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 모세 아래서의 실패 3:7-19
종교적인 형식주의에 빠져있는 유대인들을 경고하기 위하여 시 95:7-11을 인용하고 있다. 과거 유대인들은 구약의 약속의 말씀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함으로 멸망하고 말았다(7-11). 이 편지를 쓰던 당시뿐만 아니라 현재의 우리 시대에도 복음에 순종치 않는 것은 멸망 받을 가증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메시지이다.
v.7 그러므로 - 'dio 디오 wherefore'는 8절의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에 연결된 것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범한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함을 시사한다.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 저자는 7-11절을 시 95:7-11에서 인용하면서 이것을 성령께서 하신 말씀으로 설명하였다. 이런 사실은 저자가 인용한 시편의 내용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권위가 있음을 시사한다.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 본문은 선지자나 천사나 모세보다 더 높으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든'이란 의미로 수신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복종과 아울러 즉각적인 행동을 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v.8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 본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지도로 출애굽 할 때에 발생했던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반역 행위를 나타낸다. 비록 그들이 직접적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반항하거나 거역한 적은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그들의 지도자 모세에게 대적함으로써 하나님에게 반역하였다(출 14:10-14; 15:24; 16:2-9; 17:1,2). 이스라엘 백성의 수많은 반역 중에서 본절의 내용이 말하는 반역은 출 17:1-7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할 때 물이 부족하자 모세와 더불어 다투었던 사건이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물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호렙산의 반석을 쳐서 물을 내었는데 그 곳의 이름을 '맛사' 혹은 '므리바'라고 칭하였다(출 17:7). 그러나 70인역에서는 '맛사'와 '므리바'라는 지명(地名) 대신에 “격동 oJ parapikrasmov" 호 파라피크라스모스, the provocation”과 “시험 oJ peirasmov"" 호 페이라스모스, temptation)으로 번역하였다. 이러한 번역은 번역자가 시편 95:7-11을 번역할 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분노를 초래하여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 사실에 비추어 해석한 듯하다.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 본 구절의 '마음 your heart'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의 중심적인 요소인 '속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벧전3:4) 인간의 '지성'(욥 9:4; 38:36; 잠 10:8;11:29), '감정'(신 28:47; 삼상 25:31; 시 34:18; 사 21:4; 겔 27:31)과 '의지'(4:12; 시 64:6; 잠 6:18; 전 10:2; 눅 24:25; 롬 10:10; 고전 2:9; 엡 6:6)의 좌소(坐所)이다. 한편 "강퍅케 하지 말라 mh; sklhruvnhte 메 스클레뤼네테, Do not harden your hearts"에서 '메'는 부정어이며 '스클레뤼네테'는 '말라서 굳은', '딱딱한'의 뜻을 갖는 '스클레로서'에서 파생한 동사이다. 이 '강퍅함'은 애굽 왕 바로가 하나님의 이적을 보면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대적했던 것처럼(출 9:35)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해서 일절 거부하는 성향으로 굳어져 버린 인간의 심성을 가리킨다.
v.9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 "거기서 ou| When"는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40년간 방황했던 '광야'를 말한다.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ejpeivrasan ejn dokimasiva/ 에페이라산 엔 도키마시아, tested Me, proved Me"에서 '에페이라신'은 '시험하였다'(tested, NIV)의 뜻이며, '도키마시아'는 '입증하는'(proving)의 뜻으로 본 구절의 뜻은 '입증하기 위하여 시험하였다'(tested in proving)라는 뜻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을 그대로 믿기보다는 객관적인 증거로 하나님의 "행사 e[rga 에르가, works"를 보고자 하였다.
