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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서신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고전 16:15-18 / 잠언 25:13)

by 은총가득 2023. 4. 23.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

고전 16:15-18 / 잠언 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오늘 함께 읽은 고린도전서 16장 15-18절에도 사도 바울과 고린도교회 교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 준 세 사람 스데바나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등장합니다. 오늘은 이들과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 아가야의 첫 열매 스데바나

 

 

아가야는 고대 그리스 남부 마게도냐 남단의 지명이며, 아가야의 수도는 고린도였습니다. 아가야의 수도 고린도에 세워진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여행(50-51년경)때 세운 교회인데, 아가야의 스데바나라는 사람과 그 집안이 고린도교회의 성도를 섬기는 일에 충성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집을 집회장소를 제공하기도 했고, 병든 자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예루살렘교회가 어려울 때 헌금으로 지원했으며, 유일하게 바울의 선교여행 후원금을 댄 사람이기도 합니다. 그는 고린도전서 1장 16절에 의하면 아가야에서 바울에게 세례를 받은 첫 열매였으며, 세례를 받은 후 변함없이 교회를 위해 충성했던 인물입니다.

 

■ 아가야(그리스)

 

 

위에서 아가야는 고대 그리스 남부 마게도냐 남단의 지명이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읽히는 고전 중에 ‘그리스로마신화’가 있습니다. 그리스로마신화에는 수많은 신이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로마신화에 나오는 수많은 신을 위한 신전이 실제로 있었고, 이런 신전들을 중심으로 행해지는 제의는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초대교회 공동체에게는 커다란 위협이기도 했습니다. 로마 제국 시대에는 여기에 ‘황제 숭배’까지 더해지면서 초대교회는 신앙을 지키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신 중에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있습니다. 로마신화에서 ‘비너스’로 불리는 여신입니다. 당시 아가야의 수도 고린도에는 적어도 12개의 신전이 있었는데 그중에 가장 유명한 신전은 ‘아프로디테 신전’이었습니다. 그 신전에는 1,000명 정도의 신전매춘부가 있었고 그 때문에 도시 전체가 성적, 도덕적으로 타락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인이 되다”라는 뜻의 ‘korinthiazomai’는 “부도덕하게 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그리스를 지배하는 철학은 ‘헬라철학’으로 우상숭배와 이원론철학과 몸의 부활을 거부하는 것이었으므로, 고린도교회에 이런 그리스문화가 들어와 순수한 신앙을 훼손시켰습니다.

 

■ 브드나도와 아가이고

 

 

성경에 단 한 번, 그것도 이름만 등장하는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고린도전서를 통해서 알수 있는 바는 그들이 고린도교회가 당면한 다양한 문제들과 교인들이 가진 의문점을 에베소에 있던 바울에게 전했고, 바울이 에베소에서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쓴 편지를 고린도 교회에 전해준 이들로 추정됩니다.

 

고린도교회는 아볼로파와 게바파로 나뉘어 분쟁할 뿐 아니라, 아프로디테 신전의 영향을 받아 성적으로 문란했고, 결혼과 이혼의 문제, 우상에게 바쳤던 음식을 먹는 문제, 몸의 부활을 부정하는 문제에 따른 성찬식의 문제,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부정하는 문제, 성령의 은사를 부정하는 등 다양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변증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몸의 부활을 확증하며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갈 것을 권고하는 내용이 ‘고린도전서’였습니다.

 

바울은 스데바나의 집안 사람과 브드나도와 아가이고가 ‘나와 너희의 마음, 즉 사도 바울과 고린고 교회 교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준 사람들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의 어떤 모습이 그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했는지를 살펴보면, 오늘 우리도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섬기는 사람

 

 

스데바나는 아가야 지역의 첫 번째 개종자이며 바울이 세례를 준 몇 안 되는 사람(고전 1:16) 중 하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에서 스데바나에 대해서는 개인을 지칭하지 않고 ‘스데바나의 집’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 말씀은 스데바나가 복음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온 집안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뜻입니다. 가정의 복음화죠. 그리하여 온 집안에 교회와 성도를 섬기는 일에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 집안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도왔을 뿐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도 도왔으며, 때론 자신의 집을 집회장소로 제공했고, 사도 바울을 재정적으로 지원하면서 복음을 전하는데 전념하도록 도왔습니다.

