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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

11강 상한 심령의 치유 ③

by 은총가득 2010. 5. 12.

 

하나님백성의 회복을 위한 내면세계의 회복 No. 11                                            상한 심령의 치유 ③


상하고 병든 영혼의 치유를 위한 ‘드러냄’


  자, 이제부터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우리 속의 문둥이를 드러내시는지 살피겠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드러내십니다.


  영혼이 버림받고, 포로 되고, 갇히게 되면 인간은 수치심을 갖게 되고 본능적으로 아픈 마음을 감추려듭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능력이 되게 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심령을 가난하게 만드십니다. 우리의 모든 옷들을 찢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4장 5절과 누가복음 2장 35절, 히브리서 4장 12절을 찾아 읽어 주십시오.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고전 4: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눅 2:35)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히 4:12)


  말씀은 우리를 발가벗기십니다. 우리의 속마음을 드러내십니다. 율법은 지키도록 주신 것이 아니라 우리 속의 죄들을 드러내시기 위해 주신 겁니다. 우리 스스로가 죄인임을 고백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양심을 증상이라고 한다면 율법은 X-ray인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 우리 속을 모두 들여다보면서 속의 병을 알게 되고, 율법의 완성자인 예수에게로 나아가라고 주셨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할례를 통해 드러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 할례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의 속을 드러내시기 원하셨습니다. 할례란 육체의 가죽옷을 찢는 행위입니다. 성경은 마음의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시고 있습니다. 곧 마음의 가죽옷을 찢으라는 말씀입니다. 할례란 몸 전체를 다 찢는 행위가 아니라 일부분을 찢는 행위입니다. 마음의 한 부분을 할례하면 주님의 보혈이 찢어진 틈 속으로 들어가 내적치유를 행하시게 됩니다.


  셋째,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시험과 시련으로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빛으로, 말씀으로, 복음으로 우리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지만 만약 우리가 그 인도하심을 거절하면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강제로 우리의 옷을 찢으십니다. 여기에 광야가 있습니다. 광야란 우리의 옷을 강제로 찢는 곳입니다. 그것이 시험과 연단입니다. 시편 139편 23절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시련이란 우리가 입은 옷이 갑옷이 되어 너무 딱딱해졌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드러내시기 위해 한 번 찢으시고 흔드시는 것 입니다. 우리는 시험이나 시련이 닥쳐오면 우리가 사랑했던 것을 잃어버립니다. 의지했던 것을 상실합니다. 곤고해집니다. 아픕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심판하셨다거나 벌을 주셨다”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시련이란 나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나를 찢으셔서 나를 고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나를 깨닫게 하시려는 사랑입니다. 내 마음을 가난하게 하셔서 치유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광야를 무조건 싫어하지 마십시오. 어찌보면 광야는 고마운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만이 대안인 곳에서 하나님과의 관계에만 의지하여 서는 법을 배우는 곳이기에 광야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거쳐야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1장 3절을 읽읍시다.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약 1:3)


  우리들은 시험이나 시련을 겪으면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이 아픔과 고통을 덮어 달라”고 애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찢긴 틈을 통해 보이는 우리의 속마음을 드러내시려는 의도로 시련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사실, 물건이나 돈이 없어지면 아프지요. 나를 덮어주었던 옷들이 없어지니 두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시 덮어주시면 아픔도 없어지고 두렵지도 않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덮개가 없어졌으니까 아픈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속에는 병든 영으로 인한 상처가 있기에 아픈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열등감을 물질이나 사람이 덮어주고 있었을 때에는 아픔을 모르다가 그 물질이나 사람이 없어지면 아프시지요. 그 때 어떻게 기도하셨나요? “하나님이여! 다시 돌려주옵소서!” 기도하셨지요. 그래서 금식을 합니다. 다시 돌려주셔서 덮어달라고 말입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요? 많이 아프십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너무 아파하면 다시 덮어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시 덮어주시고 돌려주시는 순간에 너무 흥분하여 할렐루야! 외치며 마치 하나님과 싸워서 이긴 자처럼 간증을 합니다. 어떤 목사님은 “얍복강의 야곱처럼 하나님과 싸워서 이깁시다!” 설교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설교를 들으시면서 아프십니다.