사십년 동안에 - 맛소라 사본과 70인역에서는 이 40년을 하나님의 진노의 40년으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에 저자는 본절에서 70인역을 인용하면서도 이 40년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연결시켜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저자가 진노의 40년 생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시고 보호하셨음에 초첨을 맞추고 있음을 시사한다. 저자는 본절을 구약성경에서 인용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하나님을 거역한 것과 예수께서 죽임을 배척하는 태도에 양자의 유사성을 염두에 둔 듯하다.
v.10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를 노하여 - "그러므로 디오"(WWW)는 70인역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저자는 '디오'를 본 인용문에 삽입함으로 시편을 인용한 본절의 내용을 보다 명백히 하고 있다. 한편 '이 세대'가 가리키는 '세대'는 문맥상 광야 40년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체험했던 이스라엘 열조들을 가리킨다(16절). 그래서 대부분의 영역본(KJV, RSV, NIV)과 공동번역은 '그 세대'(that generation)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하여 광야 생활을 하던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강퍅한 마음에 대해 격노하셨다. "노하여 proswvcqisa 프로소크디사, I was grieved"는 '증오' 혹은 '극도의 혐오'를 느끼는 감정을 의미하는 헬라적 용어로 하나님께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뢰하지 않음과 강퍅한 마음에 대해 얼마나 강하게 분노하셨는가를 암시한다. 그러므로 ‘이 세대’는 출애굽 이후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동안의 세대와 히브리서 기록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과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계시를 거절하는 모든 시대의 사람들을 의미한다(막9:19).
저희가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 "미혹되어 planw'ntai 플라논타이, They do alway err"는 ‘길을 잃다 go astray’, '방황하다', '속다', '잘못하다'라는 의미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항상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여 잘못된 길을 걷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알지 못하였다. 이것은 단순한 무지(無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가르쳐주어 '하나님의 길'을 알게 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스스로가 거부해 버렸음을 암시한다.
v.11 내가 노하여 - "노하여 ojrgh'/ 오르게, wrath"는 10절의 “노하여'(프로스크디사)와는 다른 말이다. 이것은 인간의 모든 죄를 싫어하시는 하나님의 본성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진노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길을 계시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거부함으로 범죄하였고 하나님은 그에 상응하는 진노와 심판을 행하셨다.
맹세한 바와 같이 저희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다 하였으니 - 이 인용구는 민 14:21-23, 28-30절의 말씀과 유사한 것으로 특히 민 14:30의 '내가 맹세하여 너희로 거하게 하리라 한 땅에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와 일치를 보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실 것을 맹세하셨다. 이러한 맹세와 심판은 그들의 죄악에 대하여 정당하고도 적절한 보응이다. 한편 심판의 내용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다. "안식 katavpausivn 카타파우신 rest"이란 창 2:2에서 처음 언급되었으며 그 후 십계명 가운데 '안식일'의 규례가 제정되었다(출20:8).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안식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었다(신 12:9). 그러나 신약시대에 이 안식은 영적인 의미의 안식으로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인해 성취될 완성된 하나님의 나라를 가리키는데 그곳은 악의 세력이 전혀 미치지 못하는 의와 공평이 실현된 곳이다(행 7:49; 계 14:13).
v.12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 "삼가 Blevpete 블레페테, take heed"는 '조심하라'는 의미로 '명령'임을 뜻한다.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 '너희 중에 누가 in any of you'라는 표현으로 보아 저자는 성도들 중에 더러는 기독교 신앙을 저버리고 유대교로 들어갈 위험성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음을 암시한다. 그들은 유대교에서도 기독교에서 섬기는 같은 하나님을 섬기므로 유대교로 돌아가는 것이 배교(背敎)에 해당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저자는 그러한 자들에 대해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었다고 설명한다. "믿지 아니하는 ajpistiva" 아피스티아스, of unbelief"이라는 말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 말로서 새로운 문단의 시작인 본절과 새 문단의 마지막 결론이 되는 19절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 불신앙은 이스라엘 민족의 불신앙을 가리키는 것으로 민 14:11과 연관된다(신 1:32; 9:32; 시 106:24). 또한 '악심 an evil heart' 역시 민 14장의 영향을 반영한 것으로 '이 악한 회중'이란 표현으로 두 번 나타난다(민 14:27,35). 이와 같은 민 14장에 대한 저자의 암시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민 14장에 기록된 이스라엘의 불신앙은 믿음이나 신뢰의 '부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대한 '거부'를 뜻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의 '믿지 아니함'도 믿음에 대한 부족이 아니라 믿음에 대한 거부를 의미하며 그것은 참으로 '악한' 것임을 시사한다.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 저자는 본서에서 하나님에 대해 '살아계신 living'이란 수식어를 첨가하여 자주 사용하였다(9:14; 10:31; 12:22). 이 수식어는 죽어 있어서 인간의 부르짖음에 응답할 수 없는 이방신들과 대조를 보이기 위하여 흔히 사용된 문구였다(시115:4-8; 사44:9-20; 렘10:1-16; 합2:19). 한편 "떨어지다 ajposth'nai 아포스테나이, departing"는 '분리되다', '떠나다', '배신하다'라는 의미로 불신앙의 결과를 나타낸다. '믿는 형제들' 가운데 소수가 기독교를 버리고 유대교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은 하나님의 최종 계시인 그리스도를 거역하는 것으로 옛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것과 비교될 수 있으며 그것은 하나님과의 완전한 분리를 초래하는 행위이다.