 

가정의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하시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더 나아가 특별한 일이 없는 한에는 한 교회를 섬기는 것이 좋습니다. 온 집안이 한 교회를 섬기는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주인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18절의 말씀대로 이런 사람을 알아줘야 합니다. 교회 일을 열심히 하면 “교회 일을 자기 혼자 다하느냐?”고 비아냥거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 일은 자기 혼자 다해야 하는 것처럼 해야 합니다. ‘내가 없으면 안 돼’라는 마음으로 교회를 섬겨야 합니다. 15절에 보면 스데바나의 집 사람들은 “성도 섬기기를 작정”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일을 내 마음대로 하겠다가 아니라, 섬기는 일을 내가 하겠다가 중요한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교회를 섬기시는 분들, 그분들이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스데바나 집안이 지속적으로 가난한 이들을 돕고, 성도를 섬기고, 바울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도 헌금을 하려면 든든한 재물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그 재물이 어디에서 왔을까요? 하나님께서 채워주신 것입니다. 재물은 샘물과 같습니다. 선한 일을 위해 사용하면,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마르지 않지만, 쌓아두면 썩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재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에 사용하십시오. 그러면 다시 솟아오르는 샘물처럼 채워질 것입니다.

 

■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사람

 

 

스데바나 집 사람들의 헌신적인 섬김도 있었지만, 16절 말씀에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모든 사람”이라는 말씀을 통해서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헌신하는 이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일은 주인 의식을 가지고 해야 하지만,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협력해서 열심히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한남교회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과 맡겨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몇몇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중요합니다. 함께 한다는 것은, 나 한 사람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 하나쯤이야!’가 아니라 ‘내가 반드시 있어야 해!’라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 하나 빠져도 예배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을 거야’가 아니라, ‘내가 함께해야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어!’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숫자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해도 예배를 드릴 때 듬성듬성 이 빠진듯한 것과 잘 익은 옥수수처럼 곽 찬 것의 차이가 없겠습니까? 똑같이 열심히 준비한 말씀이라도 어떤 상황인가에 따라서 달라지지 않겠습니까? 그런 점에서 사실, 주일 예배에 참석한다는 것은 혹여 예배만 참석하고 다른 봉사는 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것’입니다.

 

■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 = 위로하는 사람

 

오늘 읽은 본문에만 나오는 두 사람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고린도교회 소식을 에베소에 있는 바울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에베소에 머물던 바울은 그들이 전해준 소식에 마음이 상쾌해졌습니다. 고린도 교회와 사도 바울 사이에 약간의 오해가 생겼습니다. 그 중 하나가 헌금문제였는데, 바울이 중간에 헌금을 착복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스데바나 같은 사람들이 후원하는 것도 그렇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헌금하라고 하니까 이런 오해가 생긴 것입니다. 정확하게 무엇을 오해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고, 해명할 수 있게 되었으니 바울의 마음은 상쾌해졌을 것입니다. 솔직하게 고린도 교회의 오해를 전해준 브드나도와 아가이고는 그래서 결국 바울을 위로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매개자의 역할을 해준 이들 덕분에 사도 바울은 기운을 북돋웠습니다.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여러분, 작은 일이라도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마음도 시원해지고, 함께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도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섬기고 함께 일하며 수고하는 일’의 출발은 예배입니다. 우리 한남교회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회복하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할 것이며, 함께 예배하는 성도들 피차간에도 서로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복을 주시며, 스데바다 집의 사람들에게 주셨던 복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사람’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민수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