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알렉산더 대왕이 유대인의 터전인 시리아를 점령하면서 유대세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이한다. 주변 세계와의 접촉의 확대와 그로 인한 비-유대세력들의 간섭으로부터, 마카비는 유다의 독립을 쟁취한다. 그러나 내부분열과 로마제국의 개입으로 다시금 혼란스러운 시기가 찾아온다.
기원전 336년, 마케도니아에서 출발한 알렉산더는 유대인이 살던 시리아 지역을 점령한다. 이때 유대인들은 감히 그와 맞서지 않고 조공을 바침으로써 평화를 도모한다. 알렉산더는 이집트 지역에 알렉산드리아 시를 건설하고 페니키아 교역소를 대신할 무역기지를 설치한다. 그는 셈이 밝은 유대인들을 우대하는 유화정책을 폈고, 이 시기 많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버리고 이집트로 이주하였다. 이때부터 예루살렘은 실질적인 유대인의 삶의 터전이 아닌 종교적인 상징으로 남았으며 오로지 신심이 깊은 유대인들만이 꿋꿋이 도시를 꾸려나가게 되었다. 알렉산더 사후 그의 영토는 세명의 부하에게 분배되었으며, 예루살렘은 기원전 175년, 셀레우코스 왕가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의 통치를 받게 된다.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는 그리스에서 살던 경험을 되살려 칙칙한 예루살렘을 화려한 그리스식 도시로 개조하려했다. 그리스적 정신을 바탕으로 무장한 그는, 유대율법을 비롯한 각종 종교의식을 박해하였으며 대신 제우스 경배를 강요하는 등 선진화된 그리스 문화를 전파하는데에 온 힘을 쏟았다. 이 때 유일신사상을 말살시키려던 그의 시도는 유대인들의 강력한 반발을 낳았다. 이를 무마하고자 168년 12월 어느 안식일, 안티오쿠스는 예루살렘을 쳐들어갔고 그곳을 점령하고야 만다. 이 당시 예루살렘 근처 모딘에는 마타시아스라는 늙은 제사장과 그의 다섯아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제우스 경배를 종용하러 온 왕의 전령을 거부하고 요르단 강 골짜기로 달아나 반란을 일으킨다. 그의 아들 유다는 특유의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용맹을 떨쳤고 사람들은 그를 일컬어 '망치 유다' 즉 유다 마카비라 불렀다. 마카비는 점점 세력을 확장하여 예루살렘을 점령하기 이른다. 후에 또 다른 아들인 시몬은 안티오쿠스의 조카이자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된 디미트리오스와 휴전협정을 맺고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겸 총독으로 나선다. 이때부터 유다세계는 마카비 가문을 중심으로 한 신정체제로 재편된다.
반 룬이 쓴 신약성서 이야기(좌)와 구약성서 이야기(우)
독립을 쟁취한 마카비형제들이 사라진 뒤, 또 다른 마카비 일족인 (히르카누스라 불리던)요한이 지도자로 선출된다. 이윽고 독립을 위한 내전의 긴박함은 사라지고 평화의 시기가 도래하면서 말많고 탈많던 종교와 율법 논쟁 또한 재등장하게 된다. 당시 유다 주변 세계에서 신정체제는 사라진지 오래된 구식 정치제도였다. 그리스, 로마의 최신 정치철학이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유다세계 내에서도 정부형태와 예배형식을 놓고 몇몇 분파가 나뉘게 된다. 우선 바리사이 인은 마타시아스가 혁명을 일으킬 당시 결성된 분파로 가장 먼저 독립을 지지했던 '하시드 인'의 후예이다. 이들은 잊혀져가는 종교적 열정을 다시금 되살리고자 '바리사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정치 전면에 나선다.
바리사이 즉 '분리된 사람'이라는 이름 그대로 자신들의 종교적인 우월함을 내세우면서 남들과 구분되는 존재로 자신들을 인식한다. 그 다음 중요한 분파인 사두가이인은 제사장 사독으로부터 유래되었다. 이들은 잘 교육받은 유대인 집단으로서 그리스 문화에 우호적이고 그만큼 타 문화에 관용적이었다. 바리사이 인과는 다르게 과거에 얽매이기보다는 미래를 바라보았고 엄숙함을 강요하는 종교적인 태도를 배척하였다. 이러한 요소들은 그들이 훗날 현실적인 정치집단으로 성장하는 데 일조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성스러운 자들'인 에세네 파가 있다. 이들은 '무의식적인 죄'를 두려워한 나머지 삶이라는 행위를 절제하고 금욕적인 수도 생활을 고집하였다. 따라서 황야에 작은 공동체를 형성하여 자신의 영혼 구제에만 몰두하게 된다. 이러한 여러 종파들 사이에서 히르카누스는 어렵게 세력 균형을 유지하며 유다세계를 훌륭하게 통치해나간다. 그러나 큰 아들 아리스토불루스가 즉위하면서 상황은 악화된다. 그는 이전의 통치자들과 달리 스스로를 사사가 아닌 왕으로 칭하면서 바리사이 인과 충돌을 일으킨다. 기존의 유대인들은 왕이 아닌 사사로서 마카비가문의 존재를 인정해왔던 것이다. 결국 내분이 일어났고 그 와중에 아리스토불루스의 어머니와 동생이 살해당한다. 이러한 불미스러운 일을 덮고자 그는 이웃과 전쟁을 벌였고 이 때 이스라엘을 점령하고 갈릴리라 이름 붙인다.
