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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자 사상
‘남은 자들’의 신학
[1] 남은 자(the ramnants)는 구약의 핵심 사상의 하나이다.
그리고 신약에서 사도바울에 의해 사용됨으로써 중요한 구원론적인 신학적 의미를 부여받게 되었다. “남은 자”란 간단히 말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전개되어 나갈 때 인간의 불순종과 범죄로 인해 구원이 단절될 위기의 때에 하나님은 그 시대마다 모든 심판으로부터 보호하여 남겨두신 소수의 의인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가 말한 그루터기 또는 거룩한 씨(사 6:13)가 바로 이들을 가리키는데, 이 소수의 의인들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역사를 계속 진행시키시며, 마침내 완성하신다. 그러므로 남은 자 사상은 기독교사관 및 종말론과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다.
[2] 구약의 남은 자들
“밤나무,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13)
“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다시 자기를 친 자를 의뢰치 아니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 여호와를 진실히 의뢰하리니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사 10:20-22)
구약에는 이같은 개념이 540회나 사용되었다.
창 6-9장의 홍수 기사는 온 인류의 멸망 때 오직 노아의 가족 8인만이 살아서 후대에 인종을 보전했음을 보여준다.
열왕기에도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당신 백성 7천 명을 남겨두었다고 하셨다(왕상 19:18). 선지서에는 당시 이스라엘-유다의 멸망의 정황과 연관되어 남은 자 사상이 예언으로 선포되었지만, 이는 포로들의 귀환 예언에만 머무르지 않고, 마지막 종말의 때에 메시야의 나라가 지상에 임할 때 흩어진 “남은 자”들이 다시 모여 메시야의 나라를 이룬다는 종말론적 예언으로 변화, 발전하고 있다. 이들 남은 자들은 여호와를 참으로 경외하는 자들이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 역사를 완성시키신다는 것이다.
[3] 신약의 남은 자들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롬 9:27)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롬 11:4-5)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 12:17)
이같은 남은 자들은 신약에서도 구원론의 핵심 개념으로 사용된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은혜로 택정된 남은 자들에 관해 말하는데, 동족 이스라엘 인들이 예수와 복음을 거부하고 교회를 핍박하는데 대해, 그럼에도 하나님은 당신의 은혜로 선택받아 구원의 자리로 이끌려나온 소수의 무리를 준비해두셨음을 말하고 있다. 즉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에 이르는 게 아니라 택함받은 소수만이 구원에 이른다. 예수님도 이에 관해 “청함을 받은 자는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마 22:14)고 말씀하셨다. 이같은 사상은 요한계시록의 14만4천 명 사상으로 연결된다. 마지막 때에 온 세상은 적그리스도에 의해 지배당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남은 자”들이 있어 지상에서 교회의 명맥을 이어가며, 마침내 그들을 통해 사단이 쫓겨나고 지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승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들 소수의 남은 자들을 통해 구원역사가 완성된다. 이들 남은 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되어 구원받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그들은 거룩한 씨인 예수 그리스도에 접붙임 받아 참 이스라엘이 되어 아브라함의 자손이 누리는 복락에 참여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오늘날 구원받은 성도들”을 지칭하는 것이다. 이로써 하나님은 “네 백성이 바다 모래보다 많게 되리라”(창 22:17)는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신다.
결론적으로 남은 자 사상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불가항력적 은혜에 의한 구원의 확실성, 승리의 확실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과 남은 자(롬 9:27-29)
"유대인이 그리스도를 거부함으로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은 취소되었을까요?" 바울은 이에 대해서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육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지만,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이 그 약속을 성취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처음부터 약속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선택과 유기는 정당한 것입니까?" 바울은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이는 죄인 중에 일부에게 은혜를 베푸신 일(선택)은 선한 일이며, 나머지 사람들을 자기가 행한 행위를 따라 공정하게 심판하는 것(유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토기장이가 흙으로 귀한 그릇과 천한 그릇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자비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으로 만드실 권한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누구를 "자비의 그릇"(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호세아가 예언한 것처럼)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자기 백성을 선택하셨습니다. 또한 이사야는 "모든 이스라엘 사람"이 다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남은 자'가 구원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백성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공식으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 자비의 그릇으로 선택된 사람 = 유대인 중 소수(남은 자) + 선택받은 이방인
1. 이사야의 예언(1)(27-28)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해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27),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사 필하시고 끝내시리라 하셨느니라(28)."
바울은 모든 이스라엘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남은 자들만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서 두 개의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인용한 첫 번째 이사야의 예언은 (사 10:22-23)의 말씀입니다. (사 10:22-23)에서 이사야는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이미 작정되었은즉 주 여호와께서 온 세계 중에 끝까지 행하시리라."(사 10;22-23)
이사야는 이스라엘 자손의 수가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도, 오직 남은 자만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남은 자'는 말은 원래 "바벨론의 공격에서 살아 남은 자"를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왕하 19:30-31 참조). 그러나 이 단어는 후기 선지자들에 의해서 "이스라엘 중에서 구원받게 될 (선택된)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불평하는 엘리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자 7000명을 남겨 두었다(왕상 19:14)." 여기에서 "남은 자"는 이교도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여호와 신앙을 굽히지 않은 경건한 성도들을 말합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포로가 될 때에도, 소수의 경건한 자들을 남겨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 이사야의 예언(2)(29)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시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29)."
