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 히 5: 4-10
5:4.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9.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5 Οὕτως καὶ ὁ Χριστὸς οὐχ ἑαυτὸν ἐδόξασεν γενηθῆναι ἀρχιερέα, ἀλλ᾽ ὁ λαλήσας πρὸς αὐτόν, Υἱός μου εἶ σύ, ἐγὼ σήμερον γεγέννηκά σε·
6 καθὼς καὶ ἐν ἑτέρῳ λέγει, Σὺ ἱερεὺς εἰς τὸν αἰῶνα κατὰ τὴν τάξιν Μελχισέδεκ.
7 ὃς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τῆς σαρκὸς αὐτοῦ, δεήσεις τε καὶ ἱκετηρίας πρὸς τὸν δυνάμενον σῴζειν αὐτὸν ἐκ θανάτου μετὰ κραυγῆς ἰσχυρᾶς καὶ δακρύων προσενέγκας καὶ εἰσακουσθεὶς ἀπὸ τῆς εὐλαβείας,
8 καίπερ ὢν υἱὸς ἔμαθεν ἀφ᾽ ὧν ἔπαθεν τὴν ὑπακοήν·
9 καὶ τελειωθεὶς ἐγένετο πᾶσιν τοῖς ὑπακούουσιν αὐτῷ αἴτιος σωτηρίας αἰωνίου,
10 προσαγορευθεὶς ὑπὸ τοῦ θεοῦ ἀρχιερεὺς κατὰ τὴν τάξιν Μελχισέδεκ
대제사장의 자격 - 하나님의 부르심(히 5:4)
5:4. 이 존귀는 아무나 스스로 취하지 못하고 오직 아론과 같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자라야 할 것이니라
본문에서는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 되신 것은 구약의 아론의 계통의 제사장처럼 하나님의 임명에 의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저자는 이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시편의 두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특히 시 110:4을 인용한 부분에서는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영원하며 멜기세덱의 계통을 따르고 있다는 점에서 아론의 대제사장직과 다르다고 지적하고 있다.
히 5: 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시 2:7) 하셨고 - 저자는 앞에서 모세와 예수의 유사성을 비교하여 모세와 예수가 하나님께 대한 충성에서 유사성이 있었으나(3:1-2), 우월성에 있어서 차이가 있었음을 논증하였다(3:3-6).
같은 방법으로 본절에서는 대제사장으로서의 아론과 그리스도가 비교되고 있다. 양자는 스스로 대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해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보다 우월하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저자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증거하기 위해 시 2:7을 인용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들로서 하늘의 특권을 지닌 자이며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존재임을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예수께서 요단 강에서 세례 받으시고 올라올 때와 변화산 상에서
그리스도께서 사랑하는 아들이심을 친히 음성으로 인정해 주셨다.
신약에서 시편 2:7 인용구절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사도행전 13:33 곧 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히브리서 1: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히브리서 5: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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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보다 더 우월하신 대제사장이심을 논증하기 위해 (시 110:4)도 인용하고 있다.
(시 110:4) 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제사장'으로 임명하는 장면이 나타난다.
"여호와는 맹세하고 변하지 아니하시리라 이르시기를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 하셨도다"
한편 저자는 본절에서 '예수'라는 이름 대신에 "그리스도 oJ Cristo;" 호 크리스토스, Christ" 즉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용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대제사장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다.
v.6 또한 이와 같이 다른 데 말씀하시되 네가 영원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제사장이라 하셨으니 - 저자는 앞절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보다 더 우월하신 대제사장이심을 논증하기 위해 시110:4을 인용하고 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ata; th;n tavxin Melcisevdek 카타 텐 탁신 멜키세덱, after the order of Melchisedec"는 멜기세덱 계열의 제사장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멜기세덱과 같은 유형 계열의 제사장이시라는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신적 권위를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멜기세덱에게는 후손이나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멜기세덱은 다음과 같은 유사성을 지닌다.
저자는 이러한 멜기세덱과 그리스도의 유사성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훨씬 더 우월하신 존재임을 논증하고 있다.
