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3장 주석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의무(히브리서 3:1-6)
위의 구절 속에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 제사장직에 대하여 전장(前場) 끝부분에서 논해진 교리가 성도들에게 적용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Ⅰ. 열렬하고도 애정이 넘치는 태도로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대제사장을 깊이 생각하고, 가까이 할 것을 권면하고 있다. 지상이나 하늘에 있는 어느 누구도 그리스도보다 더 우리의 관심의 대상이 될 수는 없다.
1. 이 권면의 편지를 받는 사람들에게 보다 효과 있게 전하여지기를 바라서 바울은 수신인들에게 영예스러운 호칭을 사용하였다. 즉 그들은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1절)이라고 불렀다.
(1) 바울은 그들을 형제들이라고 하였다. 여기서 형제들은 나의 형제를 말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형제들을 말하며 또 모든 사도들에게도 형제가 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모든 백성들은 형제이며 서로 사랑해야 하고, 형제처럼 살아야 한다.
(2) 그들을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그들의 성도들이라는 칭호가 거룩하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면에 있어서도 거룩하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을 멸시하고자 하는 의도로 이 칭호를 사용하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은 "이들이 바로 자칭 거룩한 형제들이지"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 자신을 해치는 위험스러운 조롱인 것이다. 그러므로 "조롱군이 되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사실을 더욱 단단히 하게 되는 결과만 초래한다"고 하였다. 이같이 경멸받고 조롱당하는 사람들로 정녕 거룩한 형제가 되도록 힘쓰고 격려하며 그들이 하나님 앞에 거룩함을 인정받도록 격려하도록 하자. 성도들은 그러한 명칭을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고 불신자들의 조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이러한 비난을 받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 비난받음으로 인하여 존귀하게 여김을 받고 축복 속에 참여하게 되는 날이 임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때에 거룩한 형제단에 속하게 될 것이다.
(3) 그들을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하였다. 즉 그들이 은혜의 참여자가 되었다는 말이요, 성령의 참여자들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참여한 이 은총에 의해 실제로 어둠에서 놀랄 만한 빛 가운데로 이끌려 나오게 되었다. 이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하늘 나라를 소유하게 되었고 하늘 백성으로의 성품과 생활을 영위하게 되며 또 하늘 나라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사는 길이 이 은총에 의해 준비되는 것이다.
2. 바울이 그리스도에게 사용한 호칭. 바울은 수신인들로 그리스도를 다음과 같이 생각하게 하고자 하였다.
(1) 그리스도를 우리의 신앙 고백의 사도로서 즉 복음 교회의 최고 대장으로서 또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한 일을 위하여 인간에게 보낸 사자로서, 또 우리가 붙잡아야 하는 그 믿음과 우리가 가졌노라고 고백하는 그 소망의 위대한 계시자로서 바울은 칭하였다.
(2) 사도로서 뿐만 아니라 우리의 신앙 고백의 대제사장으로서, 즉 신 구약 시대의 최고의 다스리는 자로서, 어떤 상황과 섭리 아래에서도 교회의 우두머리이신 분이라고 바울은 칭하였다. 대제사장으로서의 그의 속죄와 중제하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죄의 용서를 받고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것이다.
(3) 또 사도와 대제사장의 두 가지 일을 능히 해낼 수 있는 그리스도 메시야로서 바울은 예수를 호칭하였다.
(4) 또한 바울은 그를 예수로서 즉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에 메달아 올렸던 구리뱀에 의해 상징되는 우리 영혼의 치료자이자 영혼의 위대한 의사로서 칭하였다. 모세가 구리뱀을 높이 매달아 올린 것은 이 무서운 뱀에 물린 자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였다.
