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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

상처치유

by 은총가득 2012. 1. 28.

 

 

 

 

상처받은 기억의 치유


치유의 말씀(14) 상처받은 기억의 치유(빌1장3-6)

우리 인간에게는 두 종류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는 좋은 기억이고 다른 하나는 나쁜 기억입니다. 좋은 기억은 사람에게 놀라운 활력을 제공해 줍니다. 고난의 겨울과 같은 인생의 순간에도 장미꽃을 피게 하는 것이 좋은 기억입니다. 우리에게 좋은 기억이 있으면 얼마나 마음이 풍성해지는지 모릅니다.

잠언 10장 7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의인을 기념할 때에는 칭찬하거니와 악인의 이름은 썩으리라."
의인에 대한 기억은 사람을 풍성하게 만들고
악인에 대한 기억은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을 암시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3-4절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이
어려운 사역 중에서도 풍요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던 비결이 나와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고통스런 인생 중에서 빌립보 교인에 대한 기분 좋은 기억은
그의 고통을 아물게 하기에 충분한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 기억은 그를 따뜻하게 하고, 그의 마음을 풍요롭게 했습니다.
좋은 기억은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유익을 주는지 모릅니다.

반대로 나쁜 기억은 우리들의 삶에 큰 고통을 가져다줍니다.
그 상처가 있기에 조금마한 어려움이 있으면 그 상처가 도집니다.
본인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다 잊었다고 하지만
그의 무의식층 깊은 곳에서는 그 상처의 흔적이 남아서
현재의 삶을 좀먹고 고통스럽게 하는 하나의 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고통스런 기억을 치유하는 것은
우리 영혼과 마음과 정신을 건강하게 유지하는 데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 기억 치유에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상처가 치유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깊은 상처의 경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상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흔적 없이 지워지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러나 상처가 시간에 따라 아물 수는 있어도
그 상처가 본인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경우에는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지워진 것이 아니라 무의식으로 내려가 잠재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팠던 기억을 치유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 아팠던 기억을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요?
선천적으로 잘 잊어버리는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정말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과거의 아픔을 잘 잊어버리는 것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정도 과거의 아픔을 잊어버리게 하는 장치를 만드셨습니다.

예를 들어서, 교통사고를 당해서 기절한 경우의 예가 그렇습니다.
치명적인 교통 사고를 당한 사람들은 대개 그 순간의 일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마지막 순간의 격렬한 고통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고통스런 사건을 오래 기억하고 있으면 얼마나 삶이 어려워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어떤 분은 하나님께서는 회로가 과중한 충격을 받을 때
그것을 완전히 없애 버리는 정신적이며 정서적인 퓨우즈 장치를 만드셨다고 말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픈 기억을 잊어버리도록 도와주어야지
아픈 기억을 다시 되살려서 치유한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일리가 있는 질문입니다. 그 말이 어느 정도는 맞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의 무의식층 속으로 들어간 아픈 기억은
그냥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간에 싸움을 합니다.
그래서 서로간에 말을 하지 않습니다. 건드리면 터지기 때문입니다.
얼핏보면 겉으로는 문제가 해결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속으로는 문제가 커지고 있습니다. 한이 쌓입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멀쩡하게 보이는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에서 옛날의 아픔을 주었던 기억을 되살려 문제점을 지적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의 말씀으로 치유하는 것이 오히려 쉽게 잊는 방법입니다.

그래서 목사나 정신과 의사들은 정서불안의 증상을 보이는 분들과 상담을 할 때
대개 이러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마음속에 반복하여 떠오르는 어떤 영상 같은 것이 있습니까?"
"꿈속에 반복하여 나타나는 형상이 있습니까?"
"마음속에 끊임없이 떠오르는 영상이 강렬하여 생활이 방해받는 것이 있습니까?"

왜냐하면 그들의 반복적인 영상은 무의식층에 자리잡은
마음의 상처로 말미암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마음의 상처의 원인을 발견하고
진리의 말씀과 성령의 불로 그 상처를 지져야 그 상처가 곪지 않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베데스다 연못가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베데스다 연못가의 물을 요동하게 하실 때
사람들이 그 물에 먼저 들어가게 되면 치유를 받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신적인 질병을 치유 받기 위해서는
먼저 고통스러운 기억의 물에 첫 걸음을 내 디뎌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계신 성도님들은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더 이상 감춰두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아뢰어 치유함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그러한 마음의 상처가 대개 어디로부터 비롯되었을까요?
오늘날 가장 흔하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관계는 바로 가족관계입니다. 특히 부부관계로부터 비롯된 마음의 상처가 많이 있습니다.
많은 부부들이 서로가 매력이 넘친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가 감정적인 것에만 치우치지도 않고 지성적인 결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서로를 분명히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결혼합니다.

