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1. 일반적인 대제사장과 예수님의 대제사장되심의 비교
히브리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대제사장인 아론과 비교하여 완전하시고 영원하신 ‘대제사장’ 되심을 밝히고 있다. 히브리서 전체를 놓고 볼 때 멜기세덱과 연관된 기독론인 5:11-6:20, 7:1-28은 매우 중요하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그리스도를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시라(히 3:1)에 소개하고 있다. ‘믿는 도리’ 라는 말은 신앙고백을 말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왜 우리의 대제사장이신가를 연구하기에 앞서 대제사장의 일반적인 자격을 살펴본 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과 특별히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셨음을 주목하여 멜기세덱의 존재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대제사장의 일반적인 자격(히 5:4)
제사장직은 유대의 전통에 있어서 중심적인 요소였다. 유대인들은 제사장 제도와 그 성막과 희생제물을 극히 중요시 했다. 모세의 율법과 제사법은 불과 분의 관계에 있다. 율법으로 인한 드러난 죄를 하나님께서 사죄함을 받기위해 희생제사를 드렸다. 이는 “피 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기 때문이다.(히 9:12)”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심을 말하기에 앞서 일반적인 대제사장의 임무와 자격을 말하고 있다. 히 5:1의 “대제사장마다”라는 말과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라는 말을 통해 일반적인 대제사장과 예수그리스도를 비교함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의 모든 조건을 성취하셨음을 증거 할 뿐 아니라 아론계열의 대제사장보다 더욱 예수 그리스도께서 탁월하심을 나타내고 있다.
일반적인 대제사장의 자격은
(1) 대제사장은 사람이어야 한다(히 5: 1,2).
(2) 대제사장은 제사를 드려야 한다(히 5:1,3).
(3) 대제사장은 사람들이 당하는 문제점을 알고 있어야 한다(히 5:2,3).
(4)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임명을 받아야 한다(히5:1,4).
2) 구원자이신 대제사장 예수그리스도
(1)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이시다(히 5:5-5, 7-8).
(2) 예수님은 자신을 제사의 제물로 드리셨다(히5: 6,7).
(3) 예수님은 인간의 연약성을 아시는 분이시다(히 5:7-9).
(4) 예수님은 하나님의 임명을 받으셨다(히 5: 5-6, 10).
3.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 되신 예수 그리스도
멜기세덱은 누구인가? 히브리서저자는 5:10절부터 예수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대제사장이 되셨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6장의 마지막 절 20절과 7장에서 멜기세덱을 언급하고 있다. 예수그리스도를 멜기세덱과 연관시켜 “대제사장 기독론”을 제시하고 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멜기세덱”이라는 인물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1) 멜기세덱은 과연 누구인가?
멜기세덱에 관해서는 구약에 두 번나온다. 창세기14: 17-20절과 시편 110:4절이다. 히브리저자는 또 시편 110: 4절의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영원한 대제사장” 이 되셨다고 말하고 있다. 창세기 14: 18의 말씀대로 멜기세덱은 살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라고 말하고 있다(히7:1). 고대문화에서 왕이 종종 제사장으로 봉사하는 일은 있는 일이었다. 여기서 살렘은 예루살렘을 뜻한다고 할 수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창세기 14장에 나타난 부분과 나타나지 않은 부분을 말하고 있다.
* 히브리저자가 말하는 멜기세덱은
(1) “살렘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다(7:1). (2)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다(7:2): ‘멜기세덱’과 ‘살렘’ 의 이름은 메시야적인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왕적- 제사장적 메시야의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3)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다(7:3)”: 성경에는 그의 부모나 족보에 대한 언급이 없음으로 신비한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 (4)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다(7:30)” (5)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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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히브리저자는 전쟁에서 승리한 아브라함이 십분의 일을 그에게 드림으로 멜기세덱은 하나님께 아브라함에게 축복을 구하였다(창 14:19-20). 축복을 빌 수 있는 사람은 축복을 받을 자보다 위에 있는 자이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아론계열의 대제사장보다 멜기세덱은 더욱 높은 위치에 있는 존재로 예수그리스도를 아론계열의 대제사장보다 더욱 탁월함을 나타내기 위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시편의 말씀을 예수께 적용시켰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멜기세덱의 존재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고 한다. 천사장 미가엘과 같은 위치의 존재로 당시 생각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과도 관련 있음을 볼 수 있다. 또“ 예수그리스도가 레위지파가 아닌데 어찌 대제사장이 될 수 있는가?”라는 히브리공동체 안에 의문이 제기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저자는 당시의 가장관심이 있던 멜기세덱을 예수그리스도의 모형으로써 제시하면서 예수그리스도는 아론계열의 제사장보다도 더욱 탁월하신 “영원하시고 탁월하신 대제사장”이심을 천명했다고 할 수 있다.