Ⅱ. 우리는 이 모든 높고 존귀한 명칭을 지니신 분에게 갚아야 할 빛이 있다. 즉 그것은 그를 위와 같은 분으로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자신에게는 어떤 존재이며 우리에게는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이 후로 영원히 어떤 존재가 될 것인가를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를 생각하면 전심을 다해 생각을 그리스도께 집중하고 그가 원하시는 대로 생활하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예수를 우리 신앙의 완성자와 근본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그리스도에 대해 신앙을 고백하는 많은 사람들도 그를 깊이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는 그에게서 구원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바라시지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2. 그리스도에 대하여 깊고 정중하게 생각함으로써 우리는 그리스도를 더 잘 알 수 있고,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고 사랑할 수 있으며, 그를 의지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3. 거룩한 형제들, 하늘 나라의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더욱 생각하기 위해서 서로 더욱 더 그리스도를 생각하도록 격려할 필요가 있다. 가장 훌륭한 성도들까지도 대부분 그리스도를 가벼이 생각하거나 거의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 것이다.
4. 우리가 그리스도를 성서가 전해 주는 모습 그대로 생각하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쓸 데 없는 추상이나 상상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지 않고 성경의 기록에 근거하여 그를 이해하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Ⅲ. 본문에는 그리스도를 우리 신앙 고백의 사도요 대제사장으로 생각하는 의무를 우리로 계속 지켜 나가게 하기 위해 주어진 여러 가지 논증들이 기록되고 있다.
1. 바울은 그리스도의 충실하심을 그 첫째 이유로써 제시한다(2절). 그리스도는 마치 모세가 자기의 지파들에게 충실하였던 것처럼 자신을 보낸 하나님에게 신실하셨다.
(1) 그리스도는 임명받은 중보자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 과업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또 인준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중보는 아버지에게 용납될 수 있는 것이다.
(2) 그리스도는 명령받은 직책에 충실하셨다. 그는 중보자로서의 행해야 하는 모든 규례와 임무를 이행하였고 또 아버지와 성도들에 의하여 자신에게 지워진 그 진리를 완벽하게 수행하셨다.
(3)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충실하였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임명하신 하나님에게 충실하셨다. 구약에서 보면, 모세는 유대 교회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직책에 대한 책임을 충실히 했다. 마찬가지로 신약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모세와 같이 자기 직책을 충실히 행하셨다. 이러한 바울의 논증은 모세의 충실함과 대해 높은 신임을 가지고 있었던 유대인들에게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논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모세의 충성은 어디까지나 그리스도의 충실함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2. 바울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 둘째 이유로써 그리스도의 영광과 뛰어남이 모세의 영광과 뛰어남 보다 훨씬 상위에 있다는 사실을 제시한다(3-6절).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1) 모세는 하나님의 집의 일원일 뿐이었으나 그리스도는 그 집을 지으신 분이었다. 이 집이란 하나님의 교회를 말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을 지은 자이시며 그들의 대장 되시는 그리스도 아래 모여서, 또한 그의 법을 따라 임명된 신하들로서 그리고 그의 베푼 제도를 준수하는 신하들로서의 그들이 모여서 이룩한 하나님의 교회로 이해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모든 세대에 있어서 이 집 즉 하나님의 교회의 설립자이시다. 모세는 그 집의 일군이었다. 모세는 그리스도 아래서 그 집을 다스리고 그 집에 속한 백성들을 교화하는 도구 역할을 하였지만 그리스도는 이 모든 집을 지으신 분이시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또한 하나님이시며 또 하나님 보다 못한 위치에 있는 자는 어는 누구도 교회를 지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를 만드는 것 못지 않게 교회를 짓는 데도 큰 힘을 필요로 한다. 세상은 무로부터 창조되었으므로 아무나 세상을 만들 수는 없었다. 반면 하나님의 교회는 그 성원이될 자격이 없는 온갖 것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고 오직 하나님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교회의 평면도를 그렸고, 재료를 준비하시고, 전능하신 힘으로 그 재료들을 모두어 교회의 형태를 이루어 놓으셨다. 그리스도는 이 집을 단장하고 통합하셨으며, 그 집의 질서를 세우시고 순수 자신이 함께 하시므로 그 안에 있는 모든 사람으로 영광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심은 바로 하나님의 집의 진정한 영광이다.