  덮어주면 안되지만 인간들이 40일 금식기도 하니까 덮어주셨습니다. 언젠가는 다시 그 시련을 주셔서 고치셔야하는 것을 아시면서 말입니다. 반드시 고쳐야하는데 우리가 지금 너무 괴로워하니까 일시 덮어주십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다시 하나님께서 벗기신다는 점을 아시기 바랍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하시느니라  (고전 10:13)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감당 못할 시험은 허락하시지를 않으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험을 허락하시면서 우리에게 이렇게 요구하십니다. “자! 네 병을 예수의 보혈로 고치거라. 네 열등감을 고쳐라. 지금이 기회이다” 그런데도 우리가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면 다시 시련을 덮으십니다. 다음에 고치시기 위해서 연기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우리가 감당할 만할 때 몽땅 다 고쳐버립시다. 맹장수술 할 때 포경수술까지 해버리듯이 다 수술합시다.


  회복시켜달라고 하거나 다시 덮어달라고 하거나 하는 기도는 우리의 신앙을 늘 정체시켜 성숙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언제까지 금식만 하겠습니까? 언제까지 작정기도를 하시겠습니까? 나중엔 지쳐요. 아주 피곤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드러내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내 속에서 여러 가지 아픈 마음이 나왔다고 생각하면 환경이나 외부 사람이 무섭지 않습니다. 누구를 원망할 일도 없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너무나도 잘 아시는 분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시험과 시련, 드러냄을 주신 것입니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자비함 가운데 드러내십니다.


  하나님은 무조건 발가벗기시는 무자비한 분이 아닙니다. 껍질을 통 채로 벗기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근본적으로는 우리에게 옷을 입혀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제대로 입하시기 위해서 속의 더러운 것들을 씻기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냄새가 진동하는 우리의 속을 들여다보고 예수의 보혈로 씻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주 조금 할례를 통해 찢으십니다. 많이도 아닌 조금만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발발 떨지요. 아픈 게 죽는 것보다는 나은데도 발발 떨면서 아프다고 야단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벗기시려고 할 때, 도망하지 마십시오. 그 분은 자비하셔서 우리가 도망하면 또 기다리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험과 시련을 당하지 말라고 말씀을 주셨습니다. 말씀이 뭡니까? 우리의 속을 드러내는 거울입니다. 마치 할례와도 같습니다. 말씀을 매일매일 보면서 우리는 우리의 심령에 할례를 행하게 됩니다.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십자가 앞에 빈 손들고 나아가게 하십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공로로 우리를 매일매일 치유하십니다.


  다섯째,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자는 자기를 드러내는 자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매일매일 치유를 받으신다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벗기실 이유가 없습니다. 왜 우리의 삶을 흔드시겠습니까? 말씀 앞에서 나를 벗기고, 나를 찢는 경험이 없으니까 하나님께서 찢으십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말씀을 가까이 하지를 않습니다. 치유 받지 않습니다. 속을 조명하여 보지를 않습니다. 죄가 얼마나 무서운지 죄의 아픔이 무엇인지를 보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니, 더 나아가 말씀의 옷을 입고 자기를 더 감싸려고 합니다. 말씀으로 남을 비판하고 정죄합니다. 이런 일은 신앙연륜이 긴 사람일수록 흔히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에 한 시간 정도 할례를 행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옷을 벗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옷을 찢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가죽을 찢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말씀 앞에서 성령 앞에서 이렇게 고백하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이방인입니다, 내가 문둥이입니다, 내가 고아입니다, 내가 과부입니다” 마음이 가난해지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이럴 때 하나님은 더 온전한 옷을 입혀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벗기 싫어했었던 옷을 벗기시고 완전한 옷, 능력의 옷을 입혀 주십니다. 스스로 말씀 앞에서 자기를 벗읍시다. 옷이 ‘나’인줄로 착각하지 맙시다. 하나님은 능력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경건하게 살도록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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