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교회를 위한 부조금 모금
고린도후서 8-9장은 가난한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해서 고린도교인들에게 모금을 요청한 글이다. 자급선교를 우선시했던 바울이 이방인교회들에게 예루살렘에 가져갈 선교헌금을 모아줄 것을 강하게 요청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주후 51년경 예루살렘에서 열린 사도총회 때 안디옥교회의 대표였던 바울, 바나바, 디도는 예루살렘교회의 기둥이었던 야고보, 베드로, 요한과 더불어 선교협약을 맺고, 히브리파였던 그들은 할례자인 유대인들에게, 헬라파였던 바울과 바나바는 무할례자인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결정하였다. 이때 사도들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해 달라“고 특별히 부탁하였다(갈 2:9-10).
둘째, 가난한 예루살렘교회를 돕기 위해 부조금을 모운 것은 그들과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화목제물이었다. 하나님께서도 인류와의 갈등을 해소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셨다. 이 선물은 유대교의 나사렛파와 이방인 그리스도의 교회들 사이의 오해와 갈등을 해소하고, 유대교의 나사렛파를 그리스도의 교회라는 새 언약 공동체에로 끌어안기 위한 것이었다.
셋째, 갈등의 원인은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회개함으로써 또 신앙고백하고 침례 받음으로써 값없이 차별 없이 누구나 하나님나라의 시민이 되고 하나님가족의 식구가 된다는 바울의 복음주의와 가나안땅회복과 이스라엘민족해방의 조건이 언약의 말씀인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이라고 믿었던 유대인들의 율법주의가 충돌하였기 때문이다.
넷째, 예루살렘교회에서 내려온 어떤 사람들, 곧 에비온파의 꼬드김 때문에 안디옥교회, 고린도교회, 갈라디아교회 등에 변절자들이 생긴 것에 대해서 과격하게 대응했던 바울은 어떤 형식으로든 예루살렘교회와 불편해진 관계를 해소하고자 했다.
다섯째, 바울은 이방인교회들이 예루살렘교회로부터 영적인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하였다(롬 15:27). 따라서 바울은 이방인교회들이 낸 부조금은 유대인들로부터 받은 영적축복을 되돌려주는 감사의 표시라고 믿었다.
여섯째,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율법주의자들의 적대감이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안디옥교회, 고린도교회, 갈라디아교회 등에 몰래 들어와 문제를 일으킨 자들은 에비온파 유대인들이었다. 이들은 예루살렘교회를 중심으로 점차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다.
일곱째, 바울은 거액의 부조금을 통해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임을 표명하고자 하였다. 바울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엡 4:13) 모두가 다 하나가 되기를 원하였다.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풍성한 연보
바울은 고린도후서 8장에서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본을 보인 부조금에 대해 소개하였다(1-5절). 마케도니아 교회들은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지역 교회들을 통틀어 말한다. 이 당시 마케도니아 지역은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아가야 지역보다 경제가 나빴다고 한다.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회들의 상황을 “많은 시련”과 “극심한 가난”(2절)이란 말로 표현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케도니아 교회들은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2절) 하였고,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3절)하였으며, “성도들을 섬기는 은혜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간절히 청하였다”(4절). 또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울 일행에게도 주었다(5절). 마케도니아 교회들은 ‘성도 섬기는 일’ 곧 구제하는 일을 ‘은혜’ 혹은 ‘특권’으로 여길 정도로 자발적이었고 능동적이었다. 이뿐 아니라,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자신들을 하나님께 헌신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여 바울 일행을 후원하였다. 그러므로 마케도니아 지역 교인들의 믿음과 실천은 다른 지역 교인들의 믿음과 실천의 잣대가 되었다. 따라서 8절에서 바울은 마케도니아 교회들이 보여준 모범적인 믿음과 실천에 뒤지지 않게 고린도 교회도 분발하여 자발적이고 능동적으로 이 특권에 참여하기를 권하였고, 그로써 그들의 진실한 사랑이 증명될 수 있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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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교회는 루디아, 간수, 점 귀신이 들렸던 여자 노예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가난했을 것이고, 데살로니가교회와 베뢰아교회는 유대인들로부터 핍박이 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 지역은 스포츠제전과 종교행사가 많고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고린도보다는 경제면에서 뒤쳐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빌립보교회에 보낸 옥중서신에서 열여섯 차례나 기쁨을 강조하였듯이, 또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태장을 맞고 초죽음이 되어 차꼬에 묶인 채로 감옥에 갇힌 후에도 기도하고 찬송했듯이, 마케도니아 교인들은 기쁨이 넘쳤고, 구제와 선교에 있어서 넉넉한 마음을 가졌다. 바울은 1절에서 이를 일컬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라고 불렀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아니고서는 이런 모범을 보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마케도니아 교인들의 믿음은 바울의 믿음처럼 기뻐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뻐하는 믿음이었고, 베풀 수 없는 상황에서 후하게 베푸는 믿음이었으며,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사하는 믿음이었고, 기도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도하는 역설적인 믿음이었다. 바울은 이런 모범적인 믿음을 고린도 교인들이 배우기를 원하였다.