(2) 그리스도의 설립자인 동시에 이집의 주인이셨다(5,6절). 이 집은 하나님의 아들의 집으로써 설계된 것이었다. 모세는 장차 계시될 모든 사실들을 증거하기 위한 충실한 하인일 뿐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교회의 소유권을 지니신 분이며 절대적 통치자이시다. 모세는 그리스도의 영에 의하여 복음으로 보다 분명하고 완벽하며 아름답게 계시될 교회에 대하여 증거하기 위한 타나날 것의 그림자로서의 통치자였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 받으셔야 되며 더욱 존경하는 마음으로 기억되어져야 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 논증을 다음의 말로써 결론지었다.
[1] 바울 자신과 모든 진실로 믿는 사람들이 이 집에 속한 다른 사실을 확신어린 어조로 말함으로 위의 논증을 맺었다. 그러므로 그는 "우리가 그의 집이라"고 하였다(6절). 개별적으로 볼 때 우리는 우리가 성령의 성전이다. 또한 우리가 신앙을 지닐 때 그리스도는 우리 안에 거하신다. 이러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그의 교회를 이루게 된다. 즉 규례와 복음에 의거한 훈련과 예배라는 끈에 의해 하나가 되는 것이다.
[2] 이 집을 구성하는 사람들의 특성을 묘사함으로 바울은 위의 논증을 결론 짓는다. 그러므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즉 우리가 복음의 진리를 담대하게 공개적으로 고백한다면 그 기초 위에 은혜와 영광에 대한 우리의 희망이 세워질 것이고 우리는 그것을 소망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소망의 기쁨을 간직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를 섬김에 있어서 부딪치는 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굳게 붙잡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출발도 잘 해야 할 뿐 아니라 끝까지 그 길에 굳건히 서야 하며 인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또한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의 집의 존귀와 특권에 참여하려는 자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지시를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것이다. 첫째, 그들은 마음과 생각 가운데 복음의 진리를 간직해야만 한다. 둘째, 그들은 진리 위에 근거하여 축복에 대한 소망을 세워야 한다. 셋째, 그들은 그들이 가진 진리를 자랑스럽게 고백해야 한다. 넷째, 그들은 믿음의 증거를 분명히 보존하고 있는 동시에 또한 그 증거에 입각하여 살아야 한다. 그들이 바라는 바 소망을 얻으려면 끝까지 모든 일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믿는 자들은 그들의 주가 오실 때에 그가 그들을 인정하고 또 칭찬하실 수 있도록 복음을 믿고 또 그대로 사는데 있어서 꾸준하고도 용기 있어야 한다.
●배교에 대한 경고(히브리서 3:7-19)
위의 구절에서 바울은 히브리인들에게 시종일관 신중한 조언과 충고를 계속한다. 그리고 바울은 이를 위해 시편 95편 7절을 인용하고 있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Ⅰ. 바울이 히브리인들에게 충고한 내용. 바울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대하여 신속하게 또 즉시 귀를 기울일 것을 충고한다.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듣거든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너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라. 또한 그 말씀을 사모하고 실천하도록 노력하라. 또한 그 일을 오늘 당장 착수하라. 내일이면 너무 늦기 때문이다."
Ⅱ. 바울이 히브리인들에게 준 경고. 그들의 마음을 강퍅하게 하거나 그리스도의 부르심과 경륜에 대하여 귀머거리가 되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하였다. "그리스도께서 죄의 악함과 거룩함의 우월성을 말씀하실 때, 그리고 주를 신앙으로 너희들의 구세주로서 받아들여야 하는 필요성을 말씀하실 때, 이 같은 말씀에 너희 귀를 막거나 마음을 완고히 가지지 말라." 마음을 완고하게 가지는 것이 온갖 죄의 근원이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Ⅲ. 바울이 히브리인들을 경고하기 위하여 제시한 실례. 바울은 광야에서의 그들의 조상인 이스라엘 족속이 저지른 완고함 때문에 본문에서 그는 "광야에서 유혹을 받고 반역하던 때처럼"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가 여기서 말한 사건은 맛사라 또는 므리바에서 있었던 유명한 사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출 17:2-7).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1. 유혹 앞에서는 넘어가지 않는 자가 거의 드물다는 사실이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우리가 전적으로 그를 의지하므로 살아갈 수 있음을 보여 주시고자 하실 때 하나님에 대해 반역하는 것은 변명할 여지가 없는 죄라는 사실이다.
