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 장 모세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
(3:1-19)
a. 그리스도와 모세 1-6
b. 모세 아래서의 실패 7-19
a. 그리스도와 모세 1-6
본문
1.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2.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3.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4.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5.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6.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모세는 율법의 전달자였으며, 하나님과 대면한 유일한 사람이었고, 민족을 구원한 최고의 지도자였다. 그런데 이 모세보다 우월하신 분이 바로 그리스도임을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신분에 있어서 모세는 피조된 사환에 불가하지만, 그리스도는 창조주이시며, 아들이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본문에 수 차례 나오는 ‘집’은 건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모세가 맡은 집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고, 예수가 맡은 집은 성도를 각각 의미한다.
v.1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klhvsew" ejpouranivou 클레세오스 에푸라니우, of heavenly calling"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된 것을 의미하는 말로서 그들이 성도가 될 수 있었던 원인이 하나님께 있음을 시사하는 표현이다. 유대인들이 구원의 조건으로 자랑했던 육적인 아브라함의 자손과 대조되는 영적인 부르심(엡 4:1)을 의미한다. 특히 본서의 저자는 하나님이란 명칭 대신에 '하늘'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여(6:4;8:5; 9:23; 11:16; 12:22)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였다.
한편 “거룩한 형제들아 ajdelfoi; a{gioi 아델포이 하기오이, holy brethren”는 신약성경에서 본절에서만 나타나는 유대적인 표현이다(출 19:6; 벧전 2:9).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는 예수의 대제사장적 역할로 인하여 거룩한 자들이 되었다.
우리의 믿는 도리의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
저자는 본절에서 예수를 두 가지 칭호를 통해 소개하면서 그 예수를 깊이 상고하라고 권면한다.
“믿는 도리 oJmologiva" 호몰로기아스, profession”는 '고백'(confession)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행위에 대한 믿음의 응답으로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것을 뜻한다(4:14). 이 '호몰로기아스'는 '사도'와 '대제사장' 모두를 수식하는 것으로 본절은'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의 사도와 대제사장'(the Apostle and High Priest of the religion we profess, NEB)을 의미한다.
사도 - 복음서에서는 예수를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로 자주 표현하고 있으나(마 10:40; 눅 10:16; 요 4:34; 5:23,24), '사도 ajpovstolo", Apostle'로 표현된 신약성경에서 본절 뿐이다. 예수를 '사도'로 호칭한 이유에 대하여 다음 두 가지의 견해가 있다.
(1)유대 문헌에 의하면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전권대사'로 간주되었다(b.Qidd.23b; Ned.35b; Yoma19a-b). 이 하나님의 전권대사를 뜻하는 용어 '쉴리'가 헬라어 '아포스톨로스'로 번역되었다. 그래서 혹자는 본절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은 유대인들의 전통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2)'사도'라는 호칭은 예수를 구약의 모세와 비교해 언급한 것이다. 모세는 비록 구약에서 직접 '사도'로 불리지는 않았으나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라는 표현으로 보아(출 3:10, LXX) 모세가 사도적인 역할을 수행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절에서 제자가 예수를 '사도'로 표현한 것은 모세와의 역할을 비교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대사로서의 예수의 역할을 시사한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문맥의 흐름으로 보아 더욱 타당하다.
대제사장 - 신약성경에서 본서만이 예수를 대제사장으로 부르고 있다. '대제사장'이란 예수의 칭호는 예수의 사명 가운데 제의적(祭儀的)인 요소가 있음을 시사한다.
v.2 저가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하시기를 모세가...한 것과 같으니 -
저자는 본절에서 하나님에 대한 예수의 충성과 모세의 충성을 비교하고 있다.
민 2:7에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그의 온 집을 맡은 충성된 청지기로서 인정받은 것을 나타낸다. 모세는 예수님과 같이 완전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조상 중의 하나인 모세를 충성된 자로 인정하면서 3절 이하에서는 예수를 보다 우월하신 분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혹자의 기적대로 저자가 2:9에서 '영광과 존귀로 관 쓰는 예수를 보니'라고 기록한 것은 하나님이 예수의 충성을 인정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온 집에서 -
"집 oi[kw/ 오이코, house"은 '가족', '가문' 혹은 '재산'을 의미하는 것으로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으며(느1:6),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거룩한 무리인 성도들의 모임으로서의 교회를 가리킨다(엡 2:21,22; 딤전 3:15; 딤후 2:20; 벧전 4:17).
따라서 '하나님의 온 집'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는 하나님의 권속을 뜻한다.
한편 “온 o{lw/? 홀로, all”은 모세의 충성과 예수의 충성 사이의 차이점을 암시한다.
