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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및 신앙 서적

『 어머니 저는 해냈어요 』김규환

by 은총가득 2020. 4. 23.

 

 

                     

                     『 어머니 저는 해냈어요

 

 

                                                                             김규환 지음

 

목숨걸고 노력하면 안 되는 것이 없다!

 

*공장 청소부로 시작하여 초정밀분야 한국 최고의 명장이 된 사람

*초등학교 과정의 학력으로 5개 국어를 구사하며 대학을 졸업

*62개 초정밀 부품의 국산화, 하루3~4, 24천여 건의 아이디어 제안

*200번이 넘게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춘향가>를 완창

*결혼 20년 동안 매일 아침 맞절하는 부부

*기업체와 수많은 교육 기관 초빙 1순위, 최고 강사가 된 사람

 


 

 

1955년 강원도 평창에서 가난한 화전민의 아들로 태어난 김규환은 어머니 약값을 벌기 위해 열 다섯 살에 고향을 떠나 소년 가장이 된다. 어머니의 죽음과 가난으로 자살을 결심하지만 대우 종합기계 사환으로 입사하여 남다른 성실성을 인정받아 정식 기능공으로 일하게 된다. 초등학교 과정의 학력이 전부였던 그는 하루 세 시간 이상 자지 않으며 공부하는 비법을 개발하여 대학 졸업, 국가 기술 자격증 취득, 기술 개발 등 목숨을 건 노력 끝에 마침내 정부로부터 최고의 기능인에게 수여되는 명장칭호를 받는다. 가난과 무지를 딛고 오직 땀과 희망으로 꿈을 이루어온 촌놈 김규환은 현재 기계 기술 발명가이자 명강연자이며, 아이디어 제조기로 국내는 물론 해외를 오가며 강의까지 하는 눈코 뜰 새 없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죽으려는 용기가 있으면 살기 위해 목숨을 걸어라

기술이 없으니 기능사원으로 채용하기는 어렵고,

사환으로 한 번 일해보게.”

내 처지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중요한 건, 어떤 일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어디서 그 일을 하느냐였다. 얼만큼 좋은 곳에서 보수를 얼마큼 받고 편하게 일하느냐는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나의 운명은 바뀌어가고 있었다

 

부지런한 사람은 절대 굶지 않는다

19778, 대우 중공업에 내가 처음 입사했을 때 내가 처음 맡은 일은 회사 마당을 쓸고 풀을 뽑는 일이었다. 그것만 출세할 것 같아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출근을 했다. 다섯시에 출근하면, 야근자들의 여섯 시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사원 식당에 가, 양파도 까고 파도 다듬으며 일을 거들었다. 강원도가 고향이라는 홍씨 아주머니는 그런 나를 특별히 예뻐하셔서 남몰래 밥을 챙겨주곤 했다..

 

여하튼 새벽 일찍 출근하는 내가 기특했는지 회사에서는 사환인 나를 기능사원 보조공으로 진급시켜 주었다. 입사 1년 만에 나는 공장 마당에서 공장 안으로 출근하는 영광을 얻게 된 것이다. 그렇다! 내게는 부지런함이 가장 큰 재산이고 최고의 무기였던 것이다. 부지런한 사람은 누구나 좋아하는데다 다른 사람보다 시간이 많고 할 일도 많고 노력도 많이 하니 잘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부지런한 사람은 절대 굶지 않는다.

 

기계를 목욕시켜라

이노무 자식 살은 부두살인가, 건들기만 했는데 와 터지노. 앞으로 한 번만 더 이따위로 청소하면 죽을 줄 알그라. 오늘부터는 꼭 비누 풀어 기계 목욕시키그라. 알긋제? 문디 자슥.”

 

그날 저녁, 나는 드럼통 세 개를 굴려 놓고 물을 뜨겁게 데워 가루 비누를 풀었다. 비눗물을 기계에 퍼붓고 걸레로 닦아내니 과연 형님들 말대로 기름때가 깨끗이 없어졌다. 나는 메인 스위치를 올렸다. 아니!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기계 구멍이란 구멍에서 시커먼 거품이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기어 박스는 기름과 비누 거품이 엉켜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한참 애를 썼지만 기름을 빼낼 수가 없어 그 큰 기계를 모조리 뜯어내었다. 무작정 뜯었다. 온몸은 땀과 기름으로 범벅이 되었고, 벌써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결단을 내려야 했다. ‘도망가자!’

