네 에스레’(hrc[ hnwmv Shmoneh Esreh)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훗날 보편화된 바벨론 판본은 19번째 기도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명칭은 그대로 고정되었다.
쉬모네 에스레는 하나님을 향한 찬양과 청원과 감사의 형태로 신앙의 중심 주제들과 이스라엘의 소망을 담고 있다. 이 기도는 기도의 전형으로 통하기에 단순히‘트필라’(Tefilla)라고 불리며, 혹은 선 채로 기도하기에 ‘아미다’(Amida)라고 불리기도 한다. 쉬모네 에스레의 처음 3개 기도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찬양의 기도이고, 이어서 기도의 중심부를 이루는 12개의 청원 기도가 계속되고, 마지막으로 3개의 찬양과 감사의 기도가 뒤따른다.
팔레스타인 전승에 따른 본문은 다음과 같다.
(기도1) 찬양받으소서, 야훼시여,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시여,
지극히 크신하나님, 하늘과 땅의 창조주, 우리의 방패요 선조들의 방패이십니다. 찬양 받으소서,
아브라함의 방패시여!
(기도2) 당신은 용사이시며 강하신분이시며 죽은 자를 부활시키는 영원히 살아계신분이시며,
산 자를기르시고 죽은 자를살리시는 분이십니다. 찬양 받으소서, 야훼, 죽은 자를살리시는 분이시여!
(기도3) 당신은 거룩하시고 당신의 이름은 두려우시며, 당신 외에는 신이란 없습니다.
찬양 받으소서, 야훼, 거룩하신하나님이시여!
(기도4) 우리 아버지시여, 당신으로부터 오는 지식과 당신의 토라로 부터 오는 통찰과 깨달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소서. 찬양 받으소서, 깨달음을 주시는 야훼시여!
(기도 5) 야훼시여, 우리를 당신께로 돌아서게 하시어, 우리가 회개하고
우리의 날을 예전과 같이 새롭게 하소서. 찬양 받으소서, 회개를 기뻐 받으시는 야훼시여!
(기도 6) 우리 아버지시여, 우리를 용서하소서. 우리가 당신께 범죄하였나이다.
우리의 과오를 당신의 눈앞에서 지워주옵소서. 찬양 받으소서, 무한히 용서하시는 야훼시여!
(기도7) 우리 궁핍함을 보시고, 우리 일을 인도하시고, 당신의 이름으로 인해 우리를 구원해주옵소서.
찬양 받으소서,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신 야훼시여!
(기도 8) 야훼 우리 하나님이시여,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 마음의 고통과 벗어나게 하시고,
우리의 상처를치유해주옵소서. 찬양 받으소서,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의 병든 자를치유하시는 분이시여!
(기도9) 야훼 우리 하나님이시여, 이 한 해를 축복해주시고, 당신의 선한 보물로 세상을 채워주옵소서.
찬양 받으소서, 해들을 축복해주시는 야훼시여!
(기도10) 우리의 자유를 위해 커다란 나팔을 울리시며, 우리의 유배자들을 모으시기 위해 깃발을 치켜드소서.
찬양 받으소서, 당신백성 이스라엘의 유배자들을 모으시는 야훼시여!
(기도 11) 예전처럼 우리의 심판관을 또한 처음처럼 우리의 행정관을 데려오시고, 우리 위의 왕이 되소서.
찬양 받으소서, 공의를 사랑하는 야훼시여!
(기도 12) 변절자들에게는 희망이 없게 하시고, 거만한 정부(=로마)를 하루 속히 우리 시대에 멸절시키옵소서.
찬양 받으소서, 오만한 자들을 거꾸러뜨리시는 야훼시여!
(기도13) 온전한 프로셀리트(=유대인으로 개종한이방인)에게 당신의 자비를 보여주시며,
당신의 뜻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우리에게 선한 삯을 주시옵소서.
찬양 받으소서, 의인들의 신뢰자되시는 야훼시여!
(기도 14) 야훼 우리 하나님이시여,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과 당신의 성읍 예루살렘과
당신의 영광의 거처인 시온과 당신의 정의로운 메시아 다윗 가문의 왕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찬양 받으소서, 예루살렘을 지으신 다윗의 하나님야훼시여!
(기도15) 야훼 우리 하나님이시여, 우리의 기도 소리를 들으소서.
당신은 인자하시며 자비로우신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찬양 받으소서, 기도를 들어주시는 야훼시여!
(기도 16) 시온에 거하며 당신의 종들이 당신을 예루살렘에서 섬기는 것이 우리 하나님 야훼께 미쁠지어다.
찬양 받으소서, 야훼시여, 우리가 당신을 경외함으로 섬기리다!
(기도17) 야훼 우리 하나님이시여, 당신이 우리에게 행하신모든 선함과 사랑에 대해당신께 감사드리나이다.
찬양 받으소서, 지극히 선하신 야훼시여, 당신께 감사드리나이다!
<제사장의 축도>
(기도18) 당신의 평화를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주시고, 우리 모두를 항상 축복해주옵소서.
찬양 받으소서, 평화를 만드시는 야훼시여!
유대인은 이 기도를 보통 하루에 세 번(아침, 오후, 저녁) 드렸다.
그런데 예배에서 사용될 경우에는 두 가지 특이점이 있다.
첫째 특이점은 안식일과 축일의 경우 예배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이 기도문 전체를 기도드리지 않고 단지 처음 세 기도와 마지막 세 기도만을 드리며, 중간의 12개 기도 대신에 특별한 안식일 기도 및 축일 기도를 드린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특이점은 민수기 6장 24-26에 나오는 제사장의 축도와 관련된 것이다.
쉬모네 에스레의 마지막 두 기도(기도 17과 기도 18) 사이에 축도가 행해진다. 회당 예배에 제사장이 참석하였다면 반드시 그가 축도를 해야 한다. 축도 후 제사장은 간단히 기도를 드리고, 기도 인도자의 마지막 18번째 기도가 끝나면 제자리로 돌아간다.
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얼굴을 예루살렘을 향하고 선 채로 기도드린다.
이때 전체 회중이 입술을 여는 것이 아니라, 기도 인도자가 대표로 기도하고, 회중은 단지 “아멘”으로 응답한다.
회당 예배의 교육적인 부분은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다.
먼저 회당 예배의 중심이라고 말할 수 있는 토라(모세5경)를 낭송한다.
토라의 일정 단락들(Sidrot)을 매 안식일마다 나누어 낭송한다. 팔레스타인 유대교 전통은 3-4년마다, 바벨론 전통은 매년마다 토라 전체를 읽도록 나누었다.
낭송자 옆에는 통역자가 서서 아람어로 통역해 주었다.
토라 부분을 읽은 후에는 이어서 예언서를 읽었다. 이 두 번째 성경 읽기로 예배가 폐회되기 때문에 예언서 읽기를 가리켜 ‘하프타레’(hrfph Haftare = 해산)라고 하였는데, 이런 이유에서 예언서 단락들을 가리켜‘하프타롯’(Haftarot)이라 불렀다.
성경 읽기에 설교가 첨가될 수도 있다. 모든 남자 회원에게는 성경 읽기와 설교의 권리가 주어졌다.
그래서 누가복음 4장 16-30절에 따르면 예수님은 이러한 권리를 이용하여 이사야서 61장 1-2절을 읽고 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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