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내적치유

13강 버림받은 마음(소외감) ②

by 은총가득 2010. 5. 12.

 

하나님백성의 회복을 위한 내면세계의 회복 No. 13                                        버림받은 마음(소외감) ②


버림받은 마음(소외감)의 증상


  마음속에 버림받은 마음이라는 상한심령이 있으면 몇 가지 증상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증상이 생활 속에 나타나면 주저하지 말고 통회하며 십자가로 가져가 못 박아야할 것입니다.


  첫째 증상은 아픔입니다.


  버림받은 마음은 아픔으로 옵니다. 소외감은 통곡으로 옵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 1절부터 1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 여호와의 노하신 매로 인하여 고난당한 자는 내로다 [2] 나를 이끌어 흑암에 행하고 광명에 행치 않게 하셨으며 [3] 종일토록 손을 돌이켜 자주 자주 나를 치시도다 [4] 나의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시며 나의 뼈를 꺾으셨고 [5] 담즙과 수고를 쌓아 나를 에우셨으며 [6] 나로 흑암에 거하게 하시기를 죽은 지 오랜 자 같게 하셨도다 [7] 나를 둘러싸서 나가지 못하게 하시고 나의 사슬을 무겁게 하셨으며 [8] 내가 부르짖어 도움을 구하나 내 기도를 물리치시며 [9] 다듬은 돌을 쌓아 내 길을 막으사 내 첩경을 굽게 하셨도다 [10] 저는 내게 대하여 엎드리어 기다리는 곰과 은밀한 곳의 사자 같으사 [11] 나의 길로 치우치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로 적막하게 하셨도다 [12] 활을 당기고 나로 과녁을 삼으심이여 [13] 전동의 살로 내 허리를 맞추셨도다 [14] 나는 내 모든 백성에게 조롱거리 곧 종일토록 그들의 노랫거리가 되었도다 [15] 나를 쓴 것으로 배불리시고 쑥으로 취하게 하셨으며  (애 3:1-15)


  이 부분을 현대적 감각으로 쓰면 다음과 같이 묘사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하시는 분노의 매에 내가 고통당하는 자가 되었구나.

그가 빛이 아닌 흑암 가운데로 나를 이끌어 걷게 하셨으며

하루 종일 손을 들어 나를 계속 치셨다.


그가 내 살과 가죽을 쇠하게 하고 내 뼈를 꺽으셨으며

고생과 시련의 담으로 나를 가두시고

죽은 지 오래된 사람처럼 나를 흑암 가운데 묻어 버리셨다.


그가 나를 포위하여 무거운 쇠사슬을 채웠으니 내가 도망갈 수 없구나.

내가 부르짖고 도움을 구하여도

그는 내 기도를 거절하시며 큰 돌을 쌓아 내 길을 막고 내가 둘러 다니도록 하셨다.


그는 나에게 숨어서 해칠 자를 기다리는 곰과 사자 같구나.

그가 길에서 나를 덮쳐 갈기갈기 찢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으며

활을 당겨 나를 과녁으로 삼으셨다.


여호와께서 그 화살로 내 심장을 꿰뚫었으니

내가 모든 백성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고 온종일 그들의 웃음거리가 되었구나.

그가 쓴 것으로 내 배를 채우시고 쑥물로 나를 취하게 하셨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시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마치 활을 당겨 이스라엘을 과녁삼아 쏘는 것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버림받은 마음은 화살이 가슴에 박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한 번 맞은 사람은 다시는 맞지 않으려고 두려워합니다. 버림받지 않으려고 소외당하지 않으려고 긴장된 생활을 합니다. 숨는 생활을 합니다.


  우리의 생활을 돌아봅시다. 여러분도 버림받지 않으려고 애쓰고 노력하셨지요? 우리가 살아온 나날들을 보면 버림받지 않기 위해 살아온 나날들일지도 모릅니다. 홀로되지 않으려고 몸부림친 나날들, 인정받기 위해 긴장했었던 나날들, 사람들의 중심에 있어보려고 했던 나날들, 우리의 과거가 이러지는 않았습니까.


  두 번째 증상은 외로움입니다.


  외로움이란 반겨주는 사람이 없이 홀로 되는 경험입니다. 외로움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외로움의 아픔이 무언지 잘 모릅니다. 여러분, 저녁에 집에 돌아갔어도 반겨주는 사람이 없을 때에 느끼는 외로움을 아십니까?


  어떤 사람들은 이 외로움을 잊어버리고자 술을 마십니다. 술로 잊으려듭니다. 그리곤 홀로 자빠져 잡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반짝반짝하는 곳에서 춤을 추며 잊으려듭니다. 또 어떤 이들은 밤마다 찾아오는 외로움을 잊으려고 향락에 빠지고 죄에 빠져 갑니다. 그러나 잠깐의 망각이지 깨고 나면 또 다시 깊은 외로움 속으로 빠져듭니다.