모세와 같은 구약 시대 하나님의 종들은 제한된 범위 내에서 하나님에게 충성하였으나 예수는 하나님의 통치가 시행되는 전 영역에서 온전하게 충성하였음을 시사한다.
v.3 저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
저자는 2절에서 예수와 모세가 서로 '충성되다'는 점에서 그 유사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본절에서는 예수와 모세의 차이점, 즉 모세에 비해 예수께서 더 우월하심을 강조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집을 섬기는 사환으로서(5절) 자신을 세우신 이에게 충성을 다했기 때문에 영광을 받을 만하다. 더욱이 그는 출애굽 직후 40일 동안 시내 산상에서 하나님과 만남으로 인해서 그의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의 흔적을 얼마간 간직했었다(출 34:29-35; 고후 3:7). 그러나 그의 영광은 결국 사라져 없어질 것에 불과했다(고후 3:7,13).
그러나 예수께서는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2:9) 하나님의 본체시며(빌 2:6), 영광과 빛의 근원이시므로(요 1:4,5,9) 모세가 받은 영광은 예수의 영광과 비교될 수 없으며, 비교될 만한 영광스러운 존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
본 비유는 예수께서 모세보다 더욱 영광 받아야 하는 이유를 묘사한다.
본절의 ‘집’은 2절의 '온 집'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 혹은 '구원받은 무리'를 의미한다. 모세는 그가 아무리 탁월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다 하더라도 그 집의 한 부분에 불과하였으나 예수는 그 집을 자신의 피로 세우신 분으로(행 20:28) 그 집에 속해 있는 모세보다 훨씬 존귀한 존재이시다. 즉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가 이루어지는 것이다(벧전 2:9). 따라서 예수께서 모세보다 더 큰 영광과 존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
v.4 개역 성경에는 '가르 ga;r For'(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가르'는 본절이 앞서 언급한 '집 지은 자'와 연결된 변론임을 시사한다.
집마다 지은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
본절의 상반절에 있는 '집'은 하반절에서 '만물'로 대치되어 있으며 하나님은 그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로 묘사된다(사 40:28; 45:7, LXX). '집'이 존재하는 것은 '집 지은이'가 존재함을 시사하며, '만물'이 존재하는 것은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이 존재함을 암시한다.
v.5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 모세의 역할은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그리스도를 통해 완성될 복음에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었다. 즉 그는 장차 도래할 예수와 그 복음을 전하는 중개자였다.
한편 저자는 모세를 '사환 servant'으로 표현한다. '사환'은 '종'의 의미를 가지는 말로서 신약성경에서는 이곳에만 나타나며 70인역에서는 자주 모세에 대하여 사용되었다(출 4:10; 14:31; 민 11:11; 12:7; 신 3:24;수1:2; 8:31,33, LXX).
이 용어는 하나님과 친밀하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위엄과 존귀를 지닌 '종'을 가리키나 동시에 여전히 '주인'에 예속된 '종'임을 암시한다(신18:15).
v.6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
모세는 비록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집에서 '종 servant'으로 충성한 반면에 그리스도는 '아들 son'로서 충성하였다.
'종'과 '아들'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저자는 모세와 예수께서 충성하였다는 점에서는 유사할지 모르나 분명한 차이가 있음을 암시한다.
또한 저자는 모세에게는 전치사 '엔 ejn in'(...안에서)을 사용하여 '집에서' 충성하였다고 묘사한 반면에 그리스도에게는 '에피 ejpi; over'(위에)를 사용하여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음을 대비시키고 있다.
결국 이것은 모세에 비해 그리스도께서 질적(質的)으로 우월하심을 시사한다. 즉 모세는 하나님의 충성된 종으로 탁월한 존재이긴 하였으나 본질적으로는 일반 사람들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집을 맡은 자이며 아들로서 질적인 우월성을 갖는다.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
본절에서의 '소망 hope'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예수의 충성스러움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언약은 반드시 이루신다는 확신을 갖고 바라봄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하는 이 소망은 두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다.
(1)담대함 - 이에 해당하는 "parrhsivan 파르레시안, confidence"은 '신뢰'를 뜻한다.
본래 '파르레시안'은 헬라 문화 속에서 헬라 시민들 상호간의 개방적이고도 솔직한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런 헬라 문화의 영향을 받은 유대인들은 이 단어를 하나님 앞에서 개인 신앙의 '확신과 담대함'을 뜻하는 말로 사용하였다.
(2)자랑 - 이로 번역된 'kauvchma 카우케마, rejoicing'는 자랑하는 '행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랑이 되는 '내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것은 하나님의 집에서 성도들이 갖는 하나님의 백성된 신분으로서의 자랑스러움을 뜻한다.
한편 '집'은 구약시대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신약시대에서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 즉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의 집'이다(2절). 저자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서 복음 안에서 약속하신 모든 것을 성취하시리라는 확신과 자랑스러움을 인내 속에서 견고하게 붙잡고 나아가야 함을 상기시키고 있다.<쉐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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