3. 다른 사람들의 죄 특히 우리 친족들의 죄는 우리들에게 경고가 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조상들이 저지른 죄와 심판을 기억하여야 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기억함으로 조상들의 악함의 선례를 따르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유대인의 조상들이 저지른 죄가 본문에 다음과 같이 회고되고 있다.
(1) 유대의 조상들이 죄를 지었을 때 그들이 처했던 상황. 그들은 애굽을 떠나서 아직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애굽에 대한 기억이 생생하였을 것이므로 죄를 짓지 말아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 유대의 조상들이 저지른 죄. 그들은 유혹을 받았고 또 하나님을 노하게 했다. 또 그들은 하나님을 불신하고, 모세에 대하여 불평을 하였으며,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
(3) 그들의 죄를 더욱 용서받을 수 없게 만든 요인.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야 했던 광야에서 죄를 지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위해 애쓰시고 있는데 죄를 지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므로 그들을 구원하시고, 또 매일 광야에서 기적을 통해 그들을 도와주시고 있는데도 죄를 지었다. 그들은 이같이 하나님께 죄를 짓기를 40년 동안이나 계속하였다. 이런 하나님의 은총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죄를 지었다는 사실이 그들의 죄를 더욱 용서받을 수 없게 하였다.
(4) 이러한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근원과 원인.
[1] 그들의 죄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로 간주될 수밖에 없었던 요인은 그들이 마음으로 죄를 지었기 때문이었다. 마음속의 잘못이 입술과 생활로 여러 가지 죄를 짓게 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2] 그들은 하나님이 그들 앞에서 인도하시는 대로 불구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알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도, 즉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을 통하여 행하고자 하시는 섭리의 법도도 몰랐고, 그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수행해야 할 의무의 법도도 알지 못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나 또는 하나님의 정의의 질서를 바르게 깨닫지 못하였다.
(5) 유대의 조상들이 저지른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의 대진노. 사실 하나님은 오랫동안 그들에 대하여 인내를 베푸시었었다.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인하여 슬퍼하여"(10절)라고 본문에 말씀되고 있다(역주: 한글 개역과 다소 틀림).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모든 죄 특히 하나님께서 특권을 주신 사람들이 저지른 죄는 하나님을 노하게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슬프게 한다는 사실이다.
[2]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들을 멸망시켜 시기를 싫어하신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사 오랫동안 참으신다.
[3]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기를 향하여 죄를 지은 때와 또 죄를 지으므로 그들이 하나님을 슬프시게 해드린 시기를 정확히 기억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지음으로써 하나님의 성령의 계속 슬프시게 한다면, 결국은 그들의 죄로 인하여 그들 자신의 영혼이 괴로움을 받게 되든지 또는 긍휼을 입게 되더라도 그들은 그들의 이전의 무거운 죄로 인하여 깊이 슬퍼하게 될 것이다.
(6) 죄의 대가로 마침내 유대의 조상들에게 내려진 파기할 수 없는 형벌. 하나님은 진노하시어 그들을 그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맹세하시었다. 여기서 말씀된 안식이란 지상의 가나안에서 그들이 되도록 예정된 안식이거나 또는 하늘 나라에서의 안식을 말하든지일 것이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죄가 오랫동안 지속될 때 그 죄는 하나님의 진노를 마침내 격발케 하여 죄인들을 향해 쏟아지게 한다.
