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십자가
마태복음 27장 22절 - 37절
“빌라도가 가로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가로되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저희가 더욱 소리질러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 면류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 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나가다가 시몬이란 구레네 사람을 만나매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웠더라 골고다 즉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이르러 쓸개 탄 포도주를 예수께 주어 마시게 하려 하였더니 예수께서 맛보시고 마시고자 아니하시더라 저희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뽑아 나누고 거기 앉아 지키더라 그 머리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 예수라 쓴 죄패를 붙였더라”
십자가는 로마 시대의 극악한 죄수들을 사형시키는 하나의 사형 도구입니다. 십자가에 많은 사람들이 사형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는 때에도 두 사람이 같이 사형 당하는 것과 같이 십자가의 죽음은 흔한 일입니다.
마치 오늘날 미국에서는 약물 주사로 사형을 시키고, 한국에서는 교수형, 중국에서는 총살형을 시키는 것과 같은 일반적인 사형
방법이지만, 특별히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것은 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 죽으라는 극악한 사형 방법입니다.
십자가에서 사형을 당한 사람의 가족은 동네에서 살지 못하고 쫓겨나서 다른 모르는 곳으로 가서 살아야 하는 가족까지 멸시와
천대를 받는 저주의 사형 법입니다.
십자가는 죽어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살아서 내려오지 못합니다. 십자가에 오래 달려 있으면서도 죽지 않으면 다리를 꺾어서라도 죽인 후에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내려서 피를 씻기고, 향품을 바르고 세마포 옷을 입히고 장사를 지냈습니다.
우리 성도는 십자가에서 죽은 후에야, 우리의 생애가 마친 후에야 안식의 세계에서 부활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성도는 죽기 전에는 세상에서 안식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죽어야만이 십자가를 지는 일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십자가를 지는 동안 죽여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 째로는 꿈을 죽여야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세상의 꿈을 이루려고 세상을 따라 살아가니 더욱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세상의 헛된 꿈을 버리고 나를 죽이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딸아서 살아가면 죽은 자로 평안 속에 살게 됩니다.
내가 지금 당하는 고통은 아직 내가 죽지 않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망을 죽이면 평안하게 살게 됩니다.
산에서 금식 기도하는데 미국 할아버지가 나를 찾아와서 말동무를 하면서 자기를 말합니다.
자기는 25년 동안 군대 생활을 하면서 한국, 월남, 아프리카 등을 다니면서 CIA에서 일을 했지만, 지금은 35년 동안 같이 살던 부인에게 다 뺏기고 직업도 이제는 늙어서 못 얻고, TRUCK 하나와 TRAILER 하나를 갖고 살데가 없어서 산에다가 Trailer를 갖다 두고 거기서 먹고 잔다 하면서, 1주일에 10불을 갖고 산다고 합니다.
5딸라는 자동차 기름 값이고, 5불은 식비로 쓰는데 아직 배가 나와 있다고 하면서 Swap meet에서, 토, 일요일에 일을 하면 50불쯤 번다고 하면서 20불은 장소 값이요, 20불은 물건값이니 10불을 갖고 산 속에서 살고 있으니 참으로 좋다고 합니다.
이 할아버지는 세상에서의 꿈을 버리고, 1 주일에 10불을 갖고 만족하면서 아직 배가 나왔다 하면서 배를 두들기면서 사는데, 나는 그렇지 못하여 부끄러웠습니다.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나의 꿈이 죽어야 평안이 오는 것입니다.
둘째로 자기 성격을 죽여야 합니다.
자기 성격을 자기가 죽이지 못하면 상대방이 못 마땅하게 느껴지고, 신경질이 나고, 울화통이 터지고, 자기의 혈압이 오르는 고통과 해를 스스로 당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 때문에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성격 탓에 스스로 괴로움을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도 못된 성격이 있어서 이 일로 인하여 사서 고생을 하는 때가 있습니다.
자동차가 조금 이상한 소리가 나면 낡은 차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 가지 않고, 끝까지 원인이 규명 될 때까지 찾아내고, 고쳐 놓아야 잠을 자게 됩니다.