v.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 "오늘 Shvmeron 세메론, Today"이란 표현은 시95:7의 인용이다. 이것은 저자가 성경을 근거로 수신자들을 권면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본절의 '오늘'은 과거의 '오늘' 즉 시편이 쓰여질 그 당시 상황에서의 '오늘'이라기 보다는 성경과 사도들의 복음 전승을 통하여 날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현재로서의 오늘'을 의미하는 것으로 시간의 긴박성을 암시한다. 저자는 배교의 위험성이 있었던 당시 유대인 공동체에게 한 순간이라도 놓치지 않는 긴박감을 가지고 서로를 권면하여 경건한 삶을 이루어 가도록 권면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교제를 통하여 믿음의 공동체를 이루게 되고 그로 인해 죄와 이단에 대해 방어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된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 "강퍅케 됨 sklhrunqh'/ 스클레륀데, be hardened"은 8절에 나오는 '스클레뤼노'의 제1부정과거 수동태로서 저자는 사람들을 절망적인 상태에 이르게 하는 주체가 '죄'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 '죄'는 하나님께 순종하여 그의 약속을 좇아 행동하기를 거부하는 죄를 말한다(민 14:19,34, LXX).
v.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 이것은 본절 하반절의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 become partakers of Christ'가 되기 위한 조건이다. 여기서 '시작할 때 the beginning'란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믿을 때를 의미한다. "확실한 것 uJpostavsew" 휘포스타세오스 of our confidence"는 '본질' 혹은 '정수'를 뜻하는 것으로 본절에서는 '확신'을 뜻한다(confidence, KJV, RSV, NIV, JB). 이것은 원어상 1:3의 '본체'와 같은 단어이다. 처음의 확신을 끝까지 지켜나가면 믿음의 근본이신 하나님이 구원의 확실함을 보장하신다는 말이다. 저자는 수신자들에게 앞절과 마찬가지로 구약성경 민수기의 내용 즉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란 광야 가데스에 이르렀을 때에 새로운 지도자를 뽑아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나가려고 했던 사건을 상기시킴으로(민 14:3,4), 수신자들로 하여금 조상들의 그러한 전철(前轍)을 밟지 말고 그들이 처음 가졌던 믿음의 확신을 굳게 지키라고 권면한다.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 mevtocoi tou' Cristou' 메토코이 투 크리스투, partakers of Christ"에서 '메토코이'에 대해 세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종말론적인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 시 45:7의 인용이며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동료'(companion)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2)혹자는 '메토코이'가 파피리 문서(the papyri)에서 일반적으로 쓰여진 '동반자'(partner)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3)혹자는 '메토코이'가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나눈다'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to share in, NIV, RSV).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란 그리스도를 믿어 낙심치 아니하며 그와 함께 하늘나라를 상속할 자를 의미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일을 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인이 됨으로써 얻게 되는 특권을 강조하는 것이다.
v.15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하지 말라 - 본절은 시 95:7,8의 인용이다. 본절과 전후절의 관련성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혹자는 본절이 지금까지 진술해 온 것에 대한 요약으로 앞절인 14절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NIV). (2)혹자는 본절이 새로운 문단의 시작으로서 다음절과 연결된다고 주장한다. (2)의 견해로 본다면 16절 첫머리에 있는 접속사 '가르'(왜냐하면)에 대한 해석이 애매하게 된다. 따라서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하다. 저자는 본절의 인용문을 통해 가데스의 옛이스라엘백성들의 태도가 수신자들의 신앙생활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7,8절).
