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말의 징조와 성도의 자세
(마 24:23-51)
“23. 그 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 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26.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2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29. 그 날 환난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30.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38.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39.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40.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매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43.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시각에 올 줄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8.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49. 동료들을 때리며 술친구들과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50.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51.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가 받는 벌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1. 거짓 된 선지자들의 큰 표적과 기사(23-28)
종말의 때에 나타나는 특징적 현상 가운데 하나는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악한 자들은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고 주장하며 어리석은 사람들을 현혹하게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앞세우지만 실상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의 세력에 속한 자들이다. 따라서 성숙한 교회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하며 어린 성도들을 어두움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해야만 한다.
우리가 각별히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거짓을 행하는 자들이 다양한 기적들을 동반하게 된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결코 그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되며 그런 것들에 불필요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우리에게는 오직 성경에 계시된 말씀에 따라 온전히 순종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해도 나가지 말고 골방에 있다 해도 믿지 말라고 하셨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은 자기 백성들을 위해 그런 식으로 나타나시지 않는다. 그의 모든 사역은 성경에 계시되어 있으며 마지막 종말이 되면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이는 것과 같이 그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천상으로부터 재림하시게 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팔아 종교적인 장사를 하는 자들이 엄청난 표적과 기사를 행하며 그것이 하나님이 살아있는 증거라고 선전하는 것을 극히 경계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 선지자들이 기록된 말씀에 의존할 뿐 그렇게 하지 않는 것과 대조적이다. 그와 같은 모든 기적들은 이미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으로서 더 이상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구약시대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 거짓 선지자들의 말과 행동을 경계하도록 분명한 교훈을 주었다.
“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너는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며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고 그 선지자나 꿈꾸는 자는 죽이라 이는 그가 너희로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시며 종 되었던 집에서 속량하여 취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케 하려하며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행하라 명하신 도에서 너를 꾀어내려고 말하였음이라 너는 이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신13:1-3)
모세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하나님의 말씀보다 눈앞에 나타나는 현상에 미혹되지 말도록 당부했다. 악한 종교인들은 다양한 꿈을 제시하며 기적을 베푸는 가운데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본질적인 신앙에 혼선을 부추기고자 한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하신 것은 자기 백성들을 강하게 단련시키기 위해한 방편이라는 사실을 언급했다.
만일 그런 자들이 득세하여 다양한 형태의 기적들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도에서 멀어지게 한다면 방관하지 말고 그들을 죽여 버리도록 명령하셨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들 가운데 진리를 왜곡하는 악의 뿌리를 제거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사탄은 끊임없이 인간들의 구미에 맞는 온갖 방법들을 동원해 어리석은 자들을 미혹하고자 한다. 우리 시대에도 악한 자들은 종교적인 구실을 앞세워 무섭게 설쳐댄다. 그들은 구원받은 성숙한 성도들마저 혼선에 빠뜨리고자 한다. 최종적인 심판이 가까워오면 그와 같은 일이 더욱 크게 일어나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은 짐승에 관한 내용(계13:4)과 더불어 그에 관한 분명한 예언을 하고 있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계13:12-14)
최종적인 심판을 앞둔 시대가 되면 엄청난 혼란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그것은 점차 일반적인 상상을 초월하는 엄청난 기적들을 동반하는 양상으로 나타난다. 이는 사탄의 조직적인 활동에 연관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멀리하는 어리석은 자들은 그런 이적을 행하는 종교인들의 주변에 몰려든다.
인간적인 욕망과 이기적인 목적에 사로잡힌 자들은 신기한 기적과 거짓 가르침이 있는 곳에 모여들 수밖에 없다. 예수님께서 ‘죽은 시체가 있는 곳에 독수리들이 모여 든다’(28)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그에 대한 지적이다. 따라서 하나님을 떠난 어리석은 자들은 그것을 통해 무서운 독배(毒杯)를 마실 수밖에 없게 된다. 마지막 배도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에 연관된 주님의 예언에 민감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2. 하나님의 심판에 연관된 우주적 사건(29-31)
하나님을 경외하는 성도들이 타락한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환난은 최후심판에 대한 전주곡(前奏曲)과 같다. 세상의 속성상 그것은 필연적인 과정이다. 마지막 때가 이르게 되면 타락한 인간들 뿐 아니라 우주 만물이 심판을 받게 된다. 아담으로 말미암아 오염된 온 세상이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환난의 기간이 끝난 마지막 심판 날에는 온 우주와 더불어 해와 달과 별들의 기능에 변화가 생긴다.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원래의 빛을 상실할 뿐 아니라 하늘의 별들이 떨어져 모든 법칙이 무너져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 때 초림하여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가 하늘에 보이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 땅에 유일한 소망을 두고 살아가던 모든 족속들은 통곡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바라 볼 수밖에 없다. 그 때는 지상의 모든 인간들이 그 놀라운 광경을 지켜보게 된다. 그것은 오래 전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승천하실 때 이미 약속된 바다.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1:11);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1:7)
예수님께서는 창세전에 선택하신 자기 백성들의 영원한 구원을 이루기 위해 끝까지 사역하신다. 그리고 악한 세력에 대한 심판을 하시고자 이 땅에 재림하신다. 그 때 온 우주를 뒤흔드는 큰 나팔소리와 더불어 새로운 세계가 도래하고 있음이 선포된다.
