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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적치유

14강 버림받은 마음(소외감) ③

by 은총가득 2010. 5. 12.

 

하나님백성의 회복을 위한 내면세계의 회복 No. 14                                        버림받은 마음(소외감) ③


버림받은 마음(소외감)의 원인 ① - 원죄의 요인


  시편 6편 1절부터 3절 말씀입니다.


[1] 여호와여 주의 분으로 나를 견책하지 마옵시며 주의 진노로 나를 징계하지 마옵소서 [2]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3]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시 6:1-3)


  첫째 원인은 우리가 죄인으로 이 땅에 태어난 데 있습니다.


  버림받음의 원인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버림받음은 원죄로부터 비롯된 원초적 상한심령(원마음)으로서의 버림받음입니다. 즉, 인간은 태어나기 전부터 버림받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누구도 예외 없이 죄인입니다. 따라서 죄인으로서의 버림받음이 우리 속에 원래부터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우리 모두는 버림받은 마음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이 태어날 때부터의 버림받음을 잘 보여주는 인물이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모세의 일생은 버림받음의 연속이었습니다. 모세는 태어날 때, 노예의 신분이었습니다. 이는 그가 버림받은 신분으로 세상에 태어났음을 보여줍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모세의 출생 후 3개월 동안 그를 가슴에 품고 숨길 수 있었으나 3개월이 지나자 아이를 강가에 버려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애굽왕 바로가 히브리인 사내아이는 출생하자마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죄인으로서 하나님의 품을 떠나야만 했던 아픔과도 같습니다.


   모세는 태어난 지 백일도 채 못 되어 어머니의 품을 떠나 바구니 속에 갇혀 나일강에 버려졌습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채 깜깜한 바구니 속에서 울어야만 했었던 모세였습니다. 강물이 출렁댈 때마다 모세는 놀라고 울었을 것입니다. 그 때 모세의 심정이     이해가 가십니까? 비록 어린아이라 의식은 못했다고 할지라도 아기 모세는 놀라고 아팠을 것입니다. 어머니가 일부러 버린 것도 아닌데 신분이 노예였기 때문에 버려진 것입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아담의 범죄로 인해 태어날 때부터 버려졌습니다. 죄인이었기에, 죄의 노예였기에 버려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죄를 지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품을 떠나야만 했습니다. 아마 아담과 하와도 모세처럼 에덴동산     을 나왔을 때 온 세상이 다 깜깜해 보였을 것입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정처도 정하지 않고 그들은 터벅터벅 길을 재촉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런 심정이 영혼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입니다.


  흔한 현대정신병 중에 공항장애라는 병이 있습니다. 이 정신병은 주로 비행기 안에서 일어나는 정신장애입니다. 공항장애가 오면 환자는 보통 이상으로 두려움을 느낍니다. 상상할 수 없는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공항장애 환자들은 말하기를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라고 말합니다. 재미있는 일은 공항장애란 병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죽을만한 위기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누가 총을 들여대고 죽이겠다고 위협하지도 않습니다. 비행기가 어디로 추락하는 것도 아닙니다. 심장마비가 와서 숨이 끊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죽음에 대한 공포에 싸입니다. 이것이 공항장애의 특징입니다.


  이 증상은 주로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혹은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에서 많이 일어납니다. 자동차가 터널 속으로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많은 백화점에서 쇼핑하다가, 고속도로에서 차가 막혀 그냥 서있을 때 많이 일어나는 병입니다. 사우나실 안에 갇혀 있다는 느낌이 들 때, 또는 목욕탕 안에 가득 찬 희미한 김으로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자신이 갇혀버린 착각으로 인해 생기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갇힌 상황이 오면 나타나는 증상입니다.


  의사들이 공항장애가 있는 환자들을 연구했습니다. 그리고는 놀라운 결과를 알아냈습니다. 공항장애가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어릴 적 버림받음 또는 소외(분리)의 상처가 있었던 경험이 있었다는 점입니다. 곧 너무 어리기에 누군가를 의존할 수 없었던 상황에서 그 의존하던 사람에게서 버림받았을 때 감당할 수 없는 소외감(분리의 감정)으로 인해 먼 훗날 어른이 되어서 그 때의 증상이 나타난다는 것이지요.


