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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

선천적 상한심령의 종류 - 굶주림, 분노, 두려움

by 은총가득 2011. 6. 27.

   

 

 

선천적 상한심령의 종류   - 굶주림, 분노, 두려움


  선천적 상한심령의 네 번째 종류에는 굶주림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굶주림이란 단순히 배가 고픈 상태를 의미하지 않고 굶주린 마음 곧 빈 가슴, 공허감, 외로움 등을 가리킵니다. 


  무시하는 말, 저주하는 말, 쫓아내는 말, 혼자 있게 만드는 말들은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상대방을 버리는 말을 너무 쉽게 합니다. 특히 화가 나면 더 쉽게 내뱉습니다. 깊은 상처를 주는 말인데도 말입니다. 돌아서서 후회하기도 하지만 이미 때가 늦은 경우가 많습니다. 상처의 화살을 맞은 사람은 자신의 속을 겉으로 보이고 싶지만 또 화살을 맞을까봐 자꾸 속으로 더 깊숙이 숨게 됩니다. 열등감, 죄의식, 버림받음 때문에 자꾸만 숨게 됩니다. 자꾸 숨다보니 그 결과 마음에 굶주림이 찾아옵니다. 밖에  나가야 먹을 것이 있는데 자기 마음 안에는 먹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굶주린 마음은 인간들이 자신의 마음을 숨긴 결과로 찾아온 상처이자 쓴뿌리입니다. 창세기 4장 1절부터 4절을 읽으십시오.


[1] 아담이 그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잉태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그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 치는 자이었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이었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창 4:1-4)


  에덴동산을 떠나야만 했던 인간들은 어떻게 살았을까요? 하나님에 의해 에덴을 떠나도록 명령을 받았던 그들, 버림받음의 상처를 끌어안고 그들은 세상과 인간들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하나님과는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말입니다. 자기 마음의 굶주림을 인간과  세상에서 채우며 살았습니다. 여러분, 이 대목에서 잠깐 확인해야할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버리신 것은 아닙니다. 화염검을 두어 에덴에 이르는 길목을 막으셨다는 구절을 어떤 신학자들은 두 가지로 말합니다.

 

  우선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상태에서 에덴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먹으면 그 때에는 겉잡을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에 그렇데 하셨다는 주장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범죄 후 인간은 죽음을 경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몸은 늙어가고 있는데 생명나무 실과를 먹고 나서 죽지 않고 산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이는 저주입니다. 죽음은 어찌 보면 인간이 잘못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품 안에 다시 안길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배려이기도 한 것입니다. 또 한 가지는 화염검은 화재가 났다는 의미로 보는 것입니다.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현재 에덴의 위치가 어디일까? 찾아보지만 흔적도 없어졌습니다. 아마 화재로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만드신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어디까지나 가설일 뿐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자기 마음의 굶주림을 인간과 세상에서 채우며 살아야만 했던 최초의 인간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것이 제사입니다. 어머니가 낳은 최초의 인간 중 한 사람인 아벨은 자신의 굶주린 마음을 인간과 세상에서 채우지 않고 하나님과의 만남인 제사를 통해서 채웠습니다. 그러나 아벨의 형 가인은 세상과 하나님 모두를 통해서 자기 속의 굶주린 마음을 채우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에게도 잘 보여 사랑받고, 세상에서 재물도 모아 인정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가인의 이 같은 제사를 하나님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에 관한 기록을 우리는 히브리서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하심이라 저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오히려 말하느니라  (히 11:4)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을 설명하다가 아벨과 가인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제사가 하나님과의 만남에 목적을 두고 있으니까 아벨은 제물보다는 하나님과의 관계에 의존하여 살려고 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가인은 하나님과의 관계만큼이나 믿음의 근거를 환경에 두었던 것 같습니다. 굶주림을 채우는 길이 여러 경로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가인은 어떠한 채움도 맛볼 수 없었습니다.