기도를 하려고 산에 갔는데 도중에 양철 울리는 소리가 나서, 차를 세우고 손을 보았는데 또 소리가 나서 차를 세우고 손을 보고하면서 기도하는 산에까지 갔는데 또 소리가 나서 기도를 시작한 것이 아니라 차를 세우고 고치는데 시간을 다 허비하는 일을 범한 때도 있습니다. 돌아 올 때에도 역시 소리가 나서 짐에 와서도 계속 손을 보았지만 이것을 고쳐진지는 그후 오랜 세월이 지난 후입니다. 그 동안에 별것도 아닌 양철 울리는 소리가 나를 몹시 괴롭혔지만 이 괴로움은 나 스스로의 성격 때문에 당한 고생입니다.
십자가에서의 해방은 내가 죽을 때에 이루어집니다. 자기 성격이 죽고 꿈을 죽일 때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우리가 식물 인간들을 가금 병원에서 봅니다. 아무런 감각이 없이 죽은 자와 같이 되어 있어서 오히려 식물 인간들이 더 장수하면서 평안히 지내는 것 같습니다.
치매 노인은 암환자가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셋 째로는 자기의 원리 원칙을 죽여야 합니다.
사람들 중에 원리 원칙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 앞에는 세상에 의인이 하나도 없고, 모두 죽일 놈이요, 도적놈이요, 죄인입니다. 그 원리 원칙 앞에서는 모두 죽일 놈이요, 나쁜 놈이니, 이 사람은 항상 나쁜 놈, 죽일 놈하고 살고 있으니, 평안이 없고, 친구도 없고 평안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의 원리 원칙 때문에 늘 혈압이 오르고 마음의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갑니다.
나의 원리 원칙도 지당한 말씀이고, 옳은 것이지만, 다른 사람을 자기의 원리 원칙을 떠나서 너그럽게 대하여 주며, 용서하여 주고 이해를 하여 주고, 결점 대신 장점을 보아 줄 때에 내가 오히려 더 평안하여 지는 것입니다.
내 원리 원칙을 내세우면 내가 더 고통을 당함으로 나의 원리 원칙을 십자가에 죽여 버리면 평강이 임하게 됩니다.
나의 원리 원칙대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면 모두 죽일 놈이요, 나쁜 놈들뿐입니다. 그러나 내 원리 원칙을 죽인 자가 십자가의
고통에서 해방이 됩니다.
넷 째로 내 체면을 죽여야 합니다.
체면을 죽이지 못하면 비가와도 뛰지를 못해 비를 홈빡 맞는 것과 같이 체면을 죽이지 못하면 얼마나 나의 삶에 손해가 오는지 알 수 없습니다.
체면 때문에 고통을 당하면서 속앓이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체면을 죽이지 못하면 성령을 받지 못하고, 거룩한 장로 교회의 교인으로만 손해를 보면서 살게 됩니다.
체면을 죽이면 십자가의 고통에서 벗어납니다.
나는 목사이기 때문에 어느 장소에나 양복을 입고 넥타이를 매고 가야하고, 특별히 교회에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미국 피닉스에 있는 갈보리 교회에 가니, 그 교회는 설교하는 목사가 평상복을 입고 넥타이나 양복을 안 입고 설교를 하고,예배를 인도합니다. 평신도야 얼마나 자유스로운지 모릅니다. 나는 이 교회에 나가면서 양복을 안 입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니 얼마나 편한지 모릅니다.
체면 때문에 뜨거운 여름에 양복 입고 넥타이 매는 고역에서 벗어나니 얼마나 자유스러운지 모릅니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인들이 체면을 차릴 때에는 엄격히 차리지만, 대부분 소탈하고 자유스럽게 자기 편리한대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십자가는 죽어야만 십자가에서 해방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고 있는 한 십자가의 고통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정리:
우리는 주님의 고난의 십자가를 생각하고 나도 내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주님 따라서 가야 합니다.
주님이 죄가 없으시면 서도 나의 죄를 전가 받아 십자가에서 죄인이 되셔서 못박여 피를 흘리며 고통을 당하면서 죽으셨습니다.
주님이 이 십자가를 지심은 바로 나의 죄를 인함이라는 것을 알고, 감사함으로, 나도 다른 사람을 위한 십자가를 지고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교회에 출석하는 것이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내 죄 대신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임을 알고 나도 이 사실을 믿고 아는 자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감격이 있고, 그 감격으로 인하여 행함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예수 십자가의 사건의 감격 속에서, 나도 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을 걸어야 할 것이고, 이 사건을 널리 증거 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자의 마땅한 할 도리입니다.
은혜
하나님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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