바울이 인용한 두 번째 이사야의 예언은 (사 1:9)입니다. 이 곳에서 이사야는 다음과 같이 예언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와 같았었으리라."(사 1:9) 이사야는 범죄한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철저하게 파멸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셔서 그들을 모두 멸망시키지 않으시고, 그들 중에 일부를 남겨 두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만일 이때에 하나님께서 공의대로 행하여 모든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셨다면, 이스라엘은 지금 소돔과 고모라처럼 영원히 사라지고 없어졌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중에 대부분은 이방인에 동화되고 정체성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소수의 경건한 사람들을 남겨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성취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대다수의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거부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취소되지 않았습니다. 이는 대다수의 유대인이 복음을 거부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소수의 사람들을 남겨 두시고 그들을 통해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호세아와 이사야의 예언을 통해서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폐지되지 않으며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다.
2)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3) 유대인 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도 선택된 백성이 있다.
4) 유대인 중에서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을 것이다.
남은 자(Remnant)란
성경에서의 의미는 패전으로 인해 백성들이 자기 나라에서 추방되거나 끌려간 후 본토에 남아 있는 사람을 말한다. 후에 하나님께서 불러 모으시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백성을 의미하는 단어로 쓰이게 되었다(사 28:5).
① 정치적 또는 군사적 위기에서 생존한사람들(수 12:4, 13:12).
② 이스라엘의 영적인 핵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으로부터 생존하여 하나님의 새 백성의 기원이 되는 자. 이것은 진노 중에서 긍휼을 잊지 않는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준다(애 3:21, 22).
특히 이 남은자 사상은 이사야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 개념이다(사 4:2; 10:20-22, 11:10-16, 28:5, 37:32).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전체가 남은 자는 아니다.
스바냐에 의하면 남은 자란 겸비하여 주를 찾는 자이다(습 2:3, 3:12, 13).
신약에서 이 개념은 바울의 구원론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롬 9:27,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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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10:21]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것이라
[사10:22] 이스라엘이여 네 백성이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돌아오리니 넘치는 공의로 훼멸이 작정되었음이라
[롬9:27] 또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찌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계12: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남은 자(Remnant) 사상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에 새 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창세기 7:23)"
하나님이 노아에게 예고하신지 120년이 지나자 세상은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대홍수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참으로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후 모든 인간은 본질상 죄인이 되었고 그 결과 죄가 세상에 만연해지자 하나님의 심판에 의한 인류의 멸망은 피할 길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홍수를 통해 당시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면서도 약속하신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시기 위한 방편으로 노아의 8가족들을 남겨두십니다. 그들이 바로 남은 자(Remnant)입니다.
여기서 남은 자(Remnant)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 과정에서 인간의 죄악과 타락으로 인한 심판이 주어질 때마다 약속된 구원을 이루시기 위한 방편으로 남겨두신 소수의 의인들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리고 남은 자 사상이란 남은 자들을 통해 구속사가 최종적으로 실현되는 그날까지 추호의 단절도 없이 이어진다는 오묘한 진리를 보여주는 사상입니다. 전 인류의 조상인 아담은“자신의 선악과 범죄로 즉각 심판 당해야 했지만 새로운 언약의 체결로 심판 유예의 은혜를 입고 구속사에 참여한 자”가 되었으므로 남은 자의 효시로 보게 됩니다.(창 3:8-24) 그 뒤를 아벨을 대신해서 태어난 셋(seth)이 이어받게 받게 됩니다.(창 4:25)
그러나 이 남은 자 사상이 결정적으로 드러난 사건은 바로 대홍수 심판에서 노아의 가족 8명을 남기신 일입니다.(창 7:23) 이어 아브라함을 택하셔서 구약 선민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게 하셨고 그들을 구속사의 핵심 통로로 삼으신 사건도 남은 자 사상의 큰 지류로 볼 수 있습니다.(창 11:31) 소돔과 고모라 심판 때에는 롯의 가족을 남기셨고(창 19:1-29), 애굽에서의 유아 살해 사건 때(출 1:22), 그리고 광야에서의 심판으로 출애굽 한 성인 남자가 모두 죽었을 때(민 14:24-30)에도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끄시는 원리가 남은 자 사상에 남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신약 시대가 되면서 구원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구속사의 전개와 남은 자 사상에도 놀라운 발전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세례요한은 메시아의 도래를 선포하면서 회개의 메시지를 통해 과거의 죄악된 생활을 청산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는 사람만이 구원을 얻어 남은 자의 대열에 들 수 있다는 남은 자의 자격을 강조했습니다.(마 3:8)
여기서 신구약 시대를 막론하고 엄밀한 의미에서의 남은 자는 혈통적인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원할 자로 선택하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서 바로 우리가 이 시대의 남은 자가 되어야 한다는 시대적인 소명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즉 우리가 과거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복음을 전해 듣고 구원을 얻었듯이 이제는 복음을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전함은 물론 후대들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어가게 할 책임을 맡은 이 시대 남은 자들인 것입니다.(롬 1:14)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속사를 이어갈 이 시대의 귀중한 하나님의 남은 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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