2) 아론계열의 대제사장보다 우월한 멜기세덱
아론계열의 제사장보다 멜기세덱의 우월성은 첫째, 레위제사장들은 영원하지 못한데 반해 멜기세덱은 영원하다(7:3). 둘째,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경의를 표한 것은 멜기세덱이 레위지파의 조상인 아브라함보다 우월함을 보여주며 이는 멜기세덱이 레위제사장들보다 우월하다는 것이다(7:4-10).
3) 멜기세덱 같은 대제사장 예수그리스도
아론계열의 제사장은 영원하지도 완전하지도 못하다. 그러므로 영원하며 완전한 대사장직인 필요하다. 시편 110:4절을 상고하여볼 때 멜기세덱과 같은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왜 예수님이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이신가? 를 비교하여 설명하고 있다.
(1) 온전하지 못한 레위직이 아닌 온전한 제사장이 필요하다(7:11-12): 예수님은 레위지파가 아니다.
(2)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대제사장이어야 한다: 예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며 영생소유하시고 또 영생을 주시는 분이시다.
(3) 하나님의 맹세로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다(7:20-22).
(4) 레위적 제사장은 죽음으로 인하여 많은 수효가 필요했으나 예수님은 단번에 이루시고 영원하신 대제사장이시다(7:23-25)
4. 옛 언약과 새 언약(8:1~13)
이 단락은 옛 제사장 직무와 새 제사장 직무를 비교하는 첫 번째 소단락(1~6절)과 이 대비의 결과 추론된 논지인 그리스도께서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에 대해 증명하기 위해 전개하는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주제를 다루는 두 번째 소단락(7~13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옛 제사장 직무와 새 제사장의 직무(1~6절)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자기희생을 통해서 하늘에 들어가셨다.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은 땅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땅에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이다. 즉 그것은 종말론적으로 영원한 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2~3절). 이러한 예수의 자기 제물 드림과 하늘 성소의 결합은 하늘에 올리우신 예수께서 드리신 자기희생의 구원론적인 의미를 나타낸다.
이어서 저자는 지상의 모든 제사 행위와 비교할 수 없는 그리스도 제물의 질적인 탁월함을 표현하기 위해 이원론적인 공간 영역을 사용한다(4~5절). 즉 레위 지파 제사장의 제의는 땅에 속한 것이며 단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5절)이다(참조, 9:23; 10:1). “그러나 이제”(6절)아들의 종말론적인 예배 행위를 통해 새 언약이 세워졌으며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사는 삶의 영역을 결정한다. “더 좋은 약속으로 세우신 언약의 중보(자)”(6절)는 다양한 입장간의 중재가 아니라 이미 주어진 약속의 실현을 목표로 삼는다.
2) 옛 언약과 새 언약(7~13절)
첫 언약의 흠(부족함) 때문에 첫 언약이 폐기될 수밖에 없으며 둘째 언약이 세워져야만 한다(7~8a절). 이어서 저자는 새 언약을 입증하기 위해 신약성경에서 가장 긴 인용절인 예레미야 31:31~34의 말씀을 인용한다. 이 구약 인용은 본래 이스라엘을 갱신하는 예언적인 한 약속이나 여기서는 그리스도 안에 세워진 새로운 구원의 약속을 통해 옛 언약을 해지하는 예고로 이해된다(8b~12절). 이 새 언약은 죄 용서와 결합되어 있다(12절). 저자는 ‘새 언약’을 예수의 자기희생에서 일어난 포괄적인 종말론적 속죄 개념으로 이해한다. 즉 이 ‘새 언약’의 용어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으로 말미암아 지금 이미 세워져 있는 그리고 완성을 위해 열려 있는 구원을 표현하는 언어적ㆍ신학적 수단”이다. 이 새 언약은 그리스도를 통해 열려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통로이며(4:16; 6:19; 10:19~20), 믿는 성도를 하나님께 가까이 이끌 수 있는 것이며(7:11,18~19), 거룩하게 하는 것이다(2:11; 12:14).
5. 옛 제의와 새 제의(9:1~28)
이 단락은 옛 언약의 예법(9:1~10)과 새 언약의 예법(9:11~14)을 대비한 후 법적 효력을 갖는 새 언약(9:15~22)과 그리스도 희생의 최종적인 효력(9:23~28)의 소주제를 다룸으로써 무기력한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고 격려하는 권면의 확실한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1) 옛 언약의 예법(9:1~10)
이 소단락에서는 먼저 세상에 속한 성소가 언급된다. 특히 레위기 16장의 대속죄일 제사와 관련하여 성소가 둘로 나누어져 있음을 강조된다. 이어 제사장이 매일 ‘성소’에서 섬기는 예식과 대제사장이 일년 중 속죄일에만 들어갈 수 있는 ‘지성소’가 대비된다(6~7절). 이 ‘첫 장막’은 온전하지 않음으로 “현재까지의 비유”에 불과하며(8~9절), 그것은 양심이 아니라 단지 제의적인 청결만 가져다주는 “육체의 예법”(10절)일 뿐이다.