 

아침 나절에 맞아 터진 눈탱이를 꿰멘 실밥도 아직 안 풀렸는데 이제는 맞아 죽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고장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사정을 해보려고 하는데, 공구함에 책 한 권이 들어있었다. 책을 보니 기어박스의 조립 도면이 아닌가. 가슴을 졸이며 조립을 해나갔다.

어느 덧 출근시간이 되어 형님들이 한꺼번에 들이닥쳤다. 조립은 되었지만 기계가 돌아가지를 않았다. 그런데, 아니? 이게 무슨 조화인가? 형님들이 스위치를 올리자 기계가 곧 돌아갔다.

 

그 날 저녁 형님을 따라 간 곳은 불고기집이었다. 고깃집에서 난생 처음으로 삼겹살이라는 것을 먹어봤다. 노릇노릇 지글지글 맛있게 구워서 참기름에 찍어먹거나 상추에 싸먹는 그 맛이라니! 생천 처음 쌀밥을 먹고 좋아하시던 어머니, 정선 사북 탄광에 깊고 어두운 막장에서 고생하실 아버지가 생각났다. 어머니, 아버지와 함께 먹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목이 메었다...

 

그 시절, 내가 기계를 뜯어놓고 도망쳤더라면 오늘의 내가 있을 수 있었을까. 기필코 해내겠다는 굳은 의지만 있으면 반드시 길은 있고 해결책이 나오는 것이 세상 이치라고 생각한다. 안 되면 책이라도 찾아보고 도움도 요청해보고 그래도 안 되면 하느님, 부처님께 기도해 보라.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길은 어디에나 반드시 있는 법이다.

  

책 좀 봐라, 이놈아!

그 후로는 작은 카세트나 필름 한 통을 사더라도 반드시 취급 설명서부터 읽었고, 텔레비전이나 냉장고, 세탁기 등의 가전 제품은 취급 설명서 내용을 숙지하고 모르면 이해될 때까지 읽는 습관이 생겼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사람은 책을 봐야 한다. 기술관련 서적, 자서전이나 위인전, 문학작품과 역사물을 비롯해 나는 지금까지 만 여 권의 책을 읽었는데, 책이 내 삶에 도움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형님들은 내가 기계를 닦아 새 것처럼 만들어 놓으니 무척 고마워하셨다. 기계를 청소할 때마다 오늘은 곰탕, 내일은 자장면, 다음 날은 볶은 밥, 하는 식으로 푸짐한 저녁도 사주셨다. 징그러워 먹기도 두렵던 자장면 맛에는 홀딱 반해버렸고, 물결치는 꼬불국수 라면도 어찌나 맛있던지 라면 한 번 못잡수신 우리 어머니, 아버지 생각에 눈물이 났다. 기계만 닦으면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어찌 매일 저녁 기계를 뜯고 정성들여 씻어내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저 녀석은 자장면 한 그릇만 사주면 기계를 분해해 비눗물로 씻고 다시 조립해준다는 소문까지 났던 것이다.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한 밤중에 수도 없이 많은 기계를 분해했으니 어떻게 기계 박사가 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기능 사원 보조공으로 일한 지 6개월쯤 지났을 때 회사는 나를 정식 기능공으로 인정해 주었다. 나는 이제 어엿한 기능공인 사상공이 되었으니 그 당시로는 엄청난 출세였다. ‘’, 이 새끼야로 통하던 내가 이제는 어엿한 김군이 된 것이다.

어느 새, 나는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 기계를 잘 고치는 사람, 한 번 했다하면 어떤 일이든 완벽하게 하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오른 손이 하는 것 왼손도 모르게

하루는 형님 한 분이 내 생각이 나 갖고 왔다며 주머니에서 작은 성경책을 꺼내주었다. 그러더니 형님은 내 손을 잡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른 손이 하는 것 왼손이 모르게 하고, 해도 했다고 표시 내지 말고 사나이답게 하그라. 그리고 무엇을 해주고는 돌아보지 말아라. 알겠냐?”

