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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복음서 연구

산상수훈, 산상보훈, 산상복음, 8복의 올바른 이해

by 은총가득 2020. 7. 16.

산상수훈, 산상보훈, 산상복음, 8복의 올바른 이해

 

산상수훈(山上垂訓)은 산상보훈(山上寶訓), 산상복음(山上福音)이라고 부르며 흔히 8복(八福)으로 쉽게 이해합니다. 산상수훈은 예수님이 갈릴리 지역 한 야산에서 말씀하신 기독교 도덕의 근본과 극치를 말한다는 의미에서 기독교의 대헌장(大憲章)이라고 불리어지기도 합니다. 흔히 8복(복이 있나니~~)이라고도 하며, 시편1편(복 있는 사람은 ~~)과 연결이 됩니다.

 

 

 

 

산상수훈은 마태복음 5-7장에 기록이 된 예수님의 교훈과 설교를 가리킵니다.

 

이런 산상수훈은 누가복음 6:20-49에도 비슷하게 기록이 되어 있으며, 누가복음의 저자 누가는 누가복음 11-16장에 걸쳐서 광범위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마태복음과 구분하기 위해 누가복음의 수훈을 ‘평지수훈“이라고 부르나 내용상에는 거의 차이기 없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일목요연하게 집중 배치하여서 독자들이 좀 더 관심을 기울이는 의도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산상수훈의 본질이나 근본적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어 왔습니다. 이런 논란이 일어난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윤리적 수준이 너무 높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실천하기기 매우 어렵다는 것이지요. 우리도 산상수훈에서 주님이 말씀하신대로 살기에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예를 들자면, 속옷을 달라는 사람에게 겉옷까지 주며, 억지로 오 리를 가고자 하는 사람에게 십 리를 동행하고, 돈은 빌려달라는 사람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하는 말을 지킬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마5:38-42). 심지어 오른 눈이 죄를 범하면 빼 버리고, 오른 손이 죄를 범하면 도끼로 찍어서 버리라고 말씀하시면 한숨부터 나오는 것이 현실이 아닙니까? 그런데도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죄를 범한 눈이라고 빼 버리고, 손을 잘라서 버렸다는 말을 단 한 번도 문헌에서나 풍문으로 들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면 어쩌라는 것인가요? 지키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이유로 인하여 산상수훈은 과장법으로 치부하여 넘어가는 사람들도 있었고, 구약의 율법의 연장 차원으로 해석하기도 하였고, 달성해야할 목표로 해석하기도 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습니다.

 

또한 산상수훈을 지킬 대상이 누구인가에 관하여 논란이 있었고 지금도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이 산상수훈에 관한 의견이 제시되었습니다.

1) 중세 가톨릭에서는 본래 열두 제자들에게 주어진 것으로서(마5:1) 신부들이나 수도사들이 준수하여야 할 윤리로 보아서 일반신자들이 지키기엔 적합하지 않다고 보았습니다.

 

 

 

 

2) 루터주의는 인간의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는 결코 달성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은혜를 간구하도록 주어진 것으로 평가합니다.

3) 세대주의자는 이 시대에 적용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재림하신 후 천년왕국에서 지내는 성도들이 지키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4) 알버트 슈바이처는 산상수훈을 중간의 윤리로 보아서 하나님나라의 도래가 임박함으로 모든 성도들이 이런 삶을 살아가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길 촉진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5) 개혁주의는 산상수훈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지켜 행하여야 할 삶의 기준과 원리라고 보았습니다.

 

 

 

 

여기서 루터주의와 개혁주의의 생각을 종합하면 올바른 산상수훈의 결론을 내릴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신자가 거듭나서 중생하고 회개하는 순간에 법적으로 의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육체에 그대로 남아있는 죄와 자범죄로 인하여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준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때 자신의 죄성과 의지와 노력의 부족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산상수훈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신자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아니 이 수훈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하여야 할 점은 문자 그대로 실행하고자 할 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범하였던 율법주의의 오류에 빠져 위선적이 되거나 아니면 절망에 빠지게 될 소지가 많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된 천국시민으로서 산상수훈을 지키려고 노력하되 자신의 의지와 능력으로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우심과 은혜를 간구하며 주시는 능력에 따라 준수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즉 달성하여야 할 목표로서 한발 한발 전진하는 것이지요. 신자들마다 윤리적인 정도의 차이와 높낮이가 있으므로 그 목표달성에 시간이 더 걸리는 신자도 있고 단축되는 신자도 있습니다.

 

따라사 쉽게 표현하자면 산상수훈의 삶은 성화의 삶을 살아가는 것과 매우 유사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나의 노력의 합력과 조화입니다. 이것이 바로 산상수훈의 목적이요 의도입니다.

<가져온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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