  여러분, 인간들의 굶주림이 너무 크다는 점을 간과하지 마십시오.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1등을 해도 채워지지 않고, 많은 재물을 모아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많은 재산을 모았는데도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그들이 하는 말입니다. “조금만 더.”그런가하면 남에게 항상 이겨야 하는 채워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항상 앞서야 합니다. 항상 잘해야 합니다. 항상 인 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일시적일지 모르지만 여전히 굶주릴 뿐입니다.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마음. 이것이 인간의 굶주린 마음입니다. 곧 원초적인 상처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굶주린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요? 바로 죄로부터 온 것입니다. 원죄가 낳은 또 하나의 후유증입니다.


  선천적 상한심령의 다섯 번째 종류에는 분노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분노, 화, 신경질, 짜증 등으로 묘사할 수 있는 상처입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했었던 가인의 생각은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가인은 더욱 굶주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굶주림을 해소하기 위한 방책이 좌절되니까 분노가 생겨났습니다. 마침내 그는 동생 아벨을 살인하고 맙니다. 분노가 심각한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단순히 자기자신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에게 심각한 폐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각에 왜 가인이 하나님과 세상을 모두 잡으려고 했는지 말씀해 보십시오. 네, 이유는 간단합니다. 굶주림이 너무 컸기 때문입니다. 굶주림이 크면 채우려는 욕심도 커지게 마련이겠지요. 그런데 문제는 체우지 못한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욕심이 좌절당할 때 인간은 크게 분노하는 것입니다. 많이 굶주린 사람은 많이 분노합니다. 인간은 굶주린 만큼 분노하는 법입니다. 자기 속에 있는 굶주림의 욕심을 채울 때 이것을 방해하는 환경이나 사람을 미워합니다. 못 참습니다.


  선천적 상한심령의 여섯 번째 종류에는 두려운 마음이 있습니다.


  분노는 살인을 하였습니다. 여기서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인간에게 찾아 왔습니다. 창세기 4장 6절부터 15절까지 읽어봅시다.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그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까 [10]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시니라  (창 4:6-15)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위협과 홀로되는 벌입니다. 가인은 이제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다음은 성서가 말하는 두려움에 관한 묘사입니다.


몸에서 그 살을 빼어 낸즉 번쩍번쩍하는 촉이 그 쓸개에서 나오고 큰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느니라  (욥 20:25)


너희의 두려움이 광풍같이 임하겠고 너희의 재앙이 폭풍같이 임하리니

                               (잠 1:27)


  성서는 두려움은 사람의 가슴에다 화살을 쏘는 것과 같다고 하며 광풍이 갑자기 불어 닥치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홀로되는 두려움의 화살이 가인의 가슴 한복판에 박힌 것입니다.


  인간은 아담과 하와 이래로 버림받은 존재로 태어납니다. 게다가 인생을 살면서 풍파를 겪으며 하나님을 떠나 범죄 함으로 죄의식이 들어오는 발판을 내어줍니다. 이것이 악순환하여 아픈 마음은 병이 들고 인간은 계속 아파하게 됩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이 지금 열등감을 느끼든, 버림받음을 느끼든, 아픈 마음을 느끼든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분들은 모두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모두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면, 그리고 아담과 하와가 죄 때문에 아픈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면, 지금도 죄는 아픈 마음을 만들기에 우리에게도 이런 아픈 마음들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거룩하게 살던 사람도 죄를 지으면 마음이 병듭니다. 죄의식이 가동하여 열등감을 자극하고, 열등감은 버림받은 마음을 자극하고, 버림받은 마음은 분노를 일으킵니다. 아픈 마음은 점점 커지다가 마음이 더욱 깊이 병들게 만듭니다. 이런 사람들끼리 섞여 사는 곳이 세상입니다. 이픈 채 사람들은 세상에 사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의 교회에는 일ㄴ 아픈 마음을 가진 자들이 찾아오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이런 아픈 마음을 가진 가족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우리의 부모도 자식도 모두가 속에는 아픈 마음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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