성경 말씀처럼, 형님들의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 받을 짓을 해야 하고 그것도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각 끝에 형님들 작업복을 빨기로 했다.

 

토요일 오후, 나는 통근버스가 나가는 열 두시 사십 분에 맞춰 형님들의 작업복을 빨기로 했다. 최근은 열 두시고, 형님들이 공장을 나가는 시간은 열두시 이십분, 정문까지 걸어서 십 분이니까 몰래 작업복을 빨 시간은 정확히 10분이었다. 나는 결국 일초를 다퉈가며 기상천외한 빨래를 시작했다.

 

부품 세척기에 가루비누를 넣고 기계 PRM100으로 돌렸다. 고속으로 돌아가는 기계 속에 소방 호스로 물을 뿌려대니 공기방울 세탁기가 따로 없었다. 이분간 이렇게 물뿌려 세탁한 후에 PRM800~1000으로 돌리니 탈수도 끝내줬다. 물기가 거의 없는 옷들을 도장반의 열도장 하는 곳에 널고 대형 선풍기를 돌려서 소매와 바짓가랑이 사이로 뜨겁고 센 바람이 들어가게 하니 옷들은 주름도 없이 쫙 펴지면서 금방 말랐다. 작업복을 걷어 옷장에 걸어놓은 시간까지 채 십 분이 안 걸렸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던 형님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깨끗해진 옷을 당연하게 여겨 더 이상 문제도 없었다. 그러나 세상에 비밀은 없는 법, 형님 중에 한 분이 나를 발견한 것이었다. 이튿날 형님들은 십 분 안에 빨래를 말려내는 내 솜씨를 보시고 박수 또 박수를 쳐댔다. 성경의 오른 손이 한 것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내 인생을 바꾸기 충분한 말씀이었다

 

국가 자격증 시험에 도전

김형은 무얼 가르쳐주면 마른 땅이 물 빨아들이듯이 쏙쏙 이해를 잘하니 가르치기가 얼마나 수월한지 몰라요. 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공업 고등학교에서 3년을 배우고서야 이해를 했는데, 하하 김형, 자격증 시험 준비를 해보시죠.”

 

마음은 있었지만 본격적인 준비를 못하고 있던 내게 이상배 씨는 <기계가공기능사 1,2급 학과검정 예상 문제집>이란 책을 한 권 구해주면서 이해가 될 때까지 읽어보라고 했다. 겨우 한글만 깨친 실력으로 자격증 시험을 준비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험 공부만 한다면 모를까, 회사일하랴, 집안일하랴, 부업하랴.. 무당 집에 방을 얻은 나는 밤에는 주인 아주머니 굿판에 북까지 쳐주고 있었으니 세상에 나보다 더 바쁜 사람이 없지 싶은데 공부까지 해야하니 시간은 부챗살 쪼개듯 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공부는 시간이 나는 대로 틈틈이 해야지 별도의 시간을 낼 수가 없어서 책을 확대 복사해 여기저기 붙여두었다. 누워서 보이게 천창에도 붙이고 벽에도 붙이고, 화장실에, 회사 기계 위에, 공구함 속에, 옷장 안 팎에도 붙였다. 하지만 이렇게 공부를 해도 워낙 기초 실력이 없다보니 국가 기술 기능사 2급 자격 시험에 합격할 턱이 없었다. 나는 자그마치 아홉 번이나 떨어졌던 것이다. 시험에는 계속 떨어졌지만 공부는 하면 할수록 재미있었다.

 

모르는 것은 모두가 자상하게 가르쳐주니 신바람도 나고 뿌듯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형님들도 있었다. “이 등신 같은 놈아, 정신 똑바로 차리거라.” 고등학교 나오면 쉽게 합격할 2급 자격증 시험에 다섯 번째 떨어졌을 때, 형님들은 나를 소대가리라고 불렀고, 여덟 번째는 닭대가리라고 불렀다. 새대가리라고 불린 것은 아홉 번째 낙방했을 때였다. 오죽 했으면...  