[2]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회개하지 않은 사람을 멸망시킴은 정당한 일이다. 하나님은 성급하게 노를 발하지 않으시고 공의에 입각하여 노를 발하신다. 또한 그가 일단 노를 발하시면 그의 노를 입은 사람은 구제될 수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되고 만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도 평안을 누릴 수는 결코 없다.
Ⅳ. 바울이 조상들의 무서운 종말의 예를 든 이유(12,13절). 그것은 히브리인들을 경고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사랑에 넘치는 호칭으로 그들을 부름으로 그의 경고에 대해 그들이 깨우치도록 배려하였다.
1. 바울은 히브리인에게 적절한 경고를 주었다. 본문에 보면 blevpete - 즉 삼가 즉 너희가 조상들의 예를 "돌이켜 보라"고 하였다. 너희 주변을 돌아보라. 안으로나 밖으로나 적이 들어올까 경계하고 주의하도록 하여라. 너희들은 수많은 너희 조상들이 무엇 때문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어 광야에 엎드려지게 되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너희도 주의하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들도 조상들과 꼭 같은 죄와 유혹과 무서운 형벌 속에 떨어질 것이다. 너희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으뜸이 되시고 모세보다 위대한 분인 것을 보았다. 그런데도 너희가 그리스도를 멸시한다면 그것은 조상들이 모세를 멸시한 죄보다 더 큰 죄가 될 것이다. 따라서 "너희들은 너희 조상보다 더욱 무서운 벌을 받게 될 위험에 처해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파멸은 우리에게 그들이 미끄러져 떨어진 바위에 조심하라는 경고가 된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스라엘의 파멸은 그들의 후손들에게 영원한 경고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고전 10:11)"라고 하였다. 또 우리들은 이 이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늘 나라에 안전하게 들어가려는 모든 사람들은 자기들 주변을 돌아보며 조심해야 한다.
2. 바울은 사랑이 넘치는 호칭으로 그들을 부름으로 경고에 대한 그들의 경각심을 촉구하였다. 그는 그들을 "혈육으로나 하나님 안에서나 하나가 된 형제들아 내가 사랑하며 복을 원하는 형제들아!"라고 불렀다. 또 바울은 이 구절에서 경고의 범위를 넓힌다.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않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12절)."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1) 믿지 않는 마음은 악한 마음이다. 불신은 카다란 죄이며 인간의 마음을 해친다.
(2) 악한 불신의 마음은 하나님께서 이탈하는 우리들 죄의 기본이다. 불신은 배교로 이끄는 첫 걸음이다. 만약 우리가 한 번이라도 하나님을 불신하면 우리들은 곧 하나님을 떠나게 되고 만다.
(3) 기독교의 형제들은 배교에 대하여 주의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섰다고 하는 자들은 떨어지지 않도록 삼갈지니"라고 하였다.
3. 바울은 경고와 함께 권면도 하고 있다. 바울은 그들이 불신이라는 악심을 예방하도록 다음과 같은 말로 충고하였다. 즉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피차 권면하라(13절)"고 하였다. 다음 사실을 고찰하자.
(1) 우리들이 함께 있는 동안이란 짧고 불확실한 기간이지만, 그 동안에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여 서로에게 선을 행하여야 할 것이다.
(2) 내일은 우리의 소관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최선의 개선책을 모색해야 한다.
(3) 만약 그리스도인이 피차 매일 권면하지 않는다면, 죄의 유혹을 받아 마음이 완고하게 될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다음 사실을 기억하자.
[1] 죄 안에는 많은 속임수가 있다는 사실이다. 죄는 정당하게 보이나 추잡스럽고, 유쾌한 듯 보이나 유해한 것이다. 죄는 많은 것을 약속하지만 아무것도 이행하지는 않는다.