상호균등 혹은 상호보충의 원리
바울은 주후 57년 가을 무렵에 고린도후서를 썼고, 동년 말과 후년 초사이의 겨울에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썼는데, 15장 25절에서, “이제는 내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 이는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도 중 가난한 자들을 위하여 기쁘게 얼마를 동정하였음이라”고 하였다. 이로 보아 모금이 성공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부조의 목적을 ”평균케 하려 함“(13절)이라고 밝혔다. 바울은 부조의 목적이 가난한 사람들의 멍에를 대신 짊어지는데 있지 않고, 기부자와 수혜자가 피차 주고받음으로써 균등하게 하는데 있다고 하였다. 이를 바울은 14절에서 이렇게 설명하였다. ”이제 너희의 넉넉한 것으로 그들의 부족한 것을 보충함은 후에 그들의 넉넉한 것으로 너희의 부족한 것을 보충하여 균등하게 하려 함이라.“ 상호균등의 원리가 상호보충의 원리임을 밝힌 것인데, 그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부조행위는 기부자의 자발적이고 능동적인 소유권행사이고, 액수의 결정은 기부자의 전권이며(행 5:4), 타인이 강압할 수 없다.
둘째, 부조행위는 부족한 것을 보충해 주는 것으로써 가난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구제의 대상이 된다.
셋째, 그리스도인이라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궁핍을 면해 줘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에 따라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충할 마음을 품어야 한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6장 10절에서 권하기를,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들에게 선한 일을 하되, 믿음의 가족에게 더욱 그렇게 하자”고 하였다.
넷째,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도움에 의존해야할 권리는 없다. 오히려 자립에 힘써 다른 사람의 부족을 보충할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의 상호균등 혹은 상호보충의 원리는 히브리인들이 광야생활 때 거둬들인 만나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만나를 거둬들인 사람들은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다”(15절, 출 16:18).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않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는 조직은 크든 작든 천국에서나 가능하다. 이 상호균등 혹은 상호보충의 원리가 시행되었던 곳 가운데 쿰란공동체와 예루살렘교회가 있었고, 지난 2천 년간 수없이 많은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선의의 시도들은 거의 다 실패로 끝났다. 그나마 다행한 것은 오늘날에는 국가가 나서서 최소한의 보충에 힘쓰고 있고, 수많은 기부자들과 선교단체들이 이 균등과 보충을 위해서 힘쓰고 있다는 점이다.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Claudius Gothicus, 210년 5월 10일 ~ 270년 1월), 클라우디우스 2세(Caludius II, Marcus Aurelius Valerius Claudius Augustus)[1][2]는 268년부터 270년까지 로마 제국을 통치하였던 로마 제국의 황제이다. 통치 기간 동안 알레만니에 대항해 성공적으로 싸웠고 고트족과의 나이소스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고트족에 대한 승리 덕분에 그는 고트족의 정복자라는 의미의 "고티쿠스"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출저:글/kccs.info, yydepk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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