 

새벽 세 시에서 밤 열두 시까지 목숨을 걸어라

하늘이시여, 불쌍한 우리 아버지를 살려주시옵소서.“

어린 여동생과 먹고 사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게 지내는 동안 아버지는 병이 더 깊어가고 있었다. 이토록 병환이 심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내게 닥친 이 엄청난 어려움을 풀지 못할 것 같았다. 새벽 네 시부터 아침 일곱시까지는 마산 어시장 공판장에서 고기상자 배달을 하고 여덟 시부터는 회사에 출근해 밤 열시까지 잔업을 했다. 나는 아버지 병원비를 마련해야 했다. 그리고 퇴근해 자격증 시험 공부를 하다보면 시간은 벌써 열두시. 공판장에 고기 배달하러 나가려면 새벽 세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곧 눈을 감으셨다. 강원도 태백산맥 깊숙한 곳에서 참나무 숯 만들고 화전을 일구시던 우리 아버지는 사북 탄광에서 얻은 병으로 결국 돌아가셨다. 이튿날 국가 자격증을 받아든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 앞에서 실컷 울었다. ‘대한민국 국가기술 자격증금갈색의 선명한 글씨, 그리고 내 사진이 붙어있는 자격증을 돌아가신 아버지 손에 쥐어드렸다.

 

실패는 없다, 과정만 있다

나는 할 수 있다, 반드시 해내고 만다, 라고 생각하면 어떤 어려운 일도 실타래 풀리듯이 반드시 해결된다. 그러나 안 된다, 못한다, 할 수 없다, 이런 생각으로 일을 하면 되는 일도 없고 될 일도 안 된다. 나는 불가능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일에 부딪혀도 절대로 포기하지 않는다. ‘당연히 어렵기 때문에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패는 없다, 그것은 성공을 향한 과정일 뿐이다. 1984년 나는 전국 품질관리 대회에서 쓰라린 고배를 마셨다. 그러나 곧 이듬해 최우수 금메달이라는 결실로 이어졌으니 그것은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반드시 영광이 있으리라는 나의 신념을 더욱 견고하게 만든 사건이었다.

 

대단한 노력파군, 공부 좀 시켜주시오.

1983년 전국 근로 청소년 최우수 저축왕 대통령상, 1984년 전국 품질 관리 활동 수기 최우수상, 1985년 전국 품질관리 분임조 경진대회 금메달, 그리고 ICQCC국제 대회를 비롯 사내에서도 제안상, 발명상 등 많은 상을 받으면서 사장님을 뵐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대우중공업 이경훈 사장님은 그때마다 격려를 해주셨다. 1989년 인천 본사에서 열린 품질관리 발표대회에서도 이경훈 사장님을 만나뵐 수 있었는데 사장님은 내게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냐고 물으셨다.

 

초등학교 과정 정도를 공부했습니다.”

아니 그럼 고등학교를 안 나왔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사장님이 옆에 계신 이사님께 말씀하셨다.

큰 인물이 될 대단한 노력파군. 공부 좀 시켜주시오. 훌륭한 인재이지 않소!”

 

회사에서는 내게 학교 공부를 시키기위해 적극적이셨지만, 새벽 세 시에 어시장을 가고 하루 세 시간 밖에 못 자는데 어떻게 공부를 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박국현 과장님과 상의를 했고, 결국 바로 대학에 가는 방법을 구해보게 되었다. 국가 기술 1급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니 창원기능대학을 목표로 잡은 것이었다. 나는 우선 부업시간을 줄이고 공부에 전념하기로 했다.

 

수학은 품질관리 분임조 활동에 수학공식을 응용해가며 공부했고, 회사업무에 적용해가며 공부하니 잊어버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영어였다. 할 수 없이 자격증 시험때 공부하던 것처럼 매일 한 장씩 똑같은 것을 열 장씩 복사해서 눈에 보이는 곳마다 붙여놓았다. 이렇게 공부하다보니 이 세상에 공부보다 쉬운 것이 없었다. 다른 일은 힘이 든 육체 노동이 있어야 하지만 공부는 책만 보면 되는게 아닌가. 빈 독에 쌀을 퍼담는 것처럼, 하나하나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교수님 교수님 어찌 하오리까

입학식!