그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보냄을 받은 천사들이 선택받은 성도들을 온 세상으로부터 끌어 모으는 일을 감당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조금의 오차도 없이 자신의 모든 구원계획을 이루어 가신다. 사도바울은 여러 교회에 편지하면서 그에 연관된 분명한 언급을 하고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15:51,52);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6,17)
진리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인간들은 죽음이 모든 것을 끝낼 것이라 착각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생명에 관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영원한 복락을 누리든지 아니면 영원한 파멸에 빠지든지 할 수밖에 없다.
그 일을 완성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이 땅에 재림하신다. 인간들은 모든 광경을 지켜본 후에서야 자신이 직면하고 있는 실상을 알아차리게 된다. 그 때는 죽은 자들이 무덤에서 일어나게 되며 세상에 살아있던 자들도 구름 속으로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
이는 ‘신부인 교회’가 지상과 분리된 영역에서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맞이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다. 그렇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들은 주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누리게 된다. 그것을 통해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예비된 인간 본연의 영원한 삶이 전개되는 것이다.
3. 종말에 대한 인식(32-36)
마지막 심판을 앞둔 최후 종말이 임박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에 살아가는 인간들은 그에 대해 둔감하기 그지 없다. 불신자들은 아예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하나님의 백성들조차도 민감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 때를 앞두고 민감한 자세를 가지도록 당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에서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말씀하셨다. 이에 대한 의미는 세대주의적인 관점에서 설명할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측면에서 자연스럽게 이해하면 된다. 즉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처럼, 종말의 징조를 보면서 주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는 것을 보면 여름이 가까웠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자연적인 이치이다. 그런 변화를 보고도 눈앞에 닥친 여름을 감지하지 못한다면 지극히 어리석은 자가 아닐 수 없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은 종말에 일어나는 다양한 징조들을 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눈앞에 바짝 이르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는 이전의 전통사회와는 달리 극도로 혼란한 시대가 되어 있다. 첨단과학 문명은 과거 인간들이 상상조차 하지 못하던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교통, 통신, 의술 등 모든 분야에서 그렇다. 이런 것들 역시 일종의 기적에 해당된다. 우리는 특히 하나님을 밀쳐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극도로 오만해진 인간들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유전공학이나 우주과학의 분야에서는 그 점이 더욱 두드러진다.