  당시에는 너무 어려서 잘 모르고 어른이 되어서는 평소에 자기감정을 억누르고 살다가 어릴 적 유사한 상황 곧 자신이 스스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닥치면 발병합니다. 기억은 못하지만 과거의 경험들이 많은 요소들에 의해 눌려 있다가 특정한 상황에서 다시 나타납니다. 이것이 버림받음의 원인과 비슷하기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죄인이었기에 버림받았습니다. 그 결과, 우리들 속에는 이러한 공항장애가 있습니다. 즉 엄청난 두려움과 버림받음이 속에 있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들이 울면서 태어나는 이유는 10개월 동안 엄마 뱃속에서 잘 살다가 떨어져 나오는 분리를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버리고 싶어서 버리는 게 아닌데 사실은 나와야만 살 수 있는데도 웁니다. 분리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은 울음입니다. 소외에 대한 인간의 첫 반응은 울음입니다. 그리고 우리들 속에 이런 것들이 들어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 인간들은 분리되어지는 것, 소외당하는 것에 대해 굉장히 예민해졌습니다. 누가 나를 버리거나 소외시키면 얼마나 놀래는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모릅니다. 이처럼 인간들 속에는 버림받아 고통당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다만 감사한 것은 우리들은 속에 있는 고통과 아픔 곧 버림받음을 다 느끼지 못하고 산다는 것입니다. 만약 다 느끼고 산다면 아마도 벌써 자살했을 것입니다.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차라리 죽는 게 낫지요.


  하나님은 우리 곁에 가까이 오시기를 원하십니다. 더 좋은 것으로 입히시기를 원하십니다. 더 좋은 사람들을 보내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속에 이 버림받음이 크게 자리 잡고 있다면 문제가 끊이지 않게 됩니다. 한 편으로는 사랑을 갈망하면서 한 편으로는 두려움 때문에 도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깨어지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균열이 생겨납니다. 이중적인 모습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없이 축복하시고 사랑하시기를 원하십니다. 내적인 상초들이 치유가 되면 그 은혜를 다 입으면서 우리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치유가 되지 않으면 내 속에 하나님의 나라 대신에 아픔만이 있을 뿐입니다. 기도하지만, 찬송 하지만, 교회에 열심히 오지만 그저 아플 뿐입니다. 도망가는 버림받음의 아픔 때문이지요. 아프기 때문입니다.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버림받은 마음을 찾아 주님 앞에 내려놓읍시다. 놀라운 변화가 있을 것입니다.


  인생사에서 흔히 겪는 일인데 어떤 사람에게 버림이나 배신을 당한 경험이 있을 때 그 사람과 용모나 성품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쳐다보기도 싫어집니다. 좋은 일을 하다가도 연관된 어떤 사람에게서 배신을 당하면 그토록 좋은 일조차도 하기가 싫어지는 법입니다. 이처럼 버림받은 마음은 사람들에게로 거리낌 없이 나아가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흔한 말로‘○○○○에게 상처를 준다.’라고 할 때, 상처의 본질은 ‘버림받음’입니다. 상처는 상처를 받는 사람에게는 멸시감을 느끼게 합니다. 따라서 교회 내에서 다음과 같은 말은 삼가 해야 합니다.


바보, 병신, 너 같은 놈은 필요 없어, 꺼져, 죽일 놈 등등


  버림받은 마음의 둘째 원인은 환경입니다.


  이 세상은 버림받은 자들이 모여 사는 곳입니다.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버리고 버림받는 환경을 만들어 갑니다. 환경이라는 원인은 시기별, 대상별로 몇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태어나기 이전의 버림받음


  태어나기 이전의 버림받는 환경에는 원하지 않는 임신, 엄마의 상실감 등이 있습니다. 원하지 않은 임신이 발견될 때 많은 경우 임산부들은 염려와 걱정이 들게 마련입니다. 여기서 아이는 신기하게도 어머니가 자기의 임신을 기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또는 태아의 어머니가 출산을 원하고는 있지만 자기학대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어서 어머니로서의 자신감을 상실하고 있을 때 태아는 버림받음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 외에 어머니의 억압된 분노 등은 태아에게 즉각적인 영향을 줍니다. 태아는 어머니의 생명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머니의 자기학대나 분노는 곧바로 태아에게 상처를 줍니다. 그래서 임신 중에는 어머니가 자기감정을 자주 발산해야 합니다. 참고 있으면 태아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태교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아이를 위해서도 해야 하지만 임산부 본인을 위해서도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원래 버림받은 존재이기에 버림받아도 되겠지.이런 생각은 금물입니다. 원마음 곧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상한심령으로 인한 버림받음은 의식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지만 태아 때의 버림받음은 의식의 부분과 가깝기 때문에 상처를 더욱 크게 남깁니다. 태어날 때의 버림받음은 태어날 때부터 가진 상한심령으로 인한 버림받음과 결합하여 훗날 하나님께 나아가기가 어렵습니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태어날 때 버림받음의 상처가 덜해야만 태어난 후 하나님께 나아가기가 쉬어집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태아 때에 부모로 부터 인정받지 못했던 상처들을 치유하시기 원하십니다. 치유를 위해 성령의 기름이 우리의 영혼과 의식의 세계 깊숙한 곳까지 흘러가도록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