나는 대학생이 되었다. 회사는 나를 주간 장학생으로 선발해 학교에 위탁교육을 시켰고 모든 경비를 부담했다. 내손에는 작업 공구통 대신 책가방이 들려있었고, 가슴에는 대학 배지가 달렸다.

 

그렇게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학교에 들어갔지만, 막상 학교에 들어가니 책상 앞에만 앉으면 머리가 아프고 옴몸이 근질근질 좀이 쑤셨다. 무엇때문일까? 공부를 방해하는 것,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그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왜 하고싶은 공부는 안되고 조바심만 앞설까? 얼마전 대학에 합격했다고 울고불고 감격하던 내 모습은 너무 초라하고 창피하기만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었다. 교수님 말씀이 건성으로 들리고, 배운 것을 금방 잊어버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주 깊이 찬찬히 생각하게 되었다.

 


 

 

수험생들이여! 대학에 합격하려면 다섯 가지를 지켜라.

 

집중력의 비법이 여기 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강의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딴 생각을 하게 되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나는 그런 문제점들을 철저하게 분석, 연구했고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기 시작했다.

-첫째, 푹신푹신한 신발을 신어라.

딱딱한 신발을 신고 하루종일 걸으니 뒤꿈치와 다리가 아프고 피로해서 집중력이 떨어졌다.

-둘째, 가방을 들고 다니지 말고 빈 손으로 다녀라!

하루 3킬로 짜리 가방을 들고다니니 한 시간이면 그것이 얼마로 느껴질까? 가방은 반드시 양쪽 어깨에 나누고 매고 신발은 푹신하게 해서 맑은 정신을 유지하도록 한다.

-셋째, 어떤 경우에도 버스 안에서 책을 보지 말라.

차 안에서 책을 보면 속이 안좋다. 그보다는 카세트를 준비해 머리가 맑아지는 새소리, 물소리, 파도소리를 들어라. 신기하리만치 머리가 개운해 진다.

-넷째, 수험생 부모는 절대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 한다.

공부에 노이로제에 걸린 아이들에게 공부하란다고 공부가 되는가? 차라리 공부할 수 있는 주변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다섯째,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근본 요인을 없애라!

나는 책상 앞에 책꽂이는 물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했다. 또 창가에 책상을 두어 괜히 창밖만 바라보는 일도 없도록 했다. 스탠드도 너무 밝지 않은 것으로 하고, 책상 위 유리도 없애 눈이 부시지 않도록 했다. 모든 집중력을 떨어뜨리는 요소를 없앤 것이다.

 

한마디로, 집중력을 가지려면 몸의 피로같은 육체의 방해물을 완전히 차단하고 주위 환경을 공부할 수 있는 분위기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목숨을 걸다시피 했다. 뿐만 아니었다. 먹는 것도 철저하게 조절하고 대처했다. 각자 자기 방식이 있는 법이니 똑같이 할 필요는 없지만 혹 도움이 될까 싶어 집중력 키우는 방법을 소개한다.

 

-음양탕(더운 물에 차가운 물을 탄 것)을 먹어라.

너무 뜨겁거나 찬 물은 집중력을 방해한다. 한 밤중에 우유나 녹차, 커피, 음료수 등을 먹으면 위에 부담이 가서 땀도 나고 졸음도 금방온다. 저녁 일곱시 이후에는 아무것도 먹지 말라.

 

-특히 수험생이 삼가야 할 음식

나는 과자류, 사탕류, 초콜릿, 아이스크림, 청량음료, 팥빙수, 커피, 튀김, 소시지, 라면 등을 먹고 나면 먹은 후에 또 먹고 싶은 욕심이 자꾸 생겨나기 때문에 늦은 밤 시간에는 가급적이면 피했다.

 

-식사후 소화불량이나 변비를 해소하고자 할 때

공부한다고 오래 앉아있다보니 스트레스와 운동부족으로 소화불량이나 변비가 잦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반드시 줄넘기 500, 앉았다 일어서기 반복 100, 좌우로 구르기 20, 양 주먹 쥐고 배와 등 두드리기 30회 이상을 매일 했다. 매사에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나는 반드시 할 수 있다라고 자신감을 가지면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된다.