주님께서는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것을 이루시겠다는 말씀을 하셨다. 이는 여름이 오기 전의 무화과나무의 변화하는 상태에 연관되어 있다. 그 약속은 역사 가운데 반드시 시행될 수밖에 없다. 처음 창조되었던 오염된 우주만물은 하나님의 최종 심판을 받아 완전히 사라진다(계21:1). 그러나 주님의 말씀과 그의 사역은 영원토록 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재림하시게 될 그 날과 때를 알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그에 대해서는 하늘의 천사는 물론 성자께서도 모른다고 하셨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제자들이 현재의 신실한 삶을 뒤로하고 종말의 현상에 대해서만 관심을 치중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만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4. 시대와 징조(37-39)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세상의 현실에 집착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들은 모든 가치를 이 땅에 두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은 이 세상의 것들을 전부라고 생각하여 모든 판단의 기초로 삼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심판 날을 설명하시면서 노아홍수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계신다. 예수님의 재림을 앞둔 시점에도 그와 같은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이다. 즉 노아홍수 때 미련한 태도를 보이던 자들처럼 최종 심판의 목전에 이를 때도 그와 동일한 상황이 전개된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9)
노아시대 세상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던 사람들은 대 홍수를 앞두고 그에 대한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산 중턱에 방주를 짓게 하며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지만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홍수가 나기 전까지 하늘이 쾌청하고 특별한 자연현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 위의 모든 것들을 급속하게 앗아가는 그런 무서운 상황이 벌어질 것으로 생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홍수가 나기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면서 저들의 욕망을 추구했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타락한 자들의 부도덕한 윤리적 양상을 묘사하고 있지 않다. 즉 과도한 음주문화나 남녀 간의 성적인 문란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이 세상의 만족을 위해 살아가는 인간들의 무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앞두고 있는 때도 그와 같은 양상을 보이게 된다. 그런 삶을 살아가는 자들은 세상에서 성공하여 만족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마치 최상의 덕목인 양 여긴다. 어리석은 인간들은 세상에서 나그네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며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21세기의 첨단과학 문명을 누리며 살아가는 우리도 그 교훈을 확실히 깨달아야 한다. 이미 세상에는 종말이 임한 상태이며 여러 정황이 그에 대한 다양한 징조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 끝이 되면 예수님께서 재림해 온 세상을 선악 간 심판하시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속적인 지식에 빠진 어리석은 인간들은 그에 대해 철저히 무감각한 상태가 되어 있다. 그들은 세상에서의 목적 달성이 최상의 가치라 여기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러므로 성숙한 교회와 그에 속한 성도들은 종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된다.
5. 심판과 분리에 대한 예견(40-44)
마지막 때가 이르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에 의해 선악 간에 완전한 분리가 이루어진다. 사람들은 겉보기에 아무런 차이가 없는 제각각의 모습을 띠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이 밭에서 함께 일하다가 하나는 주님 품으로 가게 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아니다. 또한 두 여자가 한 곳에서 같이 맷돌을 갈다가 하나는 주님께로 가고 하나는 다른 곳으로 가게 된다.
모든 인간들이 세상에서 연명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하지만 그 결과는 전혀 다르다. 겉보기에 달라 보이지 않는 아담의 후손들이지만 본질상 모두가 동일한 것은 아니다. 주님의 재림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들은 생명의 부활을 하게 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사망의 부활을 하게 된다. 예수님께서는 그에 관한 분명한 교훈을 주셨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9)
이는 ‘알곡과 쭉정이’(마3:12; 눅3:17)를 구분하는 비유와 ‘양과 염소’(마25:32)를 분리하는 비유의 실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은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일어나게 되며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백성들은 영원한 복락에 들어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정반대의 상황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신자들과는 달리 불신자들은 무서운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목격하며 통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상에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주님이 재림하실 구체적인 날짜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따라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만 한다. 집 주인이 언제 도둑이 들어올 지 대비하고 있다면 자기 집을 침범 당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항상 주님의 재림을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대다수 사람들이 생각지도 않은 때 재림하시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을 거부하며 부인할 때 이 땅에 심판주로 오시게 되는 것이다.
6. 종말적 심판의 도래(45-51)
주님의 재림과 더불어 그의 자녀들에게 약속된 영원한 상속이 이루어지게 된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이 맡기신 자들에게 적절한 생명의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고 말씀하셨다. 이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허락되는 영원한 생명에 연관되어 있다.
하나님의 사역자들은 주님께서 맡기신 성도들을 위해 때에 따라 천상의 양식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예수님은 자기가 재림할 때 그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들이 진정으로 복 있는 자들이라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자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의 모든 것들을 맡기실 것이다. 이는 처음 피조 세계가 아담과 하와에게 맡겨진 사실에 연관되어 있다. 창세기에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들이 인간들에게 맡겨진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창1:28)
처음 사람 아담은 사탄의 유혹에 빠져 하나님께서 맡기신 그 사명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새로운 피조물이 된 인간들은 그 일을 능히 감당하게 된다. 그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과 만물을 지으신 거룩한 창조 의도를 완성하신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는 악한 자들은, 주인이 더디 올 것이라는 어리석은 판단으로 인해 제멋대로 행동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참된 종들에게 횡포를 부릴 뿐 아니라 심한 폭행을 가하면서 세상의 즐거움을 추구하는 자들과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는 삶을 누린다. 타락한 세상에 편승한 그들의 오만함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대상이 될 따름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예기치 않은 때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자신의 재림이 있게 되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자신의 뜻을 외면하고 멸시하는 배도자들을 엄격한 율법에 따라 형벌에 처하시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들은 끔찍한 지옥에 던져져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애처로운 상황에 빠질 수밖에 없다.
글<서성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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