[2] 죄의 속임수는 영혼을 완고하게 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 가지 죄를 지으면 또 다른 죄를 짓게 된다. 또한 잦은 범죄는 습관으로 되고 만다. 양심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은 양심을 마비시킨다. 그러므로 죄에 대하여 경계심을 품도록 스스로 또 서로 권면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행해야 하는 일이다.
4. 바울은 잘 출발하였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잘 하고 있고 또 끝까지 신앙을 지킬 사람들을 격려하였다. "우리가 시작할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14절)."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성도가 누릴 특권. 성도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된다. 즉 성령과 그리스도의 성품과 은총과 공의와 그리고 그의 생명을 나누어 가지게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것에는 무엇에나 관여하게 된다. 즉 그가 계신 곳에가 그가 이루어 놓으신 모든 일에 그는 동참할 수 있게 된다.
(2) 성도가 특권을 누릴 수 있기 위하여 시행해야 하는 조건. 그 조건은 그들의 끝까지 그리스도와 기독교를 대담하고 자랑스럽게 고백하고 실천하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성도들은 믿음을 통하여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구원을 지켜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구원을 향하여 전진하려고 한다면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이 구원을 잘 지키도록 도와주실 것이다. 그럴 때 그리스도는 그들로 경계하는 마음과 부지런한 마음을 주사 배교로부터 그들을 보존하신다.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보자.
[1]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하나님의 법도 안에서 시작할 때 품은 정신을 끝까지 유지하고 증거해야 한다. 신중하게 생동하는 열정을 가지고, 또 거룩한 결의와 겸손한 신뢰심을 가지고 시작한 사람은 같은 정신을 계속 지니도록 해야 한다.
[2] 그러나 믿기 시작할 때는 용기도 있는 것 같고 또 신앙이 꽤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끝까지 그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적다.
[3] 믿음 안에서 참고 견디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신실성을 나타내는 최선의 길이다.
5. 바울은 앞서 시편 95편 7절에서 인용한 것을 다시 요약하고 당시의 사람들에게 적용하고 있다(15,16절).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이라고 되어 있는 말씀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인용한다. "전에 너희에게 성경을 인용하여 전한 말은 이전 시대뿐만 아니라 너희 당대와 또한 후세에 모든 사람들이 들어야 하는 말씀이다. 너희는 조상들과 같은 저주 아래 있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들과 같은 죄를 짓지 않도록 삼가라." 이제 바울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노하게 했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님을 히브리인들에게 말한다. 다음 사실을 고찰해 보자.
(1)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자들의 대부분이 그것을 믿지 않으므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였지만 그 말씀을 진실로 믿는 사람들도 있었다.
(2) 말씀에 귀를 기울이면 구원을 받게 되지만,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에 처하게 될 것이다.
(3) 하나님에게는 자신의 목소리에 복종하는 남은 자들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을 돌보고 영예롭게 하실 것이다.
(4) 만약 복종하는 이들이 운명의 재난에 처하게 될지라도 그들은 영원한 구원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복종자들은 영원히 멸망한다.
6. 바울은 먼저 언급한 사실에 근거하여 그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제기하고 또 그 답변을 제시하였다. "또 하나님이 사십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였느뇨? 범죄한 자가 아니라?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였느뇨……"(17-19절).
(1) 하나님은 다만 그를 향해 죄를 짓고 또 계속하여 죄를 짓는 자들 때문에 슬퍼하신다.
(2) 하나님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죄를 짓기 때문에 괴로워하시며 진노하신다. 죄가 전염될 때 하나님은 가장 노하신다.
(3) 하나님은 널리 성행되는 사악함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슬퍼하시고 또 참으시나 마침내는 그들을 공의로 심판을 하시고 쉬실 것이다.
(4) 불신은(불신의 결과로는 반역이 따른다) 특별히 하나님의 뜻에 대한 계시를 받은 자들의 불신은 가장 저주받을 죄이다. 이 죄는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차단하고, 하늘의 문을 닫아버린다. 불신은 그들을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처하게 하며 그곳에 머무르게 만든다. 스스로 진리로 우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는 죄인들을 영원히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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