 

-충분한 영양섭취와 제철 과일이 최고

나는 반드시 규칙적인 생활을 했다. 절대 과식을 하지 않으며 자연에서 얻은 고단백과 철저한 식습관 관리로 집중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명심해야 할 마음가짐

나는 마음의 흐트러짐을 방지하기 위해 다음 20가지를 책상 반대쪽에 붙여두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한번씩 읽고 마음을 다잡았다.

*내일 할 일은 반드시 계획서를 만들어 준비하고 잠자리에 든다.

*어떤 경우도 마음에 부담이 되는 신세를지지 않도록 한다.

*자만하는 마음을 갖고 있지 않은가 항상 뒤를 돌이켜본다.

*모든 주위 환경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는 마음을 갖는다.

*안 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자신의 약점이라 생각하지 말고 즉시 주위의 도움을 청하는 개방된 사고를 갖는다.

*상대방이 나를 섭섭하게 했다면 나는 상대에게 두 배로 더 잘해주고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요령이나 꾀, 우연에 의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조금 노력한다는 생각으로 모든 일에 임한다.

*‘될 수 있다! 할 수 있다!’라는 확신과 용기로 매사에 임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고자 하는 일을 완성했을 때는 그 과정을 다시 살펴보고 전과 후를 반드시 비교 분석하는 습관을 갖도록 한다.

*자신이 선택한 일에 대해서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절대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

*‘올라가지 못할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아라가 아니라 올라간 것만큼 이득이다. ‘가지도 못할 길은 아니 간만 못하니라가 아니라 간 것만큼 이득이다, 라는 사고를 갖자.

*어떤 일이 나에게 주어지면 항상 오분 정도는 깊이 생각하고 관찰하는 습관을 들이자.

*올바른 판단력으로 모든 일을 최대한 빠르게 결단한다.

*다른 사람과 만날 때에는 반드시 함께 할 일에 대해 공부하고 준비한 다음 만나야 한다.

*항상 아침에는 자연의 소리나 즐거운 음악을 듣고 일어나면서부터 남을 칭찬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그것이 즉시 메아리로 돌아온다.

*실패없는 성공은 있을 수 없고 노력하는 것만큼 반드시 성과를 얻을 수 있다.

*흘러간 물은 만질 수 없다, 제 시간에 모든 것을 해결한다.

*항상 성공한 후 기자회견한다는 마음으로, 매사에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생활한다.

*사람이다, 모든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다. 기계를 다루는 것도 사람이요, 공부를 하는 것도 사람이다. 반드시 나는 해내고야 만다!

  


 

 

 

내가 5개 국어를 할 수 있는 공부의 비결은?

우선 서점에서 나는 간편한 회화책을 한권 샀다. 제일 작고 가벼우며 값도 싼 <5개국 기초 생활회화>라는 제목이었다. 다음 나는 문구점에 가서 노트를 한 권 사서 가로로 다섯 칸을 나누었다. 5개국 언어를 가로로 쭉 쓴 후, 아래 칸에는 한국어로 발음을 썼다. 이렇게 마지막까지 써내려가면 똑같은 것을 열 번만 읽고 써도 각 나라 말을 오십번 쓴 것이 되었다.

 

이렇게 하루 한 문장씩 5개 국어를 익혀나갔다. 순토종 발음이라고 남들이 놀려대도 매일 연습했고, 외국인만 보면 과감하게 가서 말을 걸었다. 외국인과 대화를 하자 공부는 더 재미있어졌고, 아무리 컨디션이 좋아도 혹은 나빠도 하나 이상은 하지 않았고 또 한 문장 외우기를 건너뛰지도 않았다. 한꺼번에 많이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고 급하게 두 계단을 올라가다보면 금방 다리가 아파 포기하게 마련이다. 모든 이치가 다 똑같다. 차근차근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보면 벌써 내 수준은 저만큼 가 있다. 이것이 바로 노력하는 사람과 안 하는 사람의 차이이며, 이것이 바로 공부였다.