아론계통의 대제사장은 오로지 제사 직무를 감당하기 위해 기름부음을 받은 존재에 불과하지만 그리스도는 제사장이며 왕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존재로서 훨씬 더 우월하시다.
멜기세덱과 같은 유형 계열의 제사장이시라는 의미로 말함으로 그리스도의 제사장직의 신적 권위를 강조하고 있다.
왜냐하면 멜기세덱에게는 후손이나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 멜기세덱은 다음과 같은 유사성을 지닌다.
그 리 스 도 |
멜 기 세 덱 |
존재의 시작과 끝이 없음 (요 8:58; 계 1:4) |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음(7:3) |
대제사장이시며 만왕의 왕이심 (계 19:16) |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면서 살렘의 왕임(7:1; 창 14:18) |
생명의 떡과 포도주로 예표되는 자신의 몸과 피를 인류의 대속물로 주심 (마 26:26-29) |
아브라함에서 떡과 포도주를 줌 (창 14:18) |
유다 지파의 후손으로 레위 지파를 좇 는 제사장이 아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 으로 제사장이 되심(5) |
레위 지파 이전의 인물로 지극히 높으 신 하나님의 제사장이 됨(7:1) |
▣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려 드림
*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 본절은 예수께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셔서 인간과 똑같은 시험을 당하셨음을 시사한다(2:14-18). "육체 sarko;" 사르코스, of His flesh"는 '살'을 뜻하는 말로서 '영'과 반대되는 물질적인 육체를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연약성을 지니셨으며 인간이 느끼고 당하는 감정이나 어려움을 똑같이 느끼시는 대제사장이심을 시사한다(4:15).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 본 구절에 대해서 혹자는 예수의 지상 생활 중 겟세마네에서 드린 고뇌에 찬 기도 장면(눅22:39-46)을 비록하여 예수의 지상 사역 중 어느 특정한 순간에 적용시키기보다는 그의 대제사장적인 사역 전체에 적용시키는 것이 타당하다.
한편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에서 “올렸고 prosenevgka" 프로세넹카스, when he had offered up”는 희생 제물을 '바치다'라는 의미의 제의적(祭儀的) 용어이다. 이것은 1절에서 언급된 대제사장의 제사와 평행을 이룬다.
대제사장이 속죄를 위하여 드리는 '제물'은 예수께서 하나님께 올린 '간구와 소원'을 의미한다.
▶ '올리다‘('프로세넹카스')는 말은 희생 제물을 '바치다'라는 의미이다.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 “경외하심 eujlabeiva" 율라베이아스, he feared”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1)혹자는 '두려움'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기도했다는 의미로 해석한다. 예수는 죽음에 대해 인간으로서의 두려움을 느끼셨으나 이를 극복하고 하나님의 계획에 순복하셨다. (2)혹자는 '율라베이아스'가 '잘'에 해당하는 접두사 '유'와 '붙들다'는 뜻의 헬라어 '람바노'의 합성어로 '하나님에 대한 경외'를 나타낸다고 한다. 이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 본문은 시 22:24의 '부르짖을 때 들으셨도다'와 상응된다. 이것의 일례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의 기도의 목적은 고난의 잔을 옮기는 데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데 있었다. 막 14:32-36) 그의 기도는 받아들여진 것이었다. 하나님은 예수의 기도를 받아들이셨다.
한편 본문은 앞에서 언급된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과 연결된다. “죽음에서 ejk qanavtou 에크 다나투, from death”는 죽음이 예수를 지배할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으로 부활을 통해 죽음의 영역을 극복하셨음을 시사한다.
* 8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고난받아야 할 이유가 없으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다.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e[maqen ajf j w|n e[paqen 에마덴 아프 혼 에파덴, yet He learned obedience by the things which He suffered"는 헬라문학에서 오랫동안 쓰어진 관용구로서 ‘배우다’의 헬라어 동사어근 '마드'와 '고난받다'의 동사어근 '파드'는 음성학적으로 서로 유사하기 때문에 수사학적인 효과를 위해 자주 함께 사용되었다.