에세네파인 쿰란공동체의 동굴에서 발견된 구약성서 사본인 사해문서(가운데)
그 후 히르카누스의 또 다른 아들인 알렉산더 야내우스와 그의 아내 알렉산드라의 통치가 이어졌다. 그들은 형의 실수에서 배우지 못하고 다시금 세력균형을 무시한채 종파간의 갈등을 부추긴다. 특히 바리사이 인의 편에 서서 바리사이 인의 충복인 장남 히르카누스를 제사장으로 임명하고 정적인 사두가이인을 탄압한다. 이에 맞서 차남인 아리스토불루스(삼촌의 이름을 딴)는 사두가이와 결탁하여 예루살렘의 주변 도시를 점령하고 예루살렘을 위협한다. 사실 이 두 세력 간의 줄다리기는 당시 흔히 벌어지던 소소한 지역 분쟁일 뿐이었다.
그러나 로마는 이들의 분란으로 지중해 무역질서의 교란과 이로 인해 세금징수의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원치 않았고,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제국의 위상을 떨치길 원했다. 로마는 바로 예루살렘 원정을 감행했고 결국 히르카누스를 제거하고 아리스토불루스를 유다/갈릴리 지방의 지배자로 인정하였다. 그러나 폼페이우스가 등장하면서 사태는 복잡하게 꼬여갔다. 쫓겨난 히르카누스를 비롯하여 아리스토불루스와 바리사이 인들이 폼페이우스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호소하였고 폼페이우스는 아랍 원정 이후로 사태해결을 미룬다.
그러나 아리스토불루스는 어리석게도 유다세계에서 마음껏 군림하며 제멋대로 통치해나간다. 얼마 뒤 아랍원정을 마치고 돌아온 폼페이우스는 로마의 존재를 무시하는 아리스토불루스를 괘씸히 여겨 내쫓기로 결심한다. 그는 안식일에 대단위 공격을 감행했고 히르카누스를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겸 행정장관으로 임명한다. 여기서 또 다른 인물인 안티파데스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는 당시 예루살렘의 남쪽 에돔의 총독으로서 로마의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는 히르카누스와 로마 사이에서 갈등을 부추기면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갔고 훗날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중에서 카이사르를 선택함으로써 로마시민이 되기도 한다.
결국 그는 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지지세력을 등에 업고 예루살렘의 실질적인 지배자로 등장한다. 당연히 바리사이 인들은 다윗의 후예도 아닌 외국인의 통치를 인정치 않았으며, 알렉산더 야내우스의 손자인 안티고누스를 왕으로 추대한다. 그러나 안티파네스와 정반대로 국제 정세에 어두운 안티고누스는 로마에 저항하는 패착을 범했고, 그의 참형으로 마카비 가문의 시대는 막을 내린다. 이 틈을 타서 안티파네스의 아들이 헤롯이 그 뒤를 이어 예루살렘의 왕으로 등극하고 히르카누스의 손녀 마리암네와 결혼하면서 정통성마저 확보한다.
알렉산더 대왕은 한낱 변방에 불과하던 유다를 거대한 세계 한복판으로 끌어낸다. 이에 유대인들은 외국문명에 맞서 자신들만의 세계를 구축해나갔고 마카비에 의해 독립된 국가의 위치에까지 오른다. 이로써 마카비는 유대인이 기다리는 메시아상으로 기억되고 훗날 예수와 직간접적으로 비교된다. 유다의 신정체제의 후진성과 종교적인 분쟁으로 그들 내부에서 다양한 갈등이 발생하였고 이를 반영하듯 여러 분파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분파의 존재는 유다세계를 끊임없는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가는 원인이 되었고 유다는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의 속국으로서 위태로운 존립을 해나간다.
결국 독립의 주역인 마카비 가문은 로마의 충복인 헤롯에게 유다 세계를 넘기고 몰락을 맞이한다. 이로써 로마와 유다 간의 끈질긴 인연이 시작되었고 이러한 복잡한 국제정세와 어지러운 정쟁의 틈바구니 속에서 예수가 탄생한다. 예수를 유대교 개혁자 혹은 혁명투사라는 극단적인 이미지로 포장하기에 앞서 이처럼 그가 살아온 시대의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아마도 예수를 온전히 파악하기 위한 첫걸음일 것이다.
ⓒ Hokkun 2009_10.04-10
출처: [motus animi continu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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