2) 새 언약의 예법(9:11~14)
다음 단락은 이러한 옛 언약의 예법에 대하여 반제적으로 “그러나(개역 성경에서는 생략되어 있음)그리스도께서”로 시작한다(11절).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의 종말론적인 속죄 예전은 아론과 그 후손인 대제사장 속죄 의식과는 비교할 수 없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11~1절).
즉 히브리서 저자에 의하면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의 종말론적인 제사만이 “장래의 것”을 중재할 수 있으며(2:5; 6:5; 10:1; 13:14),새로운 제사드림은 하늘의 성소에서 행해지며(8:1~3), 그분은 짐승의 피가 아니라 “그 자신의 피로써”제사드리며(2:5~18; 5:7~10; 10:1~10), 그 제사는 매년 반복할 필요가 없으며(10:1~18), 뿐만 아니라 성도들에게도 “휘장 뒤”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다(10:19~22). 그러므로 오직 그리스도의 제물을 통해서만 죽은 행실에서 양심을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9:14).
3) 법적으로 효력이 있는 새 언약(9:15~22)
이제 13~14절의 진술의 더 심화되어 전개된다. 15절에서 저자는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다”라는 명제를 세운다. 그리스도께서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량하시기 위해 죽어야만 했다. 이것을 먼저 일반적인 ‘유언’의 개념으로 증명하고(16~17절), 그리고 나서 ‘죽음’과 '언약‘의 관계를 모세의 율법인 출애굽기 24:3~8의 언약 예식 진술로써 입증한다(18~22절).
여기서도 저자는 옛 예법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법의 성취라는 관점에서 해명한다. 그렇게 볼 때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20절)라는 성찬 진술이 반영되어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4) 더 좋은 제물이신 그리스도의 최종적인 효력(9:23~28)
이제 그리스도께서 “새 언약의 중보자”라는 명제가 새 언약의 관점에서 해명된다. 하늘의 성소로 들어가는 것은 지상의 제물이 아니라 하늘의 제물을 통해서 가능하다(23절). 그리스도의 희생 제물은 질적으로 월등한 종말론적인, 천상의 것이다(24~26절). 새 언약은 벌써 지금의 시대를 결정하는 그리스도의 유일하며 일회적인 희생 제물로 표현된다. 그것은 단번에 일어난 종말론적인 사건으로서 반복될 수 없다(25~26절).
이러한 비교를 통해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한 확신을 불러일으킨다(27~28절). 곧 예수의 죽음은 반복될 수 없으며 죄 사함은 단번에 일어난다. 그의 재림은 또 다른 죄 용서가 아니라 완성을 위해 일어난다. 즉 구원의 문제는 더 이상 모호하지 않다. 그것은 이미 결정되어 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종말론적인 시대 교체를 경험하고 옛 시대 저편에 살고 있다. 그래서 구원의 완성을 확신해도 된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지성소로 통하는 휘장은 찢어지고(마 27:50~51). 누구에게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힘입어 지성소로 통하는 길(τωυ ἁϒίωυ ὁδόυ)은 열려있다. 따라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는 길이 나타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땅의 지성소를 붙들고 있는 자에게는 하늘의 지성소로 통하는 길은 열려 있지 않는 것이다.
6. 결 론
지금까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 되심을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일반적인 ‘대제사장의 자격’과 예수그리스도는 탁월하신 ‘대제사장되심’을 고찰하였다. 예수그리스도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대제사장으로서 ‘멜기세덱’을 성경을 통해 살펴보았다. 멜기세덱은 “살렘의 왕이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며(7:1), “의의 왕이요… 평강의 왕”이다(7:2): ‘ 멜기세덱’과 ‘살렘’ 의 이름은 메시야적인 의미이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왕적- 제사장적 메시야의 모형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또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7:3)”,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고 (7:30)”, “하나님의 아들을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다(7:3).” 예수그리스도는 또 새 언약의 중보자이시다. 이 새 언약에 대해서는 예레미야와 에스겔이 말한바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새 언약은 옛 언약이 돌비에 새긴 것에 비해 심령에 새겼다는 것이다. 구약의 옛 제의와는 달리 매번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신이 제물이 되셔서 단번에 드림으로 영원한 속죄의 효력을 가지신 대제사장이시며 지금도 하늘의 참 성소에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기자는 히브리서 공동체에게 다음과 같이 권면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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