수사학적 관용구가 적용된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라는 표현은 예수께서 고난을 통해 순종하게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예수께서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순종하였으며 순종의 과정 속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었다는 의미이다.
본절에서 사용된 “고난받다 에파덴'는 '파스코'의 부정 과거 능동태 직설법으로 본서에서 오직 '예수의 수난'에만 사용되었으며 그리스도의 죽음을 암시한다.
*9 온전하게 되었은즉 - 본절은 고난받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본질이 불완전했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고난을 받으심으로 인해 사람들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대제사장으로서 온전케 되셨음을 뜻한다.
예수께서는 고난을 통해 구속 사업을 완수하시고 그의 백성의 대제사장으로 완전하다는 인정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아 이제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 그리스도께서는 온전케 되신 결과로 자신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
본절의 '순종'은 앞절에 언급된 예수 자신이 행하신 '순종' 즉 죽음의 고난을 받기까지 행한 철저한 복종을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 자신이 하나님께 죽기까지 복종한 것과 같이 자신을 따르는 자들도 그러한 순종을 해야 함을 시사한다. 이렇게 자신에게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그리스도의 구원은 '영원한' 것이다. "영원한 aijwnivou 아이오니우, of eternal"은 '끝없는 시대'를 의미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은 시간의 차를 뛰어넘는 참된 것이며 사람의 손으로 짓지 아니한 참 하늘에 속한 것임을 암시한다.
고난을 통해 순종함을 배우심(8-9)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받으신 고난을 통해서 순종함을 배우셨다(8).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고난받아야 할 이유가 없으시다(Morris).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구원을 위해 고난을 받으셨다.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웠다'는 말('에마덴 아프 혼 에파덴')은 헬라문학에서 오랫동안 쓰어진 관용구로서, '배우다'의 헬라어 동사어근 '마드'와 '고난받다'의 동사어근 '파드'는 음성학적으로 서로 유사하기 때문에 수사학적인 효과를 위해 자주 함께 사용되었다(Lane).
▶이 말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인간들이 겪는 동일한 역경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 순종하셨다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고난을 통한 주님의 순종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은 실제적인 교훈을 준다. 첫째로 주님께서는 육신을 입으시고 순종하심을 통해 우리들이 그 발자취를 따라 오게 하시려고 본을 보여 주셨다.
둘째로 주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순종을 윈하시는 지를 가르쳐 주셨다. 주님께서는 죽기까지 하나님께 복종하셨다.
셋째로 순종하는 사람이 어떠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 주셨다. 무릇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주님과 같이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넷째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당하는 고난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셨다. 다섯째로 주님께서도 고난을 받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고난에서 제외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셨다.
주님께서는 이와 같이 고난을 통해서 순종을 배우심으로 인해 사람들의 죄를 사할 수 있는 대제사장으로서 온전한 자격을 구비하게 되셨다(9).
만일 주님께서 고난 속에서 순종을 배우지 않으셨다면, 고난 당하는 인간들을 용납하지 못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러한 고난을 통한 순종을 통해서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을 주실 수 있는 합당한 분이 되셨다.
자기를 순종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고난 속에서 죽기까지 복종한 것을 본받아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성도들을 말한다. 주님의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다.
그리스도께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시는 구원은 시간의 차원을 뛰어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이와 같이 인성을 체험하심으로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으셨다(10).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라는 것은 멜기세덱의 후손으로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6절), 그리스도께서 율법 하에 있던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보다 탁월한 다른 은혜의 약속을 따라 대제사장이 되셨다는 것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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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하나님께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라 칭하심을 받았느니라 - 그리스도는 십자가의 고난을 통한 순종으로 온전케 되어서 하나님으로부터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이라는 칭하심을 받았다.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대제사장 as High Priest 'according to the order of Melchizedek'"이라는 것은 멜기세덱의 후손으로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6절)
그리스도께서 율법 하에 있던 아론 계통의 대제사장과는 다른 약속의 은혜에 의한 대제사장이 되심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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