기독교인인 경우에는 서로의 결혼관이 이상적으로 맞아 들어간다고 생각하고 결혼합니다.
그래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부부관계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이상적인 부부일지라도 그들은 결혼 초부터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고 상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 사랑하는 부부가 마음의 상처의 가장 큰 원인이 될까?"
혹은 "왜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가 마음의 상처의 가장 큰 원인이 될까?" 그런 의식을 의문을 가지시지 않은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로 너무 고뇌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당연한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마음의 상처에는
그 중심부에 배신감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특히 배신한 그 사람이 나에게 있어 더욱 의미 있고 중요한 인물일수록 그로부터 받는 배신감은 더욱 깊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장 가까이 지내고 가장 의미 있는 대상인
나의 아내나 나의 남편으로부터 상처를 당할 확률이 큽니다.
이 사실을 냉철하게 바라보시고 부부간에
혹은 다른 가족관계에서 받는 상처로 인해 너무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족관계란 한 몸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면
상대방도 틀림없이 마음의 상처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시고
먼저 상대방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지나온 나날들을 한번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 가지 아팠던 기억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기억들을 무의식층에 숨겨두어서
계속 적대감을 가지시면서 정상인처럼 생활하지 마시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불로 그 적대감을 용해시켜 살아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상처받은 마음 빨리 극복하기
 
 
마음은 종이와 같다.
종이는 한번 구겨지면 다시 원상태로 돌리기가 쉽지 않다.
이 종이를 책으로 눌러놓거나 다리미로 다려서 펼 수는 있다.
그러나 원상태로 펴기란 쉽지가 않다. 그렇다고 우리의
마음을 구겨진 상태로 그대로 둘 수는 없지 않은가?
우리가 구겨진 종이를 펴듯 우리의 마음을 펴야 할 것이다.
다음에 쓰임을 받고 사용되어지기 위해서...

 

상한 마음을 극복하는 방법은,

 

 

 

1. 기분이 나빠지거나 속이 상할 때면 가능한 빨리 그
기분을 수습해야 한다.

 

단 1초라도 상한 마음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본인에게는
물론 주위사람에게도 절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마음이 상하여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쀼루퉁 해져서 상한
마음을 계속 유지하지 말라. 원한의 마음이나 상처 입은
마음은 스스로 치료의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길어지는
시간만큼 자신에게 손해다. 그러므로 상한 마음에 정신
적인 옥도정기(머큐로크롬)를 발라라.
 
2. 상한 마음을 발산해라.
 
상한 마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병이 된다.
믿을만한 사람이나 존경하는 사람을 찾아가서 자문을 구
하거나 불만을 마음껏 토로하라. 혹시 어느 누구에게도
말 못할 상황이라면 신에게 기도하라. 그리고 불만이나
상한 마음을 잊어버려라.
 

 

3. 마음에 상처를 입힌 당사자에게 섭섭하다는 내용을
정확히 알려라.
 
누구에게나 사람은 실수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또한 섭섭하다는 내용의 말을 해야 한다.
그래야 빨리 풀어진다. 내성적인 사람은 직접 말하기
어려우므로 편지로 써라. 편지가 오히려 설득력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면 과감하게
용서하라. 그리고 마음을 풀어라.

 

 

 

4. 혹시 상한 마음이 자신의 과민으로 상황을 부풀리지
않았나를 점검해 보라.

 


상대방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한 말인데 정작 본인은
무슨 계획을 가지고 무슨 의도로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고자
하거나 고통을 주고자 한다고 과민 반응을 하지나 않았는지
점검해 보라.
 
5. 마음을 상하게 한 당사자에게 가장 귀한 선물을 하라.
 
사람이 원수에게 선물을 한다는 것은 죽음보다 어렵다.
그러나 마음은 전혀 베풀고 싶지 않으나 반대 행동을
취하여 스스로 귀한 선물을 사서 자신이 전해주지 못하면
다른 사람을 시켜 보내주라. 상대방은 생각하지 못할
만큼의 속도로 빠른 회복이 이루어질 것이다.
 

 

6. 반드시 상한 마음은 치료가 된다는 것을 확신하고
희망찬 날을 기대하라.
 
인생은 희로애락이다. 화가 날 때가 있으면 웃을 때가 있고,
불행할 때가 있으면 행복할 때가 있다. 그러므로 어두움의
터널을 지날 때 터널의 끝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상한 마음도
반드시 희망의 마음으로, 밝은 마음으로 된다는 그 자랑스러운
마음, 바로 이 마음을 가져라.
 
-좋은글 중에서

 

상한감정 치유의 7가지 효과

 

 

 

 

 

첫째, 자신이 누구인지를 자각하게 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변

 

화도, 성장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배가 어디로 항해할 지 모르는 상황에 비유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

 

르는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언제나 방황합니다. 가정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에도, 혹

 

은 직장이 어렵게 돌아갈 때에도, 왜 그런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기 때문에 당황하게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기 쉽습니다.