  

열심히 일하는 일본인과 도인같은 한국인

데밍 품질관리 분임조 대회가 열리는 동경 히야비 공회당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은 실망과 놀라움 반반이었다. 우리 같으면 국제 대회라고 플래카드에 정치인들의 화환에 한바탕 난리가 날텐데, 일본은 단상에 Q자가 그려진 보자기 하나 달랑 올려놓고는 국제 대회를 한다는 것이다. 발표자가 OHP화면에 컬러 스티커 하나 붙이지 않고 유성펜으로 그냥 써서 보여줄 때는 저런, 멍청한 놈들, 저걸 화면이라고 만들었나? 저거 보려고 여기까지 비싼 돈내고 왔단 말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대회 내용을 지켜보면서 나는 황당함과 놀라움이 교차되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들은 PPM이란 단위를 써가며 불량률 0운동을 한다는 둥, ‘생산성 배가운동을 한다는 둥 ‘6시그마 운동을 한다는 둥 엄청난 품질 관리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꼭 틀에 박히고 고급한 기법을 써야 품질관리 수준을 인정받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역경을 이겨내고 성공을 거둔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더 후한 점수를 받는 그들은 하나같이 스토리 중심의 발표를 하고 있었다. 심사위원들도 결정적인 실수를 꼬집어 답변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고생했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고 계산이 잘못되어 있으면 직접 펜을 들고 나와 가르쳐주니 발표대회장인지 품질관리 교육장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였다.

 

그들 생각은 몇 개월 동안의 고생을 어떻게 단 15분만에 이해할 수 있냐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발표대회는 축제의 장이고 포상은 내부적으로 결정된 뒤 상 받을 팀만 나오는 시상식장이었다. 데밍 품질관리대회는 마치 최고의 일본 애국지사가 전쟁터에서 승리하고 돌아와 어떻게 싸워서 이겼노라, 전 일본 국민에게 사례 발표를 하는 것 같았고, 그것을 텔레비전 방송으로 지켜보는 일본 국민들은 그들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쏟았다.

 

역시 일본은 일본이었다. 세계 최고의 상품들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현장 근로자부터 최고 경영자에 이르기까지 철저한 단결, 철저한 품질의식, 철저한 최고 명품주의 사고로 임하고 있었다. 거대한 파도처럼 최고를 향해 일순간에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어찌 부러움과 걱정이 들지 않았겠는가. 저 무섭도록 단결이 잘되는 사람들을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은 어떻게 이겨내야 한단 말인가. 네탓, 내탓, 그것만 외치다 우리는 언제 저들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구조조정? 경영혁신? 노사화합?

우리에게는 정말 여러모로 생각할 거리가 많은 품질대회였다.

  

아이디어와 품질관리

한 개의 수입 가격이 350만원이나 하는 제품 가공에 실패해 700만원 어치나 불량이 났다. 하는 수 없이 아무도 없는 공장에서 실험을 하기 시작했다. 밤을 새우기도 한두 번이 아니었고, 실험을 하면서도 힘들었던 것은 불량 때문에 회사 어른들이 모르게 해야한다는 점이었다. 하루라도 빨리 개발을 해야 불량을 용서받을 수 있다는 생각과 앞으로도 또 발생할지 모르는 불량 때문에 잠시도 실험을 게을리 할 수 없었다.

 

나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을 때였으나 집에 갈 시간도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실험한다고 집에도 가지 않으니 사람들은 냄새가 난다며 옆에 오려고도 하지 않았다. 함께 일을 하던 김명조란 동료는 나보고 돌았다고 했다. 그렇다! 나는 돈 정도가 아니었다. 실험에 완전히 미쳐있었다. 미쳐야만 해낼 수 있는 일이었다. 아니, 목숨을 걸어야만 가능했다.

 

나는 공장에서 실험할 때 몸이 아파 기계 옆에서 열이 펄펄 날 때도 있었고 한기가 들어 옷을 몇 벌씩 껴입고도 사시나무처럼 떨며 아플 때도 있었다. 갑자기 복통으로 아무도 없는 공장 바닥에서 정신을 잃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런 일을 하라고 시키지 않았다. 오히려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내 신세에 이상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러나 나는 그 일을 해야만 했다. 이제는 불량품이 문제가 아니었다. 다시는 불량이 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외국에서 수입하는 제품을 국산화하는 일, 절대 불량 없는 제품을 만드는 일, 그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910

86년 국제품질관리대회를 다녀온 후 나는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참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여자든 남자든 누구나 운전을 할 줄 안다는데 더욱 놀랐다. 그래서 나도 운전면허 시험을 보기로 했다. 먼저 학과 시험을 보러갔는데, 마침 서무과에 미스 김이 함께 접수를 해서 시험을 치르는 바람에 소장님이 함께 가주셨다. 2종 보통 시험은 70점이면 합격이 되는데 이게 왠일인가? 내 점수는 12점이었다. “세상에 이럴수가..!” 나는 부끄러웠다.

