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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by 은총가득 2011. 4. 24.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갈 2:20-21

 

오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자신을 일치시키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자신도 죽었다고 말합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6:14)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바울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자신을 일체화시키고 있는 것은

갈라디아서 뿐 아니라 다른 모든 본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롬 6:3-4)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고전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후 4: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하지만 예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를 따라다닌 제자는 아닙니다.

성경의 기록으로 보면,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시기적으로 대략 2년에서 5년 사이에

바울이 처음으로 언급됩니다(행 7:58; 8:1).

당시 그는 청년에 불과했습니다(행 7:58).

따라서 바울은 예수께서 활동하시던 기간에 아마 소년기를 보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자신도 죽었다고 말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자신을 완전히 일치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바울이 성령을 통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나도 죽었다고 믿어지는

믿음에 도달했음을 말해줍니다.

 

(갈 6:14)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고전 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2: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이 능력이 있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를 자신과 일치시켰기 때문입니다.

바울 뿐 아니라 우리도 예수의 십자가와 자신을 일치시키면 능력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들어서 알고, 배워서 알고, 이해해서 압니다.

그러나 내가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그 수준까지 믿음을 끌어올리지 못합니다.

 

이제 우리의 믿음을 일체화의 수준까지 끌어올려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교육으로, 지식으로, 이해하는 것으로 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인간의 이성적 방법으로는 일체화시킬 방법이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방법으로만 가능합니다.

 

(갈 1: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고전 9:1)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갈 6: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바울은 자신이 예수를 보았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죽으실 때 나도 죽었다는 사실이 자신의 몸에도 경험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런 일체화의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내 지식으로, 마음의 감동으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내 영과 육체에 직접 경험되고 새겨져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슥 4:6)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 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성령 안에서 직접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경험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 예수와 내가 하나가 되면, 나도 바울처럼 예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바울은 끊임없이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자신의 일치를 주장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끊임없이 그것을 믿으라, 인정하라고 말합니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롬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고후 5:14-16) 『[14] 우리가 생각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오늘날 현대인들이 복음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자신을 일치시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의 채찍에 맞음과 자신의 나음을 일치시켰습니다.

(벧전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의 능력은 예수와 자신을 일치시킬 때 나타납니다.

예수 이름과 예수를 일치시키면 예수 이름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일치시키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구약의 모세는 말씀을 하나님으로 붙잡았습니다.

하나님과 말씀을 일치시키자, 하나님의 능력이 모세에게 나타났습니다.

구약에 하나님은 말씀과 함께 갔습니다.

신약의 하나님은 예수와 함께 갔습니다.

예수가 있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하나님이고, 하나님이 바로 예수입니다.

 

이제 예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은 어떻게 나타날까요?

바로 예수의 십자가 구속 사건과 자신을 일치시킬 때 나타납니다.

십자가가 바로 나 자신의 생각과 마음과 육체와 행동에 일치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과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체화가 안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를 추앙하거나 기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그것을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십자가와 나를 일치시키는 것이 신앙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믿는 영적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약 2:1)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받았으니』

(히 10:39) 『우리는 뒤로 물러가 침륜에 빠질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니라』

 

또한 이것은 오직 성령으로만 가능합니다.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고전 12:3)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 2:13)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요일 3:24)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저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그러므로 오직 우리는 믿음 충만,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예화- 구두 접착제 이야기>

접착제가 구두 밑창과 구두 굽을 꽉 붙여줘야 제대로 된 신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오늘 예수의 십자가와 내가 일치되도록 붙여주시는 분이 성령입니다.

성령께서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나를 확실히 일치되도록 연결해 주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의 십자가와 내가 하나로 일체화가 되면,

바로 그 때,

예수의 인격이 내 인격에 스며들고,

예수의 피가 내 몸에 스며들고

예수의 능력이 내 속에 스며들고

예수의 생명이 내 영에 스며드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의 인격과 피와 능력과 생명이 내 속에 완전히 스며들면,

그 속에서 기적이 흘러나오고, 능력이 흘러나오고, 축복이 흘러나옵니다.

내게 능력 주신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믿음의 고백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결국 현대인들은 예수의 십자가를 바라만 보았지

자신과 일치시키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은 섭씨 100도씨가 되어야 끓습니다.

기름은 보통 200도가 넘어야 끓습니다.

석유 원유는 끓는 점에 따라

어떤 것은 휘발유가 되고, 어떤 것은 등유가 되고, 어떤 것은 경유가 됩니다.

 

수소와 수소의 동위원소들은 아주 고온에서 서로 충돌하면

핵융합의 연쇄 반응이 통제되지 않아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폭탄으로 변합니다.

우리도 성령이 나에게 뜨거운 불을 붙여 주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 가운데 예수와 내가 충돌하면 그 속에서 엄청난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날 예수는 우리에게 베데스다 연못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현대에는 없어졌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지금도 존재합니다.

예수의 이름을 현재화시키고, 그의 십자가를 내게 일치시키십시오.

예수가 내 마음 속에 다가와 일치되면, 내 병도 고쳐집니다.

저주가 축복으로 바뀌어 집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김을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은 그 말씀을 확실히 이루신다는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말씀이 곧 하나님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100세에 난 아들을 죽여도, 하나님은 반드시

자손을 주리라는 그 약속의 말씀을 이루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을 하나님으로 믿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아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나와 일치시켜야 합니다.

성령이 나와 예수를 하나로 꽉 붙여주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몇 도에서 불 붙을지는 사람마다 다 다릅니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구속의 경험이 이론으로만 아니라,

내 육체에도, 언어에도, 생각에도, 영에도 반드시 느껴지고 경험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당신과 나도 바울과 같이 예수의 흔적을 소유하게 될 것입니다.

 

 

 

<결 론>

 

사도 바울은 성령을 받고 예수의 십자가 사건과 자신을 일치시켰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흔적을 소유했습니다.

이제 우리도 바울과 같이 성령이 임해서 그 경험이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이 나에게 체험되고 나의 것으로 일체화되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의 십자가를 추앙하고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십자가와 나를 일치시키는 것입니다.

이는 성령이 아니고는 불가능합니다.

오직 성령이 오셔서 영적 믿음을 주시고,

우리를 예수의 십자가에 하나 되도록 붙여주셔야 합니다.

 

성령을 받아 예수의 인격과 피와 능력과 생명이 내 안에 가득 스며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밖으로, 기적으로 축복으로 흘러나와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나 자신과 일치시키는 믿음으로 신앙의 수준을 끌어올리십시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수의 십자가가 경험되고 일체화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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