v.16 듣고 격노케 하던 자가 누구뇨 - "격노케 하던 parepivkranan 파레피크라난, did provoke"은 '화나게 하다', 혹은 '반역하다'라는 의미로 15절에서는 "노하심 parapikrasmmov" 파라피크라스모스 provocation"으로 사용되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향하여 광야를 지나는 도중에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불평하여 하나님을 여러 번 진노케 한 사실을 나타낸다.
모세를 좇아 애굽에서 나온 모든 이가 아니냐 - 본문의 강조점은 모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출애굽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에게 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음성을 '모두' 듣고 그의 구원하시는 능력을 친히 목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하나님께 불평하고 애굽을 그리워함으로 '모두'가 하나님을 격노케 하였다. 한편 "좇아 dia 디아(..통하여)"는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이끌어내었다(lead out of Egypt, NIV)는 의미라기보다는 "모세를 통하여 dia; Mwsevw" 디아 모위세오스, by Moses" 나왔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원해서 애굽을 탈출하였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그들은 얼마 못가서 다시 애굽을 탈출한 것을 후회하였고 하나님을 원망하였다.
v.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에 누구에게 노하셨느뇨 - 본절에서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 40년 생활을 하나님의 진노로 설명한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앙에서 연유된 하나님의 진노이다. 그로 인해 그들은 40년의 광야 방랑 생활 속에서 가나안땅에 들어가지 못하였고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광야 40년의 진노하에서도 끊임없이 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범죄하여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에게가 아니냐 - "그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자 whose corpses fell in the wilderness"란 출애굽 당시 애굽에서 모세의 인도로 나온 자들로서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킨다(민 14:29,30,32). 이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그를 대적하던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로서 하나님의 현존과 약속을 불신앙하고 거부한 결과이다. 저자는 이런 질문과 답변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을 통해 구원의 은총을 체험한 것과 같이 수신자인 유대인 공동체도 동일한 구원의 은총을 체험하였음을 상기시키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죄의 전철(前轍)을 밟지 말 것을 암시적으로 권면하고 있다.
v.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뇨 - 본절은민 14:43의 반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던 이유가 그들의 불순종임을 나타낸다.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지도 않았고 계속적으로 하나님을 시험함으로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수 없게 되었다(출 5:21; 14:11; 15:24; 16:2; 17:2,3; 32:1; 민 1:1,4; 12:1; 14:2,22,23).
곧 순종치 아니하던 자에게가 아니냐 - '순종하지 않았다 to those who did not obey'는 것은 성경에서 자주 '믿지 않았다'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다(5:9; 11:31; 신 30:20; 롬 1:5; 6:17; 10:16; 16:26; 갈 5:7). 이러한 불순종은 불신앙의 정점이며 하나님에 대한 노골적인 멸시(민 14:23)이며 반항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는 결정적인 장애가 되었다.
v.19 이로 보건대 - 여기에 해당하는 "kai; blevpomen 카이 블레포멘, So we see"은 저자가 지금까지 시편 95편에 대한 것을 해석한 결론임을 시사한다.
저희가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 저자는 본절에서 이제까지 인용하여 수신자들에게 제시한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생활에 대한 결론을 맺고 있다. 이스라엘이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불신앙'이다. "믿지 아니하므로 ajpistivan 아피스티안, unbelief"는 비록 시편 95:7-11에는 직접 언급되고 있지는 않으나 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 민 14:11에 언급되어 있다. 이것은 가데스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대항함으로 맞이하게 된 비참한 결과를 암시한다. 이와 같은 역사적 사실에 대한 상기는 본서의 수신자들이었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깊은 인상을 남겼을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불신(不信)으로 말미암아 가데스에서의 조상들처럼 그들도 같은 파멸에 이를 수 있다는 경고가 되었을 것이다. <쉐키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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