 

한 달 후, 우리는 다시 경남 진동면 자동차 시험장으로 갔다. 이번에는 68. 이럴 수가...

그런데 다섯 번째 시험까지도 항상 점수는 66점이나 68점이었다. 2종 보통 시험에 다섯 번이나 낙방을 하고 나니 다시 응시하기가 창피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1종 보통 시험에 도전했다. 누가 이기나 식의 내 오기가 발동했던 것이다.

 

그런 마음으로 새롭게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를 시작한 후, 여섯 번째는 70, 일곱 번째는 74, 여덟 번째는 76, 점수가 점점 올라갔다. 점수가 올라가니 떨어져도 재미있었다. 아홉 번째 시험은 78, 마침내 운전면허 시험에 도전한지 2년만인 1988720, 열째에 98점으로 합격을 했다. 나는 남춘희 소장님께 1종 보통 면허를 보여드렸다. “세상에,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무것도 없네 그려. 910기로 따낸 자네 근성과 끈기가 대단하네. 오늘은 내가 한잔 사지.”하며 웃으셨다.

 

‘910를 생각하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다는 각오가 생겨 두 주먹을 불끈 쥐게 되고 어떤 역경과 고난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주시기 위해 신께서 그런 고난을 주셨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니 신께서 연습시키셨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오늘도 오너 드라이브가 되어 승용차를 몰고 회사에 출근한다.

  

물고기가 준 끝없는 도전의 교훈

어느 때였던가.. 바쁜 김매기가 거의 끝나 가는 장마철이면 아버지와 나는 개울에서 물고기를 잡곤 했는데, 그것은 그저 여름 한철 매운탕을 끓여먹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바싹 말렸다가 돌아오는 겨울에 반찬도 만들어먹고, 국도 끓여먹기 위한 것이었다. 물이 많이 내려오는 장마철에는 아예 매미채처럼 만든 싸리나무 그물망으로 뛰어오르는 물고기를 낚아채 잡기만 하면 되었다. 그날따라 큰 망태기에 한가득 물고기를 잡았고 아버지는 잡은 물고기의 배를 따고 계셨다. 그런데 아직도 뛰어오르기를 계속하는 물고기가 더 있었다. 물고기는 약삭빨라서, 큰 고기들은 단 한 번 아니면 수십 번을 더 뛰어올라도 물살을 뛰어넘지 못하는 유독 작고 불그스레한 고기 한 마리가 있었다.

 

나는 속으로 저런 멍청한 물고기를 봤나, 힘을 조금만 더 쓰면 올라갈텐데하면서도, ‘아무 물에서나 살지 미쳤다고 거긴 뭘 할려고 어렵게 올라가려고 해?’하는 생각이 번갈아 들었다. 바로 그 순간, 몇 번이나 실패를 거듭하던 그 물고기는 그 높은 물살을 마침내 풀쩍 뛰어넘었다. 나는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 아버지! 고기가 넘었어요, 작은 고기가 뛰어넘었어요.” 아버지는 허허 하고 웃으셨지만 나는 깊은 생각에 잠겼다. 하찮은 미물이지만 도전하고 도전해 마침내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야 마는 작은 물고기에게서 나는 살아가는데 두고두고 교훈이 될 큰 가르침을 얻었다. ‘목숨을 걸면 못할 것이 없다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행복은 절대 그냥 이루어지지 않는다. 실패도 있고 좌절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바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남들보다 늦게 자고 한 시간 일찍 일어난다는 것, 부지런한 사람, 준비하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조금 더 노력하는 사람은 모든 이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는 기본 조건이요, 성공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일진대 우리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세상을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