  세 번째 증상은 열등감과 자학(무가치하다고 스스로 인식함)입니다.


  왜 내가 버림받는 것일까?” 생각하는 가운데 인간들은 스스로 답을 찾곤 합니다. 그래, 내가 못난 놈이기에 그래. 나는 형편없는 놈이야하면서 자기 자신을 학대하며 위축됩니다. 왜 나는 늘 이 모양이지?하면서 상대방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집니다. 버림받은 마음의 증상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절규하듯 에이 이 병신아!라고 자기 자신에게 소리칩니다. 그리고는 세상을 살아갈 용기는 없어지고 불안과 염려가 생겨납니다. 자기 곁에 아무도 없다고 믿어 버립니다. 버림받음의 증상들입니다.


  이런 증상이 나타나는 사람들은 군중 속에 있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들 속에 있으면 덜 외롭기 때문입니다. 죽더라도 다 같이 죽으면 조금 나은 것처럼 느낍니다. 또 이러한 증상이 있는 사람이 죄를 지으면 두려우니까 다른 이들도 같이 죄짓게 합니다. 다 같이 죄를 지으면 덜 두려우니까요.


  버림받음의 네 번째 증상은 원망과 분노입니다.


  사람들이 왜 나를 버렸을까? 생각하다보면 원망과 분노가 생겨납니다. 잘못한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너무한다는 생각이 찾아옵니다. 모두에게 섭섭함을 느낍니다. 아무렇지 않은 한 마디의 말에도 예민해져서 생각을 몽땅 다 빼앗겨버립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민요 아리랑의 가사에 보면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가 있습니다. 자기를 버린 자는 반드시 발병이 나야 되는 분노의 감정을 표출한 경우입니다. 버림받음이 치유되지 않은 자들에게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누가 감히 나를 버린다는 말인가하면서 자기를 버리는 자에게 분노와 복수심이 생겨납니다.


  다섯 번째 증상은 깊은 불신입니다.


  버림받은 경험이 있으면 저 사람도 나를 버리지 않을까하는 불신이 찾아옵니다. 버림받음은 버림받음이라는 증상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버림받음을 만들어냅니다. 자신이 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고 버리게 됩니다. 버림받음의 악순환이 계속 되는 것입니다. 버림받음이 속에 있으면 상대방의 사랑을 믿지 못하고 버림받음만 머리에 자꾸만 떠오릅니다. 버림받음의 악순환은 마침내 우리를 가두어 버립니다.

                    

구원이란 버림받은 자를 건져 올리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생명인 영생을 누리는 현재의 상태를 일컫는 말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상실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버림받은 자를 건져 올려 살리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살고 싶으면 죽겠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살려질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은 이미 버림받았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도망가는 습성이 있습니다. 속에 있는 아픔 때문에 누군가가 접근해 오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구원하시고 싶은데 인간은 버림받은 아픔 때문에 또 화살을 맞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우리 속의 상한심령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습니다. 우리의 상한심령은 외로움 때문에, 분노 때문에, 열등감 때문에 자꾸만 도망을 갑니다.


  사람은 구원받은 영역만큼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에게 주권을 드린 영역만큼 하나님 나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속에 버림받음의 상처가 치유되셨나요? 만일 치유가 되지 않은 채 아픔이 그대로 남아 있으면 하나님의 부르시는 음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도망가는 비운을 겪게 됩니다.


  버림받은 마음의 치유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치유가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치유란 가만히 있는 사람을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 도망가는 사람을 잡아서 고치는 일이기에 그렇습니다. 어린아이가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을 때 도망가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 치과에 가면 아이들은 더욱 웁니다. 그래서 치유가 어렵습니다.


  인간은 도망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치시기를 원하시건만 인간은 자꾸 도망갑니다. 여기다가 인간이 도망을 하면 마귀가 도망가는 길을 도와줍니다. 착착 피할 길을 보여줍니다. 요나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이 때 마귀는 주로 피해의식을 인간에게 심어줌으로서 더욱 도망가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해야함을 모르는 이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을 사랑하기가 그렇게 어려울 수가 없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은 하고 싶은데 버림받은 마음이 자꾸 도망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인간관계나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사랑받고 싶어 여봉-외치면서도 한 쪽 마음이 도망을 갑니다. 서로가 도망을 갑니다. 그리고서는 서로 사랑을 안 해준다고 불평입니다. 게다가 그냥 도망가면 되는데 그냥 도망가지를 않습니다. 분노하면서 상대방에게 돌을 던지며 도망을 갑니다. 가까이 못 오게 말입니다. 네가 언제 날 위한 적이 있어? 한 번이라도 날 진정으로 사랑한 적이 있어?이런 말들이 좋은 예입니다. 치유란 이렇듯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인간 속에서 벌어지고 있기에 사람들은 잘 모르고 삽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많은 돌멩이를 맞으셨습니다. 조롱을 당하셨습니다. 분노를 당하셨습니다. 바로 우리들을 고치시기 위해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