치유는 자신이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를 분명히 보게

 

하고, 어디로 나아가야 할 것인가를 결단하도록 도와줍니다. 다시 말해서 치유 과정

 

을 통해 지금껏 자신을 괴롭혀온 어두움의 실체를 발견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왜 이

 

제까지 어두움 속을 헤맬 수밖에 없었는가를 자각하고, 원치 않는 방향으로 자신을

 

끌고 다녀온 의식 속의 운전자를 발견해서 더 이상 자신의 삶을 끌고 다니지 않도록

 

떠나보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 속에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게 됩니다.

둘째, 다른 사람을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 받은 사람들은 공통적

 

으로 옛날과는 전혀 다른 측면에서 다른 사람들을 보기 시작합니다. 상처를 치유 받

 

기 전에는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에게서 대인 공포증을 느끼던 사람도 치유과정을

 

거친 다음에는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보고, 그의 마음속에 맺혀있는 상처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

 

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게 되면 그를 향한 분노가 사라집니다.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오히려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에 대한 동정심이 생겨납니다.

치유의 경험이 없는 사람과 치유의 과정을 거친 사람은 자신을 화나게 하는 사람 앞

 

에서 판이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전자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반

 

면, 후자는 저 사람에게 무슨 사연이 있기에 저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을까? 라고 생

 

각하면서 그를 이해하려고 애를 쓰게 됩니다. 즉, 상대를 이해하게 되는 것만큼 마음

 

속 분노가 줄어들고, 분노가 약화되는 만큼 생명 에너지가 허비되지 않고 충만해지

 

기 때문입니다. 현대의학도 분노로 빠져나가는 생명 에너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병들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셋째, 가정이 살아납니다. 사람들의 상처는 대부분 가정에서 시작됩니다. 상처는 흔

 

들리는 가정, 흔들리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

 

입니다. 흔들리는 가정에서 상처 입으며 자란 아이가 청소년이 되면 문제 청소년이

 

되고, 그가 자라 어른이 되면 그가 속한 모든 곳에서(가정이든, 직장이든, 사회단체

 

든) 분노, 분쟁, 분열이 싹트게 됩니다. 가정에서 시작된 문제가 사회, 정치, 교육문

 

제, 더 나아가서 종교문제에까지 파고드는 것입니다.

숨겨진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대개 사람들의 문제가 성장과정에

 

서 시작되었으며, 특히 대부분 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래

 

서 치유과정을 통해 자신의 가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부부관계가 자녀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신의 자녀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가는지 통감하게 되면, 자식

 

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통곡하며 용서를 비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

 

유하는 과정에서 볼 수 있는 가장 극적인 열매는 이처럼 행복한 가정이 되살아난다

 

는 사실입니다. 목회자의 상처가 치유되면 목회자의 가정이 달라지고, 설교가 살아

 

나면 교회 전체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넷째, 건강한 영성을 얻게 됩니다. 마음의 분노가 점차 가라앉게 되면 상대적으로 사

 

랑이 증대합니다. 분노가 도사리고 있는 마음속에는 영성이 자리잡을 수 없습니다.

 

마치 분노하는 마음속에 주님이 거할 자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상처의 치

 

유는 분노의 마음을 사랑과 이해의 마음으로 바꾸어줍니다. 따라서 치유는 주님이

 

들어와 역사 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섯째, 정신이 건강해집니다. 상처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의 마음은 산만합니다. 산

 

만한 마음이나 분열된 마음에서는 어느 수준이상의 창의력이나 능력을 기대할 수 없

 

습니다. 그러나 상처가 치유된 후에는 산만하거나 여러 갈래로 갈라진 마음이 하나

 

로 집중되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창의력도 높아집니다. 마음의 상

 

처를 치유 받고 난 다음, 하는 일들이 잘 풀린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근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여섯째, 육신의 건강을 얻게 됩니다. 육신의 병이 대부분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현대의학에서도 강하게 주장하는 바입니다. 육신의 질병은 오랜 시간 동안 마음의

 

상처가 키워온 결과입니다. 나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통해 신체의 질병

 

도 함께 치유되는 사례를 수없이 보아왔습니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과 신체

 

의 건강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곱째,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됩니다. 성장과정에서 입은 마음의 상처 때문에 어두움

 

의 세계에서 살아가던 사람이라도 치유되는 순간 새로운 세계를 보게 됩니다. 어두

 

움에서 벗어나 밝은 새 삶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과거의 자신처

 

럼 마음의 상처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 아픔을 동일하게 체감할 수 있

 

습니다. 그래서 상처 입은 사람에게 다가가서 위로자가 되어줄 수 있습니다. 때문에,

 

자신의 상처를 치유 받고 새 삶을 맛본 사람은 누구나 치유자가 되는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